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4 혜충선사(慧忠禪師)

태화당 2023. 2. 1. 08:34

第六世慧忠禪師者 潤州上元人也 姓王氏 年二十三受業於莊嚴寺 其後聞威禪師出世乃往謁之 威纔見曰 山主來也 師感悟微旨 遂給侍左右 後辭詣諸方巡禮 威於具戒院見凌霄藤 遇夏萎悴人欲伐之 因謂之曰 勿剪 慧忠還時此藤更生 及師迴果如其言 卽以山門付囑訖 出居延祚寺 師平生一衲不易 器用唯一鐺 嘗有供僧穀兩廩 盜者窺伺 虎爲守之 縣令張遜者 至山頂謁問師 有何徒弟 師曰 有三五人 遜曰 如何得見 師敲禪床 有三虎哮吼而出 遜驚怖而退 後衆請入城居莊嚴舊寺 師欲於殿東別創法堂 先有古木 群鵲巢其上 工人將伐之 師謂鵲曰 此地建堂汝等何不速去 言訖 群鵲乃遷巢他樹 初築基有二神人定其四角 復潛資夜役 遂不日而就 繇是四方學徒雲集坐下矣 得法者有三十四人 各住一方轉化多衆 師嘗有安心偈 示衆曰 人法雙淨 善惡兩忘 直心眞實 菩提道場 唐大曆三年 石室前挂鐺樹挂衣藤 忽盛夏枯死 四年六月十五日集僧布薩訖 命侍者淨髮浴身 至夜有瑞雲覆其精舍 空中復聞天樂之聲 詰旦怡然坐化 時風雨暴作震折林木 復有白虹貫于巖壑 五年春茶毘獲舍利不可勝計 壽八十七

出世; 出世間之略稱 卽超越世俗 出離世塵之意 又作出塵 二指諸佛出現於世間成佛 三禪師於自身 修持功成後 再次歸還人間敎化衆生 亦稱出世 或被任命住持之職 昇進高階位之僧官等 皆稱爲出世 此指三

山主; 卽一山之主 乃一寺住持之尊稱 例如傳燈錄二十四之撫州龍濟山主紹修禪師 廣燈錄二十八之杭州南山資國圓進山主 續傳燈錄十一之眞州定山惟素山主等 蓋寺院原多建於山林之間 寺稱山號 故住持稱山主 此外 亦稱禪林大寺院之上座爲山主 [象器箋稱呼類]

萎悴; 枯萎 衰落 憔悴

窺伺; 暗中觀望動靜 等待時機

禪床; 又作禪牀 牀 同床 玉篇 床 俗牀字 禪牀又作繩牀 坐禪牀 卽以繩草或籐 所製之折疊牀 以其輕巧 且攜帶方便 故爲比丘經常攜行之道具 屬十八物之一

法堂; 乃七堂伽藍之一 卽禪林演布大法之堂 位於佛殿之後方 方丈之前方 相當於講堂 而講通於講敎 爲別於他宗 且示其敎外別傳之宗旨 故於禪宗特稱爲法堂 按歷代三寶紀十二 傳燈錄四等 支那自古除佛殿外 亦建有法堂 及至百丈懷海禪師定禪苑之規制 遂模倣朝制之太極殿 建立法堂 堂內中央設一高臺 四方均得仰望 然後世則於座後設大板屛 已失古意 禪苑淸規十云 不立佛殿唯搆法堂 可知禪苑古來不存佛殿 只建法堂 後始於佛殿之後方建法堂 或於小寺院中 衍爲佛殿法堂兩者兼用 [百丈淸規上尊祖章 禪苑淸規五 同七 同九 象器箋殿堂類]

道場; 又作菩提道場 菩提場 指中印度菩提伽耶的菩提樹下之金剛座上佛陀成道之處 注維摩詰經四 復次佛所坐處 於中成道 故名道場 指修行佛道之區域 不論堂宇之有無 凡修行佛道之所在 均稱道場 釋氏要覽上 肇云 閑宴修道之處 謂之道場 隋煬帝勅遍改僧居名道場 又得道之行法 謂爲道場 維摩經菩薩品 直心是道場 …… 三十七品是道場 又爲法座之異名 慈悲道場 水陸道場等是也 此指

布薩; <> poṣadha upavasatha upoṣadha upavāsa <> uposatha posatha 又作布灑他 此云長淨 長養 增長等 或稱說戒 卽同住之比丘每半月集會一處 或齊集布薩堂 請精熟律法之比丘說波羅提木叉戒本 以反省過去半月內之行爲是否合乎戒本 若有犯戒者 則於衆前懺悔 使比丘均能長住於淨戒中 長養善法 增長功德 又在家信徒於六齋日受持八齋戒 亦稱布薩 謂能增長善法

精舍; 寺院之異名 爲精行者所居 故曰精舍 非精妙之謂

詰旦; 淸晨 早晨

 

6세 혜충선사(慧忠禪師)란 자는 윤주(潤州) 상원(上元) 사람이며 성은 왕씨다. 나이 23에 장엄사(莊嚴寺)에서 수업(受業)했다. 그 후 지위선사(智威禪師)가 출세(出世)했다 함을 듣고 가서 그를 참알(參謁)했다. 지위가 겨우 보자 가로되 산주(山主)가 왔구나. 스님이 미지(微旨)에 감오(感悟)했고 드디어 좌우에서 급시(給侍)했다. 후에 고별()하고 제방(諸方)으로 나아가서 순례(巡禮)했다. 지위가 구계원(具戒院)에서 능소등(凌霄藤)을 보니 여름을 만나 위체(萎悴; 저본에 委悴로 지었음)했고 사람이 그것을 베려고() 했다. 인하여 그에게 일러 가로되 베지() 말아라. 혜충이 돌아올 때 이 등()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스님이 돌아옴에 이르러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곧 산문(山門)을 부촉(付囑)해 마치자 나가서 연조사(延祚寺)에 거주했다. 스님은 평생 1()을 바꾸지 않았고 그릇()은 오직 1(; . 노구솥)을 썼다. 일찍이 공승곡(供僧穀) 두 곳집(兩廩)이 있었는데 도자(盜者)가 규사(窺伺)하자 범이 그것을 수호(守護)했다. 현령(縣令; 현의 長官) 장손(張遜)이란 자가 산정(山頂)에 이르러 스님을 참알하고 묻되 어떤 도제(徒弟)가 있습니까. 사왈 3, 5인이 있습니다. 장손이 가로되 어떻게 해야 득견(得見)합니까. 스님이 선상(禪床)을 두드리자 3()가 있어 효후(哮吼)하며 나왔다. 장손이 경포(驚怖)하며 물러났다. 후에 대중이 청해 입성(入城)하여 장엄(莊嚴) 구사(舊寺)에 거주했다. 스님이 전(殿)의 동쪽에 법당(法堂)을 따로 창건하려고 했는데 먼저 고목(古木)이 있었고 군작(群鵲)이 그 위에 둥지를 틀었다. 공인(工人)이 장차 그것을 베려고 하자 스님이 까치에게 일러 가로되 이 땅에 건당(建堂)하려고 하는데 너희 등은 왜 멀리 떠나지 않느냐. 말을 마치지 군작(群鵲)이 이에 다른 나무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처음 기초(基礎)를 쌓자 2신인(神人)이 있어 그 4()을 정()했고 다시 몰래() 야역(夜役)을 도운지라() 드디어 불일(不日; 며칠 안. 머지않아)에 성취했다.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학도(學徒)가 좌하(坐下)에 운집했고 법을 얻은 자가 34인이며 각자 1()에 거주하면서 다중(多衆)을 전화(轉化; 展轉히 교화)했다. 스님이 일찍이 안심게(安心偈)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인법(人法)을 쌍정(雙淨)하고/ 선악을 양망(兩忘)하라/ 직심(直心; 저본에 眞心으로 지었음)이 진실(眞實)이니/ 보리(菩提)의 도량(道場)이다. () 대력(大曆; 저본에 大歷으로 지었음) 3(766) 석실 앞의 괘쟁수(挂鐺樹)와 괘의등(挂衣藤)이 홀연히 성하(盛夏; 5)에 고사(枯死)했다. 4(767) 615일 승중(僧衆)을 소집(召集)하여 포살(布薩)하여 마치자 시자에게 명령해 정발욕신(淨髮浴身)했다. 밤에 이르자 서운(瑞雲)이 있어 그 정사(精舍)를 덮었고 공중에 다시 천악(天樂)의 소리가 들렸다. 힐단(詰旦)에 이연(怡然)히 좌화(坐化)했는데 때에 풍우가 폭작(暴作)하여 임목(林木)을 진절(震折; 움직여 부러뜨림)했고 다시 백홍(白虹)이 있어 암학(巖壑; 바위와 골)을 관통했다. 5(768) 봄 다비(茶毘)하여 사리를 얻었는데 가히 다() 세지 못한다. 나이는 87이다.

出世; 1. 출세간(出世間)의 약칭이니 곧 세속을 초월하여 세진(世塵)을 출리(出離)함의 뜻. 또 출진(出塵)으로 지음. 2. 제불이 세간에 출현하여 성불함을 가리킴. 3. 선사(禪師)가 자신을 수지(修持)하여 공()을 이룬 후에 재차(再次) 인간으로 귀환하여 중생을 교화함을 또한 출세라고 일컬음. 혹은 주지(住持)의 직()에 임명됨을 입거나 높은 계위(階位)의 승관(僧官)에 승진(昇進)하는 등을 다 일컬어 출세라고 함. 여기에선 3을 가리킴.

山主; 1산의 주인이니 곧 1()의 주지의 존칭임. 예여(例如) 전등록24의 무주 용제산주 소수선사ㆍ광등록28의 항주 남산 자국 원진산주ㆍ속전등록11의 진주 정산 유소산주 등임. 대개 사원은 원래 산림의 사이에 많이 건립했고 사()를 산호(山號)로 일컬은지라 고로 주지를 일컬어 산주라 함. 이 밖에 또한 선림의 대사원의 상좌를 일컬어 산주라 함 [상기전칭호류].

萎悴; 고위(枯萎; 말라 시듦). 쇠락(衰落). 초췌(憔悴).

窺伺; 암중(暗中)에 동정(動靜)을 관망하면서 시기를 기다림(等待).

禪床; 또 선상(禪牀)으로 지음. ()은 상()과 같음. 옥편 상() ()의 속() 글자다. 선상(禪牀)은 또 승상(繩牀)ㆍ좌선상(坐禪牀)으로 지음. 곧 승초(繩草)나 혹 등()으로 제작한 바의 절첩상(折疊牀; 접이식 상)이니 그것이 경교(輕巧)하고 또 휴대하기가 방편(方便)한지라 고로 비구가 경상(經常; 平時)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됨. 18물의 하나에 속함.

法堂; 법당(法堂) 곧 칠당가람(七堂伽藍)의 하나. 곧 선림에서 대법을 연포(演布)하는 당(). 불전(佛殿)의 후방과 방장의 전방에 위치함. 강당에 상당하며 강()은 강교(講敎)와 통함. 타종(他宗)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또 그 교외별전의 종지를 보이는지라 고로 선종에서 특별히 법당으로 호칭함. 역대삼보기12ㆍ전등록4 등을 안험컨대 지나(支那)에선 자고로 불전을 제한 밖에 또한 법당을 건립해 있었으며 및 백장회해선사가 선원의 규칙을 제정함에 이르러 드디어 조제(朝制)의 태극전(太極殿)을 모방해 법당을 건립했음. 당내 중앙에 하나의 고대(高臺)를 설치하여 사방에서 균일하게 앙망함을 얻었음. 그러나 후세에 곧 좌후(座後)에 대판병(大板屛)을 설치했는데 이미 고의(古意)를 잃었음. 선원청규10에 이르되 불전을 세우지 않고 오직 법당만 지었다 했으니 가히 선원은 고래로 불전을 두지 않고 다만 법당만 건립한 줄을 알 것임. 후에 비로소 불전의 후방에 법당을 건립했음. 혹 작은 사원 중엔 널리 불전과 법당 양자를 겸용했음 [백장청규상존조장. 선원청규5, 7, 9. 상기전전당류].

道場; 또 보리도량(菩提道場; Bodhi-maṇḍa)ㆍ보리장(菩提場)으로 지음. 중인도 보리가야(菩提伽耶; Buddha-gayā)의 보리수 아래의 금강좌상의 불타가 성도한 곳을 가리킴. 주유마힐경4. 다시 다음에 불타가 앉은 곳, 그 가운데서 성도한지라 고로 이름이 도량(道場)이다. 불도를 수행하는 구역을 가리킴. 당우(堂宇)의 유무를 논하지 않고 무릇 불도를 수행하는 소재를 균일하게 일컬어 도량(道場)이라 함. 석씨요람상. (; 僧肇)가 이르되 한가하고 편안하게 수도하는 곳, 이를 일러 도량(道場)이라 한다. 수양제가 칙명으로 승거(僧居; 승인의 거주지)를 두루 고쳐 도량(道場)으로 명칭했다. 또 도를 얻는 행법을 일컬어 도량(道場)이라 함. 유마경 보살품. 직심이 이 도량(道場)이며 …… 37품이 이 도량이다. 또 법좌의 다른 이름이 됨. 자비도량ㆍ수륙도량 등이 이것임. 여기에선 을 가리킴.

布薩; <> poṣadha. upavasatha. upoṣadha. upavāsa. <> uposatha. posatha. 또 포쇄타(布灑他)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장정(長淨)ㆍ장양(長養)ㆍ증장(增長) 등이며 혹은 설계(說戒)로 일컬음. 곧 함께 거주하는 비구가 매() 반달마다 한 곳에 모이거나 혹은 포살당(布薩堂)에 일제(一齊)히 모여 율법을 정밀하게 익힌 비구에게 요청해 바라제목차계본(波羅提木叉戒本; 波羅提木叉三名 중의 하나)을 설하게 하면서 지난 반달 내의 행위가 계본(戒本)에 부합(否合)하는지를 반성(反省). 만약 계를 범한 자가 있으면 곧 대중 앞에서 참회(懺悔)하여 비구로 하여금 균일하게 능히 정계(淨戒) 중에 장주(長住)하면서 선법(善法)을 장양(長養)하고 공덕을 증장(增長)하게 함. 또 재가신도(在家信徒)6재일(齋日)8재계(齋戒)를 수지(受持)함도 또한 포살이라고 일컫나니 이르자면 능히 선법을 증장함임.

精舍; 사원의 다른 이름이니 정행자(精行者)의 소거(所居)가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정사(精舍)며 정묘(精妙)를 말함이 아님.

詰旦; 청신(淸晨; 맑은 첫새벽). ()은 이른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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