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921쪽

태화당 2019. 5. 8. 17:20

淈?漢不明事理的人 糊塗之人 法演語錄上 太平淈?漢 事事盡經遍 如是三十年 也有人讚歎 且道讚歎箇什麽 好箇淈?漢

굴돌한(淈?漢) 사리를 밝히지 못하는 사람. 호도하는 사람. 법연어록상. 태평(법연)은 굴돌한(淈?漢)이니 사사에 모두 두루 겪었다. 이와 같이 30년에 또한 어떤 사람이 찬탄한다. 그래 말하라, 무엇을 찬탄하느냐. 좋은 굴돌한(淈?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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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臀? 臀部 五宗錄三雲門 向老漢?臀後 覓得些子涕唾嚼 將爲自己 便道我解禪解道 饒你念得一大藏敎 擬作麽生去

굴둔(?臀) (?)은 둔부. 오종록3 운문. 노한의 엉덩이(?臀) 뒤로 향하여 조금의 눈물과 침을 찾아서 얻어 씹으면서 장차 자기로 삼아 곧 말하기를 내가 선을 알고 도를 안다 하겠는가. 가령() 너희가 일대장교를 외워 얻더라도 무엇을 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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窟籠穴也 如淨語錄下 平地起骨堆 虛空剜窟籠

굴롱(窟籠) (; ). 여정어록하. 평지에서 골퇴(骨堆; 뼈무더기)를 일으키고 허공에서 굴롱(窟籠)을 도려낸다.


窟磊子又作窟礧子 亦作窟儡子 卽傀儡子 木偶戲 [百度百科] 列祖提綱錄三十九楚石琦 杖頭窟磊子 擧動令人羨

굴뢰자(窟磊子) 또 굴뢰자(窟礧子)로 지으며 또한 굴뢰자(窟儡子)로 지음. 곧 괴뢰자(傀儡子)니 목우(木偶; 나무로 만든 인형)의 희롱임 [백도백과]. 열조제강록39 초석기. 주장자 끝의 굴뢰자(窟磊子)의 거동이 사람으로 하여금 부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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屈棒寃屈的棒 屈 寃屈 寃抑 寃枉 五燈會元三烏臼和尙 屈棒元來有人喫在

굴방(屈棒) 원굴(寃屈; 원통하고 억울함)의 방(). ()은 원굴, 원억(寃抑; 원통하고 억울함), 원왕(寃枉; 원통). 오등회원3 오구화상. 굴방(屈棒)은 원래 어떤 사람이 끽(; 받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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崛山寺位於韓國江原道江陵市闍崛山 禪門九山闍崛山派之中心 新羅文聖王時(839-856) 通曉大師梵日所創 梵日於興德王六年(831)入唐 得馬祖道一之門人鹽官齊安之印可 文聖王八年(846)頃歸國 應溟州都督金公之請 開創本寺 得景文王 憲康王 定康王之歸依 住持四十餘年 大揚宗風 蔚成闍崛山派 爲禪門九山中門庭最盛之一派 今僅存寺址 浮屠 幢竿支柱等 [祖堂集十七 傳燈錄十]

굴산사(崛山寺) 한국 강원도 강릉시 사굴산(闍崛山)에 위치함. 선문구산 사굴산파의 중심임. 신라 문성왕 때(8 39-856) 통효대사 범일(梵日)이 창건한 것임. 범일이 흥덕왕 6(831) 입당하여 마조도일의 문인인 염관제안(鹽官齊安)의 인가를 얻었으며 문성왕 8(846) 무렵에 귀국하였음. 명주도독 김공의 청에 응해 본사를 개창했고 경문왕ㆍ헌강왕ㆍ정강왕의 귀의를 얻었음. 주지하기 40여 년에 종풍을 크게 날렸으며 사굴산파를 위성(蔚成; 성대하게 이룸)하였음. 선문구산 중에 문정이 가장 흥성한 1파가 됨. 지금은 겨우 절터ㆍ부도ㆍ당간지주 등만 남았음 [조당집17. 전등록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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