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八一】吉州*禾山*澄源*無殷禪師 垂語云 習學謂之聞 絶學謂之鄰 過此二者 是爲眞 僧問 如何是眞 師云 解打鼓 問 如何是眞諦 師云 解打鼓 問 卽心卽佛 卽不問 如何是非心非佛 師云 解打鼓 問 向上人來 如何接 師云 解打鼓
雪竇顯頌 *一拽石二般土 發機須是千鈞弩 象骨老師曾輥毬 爭似禾山解打鼓 報君知莫莽鹵 甛者甛兮苦者苦
投子靑頌 布毛拈處費人言 爭似禾山一句傳 打鼓一聲喧宇宙 冰寒千丈忽生蓮
大覺璉頌 前兩通後兩通 普天匝地喧鼕鼕 傍家側耳俱如聾 三更月上蓮花宮 含霜千古鳴天風 嗚㖿作麽無 曉光先照扶桑東
智海逸頌 一二三四五 禾山解打鼓 觀音妙智力 能救世間苦
心聞賁頌 無日無時不自由 鼕鼕打鼓未能休 也知有意相呼召 爭奈無人敢出頭
五祖戒拈 禾山 只解愼初 不解護末
枯木成上堂擧此話云 諸仁者 這僧問旣不同 禾山因甚麽答無異語 諸人還辨明得麽 若也辨明得去 方見禾山 終日言談語論 不曾動著唇吻 其或未然 切忌顢頇佛性 儱侗眞如 〈叅〉
心聞賁上堂擧此話至眞 師云 旣曰過此二者 又指什麽作眞 還會麽 *肇法師 化作秋風在林間 樹下經行坐臥 汝等諸人 自己分上 切不得動着 動着 便見黃葉紛飛
●第一一八一則; 碧巖錄第四十四則 禾山垂示云 習學謂之聞 絕學謂之隣 過此二者 是爲眞過 此一則語 出寶藏論 學至無學 謂之絕學 所以道 淺聞深悟 深聞不悟 謂之絕學 一宿覺道 吾早年來積學問 亦曾討疏尋經論 習學旣盡 謂之絕學無爲閑道人 及至絕學 方始與道相近 直得過此二學 是謂眞過 其僧也不妨明敏 便拈此語問禾山 山云 解打鼓 所謂言無味語無味 欲明這箇公案 須是向上人 方能見此語 不涉理性 亦無議論處 直下便會 如桶底脫相似 方是衲僧安穩處 始契得祖師西來意 所以雲門道 雪峰輥毬 禾山打鼓 國師水碗 趙州喫茶 盡是向上拈提 又問 如何是眞諦 山云 解打鼓 眞諦更不立一法 若是俗諦萬物俱備 眞俗無二 是聖諦第一義 又問 卽心卽佛卽不問 如何是非心非佛 山云 解打鼓 卽心卽佛卽易求 若到非心非佛卽難 少有人到 又問 向上人來時如何接 山云 解打鼓 向上人卽是透脫灑落底人 此四句語諸方以爲宗旨 謂之禾山四打鼓 只如僧問鏡淸 新年頭還有佛法也無 淸云 有 僧云 如何是新年頭佛法 淸云 元正啓祚萬物咸新 僧云 謝師答話 淸云 老僧今日失利 似此答話 有十八般失利 又僧問淨果大師 鶴立孤松時如何 果云 脚底下一場懡㦬 又問雪覆千山時如何 果云 日出後一場懡㦬 又問 會昌沙汰時 護法神向什麽處去 果云 三門外兩箇漢一場懡㦬 諸方謂之三懡㦬 又保福問僧 殿裏是什麽佛 僧云 和尙定當看 福云 釋迦老子 僧云 莫瞞人好 福云 却是爾瞞我 又問僧云 爾名什麽 僧云 咸澤 福云 或遇枯涸時如何 僧云 誰是枯涸者 福云 我 僧云 和尙莫瞞人好 福云 却是爾瞞我 又問僧 爾作什麽業 喫得恁麽大 僧云 和尙也不小 福作蹲身勢 僧云 和尙莫瞞人好 福云 却是爾瞞我 又問浴主 浴鍋闊多少 主云 請和尙量看 福作量勢 主云 和尙莫瞞人好 福云 却是爾瞞我 諸方謂之保福四瞞人 又如雪峰四漆桶 皆是從上宗師 各出深妙之旨接人之機
●禾山; 位於江西省吉安府泰和縣西北 此山盛産嘉禾 故稱禾山 山景七十一奇峰累累 其最高峰稱赤面峰 赤面峰下有禾山寺(又稱甘露寺) 古來爲禪宗著名道場之一 巖頭全奯法嗣慧宗 九峰道虔法嗣無殷(884-960) 黃龍慧南法嗣德普(1025-1091) 死心悟新法嗣慧方(629-695)等 諸禪師 先後弘法於此 世人每冠以禾山二字稱其法號 [大明一統志五十六 大淸一統志二四九 讀史方輿紀要八十七] ○指五代僧無殷 初住禾山
●澄源; 無殷禪師號 南唐後主賜號澄源禪師
●無殷; (884-960) 五代僧 福州(今屬福建)人 姓吳氏 七歲依雪峰眞覺大師出家 年滿受戒 遊方抵筠陽謁九峰道虔 峰許入室 初住吉州(今江西吉安)禾山大智院 歷住揚州祥光院 江西翠巖院 上藍院復虛其室 南唐後主命師來往闡化 號澄源禪師 建隆元年庚申三月二日示寂 諡法性禪師 [傳燈錄十七 釋氏通鑑十二]
●一拽石二般土下; 碧巖錄第四十四則云 歸宗一日 普請拽石 宗問維那 什麼處去 維那云 拽石去 宗云 石且從汝拽 卽不得動著中心樹子 木平凡有新到至 先令般三轉土 木平有頌 示衆云 東山路窄西山低 新到莫辭三轉泥 嗟汝在途經日久 明明不曉却成迷 後來有僧問云 三轉內卽不問 三轉外事作麼生 平云 鐵輪天子寰中勅 僧無語 平便打 所以道 一拽石二般土 發機須是千鈞弩 雪竇以千鈞之弩喩此話 要見他爲人處 三十斤爲一鈞 一千鈞則三萬斤 若是獰龍虎狼猛獸 方用此弩 若是鷦鷯小可之物 必不可輕發 所以千鈞之弩 不爲鼷鼠而發機 象骨老師曾輥毬 卽雪峯一日見玄沙來 三箇木毬一齊輥 玄沙便作斫牌勢 雪峯深肯之 雖然總是全機大用處 俱不如禾山解打鼓 多少徑截 只是難會 所以雪竇道 爭似禾山解打鼓 又恐人只在話頭上作活計 不知來由 莽莽鹵鹵 所以道 報君知莫莽鹵 也須是實到這般田地始得 若要不莽鹵 甜者甜兮苦者苦 雪竇雖然如是拈弄 畢竟也跳不出
●肇法師; 僧肇法師 見上第二○九則肇
【一一八一】 길주 화산(*禾山) 징원(*澄源) 무은선사(*無殷禪師)가 수어(垂語)해 이르되 습학(習學)을 일러 문(聞)이라 하고 절학(絶學)을 일러 인(隣)이라 하나니 이 둘을 초과하는 것이라야 이것이 진(眞)이 된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진(眞)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안다(解打鼓). 묻되 무엇이 이 진제(眞諦)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안다. 묻되 즉심즉불(卽心卽佛)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비심비불(非心非佛)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안다. 묻되 향상인(向上人)이 올 때 어떻게 접인(接引)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안다.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1은 예석이며 2는 반토(*一拽石二般土)니/ 발기(發機; 發矢機)는 반드시 이 천균노(千鈞弩)라야 한다/ 상골노사(象骨老師)가 일찍이 곤구(輥毬)했지만/ 어찌 화산(禾山)의 해타고(解打鼓)와 같겠는가/ 그대에게 알려 알게 하나니 망로(莽鹵)하지 말아라/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
투자청(投子靑)이 송하되 포모(布毛)를 집은 곳은 사람의 언어를 소비하나니/ 어찌 화산이 1구로 전함만 같으랴/ 타고(打鼓)하는 일성(一聲)이 우주를 떠들썩하게 하나니/ 얼음의 차갑기가 천장千丈(千丈)인데 홀연히 연화를 피우네.
대각련(大覺璉)이 송하되 앞에서 양통(兩通)하고 뒤에서 양통하니/ 온 하늘 온 땅(普天匝地)이 떠들썩하게 동동(鼕鼕)한다/ 방가(傍家)가 귀를 기울이지만 모두 귀머거리 같고/ 3경에 달이 연화궁(蓮花宮)에 올랐다/ 서리를 머금고 천고(千古)에 천풍(天風)을 울리나니/ 오야(嗚㖿; 小兒의 말)가 어떻게 없겠는가/ 효풍(曉光)이 먼저 부상(扶桑)의 동쪽을 비춘다.
지해일(智海逸)이 송하되 일이삼사오/ 화산의 해타고(解打鼓)다/ 관음의 묘지력(妙智力)이/ 능히 세간고(世間苦)를 구제한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하되 자유가 아닌 날이 없고 시도 없나니(無日無時不自由)/ 동동(鼕鼕) 타고(打鼓)하며 능히 쉬지 않는다/ 뜻이 있어 서로 호소(呼召)하는 줄 또한 알지만/ 감히 출두하는 사람이 없음을 어찌하리오.
오조계(五祖戒)가 염하되 화산은 다만 처음(初)을 삼갈 줄만 알고 끝(末)을 호석(護惜)할 줄 알지 못했다.
고목성(枯木成)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제인자(諸仁者)여 이 중의 질문이 이미 부동(不同)하거늘 화산이 무엇 때문에 답에 이어(異語)가 없느냐. 제인이 도리어 변명함을 얻겠느냐. 만약에 변명함을 얻는다면 바야흐로 화산을 보아서 종일 언담어론(言談語論)해도 일찍이 입술을 동착하지 않겠지만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불성을 만한(顢頇; 糊塗)하고 진여를 농동(儱侗; 模糊)함을 간절히 꺼리노라. 〈참(叅)하라〉.
심문분(心聞賁)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어 至진(眞). 스님이 이르되 이미 가로되 이 2자(者)를 초과했거늘 또 무엇을 가리켜 진(眞)이라 하느냐. 도리어 아느냐. 조법사(*肇法師)가 추풍을 화작(化作)해 임간(林間)에 있으면서 나무 아래 경행(經行)하며 좌와(坐臥)한다. 너희 등 제인은 자기 분상(分上)에 간절히 동착(動着)함을 얻지 말지니 동착하면 황엽(黃葉)이 분비(紛飛)함을 보리라.
●第一一八一則; 벽암록 제44칙. 화산(禾山)이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습학(習學)을 문(聞)이라고 이르고 절학(絕學)을 린(隣)이라고 이르나니 이 2자(者)를 초과(過)해야 이것이 진과(眞過)가 된다 하니 이 1칙의 말은 보장론(寶藏論)에 나온다. 학(學)이 무학(無學)에 이른 것을 절학(絕學)이라고 이르는지라 소이로 말하되 얕은 이가 들으면 깊이 깨치지만 깊은 이가 들으면 깨치지 않는다 하니 이를 일러 절학이라 한다. 일숙각(一宿覺; 永嘉玄覺)이 말하되 내가 조년(早年; 젊은 나이) 이래로 학문을 쌓았으며 또한 일찍이 소(疏)를 찾고 경론을 찾았다(이상 2구는 증도가의 글) 하니 습학이 이미 다한 것을 절학무위(絕學無爲)의 한도인(閑道人)이라고 이르며 절학에 이르러야(及至) 비로소(方始) 도와 서로 가깝거니와 바로 이 2학(習學과 絕學)을 초과함을 얻어야 이를 진과(眞過)라고 이른다. 그 중도 명민(明敏)함에 방애되지 않아 곧 이 말을 집어 화산에게 묻자 화산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아는 것이다 하니 이른 바 언(言)도 무미(無味)하고 어(語)도 무미하다. 이(這箇) 공안을 밝히려고 할진대 바야흐로 이 향상인(向上人)이라야 비로소 능히 이 말을 보고 이성(理性)에 건너지 않으며 또한 의논처(議論處)가 없어서 직하(直下: 즉각)에 곧 이회함이 마치 통 밑바닥이 빠짐과 상사하리니 바야흐로 이 납승의 안온처(安穩處)며 비로소 조사서래의에 계득(契得; 得은 조사)하리라. 소이로 운문이 말하되 설봉의 곤구(雪峰輥毬)ㆍ화산의 타고(禾山打鼓)ㆍ국사의 수완(國師水碗)ㆍ조주의 끽다(趙州喫茶)는 모두 이 향상의 염제(拈提)다 하였다. 또 묻되 무엇이 이 진제(眞諦)입니까. 화산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아는 것이다 하니 진제(眞諦)는 다시는 1법도 세우지 않음이며 만약 이 속제(俗諦)일진대 만물을 구비함이거니와 진속(眞俗)이 둘이 없음이 이 성제(聖諦)의 제1의(第一義)다. 또 묻되 즉심즉불(卽心卽佛)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비심비불(非心非佛)입니까. 화산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아는 것이다 하니 즉심즉불은 곧 구하기가 쉽지만 만약 비심비불에 이른다면 곧 어려워서 이르는(到) 사람이 조금 있다. 또 묻되 향상인이 올 때 어떻게 접인합니까. 화산이 이르되 북을 칠 줄 아는 것이다 하니 향상인은 즉시(卽是) 투탈(透脫)하여 쇄락(灑落)한 사람이다. 이 4구어(句語)를 제방에서 종지로 삼으며 이를 일러 화산의 사타고(四打鼓)라 한다. 지여(只如) 중이 경청(鏡淸)에게 묻되 신년두(新年頭)에도 도리어 불법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경청이 이르되 있다. 중이 이르되 무엇이 이 신년두의 불법입니까. 경청이 이르되 원정(元正; 1월 1일)에 계조(啓祚; 祚는 복)하니 만물이 모두 새롭다. 중이 이르되 스님의 답화(答話)에 감사합니다. 경청이 이르되 노승이 금일 실리(失利)했다. 이와 흡사한 답화에 18반(般; 가지)의 실리가 있다. 또 중이 정과대사(淨果大師)에게 묻되 학이 고송(孤松)에 섰을 때는 어떻습니까. 정과가 이르되 발바닥 아래가 일장마라(一場懡㦬; 한바탕의 부끄러움)다. 또 묻되 눈이 천산(千山)을 덮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정과가 이르되 일출 후에 일장마라다. 또 묻되 회창사태(會昌沙汰) 때 호법신은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정과가 이르되 삼문 밖 양개한(三門外兩箇漢)이 일장마라다. 제방에서 이를 일러 3마라(懡㦬)라 한다. 또 보복(保福)이 중에게 묻되 전리(殿裏; 佛殿 속)는 이 무슨 부처냐. 중이 이르되 화상이 정당(定當; 判明)해 보십시오. 보복이 이르되 석가노자(釋迦老子)다. 중이 이르되 사람을 속이지(瞞人)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보복이 이르되 도리어 이 네가 나를 속이는구나. 또 중에게 물어 이르되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중이 이르되 함택(咸澤)입니다. 보복이 이르되 혹 고후(枯涸; 枯渴)를 만났을 땐 어떻게 하겠는가. 중이 이르되 누가 이 고후자(枯涸者)입니까. 보복이 이르되 나다. 중이 이르되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보복이 이르되 도리어 이 네가 나를 속이는구나. 또 중에게 묻되 너는 무슨 업을 지었기에 이렇게 거대(大)함을 끽득(喫得)했느냐. 중이 이르되 화상도 작지 않습니다. 보복이 몸을 구부리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이르되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보복이 이르되 도리어 이 네가 나를 속이는구나. 또 욕주(*浴主)에게 묻되 욕과(浴鍋; 鍋는 솥의 일종)의 넓이가 얼마인가. 욕주가 이르되 청컨대 화상이 재어 보십시오. 보복이 재는 자세를 지었다. 욕주가 이르되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보복이 이르되 도리어 이 네가 나를 속이는구나. 제방에서 이를 일러 보복의 4만인(瞞人)이라 한다. 또 설봉의 사칠통(雪峰四漆桶)과 같나니 모두 이 종상(從上)의 종사가 각기 심묘한 지취(旨趣)를 내어 접인(接人)한 기(機)다.
●禾山; 강서성 길안부 태화현 서북에 위치함. 이 산에는 가화(嘉禾)가 성하게 생산되므로 고로 명칭이 화산(禾山)임. 산의 경치는 71기봉(奇峰)이 누루(累累)하고 그 최고봉은 명칭이 적면봉이며 적면봉 아래 화산사(禾山寺; 또 명칭이 감로사)가 있는데 고래로 선종의 저명한 도량의 하나가 됨. 암두전활의 법사 혜종(慧宗)ㆍ구봉도건의 법사 무은(無殷; 884-960)ㆍ황룡혜남의 법사 덕보(德普; 1025-1091)ㆍ사심오신의 법사 혜방(慧方; 629-695) 등 여러 선사가 선후로 여기에서 홍법했으며 세인이 매양 화산 2자를 씌워 그의 법호(法號)를 일컬음 [대명일통지56. 대청일통지249. 독사방여기요87]. ○오대승 무은(無殷) 가리킴. 처음 화산에 거주했음.
●澄源; 무은선사(無殷禪師)의 호. 남당(南唐) 후주(後主)가 사호(賜號)하여 징원선사(澄源禪師)라 했음.
●無殷; (884-960) 오대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이며 성은 오씨. 7세에 설봉진각대사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나이가 차자 수계했음. 유방(遊方)하다가 균양에 다다라 구봉도건(九峰道虔)을 예알하자 구봉이 입실을 허가했음. 처음은 길주(지금의 강서 길안) 화산 대지원에 주(住)했고 양주 상광원ㆍ강서ㆍ취암원을 역주(歷住)했음. 상람원에서 다시 그 실(室)을 비우고 남당후주(南唐後主)가 스님에게 명하여 내왕하여 천화(闡化)하게 하고 호를 징원선사(澄源禪師)라 했음. 건륭 원년 경신 3월 2일에 시적했음. 시호가 법성선사 [전등록17. 석씨통감12].
●一拽石二般土下; 벽암록 제44칙에 이르되 귀종(歸宗)이 어느 날 보청(普請)하여 예석(拽石; 돌을 끌어당김)했다. 귀종이 유나(維那)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유나가 이르되 예석(拽石)하러 갑니다. 귀종이 이르되 돌은 다만(且) 너의 끄는 대로 좇겠지만 곧 중심의 수자(樹子)는 동착(動著)함을 얻지 말아라 했다. 목평(木平)은 무릇 신도(新到; 新到僧)가 이름(至)이 있으면 먼저 삼전토(三轉土; 轉은 量詞. 곧 세 짐의 흙)를 운반하게 했다. 목평이 송이 있으니 시중(示衆)해 이르되 동산의 길은 좁고 서산은 낮으니/ 신도(新到)는 세 짐의 진흙을 사양하지 말아라/ 슬프다, 너희가 길에 있으면서 경과한 날이 오래로되/ 밝디밝게 깨치지 못해 도리어 미혹을 이루었다. 후래에 어떤 중이 물어 이르되 3전(轉) 안은 곧 묻지 않습니다. 3전 밖의 일은 어떻습니까. 목평이 이르되 철륜천자(鐵輪天子)의 환중(寰中)의 칙령이다. 중이 말이 없자 목평이 곧 때렸다. 소이로 말하되 하나는 예석이며 둘은 반토(一拽石二般土)라 하였다. 발기(發機)는 모름지기 이 천균노(千鈞弩)라야 한다 하니 설두가 천균(千鈞)의 쇠뇌(弩)로써 차화(此話)에 비유함은 그(화산)의 사람 위하는 곳을 보이고자(見) 함이다. 30근(斤)이 1균(鈞)이 되니 1천 균은 곧 3만 근이다. 이에(若) 이 영룡(獰龍)이나 호랑(虎狼; 범과 이리)이나 맹수라야 바야흐로 이 쇠뇌를 쓰고 만약 이 초료(鷦鷯; 뱁새)나 소가지물(小可之物)이라면 반드시 경발(輕發)함이 옳지 않는지라 소이로 천균지노(千鈞之弩)는 해서(鼷鼠; 새양쥐)를 위해 발기하지 않는다. 상골노사(象骨老師)가 일찍이 곤구(輥毬; 공을 굴림)하였지만 이라 함은 곧 설봉이 어느 날 현사가 오는 것을 보고 3개의 목구(木毬)를 일제히 굴리니 현사가 곧 작패세(斫牌勢)를 짓자 설봉이 깊이 그를 긍정하였다. 비록 그러히 모두 이 전기(全機)를 대용(大用)하는 곳이긴 하지만 모두 화산의 해타고만 같지 못하다 하면 다소의 경절(徑截; 直截)이므로 다만 이 이회하기 어려운지라 소이로 설두가 말하되 어찌 화산의 해타고(解打鼓; 북을 칠 줄 알다)와 같으리오 하였다. 또 사람들이 다만 화두상(話頭上)에 있으면서 활계를 짓고 내유(來由)를 알지 못해 망망노로(莽莽鹵鹵)할까 염려하여 소이로 말하되 그대에게 알려 알게 하나니 망로(莽鹵)하지 말아라 하니 또한 모름지기 이는 실로 이런 종류(這般)의 전지(田地; 경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옳다. 만약 망로하지 않고자 한다면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 하여 설두가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이 염롱(拈弄)하지만 필경에 또한 뛰어 벗어나지 못한다.
●肇法師; 승조법사(僧肇法師)니 위 제209칙 조(肇)를 보라.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30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문염송집 권26 제1183칙 (0) | 2022.03.15 |
---|---|
선문염송집 권26 제1182칙 (0) | 2022.03.15 |
선문염송집 권26 제1180칙 (0) | 2022.03.15 |
선문염송집 권26 제1179칙 (0) | 2022.03.14 |
선문염송집 권26 제1178칙 (0) | 2022.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