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天寺】 位於江蘇鎭江西北 卽在突出於長江中之金山西麓 據傳創建於東晉元帝或明帝之時 初稱澤心寺 梁武帝於天監四年(505)設水陸大會於此 至宋代 眞宗嘗頒賜大藏經 大中祥符五年(1012)改稱龍遊寺 元代以後則稱爲金山寺 此寺歷代之住僧頗衆 有臨濟宗 曹洞宗 雲門宗等高僧大德駐錫於此 其中 佛印了元住寺期間 蘇東坡常入寺叩問 高麗之義天亦曾來此參學 此外 楊岐宗之圜悟克勤 及天台宗山家派之南屛梵臻等 亦嘗住於此 宋徽宗政和四年(1114) 奉令改爲道觀 然未幾復改爲佛寺 宋明之際 迭有興廢 至淸康熙二十五年(1686) 更名爲江天寺 與高旻寺天寧寺 合稱臨濟三大叢林 自古以來文人墨客來訪者頗多 因地處金山之西 故一般多稱爲金山寺 咸豐三年(1853) 於洪楊之亂時焚毁 光緖初年重建 規模大減 民國三十六年(1947) 又遭火焚 [續傳燈錄二 同四 同五 大淸一統志六十三 中國佛敎史四(蔣維喬)]
강천사(江天寺) 강소 진강의 서북에 위치함. 곧 장강 가운데 돌출한 금산의 서쪽 기슭에 있음. 전(傳)에 의거하자면 동진의 원제 혹은 명제 때 창건했고 처음의 명칭은 택심사였음. 양무제가 천감 4년(505)에 여기에서 수륙대회를 베풀었음. 송대에 이르러 진종이 일찍이 대장경을 반사(頒賜; 하사)하였음. 대중상부 5년(1012) 용유사로 개칭했고 원대 이후는 곧 호칭하여 금산사라 했음. 이 절은 역대에 거주한 승려가 자못 많았음. 임제종ㆍ조동종ㆍ운문종 등의 고승과 대덕이 여기에 주석함이 있었음. 그 중에 불인요원(佛印了元)이 절에 거주하던 기간에 소동파가 늘 입사하여 고문(叩問)하였고 고려의 의천도 또한 일찍이 여기에 와서 참학했음. 이 외에 양기종의 원오극근 및 천태종 산가파의 남병범진 등이 또한 일찍이 여기에 거주했음. 송 휘종 정화 4년(1114) 칙령을 받들어 고쳐 도관(道觀)으로 만들었음. 그러나 오래지 아니하여 다시 고쳐 불사로 만들었음. 송ㆍ명의 즈음에 번갈아들며 흥폐가 있었음. 청 강희 25년(1686)에 이르러 이름을 고쳐 강천사라 했으며 고민사ㆍ천녕사와 더불어 합칭하여 임제 3대 총림이라 했음. 자고이래로 문인과 묵객이 내방한 자가 파다함. 땅이 금산의 서쪽에 처했기 때문에 고로 일반적으로 다분히 금산사로 호칭함. 함풍 3년(1853) 홍양(洪楊)의 난 때 타고 부서졌음. 광서 초년에 중건하였으나 규모는 크게 줄었음. 민국 36년(19 47) 또 불탐을 만났음 [속전등록2, 동4, 동5. 대청일통지63. 중국불교사4(장유교)].
【講聚】 指佛敎講解經義的場所 講堂 ▲五燈會元十九大隨元靜 留講聚有年而南下 首參永安恩禪師
강취(講聚) 불교에서 경의 뜻을 강해(講解)하는 장소를 가리킴. 강당임. ▲오등회원19 대수원정. 강취(講聚)에 머문 지 여러 해에 남하하여 처음으로 영안은선사를 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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