潙山小秀禪師與法雲大秀禪師 久依天衣懷公 號爲飽參 俱有時名 故叢林以大小呼之 因結伴探諸方 首謁圓鑑遠公于浮山 遠欲羅致 乃示以偈幷所編禪門九帶集而諭之曰 非上根利智 何足語此哉 大秀陰知其意 卽和偈曰 孰能一日兩梳頭 繓得髻根牢便休 大底還佗肌骨好 不搽紅粉也風流 于時 南禪師居黃檗積翠菴 小秀聞僧擧三關語 悚然驚異 欲往見之 大秀曰 吾不疑矣 小秀於是獨行 大秀遲其不復 潛令僧窺南公作爲 僧至朞月 見其孤坐一榻 泊如也 返告大秀曰 此老無佗長 但修行道者僧耳 大秀由是讓小秀曰 這措大中途失守 負吾先師 大秀尋遊淮上 首衆僧於白雲 而端禪師擧之出世四面山 小秀於黃檗 久而有契證 聞大秀遷棲賢 以偈寄曰 七百高僧法戰場 盧公一偈盡歸降 無人截斷黃梅路 剛被迢迢過九江 又甞頌三關話曰 我手佛手 誰人不有 分明直用 何須狂走 我脚驢脚 高低踏著 雨過苔靑 雲開日爍 問我生緣 處處不疑 語直心無病 誰論是與非 小秀 弋陽應氏子 家世業儒 環安院乃其故居也 若大秀因人之言 昧宗師於積翠 而能依白雲 蓋得所擇 小秀疑三關話 而求所決 眞不自欺矣 爾後俱爲法道盟主 其所決所擇 亦何可訾哉
●潙山; ①位於湖南長沙寧鄕縣西 爲衡山山脈之分支 潙水之發源地 又稱大潙山 山多平地 水道便利 故古來出家人 每多耕作於此 而有羅漢田之稱 唐僧靈祐居於此 世稱潙山禪師 ②位於湖南東部醴陵縣東 又稱小潙山 山上有小潙山寺 唐代大緣禪師所建 ③指潙仰宗初祖潙山靈祐
●小秀; 懷秀 宋代黃龍派僧 弋陽(今屬江西)應氏 初與法秀 同參無爲懷公時 呼法秀爲大秀 師爲小秀 後於黃龍慧南處得法 住潭州大潙山密印禪院 有三關頌 叢林盛傳 [補續高僧傳八 續燈錄十二]
●大秀; 法秀(1027-1090) 宋代雲門宗僧 俗姓辛 秦州隴城(今甘肅秦安)人 十九歲時試經得度 受具足戒後勵志講肆 習圓覺華嚴 妙入精義 因聞無爲軍(今安徽無爲)鐵佛寺天衣義懷禪師法席之盛 徑往參謁 有所證悟 得到印可 奉侍十年 出住淮西四面山 遷住眞州長蘆 後因東京法雲寺落成 應請爲開山第一祖 世稱法雲法秀 賜號圓通禪師 性剛直 面目嚴冷 平生以詈罵爲佛事 人稱秀鐵面 法嗣有法雲惟白 保寧子英等五十九人 [禪林僧寶傳二十六 五燈會元十六 續傳燈錄八]
●飽參; 謂廣泛參問名師 多年參究禪法 頗具造詣
●時名; 當時的聲名或聲望
●圓鑑; 法遠(991-1067) 宋代臨濟宗僧 自稱柴石野人 鄭州(今屬河南)王氏 從三交智嵩出家 嗣法於河南廣敎院歸省 歐陽修嘗參其門下 後住舒州浮山 闡揚宗風 治平四年示寂 壽七十七 諡號圓鑒禪師 [續燈錄四 聯燈會要十三 禪林僧寶傳十七 五燈會元十二 釋氏稽古略四]
●羅致; 延聘 搜羅 招致
●九帶集; 宋代臨濟宗僧浮山法遠(991-1067) 提示學人之宗門語句 由學人編集之 名爲佛禪宗敎義九帶集 略稱浮山九帶 一佛正法眼藏帶 謂帶貫一切理脈 直截佛之正法 二佛法藏帶 謂佛法乃敎外別傳 爲方便之故 聖人以之示衆 三理貫帶 謂至理佛法爲言詮所不及 揚眉瞬目之間盡是佛法 四事貫帶 謂山河國土大地無非佛法 五理事縱橫帶 謂理事融通 行於佛世界 六屈曲垂帶 謂雖證悟成佛卻甘爲菩薩而不安住佛位 以亟力濟度衆生 七妙叶兼帶 謂不執著則大用現前 八金鍼雙鎖帶 謂自理事縱橫帶之立場更進一步 不執著於佛世界而自由自在 九平懷常實帶 謂佛法無特別處 日常著衣喫飯皆屬眞實佛法 [人天眼目二]
●大底; 卽大抵 大蓋 大槪
●三關語; 指黃龍三關 黃龍 黃龍慧南 禪苑蒙求中 黃龍三關 (會元十七)黃龍室中常問僧曰 人人盡有生緣 上座生緣在何處 正當問答交鋒 却復伸手曰 我手何似佛手 又問諸方參請宗師所得 却復垂脚曰 我脚何似驢脚 三十餘年示此三問 學者莫有契其旨 脫有酧者 師未甞可否 斂目危坐 人莫測其意 延之又問其故 師云 已過關者掉臂徑往 安知有關吏 問可否此未透關者也 叢林目之爲黃龍三關
●朞月; 一一整月 二一整年
●泊如; 恬淡無欲貌
●措大; 又作措大家 明代曺安撰讕言長語云 措大 能擧措大事 謂貴顯大人也
●端禪師; 守端(1025-1072) 宋代楊岐派僧 湖南衡陽人 俗姓周(一作葛) 二十歲依茶陵郁得度 後至諸方參學 於楊岐方會處得悟 承其法嗣 其後由圓通居訥推擧 住於江西承天禪院 歷住圓通崇勝禪院 安徽法華山證道禪院 龍門山乾明禪院 興化禪院 白雲山海會禪院等處 弘揚佛法 宋神宗熙寧五年示寂 壽四十八 門人法演編有白雲守端禪師語錄二卷 白雲端和尙廣錄四卷 [續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九 釋氏稽古略四]
●法戰; 禪林師家以法義問答 針鋒相對 互相勘驗 猶如世間戰爭 故稱法戰
●盧公一偈; 盧公 指六祖慧能 姓盧氏 一偈 五燈會元一五祖弘忍 盧(盧行者)自秉燭 請別駕張日用於秀偈之側 寫一偈曰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黃梅; ①位於湖北省東南 黃梅縣有東西二山 此是禪宗四祖道信及五祖弘忍參禪得道處 五祖竝以之爲弘揚東山法門之根據地 其中道信住於黃梅西北十七公里之雙峰山(西山)正覺寺 弘忍則振弘敎化於黃梅東北十七公里處之馮茂山(東山)眞惠寺 六祖慧能繼承五祖弘忍之衣鉢 弘法於黃梅西南城外之東漸寺 自此以後 黃梅成爲佛敎勝地 史稱黃梅佛國 最大者爲老祖寺 四祖寺 五祖寺三大禪林 淸代聖祖曾頒賜天下第一山匾額 又黃梅西北二十三公里處有黃梅山 以山中多梅樹而得名 ②指五祖弘忍 弘忍是湖北黃梅人 且在黃梅東山說法
●生緣; 本貫 籍貫 家鄕
●家世; 家庭的世系
●業儒; 從事於儒學 業 從事
위산(潙山) 소수선사(小秀禪師; 懷秀)는 법운(法雲; 법운사) 대수선사(大秀禪師; 法秀)와 더불어 오래 천의회공(天衣懷公; 義懷)에게 의지했고 호(號)하여 포참(飽參)이라 했고 모두(俱) 시명(時名)이 있었으며 고로 총림에서 대소(大小)로써 호칭(呼稱; 呼)했다. 결반(結伴)해 제방을 탐구(探求; 探)함으로 인해 처음(首) 부산(浮山)에서 원감(圓鑑) 원공(遠公; 法遠)을 예알했다. 원(遠)이 나치(羅致)하고 싶어 이에 게와 아울러(幷) 소편(所編)의 선문구대집(禪門九帶集)을 보이며 교회(敎誨; 諭)해 가로되 상근(上根)의 이지(利智)가 아니면 어찌 족히 이것을 말하겠는가. 대수(大秀)가 그 뜻을 몰래(陰) 알고 곧 화게(和偈)로 가로되 누가(孰) 능히 하루에 두 번 머리를 빗겠는가(梳)/ 계근(髻根; 頭髮의 基部)을 촬득(繓得; 졸라매다)하여 단단히 하고(牢) 바로 쉰다/ 대저(大底) 도리어 그(佗; 他와 통함)는 기골(肌骨)이 아름다워/ 홍분(紅粉)을 바르지(搽; 음이 차) 않아도 또한 풍류다. 우시(于時; 當時)에 남선사(南禪師; 慧南)가 황벽(黃檗) 적취암(積翠菴)에 거주했다. 소수(小秀)가 중이 삼관어(三關語)를 드는 것을 듣고 송연(悚然)하며 경이(驚異)했고 가서 그를 친견하려 했다. 대수(大秀)가 가로되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소수가 이에 홀로 갔다. 대수가 그(其)를 기다려도(遲) 돌아오지(復) 않는지라 몰래(潛) 중을 시켜 남공(南公)의 작위(作爲; 行爲)를 살피게(窺) 했다. 중이 기월(朞月; 한 달)에 이르면서 그(其)를 보매 일탑(一榻)에 고좌(孤坐)하여 박여(泊如)했다. 돌아와(返) 대수에게 고(告)해 가로되 차로(此老; 혜남)는 다른(佗) 장점(長點; 長)이 없고 단지 수행하는 도자승(道者僧)일 뿐입니다. 대수가 이로 말미암아 소수를 꾸짖으며(讓) 가로되 저(這; 이) 조대(措大)가 중도(中途)에 실수(失守)하여 나의 선사(先師; 義懷)를 저버렸다. 대수가 드디어 회상(淮上)에 유행(遊行; 遊)하다가 백운(白雲)에서 중승(衆僧)의 수좌(首座; 首)였는데 단선사(端禪師)가 천거(薦擧; 擧)하여 사면산(四面山)에서 출세(出世)했다. 소수(小秀)는 황벽에서 오래되자 계증(契證)이 있었다. 대수가 서현(棲賢)으로 옮겼다(遷) 함을 듣고 게를 기탁해 가로되 칠백 고승이 법전(法戰)하는 장소에/ 노공(盧公; 저본에 廬公으로 지었음)의 일게(盧公一偈)에 모두(盡) 귀항(歸降)했다/ 황매로(黃梅路)를 절단(截斷)할 사람이 없어/ 다만(剛) 초초(迢迢; 아주 멂) 구강(九江)에 이름(過)을 입었다. 또 일찍이 삼관화(三關話)를 송(頌)해 가로되 아수(我手)ㆍ불수(佛手)라 하니/ 어떤 사람(誰人)이 있지 않겠는가/ 분명히 직용(直用)하거늘/ 어찌 광주(狂走)함을 쓰리오(須). 아각(我脚)ㆍ여각(驢脚)이라 하니/ 고저(高低)를 답착(踏著)했다/ 비가 지나니 이끼(苔)가 푸르고/ 구름이 개이니(開) 해가 빛난다(爍). 나의 생연(生緣)을 물으니/ 처처(處處)에서 의심하지 않는다/ 말이 곧으면(直) 마음에 무병(無病)하거늘/ 누가(誰) 시(是)와 비(非)를 논하리오. 소수(小秀)는 익양(弋陽) 응씨(應氏)의 아들이며 가세(家世)가 업유(業儒)였다. 환안원(環安院)이 곧(乃) 그 고거(故居)다. 이에(若) 대수(大秀)는 사람들의 말을 인유(因由; 因)하자면 종(宗)을 매(昧)하여 적취(積翠)에서 사사(師事)했고 능히 백운(白雲; 守端)에게 의지했으니 대개(大蓋; 蓋) 소택(所擇)을 얻었다. 소수가 삼관화(三關話)를 의심해 결택(決擇; 決)할 바를 구했으니 참으로 스스로 속이지 않았다. 이후(爾後; 然後)에 모두(俱) 법도(法道)의 맹주(盟主)가 되었으니 그(其) 소결소택(所決所擇; 결택한 바)을 또한 어찌 가히 헐뜯겠는가(訾; 음이 자).
●潙山; ①호남 장사(長沙) 영향현(寧鄕縣) 서쪽에 위치하며 형산산맥(衡山山脈)의 분지(分支)가 됨. 위수(潙水)의 발원지임. 또 호칭이 대위산(大潙山)임. 산에 평지가 많고 수도(水道)가 편리한지라 고로 고래(古來)로 출가인이 매양 많이 여기에 경작해 라한전(羅漢田; 라한은 범어 아라한의 약칭)이란 칭호가 있음. 당승(唐僧) 영우(靈祐)가 여기에 거처했으며 세칭이 위산선사(潙山禪師)임. ②호남 동부 예릉현 동쪽에 위치하며 또 명칭이 소위산(小潙山)임. 산 위에 소위산사가 있으며 당대 대연선사가 건립한 것임. ③위앙종 초조 위산영우를 가리킴.
●小秀; 회수(懷秀)니 송대 황룡파승. 익양(지금 강서에 속함) 응씨. 처음 법수(法秀)와 무위회공(無爲懷公)을 동참했을 때 법수를 일러 대수(大秀)라 했고 스님은 소수(小秀)라 했음. 후에 황룡혜남(黃龍慧南)의 처소에서 득법했고 담주 대위산 밀인선원에 주(住)했음. 삼관송(三關頌)이 있어 총림에 성전(盛傳)함 [보속고승전8. 속등록12].
●大秀; 법수(法秀; 1027-1090)니 송대 운문종승. 속성은 신(辛)이며 진주 농성(지금의 감숙 진안) 사람. 19세 때 시경득도(試經得度)하고 구족계를 받은 후 강사(講肆)에 뜻을 힘써 원각과 화엄을 학습하여 정의(精義)에 묘입(妙入)했음. 무위군(無爲軍; 지금의 안휘 무위) 철불사(鐵佛寺) 천의의회선사(天衣義懷禪師)의 법석(法席)이 성(盛)하다 함을 들음으로 인해 질러가서 참알(參謁)했고 증오(證悟)한 바가 있었으며 인가(印可)에 이름을 얻었으며 봉시(奉侍)하기 10년이었음. 출세해 회서(淮西) 사면산에 거주하다가 진주(眞州)의 장로(長蘆)로 천주(遷住)했으며 후에 동경(東京) 법운사(法雲寺)의 낙성(落成)으로 인해 요청에 응해 개산제일조(開山第一祖)가 되었으니 세칭이 법운법수(法雲法秀)며 사호(賜號)가 원통선사(圓通禪師). 성품이 강직하고 면목(面目)이 엄랭(嚴冷)하고 평생 꾸짖고 욕함으로써 불사를 삼았으며 사람들이 수철면(秀鐵面)으로 일컬었음. 법사(法嗣)에 법운유백(法雲惟白)ㆍ보녕자영(保寧子英) 등 59인이 있음 [선림승보전26. 오등회원16. 속전등록8].
●飽參; 이르자면 광범(廣泛)하게 명사(名師)를 참문하고 여러 해 선법을 참구하여 자못 조예(造詣)를 갖춤.
●時名; 당시의 성명(聲名) 혹 성망(聲望).
●圓鑑; 법원(法遠; 991-1067)이니 송대 임제종승. 자칭이 시석야인(柴石野人)이며 정주(지금 하남에 속함) 왕씨. 삼교지숭(三交智嵩)을 좇아 출가하고 하남(河南) 광교원(廣敎院) 귀성(歸省)에게서 법을 이었음. 구양수(歐陽修)가 일찍이 그의 문하에서 참구했음. 후에 서주(舒州) 부산(浮山)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천양(闡揚)했고 치평 4년에 시적했음. 나이는 77이며 시호는 원감선사(圓鑒禪師) [속등록4. 연등회요13. 선림승보전17. 오등회원12. 석씨계고략4].
●羅致; 연빙(延聘; 초빙). 수라(搜羅; 순회하며 수색하다). 초치(招致; 불러서 이르게 함).
●九帶集; 송대 임제종승 부산법원(浮山法遠; 991-1067)이 학인에게 제시한 종문의 어구. 학인이 이를 편집함으로 말미암았으며 이름하여 불선종교의구대집(佛禪宗敎義九帶集)이니 약칭이 부산구대(浮山九帶)임. 1. 불정법안장대(佛正法眼藏帶) 이르자면 일체의 이맥(理脈)을 대관(帶貫)하여 불타의 정법을 직절(直截)함. 2. 불법장대(佛法藏帶) 이르자면 불법은 곧 교외별전이며 방편이 되는 고로 성인이 이를 시중(示衆)함. 3. 이관대(理貫帶) 이르자면 지리(至理)의 불법은 언전(言詮)이 미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작이는 사이가 모두 이 불법임. 4사관대(事貫帶) 이르자면 산하ㆍ국토ㆍ대지가 불법이 아님이 없음. 5. 이사종횡대(理事縱橫帶) 이르자면 이사가 융통하여 불세계에 행함. 6. 굴곡수대(屈曲垂帶) 이르자면 비록 증오(證悟)하여 성불했더라도 도리어 보살이 됨을 달게 여겨 불위(佛位)에 안주하지 않고 극력(亟力)으로 중생을 제도함. 7. 묘협겸대(妙叶兼帶) 이르자면 집착하지 않으면 대용이 현전함. 8. 금침쌍쇄대(金鍼雙鎖帶) 이르자면 이사종횡대의 입장으로부터 다시 1보 전진하여 불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자재함. 9. 평회상실대(平懷常實帶) 이르자면 불법은 특별한 곳이 없고 일상의 착의끽반이 모두 진실한 불법에 속함 [인천안목2].
●大底; 곧 대저(大抵). 대개(大蓋). 대개(大槪).
●三關語; 황룡삼관(黃龍三關)을 가리킴. 황룡은 황룡혜남. 선원몽구중. 황룡삼관(黃龍三關) (회원17) 황룡이 실중(室中)에서 늘 중에게 물어 가로되 사람마다 모두 생연(生緣)이 있나니 상좌의 생연은 어느 곳에 있느냐. 바로 문답하며 교봉(交鋒)함을 당해 도리어 다시 손을 내밀고(伸手) 가로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我手何似佛手). 또 제방에 종사를 참청(參請)하여 얻은 바를 묻고는 도리어 다시 다리를 내리고(垂脚) 가로되 내 다리가 어찌하여 나귀 다리와 같으냐(我脚何似驢脚). 30여 년을 이 세 질문을 보였는데 학자가 그 지취에 계합하는 이가 있지 않았다. 혹시(脫) 응수(應酧)하는 자가 있어도 스님이 일찍이 가(可)타 부(否)타 하지 않았고 눈을 감고(斂目) 위좌(危坐; 正坐)했다. 사람들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고 이어서 또 그 연고를 묻자 스님이 이르되 이미 관문(關門)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며 바로 가리니 어찌 관리(關吏)가 있음을 알리오. 가부(可否)를 묻는다면 이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다. 총림에서 이를 명목해 황룡삼관이라 했다.
●朞月; 1. 일정월(一整月; 1개월). 2. 일정년(一整年; 12개월).
●泊如; 염담(恬淡)하고 욕심이 없는 모양.
●措大; 또 조대가(措大家)로 지음. 명대 조안(曺安)이 찬(撰)한 난언장어(讕言長語)에 이르되 조대(措大) 능히 대사(大事)를 거조(擧措)함이니 이르자면 귀현(貴顯; 존귀하고 이름이 높음)의 대인(大人)이다.
●端禪師; 수단(守端; 1025-1072)이니 송대 양기파승. 호남 형양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주(周; 한편으론 葛로 지음). 20세에 다릉욱(茶陵郁)에 의지해 득도(得度)했으며 후에 제방에 이르러 참학(參學)하다가 양기방회(楊岐方會)의 처소에서 깨침을 얻었고 그 법사(法嗣)를 승계했음. 그 후 원통거눌(圓通居訥; 운문하 4세)의 추거(推擧; 추천)로 말미암아 강서 승천선원(承天禪院)에 주지했음. 원통 숭승선원(崇勝禪院)ㆍ안휘 법화산 증도선원(證道禪院)ㆍ용문산 건명선원(乾明禪院)ㆍ흥화선원(興化禪院)ㆍ백운산 해회선원(海會禪院) 등의 곳을 역주(歷住)하며 불법을 홍양(弘揚)하다가 송 신종 희녕 5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48. 문인 법연(法演)이 편(編)한 백운수단선사어록 2권과 백운단화상광록 4권이 있음 [속전등록13. 오등회원19. 석씨계고략4].
●法戰; 선림의 사가가 법의(法義)로 문답하면서 침봉(針鋒)을 상대하고 호상 감험함이 마치 세간의 전쟁과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법전임.
●盧公一偈; 노공(盧公)은 6조 혜능을 가리킴. 성이 노씨(盧氏). 일게(一偈)는 오등회원1 오조홍인. 노(盧; 盧行者)가 스스로 촛불을 잡고 별가(別駕) 장일용에게 요청해 수게(秀偈; 신수의 게)의 곁에 1게를 쓰게 했으니 가로되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진애(塵埃)를 야기하겠는가.
●黃梅; ①호북성 동남에 위치함. 황매현(黃梅縣)에 동서(東西)의 두 산이 있는데 이것은 이 선종 4조 도신(道信) 및 5조 홍인(弘忍)이 참선하여 득도(得道)한 곳임. 5조는 아울러 이로써 동산법문(東山法門)을 홍양(弘揚)한 근거지로 삼았음. 그 중에 도신(道信)은 황매 서북 17㎞의 쌍봉산(雙峰山; 西山) 정각사(正覺寺)에 거주했고 홍인(弘忍)은 곧 황매 동북 17㎞ 곳의 풍무산(馮茂山; 東山) 진혜사(眞惠寺)에서 교화를 진홍(振弘)했고 6조 혜능(慧能)은 5조 홍인의 의발(衣鉢)을 승계하여 황매 서남 성(城) 밖의 동점사(東漸寺)에서 홍법(弘法) 했음. 이로부터 이후로는 황매가 불교의 승지(勝地)가 되었으며 사칭(史稱)이 황매불국(黃梅佛國)임. 가장 큰 것은 노조사(老祖寺)ㆍ사조사(四祖寺)ㆍ오조사(五祖寺)의 3대(大) 선림이 됨. 청대(淸代) 성조(聖祖)가 일찍이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이란 편액(匾額)을 반사(頒賜; 下賜)했음. 또 황매 서북 23㎞ 곳에 황매산(黃梅山)이 있으며 산중에 매화나무가 많기 때문에 이름을 얻었음. ②5조 홍인(弘忍)을 가리킴. 홍인은 이 호북(湖北) 황매(黃梅) 사람이며 또 황매의 동산(東山)에 있으면서 설법했음.
●生緣; 본관(本貫)ㆍ적관(籍貫; 本貫)ㆍ가향(家鄕).
●家世; 가정(家庭)의 세계(世系).
●業儒; 유학에 종사(從事)함. 업(業)은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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