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2 법융선사(法融禪師)-준극선사(峻極禪師)

태화당 2025. 10. 6. 09:24

五燈會元卷第二

四祖大醫禪師旁出法嗣第一世

牛頭山法融禪師者

潤州延陵人也 姓韋氏 年十九學通經史 尋閱大部般若 曉達眞空 忽一日歎曰 儒道世典 非究竟法 般若正觀 出世舟航 遂隱茅山 投師落髮 後入牛頭山幽棲寺北巖之石室 有百鳥銜華之異 唐貞觀中 四祖遙觀氣象 知彼山有奇異之人 乃躬自尋訪 問寺僧 此間有道人否 曰 出家兒那箇不是道人 祖曰 阿那箇是道人 僧無對 別僧曰 此去山中十里許 有一懶融 見人不起 亦不合掌 莫是道人麽 祖遂入山 見師端坐自若 曾無所顧 祖問曰 在此作甚麽 師曰 觀心 祖曰 觀是何人 心是何物 師無對便起作禮曰 大德高棲何所 祖曰 貧道不決所止 或東或西 師曰 還識道信禪師否 祖曰 何以問他 師曰 嚮德滋久 冀一禮謁 祖曰 道信禪師 貧道是也 師曰 因何降此 祖曰 特來相訪 莫更有宴息之處否 師指後面曰 別有小庵 遂引祖至庵所 遶庵唯見虎狼之類 祖乃擧兩手作怖勢 師曰 猶有這箇在 祖曰 這箇是甚麽 師無語 少選 祖却於師宴坐石上書一佛字 師覩之竦然 祖曰 猶有這箇在 師未曉乃稽首請說眞要 祖曰 夫百千法門 同歸方寸 河沙妙德 總在心源 一切戒門定門慧門 神通變化 悉自具足 不離汝心 一切煩惱業障 本來空寂 一切因果 皆如夢幻 無三界可出 無菩提可求 人與非人 性相平等 大道虛曠 絕思絕慮 如是之法 汝今已得 更無闕少 與佛何殊 更無別法 汝但任心自在 莫作觀行 亦莫澄心 莫起貪嗔 莫懷愁慮 蕩蕩無礙 任意縱橫 不作諸善 不作諸惡 行住坐臥 觸目遇緣 總是佛之妙用 快樂無憂 故名爲佛 師曰 心旣具足 何者是佛 何者是心 祖曰 非心不問佛 問佛非不心 師曰 旣不許作觀行 於境起時 心如何對治 祖曰 境緣無好醜 好醜起於心 心若不强名 妄情從何起 妄情旣不起 眞心任徧知 汝但隨心自在 無復對治 卽名常住法身 無有變異 吾受璨大師頓敎法門 今付於汝 汝今諦受吾言 只住此山 向後當有五人達者 紹汝玄化 祖付法訖 遂返雙峯終老 師自爾法席大盛

潤州; 今江蘇省鎭江

牛頭山; 位於江蘇江寧府上元縣之南 又作牛首山 天闕 仙窟山 以雙峰對峙 宛如牛角 故有此名 大明三年(459) 建造幽棲()寺 唐貞觀十八年(644) 法融來此 於幽棲寺之北巖下建禪室 隨從者百餘人 自此法融一系 稱爲牛頭禪 此後有法持 慧忠 玄素等 皆學法於幽棲寺 此寺後改稱祖堂寺

阿那箇; 那箇 阿 助詞

或東或西; 搖擺不定

相訪; 相 表示一方對另一方有所動作

少選; 不久 須臾

眞要; 眞諦要義

方寸; 般若心經疏詒謀鈔云 方寸者 俗書說 人之心藏 唯方一寸 正法念經云 心如蓮華開合 提謂經云 心如帝王 皆肉團心也 肇論疏上 方寸者 心也

河沙; 恒河(在印度)之沙 比喩數量極多

業障; 三障(煩惱障 業障 報障)之一 四障(惑障 業障 報障 見障)之一 三藏法數八云 業卽業行 謂由貪瞋癡 起身口意 造作五無間重惡之業 障蔽正道 是名業障

非人; 對於人而謂 天龍八部及夜叉惡鬼之冥衆 總爲非人

虛曠; 空虚 廣大寬闊

觀行; 觀心之行法 卽觀心修行 鑒照自心以明了本性 或指觀法之行相

對治; 原意爲否定 遮遣 於佛敎中 則指以道斷除煩惱等

境緣; 唯識名詞 生識的九緣之一 境 指色聲香味觸五塵之境 若無色等五種塵境作對 則五識無由能發 故境爲五識之緣也

終老; 指度過晩年 養老爲終老之計

 

우두산(牛頭山) 법융선사(法融禪師)란 자는

윤주(潤州) 연릉(延陵) 사람이니 성은 위씨(韋氏). 나이 19에 학문이 경사(經史)를 통달했다. 이윽고 대부반야(大部般若; 大般若波羅蜜多經 600)를 열독(閱讀)하고 진공(眞空)을 효달(曉達; 通曉)했다. 홀연히 어느 날 탄식해 가로되 유도(儒道; 유교와 도교)는 세전(世典)이라 구경법(究竟)이 아니다. 반야(般若)는 정관(正觀)이며 출세(出世; 出世間)의 주항(舟航)이다. 드디어 모산(茅山; 江蘇茅山)에 은거하며 스승에게 투신하여 낙발(落髮)했다. 후에 우두산(牛頭山) 유서사(幽棲寺)의 북암(北巖)의 석실(石室)에 들어갔는데 백조함화(百鳥銜華; 온갖 새가 꽃을 물어 오다)의 기이(奇異)함이 있었다. () 정관(貞觀; 627-649) 중에 4조가 멀리서 기상(氣象)을 관찰하고 그 산에 기이한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 이에 몸소(躬自) 심방(尋訪)하여 사승(寺僧)에게 묻되 차간(此間)에 도인(道人)이 있는가. 가로되 출가아(出家兒; 出家人)에 어느 것(那箇)이 도인이 아니겠습니까. 조왈(祖曰) 어느 것(阿那箇)이 이 도인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다른 중이 가로되 여기에서 산중(山中)으로 10리 가량 가면 1나융(懶融; 法融을 가리킴)이 있는데 사람을 보아도 일어나지 않고 또한 합장하지 않는데 이 도인이 아닐까요. 4조가 드디어 입산하여 스님을 보았는데 단좌(端坐)하여 자약(自若; 泰然)하며 일찍이 돌아보는 바가 없었다. 4조가 물어 가로되 여기에 있으면서 무엇을 하느냐(作甚麽). 사왈(師曰) 관심(觀心)합니다. 조왈(祖曰) ()은 이 어떤 사람이며 심()은 이 어떤 물건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다가 바로 일어나 작례(作禮)하고 가로되 대덕(大德)은 어느 곳에 고서(高棲; 隱居)합니까. 조왈(祖曰) 빈도(貧道)는 머물 곳을 결정하지 못해 혹동혹서(或東或西)한다. 사왈 도리어 도신선사(道信禪師)를 아십니까. 조왈 무엇 때문에 그를 묻느냐. 사왈 덕을 향(; )한 지 매우 오래되어(滋久; 愈久) 한 번 예알(禮謁)하기를 바랬습니다(). 조왈 도신선사는 빈도(貧道)가 이것이다. 사왈 무엇 때문에(因何) 여기에 강림(降臨; )하셨습니까. 조왈(祖曰) 특별히 와서 상방(相訪)했다. 다시 연식(宴息)할 곳이 있지 않는가. 스님이 후면을 가리키며 가로되 다른 소암(小庵)이 있습니다. 드디어 4조를 인도(引導)하여 암소(庵所)에 이르렀는데 암자 둘레()에 오직 호랑지류(虎狼之類)만 보였다. 4조가 이에 양손을 들며 두려워하는 자세를 지었다. 사왈 아직() 저개(這箇; 이것)가 있습니까. 조왈(祖曰) 저개(這箇)는 이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소선(少選)4조가 도리어 스님이 연좌(宴坐)하는 돌 위에 1불자(佛字)를 썼다. 스님이 이를 보고 송연(竦然; 悚然과 같음)했다. 조왈(祖曰) 아직 저개(這箇)가 있느냐. 스님이 깨닫지() 못하고 이에 계수(稽首)하고 진요(眞要)를 설하기를 청했다. 조왈(祖曰) 무릇 백천법문(百千法門)은 한가지로 방촌(方寸)으로 돌아가고 하사(河沙)의 묘덕(妙德)은 모두 심원(心源)에 있다. 일체의 계문(戒門)ㆍ정문(定門)ㆍ혜문(慧門)과 신통(神通)ㆍ변화를 모두 스스로 구족하여 너의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 일체의 번뇌와 업장(業障)이 본래 공적(空寂)했고 일체의 인과가 모두 몽환(夢幻)과 같다. 가히 벗어날 3()가 없고 가히 구할 보리(菩提)가 없다. ()과 비인(非人)의 성상(性相)이 평등하며 대도(大道)가 허광(虛曠; 空虛)하여 절사절려(絕思絕慮)했다. 이와 같은 법을 네가 지금 이미 얻어 다시 궐소(闕少)함이 없거늘 부처와 무엇이 다를 것이며 다시 별법(別法)이 없다. 네가 단지 마음의 자재(自在)에 일임하여 관행(觀行)을 짓지 말고 또한 징심(澄心; 마음을 맑히다)하지 말고 탐진(貪瞋)을 일으키지 말고 수려(愁慮)를 품지 말아라. 탕탕(蕩蕩)하여 무애(無礙)하고 뜻에 맡겨(任意) 종횡(縱橫)하라. 제선(諸善)을 짓지 말고 제악(諸惡)을 짓지 말지니 행주좌와(行住坐臥)하고 촉목우연(觸目遇緣)함이 모두 이 부처의 묘용(妙用)이며 쾌락하고 근심()이 없는지라 고로 이름하여 부처다. 사왈 마음이 이미 구족했다면 무엇이(何者) 이 부처며 무엇이 이 마음입니까. 조왈(祖曰) 마음이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하고 부처를 물으면 마음이 아님이 없다(). 사왈 이미 관행(觀行)을 지음을 허락하지 않으면 경계가 일어날 때에 마음이 어떻게 대치(對治)해야 합니까. 조왈(祖曰) 경연(境緣)은 호추(好醜)가 없고 호추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마음을 만약 억지로() 이름하지 않으면 망정(妄情)이 어디로 좇아 일어나겠는가. 망정이 이미 일어나지 않으니 진심(眞心)만 마음대로() 두루 안다(徧知). 네가 단지 마음의 자재(自在)를 따른다면 다시 대치(對治)가 없나니 곧 이름이 상주법신(常住法身)이며 변이(變異)가 있지 않다. 내가 승찬대사(僧璨大師)의 돈교법문(頓敎法門)을 받아 이제 너에게 부촉하나니 너는 이제 나의 말을 체수(諦受; 진실하게 받다)하여 다만 이 산에 거주하라. 향후(向後)에 마땅히 5인의 달자(達者)가 있어 너의 현화(玄化)를 이을() 것이다. 4조가 부법(付法)하여 마치고 드디어 쌍봉산(雙峯山; 破頭山. 四祖山)으로 돌아가 종로(終老)했다. 스님이 이로부터 법석이 대성(大盛)했다.

潤州; 지금의 강소(江蘇) 진강(鎭江).

牛頭山; 강소 강녕부 상원현의 남방에 위치함. 또 우수산(牛首山)ㆍ천궐(天闕)ㆍ선굴산(仙窟山)으로 지음. 쌍봉이 대치하여 완연히 우각(牛角)과 같은지라 고로 이 이름이 있음. 대명 3(459) 유서(幽棲; )사를 건조했고 당 정관 18(644) 법융(法融)이 여기에 와서 유서사의 북암(北巖) 아래 선실(禪室)을 세웠는데 수종자(隨從者)가 백여 인이었고 이로부터 법융의 한 계통을 일컬어 우두선(牛頭禪)이라 했음. 차후로 법지(法持)ㆍ혜충(慧忠)ㆍ현소(玄素) 등이 있어 모두 유서사에서 학법(學法)했음. 이 사원은 후에 조당사(祖堂寺)로 개칭햇음.

阿那箇; 나개(那箇)니 아()는 조사.

或東或西; 요파(搖擺; 搖動)하며 정()하지 못함.

相訪; ()은 일방이 다른 일방에 대해 동작하는 바가 있음을 표시함.

少選; 불구(不久). 수유(須臾).

眞要; 진제(眞諦)의 요의(要義).

方寸; 반야심경소이모초에 이르되 방촌(方寸)이란 것은 속서에 설하기를 사람의 심장이 오직 사방 1촌이다. 정법념경에 이르되 심장이 연꽃처럼 열리고 닫힌다. 제위경에 이르되 심()이 제왕과 같다. 모두 육단심(肉團心). 조론소상. 방촌(方寸)이란 것은 심()이다.

河沙; 항하(인도에 있음)의 모래니 수량이 극다함에 비유함.

業障; 3(번뇌장ㆍ업장ㆍ보장)의 하나. 4(혹장ㆍ업장ㆍ보장ㆍ견장)의 하나. 삼장법수8에 이르되 업은 곧 업행이니 이르자면 탐진치로 말미암아 신구의(身口意)를 일으켜 5무간의 중악(重惡)의 업을 조작하여 정도를 장폐(障蔽)하나니 이 이름이 업장이다.

非人; ()을 상대해 말함이니 천룡팔부 및 야차ㆍ악귀의 명중(冥衆)이 모두 비인(非人)이 됨.

虛曠; 공허(空虚). 광대하고 관활(寬闊).

觀行; 관심의 행법. 곧 관심의 수행이니 자심을 감조(鑒照)하여 본성을 환히 깨침. 혹 관법의 행상(行相)을 가리킴.

對治; 원래의 뜻은 부정(否定)ㆍ차견(遮遣). 불교 중에선 곧 도로써 번뇌 등을 단제(斷除).

境緣; 유식(唯識)의 명사(名詞)니 생식(生識)하는 9()의 하나. ()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 5()의 경()을 가리킴. 만약 색 등 5종 진경(塵境)의 작대(作對)가 없으면 곧 5()이 능히 발생할 이유가 없는지라 고로 경()5식의 연()이 됨.

終老; 만년을 도과(度過)함을 가리킴. 양로(養老)가 종로지계(終老之計)가 됨.

 

唐永徽中 徒衆乏粮 師往丹陽緣化 去山八十里 躬負米一石八斗 朝往暮還 供僧三百 二時不闕 三年 邑宰蕭元善請於建初寺講大般若經 聽者雲集 至滅靜品 地爲之震動 講罷歸山 博陵王問師曰 境緣色發時 不言緣色起 云何得知緣 乃欲息其起 師曰 境色初發時 色境二性空 本無知緣者 心量與知同 照本發非發 爾時起自息 抱暗生覺緣 心時緣不逐 至如未生前 色心非養育 從空本無念 想受言念生 起發未曾起 豈用佛敎令 問曰 閉目不見色 境慮乃便多 色旣不關心 境從何處發 師曰 閉目不見色 內心動慮多 幻識假成用 起名終不過 知色不關心 心亦不關人 隨行有相轉 鳥去空中眞 問曰 境發無處所 緣覺了知生 境謝覺還轉 覺乃變爲境 若以心曳心 還爲覺所覺 從之隨隨去 不離生滅際 師曰 色心前後中 實無緣起境 一念自疑忘 誰能計動靜 此知自無知 知知緣不會 當自檢本形 何須求域外 前境不變謝 後念不來今 求月執玄影 討跡逐飛禽 欲知心本性 還如視夢裏 譬之六月氷 處處皆相似 避空終不脫 求空復不成 借問鏡中像 心從何處生 問曰 恰恰用心時 若爲安隱好 師曰 恰恰用心時 恰恰無心用 曲譚名相勞 直說無繁重 無心恰恰用 常用恰恰無 今說無心處 不與有心殊 問曰 智者引妙言 與心相會當 言與心路別 合則萬倍乖 師曰 方便說妙言 破病大乘道 非關本性譚 還從空化造 無念爲眞常 終當絕心路 離念性不動 生滅無乖悞 谷響旣有聲 鏡像能回顧 問曰 行者體境有 因覺知境亡 前覺及後覺 幷境有三心 師曰 境用非體覺 覺罷不應思 因覺知境亡 覺時境不起 前覺及後覺 幷境有三遲 問曰 住定俱不轉 將爲正三昧 諸業不能牽 不知細無明 徐徐躡其後 師曰 復聞別有人 虛執起心量 三中事不成 不轉還虛妄 心爲正受縛 爲之淨業障 心塵萬分一 不了說無明 細細習因起 徐徐名相生 風來波浪轉 欲靜水還平 更欲前途說 恐畏後心驚 無念大獸吼 性空下霜雹 星散穢草摧 縱橫飛鳥落 五道定紛綸 四魔不前却 旣如猛火燎 還如利劒斫 問曰 賴覺知萬法 萬法本來然 若假照用心 只得照用心 不應心裏事 師曰 賴覺知萬法 萬法終無賴 若假照用心 應不在心外 問曰 隨隨無揀擇 明心不現前 復慮心闇昧 在心用功行 智障復難除 師曰 有此不可有 尋此不可尋 無揀卽眞擇 得闇出明心 慮者心冥昧 存心託功行 何論智障難 至佛方爲病 問曰 折中消息間 實亦難安怗 自非用行人 此難終難見 師曰 折中欲消息 消息非難易 先觀心處心 次推智中智 第三照推者 第四通無記 第五解脫名 第六等眞僞 第七知法本 第八慈無爲 第九徧空陰 第十雲雨被 最盡彼無覺 無明生本智 鏡像現三業 幻人化四衢 不住空邊盡 當照有中無 不出空有內 未將空有俱 號之名折中 折中非言說 安怗無處安 用行何能決 問曰 別有一種人 善解空無相 口言定亂一 復道有中無 同證用常寂 知覺寂常用 用心會眞理 復言用無用 智慧方便多 言亂與理合 如如理自如 不由識心會 旣知心會非 心心復相泯 如是難知法 永劫不能知 同此用心人 法所不能化 師曰 別有證空者 還如前偈論 行空守寂滅 識見暫時翻 會眞是心量 終知未了原 又說息心用 多智疑相似 良由性不明 求空且勞己 永劫住幽識 抱相都不知 放光便動地 於彼欲何爲 問曰 前件看心者 復有羅縠難 師曰 看心有羅縠 幻心何待看 況無幻心者 從容下口難 問曰 久有大基業 心路差互間 得覺微細障 卽達於眞際 自非善巧師 無能決此理 仰惟我大師 當爲開要門 引導用心者 不令失正道 師曰 法性本基業 夢境成差互 實相微細身 色心常不悟 忽逢混沌士 哀怨愍羣生 託疑廣設問 抱理內常明 生死幽徑徹 毀譽心不驚 野老顯分答 法相媿來儀 蒙發羣生藥 還如色性爲

緣化; 與勸化同 勸化有緣者 使行布施也

邑宰; 縣邑之長 卽縣令

心量; 謂心起妄想 對外境起種種度量 此爲凡夫之心量 如來眞證之心量 則遠離一切所緣能緣 而住於無心 [楞伽經三]

借問; 敬辭 用於向別人詢問事情

恰恰; 正好 適當之詞

繁重; 指工作任務又多又重

會當; 應當 該當

習因; 新譯之同類因 舊譯云習因 新譯之等流果 舊譯曰習果 智度論謂之習因習果 習者習續之義 習續前念之善而起後念之善 乃至習續前念之無記而起後念之無記 前爲習因 後爲習果 通於一切之色心 通於善惡無記之三性 [止觀八]

五道; 地獄道 餓鬼道 畜生道 人道 天道

四魔; 三藏法數十二 四魔[出瑜伽師地論] 魔 梵語具云魔羅 華言能奪命 又云殺者 謂能奪智慧之命 而殺害出世善根故也 一蘊魔 蘊猶積聚也 謂色受想行識等 積聚而成生死苦果 此生死法 能奪智慧之命 故云蘊魔 二煩惱魔 謂三界中一切煩惱妄惑也 修行之人 爲此妄惑惱亂心神 不能成就菩提 是名煩惱魔 三死魔 死者謂四大分散 天喪殞沒也 修行之人 爲此天喪 不能續延慧命 是名死魔 四天魔 此魔卽欲界第六天也 若人勤修勝善 欲超越三界生死 而此天魔 爲作障礙 發起種種擾亂之事 令修行人不得成就出世善根 是名天魔

折中; 謂事理有不同者 執其兩端而折其中也 [大慧書栲栳珠]

消息; 涅槃玄義發源機要一 報示消息者 此以音信爲消息 梵網經心地品菩薩戒義疏發隱三 消息者 猶酌量也 祖庭事苑四 消息 消 盡也 息 生也 謂可加卽加 可減卽減 禪林寶訓音義 消息 陰死爲消 陽死爲息

安帖; 又作安貼 安定 平靜

無記; 一切法可分爲善不善無記等三性 無記卽非善非不善者 因其不能記爲善或惡 故稱無記 或謂無記者因不能招感異熟果(善惡之果報) 不能記異熟果 是故稱爲無記 [唯識論五 百法問答抄三]

羅縠難; 羅縠 布之稀簿輕妙者 天衆之衣 續華嚴略疏刊定記九云 涅槃經說 第十地菩薩猶未了見於佛性 如隔羅縠 林間錄上 只如十地聖人說法 如雲如雨 猶被佛呵見性如隔羅縠

從容; 逍遙 安靜 悠悠自適

眞際; 卽眞如實際之略稱 斷絶相對差別之相 呈現平等一如的眞如法性之理體

混沌; 莊子應帝王 南海之帝爲儵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儵與忽時相與遇於混沌之地 混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混沌之德曰 人皆有七竅 以視聽食息 此獨無有 嘗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

來儀; 一鳳凰感德來舞而有容儀 是一種祥瑞的徵兆 二傑出人物的到來

 

() 영휘(永徽; 650-655) 중 도중(徒衆)이 양식이 모자라자 스님이 단양(丹陽)으로 가서 연화(緣化)했는데 산과의 거리()80리였다. 몸소 쌀 18(一石八斗)를 지고 아침에 가서 저녁에 돌아와 승려 3백에게 공급했는데 2(二時; 두 때의 粥飯)에 궐()하지 않기가 3년이었다. 읍재(邑宰) 소원선(蕭元善)이 청하여 건초사(建初寺)에서 대반야경(大般若經; 大般若波羅蜜多經)을 강설했는데 청자(聽者)가 운집(雲集)했고 멸정품(滅靜品)에 이르자 땅이 진동(震動)했다. ()을 마치자 귀산(歸山)했다. 박릉왕(博陵王)이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경()이 색을 연(; 攀緣)하여 발()할 때 연색(緣色)이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으니 어찌해야 연()을 득지(得知)하며 이에 그 일어남()을 쉬기를 바라겠습니까(). 사왈(師曰) 경색(境色)이 처음 발할 때 색과 경(), 두 자성(自性)이 공()한지라 본래 연()을 아는 자가 없으며 심량(心量)이 지()와 더불어 한가지다. 근본을 비추매 발()이 발이 아니며 이때 일어남()이 저절로 쉬어지나니 포암(抱暗)하고 각연(覺緣)을 내면 심()이 때에 연()하여 쫓지() 않아서 생하지 아니한 전과 같음에 이르나니 색심(色心)은 양육(養育)함이 아니다. ()을 좇는지라 본래 염()이 없지만 상수(想受)하여 염()이 생한다고 말하나니 기발(起發)하여도 일찍이 일어나지 않거늘 어찌 부처의 교령(敎令)을 쓰겠는가. 문왈(問曰) 폐목(閉目)하면 색이 보이지 않으며 경려(境慮)가 이에 바로 많습니다. 색이 이미 마음에 상관하지 않거늘 경()이 어느 곳으로 좇아 발()합니까. 사왈 폐목(閉目)하면 색이 보이지 않지만 내심(內心)은 동려(動慮)가 많고 환식(幻識)이 거짓으로 용()을 이루니 명()을 일으켜도 마침내 허물()이 아니다. 색이 마음에 상관하지 않음을 알아서 마음도 또한 사람에 상관하지 않나니 행()을 따라 상()의 전()함이 있지만 새가 가니 공중(空中)의 진()이다. 문왈 경()이 발()하매 처소가 없고 각()을 연()하여 생()을 요지(了知)합니다. ()이 물러나면() ()이 도리어 전()하고 각이 이에 변해 경이 되나니 만약 심()으로써 심을 예인(曳引)하면 도리어 각()과 소각(所覺)이 됩니다. 이를 좇아 수수거(隨隨去; 자꾸 따라가다)하면 생멸제(生滅際)를 여의지 못합니다. 사왈 색심(色心)의 전후(前後) 중에 실로 연()이 경()을 일으킴이 없나니 1념에 스스로 의심(; 저본에 으로 지었음)을 잊으면 누가 능히 동정(動靜)을 헤아리겠는가(). 이 지()는 스스로 지가 없나니 지지(知知)하는 연()을 알지() 못하거든 마땅히 스스로 본형(本形)을 점검해야 하거늘 어찌 역외(域外)에서 구함을 쓰는가(). 전경(前境)은 변사(變謝; 변해 물러나다)하지 않고 후념(後念)은 현금(現今)에 오지 않나니 달을 구하느라 현영(玄影)을 집착(執捉)하고 자취를 찾느라 나는 새를 쫓는다. 마음의 본성을 알고자 한다면 도리어 꿈 속을 봄과 같고 6월의 얼음에 비유하나니 처처에 모두 상사(相似)하다. 허공을 피하려면 마침내 벗어나지 못하고 허공을 구함도 다시 이루지 못하나니 거울 속의 형상(形像)을 차문(借問)하나니 마음이 어느 곳으로 좇아 생하느냐. 문왈(問曰) 흡흡(恰恰) 용심(用心)할 때 어떻게 해야(若爲) 안은(安隱; 安穩과 같음)하게 좋습니까(). 사왈 흡흡(恰恰) 용심할 때 흡흡 무심(無心)을 쓸지니 곡담(曲譚; 曲說)은 명상(名相)이 노고롭고 직설(直說)은 번중(繁重)이 없다. 무심(無心)을 흡흡 쓰면 상용(常用)해도 흡흡 없나니 지금 설하는 무심(無心)한 곳은 유심(有心)과 더불어 다르지() 않다. 문왈(問曰) 지자(智者)는 묘언(妙言)을 인용하는지라 마음과 더불어 서로 회당(會當)하고 언어와 심로(心路)는 다르나니 합하면 곧 만배(萬倍) 어긋납니다. 사왈 방편으로 묘언(妙言)을 설하고 파병(破病)함은 대승(大乘)의 도니 본성(本性)의 말씀()과 상관되지 않으면 도리어 허공으로 좇아 화조(化造)함이다. 무념(無念)이 진상(眞常)이 되나니 마침내 마땅히 심로(心路)가 끊어지고 이념(離念)해도 자성은 부동(不動)하나니 생멸(生滅)도 괴오(乖誤)가 없다. 곡향(谷響)은 이미 소리가 있으니 경상(鏡像)도 능히 회고(迴顧)하라. 문왈(問曰) 행자(行者; 수행자)가 경()이 있음을 체득했다가 각()으로 인해 경()이 없음()을 아나니 전각(前覺) 및 후각(後覺) 아울러 경(), 3()이 있습니다. 사왈 경()을 씀은 각()을 체득함이 아니니 각()해 마치면 응당 사념하지 말아라. 각으로 인해 경()이 없음()을 알고 각할 때 경이 일어나지 않나니 전각(前覺) 및 후각(後覺) 아울러 경(), 3()가 있다. 문왈 주()와 정()을 모두 굴리지() 않으니 이에() 정삼매(正三昧)가 되어 제업(諸業)이 능히 견인(牽引)하지 못하지만 미세한 무명(無明)이 서서히 그 뒤를 밟는() 줄 알지 못합니다. 사왈 다시 듣건대 달리 사람이 있어 헛되이 심량(心量)을 집기(執起)하여 셋 중의 일을 이루지 못하고 전()하지 못해 도리어 허망하다. ()이 정수(正受; 三昧)에 계박(繫縛)되면 정업장(淨業障)이라 하나니 심진(心塵)의 만분(萬分)의 일()이라도 깨닫지() 못하면 무명(無明)이라고 설한다. 세세(細細)한 습인(習因)이 일어나면 서서(徐徐)히 명상(名相)이 생하나니 바람이 오면 파랑(波浪)이 구르고() 고요하기()를 바라면() 물이 도리어 평온하거니와 다시 전도(前途)를 설하고자 하면 후심(後心)이 놀랄까 공외(恐畏)한다. 무념(無念)은 대수(大獸)가 울부짖음()이며 성공(性空)은 상박(霜雹; 서리와 雨雹)이 떨어짐이며 별이 흩어지면 예초(穢草)가 꺾이고() 종횡으로 비조(飛鳥)가 떨어진다. 5(五道)가 결정코 분륜(紛綸; 雜亂한 모양)하고 4(四魔)를 미리() 물리치지() 못하나니 이미 맹화(猛火)의 불사름()과 같고 도리어 이검(利劍)의 쪼갬()과 같다. 문왈 각()에 의뢰하여 만법을 알며 만법이 본래 그러합니다. 만약 조용(照用)의 마음을 빌리면 다만 조용의 마음만 얻어서 심리(心裏)의 일에 응하지 못합니다. 사왈 각()에 의뢰해 만법을 알지만 만법은 마침내 의뢰함이 없고 만약 조용(照用)의 마음을 빌리면 응함이 심외(心外)에 있지 않다. 문왈 수수(隨隨)하며 간택(簡擇; 選擇)이 없으면 명심(明心)이 현전(現前)하지 않아 다시 마음의 암매(闇昧)를 염려하고 마음에 두어 공행(功行; 功力과 수행)을 쓰면 지장(智障)을 다시 제하기 어렵습니다. 사왈 이것이 있어도 가히 있음이 아니며 이것을 찾아도 가히 찾지 못하나니 간택(揀擇)이 없음이 곧 진택(眞擇)이며 어둠()을 얻어야 명심(明心)을 낸다. 염려하는 자는 마음이 명매(冥昧)하고 마음에 두면 공행(功行)에 의탁(依託)하나니 어찌 지장(智障)의 난()을 논하겠는가, 부처에 이르더라도 바야흐로 병이 된다. 문왈 절중(折中)의 소식(消息) 사이에 실로 또한 안첩(安帖)하기 어렵나니 스스로 행()을 쓰는 사람이 아니면 이 난()을 마침내 보기 어렵습니다. 사왈 절중(折中)에 소식(消息)을 바란다면() 소식은 난이(消息)가 아니다. 먼저 심처(心處)의 심()을 관()하고 차()는 지중(智中)의 지()를 추리(推理)하고 제3은 추자(推者)를 비추고() 4는 무기(無記)에 통하고 제5는 명()을 해탈하고 제6은 진위(眞僞)를 제등(齊等)히 하고 제7은 법본(法本)을 알고 제8은 무위(無爲)를 사랑하고() 9는 편공(遍空)의 음()이며 제10은 운우(雲雨)의 피(; 이불). 가장 그 무각(無覺)을 다하면 무명이 본지(本智)를 내나니 경상(鏡像)3()을 나타내고 환인(幻人)은 사구(四衢; 四通八達大路)를 교화한다. 공변(空邊)의 다함에 머물지 말고 마땅히 유중(有中)의 무()를 비추어라. 공유(空有)의 안을 벗어나지 말고 공유(空有)가 함께함을 가지지 말지니 이를 호()해 절중(折中)이라 하나니 절중은 언설이 아니다. 안첩(安帖)은 안첩할 곳이 없고 행()을 쓰매 어찌 능히 결단하겠는가. 문왈 달리 1종의 사람이 있어 공무상(空無相)을 잘 이해하나니 구언(口言)은 정란(定亂)이 하나며 다시 유중(有中)의 무()를 말한다. 동증(同證)하여 용()이 늘 고요하고() 지각(知覺)은 고요하면서 늘 쓰며() 용심(用心)하면서 진리를 알고() 부언(復言)은 용()해도 용이 없다. 지혜의 방편이 많고 언사(言辭)는 이치와 합하고 여여(如如)의 이치가 자여(自如)하고 식심(識心)을 말미암아 아는 게 아니다. 이미 마음으로 아는 것은 그른 줄 알아서 심심(心心)이 다시 서로 민멸(泯滅)하나니 이와 같이 알기 어려운 법은 영겁(永劫)토록 능히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용심(用心)하는 사람은 법으로 능히 교화하지 못할 바입니다. 사왈 달리 증공(證空)한 자가 있어 도리어 앞의 게론(偈論)과 같나니 공()을 행하며 적멸을 지키면서 식견(識見)이 잠시 번복(翻覆)한다. ()을 앎은 이 심량(心量)이라 마침내 알더라도 근원()을 깨친() 게 아니거늘 또 심용(心用)을 쉼을 설하니 다지(多智)의 의혹이 상사(相似)하다. 참으로() 성품이 불명(不明)함으로 말미암아 구공(求空)하고 또() 자기를 노고롭게 하나니 영겁토록 유식(幽識)에 머물면서 상()을 안고 도무지 알지 못한다. 방광하고 바로 동지(動地)하더라도 거기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문왈 전건(前件)의 간심(看心)하는 자는 다시 나곡난(羅縠難)이 있습니다. 사왈 간심(看心)하면 나곡(羅縠)이 있지만 환심(幻心)이거늘 어찌 간()함을 기다리겠는가. 하물여 환심(幻心)이 없는 자는 종용(從容)히 하구(下口; 開口)하기 어렵다. 문왈 오래 대기업(大基業)이 있으며 심로(心路)가 차호(差互; 差錯)하는 사이 미세한 장애를 각지(覺知)함을 얻고 곧 진제(眞際)에 도달하려 합니다. 스스로 선교(善巧)한 스승이 아니면 능히 이 이치를 결단하지 못하리니 우리의 대사(大師)를 우러러 사유하나니 마땅히 위하여 요문(要門)을 여시고 용심자(用心者)를 인도(引導)해 정도(正道)를 잃지 않게 하십시오. 사왈 법성(法性)의 본기업(本基業)이 몽경(夢境)으로 차호(差互)를 이루고 실상(實相)의 미세신(微細身)은 색심(色心)으로 늘 불오(不悟)한다. 홀연히 혼돈사(混沌)를 만나매 애원(哀怨)하며 군생(羣生)을 불쌍히 여기나니 의심에 의탁해 널리 설문(設問)하매 이치를 안고 안이 늘 밝다. 생사는 유경(幽徑)에 통하고() 훼예(毀譽)에 마음이 놀라지 않나니 야로(野老)가 환히 분별해 답하매 법상(法相)이 내의(來儀)에 부끄럽고 군생을 발()하는 약을 입으니() 도리어 색성(色性)이 함과 같다.

緣化; 권화(勸化)와 같음. 인연이 있는 자에게 권화하여 보시를 행하게 함.

邑宰; 현읍(縣邑)의 장(). 곧 현령(縣令).

心量; 이르자면 마음이 망상을 일으켜 외경(外境)에 대해 갖가지 탁량(度量)을 일으킴이니 이것은 범부의 심량이 됨. 여래의 진증(眞證)의 심량은 곧 일체 소연(所緣)과 능연(能緣)을 멀리 여의고 무심에 머묾임 [릉가경3].

借問; 경사(敬辭)니 다른 사람을 향해 사정을 순문(詢問)함에 사용함.

恰恰; 정호(正好)니 적당(適當)의 말.

繁重; 공작(工作)의 임무가 또 많고 또 무거움을 가리킴.

會當; 응당(應當). 해당(該當).

習因; 신역의 동류인(同類因)을 구역에 이르되 습인(習因)이며 신역의 등류과(等流果)를 구역에 가로되 습과(習果). 지도론에 이를 일러 습인습과(習因習果)과 했음. ()이란 것은 습속(習續)의 뜻이니 전념(前念)의 선()을 습속하여 후념의 선을 일으키며 내지 전념의 무기(無記)를 습속하여 후념의 무기를 일으킴. ()은 습인이 되고 후()는 습과가 됨. 일체의 색심(色心)에 통하며 선ㆍ악ㆍ무기의 3()에 통함 [지관8].

五道;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ㆍ인도ㆍ천도.

四魔; 삼장법수12. 사마(四魔) [출유가사지론] ()는 범어를 갖추어 이르면 마라(魔羅; māra)니 화언으론 능탈명(能奪命)이며 또 이르되 살자(殺者). 이르자면 능히 지혜의 목숨을 뺏고 출세간의 선근을 살해하는 연고이다. 1. 온마(蘊魔) ()은 적취(積聚)와 같다. 이르자면 색ㆍ수ㆍ상ㆍ행ㆍ식 등이 적취하여 생사의 고과(苦果)를 이루나니 이 생사법이 능히 지혜의 목숨을 뺏으므로 고로 이르되 온마다. 2. 번뇌마(煩惱魔) 이르자면 3계 중의 일체 번뇌의 망혹(妄惑)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 망혹 때문에 심신(心神)을 뇌란(惱亂)하여 능히 보리를 성취하지 못하나니 이 이름이 번뇌마다. 3. 사마(死魔) ()란 것은 이르자면 4()가 분산하여 천상(天喪; 은 운명 천. 곧 운명이 다해 죽음)으로 운몰(殞沒)함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이 천상 때문에 능히 혜명을 속연(續延)하지 못하나니 이 이름이 사마다. 4. 천마(天魔) 이 마는 곧 욕계의 제6천이다. 만약 사람이 승선(勝善)을 부지런히 닦아 3계의 생사를 초월하려고 하면 이 천마가 장애를 만들어 갖가지 요란(擾亂)의 일을 발기(發起)하여 수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출세간의 선근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나니 이 이름이 천마다.

折中; 이르자면 사리(事理)에 부동(不同)한 것이 있으면 그 양단을 잡아 그 중간을 자름임 [대혜서고로주].

消息; 열반현의발원기요1. 소식(消息)을 보시(報示)한다는 것은 이것은 음신(音信)으로 소식을 삼음이다. 범망경심지품보살계의소발은3. 소식(消息)이란 것은 작량(酌量)과 같다. 조정사원4. 소식(消息) ()는 진()이며 식()은 생()이니 이르자면 가()가 옳으면 곧 가()하고 감()이 옳으면 곧 감()함임. 선림보훈음의. 소식(消息) ()이 죽음을 소()라 하고 양()이 죽음을 식()이라 한다.

安帖; 또 안첩(安貼)으로 지음. 안정(安定). 평정(平靜).

無記; 일체법은 가히 선()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 등의 3()으로 분류함. 무기는 곧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것이니 그것은 능히 선 혹은 악이 됨을 기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고로 명칭이 무기임. 혹 이르기를 무기란 것은 능히 이숙과(異熟果; 선악의 과보)를 초감(招感)하지 못함으로 인해 능히 이숙과를 기록하지 못하나니 이런 고로 일컬어 무기라 함 [유식론5. 백법문답초3].

羅縠難; 라곡(羅縠)은 베의 성기고 얇으면서 가볍고 묘한 것이니 천중(天衆)의 옷임. 속화엄약소간정기9에 이르되 열반경에 설하기를 제10() 보살이 오히려 아직 불성을 보지 못함이 나곡(羅縠)에 막힘과 같다. 임간록상 지여(只如) 십지성인의 설법이 구름과 같고 비와 같더라도 오히려 부처가 꾸짖으며 견성이 나곡(羅縠)에 격()함과 같다 함을 입었다.

從容; 소요(逍遙). 안정(安靜). 유유자적(悠悠自適).

眞際; 곧 진여실제(眞如實際)의 약칭임. 상대와 차별의 모양을 단절하고 평등한 일여의 진여의 법성의 이체(理體)를 나타냄.

混沌;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 남해(南海)의 제왕(帝王)은 숙()이라 했고 북해(北海)의 제왕은 홀()이라 했고 중앙(中央)의 제왕은 혼돈(混沌)이라 했다. ()과 홀()이 때로 서로 함께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의 대우(待遇)가 매우 좋았다. 숙과 홀이 모의(謀議)하여 혼돈의 덕을 갚으려 하면서 가로되 사람은 다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쉰다. 이것은 홀로 있지 않다 하고는 일찍이 시험삼아 그것을 뚫었는데 하루에 한 구멍을 뚫었다. 7일 만에 혼돈이 죽었다.

來儀; 1. 봉황이 감덕(感德)하여 와서 춤추며 용의(容儀)가 있음이니 이는 일종의 상서(祥瑞)의 징조임. 2. 걸출한 인물의 도래(到來).

 

顯慶元年 邑宰蕭元善請住建初 師辭不獲免 遂命入室上首智巖付囑法印 令以次傳授 將下山謂衆曰 吾不復踐此山矣 時鳥獸哀號 踰月不止 庵前有四大桐樹 仲夏之月 忽自凋落 明年正月二十三日 不疾而逝 窆于雞籠山

 

현경(顯慶) 원년(元年; 656) 읍재(邑宰) 소원선(蕭元善), 건초사(建初寺)에 주()하기를 청했다. 스님이 사양했으나 면함을 얻지 못했다. 드디어 상수(上首) 지암(智巖)에게 입실(入室)하기를 명령해 법인(法印)을 부촉하고 차제(次第)로 전수(傳授)하게 했다. 장차 하산하려 하면서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다시는 이 산을 밟지 못할 것이다. 때에 조수(鳥獸)가 애호(哀號)했고 달을 넘겨도() 그치지 않았다. 암전(庵前)4대동수(大桐樹)가 있었는데 중하지월(仲夏之月)에 홀연히 저절로 조락(凋落)했다. 명년 정월 23일 앓지 않고 서거(逝去)했다. 계롱산(雞籠山)에 하관(下棺; )했다.

 

四祖下二世旁出

金陵牛頭山融禪師法嗣

牛頭山智巖禪師者

曲阿人也 姓華氏 弱冠智勇過人 身長七尺六寸 隋大業中 爲郞將 常以弓挂一濾水囊 隨行所至汲用 累從大將征討 頻立戰功 唐武德中 年四十 遂乞出家 入舒州皖公山 從寶月禪師爲弟子 後一日宴坐 覩異僧身長丈餘 神姿爽拔 詞氣淸朗 謂師曰 卿八十生出家 宜加精進 言訖不見 甞在谷中入定 山水暴漲 師怡然不動 其水自退 有獵者遇之 因改過修善 復有昔同從軍者二人 聞師隱遁 乃共入山尋之 旣見因謂師曰 郞將狂邪 何爲住此 師曰 我狂欲醒 君狂正發 夫嗜色淫聲 貪榮冐寵 流轉生死 何由自出 二人感悟 歎息而去 師後謁融禪師發明大事 融謂師曰 吾受信大師眞訣 所得都亡 設有一法勝過涅槃 吾說亦如夢幻 夫一塵飛而翳天 一芥墮而覆地 汝今已過此見 吾復何云 山門化導 當付之於汝 師稟命 爲第二世 後以正法付方禪師 師住白馬栖玄兩寺 又遷石頭城 於儀鳳二年正月十日示滅 顔色不變 屈伸如生 室有異香 經旬不歇 遺言水塟焉

旁出; 謂非嫡嗣

弱冠; 祖庭事苑六 弱冠 音貫 冠束也 男子二十曰弱冠

郞將; 武官名 秦置 主宿衛車騎 卽郞中令所轄三署的五官中郞將 左中郞將 右中郞將 漢襲秦制 屬光祿勳 唐宋設官 於中郞將之外 復置郞將 [百度百科]

爽拔; 豪爽出衆

怡然; 安適自在的樣子

山門; ()又作三門 指寺院正面之樓門 以寺院多居山林之處 故有此名 一般有三個門 象徵三解脫門(空門 無相門 無作門) 故又稱三門 或僅有一門 亦稱之爲三門 ()又作山寺 乃寺院之一般稱呼 蓋古來寺院多築於山林之間 故以山門爲寺院之別名 唯後世造於平地市井中之寺院 亦得汎稱山門 又一寺住持以下之全體修行者 亦總稱山門 [象器箋殿堂類] 此指()

 

우두산(牛頭山) 지암선사(智巖禪師)란 자는

곡아(曲阿) 사람이며 성은 화씨(華氏). 약관(弱冠)에 지용(智勇)이 타인을 초과했고 신장은 76촌이었다. () 대업(大業; 605-616) 중 낭장(郞將)이 되었다. 늘 활에 1여수낭(濾水囊)을 걸어() 가서 이르는 곳을 따라 급수(汲水)에 썼다. 누차(屢次; ) 대장(大將)을 좇아 정토(征討)했고 자주() 전공(戰功)을 세웠다. () 무덕(武德; 618-626) 중 나이 40에 드디어 출가를 걸구(乞求)했고 서주(舒州) 환공산(皖公山)에 들어가 보월선사(寶月禪師)를 좇아 제자가 되었다. 후에 어느 날 연좌(宴坐)하다가 이승(異僧)을 보았는데() 신장(身長)이 장여(丈餘)였고 신자(神姿; 神奇姿態)가 상발(爽拔)했고 사기(詞氣)가 청랑(淸朗)했다.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경()80()에 출가했으니 의당 정진(精進)을 더하라.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일찍이 곡중(谷中)에 있으면서 입정(入定)했는데 산의 물이 폭창(瀑漲; 용솟으며 불어남)했으나 스님이 이연(怡然)히 부동(不動)했고 그 물은 스스로 물러갔다. 어떤 엽자(獵者)가 이를 만나자 인하여 개과수선(改過修善)했다. 다시 옛적에 함께 종군(從軍)했던 자 2인이 있어 스님이 은둔(隱遁)한다 함을 듣고 이에 함께 입산하여 그를 찾았다. 이미 보자 인하여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낭장(郞將)은 미쳤는가, 무엇 때문에(何爲) 여기에 거주하는가. 사왈(師曰) 나의 미침()은 깰려고() 하지만 그대의 미침은 바로 발작했네. 무릇 기색(嗜色)ㆍ음성(淫聲)ㆍ탐영(貪榮)ㆍ모총(冒寵)은 생사에 유전(流轉)하거늘 무슨 인유(因由)로 스스로 벗어나겠는가. 2인이 감오(感悟)하고 탄식하며 떠났다. 스님이 후에 법융(法融) 선사를 참알하고 대사(大事)를 발명(發明; 환히 깨치다)했다. 법융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도신(道信) 대사의 진결(眞訣)을 받아 얻은 바를 모두() 망실(亡失)했다. 설사 열반을 승과(勝過)하는 1법이 있더라도 내가 또한 몽환(夢幻)과 같다고 설한다. 무릇 1()이 날면 하늘을 가리고() 1()가 떨어지면 땅을 덮는다. 네가 이제 이미 이 견해를 초과했거늘 내가 다시 무엇을 이르겠는가. 산문(山門)의 화도(化導)는 마땅히 너에게 부촉한다. 스님이 품명(稟命)하여 제2세가 되었고 후에 정법을 방선사(方禪師)에게 부촉하고 백마(白馬)ㆍ서현(栖玄) 양사(兩寺)에 주()하다가 또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겼다. 의봉(儀鳳) 2(677) 정월 10일 시멸(示滅)했는데 안색이 불변했고 굴신(屈伸)함이 생시와 같았고 실()에 이향(異香)이 있어 열흘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수장(水塟)하라고 유언(遺言)했다.

旁出; 이르자면 적사(嫡嗣)가 아님.

弱冠; 조정사원6. 약관(弱冠) 음이 관이니 관속(冠束)이다. 남자 20을 가로되 약관이다.

郞將; 무관(武官)의 이름이니 진()에서 설치했고 숙위(宿衛)와 거기(車騎)를 주관(主管)했음. 곧 낭중령(郞中令) 소할(所轄) 3()5() 중의 낭장이니 좌중랑장과 우중랑장임. ()은 진제(秦制)를 인습(因襲: )했고 광록훈(光祿勳)에 예속되었음. 당송(唐宋)의 설관(設官)은 중랑장 밖에 다시 낭장을 설치했음 [백도백과].

爽拔; 호상(豪爽)하여 출중(出衆).

怡然; 안적(安適)하고 자재한 양자(樣子).

山門; (1). 3()으로 지음. 사원 정면의 누문(樓門)을 가리킴. 사원은 많이 산림의 곳에 거처하는지라 고로 이 이름이 있음. 일반적으로 3개의 문이 있어 3해탈문(空門無相門無作門)을 상징하므로 고로 또 명칭이 3문임. 혹 겨우 1문만 있어도 또한 이를 일컬어 삼문이라 함 삼문(三門)을 참조하라. (2). 또 산사(山寺)로 지음. 곧 사원의 일반의 칭호임. 대개 고래로 사원은 다분히 산림의 사이에 건축한지라 고로 산문을 사원의 별명으로 삼음. 오직 후세에 평지나 시정(市井) 중에 건조한 사원도 또한 널리 산문으로 일컬음을 얻음. 1()의 주지 이하의 전체 수행자를 또한 총칭하여 산문이라 함 [상기전전당류].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金陵鍾山曇璀禪師者

吳郡人也 姓顔氏 初謁融禪師 融目而奇之 乃告之曰 色聲爲無生之鴆毒 受想是至人之坑穽 子知之乎 師默而審之 大悟玄旨 尋晦迹鍾山 多歷年所 茅庵瓦缶 以終老焉 唐天授三年二月六日 恬然入定 七日而滅

鴆毒; 禪林寶訓音義 鴆毒 鳥名 其形如鷄 其色紫綠 頸長八寸 以蛇蝮爲食 其毛羽歷於飮食之間 食則殺人也

至人; 至極之人 指無心道人 法華經玄贊要集七 言至人者 卽至極之人 名爲至人 四果及十地菩薩 但名聖人 唯我世尊 名至人也 禪林寶訓音義 至人 行到之人 又聖人也

瓦缶; 小口大腹的瓦器

 

금릉(金陵) 종산(鍾山) 담최선사(曇璀禪師)란 자는

오군(吳郡) 사람이며 성은 고씨(顧氏). 처음 융선사(融禪師; 法融)를 참알하자 법융이 보고서()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이에 그에게 알려 가로되 색성(色聲)은 무생(無生)의 짐독(鴆毒)이며 수상(受想)은 이 지인(至人)의 갱정(坑阱; 陷穽)이다. 자네가 이를 아느냐. 스님이 묵묵히 이를 살폈고() 현지(玄旨)를 대오했다. 이윽고 종산(鍾山)에 자취를 숨겼고(晦迹) 연소(年所; 年數)를 많이 지나면서() 모암(茅庵)과 와부(瓦缶)로 종로(終老)했다. 당 천수(天授) 3(692) 26일 염연(恬然)히 입정(入定)한 지 7일 만에 멸()했다.

鴆毒; 선림보훈음의. 짐독(鴆毒) 새 이름이다. 그 형상은 닭과 같고 그 색은 자록(紫綠)이며 목의 길이는 8()이다. 사복(蛇蝮; 뱀과 독사)으로 먹이를 삼는다. 그 모우(毛羽)를 음식 사이에 경력하면 음식으로 곧 살인한다.

至人; 지극한 사람. 무심도인을 가리킴. 법화경현찬요집7. 말한 지인(至人)이란 것은 곧 지극한 사람을 이름해 지인이다. 4() 및 십지보살은 다만 이름이 성인이며 오직 우리의 세존이라야 이름이 지인이다. 선림보훈음의. 지인(至人) 행하여 이른 사람이다. 또 성인이다.

瓦缶; 작은 주둥이에 큰 배의 와기(瓦器).

 

四祖下三世四世旁出〉〈不列章次

四祖下五世旁出

金陵牛頭山持禪師法嗣

牛頭山智威禪師者

江寧人也 姓陳氏 依天寶寺統法師出家 謁法持禪師 傳授正法 自爾江左學徒 皆奔走門下 有慧忠者 目爲法器 師甞有偈示曰 莫繫念 念成生死河 輪迴六趣海 無見出長波 忠答曰 念想由來幻 性自無終始 若得此中意 長波當自止 師又示偈曰 余本性虛無 緣妄生人我 如何息妄情 還歸空處坐 忠答曰 虛無是實體 人我何所存 妄情不須息 卽汎般若船 師知其了悟 乃付以院事 隨緣化導 終于延祚寺

江左; 長江以東地區

六趣; 祖庭事苑七 六趣 一地獄趣 梵云泥黎 此飜苦具 言地獄者 此趣在地之下 故言地獄 有八寒八熱等 有眷屬 其類無數 㝡重者 一日有八萬四千生死 二畜生趣 亦云旁生 披毛戴角 鱗甲羽翮 四足多足 有足無足 互相呑啖 受苦無窮 三餓鬼趣 有福德者 作山林塚廟神 無福德者 居不淨處 不得飮食 常受鞭打 被苦無量 四阿修羅趣 此飜無酒 又無端正 又無天 或在海岸海底 宮殿嚴飾 常好鬪戰 怕怖無極 五人趣 四洲不同 皆苦樂相間 六天趣 有二十八天不同 欲界六 色界十八 無色界四 此六趣也

 

우두산(牛頭山) 지위선사(智威禪師)란 자는

강녕(江寧) 사람이며 성은 진씨(陳氏). 천보사(天寶寺) 통법사(統法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법지선사(法持禪師)를 예알(禮謁)하고 정법을 전수(傳授했다. 이로부터 강좌(江左)의 학도(學徒)가 모두 문하(門下)로 분주(奔走)했고 혜충(慧忠)이란 자가 있었는데 명목(名目)해 법기(法器)라 했다. 스님이 일찍이 게가 있어 보여 가로되 사념에 묶이지 말지니(莫繫念)/ 사념이 생사하(生死河)를 이룬다/ 육취해(六趣)에 윤회하면서/ 장파(長波)를 벗어남을 보지 못한다. 혜충(慧忠)이 답왈(答曰) 염상(念想)의 유래(由來)가 환()이며/ 자성(自性)은 스스로 종시(終始)가 없다/ 만약 이 중의 뜻을 얻는다면/ 장파(長波)가 마땅히 스스로 그치리라(). 스님이 또 게를 보여 가로되 나의 본성은 허무(虛無)하고/ 인연이 허망하여 인아(人我)를 생기(生起)한다/ 어찌해야 망정(妄情)을 쉬고/ 공처(空處)로 환귀(還歸)하여 앉을까. 혜충이 답왈 허무가 이 실체(實體)거늘/ 인아(人我)가 어찌 존재하는 것인가/ 망정(妄情)을 쉼을 쓰지() 않아도/ 곧 반야선(般若船)을 띄운다(). 스님이 그가 요오(了悟)한 줄 알았고 이에 원사(院事)를 부촉했고 수연(隨緣)하여 화도(化導)했다. 연조사(延祚寺)에서 마쳤다.

江左; 장강(長江) 이동(以東) 지구(地區).

六趣; 조정사원7. 육취(六趣) 1. 지옥취(地獄趣) 범어로 이르되 니리(泥黎; niraya)는 여기에선 고구(苦具)로 번역함. 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취()가 땅의 아래에 있으므로 고로 말하되 지옥임. 88(八寒八熱) 등이 있으며 권속(眷屬; 88열지옥에 딸린 권속지옥)이 있어 그 종류가 무수함. 가장(와 같음) 무거운 자는 하루에 팔만사천 생사가 있음. 2. 축생취(畜生趣) 또한 이르되 방생(旁生). 피모대각(披毛戴角; 털을 입고 뿔을 임)과 인갑우핵(鱗甲羽翮; 은 비늘 린. 은 껍질 갑. 은 깃촉 핵)과 사족다족(四足多足)과 유족무족(有足無足)이니 호상 삼키고 씹어 수고가 무궁함. 3. 아귀취(餓鬼趣) 복덕이 있는 자는 산림이나 총묘(塚廟)의 신()을 지으며 복덕이 없는 자는 부정한 처소에 거주하면서 음식을 얻지 못하고 늘 채찍으로 때림을 받으며 고통을 입음이 무량함. 4. 아수라취(阿修羅趣) 여기에선 무주(無酒)로 번역하며 또 무단정(無端正)이며 또 무천(無天). 혹은 해안과 해저에 있으면서 궁전을 엄식(嚴飾)하고 늘 투전(鬪戰)을 좋아하며 두려움이 다함이 없음. 5. 인취(人趣) 사주(四洲)가 부동(不同)이며 다 고락이 상간(相間). 6. 천취(天趣) 28천이 있어 부동함. 욕계는 6이며 색계는 18이며 무색계는 4. 이것이 육취임.

 

四祖下六世旁出

金陵牛頭山威禪師法嗣

牛頭山慧忠禪師者

潤州人也 姓王氏 年二十三 受業於莊嚴寺 聞威禪師出世 乃往謁之 威纔見曰 山主來也 師感悟微旨 遂給侍左右 後辭詣諸方巡禮 威於具戒院 見凌霄藤遇夏萎悴 人欲伐之 因謂之曰 勿剪慧忠還時 此藤更生 及師回果如其言 卽以山門付囑訖 出居延祚寺 師平生一衲不易 器用唯一鐺 甞有供僧糓兩廩 盜者窺伺 虎 爲守之 縣令張遜者 至山頂謁問師 有何徒弟 師曰 有三五人 遜曰 如何得見 師敲禪牀 有三虎哮吼而出 遜驚怖而退 後衆請入城 居莊嚴舊寺 師欲於殿東別創法堂 先有古木 羣鵲巢其上 工人將伐之 師謂鵲曰 此地建堂 汝等何不速去 言訖羣鵲乃遷巢他樹 初築基有二神人定其四角 復潛資夜役 遂不日而就 繇是四方學徒雲集 得法者有三十四人 各住一方 轉化多衆 師有安心偈曰 人法雙淨 善惡兩忘 直心眞實 菩提道場 大曆三年石室前挂鐺樹挂衣藤忽盛夏枯死 四年六月十五日 集僧布薩訖 命侍者淨髮浴身 至夜有瑞雲覆其精舍 空中復聞天樂之聲 詰旦怡然坐化 時風雨暴作 震折林木 復有白虹貫于巖壑 五年春 茶毗獲舍利不可勝計

出世; 出世間之略稱 卽超越世俗 出離世塵之意 又作出塵 二指諸佛出現於世間成佛 三禪師於自身 修持功成後 再次歸還人間敎化衆生 亦稱出世 或被任命住持之職 昇進高階位之僧官等 皆稱爲出世 此指三

山主; 卽一山之主 乃一寺住持之尊稱 例如傳燈錄二十四之撫州龍濟山主紹修禪師 廣燈錄二十八之杭州南山資國圓進山主 續傳燈錄十一之眞州定山惟素山主等 蓋寺院原多建於山林之間 寺稱山號 故住持稱山主 此外 亦稱禪林大寺院之上座爲山主 [象器箋稱呼類]

萎悴; 枯萎 衰落 憔悴

窺伺; 暗中觀望動靜 等待時機

禪牀; 又作禪床 牀 同床 玉篇 床 俗牀字 禪牀又作繩牀 坐禪牀 卽以繩草或籐 所製之折疊牀 以其輕巧 且攜帶方便 故爲比丘經常攜行之道具 屬十八物之一

法堂; 乃七堂伽藍之一 卽禪林演布大法之堂 位於佛殿之後方 方丈之前方 相當於講堂 而講通於講敎 爲別於他宗 且示其敎外別傳之宗旨 故於禪宗特稱爲法堂 按歷代三寶紀十二 傳燈錄四等 支那自古除佛殿外 亦建有法堂 及至百丈懷海禪師定禪苑之規制 遂模倣朝制之太極殿 建立法堂 堂內中央設一高臺 四方均得仰望 然後世則於座後設大板屛 已失古意 禪苑淸規十云 不立佛殿唯搆法堂 可知禪苑古來不存佛殿 只建法堂 後始於佛殿之後方建法堂 或於小寺院中 衍爲佛殿法堂兩者兼用 [百丈淸規上尊祖章 禪苑淸規五 同七 同九 象器箋殿堂類]

道場; 又作菩提道場 菩提場 指中印度菩提伽耶的菩提樹下之金剛座上佛陀成道之處 注維摩詰經四 復次佛所坐處 於中成道 故名道場 指修行佛道之區域 不論堂宇之有無 凡修行佛道之所在 均稱道場 釋氏要覽上 肇云 閑宴修道之處 謂之道場 隋煬帝勅遍改僧居名道場 又得道之行法 謂爲道場 維摩經菩薩品 直心是道場 …… 三十七品是道場 又爲法座之異名 慈悲道場 水陸道場等是也 此指

布薩; <> poṣadha upavasatha upoṣadha upavāsa <> uposatha posatha 又作布灑他 此云長淨 長養 增長等 或稱說戒 卽同住之比丘每半月集會一處 或齊集布薩堂 請精熟律法之比丘說波羅提木叉戒本 以反省過去半月內之行爲是否合乎戒本 若有犯戒者 則於衆前懺悔 使比丘均能長住於淨戒中 長養善法 增長功德 又在家信徒於六齋日受持八齋戒 亦稱布薩 謂能增長善法

精舍; 寺院之異名 爲精行者所居 故曰精舍 非精妙之謂

詰旦; 淸晨 早晨

 

우두산(牛頭山) 혜충선사(慧忠禪師)란 자는

윤주(潤州) 사람이며 성은 왕씨다. 나이 23에 장엄사(莊嚴寺)에서 수업(受業)했다. 위선사(威禪師; 智威)가 출세(出世)했다 함을 듣고 이에 가서 그를 참알(參謁)했다. 지위가 겨우 보자 가로되 산주(山主)가 왔구나. 스님이 미지(微旨)에 감오(感悟)했고 드디어 좌우에서 급시(給侍)했다. 후에 고별()하고 제방(諸方)으로 나아가서 순례(巡禮)했다. 지위가 구계원(具戒院)에서 능소등(凌霄藤)을 보니 여름을 만나 위체(萎悴)했고 사람이 그것을 베려고() 했다. 인하여 그에게 일러 가로되 베지() 말아라. 혜충이 돌아올 때 이 등()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스님이 돌아옴에 이르러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곧 산문(山門)을 부촉(付囑)해 마치자 나가서 연조사(延祚寺)에 거주했다. 스님은 평생 1()을 바꾸지 않았고 그릇()은 오직 1(; . 노구솥)을 썼다. 일찍이 공승곡(供僧糓) 두 곳집(兩廩)이 있었는데 도자(盜者)가 규사(窺伺)하자 범이 그것을 수호(守護)했다. 현령(縣令; 현의 長官) 장손(張遜)이란 자가 산정(山頂)에 이르러 스님을 참알하고 묻되 어떤 도제(徒弟)가 있습니까. 사왈 3, 5인이 있습니다. 장손이 가로되 어떻게 해야 득견(得見)합니까. 스님이 선상(禪牀)을 두드리자 3()가 있어 효후(哮吼)하며 나왔다. 장손이 경포(驚怖)하며 물러났다. 후에 대중이 청해 입성(入城)하여 장엄(莊嚴) 구사(舊寺)에 거주했다. 스님이 전(殿)의 동쪽에 법당(法堂)을 따로 창건하려고 했는데 먼저 고목(古木)이 있었고 군작(群鵲)이 그 위에 둥지를 틀었다. 공인(工人)이 장차 그것을 베려고 하자 스님이 까치에게 일러 가로되 이 땅에 건당(建堂)하려고 하는데 너희 등은 왜 속히 떠나지 않느냐. 말을 마치지 군작(群鵲)이 이에 다른 나무로 옮겨 둥지를 틀었다. 처음 기초(基礎)를 쌓자 2신인(神人)이 있어 그 4()을 정()했고 다시 몰래() 야역(夜役)을 도운지라() 드디어 불일(不日; 며칠 안. 머지않아)에 성취했다.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학도(學徒)가 운집했고 법을 얻은 자가 34인이 있으며 각자 1()에 거주하면서 다중(多衆)을 전화(轉化; 展轉히 교화)했다. 스님이 안심게(安心偈)가 있어 가로되 인법(人法)을 쌍정(雙淨)하고/ 선악을 양망(兩忘)하라/ 직심(直心)이 진실(眞實)이니/ 보리(菩提)의 도량(道場)이다. () 대력(大曆) 3(766) 석실 앞의 괘쟁수(挂鐺樹)와 괘의등(挂衣藤)이 홀연히 성하(盛夏; 5)에 고사(枯死)했다. 4(767) 615일 승중(僧衆)을 소집(召集)하여 포살(布薩)하여 마치자 시자에게 명령해 정발욕신(淨髮浴身)했다. 밤에 이르자 서운(瑞雲)이 있어 그 정사(精舍)를 덮었고 공중에 다시 천악(天樂)의 소리가 들렸다. 힐단(詰旦)에 이연(怡然)히 좌화(坐化)했는데 때에 풍우가 폭작(暴作)하여 임목(林木)을 진절(震折; 움직여 부러뜨림)했고 다시 백홍(白虹)이 있어 암학(巖壑; 바위와 골)을 관통했다. 5(768) 봄 다비(茶毗)하여 사리를 얻었는데 가히 다() 세지 못한다.

出世; 1. 출세간(出世間)의 약칭이니 곧 세속을 초월하여 세진(世塵)을 출리(出離)함의 뜻. 또 출진(出塵)으로 지음. 2. 제불이 세간에 출현하여 성불함을 가리킴. 3. 선사(禪師)가 자신을 수지(修持)하여 공()을 이룬 후에 재차(再次) 인간으로 귀환하여 중생을 교화함을 또한 출세라고 일컬음. 혹은 주지(住持)의 직()에 임명됨을 입거나 높은 계위(階位)의 승관(僧官)에 승진(昇進)하는 등을 다 일컬어 출세라고 함. 여기에선 3을 가리킴.

山主; 1산의 주인이니 곧 1()의 주지의 존칭임. 예여(例如) 전등록24의 무주 용제산주 소수선사ㆍ광등록28의 항주 남산 자국 원진산주ㆍ속전등록11의 진주 정산 유소산주 등임. 대개 사원은 원래 산림의 사이에 많이 건립했고 사()를 산호(山號)로 일컬은지라 고로 주지를 일컬어 산주라 함. 이 밖에 또한 선림의 대사원의 상좌를 일컬어 산주라 함 [상기전칭호류].

萎悴; 고위(枯萎; 말라 시듦). 쇠락(衰落). 초췌(憔悴).

窺伺; 암중(暗中)에 동정(動靜)을 관망하면서 시기를 기다림(等待).

禪牀; 또 선상(禪床)으로 지음. ()은 상()과 같음. 옥편 상() ()의 속() 글자다. 선상(禪牀)은 또 승상(繩牀)ㆍ좌선상(坐禪牀)으로 지음. 곧 승초(繩草)나 혹 등()으로 제작한 바의 절첩상(折疊牀; 접이식 상)이니 그것이 경교(輕巧)하고 또 휴대하기가 방편(方便)한지라 고로 비구가 경상(經常; 平時) 가지고 다니는 도구가 됨. 18물의 하나에 속함.

法堂; 법당(法堂) 곧 칠당가람(七堂伽藍)의 하나. 곧 선림에서 대법을 연포(演布)하는 당(). 불전(佛殿)의 후방과 방장의 전방에 위치함. 강당(講堂)에 상당하며 강()은 강교(講敎)와 통함. 타종(他宗)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또 그 교외별전의 종지를 보이는지라 고로 선종에서 특별히 법당으로 호칭함. 역대삼보기12ㆍ전등록4 등을 안험컨대 지나(支那)에선 자고로 불전을 제한 밖에 또한 법당을 건립해 있었으며 및 백장회해선사가 선원의 규칙을 제정함에 이르러 드디어 조제(朝制)의 태극전(太極殿)을 모방해 법당을 건립했음. 당내 중앙에 하나의 고대(高臺)를 설치하여 사방에서 균일하게 앙망함을 얻었음. 그러나 후세에 곧 좌후(座後)에 대판병(大板屛)을 설치했는데 이미 고의(古意)를 잃었음. 선원청규10에 이르되 불전을 세우지 않고 오직 법당만 지었다 했으니 가히 선원은 고래로 불전을 두지 않고 다만 법당만 건립한 줄을 알 것임. 후에 비로소 불전의 후방에 법당을 건립했음. 혹 작은 사원 중엔 널리 불전과 법당 양자를 겸용했음 [백장청규상존조장. 선원청규5, 7, 9. 상기전전당류].

道場; 또 보리도량(菩提道場; Bodhi-maṇḍa)ㆍ보리장(菩提場)으로 지음. 중인도 보리가야(菩提伽耶; Buddha-gayā)의 보리수 아래의 금강좌상의 불타가 성도한 곳을 가리킴. 주유마힐경4. 다시 다음에 불타가 앉은 곳, 그 가운데서 성도한지라 고로 이름이 도량(道場)이다. 불도를 수행하는 구역을 가리킴. 당우(堂宇)의 유무를 논하지 않고 무릇 불도를 수행하는 소재를 균일하게 일컬어 도량(道場)이라 함. 석씨요람상. (; 僧肇)가 이르되 한가하고 편안하게 수도하는 곳, 이를 일러 도량(道場)이라 한다. 수양제가 칙명으로 승거(僧居; 승인의 거주지)를 두루 고쳐 도량(道場)으로 명칭했다. 또 도를 얻는 행법을 일컬어 도량(道場)이라 함. 유마경 보살품. 직심이 이 도량(道場)이며 …… 37품이 이 도량이다. 또 법좌의 다른 이름이 됨. 자비도량ㆍ수륙도량 등이 이것임. 여기에선 을 가리킴.

布薩; <> poṣadha. upavasatha. upoṣadha. upavāsa. <> uposatha. posatha. 또 포쇄타(布灑他)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장정(長淨)ㆍ장양(長養)ㆍ증장(增長) 등이며 혹은 설계(說戒)로 일컬음. 곧 함께 거주하는 비구가 매() 반달마다 한 곳에 모이거나 혹은 포살당(布薩堂)에 일제(一齊)히 모여 율법을 정밀하게 익힌 비구에게 요청해 바라제목차계본(波羅提木叉戒本; 波羅提木叉三名 중의 하나)을 설하게 하면서 지난 반달 내의 행위가 계본(戒本)에 부합(否合)하는지를 반성(反省). 만약 계를 범한 자가 있으면 곧 대중 앞에서 참회(懺悔)하여 비구로 하여금 균일하게 능히 정계(淨戒) 중에 장주(長住)하면서 선법(善法)을 장양(長養)하고 공덕을 증장(增長)하게 함. 또 재가신도(在家信徒)6재일(齋日)8재계(齋戒)를 수지(受持)함도 또한 포살이라고 일컫나니 이르자면 능히 선법을 증장함임.

精舍; 사원의 다른 이름이니 정행자(精行者)의 소거(所居)가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정사(精舍)며 정묘(精妙)를 말함이 아님.

詰旦; 청신(淸晨; 맑은 첫새벽). ()은 이른 새벽.

 

宣州安國寺玄挺禪師

初參威禪師侍立次 有講華嚴僧問 眞性緣起 其義云何 威良久 師遽召曰 大德正興一念問時 是眞性中緣起 其僧言下大悟 或問 南宗自何而立 曰 心宗非南北

宣州; 今屬安徽省宣城縣

華嚴; 大方廣佛華嚴經 又稱華嚴經雜華經 有三種 ()六十華嚴 凡六十卷 東晉佛馱跋陀羅譯 又稱舊華嚴 晉經 總成七處八會三十四品 據出三藏記集九 華嚴經探玄記一等所擧 華嚴經之梵本 原有十萬偈 由東晉支法領從于闐國攜入三萬六千偈 自安帝義熙十四年(418)三月 由佛馱跋陀羅譯成六十卷 稱爲六十華嚴 此卽第一譯 然六十華嚴中之入法界品尙有缺文 直至唐永隆元年(680) 始補譯之 ()八十華嚴 凡八十卷 唐代實叉難陀譯 又稱新華嚴 唐經 總成七處九會三十九品 爲六十華嚴之異譯 八十華嚴之梵本 乃實叉難陀應武則天之請 從于闐國攜入中華 自唐武則天證聖元年(695)三月 於遍空寺內始譯 武后親臨譯場 揮毫首題品名 至聖曆二年(699)十月功畢 此卽第二譯 本經之西藏譯本 總成四十五品 其中 前四十四品相當於本經之前三十八品 第四十五品相當於本經第三十九入法界品 ()四十華嚴 凡四十卷 唐代般若譯 全稱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略稱普賢行願品 又稱貞元經 爲新舊兩譯華嚴經入法界品之別譯 唐德宗貞元十一年(795)十一月 由南天竺烏荼國師子王派使者進貢其所親寫華嚴經之梵本 翌年六月 於長安崇福寺 由罽賓般若三藏譯之 澄觀及圓照鑑虛等諸師詳定 至貞元十四年二月譯畢 共四十卷 此卽四十華嚴 宗統編年五 祖(十四祖龍樹) 入龍宮看藏見華嚴經有三本 上本 十三世界微塵數偈 一四天下微塵數品 中本四十九萬八千八百偈 一千二百品 下本十萬偈 四十八品 上本非佛不能知 中本惟住地菩薩乃能知之 遂記下本回歸西土 傳至東震 僅八十卷三十九品 乃前分三萬六千偈 尙有六萬四千偈九品在西土

眞性緣起; 花嚴經探玄記十六 問 下文云非少因緣成等正覺 此乃是緣起 何故唯言性起耶 釋云 有四義 一以果海自體當不可說不可說性 機感具緣 約緣明起 起已違緣而順自性 是故廢緣但名性起 二性體不可說 若說卽名起 今就緣說起 起無餘起 還以性爲起 故名性起不名緣起 三起雖攬緣緣必無性 無性之理顯於緣處 是故就顯但名性起 如從無住本立一切法等 四若此所起似彼緣相 卽屬緣起 今明所起唯據淨用 順證眞性故屬性起 緣起; 一切諸法(有爲法) 皆因種種條件(卽因緣)和合而成立 此理稱爲緣起 如阿含經多處所闡明之十二支緣起 謂無明爲行之緣 行爲識之緣 乃至生爲老死之緣

南宗; 自初祖達磨倡禪 至五祖弘忍爲一味 弘忍弟子有慧能神秀二弟子 分南北二宗 慧能於江南布化 故云南宗 神秀入洛陽而其道盛 故云北宗 此中至後世極隆盛者南宗也 五家七宗之分派 悉屬於此下 因此後世以南爲禪之正宗 以慧能稱六代之祖

心宗; 禪宗 禪宗提倡直指人心 明心見性 故稱

 

선주(宣州) 안국사(安國寺) 현정선사(玄挺禪師)

위선사(威禪師; 智威)를 초참(初參)하여 시립(侍立)하던 차에 화엄경(華嚴; 華嚴經)을 강설하는 중이 있어 묻되 진성연기(眞性緣起)는 그 뜻이 어떻습니까(云何). 지위(智威)가 양구(良久)했다. 스님이 급히 부르며 가로되 대덕(大德)이 바로() 1념을 일으켜() 물을 때 이것이 진성 중의 연기입니다. 그 중이 언하에 대오했다. 혹 묻되 남종(南宗)이 어디로부터 세웠습니까. 가로되 심종(心宗)은 남북(南北)이 아니다.

宣州; 지금 안휘성 선성현(宣城縣)에 속함.

華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니 또 명칭이 화엄경ㆍ잡화경(雜華經). 3종이 있음. (1). 육십화엄(六十華嚴) 무릇 60권이며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구화엄(舊華嚴)ㆍ진경(晉經)이니 총() 78(七處八會) 34()으로 이루어졌음. 출삼장기집9ㆍ화엄경탐현기1 등에서 든 바에 의거하면 화엄경의 범본(梵本)은 원래 10만 게가 있고 동진 지법령(支法領)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36천 게를 휴입(攜入)함으로 말미암아 안제(安帝) 의희(義熙) 14(418) 3월로부터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60권을 역성(譯成)했기 때문에 일컬어 60화엄(華嚴)이라 했으니 이것이 곧 제1(). 그러나 60화엄 중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오히려 결문(缺文)이 있었고 바로 당 영륭(永隆) 원년(680)에 이르러 비로소 보역(補譯)했음. (2). 팔십화엄(八十華嚴) 무릇 80권이며 당대(唐代)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했음. 또 명칭이 신화엄(新華嚴)ㆍ당경(唐經)이며 총() 79(七處九會) 39()으로 이루어졌으니 60화엄의 이역(異譯)이 됨. 80화엄의 범본은 곧 실타난타가 무측천(武則天)의 요청에 응해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중화로 휴입(攜入)했음. 당 무측천 증성(證聖) 원년(695) 3월로부터 편공사(遍空寺) 안에서 처음 번역했고 무후(武后)가 역장(譯場)에 친림해 수제(首題)의 품명(品名)을 휘호(揮毫)했음. 성력 2(699) 10월에 이르러 공()을 마쳤으니 이것이 곧 제2(). 본경의 서장역본(西藏譯本)은 총() 45품으로 이루어졌고 그 중 전() 44품은 본경의 전 38품에 상당하고 제45품은 본경의 제39 입법계품에 상당함. (3). 사십화엄(四十華嚴) 무릇 40권이며 당대(唐代) 반야(般若)가 번역했음. 전칭(全稱)이 대방광불화엄경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며 약칭이 보현행원품이며 또 명칭이 정원경(貞元經). 신구(新舊) 양역(兩譯) 화엄경의 입법계품의 별역(別譯). 당 덕종(德宗) 정원(貞元) 11(795) 11월 남천축 오다국(烏荼國) 사자왕(師子王)이 사자를 파견해 그가 친사(親寫)한 바 화엄경의 범본을 진공(進貢)했기 때문에 다음해 6월 장안 숭복사(崇福寺)에서 계빈(罽賓; 계빈국) 반야삼장(般若三藏)이 그것을 번역함으로 말미암아 징관(澄觀) 및 원조감허(圓照鑑虛) 등 여러 스님이 상정(詳定)했고 정원(貞元) 142월에 번역을 마쳤음. 공히 40권이며 이것이 곧 40화엄임. 종통편년5. (14龍樹)가 용궁에 들어가 장경을 보는데 화엄경(華嚴經)3()이 있음을 보았다. 상본(上本)은 십삼세계(十三世界; 10삼천대천세계)의 미진수게(微塵數偈)1사천하(四天下)의 미진수품(微塵數品)이었고 중본(中本)4988백 게며 12백 품()이었고 하본(下本)10만 게며 48품이었다. 상본은 부처가 아니면 능히 알지 못하고 중본은 오직 주지보살(住地菩薩; 10하는 보살)이라야 이에 능히 그것을 알겠는지라 드디어 하본을 기()하여 서토(西土)로 회귀했다. ()하여 동진(東震)에 이른 것은 겨우 8039품이니 곧 전분(前分)36천 게라, 오히려 64천 게 9품이 있어 서토에 있다.

眞性緣起; 화엄경탐현기16. 묻되 하문(下文)에 이르기를 적은 인연으로 등정각을 이룸이 아니다 했으니 이것은 곧 이 연기(緣起)거늘 무슨 연고로 오직 성기(性起)를 말하는가. 석운(釋云)하되 4()가 있다. 1. 과해(果海)의 자체가 불가설불가설성(不可說不可說性)에 당하는지라 기감(機感)이 구연(具緣)했다. ()에 의거(依據; )해 기()를 밝히면 기()한 다음 위연(違緣)하여 자성을 따르는지라 이런 고로 폐연(廢緣)하고 단지 이름해 성기(性起)라 했다. 2. 성체(性體)는 불가설이니 만약 설하면 곧 이름이 기(). 여금에 취연(就緣)하여 설기(說起)하매 기()는 여기(餘起)가 없고 도리어 성()으로 기()를 삼는지라 고로 이름이 성기(性起)며 연기(緣起)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3. ()가 비록 남연(攬緣)하나 연()은 반드시 무성(無性)이니 무성의 이치가 연처(緣處)에 나타나는지라() 이런 고로 현()으로 나아가 다만 성기(性起)라고 이름했다. 무주(無住)의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을 세운다는 등과 같다. 4. 만약 이 소기(所起)가 저 연상(緣相)과 흡사하다면 곧 연기에 속하지만 여금엔 소기(所起)가 오직 정용(淨用)에 의거함을 밝힘이니 진성(眞性)을 순증(順證)하는지라 고로 성기(性起)에 속한다. 緣起; 일체의 제법(유위법)은 모두 갖가지 조건(곧 인연)이 화합함으로 인해 성립하나니 이 도리를 일컬어 연기라 함. 아함경의 여러 곳에서 밝힌 바의 12지연기(十二支緣起)와 같은 것임. 이르자면 무명은 행()의 연()이 되며 행은 식()의 연이 되며 내지 생()은 노사(老死)의 연이 됨.

南宗; 초조 달마가 창선(倡禪; 선을 부르다)함으로부터 5조 홍인에 이르기까지는 1()가 되며 홍인의 제자에 혜능과 신수 두 제자가 있어 남북 2종으로 나뉘었음. 혜능은 강남에서 포화(布化; 포교 교화)한지라 고로 이르되 남종이며 신수는 낙양에 들어가 그 도가 흥성한지라 고로 이르되 북종임. 이 중에 후세에 이르러 극히 융성한 것은 남종임. 57(五家七宗)의 분파는 모두 이 아래 속함. 인하여 후세에 남()을 선()의 정종으로 삼았으며 혜능을 6()의 조사로 일컬음.

心宗; 선종이니 선종은 직지인심(直指人心)ㆍ명심견성(明心見性)을 제창하는지라 고로 일컬음.

 

舒州天柱山崇慧禪師者

彭州人也 姓陳氏 唐乾元初 往舒州天柱山創寺 永泰元年賜額 僧問 如何是天柱境 師曰 主簿山高難見日 玉鏡峯前易曉人 問 達磨未來此土時 還有佛法也無 師曰 未來且置 卽今事作麽生 曰 某甲不會 乞師指示 師曰 萬古長空 一朝風月 僧無語 師復曰 闍梨會麽 曰 不會 師曰 自己分上作麽生 干他達磨來與未來作麽 他家來 大似賣卜漢 見汝不會 爲汝錐破卦文 纔生吉㐫 盡在汝分上 一切自看 僧曰 如何是解卜底人 師曰 汝纔出門時 便不中也 問 如何是天柱家風 師曰 時有白雲來閉戶 更無風月四山流 問 亡僧遷化向甚麽處去也 師曰 𤅬嶽峯高長積翠 舒江明月色光暉 問 如何是大通智勝佛 師曰 曠大劫來 未曾壅滯 不是大通智勝佛是甚麽 曰 爲甚麽佛法不現前 師曰 只爲汝不會 所以成不現前 汝若會去 亦無佛可成 問 如何是道 師曰 白雲覆靑嶂 蜂蝶戀庭華 問 從上諸聖有何言說 師曰 汝今見吾有何言說 問 宗門中事 請師擧唱 師曰 石牛長吼眞空外 木馬嘶時月隱山 問 如何是和尙利人處 師曰 一雨普滋 千山秀色 問 如何是天柱山中人 師曰 獨步千峯頂 優游九曲泉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白猿抱子來靑嶂 蜂蝶銜華綠蘂間 大曆十四年歸寂 于山之北

彭州; 今四川彭縣 明一統志六十七四川成都府曰 彭縣在府城北九十里 周爲彭國 …… 唐復置濛州 貞觀(627-649)初廢 後又置彭州 (中略)宋仍爲彭州

作麽生; 又作怎麽生 作麽 作生 作麽 卽何 生 語助辭 有時可作樣字或然字解 本爲宋代俗語 禪宗多用於公案之感歎 或疑問之詞

闍梨; 梵語阿闍的簡稱 又作闍黎 意爲僧人之師 常用作對僧人的稱呼 玄應音義九 阿祇利 或言阿闍黎 皆訛也 正言阿遮利耶 或作夜 此譯云正行 或言軌範師也

分上; 分數 形便 資格 境地

他家; 他 別人 家 名詞詞綴

遷化; 略作化 指僧侶之示寂 有遷移化滅之義 或謂有德之人 於此土敎化衆生之緣已盡 而遷移於他方世界 化度衆生 與涅槃圓寂滅度順世歸眞等同義 在家人亦用遷化之語 漢書九十七上外戚傳 漢武帝於李夫人卒後 爲其作賦 忽遷化而不返兮 魄放逸以飛揚

大通智勝佛; 卽出現於過去三千塵點劫以前 演說法華經之佛名 按法華經三化城喩品 過去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祇劫有一佛 名爲大通智勝如來 此佛未出家前有十六王子 於父王成道後 十六王子亦出家爲沙彌 聽聞大通智勝佛宣講妙法蓮華經而信受奉行 後亦各昇法座廣說此經 法華經三化城喩品 大通智勝佛 十劫坐道場 佛法不現前 不得成佛道

宗門; 或稱宗乘 或略稱宗 宗 爲所崇尙之敎旨 門 爲通入之義 宗門一詞 宋以後成爲禪宗之自讚 餘宗則稱敎門 然此稱非限於禪宗 於天台 有經部宗 薩婆多宗 另有眞宗圓宗等名目 按考信錄四 宗門一詞 出自禪林 以楞伽經所說佛語心爲宗無門爲法門 立佛心宗而自稱宗門

和尙; <> upādhyāya 指德高望重之出家人 又作和上 和闍 和社等 梵云鄔波馱耶 優婆陀訶 郁波第耶夜 此云親敎師 力生 近誦 翻譯名義集一 和尙 或和闍 羯磨疏云 自古翻譯多雜蕃胡 胡傳天語不得聲實 故有訛僻 傳云 和尙梵本正名鄔波遮迦 傳至于闐 翻爲和尙 傳到此土 什師翻名力生

歸寂; 謂僧侶之死 又稱圓寂 示寂 入寂等

; 建塔安葬

 

서주(舒州) 천주산(天柱山) 숭혜선사(崇慧禪師)란 자는

팽주(彭州) 사람이며 성()은 진씨(陳氏). () 건원(乾元; 758-759) 초 서주 천주산으로 가서 창사(創寺)했는데 영태(永泰) 원년(元年; 765) 사액(賜額)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천주경(天柱境)입니까. 사왈(師曰) 주박산(主薄山)이 높아 해를 보기 어렵고 옥경봉(玉鏡峯) 앞에서 쉽게 사람을 알아본다(). 묻되 달마가 차토(此土)에 오지 않았을 때 도리어 불법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오지 않았을 때는 그래 두고 즉금(卽今)의 일은 어떠한가(作麽生). 가로되 모갑(某甲)이 알지 못하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만고(萬古)의 장공(長空)이며 일조(一朝)의 풍월(風月)이다.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다시 가로되 사리(闍梨)는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자기의 분상(分上)은 어떠한가(作麽生), () 달마의 옴과 오지 않음을 상간(相干)하여 무엇하리오. 타가(他家)가 옴은 매복한(賣卜漢; 占卜을 파는 자)과 대사(大似; 매우 흡사)하나니 네가 알지 못함을 보고 너를 위해 괘문(卦文)을 추파(錐破)하여 겨우 길흉이 생겨났거니와 모두 너의 분상(分上)에 있으니 일체를 스스로 보아라. 승왈(僧曰) 무엇이 이 점복(占卜)을 아는 사람입니까. 사왈 네가 겨우 출문(出門)할 때 바로(便) 맞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천주가풍(天柱家風)입니까. 사왈 때에 백운이 내방함이 있으나 문호를 닫은지라 다시 사산(四山)에 흐를 풍월이 없다. 묻되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甚麽)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첨악봉(灊嶽峯)이 높아 늘() 푸름을 쌓았고 서강(舒江)의 명월은 색이 광휘(光暉; 빛나다)한다. 묻되 무엇이 이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입니까. 사왈(師曰) 광대(曠大; 廣大)한 겁래(劫來)로 일찍이 옹체(擁滯; 留滯)하지 않았으니 이 대통지승불이 아니면 이 무엇이겠는가. 가로되 무엇 때문에(爲甚麽) 불법이 현전(現前)하지 않았습니까. 사왈 다만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소이로 현전하지 않음을 이루거니와 네가 만약 알더라도(會去) 또한 가히 이룰 부처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백운이 청산을 덮었고 봉접(蜂蝶)이 정화(庭華)를 연모한다(). 묻되 종상(從上; 從前. 以前)의 제성(諸聖)이 어떤 언설이 있었습니까. 사왈 네가 지금 내가 무슨 언설이 있는지 보아라. 묻되 종문(宗門) 가운데의 일을 스님에게 청하오니 거창(擧唱; 擧說. 宣示)하십시오. 사왈 석우(石牛)가 진공(眞空) 밖에 길게 울부짖고 목마가 울 때 달이 산에 숨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화상(和尙)의 이인(利人; 사람을 이롭게)하는 곳입니까. 사왈 일우(一雨)에 널리 우거지니() 천산(千山)이 아름다운() 색이다. 묻되 무엇이 이 천주산(天柱山) 가운데의 사람입니까. 사왈 천봉정(千峯頂)을 독보(獨步)하고 구곡천(九曲泉)에 우유(優游)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백원(白猿)은 새끼를 안고 청장(靑嶂)에 오고 봉접(蜂蝶)은 꽃을 물고() 녹예(綠蘂; 푸른 꽃술)의 사이다. 대력(大曆) 14(779) 722일 귀적(歸寂)했고 산의 북쪽에 탑을 세웠다().

彭州; 지금의 사천 팽현. 명일통지67 사천 성도부(成都府)에 가로되 팽현은 부성(府城) 북방 90 리에 있다. ()에선 팽국이라 했다 (중략) ()에서 다시 몽주를 설치했다. 정관(627-649) 초 폐했고 후에 또 팽주(彭州)를 설치했다 …… ()에서 그대로 팽주라 했다.

作麽生; 또 즘마생(怎麽生)ㆍ작마(作麽)ㆍ작생(作生)으로 지음. 작마(作麽)는 곧 하()며 생()은 어조사임. 어떤 때엔 가히 양자(樣字) 혹은 연자(然字)로 지어 해석함. 본래 송대(宋代)의 속어(俗語)가 되는데 선종에서 다분히 공안의 감탄(感歎), 혹은 의문의 말로 사용함.

闍梨; 범어 아사리(阿闍; Ācārya)의 간칭. 또 사리(闍黎)로 지음. 뜻이 승인의 스승이 됨. 상용하여 승인에 대한 칭호로 지음. 현응음의9. 아기리(阿祇利) 혹은 말하되 아사리(阿闍黎)는 다 그르다. 바른 말은 아자리야(阿遮利耶)며 혹은 야()로 짓는다.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정행(正行)이며 혹은 말하되 궤범사(軌範師).

分上; 분수ㆍ형편ㆍ자격ㆍ경지.

他家; (). 다른 사람임. ()는 명사의 사철(詞綴; 接辭).

遷化; 생략하여 화()로 지음. 승려의 시적(示寂)을 가리킴. 옮겨 이동하여 화멸(化滅)하는 뜻이 있음. 혹은 이르기를 덕이 있는 사람이 이 국토에서 중생을 교화할 인연이 이미 다하매 다른 방면의 세계로 옮겨 이동해 중생을 화도(化度)함이라 함. 열반(涅槃)ㆍ원적(圓寂)ㆍ멸도(滅度)ㆍ순세(順世)ㆍ귀진(歸眞) 등과 같은 뜻임. 재가인(在家人)도 또한 천화(遷化)의 말을 씀. 한서97상 외척전(外戚傳). 한무제(漢武帝)가 이부인(李夫人)이 죽은 후 그를 위해 부()를 지었다. 홀연히 천화(遷化)해 돌아오지 못하나니 혼백(魂魄)이 방일(放逸)하여 비양(飛揚)하는구나.

大通智勝佛; 곧 과거 3천 진점겁(塵點劫) 이전에 출현하여 법화경을 연설한 부처의 이름. 법화경3 화성유품을 안험하니 과거 무량무변 불가사의의 아승기겁에 한 부처가 있었으니 이름해 대통지승여래며 이 부처가 출가하기 전에 16왕자가 있었는데 부왕이 성도한 후 16왕자도 또한 출가하여 사미가 되었으며 대통지승불의, 묘법연화경을 선강(宣講)함을 청문(聽聞)하고 신수(信受)하여 봉행했고 후에 또한 각자 법좌에 올라 이 경을 광설(廣說)했음. 법화경3 화성유품. 대통지승불이/ 10겁을 도량에 앉았으나/ 불법이 현전하지 않아/ 불도 이룸을 얻지 못했다.

宗門; 혹은 명칭이 종승(宗乘)이며 혹은 약칭이 종(). ()은 숭상하는 바의 교지(敎旨)가 되며 문()은 통입(通入)의 뜻이 됨. 종문(宗門)의 일사(一詞)는 송() 이후로는 선종의 자찬(自讚)이 되어 나머지 종()은 곧 교문(敎門)이라 일컬음. 그러나 이 명칭은 선종에 한정하지 않음. 천태(天台)에 경부종(經部宗)살바다종(薩婆多宗)이 있고 따로 진종(眞宗)ㆍ원종(圓宗) 등의 명목이 있음. 고신록4(考信錄四)를 안험하니 종문이란 1()는 선림으로부터 나왔음. 릉가경에서 설한 바 불어심위종(佛語心爲宗) 무문위법문(無門爲法門)으로써 불심종(佛心宗)을 세워 자칭 종문이라 했음.

和尙; <> upādhyāya. 덕이 높고 신망(信望)이 두터운 출가인을 가리킴. 또 화상(和上)ㆍ화사(和闍)ㆍ화사(和社) 등으로 지음. 범어로는 이르되 오파타야(鄔波馱耶)ㆍ우파타하(優婆陀訶)ㆍ욱파제야야(郁波第耶夜)니 여기에선 이르되 친교사(親敎師)ㆍ역생(力生)ㆍ근송(近誦). 번역명의집1. 화상(和尙) 혹은 화사(和闍). 갈마소(羯磨疏)에 이르되 자고로 번역이 번호(蕃胡; 은 중국에서 옛적에 서방 변경의 각 소수민족과 외국에 대한 통칭. 뒤에 으로 지었음)가 많이 섞여 호인(胡人)이 천축국 말을 전하면서 소리의 진실을 얻지 못해 고로 그릇되고 치우침이 있었다. ()에 이르되 화상의 범본(梵本)의 바른 이름은 오파자가(鄔波遮迦)이다. 전해 우전(于闐)에 이르러 화상으로 번역되었고 전하여 이 국토에 이르러선 집사(什師; 구마라집)가 번역해 역생(力生)으로 이름했다.

歸寂; 이르자면 승려의 죽음임. 또 명칭이 원적ㆍ시적ㆍ입적 등.

; 탑을 세워 안장함.

 

潤州鶴林玄素禪師者

延陵人也 姓馬氏 晩參威禪師 遂悟性宗 後居鶴林寺 一日有屠者禮謁 願就所居辦供 師欣然而往 衆皆見訝 師曰 佛性平等 賢愚一致 但可度者 吾卽度之 復何差別之有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會卽不會 疑卽不疑 又曰 不會不疑底 不疑不會底 有僧扣門 師問 是甚麽人 曰 是僧 師曰 非但是僧 佛來亦不著 曰 爲甚麽不著 師曰 無汝棲泊處

性宗; 法性宗 華嚴宗五祖宗密所判大乘三宗之一 又稱性宗 立眞如法性隨緣 而緣起諸法之宗旨也 華嚴天台眞言等之實大乘 皆爲此法性宗 三德指歸一 佛滅度後十有三世 至龍樹菩薩始用文字 廣第一義諦 嗣其學者號法性宗 元魏高齊間有慧文禪師 默而識之 授南岳思大師 由是有三觀之學

西來意; 指禪宗初祖菩提達摩從西方來東土 傳授的禪法意旨 是祖師西來意的省稱

 

윤주(潤州) 학림(鶴林) 현소선사(玄素禪師)란 자는

연릉(延陵) 사람이며 성은 마씨(馬氏). 만년(晩年)에 지위선사(智威禪師)를 참(; 參謁)해 드디어 성종(性宗)을 깨쳤고 후에 학림사(鶴林寺)에 거주했다. 어느 날 어떤 도자(屠者; 소ㆍ돼지 등을 잡는 사람)가 예알(禮謁)해 소거(所居)로 나아가 판공(辦供; 辨供과 같음. 돈이나 물품을 마련하여 이바지함)하기를 원하자 스님이 흔연(欣然)히 갔다. 대중이 모두 이를 의아(疑訝)함을 보이자() 사왈(師曰) 불성은 평등하고 현우(賢愚)는 일치(一致). 단지 가히 제도할 자는 내가 곧 그를 제도하거늘 다시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회(; 理會)가 곧 불회(不會)며 의(; 의심)가 곧 불의(不疑). 또 가로되 불회(不會)는 불의(不疑)하는 것이며() 불의(不疑)는 불회(不會)하는 것이다. 어떤 중이 문을 두드리자 스님이 묻되 이 어떤 사람인가. 가로되 이 승()입니다. 사왈 단지 이 승()만이 아니라 부처가 오더라도 또한 붙이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爲甚麽) 붙이지 않습니까. 사왈 네가 서박(棲泊)할 곳이 없다.

性宗; 법성종(法性宗)이니 화엄종 5조 종밀(宗密)이 판교(判敎)한 바 대승 3()의 하나. 또 명칭이 성종(性宗)이니 진여(眞如)ㆍ법성(法性)ㆍ수연(隨緣)을 세워 제법을 연기(緣起)하는 종지임. 화엄ㆍ천태ㆍ진언 등의 실다운 대승이 모두 이 법성종이 됨. 삼덕지귀1. 불타가 멸도한 후 13(), 용수보살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를 사용하여 제1의제(義諦)를 광설했다. 그를 이은 학자를 호하여 법성종이라 한다. 원위(元魏) 고제(高齊) 사이에 혜문선사(慧文禪師)가 있어 묵연히 이를 기록()하여 남악사대사(南岳思大師)에게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삼관지학(三觀之學)이 있었다.

西來意; 선종 초조 보리달마가 서방으로부터 동토에 와서 전수한 선법의 의지(意旨)를 가리킴. 이는 조사서래의의 생칭(省稱).

 

四祖下七世旁出

金陵牛頭山忠禪師法嗣

天台山佛窟巖惟則禪師者

京兆人也 姓長孫氏 初謁忠禪師 大悟玄旨 乃曰 天地無物也 物我無物也 雖無物也 而未甞無物也 如此則聖人如影 百姓如夢 孰爲死生哉 至人以是能獨照 能爲萬物主 吾知之矣 遂南遊天台 隱於瀑布之西巖 元和中慕道者日至 有弟子可素 遂築室廬 漸成法席 佛窟之稱自師始也 僧問 如何是那羅延箭 師曰 中的也 忽一日告門人曰 汝其勉之 閱一日跏趺而寂 後三年 塔全身于本山唐韓文公撰碑 今存國淸寺

天台山; 位於浙江臺州府(天台縣)佛霞嶺山脈東北端 又稱天梯山 或稱臺嶽 以山形如八葉覆蓮 有八支八溪及上臺 中臺 下臺等 似三星之臺宿 故稱天台

京兆; 陝西長安 又指京師

那羅延; <> Nārāyana 天上力士之名 或梵天王之異名 法華義疏十二 那羅延者 眞諦云 那羅翻爲人 延云生本 梵王是衆生之祖父 故云生本 羅什云 天力士名那羅延 端正猛健也 涅槃經疏七 那羅延 此翻金剛

 

천태산(天台山) 불굴암(佛窟巖) 유칙선사(惟則禪師)란 자는

경조(京兆) 사람이며 성은 장손씨(長孫氏). 처음에 혜충(慧忠) 선사를 참알해 현지(玄旨)를 대오했다. 이에 가로되 천지(天地)는 없는 물건이며(無物) 물아(物我)도 없는 물건이다. 비록 없는 물건이지만 일찍이 없는 물건이 아니다. 이와 같은 즉 성인(聖人)은 그림자와 같고 백성(百姓)이 꿈과 같거늘 누가() 사생(死生)하겠는가. 지인(至人)은 이로써 능히 독조(獨照)하고 능히 만물의 주()가 되나니 내가 이것을 안다. 드디어 천태로 남유(南遊)하여 폭포(瀑布)의 서암(西巖)에 은거했다. 원화(元和; 806-820) 중 모도자(慕道者)가 날로 이르자 제자 가소(可素)가 있어 드디어 실려(室廬)를 축조(築造)했고 점차 법석을 이루었으니 불굴(佛窟)의 명칭은 스님으로부터 비롯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나라연전(那羅延)입니까. 사왈(師曰) 표적(標的)을 맞혔다. 홀연히 어느 날 문인(門人)에게 고해 가로되 너희는 그 힘쓰거라(), 하루를 지내고() 가부(跏趺)하고 적()했다. 3년 후에 본산(本山)에 전신(全身)으로 탑을 세웠다()唐 韓文公(韓愈)撰碑했고 지금 국청사에 남았다.

天台山; 절강 대주부(臺州府; 천태현) 불하령산맥 동북단(東北端)에 위치함. 또 호칭이 천제산(天梯山)이며 혹 호칭이 대악(臺嶽). 산형(山形)8()의 복련(覆蓮)과 같으며 8()8() 및 상대(上臺)ㆍ중대ㆍ하대 등이 있으며 3()의 대수(臺宿)와 같으므로 고로 명칭이 천태(天台).

京兆; 섬서 장안. 또 경사(京師)를 가리킴.

那羅延; <> Nārāyana. 천상 역사의 이름. 혹은 범천왕의 다른 이름. 법화의소12. 나라연이란 것은 진제가 이르되 나라(那羅)를 번역하면 인()이며 연()은 이르되 생본(生本)이다. 범왕은 이 중생의 조부이므로 고로 이르되 생본이다. 라집이 이르되 천상 역사의 이름이 나라연이니 단정하고 맹건(猛健)하다. 열반경소7. 나라연 여기에선 금강으로 번역한다.

 

鶴林素禪師法嗣

杭州徑山道欽禪師者

蘇州崑山人也 姓朱氏 初服膺儒敎 年二十八 遇素禪師謂之曰 觀子神氣溫粹 眞法寶也 師感悟因求爲弟子 素躬與落髮 乃戒之曰 汝乘流而行 逢徑卽止 師遂南邁 抵臨安見東北一山 因問樵者 樵曰 此徑山也 乃駐錫焉 僧問 如何是道 師曰 山上有鯉魚 海底有蓬塵 馬祖令人送書到 書中作一圓相 發緘於圓相中著一點 却封回忠國師聞 乃云 欽師猶被馬師惑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汝問不當 曰 如何得當 師曰 待吾滅後 卽向汝說 馬祖令智藏來問 十二時中以何爲境 師曰 待汝回去時有信 藏曰 如今便回去 師曰 傳語却須問取曹溪 崔趙公問 弟子今欲出家 得否 師曰 出家乃大丈夫事 非將相之所能爲 公於是有省 唐大曆三年 代宗詔至闕下 親加瞻禮 一日 同忠國師在內庭坐次 見帝駕來 師起立 帝曰 師何以起 師曰 檀越何得向四威儀中見貧道 帝悅 謂國師曰 欲錫欽師一名 國師欣然奉詔 乃賜號國一焉 後辭歸本山 於貞元八年十二月示疾 說法而逝 諡大覺禪師

杭州; 今浙江省省都

徑山; 位於浙江省餘杭西北約二十九公里處 在天目山之東北峰 因以小徑通於天目山而得名 唐代天寶元年(74 2) 牛頭宗之道欽(法欽)禪師 入此山結庵 學者輻輳 大曆四年(769) 代宗慕其爲人 賜國一禪師之號 下詔 卽於其庵址建徑山寺 至宋代 圜悟克勤 維林 了一等高僧亦住此山 高宗紹興七年(1 137) 圜悟之門人大慧禪師 來住此寺 弟子來集者多達一千七百餘人 孝宗皇帝親書興聖萬壽禪寺 竝賜圓覺經解 其後又有無準師範 虛堂智愚等臨濟龍象住此 [宋高僧傳九 傳燈錄四 同十 同十一 徑山志 大明一統志六十八 大淸一統志二一六]

蘇州; 江蘇省南東部都市吳縣的古稱 漢代以來 江南經濟文化中心地 城內有長慶慧稜所住北寺(報恩寺) 南禪寺 瑞光寺 報恩光孝寺 寒山寺 府城西北有十刹之第九位虎印山雲巖寺 西南有靈巖山崇報寺 報恩山(觀音山) 西有天平山白雲寺等 [吳縣志]

服膺; 銘記在心 衷心信奉

神氣; 神靈之氣 得意傲慢的樣子 精神

溫粹; 溫和純正

駐錫; 僧人出行 以錫杖自隨 故稱僧人住止爲駐錫

蓬塵; 蓬 量詞 如一蓬花 又同槰 草木盛貌

圓相; 祖庭事苑二 圓相 圓相之作 始於南陽國師 付授侍者耽源 源承讖記 傳于仰山 今遂目爲潙仰家風 明州五峰良和上 嘗製四十則 明敎子潛子(佛日契嵩禪師 雲門文偃下四世)爲之序 稱道其美 良云 圓相總六名 一圓相 二義海 三暗機 四字海 五意語 六默論

發緘; 開著器物或書札的札束或封口

祖師西來意; 初祖達磨自西天來此土傳禪法 究竟意思如何 究此意思者 卽究佛祖之心印也

十二時; 一日中之十二箇時辰 從子時至亥時

曹溪; 猶曹谿 位於韶州(今廣東曲江縣東南)之河 發源於狗耳嶺 西流與溱水合 以經曹侯塚故 又稱曹侯溪 梁天監元年(502) 天竺婆羅門三藏智藥 到曹溪口 飮其水而知此源爲勝地 乃勸村人建寺 復因其地似西國之寶林山 故稱寶林寺 智藥預言 一七年後 有肉身菩薩 於此開演無上法門 得道者如林 至唐儀鳳二年(677)春 六祖慧能從弘忍得法後 從印宗剃髮 受具足戒而歸寶林寺 大弘法化 人稱曹溪法門 指六祖慧能 慧能以曹溪寶林寺爲中心 開展敎化活動 世人尊稱爲曹溪古佛 曹溪高祖

國師; 祖庭事苑七 國師 西域之法 推重其人 外內攸同 邪正俱有 擧國歸依 乃彰斯號 聲敎東漸 唯北齊高僧法常 齊主崇爲國師 國師之號 自常公始 陳隋之代 天台智顗爲陳宣隋煬菩薩戒師 故時號國師 唐則天朝 神秀召入京師 及中睿玄凡四朝 皆號爲國師 後有慧忠 肅代二朝 入禁中說法 亦號國師 元和中 敕署知玄號悟達國師 若偏覇之國 則蜀後主 賜右街僧錄光業爲祐聖國師 吳越稱德韶爲國師 [大宋僧史略卷中]

檀越; 翻譯名義集一 要覽曰 梵語陀那鉢底 唐言施主 今稱檀那 訛陀爲檀 去鉢底留那也 攝大乘論云 能破慳悋嫉妬及貧窮下賤苦 故稱陀 後得大富 及能引福德資糧 故稱那 又稱檀越者 檀卽施也 此人行施越貧窮海

四威儀; 謂行住坐臥四種威儀 出家人所必須遵守之儀則 敎中有三千威儀八萬細行等語

 

항주(杭州) 경산(徑山) 도흠선사(道欽禪師)란 자는

소주(蘇州) 곤산(崑山) 사람이며 성은 주씨(朱氏). 처음에 유교(儒敎)를 복응(服膺)했고 나이 28에 현소선사(玄素禪師)를 만났는데 그에게 일러 가로되 자네를 보건대 신기(神氣)가 온수(溫粹)하니 참다운 법보(法寶). 스님이 감오(感悟)했고 인하여 제자가 됨을 구하자 현소가 몸소 낙발(落髮)해 주었다. 이에 그에게 경계(警戒)하여 가로되 네가 흐름을 타고 가다가 경()을 만나거든 곧 멈추거라. 스님이 드디어 남매(南邁; 南行)하여 임안(臨安)에 다다라() 동북의 1()을 보았다. 인하여 초자(樵子)에게 물으니 초자가 가로되 이것은 경산(徑山)입니다. 이에 주석(駐錫)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師曰) 산 위에 이어(鯉魚; 잉어)가 있고 해저(海底)에 봉진(蓬塵)이 있다. 마조(馬祖)가 사람을 시켜 송서(送書)하여 이르렀는데 서중(書中)1원상(圓相)을 지었다. 스님이 발함(發緘)하고는 원상 가운데에 일점(一點)을 붙이고 도리어 봉()하여 돌려주었다忠國師가 듣고서 이에 이르되 欽師가 오히려 馬師惑亂을 입었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 너의 질문은 합당하지 않다. 가로되 어찌해야 합당함을 얻겠습니까. 사왈 내가 멸()한 후를 기다린다면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마조(馬祖)가 지장(智藏)을 시켜 와서 묻게 하되 십이시(十二時) 중에 무엇으로써 경계를 삼습니까. 사왈 네가 회거(迴去)할 때를 기다린다면 신(; 消息)이 있을 것이다. 지장이 가로되 여금에 바로 회거(迴去)합니다. 사왈 전어(傳語)는 도리어 꼭 조계(曹溪)에게 문취(問取)해야 한다. 최조공(崔趙公)이 묻되 제자가 이제 출가하려고 하는데 얻겠습니까. 사왈 출가는 곧() 대장부의 일인지라 장상(將相)이 능히 할 바가 아니다. ()이 이에서 살핌이 있었다. 당 대력(大曆) 3(768) 대종(代宗)이 조칙으로 궐하(闕下)에 이르게 하고 친히 첨례(瞻禮)를 더했다. 어느 날 충국사(國師; 慧忠國師)와 함께 스님이 내정(內庭)에 있으면서 앉은 차에 황제의 어가(御駕; )가 옴을 보고 스님이 기립(起立)했다. 제왈(帝曰) 스님은 무엇 때문에(何以) 일어나십니까. 사왈 단월(檀越)은 왜 사위의(四威儀) 가운데를 향해 빈도(貧道)를 봄을 얻습니까. 황제가 기뻐했다(). 충국사(國師)에게 일러 가로되 흠사(欽師)에게 1()을 주고() 싶습니다. 국사가 흔연(欣然)히 봉조(奉詔)하여 이에 국일(國一)이란 호를 주었다. 후에 고별하고 본산(本山)으로 돌아갔다. 정원(貞元) 8(792) 12월에 시질(示疾)하더니 설법하고 서거(逝去)했다. ()가 대각선사(大覺禪師).

杭州; 지금의 절강성 성도(省都).

徑山; 절강성 여항 서북 약 29곳에 위치함. 천목산(天目山)의 동북 봉우리에 있음. 작은 길(小徑)이 천목산으로 통함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당대 천보 원년(742) 우두종의 도흠(道欽; 법흠)선사가 이 산에 들어가 암자를 엮자 학자들이 복주(輻輳)하였음. 대력 4(769) 대종이 그 사람됨을 흠모해 국일선사(國一禪師)의 호를 주고 조칙을 내려 곧 그 암자 터에 경산사를 건립했음. 송대에 이르러 원오극근ㆍ유림ㆍ요일 등의 고승이 또한 이 산에 거주했음. 고종 소흥 7(1137) 원오의 문인인 대혜선사가 이 절에 와서 거주했으며 제자가 와서 모인 자 많게는 17백여 인에 달했음. 효종황제가 친서하여 흥성만수선사라 했으며 아울러 원각경해(圓覺經解)를 주었음. 그 후에 또 무준사범ㆍ허당지우 등의 임제의 용상이 여기에 거주함이 있었음 [송고승전9. 전등록4, 10, 11. 경산지. 대명일통지68. 대청일통지216].

蘇州; 강소성 남동부 도시 오현의 고칭(古稱). 한대(漢代) 이래 강남의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임. 성내에 장경혜릉(長慶慧稜)이 거주했던 곳인 북사(北寺; 報恩寺)ㆍ남선사ㆍ서광사ㆍ보은광효사ㆍ한산사가 있으며 부성(府城) 서북에 10()의 제9위 호인산 운암사가 있으며 서남에 영암산 숭보사ㆍ보은산(관음산)이 있으며 서쪽에 천평산 백운사 등이 있음 [오현지].

服膺; 명기(銘記)하여 마음에 둠이니 충심(衷心; 속에서 眞情으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신봉함.

神氣; 신령(神靈)한 기(). 득의(得意)하여 오만(傲慢)한 양자(樣子; 形狀). 정신(精神).

溫粹; 온화(溫和)하고 순정(純正).

駐錫; 승인이 출행(出行)하면 석장(錫杖)이 저절로 따르므로 고로 승인이 주지(住止)함을 일컬어 주석(駐錫)이라 함.

蓬塵; ()은 양사니 예컨대() 1봉화(蓬花). 도 봉()과 같음. 초목이 성한 모양.

圓相; 조정사원2. 원상(圓相) 원상의 시작이 남양국사(南陽國師; 慧忠國師)에서 비롯해 시자인 탐원(耽源)에게 부수(付授)했고 탐원이 참기(讖記)를 이어 앙산에게 전했으며 지금 드디어 제목해 위앙가풍으로 삼는다. 명주 오봉량화상(五峰良和上)이 일찍이 40칙을 만들고 명교자잠자(明敎子潛子; 佛日契嵩禪師니 운문문언하 4)가 서문을 지어 그 아름다움을 일컬어 말했다. ()이 이르되 원상은 모두 6()이니 1은 원상(圓相)이며 2는 의해(義海)3은 암기(暗機)4는 자해(字海)5는 의어(意語)6은 묵론(默論)이다.

發緘; 기물(器物)이나 혹 서찰(書札)의 찰속(札束) 혹 봉구(封口)를 개착(開著).

祖師西來意; 초조 달마가 서천(西天; 인도)으로부터 차토(此土; 중국)로 와서 선법(禪法)을 전했거니와 구경(究竟; 畢竟) 의사(意思)가 어떠한가. 이 의사를 궁구하는 것이 곧 불조의 심인(心印)을 궁구하는 것임.

十二時; 1일 중의 12개 시진(時辰)이니 자시로부터 해시에 이르기까지.

曹溪; 조계(曹谿)와 같음. 소주(韶州; 지금의 광동 曲江縣 동남)의 강하(江河)에 위치함. 구이령(狗耳嶺)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진수(溱水)와 합함. 조후총(曹侯塚)을 경유하는 연고로써 또 호칭이 조후계(曹侯溪). () 천감원년(天監元年; 502) 천축 바라문삼장(婆羅門三藏)인 지약(智藥)이 조계의 입구에 이르러 그 물을 마시고는 이 근원이 승지(勝地)가 됨을 알았음. 이에 촌인(村人)에게 권해 사원을 세우게 하고 다시 그 땅이 서국(西國)의 보림산(寶林山)과 흡사하다 하여 고로 보림사(寶林寺)로 호칭했음. 지약이 예언해 말하되 170년 후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있어 여기에서 무상법문(無上法門)을 개연(開演)할 것이며 득도(得道)하는 자가 숲과 같으리라. () 의봉2(儀鳳二年; 677) 봄에 이르자 6조 혜능(慧能)이 홍인(弘忍)을 좇아 법을 얻은 후 인종(印宗)을 좇아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고는 보림사(寶林寺)로 돌아가 법화(法化)를 크게 홍포(弘布)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조계법문(曹溪法門)이라 일컬음. 6조 혜능(慧能)을 가리킴. 혜능이 조계 보림사(寶林寺)를 중심으로 삼아 교화활동을 개전(開展)하였으므로 세인이 존칭하여 조계고불(曹溪古佛)ㆍ조계고조(曹溪高祖)라 함.

國師; 조정사원7. 국사(國師) 서역의 법은 그 사람을 추중(推重; 추대하여 존중)하되 외내가 같은 바며 사정(邪正)을 다 가졌으면 거국(擧國; 전국)이 귀의하므로 이에 이 호가 현창(顯彰; 환히 나타남)했다. 성교(聲敎)가 동점(東漸; 東進)하여 오직 북제의 고승 법상(法常)을 제주(齊主; 文宣帝)가 높여 국사로 삼았으니 국사의 호는 상공(常公)으로부터 비롯했다. ()ㆍ수()의 시대엔 천태지의(天台智顗)가 진() 선제(宣帝)와 수 양제의 보살계사가 되므로 고로 때에 국사로 호했고 당 측천조(則天朝)에 신수(神秀)를 경사에 불러 들였으며 및 중종ㆍ예종ㆍ현종, 무릇 4()에 다 국사로 호했으며 뒤에 혜충(慧忠)이 있어 숙종과 대종, 2()에 금중에 들어가 설법했으며 또한 국사로 호했다. 원화 중에 칙령해 지현(知玄)을 임명()해 오달국사로 호했다. 만약 편패(偏覇; 偏國覇者)의 나라라면 곧 촉후주가 우가승록 광업(光業)에게 주어 우성국사로 삼았으며 오월에선 덕소(德韶)를 일컬어 국사라 했다 [대송승사략권중].

檀越; 번역명의집1. 요람(要覽)에 가로되 범어 다나발지(陀那鉢底; danapati)는 당나라 말로는 시주이다. 지금 단나(檀那)라고 일컫는 것은 타()를 그릇되이 단()으로 삼았으며 발지(鉢底)를 제거하고 나()를 남겼음이다. 섭대승론에 이르되 능히 간린ㆍ질투 및 빈궁ㆍ하천의 고를 깨뜨리므로 고로 명칭이 타()며 후에 큰 부를 얻고 및 능히 복덕의 자량(資糧)을 당기므로 고로 명칭이 나(). 또 단월(檀越)로 일컫는 것은 단()는 곧 시(). 이 사람이 시를 행하여 빈궁의 바다를 초월함이다.

四威儀; 이르자면 행ㆍ주ㆍ좌ㆍ와의 4종 위의니 출가인이 필수로 준수해야 할 바의 의칙(儀則). 교중에 3천 위의 8만 세행(細行) 등의 말이 있음.

 

四祖下八世旁出

佛窟則禪師法嗣

天台山雲居智禪師

甞有華嚴院僧繼宗問 見性成佛 其義云何 師曰 淸淨之性 本來湛然 無有動搖 不屬有無淨穢長短取捨 體自翛然 如是明見 乃名見性 性卽佛佛卽性 故曰見性成佛 曰 性旣淸淨 不屬有無 因何有見 師曰 見無所見 曰 旣無所見 何更有見 師曰 見處亦無 曰 如是見時 是誰之見 師曰 無有能見者 曰 究竟其理如何 師曰 汝知否 妄計爲有 卽有能所 乃得名迷 隨見生解 便墮生死 明見之人卽不然 終日見未甞見 求見處體相不可得 能所俱絕 名 爲見性 曰 此性徧一切處否 師曰 無處不徧 曰 凡夫具否 師曰 上言無處不徧 豈凡夫而不具乎 曰 因何諸佛菩薩不被生死所拘 而凡夫獨縈此苦 何曾得徧 師曰 凡夫於淸淨性中計有能所 卽墮生死 諸佛大士善知淸淨性中不屬有無 卽能所不立 曰 若如是說 卽有能了不了人 師曰 了尙不可得 豈有能了人乎 曰 至理如何 師曰 我以要言之 汝卽應念 淸淨性中無有凡聖 亦無了不了人 凡之與聖 二俱是名 若隨名生解 卽墮生死 若知假名不實 卽無有當名者 又曰 此是極究竟處 若云我能了 彼不能了 卽是大病 見有淨穢凡聖 亦是大病 作無凡聖解 又屬撥無因果 見有淸淨性可棲止亦大病 作不棲止解亦大病 然淸淨性中 雖無動搖 且不壞方便應用及興慈運悲 如是興運之處 卽全淸淨之性 可謂見性成佛矣 繼宗踊躍 禮謝而退

見性; 見自心之佛性也

翛然; 翛 鳥之孤飛也 又自如也 [禪林寶訓音義]

凡夫; 對聖者之稱 謂無些少之斷惑證理者 凡者常也 又非一也 凡常而遮類多 故云凡夫

撥無因果; 撥卽否定排除之意 撥無因果卽否定因果之道理 釋詁 撥 除也 廣雅 撥 絶也

 

천태산(天台山) 운거지(雲居智) 선사

일찍이 화엄원승(華嚴院僧) 계종(繼宗)이 있어 묻되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그 뜻이 무엇입니까(云何). 사왈(師曰) 청정한 성()은 본래 담연(湛然)하여 동요(動搖)가 있지 않고 유무(有無)ㆍ정예(淨穢)ㆍ장단(長短)ㆍ취사(取捨)에 속하지 않고 체()가 스스로 소연(翛然)하나니 이와 같이 환히 본다면(明見) 곧 이름이 견성(見性)이다. ()이 곧 불()이며 불이 곧 성인지라 고로 가로되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가로되 성()이 이미 청정하여 유무(有無)에 속하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因何) ()이 있습니까. 사왈 보아도() 보는 바가 없다. 가로되 보는 바가 없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견()이 있습니까. 사왈 견처(見處)도 또한 없다. 가로되 이와 같이 볼 때 이 누구의 견()입니까. 사왈 능견자(能見者)가 있지 않다. 가로되 구경(究竟)에 그 이치가 무엇입니까. 사왈 네가 아느냐, 망계(妄計)하여 유()로 삼으면 곧 능소(能所)가 있어 이에 미()라는 이름을 얻고 견()을 따라 해()를 생기(生起)하여 곧 생사(生死)에 떨어진다. 명견(明見)하는 사람은 곧 그렇지 않아서 종일 견()해도 일찍이 견()이 아니며 견처(見處; 저본에 名處로 지었음)의 체상(體相)을 구하여도 불가득이며 능소(能所)가 모두() 끊어지나니 이름하여 견성이다. 가로되 이 성()은 일체처(一切處)에 두루합니까. 사왈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다. 가로되 범부(凡夫)도 갖추었습니까. 사왈 위에서 말하기를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다 했거늘 어찌 범부인들 갖추지 않았겠는가. 가로되 무엇 때문에 제불보살은 생사에 구속되는 바를 입지 않고 범부는 유독(惟獨) 이 고()에 얽힙니까(). 어찌 일찍이 두루함()을 얻는다 하겠습니까. 사왈 범부는 청정한 성중(性中)에 능소(能所)가 있다고 계탁(計度)하므로 곧 생사에 떨어지고 제불과 대사(大士)는 청정한 성중(性中)은 유무에 속하지 않음을 잘 아는지라 곧 능소(能所)를 세우지 않는다. 가로되 만약 이와 같이 설한다면 곧 능요(能了)와 불료(不了)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왈 요()도 오히려 불가득이거늘 어찌 능료(能了)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가로되 지리(至理)는 어떻습니까. 사왈 내가 요긴(要緊; )함으로써 그것을 말하리니 너는 곧 응당 사념하라. 청정한 성중(性中)엔 범성(凡聖)이 있지 않고 또한 요()ㆍ불료(不了)허눈 사람이 없다. ()과 더불어 성()은 둘 모두 이 이름()이다. 만약 이름 따라 해()를 내면 곧 생사에 떨어지나니 만약 가명(假名)은 실()이 아님을 알면 곧 이름에 당할 자가 있지 않다. 우왈(又曰) 이것은 이 지극한 구경처(究竟處). 만약 이르되 나는 능료(能了)했고 그는 능료하지 못했다 하면 즉시(卽是) 대병(大病)이다. 정예(淨穢)와 범성(凡聖)이 있음을 보면 역시 대병(大病)이다. 범성(凡聖)이란 이해가 없으면 또 발무인과(撥無因果)에 속하고 청정성(淸淨性)에 가히 서지(棲止)함이 있다고 봄도 또한 대병이며 서지(棲止)하지 않는다는 이해를 지어도 또한 대병이다. 그러하여 청정한 성중(性中)엔 비록 동요(動搖)가 없지만 또() 방편의 응용 및 흥자운비(興慈運悲)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흥운(興運)하는 곳은 곧 청정한 성()을 온전(穩全)히 하나니 가히 견성성불이라고 이를 만하다. 계종(繼宗)이 용약(踊躍)하며 예사(禮謝)하고 물러났다.

見性; 자심(自心)의 불성을 봄.

翛然; ()는 새의 고비(孤飛). 또 자여(自如; 自若)[선림보훈음의].

凡夫; 성자(聖者)에 상대한 명칭. 이르자면 사소한 단혹증리(斷惑證理)도 없는 자임. ()이란 것은 상()이며 또 비일(非一)이니 범상하면서 이런 무리가 많으므로 고로 이르되 범부임.

撥無因果; ()은 곧 부정하고 배제함의 뜻. 발무인과는 곧 인과의 도리를 부정함. 석고(釋詁) () (). 광아 발() ()이다.

 

徑山國一欽禪師法嗣

杭州鳥窠道林禪師

本郡富陽人也 姓潘氏 母朱氏 夢日光入口 因而有娠 及誕異香滿室 遂名香光 九歲出家 二十一於荊州果願寺受戒 後詣長安西明寺復禮法師學華嚴經起信論 禮示以眞妄頌 俾修禪那 師問曰 初云何觀 云何用心 禮久而無言 師三禮而退 屬代宗詔國一禪師至闕 師乃謁之 遂得正法 及南歸 孤山永福寺有辟支佛塔 時道俗共爲法會 師振錫而入 有靈隱寺韜光法師問曰 此之法會 何以作聲 師曰 無聲誰知是會 後見秦望山有長松 枝葉繁茂 盤屈如葢 遂棲止其上 故時人謂之鳥窠禪師 復有鵲巢於其側 自然馴狎 人亦目爲鵲巢和尙 有侍者會通 忽一日欲辭去 師問曰 汝今何往 對曰 會通爲法出家 和尙不垂慈誨 今往諸方學佛法去 師曰 若是佛法 吾此間亦有少許 曰 如何是和尙佛法 師於身上拈起布毛吹之 通遂領悟玄旨 元和中白居易侍郞出守茲郡 因入山謁師 問曰 禪師住處甚危險 師曰 太守危險尤甚 白曰 弟子位鎭江山 何險之有 師曰 薪火相交 識性不停 得非險乎 又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諸惡莫作 衆善奉行 白曰 三歲孩兒也解恁麽道 師曰 三歲孩兒雖道得 八十老人行不得 白作禮而退 師於長慶四年二月十日告侍者曰 吾今報盡 言訖坐亡有云師名圓修者 恐是諡號

本郡; 原籍所在之郡

荊州; 今湖北省長江北岸荊州府江陵縣 北接漢水流域 自古爲南北交通之要衝 白馬寺 長沙寺 天皇寺 竹林寺 承天寺 永泰寺 及天台智顗大通神秀所住玉泉寺等 並在此地

長安; 中國著名古都之一 位於陝西省黃河流域 卽今之西安 自漢至唐一千年之間 長安爲西漢 西魏 北周 隋唐等朝代之首都

復禮; 釋復禮 唐代僧 京兆人 俗姓皇甫氏 少出家住興善寺 性虛靜寡嗜欲 遊心內典兼博玄儒 三藏地婆訶羅實叉難陀等譯大莊嚴華嚴等經 皆勅召禮令同翻譯綴文裁義 著有十門辯惑論三卷 兼有文集行於代 [宋高僧傳十七]

法師; 稱能精通佛法爲人之師者 又謂行法之師也 法華義疏九 以人能上弘大法 下爲物師 故云法師 如世藥師以藥治人病 名爲藥師

起信論; 大乘起信論 一卷 馬鳴菩薩造 南朝梁代眞諦(四九九-五六九)譯 收於大正藏第三十二冊 本書闡明如來藏緣起之旨 及菩薩凡夫等發心修行之相 全書共分五篇 第一因緣分 敘述造立本論之因緣 是爲序分 第二立義分 第三解釋分 第四修行信心分 此三分爲本論之正宗分 立義與解釋二分 闡明一心 二門 三大之理論 修行信心分則說明四信五行之實踐法門 所謂一心 卽爲衆生心 亦爲如來藏(眞如)心 所謂二門 卽指心眞如門與心生滅門 第五勸修利益分 擧示受持本論者可得廣大利益 是爲本論之流通分 本論除眞諦譯本外 另有唐朝實叉難陀重譯之二卷本 兩種譯本大同小異 然以眞諦譯本流行較廣

禪那; <> dhyana <> jhana 慧琳音義二十一 禪那 此云靜慮 謂靜心思慮也 舊翻爲思惟修者略也

孤山; 位於浙江杭州西湖西北隅之島嶼 又稱孤嶼 瀛嶼 梅花嶼 相傳唐代曾於此建有孤山寺 宋初改稱廣化寺 宋大中祥符九年(1016) 天台宗山外派之孤山智圓幽居此地之瑪瑙院 世稱孤山智圓

辟支佛; <> pratyeka-buddha 又作辟支迦 貝支迦 辟支 此云緣覺 獨覺 爲二乘之一 亦爲三乘之一 法華經句解 辟支佛 此云緣覺 觀十二緣得入道故 亦云獨覺 出無佛世不因師匠觀物變易 獨能覺了

道俗; 又稱僧俗 緇素 緇白 道 指佛敎或佛敎徒

馴狎; 謂馴順可親近

白居易; (772-846) 唐代詩人 字樂天 號香山居士 醉吟先生 陝西下邽(渭南縣東北)人 儒家出身 聰慧過人 貞元十四年(798)擧進士 元和二年(80 7)任翰林學士 九年任太子左贊善大夫 作賞花及新井詩 敘述世人之浮華與讒佞 遂被貶爲江州司馬 後又遷任司門員外郞 會昌年間 任刑部尙書 逝世後追封尙書右僕射 其遺編有白氏文集七十五卷 白氏六帖事類集三十卷等 白氏中年歸佛 親近高僧 從受淨戒 習禪法 太和六年(832)重修洛陽香山寺 竝與洛陽佛光寺僧如滿 結香火社以修佛事 發願往生西方 會昌六年逝世 享年七十五 [佛祖統紀四十二 佛祖歷代通載十五 同十六 廬山志十三 廬山古今遊記叢鈔 舊唐書一六六 新唐書一一九]

侍郞; 官名 秦漢代爲郞中令之屬官 掌握宮門事 唐代爲中書省門下省之長官 後代爲六府次官

恁麽; 這 這樣 如此 其類似用語有與麽 什麽 漝麽 甚麽 怎麽 作麽等

 

항주(杭州) 조과(鳥窠) 도림선사(道林禪師)

본군(本郡) 부양(富陽) 사람이며 성은 반씨(潘氏). 모친 주씨(朱氏)가 일광(日光)이 입에 들어옴을 꿈꾸었고 인하여 임신(妊娠)이 있었으며 탄생함에 이르러 이향(異香)이 만실(滿室)한지라 드디어 이름해 향광(香光)이라 했다. 9세에 출가했고 21에 형주(荊州) 과원사(果願寺)에서 수계(受戒)했다. 후에 장안(長安) 서명사(西明寺) 복례법사(復禮法師)에게 나아가 화엄경과 기신론(起信論)을 배웠는데 복례가 진망송(眞妄頌)을 보이며 선나(禪那)를 닦게 했다(俾修). 스님이 문왈(問曰) 처음에 어떻게(云何) ()하며 어떻게 용심(用心)해야 합니까. 복례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스님이 삼례(三禮)하고 물러났다. 마침() 당 대종(代宗)이 국일선사(國一禪師)를 불러() 궁궐(宮闕)에 이르게 했는데 스님이 이에 그에게 참알해 드디어 정법을 얻었다. 및 남귀(南歸)하는데 고산(孤山) 영복사(永福寺)에 벽지불탑(辟支佛)이 있었고 당시에 도속(道俗)이 함께 법회(法會)했다. 스님이 석장(錫杖)을 떨치며 들어갔다. 영은사(靈隱寺) 도광법사(韜光法師)가 있어 문왈(問曰) 이 법회에 무엇 때문에 소리를 짓는가. 사왈(師曰) 소리가 없으면 누가 이 법회인 줄 알겠는가. 후에 진망산(秦望山)을 보매 장송이 있었고 가지와 잎이 번무(繁茂)했으며 서리고 굽은(盤屈) 게 덮개 같았다. 드디어 그 위에서 서지(棲止)한지라 고로 당시의 사람이 그를 일러 조과선사(鳥窠禪師)라 했다. 다시 까치가 그 곁에 둥지를 틂이 있었고 자연히 순압(馴狎; 친근)했으모로 사람들이 또한 명목(名目)해 작소화상(鵲巢和尙)이라 했다. 시자 회통(會通)이 있었는데 홀연히 어느 날 고별하고 떠나려 하자 스님이 물어 가로되 너는 지금 어디로 가느냐. 대답해 가로되 회통이 법을 위해 출가했는데 화상이 자회(慈誨)를 내리시지 않으므로 이제 제방으로 가서 불법을 배우겠습니다. 사왈 만약 이 불법이라면 나의 차간(此間)에도 또한 조금(少許)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화상의 불법입니까. 스님이 신상(身上)에서 포모(布毛)를 염기(拈起)하여 그것을 불었다. 회통이 드디어 현지(玄旨)를 영오(領悟)했다. 원화(元和; 806-820) 백거이(白居易) 시랑(侍郞)이 이 군에 태수(太守)로 나왔다. 인하여 입산하여 스님을 예알(禮謁)하고 물어 가로되 선사의 주처(住處)가 매우 위험합니다. 사왈 태수의 위험이 더 심하다. ()이 가로되 제자는 지위가 강산을 진압하거늘 무슨 위험이 있으리오. 사왈 신화(薪火)가 상교(相交)하듯 식성(識性)이 그치지 않거늘 위험하지 않음을 얻겠는가. 또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제악(諸惡)을 짓지 말고 중선(衆善)을 받들어 행하라. 백이 가로되 3세 해아(孩兒)라도 또한 이러히(恁麽) 말할 줄 알겠습니다. 사왈 3세 해아라도 비록 말함을 얻지만 80노인이라도 행함을 얻지 못한다. 백이 작례(作禮)하고 물러났다. 스님이 장경(長慶) 4(824) 210일에 시자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이제 과보가 다했다. 말을 마치자 좌망(坐亡)했다이름이 있기를 師名圓修라 한 것은 이 시호인가 염려스럽다.

本郡; 원적(原籍)이 소재(所在)하는 군().

荊州; 지금의 호북성 장강 북안의 형주부 강릉현이니 북으로 한수(漢水) 유역(流域)과 인접했고 자고로 남북 교통의 요충(要衝)이 되었음. 백마사ㆍ장사사ㆍ천황사ㆍ죽림사ㆍ승천사ㆍ영태사 및 천태지의(天台智顗)와 대통신수(大通神秀)가 거주했던 바의 옥천사(玉泉寺) 등이 모두 이 지역에 있음.

長安; 중국의 저명한 고도(古都)의 하나. 섬서성 황하 유역에 위치하며 즉금의 서안. ()으로부터 당에 이르는 1천 년 사이 장안은 서한ㆍ서위ㆍ북주ㆍ수ㆍ당 등 조대(朝代)의 수도가 되었음.

復禮; 석복례(釋復禮)니 당대승. 경조(京兆) 사람이며 속성은 황보씨. 어릴 적에 출가하여 흥선사에 거주했음. 성격이 허정(虛靜)하고 기욕(嗜欲)이 적었음. 내전(內典)에 유심(遊心)했고 겸하여 현유(玄儒; 玄學儒學)에 박통(博通)했음. 삼장 지바하라(地婆訶羅)와 실타난타(實叉難陀) 등이 대장엄(大莊嚴)ㆍ화엄 등의 경을 번역하자 모두 복례를 칙령으로 불러 함께 번역하고 철문재의(綴文裁義; 글을 짓고 뜻을 지음)하게 했음. 저서에 십문변혹론 3권이 있으며 겸해 문집이 있어 당대(當代)에 유행했음 [송고승전17].

法師; 능히 불법에 정통하고 사람의 스승이 되는 자를 일컬음. 또 법을 행하는 스님을 일컬음. 법화의소9. 사람으로서 능히 위로는 대법을 크게 하고 아래로는 사람의 스승이 되는지라 고로 이르되 법사(法師)니 세간의 약사가 약으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지라 이름해 약사라 함과 같다.

起信論; 대승기신론이니 1. 마명보살이 지었고 남조(南朝) 양대(梁代)의 진제(眞諦; 499-569)가 번역했음. 대정장 제32책에 수록되었음. 본서는 여래장의 연기(緣起)의 뜻 및 보살ㆍ범부 등의 발심과 수행의 모양을 천명(闡明)했음. 전서는 모두 5()으로 나뉘어졌음. 1 인연분(因緣分)은 본론을 조립(造立)한 인연을 서술했으니 이는 서분(序分)이 됨. 2 입의분(立義分)ㆍ제3 해석분(解釋分)ㆍ제4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3분은 본론의 정종분(正宗分)이 됨. 입의와 해석 2분은 일심(一心)ㆍ이문(二門)ㆍ삼대(三大)의 이론을 천명했음. 수행신심분은 곧 사신(四信)ㆍ오행(五行)의 실천법문을 설명했음. 이른 바 일심이란 곧 중생심이 되며 또한 여래장(진여)심이 됨. 이른 바 2문이란 곧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을 가리킴. 5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은 본론을 수지(受持)하는 자는 가히 광대한 이익을 얻음을 거시(擧示)하였으며 이것이 본론의 유통분(流通分)이 됨. 본론은 진제의 역본(譯本) 외에 따로 당조(唐朝)의 실차난타가 중역(重譯)2권본(卷本)이 있음. 양종(兩種)의 역본이 대동소이하지만 그러나 진제의 역본이 유행함이 조금 광대함.

禪那; <> dhyana. <> jhana. 혜림음의21. 선나(禪那) 여기에선 이르되 정려(靜慮)니 이르자면 고요한 마음으로 사려함(靜心思慮)이다. 구번(舊翻)의 사유수(思惟修)란 것은 생략하였음이다.

孤山; 절강 항주 서호 서북 모퉁이의 도서(島嶼:; 크고 작은 섬들)에 위치함. 또 명칭이 고서ㆍ영서ㆍ매화서임. 서로 전하기를 당대의 승인이 여기에 고산사를 건립해 있었다 함. 송초에 개칭하여 광화사라 했음. 송 대중상부 9(1016) 천태종 산외파(山外派)의 고산지원(孤山智圓)이 이 땅의 마노원에 유거(幽居)했으며 세칭이 고산지원임.

辟支佛; <> pratyeka-buddha. 또 벽지가(辟支迦)ㆍ패지가(貝支迦)ㆍ벽지(辟支)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연각(緣覺)ㆍ독각(獨覺)이니 2()의 하나가 되며 또 3승의 하나가 됨. 법화경구해. 벽지불(辟支佛) 여기에선 이르되 연각(緣覺)이니 12()을 관하여 입도(入道)를 얻는 연고임. 또 이르되 독각(獨覺)이니 불타가 없는 세상에 출생하여 사장(師匠)을 인하지 않고 사물의 변역(變易)을 관하여 홀로() 능히 각료(覺了).

道俗; 또 승속ㆍ치소(緇素)ㆍ치백(緇白)으로 지음. ()는 불교 혹 불교도를 가리킴.

馴狎; 이르자면 순순(馴順)하여 가히 친근함.

白居易; (772-846) (772-846) 당대의 시인.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ㆍ취음선생(醉吟先生)이며 섬서 하규(下邽; 위남현 동북) 사람이며 유가(儒家) 출신이며 총혜(聰慧)가 타인을 초월했음. 정원 14(798) 진사(進士)에 선발()되었고 원화 2(807)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용되었고 9년 태자좌찬선대부(太子左贊善大夫)에 임용되었는데 상화(賞花) 및 신정(新井)의 시를 지어 세인(世人)의 부화(浮華)와 참녕(讒佞)을 서술하였다가 드디어 강주사마(江州司馬)로 폄강(貶降)됨을 입었음. 후에 또 사문원외랑(司門員外郞)으로 천임(遷任)하였고 회창년 간 형부상서에 임용되었으며 세상을 떠난 후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추봉(追封)되었음. 그의 유편(遺編)에 백씨문집(白氏文集) 75, 백씨육첩사류집(白氏六帖事類集) 30권 등이 있음. 백씨는 중년에 귀불(歸佛)하여 고승을 친근하고 좇아서 정계(淨戒)를 수지(受持)하며 선법(禪法)을 익혔음. 태화 6(832) 낙양의 향산사(香山寺)를 중수(重修)하였으며 아울러 낙양의 불광사(佛光寺) 승려 여만(如滿)과 향화사(香火社)를 결집해 불사를 수행하며 왕생서방(往生西方)을 발원했음. 회창 6년에 서세(逝世)했으니 향년은 75 [불조통기42. 불조역대통재15, 16. 여산지13. 여산고금유기총초. 구당서166. 신당서119].

侍郞; 벼슬 이름. 진한대(秦漢代)에 낭중령(郞中令)의 속관(屬官)이 되어 궁문사(宮門事)를 장악했음. 당대(唐代)에 중서성과 문하성의 장관이 되었으며 후대에 6()의 차관(次官)이 되었음.

恁麽; ()ㆍ저양(這樣; 이 모양)ㆍ여차(如此)니 그와 유사한 용어에 여마ㆍ십마ㆍ습마ㆍ심마ㆍ즘마ㆍ작마 등이 있음.

 

五祖大滿禪師旁出法嗣第一世

北宗神秀禪師者耶舍三藏誌云 艮地生玄旨 通尊媚亦尊 比肩三九族 足下一毛分

開封人也 姓李氏 少親儒業 博綜多聞 俄捨愛出家 尋師訪道 至蘄州雙峯東山寺 遇五祖以坐禪爲務 乃歎伏曰 此眞吾師也 誓心苦節 以樵汲自役 而求其道 祖默識之 深加器重 祖旣示滅 秀遂住江陵當陽山 唐武后聞之 召至都下 於內道場供養 特加欽禮 命於舊山置度門寺 以旌其德 時王公士庶皆望塵拜伏 暨中宗卽位 尤加禮重 大臣張說甞問法要 執弟子禮 師有偈示衆曰 一切佛法 自心本有 將心外求 捨父逃走 神龍二年於東都天宮寺入滅 諡大通禪師 羽儀法物 送殯於龍門 帝送至橋 王公士庶皆至塟所 張說及徵士盧鴻一 各爲碑誄 門人普寂義福等 竝爲朝野所重

北宗; 祖庭事苑五 秀能 慧能居於雙峰曹侯溪 神秀棲于江陵當陽山 同傳五祖之法 盛行天下 竝德行相高 於是道興南北 能爲南宗 秀爲北宗 以居處稱之也

耶舍; 那連耶舍(489-589) 那連提黎耶舍之略 譯言尊稱 又作那連提耶舍 略稱耶舍 隋代僧 北印度烏場國人 姓釋迦 爲刹帝利種 年十七出家 通大小二乘 精於三學 欲禮佛陀聖蹟而周遊諸國 開皇九年八月入寂 世壽百歲 先後譯有十三部七十餘卷經典 [續高僧傳二 法經錄一 開元釋敎錄六]

艮地生玄旨下; 祖庭事苑八 那連耶舍 作讖偈一十三首 授五戒優婆塞萬大懿 其八曰 艮地生玄旨 通尊媚亦尊 比肩三九族 足下一毛分 此讖北宗神秀也 艮地 東北也 神秀於五祖下 別出一枝於北京 通尊 國賜大通之號也 媚亦 秀也 三九 秀下相承 凡一十二人 足下 五祖下也 一毛分 號北宗也

苦節; 儉約過甚 後以堅守節操 矢志不渝爲苦節

器重; 看重 重視

內道場; 又作內寺 指大內之道場 卽設於宮中之佛事修行場所 其始設年代 諸典所說不一 依晉書帝紀第九 東晉孝武帝太元六年(381) 於殿內建精舍 引諸沙門修行佛事 佛祖統紀三十七梁天監十六年(517)條 武帝敕沙門慧超爲壽光殿學士 召衆僧居禁中講論法集 注解經文 其下注云 此爲內道場之始 據大宋僧史略中 內道場起於後魏 至隋煬帝時始有其名 竝謂武則天嘗於洛陽大內置內道場 由上可知 內道場乃東晉以來宮中所設之祠佛場所 北宋初 於滋福等殿安置佛像經藏 稱爲內寺 至南宋則以傳法院專掌內道場之法事 [佛祖歷代通載十一北齊天統元年條 開元釋敎錄九義淨傳 佛祖統紀四十三 續高僧傳十二 大唐貞元續開元釋敎錄上 貞元新定釋敎目錄十三 傳燈錄四 唐書列傳第七十]

王公; 王爵和公爵 泛指顯貴的爵位

士庶; 士人和普通百姓 亦泛指人民 百姓

捨父逃走; 又作捨父逃逝 比喩愚人遠離自己本性 而向外境求佛法 法華經二信解品 譬若有人 年旣幼稚 捨父逃逝 久住他國 或十 二十 至五十歲 年旣長大 加復窮困 馳騁四方以求衣食 漸漸遊行 遇向本國 其父先來 求子不得 中止一城 其家大富 …… 遂到其父所止之城(云云)

羽儀; 易漸 鴻漸於陸 其羽可用爲儀 孔穎達疏 處高而能不以位自累 則其羽可用爲物之儀表 可貴可法也 後因以羽儀 比喩居高位而有才德 被人尊重或堪爲楷模 [百度漢語]

法物; 一古代帝王用於儀仗祭祀的器物 二指佛敎僧團中 爲維持敎理之傳統而使用之財物資財等

送殯; 運送棺柩下葬 出殯時陪送靈柩

徵士; 出征的士兵

碑誄; 碑上敘述死者生前事跡並表示哀悼的文字

 

북종(北宗) 신수선사(神秀禪師)란 자는耶舍三藏誌云하되 艮地에서 玄旨가 나니(艮地生玄旨)/ 通尊이며 亦是 尊이로다/ 比肩三九族이며/ 足下一毛分이로다

개봉(開封; 지금의 河南 개봉) 사람이니 성은 이씨(李氏)며 소년(少年)에 유업(儒業)에 친근했고 박종(博綜; 博通)하고 다문(多聞)했다. 갑자기() 사애(捨愛)하고 출가하여 심사방도(尋師訪道; 스승을 찾고 도를 묻다)했다. 기주(蘄州) 쌍봉(雙峯) 동산사(東山寺)에 이르러 5조를 만나 좌선을 업무(業務)로 삼았다. 이에 탄복(歎伏)하고 가로되 이는 참으로 나의 스승이다. 서심(誓心)으로 고절(苦節)하며 초급(樵汲; 나무하고 물 긷다)으로써 스스로 힘쓰며() 그 도를 구했다. 5조가 묵연히 이를 알고 깊이 기중(器重)을 더했다. 5조가 이미 시멸(示滅)하자 신수가 드디어 강릉(江陵) 당양산(當陽山)에 거주했다. () 무후(武后; 측천무후)가 이를 듣고 불러 도하(都下; 京都)에 이르게 하고 내도량(內道場)에서 공양하면서 특별히 흠례(欽禮)를 더했다. 명령해 구산(舊山)에 도문사(度門寺)를 설치하여 그 덕을 정표(旌表)했으며 당시에 왕공(王公)과 사서(士庶)가 모두 망진(望塵)하고 배복(拜伏)했다. 중종(中宗)이 즉위함에 이르자() 더욱() 예중(禮重)을 더했다. 대신(大臣) 장열(張說)이 일찍이 법요(法要)를 묻고 제자의 예()를 가졌다(). 스님이 게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일체의 불법은/ 자심(自心)에 본래 있다/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구하면/ 아버지를 버리고 도주함이다(捨父逃走). 신룡(神龍) 2(706) 동도(東都) 천궁사(天宮寺)에서 입멸했고 시호를 대통선사(大通禪師)라 했다. 우의(羽儀)가 법물(法物)로 용문(龍門)에 송빈(送殯)했고 황제가 송장(送葬)하여 교량(橋梁)에 이르렀고 왕공(王公)과 사서(士庶)가 모두 장소(塟所)에 이르렀다. 장열(張說) 및 징사(徵士) 노홍일(盧鴻一)이 각자 비뢰(碑誄)를 지었다(). 문인(門人) 보적(普寂)과 의복(義福) 등이 모두() 조야(朝野)의 존중하는 바가 되었다.

北宗; 조정사원5. 수능(秀能) 혜능은 쌍봉 조후계(曹侯溪)에 거주했고 신수는 강릉 당양산에 살았다(). 한가지로 5조의 법을 전해 천하에 성행했으며 아울러 덕행이 서로 높았다. 이에 도가 남북에 흥성했으며 혜능은 남종(南宗)이 되고 신수는 북종(北宗)이 되었으니 거처로써 그것을 일컬음이다.

耶舍; 나련야사(那連耶舍; 489-589)니 나련제리야사(那連提黎耶舍; Narendrayaśas)의 약칭이니 번역해 말하면 존칭임. 또 나련제야사로 지으며 약칭이 야사임. 수대승(隋代僧)이며 북인도 오장국(烏場國) 사람. 성은 석가며 찰제리종이 됨. 나이 17에 출가하여 대ㆍ소 2승을 통달했으며 3()에 정통했음. 불타의 성적(聖蹟)을 첨례하려고 제국을 주유(周遊)했으며 개황 98월에 입적했음. 세수는 100. 선후의 번역에 1370여 권의 경전이 있음 [속고승전2. 법경록1. 개원석교록6].

艮地生玄旨下; 조정사원8 나련야사(那連耶舍) 참게(讖偈) 13()를 지어 오계우바새(五戒優婆塞) 만대의(萬大懿)에게 주었다. 8에 가로되 간지(艮地)에서 현지(玄旨)가 나니/ 통존(通尊)이며 미()도 역시 존()이로다/ 비견(比肩)이 삼구족(三九族)이며/ 족하(足下)의 일모분(一毛分)이로다. 이것은 북종(北宗) 신수(神秀)를 참()했다. 간지(艮地; 은 괘이름)는 동북(東北)이니 신수는 오조(五祖) 아래이며 북경(北京)에서 일지(一枝)가 별출(別出)했다. 통존(通尊)은 나라에서 대통(大通)의 호()를 주었다. 미적(媚亦)은 수()이다. 삼구(三九)는 수하(秀下)에서 상승(相承)한 게 무릇 12인이다. 족하(足下)는 오조하(五祖下)이다. 일모분(一毛分)은 호가 북종(北宗)이다.

苦節; 검약(儉約)이 과심(過甚). 후에 절조(節操)를 견수(堅守)하고 시지(矢志; 뜻을 세우다)가 변하지() 않음을 고절(苦節)로 삼았음.

器重; 간중(看重). 중시(重視).

內道場; 또 내사(內寺)로 지음. 대내(大內)의 도량을 가리킴. 곧 궁중의 불사와 수행을 베푸는 장소임. 그 처음 설치한 연대는 제전(諸典)에서 설하는 바가 동일하지 않음. 진서(晉書) 제기(帝紀) 9에 의하자면 동진 효무제 태원 6(381) 전내(殿內)에 정사를 건립하고 여러 사문의 수행불사를 이끌었다 하였음. 불조통기37 양 천감 13(517)조 무제가 칙명하여 사문 혜초를 수광전학사(壽光殿學士)로 삼고 중승을 불러 금중에 거주하면서 법집(法集)을 강론하고 경문을 주해했다 했으며 그 아래 주에 이르되 이것이 내도량(內道場)의 시작이다 했음. 대송승사략중에 의거하자면 내도량은 후위(後魏)에서 일어나 수양제 때 이르러 비로소 그 이름이 있었다. 아울러 이르기를 무측천(武則天)이 일찍이 낙양 대내에 내도량을 설치했다 했음. 이상으로 말미암아 가히 아나니 내도량은 곧 동진 이래 궁중에 설치한 바의 사불(祠佛)의 장소임. 북송 초 자복(滋福) 등의 전(殿)에 불상과 경장(經藏)을 안치하고 일컬어 내사(內寺)라 했으며 남송에 이르러선 곧 전법원이 내도량의 법사(法事)를 전장(專掌)했음 [불조역대통재11북제천통원년조. 개원석교록9의정전. 불조통기43. 속고승전12. 대당정원속개원석교록상. 정원신정석교목록13. 전등록4. 당서열전제70].

王公; 왕작(王爵)과 공작(公爵)이니 널리 현귀(顯貴)의 작위(爵位)를 가리킴.

士庶; 사인(士人; 선비. 지식인)과 보통 백성. 또 널리 인민ㆍ백성을 가리킴.

捨父逃走; 또 사부도서(捨父逃逝)로 지음.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의 본성을 멀리 여의고 바깥 경계를 향해 불법을 구함에 비유함. 법화경2 신해품.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나이가 이미 어릴(幼稚) 적에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서(捨父逃逝) 오래 다른 나라에 거주했다. 10, 20, 50세에 이르러 나이가 이미 장대했고 더하여 다시 궁곤했다. 사방으로 치빙(馳騁)하며 의식(衣食)을 구하면서 점점 유행하다가 본국으로 향함을 만났다. 그 아버지가 먼저 와서 아들을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도중에 한 성에 머물렀다. 그 집은 큰 부자였다 …… 드디어 그 아버지가 머무는 바의 성에 이르렀다 (운운).

羽儀; 역 점() 기러기가 점차 육지로 날아간다. 그 깃은 의식에 가용(可用)하리라. 공영달 소() 고위(高位)에 처해도 능히 지위로 스스로 누가 되지 않으니 곧 그 깃은 사람의 의표(儀表)로 가용(可用)하다. 가히 귀하고 가히 본받을 만하다. 후에 인하여 우의(羽儀)로 고위에 거처하면서 재덕(才德)이 있고 사람의 존중을 입거나 혹 가히 해모(楷模)가 될 만함에 비유했음 [백도한어].

法物; 1. 고대 제왕이 의장(儀仗)이나 제사에 쓰는 기물(器物). 2. 불교 승단(僧團) 중에서 교리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물과 자재(資財) 등을 가리킴.

送殯; 관구(棺柩)를 운송(運送)하여 하장(下葬). 출빈(出殯)할 때 영구(靈柩)를 배송(陪送).

徵士; 출정(出征)하는 사병(士兵).

碑誄; 비상(碑上)에 사자(死者)의 생전의 사적(事跡)을 기술(記述)하고 아울러 애도(哀悼)를 표시하는 문자.

 

嵩嶽慧安國師耶舍三藏誌云 九女出人倫 八女絕婚姻 朽牀添六脚 心祖衆中尊

荊州枝江人也 姓衛氏 隋開皇十七年括天下私度僧尼 勘師師曰 本無名 遂遁于山谷 大業中 大發丁夫開通濟渠 饑殍相枕 師乞食以救之 獲濟者衆 煬帝徵師 不赴潛入大和山 暨帝幸江都 海內擾攘 乃杖錫登衡嶽 行頭陀行 唐貞觀中 至黃梅謁忍祖 遂得心要 麟德元年遊終南山石壁 因止焉 高宗甞召 師不奉詔 於是徧歷名迹 至嵩少云 是吾終焉之地也 自爾禪者輻湊 有坦然懷讓二僧來參問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何不問自己意 曰 如何是自己意 師曰 當觀密作用 曰 如何是密作用 師以目開合示之 然於言下知歸 讓乃卽謁曹溪 武后徵至輦下 待以師禮 與秀禪師同加欽重 后甞問師 甲子多少 師曰 不記 后曰 何不記邪 師曰 生死之身 其若循環 環無起盡 焉用記爲 況此心流注 中間無間 見漚起滅者 乃妄想耳 從初識至動相滅時 亦只如此 何年月而可記乎 后聞稽顙信受 神龍二年中宗賜紫袈裟 度弟子二七人 仍延入禁中供養三年 又賜摩衲 辭歸嵩嶽 是年三月三日 囑門人曰 吾死已 將屍向林中 待野火焚之 俄爾萬回公來見師 猖狂握手言論 傍侍傾耳 都不體會 至八日 閉戶偃身而寂 春秋一百二十八隋開皇二年壬寅生 唐景龍三年己酉滅 時稱老安國師 門人遵旨 舁置林間 果野火自然闍維 得舍利八十粒 內五粒色紫 留於宮中 至先天二年門人建浮圖焉

九女出人倫下; 祖庭事苑八 那連耶舍 作讖偈一十三首 授五戒優婆塞萬大懿 其十一 九女出人倫 八箇絕婚姻 朽牀添六脚 心祖衆中尊 此讖嵩山老安和上 九女 少室也 嵩少安所居也 八女 爲安字 朽牀 老安也 六脚 安之甚也 衆中尊 則天禮安爲國師也

私度; 未經官許 私自剃髮爲僧者

丁夫; 壯健的男子 唐代丁謂正役 夫謂雜徭 後泛指服力役的人夫 [百度漢語]

濟渠; 通濟渠(唐宋時期稱作汴河 汴水) 始建於隋朝 是隋唐大運河的首期工程 連接黃河與淮河 [百度百科]

嵩少; 祖庭事苑六 嵩少 嵩 高 總名也 其山東爲太室 西爲少室 故曰二室 五嶽之中也 嵩高維嶽 峻極于天(此二句出大雅蕩之什崧高)是也

禪者; 對禪宗參禪者的稱呼 又稱禪人

輻湊; 形容人或物聚集像車輻集中於車轂一樣 也作輻輳

輦下; 天子車駕附近 指京師

甲子; 一卽年歲 年紀 二六十甲子之第一 此指一

稽顙; 下首拜也 顙 額也 謂顙至地 周禮太祝之官禮有九焉 一稽首 卽久稽留停 頭至地也 二曰頓首 謂平敵如諸侯相拜 卽以頭向下虛搖拜也 三空首 君答臣下一拜 卽以頭至手 四振動 敬重之 戰慄動變拜也 五吉拜 謂稽顙齊縗不杖以下 吉者 殷之凶拜也 卽先作稽首 後作稽顙 卽額觸地 六凶拜 謂稽顙而後頓首 三年服者也 七奇拜 謂稽首先屈一膝 卽今雅拜 八襃拜 謂報拜 卽再拜也 或持節之拜 九肅拜 謂但仰首以手揖之 今之揖讓是也 [祖庭事苑二]

萬回; (632-711) 唐代僧 河南閿鄕人 俗姓張 其兄戍安西(一云遼陽) 久無消息 父母憂思 萬迴每朝往視之 暮持兄書返家 鄕人異之 因號萬迴 高宗時 得度爲僧 武后詔入內道場 賜錦衣 號法雲公 安樂公主將謀逆 萬迴遇之 望塵呼曰 腥腥不可近也 未幾 安樂公主果因謀反受誅 玄宗在藩 曾私謁萬迴 萬迴拊其背曰 五十年太平天子 其神異大多類此 景雲二年 忽求閿鄕河水 飮畢而逝 壽八十 追贈司徒虢國公 [傳燈錄二十七 宋高僧傳十八 神僧傳七 太平廣記異僧類]

 

숭악(嵩嶽) 혜안국사(慧安國師)耶舍三藏誌云하되 九女人倫超出하여(九女出人倫)/ 婚姻을 끊었다/ 六脚을 더하니/ 心祖로서 衆中尊貴하다

형주(荊州) 지강(枝江) 사람이며 성은 위씨(衛氏). () 개황(開皇) 17(597) 천하의 사도(私度) 승니(僧尼)를 총괄(總括)하면서 스님을 감험(勘驗)하자 사왈(師曰) 본래 이름이 없다. 드디어 산곡(山谷)에 은둔(隱遁)했다. 대업(大業; 605-616) 중 정부(丁夫)를 크게 징발(徵發)하여 제거(濟渠)를 개통하자 기부(饑殍; 餓死者)가 서로 베개 베었다(). 스님이 걸식해 그들을 구제했고 구제를 획득한 자가 많았다(). 양제(煬帝)가 스님을 불렀으나 다다르지 않고 태화산(大和山)에 잠입(潛入)했다. 양제가 강도(江都)에 거둥함()에 이르러() 해내(海內)가 요양(擾攘; 紛亂)했다. 이에 석장(錫杖)을 짚고() 형악(衡嶽)에 올라 두타행(頭陀行)을 행했다. () 정관(貞觀; 627-649) 중 황매(黃梅)에 이르러 인조(忍祖; 弘忍祖師)를 참알했고 드디어 심요(心要)를 얻었다. 인덕(麟德) 원년(元年; 664) 종남산(終南山) 석벽(石壁)을 유람하다가 인하여 머물렀다(). 고종(高宗)이 일찍이 스님을 불렀으나() 스님이 조령(詔令)을 받들지 않았고 이에 명적(名迹; 名勝古迹)을 편력(徧歷)하다가 숭소(嵩少)에 이르러 이르되 이는 내가 마칠 땅이다. 이로부터(自爾) 선자(禪者)가 복주(輻湊)했다.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2()이 있어 내참(來參)하여 문왈(問曰)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왜 자기의 뜻을 묻지 않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자기의 뜻입니까. 사왈 마땅히 비밀스런 작용을 관찰하라. 가로되 무엇이 이 비밀스런 작용입니까. 스님이 눈을 뜨고 감아 그것을 보였다. 탄연은 언하에 귀처(歸處; )를 알았고 회양은 이에 곧 조계(曹谿)를 참알했다. 무후(武后; 측천무후)가 불러() 연하(輦下)에 이르렀고 스승의 예절로 접대(接待)했으며 신수선사(神秀禪師)와 더불어 한가지로 흠중(欽重)을 더했다. 무후(武后)가 일찍이 스님에게 묻되 갑자(甲子)가 얼마입니까(多少). 사왈 기억하지 못합니다. 무후가 가로되 왜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사왈 생사(生死)하는 몸은 그것이 순환(循環)함과 같나니 환()은 기진(起盡)이 없거늘 어찌() 기억함을 쓰겠습니까. 하물며 이 마음은 유주(流注)하면서 중간(中間)에 사이()가 없거늘 물거품()의 기멸(起滅)을 보는 것은 곧() 망상일 뿐입니다. 초식(初識)으로 좇아 동상(動相)에 이르기까지 멸()할 때 또한 다만 이와 같거늘 무슨 연월(年月)을 가히 기억하겠습니까. 무후가 듣고서 계상(稽顙)하고 신수(信受)했다. 신룡(神龍) 2(706) 중종(中宗)이 자가사(紫袈裟)를 주고() 제자 이칠인(二七人; 14)을 득도(得度)시키고 인하여() 금중(禁中)에 연입(延入)하여 3년 동안 공양했고 또 마납(摩衲)을 주었다. 고별하고 숭악으로 돌아왔다(辭歸嵩嶽). 이 해 33일 문인(門人)에게 부촉(付囑)해 가로되 내가 죽고 나면 시체를 가져다 숲 속을 향하게 하고 야화(野火)가 그것을 태움을 기다려라. 갑자기(俄爾) 만회공(萬回)이 와서 스님을 상견했고 창광(猖狂; 미친 것 같이 사납게 날뜀)하며 악수(握手)하고 언론(言論)했는데 곁의 시승(侍僧)이 귀를 기울였으나 도무지 체회(體會; 理解)하지 못했다. 8일에 이르러 폐호(閉戶)하고 몸을 눕이더니 적(; 입적)했다. 춘추는 128이다隋 開皇二年 壬寅(582)했고 唐 景龍三年 己酉(709)했다. 당시에 老安國師로 일컬었다. 문인들이 의지(意旨)를 준수해 마주들어() 임간(林間)에 방치했는데 과연 야화(野火)가 자연히 사유(闍維)했다. 사리 80알을 얻었는데 안의 5알은 색이 홍자(紅紫)였고 궁중에 머물렀다가 선천(先天) 2(713)에 이르러 문인이 부도(浮圖; )를 세웠다.

九女出人倫下; 조정사원8 나련야사(那連耶舍) 참게(讖偈) 13()를 지어 오계우바새(五戒優婆塞) 만대의(萬大懿)에게 주었다. 11 구녀(九女)가 인륜(人倫)을 초출(超出)하여/ 팔개(八箇; 위에 八女로 지었음)가 혼인(婚姻)을 끊었다/ 후상(朽床)에 육각(六脚)을 더하니/ 심조(心祖)로서 중중(衆中)에 존귀(尊貴)하다. 이것은 숭산(嵩山) 노안화상(老安和上; 慧安國師)을 참()했다. 구녀(九女)는 소실(少室)이니 숭소(嵩少)는 안()이 거주했던 곳이다. 팔녀(八女)는 안자(安字)가 된다. 후상(朽床)은 노안(老安)이며 육각(六脚)은 안정(安定)의 심()함이다. 중중존(衆中尊)은 측천(則天)이 안()에게 예배하고 국사로 삼았다.

私度; 관허(官許)를 거치지 않고 사사로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것.

丁夫; 장건(壯健)한 남자. 당대(唐代) ()은 정역(正役)을 말했고 부()는 잡요()를 말했음. 후에 널리 역역(力役)에 복역(服役)하는 인부(人夫)를 가리켰음 [백도한어].

濟渠; 통제거(通濟渠; 唐宋時期 일컬어 汴河汴水로 지었음)니 수조(隋朝)에서 처음 건립했음. 이는 수당(隋唐) 대운하(大運河)의 수기(首期; 初期) 공정(工程)이니 황하(黃河)와 회하(淮河)를 연접(連接)했음 [백도백과].

嵩少; 조정사원6. 숭소(嵩少) ()은 고()니 총명(總名). 그 산은 동쪽이 태실산(太室山)이 되고 서쪽이 소실산(少室山)이 되므로 고로 가로되 2()이며 5()의 가운데임. 숭고(嵩高)는 유악(維嶽; 는 발어사)이라 우뚝 높아 하늘에 이른다()(2구는 大雅 蕩之什 숭고에 나옴) 한 게 이것임.

禪者; 선종 참선자에 대한 칭호. 또 선인(禪人)으로 호칭함.

輻湊; 사람이나 혹 물건의 취집(聚集)한 형상이 수레의 바퀴살이 수레의 바퀴통에 집중함과 한 모양임을 형용함. 또 복주(輻輳)로 지음.

輦下; 천자의 거가(車駕) 부근. 경사(京師)를 가리킴.

甲子; 1. 곧 연세. 연기(年紀; 나이). 2. 60갑자의 첫째.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稽顙; 머리를 숙이는 배례(拜禮). ()은 이마니 이르자면 이마가 땅에 이름임. 주례 태축지관(太祝之官; 大祝이니 의 벼슬 이름. 의 제사를 맡아 보았음) ()에 아홉이 있다. 1은 계수(稽首). 곧 오래 숙이어 유정(留停; 정류)해 머리가 땅에 이름이다. 2는 가로되 돈수(頓首). 이르자면 평적(平敵; 평등히 상대)함이 마치 제후가 서로 배례함과 같나니 곧 머리를 아래로 향해 겉치레로 흔들며 하는 배례이다. 3은 공수(空首). 군주가 신하에게 1배로 답함이니 곧 머리로써 손에 이름이다. 4는 진동이다. 경중(敬重)하여 전율하면서 동변(動變)하는 배례이다. 5는 길배(吉拜). 이르자면 계상(稽顙)이며 자최(齊縗; 喪服 五等의 한 가지. 삼베로 만들어 바지를 꿰매 붙인 것)와 부장(不杖; 五服의 하나. 부모가 생존 시 아내에 대한 복 따위. 1년만 입음) 이하이다. ()이란 것은 은()의 흉배(凶拜). 곧 먼저 계수(稽首)를 짓고 뒤에 계상(稽顙)을 지음이니 곧 이마가 땅에 닿음이다. 6은 흉배(凶拜). 이르자면 계상(稽顙)한 이후에 돈수(頓首; 은 조아릴 돈)함이니 3년 복자(服者). 7은 기배(奇拜). 이르자면 계수하고 먼저 한 무릎을 굽힘이니 곧 금시의 아배(雅拜)이다. 8은 포배(襃拜). 이르자면 보배(報拜)며 곧 재배니 혹은 부절(符節)을 가지는 배례이다. 9는 숙배(肅拜). 이르자면 다만 앙수(仰首)하고 손으로써 읍()함이니 지금의 읍양(揖讓)이 이것이다 [조정사원2].

萬回; (632-711) 당대승. 하남 문향(閿鄕) 사람이며 속성은 장. 그의 형이 안서(安西; 한편으론 이르기를 遼陽)에서 수자리()하면서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부모가 우사(憂思; 걱정)했음. 만회가 매번 아침에 가서 그를 보고 저녁에 형의 서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자 고향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겼으며 인하여 호를 만회(萬迴)라 했음. 고종 때 득도(得度)하여 승려가 되었음. 무후가 불러 내도량에 들게 하고 비단옷을 주고 호를 법운공(法雲公)이라 했음. 안락공주(安樂公主)가 장차 모역(謀逆)하려고 하였는데 만회가 그를 만나자 티끌을 바라보고 불러 가로되 성성(腥腥; 아주 비리다)하여 가히 가까이 하지 못하겠다. 얼마 안되어 안락공주가 과연 모반으로 인해 죽임을 받았음. 현종이 변방에 있을 적에 일찍이 만회를 사적으로 예알했는데 만회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가로되 50년 동안의 태평천자(太平天子). 그의 신이(神異)는 매우 많이 이와 유사했음. 경운 2년 홀연히 문향(閿鄕)의 냇물을 요구하였고 마시기를 마치자 떠났음. 나이 80. 추증(追贈)하여 사도괵국공(司徒虢國公)이라 했음 [전등록27. 송고승전18. 신승전7. 태평광기이승류].

 

袁州蒙山道明禪師者

鄱陽人 陳宣帝之裔也 國亡落於民間 以其王孫 甞受署 因有將軍之號 少於永昌寺出家 慕道頗切 往依五祖法會 極意姸尋 初無解悟 及聞五祖密付衣法與盧行者 卽率同志數十人 躡迹追逐 至大庾嶺 師最先見 餘輩未及 盧見師奔至 卽擲衣鉢於磐石曰 此衣表信 可力爭邪 任君將去 師遂擧之 如山不動 踟蹰悚慄 乃曰 我來求法 非爲衣也 願行者開示於我 盧曰 不思善不思惡 正恁麽時 阿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師當下大悟 徧體汗流 泣禮數拜 問曰 上來密語密意外 還更別有意旨否 盧曰 我今與汝說者 卽非密也 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却在汝邊 師曰 某甲雖在黃梅隨衆 實未省自己面目 今蒙指授入處 如人飮水冷暖自知 今行者卽是某甲師也 盧曰 汝若如是 則吾與汝同師黃梅 善自護持 師又問 某甲向後宜往何所 盧曰 逢袁可止 遇蒙卽居 師禮謝 遽回至嶺下 謂衆人曰 向陟崔嵬 遠望杳無蹤迹 當別道尋之 皆以爲然 師旣回 遂獨往廬山布水臺 經三載後 始往袁州蒙山 大唱玄化 初名慧明 以避六祖上字 故名道明 弟子等盡遣過嶺南 參禮六祖

袁州; 今江西省北西部宜春縣的古稱 袁州北七十里 有楊岐方會的道場楊岐山普通禪院 南六十里有仰山慧寂所創的太平興國寺

大庾嶺; 爲通往嶺南的五條要道之一 位於江西大庾縣南 廣東南雄縣北 古稱塞上 漢武帝遣庾勝兄弟征伐南越 庾勝據守此嶺 遂稱大庾 又稱庾嶺 臺嶺山

踟躇; 一形容慢慢的走 同躑躅 二徘徊不前的樣子 緩行的樣子

本來面目; 又作本地風光 卽身心自然脫落 而現前之人人本具之心性 與顯敎之本覺 密敎之本初 意義相同

 

원주(袁州) 몽산(蒙山) 도명선사(道明禪師)란 자는

파양(鄱陽) 사람이며 진선제(陳宣帝)의 예손(裔孫; 遠代子孫)이다. 나라가 망하자 민간(民間)에 떨어졌고 그가 왕손(王孫)이기 때문에 일찍이 벼슬()을 받았고 인하여 장군이란 호가 있었다. 소년(少年)에 영창사(永昌寺)에서 출가했고 모도(慕道)함이 자못 간절했다. 5조 법회에 가서 의지하며 극의(極意)로 연심(姸尋; 연구하며 探索)했으나 처음엔 해오(解悟)가 없었다. 5조가 의법(衣法)을 몰래 부촉해 노행자(盧行者)에게 주었다 함을 듣고 곧 동지(同志)의 수십 인을 인솔하여 자취를 밟아 추축(追逐)하다가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스님이 가장 먼저 보았고 나머지 무리는 미치지 못했다. ()가 스님이 분지(奔至)함을 보자 곧 의발(衣鉢)을 반석(盤石)에 던지고 가로되 이 옷은 표신(表信)이거늘 가히 힘으로 다투겠는가. 그대가 가져 가는 대로 일임한다. 스님이 드디어 그것을 들었더니 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저(踟躇)하며 송률(悚慄; 매우 두려움)하여 이에 가로되 내가 온 것은 구법(求法)함이지 옷 때문이 아닙니다. 원컨대 행자는 나에게 개시(開示)하십시오. 노왈(盧曰)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아라., 바로 이러한 때 어느 것(阿那箇)이 이 명상좌(明上坐)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스님이 당하(當下; 즉시)에 대오(大悟)하고 온몸(徧體)에 땀을 흘렸다. 읍례(泣禮)하며 몇 번 예배했다. 문왈(問曰) 상래(上來; 방금. 以上)의 밀어밀의(密語密意) 밖에 도리어 다시 의지(意旨)가 달리 있습니까. 노왈(盧曰) 내가 지금 너에게 설해 준 것은 곧 비밀이 아니다. 네가 만약 자기의 면목을 반조(返照)하면 비밀은 도리어 너의 가에 있다. 사왈(師曰) 모갑이 비록 황매(黃梅)에 있으면서 수중(隨衆)했으나 실로 자기의 면목을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입처(入處)를 가리켜 주심을 입으니 사람이 물을 마시매 냉난(冷暖)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는 즉시(卽是) 모갑의 스승입니다. 노왈(盧曰) 네가 만약 이와 같다면 곧 이 나와 네가 황매를 동사(同師)하리니 잘 스스로 호지(護持)하라. 스님이 또 묻되 모갑이 향후에 의당 어느 곳으로 가야 합니까. 노왈(盧曰) ()을 만나면 가히 멈추고 몽()을 만나면 곧 거주하라. 스님이 예사(禮謝)하고 급히() 돌아가 영하(嶺下)에 이르러 중인(衆人)에게 일러 가로되 최외(崔嵬)를 향해 올라() 멀리 바라보니 아득해() 종적이 없었다. 마땅히 다른 길에서 그를 찾아야 한다. 모두 그러히 여겼다. 스님이 이미 돌아가자 드디어 홀로 여산(廬山) 포수대(布水臺)에 가서 3()를 경과했고 후에 비로소 원주(袁州) 몽산(蒙山)에 가서 현화(玄化)를 대창(大唱)했다. 처음 이름은 혜명(慧明)이었으나 조사의 상자(上字)를 피한지라 고로 이름해 도명(道明)이라 했다. 제자 등을 다 보내어 영남(嶺南)에 이르러() 6조를 참례하게 했다.

袁州; 지금의 강서성 북서부 의춘현의 옛 명칭. 원주 북쪽 70리에 양기방회의 도량 양기산 보통선원이 있고 남쪽 60리에 앙산혜적이 창건한 바의 태평흥국사가 있음.

大庾嶺; 영남으로 통왕(通往)하는 다섯 줄기의 요됴(要道)의 하나가 됨. 강서성 대유현 남쪽과 광동성 남웅현 북쪽에 위치함. 옛 호칭은 세상(塞上)이었음. 한무제가 유승(庾勝) 형제를 파견하여 남월(南越)을 정벌했는데 유승이 이 고개에 기대어 지켰으므로 드디어 대유(大庾)라고 일컬었음. 또 호칭이 유령(庾嶺)ㆍ대령산임.

踟躇; 1. 느릿느릿(慢慢) 감을 형용함. 척촉(躑躅)과 같음. 2. 배회(徘徊)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양자(樣子; 形狀). 완행(緩行)하는 양자.

本來面目; 또 본지풍광으로 지음. 곧 몸과 마음이 자연히 탈락하고 현전의 사람마다 본래 갖춘 심성이니 현교(顯敎)의 본각, 밀교의 본초(本初)와 의의가 서로 같음.

 

五祖下二世旁出

北宗秀禪師法嗣

五臺山巨方禪師

安陸人也 姓曹氏 幼稟業於明福院朗禪師 初講經論 後參禪會 及造北宗 秀問曰 白雲散處如何 師曰 不昧 秀又問 到此間後如何 師曰 正見一枝生五葉 秀默許之 入室侍對 應機無爽 尋至上黨寒嶺居焉 數歲之間 衆盈千數 後於五臺山闡化二十餘年示寂 塔于本山

五臺山; 位於山西五臺縣東北 與峨眉山 普陀山 九華山 合稱爲中國佛敎四大靈山 以東西南北中五峰聳立 山頂無林木 壘土如臺 故稱五臺山 又以五巒巍然 拔乎群山 盛夏仍不知炎暑 故別號淸涼山 爲古來文殊菩薩示現之道場 五臺之外 稱臺外 五臺之內稱臺內 以臺懷鎭爲中心 山中寺廟林立 北魏時建有佛寺 北齊時擴建寺院二百餘所 唐開元(713-741)以後 佛敎發展處于極盛時期 寺院多達三百餘所 五臺山有顯通寺 塔院寺 文殊寺 羅睺寺等禪寺 歷代禪宗高僧也有許多曾在五臺山活動 如晩唐著名禪僧趙州從諗 曾九次行脚五臺

入室; 一乃進入師家室中 親受法門而嗣法之意 二學人進入師家之室 參學問道 稱爲入室 此指二

闡化; 弘揚道法 進行敎化

 

오대산(五臺山) 거방선사(巨方禪師)

안륙(安陸) 사람이며 성이 조씨(曹氏). 유년(幼年)에 명복원(明福院) 낭선사(朗禪師)에게서 품업(稟業; 受業)했다. 처음엔 경론을 강설했고 후에 선회(禪會; 禪宗 法會)에 참여(參與)했다. 북종(北宗)으로 나아감에 이르러 신수(神秀)가 문왈(問曰) 백운이 흩어진 곳은 어떠한가. 사왈(師曰) ()하지 않습니다. 신수가 또 묻되 차간(此間)에 이른 후 어떠한가. 사왈 바로() 1()5()이 생겨남을 봅니다. 신수가 묵연히 허가(許可)했다. 입실(入室)하여 시대(侍對)하면서 응기(應機)가 어긋남()이 없었다. 이윽고 상당(上黨) 한령(寒嶺)에 이르러 거주했는데 몇 해 사이에 대중이 천수(千數)를 채웠다(). 후에 오대산에서 20여 년 천화(闡化)하고 시적(示寂)했다. 본산에 탑을 세웠다().

五臺山; 산서 오대현 동북에 위치함. 아미산ㆍ보타산ㆍ구화산과 합칭하여 중국불교 4대 영산(靈山)으로 삼음. 동ㆍ서ㆍ남ㆍ북ㆍ중 5봉이 용립(聳立)했고 산정에 임목(林木)이 없으며 흙이 쌓여 대()와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오대산(五臺山). 또 다섯 봉우리가 외연(巍然; 우뚝한 모양)하여 뭇 산보다 빼어나며 성하(盛夏)에도 그대로 염서(炎暑)를 알지 못하는지라 고로 별호가 청량산(淸涼山). 고래로 문수보살이 시현하는 도량이 됨. 오대의 밖은 호칭이 대외(臺外)며 오대의 안은 호칭이 대내(臺內)니 대회진(臺懷鎭)을 중심으로 삼음. 산중에 사묘(寺廟)가 숲처럼 건립되었으며 북위 때 불사(佛寺)를 건립해 있었고 북제(北齊) 때 사원 2백 여 곳을 확건(擴建)했음. 당 개원(713-741) 이후 불교가 발전하여 극히 성한 시기에 처했는데 사원이 많을 적엔 300여 곳에 달했음. 오대산에 현통사ㆍ탑원사ㆍ문수사ㆍ라후사(羅睺寺) 등의 선사(禪寺)가 있으며 역대 선종 고승도 허다하게 일찍이 오대산에 있으면서 활동함이 있었으니 예컨대() 만당(晩唐)의 저명한 선승 조주종심이 일찍이 아홉 차례 오대산에 행각했음.

入室; 1.곧 사가(師家)의 실중(室中)에 진입하여 법문을 친히 받고 사법(嗣法)함의 뜻. 2. 학인이 사가(師家)의 방에 들어가 참학하고 문도(問道)함을 일컬어 입실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闡化; 도법(道法)을 홍양(弘揚)하고 교화를 진행함.

 

河中府中條山智封禪師

姓吳氏 初習唯識論 滯于名相 爲知識所詰 乃發憤罷講 遊方見秀禪師 疑心頓釋 乃辭去居于蒲津安峯 不下山十年 木食㵎飮 州牧衛文昇建安國院居之 緇素歸依 憧憧不絕 使君問曰 某今日後如何 師曰 日從濛汜出 照樹全無影 使君初不能諭 拱揖而退 少選開曉 釋然自得 師來往中條山二十餘年 得其道者不可勝紀 滅後門人於州城北建塔焉

河中府; 今山西省永濟縣蒲州鎭 唐開元八年(720) 開蒲州升爲府 因位於黃河中流而得名河中府 [百度百科]

唯識論; 有二本 一爲成唯識論之異稱 十卷 收於大正藏第三十一冊 護法等菩薩造 唐玄奘譯 本論乃於注解世親菩薩之唯識三十頌的十大論師著作中 以護法之釋爲主 取捨其他九論師之釋 糅合而編纂成一新論著 一爲唯識二十論之略名 有三譯 一後魏瞿曇般若流支(又作菩提流支)譯 一卷 單題曰唯識論 或題曰楞伽經唯識論 二陳眞諦譯 一卷 題曰大乘唯識論 三唐玄奘譯 一卷 題曰唯識二十論 收於大正藏第三十一冊

知識; 朋友之異名 如云知人 我知其心識其貌之人也 又我所知之人也 非多知博識之義 諸經之初有 皆是大阿羅漢 衆所知識 卽就爲人所知而云 其人善 爲善友善知識 惡則爲惡友惡知識 說法引導我於善處者是善友 故曰善知識 又單云知識

木食; 謂住山中修苦行者 絶食五穀 唯噉果實

州牧; 官名 古代指一州之長 淸代知州也稱州牧 官階甚低 與知縣並稱牧令 [百度漢語]

憧憧; 來往不絶貌

使君; 對州郡最高官員的尊稱 祖庭事苑四 使君 東漢 寇恂傳注 使君 君 尊之稱也

濛汜; 一古稱日落之處 二喻人垂暮之年

拱揖; 拱手作揖以示敬意

 

하중부(河中府) 중조산(中條山) 지봉선사(智封禪師)

성이 오씨(吳氏). 처음엔 유식론(唯識論)을 학습하면서 명상(名相)에 체재(滯在)했다. 지식(知識)이 힐책(詰責)하는 바가 되자 이에 발분(發憤)하여 파강(罷講)하고 유방(遊方)하다가 신수(神秀) 선사를 배견(拜見)하고 의심이 문득 풀렸다. 이에 고별하고 떠나 포진(蒲津) 안봉(安峯)에 거주하며 10년 동안 하산하지 않고 목식간음(木食㵎飮)했다. 주목(州牧) 위문승(衛文昇) 안국원(安國院)을 건립해 거주케 했다. 치소(緇素)가 귀의했고 동동(憧憧) 끊어지지 않았다. 사군(使君)이 문왈(問曰) ()의 금일 후는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해가 몽사(濛汜)로부터 나와 나무를 비추매 전혀 그림자가 없습니다. 사군이 처음엔 능히 깨닫지() 못하고 공읍(拱揖)하고 물러났다. 소선(少選; 잠시 후)에 개효(開曉; 열리어 깨닫다)하고 석연(釋然)히 자득(自得)했다. 스님이 중조산에 내왕한 지 20여 년이었고 그 도를 얻은 자는 가히 다() 기록()하지 못한다. 멸후(滅後)에 문인이 주성(州城) 북쪽에 건탑(建塔)했다.

河中府;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 포주진이니 당 개원 8(720) 개포주를 승격시켜 부()로 삼았음. 황하 중류에 위치함으로 인해 하중부란 이름을 얻었음 [백도백과].

唯識論; 2본이 있음. 하나는 성유식론(成唯識論)의 이칭(異稱)이 되며 10권이며 대정장 제31책에 수록되었음. 호법(護法) 등의 보살이 짓고 당() 현장(玄奘)이 역()했음. 본론(本論)은 곧 세친보살(世親菩薩)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주해(注解)한 십대논사(十大論師)의 저작 중에 호법의 주석을 위주(爲主)로 하여 기타 9논사(論師)의 주석을 취사(取捨)하여 섞어 합해서 편찬해 하나의 새로운 논저(論著)를 이룬 것임. 하나는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의 약명(略名)이 되며 3()이 있음. 1. 후위(後魏) 구담반야류지(瞿曇般若流支; 菩提流支로 지음)가 역()했으며 1권이며 단제(單題)로 가로되 유식론(唯識論)이며 혹은 제목해 가로되 릉가경유식론(楞伽經唯識論). 2. () 진제(眞諦)가 역()했으며 1권이며 제목해 가로되 대승유식론(大乘唯識論). 3. () 현장(玄奘)이 역()했으며 1권이며 제목해 가로되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 대정장 제31책에 수록되었음.

知識; 붕우의 다른 이름이니 지인(知人)이라고 말함과 같음. 내가 그의 심식과 그의 형모(形貌)를 앎임. 또 내가 아는 바의 사람이니 다지박식(多知博識)의 뜻이 아님. 여러 경의 처음에 있는, 모두 이는 대아라한이며 대중이 지식(知識)하는 바이다 함은 곧 바로 사람들이 소지(所知)함을 말함임. 그 사람이 선하면 선우와 선지식이 되고 악하면 곧 악우와 악지식이 됨. 설법하여 나를 선처(善處)로 인도하는 자는 이 선우인지라 고로 가로되 선지식이며 또 단운(單云)하되 지식임.

木食; 이르자면 산중에 거주하면서 고행을 닦는 자가 오곡의 식사를 끊고 오직 과실만 먹음.

州牧; 벼슬 이름. 고대 1()의 장()을 가리켰음. 청대엔 지주(知州)를 또한 일컬어 주목이라 했고 관계(官階)는 매우 낮았음. 지현(知縣)과 병칭이 목령(牧令)[백도한어].

憧憧; 내왕하며 끊기지 않는 모양.

使君; 주군(州郡)의 최고 관원에 대한 존칭. 조정사원4. 사군(使君) 동한 구순전(寇恂傳) () 사군 군()은 존()의 호칭이다.

濛汜; 1. 고칭(古稱)이 해가 떨어지는 곳. 2. 사람의 수모(垂暮; 늘그막)의 나이에 비유함.

拱揖; 공수(拱手)하고 작읍(作揖)하면서 경의(敬意)를 보임.

 

兖州降魔藏禪師

趙郡人也 姓王氏 父 爲亳掾 師七歲出家 時屬野多妖鬼 魅惑於人 師孤形制伏 曾無少畏 故得降魔名焉 卽依廣福院明讚禪師落髮 後遇北宗盛化 便誓摳衣 秀問曰 汝名降魔 此無山精木怪 汝翻作魔邪 師曰 有佛有魔 秀曰 汝若是魔 必住不思議境界 師曰 是佛亦空 何境界之有 秀懸記之曰 汝與少皡之墟有緣 師尋入泰山 數稔學者雲集 一日告門人曰 吾今老朽 物極有歸 言訖而逝

兗州; 是尙書中禹貢所描述的九州之一

亳掾; 亳 亳州 今安徽亳縣. 掾 古代屬官的通稱

摳衣; 本義爲提起衣服行禮 表示謹愼恭敬 轉義爲師事侍奉之義

山精木怪; 山精 民間傳說中的一種怪物 木怪 舊指樹木變成的妖怪

少皡; 亦作少昊 名摯 華夏人文始祖 遠古時期部落聯盟首領稱號 黃帝的長子 母爲嫘祖(一說女節) [百度百科]

泰山; 又作東嶽 岱山 太山 位於山東泰安 中國五嶽之一

 

연주(兗州) 항마장(降魔藏) 선사

조군(趙郡) 사람이니 성은 왕씨며 부()는 박연(亳掾)이 되었다. 스님은 7세에 출가했다. 당시에 들에 요귀(妖鬼)가 많아 사람을 매혹(魅惑)함에 속()했다. 스님이 고형(孤形)으로 제복(制伏)했으며 일찍 조금도 두려워 함이 없었으므로 고로 항마(降魔)란 이름을 얻었다. 곧 광복원(廣福院) 명찬선사(明讚禪師)에게 의지해 낙발(落髮)했다. 후에 북종(北宗)의 성화(盛化)를 만나 바로 구의(摳衣)를 맹서했다. 신수(神秀)가 문왈(問曰) 너의 이름이 항마지만 여기엔 산정목괴(山精木怪)가 없거늘 네가 도리어() ()를 짓느냐. 사왈(師曰) ()이 있으면 마()가 있습니다. 신수(神秀)가 가로되 네가 만약 이 마()일진대 반드시 부사의경계(不思議境界)에 머물 것이다. 사왈 이 불()도 또한 공()했거늘 무슨 경계가 있겠습니까. 신수가 현기(懸記; 豫言)하여 가로되 너는 소호(少皡)의 터()와 인연이 있다. 스님이 이윽고 태산(泰山)에 들어갔는데 몇 해() 만에 학자가 운집했다. 어느 날 문인(門人)에게 알려 가로되 내가 이제 노후(老朽)했나니 물건은 궁극(窮極)에 돌아감이 있다. 말을 마치자 서거(逝去)했다.

兗州; 이는 상서(尙書) 중 우공(禹貢)에 묘술(描述)한 바의 9()의 하나임.

亳掾; ()은 박주(亳州)니 지금의 안휘(安徽) 박현(亳縣). ()은 고대 속관(屬官)의 통칭(通稱).

摳衣; 본래의 뜻은 의복을 제기(提起)하고 행례(行禮)함이니 근신(謹愼)하며 공경함을 표시함. 전의(轉義)하여 사사(師事)하며 시봉함의 뜻이 됨.

山精木怪; 산정(山精)은 민간 전설 중의 일종 괴물. 목괴(木怪)는 옛날 수목(樹木)이 변해 이룬 요괴(妖怪)를 가리켰음.

少皡; 또한 소호(少昊)로 지음. 이름은 지()며 화하(華夏) 인문(人文)의 시조(始祖). 원고시기(遠古時期) 부락연맹(部落聯盟)의 수령(首領)의 칭호. 황제(黃帝)의 장자(長子)며 모()는 누조(嫘祖; 一說 女節)가 됨 [백도백과].

泰山; 또 동악(東嶽)ㆍ대산(岱山)ㆍ태산(太山)으로 지음. 산동 태안(泰安)에 위치하며 중국 5()의 하나.

 

壽州道樹禪師

唐州人也 姓聞氏 幼探經籍 年將五十 因遇高僧誘諭 遂誓出家 禮本部明月山慧文爲師 師耻乎年長求法淹遲 勵志遊方 無所不至 後歸東洛 遇秀禪師 言下知微 乃卜壽州三峯山結茅而居 常有野人 服色素朴 言譚詭異 於言笑外化作佛形及菩薩羅漢天仙等形 或放神光 或呈聲響 師之學徒覩之 皆不能測 如此涉十年 後寂無形影 師告衆曰 野人作多色伎倆 眩惑於人 只消老僧不見不聞 伊伎倆有窮 吾不見不聞無盡 唐寶曆元年 示疾而終

壽州; 隋朝設立 在今安徽省淮南市壽縣境內

唐州; 泛指今河南唐河縣

誘諭; 亦作誘喻 誘導敎喻

淹遲; 緩慢 遲緩 延緩

勵志; 奮發志氣 集中精力

東洛; 指洛陽 漢唐時以洛陽爲東都 故稱

天仙; 一天上的神仙 二仙女 三美女 此指一

伎倆; 能巧多藝也 [禪林寶訓音義]

老僧; 指年老的和尙 二指老僧自稱 此指二

 

수주(壽州) 도수선사(道樹禪師)

당주(唐州) 사람이며 성은 문씨(聞氏). 유년(幼年)에 경적(經籍)을 탐구(探求)했고 나이가 거의() 50에 고승의 유유(誘諭)를 만남으로 인해 드디어 출가를 맹서했다. 본부(本部; 原來 隸屬한 곳) 명월산(明月山) 혜문(慧文)을 예알(禮謁)하여 스승으로 삼았다. 스님은 연장(年長)에다 구법(求法)이 엄지(淹遲)함을 부끄럽게 여겨 여지(勵志)로 유방(遊方)하며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후에 동락(東洛)으로 돌아가 신수(神秀) 선사를 만나 언하(言下)에 미묘함을 알았고 이에 점쳐() 수주(壽州) 삼봉산(三峯山)에 결모(結茅)하고 거주했다. 늘 야인(野人)이 있어 복색(服色)은 소박(素朴)했고 언담(言譚)은 궤이(詭異; 奇異)했고 언소(言笑)하는 밖에 불형(佛形) 및 보살ㆍ라한ㆍ천선(天仙) 등의 형상을 화작(化作)했고 혹 신광(神光)을 놓고 혹 성향(聲響)을 보였다(). 스님의 학도(學徒)가 이를 보고() 모두 능히 헤아리지 못했다. 이와 같이 10년을 지나자() 후에 고요하여() 형영(形影)이 없었다. 스님이 고중(告衆)해 가로되 야인이 다색(多色)의 기량(伎倆)을 지어 사람을 현혹(眩惑)했지만 다만 노승(老僧)의 불견불문(不見不聞)을 소비했다. ()의 기량(伎倆)은 유궁(有窮)하지만 나의 불견불문(不見不聞)은 무진(無盡)하다. 당 보력(寶曆) 원년(825) 시질(示疾)하고 마쳤다.

壽州; 수조(隋朝)에서 설립했고 지금의 안휘성 회남시 수현 경내에 위치함.

唐州; 널리 지금의 하남 당하현(唐河縣)을 가리킴.

誘諭; 또한 유유(誘喻)로 지음. 유도(誘導)하여 교유(敎喻).

淹遲; 완만(緩慢). 지완(遲緩). 연완(延緩; 일이 더디어 시간이 늦추어짐).

勵志; 지기(志氣)를 분발(奮發). 정력(精力)을 집중함.

東洛; 낙양(洛陽)을 가리킴. ()ㆍ당() 때 낙양을 동도(東都)로 삼은지라 고로 일컬음.

天仙; 1. 천상의 신선. 2. 선녀. 3. 미녀.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伎倆; 능히 교묘하고 기예가 많음임 [선림보훈음의].

老僧; 1. 연로한 화상을 가리킴. 2. 노승의 자칭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嵩嶽安國師法嗣

洛京福先寺仁儉禪師

自嵩山罷問 放曠郊鄽 謂之騰騰和尙 唐天冊萬歲中 天后詔入殿前 仰視天后 良久曰 會麽 后曰 不會 師曰 老僧持不語戒 言訖而出 翌日 進短歌一十九首 天后覽而嘉之 厚加賜賚 師皆不受 又令寫歌辭傳布天下 其辭竝敷演眞理 以警時俗 唯了元歌一首盛行於世

放曠; 無限時空 廣大無邊 二豪放曠達 不拘禮俗 此指二

 

낙경(洛京) 복선사(福先寺) 인검선사(仁儉禪師)

숭산(嵩山)으로부터 파문(罷問)하자 교전(郊𢌅; 野外市𢌅)에 방광(放曠)했고 그를 일러 등등화상(騰騰和尙)이라 했다. () 천책만세(695-696) 중 천후(天后; 則天武后)가 불러() 전전(殿前)에 들어갔다. 천후를 앙시(仰視)하더니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아시겠습니까. 천후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師曰) 노승(老僧)은 불어계(不語戒)를 수지(受持)했습니다. 말을 마치자 나갔다. 다음날(翌日) 단가(短歌) 19(; 量詞)를 진상(進上)했다. 천후가 열람하고는 이를 가상(嘉尙)하게 여겨 사뢰(賜賚)를 후가(厚加)했다. 스님이 모두 받지 않았다. 또 가사(歌辭)를 서사(書寫)하여 천하에 전포(傳布)하게 했다. 그 가사는 모두() 진리를 부연(敷演)하여 시속(時俗)을 경계(警戒)했는데 오직 요원가(了元歌) 1()만 세간에 성행(盛行)했다.

放曠; 1. 무한한 시간과 공간. 광대무변. 2. 호방광달(豪放曠達)하여 예속(禮俗; 예의범절에 관한 풍속)에 구애되지 않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嵩嶽破竈墮和尙

不稱名氏 言行叵測 隱居嵩嶽 山塢有廟甚靈 殿中唯安一竈 遠近祭祀不輟 烹殺物命甚多 師一日領侍僧入廟 以杖敲竈三下曰 咄 此竈只是泥瓦合成 聖從何來 靈從何起 恁麽烹宰物命 又打三下 竈乃傾破墮落 須臾有一人靑衣峩冠 設拜師前 師曰 是甚麽人 曰 我本此廟竈神 久受業報 今日蒙師說無生法 得脫此處 生在天中 特來致謝 師曰 是汝本有之性 非吾彊言 神再禮而沒 少選 侍僧問曰 某等久侍和尙 不蒙示誨 竈神得甚麽徑旨 便得生天 師曰 我只向伊道是泥瓦合成 別也無道理爲伊 侍僧無言 師曰 會麽 僧曰 不會 師曰 本有之性 爲甚麽不會 侍僧等乃禮拜 師曰 墮也墮也 破也破也 後義豐禪師擧似安國師 安嘆曰 此子會盡物我一如 可謂如朗月處空 無不見者 難搆伊語脉 豐問曰 未審甚麽人搆得他語脉 安曰 不知者 時號爲破竈墮 僧問 物物無形時如何 師曰 禮卽唯汝非我 不禮卽唯我非汝 其僧乃禮謝 師曰 本有之物 物非物也 所以道心能轉物 卽同如來 有僧從牛頭處來 師問曰 來自何人法會 僧近前叉手 遶師一匝而出 師曰 牛頭會下不可有此人 僧乃回師上肩叉手而立 師曰 果然果然 僧却問曰 應物不由他時如何 師曰 爭得不由他 曰 恁麽則順正歸元去也 師曰 歸元何順 曰 若非和尙 幾錯招愆 師曰 猶是未見四祖時道理 見後道將來 僧却遶師一匝而出 師曰 順正之道 今古如然 僧作禮 又僧侍立久 師乃曰 祖祖佛佛只說如人本性本心 別無道理 會取會取 僧禮謝 師乃以拂子打之曰 一處如是 千處亦然 僧乃叉手近前 應喏一聲 師曰 更不信 更不信 僧問 如何是大闡提人 師曰 尊重禮拜 曰 如何是大精進人 師曰 毀辱嗔恚 其後莫知所終

叵測; 不可推測

物命; 一物類的壽命或生命 二有生命的物類

; 下 量詞 指動作的次數

業報; 應於善惡業因之苦樂果報 又業因與果報

擧似; 擧示 擧說言句告訴某人 似 相當于與 向

上肩; 指禪家之上位 又稱左肩 己身之左爲上肩 己身之右爲下肩 其己身左爲上義 又凡上肩下肩有二義 其自他相望 以上位下位爲上肩下肩者 [象器箋八]

拂子; 用以撣塵拂蟲之具 禪師說法時常持之

闡提; 一闡提之略 又作一闡底迦 一顚迦 譯爲斷善根 信不具足 極欲 大貪 無種性 卽指斷絶一切善根 無法成佛者 入楞伽經二分闡提爲二 一斷善闡提 卽本來卽缺解脫因者(斷善根) 二大悲闡提 又作菩薩闡提 卽菩薩本著救度一切衆生之悲願 而故意不入涅槃者 又大莊嚴論經一 亦有二說 一有性闡提 借助佛力 終可成佛者 二無性闡提 無論至何時 皆不得成佛者 涅槃經二十六 一闡名信 提名不具 不具信故名一闡提

 

숭악(嵩嶽) 파조타(破竈墮) 화상

명씨(名氏)를 일컫지 않았고 언행을 헤아리지 못했는데(叵測) 숭악에 은거했다. 산오(山塢; 山間의 평지)에 묘()가 있었는데 매우 신령(神靈)했고 전중(殿中)에 오직 1(; 두뚜막)만 안치했다. 원근에서 제사(祭祠)를 그치지() 않았고 물명(物命)을 팽살(烹殺)함이 매우 많았다. 스님이 어느 날 시승(侍僧)을 데리고 입묘(入廟)하여 지팡이로써 부뚜막을 세 번(三下) 두드리고 가로되 돌(), 이 부뚜막은 다만 이 진흙과 기와로 합성(合成)하였거늘 성()이 어디로부터 오며 영()은 어디로부터 일어나기에 이렇게(恁麽) 물명(物命)을 팽재(烹宰; 烹殺)하느냐. 또 세 번 때리자 부뚜막이 이에 기울며 깨어지더니 타락(墮落)했다. 수유(須臾)에 청의아관(靑衣峨冠)1인이 있어 스님의 앞에 설배(設拜)했다. 사왈(師曰) 이 어떤(甚麽) 사람인가. 가로되 나는 본래 이 묘()의 조신(竈神)으로서 오래 업보(業報)를 받다가 금일 스님이 무생법(無生法)을 설하심을 입어() 이곳을 득탈(得脫)하여 천중(天中)에 태어나 있으며 특별히 와서 감사드립니다(致謝). 사왈 이는 너의 본유지성(本有之性)이며 내가 억지로() 말함이 아니다. ()이 재례(再禮; 再拜)하고 사라졌다(). 소선(少選; 잠시 후)에 시승(侍僧)이 문왈(問曰) 모등(某等)은 오래 화상을 모셨건만 시회(示誨)를 입지() 못했거늘 조신(竈神)은 무슨(什麽) 경지(徑旨)를 얻어 바로 생천(生天)함을 얻었습니까. 사왈 나는 다만 그를 향해 말하되 이는 진흙과 기와로 합성했다 하였고 달리 그를 위한 도리가 없었다. 시승이 말이 없었다. 사왈(師曰) 아느냐(會麽). 승왈(僧曰) 알지 못합니다. 사왈 본유지성(本有之性)을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하느냐. 시승(侍僧) 등이 이에 예배했다. 사왈 떨어졌다(墮也), 떨어졌다. 깨어졌다(破也), 깨어졌다. 후에 의풍선사(義豐禪師)가 안국사(安國師)에게 들어 보이자(擧似) 혜안(慧安; )이 감탄하며 가로되 이 자(; 남자의 通稱)가 물아일여(物我一如)를 알아 마쳤다(會盡). 가위(可謂) 낭월(朗月)이 허공에 처하매 보지 못하는 자가 없음과 같거니와 그()의 어맥(語脉)을 만나기(; 와 같음) 어려우리라. 의풍이 문왈(問曰) 미심(未審)하오니 어떤(甚麽) 사람이 그의 어맥(語脈)을 만납니까(搆得). 혜안이 가로되 알지 못하는 자(不知者). 당시에 호()하여 파조타(破竈墮)라 했다. 승문(僧問) 물건마다 형상(形相)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사왈 예()는 곧 오직 너며 내가 아니지만 불례(不禮)는 곧 오직 나며 네가 아니다. 그 중이 이에 예사(禮謝)했다. 사왈 본유지물(本有之物)은 물()이 물()이 아니다. 소이로 말하되 마음이 능히 전물(轉物)하면 곧 여래(如來)와 한가지라 했다. 어떤 중이 우두(牛頭)의 처소로부터 왔다. 스님이 물어 가로되 어떤 사람의 법회(法會)로부터 왔는가. 중이 앞으로 접근하더니 차수(叉手)하고 스님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사왈 우두회하(牛頭會下)에 가히 이런 사람이 있지 않다. 중이 이에 돌아와 스님의 상견(上肩; 上邊)에서 차수(叉手)하고 섰다. 사왈 과연(果然), 과연(果然). 중이 도리어 문왈(問曰) 응물(應物; 사람에 응하다)하면서 그()를 말미암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찌 그를 말미암지 않음을 얻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순정(順正)하여 귀원(歸原; 근원으로 돌아가다)하여 갑니다. 사왈 귀원(歸原)하여 무엇에 순()하는가. 가로되 만약 화상이 아니었다면 거의 잘못 허물()을 초래했을 것입니다. 사왈 오히려 이는 4()를 보지 않은 때의 도리니 본 후를 말해 가지고 오너라. 중이 도리어 스님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사왈 순정지도(順正之道)가 금고(今古)에 여연(如然)하다 중이 작례(作禮)했다. 또 중이 시립(侍立)한 지 오래되었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조조불불(祖祖佛佛)이 다만 사람의 본성본심(本性本心) 같은 것을 설했나니 달리 도리가 없다. 회취(會取)하라, 회취하라. 중이 예사(禮謝)했다. 스님이 이에 불자(拂子)로써 그를 때리고 가로되 1()가 이와 같아서 천처(千處)도 또한 그러하다. 중이 이에 차수(叉手)하고 근전(近前)하더니 한 소리 응낙(應喏)했다. 사왈 다시 믿지 않겠는가, 다시 믿지 않겠는가. 승문(僧問) 무엇이 이 대천제인(闡提)입니까. 사왈 존중하고 예배한다. 또 묻되 무엇이 이 대정진인(大精進人)입니까. 사왈 훼욕(毀辱)하고 진에(瞋恚)한다. 그 후 마친 곳을 알지 못한다.

叵測; 가히 추측하지 못함.

物命; 1. 물류의 수명 혹 생명. 2. 생명이 있는 물류.

; ()는 양사니 동작의 차수(次數)를 가리킴.

業報; 선악의 업인에 응하는 고락의 과보. 또 업인과 과보.

擧似; 들어 보임. 언구를 들어 설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알림. ()는 주다ㆍ향하다에 상당함.

上肩; 선가의 상위(上位)를 가리킴. 또 명칭이 좌견(左肩)이니 자기 몸의 왼쪽이 상견(上肩)이 되고 자기 몸의 오른쪽이 하견(下肩)이 됨. 그 자기의 몸 왼쪽이 상의 뜻임. 또 무릇 상견하견에 두 뜻이 있음. 그 자타가 상망(相望)하매 상위하위를 상견하견으로 삼는 것임 [상기전8].

拂子; 먼지를 털거나 벌레를 떨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 선사가 설법할 때 늘 이것을 가짐.

闡提; 일천제(一闡提; icchantika)의 약칭. 또 일천지가(一闡底迦)ㆍ일전가(一顚迦)로 지음. 번역하면 단선근(斷善根)ㆍ신불구족(信不具足)ㆍ극욕(極欲)ㆍ대탐(大貪)ㆍ무종성(無種性)이니 곧 일체 선근을 단절하여 성불할 법이 없는 자를 가리킴. 입릉가경2에 천제를 분류해 둘로 삼았음. 1. 단선천제(斷善闡提) 본래 곧 해탈인(解脫因)이 결()한 자(斷善根). 2. 대비천제(大悲闡提) 또 보살천제로 지음. 곧 보살이 본래 일체중생을 구도(救度)하겠다는 비원(悲願)에 집착하여 고의로 열반에 들지 않는 자임. 또 대장론경1 또한 2설이 있으니 1. 유성천제(有性闡提) 불력의 도움을 빌려 마침내 가히 성불할 자. 2. 무성천제(無性闡提) 어느 때에 이름을 논함이 없이 모두 성불을 얻지 못하는 자. 열반경26. 일천(一闡)은 이름이 신()이며 제()는 이름이 불구(不具)니 믿음을 갖추지 못한 고로 이름이 일천제(一闡提).

 

嵩嶽元珪禪師

伊闕人也 姓李氏 幼歲出家 唐永淳二年 受具戒 𨽻閑居寺 習毗尼無懈 後謁安國師 頓悟玄旨 遂卜廬於嶽之龐塢 一日有異人峩冠袴褶徒頰切而至 從者極多 輕步舒徐 稱謁大師 師覩其形貌 奇偉非常 乃諭之曰 善來仁者 胡爲而至 彼曰 師寧識我邪 師曰 吾觀佛與衆生等 吾一目之 豈分別邪 彼曰 我此嶽神也 能生死於人 師安得一目我哉 師曰 吾本不生 汝焉能死 吾視身與空等 視吾與汝等 汝能壞空與汝乎 苟能壞空及汝 吾則不生不滅也 汝尙不能如是 又焉能生死吾邪 神稽首曰 我亦聦明正直於餘神 詎知師有廣大之智辯乎 願授以正戒 令我度世 師曰 汝旣乞戒 卽旣戒也 所以者何 戒外無戒 又何戒哉 神曰 此理也我聞茫昧 止求師戒 我身爲門弟子 師卽爲張座 秉爐正几曰 付汝五戒 若能奉持 卽應曰能 不能卽曰否 曰 謹受敎 師曰 汝能不婬乎 曰 我亦娶也 師曰 非謂此也 謂無羅欲也 曰 能 師曰 汝能不盜乎 曰 何乏我也 焉有盜取哉 師曰 非謂此也 謂饗而福淫 不供而禍善也 曰 能 師曰 汝能不殺乎 曰 實司其柄 焉曰不殺 師曰 非謂此也 謂有濫誤疑混也 曰 能 師曰 汝能不妄乎 曰 我正直 焉有妄乎 師曰 非謂此也 謂先後不合天心也 曰 能 師曰 汝不遭酒敗乎 曰 能 師曰 如上是爲佛戒也 又言 以有心奉持而無心拘執 以有心爲物而無心想身 能如是則先天地生不爲精 後天地死不 爲老 終日變化而不爲動 畢盡寂默而不爲休 信此則雖娶非妻也 雖饗非取也 雖柄非權也 雖作非故也 雖醉非惽也 若能無心於萬物 則羅欲不爲婬 福淫禍善不爲盜 濫誤疑混不爲殺 先後違天不 爲妄 惽荒顚倒不爲醉 是謂無心也 無心則無戒 無戒則無心 無佛無衆生 無汝及無我 孰爲戒哉 神曰 我神通亞佛 師曰 汝神通十句五能五不能 佛則十句七能三不能 神悚然避席跪啓曰 可得聞乎 師曰 汝能戾上帝 天行而西七曜乎 曰 不能 師曰 汝能奪地祗融五嶽而結四海乎 曰 不能 師曰 是謂五不能也 佛能空一切相 成萬法智 而不能卽滅定業 佛能知羣有性 窮億劫事 而不能化導無緣 佛能度無量有情 而不能盡衆生界 是爲三不能也 定業亦不牢久 無緣亦是一期 衆生界本無增減 亘無一人能主其法 有法無主 是謂無法 無法無主 是謂無心 如我解佛亦無神通也 但能以無心通達一切法爾 神曰 我誠淺昧 未聞空義 師所授戒 我當奉行 今願報慈德 効我所能 師曰 吾觀身無物 觀法無常 塊然更有何欲邪 神曰 師必命我 爲世間事 展我小神功 使已發心 初發心 未發心 不信心 必信心五等人目我神蹤 知有佛有神 有能有不能 有自然有非自然者 師曰 無爲是 無爲是 神曰 佛亦使神護法 師寧隳叛佛邪 願隨意垂誨 師不得已而言曰 東巖寺之障 莽然無樹 北岫有之而背非屛擁 汝能移北樹於東嶺乎 神曰 已聞命矣 然昏夜必有喧動 願師無駭 卽作禮辭去 師門送而且觀之 見儀衛逶迤 如王者之狀 嵐靄煙霞 紛綸間錯 幢幡環珮 凌空隱沒焉 其夕果有暴風吼雷 奔雲掣電 棟宇搖蕩 宿鳥聲喧 師謂衆曰 無怖無怖 神與我契矣 詰旦和霽 則北巖松栝盡移東嶺 森然行植 師謂其徒曰 吾沒後無令外知 若爲口實 人將妖我 以開元四年丙辰歲囑門人曰 吾始居寺東嶺 吾滅汝必寘吾骸于彼 言訖若委蛻

伊闕; 卽今河南省洛陽市區南約二公里處的龍門 兩山對峙 伊水中流 如天然門闕 故曰伊闕

毗尼; <><> vinaya 新云毘奈耶 舊云毘尼 律藏之梵名也 楞嚴經一曰 嚴淨毘尼 弘範三界 疏曰 毘尼 此云善治 亦卽云律 三藏法數五 律有三名[出大藏一覽幷華嚴經疏] 一毘尼 梵語毘尼 華言善治 謂能治貪瞋癡等惡也 又言調伏 謂能調練三業 制伏過非也 二尸羅 梵語尸羅 華言止得 謂能止惡得善也 又名戒 戒以防止爲義 以能防止身口意諸不善業故也 三波羅提木叉 梵語波羅提木叉 華言解脫 謂能遠離惑業繫縛 而得自在也

卜廬; 用占卜選擇廬舍而居

茫昧; 模糊不淸 不可揣測

上帝; 天之最尊者 語出大雅蕩 人之所尊 莫過於帝 托之於天 故稱上帝

天行; 天體的運行

七曜; 同七耀 日 月 水星 火星 木星 金星 土星 曜 日月星都稱曜 律宗新學名句上 七曜 一日 二月 三南熒惑 四北辰星 五東歲星 六西太白 七中宮土宿

五嶽; 指東嶽泰山(山東泰安) 南嶽衡山(湖南衡山) 西嶽華山(陝西華陰) 北嶽恆山(山西大同) 中嶽嵩山(河南登封) 堯時建四伯之官 主四時四方之嶽 後加中嶽而成五嶽之制 祭祀五嶽乃天子之特權 諸侯僅得於領地內奉祀之 又五嶽古來夙爲僧道棲居之地 如苻秦之道安入恆山建立寺塔 僧朗入泰山營建朗公谷山寺(神通寺) 梁代禪僧菩提達磨止於嵩山少林寺 陳代慧思住於衡山福嚴寺等 均爲五嶽佛寺建立之實事 [歷代三寶紀十二 集古今佛道論衡一]

定業; 定受生死苦果之定業因也 此有善惡之二 善之定業 定受樂果 惡之定業 定受苦果 又善惡之定業 各有三種 於造善惡業之生 直感苦樂之果 爲順現受業 隔一世而感其果 爲順生受業 隔二世以上而感其果 爲順後受業 已上皆爲定業中之差別 此外善惡皆有不定業之一種 業力微弱 不必感果也 因而通爲四業

; 猶衆生或萬物 三有 九有 二十五有等 衆生之果報名爲有

塊然; 孤獨貌 獨處貌

門送; 至門前送別

儀衛; 儀仗與衛士的統稱

紛綸; 雜亂貌 衆多貌

和霽; 天氣和暖放晴

委蛻; 謂自然所付與的軀殼 用爲死亡的婉詞 楞嚴經熏聞記四 委蛻 氣自委結而蟬蛻耳 列子一 天瑞篇 孫子非汝有 是天地之委蛻也

 

숭악(嵩嶽) 원규선사(元珪禪師)

이궐(伊闕) 사람이며 성이 이씨(李氏). 유세(幼歲)에 출가했고 당() 영순(永淳) 2(683) 구계(具戒)를 받고 한거사(閑居寺)에 예속(隸屬)되어 비니(毗尼)를 학습하며 게으름()이 없었다. 후에 안국사(安國師; 慧安)를 참알했고 현지(玄旨)를 돈오(頓悟)했다. 드디어 숭악(嵩嶽)의 방오(龐塢; 山間平地)에 복려(卜廬)했다. 어느 날 이인(異人)이 있어 아관(峨冠; 높은 갓)에 고습(袴褶; 바지와 덧옷)徒頰切으로 이르렀고 종자(從者)가 극히 많았다. 경보(輕步)로 서서(舒徐; 느긋하다)히 대사(大師)를 참알한다고 일컬었다. 스님이 그 형모(形貌)를 보니 기위(奇偉)하고 비상(非常)하였다. 이에 고지(告知; )하여 가로되 잘 왔구나(善來), 인자(仁者). 어찌하여(胡爲) 이르렀는가. 그가 가로되 스님은 어찌() 나를 아십니까. 사왈(師曰) 나는 부처와 중생을 동등하게 본다. 내가 동일하게 보거늘(一目) 어찌 분별하겠는가. 그가 가로되 나는 차악(此嶽)의 신()이며 능히 사람을 생사(生死)케 합니다. 스님이 어찌() 나를 동일하게 봄을 얻습니까. 사왈 나는 본래 생()하지 않았거늘 네가 어찌() 능히 사()하게 하겠는가. 나는 몸과 허공이 제등(齊等)하다고 보며 나와 네가 제등하다고 본다. 네가 능히 허공과 너를 무너뜨리겠는가. 참으로() 능히 허공 및 너를 무너뜨린다면 나는 곧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 네가 오히려() 능히 이와 같지 못하거늘 또 어찌() 능히 나를 생사(生死)케 하겠는가. 신이 계수(稽首)하고 가로되 나는 또한 총명(聰明)하고 여타의 신 보다 정직(正直)하지만 어찌() 스님이 광대한 지변(智辯)이 있는 줄 알았겠습니까. 원컨대 정계(正戒)를 주셔서 나로 하여금 세상을 제도하게 하십시오. 사왈 네가 이미 걸계(乞戒)하니 곧 이미 계(). 소이(所以)란 게 무엇인가, () 밖에 계가 없거늘 또 무슨 계이겠는가. 신왈(神曰) 이 이치는 내가 들어도 망매(茫昧)하나니 다만() 스님의 계를 구한다면 나의 몸이 문제자(門弟子)가 되겠습니다. 스님이 곧 위하여 자리()를 진설(陳設; )하고 향로(香爐; )를 잡고() 안석(案席; )을 바르게 하고 가로되 너에게 5()를 부촉한다. 만약 능히 봉지(奉持)하면 곧 응낙(應諾; )해 가로되 능()이라 하고 불능(不能)이면 곧 가로되 부()라 하라. 가로되 삼가 수교(受敎)하겠습니다. 사왈 너는 능히 음행(淫行; )하지 않겠는가. 가로되 나는 또한 장가듭니다(). 사왈 이를 말함이 아니다. 이르자면 음욕(淫欲)을 벌이지() 않음이다. 가로되 능(). 사왈 너는 능히 투도(偸盜; )하지 않겠는가. 가로되 어찌하여 나를 궁핍(窮乏)하게 하십니까. 어찌 도취(盜取)가 있겠습니까. 사왈 이를 말함이 아니다. 이르자면 흠향(歆饗)하면 음(; 淫人)에게 복()되게 하고 불공(不供)하면 선(; 善人)에게 화()를 끼침이다. 가로되 능(). 사왈 너는 능히 살생하지 않겠는가. 가로되 실로 그 권병(權柄; )을 맡았거늘() 어찌 가로되 살생하지 않는다 하겠습니까. 사왈 이를 말함이 아니다. 이르자면 남오(濫誤; 착오가 넘침)와 의혼(疑混; 의심이 混亂)이다. 가로되 능(). 사왈 너는 능히 망어(妄語; )하지 않겠는가. 가로되 나는 정직하거늘 어찌() 능히 허망이 있겠습니까. 사왈 이를 말함이 아니다. 이르자면 선후(先後)가 천심(天心)에 합하지 않음이다. 가로되 능(). 사왈 너는 주패(酒敗; 음주하여 실패하다)를 만나지() 않겠는가. 가로되 능(). 사왈 여상(如上)이 이 불계(佛戒)가 된다. 또 말하되 유심(有心)으로써 봉지(奉持)하고 무심(無心)히 구집(拘執; 拘泥固執)하고 유심으로써 중생()을 위하고 무심히 몸을 상념(想念)해야 하나니 능히 이와 같다면 곧 천지(天地) 앞에 생()하여 정(; 精靈)이 되지 않으며 천지 뒤에 사()하여 늙지 않으며 종일 변화해도 동()하지 않으며 필진(畢盡)하여 적묵(寂默)하여도 휴()하지 않으리라. 이를 믿는다면 곧 비록 장가들더라도() ()가 아니며 비록 흠향(歆饗)하더라도 취()함이 아니며 비록 병(; 權柄)해도 권()이 아니며 비록 작()해도 고(; 故意)가 아니며 비록 취()해도 혼(; 흐리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만물에 무심하면 곧 음욕(淫欲)을 벌여도() (; 淫行)이 되지 않고 복음화선(福淫禍善; 淫人에게 복되게 하고 善人에게 화를 끼침)해도 도()가 되지 않고 남오의혼(濫誤疑混; 착오가 넘치고 의심이 혼란함)해도 살()이 되지 않고 선후(先後)로 천()을 위배해도 망()이 되지 않고 혼황(惛荒; 昏亂하고 虛荒)하고 전도(顚倒)해도 취()가 되지 않나니 이를 일러 무심이라 한다. 무심하면 곧 무계(無戒)며 무계면 곧 무심이니 부처가 없고 중생이 없고 네가 없고 및 내가 없나니 무엇()을 계()라고 하겠는가. 신왈(神曰) 나의 신통은 부처의 버금()입니다. 사왈 너의 신통은 10()5는 능()이고 5는 불능(不能)이지만 부처는 곧 10구에 7은 능이고 3은 불능이다. 신이 송연(悚然)하여 피석(避席)하고 꿇어앉아 사뢰어() 가로되 가히 득문(得聞)하겠습니까. 사왈 네가 능히 상제(上帝)를 거슬러() 천행(天行)을 동(; 東轉)으로 하고 7(七曜)를 서(西; 西轉)로 하겠는가. 가로되 불능(不能)입니다. 사왈 네가 능히 지기(地祇; 地神)를 빼앗고 오악(五嶽)을 융합(融合; )하고 사해(四海)를 결합(結合; )하겠는가. 가로되 불능(不能)입니다. 사왈 이를 일러 5불능이라 한다. 부처는 능히 일체의 상()을 공()하게 해 만법의 지()를 이루지만 능히 곧 정업(定業)을 멸하지 못하고 부처는 능히 군유(羣有)의 성()을 알고 억겁(億劫)의 일을 궁구(窮究)하지만 능히 무연(無緣)을 화도(化導)하지 못하고 부처는 능히 무량한 유정(有情)을 화도하지만 능히 중생계(衆生界)를 다하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3불능(不能)이라 한다. 정업(定業)도 또한 뇌구(牢久)하지 못하고 무연(無緣)도 또한 일기(一期)를 말함이고 중생계는 본래 증감이 없어서 두루() 한 사람이라도 능히 그 법을 주재(主宰; )함이 없다. 유법무주(有法無主)는 이를 일러 무법(無法)이라 하며 무법무주(無法無主)는 이를 일러 무심(無心)이라 한다. 내가 부처를 이해함과 같은 것은 또한 신통이 없고 단지 능히 무심으로써 일체법을 통달했을 따름이다. 신왈(神曰) 내가 참으로() 천매(淺昧)하여 공의(空義)를 듣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주신 바 계()를 내가 마땅히 봉행하겠습니다. 여금에 원컨대 자덕(慈德)에 보답하려 하니 나의 소능(所能)을 나타내게() 하십시오. 사왈 나는 몸을 보매 무물(無物)이며 법을 보매 무상(無常)이라서 괴연(塊然)하거늘 다시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신왈(神曰) 스님이 반드시 나에게 명령해 세간사(世間事)를 위하라 하신다면 나의 작은 신공(神功)을 전개(展開)하여 이발심(已發心)ㆍ초발심(初發心)ㆍ미발심(未發心)ㆍ불신심(不信心)ㆍ필신심(必信心) 5()의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신종(神蹤)을 보고() 유불(有佛)ㆍ유신(有神)ㆍ유능(有能)ㆍ유불능(有不能)ㆍ유자연(有自然)ㆍ유비자연(有非自然)인 자를 알게 하겠습니다. 사왈 무위(無爲)가 옳다(), 무위(無爲)가 옳다. 신왈(神曰) 부처도 또한 신()으로 하여금 호법(護法)하게 하셨거늘 스님이 어찌() 부처를 휴반(隳叛; 무너뜨리고 배반하다)하려 하십니까. 원컨대 수의(隨意)하여 가르침()을 내리십시오. 스님이 부득이 하여 말해 가로되 동암(東巖)은 사원(寺院)의 장애니 망연(莽然)하여 나무가 없고 북수(北岫; 북쪽 산봉우리)에 이것이 있지만 등져서() 병옹(屛擁; 環抱)이 아니다. 네가 능히 북수(北樹)를 동령(東嶺)으로 옮기겠는가. 신왈(神曰) 이미 명령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야간(夜間)에 반드시 훤동(諠動)이 있으리니 원컨대 스님은 놀라지() 마십시오. 곧 작례(作禮)하고 고별하고 떠났다. 스님이 문송(門送)하면서 또 그를 관찰했는데 의위(儀衛)가 위이(逶迤; 구불구불함)함이 왕자(王者)의 형상(形狀)임을 보았다. 남애(嵐靄; 嵐氣와 아지랑이)와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가 분륜(紛綸)히 간착(間錯; 間雜)했고 당번(幢幡)과 환패(環珮; 圓形玉珮)가 능공(凌空; 하늘 높이 오르다)하여 은몰(隱沒)했다. 그날 저녁 과연 폭풍(暴風)ㆍ후뢰(吼雷)ㆍ분운(奔雲)ㆍ진전(震電)이 있어 동우(棟宇; 집의 마룻대와 추녀끝)가 요탕(搖蕩; 흔들려 움직임)하고 숙조(宿鳥)가 성훤(聲諠; 소리가 떠들썩함)했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두러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신과 내가 약속()했다. 힐단(詰旦; 맑은 첫새벽)에 화제(和霽)하자 곧 북암(北巖)의 송괄(松栝; 소나무와 老松나무)이 모두() 동령(東嶺)으로 이동해 삼연(森然)히 항식(行植; 줄지어 심어지다)했다. 스님이 그 도중(徒衆)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몰후(沒後; 滅後)에 밖으로 알려지게 하지 말아라. 만약 구실(口實; 핑계)이 된다면 사람들이 장차 나를 요망(妖妄)하다 할 것이다. 개원(開元) 4년 병진세(716) 문인(門人)에게 부촉해 가로되 내가 처음() 사원의 동령(東嶺)에 거주했으니 내가 멸하거든 너희는 반드시 나의 해골을 거기에 두거라(; ). 말을 마치자 위세(委蛻)와 같았다. 춘추는 73이다. 문인이 건탑(建塔)했다.

伊闕; 즉금의 하남성 낙양시구 남방 약 2곳의 용문(龍門)이니 두 산이 대치하고 이수(伊水)가 가운데를 흐름이 천연의 문궐(門闕)과 같은지라 고로 가로되 이궐임.

毗尼; <><> vinaya. 신역에 이르되 비나야(毘奈耶)며 구역에 이르되 비니(毘尼)니 율장의 범명임. 릉엄경1에 가로되 비니를 엄정(嚴淨)히 하여 삼게를 홍범(弘範; 널리 모범)한다. ()에 가로되 비니는 여기에선 이르되 선치(善治)니 또 곧 이르되 율이다. 삼장법수5. 율에 3()이 있다 [출대장일람병화엄경소] 1. 비니(毗尼) 범어 비니는 화언으론 선치(善治). 이르자면 능히 탐진치 등의 악을 다스림임. 또 말하되 조복(調伏)이니 이르자면 능히 3업을 조련하고 과오와 비리를 제복(制伏)함임. 2. 시라(尸羅; śīla) 범어 시라는 화언으론 지득(止得). 이르자면 능히 악을 그치고 선을 얻음임. 또 이름이 계()니 계는 방지로써 뜻을 삼음. 능히 몸ㆍ입ㆍ뜻의 모든 착하지 못한 업을 방지하는 연고임. 3.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ātimokṣa) 범어 바라제목차는 화언으론 해탈임. 이르자면 능히 혹업(惑業)의 계박(繫縛)을 멀리 여의고 자재를 얻음임.

卜廬; 점복을 써서 여사(廬舍)를 선택해 거주함.

茫昧; 모호(模糊)하여 맑지 않음. 가히 췌측(揣測; 헤아리다)하지 못함.

上帝; ()의 가장 존귀한 자. 말이 대아(大雅) ()에 나옴. 사람이 존중하는 바는 제()를 지날 게 없나니 천()에 의탁(依托;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상제(上帝).

天行; 천체(天體)의 운행.

七曜; 칠요(七耀)와 같음. 일ㆍ월ㆍ수성ㆍ화성ㆍ목성ㆍ금성ㆍ토성임. ()는 해 달과 별을 모두 일컬어 요라함. 율종신학명구상. 칠요(七曜) 1은 일()이며 2는 월()이며 3은 남형혹이며 4는 북신성이며 5는 동세성이며 6은 서태백이며 7은 중궁토수다.

五嶽; 동악 태산(산동 태안)ㆍ남악 형산(호남 형산)ㆍ서악 화산(섬서 화음)ㆍ북악 항산(산서 대동)ㆍ중악 숭산(하남 등봉)을 가리킴. 요시(堯時)4(四伯)의 관직을 세워 사시사방(四時四方)의 악()을 주재하게 했는데 후에 중악(中嶽)을 더하여 5()의 제도를 이루었음. 5악에 제사함은 곧 천자의 특권이었고 제후는 겨우 영지(領地) 안에서 그것을 봉사(奉祀)함을 얻었음. 5악은 고래(古來)로 일찍이 승도(僧道)의 서거(棲居)의 지역이 되었으니 예컨대 부진(苻秦)의 도안(道安)은 항산에 들어가 사탑(寺塔)을 건립했고 승랑(僧朗)은 태산에 들어가 낭공 곡산사(신통사)를 영건(營建)했고 양대(梁代) 선승 보리달마는 숭산 소림사에 머물렀고 진대(陳代) 혜사(慧思)는 형산 복엄사에 거주한 등이니 균일하게 5악의 불사(佛寺)를 건립한 실사(實事)가 됨 [역대삼보기12. 집고금불도논형1].

定業; 생사의 고과(苦果)를 정수(定受)하는 정업인(定業因). 이에 선악의 둘이 있음. ()의 정업(定業)은 낙과(樂果)를 정수(定受)하고 악의 정업은 고과(苦果)를 정수함. 또 선악의 정업에 각기 3종이 있음. 선악업을 지은 생()에 바로 고락의 과를 감득(感得)함은 순현수업(順現受業)이 되고 1()을 격()해 그 과()를 감득함은 순생수업(順生受業)이 되고 2() 이상 격해서 그 과를 감득함은 순후수업(順後受業)이 됨. 이상은 모두 정업(定業) 중의 차별이 됨. 이 밖에 선악에 모두 부정업(不定業)1종이 있는데 업력이 미약하여 반드시 감과(感果)함은 아님. 이로 인해 모두 4업이 됨.

; 중생 혹은 만물과 같음. 3유ㆍ9유ㆍ25유 등 중생의 과보를 이름해 유라 함.

塊然; 고독한 모양. 홀로 거처하는 모양.

門送; 문 앞에 이르러 송별함.

儀衛; 의장(儀仗)과 위사(衛士)의 통칭(統稱).

紛綸; 잡란(雜亂)한 모양. 중다(衆多)한 모양.

和霽; 천기(天氣)가 화완(和暖)하면서 방청(放晴).

委蛻; 이르자면 자연(自然)이 부여한 바의 구각(軀殼; 몸뚱이)이니 사망의 완사(婉詞)로 사용함. 릉엄경훈문기4. 위세(委蛻) ()가 스스로 위결(委結; 結聚)하여 선세(蟬蛻; 매미가 탈바꿈할 때 벗은 허물)함이다. 열자1 천서편. 손자(孫子)가 너의 소유가 아니라 이는 천지의 위세(委蛻).

 

五祖下三世旁出

嵩山寂禪師法嗣

終南山惟政禪師

平原人也 姓周氏 受業於本州延和寺詮澄法師 得法於嵩山普寂禪師 卽入太一山中 學者盈室 唐文宗好嗜蛤蜊 㳂海官吏先時遞進 人亦勞止 一日御饌中有擘不張者 帝以其異 卽焚香禱之乃開 見菩薩形儀 梵相具足 帝遂貯以金粟檀香合 覆以美錦 賜興善寺 令衆僧瞻禮 因問羣臣 斯何祥也 或奏太一山惟政禪師深明佛法 博聞强記 乞詔問之 帝卽頒詔師至 帝問其事 師曰 臣聞物無虛應 此乃啓陛下之信心耳 故契經云 應以此身得度者 卽現此身 而爲說法 帝曰 菩薩身已現 且未聞說法 師曰 陛下覩此 爲常邪 非常邪 信邪 非信邪 帝曰 希奇之事 朕深信焉 師曰 陛下已聞說法竟 皇情悅豫 得未曾有 詔天下寺院各立觀音像 以答殊休 留師於內道場 累辭歸山 詔令住聖壽寺 至武宗卽位 師忽入終南山隱居 人問其故 師曰 吾避仇矣 終後闍維 收舍利四十九粒 而建塔焉

終南山; 位於陝西長安縣西約二十九公里 東起藍田 西至郿縣 綿亙八百餘里 爲秦嶺山脈之一部分 又稱中南山 太乙山 地肺山 略稱南山 唐代華嚴宗第一祖杜順(法順) 因隱居終南山 世稱終南法順 智儼住南山至相寺 弘揚華嚴宗 世稱至相大師 淨土宗之善導 住於南山悟眞寺念佛修行 世稱終南大師 律宗之道宣 住於南山豐德寺 弘揚四分律宗 其系統卽稱南山律宗 [慈恩寺三藏法師傳十 開元釋敎錄八 長安志九 同十二 古今圖書集成山川典第六十五]

勞止; 辛勞 勞苦

御饌; 御 帝王所用或與之有關的事物

梵相; 梵云梵摩 婆羅賀摩 跋濫摩 此云寂靜 淸淨 離欲 梵相卽淸淨的形相

陛下; 祖庭事苑二 陛下 應劭曰 陛者 升堂之階 王者必有執兵陳於階陛之側 群臣與至尊言 不敢指斥(指也) 故呼在陛下者而告之 因卑以達尊之意也 若今稱殿下閤下 侍者執事 皆此類

契經; 十二分敎(十二部經)之一 梵語修多羅 華言契經

悅豫; 喜悅 愉快

 

종남산(終南山) 유정선사(惟政禪師)

평원(平原) 사람이며 성이 주씨(周氏). 본주(本州) 연화사(延和寺) 전징법사(詮澄法師)에게 수업(受業)했고 숭산 보적선사(普寂禪師)에게서 득법했다. 곧 태일산(太一山) 가운데로 들어갔고 학자가 실내에 가득했다. 당 문종(文宗)이 합리(蛤蜊; 바지락)를 좋아했다(). 연해(沿海)의 관리(官吏)들이 시기(時期)에 앞서 갈마들며() 진상(進上)했고 사람들도 또한 노지(勞止; 勞苦)했다. 어느 날 어찬(御饌) 중에 열어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황제가 그것을 이상히 여겨 곧 분향(焚香)하며 기도했더니 이에 열렸고 보살의 형의(形儀)를 보았는데 범상(梵相)을 구족했다. 황제가 드디어 금속단(金粟檀)의 향합(香合)을 써서 저장(貯藏)하고 미금(美錦)으로써 덮어 흥선사(興善寺)에 주어() 중승(衆僧)으로 하여금 첨례(瞻禮)하게 했다. 인하여 군신(羣臣)에게 묻되 이것은() 무슨 상서(祥瑞)입니까. 혹 아뢰되 태일산에 유정선사가 불법을 깊이 밝혔고 박문강식(博聞强記; 널리 듣고 잘 기억다)합니다. 황제가 곧 반조(頒詔; 조칙을 頒布)하여 스님을 이르게 했다. 황제가 그 일을 묻자 사왈(師曰) ()이 듣기로 사물은 헛되이 응함이 없다 했으니 이것은 곧 폐하(陛下)의 신심(信心)을 계시(啓示; )했을 뿐입니다. 고로 계경(契經; 법화경)에 이르되 응당 차신(此身)을 써야 득도(得度)할 자에겐 곧 차신(此身)을 나타내어 설법한다. 제왈(帝曰) 보살의 몸은 이미 나타났으나 다만() 설법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왈 폐하가 이것을 보시매 이것이 상(; 凡常)이 됩니까, 비상(非常)입니까. 믿습니까, 믿지 않으십니까. 제왈(帝曰) 희기(希奇)한 일이며 짐이 깊이 믿습니다. 사왈 폐하는 이미 설법을 들어 마쳤습니다. 황정(皇情)이 열예(悅豫)했고 미증유를 얻었다. 천하 사원에 조칙하여 각기 관음상(觀音像)을 건립케 해 수휴(殊休; 특수히 아름다움)에 보답했다. 스님을 내도량(內道場)에 머물게 했는데 누차(屢次) 고별하고 입산하려 하자 조령(詔令)으로 성수사(聖壽寺)에 거주하게 했다. 무종(武宗)이 즉위함에 이르러 스님이 홀연히 종남산에 들어가 은거했다. 사람이 그 연고를 묻자 사왈 내가 구수(仇讎; 怨讐)를 피한다. 마친 후에 사유(闍維)하여 사리 49()을 거두었고 건탑(建塔)했다.

終南山; 섬서 장안현 서방 약 29에 위치함. 동쪽 남전(藍田)에서 일어나 서쪽 미현(郿縣)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8백여 리에 뻗쳤으니 진령산맥(秦嶺山脈)의 일부분이 됨. 또 명칭이 중남산ㆍ태을산ㆍ지폐산이니 약칭이 남산(南山). 당대 화엄종 제1조 두순(杜順; 法順)이 종남산에 은거함으로 인해 세칭이 종남법순(終南法順)이며 지엄(智儼)이 남산 지상사(至相寺)에 거주하며 화엄종을 홍양(弘揚)한지라 세칭이 지상대사(至相大師)며 정토종의 선도(善導)가 남산 오진사(悟眞寺)에 거주하며 염불로 수행한지라 세칭이 종남대사(終南大師)며 율종의 도선(道宣)이 남산 풍덕사(豐德寺)에 거주하며 사분율종(四分律宗)을 홍양한지라 그 계통을 곧 일컬어 남산율종(南山律宗)이라 함 [자은사삼장법사전10. 개원석교록8. 장안지9, 12. 고금도서집성산천전제65].

勞止; 신로(辛勞). 노고(勞苦).

御饌; ()는 제왕의 소용(所用)이나 혹 이와 유관한 사물.

梵相; 梵云梵摩 婆羅賀摩 跋濫摩 此云寂靜 淸淨 離欲 梵相卽淸淨的形相

陛下; 조정사원2. 폐하(陛下) 응소(應劭)가 가로되 폐()란 것은 당()에 오르는 섬돌이니 왕자(王者)는 반드시 집병(執兵)이 계폐(階陛)의 곁에 별여 있으며 군신(群臣)이 지존(至尊)과 말하면서 감히 지척(指斥; )하지 못하므로 고로 호칭하기를 폐하(陛下)에 있는 자가 이를 아뢴다 함이니 비()를 인해 존()에 상달(上達)함의 뜻임. 약금(若今; 如今)에 전하(殿下)ㆍ합하(閤下)ㆍ시자(侍者)ㆍ집사(執事)라 호칭함도 다 이런 종류임.

契經; 십이분교(十二分敎; 十二部經)의 하나. 범어 수다라(修多羅)는 화언(華言)으로 계경임.

悅豫; 희열(喜悅). 유쾌(愉快).

 

破竈墮和尙法嗣

嵩山峻極禪師

僧問 如何是修善行人 師曰 擔枷帶鏁 曰 如何是作惡行人 師曰 修禪入定 曰 某甲淺機 請師直指 師曰 汝問我惡 惡不從善 汝問我善 善不從惡 僧良久 師曰 會麽僧 曰 不會 師曰 惡人無善念 善人無惡心 所以道善惡如浮雲 俱無起滅處 僧於言下大悟 後破竈墮聞擧 乃曰 此子會盡諸法無生

擔枷帶鏁; 比喩束縛太多 枷 古代刑具 一般緝押犯人

 

숭산(嵩山) 준극선사(峻極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선행(善行)을 닦는 사람입니까. 사왈(師曰) 담가대쇄(擔枷帶鏁)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악행을 짓는 사람입니까. 사왈 수선(修禪)하고 입정(入定)한다. 가로되 모갑(某甲)은 천기(淺機)니 스님의 직지(直指)를 청합니다. 사왈 네가 나에게 악()을 물으니 악은 선()을 좇지 않고 네가 나에게 선을 물으니 선은 악을 좇지 않는다. 중이 양구(良久)했다. 사왈 아느냐. 승왈(僧曰) 알지 못합니다. 사왈 악인(惡人)은 선념(善念)이 없고 선인(善人)은 악심(惡心)이 없다. 소이로 말하되 선악은 부운(浮雲)과 같아서 모두() 기멸(起滅)하는 곳이 없다. 중이 언하(言下)에 대오했다. 후에 파조타(破竈墮)가 듦을 듣고 이에 가로되 차자(此子; 는 남자)는 제법무생(諸法無生)을 알아 다했다(會盡)

擔枷帶鏁; 속박이 매우 많음에 비유함. 가쇄(; 칼과 쇠사슬 혹 手匣)는 고대의 형구니 일반적으로 범인을 집압(緝押; 묶고 가둠).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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