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舍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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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강불여진정문(堅剛不如眞淨文)
과과숙비융경한(顆夥孰比隆慶閑)
소목라한불조고(燒木羅漢佛照杲)
영험유승단하연(靈驗猶勝丹霞然)
개인평석이천선(皆因平昔履踐善)
막장속안등한간(莫將俗眼等閒看)
수위대지현진광(雖謂大地顯眞光)
견도불백구두선(見道不白口頭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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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고 굳세기로는 진정문(眞淨文)만 같지 못하지만
알갱이가 많기론 누가 융경한(隆慶閑)에 비교하랴
목나한(木羅漢)을 태운 불조고(佛照杲)는
영험(靈驗)이 오히려 단하연(丹霞然)보다 수승(殊勝)한가.
다 평석(平昔)의 이천(履踐)이 착함을 인했나니
속안(俗眼)을 가지고 등한(等閒)히 보지 말아라
비록 대지가 진광(眞光)을 나타낸다고 이르지만
도를 본 것이 명백하지 못하면 구두선(口頭禪)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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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석 1 불타나 성자(聖者)의 유골. 후세에는 화장한 뒤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것만 가리킴. 2 불타(佛陀)의 법신(法身)의 유적(遺跡)인 경전(經典). 3 송장을 화장한 뼈. 사리골(舍利骨). 신역(新譯)은 설리라(設利羅) 또는 실리라(室利羅).
1행 제방존숙(諸方尊宿)이 시멸(示滅)하매 화욕(火浴)하여 사리를 얻음이 극히 많지만 오직 진정화상(眞淨和尙. 克文이니 黃龍慧南의 法嗣)의 사리는 크기가 콩 같았고 오색(五色)이 정영(晶瑩. 晶은 빛날 정. 맑을 정. 瑩은 밝을 영)했으며 또 견강(堅剛)했다. 곡산조선사(谷山祖禪師)는 진정의 고제(高弟)였는데 많이 그것을 거두어 유리병에 채워 몸에 지니며 공양(供養)했다. 묘희(妙喜. 大慧宗杲)가 곡산(谷山)을 유람(遊覽)하다가 일찍이 시험삼아 철침(鐵砧. 砧은 방칫돌 침. 다듬이돌 침)에 놓고 쇠망치를 들어 그것을 쳤는데 철침과 쇠망치는 다 함몰(陷沒)했으나 사리는 손상이 없었으니 어찌 평석(平昔. 평소나 옛적)에 이천(履踐)이 명백하고 견도(見道)가 초예(超詣. 詣는 학업에 달통할 예)함의 소치(所致)가 아니겠는가 [大慧普覺禪師語錄卷上]. 강(剛)은 굳셀 강.
2행 사유일(闍維日. 闍維는 茶毘)에 구름이 일어나고 바람이 불어 기왓장을 날리고 나무를 꺾었는데 연기(煙氣)가 이르는 곳의 동서남북 사십 리에 무릇 초목이나 사력(沙礫. 礫은 조약돌 력)의 사이에서 다 사리를 얻었는데 황금색과 같았고 그 획득한 바를 계산하매 거의 몇 섬이었다 [五燈全書卷三十七 隆慶慶閑章]. 융경경한(隆慶慶閑)은 황룡혜남(黃龍 慧南)의 법사(法嗣). 과(顆)는 알갱이 과. 과(夥)는 많을 과.
3행 법운불조고선사(法雲佛照杲禪師. 眞淨克文의 法嗣. 臨濟下九世)가 일찍이 퇴거(退去)하여 경덕(景德)의 철라한원(鐵羅漢院)에 거주(居住)했는데 전각(殿閣)에 목라한(木羅漢) 몇 존(尊. 尊은 量詞)이 있었다. 경사(京師. 師는 서울 사)가 매우 추워 불조(佛照)가 취해서 그것을 태워 화로(火爐)를 끼고 새벽에 이르렀다. 다음 날 일어(淘) 재 가운데에서 사리를 무수히 얻었는데 여러 좌주배(座主輩. 講僧을 좌주라 함)가 다 그것을 지목(指目)하여 외도(外道)로 삼았거니와 불조는 곧 단하배류(丹霞輩流. 流는 무리 류. 곧 단하와 같은 무리)인지라 속안(俗眼)으로 능히 감험(勘驗)할 바가 아니라 하노라 [大慧普覺禪師語錄卷上].
4행 단하천연선사(丹霞天然禪師)가 목불을 태운 인연은 위(僧家寶)에 설명이 있음.
5~8행 리(履)는 밟을 리. 천(踐)은 밟을 천. 이천(履踐)은 이력(履歷)과 같은 뜻. 백(白)은 밝을 백. 구두선(口頭禪)은 실참(實參)하지 못하고 입으로만 외우는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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