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龍忠道者 初至舒州龍門 縱步水磨所 見牌云法輪常轉 豁然有省 撫掌說偈曰 轉大法輪 目前包裹 更問如何 水推石磨 遂寫而作圓相 於後詣方丈 呈佛眼禪師 已而禮辭 渡九江 登廬阜 露眠草宿 蛇虎爲隣 於山舒水緩處 會意則居 或數日不食 或連宵不臥 髮長不剪 衣弊不易 所以禪會雅呼爲忠道者 方是時 死心禪師住黃龍 道重一時 學者至 無所容 故於季春結制 以限來者 死心道貌德威 鮮敢嬰其鋒 忠直前抗論 有偈風之曰 莫怪狂僧罵死心 死心結夏破叢林 叢林明眼如相委 此語須敎播古今 又迫暮持白木劒造其室而問曰 聞老和尙不懼生死 是否 死心擬對 忠卽揮劒 死心引頸而笑 忠擲劒于地 作舞而出 馮給事濟川甞有請忠住勝業疏 略曰 佛眼磨頭 悟法輪之常轉 死心室內 容慧劒以相揮 世以爲實錄云
●黃龍忠; 法忠(1084-1149) 宋代楊岐派僧 浙江四明人 俗姓姚 號牧菴 十九歲出家 精勤參修天台敎旨 得悟一心三觀之理 唯自覺未能泯跡 乃徧參名德 後至龍門 觀水磨旋轉 頓然開悟 以偈呈佛眼淸遠禪師 蒙其印可 竝嗣其法 後遷居南嶽 每跨虎出遊 儒釋皆望塵而拜 四衆亦以伏虎稱之 後住江西隆興之黃龍山 於紹興十九年示寂 壽六十六 [佛祖歷代通載二十 五燈會元二十]
●道者; 禪人之稱呼
●舒州; 安徽省安慶府懷寧縣的古稱 唐武德四年(621)稱舒州 天寶(742-7 55)初 稱同安郡 至德(756-757)初 稱盛唐郡 後再稱舒州 舒州有金陵寶誌隱棲處 三祖僧璨所住晥公山山谷寺 白雲守端的白雲山海會寺 投子大同與投子義靑所住投子山等 [大明一統志十四 大淸一通志七十六]
●水磨; 用水力帶動的石磨 磨 碾碎穀物等的工具
●法輪; 爲對於佛法之喩稱 以輪比喩佛法 其義有三 一摧破之義 因佛法能摧破衆生之罪惡 猶如轉輪聖王之輪寶 能輾摧山岳巖石 故喩之爲法輪 二輾轉之義 因佛之說法不停滯於一人一處 猶如車輪輾轉不停 故稱法輪 三圓滿之義 因佛所說之敎法圓滿無缺 故以輪之圓滿喩之 而稱法輪 [大智度論八 雜阿毘曇心論十]
●豁然; 很快 突然間 一下子
●圓相; 祖庭事苑二 圓相 圓相之作 始於南陽國師 付授侍者耽源 源承讖記 傳于仰山 今遂目爲潙仰家風 明州五峰良和上 嘗製四十則 明敎子潛子(佛日契嵩禪師 雲門文偃下四世)爲之序 稱道其美 良云 圓相總六名 一圓相 二義海 三暗機 四字海 五意語 六默論
●方丈; 一丈四方之室 又作方丈室 丈室 卽禪寺中住持之居室或客殿 亦稱函丈 正堂 堂頭 印度之僧房多以方一丈爲制 維摩禪室亦依此制 遂有方一丈之說 轉而指住持之居室 今轉義爲禪林住持 或對師家之尊稱 通稱方丈 或方丈和尙 [維摩經文疏二十二 法苑珠林二十九 大唐西域求法高僧傳上慧輪傳]
●九江; 禹貢 九江在南皆東合爲大江 這是說九江在漢尋陽境內 卽今湖北廣濟 黃梅一帶 漢唐諸儒一般皆主此說 但對九江的江源又有異說 [百度百科]
●結制; 同結夏 夏安居也 夏安居始於四月十五日 稱爲結夏 終於七月十五日 稱爲解夏
●明眼; 明眼人 謂能具判別道理的眼目人 法眼明亮的禪者
●給事; 古代官職名 給事中的省稱 唐代最初設置
●濟川; 馮楫(?-1153) 宋代楊岐派居士 四川遂寧人 字濟川 曾任給事知事等官 壯年時 參學於佛眼淸遠(楊岐下三世)座下 竝嗣其法 復參大慧宗杲 得其心印 晩年勤修淨土 以往生西方爲願 竝自費補修大藏經 於紹興二十三年示寂 有語錄 [五燈會元二十 五燈全書四十四 居士分燈錄下]
●磨頭; 管掌磨院之僧職 負責碾磨穀麥等糧穀 又作磨主 [禪苑淸規四 象器箋職位類]
●相揮; 相 表示一方對另一方有所動作
황룡충(黃龍忠; 法忠) 도자(道者)가 처음 서주(舒州) 용문(龍門)에 이르러 수마소(水磨所)로 종보(縱步; 걸음을 놓다)해 패(牌)를 보매 이르되 법륜상전(法輪常轉). 활연(豁然)히 살핌이 있었다. 무장(撫掌; 拍掌)하며 설게(說偈)해 가로되 대법륜을 굴려/ 목전(目前)에 포과(包裹)했다/ 다시 여하(如何)를 묻느냐/ 물이 석마(石磨)를 민다(推). 드디어 서사(書寫)하고 원상(圓相)을 지었다. 후에 방장(方丈)으로 나아가(詣) 불안선사(佛眼禪師)에게 드렸다(呈). 이이(已而; 不久. 後來) 예사(禮辭; 예배하고 고별)하고 구강(九江)을 건너 여부(廬阜; 廬山의 별명)에 올라 노면초숙(露眠草宿; 이슬에 자고 풀에 숙박)하면서 사호(蛇虎)와 이웃이 되었고 산이 퍼지고 물이 느린(山舒水緩) 곳에 뜻에 맞으면(會) 곧 거주했다. 혹 며칠 먹지 않았고 혹 연소(連宵; 連夜) 눕지 않았고 두발이 길어도 자르지(剪) 않았고 옷이 해져도(弊) 바꾸지 않았다. 소이로 선회(禪會; 선종의 법회)에서 아호(雅呼)하여 충도자(忠道者)라 했다. 바야흐로 이때 사심선사(死心禪師; 悟新)가 황룡(黃龍)에 주(住)했는데 도가 일시(一時)에 존중(尊重; 重)되었고 학자(學者)가 이르러도 수용(受容)할 바가 없었다. 고로 계춘(季春)의 결제(結制)에 내자(來者)를 제한(制限; 限)했다. 사심(死心)은 도모덕위(道貌德威; 도의 용모에 덕의 위엄)라 감히 그 기봉(機鋒; 鋒)을 범함(嬰)이 드물었다. 충(忠)이 바로 앞으로 나아가 항론(抗論)했다. 게가 있어 풍자(諷刺; 風)해 가로되 광승(狂僧)이 사심(死心)을 욕함(罵)을 괴이히 여기지 말지니/ 사심이 결하(結夏; 結制)하면서 총림을 깨뜨렸다/ 총림의 명안(明眼)이 상위(相委; 서로 알다)할 것 같다면/ 이 말이 꼭 고금에 전파(傳播; 播)되게 하리라. 또 박모(迫暮; 黃昏)에 백목검(白木劒)을 가지고 그 실(室)로 나아가(造) 문왈(問曰) 듣건대 노화상(老和尙)이 생사를 두려워하지(懼) 않는다 하니 그렇습니까. 사심이 대답하려는데(擬對) 충이 곧 휘검(揮劒)했다. 사심이 목을 늘어뜨려며(引頸) 웃었다. 충이 검을 땅에 던지고(擲) 춤추며(作舞) 나갔다. 풍급사(馮給事) 제천(濟川)이 충을 승업(勝業)에 주(住)하게 하는 소(疏)가 있었는데 약왈(略曰) 불안(佛眼; 淸遠)의 마두(磨頭)가 법륜의 상전(常轉)을 깨쳤고 사심이 실내에서 혜검(慧劒)을 상휘(相揮)함을 용납했다. 세상에서 실록(實錄)으로 삼는다.
●黃龍忠; 법충(法忠; 1084-1149)이니 송대 양기파승. 절강 사명 사람이며 속성은 요(姚)며 호는 목암(牧菴). 19세에 출가했고 천태의 교지(敎旨)를 정근하며 참수(參修)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이치를 득오(得悟)했으나 오직 능히 자취를 없애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이에 명덕(名德)을 두루 참방했음. 후에 용문에 이르러 수마(水磨; 水力으로 도는 맷돌)가 선전(旋轉)함을 보다가 문득 개오(開悟)했음. 게를 불안청원선사(佛眼淸遠禪師)에게 보였고 그의 인가를 받았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남악으로 옮겨 거주했으며 매번 호랑이를 타고 출유(出遊)했는데 유석(儒釋)이 모두 망진(望塵)하고 예배했으며 4중(衆)이 또한 복호(伏虎)로 그를 호칭했음. 후에 강서 융흥의 황룡산에 거주했음. 소흥 19년에 시적했으며 나이는 66 [불조역대통재20. 오등회원20].
●道者; 선인(禪人)의 칭호.
●舒州; 안휘성 안경부 회녕현의 고칭. 당 무덕 4년(621) 서주(舒州)로 호칭했고 천보(742-755) 초 동안군(同安郡)으로 호칭했고 지덕(756-7 57) 초 성당군으로 호칭했다가 후에 다시 서주(舒州)로 호칭했음. 서주에 금릉 보지의 은서처(隱棲處)ㆍ3조 승찬이 거주한 바의 환공산 산곡사ㆍ백운수단의 백운산 해회사ㆍ투자대동과 투자의청이 거주한 바의 투자산 등이 있음 [대명일통지14. 대청일통지76].
●水磨; 수력을 사용해 동력을 가진 석마(石磨). 마(磨)는 곡물 등을 맷돌로 파쇄하는 공구.
●法輪; 불법에 대한 유칭(喩稱)이니 륜(輪)으로 불법에 비유함. 그 뜻에 셋이 있음. 1. 최파(摧破)의 뜻이니 불법이 능히 중생의 죄악을 최파함이 마치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능히 굴러 산악과 암석을 최파함과 같음으로 인해 고로 이에 비유해 법륜으로 삼음. 2. 전전(輾轉)의 뜻이니 불타의 설법이 1인1처(一人一處)에 정체(停滯)되지 않음이 마치 거륜(車輪)이 전전(輾轉)하여 멈추지 않음과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법륜임. 3. 원만의 뜻이니 불타가 설하는 바 교법(敎法)이 원만하여 무결(無缺)하기 때문에 고로 륜(輪)의 원만함으로써 이에 비유하여 법륜이라 일컬음 [대지도론8. 잡아비담심론10].
●豁然; 흔쾌(很快; 매우 빠름). 돌연간. 일하자(一下子; 갑자기).
●圓相; 조정사원2. 원상(圓相) 원상의 시작이 남양국사(南陽國師; 慧忠國師)에서 비롯해 시자인 탐원(耽源)에게 부수(付授)했고 탐원이 참기(讖記)를 이어 앙산에게 전했으며 지금 드디어 제목해 위앙가풍으로 삼는다. 명주 오봉량화상(五峰良和上)이 일찍이 40칙을 만들고 명교자잠자(明敎子潛子; 佛日契嵩禪師니 운문문언하 4세)가 서문을 지어 그 아름다움을 일컬어 말했다. 양(良)이 이르되 원상은 모두 6명(名)이니 1은 원상(圓相)이며 2는 의해(義海)며 3은 암기(暗機)며 4는 자해(字海)며 5는 의어(意語)며 6은 묵론(默論)이다.
●方丈; 1장(丈)의 사방의 실(室)이니 또 방장실ㆍ장실로 지음. 곧 선사(禪寺) 중 주지의 거실 혹 객전(客殿). 또 명칭이 함장(函丈)ㆍ정당(正堂)ㆍ당두(堂頭). 인도의 승방은 다분히 사방 1장을 제도(制度)로 삼았으며 유마의 선실(禪室)도 또한 이 제도에 의했으니 드디어 사방 1장의 설이 있음. 전(轉)하여 주지의 거실을 가리키며 이제 전의(轉義)하여 선림의 주지가 됨. 혹 사가(師家)에 대한 존칭이니 통칭이 방장이며 혹 방장화상임 [유마경문소22. 법원주림29. 대당서역구법고승전상혜륜전].
●九江; 우공(禹貢; 상서의 편명) 구강은 남쪽에 있다. 개동과 합쳐져서 대강이 된다. 이것은 구강이 한에 있어선 심양의 경내에 있었다는 설이니 즉금 호북의 광제ㆍ황매 일대임. 한과 당의 제유(諸儒)가 일반으로 다 이 설을 주장함. 단지 구강의 강원(江源)에 대해선 또 이설이 있음 [백도백과].
●結制; 결하(結夏)와 같음. 하안거임. 하안거는 4월 15일에 시작하는데 일컬어 결하라 하고 7월 15일에 마치는데 일컬어 해하라 함.
●明眼; 눈 밝은 사람. 이르자면 능히 도리를 판별하는 안목을 갖춘 사람. 법안이 명량(明亮)한 선자(禪者).
●給事; 고대 관직명인 급사중(給事中)의 생칭. 당대에 최초로 설치했음.
●濟川; 풍즙(馮楫; ?-1153)이니 송대 양기파거사. 사천 수녕 사람이니 자는 제천(濟川)이며 일찍이 급사(給事)ㆍ지사(知事) 등의 관직에 입명되었음. 장년(壯年) 시 불안청원(佛眼淸遠; 양기하 3세)의 좌하(座下)에서 참학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다시 대혜종고를 참해 그의 심인을 얻었음. 만년에 정토를 근수(勤修)했고 서방에 왕생함을 원으로 삼았으며 아울러 자비(自費)로 대장경을 보수했음. 소흥 23년 시적했고 어록이 있음 [오등회원20. 오등전서44. 거사분등록하].
●磨頭; 마원(磨院)을 관장하는 승직(僧職). 곡식ㆍ보리 등의 양곡의 연마(碾磨; 갈다. 碾은 갈 년. 맷돌 년)를 부책(負責; 책임을 짐)함. 또 마주(磨主)로 지음 [선원청규4. 상기전직위류].
●相揮; 상(相)은 일방(一方)이 다른 일방에 대해 동작하는 바가 있음을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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