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乞養】 乞求養身 ▲頌古聯珠通集十五 縱饒紹續家門者 半是貧寒乞養兒
걸양(乞養) 걸구하여 양신(養身; 신체를 保養)함. ▲송고연주통집15. 종요(縱饒; 縱然. 설사) 가문을 잇는 자일지라도 반은 이 빈한한 걸양아(乞養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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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桀紂】 桀(?-前1600) 姒姓 夏後氏 名癸 一名履癸 諡號桀 史稱夏桀 帝發之子 夏朝最後一位君主 中國歷史上有名的暴虐荒淫的國君之一 紂(前1105-前1046) 子姓 名受或受德或辛 也稱帝辛 殷(商)代最後(第三十二位)君主 中國歷史上有名的暴君 在位三〇年 天下謂之紂 商紂王 諡號紂 [百度百科] △新集藏經音義隨函錄卄八冊 桀紂 上巨列反 夏王名也 史記(2)曰 黃帝之孫帝發之子 名履癸 淫虐有才力 能伸鉤索鐵 手搏熊羆 置妻妺嬉於膝 嬉好聞裂繒之聲 桀爲散裂之 以順適其 以人駕車 爲肉山脯林酒池 一鼓而牛飮者三千餘人溺死 湯伐之 乙卯戰于鳴條之野 敗奔南巢之山而死 又注千字文云 夏桀不恤國政 不許百姓種田 遞代相劫矣 下直有反殷王也 諡法曰 誅善討義曰紂 注千字文云 殷紂無道 不恤國政 妲己惑亂 酷虐百姓 盛天無雨水泉竭 鬼夜哭 山鳴地陷六月雪 ▲列祖提綱錄八崇覺空 遇文王興禮樂 逢桀紂逞干戈
걸주(桀紂) 걸(桀; ?-前 1600) 사성(姒姓)이며 하후씨. 이름이 계(癸)니 일명이 이계(履癸)며 시호가 걸이며 사칭(史稱; 역사상의 호칭)이 하걸(夏桀)임. 제발(帝發)의 아들이며 하조(夏朝) 최후의 1위(位) 군주. 중국 역사상 유명한, 포학하고 황음(荒淫; 음탕한 짓을 몹시 함)한 국군(國君)의 하나. 주(紂; 前 1105-前 1046) 자성(子姓)이며 이름은 수(受), 혹 수덕(受德), 혹 신(辛)이니 또 명칭이 제신(帝辛)임. 은(殷; 商)대 최후(제32위) 군주. 중국 역사상 유명한 폭군. 재위 30년. 천하에서 그를 일러 주(紂)ㆍ상주왕(商紂王)이라 함. 시호가 주(紂)임 [백도백과]. △신집장경음의수함록28책. 걸주(桀紂) 상(上; 桀)은 거렬반(巨列反; 걸), 하왕(夏王)의 이름이다. 사기(2)에 가로되 황제(黃帝)의 손자며 제발(帝發)의 아들이다. 이름은 이계며 음학(淫虐; 음탕하고 포학)하고 재력(才力)이 있었다. 능히 갈구리를 펴고 쇠를 꼬았으며 손으로 웅비(熊羆; 곰과 큰 곰)를 쳤다. 처인 말희(妺嬉)를 무릎에 놓았다. 말희는 비단 찢는 소리를 듣기 좋아했다. 걸이 위하여 그것을 산산히 찢어 순종하며 그에 맞췄다. 사람을 가거(駕車)로 삼았으며 육산(肉山)과 포림(脯林)ㆍ주지(酒池)를 만들었는데 한 번 북을 치매 소처럼 마시던 자 3천여 인이 익사했다. 탕(湯)이 그를 정벌했다. 을묘(乙卯)에 명조(鳴條)의 들판에서 전투했다. 패하여 남소(南巢)의 산으로 도망가서 죽었다. 또 주천자무(注千字文)에 이르되 하걸(夏桀)은 국정을 근심하지 않았고 백성에게 밭에 씨 뿌림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체대(遞代; 관리의 임기가 만료되어 交代하는 것)하며 서로 겁탈했다. 하(下; 紂)는 직유반(直有反; 주)이니 은왕(殷王)이다. 시법(諡法; 시호를 의논하여 정하던 방법)에 가로되 선(善)을 죽이고 의(義)를 토벌함을 가로되 주(紂)다. 주천자문에 이르되 은주(殷紂)는 무도하여 국정을 근심하지 않았다. 달기(妲己)가 혹란하였고 백성에게 혹독하고 포학했다. 성대한 하늘에 비 내림이 없었고 수천(水泉)은 고갈됐다. 귀신이 밤에 곡하고 산이 울고 땅이 함몰했으며 6월에 눈이 내렸다. ▲열조제강록8 숭각공. 문왕을 만나자 예악이 일어났고 걸주(桀紂)를 만나자 간과(干戈; 방패와 창. 싸움. 전쟁)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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