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屈原】 (前340-前278) 戰國時期楚國詩人 政治家 羋姓 屈氏 名平 字原 又自云名正則 字靈均 約公元前三四〇年出生於楚國丹陽(今湖北秭歸 另說今河南西峽) 楚武王熊通之子屈瑕的後代 [百度百科] ▲從容錄第四十一則 屈原 字平 仕楚懷王 爲三閭大夫 靳尙所譖 貶長沙 獨行江畔 謂漁父曰 擧世皆醉 唯我獨醒 擧世皆濁 唯我獨淸 沈汩羅江而卒 江在潭州羅縣 文選離騷經 屈原所作
굴원(屈原) (前 340-前 278) 전국시기 초나라의 시인이며 정치가. 미성(羋姓)이며 굴씨(屈氏)니 이름은 평이며 자는 원(原)임. 또 스스로 이르되 이름은 정칙이며 자는 영균. 약 공원전 340년 초나라 단양(지금의 호북 자귀. 다른 설은 지금의 하남 서협)에서 출생했음. 초 무왕 웅통의 아들 굴하의 후대임 [백도백과]. ▲종용록 제41칙. 굴원(屈原)은 자가 평이며 초 회왕을 섬겨 삼려대부가 되었다. 근상의 참소하는 바로 장사(長沙)로 폄하되었다(벼슬이 떨어짐). 강 가를 홀로 가다가 어부에게 일러 가로되 온 세상이 다 취했고 오직 나만이 홀로 깨어 있으며 온 세상이 다 탁하고 오직 나만이 홀로 깨끗하다 하고는 멱라강에 빠져 죽었다. 강이 담주 나현에 있다. 문선(文選)의 이소경(離騷經)은 굴원이 지은 것이다.
【窟子】 卽窟 子 後綴 ▲圓悟語錄六 大人具大見 大智得大用 向無明窟子裏 便放無量寶光
굴자(窟子) 즉 굴. 자는 후철. ▲원오어록6. 대인은 대견을 갖추고 대지는 대용을 얻는다. 무명의 굴자(窟子) 속을 향해 바로 무량한 보광(寶光)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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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屈子】 指屈原 子 男子的通稱 ▲五燈全書七十四放菴本雲 江上龍舟競渡 只爲屈子忠良
굴자(屈子) 굴원을 가리킴. 자는 남자의 통칭. ▲오등전서74 방암본운. 강 위에서 용주(龍舟)를 경도(競渡)함은 마만 굴자(屈子)의 충량(忠良)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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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屈節當胸】 屈腕節而叉手當胸之義 ▲碧巖錄第三則 恁麽則屈節當胸 退身三步
굴절당흉(屈節當胸) 팔뚝의 관절을 굽혀서 차수하여 당흉함의 뜻. ▲벽암록제3칙. 이러하다면 곧 굴절당흉(屈節當胸)하고 3보를 퇴신(退身; 몸을 뒤로 물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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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掘地覓天】 掘開泥土去尋覓天空 比喩荒唐顚倒無益 ▲汾陽語錄上 問 如何是大道之源 師云 掘地覓天 何得如此 師云 不識幽玄
굴지멱천(掘地覓天) 진흙을 파고 열어서 하늘을 찾음이니 황당하고 전도(顚倒)하여 무익함에 비유. ▲분양어록상. 묻되 무엇이 이 대도의 근원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땅을 파서 하늘을 찾는구나(掘地覓天). 왜 이와 같음을 얻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유현(幽玄)을 알지 못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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