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出外 逢見一箇婆子提一箇籃子 師便問 什麽處去 云 偷趙州笋去 師云 忽見趙州 又作麽生 婆子近前打一掌
스님이 밖으로 나갔다가 일개의 파자(婆子)가 일개의 남자(籃子; 광주리)를 들었음(提)을 만나 보았다. 스님이 바로 묻되 어느 곳으로 갑니까. 이르되 조주(趙州)의 죽순(竹笋; 笋)을 훔치러 갑니다. 사운 홀연히 조주를 보면 또 어찌하겠습니까. 파자가 앞으로 다가가 일장(一掌) 때렸다.
師因見院主送生飯 鵶子見 便總飛去 師云 鵶子兒見你 爲什麽却飛去 院主云 怕某甲 師云 是什麽語話 師代云 爲某甲有殺心在
●生飯; 又曰出飯 律有出衆生食之語 於食前爲衆生出少許食而施與之 持戒者之一法式也 略曰出飯 亦曰生飯 ▲按涅槃經十六謂 佛嘗遊曠野 有一鬼名曠野 食血肉 日殺一人 不受佛之敎化 佛爲大力之鬼神 鬼怖伏 佛還本身 使受不殺生戒 命以後從佛弟子受飯食 ▲按毘奈耶雜事三十一 佛化鬼子母曰 於贍部洲所有我聲聞弟子 每於食次出衆生食 竝於行末設食一盤 呼汝字竝諸兒子 皆令飽食永無饑苦 ▲行事鈔下計請設則篇 出衆生食 或在食前 唱等得已出之 或在食後 經論無文 隨情安置
스님이, 원주(院主)가 생반(生飯)을 보내매 아자(鵶子; 갈까마귀. 子는 조사)가 보고서 바로 모두(總) 날아감을 봄으로 인해 사운 아자아(鵶子兒; 갈까마귀. 子와 兒는 조사)가 너를 보자 무엇 때문에 도리어 날아가느냐. 원주가 이르되 모갑(某甲)을 두려워합니다(怕). 사운 이 무슨 어화(語話)냐, 스님이 대운(代云) 모갑이 살심(殺心)이 있기 때문입니다.
●生飯; 또 가로되 출반(出飯)이니 율에 출중생식(出衆生食)이란 말이 있음. 식전에 중생을 위해 소허(少許; 소량)의 음식을 내어 그에게 시여(施與)하나니 지계(持戒)하는 자의 한 법식임. 간략히 가로되 출반이며 또한 가로되 생반임. ▲열반경16을 안험컨대 이르기를 불타가 일찍이 광야(曠野)에 노닐었다. 1귀(鬼)가 있었으니 이름이 광야며 혈육(血肉)을 먹었는데 날마다 한 사람을 죽였고 불타의 교화를 받지 않았다. 불타가 대력(大力)의 귀신을 짓자 귀(鬼)가 포복(怖伏)했다. 불타가 본신(本身)으로 돌아가 불살생계를 받게 했고 명해 이후로는 불제자로부터 반식(飯食)을 받게 했다. ▲비나야잡사31을 안험컨대 불타가 귀자모(鬼子母)를 교화하며 가로되 섬부주(贍部洲)에 있는 바 나의 성문제자(聲聞弟子)가 매번 식차(食次)에 중생식(衆生食)을 내고 아울러 행말(行末)에 한 소반의 음식을 베풀고 너의 자(字)와 아울러 모든 아자(兒子)를 불러 모두 포식(飽食)하게 해 영원히 기고(饑苦)가 없게 하리라. ▲행사초하 계청설칙편(計請設則篇). 중생식(衆生食)을 냄음 혹 식전에 있으면 창(唱) 등을 얻은 다음 이를 내며 혹은 식후에 있다. 경론에 글이 없으며 수정(隨情)하여 안치한다.
師問僧 什麽處來 云 江西來 師云 趙州著在什麽處 僧無對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이르되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사운 조주(趙州)를 어느 곳에 붙여 두었더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師從殿上過 見一僧禮拜 師打一棒 云 禮拜也是好事 師云 好事不如無
스님이 전상(殿上)으로 좇아 지나가다가 한 중이 예배함을 보았다. 스님이 1방(棒) 때렸다. 이르되 예배도 또한 이 호사(好事)입니다. 사운 호사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師因參潼關 潼關問師云 你還知有潼關麽 師云 知有潼關 云 有公驗者卽得過 無公驗者不得過 師云 忽遇鑾駕來時如何 關云 也須檢點過 云 你要造反
●鑾駕; 一天子的車駕 天子車駕有鑾鈴 故稱 二借指天子
스님이 동관(潼關; 關所의 이름)을 참관(參觀; 參)함으로 인해 동관(潼關; 동관의 關吏)이 스님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도리어 동관이 있음을 아느냐. 사운 동관이 있음을 안다. 이르되 공험(公驗; 증명서)이 있는 자는 곧 지나감을 얻지만 공험이 없는 자는 지남을 얻지 못한다. 사운 홀연히 난가(鑾駕)가 옴을 만났을 때 어떠한가. 관운(關云) 또한 모름지기 검점(檢點)하고 지나간다. 이르되 네가 조반(造反; 謀反)을 요하느냐.
●鑾駕; 1. 천자의 거가(車駕). 천자의 거가에는 난령(鑾鈴; 방울)이 있으므로 고로 일컬음. 2. 가차하여 천자를 가리킴.
師到寶壽 寶壽見師來 遂乃背面而坐 師便展坐具 寶壽起立 師便出去
스님이 보수(寶壽; 寶壽沼니 임제의 法嗣)에 이르렀다. 보수가 스님이 옴을 보자 드디어 곧 배면(背面; 얼굴을 등지다)하여 앉았다. 스님이 바로 좌구(坐具)를 폈다. 보수가 기립(起立)했다. 스님이 바로 나갔다.
師在南泉時 泉牽一頭水牯牛入僧堂內巡堂而轉 首座乃向牛背上三拍 泉便休去 師後將一束草安首座面前 首座無對
스님이 남천(南泉)에 있을 때 남천이 한 마리 수고우(水牯牛)를 끌고 승당(僧堂) 안에 들어와 순당(巡堂)하며 돌았다. 수좌가 이에 소의 등 위를 향해 세 번 두드렸다. 남천이 바로 쉬러 갔다. 스님이 후에 한 묶음의 풀을 가져다 수좌의 면전(面前)에 놓았다. 수좌가 대답이 없었다.
有秀才見師 乃讚歎師云 和尙是古佛 師云 秀才是新如來
어떤 수재(秀才)가 스님을 보자 이에 스님을 찬탄해 이르되 화상은 이 고불(古佛)입니다. 사운 수재는 이 신여래(新如來)다.
有僧問 如何是涅槃 師云 我耳重 僧再問 師云 我不害耳聾 乃有頌 騰騰大道者 對面涅槃門 但坐念無際 來年春又春
●耳重; 耳聾耳痛等症狀
●頌; 祖庭事苑六 伽陀 此云諷頌 亦云不頌頌 謂不頌長行故 或名直頌 謂直以偈說法故 今儒家所謂游揚德業 褒讚成功者 諷頌也 所謂直頌者 自非心地開明達佛知見 莫能爲也 今時輩往往謂頌不尙綺靡 率爾可成 殊不知 難於世間詩章遠甚 故齊己龍牙序云 其體雖詩 其旨非詩者
●騰騰; 自在無爲 任其自然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열반입니까. 사운 나는 이중(耳重)이다. 중이 재문(再問)하자 사운 나는 다쳐서 귀가 먹은 게 아니다. 이에 송(頌)이 있었다. 등등(騰騰)한 대도(大道)란 것이/ 대면(對面)하여 열반문(涅槃門)이다/ 단지 앉아 무제(無際)를 사념하나니/ 내년에 봄이 또 봄이다.
●耳重; 귀가 먹거나 귀가 아픈 등의 증상.
●頌; 조정사원6. 가타(伽陀; 梵 gāthā) 여기에선 이르되 풍송(諷頌)임. 또 이르되 불송송(不頌頌)이니 이르자면 장행(長行)을 송(頌)하지 않기 때문이며 혹은 이름이 직송(直頌)이니 이르자면 바로 게(偈)로써 설법하기 때문임. 여금의 유가(儒家)에서 이르는 바 덕업(德業)을 유양(游揚; 浮揚)하고 성공을 포찬(褒讚; 褒는 기릴 포. 讚은 기릴 찬)하는 것인 풍송(諷頌)임. 이른 바 직송(直頌)이란 것은 스스로 심지(心地)가 개명(開明; 열려 환함)하고 부처의 지견에 통달하지 못했다면 능히 짓지 못하거늘 금시의 무리가 왕왕 이르기를 송은 기미(綺靡; 綺는 비단 기. 고울 기. 靡는 사치할 미. 예쁠 미. 곧 호화롭게 꾸밈)를 숭상하지 않으므로 솔이(率爾; 率은 대강 솔. 경솔할 솔. 곧 수월하게. 갑자기)하게 가히 이룬다 하거니와 너무 알지 못하나니 세간의 시장(詩章)보다 어려움이 원심(遠甚; 멀고 심함)함. 고로 제기(齊己)의 용아서(龍牙序; 龍牙는 居遁이니 洞山良价의 法嗣)에 이르되 그 체(體)는 비록 시(詩)이지만 그 뜻(旨)은 시가 아니라 한 것임.
●騰騰; 자재하고 함이 없으면서 그 자연에 맡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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