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

나호야록상 소남선사(小南禪師)

태화당 2025. 10. 22. 07:49

廬山羅漢小南禪師 汀州張氏子 州南金泉院乃其故居 參祐禪師於潭之道林 獲印可 隨遷羅漢 而掌堂司 分座攝納 及祐移雲居 以其繼席 名重諸方 學者翕然歸之 時有居士張戒者 雅意參道 一日 南問曰 如何 張曰 不會 南復詰之不已 張忽領旨 遽以頌對曰 天不戴兮地不知 誰言南北與東西 身眠大海須彌枕 石筍抽條也太奇 張尋取辭 南以二偈示之曰 汝到廬山山到汝 更誰別我廬山去 出門問取嶺頭風 大道騰騰無本據 又曰 頭戴烏巾著白襴 山房借汝一年閑 出門爲說來時路 家在黃陂翠靄間 羅漢準世系 以黃龍是大父 名旣同而道望逼亞 故叢林目爲小南 尊黃龍爲老南 然羅漢以傳道爲志 閱七寒暑 住世四十有三白 雖所蘊未伸 暐然名見當時 而垂稱於後世 雲居可謂有子矣

廬山; 位於江西九江 北倚長江 東接鄱陽湖 又稱匡山 南鄣山 南康山 匡廬 廬阜 輔山 靖廬山 相傳黃帝曾遊止於此 故又稱三天子都 三天子鄣 又傳殷商(或周代)之際 有匡俗者 於山中結廬隱棲修仙道 後羽化而去 僅存空廬 自此遂有廬山之名 東晉太元(376-396)初年 道安之門人慧永來山 於香谷建西林寺 十一年 慧遠應慧永之請 來山建東林寺 世稱東林西林 十五年建般若臺精舍 奉安阿彌陀佛像 與道俗百二十餘人 共結白蓮社 作爲淨土敎修行之根本道場 提倡念佛法門

小南; 系南(1050-1094) 宋代黃龍派僧 汀州(今福建長汀)人 俗姓張 幼投金泉寺出家 道業專一 遍參諸方 後參湘西道林寺之雲居元祐(1027-1092) 竝嗣其法 後於廬山羅漢禪院宣揚禪旨 世稱羅漢系南 師因與臨濟宗黃龍派之祖黃龍慧南(1002- 1069)同名 道譽亦相若 且慧南乃元祐嗣法之師 於法系上 慧南爲系南之祖 故叢林呼師爲小南 尊稱慧南爲老南 紹聖元年示寂 享年四十五 [續燈錄二十一 聯燈會要十六 禪林口實混名集下]

汀州; 今福建省長汀

祐禪師; 元祐(1030-1095) 宋代黃龍派僧 姓王氏 信之上饒人 二十四得度具戒 聞慧南禪師在黃蘗 往依之十餘年 竝嗣其法 師道林第一世 次住玉澗寺 晩居雲居 紹聖二年七月七日 說偈而化 壽六十有六 坐四十有二夏 [佛祖歷代通載十九 續傳燈錄十六]

印可; 指印證認可 卽弟子修道成就時 爲師者加以印證而承認許可其所悟境界之意 此詞屢見於維摩經上之經文 禪宗密敎亦常用之

堂司; 禪林六知事之一 又作維那 負責僧堂指導之僧 維那之居室 稱爲維那寮 亦稱堂司 維那之下 掌諸雜役之事 稱爲堂司行者 略稱堂行 又戒臘牌乃記載僧衆戒臘 堂司戒臘之牌 稱堂司牌 [百丈淸規四堂司特爲新舊侍者茶湯條 禪苑淸規一掛搭條 象器箋職位類]

分座; 一分座席之半 與他人竝坐 二寺院中首座或其他得道禪僧 由住持僧推擧 代替住持僧爲大衆說法 稱爲分座 此指二

翕然; 緇門警訓註上 翕如鳥羽翼會聚也 禪林寶訓音義 翕 如鳥之聚也

雅意; 一敬辭 稱對方的情意或意見 二 高尙的情趣 此指二

須彌; 須彌山 又作蘇迷盧山 須彌盧山 須彌留山 修迷樓山 略作彌樓山 此云妙高山 好光山 好高山 善高山 善積山 妙光山 安明由山 原爲印度神話中之山名 佛敎之宇宙觀沿用之 謂其爲聳立於一小世界中央之高山 以此山爲中心 周圍有八山八海環繞 而形成一世界(須彌世界) [雜阿含經十六 大毘婆沙論六十九 大智度論九 華嚴經疏十七]

烏巾; 黑頭巾 卽烏角巾 古代多爲隱居不仕者的帽子

 

여산(廬山) 라한(羅漢) 소남선사(小南禪師)는 정주(汀州) 장씨의 아들이니 주남(州南) 금천원(金泉院)이 곧() 그 고거(故居). 우선사(祐禪師; 元祐)를 담()의 도림(道林)에서 참()해 인가(印可)를 획득했다. 수종(隨從; )하여 라한으로 옮겼고 당사(堂司)를 관장(管掌; )했고 곧 분좌(分座)하여 섭납(攝納; 衲子攝受. 과 통함)했다. 및 우()가 운거(雲居)로 이거(移居; )하면서 그()로써 계석(繼席)하게 했다. 명성이 제방에 존중되었고 학자(學者)가 흡연(翕然)히 귀의했다. 때에 거사 장계(張戒)란 자가 있어 아의(雅意)로 참도(參道; 도를 參問)했는데 어느 날 남(; 小南)이 문왈(問曰) 어떠한가. 장왈(張曰) 알지 못합니다(不會). ()이 다시 힐문(詰問; 詰之)하여 말지 않자 장이 홀연히 영지(領旨)했다. 급히() ()으로써 대왈(對曰) 하늘이 싣지 못하고 땅이 알지 못하거늘/ 누가 남북과 동서를 말하느냐()/ 몸이 대해(大海)에 자면서 수미(須彌)로 베개 했는데/ 석순(石筍)이 가지를 돋으니(抽條) 또한 태기(太奇; 매우 기이)하다. ()이 이윽고 고별을 취하자(取辭) ()2게를 보였으니 가로되 네가 여산(廬山)에 이르자 산이 너에게 이르렀거늘/ 다시 누가() 나에게 고별하며 여산을 떠난다 하느냐/ 출문(出門)하거든 영두(嶺頭)의 바람에게 문취(問取)할지니/ 대도(大道)가 등등(騰騰)하여 본거(本據)가 없다. 우왈(又曰) 머리에 오건(烏巾)을 이고 백란(白襴; 襴衫)을 입었는데()/ 산방(山房)이 너에게 1년의 한가(閑暇; )를 빌려주었다()/ 출문(出門)하며 올 때의 길을 설하니/ 집이 황파(黃陂; 누런 비탈)의 취애(翠靄; 푸른 雲霧) 사이에 있다. 라한(羅漢)은 세계(世系)에 준()하자면 황룡(黃龍; 慧南)이 이 대부(大父; 祖父)니 이름이 이미 같고 도망(道望; 도의 명망)이 핍아(逼亞; 버금에 가까움)한지라 고로 총림에서 명목(名目; )해 소남(小南)이라 했고 황룡을 존칭(尊稱; )해 노남(老南)이라 했다. 그러하여 라한은 전도(傳道)로써 의지(意志; )로 삼아 7한서(寒暑)를 겪었고() 주세(住世)하기 사십유삼백(四十有三白; 43. 空白)이다. 비록 쌓은 바(所蘊)를 펴지() 못했지만 위연(暐然; 환히 빛남)히 이름이 당시(當時)에 나타났고() 칭호(稱號; )를 후세에 드리웠으니 운거(雲居; 元祐)는 가히 자()가 있다고 이를 만하다.

廬山; 강서 구강에 위치함. 북쪽은 장강에 기대었고 동쪽은 파양호에 인접했음. 또 명칭이 광산(匡山)ㆍ남장산(南鄣山)ㆍ남강산(南康山)ㆍ광려(匡廬)ㆍ여부(廬阜)ㆍ보산(輔山)ㆍ정려산(靖廬山). 서로 전하기를 황제(黃帝)가 일찍이 유람하다가 여기에서 머물렀다 하며 고로 또 명칭이 삼천자도(三天子都)ㆍ삼천자장(三天子鄣). 또 전하기를 은상(殷商) (혹은 周代)의 즈음에 광속(匡俗)이란 자가 있어 산중에 오두막집을 엮고 은서(隱棲)하며 선도(仙道)를 닦았고 후에 우화(羽化)하여 떠났으며 겨우 공려(空廬)만 잔존한지라 이로부터 드디어 여산(廬山)의 이름이 있었다 함. 동진 태원(376- 396) 초년에 도안(道安)의 문인인 혜영(慧永)이 산에 도래하여 향곡에 서림사(西林寺)를 세웠으며 11년에 혜원(慧遠)이 혜영의 청에 응해 산에 도래하여 동림사(東林寺)를 세웠으니 세칭이 동림ㆍ서림임. 15년에 반야대정사를 건립하고 아미타불상을 봉안하고 도속 120여 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정토교 수행의 근본도량으로 삼았으며 염불법문을 제창했음.

小南; 계남(系南; 1050-1094)이니 송대 황룡파승. 정주(지금의 복건 장정) 사람이며 속성은 장. 어릴 적에 금천사에 투입해 출가하였음. 도업이 전일(專一)하고 제방을 두루 참문했음. 후에 상서 도림사의 운거원우(雲居元祐; 1027-1092)를 참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여산 라한선원에서 선지를 선양했으며 세칭이 라한계남(羅漢系南). 스님은 임제종 황룡파의 개조인 황룡혜남(1002-106 9)과 동명이며 도예(道譽)가 또한 상약(相若: 서로 비슷함)했고 또 혜남은 곧 원우(元祐)의 사법지사(嗣法之師)며 법계상(法系上)으로 혜남은 계남의 할아버지가 됨으로 인해 고로 총림에서 스님을 호칭하여 소남(小南)이라 하고 혜남을 존칭하여 노남(老南)이라 했음. 소성 원년에 시적했으며 향년은 45 [속등록21. 연등회요16. 선림구실혼명집하].

汀州; 지금의 복건성 장정(長汀).

祐禪師; 원우(元祐; 1030-1095)니 송대 황룡파승. 성은 왕씨며 신()의 상요 사람. 24에 득도하고 구계(具戒)했음. 혜남선사가 황벽에 있다 함을 듣고 가서 그에게 의지하기 10여 년이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스님은 도림(道林)의 제1세며 다음으로 옥간사에 거주했고 만년에 운거에 거주했음. 소성 277일 게를 설하고 화()했음. 나이는 66이며 좌()42() [불조역대통재19. 속전등록16].

印可; 인증(印證)하여 인가(認可)함을 가리킴. 곧 제자가 수도를 성취했을 때 스승 된 자가 인증을 가하여 그의 깨친 바 경계를 승인하여 허가함의 뜻. 이 사()는 유마경상(維摩經上)의 경문에 여러 차례 보임. 선종과 밀교에서도 또한 이를 상용함.

堂司; 선림 6지사의 하나. 또 유나로 지음. 승당에서 지도의 책무를 진 승인. 유나의 거실을 일컬어 유나료라 하고 또 당사(堂司)로 일컬음. 유나의 아래 여러 잡역의 일을 관장하는 이를 일컬어 당사행자라 하며 약칭이 당행임. 또 계랍패에 곧 승중의 계랍을 기재한 당사 계랍의 패를 당사패로 일컬음 [백장청규4당사특위신구시자다탕조. 선원청규1괘탑조. 상기전직위류].

分座; 1. 좌석의 반을 나누어 타인에게 주어 함께 앉음. 2. 사원 중의 수좌나 혹 기타 도를 얻은 선승이 주지승의 추거(推擧)로 말미암아 주지승을 대체하여 대중을 위해 설법함을 일컬어 분좌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翕然; 치문경훈주상. ()은 새의 우익(羽翼)이 회취(會聚)함과 같음이다. 선림보훈음의. ()은 새의 취()와 같음이다.

雅意; 1. 경사(敬辭)니 상대방에 대한 정의(情意) 혹 의견. 2. 고상(高尙)한 정취(情趣).

須彌; 수미산(須彌山; sumeru)이니 또 소미로산(蘇迷盧山)ㆍ수미로산(須彌盧山)ㆍ수미류산(須彌留山)ㆍ수미루산(修迷樓山)으로 지으며 간략히 미루산(彌樓山)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묘고산(妙高山)ㆍ호광산(好光山)ㆍ호고산(好高山)ㆍ선고산(善高山)ㆍ선적산(善積山)ㆍ묘광산(妙光山)ㆍ안명유산(安明由山). 원래는 인도의 신화 중의 산 이름이 되는데 불교의 우주관(宇宙觀)에서 이를 따라서 썼음. 이르자면 그것은 1소세계(一小世界) 중앙에 용립(聳立; 높이 솟아 섰음)한 높은 산임. 이 산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에 88(八山八海)가 고리처럼 둘러서 1세계(世界; 須彌世界)를 형성함 [잡아함경16. 대비바사론69. 대지도론9 화엄경소17].

烏巾; 검은 두건. 곧 오각건(烏角巾)이니 고대 다분히 은거하며 벼슬하지 않는 자의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