僧問 禪宗頓悟 畢竟入門的意如何 師曰 此意極難 若是祖宗門下上根上智 一聞千悟得大總持 此根人難得 其有根微智劣 所以古德道 若不安禪靜慮 到遮裏總須茫然 僧曰 除此格外 還別有方便令學人得入也無 師曰 別有別無令汝心不安 汝是什麽處人 曰幽州人 師曰 汝還思彼處否 曰常思 師曰 彼處樓臺林苑人馬騈闐 汝返思底還有許多般也無 僧曰 某甲到遮裏一切不見有 師曰 汝解猶在境 信位卽是 人位卽不是 據汝所解只得一玄 得坐披衣向後自看 其僧禮謝而去 師始自仰山後遷觀音 接機利物爲禪宗標準 遷化前數年有偈曰 年滿七十七 老去是今日 任性自浮沈 兩手攀屈膝 於韶州東平山示滅 年七十七 抱膝而逝 勅諡智通大師妙光之塔 後遷塔于仰山
●騈闐; 慧琳音義六十一 騈闐 上便綿反 下殿蓮反 集訓音 騈闐 謂益滿也 盛也 說文 騈 車駕二馬 從馬幷聲 亦會意字也
●信位人位; 宗範下云 及信位卽得 人位未在語 此僧返照能思心無境 落比量(已知之事 量知未知之事也 如見煙比知於彼有火是也 因而因明法者 以因與喩比知主義之軌式也 總稱爲比量者 是八識中唯意識之用也 因明入正理論曰 言比量者 謂藉衆相而觀義) 祇成信解 若獲親證現量(因明用語 三量之一 現實量知也 向色等諸法 現實量知其自相 毫無分別推求之念者) 契入鏡智 人位顯矣 ▲大慧語錄二十七 妙喜已是老婆心切 須著更下箇注脚 人位卽是汪彦章 信位卽是知根性陋劣 求入頭處底 若於正提撕話頭時 返思能提撕底 還是汪彦章否 到這裏間不容髮 若佇思停機 則被影子惑矣
승문(僧問) 선종의 돈오는 필경 입문(入門)하는 뜻이 무엇입니까(如何). 사왈(師曰) 이 뜻이 극히 어렵나니 만약 이 조종문하(祖宗門下)의 상근상지(上根上智)일진댄 일문천오(一聞千悟)하여 대총지(大總持)를 얻겠지만 이런 근기의 사람은 얻기 어렵다. 그, 근기가 미약하고 지혜가 열등한 이가 있나니 소이로 고인이 말하되 만약 안선(安禪)하고 정려(靜慮)하지 않는다면 이 속에 이르러선 모두 반드시(須) 망연(茫然(하리라. 승왈(僧曰) 이 격외(格外)를 제하고 도리어 달리(別) 방편이 있어(有) 학인으로 하여금 득입(得入)하게 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師曰) 별유별무(別有別無)는 너의 마음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한다. 너는 이 어느 곳의 사람인가. 가로되 유주(幽州) 사람입니다. 사왈 너는 도리어 그곳을 생각하느냐. 가로되 늘 생각합니다. 사왈 그곳의 누대(樓臺) 임원(林苑)과 인마(人馬)의 변전(騈闐)을 네가 돌이켜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허다한 종류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승왈(僧曰) 모갑이 이 속에 이르러선 일체 있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왈 너의 앎(解)은 오히려 경계에 있다. 신위(信位)는 곧 이것(是)이지만 인위(人位)는 곧 이것이 아니다. 너의 아는 바에 의거하자면 다만 1현(玄)을 얻었나니 득좌피의(得坐披衣; 주지하며 설법)하거든 향후에 스스로 보아라. 그 중이 예사(禮謝)하고 갔다. 스님이 앙산으로부터 시작하여 후에 관음(觀音)으로 옮겼으며 접기(接機)하여 이물(利物; 사람을 이롭게 하다)하매 선종의 표준이 되었다. 천화(遷化)하기 전 몇 년에 게가 있어 가로되 나이가 77을 채우면/ 노거(老去; 늙어 떠나다)가 이 금일이다/ 임성(任性)하여 스스로 부침(浮沈)하다가/ 양손으로 무릎을 당겨 굽히리라. 소주(韶州) 동평산(東平山)에서 시멸(示滅)했는데 나이는 77이며 무릎을 안고 서거했다. 칙시가 지통대사묘광지탑(智通大師妙光之塔)이며 후에 앙산으로 탑을 옮겼다.
●騈闐; 혜림음의61. 변전(騈闐) 상은 변면반(便綿反; 변)이며 하는 전련반(殿蓮反; 젼)이니 집훈음(集訓音) 변전(騈闐) 이르자면 익만(益滿)이다. 성(盛)이다. 설문 변(騈) 2마(馬)의 거가(車駕)다. 마병성(馬幷聲)을 좇는다. 또한 회의자(會意字)다.
●信位人位; 종범하(宗範下)에 이르되 및 신위(信位)는 곧 얻으나 인위(人位)는 얻지 못한다는 말은 이 중이 능사(能思)의 마음엔 경계가 없음을 반조하였으니 비량(比量; 이미 안 일로 알지 못한 일을 헤아려 아는 것임. 例如 연기를 보매 그곳에 불이 있음을 비교하여 아는 것이 이것임. 이로 인해 因明의 법이란 것은 因과 비유로 비교해서 아는 主義의 軌式이니 모두 일컬어 比量이라 하는 것임. 이는 八識 중에 오직 意識의 씀임. 因明入正理論에 가로되 말한 비량이란 것은 이르자면 衆相을 빌려 뜻을 관찰함이다)에 떨어져 단지 신해(信解)를 이루었다. 만약 현량(現量; 因明의 용어니 3量의 하나. 현실로 헤아려 아는 것이니 색 등의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自相을 헤아려 알되 터럭만큼의 분별하여 추구하는 생각이 없는 것임)을 친히 증득함을 얻었다면 경지(鏡智)에 계합해 들어 인위가 환했을 것이다. ▲대혜어록27. 묘희(妙喜; 大慧)가 이미 이 노파심이 간절한지라 다시 이 주각(注脚) 내림을 쓰리라. 인위(人位)는 곧 왕언장(汪彦章)이며 신위(信位)는 곧 이 근성(根性)이 누열(陋劣)함을 알아서 입두처(入頭處)를 구하는 것이다. 만약 바로 화두를 제시(提撕)할 때 능히 제시하는 것을 반사(返思)하는 것은 도리어 이 왕언장인가. 이 속에 이르러선 사이에 머리카락만큼도 용납하지 않나니 만약 저사정기(佇思停機)하면 곧 영자(影子)의 혹란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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