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明帝】 (27-75) 東漢王公 卽劉莊 光武帝第四子 在位十八年 東漢永平(58-75)間 夜夢金人 乃問羣臣 太史傅毅以天竺佛對 帝遣中郞將蔡愔 博士秦景 王遵等十八人使天竺 寫浮圖遺範 乃與沙門迦葉摩騰 竺法蘭東還抵洛陽 館於鴻臚寺 愔還 以白馬負經而至 因立白馬寺於洛城之西 爲中國僧寺之始 [佛祖歷代通載五 佛法金湯編一 梁高僧傳一] ▲禪燈世譜一 二十祖闍夜多 北天竺國人 遇鳩摩羅多 聞其所說 業通三世 感悟出家得法 漢明帝世 以首倒植奄然而化
한명제(漢明帝) (27-75) 동한의 왕공이니 곧 유장(劉莊). 광무제의 제4자며 재위는 18년. 동한 영평(58- 75) 간 금인(金人)을 밤에 꿈꾸고는 이에 군신에게 묻자 태사 부의(傅毅)가 천축의 불타로 응대했음. 명제가 중랑장 채음(蔡愔)ㆍ박사 진경(秦景)ㆍ왕준(王遵) 등 18인을 천축에 사자로 파견하여 부도(浮圖)의 유범(遺範)을 서사하게 했음. 이에 사문 가섭마등(迦葉摩騰)ㆍ축법란(竺法蘭)과 더불어 동환(東還)하여 낙양에 다다랐고 홍려시(鴻臚寺)에 묵었음(館). 채음이 돌아오면서 백마에 경을 짊어지고 이른지라 인하여 백마사를 낙성(洛城)의 서쪽에 세웠으니 중국 승사(僧寺)의 시작이 되었음 [불조역대통재5. 불법금탕편1. 양고승전1]. ▲선등세보1. 20조 사야다(闍夜多). 북천축국 사람이다. 구마라다를 만나 그의 설한 바를 듣고 업이 3세(世)에 통했고 감오(感悟)하여 출가했고 득법했다. 한명제(漢明帝) 시대 머리를 거꾸로 세우고(植) 엄연(奄然)히 화(化)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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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目杲】 淸代臨濟宗僧行杲 字漢目 詳見行杲
한목고(漢目杲) 청대 임제종승 행고의 자가 한목이니 상세한 것은 행고(行杲)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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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武帝】 漢武帝劉徹(前156-前87) 西漢第七位皇帝 傑出的政治家 戰略家 詩人 [百度百科] ▲祖庭事苑五 漢武帝至中嶽 翌日親登崇高 御史乘屬在廟旁 吏卒盛聞呼萬歲者三 山呼萬歲者 自漢武始也
한무제(漢武帝) 한무제 유철(劉徹; 前 156-前 87)이니 서한 제7위 황제. 걸출한 정치가ㆍ전략가ㆍ시인 [백도백과]. ▲조정사원5. 한무제(漢武帝)가 중악(中嶽)에 이르러 다음날 친히 숭고(崇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어사(御史)와 승속(乘屬)이 묘(廟) 곁에 있었는데 이졸(吏卒)이 만세를 부름을 성대하게 들은 것이 세 번이었다(한서6을 보라). 산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한무제로부터 비롯했다.
【翰墨】 文章也 ▲五家正宗贊二佛鑒懃 祖(五祖法演)令掌翰墨
한묵(翰墨) 문장임. ▲오가정종찬2 불감근. 조(오조법연)가 한묵(翰墨)을 관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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