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門】 指宮闕門 ▲禪門拈頌集第一四九則 雪竇寧頌 王子生來便自尊 只應日日在金門 從前不顧人閒事 唯識爺爺寶殿存
금문(金門) 궁궐문을 가리킴. ▲선문염송집 제149칙. 설두녕이 송하되 왕자가 태어나매 곧 자존(自尊)이라/ 다만 응당 날마다 금문(金門)에 있다/ 종전에 인간사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야야(爺爺; 아버지)의 보전(寶殿)이 존재함만 안다.
【金文玉軸】 指珍貴的佛敎典籍 ▲汾陽語錄上 金文玉軸 永劫淸涼
금문옥축(金文玉軸) 진귀한 불교전적을 가리킴. ▲분양어록상. 금문옥축이 영겁토록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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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文院】 見保福寺
금문원(金文院) 보복사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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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榜】 科擧時代 稱殿試錄取的榜 錄取者的姓名 依成績順序寫在榜上 ▲禪門拈頌集第三一二則靈源淸 已坐玉堂之士 不在登科 未升金牓之流 要須入試
금방(金榜) 과거시대(科擧時代)에 전시(殿試)에서 녹취(錄取; 選定)의 방(榜)을 일컬음. 녹취자의 성명은 성적 순서에 의해 방상(榜上)에 서사하여 있음. ▲선문염송집 제312칙 영원청. 이미 옥당에 앉은 사내는 등과(登科)에 있지 않고 금방(金牓)에 오르지 못한 무리는 요컨대 반드시 입시(入試)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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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帛】 禪林疏語考證一 晉王戎曰 計筭金帛 有如不足 ▲禪林疏語考證一 金帛恒足 門閭有光
금백(金帛) 선림소어고증1. 진 왕융이 가로되 금백을 계산하면 있어도 부족함과 같다. ▲선림소어고증1. 금백(金帛)은 항상 풍족하고 문려(門閭; 가문. 문정)에 광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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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壁峰】 指元代臨濟宗僧寶金 字璧峰 詳見寶金
금벽봉(金壁峰) 원대 임제종승 보금을 가리킴. 자가 벽봉이니 상세한 것은 보금(寶金)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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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辯】 (?-1697) 淸代僧 番禺(今屬廣東)人 俗姓麥 字樂說 嘗從梁之佩 學科擧應試之文 頗有文名 其後之佩入道 每以梵典禪理導之 忽有所省 因隨行脚僧至匡廬 參天然昰禪師 從之剃染 順治十七年(1660) 受具足戒於雷峰 及今釋開丹露禪院 迎昰公開創法席 師匡維甚力 遂嗣其法 康熙七年(1668) 分座丹露 迨昰公示寂 始主海雲寺 未久遷至海幢寺 後再移駐福州長慶寺 以康熙三十六年入寂 有四會語錄 梵網經註疏等行世 [海雲禪藻集一]
금변(今辯) (?-1697) 청대승. 번우(지금 광동에 속함) 사람. 속성은 맥이며 자는 낙설. 일찍이 양지패를 좇아 과거응시의 글을 배웠으며 자못 문명(文名)이 있었음. 그 후 지패가 입도하여 매양 범전(梵典)과 선리(禪理)로 그를 인도하였고 홀연히 깨치는 바가 있었음. 인하여 행각승을 따라 광려에 이르러 천연하선사(天然昰禪師)를 참알했으며 그를 좇아 체염했음. 순치 17년(1660) 뇌봉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그리고 금석이 단로선원을 열어 하공(昰公)을 영접해 법석을 개창하게 하자 스님이 광유(匡維; 바르게 유지함)하는 데 매우 힘썼으며 드디어 그의 법을 이었음. 강희 7년(1668) 단로에서 분좌했고 하공이 시적함에 이르러 비로소 해운사를 주지(主持)했음. 오래지 않아 옮겨 해당사애 이르렀다가 후에 다시 복주 장경사로 이주했으며 강희 36년 입적했음. 4회의 어록과 범망경주소 등이 있어 세상에 유행함 [해운선조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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