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五祖婆舍斯多尊者
罽賓國人也 姓婆羅門 父寂行 母常安樂 初母夢得神劒 因而有孕 旣誕拳左手 遇師子尊者顯發宿因 密授心印 後適南天 至中印度 彼國王名迦勝 設禮供養 時有外道 號無我尊 先爲王禮重 嫉祖之至 欲與論義 幸而勝之 以固其事 乃於王前謂祖曰 我解默論 不假言說 祖曰 孰知勝負 彼曰 不爭勝負 但取其義 祖曰 汝以何爲義 彼曰 無心爲義 祖曰 汝旣無心 豈得義乎 彼曰 我說無心 當名非義 祖曰 汝說無心 當名非義 我說非心 當義非名 彼曰 當義非名 誰能辨義 祖曰 汝名非義 此名何名 彼曰 爲辨非義 是名無名 祖曰 名旣非名 義亦非義 辨者是誰 當辨何物 如是往返五十九番 外道杜口信伏 于時祖忽面北 合掌長吁曰 我師師子尊者 今日遇難 斯可傷焉 卽辭王南邁 達于南天 潛隱山谷 時彼國王名天德 迎請供養 王有二子 一名德勝 凶暴而色力充盛 一名不如密多 和柔而長嬰疾苦 祖乃爲陳因果 王卽頓釋所疑 又有呪術師 忌祖之道 乃潛置毒藥于飮食中 祖知而食之 彼返受禍 遂投祖出家 祖卽與授具 後六十載 德勝卽位 復信外道 致難于祖 不如密多以進諫被囚 王遽問祖曰 予國素絕妖訛 師所傳者當是何宗 祖曰 王國昔來實無邪法 我所得者 卽是佛宗 王曰 佛滅已千二百載 師從誰得邪 祖曰 飮光大士親受佛印 展轉至二十四世師子尊者 我從彼得 王曰 予聞師子比丘不能免於刑戮 何能傳法後人 祖曰 我師難未起時 密授我信衣法偈 以顯師承 王曰 其衣何在 祖卽於囊中出衣示王 王命焚之 五色相鮮 薪盡如故 王卽追悔致禮師子 眞嗣旣明 乃赦密多 密多遂求出家 祖問曰 汝欲出家 當爲何事 密多曰 我若出家 不爲其事 祖曰 不爲何事 密多曰 不爲俗事 祖曰 當爲何事 密多曰 當爲佛事 祖曰 太子智慧天至 必諸聖降迹 卽許出家 六年侍奉 後於王宮受具羯磨之際 大地震動 頗多靈異 祖乃命之曰 吾已衰朽 安可久留 汝當善護正法眼藏 普濟羣有 聽吾偈曰 聖人說知見 當境無是非 我今悟眞性 無道亦無理 不如密多聞偈 再啓祖曰 法衣宜可傳授 祖曰 此衣爲難故假以證明 汝身無難 何假其衣 化被十方 人自信向 不如密多聞語 作禮而退 祖現于神變 化三昧火自焚 平地舍利可高一尺 德勝王創浮圖而祕之 當東晉明帝太寧三年乙酉歲也
●妖訛; 怪誕虛妄
●佛印; 印者決定不變之義 諸法實相爲諸佛之大道 決定不變 故名佛印
●師承; 謂弟子承受師匠之法敎
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 존자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니 성은 바라문이며 부(父)는 적행(寂行)이며 모(母)는 상안락(常安樂)이다. 처음에 모친의 꿈에 신검(神劒)을 얻었는데 인하여 잉태(孕胎)가 있었다. 이미 탄생했으나 왼손을 주먹 쥐었고 사자존자(師子尊者)를 만나 숙인(宿因)을 환히 발현(發現)하고 심인(心印)을 밀수(密授)했다. 후에 남천(南天)에 갔다가(適) 중인도(中印度)에 이르렀다. 거기의 국왕은 이름이 가승(迦勝)이었는데 예배를 베풀고 공양했다. 때에 외도가 있었으니 호가 무아존(無我尊)이며 앞서 왕이 예중(禮重)했다. 조사의 이름(至)을 질투했고 논의(論義)코자 하였으니 요행(僥倖)으로 그에게 이겨 그 일을 확고(確固)히 하려 했다. 이에 왕 앞에서 조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묵론(默論)할 줄 아나니 언설을 빌리지 않는다. 조왈(祖曰) 누가(孰) 승부(勝負)를 아느냐. 그가 가로되 승부를 다투지 않고 단지 그 뜻(義)만 취한다. 조왈(祖曰) 너는 무엇으로써 뜻을 삼느냐. 그가 가로되 무심(無心)으로 뜻을 삼는다. 조왈 네가 이미 무심이거늘 어찌(安) 뜻을 얻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무심을 설함은 이름(名)에 당(當)하고 뜻이 아니다. 조왈 네가 무심을 설함은 이름에 당하고 뜻이 아니지만 나는 비심(非心)을 설하나니 뜻에 당하고 이름이 아니다. 그가 가로되 뜻에 당하고 이름이 아니면 누가 능히 뜻을 분변하는가. 조왈 네가 이름은 뜻이 아니라 하니 이 이름은 어떤 이름인가. 그가 가로되 뜻이 아님을 분변하나니 이 이름은 이름이 없다. 조왈 이름이 이미 이름이 아니라면 뜻도 또한 뜻이 아니거늘 분변하는 자는 이 누구며 마땅히 무슨 물건을 분변하느냐. 이와 같이 왕반(往返)하기 59번(翻)이었다. 외도가 입을 닫고(杜口) 신복(信伏)했다. 우시(于時; 當時)에 조사가 홀연히 얼굴을 북(北)으로 하여 합장하고 길게 탄식(歎息; 吁)하며 가로되 나의 스승 사자존자가 금일 우난(遇難)했으니 이것이 가히 상심(傷心)스럽다. 곧 왕에게 고별하고 남쪽으로 가서(邁) 남천(南天; 남천축)에 도달하여 산곡(山谷)에 잠은(潛隱)했다. 당시에 그 나라 왕은 이름이 천덕(天德)이었고 영청(迎請)하여 공양했다. 왕에게 2자(子)가 있었으니 1은 이름이 덕승(德勝)인데 흉포(凶暴)하면서 색력(色力; 氣力. 精力)이 충성(充盛)했고 1은 이름이 불여밀다(不如密多)인데 화유(和柔; 柔和)하면서 늘(長) 질고(疾苦)를 조수(遭受; 嬰)했다. 조사가 인과를 진술(陳述)했고 왕이 곧 의심되던 바가 문득 풀렸다. 또 주술사(呪術師)가 있어 조사의 도를 시기(猜忌)했고 이에 몰래(潛) 음식 가운데 독약을 놓았는데 조사가 알고도 이를 먹었더니 그가 도리어 화를 받았다. 드디어 조사에게 투신해 출가했고 조사가 곧 수구(受具)하여 주었다. 60재(載) 후에 득승(得勝)이 즉위(卽位)했다. 다시 외도를 믿어 조사에게 난(難)이 이르렀다(致). 불여밀다(不如密多)가 나아가 간(諫)했으나 갇힘(囚)을 입었다. 왕이 급히 조사에게 물어 가로되 나의 나라는 본디(素) 요와(妖訛)를 단절했습니다. 스님이 전(傳)하는 바의 것은 마땅이 이 어떤 종(宗)입니까. 조왈(祖曰) 왕의 나라는 지난 이래(昔來)로 실로 사법(邪法)이 없었습니다. 내가 얻은 바의 것은 즉시(卽是) 불종(佛宗)입니다. 왕왈(王曰) 불멸(佛滅)한 지 이미 천이백재(千二百載)이거늘 스님은 누구로 좇아 얻었습니까. 조왈 음광대사(飮光大士)가 불인(佛印)을 친수(親受)했고 전전(展轉)하여 24세(世) 사자존자에 이르렀으며 내가 그로 좇아 얻었습니다. 왕왈 내가 듣건대 사자비구는 능히 형륙(刑戮)을 면치 못했거늘 어찌 능히 후인에게 전법했겠습니까. 조왈 나의 스승은 난(難)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나에게 신의(信衣)와 법게(法偈)를 몰래 주셔서 사승(師承)을 밝혔습니다. 왕왈 그 옷이 어디에 있습니까. 조사가 곧 주머니(囊) 속에서 옷을 꺼내어 왕에게 보였다. 왕이 명령해 그것을 태웠다. 5색의 상(相)이 선명(鮮明)하면서 섶이 다해도 아까(故)와 같았다. 왕이 곧 추회(追悔; 지난 일을 뉘우침)하고 사자(師子)에게 예배를 드렸다. 진사(眞嗣)가 이미 밝혀졌고 이에 밀다(密多)를 사면(赦免)했다. 밀다가 드디어 출가를 구하자 조사가 물어 가로되 네가 출가하려고 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이냐. 밀다가 가로되 내가 만약 출가하면 그 일을 위하지 않겠습니다. 조왈(祖曰) 무슨 일을 위하지 않음인가. 밀다가 가로되 속사(俗事)를 위하지 않겠습니다. 조왈 마땅히 무슨 일을 하겠느냐. 밀다가 가로되 마땅히 불사(佛事)를 하겠습니다. 조왈 태자의 지혜는 하늘에서 이르렀으니 반드시 제성(諸聖)이 강적(降迹)하리라. 곧 출가를 허락했다. 6년 동안 시봉했고 후에 왕궁에서 수구갈마(受具羯磨)하던 즈음에 대지가 진동하고 영이(靈異)가 파다(頗多)했다. 조사가 이에 명령해 가로되 내가 이미 쇠후(衰朽)했거늘 어찌(安) 가히 오래 머물겠는가. 너는 마땅히 정법안장을 잘 보호하고 군유(群有; 중생)를 널리 제도하라. 나의 게를 들어라. 성인(聖人)이 지견(知見)을 설하나니/ 경계에 당해 시비가 없다/ 내가 이제 진성(眞性)을 깨달았나니/ 도(道)도 없고 또한 리(理)도 없다. 불여밀다가 게를 듣고 다시 조사에게 사뢰어(啓) 가로되 법의(法衣)를 의당 가히 전수(傳授)해야 합니까. 조왈 이 옷은 난(難) 때문에 고로 빌려(假) 증명했거니와 너의 몸에 난이 없거늘 어찌 그 옷을 빌리겠는가. 교화가 시방에 미치면 사람들이 스스로 신향(信向)하리라. 불여밀다가 말씀을 듣고 작례(作禮)하고 물러났다. 조사가 신변(神變)을 나타내고 화삼매화(化三昧火)로 스스로 태웠는데 평지에 사리가 가히 높이 1척이었다. 득승왕(得勝王)이 부도(浮圖; 佛寺. 佛塔)를 창건(創建)하고 그것을 숨겼다(祕). 동진(東晉) 명제(明帝) 태녕(太寧) 3년 을유세(乙酉歲; 325)에 상당한다.
●妖訛; 괴탄(怪誕; 괴이하고 荒唐함)하고 허망함.
●佛印; 인(印)이란 것은 결정코 불변의 뜻. 제법실상은 제불의 대도가 되며 결정코 불변하므로 고로 이름이 불인임.
●師承; 이르자면 제자가 사장(師匠)의 법교를 승수(承受)함.
二十六祖不如密多尊者
南印度天德王之次子也 旣受度得法 至東印度 彼王名堅固 奉外道師長爪梵志 暨尊者將至 王與梵志同覩白氣貫于上下 王曰 斯何瑞也 梵志預知祖入境 恐王遷善 乃曰 此是魔來之兆耳 何瑞之有 卽鳩諸徒衆議曰 不如密多將入都城 誰能挫之 弟子曰 我等各有呪術 可以動天地入水火何患哉 祖至 先見宮牆有黑氣 乃曰 小難耳 直詣王所 王曰 師來何爲 祖曰 將度衆生 王曰 以何法度 祖曰 各以其類度之 時梵志聞言 不勝其怒 卽以幻法 化大山於祖頂上 祖指之 忽在彼衆頭上 梵志等怖懼投祖 祖愍其愚惑 再指之 化山隨滅 乃爲王演說法要 俾趣眞乘 謂王曰 此國當有聖人而繼於我 是時有婆羅門子 年二十許 幼失父母 不知名氏 或自言纓絡 故人謂之纓絡童子 遊行閭里 丐求度日 若常不輕之類 人問 汝行何急 卽答曰 汝行何緩 或曰 何姓 乃曰 與汝同姓 莫知其故 後王與尊者同車而出 見纓絡童子稽首於前 祖曰 汝憶往事否 童曰 我念遠劫中與師同居 師演摩訶般若 我轉甚深修多羅 今日之事 葢契昔因 祖又謂王曰 此童子非他 卽大勢至菩薩是也 此聖之後 復出二人 一人化南印度 一人緣在震旦 四五年內 却返此方 遂以昔因故名般若多羅 付法眼藏 偈曰 眞性心地藏 無頭亦無尾 應緣而化物 方便呼爲智 祖付法已 卽辭王曰 吾化緣已終 當歸寂滅 願王於最上乘 無忘外護 卽還本座 跏趺而逝 化火自焚 收舍利塔而瘞之 當東晉孝武帝太元十三年戊子歲也
●梵志; 一志求梵天之法者云梵志 瑜伽論記十九曰 梵者西國音 此翻爲寂靜 謂涅槃也 志是此方語 志求於梵 故云梵志也 二又一切外道之出家者名梵志 智度論五十六曰 梵志者 是一切出家外道 若有承用其法者亦名梵志
●常不輕; 常不輕菩薩 略稱不輕菩薩 法華經常不輕菩薩品中所說之菩薩 過去威音王佛滅後像法時出世之菩薩比丘 卽釋尊之前身 此菩薩每見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皆悉禮拜讚歎而作是言 我深敬汝等 不敢輕慢 所以者何 汝等皆行菩薩道 當得作佛 衆人聞言而有生怒者 以瓦石木杖等擊之 然常不輕菩薩恭敬依然 乃至遠見四衆 亦復禮拜讚歎如昔 以故增上慢之四衆稱之爲常不輕 [法華論下 法華經文句十上 法華經玄贊要集三十四]
●大勢至菩薩; 觀無量壽經曰 以智慧光 普照一切 令離三塗 得無上力 是故號此菩薩名大勢至
●震旦; 指中國 慧琳音義二十二 震旦國 或曰支那 亦云眞丹 此翻爲思惟 以其國人多所思慮多所計詐故以爲名 卽今此漢國是也 ▲祖庭事苑二 東震 或云震旦 或云眞丹 或旃丹 或指難 皆梵音訛轉 竝飜漢地 又婆沙中有二音 一云指那 此云文物國 謂此方是衣冠文物之地也 二云指難 此云邊鄙 謂此方非中國也 西域記飜摩訶支那爲大漢國 或謂日出東隅 其色如丹 故云震旦眞丹者 此皆訛說
26조 불여밀다(不如密多; 梵 puṇyamitra) 존자
남인도(南印度) 천덕왕(天德王)의 차자(次子)다(전등록에 得勝王의 태자다로 지었음). 이미 수도(受度; 得度)하고 득법(得法)하자 동인도(東印度)에 이르렀다. 거기의 왕은 이름이 견고(堅固)였고 외도사(外道師) 장조범지(長爪梵志)를 받들었다. 존자가 장차 이르려 함에 이르자(暨) 왕과 범지가 함께 백기(白氣)가 상하(上下)를 관통함을 보았다. 왕왈(王曰) 이것이 무슨 상서(祥瑞)입니까. 범지가 조사가 입경(入境)한 줄 미리 알았으나 왕이 천선(遷善)할까 염려하여 이에 가로되 이것은 이 마(魔)가 오는 징조(徵兆)일 따름이거늘 무슨 상서(祥瑞)가 있겠습니까. 곧 모든 도중(徒衆)을 모아(鳩) 의논해 가로되 불여밀다가 장차 도성(都城)에 들어온다면 누가 능히 그를 꺾겠는가(挫). 제자가 가로되 아등(我等)은 각자 주술(呪術)이 있어 가이(可以; 以는 조사) 천지를 움직이고 수화(水火)에 들어가거늘 무엇을 근심(患)하겠습니까. 조사가 이르러 먼저 궁장(宮牆)에 흑기(黑氣)가 있음을 보고 이에 가로되 소난(小難)일 뿐이다. 바로(直) 왕의 처소로 나아갔다. 왕왈(王曰) 스님이 와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조왈(祖曰) 장차 중생을 제도할 것입니다. 왕왈 무슨 법으로써 제도합니까. 조왈 각기 그 종류로써 제도하겠습니다. 때에 범지가 말을 듣자 그 분노(忿怒; 怒)를 이기지 못하고 곧 환법(幻法)으로써 조사의 정상(頂上)에 대산(大山)을 화작(化作)했다. 조사가 그것을 가리키자 홀연히 그 무리의 두상(頭上)에 있었다. 범지 등이 포구(怖懼)하며 조사에게 투항했다. 조사가 그 우혹(愚惑)을 불쌍히 여겨 다시 그것을 가리키자 화산(化山)이 따라서 없어졌다. 이에 왕을 위해 법요(法要)를 연설하여 진승(眞乘)으로 취향하게(俾趣) 했다. 왕에게 일러 가로되 이 나라에 마땅히 성인(聖人)이 있어 나를 계승(繼承)할 것입니다. 이때 바라문의 아들이 있었으니 나이는 20허(許; 가량. 쯤)였고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명씨(名氏)를 알지 못했다. 혹 스스로 말하기를 영락(瓔珞)이라 한지라 고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영락동자(瓔珞童子)라 했다. 여리(閭里; 閭閻)를 유행(遊行)하며 개구(匃求; 乞求)로 날을 지냈으며 상불경(常不輕)의 무리(類)와 같았다(若). 사람이 묻되 너는 왜 행(行)이 급하냐. 곧 답해 가로되 너는 왜 행이 느리냐(慢). 혹 가로되 성(姓)이 무엇이냐. 이에 가로되 너와 같은 성이다. 그 연고를 알지 못했다. 후에 왕이 존자와 더불어 동거(同車)로 나갔는데 보매 영락동자가 앞에서 계수(稽首)했다. 조왈(祖曰)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느냐. 동자가 가로되 내가 억념(憶念)컨대 원겁(遠劫) 중에 스님과 더불어 동거(同居)했습니다. 스님은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연설했고 나는 심심(甚深)한 수다라(修多羅)를 굴렸으니 금일지사(今日之事)는 대개 석인(昔因)에 계합(契合)합니다. 조사가 또 왕에게 일러 가로되 이 동자는 다른 게 아니라 곧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이것입니다. 이 성인의 후에 다시 2인이 출세하리니 1인은 남인도(南印度)를 교화하고 1인은 화연(化緣)이 진단(震旦)에 있는데 사오 년 내에 도리어 이 지방에 돌아올 것입니다. 드디어 석인(昔因)을 쓴(以) 연고로 이름해 반야다라(般若多羅)며 법안장(法眼藏)을 부촉했다. 게왈(偈曰) 진성(眞性)을 심지(心地)에 감췄나니/ 머리도 없고 또한 꼬리도 없다/ 응연(應緣)하여 중생(物)을 교화하나니/ 방편으로 호칭(呼稱)해 지(智)라 한다. 조사가 부법(付法)하고 나서 곧 왕에게 고별하며 가로되 나의 화연(化緣)이 이미 끝났으니 마땅히 적멸로 돌아가겠습니다. 원컨대 왕은 최상승(最上乘)에서 외호(外護)를 잊지 마십시오. 곧 본좌(本坐)로 돌아와 가부(跏趺)하고 떠나면서(逝) 화화(化火)로 자분(自焚)했다. 왕이 사리를 거두어 탑(塔; 建塔)하고 그것을 묻었다. 동진(東晉)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13년 무자세(戊子歲; 388)에 상당한다.
●梵志; 1. 뜻(志)에 범천(梵天)의 법을 구하는 자를 범지라고 이름. 유가론기19에 가로되 범(梵)이란 것은 서국음(西國音)이며 여기에선 적정(寂靜)으로 번역하나니 이르자면 열반이다. 지(志)는 곧 이 지방의 말이니 뜻(志)에 범(梵)을 구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범지다. 2. 또 일체 외도(外道)의 출가자를 범지라고 이름함. 지도론56에 가로되 범지란 것은 이 일제의 출가외도다. 만약 그 법을 승용(承用)함이 있는 자는 또한 이름이 범지다.
●常不輕;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니 약칭이 불경보살(不輕菩薩).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중에 설한 바의 보살임. 과거 위음왕불이 멸도한 후 상법(像法) 시에 출세한 보살비구(菩薩比丘)니 곧 석존의 전신(前身)임. 이 보살은 매양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보면 모두 다 예배하고 찬탄하며 이 말을 지었으니 나는 깊이 너희 등을 공경하고 감히 경만하지 않는다. 소이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너희 등은 모두 보살도를 행하고 당래에 부처가 됨을 얻으리라. 뭇 사람이 말을 듣고 분노를 내는 자가 있어 와석(瓦石)이나 목장(木杖) 등으로 그를 때렸음. 그러나 상불경보살의 공경은 의연(依然; 여전)하였고 내지 멀리서 4중(衆)을 보고 또한 다시 예배하고 찬탄함이 지난번(昔)과 같았음. 연고로 증상만의 4중이 그를 일컬어 상불경이라 했음 [법화론하. 법화경문구10상. 법화경현찬요집34].
●大勢至菩薩; 관무량수경에 가로되 지혜의 빛으로 일체를 널리 비추어 3도(塗)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하나니 이런 고로 이 보살을 호하여 대세지(大勢至)로 이름한다.
●震旦; 중국을 가리킴. 혜림음의22. 진단국(震旦國) 혹은 가로되 지나(支那)며 또 이르되 진단(眞丹)이니 여기에선 사유(思惟)로 번역한다. 그 나라 사람은 사려하는 바가 많고 계사(計詐)하는 바가 많은 고로 이름을 삼았다. 즉금의 이 한국(漢國)이 이것이다. ▲조정사원2. 동진(東震) 혹은 이르되 진단(震旦)이며 혹은 이르되 진단(眞丹)이며 혹은 전단(旃丹)이라 하고 혹은 지난(指難)이라 하거니와 다 범음의 와전(訛轉)이며 모두 한지(漢地)로 번역함. 또 바사(婆沙) 중에 2음이 있으니 1은 이르되 지나(指那)며 여기에선 이르되 문물국이니 이르자면 이 지방은 이 의관문물(衣冠文物)의 땅임. 2는 이르되 지난(指難)이며 여기에선 이르되 변비(邊鄙)니 이르자면 이 지방은 중국(中國)이 아님. 서역기에 마하지나(摩訶支那)를 번역해 대한국(大漢國)이라 했으며(서역기5에 마하지나는 大唐國이라 했음) 혹은 이르기를 해가 동쪽 모퉁이에서 솟아 그 색이 단(丹)과 같으므로 고로 이르되 진단(震旦)ㆍ진단(眞丹)이라 하는 것은 이는 다 잘못된 설임.
二十七祖般若多羅尊者
東印度人也 旣得法已 行化至南印度 彼王名香至 崇奉佛乘 尊重供養 度越倫等 又施無價寶珠 時王有三子 曰月淨多羅 曰功德多羅 曰菩提多羅 其季開士也 祖欲試其所得 乃以所施珠問三王子曰 此珠圓明 有能及否 第一王子第二王子皆曰 此珠七寶中尊 固無踰也 非尊者道力 孰能受之 第三王子曰 此是世寶 未足 爲上 於諸寶中 法寶爲上 此是世光 未足爲上 於諸光中 智光爲上 此是世明 未足爲上 於諸明中 心明爲上 此珠光明 不能自照 要假智光 光辨於此 旣辨此已 卽知是珠 旣知是珠 卽明其寶 若明其寶 寶不自寶 若辨其珠 珠不自珠 珠不自珠者 要假智珠而辨世珠 寶不自寶者 要假智寶以明法寶 然則師有其道 其寶卽現 衆生有道 心寶亦然 祖歎其辯慧 乃復問曰 於諸物中 何物無相 曰 於諸物中 不起無相 又問 於諸物中 何物最高 曰 於諸物中 人我最高 又問 於諸物中 何物最大 曰 於諸物中 法性最大 祖知是法嗣 以時尙未至 且默而混之 及香至王厭世 衆皆號絕 唯第三子菩提多羅於柩前入定 經七日而出 乃求出家 旣受具戒 祖告曰 如來以正法眼付大迦葉 如是展轉 乃至於我 我今囑汝 聽吾偈曰 心地生諸種 因事復生理 果滿菩提圓 華開世界起 尊者付法已 卽於座上起立 舒左右手 各放光明二十七道 五色光耀 又踊身虛空 高七多羅樹 化火自焚空中 舍利如雨 收以建塔 當宋孝武帝大明元年丁酉歲
●無價; 無法計數價値之謂 如無價衣 無價寶珠等
●開士; 一梵語菩提薩埵之譯語 又作闡士 開者 明達之意 指開正道 以引導衆生者 經中多呼菩薩爲開士 ▲楞嚴經集註五 熏聞(熏聞記)云 古翻菩薩爲開士 開士始士也 開謂心初開故 始謂始發心故 二對僧人的尊稱 此指一
●法寶; 佛法僧三寶中法寶 卽佛所說之三藏十二部等一切敎法
●人我; 一卽我執 謂世俗者對于我的執著 二(由我執而引起的)逞强好勝 此指一
●法性; 指諸法之眞實體性 亦卽宇宙一切現象所具有之眞實不變之本性 又作眞如法性 眞法性 眞性 又爲眞如之異稱 法性乃萬法之本 故又作法本
●厭世; 一謂厭惡世上之一切 二去世 死的婉辭 近義詞棄世 此指二
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 梵 Prajñātāra) 존자
동인도(東印度) 사람이다. 이미 득법하고 나서 행화(行化)하다가 남인도(南印度)에 이르렀다. 거기의 왕은 이름이 향지(香至)였는데 불승(佛乘)을 숭봉(崇奉)하고 존중하며 공양했고 윤등(倫等; 同輩)을 도월(度越; 초과)했고 또 무가보주(無價寶珠)를 보시했다. 때에 왕에게 3자(子)가 있었으니 왈(曰) 월정다라(月淨多羅) 왈(曰) 공덕다라(功德多羅) 왈(曰) 보리다라(菩提多羅)였는데 그 막내(季)가 개사(開士)였다. 조사가 그들의 소득(所得)을 시험코자 하여 이에 보시한 바의 구슬로써 3왕자에게 물어 가로되 이 구슬은 원명(圓明)한데 능히 이에 미칠 게 있겠는가. 제1 왕자와 제2 왕자는 모두 가로되 이 구슬은 7보(寶) 중에 존귀하여 참으로(固) 넘을(踰) 게 없습니다. 존자의 도력이 아니면 누가 능히 이를 받겠습니까. 제3 왕자가 가로되 이것은 이 세보(世寶)라서 족히 상(上)이 되지 못하나니 제보(諸寶) 중에 법보(法寶)가 상(上)이 됩니다. 이것은 이 세광(世光)이라 족히 상이 되지 못하나니 제광(諸光) 중에 지광(智光)이 상이 됩니다. 이것은 이 세명(世明)이라 족히 상이 되지 못하나니 제명(諸明) 중에 심명(心明)이 상이 됩니다. 이 구슬의 광명은 능히 스스로 비추지 못하고 요컨대 지광(智光)을 빌려야 광(光)이 이것을 분변(分辨; 辯)하나니 이미 이것을 분변하고 나서야 곧 이 구슬인 줄 알며 이미 이 구슬인 줄 알아야 곧 그 보배(寶)임을 밝힙니다. 만약 그 보배임을 밝히면 보배가 스스로 보배가 아니며 만약 그 구슬을 분변하면 구슬이 스스로 구슬이 아닙니다. 구슬이 스스로 구슬이 아니란 것은 요컨대 지주(智珠)를 빌려야 세주(世珠)를 밝히며 보배가 스스로 보배가 아니란 것은 요컨대 지보(智寶)를 빌려야 법보(法寶)를 밝힙니다. 그러한 즉 스님이 그 도가 있어 그 보배가 곧 나타나며 중생이 도가 있고 심보(心寶)도 또한 그러합니다. 조사가 그의 변혜(辯慧)에 감탄했다. 이에 다시 물어 가로되 제물(諸物) 중에 어떤 물건이 상(相)이 없는가. 가로되 제물 중에 일으키지 않으면 상(相)이 없습니다. 우문(又問) 제물 중에 어떤 물건이 가장 높은가. 가로되 제물 중에 인아(人我)가 가장 높습니다. 우문(又問) 제물 중에 어떤 물건이 가장 큰가. 가로되 제물 중에 법성(法性)이 가장 큽니다. 조사가 이 법사(法嗣)임을 알았지만 때가 아직(尙) 이르지 않았으므로 다만(且) 침묵하며 이에 섞였다(混). 향지왕(香至王)이 염세(厭世)함에 이르자 대중이 모두 호절(號絕; 號哭하며 絶望)했지만 오직 제3자 보리다라만이 널(柩) 앞에서 입정(入定)했고 7일이 지나 나왔다. 이에 출가를 구했고 이미 구계(具戒)를 받자 조사가 고왈(告曰) 여래가 정법안(正法眼)을 대가섭에게 부촉하셨고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이에 나에게 이르렀다. 내가 이제 너에게 부촉하나니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심지(心地)에 모든 종자가 생하나니/ 사(事)로 인해 다시 리(理)를 낸다/ 결과가 만족하면 보리도 원만하나니/ 꽃이 피매 세계가 일어난다. 존자가 부법(付法)하고 나서 곧 좌상(坐上)에서 기립(起立)하여 좌우수(左右手)를 펴(舒) 각기 광명을 놓았는데 27도(道; 줄기)의 5색이 광요(光耀)했다. 또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높이가 7다라수(多羅樹)였고 화화(化火)로 공중에서 자분(自焚)했는데 사리가 비(雨)와 같았고 거두어 건탑(建塔)했다.
●無價; 가치를 계수(計數; 수를 계산)할 방법이 없음을 말함. 예컨대(如) 무가의(無價衣)ㆍ무가보주 등.
●開士; 1. 범어 보리살타의 번역어. 또 천사(闡士)로 지음. 개(開)란 것은 명달의 뜻이니 정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자를 가리킴. 경중에서 다분히 보살을 호칭하여 개사라 함. ▲릉엄경집주5. 훈문(熏聞; 훈문기)에 이르되 옛적에 보살을 번역해 개사(開士)라 하였다. 개사는 시사(始士)니 개(開)는 이르자면 마음이 처음 열린 연고며 시(始)는 이르자면 비로소 발심한 연고이다. 2. 승인에 대한 경칭.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法寶; 불ㆍ법ㆍ승 3보 중의 법보니 곧 불타가 설한 바의 3장(藏) 12부 등의 일체의 교법.
●人我; 1. 곧 아집이니 이르자면 세속자(世俗者)가 아(我)에 대한 집착. 2. (아집으로 말미암아 引起한) 강함을 자랑하면서 이기기를 좋아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法性; 제법의 진실한 체성(體性)을 가리킴. 또한 곧 우주 일체의 현상이 갖추어 있는 바의 진실하여 불변하는 본성임. 또 진여법성ㆍ진법성ㆍ진성으로 지음. 또 진여의 이칭(異稱)이 됨. 법성은 곧 만법의 근본인지라 고로 또 법본(法本)으로 지음.
●厭世; 1. 이르자면 세상의 일체를 염오(厭惡)함. 2. 세상을 떠남. 죽음의 완사(婉辭; 婉曲한 언사). 근의사(近義詞)는 기세(棄世).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祖因東印度國王請祖齋次 王乃問 諸人盡轉經 唯師爲甚不轉 祖曰 貧道出息不隨衆緣 入息不居蘊界 常轉如是經百千萬億卷 非但一卷兩卷
●轉經; 讀誦經典 與諷經同 轉 誦經 念呪
●貧道; 沙彌律儀要略增註下 沙門僧鍾 見齊武帝 稱貧道 帝曰 稱名亦無嫌 帝問王儉曰 先輩沙門對帝何稱 正殿還坐否 儉對曰 漢魏佛法未興 不見紀傳 自後稍盛 皆稱貧道 亦聞預坐 言貧道者 道謂三乘聖人所證之道 我於此道寡少 故曰貧道 論云 貧有二種 一財貧 二德貧 ▲慧琳音義二十六 沙門那 梵語也 此義譯云乏道 沙門名乏 那名道 僧稱云貧道 貧道者 卽謙退自卑之辭也 亦更有多義也
●蘊界; 五蘊與十八界 更加十二處謂之三科
조사가, 동인도(東印度) 국왕이 조사를 청해 재(齋)하던 차에 왕이 이에 묻되 모든 사람은 모두 전경(轉經)하는데 오직 스님은 무엇 때문에 전경하지 않습니까 함으로 인해 조왈(祖曰) 빈도(貧道)는 출식(出息)하면서 중연(衆緣)을 따르지 않고 입식(入息)하면서 온계(蘊界)에 거처하지 않습니다. 늘 이와 같은 경 백천만억 권을 전(轉)하나니 단지 1권 양권(卷兩)이 아닙니다.
●轉經; 경전을 독송함. 풍경(諷經)과 같음. 전(轉)은 송경(誦經), 염주(念呪; 주문을 외움).
●貧道; 사미율의요략증주하. 사문(沙門) 승종(僧鍾)이 제무제(齊武帝)를 상견하여 빈도(貧道)라고 일컫자 무제가 가로되 이름을 일컬어도 또한 혐오가 없습니다. 무제가 왕검(王儉)에게 물어 가로되 선배 사문이 제왕에게 대답하면서 무엇이라고 일컬었습니까. 정전(正殿)에서 도리어 앉았습니까. 왕검이 대답해 가로되 한위(漢魏)는 불법이 흥성하지 않아 기전(紀傳)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후로부터 조금 흥성하자 다 빈도라고 일컬었으며 또한 미리 앉았다고 들었습니다. 말한 빈도란 것은 도는 이르자면 3승(乘) 성인이 증득하는 바의 도며 내가 이 도에 과소(寡少)한지라 고로 가로되 빈도임. 논에 이르되 빈(貧)에 2종이 있다. 1은 재빈(財貧)이며 2는 덕빈(德貧)이다. ▲혜림음의26. 사문나(沙門那; 梵 śramaṇa 巴 samaṇa) 범어다. 여기에서 뜻을 번역해 이르면 핍도(乏道)다. 사문은 이름이 핍(乏)이며 나(那)는 이름이 도(道)다. 승려가 자칭해 이르기를 빈도라 한다. 빈도란 것은 곧 겸퇴(謙退)하며 스스로 낮춤의 언사다. 또 다시 많은 뜻이 있다.
●蘊界; 5온과 18계니 다시 12처를 더하면 이를 일러 3과(科)라 함.
東土祖師
初祖菩提達磨大師者
南天竺國香至王第三子也 姓刹帝利 本名菩提多羅 後遇二十七祖般若多羅至本國受王供養 知師密迹 因試令與二兄辨所施寶珠 發明心要 旣而尊者謂曰 汝於諸法 已得通量 夫達磨者 通大之義也 宜名達磨 因改號菩提達磨 祖乃告尊者曰 我旣得法 當往何國而作佛事 願垂開示 者曰 汝雖得法 未可遠遊 且止南天 待吾滅後六十七載 當往震旦 設大法藥 直接上根 愼勿速行 衰於日下 祖又曰 彼有大士 堪爲法器否 千載之下有留難否 者曰 汝所化之方 獲菩提者不可勝數 吾滅後六十餘年 彼國有難 水中文布 自善降之 汝至時南方勿住 彼唯好有爲功業 不見佛理 汝縱到彼 亦不可久留 聽吾偈曰 路行跨水復逢羊 獨自栖栖暗渡江 日下可憐雙象馬 二株嫰桂久昌昌 又問曰 此後更有何事 者曰 從是已去 一百五十年 而有小難 聽吾讖曰 心中雖吉外頭㐫 川下僧房名不中 爲遇毒龍生武子 忽逢小鼠寂無窮 又問 此後如何 者曰 却後二百二十年 林下見一人 當得道果 聽吾讖曰 震旦雖濶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雞解銜一粒粟 供養十方羅漢僧 復演諸偈 皆預讖佛敎隆替〈事具寶林傳及聖胄集〉 祖恭稟敎義 服勤左右垂四十年 未甞廢闕 迨尊者順世 遂演化本國
●發明; 明悟 發現 廣雅 發 明也 開也 ▲圓覺經普覺章 心花發明 照十方刹
●心要; 心爲心髓 要爲精要 謂法門之至極也 又心性上精要之法義也
●路行跨水復逢羊下; 祖庭事苑八 路行跨水忽逢羊 獨自棲棲暗渡江 日下可憐雙象馬 二株嫩桂久昌昌 此讖達摩西來始終之事 達摩始來見梁武帝 帝名衍 衍从行从水 故云路行跨水 帝旣不契 祖師遂有洛陽之游 故云逢羊 羊 陽聲相近也 祖師不欲人知其行 是夜航葦西邁 故曰暗渡江也 祖師西來 見梁魏二帝 此言日下雙象馬也 九年面壁於少林 故曰二株嫩桂也 久 九聲之近也
●已去; 表示從現在起到將來的時間 已 同以
●心中雖吉外頭㐫下; 祖庭事苑八 般若多羅 昔在天竺 授達五不偈一十一首 見註者三 其三曰 心中雖吉外頭凶 川下僧房名不中 爲遇毒龍生武子 忽逢小鼠寂無窮 此讖周武帝名邕 破滅佛敎 至庚子興復 故云小鼠 寂寞 謂邕也
●震旦雖濶無別路下; 祖庭事苑八 震旦雖闊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雞解銜一粒米 供養十方羅漢僧 此讖馬大師得法於讓和上之緣 無別路 其道一也 故馬大師名道一 兒孫 嗣子也 脚下行 所謂一馬駒子踏殺天下人也 金雞銜米 以讓和上金州人 雞知時而鳴 以覺未寤 羅漢僧 馬祖生漢州之什仿縣 受讓師法食之供
●隆替; 與興廢同義
●服勤; 謂服持職事勤勞 服 事也
●順世; 指僧之逝世 又作順化 順寂 取其順世道而死化示滅之義 按釋氏要覽下 佛門中稱死爲涅槃 圓寂 歸眞 歸寂 滅度 遷化 順世等 其意義皆同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磨; 梵 Bodhidharma) 대사(大師)란 자는
남천축국 향지왕(香至王)의 제3자니 성은 찰제리(刹帝利)며 본명은 보리다라(菩提多羅)였다. 후에 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만났으니 본국에 이르러 왕(향지왕)의 공양을 받았다. 스님의 밀적(密迹)을 알고 인하여 시험하되 2형과 더불어 보시한 바 보주(寶珠)를 분변(分辨)하게 하매 심요(心要)를 발명(發明)했다. 그러고선 존자가 일러 가로되 네가 제법(諸法)에 이미 통량(通量)함을 얻었다. 무릇 달마(達磨)란 것은 통대(通大)의 뜻이니 의당 이름을 달마라 하라. 인하여 보리달마(菩提達磨)로 개호(改號)했다. 조사가 이에 존자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이미 득법했으니 마땅히 어느 나라로 가서 불사(佛事)를 지어야 합니까. 원컨대 개시(開示)를 내리십시오. 존자가 가로되(者曰) 네가 비록 득법했지만 가히 원유(遠遊)하지 말고 다만(且) 남천(南天; 南天竺)에 머물다가(止) 내가 멸후(滅後) 67재(載)를 기다려 마땅히 진단(震旦)으로 가서 대법약(大法藥)을 베풀되 상근(上根)을 직접(直接)하고 삼가 원행(遠行)하지 말지니 일하(日下)에 쇠(衰)한다. 조사가 또 가로되 거기에 대사(大士)가 있어 가히(堪) 법기(法器)가 됩니까. 천재지하(千載之下)에 유난(留難; 無理하게 阻止함)이 있습니까. 존자가 가로되 네가 교화할 바의 지방에 보리(菩提)를 획득하는 자를 가히 모두(勝) 세지 못하리라. 내가 멸후(滅後) 60여 년에 그 나라에 환난(患難)이 있으며 수중문포(水中文布)하여 선자강지(善自降之)하니(이 2구는 뜻이 未詳) 네가 이를 때 남방에는 머물지 말아라. 거기에선 오직 유위공업(有爲功業)을 좋아하여 불리(佛理)를 보지 못한다. 네가 비록 거기에 이르더라도 또한 가히 오래 머물지 말아라.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로(路)를 행(行)하면서 수(水)를 넘고 다시 양(羊)을 만나며(路行跨水復逢羊)/ 독자(獨自)로 서서(栖栖)히 몰래 도강(渡江)하리라/ 일하(日下)에 가련(可憐)한 쌍상마(雙象馬)며/ 이주(二株)의 눈계(嫩桂; 嫩은 예쁠 눈)가 오래(久) 창창(昌昌)하리라. 또 문왈(問曰) 차후(此後)에 다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존자가 가로되 이 이거(已去)로 좇아 150년에 소난(小難)이 있으리니 나의 참(讖; 예언)을 들어라. 심중은 비록 길하나 외두(外頭; 外面)가 흉하나니(心中雖吉外頭㐫)/ 천하(川下)의 승방(僧房)이 명(名)이 부중(不中)이다/ 독룡을 만나 무자(武子)를 생(生)했더니/ 홀연히 소서(小鼠)를 만나 적(寂)이 무궁(無窮)하다. 또 묻되 차후(此後)엔 어떻습니까. 존자가 가로되 도리어 220년 후에 임하(林下)에서 한 사람을 보고 마땅히 도과(道果)를 얻으리니 나의 참(讖)을 들어라. 가로되 진단이 비록 넓지만 다른 길이 없고(震旦雖濶無別路)/ 요컨대 아손(兒孫)이 각하(脚下)에 행(行)함을 빌린다/ 금계(金雞)가 일립(一粒)의 속(粟)을 머금을 줄 알아/ 십방(十方)의 라한승(羅漢僧)에게 공양하리라. 다시 여러 게를 부연(敷演; 演)했는데 모두 불교의 융체(隆替; 興廢)를 예참(預讖; 미리 예언)했다〈事는 寶林傳 및 聖胄集에 갖췄다〉. 조사가 교의(敎義)를 공손(恭遜)히 받았다(稟). 좌우에서 복근(服勤)하기 40년을 기울이면서(垂) 일찍이 폐궐(廢闕)하지 않았고 존자가 순세(順世)함에 이르러(迨) 드디어 본국에서 연화(演化; 교화를 펴다)했다.
●發明; 명오(明悟; 환히 깨침). 발현(發現; 숨겨져 있던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 보임. 또는 드러나게 함). 광아 발(發) 명(明)이다. 개(開)다. ▲원각경 보각장. 심화(心花)가 발명(發明)하여 시방찰을 비추다.
●心要; 심은 심수(心髓)가 되고 요는 정요(精要)가 되나니 이르자면 법문의 지극임. 또 심성상(心性上)의 정요한 법의(法義)임.
●路行跨水復逢羊下; 조정사원8 로(路)를 행(行)하면서 수(水)를 넘고 홀연히 양(羊)을 만나며/ 독자(獨自)로 처처(悽悽)히 몰래 도강(渡江)하리라/ 일하(日下)에 가련(可憐)한 쌍상마(雙象馬)며/ 이주(二株)의 눈계(嫩桂; 嫩은 예쁠 눈)가 오래(久) 창창(昌昌)하리라. 이것은 달마가 서래(西來)한 시종의 일을 참(讖)했다. 달마가 처음 와서 양무제(梁武帝)를 뵈었는데 제(帝)의 이름이 연(衍)이다. 연(衍)은 행(行)을 좇고 수(水)를 좇는지라 고로 이르되 로행과수(路行跨水)이다. 제(帝)가 이미 계합하지 못했으므로 조사가 드디어 낙양(洛陽)의 노닒이 있었다. 고로 이르되 봉양(逢羊)이니 양(羊)은 양성(陽聲)과 서로 가깝다. 조사가 그 행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이 밤에 위(葦; 갈대 위. 작은 배)를 운항하여 서쪽으로 갔으므로 고로 가로되 암도강(暗渡江)이다. 조사가 서래(西來)하여 양위(梁魏)의 이제(二帝)를 보았으니 이것은 일하(日下)의 쌍상마(雙象馬)를 말함이다. 구년(九年) 동안 소림(少林)에서 면벽했으므로 고로 가로되 이주눈계(二株嫩桂)이다. 구(久)는 구(九)와 소리가 가깝다.
●已去; 현재로 좇아 일어나 장래에 이르는 시간을 표시함. 이(已)는 이(以)와 같음.
●心中雖吉外頭㐫下; 조정사원8 반야다라(般若多羅) 옛적에 천축에 있으면서 달오불게(達五不偈; 未詳. 菩提達磨로 의심됨)에게 준 게 11수(首)인데 주(註)가 보이는 것이 셋이다. 그 3에 가로되 심중은 비록 길하나 외두(外頭)가 흉하나니/ 천하(川下)의 승방(僧房)이 명(名)이 부중(不中)이다/ 독룡을 만나 무자(武子)를 생(生)했더니/ 홀연히 소서(小鼠)를 만나 적(寂)이 무궁(無窮)하다. 이것은 주무제(周武帝; 재위 560-578)의 이름이 옹(邕)이며 불교를 파멸(破滅)하였다가 경자(庚子; 580)에 이르러 흥복(興復)함을 참(讖)했다. 고로 이르되 소서(小鼠)며 적막(寂寞)은 이르자면 옹(邕)이다.
●震旦雖濶無別路下; 조정사원8. 진단이 비록 넓지만 다른 길이 없고(震旦雖闊無別路)/ 요컨대 아손(兒孫)이 각하(脚下)에 행함을 빌린다/ 금계(金雞)가 일립(一粒)의 미(米)를 머금을 줄 알아/ 십방(十方)의 라한승(羅漢僧)에게 공양하리라. 이것은 마대사(馬大師)가 양화상(讓和上)에게서 득법한 인연을 참(讖; 예언)했다. 다른 길이 없음은 그 도(道)가 일(一)이니 고로 마대사의 이름이 도일(道一)이다. 아손(兒孫)은 사자(嗣子)며 각하행(脚下行)은 이른 바 일마구자(一馬駒子)가 천하인을 답살(踏殺)함이다. 금계(金雞)가 미(米)를 머금음은 양화상(讓和上)이 금주(金州) 사람이기 때문이니 계(雞)는 때를 알아 울므로 미오(未寤)를 깨닫게 함이다. 라한승(羅漢僧)이란 마조가 한주(漢州)의 십방현(什仿縣)에서 태어났음이며 회양선사(懷讓禪師)의 법식(法食)의 공양을 받았다.
●隆替; 흥폐(興廢)와 같은 뜻.
●服勤; 이르자면 직사(職事)를 복지(服持)하여 근로함. 복(服)은 사(事).
●順世; 승인의 서세(逝世)를 가리킴. 또 순화(順化)ㆍ순적(順寂)으로 지음. 그가 세도(世道)에 순응해 사화(死化)하고 시멸(示滅)함의 뜻을 취했음. 석씨요람하를 안험컨대 불문 중에서 죽음을 일컬어 열반ㆍ원적ㆍ귀진(歸眞)ㆍ귀적(歸寂)ㆍ멸도ㆍ천화ㆍ순세(順世) 등으로 짓는데 그 의의가 모두 같다.
時有二師 一名佛大先 二名佛大勝多 本與祖同學佛陀跋陀小乘禪觀 佛大先旣遇般若多羅尊者 捨小趣大 與祖竝化 時號二甘露門矣 而佛大勝多更分徒而爲六宗 第一有相宗 第二無相宗 第三定慧宗 第四戒行宗 第五無得宗 第六寂靜宗 各封己解 別展化源 聚落崢嶸 徒衆甚盛 祖喟然歎曰 彼之一師已陷牛迹 況復支離繁盛而分六宗 我若不除 永纏邪見 言已 微現神力 至有相宗所 問曰 一切諸法何名實相 彼衆中有一尊長薩婆羅答曰 於諸相中不互諸相 是名實相 祖曰 一切諸相而不互者 若名實相 當何定邪 彼曰 於諸相中實無有定 若定諸相 何名爲實 祖曰 諸相不定 便名實相 汝今不定 當何得之 彼曰 我言不定 不說諸相 當說諸相 其義亦然 祖曰 汝言不定 當爲實相 定不定故 卽非實相 彼曰 定旣不定 卽非實相 知我非故 不定不變 祖曰 汝今不變 何名實相 已變已往 其義亦然 彼曰 不變當在 在不在故 故變實相 以定其義 祖曰 實相不變 變卽非實 於有無中 何名實相 薩婆羅心知聖師懸解潛達 卽以手指虛空曰 此是世間有相 亦能空故 當我此身 得似此否 祖曰 若解實相 卽見非相 若了非相 其色亦然 當於色中 不失色體 於非相中 不礙有故 若能是解 此名實相 彼衆聞已 心意朗然 欽禮信受 祖瞥然匿跡 至無相宗所 問曰 汝言無相 當何證之 彼衆中有波羅提答曰 我明無相 心不現故 祖曰 汝心不現 當何明之 彼曰 我明無相 心不取捨 當於明時 亦無當者 祖曰 於諸有無 心不取捨 又無當者 諸明無故 彼曰 入佛三昧 尙無所得 何況無相 而欲知之 祖曰 相旣不知 誰云有無 尙無所得 何名三昧 彼曰 我說不證 證無所證 非三昧故 我說三昧 祖曰 非三昧者 何當名之 汝旣不證 非證何證 波羅提聞祖辯㭊 卽悟本心 禮謝於祖 懺悔往謬 祖記曰 汝當得果 不久證之 此國有魔 非久降之 言已 忽然不現 至定慧宗所 問曰 汝學定慧 爲一爲二 彼衆中有婆蘭陀者答曰 我此定慧 非一非二 祖曰 旣非一二 何名定慧 彼曰 在定非定 處慧非慧 一卽非一 二亦不二 祖曰 當一不一 當二不二 旣非定慧 約何定慧 彼曰 不一不二 定慧能知 非定非慧 亦復然矣 祖曰 慧非定故 然何知哉 不一不二 誰定誰慧 婆蘭陀聞之 疑心氷釋 至第四戒行宗所 問曰 何者名戒 云何名行 當此戒行 爲一爲二 彼衆中有一賢者答曰 一二二一 皆彼所生 依敎無染 此名戒行 祖曰 汝言依敎 卽是有染 一二俱破 何言依敎 此二違背 不及於行 內外非明 何名爲戒 彼曰 我有內外 彼已知竟 旣得通達 便是戒行 若說違背 俱是俱非 言及淸淨 卽戒卽行 祖曰 俱是俱非 何言淸淨 旣得通故 何談內外 賢者聞之 卽自慚伏 至無得宗所 問曰 汝云無得 無得何得 旣無所得 亦無得得 彼衆中有寶靜者答曰 我說無得 非無得得 當說得得 無得是得 祖曰 得旣不得 得亦非得 旣云得得 得得何得 彼曰 見得非得 非得是得 若見不得 名爲得得 祖曰 得旣非得 得得無得 旣無所得 當何得得 寶靜聞之 頓除疑網 至寂靜宗所 問曰 何名寂靜 於此法中 誰靜誰寂 彼衆中有尊者答曰 此心不動 是名爲寂 於法無染 名之爲靜 祖曰 本心不寂 要假寂靜 本來寂故 何用寂靜 彼曰 諸法本空 以空空故 於彼空空 故名寂靜 祖曰 空空已空 諸法亦爾 寂靜無相 何靜何寂 彼尊者聞師指誨 豁然開悟 旣而六衆咸誓歸依 由是化被南天 聲馳五印 經六十載 度無量衆
●五印; 五印度之略 以印度區畫東西南北中之五處
당시에 2사(師)가 있었으니 1은 이름이 불대선(佛大先)이며 2는 이름이 불대승다(佛大勝多)였는데 본디 조사와 더불어 불타발타(佛陀跋陀)의 소승선관(小乘禪觀)을 동학(同學)했다. 불대선은 이미 반야다라 존자를 만나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취향(趣向)하여 스님과 더불어 병화(竝化)했으며 당시에 2감로문(甘露門)이라 호(號)했고 불대승다는 다시 분도(分途)하여 6종(宗)이 되었으니 제1은 유상종(有相宗)이며 제2는 무상종(無相宗)이며 제3은 정혜종(定慧宗)이며 제4는 계행종(戒行宗)이며 제5는 무득종(無得宗)이며 체6은 적정종(寂靜宗)이었다. 각자 자기의 견해(見解)를 봉(封)하여 화원(化源)을 따로 펼쳤는데(展) 취락(聚落)이 쟁영(崢嶸)하고 도중(徒衆)이 심히 성(盛)했다. 조사가 위연(喟然; 歎息하는 모양)히 탄식하며 가로되 거기의 1사(師)가 이미 우적(牛迹)에 빠졌거늘(陷) 하물며 다시 지리(支離)하여 번성(繁盛)하면서 6종으로 나뉘었구나. 내가 만약 제거하지 않으면 길이 사견(邪見)에 얽히리라(纏). 말하고 나서 조금(微) 신력(神力)을 나타내어 유상종(有相宗)의 처소에 이르렀다. 문왈(問曰) 일체제법(一切諸法)에 무엇을 실상(實相)이라고 이름하는가. 그 중중(衆中)에 살바라(薩婆羅)란 1존장(尊長)이 있어 답왈(答曰) 제상(諸相) 중에 제상과 호환(互換; 互)하지 않으면 이 이름이 실상(實相)입니다. 조왈(祖曰) 일체제상에 호환하지 않는 자를 만약 이름해 실상이라 한다면 마땅히 어떻게 정(定)하는가. 그가 가로되 제상 중에 실로 정(定)함이 있지 않나니 만약 제상을 정하면 무엇을 이름하여 실(實)이라 하겠습니까. 조왈 제상(諸相)을 정하지 않음을 바로 이름해 실상이라 한다면 네가 여금에 정하지 않거늘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얻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말하는 정하지 않음이란 제상을 설하지 않음이니 제상을 설함에 당해서도 그 뜻이 또한 그러합니다. 조왈 네가 말하되 정하지 않음이 마땅히 실상이라 한다면 정하지 않음을 정하는 연고로 실상이 아니다. 그가 가로되 정이 이미 정이 아니니 곧 실상이 아니며 아비(我非)를 아는 연고로 정하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조왈 네가 여금에 변하지 않는다 하니 무엇을 이름해 실상이라 하는가, 이미 변하고 이미 갔음(往)도 그 뜻이 또한 그러하다. 그가 가로되 변하지 않음은 마땅히 재(在)하나니 재(在)해도 재(在)가 아닌 연고며 고로 변하는 실상으로 그 뜻을 정합니다. 조왈 실상은 변하지 않나니 변하면 곧 실상이 아니거늘 유무(有無) 중에 무엇을 이름해 실상이라 하는가. 살바라(薩婆羅)가 마음에 성사(聖師)의 현해(懸解; 了悟)가 잠달(潛達; 몰래 통달)한 줄 알았다. 곧 손으로써 허공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것은 이 세간(世間)의 유상(有相)이니 또한 능히 공(空)한 연고입니다. 마땅히 나의 이 몸이 흡사함을 얻겠습니까. 조왈 만약 실상을 안다면(解) 곧 비상(非相)을 보고 만약 비상(非相)을 안다면(了) 그 색(色)도 또한 그러하여 마땅히 색중(色中)에서 색체(色體)를 잃지 않나니 비상(非相) 중에서 유(有)에 막히지 않는 연고이다. 만약 능히 이를 이해하면 이 이름이 실상이다. 거기의 대중이 듣고 나서 심의(心意)가 낭연(朗然)했고 흠례(欽禮)하고 신수(信受)했다. 스님이 갑자기(瞥然) 자취를 숨기고 무상종(無相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問曰) 너희가 말하되 무상(無相)이라 하니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증명하는가. 거기의 중중(衆中)에 바라제(波羅提)가 있어 답왈(答曰) 나는 무상(無相)을 밝혔나니 마음은 나타나지 않는 연고입니다. 조왈(師曰) 너의 마음이 나타나지 않거늘 마땅히 어떻게 그것을 밝히는가. 그가 가로되 내가 무상을 밝힘은 마음이 취사(取捨)하지 않음이니 밝힐 때를 당(當)해 또한 당(當)하는 자가 없습니다. 조왈 모든 유무(有無)에 마음이 취사(取捨)하지 않고 또 당(當)하는 자가 없음은 제명(諸明)도 없는 연고이다. 그가 가로되 불삼매(佛三昧)에 들어도 오히려 소득(所得)이 없거늘 어찌 하물며 무상(無相)인데 그것을 알려고 하겠습니까. 조왈 상(相)을 이미 알지 못하거늘 누가 유무(有無)를 이르며(云) 오히려 소득이 없거늘 무엇을 이름해 삼매라고 하겠는가. 그가 가로되 나는 부증(不證)을 설하나니 증(證)해도 증할 바가 없으며 삼매가 아닌 연고로 내가 삼매를 설합니다. 조왈 삼매가 아닌 것을 어떻게 마땅히 그것을 이름하며 네가 이미 부증(不證)이거늘 비증(非證)을 어떻게 증하느냐. 바라제(波羅提)가 스님의 변석(辯㭊)을 듣고 곧 본심(本心)을 깨달았다. 조사에게 예사(禮謝)하고 지난 잘못(謬)을 참회했다. 조사가 수기(授記)해 가로되 너는 마땅히 득과(得果)할 것이며 오래지 않아 그것을 증득하리라. 이 나라에 마(魔)가 있으니 오래지 않아 그를 항복시키리라. 말하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現) 않더니 제3 정혜종(定慧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問曰) 너희가 정혜를 배운다 하니 하나가 되느냐 둘이 되느냐. 거기의 중중(衆中)에 바란타(婆蘭陀)란 자가 있어 답왈(答曰) 나의 이 정혜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조왈(師曰) 이미 하나와 둘이 아니라면 무엇을 이름해 정혜라 하느냐. 그가 가로되 정(定)에 있어도 정이 아니며 혜(慧)에 처해도 혜가 아니며 하나가 곧 하나가 아니며 둘도 또한 둘이 아닙니다. 조왈 하나에 당해 하나가 아니며 둘에 당해 둘이 아니면 이미 정혜가 아니거늘 무엇을 대약(大約)하여 정혜라 하는가. 그가 가로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을 정혜가 능히 알고 정(定)도 아니고 혜(慧)도 아님도 또한 다시 그러합니다. 조왈 혜가 정이 아닌 연고로 그렇다면 어떻게 알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면 누가 정(定)이며 누가 혜(慧)인가. 바란타(婆蘭陀)가 이를 듣고 의심이 얼음 풀리 듯했다. 제4 계행종(戒行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 무엇(何者)을 이름해 계(戒)며 무엇(云何)을 이름해 행(行)인가. 이 계행에 당해 하나(一)가 되는가 둘(二)이 되는가. 거기의 중중(衆中)에 1현자(賢者)가 있어 답왈(答曰) 일이(一二)와 이일(二一)이 모두 그의 소생(所生)입니다. 교(敎)에 의해 오염(汚染)이 없으니 이 이름이 계행입니다. 조왈(師曰) 네가 말하되 교에 의한다 하니 즉시(卽是) 오염이 있음이며 일이(一二)를 모두(俱) 타파(打破)하거늘 어찌 교에 의한다고 말하느냐. 이 둘이 위배되어 행(行)에 미치지 못하고 내외가 밝지 않거늘 어찌 계(戒)라고 이름하겠는가. 그가 가로되 나는 내외가 있고 그가 이미(已)가 알아 마쳤습니다. 이미 통달(通達)을 얻었으니 바로 이 계행입니다. 만약 위배(違背)를 설한다면 구시구비(俱是俱非)며 청정을 언급(言及)하면 즉계즉행(卽戒卽行)입니다. 조왈 구시구비(俱是俱非)면 어찌 청정을 말할 것이며 이미 통함을 얻은 연고면 어찌 내외를 담설(談說)하겠는가. 현자(賢者)가 이를 듣자 곧 스스로 참복(慚伏; 참회하며 屈伏)했다. 무득종(無得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問曰) 너희가 무득(無得)을 이르니 무득을 어찌 얻으며(得) 이미 소득이 없으니 또한 득득(得得; 얻음을 얻다)도 없다. 거기의 중중(衆中)에 보정(寶靜)이란 자가 있어 답왈 내가 설하는 무득은 득득(得得)이 없음이 아니라 득득을 설함에 당해 무득(無得)이 이 득입니다. 조왈 득이 이미 부득(不得)이면 득도 또한 득이 아니며 이미 이르되 득득이라 했거늘 득득을 어찌 득하리오. 그가 가로되 득이 비득(非得)임을 보므로 비득이 이 득입니다. 만약 부득(不得)을 본다면 이름하여 득득입니다. 조왈 득이 이미 비득(非得)이며 득득(得得)이 무득(無得)이라 이미 소득이 없거늘 마땅히 어떻게 득득하겠는가. 보정(寶靜)이 이를 듣자 의망(疑網)이 문득 제거되었다. 적정종(寂靜宗)의 처소에 이르러 문왈 무엇을 이름해 적정(寂靜)이라 하는가. 이 법 중에서 누가 정(靜)하며 누가 적(寂)한가. 거기의 중중(衆中)에 존자가 있어 답왈 이 마음은 동(動)하지 않나니 이를 이름하여 적(寂)이며 법에 오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해 정(靜)이라 합니다. 조왈 본심(本心)은 적(寂)이 아니니 적정(寂靜)을 빌림을 요하며 본래 적(寂)인 연고로 어찌 적정(寂靜)을 쓰겠는가. 그가 가로되 제법(諸法)이 본공(本空)이니 공공(空空; 空도 空하다)을 쓰는(以) 연고며 그것(彼)이 공공인지라 고로 이름이 적정(寂靜)입니다. 사왈 공공(空空)이 이미 공(空)이라 제법도 또한 그러하나니 적정(寂靜)은 무상(無相)이거늘 무엇이 정(靜)이며 무엇이 적(寂)인가. 그 존자가 스님의 지회(指誨; 指導하며 가르침)를 듣자 활연(豁然)하여 개오(開悟)했다. 이미 그러고선 6중(衆)이 모두(咸) 귀의를 맹서(盟誓)했다. 이로 말미암아 교화가 남천(南天)에 미쳤고(被) 명성이 오인(五印)을 달렸으며 60재(載)를 경과하며 무량중(無量衆)을 화도(化度; 度)했다.
●五印; 5인도의 약칭이니 인도는 동ㆍ서ㆍ남ㆍ북ㆍ중의 5처로 구획되었었음.
後値異見王輕毀三寶 每云 我之祖宗 皆信佛道 陷於邪見 壽年不永 運祚亦促 且我身是佛 何更外求 善惡報應 皆因多智之者妄搆其說 至於國內耆舊爲前王所奉者悉從廢黜 祖知已 歎彼德薄 當何救之 卽念無相宗中二首領 其一波羅提者 與王有緣 將證其果 其二宗勝者 非不博辯 而無宿因 時六宗徒衆 亦各念言 佛法有難 師何自安 祖遙知衆意 卽彈指應之 六衆聞云 此是我師達磨信響 我等宜速行 以副慈命 卽至祖所 禮拜問訊 祖曰 一葉翳空 孰能翦拂 宗勝曰 我雖淺薄 敢憚其行 祖曰 汝雖辯慧 道力未全 宗勝自念 我師恐我見王大作佛事 名譽顯達 映奪尊威 縱彼福慧爲王 我是沙門受佛敎旨 豈難敵也 言訖潛去 至王所廣說法要及世界苦樂人天善惡等事 王與之往返徵詰 無不詣理 王曰 汝今所解 其法何在 宗勝曰 如王治化 當合其道 王所有道 其道何在 王曰 我所有道 將除邪法 汝所有法 將伏何人 祖不起于座 懸知宗勝義墮 遽告波羅提曰 宗勝不稟吾敎 潛化於王 須臾理屈 汝可速救 波羅提恭稟祖旨云 願假神力 言已雲生足下 至大王前 默然而住 時王正問宗勝 忽見波羅提乘雲而至 愕然忘其問答 曰 乘空之者 是正是邪 提曰 我非邪正 而來正邪 王心若正 我無邪正 王雖驚異 而驕慢方熾 卽擯宗勝令出 波羅提曰 王旣有道 何擯沙門 我雖無解 願王致問 王怒而問曰 何者是佛 提曰 見性是佛 王曰 師見性否 提曰 我見佛性 王曰 性在何處 提曰 性在作用 王曰 是何作用 我今不見 提曰 今現作用 王自不見 王曰 於我有否 提曰 王若作用 無有不是 王若不用 體亦難見 王曰 若當用時 幾處出現 提曰 若出現時 當有其八 王曰 其八出現 當爲我說 波羅提卽說偈曰 在胎爲身 處世爲人 在眼曰見 在耳曰聞 在鼻辨香 在口談論 在手執捉 在足運奔 徧現俱該沙界 收攝在一微塵 識者知是佛性 不識喚作精魂 王聞偈已 心卽開悟 悔謝前非 咨詢法要 朝夕忘倦 迄于九旬
●運祚; 猶言國運祚福
●耆舊; 又作長老 老宿 耆宿 卽年老德高道行深湛之老者
●辯慧; 聰明而富於辯才
●義墮; 與話墮同義 義與議通 議論也 對人議論而自分墮負也 卽失言 失策 又泛指禪家機用不合禪法
●精魂; 精靈 指人之神識或物之精 又作精神 魂神 精識 按灌頂經六 塚墓因緣四方神咒經 首楞嚴經六 凡是人之精魂 鬼魅及五穀之精等 皆稱爲精靈 蓋將人之心識 稱爲魂神或精魂
후에 이견왕(異見王)이 삼보(三寶)를 경훼(輕毀)함음 만났으니 매번 이르되 나의 조종(祖宗; 始祖의 祖上)은 모두 불도를 믿어 사견(邪見)에 빠졌고 수년(壽年)이 길지(永) 못했고 운조(運祚)도 또한 짧았다(促). 또(且) 나의 몸이 이 부처이거늘 어찌 다시 밖으로 구하겠는가. 선악의 보응(報應)이란 모두 다지(多智)한 자들이 허망하게 그 설을 엮었기 때문이다(因) 하고는 국내의 기구(耆舊)에 전왕(前王)에게 받들어 지던 바의 자들은 모두 폐출(廢黜)을 좇음에 이르렀다. 조사가 알고 나서 그의 덕이 박(薄)함을 탄식하고 마땅히 어떻게 그를 구제(救濟)할까 하였다. 곧 무상종(無相宗) 중의 2수령(首領)을 사념했으니 그 1은 바라제(波羅提)란 자였고 왕과 인연이 있고 이에(將) 그 과(果; 道果)를 증득했다. 그 2는 종승(宗勝)이란 자였고 박변(博辯)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숙인(宿因)이 없었다. 때에 6종(宗)의 도중(徒衆)도 또한 각자 사념해 말하되 불법에 난(難)이 있거늘 스님이 어찌 스스로 편안하겠는가. 조사가 멀리서 중의(衆意)를 알고 곧 탄지(彈指)하여 이에 응했다. 6중(衆)이 이를 듣고 이르되 이것은 이 아사(我師) 달마의 신향(信響)이다. 아등(我等)이 의당 속행(速行)하여 자명(慈命)을 도와야(副) 하겠다. 곧 조사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문신(問訊)했다. 조왈(祖曰) 1엽(葉)이 허공을 가리니(翳) 누가(孰) 능히 전불(翦拂; 베어 떨치다)하겠는가. 종승(宗勝)이 가로되 내가 비록 천박(淺薄)하지만 감히 그 행(行)을 꺼리겠습니까(憚). 조왈 네가 비록 변혜(辯慧)이지만 도력(道力)이 완전하지 않다. 종승이 스스로 사념하되 아사(我師)가 내가 왕을 알현(謁見)하여 대작불사(大作佛事)하여 명예가 현달(顯達)하여 존위(尊威)를 영탈(映奪; 光輝가 奪目하다)할까 염려하시는구나. 비록 그가 복혜(福慧)로 왕이 되었지만 나는 이 사문(沙門)이며 불타의 교지(敎旨)를 받았거늘 어찌 적대(敵對)하기 어렵겠는가. 말을 마치자 몰래 가서 왕의 처소에 이르러 법요(法要) 및 세계의 고락(苦樂)과 인천(人天)의 선악 등의 일을 광설(廣說)했다. 왕이 그(之)와 더불어 왕반(往返)하며 징힐(徵詰)하매 이치로 나아가지 않음이 없었다. 왕왈(王曰) 네가 지금 아는 바의 그 법이 어디에 있는가. 종승이 가로되 왕의 치화(治化)와 같이 마땅하 그 도와 합하나니 왕이 소유한 도는 그 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왕왈 내가 소유한 도는 장차 사법(邪法)을 제거하려 한다. 네가 소유한 법은 장차 어떤 사람을 굴복(屈伏)하려 하는가. 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종승(宗勝)이 의타(義墮)한 줄 현지(懸知; 預知)했다. 급히(遽) 바라제(波羅提)에게 고해 가로되 종승이 나의 가르침을 받지(稟) 않고 몰래(潛) 왕을 교화하려다가 수유(須臾)에 이치를 굴복(屈服)했다, 네가 속히 구(救)함이 옳다(可). 바라제가 조사의 의지(意旨)를 공품(恭稟)하고 이르되 신력을 빌리기를 원합니다. 말하고 나서 구름이 족하(足下)에 생겨났다. 왕 앞에 이르러 묵연히 머물렀다. 때에 왕이 바로(正) 종승에게 묻는데 홀연히 바라제가 구름을 타고 이름을 보고 악연(愕然; 놀라는 모양)하며 그 문답을 잊었다. 가로되 허공을 탄 자는 이 정(正)인가 이 사(邪)인가. 답왈 나는 사정(邪正; 正을 삿되게 하다)함이 아니라 와서 정사(正邪; 邪를 바르게 하다)합니다. 왕의 마음이 만약 바르면(正) 내가 사정(邪正)함이 없습니다. 왕이 비록 경이(驚異)하지만 교만(驕慢)이 바야흐로 치성(熾盛)합니다. 곧 종승(宗勝)을 물리쳐(擯) 나가게 했다. 바라제가 가로되 왕이 이미 도가 있거늘 왜 사문을 물리칩니까. 내가 비록 아는 게 없지만 원컨대 왕이 치문(致問; 질문하다)하십시오. 왕이 노(怒)해서 물어 가로되 어떤 것이 이 부처입니까. 바라제가 가로되(提曰) 견성(見性)이 이 부처입니다. 왕왈(王曰) 스님은 견성하셨습니까. 제왈(提曰) 나는 불성(佛性)을 보았습니다. 왕왈 성(性)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제왈(提曰) 성(性)이 작용(作用)에 있습니다. 왕왈 이 어떤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제왈(提曰) 지금 작용이 나타나건만(見) 왕이 스스로 보지 못합니다. 왕왈 나에게도 있습니까. 제왈(提曰) 왕이 만약 작용하시면 이것 아님이 있지 않으려니와 왕이 만약 작용하지 않으신다면 체(體)를 또한 보기 어렵습니다. 왕왈 만약 작용함을 당할 때면 몇 곳에서 출현합니까. 제왈(提曰) 만약 출현할 때면 마땅히 그 여덟이 있습니다. 왕왈 그 여덟의 출현을 마땅히 나를 위해 설하십시오. 바라제가 곧 게를 설해 가로되 태(胎)에 있으면 가로되 신(身)이라 하고/ 세상에 처(處)해서는 이름이 인(人)이고/ 눈에 있으면 가로되 봄이라 하고/ 귀에 있으면 가로되 들음이라 하고/ 코에 있으면 향기를 분변(分辨)하고/ 입에 있으면 담론(談論)하고/ 손에 있으면 집착(執捉)하고/ 발에 있으면 움직여 달린다/ 두루 나타남엔 사계(沙界)를 다 갖추거니와/ 수섭(收攝)하매 일미진(一微塵)에 있나니/ 아는 자는 이 불성(佛性)인 줄 알거니와/ 알지 못하는 이는 정혼(精魂)이라고 불러 짓는다. 왕이 게를 듣고 나서 마음이 곧 개오(開悟)했다. 앞의 그름을 회사(悔謝)하고 법요를 자순(咨詢)했는데 조석(朝夕)으로 권태(倦怠)를 잊고 9순(旬)에 이르렀다.
●運祚; 국운조복(國運祚福)이라고 말함과 같음.
●耆舊; 또 장로ㆍ노숙ㆍ기숙으로 지음. 곧 나이가 많고 덕이 높고 도행이 심잠(深湛; 湛은 깊을 잠)한 노자(老者).
●辯慧; 총명하면서 변재(辯才)가 풍부함.
●義墮; 화타(話墮)와 같은 뜻. 의(義)는 의(議)와 통하며 의논임. 타인을 상대로 의논하다가 자분(自分)이 타부(墮負)함이니 곧 실언ㆍ실책. 또 널리 선가의 기용(機用)이 선법에 맞지 않음을 가리킴.
●精魂; 정령(精靈)이니 사람의 신식(神識) 혹 물건의 정(精)을 가리킴. 또 정신(精神)ㆍ혼신(魂神)ㆍ정식(精識)으로 지음. 관정경6 총묘인연사방신주경ㆍ수릉엄경6을 안험컨대 무릇 이는 사람의 정혼(精魂)ㆍ귀매(鬼魅) 및 오곡(五穀)의 정(精) 등을 다 일컬어 정령이라 하지만 대개 사람의 심식(心識)을 가지고 혼신(魂神) 혹은 정혼(精魂)이라 호칭함.
時宗勝旣被斥逐 退藏深山 念曰 我今百歲 八十爲非 二十年來 方歸佛道 性雖愚昧 行絕瑕疵 不能禦難 生何如死 言訖卽自投崖 俄有神人以手捧承 置于巖上 安然無損 宗勝曰 我忝沙門 當與正法爲主 不能抑絕王非 是以捐身自責 何神祐助 一至於斯 願垂一語 以保餘年 於是神人乃說偈曰 師壽於百歲 八十而造非 爲近至尊故 熏修而入道 雖具少智慧 而多有彼我 所見諸賢等 未甞生珍敬 二十年功德 其心未恬靜 聦明輕慢故 而獲至於此 得王不敬者 當感果如是 自今不疎怠 不久成奇智 諸聖悉存心 如來亦復爾 宗勝聞偈欣然 卽於巖間宴坐 時王復問波羅提曰 仁者智辯 當師何人 提曰 我所出家卽娑羅寺 烏沙婆三藏爲受業師 其出世師者 卽大王叔菩提達磨是也 王聞祖名 驚駭久之 曰 鄙薄忝嗣王位 而趣邪背正 忘我尊叔 遽敕近臣 特加迎請 祖卽隨使而至 爲王懺悔往非 王聞規誡 泣謝于祖 又詔宗勝歸國 大臣奏曰 宗勝被謫投崖 今已亡矣 王告祖曰 宗勝之死 皆自於吾 如何大慈令免斯罪 祖曰 宗勝今在巖間宴息 但遣使召 當卽至矣 王卽遣使入山 果見宗勝端居禪寂 宗勝蒙召 乃曰 深愧王意 貧道誓處巖泉 且王國賢德如林 達磨是王之叔 六衆所師 波羅提法中龍象 願王崇仰二聖 以福皇基 使者復命未至 祖謂王曰 知取得宗勝否 王曰 未知 祖曰 一請未至 再命必來 良久使還 果如祖語 祖遂辭王曰 當善修德 不久疾作 吾且去矣 經七日 王乃得疾 國醫診治 有加無瘳 貴戚近臣憶師前記 急發使告祖曰 王疾殆至彌留 願叔慈悲 遠來診救 祖卽至慰問 時宗勝再承王召 卽別巖間 波羅提亦來問疾 謂祖曰 當何施爲 令王免苦 祖卽令太子 爲王宥罪施恩 崇奉三寶 復爲懺悔 願罪消滅 如是者三 王疾有間 師念震旦緣熟 行化時至 乃先辭祖塔 次別同學 後至王所 慰而勉之曰 當勤修白業 護持三寶 吾去非晩 一九卽回 王聞師言 涕淚交集曰 此國何罪 彼土何祥 叔旣有緣 非吾所止 惟願不忘父母之國 事畢早回 王卽具大舟 實以衆寶 躬率臣寮 送至海壖
●熏修; 又作薰修 薰爲薰習 如薰香於衣也 修者修行 以德薰身修行也
●三藏; (一)經律論三藏 三藏法數五 三藏[出翻譯名義] 三藏者 謂經律論 各各含藏一切文理 故皆名藏 一修多羅藏 梵語修多羅 華言契經 契 合也 謂上契諸佛之理 下契衆生之機 故名契經也 二毘奈耶藏 梵語毘奈耶 華言律 又云善治 謂能治衆生之惡 如世法律 則能斷決重輕之罪 故名律也 三阿毘達磨藏 梵語阿毘達磨 亦名阿毘曇 華言論 論者論議也 瑜伽論云 問答決擇諸法性相 故名論也 (二)三藏法師之略 精通經律論三藏之法師 此指(二)
●授業師; 猶受業師 謂得度受敎之師 或云親敎師 ▲釋氏要覽上 毘奈耶云 鄔波陀耶 此云親敎 由能敎離出世業故 稱受業和尙
●規誡; 勸說告誡
●龍象; (一)指象中之殊勝者 維摩經中不思議品 譬如龍象蹴踏 非驢所堪 注維摩詰經六 肇曰 能不能爲諭 象之上者 名龍象 維摩經義疏四謂 稱爲龍象 非有二物 如好馬名龍馬 故好象稱龍象 (二)指龍象各爲水上陸上之最有力者
●復命; 遂行命令而報告也 復 白也 報也
●彌留; 本指久病不愈 後多指病重將死 病危將死的時候
●宥罪; 赦免罪過
●有間; 疾病稍稍減輕
●白業; 善業 淸白之業 指佛敎修行 相對于黑業(穢汚之業)而言
●一九; 謂陽數始於一而極於九 極則復於一 終而復始 故用以喻循環之理
●涕淚交集; 又是鼻涕又是眼淚 多形容過度悲傷的樣子 涕 眼淚 鼻涕
때에 종승은 이미 척축(斥逐)을 입고 물러나 심산(深山)에 숨었다. 사념해 가로되 내가 지금 백 세인데 80은 그름이 되었고(爲非) 20년 래에 비로소 불도에 귀의했다. 성품이 비록 우매(愚昧)하지만 행위는 하자(瑕疵)가 끊어졌다. 능히 난(難)을 막지(禦) 못했으니 사는 게 어찌 죽음만 같겠는가. 말을 마치자 곧 스스로 낭떠러지에서 투신했다. 갑자기(俄) 신인(神人)이 있어 손으로써 봉승(捧承; 받들다)해 암석(巖石)의 위에 안치한지라 안연(安然)하여 손상(損傷)이 없었다. 종승이 가로되 내가 욕되이(忝) 사문(沙門)으로서 마땅히 정법(正法)을 위주(爲主)로 하여 능히 왕의 그름을 억절(抑絕)하지 못했으니 이런 까닭(以)으로 몸을 버려(捐) 자책(自責)했거늘 어떤 신(神)이 우조(祐助)하여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는가. 원컨대 1어(語)를 내려(垂) 남은 해를 보호하십시오. 이에 신인(神人)이 곧 게를 설해 가로되 스님의 나이가 백 세에/ 80 동안은 그름을 지었다가/ 지존(至尊)을 친근(親近)한 연고로/ 훈수(熏修)하여 입도(入道)했다/ 비록 적은 지혜를 갖추었으나/ 피아(彼我)가 많이 있어/ 상견하는 바 제현(諸賢) 등에게/ 일찍이 진경(珍敬)을 내지 않았다/ 20년 공덕에/ 그 마음이 염정(恬靜)하지 않았고/ 총명(聰明)하고 경만(輕慢)한 연고로/ 여기에 이름을 얻었다/ 왕이 불경(不敬)함을 얻는 자는/ 마땅히 감과(感果)가 이와 같나니/ 금일로부터 소태(疎怠)하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기지(奇智)를 이루리라/ 제성(諸聖)이 모두 마음에 두고(存)/ 여래도 또한 다시 그러하리라. 종승이 게를 듣고 흔연(欣然)했고 곧 암간(巖間)에서 연좌(宴坐)했다. 때에 왕(王)이 다시 바라제에게 물어 가로되 인자(仁者)의 지변(智辯)은 마땅히 어떤 사람을 사사(師事)했습니까. 바라제가 가로되(提曰) 내가 출가한 곳(所)은 곧 바라사(娑羅寺)며 오사바(烏沙婆) 삼장(三藏)이 수업사(授業師)가 됩니다. 그 출세사(出世師; 출세간의 스승)란 분은 곧 대왕의 숙부(叔父)인 보리달마가 이 분입니다. 왕이 조사의 이름을 듣자 경해(驚駭; 놀라다)함이 오래였다. 가로되 비박(鄙薄)이 왕위(王位)를 욕되이 이어(忝嗣) 취사배정(趣邪背正)하며 나의 존숙(尊叔)을 잊었구나. 급히(遽) 근신(近臣)에게 칙명하여 영청(迎請)을 특별히 더하라 하였다. 조사가 곧 사자(使者)를 따라 이르러 왕을 위해 지난 잘못(非)을 참회케 했다. 왕이 규계(規誡)를 듣자 조사에게 읍사(泣謝)했다. 또 조칙(詔勅)하여 종승(宗勝)을 귀국(歸國)케 하라 하자 대신(大臣)이 아뢰어 가로되 종승은 꾸짖음(謫)을 입자 낭떠러지에서 투신해 지금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왕이 조사에게 고해 가로되 종승의 죽음은 모두 나를 말미암았으니(自) 어찌 해야 대자(大慈)로 이 죄를 면하게 하겠습니까. 조왈(祖曰) 종승은 지금 암간(巖間)에 있으면서 연식(宴息; 편안히 쉬다)하니 단지 사자(使者)를 보내어 부른다면 마땅히 곧 이를 것입니다. 왕이 곧 사자를 보내 입산하매 과연 종승이 단거(端居)하며 선적(禪寂)함을 보았다. 종승이 부름을 입자(蒙) 이에 가로되 왕의 뜻에 깊이 부끄럽습니다. 빈도(貧道)는 맹서코 암천(巖泉)에 거처하겠습니다. 또(且) 왕국(王國)에 현덕(賢德)이 숲과 같고 달마는 이 왕의 숙부시며 6중(衆)이 사사(師事)하는 바이며 바라제는 법중(法中)의 용상(龍象)입니다. 원컨대 왕은 2성(聖)을 숭앙(崇仰)하여 황기(皇基; 帝王의 基業)의 복으로 삼으십시오(以). 사자의 복명(復命)이 이르지 아니한 전에 조사가 왕에게 일러 가로되 종승을 취득(取得)함을 아시겠습니까. 왕왈(王曰) 알지 못합니다. 조왈 1청(請)에 이르지 않으리니 다시 칙명하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양구(良久)에 사자가 돌아왔는데 과연 조사의 말과 같았다. 조사가 드디어 왕에게 고별(辭)하며 가로되 마땅히 잘 수덕(修德)하십시오, 오래지 않아 질병이 발작(發作)할 것입니다. 나는 다만(且) 떠나겠습니다. 7일이 지나 왕이 곧 득질(得疾)했다. 국의(國醫; 御醫)가 진치(診治; 診療)했으나 더함만 있고 낫지 않았다. 귀척(貴戚)과 근신(近臣)이 스님의 전기(前記; 앞의 예언)를 추억하고는 급히 사자를 발(發)하여 조사에게 알려 가로되 왕의 질병이 위태하여 미류(彌留)에 이르렀습니다. 원컨대 숙부는 자비로 멀리서 오셔서 진구(診救; 진료해 구제함)하십시오. 조사가 곧 이르러 위문(慰問)했다. 때에 종승은 왕의 부름을 다시 받들자(承) 곧 암간(巖間)을 이별했고 바라제도 또한 와서 문질(問疾)했다. 조사에게 일러 가로되 마땅히 무엇을 시위(施爲)해야 왕으로 하여금 고(苦)를 면하게 하겠습니까. 조사가 태자로 하여금 왕을 위해 유죄(宥罪)하고 시은(施恩)하고 승보(僧寶)를 숭봉(崇奉)하게 했다. 다시 참회(懺悔)하되 원컨대 죄가 소멸하라. 이와 같이 한 게 세 번이었다. 왕의 질병이 유간(有間)하자 스님이 심념(心念)하되 진단(震旦)의 인연이 익었으니 행화(行化)할 때가 이르렀다. 이에 먼저 조탑(祖塔)에 고별(辭)하고 다음으로 동학(同學)에게 고별(別)했다. 후에 왕의 처소에 이르러 위문하고 그를 권면(勸勉)해 가로되 마땅히 백업(白業)을 부지런히 닦고 삼보를 호지(護持)하십시오, 내가 가더라도 늦지 않으리니 일구(一九)에 곧 돌아올 것입니다. 왕이 스님의 말을 듣자 체루가 교집(涕淚交集)했다. 가로되 차국(此國)은 무슨 죄며 피토(彼土)는 무슨 상서(祥瑞)입니까. 숙부가 이미 인연이 있다 하시니 내가 멈추게 할 바가 아닙니다. 오직 원컨대 부모지국(父母之國)을 잊지 마시고 일을 마치면 일찍 돌아오십시오. 왕이 곧 대주(大舟)를 갖추어 중보(衆寶)로써 채우고(實) 몸소 신료(臣寮)들을 인솔(引率)하고 전송해 해연(海壖; 海邊의 땅)에 이르렀다.
●熏修; 또 훈수(薰修)로 지음. 훈(薰)은 훈습(薰習)이 되니 옷에 훈향(薰香)함과 같고 수(修)란 것은 수행이니 덕으로 훈신(薰身)하며 수행함.
●三藏; (1). 경ㆍ율ㆍ론 3장(藏). 삼장법수5. 3장(藏) [출번역명의] 3장이란 것은 이르자면 경ㆍ율ㆍ론이니 각각 일체의 문리(文理)를 함장(含藏)했으므로 고로 다 이름이 장(藏)임. 1. 수다라장(修多羅藏) 범어로 수다라(修多羅; 梵 sūtra)는 화언(華言)으로 계경(契經)이니 계(契)는 합(合)임. 이르자면 위로는 제불의 이치에 계합하고 아래론 중생의 근기에 계합하나니 고로 이름이 계경임. 2. 비나야장(毘奈耶藏) 범어로 비나야(毘奈耶; 梵 vinaya) 는 화언으로 율(律)이며 또 이르되 선치(善治)임. 이르자면 능히 중생의 악을 다스림이 세간의 법률과 같나니 곧 능히 무겁거나 가벼운 죄를 단결(斷決)하므로 고로 이름이 율임. 3.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범어로 아비달마(阿毘達磨; 梵 abhidharma)는 또한 이름이 아비담(阿毘曇)이니 화언으로 논(論)임. 논이란 것은 논의임. 유가론에 이르되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문답하고 결택(決擇)하므로 고로 이름이 논이다. (2). 삼장법사의 약칭이니 경률론 3장에 정통한 법사.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授業師; 수업사(受業師)와 같음. 이르자면 득도(得度)ㆍ수교(受敎)의 스승임. 혹은 이르되 친교사(親敎師). ▲석씨요람상. 비나야에 이르되 오파타야(鄔波陀耶; 梵 upādhyāya)는 여기에서 이르되 친교(親敎)다. 능히 세업(世業)을 이출(離出)하게 함을 말미암는 연고니 일컬어 수업화상(受業和尙)이라 한다.
●規誡; 권설(勸說; 권고)하며 고계(告誡; 훈계)함.
●龍象; (1). 코끼리 중에 수승한 것을 가리킴. 유마경중 부사의품. 비유컨대 용상(龍象)이 차고 밟음과 같아서 나귀가 감내할 바가 아니다. 주유마힐경6(注維摩詰經六). 조(肇; 僧肇)가 가로되 능과 불능으로 비유를 삼는다. 코끼리의 상등(上等)인 것을 이름해 용상(龍象)이다. 유마경의소4에 이르되 호칭하여 용상이라 함은 두 물건이 있음이 아니다. 예컨대(如) 호마(好馬)를 이름해 용마(龍馬)라 하나니 고로 호상(好象)을 일컬어 용상(龍象)이라 한다. (2). 용상은 각기 수상과 육상의 가장 유력한 자임을 가리킴. 조정사원1. 지도론(3)에 이르되 그 힘이 셈을 말하자면 용은 수행중(水行中)에 힘이 세며 코끼리는 육행중(陸行中)에 힘이 세다 했는데 여금엔 거선석사(鉅禪碩師; 鉅는 클 거. 碩은 클 석. 곧 큰 선사와 큰 스님)를 용상(龍象)에 비유함.
●復命; 명령을 수행하고 보고함. 복(復)은 백(白)임. 보(報)임.
●彌留; 본래는 구병(久病)이 낫지 않음을 가리켰음. 후에 다분히 병이 중해 장차 죽거나 병이 위급해 장차 죽을 시후(時候; 時刻)를 가리켰음.
●宥罪; 죄과(罪過)를 사면(赦免)함.
●有間; 질병이 조금씩 감경(減輕)함.
●白業; 선업(善業). 청백한 업. 불교의 수행을 가리킴. 흑업(黑業; 穢汚의 업)에 상대해 말함임.
●一九; 이르자면 양수(陽數)는 1에서 시작하여 9에서 다하고(極) 다하면 곧 1로 복귀(復歸)하고 마치면 다시 시작하는지라 고로 써서 순환(循環)하는 이치에 비유함. 故用以喻之理
●涕淚交集; 또 이 콧물이며 또 이 눈물이니 다분히 과도한 비상(悲傷)의 양자(樣子)를 형용. 체(涕)는 안루(眼淚; 눈물), 비체(鼻涕; 콧물).
祖汎重溟 凡三周寒暑 達于南海 實梁普通七年庚子歲九月二十一日也 廣州刺史蕭昂具主禮迎接 表聞武帝 帝覽奏 遣使齎詔迎請〈舊板年甲差誤 今依梁僧寶唱續法記宋嵩禪師正宗記前後改云〉 十月一日至金陵 帝問曰 朕卽位已來 造寺寫經 度僧不可勝紀 有何功德 祖曰 竝無功德 帝曰 何以無功德 祖曰 此但人天小果 有漏之因 如影隨形 雖有非實 帝曰 如何是眞功德 祖曰 淨智妙圓 體自空寂 如是功德 不以世求 帝又問 如何是聖諦第一義 祖曰 廓然無聖 帝曰 對朕者誰 祖曰 不識 帝不領悟 祖知機不契 是月十九日 潛回江北 十一月二十三日 屆于洛陽 當魏孝明帝正光元年也 寓止于嵩山少林寺 面壁而坐 終日默然 人莫之測 謂之壁觀婆羅門
●刺史; 官名 自漢設立 本爲監察郡縣的官員 隋唐以後沿用爲一州長官的別稱 屬官有長史司馬等 [百度漢語] ▲事文外集十一諸州刺史歷代沿革曰 漢有丞相分遣刺史州 (中略)唐至德二載(757) 罷郡爲州 復以太守爲刺史 上州刺史一員從三品 中州一員正四品 下州一員正四品下
●表聞; 上表申聞於上
●寶唱; 南朝齊梁時期僧人 俗姓岑 吳郡(江蘇吳縣)人 師事僧祐
●嵩; 契嵩(1007-1072) 宋代雲門宗僧 藤州鐔津(今廣西藤縣)人 俗姓李 字仲靈 自號潛子 七歲出家 十三歲得度剃髮 十九歲遊方 常頂戴觀音像 日誦其名號十萬聲 後得法於洞山曉聰禪師 師遍通內外典籍 善爲文 著有原敎 孝論等輔敎篇 此外 關於禪宗之法脈 撰有傳法正宗定祖圖 傳法正宗記等書 仁宗賜紫方袍與明敎大師之號 熙寧五年於杭州靈隱寺示寂 享壽六十六 門人收其著作 輯成鐔津文集二十卷 因契嵩居錢塘佛日山 故又稱佛日禪師 以師曾止於永安山之精舍 後人遂以永安稱之 [傳法正宗記一 續傳燈錄五 鐔津明敎大師行業記]
●朕; 一代詞 表示第一人稱 爾雅 朕 我也 郭璞注 古者貴賤皆自稱朕 又朕 身也 郭璞注 今人亦自呼爲身 邢昺疏 身 卽我也 二皇帝的自稱 自秦始皇始
●度僧; 度者 出世俗 離生死 卽擧行一定之儀式 令俗人出家爲僧
●有漏; 無漏之對稱 漏者煩惱之異名 含有煩惱之事物 謂之有漏 ▲大乘義章五 一切煩惱流注不絶 其猶瘡漏 故名爲漏
●聖諦; 爲聖者所見之諦理 故名聖諦 又聖者正也 爲正眞之諦理 故名聖諦 涅槃經十二曰 苦集滅道 是名四聖諦
●洛陽; 又稱洛邑 洛京 位於河南省開封府西黃河南岸 洛水流於其南 故有此稱 東漢西晉後魏之都邑 白馬寺在此地 按洛陽伽藍記 佛敎盛行時期 洛陽城內有寺院一五六七所
●嵩山; 又作崇山 嵩嶽 嵩高山 崇高山 外方山 位於河南登封縣北五六公里之處 又作中嶽 與東嶽泰山(山東) 西嶽華山(陝西) 南嶽衡山(湖南) 北嶽恆山(山西) 合稱五嶽 全山以太室少室二山爲中心 東爲太室山 西爲少室山 其他另有大小三十餘峰 唐代則天武后特稱爲神嶽 少室山北麓之少林寺 禪宗初祖達磨 於此面壁九年 而遠近馳名
●少林寺; 位于河南省登封縣城之北十五公里少室山五乳峰下 北魏太和十九年(495) 孝文帝爲天竺僧佛陀禪師所建 正光元年(520) 一說孝昌三年(527) 菩提達摩來寺面壁九年 傳法慧可 開創中國禪宗 故稱達摩爲初祖 少林寺爲祖庭 唐初少林寺僧衆 佐唐太宗開國有功 從此僧衆常習拳術 禪宗和少林拳術 廣爲流傳 高宗武后均甚崇敬 整修寺宇 其後歷經唐末五代之亂 寺漸衰微 宋淳祐二年(1242) 雪庭福裕及其法嗣靈隱文泰 古巖普就 息庵義讓 淳拙文才諸師 相繼住持此寺 各振禪風 傳曹洞正脉 少林寺於晩唐五代之際 爲臨濟宗僧所住 金元以來 成爲曹洞宗道場 淸初因少林寺成爲反淸復明的基地而遭焚燒 淸雍正十三年(1735)重修 規模宏大 [續高僧傳四 同十六 傳燈錄三 同四 釋氏稽古略二 少林寺志 魏書一一四]
조사가 중명(重溟; 바다)에 떠서 무릇 한서(寒暑)를 3주(周)하고서야 남해(南海)에 도달했으니 실로 양(梁) 보통 7년(普通七年; 마땅히 普通元年으로 지어야 함) 경자세(庚子歲; 520) 9월 21일이다. 광주자사(廣州刺史) 소앙(蕭昂)이 주례(主禮)를 갖추어 영접(迎接)했고 무제(武帝)에게 표문(表聞)했다. 무제가 주문(奏文)을 보고(覽) 사자(使者)를 보내어 조서(詔書)를 가져가서(齎) 영청(迎請)했고〈舊板의 年甲은 差誤다. 여금에 梁僧 寶唱의 續法記와 宋 嵩禪師의 正宗記에 依해 前後를 고쳤다〉 10월 1일에 금릉(金陵; 江蘇)에 이르렀다. 무제가 문왈(問曰) 짐(朕)이 즉위한 이래로 조사(造寺)하고 사경(寫經)하고 도승(度僧)한 것을 가히 모두(勝) 기록(紀)하지 못합니다. 어떤 공덕(功德)이 있습니까. 조왈(祖曰) 모두(竝) 공덕이 없습니다. 제왈(帝曰) 무슨 까닭으로 공덕이 없습니까. 조왈 이것은 단지 인천(人天)의 소과(小果)며 유루(有漏)의 인(因)이니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아서 비록 있더라도 진실이 아닙니다. 제왈(帝曰) 무엇이 이 참 공덕입니까. 조왈 정지(淨智)가 묘원(妙圓)하여 체(體)가 스스로 공적(空寂)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간(世間)으로써 구하지 못합니다(不以世求). 무제가 또 묻되 무엇이 이 성제(聖諦)의 제1의(第一義)입니까. 조왈 확연(廓然)하여 성(聖)이 없습니다. 제왈(帝曰) 짐(朕)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조왈 알지 못합니다(不識). 무제가 영오(領悟)하지 못했다. 조사가 기(機)가 계합하지 못한 줄 알았다. 이 달 19일에 몰래(潛) 강북(江北)으로 돌아갔다(回). 11월 23일 낙양(洛陽)에 이르렀으니(屆) 위(魏) 효명(孝明帝) 정광(正光) 원년(520; 곧 普通元年)에 상당한다.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우지(寓止; 寄宿. 留住)하면서 면벽(面壁)하고 앉아 종일 묵연(默然)했다.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해 그를 일러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했다.
●刺史; 벼슬 이름. 한(漢)으로부터 설립했으며 본래 군현(郡縣)을 감찰하는 관원이었음. 수ㆍ당 이후에 연용(沿用)하여 1주(州)의 장관의 별칭이 되었음. 속관(屬官)에 장사(長史)ㆍ사마(司馬) 등이 있음 [백도한어]. ▲사문외집11 제주자사 역대연혁에 가로되 한(漢)에 승상의 분견(分遣)인 자사주(刺史州)가 있었다 (중략) 당 지덕 2재(757) 군(郡)을 파하고 주(州)로 삼았고 다시 태수를 자사로 삼았다. 상주(上州)는 자사 1원(員)이며 종3품, 중주(中州)는 1원이며 정4품, 하주(下州)는 1원이며 정4품하다.
●表聞; 표문(表文)을 올려 주상(主上)에게 신문(申聞; 아뢰다)함.
●寶唱; 남조(南朝) 제량(齊梁) 시기의 승인(僧人). 속성은 잠(岑)이며 오군(吳郡; 江蘇 吳縣) 사람. 승우(僧祐)를 사사(師事)했음.
●嵩; 계숭(契嵩; 1007-1072)이니 송대 운문종승. 등주 심진(鐔津; 지금의 광서 등현) 사람. 속성은 이(李)며 자는 중령이며 자호가 잠자(潛子). 7세에 출가하고 13세에 득도하여 머리 깎고 19세에 유방했음. 늘 관음상을 정수리에 이고서 날마다 그 명호 10만 성(聲)을 외었음. 후에 동산효총선사(洞山曉聰禪師)에게서 득법했음. 스님은 내외의 전적을 두루 통달했으며 글을 잘 지었음. 저서에 원교ㆍ효론 등 보교편(輔敎篇)이 있으며 이 밖에 선종의 법맥에 관해서는 저서에 전법정종정조도(傳法正宗定祖圖)ㆍ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 등의 서책이 있음. 인종이 자방포와 명교대사(明敎大師)의 호를 주었음. 희녕 5년 항주 영은사에서 시적했고 향수(享壽; 향년)는 66. 문인이 그의 저작을 거두어 심진문집(鐔津文集) 20권을 집성했음. 계숭이 전당 불일산에 거주했음으로 인해 고로 또 명칭이 불일선사(佛日禪師)며 스님이 일찍이 영안산(永安山)의 정사에 머물렀기 때문에 후인이 드디어 영안으로써 그를 호칭했음 [전법정종기1. 속전등록5. 심진명교대사행업기].
●朕; 1 대사(代詞)니 제1인칭을 표시함. 이아(爾雅) 짐(朕) 아(我)다. 곽박(郭璞)의 주(注) 옛적에 귀천(貴賤)이 다 자칭 짐(朕)이라 했다. 또 짐(朕)은 신(身)임. 곽박의 주(注) 금인(今人)이 또한 스스로 호칭해 신(身)이라 한다. 형병(邢昺)의 소(疏) 신(身)은 곧 아(我)다. 2 황제(皇帝)의 자칭이니 진시황(秦始皇)으로부터 비롯했음.
●度僧; 도(度)란 것은 세속을 벗어나서 생사를 여읨임. 곧 일정한 의식을 거행하여 속인으로 하여금 출가하여 승인이 되게 함.
●有漏; 무루(無漏)의 대칭(對稱)임. 누(漏)란 것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니 번뇌의 사물을 함유하였으며 이를 일러 유루라 함. ▲대승의장5. 일체 번뇌가 유주(流注)하여 단절하지 않나니 그것이 마치 종기가 새는 것 같으므로 고로 이름하여 누(漏)다.
●聖諦; 성자가 보는 바의 체리(諦理)가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성제(聖諦)임. 또 성(聖)이란 것은 정(正)이니 정진(正眞)의 체리가 되는지라 고로 이름이 성제임. 열반경12에 가로되 고ㆍ집ㆍ멸ㆍ도 이 이름이 4성제(聖諦)다.
●洛陽; 또 명칭이 낙읍(洛邑)ㆍ낙경(洛京)이니 하남성 개봉부 서쪽 황하의 남안(南岸)에 위치함. 낙수(洛水)가 그 남쪽에 흐르는지라 고로 이 명칭이 있음. 동한(東漢)ㆍ서진(西晉)ㆍ후위(後魏)의 도읍이었음. 백마사가 이 땅에 있음. 낙양가람기를 안험컨대 불교가 성행할 시기에 낙양성 안에 사원이 1,567소(所)가 있었음.
●嵩山; 또 숭산(崇山)ㆍ숭악(嵩嶽)ㆍ숭고산(嵩高山)ㆍ숭고산(崇高山)ㆍ외방산(外方山)으로 지음. 하남(河南) 등봉현(登封縣) 북쪽 5, 6㎞의 곳에 위치함. 또 중악(中嶽)으로 지음. 동악태산(東嶽泰山; 山東)ㆍ서악화산(西嶽華山; 陝西)ㆍ남악형산(南嶽衡山; 湖南)ㆍ북악항산(北嶽恆山; 山西)과 더불어 합칭이 5악(嶽)임. 온 산이 태실(太室)과 소실(少室) 두 산을 중심으로 삼음. 동(東)은 태실산(太室山)이 되며 서(西)는 소실산(少室山)이 됨. 기타 따로 크고 작은 30여 봉(峰)이 있음. 당대 측천무후가 특칭(特稱)하여 신악(神嶽)이라 했음. 소실산 북록(北麓)의 소림사(少林寺)는 선종 초조인 달마가 여기에서 9년 동안 면벽(面壁)한지라 원근에 치명(馳名; 이름을 날리다)함.
●少林寺; 하남성 등봉현성(登封縣城)의 북쪽 12㎞의 소실산(少室山) 오유봉(五乳峰) 아래에 위치함. 북위(北魏) 태화 19년(495) 효문제(孝文帝)가 천축승 불타선사(佛陀禪師)를 위해 건립한 것임. 정광 원년(520), 일설(一說)엔 효창 3년(527) 보리달마가 사원에 와서 면벽구년(面壁九年)하였고 혜가(慧可)에게 전법(傳法)하여 중국선종을 개창(開創)했음. 고로 달마를 일컬어 초조(初祖)라 하고 소림사를 조정(祖庭)이라 함. 당초(唐初)에 소림사의 승중(僧衆)이 당태종을 도와 개국(開國)에 공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승중이 늘 권술(拳術)을 익히게 되었고 선종과 소림의 권술이 널리 유전(流傳)되었음. 당 고종과 무후(武后)가 균일하게 매우 숭경(崇敬)했고 사우(寺宇)를 정수(整修)했음. 그 후에 당말오대의 난을 역경(歷經)하면서 사원이 점차 쇠미해졌음. 송 순우 2년(124 2) 설정복유(雪庭福裕) 및 그 법사(法嗣)인 영은문태ㆍ고암보취ㆍ식암의양ㆍ순졸문재 여러 스님이 상계(相繼)하며 이 사원에 주지했고 각기 선풍을 진작했으며 조동정맥(曹洞正脉)을 전했음. 소림사는 만당(晩唐)과 오대의 즈음에 임제종의 승인이 거주한 곳이 되었는데 금ㆍ원 이래로 조동종 도량이 되었음. 청초에 소림사는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지(基地)가 됨으로 인해 분소(焚燒)를 만났음. 청 옹정 13년(1735) 중수했고 규모가 굉대(宏大)함 [속고승전4, 동16. 전등록3, 동4. 석씨계고략2. 소림사지. 위서114].
時有僧神光者 曠達之士也 久居伊洛 博覧羣書 善談玄理 每歎曰 孔老之敎 禮術風規 莊易之書 未盡妙理 近聞達磨大士住止少林 至人不遙 當造玄境 乃往彼 晨夕參承 祖常端坐面壁 莫聞誨勵 光自惟曰 昔人求道 敲骨取髓 刺血濟饑 布髮掩泥 投崖飼虎 古尙若此 我又何人 其年十二月九日夜 天大雨雪 光堅立不動 遲明積雪過膝 祖憫而問曰 汝久立雪中 當求何事 光悲淚曰 惟願和尙慈悲 開甘露門 廣度羣品 祖曰 諸佛無上妙道 曠劫精勤 難行能行 非忍而忍 豈以小德小智 輕心慢心 欲冀眞乘 徒勞勤苦 光聞祖誨勵 潛取利刀 自斷左臂 置于祖前 祖知是法器 乃曰 諸佛最初求道 爲法忘形 汝今斷臂吾前 求亦可在 祖遂因與易名曰慧可 可曰 諸佛法印 可得聞乎 祖曰 諸佛法印 匪從人得 可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祖曰 將心來 與汝安 可良久曰 覔心了不可得 祖曰 我與汝安心竟
●伊洛; 亦作伊雒 伊水與洛水 兩水匯流 多連稱 亦指伊洛流域 [百度百科]
●禮術風規; 禮 禮節 術 學術 風 風習 規 法規
●參承; 參見服侍
●誨勵; 訓誨激勵
●敲骨取髓; 常啼菩薩求法之故事 大般若經三百九十八 爾時常啼 作是語已 卽申右手 執取利刀 刺己左臂 令出其血 復割右髀 皮肉置地 破骨出髓 與婆羅門 復趣牆邊 欲剖心出
●刺血濟饑; 賢愚經二慈力王血施品 王聞是語 甚懷哀傷 卽自放脈 刺身五處 時五夜叉 各自持器 來承血飮
●布髮掩泥; 釋迦牟尼于前世曾獻花供養燃燈佛 又見路泥 遂將頭髮鋪于地上 願此然燈如來及聲聞衆 足蹈我身及頭髮上 渡於此泥 燃燈佛于是授記 使釋迦牟尼終而成佛 [佛本行集經三]
●投崖飼虎; 金光明經四捨身品 轉復前行見有一虎 適産七日而有七子 圍繞周匝飢餓窮悴 …… 爾時第三王子 作是念言 我今捨身時已到矣 …… 卽以乾竹刺頸出血 於高山上投身虎前
●遲明; 遲 早 集韻 遲 待也
●羣品; 卽群生 衆生
●曠劫; 曠 久也 遠也 久遠 曠劫卽無限長遠的時間
●法印; 妙法之印璽也 妙法眞實 不動不變 故稱爲印 又妙法如王印通達無礙 謂之印 又爲證明佛之正法者 故曰印 又爲諸佛諸祖互相印可 心心相傳之法 故曰法印 ▲法華義疏六 通言印者 印定諸法不可移改 又釋以文爲印 將文定理 謂理與此文相應者乃爲實理 故名法印
때에 신광(神光)이란 승인(僧人)이 있었으니 광달(曠達; 豁達)한 사내다. 오래 이락(伊洛)에 거주하면서 널리 뭇 서책을 열람했으며 현리(玄理)를 잘 얘기했다. 매번 탄식해 가로되 공로(孔老)의 교는 예술풍규(禮術風規)며 장역(莊易; 莊子와 周易)의 서책은 묘리를 다하지 못했다. 최근에 들으니 달마대사가 소림에 주지(住止)한다 하더라. 지인(至人)이 멀지 않으니 마땅히 현경(玄境)에 나아가리라 하고는 이에 거기에 가서 아침 저녁으로 참승(參承)했다. 조사가 늘 단좌(端坐)하여 면벽(面壁)한지라 회려(誨勵)를 듣지 못했다. 광(光; 神光)이 스스로 사유하여 가로되 옛 사람은 도를 구하면서 고골취수(敲骨取髓; 뼈를 두드려 골수를 취함)하고 자혈제기(刺血濟饑; 피를 내어 주린 이를 구제함)하고 포발엄니(布髮掩泥)하고 투애사호(投崖飼虎; 언덕에서 몸을 던져 주린 범의 먹이가 됨)하였으니 옛날에도 오히려 이와 같았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인가. 그 해 12월 9일 밤에 하늘이 눈을 크게 내렸다. 신광이 굳건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무렵(遲明; 黎明. 淸晨)엔 눈이 쌓여 무릎을 지났다. 조사가 가엾이 여겨 물어 가로되 네가 오래 눈 속에 선 것은 마땅히 어떤 일을 구함이냐. 신광이 슬프게 눈물 흘리며 가로되 오직 원컨대 화상은 자비로 감로문(甘露門)을 여시어 널리 군품(羣品)을 제도하소서. 조왈(祖曰) 제불의 위없는 묘도(妙道)는 광겁(曠劫)에 정근(精勤)하여 난행(難行)을 능히 행하며 참지 못할 것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소덕소지(小德小智)와 경심만심(輕心慢心)으로써 진승(眞乘)을 바라고자 하느냐, 근고(勤苦)함이 헛수고(徒勞)다. 신광이 조사의 회려(誨勵)를 듣고 몰래 예리한 칼을 취해 스스로 왼쪽 팔을 절단하여 조사의 앞에 두니 조사가 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이에 가로되 제불이 최초에 구도하면서 법을 위해 형체를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절단하니 구함도 또한 가하다. 조사가 드디어 인해 이름을 바꾸어 주어서 가로되 혜가(慧可)라 했다. 혜가가 가로되 제불의 법인(法印)을 가히 얻어 듣겠습니까. 조왈(祖曰) 제불의 법인은 타인으로부터 얻는 게 아니다. 혜가가 가로되 나의 마음이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 편안하게 해 주시기를 구걸합니다. 조왈 마음을 가지고 오면 너를 편안케 해 주리라. 혜가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마음을 찾았으나 가히 얻지 못하겠습니다. 조왈 내가 너에게 마음을 편안케 해 주길 마쳤다.
●伊洛; 또한 이락(伊雒)으로 지음.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니 두 물이 회류(匯流; 모여 흐름)하는지라 다분히 연칭(連稱)함. 또한 이락유역(伊洛流域)을 가리킴 [백도백과]
●禮術風規; 례(禮)는 예절이며 술(術)은 학술이며 풍(風)은 풍습이며 규(規)는 법규임.
●參承; 참견(參見; 拜見)하여 복시(服侍)함.
●誨勵; 훈회(訓誨; 가르치다)하고 격려(激勵)함.
●敲骨取髓; 상제보살(常啼菩薩)의 구법의 고사니 대반야경398 이때 상제가 이 말을 짓고는 곧 오른손을 펴 예리한 칼을 가지고 자기의 왼팔을 찔러 그 피가 나오게 하고 다시 오른쪽 넓적다리를 베어 피육(皮肉)을 땅에 놓고 뼈를 깨뜨려 골수를 내어 바라문에게 주었다. 다시 담장 가에 달려가 심장을 쪼개어 내려고 했다
●刺血濟饑; 현우경2 자력왕혈시품(慈力王血施品). 왕이 이 말을 듣고 심히 애상(哀傷)을 품었다. 곧 스스로 방맥(放脈)하여 몸의 다섯 곳을 찔렀다. 때에 다섯 야차가 각기 그릇을 가지고 와서 피를 받아 마셨다.
●布髮掩泥; 석가모니가 전세(前世)에 일찍이 연등불(燃燈佛)에게 헌화(獻花)하여 공양했으며 또 길이 진흙임을 보고 드디어 머리카락을 가지고 지상에 펴면서 원컨대 이 연등여래(然燈如來) 및 성문중(聲聞衆)이 나의 몸과 및 머리카락 위를 발로 밟고 이 진흙을 건너십시오 하자 연등불이 이에 수기(授記)하여 석가모니로 하여금 마침내 성불하게 하였음 [불본행집경3].
●投崖飼虎; 금광명경4 사신품(捨身品). 더욱더 다시 앞으로 가자 한 범이 있음을 보았다. 마침 출산한 지 7일이며 7자(子)가 있었고 위요주잡(圍繞周匝)하며 기아로 궁췌(窮悴)했다 …… 이때 셋째 왕자가 이 사념을 지어 말하되 내가 이제 몸을 버릴 때가 이미 이르렀다 …… 곧 마른 대로 목을 찔러 피를 내고 높은 산 위에서 범의 앞으로 투신했다.
●遲明; 지(遲)는 조(早). 집운(集韻) 지(遲) 대(待)다.
●羣品; 곧 군생(群生), 중생
●曠劫; 광(曠)은 구(久)며 원(遠)이니 구원(久遠)임. 광겁은 곧 무한히 길고 먼 시간.
●法印; 묘법의 인새(印璽; 印章이니 특히 제왕의 인장을 가리킴)니 묘법은 진실하며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므로 고로 명칭이 인(印)이 되고 또 묘법은 왕인(王印)과 같아서 통달하여 무애(無礙)한지라 이를 일러 인(印)이라 함. 또 불타의 정법임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고로 가로되 인(印)임. 또 제불제조가 호상 인가(印可)하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전하는 법인지라 고로 가로되 법인(法印)임. ▲법화의소6. 통상(通常) 말하는 인(印)이란 것은 제법을 가히 이개(移改)하지 못함을 인정(印定)함이다. 또 해석하기를 문(文)으로 인(印)을 삼나니 문(文)을 가지고 리(理)를 정함이다. 이르자면 리(理)와 이 문(文)이 상응하는 것이 곧 실리(實理)가 되는지라 고로 명칭이 법인(法印)이다.
越九年 欲返天竺 命門人曰 時將至矣 汝等盍各言所得乎 時有道副對曰 如我所見 不執文字 不離文字 而爲道用 祖曰 汝得吾皮 尼總持曰 我今所解 如慶喜見阿閦佛國 一見更不再見 祖曰 汝得吾肉 道育曰 四大本空 五陰非有 而我見處 無一法可得 祖曰 汝得吾骨 最後慧可禮拜 依位而立 祖曰 汝得吾髓 乃顧慧可而告之曰 昔如來以正法眼付迦葉大士 展轉囑累 而至於我 我今付汝 汝當護持 幷授汝袈裟 以爲法信 各有所表 宜可知矣 可曰 請師指陳 祖曰 內傳法印 以契證心 外付袈裟 以定宗旨 後代澆薄 疑慮競生 云吾西天之人 言汝此方之子 憑何得法 以何證之 汝今受此衣法 却後難生 但出此衣幷吾法偈 用以表明其化無礙 至吾滅後二百年 衣止不傳 法周沙界 明道者多 行道者少 說理者多 通理者少 潛符密證 千萬有餘 汝當闡揚 勿輕未悟 一念回機 便同本得 聽吾偈曰 吾本來茲土 傳法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祖又曰 吾有楞伽經四卷 亦用付汝 卽是如來心地要門 令諸衆生開示悟入 吾自到此 凡五度中毒 我甞自出而試之 置石石裂 緣吾本離南印來此東土 見赤縣神州有大乘氣象 遂踰海越漠 爲法求人 際會未諧 如愚若訥 今得汝傳授 吾意已終〈別記云 祖初居少林寺九年 爲二祖說法 秖敎外息諸緣 內心無喘 心如牆壁 可以入道 慧可種種說心性 曾未契理 祖秖遮其非 不爲說無念心體 可忽曰 我已息諸緣 祖曰 莫成斷滅去否 可曰 不成斷滅 祖曰 此是諸佛所傳心體 更勿疑也〉 言已 乃與徒衆往禹門千聖寺 止三日
●總持; 南北朝時代尼師 又稱尼總持 俗姓蕭 名明練 爲梁武帝之女 出家後 號總持 師事禪宗初祖菩提達磨 其餘事蹟 生卒年均不詳 僅知其塔距離少林寺約五里 塔碑爲褚詢望所寫 [曆代法寶記菩提達摩章 寶林傳八 祖堂集二 祖庭事苑八]
●慶喜見阿閦佛國; 祖庭事苑八 阿閦國 總持尼所證語緣 摩訶般若(摩訶般若波羅蜜經 一名大品經)二十二云 佛於大衆前而現神足變化 一切大衆皆見阿閦佛國種種功德成就 佛攝神足 皆不復見 不與眼作對 佛告阿難 如是 阿難 一切法不與作對 法法不相見 法法不相知 如阿閦佛國亦如是 何以故 一切法無知無見 無作無動 不可捉不可思議 如幻人無受無覺無眞實 菩薩如是行 爲行般若波羅蜜 亦不著諸法 ◆慶喜; 楞嚴經文句一 阿難此云慶喜 白飯王子 佛之堂弟 成道日生 故名慶喜也 ◆阿閦佛; 爲東方現在佛名 略稱阿閦 又稱阿閦鞞佛 阿芻鞞耶佛 此云不動佛 無動佛 或無怒佛 無瞋恚佛
●五陰; 又作五蘊五衆五聚 翻譯名義集六 塞健陀 此云蘊 蘊謂積聚 古翻陰 陰乃蓋覆 積聚有爲 蓋覆眞性 又仁王云 不可說識 生諸有情色心二法 色名色蘊 心名四蘊 皆積聚性 隱覆眞實 此以色受想行識名爲五蘊 音義指歸云 漢來翻經爲陰 至晉僧叡改爲衆 至唐三藏改爲蘊
●囑累; 囑 爲付囑付託之義 累 爲煩勞荷負之義 謂以事囑託他人而令其負荷 宗門中 每以傳付佛祖大法 令後人護持 稱爲囑累 [維摩經略疏十釋囑累品(智顗)]
●指陳; 指明和陳述
●宗旨; 指經典與論書等之主要旨趣 與宗趣 宗要 宗體等 意義相同 於禪宗 則稱禪之要旨爲宗旨 亦稱宗風 宗趣 宗乘
●澆薄; 薄 不厚 貧薄 指社會風氣浮薄
●沙界; 恆河沙之世界 恒河沙者多數之喩
●迷情; 一指迷惑之心 與迷心同 二迷惑有情(衆生) 此指二
●一華開五葉; 一般認爲一花指達磨所傳禪法 五葉指禪宗鼎盛時期先後産生的潙仰 臨濟 曹洞 雲門 法眼五家宗派 ▲空谷集一 師(林泉)云 初祖達磨大士曰 吾本來茲土 傳法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至曹溪六祖之下分而爲二 一曰南嶽讓 二曰靑原思 讓之已下復分爲二 曰潙仰 曰臨濟 思之已下亦分爲三 曰曹洞 曰雲門 曰法眼 曹溪一派今分爲五 此應一花五葉之懸讖也
●楞伽經; 四卷 全稱楞伽阿跋多羅寶經 收於大正藏第十六冊 楞伽 山名 此云不可往 阿云無 跋多羅云上 寶 貴重義 經 貫攝義 是名不可往無上寶經 爲法相宗所依六經之一 本經宣說世界萬有皆由心所造 吾人認識作用之對象不在外界而在內心 是結合如來藏思想與唯識阿賴耶識思想 爲代表印度後期大乘佛敎思想之經典 本經的漢譯本有三種 一劉宋求那跋陀羅譯本 楞伽阿跋多羅寶經 又稱四卷楞伽經 宋譯楞伽經 二北魏菩提流支譯 入楞伽經 又稱十卷楞伽經 魏譯楞伽經 三唐實叉難陀譯 大乘入楞伽經 又稱七卷楞伽經 唐譯楞伽經 四卷楞伽經爲菩提達摩所付囑慧可之書 特別爲禪宗所重
●開示悟入; 開佛知見 示佛知見 使悟佛知見 入佛知見也 是顯佛出世本懷之語 法華經方便品 舍利弗 云何名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諸佛世尊欲令衆生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欲示衆生佛之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悟佛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舍利弗 是爲諸佛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赤縣神洲; 祖庭事苑八 赤縣神洲(字彙 洲 本作州) 達磨初觀赤縣神洲 有大乘種氣 立世毘曇藏二云 四大洲各有八洲圍繞 南八洲曰牛洲羊洲椰子洲寶洲猴洲象洲女洲神洲 張衡慮圖云 崑崙東有赤縣之州 風雨有時 寒暑有節 苟非此土 南則多暑 北則多寒 西則多陰 故聖王不處焉 又史記(74) 鄒衍(史記作騶衍)著書云 中國於天下八十一分居其一分耳 中國名赤縣 內有九州 禹之敍九州是也
●際會; 聚首 聚會 引申爲配合呼應
9년이 넘자(越) 천축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문인(門人)들에게 명령해 가로되 때가 거의(將) 이르렀거늘 너희 등이 어찌 각자 얻은 바를 말하지 않느냐(盍各言所得乎). 때에 도부(道副)가 있어 대답해 가로되 나의 소견(所見)과 같은 것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 않으면서 도의 씀(道用)으로 삼습니다. 조왈(祖曰) 너는 나의 가죽(皮)을 얻었다. 니총지(尼總持)가 가로되 내가 여금에 안 바로는 경희(慶喜; 아난)가 아축불국을 보되(慶喜見阿閦佛國) 한 번 보고 다시 재견(再見)하지 않음과 같습니다. 조왈 너는 나의 살(肉)을 얻었다. 도육(道育)이 가로되 4대(大)가 본래 공(空)했고 5음(五陰)이 있음이 아닌지라 나의 견처로는 1법도 가히 얻음이 없습니다. 조왈 너는 나의 뼈(骨)를 얻었다. 최후에 혜가(慧可)가 예배하고 의위(依位)해 서자 조왈 너는 나의 수(髓)를 얻었다. 이에 혜가를 돌아보며 그에게 알려 가로되 옛적에 여래가 정법안(正法眼)을 가섭대사(迦葉大士)에게 부촉하셨고 전전(展轉)히 촉루(囑累)하여 나에게 이르렀다. 내가 이제 너에게 부촉하나니 너는 마땅히 호지(護持)하라. 아울러 너에게 가사(袈裟)를 주어 법신(法信)으로 삼나니 각기 표(表)하는 바가 있으므로 의당(宜當) 가히 알지니라. 혜가가 가로되 스님의 지진(指陳)을 청합니다. 조왈 안으론 법인(法印)을 전해 증심(證心)에 계합하고 밖으론 가사를 부촉해 종지(宗旨)를 정한다. 후대에 요박(澆薄)하여 의려(疑慮)가 다투어 생기(生起)하리니 나는 서천(西天)의 사람이라 이르고(云) 너는 차방(此方)의 남자라고 말하면서 무엇에 의빙(依憑)하여 득법했고 무엇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느냐 하리라. 네가 지금 이 의법(衣法)을 받아 도리어 뒤에 난(難)이 생기면 단지 이 옷과 아울러 나의 법게(法偈)를 내어 써서 표명(表明)하면 그 교화에 장애가 없으리라. 내가 멸후(滅後) 2백 년에 이르면 옷은 그쳐서(止) 전하지 않아도 법이 사계(沙界)에 두루하리라. 도를 밝히는 자는 많고 도를 행하는 자는 적고 이치를 설하는 자는 많고 이치를 통달하는 자는 적다. 잠부밀증(潛符密證)하는 이가 천만(千萬)에 나머지가 있으리라. 너는 마땅히 천양(闡揚)하되 깨닫지 못한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지니 일념(一念)에 회기(回機)하면 바로 본득(本得)과 같다.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내가 본래 이 국토에 온 것은/ 법을 전하고 미정(迷情)을 구제하기 위함이니/ 1화(華)에 5엽(葉)이 열려(一華開五葉)/ 결과를 자연히 이루리라. 조사가 또 가로되 나에게 릉가경(楞伽經) 4권이 있어 또한 너에게 부촉함을 쓴다. 즉시(卽是) 여래의 심지(心地)의 요문(要門)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개시오입(開示悟入)하게 하라. 내가 여기에 도착함으로부터 무릇 다섯 차례(五度) 중독(中毒)되었다. 내가 일찍이(甞) 스스로 토출(吐出)하여 그것을 시험했는데 돌에 놓으니 돌이 갈라졌다. 내가 본래 남인(南印; 남인도)을 떠나(離) 이 동토(東土)에 와서 적현신주(赤縣神州)를 보매 대승기상(大乘氣象)이 있었기 때문(緣)에 드디어 바다를 넘고(踰) 사막을 넘어(越) 위법(爲法)하고 구인(求人)하면서 제회(際會)가 화해(和諧)하지 못해 어리석은 듯, 어눌(語訥)한 듯했는데(如愚若訥) 이제 너를 얻고 전수(傳授)했으니 나의 뜻을 이미 마쳤다〈別記에 이르되 스님이 처음 소림사에 거주한 지 9년 만에 2조를 위해 설법했다. 다만 가르치되 밖으론 諸緣을 쉬고 안으론 마음이 헐떡임이 없어 마음이 牆壁과 같아야 可以 入道한다. 혜가가 갖가지로 心性을 설하면서 일찍이 이치에 계합하지 못했다. 조사가 다만 그의 잘못을 遮斷하고 無念의 心體를 설하지 않았다. 혜가가 홀연히 가로되 내가 이미 諸緣을 쉬었습니다. 祖曰 斷滅을 이루어 가지 않았느냐. 혜가가 가로되 단멸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祖曰 이것이 이 제불이 전한 바 心體니 다시 의심하지 말아라〉. 말한 다음 이에 도중(徒衆)과 더불어 우문(禹門) 천성사(千聖寺)로 가서 3일 머물렀다(止).
●總持; 남북조시대 니사(尼師). 또 호칭이 니총지(尼總持)며 속성은 소(蕭)며 이름은 명련(明練)이니 양무제의 딸이 됨. 출가 후에 호를 총지라 했고 선종 초조 보리달마를 사사(師事)했음. 전등록3을 안험컨대 달마가 소림사에 9년 동안 서지(棲止)한 후 인도로 돌아가려고 했음. 문하제자 도부(道副)ㆍ니총지(尼總持)ㆍ도육(道育)ㆍ혜가(慧可) 등을 불러와서 얻은 바를 각기 말하게 했음. 그때 스님이 내가 여금에 아는 바로는 경희(慶喜; 아난)가 아축불국을 보되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음과 같다는 말로 달마가 인가하여 너는 나의 육(肉)을 얻었다 함을 입었음. 그 나머지 사적(事蹟)과 생졸년은 균일하게 불상이며 그의 탑이 소림사와 약 5리의 거리임을 겨우 앎. 탑비는 저순망(褚詢望)이 서사한 바가 됨 [역대법보기보리달마장. 보림전8. 조당집2. 조정사원8].
●慶喜見阿閦佛國; 조정사원8. 아축국(阿閦國) 총지니(總持尼)의 증득한 바 어연(語緣)임. 마하반야(마하반야바라밀경이니 一名이 大品經)22에 이르되 불타가 대중 앞에서 신족(神足)의 변화를 나타내시매 일체 대중이 다 아축불국의 갖가지 공덕성취를 보았다. 불타가 신족을 거두자 다 다시 보지 못했으므로 눈과 작대(作對; 상대를 지음)하지 못했다. 불타가 아난에게 고하시되 이와 같느니라. 아난아 일체법이 더불어 작대하지 못하나니 법과 법이 서로 보지 못하고 법과 법이 서로 알지 못함이 아축불국과 같아서 또한 이와 같느니라. 무슨 연고냐 하면. 일체법이 앎이 없고 봄이 없으며 지음이 없고 움직임이 없으며 가히 잡지 못하고 가히 사의치 못하나니 마치 환인(幻人)은 받음이 없고 깨침이 없고 진실이 없음과 같다.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함인지라 또한 제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慶喜; 릉엄경문구1. 아난은 여기에선 이르되 경희(慶喜)니 백반왕의 아들이며 부처의 당제(堂弟)다. 성도하던 날에 출생한지라 고로 이름이 경희이다. ◆阿閦佛; 동방의 현재 불명이 됨. 약칭이 아축이며 또 명칭이 아축비불ㆍ아추비야불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부동불(不動佛)ㆍ무동불(無動佛) 혹 무노불(無怒佛)ㆍ무진에불(無瞋恚佛)임.
●五陰; 또 5온(蘊)ㆍ5중(衆)ㆍ5취(聚)로 지음. 번역명의집6. 새건다(塞健陀; 梵 skandha) 여기에선 이르되 온(蘊)임. 온은 적취(積聚)를 말함. 옛날에 음(陰)으로 번역했음. 음(陰)은 곧 개부(蓋覆)임. 유위(有爲)를 적취하고 진성(眞性)을 개부함임. 또 인왕경(仁王經)에 이르되 불가설(不可說)의 식(識)이 모든 유정(有情)의 색(色)과 심(心)의 두 법을 낸다. 색은 이름이 색온(色蘊)이며 심은 이름이 4온(蘊)이다. 다 적취의 성품이며 진실을 숨기고 덮는다. 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5온이라고 이름함임. 음의지귀(音義指歸)에 이르되 한(漢)나라 이래로 경을 번역하면서 음(陰)으로 지었다. 진(晉)나라 승예(僧叡)가 고쳐서 중(衆)으로 지었는데 당나라 삼장(三藏; 玄奘)에 이르러 고쳐서 온(蘊)으로 지었다.
●囑累; 촉(囑)은 부촉(付囑), 부탁의 뜻이며 루(累)는 번로하부(煩勞荷負)의 뜻. 이르자면 일을 타인에게 촉탁(囑託)하여 그로 하여금 부하(負荷)하게 함. 종문 중에서 매양 불조의 대법을 전부(傳付)하면서 후인으로 하여금 호지하게 함을 일컬어 촉루라함 [유마경약소10석촉루품(지의)].
●指陳; 지명(指明; 가리켜 밝힘)과 진술(陳述).
●宗旨; 경전과 논서 등의 주요한 지취를 가리킴. 종취(宗趣)ㆍ종요(宗要)ㆍ종체(宗體) 등과 의의(意義)가 서로 같음. 선종에선 곧 선의 요지(要旨)를 일컬어 종지(宗旨)라 함. 또한 명칭이 종풍ㆍ종취ㆍ종승(宗乘)임.
●澆薄; 박(薄)은 불후(不厚), 빈박(貧薄). 사회(社會)의 풍기(風氣)가 부박(浮薄)함을 가리킴.
●沙界; 항하사(恆河沙)의 세계. 항하사란 것은 다수의 비유.
●迷情; 1. 미혹한 마음을 가리킴. 미심(迷心)과 같음. 2. 미혹한 유정(有情; 중생).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一華開五葉; 일반적으로 인식하기를 1화(華; 花)는 달마가 전한 바의 선법을 가리키며 5엽(葉)은 선종이 정성(鼎盛)한 시기에 선후(先後)로 산생(産生)된 위앙ㆍ임제ㆍ조동ㆍ운문ㆍ법안의 오가종파(五家宗派)를 가리킴. ▲공곡집1. 스님(從倫)이 이르되 초조 달마대사가 가로되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하고 미정(迷情)을 구제하기 위함이니/ 1화에 5엽이 피어(一花開五葉)/ 결과를 자연히 성취하리라. 조계육조(曹溪六祖)의 아래 이르러 나뉘어 둘이 되니 1은 가로되 남악회양(南嶽懷讓)이며 2는 가로되 청원행사(靑原行思)다. 회양의 이하(已下; 以下)에 다시 나뉘어 둘이 되니 가로되 위앙이며 가로되 임제다. 행사의 이하에 또한 나뉘어 셋이 되니 가로되 조동이며 가로되 운문이며 가로되 법안이다. 조계의 1파(派)가 여금에 나뉘어 다섯이 되니 이것이 1화5엽(一花五葉)이란 현참(懸讖)에 응함이다.
●楞伽經; 4권. 전칭이 릉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며 대정장(大正藏) 제16책에 수록되었음. 릉가는 산 이름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불가왕(不可往. 가히 가지 못한다)임. 아(阿)는 이르되 무(無)며 발다라(跋多羅)는 이르되 상(上)이며 보(寶)는 귀중(貴重)의 뜻이며 경(經)은 관섭(貫攝)의 뜻이니 이 이름이 불가왕무상보경(不可往無上寶經)임. 법상종(法相宗)에서 의지(依持)하는 바의 6경(經)의 하나. 본경(本經)은 세계만유(世界萬有)가 다 마음으로부터 지어진 바며 우리 사람의 인식작용(認識作用)의 대상(對象)이 외계(外界)에 있지 않으며 내심(內心)에 있다고 선설(宣說)함. 이것은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과 유식(唯識)의 아뢰야식사상(阿賴耶識思想)이 결합된 인도 후기의 대승불교사상을 대표하는 경전임. 본경(本經)의 한역본(漢譯本)에 3종(種)이 있음. 1. 유송(劉宋)의 구나발다라역본(求那跋陀羅譯本)의 릉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經)이니 또 명칭이 사권릉가경(四卷楞伽經)ㆍ송역릉가경(宋譯楞伽經). 2. 북위(北魏)의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입릉가경(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십권릉가경(十卷楞伽經)ㆍ위역릉가경(魏譯楞伽經). 3.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대승입릉가경(大乘入楞伽經)이니 또 명칭이 칠권릉가경(七卷楞伽經)ㆍ당역릉가경(唐譯楞伽經). 사권릉가경은 보리달마가 혜가(慧可)에게 부촉(付囑)한 바의 책이라서 특별히 선종에서 소중히 여김.
●開示悟入; 부처의 지견을 열고(開)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示)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 부처의 지견에 들게(入) 함임. 이것은 부처가 출세한 본회를 나타내는 말임. 법화경방편품 사리불이여, 무엇을 이름해 제불세존이라 하는가,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한다. 제불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열어서(開) 청정을 얻게 하고자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자(示)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자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의 도에 들게(入) 하고자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이 제불이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함이 되느니라.
●赤縣神洲; 조정사원8. 적현신주(赤縣神洲; 자휘 洲 본래 州로 지었다) 달마가 처음 적현신주를 보니 대승종기(大乘種氣)가 있음이 보였다. 입세비담장2(立世毗曇藏二; 立世阿毘曇論二)에 이르되 4대주(大洲)에 각기 8주가 있어 위요(圍繞)한다. 남방 8주(洲)를 가로되 우주ㆍ양주ㆍ야자주ㆍ보주ㆍ후주ㆍ상주ㆍ여주ㆍ신주(神洲)이다. 장형(張衡)의 여도(慮圖)에 이르되 곤륜의 동쪽에 적현(赤縣)의 주(州)가 있으며 풍우(風雨)에 시후(時候; 춘하추동 四時의 節候)가 있고 한서(寒暑)에 절기(節氣; 한 해를 24으로 나눈 계절의 구분. 時令. 節候)가 있다. 진실로 차토(此土)가 아닌 남은 곧 다서(多暑)하고 북은 곧 다한(多寒)하고 서는 곧 다음(多陰)하므로 고로 성왕(聖王)이 거처하지 않는다. 또 사기(74) 추연(鄒衍; 史記에 騶衍으로 지어졌음)의 저서에 이르되 중국이 천하 81분(分)에 그 1분에 거처할 뿐이다. 중국의 이름이 적현(赤縣)이며 안에 9주(州)가 있나니 우(禹)가 서술한 9주가 이것이다.
●際會; 취수(聚首). 취회(聚會). 인신(引申; 轉意)하여 배합하고 호응함이 됨.
有期城太守楊衒之 早慕佛乘 問祖曰 西天五印 師承爲祖 其道如何 祖曰 明佛心宗 行解相應 名之曰祖 又問 此外如何 祖曰 須明他心 知其今古 不厭有無 於法無取 不賢不愚 無迷無悟 若能是解 故稱爲祖 又曰 弟子歸心三寶亦有年矣 而智慧昏蒙 尙迷眞理 適聽師言 罔知攸措 願師慈悲開示宗旨 祖知懇到 卽說偈曰 亦不覩惡而生嫌 亦不觀善而勤措 亦不捨智而近愚 亦不拋迷而就悟 達大道兮過量 通佛心兮出度 不與凡聖同躔 超然名之曰祖 衒之聞偈 悲喜交幷 曰 願師久住世間 化導羣有 祖曰 吾卽逝矣 不可久留 根性萬差 多逢愚難 衒之曰 未審何人 弟子 爲師除得否 祖曰 吾以傳佛秘密 利益迷途 害彼自安 必無此理 衒之曰 師若不言 何表通變觀照之力 祖不獲已 乃爲讖曰 江槎分玉浪 管炬開金鎖 五口相共行 九十無彼我 衒之聞語 莫究其端 默記于懷 禮辭而去 祖之所讖 雖當時不測 而後皆符驗 時魏氏奉釋 禪雋如林 光統律師 流支三藏者 乃僧中之鸞鳳也 覩師演道 斥相指心 每與師論義 是非蜂起 祖遐振玄風 普施法雨 而偏局之量 自不堪任 競起害心 數加毒藥 至第六度 以化緣已畢 傳法得人 遂不復救之 端居而逝 卽魏莊帝永安元年戊申十月五日也 其年十二月二十八日 塟熊耳山 起塔於定林寺 後三歲 魏宋雲奉使西域回 遇祖于葱嶺 見手𢹂隻履 翩翩獨逝 雲問 師何往 祖曰 西天去 雲歸 具說其事 及門人啓壙 唯空棺 一隻革履存焉 擧朝爲之驚歎 奉詔取遺履 於少林寺供養 至唐開元十五年丁卯歲 爲信道者竊在五臺華嚴寺 今不知所在 初梁武遇祖 因緣未契 及聞化行魏邦 遂欲自撰師碑而未暇也 後聞宋雲事 乃成之 代宗諡圓覺大師 塔曰空觀〈年號依紀年通譜〉
●太守; 戰國至秦朝時期郡守的尊稱 漢景帝更名爲太守 爲一郡的最高行政長官 [百度百科 祖庭事苑三]
●迷途; 迷之境界 指衆生輪迴轉生的三界六道之世界
●讖; 驗也 言將來之驗也 慧琳音義四十六 讖 祕密書也
●江槎分玉浪下; 祖庭事苑八 謂流支光統 密毒於吾 所以致九十也
●光統; 北齊鄴城大覺寺慧光律師 地論之宗匠 入鄴而任國統之官 故呼爲光統 [唐僧傳二十一]
●律師; 精通律學 善講戒律的師僧
●流支; 菩提流支 北魏僧 北天竺三藏也 又作菩提留支 此云道希 大乘瑜伽系之學者 北魏宣武帝永平元年(508) 至洛陽 帝甚重之 敕住於永寧寺 從而翻譯梵經 計譯有十地經論 金剛般若經 佛名經 法集經 深密解脫經 及大寶積經論 法華經論 無量壽經論等 凡三十九部一二七卷 [十地經論序 續高僧傳一 歷代三寶紀三] ▲祖庭鉗鎚錄下 元魏時菩提流支 與達磨同時 下藥以毒達磨者 是也
●鸞鳳; 鸞鳥和鳳凰 古代傳說中的神鳥 比喩賢良俊美的人
●玄風; 玄妙之宗風
●熊耳山; 位於河南盧氏縣南方 與永寧(今洛寧縣)爲界 山之兩峰竝峙如熊耳 故稱熊耳山 乃禪宗初祖菩提達磨之塔所 [大明一統志二十九 大淸一統志一六二]
●宋雲; 北魏敦煌人 爲北魏孝明帝時之使臣 孝明帝神龜元年(518 一說熙平元年或正光二年)十一月 奉胡太后之命 與沙門法力慧生等 自洛陽出發 途經赤嶺 土谷渾 鄯善 末城 波斯 賖彌等地 翌年十二月抵烏場國 謁烏場國王 竝爲說孔孟老莊之德及神仙方術 正光元年(520)四月中旬入乾陀羅國 後更西行 渡辛頭河(卽印度河) 巡禮雀離浮圖 大塔等佛蹟 翌年二月(一說三年或四年)返洛陽 攜回大乘梵文經典凡一七○部 其後事蹟不詳 又宋雲歸國後 將西域旅遊之見聞 撰成宋雲行紀 其後收於洛陽伽藍記五中[洛陽伽藍記五 釋迦方志下 魏書西域傳 魏書釋老志 河南通志三十三]
●奉使; 奉命出使 奉命出使的人 使者
●西域; 總指支那以西之諸國 別指印度
●葱嶺; 卽新疆省西南帕米爾高原之一大峻嶺 乃亞細亞大陸諸山脈之主軸 自古稱世界之屋脊 ▲西域記十二活國條 葱嶺者 據贍部州中 南接大雪山 北至熱海千泉 西至活國 東至烏鎩國 東西南北各數千里 崖嶺數百重 幽谷險峻 恆積冰雪 寒風勁烈 以産葱爲主 故謂葱嶺 又以山崖葱翠 遂以名焉
●翩翩; 輕擧貌 往來貌
기성태수(期城太守) 양현지(揚衒之)가 있어 일찍 불승(佛乘)을 흠모했다. 조사에게 물어 가로되 서천(西天)의 오인(五印)에서 사승(師承)하여 조(祖; 祖師)라 하거니와 그 도가 어떻습니까. 조왈(祖曰) 불타의 심종(心宗)을 밝혀 행해(行解)가 상응함을 이름해 가로되 조(祖)다. 또 묻되 이 밖에 어떻습니까. 조왈 모름지기 타심(他心)을 밝히고 그 금고(今古)를 알고 유무(有無)를 싫어하지 않고 법에 취함이 없고 불현불우(不賢不愚)하고 무오무미(無迷無悟)하나니 만약 능히 이를 안다면 고로 일컬어 조(祖)라 한다. 우왈(又曰) 제자(弟子)가 삼보(三寶)에 귀심(歸心)한 지 또한 유년(有年; 數年)입니다만 지혜가 혼몽(昏蒙)하여 아직(尙) 진리에 혼미(昏迷)합니다. 마침(適) 스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조치(措置)할 바(攸)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스님이 자비로 종지(宗旨)를 개시(開示)하십시오. 조사가 간도(懇到; 懇至와 같음)를 알고 곧 게를 설해 가로되 또한 악(惡)을 보고 혐오(嫌惡)를 내지 않고/ 또한 선(善)을 보고 근조(勤措; 부지런히 施行함)하지 않고/ 또한 지(智)를 버리고 우(愚)와 친근하지 않고/ 또한 미(迷)를 포기(抛棄)하고 오(悟)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도(大道)를 달통(達通)하여 과량(過量; 思量을 초과)하고/ 불심을 통달하여 출도(出度; 度量을 벗어남)하고/ 범성(凡聖)과 더불어 같은 궤도(軌道; 躔)가 아니고/ 초연(超然)함을 이름해 가로되 조(祖)다. 현지(衒之)가 게를 듣자 비희(悲喜)가 교병(交幷; 交叉合幷)하며 가로되 원컨대 스님이 세간에 오래 머물며 군유(羣有; 중생)를 화도(化導)하십시오. 조왈 나는 곧 떠날 것이니 가히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근성(根性)이 만차(萬差)라 환난(患難)을 많이 만났다. 현지가 가로되 미심(未審)하오니 어떤 사람입니까. 제자가 스님을 위해 제득(除得; 得은 조사)하겠습니다. 조왈 내가 불타의 비밀을 전수하여 미도(迷途)를 이익케 하거늘 그를 상해(傷害)하여 스스로 안녕한다면 반드시 이런 이치가 없다. 현지가 가로되 스님이 만약(若; 저본에 苦로 지었음)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어찌 통변(通變)하는 관조(觀照)의 힘을 표(表)하겠습니까. 조사가 불획이(不獲已; 부득이)하여 이에 참(讖)해 가로되 강사(江槎; 槎는 떼 사)가 옥랑(玉浪)을 나누고(江槎分玉浪)/ 관거(管炬)가 금쇄(金鎖)를 열었다/ 오구(五口)가 서로 공행(共行)하니/ 구십(九十)에 피아(彼我)가 없다. 현지가 말씀을 듣고도 그 단서(端緖)를 궁구(窮究)하지 못했고 묵묵히 가슴(懷)에 기억하고 예사(禮辭)하고 떠났다. 조사가 참(讖)하는 바는 비록 당시엔 헤아리지 못했지만 이후(而後; 以後)에 모두 부험(符驗; 符合)했다. 당시에 위씨(魏氏)는 석교(釋敎)를 받들어 선준(禪雋)이 숲과 같았는데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류지삼장(流支三藏)이란 자는 곧 승중(僧中)의 난봉(鸞鳳)이다. 스님이 도를 연설하면서 상(相)을 배척하고 심(心)을 가리킴을 보았고 매번 스님과 논의하면서 시비가 봉기(鋒起; 紛紛히 發生)하였다. 조사가 멀리 현풍(玄風)을 진작(振作)하고 법우(法雨)를 널리 베풀자 편국(偏局; 偏僻된 局量)의 도량(度量)인지라 스스로 감임(堪任)하지 못하고 해심(害心)을 다투어 일으켜 수차례(數) 독약을 가했다. 제6도(度; 次. 回)에 이르러 화연(化緣)을 이미 마치고 전법하고 사람을 얻었으므로 드디어 다시 구제하지 않고 단거(端居)히 서거했다. 곧 후위(後魏) 장제(莊帝) 영안(永安) 원년 무신(戊申; 528) 10월 5일이다. 그 해 12월 28일 웅이산(熊耳山)에 안장(安葬)하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3세(歲) 후에 위(魏)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봉사(奉使)했다가 돌아오면서 조사를 총령(葱嶺)에서 만났는데 손에 척리(隻履)를 가지고 편편(翩翩)히 홀로 떠남을 보았다. 송운이 묻되 스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조왈 서천으로 간다. 송운이 돌아와 그 사실을 갖추어 설했다. 및 문인(門人)이 계광(啓壙; 壙中을 열다)했는데 오직 빈 관(棺)이었고 1척(隻)의 가죽신만 잔존(殘存)했다. 온(擧) 조정(朝廷)이 경탄(驚歎)했다. 봉조(奉詔)하여 유리(遺履; 남긴 신)를 취해 소림사에서 공양했다. 당 개원(開元) 15년 정묘세(丁卯歲; 727)에 이르러 신도(信道)란 자가 훔쳐 오대산 화엄사에 둠이 되었는데 지금은 소재를 알지 못한다. 처음 양무(梁武; 양무제)가 조사를 만나 인연이 계합치 못했다가 및 위방(魏邦)에 교화를 행한다 함을 듣자 드디어 사비(師碑)를 자찬(自撰)하려다가 겨를이 없었다. 후에 송운(宋雲)의 사연을 듣자 이에 그것을 이루었다. 대종(代宗)이 시(謚; 諡와 같음)해 원각대사(圓覺大師)라 하고 탑을 가로되 공관(空觀)이라 했다〈年號는 紀年通譜에 의했다〉.
●太守; 전국(戰國)에서 진조(秦朝) 시기에 이르기까지 군수(郡守)의 존칭이었음. 한경제(漢景帝)가 이름을 고쳐 태수라 했으며 1군(郡)의 최고 행정장관이 됨 [백도백과. 조정사원3].
●迷途; 미혹의 경계. 중생이 윤회하며 전생(轉生)하는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세계를 가리킴
●讖; 험(驗; 증험)임. 장래의 험(驗)을 말함. 혜림음의46 참(讖) 비밀서(祕密書)다.
●江槎分玉浪下; 조정사원8 이르자면 류지(流支)와 광통(光統)이 몰래 나에게 독해(毒害)하였으니 소이로 구십(九十)에 이르렀다.
●光統; 북제(北齊) 업성(鄴城) 대각사의 혜광율사(慧光律師)니 지론(地論)의 종장임. 업(鄴)에 들어가 국통의 승관(僧官)에 임명된지라 고로 부르기를 광통이라 했음. [당승전21].
●律師; 율학에 정통하고 계율을 잘 강설하는 사승(師僧).
●流支; 보리류지(菩提流支; 梵 Bodhiruci)니 북위(北魏)의 승려니 북천축의 삼장(三藏)임. 또 보리류지(菩提留支)로 지으며 여기에선 이르되 도희(道希)니 대승유가계(大乘瑜伽系)의 학자임. 북위 선무제(宣武帝) 영평 원년(508) 낙양에 이르렀으며 제(帝)가 매우 그를 존중해 칙령으로 영녕사(永寧寺)에 거주케 했음. 이로부터 범경(梵經)을 번역했는데 번역한 걸 계산하자면 십지경론ㆍ금강반야경ㆍ불명경ㆍ법집경ㆍ심밀해탈경 및 대보적경론ㆍ법화경론ㆍ무량수경론 등 무릇 39부(部) 127권이 있음 [십지경론서. 속고승전1. 역대삼보기3]. ▲조정겸추록하. 원위(元魏) 시 보리류지(菩提流支)는 달마와 같은 시대이다. 약을 내려 달마를 독해(毒害)한 자가 이것이다.
●鸞鳳; 난새와 봉황. 고대 전설 중의 신조(神鳥). 현량(賢良)하고 준미(俊美)한 사람에 비유.
●玄風; 현묘한 종풍.
●熊耳山; 하남 노씨현 남방과 영녕(永寧; 지금의 낙녕현)의 경계에 위치함. 산의 두 봉우리가 병치(竝峙)한 게 웅이(熊耳)와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웅이산임. 곧 선종 초조 보리달마의 탑소(塔所)임 [대명일통지29. 대청일통지162]
●宋雲; 북위 돈황 사람. 북위 효명제(孝明帝) 때의 사신(使臣)이 됨. 효명제 신귀 원년(518; 일설에 희평 원년 혹 정광2년) 11월 호태후(胡太后)의 명을 받들어 사문 법력ㆍ혜생 등과 낙양으로부터 출발하여 장도(長途)에 적령ㆍ토곡혼ㆍ선선ㆍ말성ㆍ파사(波斯)ㆍ사미(賖彌) 등지(等地)를 경과하여 다음해 12월 오장국(烏場國)에 다다라 오장국왕을 알현했고 아울러 공맹(孔孟)과 노장(老莊)의 덕 및 신선의 방술을 설했음. 정광 원년(520) 4월 중순 건타라국(乾陀羅國; 梵 gandhāra)에 들어갔고 후에 다시 서행(西行)하여 신두하(辛頭河; 곧 印度河)를 건넜음. 작리부도(雀離浮圖)ㆍ대탑 등의 불적(佛蹟)을 순례했음. 다음해 2월(일설에 3년 혹 4년) 낙양으로 돌아왔는데 대승 범문(梵文) 경전 무릇 170부를 가지고 회귀했음. 그 후의 사적(事蹟)은 불상임. 또 송운이 귀국한 후 서역 여유(旅遊)의 견문을 가지고 송운행기(宋雲行紀)를 찬성(撰成)했는데 그 후 낙양가람기5 중에 수입(收入)했음 [낙양가람기5. 석가방지하. 위서서역전. 위서석로지. 하남통지33].
●奉使; 봉명(奉命)하고 출사(出使)함. 봉명하고 출사하는 사람. 사자(使者).
●西域; 지나 이서(以西)의 제국을 모두 가리키지만 특별히 인도를 가리킴.
●葱嶺; 곧 신강성 서남 파미이고원(帕米爾高原; Pamir Plateau)의 일대준령(一大峻嶺)이니 곧 아세아대륙의 여러 산맥의 주축(主軸)이며 자고(自古)로 명칭이 세계의 옥척(屋脊; 용마루)임. ▲서역기12 활국조(活國條). 총령(葱嶺)이란 것은 섬부주(贍部州) 가운데 의거하여 남으론 대설산(大雪山)과 접(接)하고 북으론 열해천천(熱海千泉)에 이르고 서로는 활국(活國)에 이르고 동으론 오쇄국(烏鎩國; Usa 或 Osh)에 이른다. 동서남북이 각 수천 리며 애령(崖嶺)이 수백 겹이며 유곡(幽谷)이 험준하고 빙설이 항상 쌓였으며 한풍(寒風)이 경렬(勁烈)한다. 산총(産葱; 파를 생산함)을 주로 하기 때문에 고로 이르되 총령(葱嶺)이며 또 산애(山崖)가 파처럼 푸르므로 드디어 이름했다
●翩翩; 경거(輕擧)하는 모양. 왕래하는 모양.
〈通論曰 傳燈謂魏孝明帝欽祖異迹 三屈詔命 祖竟不下少林 及祖示寂 宋雲自西域還 遇祖于葱嶺 孝莊帝有旨令啓壙 如南史普通八年 卽大通元年也 孝明以是歲四月癸丑殂 祖以十月至梁 葢祖未至魏時 孝明已去世矣 其子卽位未幾 爲爾朱榮所弒 乃立孝莊帝 由是魏國大亂 越三年 而孝莊殂 又五年分割 爲東西魏 然則吾祖在少林時 正値其亂 及宋雲之還 則孝莊去世亦五六年 其國至於分割久矣 烏有孝莊令啓壙之說乎 按唐史云 後魏末 有僧達磨航海而來 旣卒 其年魏使宋雲於葱嶺回見之 門徒發其墓 但有隻履而已 此乃實錄也〉
●爾朱榮; (493年—530) 字天寶 北秀容(今山西朔州西北 一說忻州)人 契胡族 北魏末年權臣 [百度百科]
●南史; 唐朝李延壽撰 二十四史之一 紀傳體 共八十卷 含本紀十卷 列傳七十卷 上起宋武帝劉裕永初元年(420) 下迄陳後主陳叔寶禎明三年(589) 記載南朝宋齊梁陳四國一百七十年史事 [百度百科]
〈通論해 가로되 傳燈에서 이르되 魏孝明帝가 조사의 異迹을 흠모하여 세 번 詔命으로 청했으나(屈) 조사가 필경 소림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조사가 示寂함에 이르러 宋雲이 西域으로부터 귀환하다가 葱嶺에서 조사를 만났다. 孝莊帝가 聖旨가 있어 啓壙하게 했다. 예컨대 南史의 普通八年은 곧 大通元年(527)이며 孝明은 이 해 4월 癸丑에 조(殂; 사망)했다. 조사가 10월에 梁에 이르렀으니 대개 조사가 魏에 이르지 않았을 때 孝明은 이미 去世했다. 그 아들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爾朱榮에게 弑害되는 바가 되었고 이에 孝莊帝를 세웠다. 이로부터 魏國은 大亂이었고 3년을 넘기자 孝莊이 殂했고 또 5년 만에 分割되어 東西魏가 되었다. 그러한 즉 吾祖가 少林에 있을 때 바로 그 亂을 만났다. 宋雲의 귀환에 이르러선 곧 孝莊이 去世한 지 또한 5, 6년이니 그 나라가 분할에 이른 지 오래되었거늘 어찌(烏) 孝莊의 칙령으로 啓壙했다는 說이 있겠는가. 唐史를 按驗컨대 이르기를 後魏末 僧達磨가 航海하여 옴이 있었다. 이미 卒하자 그 해 魏使 宋雲이 葱嶺에서 돌아오다 그를 보았다. 門徒가 그의 묘를 發現하자 단지 隻履만 있을 따름이었다. 이것이 곧 實錄이다〉.
●爾朱榮; (493年—530) 자는 천보(天寶)며 북수용(北秀容; 지금의 山西 朔州 西北. 一說엔 忻州) 사람. 계호족(契胡族). 북위(北魏) 말년의 권신(權臣) [백도백과].
●南史; 당조 이연수(李延壽)가 지었음. 24사의 하나. 기전체(紀傳體; 인물의 行蹟을 중심으로 하여 쓴 역사 서술의 한 형식)며 공히 80권이니 본기 10권과 열전 70권을 포함했음. 위로는 송 무제 유유(劉裕) 영초 원년(420)에서 일어나 아래론 진 후주 진숙보(陳叔寶) 정명 3년(589)에 이름. 남조 송ㆍ제ㆍ양ㆍ진 4국 170년의 사사(史事)를 기재했음 [백도백과].
二祖慧可大師者
武牢人也 姓姬氏 父寂 未有子時 甞自念言 我家崇善 豈令無子 禱之旣久 一夕感異光照室 其母因而懷姙 及長遂以照室之瑞 名之曰光 自幼志氣不羣 博涉詩書 尤精玄理 而不事家産 好遊山水 後覽佛書 超然自得 卽抵洛陽龍門香山 依寶靜禪師出家 受具於永穆寺 浮游講肆 徧學大小乘義 年三十三 却返香山 終日宴坐 又經八載 於寂默中倐見一神人謂曰 將欲受果 何滯此邪 大道匪遙 汝其南矣 祖知神助 因改名神光 翌日覺頭痛如刺 其師欲治之 空中有聲曰 此乃換骨 非常痛也 祖遂以見神事白于師 師視其頂骨 卽如五峯秀出矣 乃曰 汝相吉祥 當有所證 神令汝南者 斯則少林達磨大士必汝之師也 祖受敎 造于少室 其得法傳衣事迹 達磨章具之矣 自少林託化西歸 大師繼闡玄風 博求法嗣 至北齊天平二年 有一居士 年踰四十 不言名氏 聿來設禮 而問祖曰 弟子身纏風恙 請和尙懺罪 祖曰 將罪來 與汝懺 士良久曰 覔罪不可得 祖曰 與汝懺罪竟 宜依佛法僧住 士曰 今見和尙 已知是僧 未審何名佛法 祖曰 是心是佛 是心是法 法佛無二 僧寶亦然 士曰 今日始知罪性不在內 不在外 不在中間 如其心然 佛法無二也 祖深器之 卽爲剃髮 云 是吾寶也 宜名僧璨 其年三月十八日 於光福寺受具 自茲疾漸愈 執侍經二載 祖乃告曰 菩提達磨遠自竺乾 以正法眼藏幷信衣密付於吾 吾今授汝 汝當守護 無令斷絕 聽吾偈曰 本來緣有地 因地種華生 本來無有種 華亦不曾生
●不群; 不平凡 高出于同輩
●講肆; 講說佛經闡釋經義之所 屬禪宗外其他佛敎宗派 ▲緇門警訓註上 講道之所 衆集如市肆 故云講肆
●神人; 新華嚴經四十二與菩薩本業經所擧的佛十名之一 又俗稱之神人則多指具有神通力之仙人
●少室; 一山峰名 因山中有石室而得名 在河南登封縣北 屬嵩山 北魏孝文帝在此建少林寺 又禪宗初祖菩提達摩曾在此面壁坐禪多年 因而著稱于世 二代指菩提達摩
●少林; 因中國禪宗初祖菩提達摩 曾在河南嵩山少林寺 多年面壁坐禪 故禪宗典籍 常以少林 代指達摩 或禪宗道法
●居士; <梵> gṛha-pati 梵云迦羅越 伽羅越 此云長者 家主 家長 指印度四姓中吠舍種之富豪 或在家有道之士 經律典籍中 常稱吠舍種之富豪爲居士 佛敎中之居士 常與古來所稱之長者混同 如慧遠之維摩義記一末 居士有二 一廣積資産 居財之士名爲居士 二在家修道 居家道士名爲居士 後者卽爲佛敎中之居士 如印度之維摩賢護等常修佛道之在家菩薩 及支那梁代傅大士 北魏劉謙之 唐代李通玄等 能通佛道之在家者 今則泛指在家修道之男子爲居士 亦有稱女在家修道之女子爲居士者 在支那居士一詞原出於禮記玉藻篇 於韓非子一書中 亦謂有任矞華仕等居士 皆指頗有道藝而不求仕宦之處士 其後 支那與韓國日本多不依經律所說之本意 而泛稱有道之處士爲居士 [首楞嚴經義疏註一 法華經演義七之一 祖庭事苑三 大佛頂首楞嚴經六 十誦律六 維摩經文疏九]
●竺乾; 印度之別稱 竺乾爲天竺西乾之義 或言乾竺 猶言天竺 後人誤昇竺字於上云
2조 혜가대사(慧可大師)란 자는
무뢰(武牢) 사람이며 성은 희씨(姬氏)다. 부(父) 적(寂)이 아들이 있지 않았을 때 일찍이 스스로 사념해 말하되 우리 집은 숭선(崇善)했거늘 어찌 아들을 없게 했을까. 기도한 지 오래되자 어느 날 저녁에 이상한 빛이 조실(照室; 방을 비추다)함을 감득(感得)했고 그의 모친이 인하여 회임(懷妊)했다. 장성(長成)함에 이르자 드디어 조실(照室)의 서응(瑞應)을 써서(以) 그를 이름해 가로되 광(光)이라 했다. 어릴 적부터 지기(志氣)가 불군(不羣)이었고 시서(詩書)를 박섭(博涉)했고 더욱(尤) 현리(玄理)에 정통(精通)했다. 가산(家産)에 종사(從事)하지 않고 산수(山水)를 유람함을 좋아했다. 후에 불서(佛書)를 열람하고 초연(超然)히 자득(自得; 得意)했다. 곧 낙양(洛陽)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 다다라(抵) 보정선사(寶靜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하고 영목사(永穆寺)에서 수구(受具)했다. 강사(講肆)에 부유(浮游)하며 대소승(大小乘)의 뜻을 두루 배웠다. 나이 33에 도리어 향산(香山)으로 돌아와 종일 연좌(宴坐)했고 또 8재(載)가 지났다. 적묵(寂默) 중에 갑자기(倏) 1신인(神人)을 보았는데 일러 가로되 장차 수과(受果; 道果를 받다)하려 하면서 어찌 여기에 지체(遲滯)하느냐. 대도(大道)가 멀지 않나니 너는 그 남쪽으로 가거라. 조사가 신조(神助)임을 알고 인하여 개명하여 신광(神光)이라 했다. 익일(翌日)에 두통(頭痛)이 찌름과 같음을 느꼈고 그의 스승이 이를 치료하려고 하자 공중에서 소리가 있어 가로되 이것은 곧 환골(換骨)이며 상통(常痛)이 아니다. 조사가 드디어 신(神)을 본 일을 스승에게 고백(告白; 白)했다. 스승이 그의 정골(頂骨)을 보매 곧 5봉(峯)과 같이 수출(秀出; 特出)했다. 이에 가로되 너의 상(相)은 길상(吉祥)이니 마땅히 소증(所證)이 있으리라. 신이 너로 하여금 남쪽으로 가게 한 것은 이는 곧 소림사의 달마대사가 반드시 너의 스승이다. 조사가 가르침을 받고 소실(少室)로 나아갔다. 그 득법하고 전의(傳衣)한 사적(事跡)은 달마장(達磨章)에 그것을 구비했다. 소림(少林)이 교화를 부탁(付託)하고 서귀(西歸)함으로부터 대사(大師)가 계승해 현풍(玄風)을 천양(闡揚)했고 널리 법사(法嗣)를 구했다. 북제(北齊) 천평(天平) 2년(535)에 1거사(居士)가 있었으니 나이는 40이 넘었고(踰) 명씨(名氏)를 말하지 않았다. 드디어(聿) 와서 설례(設禮)하고 조사에게 물어 가로되 제자가 몸이 풍양(風恙; 風病)에 얽혔으니(纏) 화상의 참죄(懺罪)를 청합니다. 조왈(祖曰) 죄를 가져온다면 너에게 참죄해 주겠다. 거사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죄를 찾으니 가히 얻지 못하겠습니다. 조왈 내가 너에게 참죄하여 주기를 마쳤다. 의당 불법승(佛法僧)에 의지해 머물거라, 거사가 가로되 이제 화상을 보매 이미 이 승(僧)은 알았으나 미심하오니 무엇을 이름해 불법(佛法)이라 합니까. 조왈 이 심(心)이 이 불(佛)이며 이 심(心)이 이 법(法)이다. 법과 불이 둘이 아니며 승보(僧寶)도 또한 그러하다. 거사가 가로되 금일 비로소 죄성(罪性)이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 심(心)이 그러함과 같이 불과 법도 둘이 아닙니다. 조사가 깊이 그를 법기(法器)로 여겼고 곧 체발(剃髮)해 주었다. 이르되 이는 나의 보배다, 의당 이름을 승찬(僧璨)이라 하라. 그 해 3월 18일에 광복사(光福寺)에서 수구(受具)했고 이로부터 질병이 점차 나았다(愈). 집시(執侍)하기를 2재(載)가 지나자 조사가 이에 고왈(告曰) 보리달마(菩提達磨)가 멀리 축건(竺乾)으로부터 정법안장과 아울러 신의(信衣)를 비밀히 나에게 부촉하셨는데 내가 이제 너에게 주나니 너는 마땅히 수호(守護)하여 단절되게 하지 말아라.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본래 땅이 있음을 연유(緣由)하여/ 땅으로 인해 씨를 뿌려 꽃이 나거니와/ 본래 종자도 있지 않아서/ 꽃도 또한 일찍이 나지 않느니라.
●不群; 평범하지 않음. 동배(同輩)보다 높이 뛰어남.
●講肆; 불경을 강설하면서 경의 뜻을 천석(闡釋)하는 장소. 선종 외의 기타 불교 종파에 속함. ▲치문경훈주상. 불도를 강설하는 장소엔 대중이 모임이 시사(市肆; 시내의 가게)와 같으므로 고로 이르되 강사(講肆)다.
●神人; 신화엄경42와 보살본업경에 든 바 불타 10명(名)의 하나. 또 속칭의 신인은 곧 다분히 신통을 갖춘 선인(仙人)을 가리킴.
●少室; 1. 산봉우리의 이름. 산중에 석실이 있음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하남 등봉현(登封縣) 북쪽에 있으며 숭산에 속함. 북위 효문제가 여기에 소림사를 건립했음. 또 선종 초조 보리달마가 일찍이 여기에 있으면서 면벽하며 여러 해 동안 좌선한지라 이로 인해 세상에 명칭이 드러났음. 2. 보리달마를 대지(代指)함.
●少林; 중국 선종 초조 보리달마가 일찍이 하남 숭산 소림사에 있으면서 여러 해 동안 면벽하며 좌선했기 때문에 고로 선종의 전적(典籍)에서 늘 소림으로써 달마 혹 선종의 도법을 대지(代指)함.
●居士; <범> gṛha-pati. 범어로 이르되 가라월(迦羅越)ㆍ가라월(伽羅越)은 여기에선 이르되 장자ㆍ가주ㆍ가장임. 인도 4성(姓) 중의 폐사종(吠舍種)의 부호를 가리킴. 혹은 재가하면서 도가 있는 남자임. 경률의 전적 가운데 늘 폐사종의 부호를 일컬어 거사라 함. 불교 중의 거사는 늘 고래로 일컫는 바의 장자와 혼동함. 예컨대(如) 혜원의 유마의기1말에 거사에 2이 있다. 1은 자산을 광대하게 쌓은 거재지사(居財之士)를 이름해 거사라 하고 2는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거가도사(居家道士)를 이름해 거사라 한다 했는데 후자가 곧 불교 중의 거사가 됨. 예컨대(如) 인도의 유마나 현호(賢護) 등은 늘 불도를 닦는 재가 보살이며 및 지나(支那)의 양대(梁代)의 부대사ㆍ북위의 유겸지(劉謙之)ㆍ당대의 이통현(李通玄) 등은 불도에 능통한 재가자임. 지금은 곧 널리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남자를 가리켜 거사라 함. 또한 여인을 호칭하여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여자를 거사라 함이 있음. 지나에 있어서 거사라는 일사(一詞)는 원래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 나옴. 한비자 일서(一書) 중에도 또한 이르기를 임율(任矞)과 화사(華仕) 등의 거사가 있다 했음. 모두 자못 도예(道藝)가 있으나 사환(仕宦; 벼슬)을 구하지 않는 처사를 가리킴. 그 후 지나 한국과 일본에선 다분히 경률에서 설한 바의 본의에 의하지 않고 도가 있는 처사를 널리 일컬어 거사라 함 [수릉엄경의소주1. 법화경연의7지1. 조정사원3. 대불정수릉엄경6. 십송률6. 유마경문소9].
●竺乾; 인도의 별칭. 축건은 천축서건(天竺西乾)의 뜻이 됨. 혹 말하기를 건축(乾竺)이니 천축(天竺)이라고 말함과 같음. 후인이 위에다 축자(竺字)를 잘못 올렸음.
祖付衣法已 又曰 汝受吾敎 宜處深山 未可行化 當有國難 璨曰 師旣預知 願垂示誨 祖曰 非吾知也 斯乃達磨傳般若多羅懸記云心中雖吉外頭㐫是也 吾校年代 正在于汝 汝當諦思前言 勿罹世難 然吾亦有宿累 今要酬之 善去善行 俟時傳付 祖付囑已 卽往鄴都 隨宜說法 一音演暢 四衆皈依 如是積三十四載 遂韜光混跡 變易儀相 或入諸酒肆 或過於屠門 或習街談 或隨廝役 人問之曰 師是道人 何故如是 祖曰 我自調心 何關汝事 又於筦城縣匡救寺三門下 談無上道 聽者林會 時有辯和法師者 於寺中講涅槃經 學徒聞師闡法 稍稍引去 辯和不勝其憤 興謗于邑宰翟仲侃 翟惑其邪說 加祖以非法 祖怡然委順 識眞者謂之償債 時年一百七歲 卽隋文帝開皇十三年癸丑歲三月十六日也 塟磁州滏陽縣東北七十里 唐德宗諡大祖禪師〈皓月供奉問長沙岑和尙 古德云 了卽業障本來空 未了應須償宿債 只如師子尊者二祖大師 爲甚麽得償債去 沙曰 大德不識本來空 月曰 如何是本來空 沙曰 業障是 曰 如何是業障 沙曰 本來空是 月無語 沙以偈示之曰 假有元非有 假滅亦非無 涅槃償債義 一性更無殊〉
●鄴都; 後漢獻帝建安九年(24) 曹操平定袁紹 修繕營建鄴城 後定爲魏王王都 魏文帝曹丕在此受禪登基稱帝後移都洛陽 仍以鄴城爲五都之一 史稱鄴都(在今河北省臨漳縣) 鄴城先後爲曹魏 後趙 冉魏 前燕 東魏 北齊六朝都城 另五代後唐以魏州爲興唐府 號卽爲鄴都 [百度百科]
●一音; 一音聲也 指如來之說法而言 ▲維摩經佛國品 佛以一音演說法 衆生隨類各得解
●三門; 山門之制形如闕 開三門 故亦曰三門 又只有一門 亦呼爲三門 蓋標幟空無相無作三解脫門之稱也 ▲釋氏要覽上 寺院三門 凡寺院有開三門者 只有一門亦呼爲三門者何 佛地論云 大宮殿 三解脫門 爲所入處 大宮殿喩法空涅槃也 三解脫門謂空門 無相門 無作門 今寺院是持戒修道 求至涅槃人居之 故由三門入也
●委順; (僧人)逝世 是任因緣之義
●供奉; 內供奉 又作內供 謂宮中齋會時 於內道場任讀師等職者 此職名始設於唐肅宗至德元年(756) 時由元皎補任內供之職 [大宋僧史略下]
조사가 의법(衣法)을 부촉하고 나서 또 가로되 너는 나의 가르침을 받고 의당 심산(深山)에 거처하라. 가히 행화(行化)하지 말지니 마땅히 국난(國難)이 있다. 승찬이 가로되 스님이 이미 예지(預知)하시니 원컨대 시회(示誨)를 내리십시오. 조왈(祖曰) 내가 아는 게 아니다. 이는 곧 달마가 반야다라의 현기(懸記)를 전수(傳受)했으니 이르되 심중에 비록 길하나 외두(外頭; 外面. 外邊)가 흉하다(心中雖吉外頭凶) 한 게 이것이다. 내가 연대(年代)를 헤아리건대(校) 바로 너에게 있다. 너는 마땅히 전언(前言)을 체사(諦思; 자세히 사유)하여 세난(世難)에 걸리지(罹) 말아라. 그러나 나도 또한 숙루(宿累; 宿世의 허물)가 있어 이제 그것을 갚고자(酬) 한다. 선거선행(善去善行)하면서 때를 살펴(俟) 전부(傳付)하라. 조사가 부촉하고 나서 곧 업도(鄴都)로 가서 수의(隨宜)하여 설법했다. 1음(一音)을 연창(演暢; 闡明)하매 4중(衆)이 귀의했다. 이와 같이 34재(載)를 쌓았다. 드디어 도광혼적(韜光混跡)하여 의상(儀相)을 변역(變易)해 혹은 여러 주사(酒肆; 술 파는 저자)에 들어가고 혹은 도문(屠門; 가축을 도살하는 곳)을 지나고 혹은 가담(街談)을 익하고 혹은 시역(厮役; 馬夫의 일)을 따랐다. 사람이 그것을 물어 가로되 스님은 이 도인이거늘 무슨 연고로 이와 같습니까. 조왈 내가 스스로 조심(調心)함이거늘 너의 일에 무슨 상관이랴 하였다. 또 관성현(筦城縣)의 광구사(匡救寺) 3문(三門) 아래에서 무상도(無上道)를 얘기하자 청자(聽者)가 숲처럼 모였다. 때에 변화법사(辯和法師)란 자가 있어 사중(寺中)에서 열반경을 강설했는데 배우는 무리가 스님의 천법(闡法)함을 듣고 조금씩(稍稍) 인도(引導)하여 떠나가자 변화가 그 분(憤)을 이기지 못해 읍재(邑宰)인 적중간(翟仲侃)에게 비방을 일으켰고 적(翟)이 그 사설(邪說)에 현혹(眩惑)되어 조사에게 비법(非法)을 가했고 조사가 이연(怡然; 기쁘게)히 위순(委順)했다. 진리를 아는 자가 이를 일러 상채(償債)라 했다. 때의 나이는 107세다. 곧 수문제(隋文帝) 개황(開皇) 13년 계축세(癸丑歲; 593) 3월 16일이다. 자주(磁州) 부양현(滏陽縣) 동북 70리에 안장(安塟)했다. 당 덕종(德宗)이 시(謚)하여 대조선사(大祖禪師)라 했다〈皓月供奉이 長沙岑 화상에게 묻되 古德이 이르되 깨친 즉 업장이 본래 空이며 깨치지 못하면 응당 꼭 묵은 빚을 갚아야 한다(이 二句는 證道歌에 나옴) 했거늘 只如 師子尊者와 二祖大師는 무엇 때문에(爲甚麽) 빚 갚음을 얻었습니까. 長沙가 가로되 大德이 本來空을 알지 못하는구나. 皓月이 가로되 무엇이 이 본래공입니까. 장사가 가로되 업장이 이것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업장입니까. 장사가 가로되 본래공이 이것이다. 호월이 말이 없자 장사가 바로 1게를 보여 가로되 假有는 원래 有가 아니며/ 假滅도 또한 無가 아니다/ 열반과 償債의 뜻도/ 一性이라 다시 다름이 없다〉.
●鄴都; 후한 헌제 건안 9년(24) 조조(曹操)가 원소(袁紹)를 평정하고 업성(鄴城)을 수선(修繕)하고 영건(營建)했으며 후에 위왕(魏王)의 왕도(王都)로 정했음. 위 문제 조비(曹丕)가 여기에 있으면서 수선(受禪)하고 등기(登基)하여 칭제(稱帝)한 후에 낙양으로 이도(移都)했으나 그대로 업성은 5도(都)의 하나가 되었음. 사칭(史稱)이 업도(鄴都; 지금 하북성 임장현에 있음)임. 업성은 선후로 조위ㆍ후조ㆍ염위ㆍ전연ㆍ동위ㆍ북제 6조(朝)의 도성이 되었음. 따로 5대 후당은 위주(魏州)를 흥당부로 삼고 호하여 곧 업도(鄴都)라 했음 [백도백과].
●一音; 1음성임. 여래의 설법을 가리켜 말함. ▲유마경 불국품. 불타가 1음으로 법을 연설하매 중생이 종류 따라 각기 득해(得解)한다.
●三門; 산문(山門)의 제형(制形)이 궁궐과 같이 3문을 여는지라 고로 또한 가로되 3문(門)임. 또 다만 1문만 있어도 또한 칭호(稱號)하여 3문이라 하나니 대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3해탈문(解脫門)을 표치(標幟)하는 명칭임. ▲석씨요람상. 사원삼문(寺院三門) 무릇 사원에 3문을 엶이 있는 것인데 다만 1문만 있어도 또한 호칭하여 3문이라 하는 것은 왜인가. 불지론에 이르되 대궁전과 3해탈문은 소입처(所入處)가 된다. 대궁전은 법공열반(法空涅槃)에 비유하고 3해탈문은 이르자면 공문(空門)ㆍ무상문(無相門)ㆍ무작문(無作門)이다. 여금의 사원은 이 지계하고 수도하면서 열반에 이름을 구하는 사람이 거주하는지라 고로 3문으로 말미암아 들어간다.
●委順; (승인)의 서세(逝世)니 이는 인연에 맡김의 뜻.
●供奉; 내공봉이니 또 내공(內供)으로 지음. 이르자면 궁중에서 재회(齋會)할 때 내도량에서 독사(讀師) 등의 직무를 맡는 자임. 이 직명은 처음 당 숙종 지덕 원년(756)에 설치했음. 때에 원교를 내공의 직에 보임함으로 말미암음 [대송승사략하].
三祖僧璨大師者
不知何許人也 初以白衣謁二祖 旣受度傳法 隱於舒州之皖公山 屬後周武帝破滅佛法 祖往來太湖縣司空山 居無常處 積十餘載 時人無能知者 至隋開皇十二年壬子歲 有沙彌道信 年始十四 來禮祖曰 願和尙慈悲 乞與解脫法門 祖曰 誰縛汝 曰 無人縛 祖曰 何更求解脫乎 信於言下大悟 服勞九載 後於吉州受戒 侍奉尤謹 祖屢試以玄微 知其緣熟 乃付衣法 偈曰 華種雖因地 從地種華生 若無人下種 華地盡無生 祖又曰 昔可大師付吾法 後往鄴都行化三十年方終 今吾得汝 何滯此乎 卽適羅浮山 優游二載 却還舊址逾月 士民奔趨 大設檀供 祖爲四衆廣宣心要訖 於法會大樹下合掌立終 卽隋煬帝大業二年丙寅十月十五日也 唐玄宗諡鑑智禪師覺寂之塔
●舒州; 安徽省安慶府懷寧縣的古稱 唐武德四年(621)稱舒州 天寶(742 -755)初 稱同安郡 至德(756-757)初 稱盛唐郡 後再稱舒州 舒州有金陵寶誌隱棲處 三祖僧璨所住晥公山山谷寺 白雲守端的白雲山海會寺 投子大同與投子義靑所住投子山等 [大明一統志十四 大淸一通志七十六]
●後周武帝; (543-578) 姓宇文氏 名邕 鮮卑人 宇文泰第四子 建德元年(572)親政 銳意求治 初崇佛法 後惑於衛元嵩等 嚴禁佛敎 境內佛寺 悉遭毁滅 熔尊像法器爲錢幣 勒令僧人還俗 北方佛法遭受空前浩劫 史稱周武滅法 [周書五 同六 北史十] ◆後周; 北周(557-581)是中國歷史上南北朝的北朝之一 又稱後周(唐宋以後鮮用)
●服勞; 服持職事勤勞
●吉州; 今江西省吉安府古安縣 吉州東南有行思之道場靑原山淨居寺 另外有無殷所住之禾山 行修所住之南源山 道殷所住之龍須山資國院等
●玄微; 幽玄微妙
●羅浮山; 亦稱東樵山 與南海縣西樵山齊名 位於廣東廣州東方博羅縣西北之羅浮山脈中 長二八○餘公里 高峰四百餘座 爲嶺南名勝
●優游; 生活得十分閑適
●士民; 士大夫和普通百姓的並稱 猶言士庶 泛指人民 百姓
●檀供; 檀 檀那 又作柁那 拕那 馱曩 略作檀 此云布施 施 卽給與施捨
3조 승찬대사(僧璨大師)란 자는
어떤(何許)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처음에 백의(白衣)로써 2조를 참알했고 이미 수도(受度; 得度를 받음)하고 전법(傳法)하고는 서주(舒州) 환공산(皖公山)에 은거했다. 후주무제(後周武帝)가 불법을 파멸(破滅)함에 속(屬; 面對. 當)해 조사가 태호현(太湖縣) 사공산(司空山)을 왕래하면서 거주에 상처(常處)가 없이 10여 재(載)를 쌓았고 시인(時人)이 능히 아는 자가 없었다. 수(隋) 개황(開皇) 12년 임자세(壬子歲; 592)에 이르러 사미(沙彌) 도신(道信)이 있었으니 나이가 비로소 14이었다. 와서 조사에게 예배하고 가로되 원컨대 화상이 자비로 해탈법문(解脫法門)을 빌려 주십시오. 조왈(祖曰) 누가 너를 묶었느냐. 가로되 묶은 사람이 없습니다. 조왈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느냐. 도신이 언하에 대오(大悟)하고 복로(服勞)하기 9재(載)였다. 후에 길주(吉州)에서 수계하고 시봉하며 더욱 삼갔다(謹). 조사가 자주(屢) 현미(玄微)로써 시험했고 그 인연이 익었음을 알고 이에 의법(衣法)을 부촉했다. 게왈(偈曰) 꽃과 종자가 비록 땅을 인하지만/ 땅을 좇아 심어야 꽃이 난다/ 만약 종자를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꽃과 땅이 다 남이 없다. 조사가 또 가로되 옛적에 혜가대사(慧可大師)가 나에게 법을 부촉하시고는 후에 업도(鄴都)로 가서 행화(行化)한 지 30년 만에 바야흐로 마치셨다. 여금에 내가 너를 얻었거늘 어찌 여기에서 지체(遲滯)하겠는가. 곧 나부산(羅浮山)으로 가서(適) 2재(載) 동안 우유(優游)하고 도리어 구지(舊址)로 돌아온(旋) 지 한 달이 넘었다(逾). 사민(士民)이 분추(奔趨; 奔走)하며 크게 단공(檀供)을 베풀었다. 조사가 4중(衆)을 위해 심요(心要)를 광선(廣宣)하여 마치고는 법회(法會)의 대수(大樹) 아래에서 합장한 채 입종(立終; 서서 죽음)했다. 곧 수양제 대업(大業) 2년 병인(丙寅; 606) 10월 15일이다. 당현종(唐玄宗)이 시(諡)하여 감지선사각조지탑(鑑智禪師覺寂之塔)이라 했다.
●舒州; 안휘성 안경부(安慶府) 회녕현(懷寧縣)의 고칭(古稱). 당 무덕(武德) 4년(621) 서주(舒州)로 호칭했고 천보(天寶; 742-755) 초 동안군(同安郡)으로 호칭했고 지덕(至德; 756-757) 초 성당군으로 호칭했다가 후에 다시 서주(舒州)로 호칭했음. 서주에 금릉 보지(寶誌)의 은서처(隱棲處)ㆍ3조 승찬이 거주한 바의 환공산 산곡사ㆍ백운수단의 백운산 해회사ㆍ투자대동과 투자의청이 거주한 바의 투자산 등이 있음 [대명일통지14. 대청일통지76].
●後周武帝; (543-578) 성은 우문씨(宇文氏)며 이름은 옹(邕)이니 선비인(鮮卑人). 우문태의 제4자며 건덕 원년(572) 친정(親政)했고 예의(銳意)로 구치(求治)했음. 처음은 불법을 숭상했으나 후에 위원숭(衛元嵩) 등에게 현혹되어 불교를 엄금했음. 경내의 불사(佛寺)는 모두 훼멸(毁滅)을 만났고 존상(尊像)과 법기(法器)는 녹여 전폐(錢幣)로 만들었고 승인에게 칙령하여 환속하게 했음. 북방의 불법은 공전(空前)의 호겁(浩劫)을 조수(遭受)했으니 사칭(史稱)이 주무멸법(周武滅法)임 [주서5, 동6. 북사10]. ◆後周; 북주(北周; 557-581)는 이 중국 역사상 남북조의 북조(北朝)의 하나며 또 명칭이 후주(後周; 唐宋 이후에 사용함이 드물었음)임.
●服勞; 직사(職事)를 복지(服持)하며 근로(勤勞)함.
●吉州; 지금의 강서성 길안부(吉安府) 고안현(古安縣). 길주의 동남에 행사의 도량인 청원산 정거사가 있음. 따로 이외에 무은이 거주했던 바의 화산ㆍ행수가 거주했던 바의 남원산ㆍ도은이 거주했던 바의 용수산 자국원 등이 있음.
●玄微; 유현(幽玄)하고 미묘함.
●羅浮山; 또 명칭이 동초산(東樵山)이니 남해현 서초산과 이름을 가지런히 함. 광동 광주 동방의 박라현 서북의 나부산맥 가운데 위치함. 길이는 280여 ㎞며 고봉이 4백여 좌(座; 量詞)니 영남의 명승이 됨.
●優游; 생활에 십분 한적(閑適)함을 얻음.
●士民; 사대부(士大夫)와 보통 백성의 병칭(並稱). 사서(士庶)라고 말함과 같음. 널리 인민, 백성을 가리킴.
●檀供; 단(檀)은 단나(檀那)며 또 타나(柁那)ㆍ타나(拕那)ㆍ타낭(馱曩)으로 지으며 간략히 단(檀)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보시ㆍ시(施)임. 곧 급여ㆍ시사(施捨)의 뜻.
師信心銘曰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毫𨤲有差 天地懸隔 欲得現前 莫存順逆 違順相爭 是爲心病 不識玄旨 徒勞念靜 圓同太虛 無欠無餘 良由取捨 所以不如 莫逐有緣 勿住空忍 一種平懷 泯然自盡 止動歸止 止更彌動 唯滯兩邊 寧知一種 一種不通 兩處失功 遣有沒有 從空背空 多言多慮 轉不相應 絕言絕慮 無處不通 歸根得旨 隨照失宗 須臾返照 勝却前空 前空轉變 皆由妄見 不用求眞 唯須息見 二見不住 愼莫追尋 纔有是非 紛然失心 二由一有 一亦莫守 一心不生 萬法無咎 無咎無法 不生不心 能由境滅 境逐能沉 境由能境 能由境能 欲知兩段 元是一空 一空同兩 齊含萬象 不見精麤 寧有偏黨 大道體寬 無易無難 小見狐疑 轉急轉遲 執之失度 必入邪路 放之自然 體無去住 任性合道 逍遙絕惱 繫念乖眞 昏沉不好 不好勞神 何用疎親 欲取一乘 勿惡六塵 六塵不惡 還同正覺 智者無爲 愚人自縛 法無異法 妄自愛著 將心用心 豈非大錯 迷生寂亂 悟無好惡 一切二邊 良由斟酌 夢幻空華 何勞把捉 得失是非 一時放却 眼若不睡 諸夢自除 心若不異 萬法一如 一如體玄 兀爾忘緣 萬法齊觀 歸復自然 泯其所以 不可方比 止動無動 動止無止 兩旣不成 一何有爾 究竟窮極 不存軌則 契心平等 所作俱息 狐疑盡淨 正信調直 一切不留 無可記憶 虛明自照 不勞心力 非思量處 識情難測 眞如法界 無他無自 要急相應 唯言不二 不二皆同 無不包容 十方智者 皆入此宗 宗非促延 一念萬年 無在不在 十方目前 極小同大 忘絕境界 極大同小 不見邊表 有卽是無 無卽是有 若不如是 必不須守 一卽一切 一切卽一 但能如是 何慮不畢 信心不二 不二信心 言語道斷 非去來今
●信心銘; 全一卷 禪宗三祖鑑智禪師僧璨作 爲四言詩體 凡一百四十六句 全文共五百八十四字 從至道無難唯嫌揀擇 至言語道斷非去來今而止
●洞然; 深透淸晰的樣子
●太虛; 太虛空 謂浩浩宇宙之虛空
●空忍; 十忍之一 觀三界之苦果無實體而得空忍 以生死之苦諦性本空寂也 [仁王經天台疏三]
●平懷; 平常心 對于萬事萬物等同視之
●偏黨; 偏執一端 偏向一邊
●斟酌; 計較卜度之義 說文 斟 勺也 玉篇 酌 斟也 挹也
●空華; 同空花 指空中之花 全稱虛空花 又作空華 眼華 眼花 蓋空中原無花 然眼有病疾者因眼中有翳 常於空中妄見幻化之花 ▲圓覺經文殊章 云何無明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及第二月 善男子 空實無花 病者妄執 由妄執故 非唯惑此虛空自性 亦復迷彼實花生處 …… 如衆空花滅於虛空 不可說言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如; 一者不二之義 如者不異之義 名不二不異曰一如 卽眞如之理也
●兀爾; 不動貌 又混沌無知 隨性自在的樣子
●究竟; 一事理道法至極高深之處 終極永恒的眞理 二畢竟 此指一
●狐疑; 禪林疏語考證二 狐疑 漢書文帝紀 註曰 狐之爲獸 其性多疑 每渡氷河 且聽且渡 故曰疑者稱狐疑 ▲祖庭事苑二 狐疑 狐之性 不果於進者也 故曰狐疑
●調直; 三昧的一種譯語
●言語道斷; 讚歎眞理深妙不可說之用語 常與心行處滅一語連用
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가로되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고/ 오직 간택을 꺼리나니/ 단지 증애(憎愛)하지만 않는다면/ 통연(洞然)히 명백하리라. 호리(毫釐)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니/ 현전(現前)함을 얻으려 한다면/ 순역(順逆)을 두지 말아라. 위순(違順)이 서로 다툼이/ 이 심병(心病)이 되나니/ 현지(玄旨)를 알지 못하면/ 염정(念靜)이 도로(徒勞)니라. 원만하기가 태허(太虛)와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진실로 취사를 말미암아/ 소이로 같지 못하다. 유연(有緣)을 쫓지 말고/ 공인(空忍)에 머물지 말지니/ 일종으로 평회(平懷)하면/ 민연(泯然)하여 스스로 없어지리라.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더욱(彌) 움직이나니/ 오직 양변(兩邊)에 체재하거늘/ 어찌 일종(一種)을 알리오. 일종이 불통하면/ 두 곳에서 공(功)을 잃나니/ 유(有)를 보내면 유에 잠기고/ 공(空)을 좇으면 공을 배반한다. 말이 많거나 사려가 많으면/ 더욱(轉) 상응하지 못하고/ 말을 끊고 사려를 끊어야/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뿌리로 돌아가면 지취를 얻지만/ 비춤을 따르면 종(宗)을 잃나니/ 수유(須臾; 잠시 동안)에 반조해도/ 앞의 공(空) 보다 수승하다. 전공(前空)의 전변(轉變)은/ 다 망견(妄見)을 말미암나니/ 진(眞)을 구함을 쓰지 말고/ 오직 지견(知見)을 쉼을 써야 한다. 이견(二見)에 머물지 말고/ 삼가 추심(追尋)하지 말아라/ 겨우 시비가 있으면/ 분연(紛然)하여 실심(失心)하리라. 이(二)가 일(一)을 말미암아 있나니/ 일도 또한 지키지 말아라/ 일심이 나지 않으면/ 만법이 허물(咎)이 없다. 허물도 없고 법도 없으며/ 생하지도 않고 마음도 아니니/ 능(能)이 경(境)을 따라 없어지고/ 경(境)이 능(能)을 쫓아 사라진다(沈). 경은 능을 말미암아 경이며/ 능은 경을 말미암아 능이니/ 양단(兩段)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이 일공(一空)이다. 일공(一空)이 둘과 같아/ 제등히 만상을 머금었나니/ 정추(精麤)를 보지 않는다면/ 어찌(寧) 편당(偏黨)이 있으리오. 대도의 체가 넓어/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지만/ 소견(小見)으로 여우처럼 의심하면/ 더욱 급하매 더욱 늦으리라. 집착하면 법도를 잃어/ 반드시 삿된 길에 들고/ 놓으면 자연이라/ 체가 거주가 없다. 성품에 맡기면 도에 합하고/ 소요(逍遙)하면 고뇌가 끊기나니/ 생각에 묶이면 진리에 어긋나고(乖)/ 혼침(昏沈)하면 좋지 못하다. 정신을 노고롭게 함은 좋지 못하거늘/ 어찌 소친(疎親)을 쓰겠는가/ 일승(一乘)을 취하고 싶다면/ 6진(塵)을 싫어하지 말아라. 6진을 싫어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같나니/ 지자(智者)는 무위며/ 우인(愚人)은 자박(自縛)한다. 법은 다른 법이 없건마는/ 허망하게 스스로 애착하고/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오. 미혹하면 적란(寂亂)이 생기지만/ 깨치면 호악(好惡)이 없나니/ 일체의 이변(二邊)은/ 참으로 짐작(斟酌)을 말미암는다. 몽환과 공화(空華)를/ 어찌 노고롭게 파착(把捉)하리오/ 득실과 시비를/ 일시에 놓아버려라. 눈이 만약 자지 않으면/ 모든 꿈이 스스로 제거되고/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일여(一如)다. 일여의 체가 현묘하니/ 올이(兀爾)하여 인연을 잊었고/ 만법을 제등히 관하니/ 자연으로 귀복(歸復)한다. 그 소이를 없애면(泯)/ 가히 방비(方比; 견주며 비교)하지 못하나니/ 동(動)을 지(止)하면 동이 없고/ 지(止)를 동(動)하면 지가 없다.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늘/ 하나인들 어찌 있으리오/ 구경(究竟)의 궁극(窮極)엔/ 궤칙을 두지 않는다. 마음의 평등에 계합하니/ 짓는 바가 다 쉬어지고/ 호의(狐疑)가 다 청정해지니/ 정신(正信)이 조직(調直)이다. 일체를 머물지 말고/ 가히 기억함이 없어야 하나니/ 허명(虛明)히 자조(自照)하면/ 심력을 노고롭게 하지 않는다. 사량하지 못할 곳인지라/ 식정(識情)으로 헤아리기 어렵나니/ 진여의 법계엔/ 남도 없고 자기도 없다. 급히 상응함을 요하거든/ 오직 불이(不二)라고 말하나니/ 불이라서 모두 한가지니/ 포용하지 못함이 없으며/ 시방의 지자(智者)가/ 모두 차종(此宗)에 들었다. 종(宗)은 짧거나 긺이 아니라서/ 한 생각이 만 년이며/ 재(在)와 부재(不在)가 없어/ 시방이 목전이다. 극소(極小)가 대(大)와 한가지라/ 경계를 망절(忘絶)하고/ 극대(極大)가 소(大)와 한가지라/ 변표(邊表)를 보지 못한다. 유가 귿 이 무며/ 무가 곧 이 유니/ 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 반드시 지킴(守)을 쓰지(須) 못한다. 일(一)이 곧 일체(一切)며/ 일체가 곧 일이니/ 단지 능히 이와 같다면/ 어찌 불필(不畢)을 염려하리오. 신심(信心)이 불이(不二)며/ 불이가 신심이니/ 언어의 도가 끊어졌고(言語道斷)/ 거래금(去來今)이 아니다.
●信心銘; 전 1권. 선종 3조 감지선사 승찬이 지었음. 사언시체(四言詩體)가 됨. 무릇 146구며 전문이 공히 584자임. 지도무난 유혐간택으로부터 언어도단 비거래금에 이르러 그침.
●洞然; 심투(深透)하여 청석(淸晰; 매우 淸楚)한 양자(樣子; 樣相).
●太虛; 태허공(太虛空)이니 이르자면 호호(浩浩; 가없이 드넓음)한 우주의 허공.
●空忍; 10인(忍)의 하나. 3계(界)의 고과(苦果)는 실체가 없음을 관하여 공인을 얻음. 생사의 고제(苦諦)는 자성이 본래 공적하기 때문임 [인왕경천태소3].
●平懷; 평상심이니 만사만물에 대해 등동(等同)하게 봄.
●偏黨; 일단(一端)에 편집(偏執)함. 일변에 편향함.
●斟酌; 계교(計較) 복탁(卜度)의 뜻. 설문 짐(斟) 작(勺; 구기. 잔질하다)이다. 옥편 작(酌) 짐(斟; 술 따르다. 짐작하다)이다. 읍(挹; 뜨다)이다.
●空華; 공화(空花)와 같음. 공중의 꽃을 가리킴. 전칭이 허공화며 또 공화ㆍ안화(眼華)ㆍ안화(眼花)로 지음. 대개 공중에는 원래 꽃이 없음. 그러나 눈에 질병이 있는 자는 안중에 가림이 있음으로 인하여 늘 공중에서 망령되이 환화(幻化)의 꽃을 봄. ▲원각경문수장. 무엇을 무명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무시(無始)로부터 오면서 갖가지로 전도됨이 마치 미인(迷人)이 사방에서 곳을 바꿈과 같아서 망령되이 4대(大)를 인정하여 자기의 신상(身相)으로 삼고 6진(塵)의 연영(緣影)으로 자기의 심상(心相)을 삼느니라. 비유컨대 저 병든 눈으로 공중화(空中花)와 그리고 제2월을 봄과 같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엔 실로 꽃이 없지만 병자가 망령되이 집착하며 망령되이 집착하는 연고로 말미암아 오직 이 허공의 자성만을 미혹함이 아니라 또한 다시 저 실화(實花)의 생처도 미혹하느니라 …… 예컨대(如) 뭇 공화가 허공에서 없어지매 가히 꼭 없어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리니 무슨 연고냐, 난 곳이 없는 연고니라.
●一如; 일(一)이란 것은 불이(不二)의 뜻이며 여(如)란 것은 불이(不異)의 뜻이니 불이불이(不二不異)를 이름해 가로되 일여니 곧 진여지리(眞如之理)임.
●兀爾; 움직이지 않는 모양. 또 혼돈하여 앎이 없으며 성품 따라 자재한 양자.
●究竟; 1. 사리의 도법이 지극하고 고심(高深)한 곳. 종극(終極)의 영항(永恒)의 진리.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狐疑; 선림소어고증2. 호의(狐疑) 한서 문제기(文帝紀) 주(註)에 가로되 여우의 짐승됨은 그 성격이 의심이 많아 매번 빙하(氷河)를 건너면서 또 듣고 또 건너나니 고로 가로되 의자(疑者)를 일컬어 호의(狐疑)라 한다. ▲조정사원2. 호의(狐疑) 여우의 성품이 과감히 나아가지 못하는 놈이니 고로 가로되 호의(狐疑)임.
●調直; 삼매의 일종 번역어.
●言語道斷; 진리는 심묘(深妙)하여 가히 설하지 못함을 찬탄하는 용어임. 늘 심행처멸(心行處滅) 1어(語)와 연용(連用)함.
四祖道信大師者
姓司馬氏 世居河內 後徙於蘄州廣濟縣 生而超異 幼慕空宗諸解脫門 宛如宿習 旣嗣祖風 攝心無寐 脅不至席者僅六十年 隋大業十三載領徒衆抵吉州 値羣盜圍城 七旬不解 萬衆惶怖 祖愍之 敎令念摩訶般若 時賊衆望雉堞間若有神兵 乃相謂曰 城內必有異人 不可攻矣 稍稍引去 唐武德甲申歲師却返蘄春 住破頭山 學侶雲臻 一日往黃梅縣 路逢一小兒 骨相奇秀 異乎常童 祖問曰 子何姓 答曰 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何姓 答曰 是佛性 祖曰 汝無姓邪 答曰 性空故無 祖默識其法器 卽俾侍者至其母所 乞令出家 母以宿緣故 殊無難色 遂捨爲弟子 以至付法傳衣 偈曰 華種有生性 因地華生生 大緣與性合 當生生不生 遂以學徒委之
●蘄州; 位於湖北省黃州府揚子江邊 隣接於安徽省江西省 此州有四祖道信駐錫的雙峰山正覺寺 與五祖弘忍所住的憑茂山 又有黃梅山 三角山 烏牙山等
●空宗; 有宗之對稱 指主張一切皆空 般若皆空之宗派 大乘之般若思想卽其代表 以宣揚中道之空觀爲主 從主張諸法皆空之龍樹提婆之敎系中 相對於小乘敎俱舍宗之有宗而言 指成實宗 相對於大乘法相宗(唯識)而言 則指三論宗 又禪宗亦稱空宗 主張佛魔皆空 以言語思辨爲閑葛藤而排遣之 此外 有稱佛敎爲空宗者 以佛敎主張諸法無我之故 [大乘起信論義記上 原人論 宗鏡錄三十四]
●祖風; 喩指禪宗 禪法 取其如風傳播之義
●般若; <梵> Prajna 又作波若 般羅若 鉢剌若 此翻爲慧 智慧 明 黠慧 菩薩爲達彼岸 必修六種行 亦卽修六波羅蜜 其中之般若波羅蜜(智慧波羅蜜) 卽稱爲諸佛之母 成爲其他五波羅蜜之根據 [解脫道論九分別慧品 梁粱譯攝大乘論中 大智度論四十三 同七十二]
4조 도신대사(道信大師)란 자는
성이 사마씨(司馬氏)며 하내(河內; 河內郡이니 지금의 沁陽)에 세거(世居; 代代로 거주)했는데 후에 기주(蘄州) 광제현(廣濟縣)으로 이사했다. 출생하자 초이(超異)했고 어릴 적에 공종(空宗)의 모든 해탈문(解脫門)을 흠모했고 완연(宛然)이 숙습(宿習)과 같았다. 이미 조풍(祖風)을 잇자 섭심(攝心)하며 자지(寐) 않았고 옆구리가 깔개(席)에 이르지 않은 게 거의(僅) 60년이었다. 수(隋) 대업(大業) 13재(十三載; 617) 도중(徒衆)을 거느리고 길주(吉州)에 다다랐다. 군도(群盜)가 성을 포위함을 만났는데 7순(旬) 동안 풀지 않았고 만중(萬衆)이 황포(惶怖)했다. 조사가 이를 불쌍히 여겨 하여금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외우게 했다. 때에 적중(賊衆)이 치첩(雉堞; 城가퀴) 사이를 보매 신병(神兵)이 있는 듯하였다. 이에 서로 일러 가로되 성내(城內)에 반드시 이인(異人)이 있다. 가히 공격하지 못한다. 조금씩 인솔하여 떠났다. 당(唐) 무덕(武德) 갑신세(甲申歲; 624) 스님이 도리어 기춘(蘄春)으로 돌아가 파두산(破頭山)에 거주했고 배우는 무리(學侶)가 운진(雲臻; 구름처럼 모이다)했다. 어느 날 황매현(黃梅縣)으로 가던 길에서 1소아(小兒)를 만났는데 골상(骨相)이 기수(奇秀)하고 상동(常童)과 달랐다. 조사가 물어 가로되 너(子)는 무슨 성(姓)이냐. 답왈 성(姓)은 곧 있으나 이 상성(常姓)이 아닙니다. 조왈(祖曰) 이 무슨 성(姓)이냐. 답왈(答曰) 이 불성(佛性)입니다. 조왈 너는 성(姓)이 없느냐. 답왈 성(性)이 공(空)한 연고로 없습니다. 조사가 묵연히 그 법기(法器)임을 알았다. 곧 시자로 하여금(俾) 그 모친의 처소에 이르러 구걸해 출가하게 하자 모친이 숙연(宿緣)을 쓴(以) 연고로 특수히 난색(難色)이 없었고 드디어 버려 제자가 되게 하였고 이지(以至; 乃至) 부법(付法)하고 전의(傳衣)했다. 게왈(偈曰) 꽃과 종자가 생성(生性)이 있어서/ 땅으로 인해 꽃이 자꾸 난다/ 큰 인연이 성(性)과 합하면/ 자꾸 남(生生)에 당하여도 남이 아니다. 드디어 학도(學徒)를 그에게 맡겼다(委).
●蘄州; 호북성 황주부 양자강변에 위치함. 안휘성과 강서성에 인접했음. 이 주에 4조 도신이 주석했던 쌍봉산 정각사와 5조 홍인이 거주했던 바의 빙무산이 있음. 또 황매산ㆍ삼각산ㆍ오아산 등이 있음.
●空宗; 유종의 대칭. 일체가 모두 공했으며 반야가 다 공했다고 주장하는 종파를 가리킴. 대승의 반야사상이 곧 그것의 대표니 중도의 공관을 선양함으로써 주(主)로 삼으며 제법이 모두 공했음을 주장하는 용수와 제바의 교계(敎系) 가운데를 좇음. 소승교인 구사종의 유종(有宗)을 상대해 말한다면 성실종을 가리키며 대승의 법상종(法相宗; 유식)을 상대해 말한다면 곧 삼론종을 가리킴. 또 선종을 또한 공종이라고 호칭하나니 불마(佛魔; 부처와 마군)가 다 공했다고 주장하며 언어와 사변(思辨)을 한갈등(閑葛藤)으로 삼아 그것을 배견(排遣)함. 이 외에 불교를 일컬어 공종으로 삼는 자가 있으니 불교는 제법무아를 주장하는 연고임 [대승기신론의기상. 원인론. 종경록34].
●祖風; 선종ㆍ선법을 비유로 가리킴. 그것이 바람과 같이 전파함의 뜻을 취함.
●般若; <범> Prajna. 또 파야(波若)ㆍ반라야(般羅若)ㆍ발랄야(鉢剌若)로 지음. 여기에선 혜(慧)ㆍ지혜ㆍ명(明)ㆍ힐혜(黠慧)로 번역함. 보살이 피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6종의 행을 닦는데 또한 곧 6바라밀을 닦음. 그 중의 반야바라밀(지혜바라밀)을 곧 일컬어 제불의 모(母)라 하며 기타의 5바라밀을 성취하는 근거임 [해탈도론9분별혜품. 양역섭대승론중. 대지도론43, 동72].
一日告衆曰 吾武德中游廬山 登絕頂 望破頭山 見紫雲如葢 下有白氣橫分六道 汝等會否 衆皆默然 忍曰 莫是和尙他後橫出一枝佛法否 祖曰 善 後貞觀癸卯歲太宗嚮師道味 欲瞻風彩 詔赴京 祖上表遜謝 前後三返 竟以疾辭 第四度命使曰 如果不起 卽取首來 使至山諭旨 祖乃引頸就刃 神色儼然 使異之 回以狀聞 帝彌加欽慕 就賜珍繒 以遂其志 迄高宗永徽辛亥歲閏九月四日 忽垂誡門人曰 一切諸法 悉皆解脫 汝等各自護念 流化未來 言訖安坐而逝 壽七十有二 塔于本山 明年四月八日 塔戶無故自開 儀相如生 爾後門人不敢復閉 代宗諡大醫禪師慈雲之塔
●廬山; 位於江西九江 北倚長江 東接鄱陽湖 又稱匡山 南鄣山 南康山 匡廬 廬阜 輔山 靖廬山 相傳黃帝曾遊止於此 故又稱三天子都 三天子鄣 又傳殷商(或周代)之際 有匡俗者 於山中結廬隱棲修仙道 後羽化而去 僅存空廬 自此遂有廬山之名 東晉太元(376-396)初年 道安之門人慧永來山 於香谷建西林寺 十一年 慧遠應慧永之請 來山建東林寺 世稱東林西林 十五年建般若臺精舍 奉安阿彌陀佛像 與道俗百二十餘人 共結白蓮社 作爲淨土敎修行之根本道場 提倡念佛法門
●破頭山; 位於湖北黃梅縣西北 又稱四祖山 破額山 唐武德七年(624) 四祖道信住於此 改名雙峰山 竝就地構築庵室 稱爲正覺寺 又稱四祖寺 住山三十年 致力於宏揚宗風 太宗夙慕道信禪師之道風 欲召見之 師固辭不應 强之 則伸頸就戮 太宗益歎其高行 優禮有加 其後 世人以五祖弘忍住於東山(憑茂山) 而稱雙峰山爲西山 四祖山 [大明一統志六十一 大淸一統志二六三 讀史方輿紀要七十六]
●諭旨; 曉諭帝旨 或皇帝的詔令
어느 날 대중에게 알려 가로되 내가 무덕(武德; 618-626) 중에 여산(廬山)을 유람하다가 절정(絕頂)에 올라 파두산(破頭山)을 바라보니 자운(紫雲)이 덮개와 같고 아래에 백기(白氣)가 6도(道; 줄기)로 횡분(橫分)한 것을 보았다. 너희 등이 아느냐. 대중이 모두 묵연했다. 홍인(弘忍)이 가로되 이는 화상이 타후(他後)에 1지(枝)의 불법을 횡출(橫出)함이 아니겠습니까. 조왈(祖曰) 좋구나(善). 후에 정관(貞觀) 계묘세(癸卯歲; 643)에 태종(太宗)이 스님의 도미(道味)를 향(嚮; 向)했고 풍채(風彩)를 보고(瞻) 싶어 했다. 조칙(詔勅)으로 경사(京師)에 다다르게 했으나 조사가 표문(表文)을 올려 손사(遜謝; 겸손히 辭讓)했는데 전후로 세 번 돌아갔지만 마침내 질병을 써(以) 사양(辭讓)했다. 네 번째(第四度)에 사자(使者)에게 명령해 가로되 여과(如果; 假如. 假使) 일어나지 않거든 곧 머리를 취해 오너라. 사자가 산에 이르러 유지(諭旨)하자 조사가 이에 목을 늘여 칼날에 나아가되 신색(神色; 態度)이 엄연(儼然)했다. 사자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돌아가 문서(狀)로써 알렸더니(聞) 황제가 더욱 탄모(歎慕)를 더하면서 바로(就) 진증(珍繒)을 주어 그의 의지(意志)를 이루게(遂) 했다. 고종(高宗) 영휘(永徽) 신해세(辛亥歲; 651) 윤 9월 4일에 이르자(迄) 홀연히 문인(門人)들에게 수계(垂誡)하여 가로되 일체제법(一切諸法)이 모두 다 해탈이다. 너희 등은 각자 호념(護念)하여 미래를 유화流化; 流布하고 교화)하라. 말을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떠났으니 나이는 72다. 본산에 탑을 세웠다. 명년 4월 8일 탑호(塔戶)가 까닭 없이 저절로 열렸는데 의상(儀相)이 산 것 같았다. 이후(爾後; 이로부터 以後)에 문인들이 감히 다시 닫지 못했다. 대종(代宗)이 시(謚)하여 대의선사자운지탑(大醫禪師慈雲之塔)이라 했다.
●廬山; 강서 구강(九江)에 위치함. 북쪽은 장강에 기대었고 동쪽은 파양호에 인접했음. 또 명칭이 광산(匡山)ㆍ남장산(南鄣山)ㆍ남강산(南康山)ㆍ광려(匡廬)ㆍ여부(廬阜)ㆍ보산(輔山)ㆍ정려산(靖廬山)임. 서로 전하기를 황제(黃帝)가 일찍이 유람하다가 여기에서 머물렀다 하며 고로 또 명칭이 삼천자도(三天子都)ㆍ삼천자장(三天子鄣)임. 또 전하기를 은상(殷商) (혹은 周代)의 즈음에 광속(匡俗)이란 자가 있어 산중에 오두막집을 엮고 은서(隱棲)하며 선도(仙道)를 닦았고 후에 우화(羽化)하여 떠났으며 겨우 공려(空廬)만 잔존한지라 이로부터 드디어 여산(廬山)의 이름이 있었다 함. 동진 태원(376-396) 초년에 도안(道安)의 문인인 혜영(慧永)이 산에 도래하여 향곡에 서림사(西林寺)를 세웠으며 11년에 혜원(慧遠)이 혜영의 청에 응해 산에 도래하여 동림사(東林寺)를 세웠으니 세칭이 동림ㆍ서림임. 15년에 반야대정사를 건립하고 아미타불상을 봉안하고 도속 120여 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정토교 수행의 근본도량으로 삼았으며 염불법문을 제창했음.
●破頭山; 호북 황매현 서북에 위치하며 또 명칭이 사조산(四祖山)ㆍ파액산임. 당 무덕 7년(624) 4조 도신이 여기에 거주하면서 쌍봉산(雙峰山)으로 개명했으며 아울러 이 땅에 암실(庵室)을 구축하고 정각사로 호칭했으니 또 명칭이 사조사임. 30년 동안 주산(住山)하면서 종풍을 굉양(宏揚)함에 치력(致力; 힘쓰다)했음. 태종이 일찍이 도신선사의 도풍을 흠모하여 그를 불러서 친견하려 했으나 고사(固辭)하며 불응했음. 그를 강박(强迫; 强)하자 곧 목을 늘이며 죽임에 나아갔고 태종이 그의 고행(高行)에 찬탄을 더하고 우례(優禮)에 더함이 있었음. 그 후 세인이, 5조 홍인이 동산(東山; 빙무산)에 거주했으므로 쌍봉산을 서산(西山)ㆍ사조산(四祖山)으로 호칭했음 [대명일통지61. 대청일통지263. 독사방여기요76].
●諭旨; 제지(帝旨)를 효유(曉諭)함. 혹 황제의 조령(詔令).
五祖弘忍大師者
蘄州黃梅人也 先爲破頭山中栽松道者 甞請於四祖曰 法道可得聞乎 祖曰 汝已老 脫有聞 其能廣化邪 儻若再來 吾尙可遲汝 廼去行水邊 見一女子浣衣 揖曰 寄宿得否 女曰 我有父兄 可往求之 曰 諾 我卽敢行 女首肯之 遂回䇿而去 女周氏季子也 歸輙孕 父母大惡逐之 女無所歸 日傭紡里中 夕止於衆館之下 已而生一子 以爲不祥 因拋濁港中 明日見之 泝流而上 氣體鮮明 大驚遂擧之成童 隨母乞食 里人呼爲無姓兒 逢一智者 歎曰 此子缺七種相 不逮如來 後遇信大師 得法嗣 化於破頭山 咸亨中有一居士 姓盧名慧能 自新州來參謁 祖問曰 汝自何來 盧曰 嶺南 祖曰 欲須何事 盧曰 唯求作佛 祖曰 嶺南人無佛性 若爲得佛 盧曰 人卽有南北 佛性豈然 祖知是異人 乃訶曰 著槽廠去 盧禮足而退 便入碓房 服勞於杵臼之間 晝夜不息 經八月 祖知付授時至 遂告衆曰 正法難解 不可徒記吾言持爲己任 汝等各自隨意述一偈 若語意冥符 則衣法皆付 時會下七百餘僧 上座神秀者 學通內外 衆所宗仰 咸推稱曰 若非尊秀 疇敢當之 神秀竊聆衆譽 不復思惟 乃於廊壁書一偈曰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惹塵埃
●道者; 禪人之稱呼
●新州; 廣東省肇慶府新興縣的古稱 晉初稱新寧縣 梁 唐武德四年(621)以後新州 唐天寶元年(742)新興郡 宋代新州 新寧郡 明洪武(1368-1398)以後新興縣 六祖慧能出身地
●嶺南; 又云嶺表 五嶺以南之地 卽廣東廣西
●槽廠; 禪門拈頌集第三二○則 拈頌說話云 槽廠 劈薪養馬之處 ▲碧巖錄第七十六則種電鈔 槽廠 行者所居 卽碓房也
●碓坊; 爲舂米作坊 坊 小手工業者的工作場所
●冥符; 默契 暗合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란 자는
기주(蘄州) 황매(黃梅) 사람이다. 먼저 파두산(破頭山) 속에서 소나무를 심는 도자(道者)였다. 일찍이 4조에게 청해 가로되 법도(法道)를 가히 얻어 듣겠습니까. 조왈(祖曰) 너는 이미 늙었다. 혹 들음이 있더라도 그 능히 광화(廣化)하겠는가. 당약(儻若; 만약) 재래(再來)한다면 내가 오히려 가히 너를 기다리겠다(遲). 이에 가서 물가를 다니다가 한 여자가 옷을 빠는(浣) 걸 보았다. 읍(揖)하며 가로되 기숙(寄宿)하려는데 얻겠는가. 여자가 가로되 나는 부형(父兄)이 있으니 가히 가서 그에게 구하십시오. 가로되 응(諾), 내가 곧 감히 행하겠다. 여자가 그것을 수긍했다. 드디어 지팡이(䇿)를 돌려 떠났다. 여자는 주씨(周氏)의 막내 자식이었는데 돌아가서 갑자기(輙) 잉태했다. 부모가 매우 더럽게 여겨 그를 축출(逐出)했다. 여자가 돌아갈 곳이 없는지라 낮에는 방리(紡里) 중에서 품팔이 하고 저녁이면 중관(衆舘; 旅館) 아래 머물렀다(止). 이미 그러고는 한 아들을 낳았는데 상서(祥瑞)롭지 못하다 하여 인해 탁한 도랑(港) 가운데 버렸는데 다음날 그것을 보니 흐름을 거슬러 올라왔고 기체(氣體)가 선명했다. 크게 놀라 드디어 그를 거두었고 아동이 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걸식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성(姓)이 없는 아이로 호칭했다. 한 지자(智者)를 만났는데 감탄해 가로되 이 아이는 칠종상(七種相)이 모자라 여래(如來)에 미치지 못한다. 후에 신대사(信大師; 道信)를 만나 법을 얻고 이었으며 파두산에서 교화했다. 함형(咸亨; 670-674) 중에 1거사가 있었으니 성은 노(盧)며 이름은 혜능(慧能)이었다. 신주(新州)로부터 와서 참알(參謁)했다. 조사가 문왈(問曰) 너는 어디로부터 오느냐. 노왈(盧曰) 영남(嶺南)입니다. 조왈(祖曰) 무슨 일을 쓰려고(須) 하느냐. 노왈(盧曰) 오직 작불(作佛)을 구합니다. 조왈 영남 사람은 불성이 없거늘 어떻게(若爲) 득불(得佛)하겠는가. 노왈(盧曰) 사람에겐 곧 남북이 있지만 불성에 어찌 그렇겠습니까. 조사가 이인(異人)인 줄 알았고 이에 꾸짖으며(訶) 가로되 조창(槽厰)에 붙거라(著). 노(盧)가 예족(禮足)하고 물러나 바로 대방(碓坊)에 들어가 저구지간(杵臼之間)에서 복로(服勞)했는데 주야로 쉬지 않으면서 여덟 달을 경과했다. 조사가 부수(付授; 부촉해 주다)할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드디어 고중(告衆)해 가로되 정법은 난해(難解)하니 도연(徒然)히 나의 말을 기록해 수지(受持)하여 자기의 임무로 삼음은 옳지 못하다. 너희 등은 각자 수의(隨意)하여 1게(偈)를 서술하라. 만약 어의(語意)가 명부(冥符)하면 곧 의법(衣法)을 모두 부촉하겠다. 당시에 회하(會下)의 7백여 승(僧)의 상좌(上座)는 신수(神秀)란 자였는데 학문이 내외를 통했고 대중이 종앙(宗仰)하는 바이었다. 모두 함께 추칭(推稱; 推戴하며 칭찬)해 가로되 만약 신수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누가(疇) 감히 그를 당하겠는가. 신수가 몰래(竊) 중예(衆譽; 대중이 기리다)를 듣고서(聆) 다시 사유하지 않고 곧 낭벽(廊壁)에 1게를 서사(書寫)해 가로되 몸은 이 보리수(菩提樹)며/ 마음은 명경대(明鏡臺)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진애(塵埃)를 야기(惹起)하게 하지 말아라.
●道者; 선인(禪人)의 칭호.
●新州; 광동성 조경부(肇慶府) 신흥현(新興縣)의 고칭(古稱). 진초(晉初)에 신녕현(新寧縣)으로 일컬었음. 양(梁)과 당 무덕 4년(621) 이후의 신주는 당 천보 원년(742)의 신흥군이었고 송대의 신주는 신녕군이었고 명 홍무(136 8–1398) 이후로는 신흥현이었음. 6조 혜능의 출신지임.
●嶺南; 또 이르되 영표(嶺表)니 오령(五嶺) 이남의 땅. 곧 광동ㆍ광서.
●槽廠; 선문염송집 제320칙. 염송설화에 이르되 조창(槽廠) 땔감을 쪼개고 말을 기르는 곳이다. ▲벽암록 제76칙 종전초. 조창(槽廠) 행자가 거주하는 곳이니 곧 대방(碓房)이다.
●碓坊; 쌀을 빻기 위해 지은 방(坊). 방(坊)은 작은 수공업자의 공작장소.
●冥符; 묵계(默契). 암합(暗合; 몰래 합함).
祖因經行 忽見此偈 知是神秀所述 乃讚歎曰 後代依此修行 亦得勝果 其壁本欲令處士盧珍繪楞伽變相 及見題偈在壁 遂止不畫 各令念誦 盧在碓坊 忽聆誦偈 乃問同學 是何章句 同學曰 汝不知和尙求法嗣 令各述心偈 此則秀上座所述 和尙深加歎賞 必將付法傳衣也 盧曰 其偈云何 同學爲誦 盧良久曰 美則美矣 了則未了 同學訶曰 庸流何知 勿發狂言 盧曰 子不信邪 願以一偈和之 同學不答 相視而笑 盧至夜密告一童子 引至廊下 盧自秉燭 請別駕張日用於秀偈之側 寫一偈曰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經行; 在一定地點來回散步 目的在于參究道法 舒緩身心 稱爲經行 ▲法華經五 常在於其中 經行及坐臥 ▲四分律五十九 經行有五事好 堪遠行 能思惟 少病 消食飮 得定久住
●處士; 隱居雅士
●變相; 表現經文中變異事之佛敎繪畫
●題偈; 題 寫上 簽署 如題詩 題字
●同學; 同師受業的人
●別駕; 別駕從事史 官名 亦稱別駕從事 簡稱別駕 漢置 爲州刺史的佐官 隋初廢郡存州 改別駕爲長史 唐初改郡丞爲別駕 高宗又改別駕爲長史 另以皇族爲別駕 後廢置不常 宋各州的通判 職任似別駕 後世因以別駕爲通判之習稱 [百度百科]
스님이 경행(經行)으로 인해 홀연히 이 게를 보고 이 신수의 소술(所述; 서술한 것)인 줄 알았다. 이에 찬탄해 가로되 후대에 이에 의해 수행하면 또한 승과(勝果)를 얻는다. 그 벽은 본래 처사(處士) 노진(盧珍)으로 하여금 릉가(楞伽; 릉가경) 변상(變相)을 그리게(繪) 하려 했었는데 및 제게(題偈)가 벽에 있음을 보자 드디어 멈추어 그리지 않고 각자 염송(念誦)하게 했다. 혜능이 대방(碓坊)에 있다가 홀연히 게를 외움을 들었다(聆). 이에 동학(同學)에게 묻되 이 무슨 장구(章句)인가. 동학이 가로되 네가, 화상이 법사(法嗣)를 구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각자 심게(心偈)를 서술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곧 수상좌(秀上座)의 소술(所述)이며 화상이 깊이 탄상(歎賞; 찬탄하고 칭찬함)을 더하셨으니 반드시 장차 부법(付法)하고 전의(傳衣)하실 것이다. 노왈(盧曰) 그 게가 어떠한가(云何). 동학이 외웠다. 노(盧)가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아름답기는(美) 곧 아름답지만 깨치기는(了) 곧 깨치지 못했다. 동학이 꾸짖으며(訶) 가로되 용류(庸流; 庸劣한 무리)가 어찌 알겠는가, 광언(狂言)을 발(發)하지 말아라. 노왈(盧曰) 네가(子) 믿지 못하겠느냐. 원컨대 1게로써 그에 화응(和應)하겠다. 동학이 답하지 않고 서로 보며 웃었다. 노(盧)가 밤에 이르러 몰래(密) 1동자(童子)에게 알리고 인도(引導)하여 낭하(廊下)에 이르렀다. 노(盧)가 스스로 등불(燭)을 잡고 별가(別駕) 장일용(張日用)에게 청해 수게(秀偈)의 곁에 1게를 서사(書寫)하게 했으니 가로되 보리(菩提)는 본래 나무가 없으며/ 명경(明鏡)도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1물(物)도 없거늘/ 어느 곳에서 진애(塵埃)를 야기(惹起)하겠는가.
●經行; 일정한 지점에 있으면서 내회(來回; 자꾸 오감)하면서 산보함이니 목적은 도법을 참구하면서 몸과 마음을 서완(舒緩; 조용하고 느긋함)함에 있으니 일컬어 경행이라 함. ▲법화경5. 늘 그 가운데 있으면서 경행(經行)하고 및 좌와하다. ▲사분율59. 경행(經行)에 다섯의 좋음이 있다. 원행을 감내하고 능히 사유하고 병이 적고 식음(食飮; 음식)을 소화하고 정(定)을 얻어 오래 머문다.
●處士; 은거하는 아사(雅士).
●變相; 경문 중의 변이(變異; 異變)의 일을 표현한 불교 회화(繪畫).
●題偈; 제(題)는 사상(寫上; 위에 서사함). 첨서(簽署; 문건에 자기의 이름을 쓰고 수결을 둠). 예컨대(如) 제시(題詩). 제자(題字).
●同學; 같은 스승에게 수업(受業)하는 사람.
●別駕; 별가종사사(別駕從事史)니 벼슬 이름. 또 명칭이 별가종사(別駕從事)며 간칭이 별가. 한(漢)에서 설치했고 주자사(州刺史)의 좌관(佐官)이 됨. 수초(隋初)에 군(郡)을 폐하고 주(州)를 두면서 별가를 고쳐 장사(長史)라 했음. 당초(唐初)에 군승(郡丞)을 고쳐 별가라 했는데 고종이 또 별가를 고쳐 장사(長史)로 삼고 황족으로 별가를 삼았음. 후에 폐치(廢置)가 일정하지(常) 않았음. 송(宋)은 각 주의 통판(通判)의 직임이 별가와 비슷했음. 후세에 인하여 별가를 통판의 습칭(習稱)으로 삼았음 [백도백과].
祖後見此偈曰 此是誰作 亦未見性 衆聞師語 遂不之顧 逮夜祖潛詣碓坊 問曰 米白也未 盧曰 白也未有篩 祖於碓以杖三擊之 盧卽以三皷入室 祖告曰 諸佛出世 爲一大事故 隨機大小而引導之 遂有十地三乘頓漸等旨 以爲敎門 然以無上微妙秘密圓明眞實正法眼藏 付于上首大迦葉尊者 展轉傳授二十八世 至達磨屆于此土 得可大師承襲以至於今 以法寶及所傳袈裟用付於汝 善自保護 無令斷絕 聽吾偈曰 有情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旣無種 無性亦無生
●三皷; 同三鼓 卽三更 自午後十一時至翌日午前一時
●一大事; 開顯實相妙理之事業 開示佛知見之事業也 一大者 實相之妙理 謂佛知見 卽法華之妙法也 宗門一大事者 非類敎家說 直指自己本分事 云一大事也 又人之生死 謂爲大事 善導之臨終正念訣曰 世之大事 莫越生死 一息不來 乃屬後生 一念若錯 便墮輪迴 ▲法華經一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舍利弗 云何名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諸佛世尊 欲令衆生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欲示衆生佛之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悟佛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十地; 或曰十住 種種不一 一歡喜地 二離垢地 三發光地 四焰慧地 五難勝地 六現前地 七遠行地 八不動地 九善慧地 十法雲地 [三藏法數]
●三乘; 三藏法數七 三乘[出法華經] 一聲聞乘 聞佛聲敎而得悟道 故曰聲聞 謂其知苦斷集 慕滅修道 故以此四諦爲乘也 二緣覺乘 因觀十二因緣 覺眞諦理 故名緣覺 謂始觀無明緣乃至老死 此是觀十二因緣生 次觀無明滅乃至老死滅 此是觀十二因緣滅 觀此因緣生滅 卽悟非生非滅 故以此十二因緣爲乘也 三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覺悟一切有情衆生也 菩薩行六度行 廣化衆生 出離生死 故以此六度爲乘也
●頓漸; 不依次第 快速到達覺悟之敎法 稱爲頓敎 依順序漸進 經長時間修行而覺悟者 稱爲漸敎 若以敎法形式觀之 開始卽講說深奧之內容 稱爲頓敎 而自淺顯內容次第講說進入深奧內容者 稱爲漸敎 上述爲一般敎判之標準 又南北朝諸師之頓漸二敎判中 以天台之頓漸祕密不定等四敎 及華嚴五敎判之第四最爲著名 此外 禪宗南北二系 南方慧能系 世稱南頓 北方神秀系 世稱北漸 此卽禪宗之頓漸二敎
조사가 후에 이 게를 보고 이르되 이것은 이 누가 지었느냐, 또한 견성하지 못했다. 대중이 스님의 말씀을 듣자 드디어 돌아보지 않았다. 밤에 이르자(逮) 조사가 몰래 대방(碓坊)으로 나아가(詣) 문왈(問曰) 쌀이 희냐(白) 또는 아니냐. 노왈(盧曰) 흽니다만 체질함(篩)이 있지 않았습니다. 조사가 방아(碓)에 지팡이로써 세 번 쳤다. 노(盧)가 곧 3고(三皷)에 입실(入室)했다. 조사가 고왈(告曰) 제불이 출세함은 일대사(一大事)를 위한 연고니 근기(根機)의 소대(小大)를 따라 그것을 인도(引導)하는지라 드디어 십지(十地)ㆍ삼승(三乘)ㆍ돈점(頓漸) 등의 의지(意旨)가 있으며 교문(敎門)으로 삼는다. 그러하여 위없는 미묘하고 비밀스럽고 원명(圓明)하고 진실한 정법안장을 상수(上首) 대가섭 존자에게 부촉하여 전전(展轉)히 28세에 전수(傳授)하였다. 달마가 차토(此土)에 이름(屆)에 이르러 혜가대사를 얻었고 승습(承襲; 承繼)하여 여금에 이르렀다. 법보(法寶) 및 소전(所傳)의 가사(袈裟)를 너에게 부촉함을 쓰나니(用) 잘 스스로 보호하여 단절되게 하지 말아라.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유정(有情)이 와서 하종(下種)하면/ 땅으로 인해 과실(果實; 果)이 도리어 생한다/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어/ 자성(自性)도 없고 또한 생함도 없다.
●三皷; 삼고(三鼓)와 같음. 곧 삼경(三更)이니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에 이르기까지임.
●一大事; 실상의 묘리(妙理)의 사업을 개현(開顯)하여 불지견(佛知見)의 사업을 개시(開示)함임. 일대(一大)란 것은 실상(實相)의 묘리며 불지견(佛知見)을 말함이니 곧 법화(法華)의 묘법(妙法)임. 종문(宗門)의 일대사란 것은 교가(敎家)의 설에 비류(類比)하지 못하나니 단지 자기의 본분사를 가리켜 일대사라고 말함. 또 사람의 생사를 대사(大事)가 된다고 일컬음. 선도(善導; 唐代僧)의 임종정념결(臨終正念訣)에 가로되 세상의 대사에 생사를 초월할 게 없나니 한숨이 돌아오지 못하면 곧 후생에 속하고 한 생각이 만약 어긋나면 곧 윤회에 떨어진다. ▲법화경1.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나니 사리불이여, 무엇을 이름해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연고로 세상에 출현함인가, 제불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開) 청정을 얻게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자(示)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자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의 도에 들게(入) 하고자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한다.
●十地; 혹 가로되 십주(十住)니 갖가지라 일치하지 않음. 1은 환희지며 2는 이구지며 3은 발광지며 4는 염혜지며 5는 난승지며 6은 현전지며 7은 원행지며 8은 부동지며 9는 선혜지며 10은 법운지임 [삼장법수].
●三乘; 삼장법수7. 3(乘) [출법화경] 1. 성문승(聲聞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悟道)를 얻나니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이르자면 그가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고 멸(滅)을 흠모해 도를 닦나니 고로 이 4제(諦)로써 승(乘)을 삼는다. 2 연각승(緣覺乘) 12인연(因緣)을 관(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치므로 고로 이름이 연각이다. 이르자면 처음에 무명(無明)의 인연 내지 노사(老死)를 관하나니 이는 곧 12인연의 생(生)을 관함이며 다음에 무명의 멸(滅) 내지 노사(老死)의 멸을 관하나니 이는 곧 십이인연의 멸을 관함이다. 이 인연의 생멸을 관하여 곧 비생비멸(非生非滅)을 깨치나니 고로 이 12인연으로써 승(乘)을 삼는다. 3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菩提薩埵)며 중화(中華; 중국)의 말로는 각유정(覺有情)이니 이르자면 일체의 유정중생(有情衆生)을 각오(覺悟)케 함이다. 보살은 육도(六度; 六波羅蜜)의 행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생사를 출리(出離)케 하나니 고로 이 6도(度)로써 승(乘)을 삼는다.
●頓漸; 차제에 의하지 않고 각오(覺悟)의 교법에 쾌속히 도달함을 일컬어 돈교(頓敎)라 하며 순서에 의해 점차 나아가 장시간 수행을 겪어서 각오하는 것을 일컬어 점교(漸敎)라 함. 만약 교법의 형식으로써 이를 관(觀)한다면 개시하자 곧 심오한 내용을 강설함을 일컬어 돈교라 하고 얕음으로부터 내용을 나타내어 차제로 강설하여 심오한 내용에 진입함을 일컬어 점교라 함. 위에선 일반적인 교판(敎判)의 표준을 서술하였음. 또 남북조의 여러 스님들의 돈점(頓漸)의 두 교판(敎判) 중에 천태의 돈(頓)ㆍ점(漸)ㆍ비밀(祕密)ㆍ부정(不定) 등의 4교(敎)와 및 화엄의 5교판(敎判)의 제4가 가장 저명함. 이 밖에 선종의 남북 두 계통에 남방의 혜능계(慧能系)를 세칭 남돈(南頓)이며 북방의 신수계(神秀系)를 세칭 북점(北漸)이니 이것은 즉 선종의 돈점이교(頓漸二敎)임.
盧行者跪受衣法 啓曰 法則旣受 衣付何人 祖曰 昔達磨初至 人未之信 故傳衣以明得法 今信心已熟 衣乃爭端 止於汝身 不復傳也 且當遠隱 俟時行化 所謂受衣之人 命如懸絲也 盧曰 當隱何所 祖曰 逢懷卽止 遇會且藏 盧禮足已 捧衣而出 是夜南邁 大衆莫知 五祖自後不復上堂 大衆疑怪 致問 祖曰 吾道行矣 何更詢之 復問 衣法誰得邪 祖曰 能者得 於是衆議盧行者名能 尋訪旣失 潛知彼得 卽共奔逐 五祖旣付衣法 復經四載 至上元二年忽告衆曰 吾今事畢 時可行矣 卽入室安坐而逝 壽七十有四 建塔于黃梅之東山 代宗諡大滿禪師法雨之塔
●行者; 乃指觀行者 或泛指一般佛道之修行者 又稱行人修行人 禪林中 行者乃指未出家而住於寺內幇忙雜務者 行者之居所稱爲行堂 行堂之主首稱行堂主 或單稱堂主 行者有剃髮者 亦有未剃髮而攜帶家眷者 種類繁多 例如 參頭行者 副參行者 執局行者(方丈行者 六局行者等之總稱) 庫司行者(隨從都寺) 堂司行者(隨從維那) 庫子(副寺寮之行者) 客頭行者 茶頭行者 喝食行者(飮食時 唱報飯食湯等名稱者 喝卽唱之意) 供頭行者(又作供過行者 卽分配飯食者) 直殿行者 衆寮行者 門頭行者等 年少之行者 稱爲童行 道者 童侍 僧童 或稱驅烏沙彌 沙喝(飯食時之嚮導 相當於充任喝食沙彌之意) 聽叫 類同於行者 有所謂淨人(又作苦行) 指不剃髮而專爲僧衆服務者 蓋禪林職位之繁多 猶如朝廷之文武兩班 以共維繫寺院之法命 然此職位制度 自宋代以降 諸宗融合 於一般較大之寺院皆循此制 而小寺院則無此細分 [百丈淸規四大衆章 禪苑淸規二 三 四 八 百丈淸規證義記六 象器箋職位類] ▲釋氏要覽上 善見律云 有善男子 欲求出家 未得衣鉢 欲依寺中住者 名畔頭波羅沙(未見譯語) 今詳 若此方行者也 經中多呼修行人爲行者
●命如懸絲; 又作命若懸絲 比喩性命處于十分危險的境地
●上堂; 一上法堂 爲演法而上法堂也 此有旦望上堂 五參上堂 九參上堂 謝秉拂上堂 謝都寺上堂 出隊上堂 出鄕上堂等 二上僧堂 爲喫粥飯而上僧堂也 三上間 此指一
노행자(盧行者)가 꿇어앉아 의법(衣法)을 받고 사뢰어(啓) 가로되 법은 곧 이미 받았으나(受) 옷은 어떤 사람에게 부촉해야 합니까. 조왈(祖曰) 옛적에 달마가 처음 이르러 사람들이 믿지 않는지라 고로 전의(傳衣)로 득법(得法)을 밝혔다. 지금은 신심(信心)이 이미 익었으며 옷은 이에 쟁단(爭端)이니 너의 몸에서 그치고 다시 전하지 말아라. 다만(且) 마땅히 멀리 숨어서 시절을 기다렸다가(俟) 행화(行化)하라. 소위(所謂) 수의(授衣)한 사람은 목숨이 실에 대달린 듯하느니라(命如懸絲). 노왈(盧曰) 마땅히 어느 곳에 숨어야 합니까. 사왈 회(懷; 懷集)를 만나면(逢) 곧 멈추고(止) 회(會; 四會縣)를 만나면(遇) 또(且) 숨어라(藏). 혜능이 예족(禮足)하고 나서 옷을 받들고(捧) 나갔다. 이날 밤 남으로 갔는데(邁) 대중이 알지 못했다. 5조가 자후(自後; 此後)로 다시 상당(上堂)하지 않았다. 대중이 의괴(疑怪)하여 치문(致問; 질문하다)하자 조왈(祖曰) 나의 도가 행했다. 어찌 다시 이를 묻는가(詢). 다시 묻되 의법(衣法)은 누가 얻었습니까. 조왈 능자(能者)가 얻었다. 이에 대중이 의논했는데 노행자(盧行者)의 이름이 능(能)이었다. 이윽고 방문하매 이미 잃었고 그가 얻었음을 몰래 알고서는(潛知) 곧 함께 분축(奔逐)했다. 5조가 이미 의법을 부촉하고는 다시 4재(載)를 지나 상원(上元) 2년(675)에 이르러 홀연히 고중(告衆)해 가로되 내가 이제 일을 마쳤고 가히 갈(行) 때다. 곧 입실하더니 안좌(安坐)하여 떠났다(逝). 나이는 74다. 황매(黃梅)의 동산(東山)에 건탑(建塔)했다. 대종(代宗)이 시(謚)하여 대만선사법우지탑(大滿禪師法雨之塔)이라 했다.
●行者; 곧 관행(觀行)하는 자를 가리킴. 혹은 널리 일반(一般)의 불도(佛道)의 수행자를 가리킴. 또 호칭이 행인(行人)ㆍ수행인임. 선림 중에서의 행자는 곧 출가하지 않고 사내(寺內)에 거주하면서 바쁜 잡무(雜務)를 도우는 자를 가리킴. 행자의 거소(居所)를 일컬어 행당(行堂)이라 하고 행당의 주수(主首)를 일컬어 행당주(行堂主), 혹 단칭(單稱)이 당주(堂主)임. 행자는 머리를 깎은 자도 있고 또한 머리를 깎지 않고 가권(家眷; 가족)을 휴대한 자도 있음. 종류가 번다(繁多)하나니 예여(例如) 참두행자(參頭行者)ㆍ부참행자(副參行者)ㆍ집국행자(執局行者; 方丈行者와 六局行者 등의 總稱)ㆍ고사행자(庫司行者; 都寺를 隨從함)ㆍ당사행자(堂司行者; 維那를 隨從함)ㆍ고자(庫子ㆍ副寺寮의 행자)ㆍ객두행자(客頭行者)ㆍ다두행자(茶頭行者)ㆍ할식행자(喝食行者; 飮食 시 飯食湯 등의 명칭을 唱報하는 자니 喝은 곧 唱의 뜻)ㆍ공두행자(供頭行者; 또 供過行者로 지음. 곧 飯食을 분배하는 자)ㆍ직전행자(直殿行者)ㆍ중료행자(衆寮行者)ㆍ문두행자(門頭行者) 등임. 연소(年少)한 행자는 일컬어 동행(童行)ㆍ도자(道者)ㆍ동시(童侍)ㆍ시동(僧童)이라 하고 혹 명칭이 구오사미(驅烏沙彌)ㆍ사할(沙喝; 飯食 시의 嚮導니 喝食을 充任하는 沙彌의 뜻에 상당함)ㆍ청규(聽叫)임. 행자와 종류가 같은 것은 이른 바 정인(淨人; 또 苦行으로 지음)이 있으며 머리를 깎지 않고 오로지 승중을 위해 복무하는 자를 가리킴. 대개 선림 직위의 번다함은 마치 조정의 문무양반(文武兩班)과 같아서 사원의 법명(法命)을 한가지로 유계(維繫; 유지하며 聯系)함. 그러나 이런 직위 제도는 송대(宋代) 이강(以降; 이후)으로부터 제종(諸宗)에서 융합하여 일반의 조금 큰 사원에선 모두 이 제도를 따랐지만 작은 사원은 곧 이런 세분(細分)이 없었음 [백장청규4대중장. 선원청규2, 3, 4, 8. 백장청규증의기6. 상기전직위류]. ▲석씨요람상(釋氏要覽上) 선견율(善見律; 善見律毘婆沙十一)에 이르되 어떤 선남자(善男子)가 출가를 구하려 하나 의발(衣鉢)을 얻지 못하고 사중(寺中)에 의지(依止)하며 머무려는 자를 이름해 반두바라사(畔頭波羅沙; 譯語를 보지 못했음)니 여금에 상고(詳考)하건대 이 지방의 행자와 같으며 경중(經中)에 다분히 수행인(修行人)을 일컬어 행자(行者)라 한다.
●命如懸絲; 또 명약현사(命若懸絲)로 지음. 성명(性命)이 십분 위험한 경지에 처함을 비유.
●上堂 1. 법당(法堂)에 오름이니 연법(演法)하기 위해 법당에 오름임. 이에 단망상당(旦望上堂)ㆍ오참상당(五參上堂)ㆍ구참상당(九參上堂)ㆍ사병불상당(謝秉拂上堂)ㆍ사도사상당(謝都寺上堂)ㆍ출대상당(出隊上堂)ㆍ출향상당(出鄕上堂) 등이 있음. 2. 승당(僧堂)에 오름이니 죽반(粥飯)을 먹기 위해 승당에 오름임. 3. 상간(上間)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六祖慧能大師者
俗姓盧氏 其先范陽人 父行瑫 武德中左官于南海之新州 遂占籍焉 三歲喪父 其母守志鞠養 及長家尤貧窶 師樵採以給 一日負薪至市中 聞客讀金剛經 至應無所住而生其心 有所感悟 而問客曰 此何法也 得於何人 客曰 此名金剛經 得於黃梅忍大師 祖遽告其母以爲法尋師之意 直抵韶州 遇高行士劉志略 結爲交友 尼無盡藏者 卽志略之姑也 常讀涅槃經 師暫聽之 卽爲解說其義 尼遂執卷問字 祖曰 字卽不識 義卽請問 尼曰 字尙不識 曷能會義 祖曰 諸佛妙理 非關文字 尼驚異之 告鄕里耆艾曰 能是有道之人 宜請供養 於是居人競來瞻禮 近有寶林古寺舊地 衆議營緝 俾祖居之 四衆霧集 俄成寶坊
●左宦; 降官 貶職
●南海; 唐書志三十三上地理志嶺南道曰 廣州南海郡 …… 縣十三(云云)
●占籍; 上報戶口 入籍定居
●韶州; 廣東省韶州府曲江縣的古稱 又稱韶陽或如興 有六祖慧能所住的南華山寶林寺(南華寺) 說示六祖壇經的大梵寺 雲門文偃所住的雲門山光泰院等
●營緝; 猶營葺 指修建 修繕
●寶坊; 寺院之美稱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란 자는
속성(俗姓)이 노씨(盧氏)며 그 선조는 범양(范陽) 사람이다. 부(父) 행도(行瑫)는 무덕(武德; 618-626) 중 남해(南海)의 신주(新州)로 좌관(左宦)되었고 드디어 점적(占籍)했다. 3세에 상부(喪父)했고 그 모친이 수지(守志)하며 국양(鞠養; 기르다)했다. 및 장성하자 집안이 더욱(尤) 빈구(貧窶; 貧窮)했고 스님이 섶을 채취하여 급시(給侍)했다. 어느 날 섶을 지고 시중(市中)에 이르러 객이 금강경을 독송함을 들었는데 응당 머문 바 없는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에 이르러 감오(感悟)하는 바가 있었다. 객에게 물어 가로되 이것은 무슨 법이며 어떤 사람에게서 얻었습니까. 객왈(客曰) 이것은 이름이 금강경이며 황매(黃梅) 인대사(忍大師)에게서 얻었습니다. 스님이 급히(遽) 그의 모친에게 법을 위해 심사(尋師)할 뜻을 알리고 바로(直) 소주(韶州)에 다다라 고행사(高行士)인 유지략(劉志略)을 만나 결약(結約)해 교우(交友)가 되었다. 니(尼) 무진장(無盡藏)이란 자는 곧 지략(志略)의 고모(姑母)였는데 늘 열반경을 읽었다. 스님이 잠시 이를 듣자 곧 위하여 그 뜻을 해설했다. 니(尼)가 드디어 경권(經卷)을 잡고 글자를 묻자 조왈(祖曰) 글자는 곧 알지 못하지만 뜻은 곧 청문(請問)하시오. 니왈(尼曰) 글자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어찌(曷) 능히 뜻을 알겠습니까. 조왈 제불의 묘리(妙理)는 문자에 상관되지 않습니다. 니(尼)가 이를 경이(驚異)롭게 여겼다. 향리(鄕里)의 기애(耆艾; 尊長)에게 알려 가로되 혜능은 이 도가 있는 사람이니 의당 청하여 공양하십시오. 이에 거인(居人; 住民)이 다투어 와서 첨례(瞻禮)했다. 근처에 보림고사(寶林古寺)의 구지(舊地)가 있었는데 중인(衆人)이 의논하여 영집(營緝)하여 조사로 하여금(俾) 거주하게 했다. 4중(衆)이 무집(霧集)했고 갑자기(俄) 보방(寶坊)을 이루었다.
●左宦; 강관(降官). 폄직(貶職; 벼슬이나 職位가 낮은 자리로 떨어지거나 면직을 당함).
●南海; 당서지33상 지리지(地理志) 영남도(嶺南道)에 가로되 광주(廣州) 남해군 …… 현13 (운운).
●占籍; 위로 호구(戶口)임을 보고하고 입적(入籍)하여 정거(定居)함.
●韶州; 광동성 소주부 곡강현의 고칭(古稱). 또 명칭이 소양(韶陽) 혹 여흥이며 6조 혜능이 거주했던 곳인 남화산 보림사(寶林寺; 南華寺)ㆍ육도단경을 설해 보였던 대범사(大梵寺)ㆍ운문문언이 거주했던 곳인 운문산 광태원(光泰院) 등이 있음.
●營緝; 영즙(營葺)과 같음. 수건(修建)ㆍ수선(修繕)을 가리킴.
●寶坊; 사원의 미칭(美稱).
祖一日忽自念曰 我求大法 豈可中道而止 明日遂行 至昌樂縣西山石室間遇智遠禪師 祖遂請益 遠曰 觀子神姿爽拔 殆非常人 吾聞西域菩提達磨傳心印於黃梅 汝當往彼參決 祖辭去直造黃梅之東山 卽唐咸亨二年也 忍大師一見 默而識之 後傳衣法 令隱于懷集四會之間 至儀鳳元年丙子正月八日 屆南海遇印宗法師於法性寺講涅槃經 祖寓止廊廡間 暮夜風颺刹幡 聞二僧對論 一曰幡動 一曰風動 往復酬答 曾未契理 祖曰 可容俗流輙預高論否 直以風幡非動 動自心耳 印宗竊聆此語 竦然異之 明日邀祖入室 徵風幡之義 祖具以理告 印宗不覺起立曰 行者定非常人 師爲是誰 祖更無所隱 直敘得法因由 於是印宗執弟子之禮 請授禪要 乃告四衆曰 印宗具足凡夫 今遇肉身菩薩 乃指座下盧居士曰 卽此是也 因請出所傳信衣 悉令瞻禮 至正月十五日 會諸名德 爲之剃髮 二月八日 就法性寺智光律師授滿分戒 其戒壇卽宋朝求那䟦陀三藏之所置也 三藏記云 後當有肉身菩薩在此壇受戒 又梁末眞諦三藏於壇之側手植二菩提樹 謂衆曰 却後一百二十年 有大開士於此樹下演無上乘 度無量衆 祖具戒已 於此樹下開東山法門 宛如宿契
●刹; (一)梵語刹多羅 差多羅 刹摩的略稱 此云土田 土 國 卽指國土 或梵漢竝稱爲刹土 一般所熟知之佛刹卽佛土之意 (二)梵語剌瑟胝的略稱 意謂標誌 記號 指旗杆或塔之心柱 一般稱寺院謂寺刹 梵刹 金刹 或名刹等 蓋佛堂前自古有建幡竿(卽刹)之風 故得此名
●酬答; 酬酌而對答
●肉身菩薩; 指生身菩薩 卽以父母所生之身而至菩薩深位者
●名德; 著名高僧 有名德西堂 名德首座等
●滿分戒; 具足戒之異稱 相對於在家及沙彌之五戒八戒而言 比丘比丘尼受持之具足戒 卽稱滿分戒
●求那跋陀; 求那跋陀羅(394-468) 此云功德賢 中天竺人 幼學五明諸論 天文書算 精姸三藏 通大乘學 有摩訶衍號 劉宋元嘉十二年(435)至廣州 宋太祖遣使迎至京師 譯出雜阿含經 法鼓經 勝鬉經 楞伽經 無量壽經等 共百餘卷 [梁高僧傳三 釋氏六帖九 開元釋敎錄五]
●眞諦三藏; <梵> paramārtha (499 -569) 著名譯經僧 音譯作波羅末他 波羅末陀 又稱拘羅那陀 西印度優禪尼國人 南朝梁代中大同元年(446) 攜經典抵中國南海 受梁武帝好遇 會逢國難 往北齊 赴東魏 流離間 述金光明經 攝大乘論 唯識論等譯 及世親傳等著二百七十八卷 陳大建元年正月十一日寂 歲七十一
●無上乘; 嘆稱敎法之至極 卽大乘之異名
●東山法門; 五祖弘忍住蘄州黃梅(今湖北黃梅縣)之黃梅山 該山在黃梅縣東部 又稱東山 所以禪界將弘忍的道法稱爲東山法門 也稱黃梅意旨
조사가 어느 날 홀연히 스스로 생각해 가로되 내가 대법(大法; 불법)을 구하거늘 어찌 가히 중도(中道)에서 그치겠는가(止). 명일 드디어 가서 창락현(昌樂縣) 서산 석실 사이에 이르렀는데 지원선사(智遠禪師)를 만났다. 조사가 드디어 청익(請益)하자 지원이 가로되 자네를 보건대 신자(神姿; 神奇한 姿態)가 상발(爽拔)한 게 거의(殆) 상인(常人)이 아니다. 내가 듣건대 서역 보리달마가 심인(心印)을 황매(黃梅)에게 전했다 하니 네가 마땅히 거기로 가서 참결(參決; 參問하여 決擇)하라. 조사가 고별하고 떠나 바로 황매의 동선(東禪; 東禪寺)으로 나아갔으니(造) 곧 당 함형(咸亨) 2년(671)이다. 홍인대사가 한 번 보자 묵묵히 그를 알았다. 후에 의법(衣法)을 전하고 회집(懷集)과 사회(四會; 四會縣)의 사이에 은거하게 했다. 의봉(儀鳳) 원년 병자(丙子; 676) 정월 8일에 이르자 남해(南海)에 이르러(屆)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을 강설하는 인종법사(印宗法師)를 만났다. 조사가 낭무(廊廡) 사이에 우지(寓止; 寄宿)했는데 모야(暮夜; 어두운 밤)에 바람이 찰번(刹幡)을 날렸다(颺). 2승(僧)의 대론(對論)을 들었는데 하나는 가로되 깃발(幡)이 움직인다. 하나는 가로되 바람이 움직인다. 왕복하며 수답(酬答)하면서 일찍이 이치에 계합(契合)하지 않았다. 조왈(祖曰) 가히 속류(俗流)가 문득(輒) 고론(高論)에 참예(參預)함을 용납하겠습니까. 바로(直) 바람과 깃발이 움직임이 아니라 움직임은 자심(自心)일 뿐입니다 하였다. 인종이 몰래(竊) 이 말을 듣고(聆) 송연(竦然)하여 이를 이상히 여겼다. 명일(明日) 조사를 맞이해(邀) 입실(入室)하게 하고 풍번(風幡)의 뜻을 징문(徵問)했다. 조사가 이치를 갖추어 고하자 인종이 불각에 기립(起立)하며 가로되 행자는 결정코 상인(常人)이 아닙니다. 스승은 이 뉘가 됩니까. 조사가 다시 숨기는 바 없이 바로(直) 득법한 인유(因由)를 서술했다. 이에 인종이 제자지례(弟子之禮)를 가지고 선요(禪要)를 청수(請受)하고 이에 4중(衆)에게 알려 가로되 인종은 구족범부(具足凡夫)입니다. 지금 육신보살(肉身菩薩)을 만났으니, 곧 좌하(坐下)의 노거사(盧居士)를 가리키며 가로되 즉 이는 이 분입니다. 인하여 소전(所傳)의 신의(信衣)를 제출(提出)하기를 청했고 모두 첨례(瞻禮)하게 했다. 정월 15일에 이르러 여러 명덕(名德)을 모아 그를 위해 체발(剃髮)해 주었다. 2월 8일 법성사 지광율사(智光律師)에게 나아가 만분계(滿分戒)를 받았으니 그 계단(戒壇)은 곧 송조(宋朝) 구나발타(求那跋陀) 삼장이 설치한 것이다. 삼장이 기(記; 授記)하여 이르되 후에 마땅히 육신보살이 있어 이 계단에 있으면서 수계할 것이다. 또 양말(梁末) 진제삼장(眞諦三藏)이 계단의 곁에 손수 2보리수(菩提樹)를 심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도리어 120년 후에 대개사(大開士)가 있어 이 나무 아래에서 무상승(無上乘)을 연설하며 무량한 무리를 제도할 것이다. 스님이 구계(具戒)하고 나서 이 나무 아래에서 동산법문(東山法門)을 열었으니 완연히 숙계(宿契; 宿緣)와 같았다.
●刹; (1). 범어 찰다라(刹多羅; 梵 ksetra)ㆍ차다라(差多羅)ㆍ찰마(刹摩)의 약칭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토전(土田)ㆍ토(土)ㆍ국(國)이며 곧 국토를 가리킴. 혹 범한(梵漢)을 병칭하여 찰토(刹土)라 함. 일반적으로 숙지(熟知)하는 바의 불찰은 곧 불토의 뜻임. (2). 범어 랄슬지(剌瑟胝; 梵 lakṣatā)의 약칭. 뜻으로 이르면 표지(標誌)ㆍ기호니 기간(旗杆; 깃대)이나 혹 탑의 심주(心柱)를 가리킴. 일반적으로 사원을 일컬어 사찰(寺刹)ㆍ범찰(梵刹)ㆍ금찰(金刹) 혹 이름해 찰(刹)이라고 하는 등은 대개 불당(佛堂) 앞에 자고로 번간(幡竿; 곧 刹)을 세우는 풍조가 있는지라 고로 이 이름을 얻었음.
●酬答; 수작(酬酌)하면서 대답함.
●肉身菩薩; 생신보살(生身菩薩)을 가리킴. 곧 부모가 낳은 바의 몸으로 보살의 심위(深位)에 이른 자임.
●名德; 저명한 고승. 명덕서당ㆍ명덕수좌 등이 있음.
●滿分戒; 구족계의 다른 명칭. 재가 및 사미의 5계와 8계에 상대하여 말함임. 비구와 비구니가 수지하는 구족계를 곧 일컬어 만분계라 함.
●求那跋陀;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梵 Guṇabhadra. 394-468)니 여기에선 이르되 공덕현이며 중천축 사람. 어릴 적에 5명(明)의 여러 논과 천문과 서산(書算)을 배웠고 3장(藏)을 정밀하게 연구했음. 대승학에 통달해 마하연이란 호가 있음. 유송 원가 12년(435) 광주에 이르자 송 태조가 사신을 보내어 영접해 경사에 이르게 했음. 잡아함경ㆍ법고경ㆍ승만경ㆍ릉가경ㆍ무량수경 등 모두 백여 권을 번역해 내었음 [양고승전3. 석씨육첩9. 개원석교록5].
●眞諦三藏; <범> paramārtha. (499-569) 저명한 역경승. 음역으론 파라말타(波羅末他)ㆍ파라말타(波羅末陀)로 지으며 또 명칭이 구라나타(拘羅那陀)니 서인도 우선니국(優禪尼國; ujjayanī) 사람. 남조(南朝) 양대(梁代) 중대동 원년(446) 경전을 가지고 중국 남해에 이르러 양무제의 호우(好遇)를 받았음. 마침 국난을 만나 북제(北齊)로 갔다가 동위(東魏)에 다다르는 유리(流離; 정처 없이 떠도는 것) 간에 금광명경ㆍ섭대승론ㆍ유식론 등의 번역 및 세친전 등의 저작 278권을 술(述)했음. 진(陳) 대건 원년 정월 11일에 적(寂)했고 나이는 71.
●無上乘; 교법의 지극함을 감탄하며 일컬음이니 곧 대승의 다른 이름.
●東山法門; 5조 홍인이 기주 황매(지금의 호북 황매현)의 황매산에 거주했는데 그 산은 황매현 동부에 있으며 또 명칭이 동산(東山)임. 소이로 선계(禪界)에서 홍인의 도법을 가지고 동산법문(東山法門)으로 호칭하며 또 황매의지(黃梅意旨)로 호칭함.
明年二月八日 忽謂衆曰 吾不願此居 欲歸舊隱 卽印宗與緇白千餘人送祖歸寶林寺 韶州刺史韋據 請於大梵寺轉妙法輪 幷受無相心地戒 門人紀錄 目爲壇經 盛行于世 後返曹溪 雨大法雨 學者不下千數 中宗神龍元年降詔云 朕請安秀二師宮中供養 萬機之暇 每究一乘 二師竝推讓曰 南方有能禪師 密受忍大師衣法 可就彼問 今遣內侍薛簡馳詔迎請 願師慈念 速赴上京 祖上表辭疾 願終林麓 簡曰 京城禪德皆云 欲得會道 必須坐禪習定 若不因禪定而得解脫者 未之有也 未審師所說法如何 祖曰 道由心悟 豈在坐也 經云 若見如來若坐若臥 是行邪道 何故無所從來 亦無所去 若無生滅 是如來淸淨禪 諸法空寂 是如來淸淨坐 究竟無證 豈況坐邪 簡曰 弟子回 主上必問 願和尙慈悲指示心要 祖曰 道無明暗 明暗是代謝之義 明暗無盡 亦是有盡 相待立名 故經云 法無有比 無相待故 簡曰 明喻智慧 暗況煩惱 修道之人 儻不以智慧照破煩惱 無始生死 憑何出離 祖曰 煩惱卽是菩提 無二無別 若以智慧照煩惱者 此是二乘小見羊鹿等機 大智上根 悉不如是 簡曰 如何是大乘見解 祖曰 明與無明 其性無二 無二之性 卽是實性 實性者 處凡愚而不減 在賢聖而不增 住煩惱而不亂 居禪定而不寂 不斷不常 不來不去 不在中間及其內外 不生不滅 性相如如 常住不遷 名之曰道 簡曰 師說不生不滅 何異外道 祖曰 外道所說不生不滅者 將滅止生 以生顯滅 滅猶不滅 生說無生 我說不生不滅者 本自無生 今亦無滅 所以不同外道 汝若欲知心要 但一切善惡都莫思量 自然得入淸淨心體 湛然常寂 妙用恒沙 簡蒙指敎 豁然大悟 禮辭歸闕 表奏祖語 有詔謝師 幷賜磨衲袈裟 絹五百匹寶鉢一口 十二月十九日 勑改古寶林爲中興寺 三年十一月十八日 又 勑韶州刺史重加崇飾 賜額爲法泉寺 祖新州舊居爲國恩寺
●舊隱; 舊時隱居處
●寶林寺; 位於廣東曲江縣南三十五公里曹溪山 今稱南華寺 南華古寺 南華禪寺 梁天監元年(502) 天竺僧智藥所建 唐儀鳳年間(676-678) 六祖大鑑慧能開法擴建 學徒雲集 法道大振 南獄懷讓 靑原行思等 皆嗣其法 神龍元年(705) 改稱中興寺 景龍二年(708)重建 改名法泉寺 五代間復稱寶林寺 宋開寶年中(968-975) 遭兵火燒毁靈照塔 尋卽營修廟塔 改稱南華寺 明時 憨山德淸應請入山 大擧興復 今存有六祖肉身像 飯鉢 響鞋等遺物 及唐代之卓錫泉 宋代之靈照塔等古蹟 [六祖壇經 六祖大師緣記外記 宋高僧傳八 憨山大師夢遊全集五十至五十五]
●大梵寺; 位於廣東曲江縣 乃刺史韋宙請六祖說法之處 唐開元二年(714) 僧宗錫建 始稱開元寺 後改稱大梵寺 刺史韋宙曾請六祖於此宣說壇經 [廣東通志二二九]
●壇經; 六祖壇經 一卷 全稱六祖大師法寶壇經 又稱法寶壇經 壇經 六祖慧能述 法海集 元代宗寶編 收於大正藏第四十八冊 其敦煌寫本亦收於同冊 爲禪宗六祖慧能於韶州大梵寺之說法內容 其弟子法海集錄而成 共分十門 一行由 二般若 三疑問 四定慧 五坐禪 六懺悔 七機緣 八頓漸 九宣詔 十付囑 本書法海奉韶州刺史韋璩之命集錄而成 然後人多所節略 而未能見祖意之大全 元代德異乃探求諸方 得其全文 世祖至元二十七年(1290) 於吳中休休庵上梓 翌年 宗寶更校讎三種異本 正其訛誤 詳其節略 竝新增入弟子請益機緣而印行 卷首竝附德異之序 宋代契嵩之贊 卷尾附法海等所集之六祖大師緣起外紀 歷朝崇奉事蹟 柳宗元之賜諡大鑑禪師碑 劉禹錫之大鑑禪師碑 佛衣銘及編者後跋
●法雨; 妙法能滋潤衆生 故譬之爲雨
●萬機; 當政者處理的各種重要事務
●一乘; 成佛唯一之敎也 乘爲車乘 以譬佛之敎法 敎法能載人運於涅槃岸 故謂之乘 法華經專說此一乘 ▲法華經方便品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辭疾; 猶辭病 以身體有病爲由 推辭不就某種職務或不做某件事
●禪德; 對禪宗僧人的尊稱
●代謝; 更替 交替變換
●羊鹿; 三車(羊車鹿車牛車)中之羊車鹿車也 譬聲聞乘與緣覺乘 [法華經譬喩品]
●如如; 萬事萬物之眞實相平等無二 稱爲如如 ▲金剛經註解三 如如者 得無所有境界 故維摩經云 如者不二不異 一切法亦如也 衆聖賢亦如也 至於彌勒亦如也 ▲金剛經心印疏下 如如者 如於眞如也
●磨衲; 袈裟之一種 相傳乃高麗所産 以極精緻之織物製成 磨 卽指紫磨 屬於綾羅類 ▲象器箋十七 東坡全集磨衲贊幷序 長老佛印大師了元 遊京師 天子聞其名 以高麗所貢磨衲賜之 ▲象器箋十七 雞林志云 高麗僧衣磨衲者 爲禪法師 衲甚精好
다음해(677) 2월 8일 홀연히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여기에 거주함을 원하지 않나니 구은(舊隱)으로 귀환하고자 한다. 당시에 인종과 치백(緇白; 승속) 천여 인이 조사를 송별했고 보림사(寶林寺)로 귀환했다. 소주자사(韶州刺史) 위거(韋據)가 청하여 대범사(大梵寺)에서 묘법륜(妙法輪)을 굴렸고 아울러 무상심지계(無相心地戒)를 받았다. 문인(門人)이 기록(紀錄)하여 제목을 단경(壇經)이라 했고 세상에 성행(盛行)한다. 후에 조계(曹谿)로 돌아가(返) 대법우(大法雨)를 비 내렸고 배우는 자가 천수(千數) 아래가 아니었다. 중종(中宗) 신룡(神龍) 원년(元年; 705) 조칙을 내려 이르되 짐(朕)이 안수(安秀; 慧安과 神秀) 2사(師)를 청해 궁중에서 공양했습니다. 만기지가(萬機之暇)에 매양 일승(一乘)을 궁구(窮究)하는데 2사(師) 모두(竝) 추양(推讓; 남을 推薦하고 자기는 辭讓함)하며 가로되 남방에 능선사(能禪師)가 있는데 인대사(忍大師)의 의법(衣法)을 밀수(密受)했으니 가히 거기로 나아가 물으십시오 하므로 여금에 내시(內侍) 설간(薛簡)을 보내어 치조(馳詔)하여 영청(迎請)하니 원컨대 스님은 자념(慈念)으로 속히 상경(上京; 國都)에 다다르십시오. 조사가 상표(上表)하여 사질(辭疾)하면서 임록(林麓; 山林)에서 마치기를 원합니다. 설간이 가로되(簡曰) 경성(京城; 國都)의 선덕(禪德)이 모두 이르되 회도(會道; 도를 領會하다)를 얻고자 한다면 좌선하여 습정(習定)함이 필수(必須)니 만약 선정(禪定)을 인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있지 아니하다. 미심(未審)하오니 스님이 설하시는 바의 법은 어떻습니까. 조왈(祖曰) 도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치거늘 어찌 앉음(坐)에 있겠는가. 경(금강경)에 이르되 만약 여래를 보되 앉는다 하거나 눕는다 하면 이는 사도(邪道)를 행함이니 무슨 연고냐, 좇아오는 곳도 없고 또한 가는 곳도 없다 하였다. 만약 생멸이 없다면 이는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며 제법이 공적(空寂)함은 이 여래의 청정좌(淸淨坐)다. 구경(究竟)엔 증(證)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좌(坐)이겠는가. 간왈(簡曰) 제자가 돌아가면 주상(主上)이 반드시 물으시리니 원컨대 화상은 자비로 심요(心要)를 지시하십시오. 조왈 도는 명암(明暗)이 없나니 명암은 이 대사(代謝)의 뜻이다. 명명(明明)하여 다함(盡)이 없지만 역시(亦是) 다함(盡)이 있나니 상대(相待)하여 입명(立名)하는지라 고로 경(經; 維摩經上)에 이르되 법은 비교함이 있지 않나니 상대(相待)가 없는 연고이다. 간왈(簡曰) 명(明)은 지혜에 비유하고 암(暗)은 번뇌에 견주나니(況) 수도하는 사람이 만일(儻) 지혜로써 번뇌를 조파(照破)하지 않는다면 무시(無始)의 생사를 무엇에 의빙(依憑)하여 출리(出離)하겠습니까. 조왈 번뇌가 즉시(卽是) 보리라서 둘도 없고 다름도 없다(無二無別). 만약 지혜로써 번뇌를 비춘다(照)는 것은 이것은 이 2승(乘)과 소아(小兒)의 양록(羊鹿) 등의 근기(根機)이다. 대지상근(大智上根)은 모두 이와 같지 않다. 간왈(簡曰) 무엇이 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조왈 명(明)과 무명(無明)은 그 자성이 무이(無二)며 무이(無二)의 자성이 즉시(卽是) 실성(實性)이다. 실성이란 것은 범우(凡愚)에 처해도 줄지(減) 않으며 현성(賢聖)에 있어도 늘지(增) 않으며 번뇌에 주(住)해도 혼란하지 않고 선정(禪定)에 거(居)해도 적정(寂靜)하지 않다. 부단불상(不斷不常)이며 불래불거(不來不去)며 중간 및 그 내외에 있지 않으며 불생불멸이며 성상(性相)이 여여(如如)하여 상주(常住)하여 불천(不遷)하나니 이를 이름해 가로되 도(道)다. 간왈(簡曰) 스님이 설하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외도(外道)와 무엇이 다릅니까. 조왈 외도가 설하는 바 불생불멸이란 것은 멸(滅)을 가지고 생(生)을 멈추고(止) 생으로써 멸을 나타내므로(顯) 멸해도 오히려 불멸이며 생해도 무생이라 설한다. 내가 설하는 불생불멸이란 것은 본래 스스로 무생이며 지금 또한 무멸이므로 소이로 외도와 같지 않다. 네가 만약 심요(心要)를 알고자 한다면 단지 일체의 선악을 모두 사량(思量)하지 않아야 하나니 자연히 청정한 심체(心體)에 득입(得入)하여 담연(湛然)히 상적(常寂)하고 묘용(妙用)이 항사(恒沙)다. 설간이 지교(指敎)를 입자(蒙) 활연(豁然)히 대오했다. 예사(禮辭)하고 귀궐(歸闕)하여 조사의 말씀을 표주(表奏)했고 조칙이 있어 스님에게 감사했고 아울러 마납가사(磨衲袈裟)ㆍ비단(絹) 5백 필(匹; 量詞)ㆍ보발(寶鉢) 1구(口; 양사)를 주었다. 12월 19일 칙령으로 고보림(古寶林)을 고쳐 중흥사(中興寺)라 했다. 3년(707) 11월 18일 또 소주자사에게 칙령해 거듭 숭식(崇飾; 裝飾. 修飾)을 더하고 사액(賜額)하여 법천사(法泉寺)라 했고 조사의 신주(新州)의 구거(舊居)를 국은사(國恩寺)라 했다.
●舊隱; 구시(舊時)의 은거처(隱居處).
●寶林寺; 광동 곡강현 남쪽 35㎞ 조계산에 위치함. 지금의 명칭은 남화사(南華寺)ㆍ남화고사(南華古寺)ㆍ남화선사(南華禪寺). 양 천감 원년(502) 천축승 지약(智藥)이 건립한 것임. 당 의봉년 간(676-678) 6조 대감혜능이 개법하면서 확건(擴建)했고 학도가 운집했으며 법도를 크게 떨쳤음. 남악회양ㆍ청원행사 등이 모두 그의 법을 이었음. 신룡 원년(705) 중흥사로 개칭했고 경룡 2년(708) 중건하고 법천사(法泉寺)로 개명했음. 오대간(五代間)에 다시 보림사(寶林寺)로 호칭했음. 송 개보년 중(968-975) 병화(兵火)를 만나 영조탑이 소훼(燒毁)되었고 이윽고 곧 탑묘를 영수(營修)하고 남화사(南華寺)로 개칭했음. 명나라 때 감산덕청이 입산하여 대거 흥복(興復)했음. 지금 6조의 육신상(肉身像)ㆍ반발(飯鉢)ㆍ향혜(響鞋) 등 유물과 및 당대의 탁석천(卓錫泉)ㆍ송대의 영조탑 등의 고적(古蹟)이 존재해 있음 [육조단경. 육조대사연기외기. 송고승전8. 감산대사몽유전집50지55].
●大梵寺; 광동 곡강현에 위치함. 곧 자사 위주(韋宙)가 6조에게 청해 설법한 곳임. 당 개원 2년(714) 중 종석이 건립했으며 처음의 명칭은 개원사였으며 후에 개칭하여 대범사라 했음. 자사 위주가 일찍이 6조에게 청해 여기에서 단경을 선설했음 [광동통지229].
●壇經;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니 1권. 전칭이 육조대사법보단경이며 또 법보단경ㆍ단경으로 일컬음. 육조혜능이 술(述)했고 법해(法海)가 집(集)했고 원대(元代)의 종보(宗寶)가 편(編)했음. 대정장 제48책에 수록되었음. 그 돈황사본(敦煌寫本)도 또한 동책(同冊)에 수록되었음. 선종 6조 혜능이 소주(韶州)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한 내용이 되는데 그 제자 법해(法海)가 집록(集錄)하여 이루었음. 모두 10문(門)으로 분류했으니 1은 행유(行由)며 2는 반야(般若)며 3은 의문(疑問)이며 4는 정혜(定慧)며 5는 좌선(坐禪)이며 6은 참회(懺悔)며 7은 기연(機緣)이며 8은 돈점(頓漸)이며 9는 선조(宣詔)며 10은 부촉(付囑)임. 본서는 법해가 소주자사(韶州刺史) 위거(韋璩)의 명을 받들어 집록하여 이루었음. 그러나 후인이 다분히 절략(節略. 간략)한 바라 능히 조의(祖意)의 대전(大全)을 보지 못했는데 원대(元代)의 덕이(德異)가 이에 제방(諸方)을 탐구(探求)하여 그 전문(全文)을 얻었음. 세조(世祖) 지원 27년(1290) 오중(吳中)의 휴휴암(休休庵)에서 상재(上梓; 인쇄에 부침)했고 다음해에 종보(宗寶)가 다시 3종(種)의 이본(異本)을 교수(校讎. 대조하며 校正함)하여 그 그릇됨을 바로잡고 그 절략(節略)을 상세히 했음. 아울러 제자의 청익기연(請益機緣)을 새로 증입(增入)하여 인행(印行)했음. 권수에 덕이의 서ㆍ송대 계숭(契嵩)의 찬이 병부(竝附)되었고 권미(卷尾)에 법해 등이 모은 바의 육조대사연기외기(六祖大師緣起外紀)ㆍ역조숭봉사적(歷朝崇奉事蹟)ㆍ유종원의 사시대감선사비(賜諡大鑑禪師碑)ㆍ유우석의 대감선사비ㆍ불의명(佛衣銘) 및 편자의 후발(後跋)이 첨부되었음.
●法雨; 묘법이 능히 중생을 자윤(滋潤; 濕潤)하는지라 고로 비유하여 비로 삼음.
●萬機; 당정(當政; 정권을 장악함)한 자가 처리하는 각종의 중요한 사무.
●一乘; 성불할 유일한 교임. 승(乘)은 거승(車乘)이 되며 불타의 교법에 비유함. 교법이 능히 사람을 싣고 열반의 언덕으로 운행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승이라 함. 법화경은 오로지 이 1승을 설함. ▲법화경 방편품. 시방의 불토 중에/ 오직 일승법만 있고/ 둘이 없고 또 셋이 없나니/ 불타의 방편설을 제한다.
●辭疾; 사병(辭病)과 같음. 신체에 병이 있음을 이유로 삼아 추사(推辭; 물러나며 辭讓함)하며 모종의 직무에 나아가지 않거나 혹 모건(某件)의 일을 짓지 않음.
●禪德; 선종 승인에 대한 존칭.
●代謝; 경체(更替; 바꾸다). 교체하고 변환함.
●羊鹿; 3거(三車; 羊車ㆍ鹿車ㆍ牛車) 중의 양거와 녹거임.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에 비유함 [법화경비유품].
●如如; 만사만물의 진실상이 평등하여 둘이 없음을 일컬어 여여라 함. ▲금강경주해3. 여여(如如)란 것은 무소유를 얻은 경계다. 고로 유마경에 이르되 여(如)란 것은 불이불이(不二不異)니 일체법도 또한 여(如)며 뭇 현성도 또한 여며 미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여다. ▲금강경심인소하. 여여란 것은 진여(眞如)에 여(如)함이다.
●磨衲; 가사의 일종. 서로 전하기를 곧 고려에서 생산되는 것이라 함. 극히 정치(精緻; 정교하고 치밀함)한 직물로 제작해 이룸. 마(磨)는 곧 자마(紫磨)를 가리킴. 능라류(綾羅類)에 속함. ▲상기전17. 동파전집 마납찬병서(磨衲贊幷序). 장로 불인대사(佛印大師) 요원(了元)이 경사에 노닐었는데 천자가 그 이름을 듣고 고려에서 바친 바 마납(磨衲)을 그에게 주었다. ▲상기전17. 계림지(雞林志)에 이르되 고려승이 마납(磨衲)을 입은 자는 선법사(禪法師)가 된다. 납(衲)은 매우 정호(精好; 정교하고 아름다움)하다.
一日 祖謂衆曰 諸善知識 汝等各各淨心 聽吾說法 汝等諸人 自心是佛 更莫狐疑 外無一物而能建立 皆是本心生萬種法 故經云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若欲成就種智 須達一相三昧 一行三昧 若於一切處而不住相 彼相中不生憎愛 亦無取捨 不念利益成壞等事 安閑恬靜 虛融澹泊 此名一相三昧 若於一切處 行住坐臥 純一直心 不動道場 眞成淨土 名一行三昧 若人具二三昧 如地有種 能含藏長養 成就其實 一相一行 亦復如是 我今說法 猶如時雨溥潤大地 汝等佛性 譬諸種子 遇茲霑洽 悉得發生 承吾旨者 決獲菩提 依吾行者 定證妙果
●善知識; 又單云知識 知識者 知其心識其形之義 知人乃朋友之義 非博知博識之謂 善者於我爲益 導我於善道者 ▲法華文句四 聞名爲知 見形爲識 是人益我菩提之道 名善知識 ▲法華經妙莊嚴王品 善知識者是大因緣 所謂化導令得見佛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狐疑; 禪林疏語考證二 狐疑 漢書文帝紀 註曰 狐之爲獸 其性多疑 每渡氷河 且聽且渡 故曰疑者稱狐疑
●心生種種法生下; 大乘起信論 是故一切法 如鏡中像無體可得 唯心虛妄 以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故
●種智; 祖庭事苑四 種智 根本智內證眞如 卽法報二身 名一切智 後得智外照有緣 應物現形 如水中月 卽三種化身(大化身 小化身 隨類不定) 名種智也 故此二名云一切種智
●虛融; 沖虛融和
●淨土; 指以菩提修成之淸淨處所 爲佛所居之所 全稱淸淨土 淸淨國土 對此而言 衆生居住之所 有煩惱汚穢 故稱穢土
●時雨; 有應時的雨水 按時下雨
어느 날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여러 선지식(善知識)이여 너희 등은 각각 정심(淨心)으로 나의 설법을 들어라. 너희 등 제인(諸人)의 자심(自心)이 이 부처니 다시 호의(狐疑)하지 말아라. 밖으로 능히 건립할 1물(物)도 없고 모두 이 본심(本心)이 만 가지 법을 생기(生起)한다. 고로 경에 이르되 마음이 생하면 갖가지 법이 생하고(心生種種法生)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 만약 종지(種智)를 성취하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를 통달해야 한다. 만약 일체처에서 상(相)에 머물지 않고 그 상중(相中)에 증애(憎愛)를 내지 않고 또한 취사(取捨)함이 없고 이익과 성괴(成壞) 등의 일을 사념하지 않고 안한(安閑)하고 염정(恬靜)하고 허융(虛融)하고 담박(澹泊)하다면 이 이름이 일상삼매(一相三昧)다. 만약 일체처의 행주좌와에 순일(純一)한 직심(直心)이면 도량(道場)을 움직이지 않고 참으로 정토(淨土)를 이루나니 이름이 일행삼매(一行三昧)다. 어떤 사람이 2삼매를 구족한다면 땅에 종자가 있어 능히 함장(含藏)하고 장양(長養)하여 그 결실을 성취함과 같나니 일상일행(一相一行)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나의 지금의 설법은 마치(猶) 시우(時雨)가 대지를 부윤(溥潤; 베풀어 윤택하게 하다)함과 같고 너희 등 불성은 여러 종자에 비유하나니 이 점흡(霑洽)을 만나면 모두 발생함을 얻는다. 나의 의지(意旨)를 받드는(承) 자는 결정코 보리(菩提)를 획득하고 나의 행동에 의하는 자는 꼭(定) 묘과(妙果)를 증득한다.
●善知識; 또 간단히 이르되 지식(知識)이니 지식이란 것은 그의 마음을 알고(知) 그의 형상을 안다는(識) 뜻이니 지인(知人)이며 곧 붕우의 뜻임. 박지박식(博知博識)을 이름이 아님. 선(善)이란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며 나를 선도(善道)로 인도하는 자임. ▲법화문구4. 이름을 들음이 지(知)가 되고 형상을 봄이 식(識)이 되나니 이 사람은 나의 보리지도(菩提之道)를 더하는지라(益) 이름이 선지식이다. ▲법화경 묘장엄왕품. 선지식이란 것은 이 큰 인연이다. 이른 바 화도(化導)하여 견불(見佛)을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게 한다.
●狐疑; 선림소어고증2. 호의(狐疑) 한서 문제기(文帝紀) 주(註)에 가로되 여우의 짐승됨은 그 성격이 의심이 많아 매번 빙하(氷河)를 건너면서 또 듣고 또 건너나니 고로 가로되 의자(疑者)를 일컬어 호의(狐疑)라 한다.
●心生種種法生下; 대승기신론 이런 고로 일체법은 경중(鏡中)의 영상(影像)과 같아서 체를 가히 얻지 못하나니 오직 마음의 허망이다. 마음이 생하면 곧 갖가지 법이 생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하는 연고이다.
●種智; 조정사원4. 종지(種智) 근본지(根本智)는 안에서 진여를 증득함이니 곧 법신과 보신의 2신이며 이름이 일체지(一切智)임. 후득지(後得智)는 밖에서 유연(有緣)을 비추어 사람(物)에게 감응하여 형상을 나타냄이 마치 수중의 달과 같음이니 곧 3종화신(三種化身; 大化身ㆍ小化身ㆍ隨類不定)이며 이름이 종지(種智)임. 고로 이 둘을 이름해 이르되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함.
●虛融; 충허(沖虛)하고 융화(融和)함.
●淨土; 보리(菩提)로 수성(修成)한 청정한 처소를 가리킴. 불타가 거주하는 바의 처소가 됨. 전칭이 청정토ㆍ청정국토니 이에 상대해 말하면 중생이 거주하는 처소는 번뇌의 오염이 있으므로 고로 명칭이 예토(穢土)임.
●時雨; 때에 응함이 있는 우수(雨水). 안시(按時)하여 비를 내림.
先天元年告諸四衆曰 吾忝受忍大師衣法 今爲汝等說法 不付其衣 葢汝等信根淳熟 決定不疑 堪任大事 聽吾偈曰 心地含諸種 普雨悉皆生 頓悟華情已 菩提果自成 說偈已 復曰 其法無二 其心亦然 其道淸淨 亦無諸相 汝等愼勿觀淨及空其心 此心本淨 無可取捨 各自努力 隨緣好去 甞有僧擧臥輪禪師偈曰 臥輪有伎倆 能斷百思想 對境心不起 菩提日日長 祖聞之曰 此偈未明心地 若依而行之 是加繫縛 因示一偈曰 慧能沒伎倆 不斷百思想 對境心數起 菩提作麽長〈臥輪非名 卽住處也〉
●華情; 猶花情 情 本性 ▲孟子滕文公上 夫物之不齊 物之情也
●作麽; 作麽生之略 作麽生 又作怎麽生 作麽 作生 作麽 卽何 生 語助辭 有時可作樣字或然字解 本爲宋代俗語 禪宗多用於公案之感歎 或疑問之詞
선천(先天) 원년(元年; 712) 여러 4중(衆)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인대사(忍大師)의 의법(衣法)을 첨수(忝受; 욕되이 받다. 謙辭임)하여 지금 너희 등을 위해 설법하거니와 그 옷을 부촉하지 않으리니 대개 너희 등의 신근(信根)이 순숙(淳熟)하여 결정코 의심하지 않고 대사(大事)를 감임(堪任)하여서이다.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심지(心地)가 여러 종자를 머금었나니/ 널리 비 오면 모두 다 발생한다/ 화정(華情)을 돈오(頓悟)하고 나서/ 보리과(菩提果)를 저절로 이루리라. 게를 설하고 나서 다시 가로되 그 법이 무이(無二)라서 그 마음도 또한 그러하다. 그 도가 청정하여 또한 제상(諸相)이 없나니 너희 등은 삼가 정(淨)을 관(觀)하거나 및 그 마음을 공(空)하게 하지 말지니 이 마음은 본정(本淨)하여 가히 취사(取捨)가 없다. 각자 노력하고 수연(隨緣)하여 호거(好去)하라. 일찍이 어떤 중이 와륜선사(臥輪禪師)의 게를 들어 가로되 와륜이 기량(伎倆; 技倆과 같음)이 있어/ 능히 온갖 사상을 끊나니/ 경계를 상대해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보리(菩提)가 날마다 자라네. 조사가 이를 듣고 가로되 이 게는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했다. 만약 이에 의해 행한다면 이는 계박(繫縛)을 더한다. 인하여 1게를 보여 가로되 혜능은 기량이 없어/ 온갖 사상을 끊지 못했다/ 경계를 대해 마음이 자주 일어나지만/ 보리(菩提)가 어떻게(作麽) 자라리오〈臥輪이란 것은 이름이 아니라 곧 住處다〉.
●華情; 화정(花情)과 같음. 정(情)은 본성. ▲맹자 등문공상. 무릇 물(物)의 부제(不齊)가 물의 정(情)이다.
●作麽; 작마생(作麽生)의 약칭. 작마생(作麽生)은 또 즘마생(怎麽生)ㆍ작마(作麽)ㆍ작생(作生)으로 지음. 작마(作麽)는 곧 하(何)며 생(生)은 어조사임. 어떤 때엔 가히 양자(樣字) 혹은 연자(然字)로 지어 해석함. 본래 송대(宋代)의 속어(俗語)가 되는데 선종에서 다분히 공안의 감탄(感歎), 혹은 의문의 말로 사용함.
祖說法利生 經四十載 其年七月六日 命弟子往新州國恩寺 建報恩塔 仍令倍工 又有蜀僧名方辯 來謁曰 善揑塑 祖正色曰 試塑看 方辯不領旨 乃塑祖眞 可高七尺 曲盡其妙 祖觀之曰 汝善塑性 不善佛性 酬以衣物 辯禮謝而去 先天二年七月一日 謂門人曰 吾欲歸新州 汝速理舟檝 時大衆哀慕 乞師且住 祖曰 諸佛出現 猶示涅槃 有來必去 理亦常然 吾此形骸 歸必有所 衆曰 師從此去 早晩却回 祖曰 葉落歸根 來時無口 又問 師之法眼 何人傳受 祖曰 有道者得 無心者通 又問 後莫有難否 祖曰 吾滅後五六年 當有一人來取吾首 聽吾記曰 頭上養親 口裏須飱 遇滿之難 楊柳爲官 又曰 吾去七十年 有二菩薩從東方來 一在家 一出家 同時興化 建立吾宗 締緝伽藍 昌隆法嗣 言訖 往新州國恩寺 沐浴跏趺而化 異香襲人 白虹屬地 卽其年八月三日也 時韶新兩郡 各修靈塔 道俗莫決所之 兩郡刺史 共焚香祝曰 香烟引處 卽師之欲歸焉 時鑪香騰涌 直貫曹溪 以十一月十三日入塔 壽七十六 時韶州刺史韋據撰碑
●揑塑; 亦作捏塑 以泥塑造
●締緝; 建造修整
●早晩; 什麽時候 亦作早暮
조사가 설법하며 이생(利生)하기 40재(載)를 지났다. 그 해 7월 6일 제자에게 명령해 신주(新州) 국은사(國恩寺)로 가서 보은탑(報恩塔)을 건립하게 하고 인하여 배공(倍工; 工力을 倍加)했다. 또 촉승(蜀僧)이 있었으니 이름이 방변(方辯)이었다. 와서 스님을 참알하고 이르되 날소(揑塑)를 잘한다 하였다. 조사가 정색(正色)하고 가로되 시험 삼아 빚어(塑)보아라. 방변이 의지(意旨)를 영오(領悟)하지 못하고 이에 조사의 진체(眞體; 眞)를 빚었는데 가히 높이가 7척(尺)이었고 그 묘(妙)를 곡진(曲盡; 委曲히 다하다)했다. 조사가 이를 보고 가로되 너는 소성(塑性)은 잘하나 불성은 잘하지 못하는구나. 의물(衣物)로써 보답했고酬) 방변이 예사(禮謝)하고 떠났다. 선천(先天) 2년(713) 7월 1일 문인(門人)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신주(新州)로 돌아가려고 하니 너희는 속히 주즙(舟檝; 배)을 수리(修理)하거라. 당시에 대중이 애모(哀慕)하며 스님에게 걸구(乞求)하되 다만 머무시라 했다. 조왈(祖曰) 제불이 출현해도 오히려 열반을 보이나니 옴이 있으면 반드시 감은 이치가 또한 상연(常然)하다. 나의 이 형해(形骸)가 돌아가면 반드시 처소가 있다. 대중이 가로되 스님이 이로부터 가시면 조만(早晩)에 돌아오십니까(却迴). 조왈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면 올 때 입(口)이 없다. 또 묻되 스님의 법안(法眼)을 어떤 사람이 전수(傳受)합니까. 조왈 도가 있는 자가 얻고 무심한 자가 통한다. 또 묻되 후에 난(難)이 있지 않습니까. 조왈 내가 멸후(滅後) 5, 6년에 마땅히 1인이 와서 나의 머리를 취함이 있을 것이다. 나의 기(記; 授記. 예언)를 들어라, 두상(頭上)에 양친(養親)하고/ 구리(口裏)에 수찬(須餐; 음식을 需要)한다/ 만(滿)의 난(難)을 만나리니/ 양류(楊柳)가 관리(官吏)가 된다. 또 가로되 내가 떠난 70년에 2보살이 있어 동방으로부터 온다. 하나는 재가(在家)하고 하나는 출가하여 동시에 흥화(興化)하며 오종(吾宗)을 건립하리니 가람(伽藍)을 체집(締緝)하고 법사(法嗣)가 창륭(昌隆)하리라. 말을 마치자 신주 국은사로 가서 목욕해 마치고 가부(跏趺)하여 화(化; 遷化)했다. 이향(異香)이 사람을 엄습(掩襲)했고 흰 무지개가 땅에 이어졌다(屬; 저본에 矚으로 지었음). 곧 그 해 8월 3일이다. 당시에 소신(韶新) 양군(兩郡)에서 각기 영탑(靈塔)을 수조(修造)했는데 도속(道俗)이 가는(之) 곳을 결택(決擇)하지 못했다. 양군의 자사가 함께 분향하며 축도(祝禱)하여 이르되 향연(香煙)이 인도(引導)하는 곳이 곧 스님이 돌아가고 싶어 함이다. 때에 노향(鑪香)이 등용(騰涌)하더니 곧장 조계(曹溪)를 관통했다. 11월 13일에 입탑(入塔)했다. 나이는 76이다. 때에 소주자사(韶州刺史) 위거(韋據)가 찬비(撰碑)했다.
●揑塑; 또한 날소(捏塑)로 지음. 진흙으로써 소조(塑造)함.
●締緝; 건조(建造)하고 수정(修整)함.
●早晩; 어떤 시후(時候; 시각). 또 조모(早暮)로 지음.
門人憶念取首之記 遂先以鐵葉漆布固護師頸 塔中有達磨所傳信衣 〈西域屈眴布也 緝木𦄋華心織成 後人以碧絹爲裏〉 中宗賜磨衲寶鉢 以辯塑眞道具等 主塔侍者尸之 開元十年壬戌八月三日 夜半忽聞塔中如拽鐵索聲 僧衆驚起 見一孝子從塔中走出 尋見師頸有傷 具以賊事聞於州縣 縣令楊侃刺史柳無忝 得牒切加擒捉 五月於石角村捕得賊人 送韶州鞠問 云姓張名淨滿 汝州梁縣人 於洪州開元寺受新羅僧金大悲錢二十千 令取六祖大師首 歸海東供養 柳守聞狀 未卽加刑 乃躬至曹溪 問祖上足令韜曰 如何處斷 韜曰 若以國法論 理須誅夷 但以佛敎慈悲冤親平等 況彼欲求供養 罪可恕矣 柳守嘉歎曰 始知佛門廣大 遂赦之〈爾後 甚有名賢贊述 檀施珍異 文繁不錄〉
●主塔侍者; 與塔主同義 管理守護塔的僧人
●擒捉; 捕捉 捉拿
●海東; 渤海之東 又今之韓國的古時別稱
●上足; 指上首弟子 卽門下會中之優秀弟子
문인(門人)이 취수지기(取首之記)를 억념(憶念)하고 드디어 먼저 철엽(鐵葉)과 칠포(漆布)로써 스님의 목을 견고히 보호했다. 탑중(塔中)에 달마가 전한 바 신의(信衣)〈西域의 굴순포(屈眴布)다. 목면(木綿)의 화심(華心; 꽃술이 있는 부분)을 모아(緝) 짜서 이루었다. 후인이 벽견(碧絹)을 속으로 삼았다〉ㆍ중종(中宗)이 준 마납(磨衲)ㆍ보발(寶鉢)과 방변(方辯)의 소진(塑眞)ㆍ도구(道具) 등이 있다. 주탑시자(主塔侍者)가 이를 주관(主管; 尸)했다. 개원(開元) 10년 임술(722) 8월 3일, 야반(夜半; 한밤중)에 홀연히 탑중(塔中)에서 철삭(鐵索; 쇠끈)을 끄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으므로 승중(僧衆)이 놀라 일어났다. 한 효자(孝子)가 탑중으로부터 주출(走出)함을 보았는데 이윽고 스님의 목이 손상됨이 있음을 보았다. 갖추어 적사(賊事)를 주현(州縣)에 알렸는데(聞은 알릴 문) 현령(縣令)은 양간(楊侃)이며 자사(刺史)는 유무첨(柳無添)이었으며 간절히 금착(擒捉)을 더하라는 문서(牒)를 얻었다. 5월(月; 마땅히 日로 지어야 함) 석각촌(石角村)에서 적인(賊人)을 포득(捕得; 체포)하여 소주(韶州)로 보내 국문(鞠問)했는데 이르되 성은 장(張)이며 이름은 정만(淨滿)이며 여주(汝州)의 양현(梁縣) 사람이다.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신라승(新羅僧) 김대비(金大悲)의 돈 20천(二十千; 2만)을 받았으며 6조 대사의 머리를 취하게 했고 해동(海東)으로 돌아가 공양하려 했다. 유수(柳守)가 백상(白狀)을 듣고 곧 가형(加刑)하지 않고 이에 몸소 조계에 이르러 조사의 상족(上足) 영도(令韜)에게 물어 가로되 어떻게 처단(處斷)해야 합니까. 영도가 가로되 만약 국법으로써 논하자면 이치가 모름지기 주이(誅夷; 誅殺)해야 하지만 단지 불교는 자비로써 원친(冤親; 怨親과 같음)이 평등한데 하물여 그는 구해 공양하려고 했으니 죄를 가히 용서해야 합니다. 유수(柳守)가 가탄(嘉歎)하며 가로되 비로소 불문(佛門)이 광대함을 알겠습니다. 드디어 그를 사면(赦免)했다〈爾後에 甚히 名賢의 贊述 및 檀施의 珍異가 있지만 文繁하여 不錄한다〉.
●主塔侍者; 탑주(塔主)와 같은 뜻. 탑을 관리하고 수호하는 승인.
●擒捉; 포착(捕捉). 착나(捉拿).
●海東; 발해(渤海)의 동쪽. 또 지금의 한국의 고시(古時)의 별칭(別稱).
●上足; 상수제자(上首弟子)를 가리킴. 곧 문하의 회중에 우수한 제자.
上元元年肅宗遣使就請師衣鉢 歸內供養 至永泰元年五月五日 代宗夢六祖大師請衣鉢 七日勑刺史楊瑊曰 朕夢感禪師請傳法袈裟却歸曹溪 今遣鎭國大將軍劉崇景頂戴而送 朕謂之國寶 卿可於本寺如法安置 專令僧衆親承宗旨者 嚴加守護 勿令遺墜 後或 爲人偸竊 皆不遠而獲 如是者數四 憲宗諡大鑒禪師 塔曰元和靈照 皇朝開寶初 王師平南海 劉氏殘兵作梗 祖之塔廟 鞠爲煨燼 而眞身爲守塔僧保護 一無所損 尋有制興 修功未竟 會太宗皇帝卽位 留心禪宗 頗增壯麗焉
●王師; 天子的軍隊 國家的軍隊
●塔廟; 玄應音義六 塔廟 塔婆 或義譯爲廟 古文廟 白虎通曰 廟者貌也 先祖尊貌也 今取其義矣
●修功; 建立功業
상원(上元) 원년(元年; 760) 숙종(肅宗)이 사자(使者)를 보내어 바로(就) 스님의 의발(衣鉢)을 청해 대내(大內)로 돌아와 공양했다. 영태(永泰) 원년(元年; 765) 5월 5일에 이르러 대종(代宗)의 꿈에 6조 대사가 의발을 청했다. 7일에 자사(刺史) 양감(楊瑊)에게 칙령해 가로되 짐의 꿈에 선사(禪師)가 전법가사(傳法袈裟)를 조계로 각귀(却歸; 回歸)하라는 청을 감득(感得)했다. 이제 진국대장군(鎭國大將軍) 유숭경(劉崇景)을 보내어 정대(頂戴)하여 송환하라. 짐은 이를 일러 국보(國寶)라 하나니 경(卿)은 가히 본사(本寺)에 여법(如法)하게 안치하라. 오로지(專) 승중(僧衆)에서 종지(宗旨)를 친승(親承)한 자로 하여금 엄(嚴)히 수호(守護)를 가(加)하여 유추(遺墜)함이 없게 하라. 후에 혹 사람에게 투절(偸竊; 盜竊)되었으나 모두 오래지(遠) 않아 획득했으며 이와 같은 것의 횟수가 네 번이다. 헌종(憲宗)이 시(諡)하여 대감선사(大鑒禪師)라 했고 탑을 가로되 원화영조(元和靈照)라 했다. 황송(皇宋) 개보(開寶; 968-976) 초 왕사(王師)가 남해(南海)를 평정(平定)했는데 유씨(劉氏)의 잔병(殘兵)이 재앙(災殃; 梗)을 지어 조사의 탑묘(塔廟)가 외신(煨燼; 잿더미)됨을 알렸으나(鞠) 진신(眞身)은 수탑승(守塔僧)이 보호하여 하나도 손상되는 바가 없었다. 이윽고(尋) 제흥(制興; 制度가 일어나다)하고 수공(修功)을 마치지 못함이 있었는데 마침(會) 태종황제(太宗皇帝)가 즉위하여 선종(禪宗)에 유심(留心)한지라 자못 장려(壯麗)를 더했다(增).
●王師; 천자의 군대. 국가의 군대.
●塔廟; 현응음의6. 탑묘(塔廟) 탑파(塔婆; 梵 stūpa. 巴 thūpa)니 혹 의역하여 묘(廟)라 함. 고문의 묘(廟)임. 백호통에 가로되 묘(廟)란 것은 모(貌)니 선조의 존모(尊貌)다. 여금에 그 뜻을 취한다.
●修功; 공업(功業)을 건립함.
五燈會元卷第一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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