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조주록(趙州錄) 82

태화당 2026. 8. 6. 06:55

師因到天台國淸寺見寒山拾得 師云 久嚮寒山拾得 到來只見兩頭水牯牛 寒山拾得便作牛鬬 師云 叱叱 寒山拾得咬齒相看 師便歸堂 二人來堂內問師 適來因緣作麽生 師乃呵呵大笑 一日 二人問師 什麽處去來 師云 禮拜五百尊者來 二人云 五百頭水牯牛尊者 師云 爲什麽作五百頭水牯牛去 山云 蒼天 蒼天 師呵呵大笑

寒山; 唐代隱士 亦稱寒山子 住天台山寒巖幽窟中 因不詳其姓氏 故稱寒山 容貌枯悴布襦零落 以樺皮爲冠 曳大木履 時來國淸寺 就拾得取衆僧殘食菜滓食之 寒山之行跡近於顚狂 來至國淸寺中 或於廊下徐行 或時叫躁凌人 或望空漫罵 寺僧不耐 以仗逼逐之 輒翻身撫掌 呵呵大笑而退 好吟詩唱偈 常契於佛理 臺州刺史閭丘胤曾慕名相訪 寒山見太守來 與拾得連臂笑傲 出寺而避之 閭丘胤復往寒巖謁問 竝送衣裳藥物等 二士高聲喝之曰 賊賊 便縮身入巖石縫中 復言 報汝諸人 各各努力 其石縫忽然而合 閭丘哀慕 令僧道翹尋其遺物 於林間得葉上所書辭頌 及題村墅人家屋壁 共三百餘首傳布人間 曹山本寂注釋謂之對寒山子詩 潙山曾在天台山會見寒山 趙州亦曾與寒山相互問答 其族姓不詳 年代亦有異說 或謂是唐玄宗先天年中之人 或太宗貞觀年中之人 或憲宗元和年中之人 據近人考證 生於睿宗景雲(710-711)初年 代宗大曆(766-779)年間 隱居於天台山 傳說其爲文殊菩薩之化身 與豐干(彌陀化身) 拾得(普賢化身) 號稱三聖 或稱三隱 又以三者皆隱棲天台山國淸寺 故亦稱國淸三隱 淸雍正十一年(1733) 封寒山爲和聖 拾得爲合聖 竝稱和合二聖 或和合二仙 [宋高僧傳十九 傳燈錄二十七 佛祖統紀三十九 佛祖歷代通載二十 釋氏稽古略三 天台山國淸禪寺三隱集記]

拾得; 唐代天台山國淸寺厨中有二苦行 曰寒山子 拾得 初 豐干禪師山中經行 至赤城道側 聞兒啼聲遂尋之 見一子可數歲 初謂牧牛子 及問之云 孤棄于此 豐干乃名爲拾得 携至國淸寺 忽一日輒爾登座與佛像對盤而餐 復於憍陳如上座塑形前呼曰 小果聲聞僧驅之 常日齋畢 澄濾食滓 以筒盛之 寒山來卽負之而去 有護伽藍神廟 每日僧厨下食 爲烏所有 拾得以杖抶之曰 汝食不能護 安能護伽藍乎 此夕神附夢于合寺僧曰 拾得打我 詰旦諸僧說夢符同 一寺紛然牒申州縣 郡符至云 賢士隱遁菩薩應身 宜用旌之 號拾得爲賢士 後道翹纂錄寒山文句 於寺土地神廟壁 見拾得偈詞 附寒山集中 [傳燈錄二十七 神僧傳六 宋高僧傳十九]

叱叱; 驅使牲畜聲 叱 象聲詞

因緣; 禪家把機語或示機應機的行爲動作等 稱爲因緣 意同公案

尊者; 梵語阿梨耶 譯作聖者 尊者 謂智德具尊者 蓋羅漢之尊稱 或有禪師亦稱尊者之例 如趙州法嗣嚴陽尊者 覺範號寂音尊者 紫柏稱紫柏尊者等 資持記下一 尊者 臘高德重 爲人所尊 行事鈔下一 下座稱上座爲尊者 上座稱下座爲慧命

; 語氣詞 用于句尾 表示疑問 或陳述結束 正字通 聻 梵書聻爲語助 音你

 

스님이 천태(天台) 국청사(國淸寺)에 이름으로 인해 한산(寒山)ㆍ습득(拾得)을 보았다. 사운 한산ㆍ습득을 구향(久嚮)했더니 도래(到來)하매 다만 두 마리의 수고우(水牯牛)만 보이네. 한산ㆍ습득이 바로 우투(牛鬬)를 지었다. 사운 질질(叱叱). 한산ㆍ습득이 교치(咬齒; 이를 물다)하며 서로 보았다. 스님이 바로 귀당(歸堂)했다. 두 사람이 당내(堂內)로 와서 스님에게 묻되 적래(適來)의 인연(因緣)이 어떻습니까(作麽生). 스님이 이에 하하대소(呵呵大笑; 의 원음이 하)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님에게 묻되 어느 곳(什麽處)에 갔다 오셨습니까. 사운 오백존자(五百尊者)에게 예배하고 왔다네. 두 사람이 이르되 오백두(五百頭; 量詞) 수고우는(水牯牛), 존자입니다. 사운 무엇 때문에(爲什麽) 오백두(五百頭) 수고우가 되어 갔는가. 한산이 이르되 창천(蒼天), 창천. 스님이 하하대소했다.

寒山; 당대의 은사(隱士)며 또한 호칭이 한산자(寒山子)니 천태산 한암(寒巖)의 유굴(幽窟) 속에 거주했음. 그 성씨가 불상(不詳)함으로 인해 고로 명칭이 한산임. 용모가 고췌(枯悴)하고 포유(布襦; 저고리)는 영락(零落; 떨어져 너덜거림)했고 화피(樺皮; 자작나무 껍질)로 갓을 만들고 큰 나막신을 끌었으며 때로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습득(拾得)에게 나아가 중승의 잔식(殘食)이나 채재(菜滓; 는 찌꺼기 재)를 취해 그것을 먹었음. 한산의 행적은 전광(顚狂; 미치광이)에 가까웠음. 국청사 속에 내지(來至)하여 혹은 낭하(廊下)에서 서행(徐行)하고 혹은 때로 규조(叫躁; 부르짖으며 떠듦)하며 타인을 능멸하고 혹은 허공을 바라보며 만매(漫罵; 함부로 꾸짖음)했음. 사승(寺僧)이 참지 못해 지팡이로 핍박하여 쫓아내면 번번이 몸을 뒤집어 손뼉을 치면서 하하 대소하며 물러났음. 음시창게(吟詩唱偈)를 좋아했는데 항상 불리(佛理)에 계합했음. 대주자사(臺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일찍이 모명(慕名)하여 상방(相訪)했는데 한산이 태수가 옴을 보고는 습득과 연비(連臂)하여 소오(笑傲; 웃으며 날뜀)하고는 사원에서 나가 그를 피했음. 여구윤이 다시 한암으로 가서 알문(謁問)하고 아울러 의상과 약물 등을 송부했는데 2()가 고성으로 그를 꾸짖으며 가로되 도적아, 도적아, 하고는 곧 몸을 옴츠려 암석의 틈 속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말하되 너희 제인에게 알리나니 각각 노력하라. 그 돌의 틈이 홀연히 봉합되었음. 여구윤이 애모(哀慕)하여 승 도교(道翹)를 시켜 그의 유물을 찾게 했는데 임간(林間)에서 잎 위에 서사한 바의 사송(辭頌) 및 촌서(村墅; 농막)와 인가의 가옥의 벽에 제()한 것을 얻었으니 공히 300여 수가 인간에 전포(傳布)되었음. 조산본적(曹山本寂)이 주석하여 이를 일러 대한산자시(對寒山子詩)라 했음. 위산(潙山)이 일찍이 천태산에서 한산을 회견(會見)했고 조주도 또한 일찍이 한산과 상호 문답했음. 그 족성(族姓)은 불상(不詳)이며 연대도 또한 이설(異說)이 있음. 혹 이르기를 이는 당 현종 선천년 중의 사람이라 하고 혹은 태종 정관년 중의 사람이라 하고 혹은 헌종 원화년 중의 사람이라 함. 근인(近人)의 고증에 의거하면 예종 경운(710-711) 초년에 출생했고 대종 대력(766-779)년 간 천태산에 은거했음. 전설에 그는 문수보살의 화신이라 하며 풍간(미타 화신) 습득(보현 화신)과 더불어 호칭이 3()이며 혹은 호칭이 3(). 3자가 모두 천태산 국청사에 은서(隱棲)한지라 고로 또한 명칭이 국청삼은(國淸三隱). 청 옹정 11(1733) 한산을 화성(和聖)에 봉하고 습득을 합성(合聖)이라 했으니 병칭이 화합2(和合二聖) 혹 화합2(和合二仙)[송고승전19. 전등록27. 불조통기39. 불조역대통재20. 석씨계고략3. 천태산국청선사삼은집기].

拾得; 당대 천태산 국청사(國淸寺) 부엌 가운데 두 고행(苦行)이 있었으니 가로되 한산자(寒山子)와 습득(拾得). 처음에 풍간선사(豐干禪師)가 산중을 경행(經行)하다가 적성(赤城)의 길 옆에 이르렀음.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드디어 그것을 찾았는데 가히 몇 살쯤 되는 한 아이()를 보았음. 처음엔 이르기를 소를 치는 아이인가 했는데 및 물으니 이르기를 외롭게 여기에 버려졌다 했다. 풍간이 이에 습득이라고 이름했으며 데리고 국청사(國淸寺)에 이르렀음. 홀연히 어느 날 갑자기 등좌하여 불상과 대반(對盤)하여 밥을 먹었고 다시 교진여상좌의 소형(塑形) 앞에서 불러 가로되 소과(小果) 성문승(聲聞僧)아 너를 쫓아내리라. 상일(常日; 평일)에 재를 마치면 음식 찌꺼기를 맑게 걸러 통으로 그것을 담았고 한산이 와서 곧 그것을 지고 떠났음. 호가람신묘(護伽藍神廟)가 있었는데 매일 승주(僧厨)에서 하식(下食; 밥을 내려줌)하면 까마귀의 소유가 되었음. 습득이 지팡이로 그를 매질하며 가로되 너의 밥도 능히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찌 능히 가람을 보호하겠는가. 이 날 밤에 신이 합사(合寺; 全寺)의 승중에게 꿈을 부착하여 가로되 습득이 나를 때립니다. 힐단(詰旦; 이른 아침)에 모든 승중이 꿈을 설하매 부동(符同; 부합)한지라 1()가 분연(紛然)하면서 주현(州縣)에 문서로 신고(申告)했음. 군부(郡符; 군의 공문)가 이르러 이르되 현사(賢士)의 은둔이며 보살의 응신이다. 마땅히 이를 드러냄을 써야 한다. 습득을 현사(賢士)로 호칭한다. 후에 도교(道翹)가 한산의 문구를 찬록(纂錄)하면서 사원 토지신 묘벽(廟壁)에서 습득의 게사(偈詞)를 발견하고 한산집 가운데 첨부했음 [전등록27. 신승전6. 송고승전19].

叱叱; 생축(牲畜; 가축)을 구사(驅使)하는 소리. 질은 상성사(象聲詞).

因緣; 선가에선 기어(機語)나 혹은 시기응기(示機應機)의 행위동작(行爲動作) 등을 잡아서 인연이라 호칭함. 뜻이 공안(公案)과 같음.

尊者; 범어 아리야(阿梨耶; ārya)는 번역해 성자ㆍ존자로 지음. 이르자면 지덕(智德)이 존엄(尊嚴)을 갖춘 자니 대개 라한(羅漢)의 존칭임. 혹은 선사(禪師)도 또한 존자로 일컫는 예()가 있음. 예컨대() 조주(趙州)의 법사(法嗣)인 엄양존자(嚴陽尊者)며 각범(覺範)의 호가 적음존자(寂音尊者)며 자백(紫柏)을 자백존자(紫柏尊者)라고 일컫는 등임. 자지기하1. 존자(尊者) 납고덕중(臘高德重)하여 사람들이 존경하는 바가 된다. 행사초하1. 하좌(下座)는 상좌(上座)를 존자(尊者)라고 일컫고 상좌는 하좌를 혜명(慧命)이라고 일컫는다.

; 어기사(語氣詞). 구미(句尾)에 쓰며 의문을 표시하거나 혹은 결속을 진술함. 정자통 니() 범서(梵書)에서 니()를 어조사로 삼는다. 음이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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