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조주록(趙州錄) 84

태화당 2026. 8. 6. 07:03

問新到 什麽處來 云 南方來 師竪起指云 會麽 云 不會 師云 動止萬福不會

 

신도(新到)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이르되 남방에서 왔습니다. 스님이 손가락을 세워 일으키고 이르되 아느냐.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사운 동지(動止)가 만복(萬福)이거늘 알지 못하는가.

 

師行脚時問大慈 般若以何爲體 慈云 般若以何爲體 師便呵呵大笑而出 大慈來日見師掃地次 問 般若以何爲體 師放下掃箒 呵呵大笑而去 大慈便歸方丈

大慈; 寰中(780-862) 唐代僧 蒲坂(山西永濟西南)盧氏 早擧甲科 年二十五 往北京童子寺出家 受心印於百丈懷海 初結茅於南嶽 後居杭州大慈山 問道者衆 山素缺水 傳有二虎以爪跑地 泉自湧出 因名虎跑泉 咸通三年不疾而逝 壽八十三 臘五十四 僖宗追謚性空大師 [宋高僧傳十二 傳燈錄九]

 

스님이 행각할 때 대자(大慈)에게 묻되 반야는 무엇으로써 체()를 삼는가. 자운(慈云) 반야는 무엇으로써 체를 삼는가. 스님이 바로 하하대소(呵呵大笑)하고 나갔다. 대자가 내일 스님을 보매 소지(掃地)하던 차()였다. 묻되 반야는 무엇으로써 체를 삼는가. 스님이 소추(掃箒)를 내려놓고(放下) 하하대소하고 갔다. 대자가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大慈; 환중(寰中; 780-862)이니 당대승. 포판(산서 영제 서남) 노씨. 일찍 갑과(甲科)에 선발(選拔; )되었음. 나이 25에 북경 동자사에 가서 출가했고 백장회해(懷海)에게서 심인(心印)을 받았음. 처음 남악에 띳집을 엮었고 후에 항주 대자산(大慈山)에 거주했는데 도를 묻는 자가 많았음. 산에 본디 물이 결핍했는데 전설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있어 발톱으로 땅을 허비자 샘이 저절로 용출(湧出)했고 인하여 호포천(虎跑泉)이라 했음. 함통 3년 질병 없이 서거했음. 나이는 83, 납은 54. 희종이 추시(追謚)하여 성공대사라 했음 [송고승전12. 전등록9].

 

師到百丈 百丈問 從什麽處來 云 南泉來 百丈云 南泉有何言句示人 師云 有時道 未得之人亦須峭然去 百丈叱之 師容愕然 百丈云 大好峭然 師便作舞而出

百丈; 懷海(720-814) 唐代僧 俗姓王 福州長樂(今屬福建)人 從慧照禪師落髮 依衡山法朝律師受具足戒 至浮槎寺閱藏 大曆(766-779)初 聞馬祖道一于南康(今屬江西)竪南禪法幢 前往參謁 言下開悟 得其大機大用之禪 遂嗣其法 馬祖寂後 受衆之請 住新吳(今江西奉新)百丈山傳播禪法 世稱百丈禪師 其禪名百丈禪 制定禪門規式 後稱百丈淸規 平生苦節高行 凡日常作務 必先于衆 叢林中有一日不作 一日不食的佳話 至晩年猶勤勞不息 元和九年入寂 世壽九十五(陳詡塔銘記其年壽爲六十六) 卒諡大智禪師 塔名大勝寶輪 宋大觀元年(1107) 追諡覺照禪師 元元統三年(1335) 加諡弘宗妙行禪師 有百丈懷海禪師語錄 百丈懷海禪師廣錄各一卷行世 嗣法弟子有靈祐希運等人 [宋高僧傳十 傳燈錄六]

峭然; 峭 借作悄 不聲不響貌

 

스님이 백장(百丈)에 이르자 백장이 묻되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이르되 남천(南泉)에서 왔습니다. 백장이 이르되 남천이 어떤 언구가 있어 사람에게 보이던가. 사운 어떤 때 말하되 얻지 못한 사람도 또한 모름지기 초연(峭然)히 간다. 백장이 그것()을 꾸짖었다(). 스님의 안용(顏容; )이 악연(愕然; 놀라는 모양)했다. 백장이 이르되 대호(大好) 초연(峭然)하구나. 스님이 바로 춤추며 나갔다.

百丈; 회해(懷海; 720-814)니 당대승. 속성(俗姓)은 왕()이며 복주(福州) 장락(長樂; 지금 福建에 속함) 사람. 혜조선사(慧照禪師)를 좇아 낙발(落髮)했고 형산(衡山)의 법조율사(法朝律師)에게 의지(依止)해 구족계를 받았으며 부사사(浮槎寺)에 이르러 장경(藏經)을 열람(閱覽)했음. 대력(大曆; 766- 779) 초 마조도일(馬祖道一)이 남강(南康; 지금 江西에 속함)에서 남선(南禪; 南宗禪)의 법당(法幢)을 세웠다 함을 듣고 앞으로 가서 참알(參謁)했으며 언하(言下)에 개오(開悟)하여 그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선()을 얻었으며 드디어 그 법을 이었음. 마조가 입적(入寂)한 후 대중의 청을 받아 신오(新吳; 지금의 江西 奉新)의 백장산(百丈山)에 머물며 선법(禪法)을 전파(傳播)했음. 세칭이 백장선사(百丈禪師)며 그 선()의 이름이 백장선(百丈禪). 선문(禪門)의 규식(規式)을 제정(制定)하였으니 후에 백장청규(百丈淸規)라 일컬었음. 평생에 고절(苦節)로 고행(高行; 高尙한 행위)하여 무릇 일상(日常)의 작무(作務)에 반드시 대중에 앞선지라 총림에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말이 있으며 만년(晩年)에 이르도록 근로하며 쉬지 않았음. 원화(元和) 9년에 입적했으니 세수(世壽)95(진후의 塔銘記에 그 나이가 66이라 했음). 죽어서의 시호는 대지선사(大智禪師)며 탑명은 대보승륜(大勝寶輪). () 대관(大觀) 원년(1107) 추시(追諡)하여 각조선사(覺照禪師)라 했고 원() 원통(元統) 3(1335) 가시(加諡)하여 홍종묘행선사(弘宗妙行禪師)라 했음. 백장회해선사어록ㆍ백장회해선사광록 각 1권이 있어 행세(行世). 법을 이은 제자에 영우(靈祐)ㆍ희운(希運)등의 사람이 있음 [송고승전10. 전등록6].

峭然; ()는 가차(假借)하여 초()로 지음. 소리도 없고 음향도 없는 모양.

 

師到投子處對坐齋 投子將蒸餠與師喫 師云 不喫 不久 下糊餠 投子敎沙彌度與師 師接得餠 却禮沙彌三拜 投子默然

投子; 大同(819-914) 唐代僧 安徽懷寧人 俗姓劉 幼年出家 初閱華嚴經 頗有啓發 其後參翠微無學禪師 大悟玄旨 周遊諸方後 隱栖於投子山三十餘年 激發往來 請益者盈室 以無畏之辯才 隨問隨答 乾化四年示微疾 隨卽坐化 壽九十六 諡號慈濟大師 [祖堂集六 傳燈錄十五 釋氏稽古略三]

 

스님이 투자(投子)의 처소에 이르러 대좌(對坐)하여 재()하는데 투자가 증병(蒸餠)을 가져다 스님에게 주어 먹게 했다. 사운 먹지 않겠다. 오래지 않아 호병(糊餠)을 내려 주면서 투자가 사미로 하여금 스님에게 건네 주게 했다. 스님이 호병(糊餠; )을 접득(接得)하자 도리어 사미에게 삼배(三拜) 예배했다. 투자가 묵연(默然)했다.

投子; 대동(大同; 819-914)이니 당대승. 안휘 회녕 사람. 속성은 유.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처음엔 화엄경을 열람하다가 자못 계발(啓發)이 있었음. 그 후 취미무학선사(翠微無學禪師)를 참알해 현지(玄旨)를 대오했음. 제방을 주유(周遊)한 후에 투자산(投子山)에 숨어 쉬기가 30여 년이었으며 왕래인을 격발(激發)하매 청익하는 자가 방에 가득했음. 무외(無畏)의 변재로 질문을 따라 그대로 답했음. 건화 4년 미질(微疾)을 보이다가 그대로 곧 좌화(坐化. 앉아 죽음)했음. 나이 96. 시호는 자제대사 [조당집6. 전등록15. 석씨계고략3].

 

因僧寫師眞呈師 師云 若似老僧 卽打殺我 若不似 卽燒却

 

중이 사진(師眞; 肖像)을 베껴 스님에게 드림으로 인해 사운 만약 노승과 닮았다면 곧 나를 타살(打殺)하고 만약 닮지 않았다면 곧 소각(燒却)하라.

 

師因與文遠行次 乃以手指一片地云 這裏好造一箇巡鋪子 文遠便去彼中立云 把將公驗來 師便打一摑 遠云 公驗分明過

巡鋪子; 防盜防火的哨所 子 助詞

公驗; 官廳發行的證驗書(證明書) 禪錄中多喩各人本有之淸淨心

 

스님이 문원(文遠)과 더불어 가던 차()로 인해 이에 손으로써 일편지(一片地)를 가리키며 이르되 저리(這裏)에 좋이 일개(一箇)의 순포자(巡鋪子)를 지을 만하다. 문원이 바로 그 가운데로 가서 서서 이르되 공험(公驗)을 파장(把將; 가지다)하여 오십시오. 스님이 일괵(一摑; 한 번 후려갈기다) 때렸다. 원운(遠云) 공험이 분명이 지나갔습니다.

巡鋪子; 도둑을 방지하고 불을 방지하는 초소(哨所). 자는 조사.

公驗; 관청에서 발행한 증험서(證驗書; 증명서). 선록 중에선 다분히 각인이 본래 가진 청정심에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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