宣詔第九
神龍元年上元日 則天中宗詔云 朕請安秀二師宮中供養 萬機之暇 每究一乘 二師推讓云 南方有能禪師 密授忍大師衣法 傳佛心印 可請彼問 今遣內侍薛簡 馳詔迎請 願師慈念 速赴上京 師上表辭疾 願終林麓 薛簡曰 京城禪德皆云 欲得會道 必須坐禪習定 若不因禪定而得解脫者 未之有也 未審師所說法如何 師曰 道由心悟 豈在坐也 經云 若言如來若坐若臥 是行邪道 何故 無所從來 亦無所去 無生無滅 是如來淸淨禪 諸法空寂 是如來淸淨坐 究竟無證 豈況坐耶 簡曰 弟子回京 主上必問 願師慈悲指示心要 傳奏兩宮及京城學道者 譬如一燈 然百千燈 冥者皆明 明明無盡 師云 道無明暗 明暗是代謝之義 明明無盡 亦是有盡 相待立名故 淨名經云 法無有比 無相待故 簡曰 明喻智慧 暗喻煩惱 修道之人 倘不以智慧照破煩惱 無始生死憑何出離 師曰 煩惱卽是菩提 無二無別 若以智慧照破煩惱者 此是二乘見解 羊鹿等機 上智大根 悉不如是 簡曰 如何是大乘見解 師曰 明與無明 凡夫見二 智者了達 其性無二 無二之性 卽是實性 實性者 處凡愚而不減 在賢聖而不增 住煩惱而不亂 居禪定而不寂 不斷不常 不來不去 不在中間及其內外 不生不滅 性相如如 常住不遷 名之曰道 簡曰 師說不生不滅 何異外道 師曰 外道所說不生不滅者 將滅止生 以生顯滅 滅猶不滅 生說不生 我說不生不滅者 本自無生 今亦不滅 所以不同外道 汝若欲知心要 但一切善惡都莫思量 自然得入淸淨心體 湛然常寂妙用恒沙 簡蒙指敎 豁然大悟 禮辭歸闕 表奏師語
신룡(神龍) 원년(元年; 705) 상원일(上元日) 측천(則天)과 중종(中宗)이 조명(詔命)으로 이르되 짐(朕)이 안수(安秀; 慧安과 神秀) 2사(師)를 청해 궁중에서 공양하며 만기지가(萬機之暇)에 매양 일승(一乘)을 연구하겠습니다. 2사(師)가 퇴양(推讓; 辭讓)하며 이르되 남방에 능선사(能禪師)가 있어 인대사(忍大師)의 의법(衣法)을 비밀히 전수(傳授; 傳受와 같음)했으며 불타의 심인(心印)을 전수했으니 가히 그를 청해 물으십시오. 이제 내시(內侍) 설간(薛簡)을 보내어 조서를 달려 영청(迎請)하니 원컨대 스님은 자념(慈念)으로 상경(上京; 國都)에 속히 다다르십시오. 스님이 상표(上表)하여 사질(辭疾)하면서 임록(林麓)에서 마치기를 원했다. 설간이 가로되 경성(京城)의 선덕(禪德)이 다 이르기를 도를 이회(理會)함을 얻고자 한다면 좌선(坐禪)하여 습정(習定)함이 필수(必須; 必要)하나니 만약 선정(禪定)을 인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 자는 있지 않다 합니다. 미심(未審)하오니 스님이 설법하는 바는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도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닫거늘 어찌 좌(坐)에 있겠는가. 경(금강경)에 이르되 만약 말하되 여래를 앉는다거나 눕는다 하면 이는 사도(邪道)를 행함이다. 무슨 연고냐 하면 좇아오는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다 하였다. 무생무멸(無生無滅)이 이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며 제법공적(諸法空寂)이 이 여래의 청정좌(淸淨坐)다. 구경(究竟; 필경)엔 증(證)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좌(坐)이겠는가. 설간이 가로되 제자가 회경(回京)하면 주상(主上)이 필문(必問)하실 것입니다. 원컨대 스님은 자비로 심요(心要)를 지시하십시오. 양궁(兩宮) 및 경성(京城)의 학도자(學道者)에게 전주(傳奏)하면 비유컨대 1등(燈)이 백천등(百千燈)에 불붙임(然)과 같이 어둔(冥) 것은 다 밝아지며 밝고 밝음이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운(師云) 도는 명암이 없나니 명암은 이 대사(代謝)의 뜻이다. 밝고 밝음이 다하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亦是) 다함이 있나니 상대(相待)하여 입명(立名)한 연고이다. 정명경(淨名經)에 이르되 법은 비교가 없나나 상대(相待)가 없는 연고이다. 설간이 가로되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둠은 번뇌에 비유하나니 수도지인(修道之人)이 만일(倘) 지혜로써 번뇌를 조파(照破)하지 않는다면 무시(無始)의 생사를 무엇에 의빙(依憑)해 출리(出離; 벗어남)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번뇌가 즉시 보리니 둘이 없고 다름도 없다. 만약 지혜로써 번뇌를 조파한다면 이것은 이 2승(乘)의 견해며 양록(羊鹿) 등의 근기(根機)다. 상지(上智)의 대근(大根)은 모두 이와 같지 않다. 설간이 가로되 무엇이 이 대승(大乘)의 견해입니까. 사왈(師曰) 밝음과 밝음이 없음을 범부는 둘로 보거니와 지자(智者)는 요달(了達)하여 그 자성이 둘이 없다. 무이지성(無二之性)이 즉시 실성(實性)이며 실성이란 것은 범우(凡愚)에 처해서도 감소(減少)하지 않고 현성(賢聖)에 있어도 증가하지 않고 번뇌에 거주(居住; 住)해도 혼란(昏亂)하지 않고 선정(禪定)에 거주(居住; 居)해도 적정(寂靜)하지 않다. 부단불상(不斷不常)이며 불래불거(不來不去)며 중간 및 그 내외에 있지 않으며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성상(性相)이 여여(如如)하며 상주(常住)하여 불천(不遷)하나니 이를 이름해 가로되 도다. 설간이 가로되 스님이 설하신 불생불멸이 어찌 외도(外道)와 다르겠습니까. 사왈 외도가 설하는 바 불생불멸이란 것은 멸(滅)을 가지고 생(生)을 멈추고(止) 생을 써서(以) 멸을 나타내므로 멸해도 불멸(不滅)과 같고(猶) 생으로 불생(不生)을 설한다. 내가 설하는 불생불멸이란 것은 본래 스스로 무생(無生)이며 지금 또한 불멸(不滅)인지라 소이로 외도와 같지 않다. 네가 만약 심요(心要)를 알고 싶다면 단지 일체의 선악을 모두 사량(思量)하지 말지니 자연히 청정한 심체(心體)에 들어가 담연(湛然)히 상적(常寂)하고 묘용(妙用)이 항사(恒沙)리라. 설간이 지교(指敎)를 받자(蒙) 활연(豁然)하여 대오하고 예사(禮辭)하고 귀궐(歸闕)하여 스님의 말씀을 표주(表奏)했다.
神龍; (705年正月-707年九月) 是武周皇帝武則天和唐中宗李顯的年號 神龍元年二月太平公主等人發動政變 迎唐中宗復位 史稱神龍政變 復國號唐 沿用武則天神龍年號 [百度百科]
(705年 정월-707年 9월) 이는 무주황제(武周皇帝) 무측천(武則天)과 당 중종(中宗) 이현(李顯)의 연호임. 신룡 원년 2월 태평공주 등의 사람들이 정변(政變)을 발동(發動)하여 당 중종을 영접하여 복위(復位)했으며 사칭(史稱)이 신룡정변(神龍政變)임. 국호((國號)) 당(唐)을 복귀하고 무측천의 신룡연호(神龍年號)를 연용(沿用; 따라 쓰다)했음 [백도백과].
則天; 則天武后(624-705) 唐代許州(河南許昌)人 姓武 名曌(照同 武后自製此字) 又稱武后 武則天 則天后 則天帝 則天女帝 則天女皇 十四歲 被選入宮 爲太宗才人 以黠慧獲寵 帝崩 依制削髮爲尼 高宗卽位後 召入宮爲昭儀 未久立爲后 於高宗晩年 專決政事 帝崩 先後廢中宗睿宗 天授元年(690)改國號爲周 自稱則天金輪皇帝 爲中國歷史上唯一之女皇帝 富於權略 善於用人 執政達四十餘年 與比丘曇慈造大雲經 以爲符讖 然師事高僧神秀 法藏 義淨等 頗能屈己盡禮 又度僧 造寺 塑像 寫經 歷年爲之 終不厭倦 晩年恣肆專橫 朝政日壞 神龍元年十一月薨 壽八十二 諡則天皇后 [唐書六 新唐書七十六 佛法金湯編七] ▲佛祖統紀三十九 則天武后 曌 初入宮爲才人 太宗崩 出爲感業寺尼 高宗詣寺行香 是之納後宮拜昭儀 次年冊爲后 弘道元年(683)高宗崩 皇太子卽位 是爲中宗 光宅元年(685) 廢中宗爲廬陵王 武后自聽政
측천무후(624-705)니 당대 허주(하남 허창) 사람. 성은 무(武)며 이름은 조(曌; 照와 같음. 무후가 스스로 이 글자를 제작했음). 또 호칭이 무후ㆍ무측천ㆍ측천후ㆍ측천제ㆍ측천여제ㆍ측천여황. 14세에 선출을 입어 입궁했고 태종의 재인(才人)이 되었으며 힐혜(黠慧: 黠은 약다. 영리하다)로 총애를 얻었음. 제(帝)가 붕어하자 제도에 의해 머리를 깎고 니(尼; 비구니. 사미니)가 되었음. 고종이 즉위한 후 불러 입궁시켜 소의(昭儀)로 삼았는데 오래지 않아 세워 후(后)로 삼았음. 고종 만년에 정사(政事)를 전결(專決)했음. 제가 붕어하자 선후로 중종ㆍ예종을 폐위했으며 천수 원년(690) 국호를 고쳐 주(周)로 삼고 자칭 측천금륜황제(則天金輪皇帝)라 했음.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되었음. 권략(權略)에 풍부하여 용인(用人)을 잘했으며 집정하기 40여 년에 도달했음. 비구 담자(曇慈)와 대운경(大雲經)을 만들어 부참(符讖)으로 삼았음. 그러나 고승 신수(神秀)ㆍ법장(法藏)ㆍ의정(義淨) 등을 사사(師事)하면서 자못 능히 자기를 굽혀 예절을 다했음. 또 도승(度僧)ㆍ조사(造寺)ㆍ소상(塑像)ㆍ사경을 역년(歷年; 많은 해를 거치다)하며 이를 했으며 마침내 염권(厭倦)하지 않았음. 만년에 자사전횡(恣肆專橫; 권세를 자기 멋대로 부림)했으며 조정은 날로 붕괴되었음. 신룡 원년 11월에 훙(薨)했고 나이 82. 시호가 측천황후 [당서6. 신당서76. 불법금탕편7]. ▲불조통기39. 칙천무후 조(曌) 처음 입궁하여 재인(才人)이 되었다. 태종이 붕어하자 출궁하여 감업사 니(尼)가 되었다. 고종이 사원으로 나아가 행향(行香)하고 이에 후궁으로 받아들여 소의(昭儀)를 제배(除拜)했다. 다음해 책봉해 후(后)로 삼았다. 홍도 원년(683) 고종이 붕어하자 황태자가 즉위했으니 이것이 중종이 된다. 광택 원년(685) 중종을 폐하여 여릉왕으로 삼고 무후가 스스로 청정(聽政)했다.
中宗; 唐中宗(656-710 683-684 705-710 兩度在位) 卽李顯 高宗第七子 神龍元年(705) 召六祖慧能入京 六祖表辭以疾 遣使賜紫袈裟甁鉢 詔義淨於內道場譯孔雀經等 御製聖敎序以冠經首 二年 敕造聖善寺成 八月 詔天下試童行經義 挑通達無滯者度之 景龍二年(708) 敕令崔思亮 往泗州迎僧伽大師至京 居薦福寺 中宗及百僚皆稱弟子 [佛祖統紀四十 佛法金湯編七 舊唐書七]
당중종(唐中宗) (656-710. 683-684 705-710 두 차례 재위) 즉 이현이니 고종의 제7자. 신룡 원년(705) 6조 혜능을 불러 입경하게 했으나 6조가 질병으로 사양함을 표하자 사자를 보내어 자가사(紫袈裟)와 병발(甁鉢)을 주었음. 의정을 불러 내도량에서 공작경 등을 번역하게 하고 어제성교서로써 경수(經首)에 씌웠음. 2년 칙명으로 성선사를 건조해 낙성했음. 8월 천하에 조칙하여 동행의 경의(經義)를 시험했으며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자를 가려서 득도(得度)시켰음. 경룡 2년(708) 최사량에게 칙령해 사주로 가서 승가대사(僧伽大師)를 맞이해 경사에 이르게 하고 천복사에 거주케 했으며 중종 및 백료가 모두 자칭 제자라 했음 [불조통기40. 불법금탕편7. 구당서7].
萬機; 當政者處理的各種重要事務
당정(當政; 정권을 장악함)한 자가 처리하는 각종의 중요한 사무.
一乘; 成佛唯一之敎也 乘爲車乘 以譬佛之敎法 敎法能載人運於涅槃岸 故謂之乘 法華經專說此一乘 ▲法華經方便品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성불할 유일한 교임. 승(乘)은 거승(車乘)이 되며 불타의 교법에 비유함. 교법이 능히 사람을 싣고 열반의 언덕으로 운행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승이라 함. 법화경은 오로지 이 1승을 설함. ▲법화경 방편품. 시방의 불토 중에/ 오직 일승법만 있고/ 둘이 없고 또 셋이 없나니/ 불타의 방편설을 제한다.
辭疾; 以身體有病爲由推辭不就某種職務或不做某件事
신체에 병이 있음을 사유(事由)로 삼아 퇴양(推辭)하면서 모종의 직무에 나아가지 않거나 혹 모건(某件)의 사(事)를 짓지 않음.
禪德; 對禪宗僧人的尊稱
선종 승인에 대한 존칭.
代謝; 更替 交替變換
경체(更替; 바꾸다). 교체하고 변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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