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

나호야록상 원오선사(圜悟禪師; 克勤)

태화당 2025. 10. 21. 07:43

圜悟禪師 政和間 謝事成都昭覺 復出峽南遊 時張無盡公寓荊南 以道學自居 少見推許 圜悟艤舟謁之 劇談華嚴旨要曰 華嚴現量境界 理事全眞 初無假法 所以卽一而萬 了萬爲一 一復一 萬復萬 浩然莫窮 心佛衆生 三無差別 卷舒自在 無礙圓融 此雖極則 終是無風帀帀之波 公於是不覺促榻 圜悟遂問曰 到此 與祖師西來意 爲同爲別 公曰 問矣 圜悟曰 且得沒交涉 公色爲之慍 圜悟曰 不見雲門道 山河大地無絲毫過患 猶是轉句 直得不見一色 始是半提 更須知有向上全提時節 彼德山臨濟豈非全提乎 公乃首肯 翌日 復擧事法界 理法界理事無礙法界 圜悟又問 此可說禪乎 公曰 正好說禪也 圜悟笑曰 不然 正是法界量裏在 蓋法界量未滅 若到事事無礙法界 法界量滅 始好說禪 如何是佛 乾屎橛 如何是佛 麻三斤 是故眞淨偈曰 事事無礙 如意自在 手把豬頭 口誦淨戒 趂出婬坊 未還酒債 十字街頭 解開布袋 公曰 美哉之論 豈易得聞乎 圜悟融通宗敎若此 故使達者心悅而誠服 非宗說俱通 安能爾耶

●推許; 推重贊許

●劇談; 猶暢談

●現量; 因明用三量之一 又心識三量之一 現實量知也 向色等諸法 現實量知其自相 毫無分別推求之念者

●促榻; 移近座位 是交談投機時的動作

●祖師西來意; 初祖達磨自西天來此土傳禪法 究竟意思如何 究此意思者 卽究佛祖之心印也

●雲門; 文偃(864-949) 唐末五代僧 爲雲門宗之祖 浙江嘉興人 俗姓張 法名文偃 幼懷出塵之志 從嘉興空王寺志澄出家 未久 至毘陵壇受具足戒 遍覽諸經 深究四分律 後至睦州(浙江省建德)參學於道明門下 經數載 盡得其道 又謁雪峰義存 依住三年 受其宗印 後歷叩諸方 參究玄要 名聲漸著 後梁乾化元年(911) 至曹溪(廣東省)禮六祖塔 後投於靈樹如敏會下 如敏推爲首座 貞明四年(918) 如敏示寂 師嗣其法席 主持靈樹寺 同光元年(923) 於雲門山創建光泰禪院 道風愈顯 海衆雲集 法化四播 後漢隱帝乾祐元年(948) 南漢王劉晟敕賜匡眞禪師 二年四月十日上表辭王 垂誡徒衆 端坐示寂 壽八十六 僧臘六十六 北宋乾德四年(966) 太祖復追諡大慈雲匡眞弘明禪師 師之機鋒險峻 門風殊絶 世稱雲門文偃 有雲門匡眞禪師廣錄三卷 語錄一卷行世 [古尊宿語錄十八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釋氏疑年錄五]

●半提; 非完全徹底的禪法提示 相對于全提而言

●全提; 完全徹底的提示 是超越言句義理的 直指人心的禪機施設

●德山; 宣鑑(782-865) 唐代僧 劍南(四川)人 俗姓周 法名宣鑑 年少出家 二十歲受具足戒 於大小乘諸經貫通旨趣 因常講金剛般若經 時稱周金剛 後至澧陽參龍潭崇信 夜深龍潭吹滅紙燭之間 豁然頓悟 常以棒打爲敎 而有德山棒之稱 師住澧陽三十年 遭唐武宗(在位841-846)廢敎 避難於獨浮山之石室 大中(847-859)初 應武陵(湖南)太守薛廷望堅請 始居德山 大振宗風 咸通六年十二月三日 忽告諸門徒曰 捫空追響 勞汝心神 夢覺覺非 竟有何事 言訖安坐而化 壽八十四 僧臘六十五 敕諡見性大師 法嗣有巖頭全豁雪峰義存等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五 祖堂集五 五燈會元七]

●臨濟; 義玄(?-867) 臨濟宗之祖 唐代曹州(河南)南華人 俗姓邢 幼負出塵之志 及落髮受具足戒後 便慕禪宗 初到江西參黃蘗希運 又禮謁高安大愚 潙山靈祐等 後還黃蘗 受印可 宣宗大中八年(854) 至河北鎭州 住於臨濟院 適丁兵革 師卽棄去 太尉默君和 於城中捨宅爲寺 亦以臨濟爲額 迎師居焉 後拂衣南邁至河府 府主王常侍 延以師禮 住未幾卽來大名府興化寺 居于東堂 師無疾忽一日攝衣據坐 與三聖問答畢 寂然而逝 時唐咸通八年丁亥 孟陬月十日也 門人以師全身 建塔于大名府西北隅 勅諡慧照禪師 塔號澄靈 師設三玄三要四料簡等機法 接引徒衆 更以機鋒峭峻著名於世 別成一家 遂成臨濟宗 師接化學人 每以叱喝顯大機用 世有德山棒臨濟喝之稱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二 臨濟語錄]

●事法界; 華嚴宗所立四法界之一 指宇宙間千差萬別之現象界

●理法界; 華嚴宗所立四法界之一 謂諸衆生雖有色身等之別 然皆爲同一體性也

●理事無礙法界; 華嚴宗所立四法界之一 謂理由事顯 事攬理成 理事互融 故名理事無礙法界

●正好; 正應當 正當其時

●法界; 一意識(六識之一)所認知的一切對象的統稱 二全部世界 一切事物 三萬事萬物的本源和本性 此指三

●事事無礙法界; 華嚴宗所立四法界之一 謂一切分齊事法 稱性融通 一多相卽 大小互容 重重無盡 故名事事無礙法界

●乾屎橛; 拭人糞之橛之乾者 取至穢之意 屎橛又作廁籌 淨籌 淨木 廁簡子等

●麻三斤; 五代宋初洞山守初的著名機語

●眞淨; 克文(1025-1102) 宋代黃龍派僧 俗姓鄭 號雲庵 關西子 陝府(今河南陝縣)人 二十五歲 隨北塔廣公出家 通內外學 初參黃龍慧南不契 又往香城(今陝西朝邑) 見順和尙 順和尙反問黃龍慧南之語 克文聞而大省 方知黃龍慧南用意 仍歸黃龍慧南處 幷嗣其法 初於洞山開堂 後遷隆興(今江西南昌)寶峰 繼住壽聖 歸宗 泐潭 晩居雲菴 崇寧元年十月十六日示寂 享年七十八 法嗣有三十八人 以從悅 文準 慧洪爲上首 賜號眞淨 有雲庵眞淨禪師語錄 [續傳燈錄十五 五燈會元十七]

●夫; 一發語詞 夫天地者 二助詞 逝者如斯夫

●宗敎; 一宗門之敎意 二禪宗與敎宗 此指一

●宗說俱通; 祖庭事苑七 宗說俱通 淸凉云 宗通自修行 說通示未悟(出華嚴經隨疏演義鈔九)

 

원오선사(圜悟禪師; 克勤)가 정화(政和; 1111-1118) 간 성도(成都) 소각(昭覺; 소각사)에서 사사(謝事; 辭職)하고 다시 출협(出峽)하여 남유(南遊)했다. 때에 장무진공(張無盡公)이 형남(荊南)에 우거(寓居)했는데 도학(道學)으로써 자거(自居)하며 추허(推許)를 보임이 적었다. 원오가 배를 대고(艤舟) 예알하여 화엄의 지요(旨要)를 극담(劇談)해 가로되 화엄은 현량경계(現量境界)니 이사(理事)가 전진(全眞)이라 애초에 가법(假法)이 없습니다. 소이(所以)로 즉일(卽一; 一에 붙다)하여 만(萬)이며 요만(了萬)하여 일(一)이 되며 일이 다시 일이며 만이 다시 만이니 호연(浩然)하여 궁구하지 못합니다. 심(心)ㆍ불(佛)ㆍ중생, 셋이 차별이 없으며 권서(卷舒)가 자재(自在)하고 무애(無礙)하여 원융(圓融)합니다. 이것이 비록 극칙(極則)이지만 마침내 이는 바람 없이 잡잡(帀帀; 돌고 돌다)한 파도입니다. 공(公)이 이에 불각(不覺)에 촉탑(促榻)했다. 원오가 드디어 문왈(問曰) 여기에 이르러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와 같음이 됩니까, 다름이 됩니까. 공왈(公曰) 묻습니다(問矣). 원오가 가로되 다만(且; 只) 교섭이 없음(沒交涉)을 얻습니다. 공(公)의 낯빛(色)이 화를 내었다(爲之慍). 원오가 가로되 보지 못합니까, 운문(雲門)이 말하되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사호(絲毫; 실터럭만큼)의 과환(過患)이 없더라도 오히려 이는 전구(轉句)며 바로(直) 일색(一色)도 보지 않음을 얻어야 비로소(始) 이 반제(半提)니 다시 모름지기 향상(向上)의 전제(全提)의 시절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했습니다. 그(彼) 덕산(德山)과 임제(臨濟)가 어찌(豈) 전제(全提)가 아니겠습니까. 공(公)이 이에 수긍(首肯)했다. 익일(翌日) 다시 사법계(事法界)와 이법계(理法界)를 들었는데(擧)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에 이르자 원오가 또 묻되 이것이 가히 설선(說禪)입니까. 공왈(公曰) 정호(正好) 설선(說禪)입니다. 원오가 웃으며 가로되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正) 이는 법계량(法界量) 속에 있으며 대개(大蓋) 법계량(法界量)이 멸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에 이른다면 법계량이 멸하나니 비로소(始) 좋이 설선(說禪)입니다. 무엇이 이 부처인가, 건시궐(乾屎橛)이다. 무엇이 이 부처인가, 마삼근(麻三斤)이다. 이런 고로 진정(眞淨)의 게(偈)에 가로되 사사무애(事事無礙)라야/ 여의(如意)하여 자재(自在)하나니/ 손에 저두(豬頭)를 잡고(把)/ 입으로 정계(淨戒)를 외운다/ 음방(婬坊)에서 쫓겨(趂) 나며/ 주채(酒債)를 갚지 못했고/ 십자가두(十字街頭)에서/ 포대(布袋)를 해개(解開; 풀어 열다)한다. 공왈 미재지론(美哉之論)입니다. 어찌 쉽게 득문(得聞)하겠습니까. 부() 원오가 종교(宗敎)를 융통(融通)함이 이와 같은지라(若此) 고로 달자(達者)로 하여금(使) 마음이 기뻐하면서 성복(誠服; 참으로 服從)했나니 종설구통(宗說俱通)이 아니라면 어찌(安) 능히 그러하겠는가(爾耶).

●推許; 추중(推重; 推仰하여 존중히 여김)하며 찬허(贊許)함.

●劇談; 창담(暢談; 후련하게 이야기 함)과 같음.

●現量; 인명용(因明用) 3량(量)의 하나며 또 심식(心識) 3량의 하나니 현실을 양지(量知)함임. 색 등 제법을 향해 현실로 그 자상(自相)을 양지하여 터럭만큼도 분별하며 추구하는 사념이 없는 것.

●促榻; 좌위(座位)에 가깝게 이동함이니 이는 교담(交談)하며 투기(投機)할 때의 동작.

●祖師西來意; 초조 달마가 서천(西天; 인도)으로부터 차토(此土; 중국)로 와서 선법(禪法)을 전했거니와 구경(究竟; 畢竟) 의사(意思)가 어떠한가. 이 의사를 궁구하는 것이 곧 불조의 심인(心印)을 궁구하는 것임.

●雲門; 문언(文偃; 864-949)이니 당말(唐末) 오대승.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가 됨. 절강 가흥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張)이며 법명은 문언(文偃)임.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품고 가흥(嘉興) 공왕사(空王寺)의 지징(志澄)을 좇아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비릉단(毘陵壇)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여러 경을 편람(遍覽)하였고 사분율(四分律)을 깊이 연구했음. 후에 목주(睦州; 절강성 建德)에 이르러 도명(道明. 黃檗希運의 法嗣)의 문하(門下)에서 참학(參學)해 몇 해가 지나 그 도를 다 얻었음. 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알현(謁見)해 3년을 의지하며 머물고 그의 종인(宗印)을 받았음. 후에 제방을 다니며 고문(叩問)하면서 현요(玄要)를 참구하였고 명성이 점차 드러났음. 후량(後梁) 건화 원년(911) 조계(曹溪. 廣東省)에 이르러 육조탑(六祖塔)에 예배하고 뒤에 영수여민(靈樹如敏)의 회하(會下)에 투입했는데 여민이 추천(推薦)해 수좌가 되었음. 정명 4년(918) 여민이 시적하자 스님이 그 법석을 이어 영수사(靈樹寺)를 주지(主持)했음. 동광 원년(923) 운문산에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창건하자 도풍(道風)이 더욱 환해져 해중(海衆)이 운집하였고 법화(法化)가 사방으로 퍼졌음.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우 원년(948) 남한왕(南漢王) 유성(劉晟)이 광진선사(匡眞禪師)로 칙사(敕賜)했으며 2년 4월 10일에 표(表)를 올려 왕을 고별하고 도중(徒衆)에게 훈계(訓戒)를 내리고는 단정히 앉아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86이며 승랍은 66. 북송 건덕 4년(966) 태조(太祖)가 다시 추시(追諡)하여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 했음. 스님의 기봉(機鋒)이 험준하고 문풍(門風)이 수절(殊絶)했으며 세칭이 운문문언(雲門文偃)임.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真禪師廣錄) 3권과 어록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고존숙어록18. 전등록19. 선림승보전2. 석씨계고략3. 석씨의년록5].

●半提; 완전하고 철저한 선법의 제시(提示)가 아님. 전제(全提)를 상대로 말함임.

●全提; 완전하고도 철저한 제시(提示)임. 이것은 언구와 의리(義理)를 초월한 것이며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선기(禪機)의 시설(施設)임.

●德山; 선감(宣鑑; 782-865)이니 당대승. 검남(劍南; 사천) 사람이며 속성은 주(周)며 법명은 선감임.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대소승(大小乘)의 여러 경에 지취(旨趣)를 관통(貫通)했는데 늘 금강반야경을 강설했으므로 인해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음. 후에 예양(澧陽)에 이르러 용담숭신(龍潭崇信)을 참알(參謁)했는데 야심(夜深)에 용담이 지촉(紙燭)을 불어 끄는 사이에 휑하게(豁然) 돈오(頓悟)했음. 늘 방타(棒打; 주장자로 때림)로써 가르침을 삼은지라 덕산방(德山棒)의 칭호가 있음. 스님이 예양(澧陽)에 머문 30년에 당무종(唐武宗; 재위 841-846)의 폐교(廢敎)를 만나 독부산(獨浮山)의 석실(石室)로 피난하였다가 대중(大中; 847-859) 초에 무릉(武陵; 湖南) 태수(太守) 설정망(薛廷望)의 견고한 청에 응해 비로소 덕산에 거주하며 종풍을 크게 떨쳤음. 함통 6년 12월 3일 홀연히 여러 문도(門徒)에게 고해 가로되 허공을 어루만지고 곡향(谷響)을 쫓음은 너희의 심신(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꿈과 깸이 그른 줄 깨친다면 필경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말을 마치자 편안히 앉아 화거(化去)했으니 나이는 84며 승랍(僧臘)은 65임. 칙시(敕諡)가 견성대사(見性大師)며 법사(法嗣)로는 암두전활(巖頭全豁)ㆍ설봉의존(雪峰義存) 등이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5. 조당집5. 오등회원7].

●臨濟; 의현(義玄; ?-867)이니 임제종의 개조(開祖). 당대 조주(曹州; 하남) 남화(南華)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형(邢).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졌으며(負) 그리고 낙발(落髮)하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선종을 흠모했음. 처음엔 강서(江西)에 이르러 황벽희운(黃蘗希運; 百丈懷海의 法嗣)을 참알(參謁)하고 또 고안대우(高安大愚; 歸宗智常의 法嗣)ㆍ위산영우(潙山靈祐; 百丈懷海의 法嗣) 등을 예알(禮謁)했다가 뒤에 황벽으로 돌아가 인가(印可)를 받았음. 선종(宣宗) 대중 8년(854) 하북의 진주(鎭州)에 이르러 임제원에 거주했는데 마침 병혁(兵革; 전쟁)을 당해 스님이 곧 버리고 떠났음. 태위(太尉) 묵군화(默君和)가 성 안에 집을 희사(喜捨)해 절을 만들고 또한 임제로써 편액(扁額)을 삼았으며 스님을 영접해 거처케 했음. 후에 옷을 떨치고 남쪽으로 떠나 하부(河府)에 이르자 부주(府主)인 왕상시(王常侍)가 스승의 예로써 연청(延請)했음.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대명부(大名府)의 흥화사(興化寺)에 와서 동당(東堂)에 거처했음. 스님이 질병이 없었는데 홀연히 어느 날 옷을 거두고 자리에 기대어 삼성(三聖)과 문답을 마치고는 고요히 떠났으니 때는 당 함통 8년 정해(丁亥) 맹추월(孟陬月; 정월) 10일임. 문인들이 스님의 전신(全身)으로써 대명부(大名府) 서북 모퉁이에 탑을 세웠음. 칙시(勅諡)가 혜조선사(慧照禪師)며 탑호가 징령(澄靈)임. 스님이 3현3요(三玄三要)ㆍ사료간(四料簡) 등의 기법(機法)을 시설하여 도중(徒衆)을 접인(接引)하였음. 다시 기봉(機鋒)이 초준(峭峻)하여 세상에 저명하며 따로 일가(一家)를 이루어 드디어 임제종을 이룸. 스님이 학인들을 접화(接化; 接引해 교화)하면서 매양 질할(叱喝)로써 큰 기용(機用)을 나타내어 세상에 덕산방(德山棒)ㆍ임제할(臨濟喝)의 칭호가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2. 임제어록].

●事法界; 화엄종에서 세운 바 4법계의 하나. 우주 사이의 천차만별의 현상계(現象界)를 가리킴.

●理法界; 화엄종에서 세운 바 4법계의 하나. 이르자면 모든 중생이 비록 색신 등의 다름이 있지만 그러나 모두 동일한 체성(體性)이 됨.

●理事無礙法界; 화엄종에서 세운 바 4법계의 하나. 이르자면 이(理)는 사(事)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사는 이를 잡아 이루어지며 이와 사가 호융(互融)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이사무애법계임.

●正好; 바로 응당(正應當). 바로 그 때를 당해(正當其時).

●法界; 1. 의식(6식의 하나)으로 인지하는 바의 일체의 대상의 통칭. 2. 전부의 세계. 일체의 사물. 3. 만사와 만물의 본원과 본성. 여기에선 3을 가리킴.

●事事無礙法界; 화엄종에서 세운 바 4법계의 하나. 이르자면 일체의 분제(分齊; 分限)의 사법(事法)이 칭성(稱性; 자성에 稱合)하여 융통하면서 일다(一多)가 상즉(相卽)하고 대소가 호용(互容)하여 중중무진한지라 고로 이름이 사사무애법계임.

●乾屎橛; 인분을 닦는 막대의 마른 것. 지극히 더러움의 뜻을 취함. 시궐은 또 측주(廁籌)ㆍ정주(淨籌)ㆍ정목(淨木)ㆍ측간자(廁簡子) 등으로 지음.

●麻三斤; 오대송초(五代宋初) 동산수초(洞山守初)의 저명한 기어(機語).

●眞淨; 극문(克文; 1025-1102)이니 송대 황룡파승. 속성은 정이며 호는 운암(雲庵)ㆍ관서자니 섬부(지금의 하남 섬현) 사람. 25세에 북탑광공을 따라 출가했으며 내외학(內外學)을 통달했음. 처음에 황룡혜남(黃龍慧南)을 참알해 계합치 못해 또 향성(지금의 섬서 조읍)으로 가서 순화상(順和尙)을 뵙자 순화상이 황룡혜남의 말로 반문함에서 극문이 듣다가 크게 성찰했으며 비로소 황룡혜남의 용의(用意)를 알고 그대로 황룡혜남의 처소로 돌아갔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에 동산(洞山)에서 개당하고 뒤에 융흥(지금의 강서 남창) 보봉(寶峰)으로 옮겼으며 이어서 수성ㆍ귀종ㆍ늑담에 거주했고 만년에 운암에 거주했음. 숭녕 원년 10월 16일에 시적했으니 향년은 78. 법사는 38인이 있고 종열ㆍ문준ㆍ혜홍으로써 상수(上首)를 삼음. 사호(賜號)가 진정(眞淨)이며 운암진정선사어록이 있음 [속전등록15. 오등회원17].

●夫; 1. 발어사. 무릇(夫) 천지란 것은. 2. 조사. 가는 자는 이와 같나니(夫).

●宗敎; 1. 종문의 교의(敎意). 2. 선종과 교종.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宗說俱通; 조정사원7. 종설구통(宗說俱通) 청량(淸凉; 澄觀)이 이르되 종통은 자기의 수행이며 설통은 깨치지 못한 이에게 보임이다(화엄경수소연의초九에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