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508쪽

태화당 2019. 5. 4. 15:29

高士傳三卷 三國西晉時期學者皇甫謐(215-282)著 朝那(今甘肅省靈台縣朝那鎭)人 又著有 帝王世紀 逸士傳 列女傳 玄晏春秋等 [百度百科] 禪林疏語考證一 萊子之衣 高士傳云 老萊子孝養親 年七十父母猶存 身着五色斒衣 爲嬰兒戲於親前 取食上堂詐跌臥地爲兒啼 欲親之喜

사전(高士傳) 3. 삼국 서진시기(西晉時期)의 학자 황보밀(皇甫謐; 21 5-282)이 지었음. 조나(지금의 감숙성 영태현 조나진) 사람이며 또 저서에 제왕세기ㆍ일사전ㆍ열녀전ㆍ현안춘추 등이 있음 [백도백과]. 선림소어고증1. 내자지의(萊子之衣) 고사전(高士傳)에 이르되 노래자(老萊子)가 양친에게 효도했다. 나이 70에 부모가 오히려 아직 생존했다. 몸에 오색의 색동옷을 입고 영아가 되어 양친 앞에서 희롱하고 밥을 취해 당에 오르면서 거짓으로 미끄러지며 땅에 누워 아이의 울음을 지었으니 양친을 기쁘게 하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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庫司行者卽庫子 見庫子 校定淸規上新住持入院 庫司行者 安排箱袱托狀子

고사행자(庫司行者) 곧 고자니 고자(庫子)를 보라. 교정청규상 신주지입원. 고사행자(庫司行者)가 상복과 탁상자를 안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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鼓山】 ①位於福建福州東郊 閩江北岸 山勢綿延十七公里 嶺上有巨石 其形如鼓 故稱鼓山 山內最高峰者稱大頂峰(又稱屴崱峰) 其他尙有白雲峰(俗稱小頂峰) 鳳池山 香爐峰 鉢盂峰 東峰 雙髻峰 獅子峰等 山上原有華嚴寺 相傳是唐建中四年(783) 靈嶠禪師降伏毒龍之地 會昌法難後 卽告荒廢 後梁開平二年(908) 閩主王審知重建 竝請雪峰義存之法嗣神晏駐錫 宋眞宗時 賜鼓山白雲峰湧泉禪院之額 明永樂五年(1407) 改稱湧泉寺 嘉靖二十一年(1542)燒燬 後經永覺元賢 爲霖道霈等諸師之經營構建 諸殿宇 堂樓 山門 寮舍等漸備 今所存者皆是元賢道霈之後所重建者 其堂殿樓閣之完備具足 實爲中國現存佛寺中之罕見者 [古今圖書集成山川典一七九 職方典一支那文化史蹟解說六] 五代僧神晏 晩住鼓山湧泉禪院 故稱鼓山 詳見神晏

고산(鼓山) 복건 복주 동쪽 근교 민강 북쪽 언덕에 위치함. 산세가 면연(綿延; 끊임없이 이어 늘임)하기 17며 영상에 큰 돌이 있는데 그 형상이 북과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고산(鼓山). 산내 최고봉은 명칭이 대정봉(또 명칭이 역즉봉)이며 기타 오히려 백운봉(속칭 소정봉)ㆍ봉지산ㆍ향로봉ㆍ발우봉ㆍ동봉ㆍ쌍계봉ㆍ사자봉 등이 있음. 산 위에 원래 화엄사가 있었는데 서로 전하기를 이는 당 건중 4(783) 영교선사가 독룡을 항복 시킨 땅이라 함. 회창 법난 후에 곧 황폐를 고했음. 후에 양() 개평 2(908) 민주(閩主) 왕심지가 중건하고 아울러 설봉의존의 법사 신안(神晏)을 청해 주석케 했음. 송 진종 때 고산 백운봉 용천선원의 편액을 주었음. 명 영락 5(1407) 개칭하여 용천사라 했음. 가정 21(1542) 불탔는데 후에 영각원현(永覺元賢)과 위림도패(爲霖道霈) 등의 여러 스님의 경영으로 여러 전우(殿宇)ㆍ당루ㆍ산문ㆍ요사 등의 구건(構建)을 거쳐 점차 완비했음. 여금에 존재하는 것은 다 이 원현과 도패 이후에 중건한 것임. 그 당전(堂殿)과 누각의 완비하여 구족함은 실로 중국의 현존하는 불사(佛寺) 중에 드물게 보는 것이 됨 [고금도서집성산천전179. 직방전1040. 지나문화사적해설6]. 오대승 신안이 만년에 고산 용천선원에 주()하였으므로 고로 호칭이 고산이니 상세한 것은 신안(神晏)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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