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책진

선관책진(禪關策進) 제조법어절요제일(諸祖法語節要第一) 05

태화당 2025. 10. 5. 09:53

師子峯天如則禪師普說

生不知來處 謂之生大 死不知去處 謂之死大 臘月三十日到來 只落得手忙脚亂 何況前路茫茫 隨業受報 正是要緊事在 這箇是生死報境 若論生死業根 卽今一念隨聲逐色 使得七顚八倒者便是 由是佛祖 運大慈悲 或敎爾參禪 或敎爾念佛 令汝掃除妄念 認取本來面目 做箇洒洒落落大解脫漢 而今不獲靈驗者 有三種病 第一不遇眞善知識指示 第二不能痛將生死大事爲念 悠悠漾漾 不覺打在無事甲裏 第三於世間虛名浮利 照不破 放不下 妄緣惡習上坐不斷 擺不脫 境風扇動處 不覺和身輥入業海中 東飄西泊去 眞正道流 豈肯恁麽 當信祖師道 雜念紛飛 如何下手 一箇話頭 如鐵掃箒 轉掃轉多 轉多轉掃 掃不得 𢬵命掃 忽然掃破太虛空 萬別千差一路通 諸禪德 努力今生須了却 莫敎永劫受餘殃 又有自疑念佛與參禪不同 不知參禪只圖識心見性 念佛者悟自性彌陀唯心淨土 豈有二理 經云 憶佛念佛 現前當來 必定見佛(릉엄경5) 旣曰現前見佛 則與參禪悟道有何異哉 或問云 但將阿彌陀佛四字 做箇話頭 二六時中 直下提撕 至於一念不生 不涉階梯 徑超佛地

天如則; 惟則(?-1354) 又作維則 元代楊岐派僧 吉安永村(今江西吉安)人 俗姓譚 號天如 幼於禾山剃髮 後遊天目山 得法於中峰明本禪師 爲其法嗣 元順帝至正元年(134 1) 住蘇州師子林 翌年 建造菩提正宗寺 大宏臨濟宗風 敕賜佛心普濟文慧大辯禪師及金襴衣 注楞嚴集唐宋之九解 附以補注 此卽楞嚴經會解二十卷 又造楞嚴經圓通疏十卷 復窮究天台永明之敎旨 兼弘淨土敎 著淨土或問 破除淨土敎之疑惑 策進修行 此外 有禪宗語錄 十方界圖說等著述 至正十四年示寂 [五燈會元續略六 釋氏疑年錄九]

手忙脚亂; 又作手脚忙亂 做某事很慌亂的樣子 渾身發抖

七顚八倒; 逆順縱橫自由自在 通達無障礙之意 七或八表示多數 類似用語尙有七縱八橫 七通八達 七凹八凸等

慈悲; 慈愛衆生竝給與快樂(與樂) 稱爲慈 同感其苦 憐憫衆生 竝拔除其苦(拔苦) 稱爲悲 二者合稱爲慈悲 佛陀之悲 乃是以衆生苦爲己苦之同心同感狀態 故稱同體大悲 又其悲心廣大無盡 故稱無蓋大悲(無有更廣更大更上於此悲者)

悠悠漾漾; 閑適 自由自在

浮利; 虛浮的利祿

業海; 謂種種之業 如大海也

道流; 一猶云抱道者流 禪林中指道人禪流 流 品類也 等輩也 二指道家 此指一

雜念紛飛下; 如淨和尙語錄下 上堂 心念分飛 如何措手 趙州狗子佛性無 只箇無字鐵掃帚 掃處紛飛多 紛飛多處掃 轉掃轉多 掃不得處𢬵命掃 晝夜竪起脊梁 勇猛切莫放倒 忽然掃破太虛空 萬別千差盡豁通

下手; 此指動手 著手

禪德; 對禪宗僧人的尊稱

彌陀; 阿彌陀之略 此云無量壽也

淨土; ()指以菩提修成之淸淨處所 爲佛所居之所 全稱淸淨土 淸淨國土 對此而言 衆生居住之所 有煩惱汚穢 故稱穢土 ()中國佛敎的一箇宗派 崇奉阿彌陀佛 專修往生佛國淨土 以念佛爲修行實踐 亦簡稱淨 此指()

或問; 文體的一種 用問答體以說明論點

阿彌陀; <> Amita 慧琳音義二十七 阿彌陀 梵語也 阿弭多那庚沙 此云無量壽也

佛地; ()通敎十地之第十位 謂第九地之菩薩最後頓斷煩惱所知二障之習氣而成道之位也 ()寺院 此指()

階梯; 指臺階和梯子 比喩進身的憑借或途徑

 

사자봉(師子峯) 천여칙(天如則) 선사(禪師) 보설(普說)

태어나서() 온 곳을 알지 못하니 이를 일러 생대(生大)라 하고 죽어서() 가는 곳을 알지 못하니 이를 일러 사대(死大)라 한다. 납월 30(臘月三十日; 死期)이 도래(到來)하면 다만 수망각란(手忙脚亂)에 떨어짐을 얻거늘 어찌 하물며 전로(前路)가 망망(茫茫)하고 업() 따라 수보(受報)함이겠는가. 바로() 이 요긴(要緊)한 일이 있음이니 저개(這箇; 이것)가 이 생사(生死)의 보경(報境)이다. 만약 생사(生死)의 업근(業根)을 논하자면 즉금(卽今) 일념(一念)이 수성축색(隨聲逐色)하며 칠전팔도(七顚八倒)를 부림(使)을 얻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불조(佛祖)가 대자비(慈悲)를 운행(運行; )하여 혹 너희()로 하여금 참선(參禪)하게 하고 혹 너희로 하여금 염불(念佛)하게 하여 너희로 하여금망념(妄念)을 소제(掃除)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인취(認取)하여 저() 쇄쇄낙락(洒洒落落)한 대해탈한(大解脫漢)을 짓게() 했거니와 이금(而今)에 영험(靈驗)을 얻지 못하는 자는 세 가지 병()이 있다. 첫째(第一) 진선지식(眞善知識)의 지시(指示)를 만나지 못했다. 둘째(第二) 능히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통렬(痛烈; )히 가져서() 상념(想念; )하지 않고 유유양양(悠悠漾漾)하면서 불각(不覺)에 무사갑리(無事甲裏)에 타재(打在; 있다. 前綴)한다. 셋째(第三) 세간의 허명부리(虛名浮利)를 비추어 깨뜨리지 못하고 놓아 내리지 못하고 망연(妄緣)과 악습상(惡習上)에서 앉혀 끊지 못하고(坐不斷) 털어 벗어나지 못하고(擺不脫) 경풍(境風)이 선동(扇動; 煽動과 같은 뜻)하는 곳에 불각(不覺)에 몸마저(和身) 업해(業海) 중에 곤입(輥入)하여 동표서박(東飄西泊; 동쪽에서 나부끼고 서쪽에 머물다)하여 가나니 진정(眞正)한 도류(道流)가 어찌 이러함(恁麽)을 수긍하리오. 조사(祖師)의 말씀을 마땅히 믿어라. 잡념이 분비하면(雜念紛飛) 어떻게 하수(下手)하느냐. 일개(一箇)의 화두가 철소추(鐵掃箒)와 같다. 쓸수록 더욱 많나니(轉掃轉多) 많을수록 더욱 쓸고 쓺()을 얻지 못하면 목숨을 버려(𢬵) 쓸어라. 홀연히 태허공(太虛空)을 쓸어 깨뜨리면 만별천차(萬別千差)가 일로(一路)로 통한다(以上 如淨語). 제선덕(諸禪德)이여 노력(努力)하여 금생에 꼭() 요각(了却)할지니 영겁(永劫)에 여앙(餘殃)을 받게 하지 말아라. 또 스스로 염불과 참선이 부동(不同)하다고 하는 이가 있거니와 참선은 다만 식심(識心; 마음을 알다)하여 견성(見性)을 도모(圖謀; )하고 염불하는 자는 자성미타(自性彌陀)와 유심정토(唯心淨土)를 깨치는 줄 알지 못하나니 어찌 이리(二理)가 있겠는가. 경에 이르되 억불(憶佛)하고 염불하면 현전(現前; 目前. 眼前)이나 당래(當來)에 필정(必定)코 견불(見佛)한다(릉엄경5). 이미 가로되 현전(現前)에 견불한다 했거늘 곧 참선하여 오도(悟道)함과 무슨 다름이 있겠는가. 혹문(或問)에 답해 이르되 단지 아미타불(阿彌陀) 4()를 가지고 저() 화두를 지어 이륙시중(二六時中)에 직하(直下)에 제시(提撕; 참구)하되 일념이 나지() 않음에 이른다면 계제(階梯)에 건너지 않고 곧바로() 불지(佛地)를 초월하리라.

天如則; 유칙(惟則; ?-1354)이니 또 유칙(維則)으로 지음. 원대(元代) 양기파승. 길안 영촌(지금의 강서 길안) 사람이니 속성은 담()이며 호는 천여(天如). 어릴 적에 화산(禾山)에서 머리를 깎았으며 후에 천목산(天目山)을 유람하다가 중봉명본선사(中峰明本禪師)에게서 법을 얻었으며 그의 법사가 되었음. 원 순제(順帝) 지정 원년(1341) 소주(蘇州) 사자림(師子林)에 거주했고 다음해 보리정종사(菩提正宗寺)를 건조(建造)했으며 임제종풍을 대굉(大宏)했음. 불심보제문혜대변선사 및 금란의(金襴衣)를 칙사(敕賜)했음. 당ㆍ송의 9() 릉엄집(楞嚴集)을 주()하고 보주(補注)를 붙였으니 이것이 곧 릉엄경회해(楞嚴經會解) 20권임. 또 릉엄경원통소(楞嚴經圓通疏) 10권을 지었으며 다시 천태와 영명(永明)의 교지(敎旨)를 궁구했으며 겸하여 정토교(淨土敎)를 넓혔음(). 정토혹문(淨土或問)을 지어 정토교의 의혹을 파제(破除)하여 수행을 책진(策進)했음. 이 밖에 선종어록ㆍ시방계도설(十方界圖說)등의 저술이 있음. 지정 14년에 시적했음 [오등회원속략6. 석씨의년록9].

手忙脚亂; 또 수각망란(手脚忙亂)으로 지음. 어떤 일을 지으면서 몹시 황란(慌亂; 정신이 얼떨떨하고 뒤숭숭함)한 양자니 온몸으로 발두(發抖; 덜덜 떨다)함임.

七顚八倒;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7 8은 다수를 표시함. 유사용어에 오히려 칠종팔횡ㆍ칠통팔달ㆍ칠요팔철(七凹八凸) 등이 있음.

慈悲; 중생을 자애(慈愛)하면서 아울러 쾌락을 급여(給與)함을(與樂) 일컬어 자()라 하고 그 고통에 동감(同感)하여 중생을 연민하고 아울러 그 고통을 발제(拔除)함을(拔苦) 일컬어 비()라 함. 2자의 합칭이 자비가 됨. 불타의 비()는 곧 이 중생의 고()를 자기의 고로 삼는 동심동감(同心同感)의 상태인지라 고로 명칭이 동체대비(同體大悲). 또 그 비심(悲心)이 광대무진한지라 고로 명칭이 무개대비(無蓋大悲; 보다 更廣更大更上할 게 있지 않는 것).

悠悠漾漾; 한적(閑適). 자유자재.

浮利; 허부(虛浮)의 이록(利祿).

業海; 이르자면 갖가지 업이 대해와 같음임.

道流; 1. 포도(抱道)한 자의 무리라고 이름과 같음. 선림 중에선 도인선류(道人禪流)를 가리킴. ()는 품류임. 등배(等輩). 2. 도가(道家)를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雜念紛飛下; 여정화상어록하(如淨和尙語錄下) 상당(上堂) 심념(心念)이 분비(分飛)하면 어떻게 조수(措手)하느냐. 조구구자불성무(趙州狗子佛性無), 다만 이() 무자(無字)는 철소추(鐵掃帚). 소처(掃處)에 분비(紛飛)가 많으니 분비가 많은 곳을 쓸어라(). 더욱 쓸수록 더욱 많나니(轉掃轉多) ()을 얻지 못하는 곳에 목숨을 버려서(𢬵) 쓸어라. 주야로 척량(脊梁)을 세워 일으키고 용맹하게 간절히 방도(放倒)하지 말아라. 홀연히 태허공(太虛空)을 쓸어 깨뜨리면 만별천차(萬別千差)가 모두 휑하게 통하리라.

下手; 여기에선 동수(動手), 착수(著手)를 가리킴.

禪德; 선종 승인에 대한 존칭.

彌陀; 아미타의 약칭. 여기에선 이르되 무량수임.

淨土; (1). 보리(菩提)로 수성(修成)한 청정한 처소를 가리킴. 불타가 거주하는 바의 처소가 됨. 전칭이 청정토ㆍ청정국토니 이에 상대해 말하면 중생이 거주하는 처소는 번뇌의 오염이 있으므로 고로 명칭이 예토(穢土). (2). 중국불교의 일개 종파니 아미타불을 숭봉(崇奉)하며 불국정토에 왕생함을 전수(專修)하면서 염불로써 수행의 실천으로 삼음. 또한 간칭이 정().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或問; 문체(文體)의 일종. 문답체(問答體)를 써서 논점(論點)을 설명(說明).

阿彌陀; <> Amita. 혜림음의27. 아미타(阿彌陀) 범어임. 아미다나경사(阿弭多那庚沙)는 여기에선 이르되 무량수임.

佛地; (1). 통교 10지의 제10. 이르자면 제9지의 보살이 최후에 번뇌ㆍ소지(所知) 2()의 습기를 문득 끊고 성도하는 위(). (2). 사원(寺院).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階梯; 대계(臺階; 계단)와 제자(梯子; 사다리)를 가리킴. 몸을 나아가게 하는 빙차(憑借; 의지하여 기댐) 혹 도경(途徑)에 비유함.

 

智徹禪師淨土玄門

念佛一聲 或三五七聲 默默返問 這一聲佛 從何處起 又問這念佛的是誰 有疑只管疑去 若問處不親 疑情不切 再擧箇畢竟這念佛的是誰 於前一問 少問少疑 只向念佛是誰 諦審諦問

評曰 徑無前問 只看這念佛的是誰亦得

前問; 這一聲佛 從何處起

 

지철(智徹; 未詳) 선사(禪師) 정토현문(淨土玄門)

염불(念佛)1()하거나 혹 3, 5, 7()하고 묵묵히 반문(返問)하되 저(; ) 일성불(一聲佛)은 어느 곳으로 좇아 일어나는가. 또 묻되 저() 염불하는 것()은 이 누구인가(). 의심이 있으면 다만 관대(管帶; )하여 의심해 가거니와 만약 문처(問處)가 친절(親切; )하지 않으면 의정(疑情)이 간절(懇切; )하지 않나니 이()를 재거(再擧)하되 필경 저() 염불하는 것()은 이 누구인가. 앞의 일문(一問)에 물음이 적어지고 의심이 적어지면(少問少疑) 다만 염불은 이 누구인가를 향해 자세히 살피고(諦審) 자세히 물어라(諦問).

평왈(評曰) 곧바로() 전문(前問)을 없애고() 다만 간()하되 저() 염불하는 것()은 이 누구인가 해도 또한 옳다().

前問; () 일성불(一聲佛)은 어느 곳으로 좇아 일어나는가.

 

汝州香山無聞聰禪師普說

山僧初見獨翁和尙 令參不是心不是佛不是物 後同雲峯月山等六人 立願互相究竟 次見淮西敎無能 令提無字 次到長蘆 結伴煉磨 後遇淮上敬兄 問云 爾六七年有甚見地 某答 每日只是心下無一物 敬云 爾這一絡索甚處出來 某心裏似知不知 不敢開口 敬見我做處無省發 乃云 爾定中工夫不失動處便失 某被說著 心驚便問 畢竟明此大事 應作麽生 敬云 爾不聞川老子道 要知端的意 北斗面南看 說了便去 某被一問直得 行不知行 坐不知坐 五七日間 不提無字 倒只看要知端的意 北斗面南看 忽到淨頭寮 在一木上 與衆同坐 只是疑情不解 有飯食頃 頓覺心中空亮輕淸 見情想破裂 如剝皮相似 目前人物 一切不見 猶如虛空 半時省來 通身汗流 便悟得北斗面南看 遂見敬下語作頌 都無滯礙 尙有向上一路 不得洒落 後入香巖山中過夏 被蚊子咬兩手不定 因念古人爲法忘軀 何怖蚊子 盡情放下咬定牙關 揑定拳頭 單提無字 忍之又忍 不覺身心歸寂 如一座屋倒却四壁 體若虛空 無一物可當情 辰時一坐 未時出定 自知佛法不誤人 自是工夫不到 然雖見解明白 尙有微細隱密妄想未盡 又入光州山中 習定六年 陸安山中又住六年 光州山中又住三年 方得頴脫

評曰 古人如是勤辛 如是久遠方得相應 今人以聰明情量 刹那領會 而猶欲自附於頓悟 豈不謬哉

汝州; 今河南省汝州

無聞聰; 思聰 元代臨濟宗僧 字無聞 汝州香山人 初參獨峰 看三不是話 同雲峰月山等六人立盟 互相究竟 復見無能敎 無方普 後逢鐵山瓊 方得穎脫 住汝州香嚴 至元中註金剛經 有紫雲瑞芝之應 [五燈全書五十七 金剛持驗下 續稽古略三]

究竟; 一事理道法至極高深之處 終極永恒的眞理 二畢竟 此指一

淮西; 淮右 爲一地域名稱 宋在蘇北和江淮設淮南東路和淮南西路 淮南東路又稱淮左 淮南西路稱淮右 淮右多山 淮左多水 一般指今江淮地區 [百度百科] 釋氏稽古略三 四祖道信大師尊者 姓司馬氏 世居河內 徙居蘄州廣濟縣 今淮西也

敎無能; 無能敎 元代臨濟宗僧 字無能 名敎 居無爲天寧 嗣眞翁圓 [增集續傳燈錄四 續燈存稾五]

絡索; 絡 纏絲 索 繩索 乃繩索 或語言糾葛不淸之意

作麽生; 又作怎麽生 作麽 作生 作麽 卽何 生 語助辭 有時可作樣字或然字解 本爲宋代俗語 禪宗多用於公案之感歎 或疑問之詞

川老子; 道川 宋代臨濟宗僧 崑山(今屬江蘇)狄氏 初爲縣之弓級 聞東齋謙爲道俗演法 往從之 一日因不職遭笞 忽於杖下大悟 遂辭職 依謙 謙爲改今名 建炎(1127-1130)初 謁天封蹣庵繼成 蒙其認可 歸憩東齋 道俗愈敬 學子請益 依金剛般若撰頌行世 隆興改元(1163) 住無爲軍(安徽)冶父山實際禪院 [普燈錄十七 五燈會元十二 續傳燈錄三十]

淨頭寮; 淨頭 又作圊頭 禪林掌廁所之僧也 淨頭之居所 稱淨頭寮

牙關; 上下牙齗相接處

頴脫; 穎脫 指如錐在囊中而脫出 才能出衆者

刹那 <> kṣaṇa 指極短的時間 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上 一念中有九十刹那 一刹那經九百生滅 諸有爲法悉皆空故 俱舍論十二 如壯士一疾彈指頃 六十五刹那 如是名爲一刹那量

여주(汝州) 향산(香山) 무문총(無聞聰) 선사(禪師) 보설(普說)

산승(山僧)이 처음 독옹화상(獨翁和尙)을 뵙자 불시심(不是心)ㆍ불시불(不是佛)ㆍ불시물(不是物)을 참()하게 했다. 후에 운봉(雲峯)ㆍ월산(月山) 6()과 함께 원()을 세워 호상(互相) 구경(究竟)했다. 다음() 회서(淮西) 교무능(敎無能)을 뵙자 무자(無字)를 들게() 했다. 다음() 장로(長蘆)에 이르러 결반(結伴)하여 연마(煉磨)했다. 후에 회상(淮上; 淮水之上)의 경형(敬兄)을 만나자 물어 이르되 네()6, 7년 동안 무슨 견지(見地)가 있는가. ()가 답하되 매일 다만 이 심하(心下; 心裏. 心中)에 일물(一物)도 없습니다. 경운(敬云) 너의 저(; ) 일낙삭(絡索)이 어느 곳에서 나왔는가. ()가 심리(心裏)에 아는 듯했으나(似知) 알지 못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 나의 주처(做處)에 성발(省發; 領會)이 없음을 보고 이에 이르되 너는 정중(定中)의 공부는 잃지 않으나 동처(動處)에선 바로 잃는다. ()가 설착(說著)함을 입자 마음이 놀라 바로 묻되 필경 이 대사(大事)를 밝히려면 응당 어찌해야 합니까(作麽生). 경운(敬云) 네가 듣지 못했느냐, 천로자(川老子; 는 조사)가 말하되 단적(端的; 確實)한 뜻을 알고자 한다면 북두(北斗; 북두칠성)를 면남(面南; 얼굴을 남쪽으로 향함)하여 보아라. 설해 마치자 바로 떠났다. ()가 일문(一問)을 입자 바로(), 다녀도 다님을 알지 못하고 앉아도 앉음을 알지 못함을 얻었다. 오칠일간(五七日間; 35일 간) 무자(無字)를 들지() 않고 도리어() 다만, 단적(端的)한 뜻을 알고자 한다면 북두를 면남(面南)하여 보아라를 간()했다. 홀연히 정두료(淨頭寮)에 이르러 일목(一木; 하나의 踞凳) 위에 있으면서 대중과 더불어 함께 앉았는데 다만 이 의정(疑情)이 풀리지() 않았다. 반식경(飯食頃; 밥 먹을 동안)에 심중(心中)이 공량(空亮)하고 경청(輕淸)함을 느낌이 있었고 정상(情想)이 파열(破裂)하여 마치 박피(剝皮)와 상사(相似)함을 보았다. 목전의 인물이 일체 보이지 않음이 마치() 허공과 같았다. 반시(半時; 저본에 半昧로 지었음) 만에 살피매(省來) 통신(通身; 온몸)에 땀이 흘렀다. 북두를 면남하여 보아라를 바로 깨침을 얻었다. 드디어 경()을 뵙고 하어(下語)하고 작송(作頌)하매 도무지 체애(滯礙)가 없었으나 아직() 향상일로(向上一路)가 있어 쇄락(洒落; 灑落과 같음)함을 얻지 못했다. 후에 향엄산(香巖山) 가운데로 들어가 과하(過夏)하는데 문자(蚊子; 모기. 는 조사)가 묾을 입어 두 손이 안정(安定; )되지 않았다. 인하여 고인(古人)이 위법망구(爲法忘軀)한 것을 사념(思念; )하고는 어찌 문자(蚊子)를 두려워하겠는가 하였다. 진정(盡情)으로 방하(放下)하고 아관(牙關)을 교정(咬定; 물어 固定)하고 권두(拳頭; 는 조사)를 날정(揑定; 捏定과 같음. 눌러 固定)하고 무자(無字)를 단제(單提; 오로지 들다)하며 참고 또 참았다. 불각(不覺)에 신심(身心)이 귀적(歸寂)했으니 일좌(一座; 量詞)의 가옥에 사벽(四壁)이 넘어져버림과 같았고() ()가 허공과 같아() 일물(一物)도 가히 정()에 당함이 없었다. 진시(辰時)에 한 번 앉아 미시(未時)에 출정(出定)했다. 불법이 사람을 잘못되게 함이 아니라 스스로 이 공부가 이르지 않았음을 스스로 알았다. 그렇게 비록 견해(見解)가 명백했지만 아직() 미세하고 은밀(隱密)한 망상(妄想)이 있어 다하지 않았다. 또 광주(光州) 산중(山中)에 들어가 6년 습정(習定)했고 육안(陸安) 산중에 또 6년 거주했고 광주(光州) 산중에 또 3년 거주하고서야 비로소 영탈(頴脫)을 얻었다.

평왈(評曰) 고인은 이와 같이 근신(勤辛; 勤勞)하고 이와 같이 구원(久遠)에야 바야흐로 상응(相應)함을 얻었거늘 금인(今人)은 총명한 정량(情量)으로 찰나(刹那)에 영회(領會)하고는 오히려 스스로 돈오(頓悟)에 붙으려고() 하니 어찌 오류(誤謬; )가 아니겠는가.

汝州; 지금의 하남성 여주(汝州).

無聞聰; 사총(思聰)이니 원대(元代) 임제종승. 자는 무문(無聞)이며 여주 향산 사람. 처음엔 독봉(獨峰)을 참해 삼불시화(三不是話)를 간했음. 운봉ㆍ월산 등 6인과 함께 맹세를 세우고 호상 구경(究竟)했음. 다시 무능교ㆍ무방보를 참견했고 후에 철산경(鐵山瓊)을 만나 비로소 영탈(穎脫)을 얻었음. 여주 향엄에 거주했고 지원 중 금강경을 주()했는데 자운(紫雲)과 서지(瑞芝)의 감응이 있었음 [오등전서57. 금강지험하. 속계고략3].

究竟; 1. 사리(事理)의 도법이 지극하고 고심(高深)한 곳. 종극의 영항(永恒)의 진리. 2. 필경(畢竟).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淮西; 곧 회우(淮右)니 한 지역의 명칭이 됨. ()에서 소북(蘇北)과 강회(江淮)에 회남동로(淮南東路)와 회남서로(淮南西路)를 설치했는데 회남동로는 또 명칭이 회좌(淮左)며 회남서로는 명칭이 회우(淮右)니 회우엔 산이 많고 회좌엔 물이 많음. 일반으로 지금의 강회지구를 가리킴 [백도백과]. 석씨계고략3. 4조 도신대사 존자는 성이 사마씨며 세대(世代; 여러 대)로 하내(河內)에 거주했고 기주(蘄州) 광제현으로 사거(徙居)했으니 지금의 회서(淮西).

敎無能; 곧 무능교(無能敎)니 원대(元代) 임제종승. 자가 무능이며 이름이 교. 무위 천녕에 거주했고 진옹원(眞翁圓)을 이었음 [증집속전등록4. 속등존고5].

絡索; ()은 전사(纏絲; 얽어매는 실)며 삭()은 승삭(繩索; 노끈)이니 곧 승삭(繩索). 혹 어언이 규갈(糾葛; 糾紛)하여 맑지 못함의 뜻.

作麽生; 또 즘마생(怎麽生)ㆍ작마(作麽)ㆍ작생(作生)으로 지음. 작마(作麽)는 곧 하()며 생()은 어조사임. 어떤 때엔 가히 양자(樣字) 혹은 연자(然字)로 지어 해석함. 본래 송대(宋代)의 속어(俗語)가 되는데 선종에서 다분히 공안의 감탄(感歎), 혹은 의문의 말로 사용함.

川老子; 도천(道川)이니 송대 임제종승. 곤산(지금 강소에 속함) 적씨. 처음에 현()의 궁급(弓級)이 되었는데 동재겸(東齋謙)이 도속(道俗; 승속)을 위해 연법(演法)한다 함을 듣고 가서 그를 좇았음. 어느 날 부직(不職; 직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인해 태형(笞刑)을 만났는데 홀연히 태장(笞杖) 아래에서 대오했음. 드디어 사직하고 겸()에게 의지했는데 겸이 지금의 이름(道川)으로 개명했음. 건염(1127-1130) 초 천봉 만암계성(蹣庵繼成. 임제하 10)을 참알해 그 인가를 받았음. 동재(東齋)로 돌아가 쉬는데 도속이 더욱 공경했음. 학자가 청익하자 금강반야경에 의해 송을 지었는데 세상에 행함. 융흥 개원(1163) 무위군(안휘) 야보산(冶父山) 실제선원에 주()했음 [보등록17. 오등회원12. 속전등록30].

淨頭寮; 정두(淨頭)는 또 청두(圊頭)로 지음. 선림에서 측소(廁所; 뒷간)를 관장하는 승인임. 정두의 거소(居所)를 일컬어 정두료(淨頭寮)라 함.

牙關; 상하의 잇몸이 상접(相接)하는 곳.

頴脫; 영탈(穎脫)과 같음.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다가 탈출함과 같이 재능이 출중한 자를 가리킴.

刹那 <> kṣaṇa. 극히 짧은 시간을 가리킴.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상. 1() 가운데 90 찰나가 있으며 1찰나에 9백 생멸을 경과한다. 모든 유위법이 모두 다 공()인 연고이다. 구사론12. 예컨대() 장사(壯士)가 한 번 급히 손가락을 퉁기는 경각에 65찰나이다. 이와 같음을 1찰나의 양()이라고 이름한다.

 

獨峯和尙示衆

學道之士 那裏是入手處 提箇話頭 是入手處

 

독봉화상(獨峯和尙; 未詳) 시중(示衆)

학도지사(學道之士)여 나리(那裏; 어느 속)가 이 입수(入手; 悟得)하는 곳인가. () 화두를 듦()이 이 입수하는 곳이다.

 

般若和尙示衆

兄弟家 三年五年做工夫 無箇入處 將從前話頭拋却 不知行到中途而廢 可惜前來許多心機 有志之士 看衆中柴乾水便僧堂溫煖 發願三年不出門 決定有箇受用 有等纔做工夫 心地淸淨 但見境物現前 便成四句 將謂是大了當人 口快舌便 誤了一生 三寸氣消 將何保任 佛子 若欲出離 參須直參 悟須實悟 或話頭綿密無有間斷 不知有身 謂之人忘法未忘 有到此忘其本身 忽然記得 如在夢中跌下萬仞洪崖 只顧救命遂成風癲 到此須是緊提話頭 忽然連話頭都忘 謂之人法雙忘 驀地冷灰豆爆 始知張公吃酒李公醉 正好來般若門下吃棒 何以故 更須打破諸祖重關 遍參知識 得知一切淺深 却向水邊林下 保養聖胎 直待龍天推出 方可出來扶揚宗敎 普度群生

般若和尙; 世誠(1270-1342) 元代臨濟宗僧 江西吉水人 俗姓鎦 號絶學 年十七 剃髮出家 歷參吳中之蒙山德異 及庵宗信 吉水之徙崖戒公 復往謁鐵牛持定(楊岐下十一世)於湘南 得釋所疑而開悟 洪州(江西南昌)凌景仁就靈鷲峰築庵曰般若 延師住之 大弘法化 學者雲集 西域 高麗 雲南 日本諸師 聞風趨慕 公卿儒士黎庶老稚 接踵於道 家家繪祀其像 師每剪爪髮或墮齒牙 則爭取持去皆獲舍利 至正二年示寂 壽七十三 [增集續傳燈錄六 續燈存槀七]

四句; 一有 二無 三亦有亦無 四非有非無 或爲四句偈頌亦通

了當; 一成功 二禪家稱參禪大事成功 明悟心地 爲了當 此指二

三寸; 三寸之舌 史記七十六 以三寸之舌 彊(當也)於百萬之師

保任; 一保持 護守 二禪悟之後 須加保持 維護 稱保任 此指一

佛子; 佛弟子 又指佛敎信者

風癲; 瘋癲 指精神錯亂失常

張公吃酒李公醉; 在禪悟者的眼裏 張公與李公之間幷無區別對立 這是所謂打成一片 萬法一如的境界

 

반야화상(般若和尙) 시중(示衆)

형제가(兄弟家)3, 5년 주공부(做工夫)하여 저() 입처(入處)가 없으면 종전(從前)의 화두를 가져다 던져버림은, 행해 이름(行到)을 알지 못해 중도(中途)에 폐(; 그치다)함이니 전래(前來; 以前)의 허다한 심기(心機)가 가석(可惜)하다. 유지지사(有志之士)는 중중(衆中)의 섶이 마르고() 물이 편리(便利; 便)하고 승당(僧堂)이 온난(溫煖)함을 보면 발원(發願)하여 3년 동안 출문(出門)하지 않는지라 결정(決定)코 저() 수용(受用)함이 있다. 어떤 등(有等)은 겨우 공부를 지어 심지(心地)가 청정하고 단지 경물(境物)이 현전(現前)함을 보면 바로 4(四句)를 이루어 이에() 이르되 이는 크게 요당(了當)한 사람이라 하면서 구쾌설편(口快舌便; 說話迅速)하며 일생을 그르쳐버리나니(誤了) 삼촌(三寸)의 기()가 사라지면() 장차 어떻게 보임(保任)하겠는가. 불자(佛子), 만약 출리(出離)하고 싶다면 참()은 모름지기 직참(直參)해야 하고 오()는 모름지기 실오(實悟)해야 한다. 혹 화두가 면밀(綿密)하여 간단(間斷)이 있지 않고 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이를 일러 인()은 잊었으나 법()은 잊지 못했다 한다. 여기에 이르러 그 본신(本身)을 잊음이 있다가 홀연히 기득(記得)하되 몽중에 있으면서 만 길의 홍애(洪崖)에서 미끄러져 떨어짐(跌下)과 같아 다만 구명(救命)을 돌아보며 드디어 풍전(風癲)을 이룬다. 여기에 이르러 모름지기 이 화두를 긴제(緊提)하고 홀연히 화두마저(連話頭) 모두() 잊으면 이를 일러 인법쌍망(人法雙忘)이라 하나니 맥지(驀地; 홀연. 는 조사) 차가운 재에서 콩이 터지면 장공이 술을 먹었는데 이공이 취함(張公吃酒李公醉)을 비로소 알거니와 정호(正好) 반야문하(般若門下)에 온다면 방을 먹는다(吃棒). 무슨 연고냐, 다시 꼭 제조(諸祖)의 중관(重關)을 타파하고 지식(知識)을 편참(遍參)하여 일체의 천심(淺深)을 득지(得知)해야 도리어 수변임하(水邊林下)를 향해 성태(聖胎)를 보양(保養)하며 바로() 용천(龍天)이 추출(推出)함을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가히 나와서 종교(宗敎)를 부양(扶揚)하고 군생(群生)을 보도(普度)한다.

般若和尙; 세성(世誠; 1270-1342)이니 원대(元代) 임제종승. 강서 길수 사람이니 속성은 유()며 호는 절학(絶學). 나이 17에 머리 깎고 출가했음. 오중(吳中)의 몽산덕이ㆍ급암종신ㆍ길수의 사애계공을 역참(歷參)했음. 다시 가서 철우지정(鐵牛持定; 양기하 11)을 상남(湘南)에서 참알하여 의심했던 바를 풂을 얻고 개오했음. 홍주(강서 남창) 능경인이 영취봉으로 나아가 암자를 짓고 가로되 반야(般若)라 했으며 스님을 맞이해 여기에 거주하게 했음. 법화(法化)를 대홍(大弘)했고 학자가 운집했으니 서역ㆍ고려ㆍ운남ㆍ일본의 여러 스님들이 도풍을 듣고 추모(趨慕)했으며 공경(公卿)ㆍ유사(儒士)ㆍ여서(黎庶)ㆍ노치(老稚)가 도를 접종(接踵; 잇닿음)했으며 집집마다 그 형상을 그려 제사했음. 스님이 매번 손톱과 머리카락을 깎거나 혹 치아가 떨어지면 곧 쟁취하여 가져갔고 모두 사리를 얻었음. 지정 2년 시적했으며 나이는 73 [증집속전등록6. 속등존고7].

三寸; 세 치의 혀. 사기76. 세 치의 혀로 백만의 군사(軍師)에 강(; )하다.

保任; 1. 보지(保持). 호수(護守; 수호). 2. 선을 깨친 후 반드시 보지ㆍ유호(維護; 유지하며 수호)를 가함을 일컬어 보임이라 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四句; 1. . 2. . 3. 역유역무. 4. 비유비무. 4구 게송이라 해도 또한 통함.

了當; 1. 성공(成功). 2. 선가에서 참선하여 대사를 성공하여 심지를 환히 깨침을 요당(了當)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佛子; 불제자. 또 불교신자를 가리킴.

風癲; 풍전(瘋癲)이니 정신이 착란(錯亂)하여 실상(失常)함을 가리킴.

張公吃酒李公醉; 선오자(禪悟者)의 안리(眼裏)에선 장공과 이공(李公)의 사이에 모두 구별과 대립이 없음. 이것은 이 이른 바 타성일편(打成一片)ㆍ만법일여(萬法一如)의 경계임.

 

雪庭和尙示衆

十二時中 一貧如洗 看箇父母未生前 那箇是我本來面目 不管得力不得力昏散不昏散 只管提撕去

雪庭; 明代僧 未詳法嗣 自號梅雪隱人 又曰幻寄 仁和(浙江杭州)桂氏 少出家 長聞四川休休翁寓杭郡仙林寺 往叩 一見契合 隨遷湖南淨慈 悟解日深 後往江陰乾明寺 有幻寄集 [續指月錄二十 續稽古略三 續燈存稾十二]

一貧如洗; 指人家貧困到了極點 連衣食住行都非常困難 一無所有

父母未生前; 父母未生以前也 與空劫已前 空王以前 空王那畔 朕兆未萌以前 本來面目等 皆爲同類同語

 

설정화상(雪庭和尙) 시중(示衆)

12시 중에 씻은 듯이 일향(一向) 가난하면서(一貧如洗) ()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을 간()하되 나개(那箇)가 나의 본래면목인가. 득력(得力)과 득력하지 못함, 혼산(昏散)과 혼산하지 않음에 상관(相管; )하지 말고 다만 관대(管帶; )하여 제시(提撕)해 가거라.

雪庭; 명대승(明代僧). 법사(法嗣)가 미상이며 자호(自號)가 매설은인이며 또 가로되 환기(幻寄)니 인화(절강 항주) 계씨. 어릴 적에 출가했고 장성하여, 사천 휴휴옹(休休翁)이 항군(杭郡) 선림사(仙林寺)에 우거(寓居)한다 함을 듣고 가서 물었고 한 번 보자 계합했음. 호남 정자로 수천(隨遷)했고 오해(悟解)가 날로 깊어졌음. 후에 강음 건명사로 갔음. 환기집이 있음 [속지월록20. 속계고략3. 속등존고12].

一貧如洗; 인가(人家)가 빈곤함이 극점(極點)에 이르렀고 이어서 의식주행(衣食住行)이 모두 비상(非常)으로 곤란(困難)하여 하나도 소유함이 없음을 가리킴.

父母未生前; 부모가 출생하지 아니한 이전임. 공겁이전ㆍ공왕이전ㆍ공왕나반(空王那畔)ㆍ짐조미맹이전(朕兆未萌以前)ㆍ본래면목 등과 모두 동류의 동어(同語)가 됨.

 

仰山古梅友禪師示衆

須要發勇猛心 立決定志 將平生悟得的學得的 一切佛法四六文章語言三昧 一掃掃向大洋海裏去 更莫擧著 把八萬四千微細念頭 一坐坐斷 却將本參話頭 一提提起疑來疑去 拶來拶去 凝定身心 討箇分曉 以悟爲則 不可向公案上卜度經書上尋覓 直須卒地斷爆地拆方始到家 若是話頭提不起連擧三遍 便覺有力 若身力疲倦 心識怉懆 却輕輕下地 打一轉再上蒲團 將本參話 如前挨拶 若纔上蒲團 便打瞌睡 開得眼來 胡思亂想 轉身下地 三三兩兩 交頭接耳 大語細話 記取一肚皮語錄經書 逞能舌辨 如此用心 臘月三十日到來 總用不著

古梅友; 正友(1285-1352) 元代臨濟宗僧 廣信府(江西)貴溪人 俗姓丁(一說于) 號古梅 幼年依末山本出家 後參洪州(江西)般若寺之絶學世誠(楊岐下十一世) 歷三年而爲其法嗣 初於浦城(福建)之天心寺弘法 泰定元年(1324)陳益宗創建寺院 迎師開山 後遷住建寧府(浙江)高仰山 賜紫衣竝賜號湛然至遠 加賜佛日廣智 至正二年示寂 壽六十八 著有古梅正友禪師語錄二卷 [五燈全書五十八 五燈會元續略三 續燈存槀八]

四六文; 文體名 騈文的一體 因以四字六字爲對偶 故名 騈文以四六對偶者 形成於南朝 盛行於唐宋 唐以來 格式完全定型 遂稱四六 也稱四六文或四六體 [百度詞典]

凝定; 一安定 二猶堅定

卜度; 以俗情世念去猜度 議論或解釋

卒地; 突然 地 後綴

三三兩兩; 又作兩兩三三 三箇人兩箇人 聚在一處作事 形容人數不多 不太集中 但又陸續地行動

交頭接耳; 交頭 頭靠著頭 接耳 嘴湊近耳朵 形容兩個人湊近低聲交談

舌辨; 口才敏捷

 

앙산(仰山) 고매우(古梅友) 선사(禪師) 시중(示衆)

모름지기 용맹심(勇猛心)을 발()하고자 한다면 결정지(決定志)를 세워야 하나니 평생에 오득한 것(悟得的), 학득한 것(學得的), 일체의 불법, 사륙문장(四六文), 어언삼매(語言三昧)를 가져다() 한 번 쓸어() 쓸어서 대양해리(大洋海裏)를 향해 가서 다시는 거착(擧著)하지 말아라. 팔만사천 미세한 염두(念頭)를 잡아() 한 번 앉혀() 좌단(坐斷)하고 도리어 본참(本參)의 화두(話頭)를 가지고 한 번 들어() 들어 일으켜 의래의거(疑來疑去)하고 찰래찰거(拶來拶去)하면서 신심(身心)을 응정(凝定)하여 저() 분효(分曉)를 찾아() 깨침으로써 법칙을 삼아라. 공안상(公案上)을 향해 복탁(卜度)하거나 경서상(經書上)에서 심멱(尋覓)함은 옳지 못하나니 바로() 꼭 졸지에 끊고(卒地) 폭지에 터뜨려야(爆地拆) 비로소(方始) 도가(到家). 만약 이, 화두를 들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연달아 3(; ) 들면() 바로 유력(有力)을 느낄 것이다. 만약 신력(身力)이 피권(疲倦)하고 심식(心識)이 포조(怉懆; 두려워하고 근심함)하면 도리어 경경(輕輕)히 땅에 내려가(下地) 한 바퀴 돌고(打一轉) 다시() 포단(蒲團)에 올라 본참(本參)의 화()를 가지고 앞과 같이 애찰(挨拶)하라. 만약 겨우 포단에 오르자 바로 갑수(瞌睡; 저본에 磕睡로 지었음)하다가() 눈을 뜸을 얻으면 호사난상(胡思亂想: 어지럽게 思想)하고 전신(轉身)하여 하지(下地)하매 삼삼양량(三三兩兩) 교두접이(交頭接耳)하여 대어세화(大語細話)하되 일두피(一肚皮)의 어록(語錄)이나 경서(經書)를 기취(記取)하여 능()한 설변(舌辨)을 자랑한다면() 이와 같은 용심(用心)은 납월(臘月) 삼십일(三十日)이 도래하매 모두() 쓰지 못한다(用不著).

古梅友; 정우(正友; 1285-1352)니 원대(元代) 임제종승. 광신부(강서) 귀계 사람이며 속성은 정(; 一說)이며 호는 고매(古梅). 유년에 말산본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후에 홍주(강서) 반야사의 절학세성(絶學世誠; 양기하 11)을 참해 3년을 경과하여 그의 법사가 되었음. 처음에 포성(복건)의 천심사에서 홍법했고 태정 원년(1324) 진익종이 사원을 창건하여 스님을 영입해 개산했음. 후에 건녕부(절강) 고앙산으로 옮겨 거주했음. 자의(紫衣)를 주고 아울러 사호(賜號)하여 담연지원이라 했고 불일광지를 가사(加賜)했음. 지정 2년 시적했고 나이는 68. 저서에 고매정우선사어록 2권이 있음 [오등전서58. 오등회원속략3. 속등존고8].

四六文; 문체의 이름. 변문(騈文)1(). 네 글자나 여섯 글자로 대우(對偶; 둘이 서로 짝을 지음)를 지음으로 인해 고로 이름함. 변문을 사륙(四六)으로 대우(對偶)한 것은 남조(南朝)에서 형성되었으며 당송에서 성행했음. 당 이래 격식이 완전히 정형(定型)되어 드디어 사륙으로 명칭했음. 또 사륙문 혹 사륙체로 일컬음 [백도사전].

凝定; 1. 안정(安定). 2. 견정(堅定)과 같음.

卜度; 속정(俗情)의 세념(世念)으로 의심하고 헤아리며 의논하거나 혹 해석함.

卒地; 돌연(突然). 지는 후철.

三三兩兩; 또 양량삼삼(兩兩三三)으로 지음. 세 개의 사람이나 두 개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서 일을 함. 사람의 수가 많지 않고 매우 집중하지 않지만 다만 또 육속(陸續; 계속하여 끊이지 않음)하여 행동함을 형용.

交頭接耳; 교두(交頭)는 머리가 머리에 기댐이며 접이(接耳)는 주둥이가 귀에 가까이 다가감이니 두 개의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서로 얘기함을 형용.

舌辨; 구재(口才)가 민첩(敏捷).

 

衢州傑峯愚禪師示五臺講主

假饒文殊放金色光 與汝摩頂 師子被爾騎來 觀音千手眼 鸚哥被爾捉得 皆是逐色隨聲 於爾自己有何利益 要明己躬大事 透脫生死牢關 先須截斷一切聖凡虛妄見解 十二時中 回光返照 但看箇不是心不是物不是佛 是箇甚麽 切莫向外邊尋討 設有一毫佛法神通聖解 如粟米粒大 皆爲自欺 總是謗佛謗法 直須參到脫體無依 纖毫不立處 著得隻眼 便見靑州布衫 鎭州蘿蔔 皆是自家所用之物 更不須別求神通聖解也

衢州; 今浙江省衢州

傑峰愚; 世愚(1301-1370) 元代楊岐派僧 俗姓余 字傑峰 西安(今浙江衢州)人 幼年出家 初參古巖石門十數員知識 佩受法語 遂隱居南屛山中 苦參不是心不是佛不是物 三年足不出戶 一夕聞鄰僧誦證道歌有省 禮止巖普成禪師(楊岐下十世) 得蒙印證 元至順二年(1 331) 歸住西安烏石山 澄居攝念 影不出山者十六年 創建福慧寺 聚徒開法 聲譽日彰 後遷廣德(今屬安徽)石溪興龍寺 禪侶叢集 達二三千人 明洪武三年(1370) 應召赴蔣山法會 不久圓寂 著有二會語錄 [補續高僧傳十五 五燈全書五十七]

五臺; 五臺山 位於山西五臺縣東北 與峨眉山 普陀山 九華山 合稱爲中國佛敎四大靈山 以東西南北中五峰聳立 山頂無林木 壘土如臺 故稱五臺山 又以五巒巍然 拔乎群山 盛夏仍不知炎暑 故別號淸涼山 爲古來文殊菩薩示現之道場 五臺之外 稱臺外 五臺之內稱臺內 以臺懷鎭爲中心 山中寺廟林立 北魏時建有佛寺 北齊時擴建寺院二百餘所 唐開元(713-741)以後 佛敎發展處于極盛時期 寺院多達三百餘所 五臺山有顯通寺 塔院寺 文殊寺 羅睺寺等禪寺 歷代禪宗高僧也有許多曾在五臺山活動 如晩唐著名禪僧趙州從諗 曾九次行脚五臺

講主; 指升座講經說法的高僧

文殊; 三藏法數七 文殊三名[出翻譯名義] 一文殊師利 梵語文殊師利 華言妙德 謂具不可思議種種微妙功德 故名妙德 二滿殊尸利 梵語滿殊尸利 華言妙首 謂具不可思議微妙功德 在諸菩薩之上 故名妙首 三曼殊室利 梵語曼殊室利 華言妙吉祥 謂具不可思議微妙功德 最勝吉祥 故名妙吉祥

觀音; 觀世音的略語 觀世音 <> Avalokiteśvara 玄應經音義五 觀世音 梵言阿婆盧吉低舍婆羅 此譯云觀世自在 舊譯云觀世音或言光世音 竝訛也 妙法蓮華經入疏一 天竺云 婆婁吉低稅 此云觀世音 思益經云 若衆生見者 卽時畢定得於菩提 稱名者得免衆苦 故名觀音 慈恩寺三藏法師傳二 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唐言觀自在 合字連聲梵語如上 分文而言 卽阿縛盧枳多譯曰觀 伊濕伐羅譯曰自在 舊云光世音 或觀世音 或觀世音自在 皆訛也

千手眼; 大慈大悲觀世音菩薩之千手千眼 又名千眼千臂觀世音 六觀音之一 兩眼兩手外左右各具二十手 手中各有一眼 四十手四十眼配於二十五有 而成千手千眼 表度一切衆生有無礙之大用也 爲伽梵達磨譯之千手經所說 通途之千手觀音是也 若依智通及菩提流支譯之千手經 則面具三眼 體具千臂 掌中各有一眼 按楞嚴經 觀世音菩薩 以修證圓通無上道故 能現衆多妙容 由一首三首乃至一百八首 千首萬首 八萬四千爍迦羅首 由二臂四臂乃至一百八臂 千臂萬臂 八萬四千母陀羅臂 由二目三目乃至一百八目 千目萬目 八萬四千淸淨寶目云

回光返照; 謂回收向外尋求的眼光 觀照自身自心

神通; 又作神通力 神力 通力 通等 卽依修禪定而得的無礙自在不可思議之作用 共有神足 天眼 天耳 他心 宿命等五神通(五通 五旬 般遮旬) 加漏盡通 共爲六神通(六通)

聖解; 高深的精妙的道理

靑州布衫 禪門拈頌集第四八則 趙州因僧問 萬法歸一 一歸何處 師云 我在靑州 作一領布衫 重七斤 靑州; 今山東省益都

鎭州蘿蔔; 五燈會元四趙州從諗 問 承聞和尙親見南泉 是否 師曰 鎭州出大蘿蔔頭 鎭州; 今河北省正定 大明一統志云 漢初置恒山郡 唐復置恒州 開元間改恒山郡 置大都督府 唐憲宗元和中改鎭州

 

구주(衢州) 걸봉우(傑峯愚) 선사(禪師)가 오대(五臺) 선강주(講主)에게 보이다()

가요(假饒; 가령) 문수(文殊)가 금색광(金色光)을 놓아 너()에게 마정(摩頂)하여 주고 사자(師子)가 네()가 탐()을 입고 관음(觀音)이 천수안(千手眼)을 나타내고 앵가(鸚哥; 鸚鵡)가 네()가 착득(捉得)함을 입더라도 모두 이 축색수성(逐色隨聲)함이거늘 너()의 자기(自己)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기궁(己躬)의 대사(大事)를 밝히려고 한다면 생사의 뇌관(牢關)을 투탈(透脫)해야 하나니 먼저 꼭 일체의 성범(聖凡)의 허망한 견해를 절단(截斷)하고 12시 중에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단지 저() 불시심(不是心)ㆍ불시물(不是物)ㆍ불시불(不是佛)을 간()하되 시개(是箇)가 무엇인가 하라. 간절히, 외변(外邊)을 향해 심토(尋討; 찾다)하지 말지니 설령(設令; ) 일호(一毫)의 불법ㆍ신통(神通)ㆍ성해(聖解)가 좁쌀알(粟米粒)과 같은 크기 만큼이라도 있다면 모두 스스로 속음()이 되며 모두() 이는 방불방법(謗佛謗法)이다. 바로() 모름지기 탈체(脫體; 전체)가 의지함이 없고 섬호(纖毫)도 세우지 않는 곳에 참도(參到; 해 이르다)하여 척안(隻眼)을 붙여야(著得) 청주포삼(靑州布衫)과 진주나복(鎭州蘿蔔; 蘿蔔은 무)이 모두 이 자가(自家)가 쓰는 바의 물건임을 바로 보아서 다시 신통과 성해(聖解)를 달리 구함을 쓰지() 않는다.

衢州; 지금의 절강성 구주(衢州).

傑峯愚; 세우(世愚; 1301-1370)니 원대 양기파승. 속성은 여며 자는 걸봉(傑峰)이니 서안(지금의 절강 구주) 사람이며 어린 나이에 출가했음. 처음 고암석문(古巖石門)의 십 몇 원()의 지식을 참방하여 법어를 패수(佩受)하고 드디어 남병산 가운데에 은거하면서 불시심불시불불시물(不是心不是佛不是物; 이 마음이 아니며 이 부처가 아니며 이 물건이 아니다)을 애써 참구했음. 3년 동안 발이 문호를 나서지 않았는데 어느 날 인승(鄰僧)이 증도가를 외움을 듣다가 성찰이 있었음. 지암보성선사(止巖普成禪師; 양기하 10)를 참례하여 인증을 득몽(得蒙)했음. 원 지순 2(1331) 돌아가 서안 오석산에 거주하면서 징거섭념(澄居攝念)하며 그림자가 산을 벗어나지 않은 게 16년이었고 복혜사를 창건하여 도중을 모아 개법했고 성예(聲譽)가 날로 드러났음.후에 광덕(지금 안휘에 속함) 석계 흥룡사로 옮겼는데 선려(禪侶)가 총집(叢集)하여 2, 3천 인에 도달했음. 명 홍무 3(1370) 부름에 응해 장산의 법회에 다다랐다가 오래지 않아 원적했음. 저서에 2() 어록이 있음 [보속고승전15. 오등전서57].

五臺; 오대산(五臺山)이니 산서 오대현 동북에 위치함. 아미산ㆍ보타산ㆍ구화산과 합칭하여 중국불교 4대 영산(靈山)으로 삼음. 동ㆍ서ㆍ남ㆍ북ㆍ중 5봉이 용립(聳立)했고 산정에 임목(林木)이 없으며 흙이 쌓여 대()와 같은지라 고로 명칭이 오대산(五臺山). 또 다섯 봉우리가 외연(巍然; 우뚝한 모양)하여 뭇 산보다 빼어나며 성하(盛夏)에도 그대로 염서(炎暑)를 알지 못하는지라 고로 별호가 청량산(淸涼山). 고래로 문수보살이 시현하는 도량이 됨. 오대의 밖은 호칭이 대외(臺外)며 오대의 안은 호칭이 대내(臺內)니 대회진(臺懷鎭)을 중심으로 삼음. 산중에 사묘(寺廟)가 숲처럼 건립되었으며 북위 때 불사(佛寺)를 건립해 있었고 북제(北齊) 때 사원 2백 여 곳을 확건(擴建)했음. 당 개원(713-741) 이후 불교가 발전하여 극히 성한 시기에 처했는데 사원이 많을 적엔 300여 곳에 달했음. 오대산에 현통사ㆍ탑원사ㆍ문수사ㆍ라후사(羅睺寺) 등의 선사(禪寺)가 있으며 역대 선종 고승도 허다하게 일찍이 오대산에 있으면서 활동함이 있었으니 예컨대() 만당(晩唐)의 저명한 선승 조주종심이 일찍이 아홉 차례 오대산에 행각했음.

講主; 법좌에 올라 강경하고 설법하는 고승을 가리킴.

文殊; 삼장법수7. 문수삼명(文殊三名) [출번역명의] 1. 문수사리(文殊師利; Manjusri) 범어 문수사리는 화언(華言)으론 묘덕(妙德)이다.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갖가지 미묘한 공덕을 갖춘지라 고로 이름이 묘덕이다. 2. 만수시리(滿殊尸利) 범어 만수시리는 화언으론 묘수(妙首).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미묘한 공덕을 갖추어 모든 보살의 상()에 있는지라 고로 이름이 묘수다. 3. 만수실리(曼殊室利) 범어 만수실리는 화언으론 묘길상(妙吉祥)이다. 이르자면 불가사의한 미묘한 공덕을 갖추어 가장 수승(殊勝)한 길상인지라 고로 이름이 묘길상이다.

觀音; 관세음의 약어(略語). 관세음(觀世音) <> Avalokiteśvara. 현응경음의5 관세음 범언으로 아바로길저사바라는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관세자재다. 구역에 이른 관세음 혹은 말하기를 광세음은 모두 그르다. 묘법연화경입소1. 천축에서 이르되 바루길저세는 여기에선 이르되 관세음이다. 사익경에 이르되 만약 중생이 친견하는 자는 즉시, 필경 꼭 보리를 얻으며 명호를 일컫는 자는 뭇 괴로움을 면함을 얻나니 고로 이름이 관음이다. 자은사삼장법사전2. 아바로기다이습벌라보살상(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당나라 말로는 관자재다. 글자를 합하고 소리를 연결한 범어는 위와 같다. 글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아바로기다는 번역해 가로되 관()이며 이습벌라는 번역해 가로되 자재(自在). 예전에 이른 광세음 혹은 관세음 혹은 관세음자재는 다 그르다.

千手眼;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 또 명칭이 천안천비관세음이니 6관음의 하나. 두 눈과 두 손 외에 좌우로 각 20()를 갖췄으며 수중에 각기 1()이 있음. 40수와 40안을 25유에 짝하여 천수천안을 이룸. 일체중생을 제도하면서 무애의 대용이 있음을 표시함. 가범달마(伽梵達磨)가 번역한 천수경에서 설한 바며 통도(通途; 일반적으로 통하는 교리)의 천수관음이 이것임. 만약 지통(智通) 및 보리류지(菩提流支)가 번역한 천수경에 의거하자면 곧 얼굴에 3안을 갖췄고 몸에 천비(千臂)를 갖췄고 손바닥 속에 각기 1안이 있음. 릉엄경을 안험컨대 관세음보살이 원통(圓通)의 위없는 도를 수증(修證)한 연고로 능히 중다한 묘용(妙容)을 나타냄. 1()3수로부터 내지 108수ㆍ천수만수(千首萬首)ㆍ팔만사천의 삭가라수(爍迦羅首)2()4비로부터 내지 108비ㆍ천비만비(千臂萬臂)ㆍ팔만사천의 모다라비(母陀羅臂)2()3목으로부터 내지 108목ㆍ천목만목(千目萬目)ㆍ팔만사천의 청정한 보목(寶目).

回光返照; 이르자면 밖을 향해 심구(尋求)하는 안광을 회수하여 자신과 자심을 관조함.

神通; 또 신통력ㆍ신력ㆍ통력ㆍ통 등으로 지음. 곧 선정을 닦음에 의해 얻는 무애자재하고 불가사의한 작용임. 공히 신족ㆍ천안ㆍ천이ㆍ타심ㆍ숙명 등 5신통(五通; 五旬. 般遮旬)이 있음. 누진통(漏盡通)을 더하면 공히 6신통(六通)이 됨.

聖解; 고심적(高深的), 정묘적(精妙的)인 도리(道理).

靑州布衫 선문염송집 제408. 조주(趙州), 중이 묻되 만법이 일()로 돌아가거니와 일은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내가 청주(靑州)에 있으면서 한 벌의 베적삼(布衫)을 지었는데 무게가 7근이더라. 靑州; 지금의 산동성 익도(益都).

鎭州蘿蔔; 오등회원4 조주종심(趙州從諗). 묻되 받들어 듣건대 화상이 남천을 친견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진주(鎭州)에 큰 나복두(蘿蔔頭; )가 나온다. 鎭州; 지금의 하북성 정정(正定). 대명일통지에 이르되 한나라 초에 항산군(恒山郡)을 두었고 당나라가 다시 항주(恒州)를 두었으며 개원 간(713-741)에 항산군으로 개명하고 대도독부를 두었다. 당나라 헌종 원화(806-820) 중에 진주(鎭州)로 개명했다.

 

靈隱瞎堂禪師對制

宋孝宗皇帝問 如何免得生死 對曰 不悟大乘道 終不能免 又問 如何得悟 對曰 本有之性 以歲月磨之 無不悟者

瞎堂; 慧遠(1103-1176) 宋代楊岐派僧 字瞎堂 眉山(今屬四川)彭氏 年十三 從藥師院宗辯爲僧 遊方多年 首詣大慈 次參靈巖徽 略有省悟 會圓悟克勤復領昭覺 往叩得悟 出世初住皋亭崇光 乾道六年(1170) 受詔選杭州靈隱 孝宗屢召入內殿 咨問法要 賜號佛海大師 有瞎堂慧遠禪師語錄 [五燈會元十九 普燈錄十五]

對制; 答對於制誥 制 帝王的命令

宋孝宗; (1127-1194 在位11621189) 卽趙眘 字元永 年三十六歲 受內禪卽帝位 以十月二十二日爲會慶節 在位二十七年 通內外學 篤信佛法 重徑山宗杲 屢遣問法 卽位後賜大慧號 乾道三年(1167) 幸上天竺 擢住持若訥爲右街僧錄 四年 宣訥入大內行護國金光明三昧 說法稱旨 追左街僧錄 賜號慧光 六年 詔崇光院慧遠住靈隱 賜號佛海 淳熙三年(1176) 詔台州光孝寺德光問法 敕住靈隱 繼遠席 賜號佛照 七年 詔雪竇寶印住徑山 十年 註圓覺經 十六年遜位 居南華宮 製原道論 [釋氏稽古略四 佛法金湯編十四]

大乘; 佛敎分爲大乘小乘兩大宗派 大乘佛敎于公元一世紀左右在印度形成 提倡發大慈悲心 普度衆生 爲大衆服務 追求成佛濟世 建立佛國淨土 其主要經典有般若經 維摩經 法華經 華嚴經等 向北流傳至中國 朝鮮 日本等國 故又稱北傳佛敎

 

영은(靈隱) 할당선사(瞎堂禪師) 대제(對制)

송효종(宋孝宗) 황제(皇帝)가 묻되 어찌해야 생사를 면득(免得)합니까. 대왈(對曰) 대승(大乘)의 도()를 깨치지() 못하면 마침내 능히 면하지 못합니다. 우문(又問) 어찌해야 깨침을 얻습니까. 대왈(對曰) 본유(本有)의 성(; 自性)인지라 세월로써 연마(鍊磨; )하면 깨치지 못할 자가 없습니다.

瞎堂; 혜원(慧遠; 1103-1176)이니 송대 양기파승. 자는 할당(瞎堂)이며 미산(지금 사천에 속함) 팽씨. 나이 13에 약사원 종변을 좇아 승인이 되었고 여러 해 유방했음. 처음 대자(大慈)에 나아갔고 다음에 영암휘를 참해 조금 성오(省悟)가 있었음. 마침 원오극근(圓悟克勤)이 다시 소각(昭覺)을 영도(領導)하자 가서 고문(叩問)하여 깨침을 얻었음. 출세하여 처음에 고정(皋亭) 숭광(崇光)에 주()했고 건도 6(1170) 항주 영은(靈隱)에 조선(詔選)됨을 받았음. 효종이 여러 차례 내전(內殿)으로 소입(召入)하여 법요를 자문(咨問)했고 사호(賜號)하여 불해대사(佛海大師)라 했음. 할당혜원선사어록이 있음 [오등회원19. 보등록15].

對制; 제고(制誥)에 대한 답대(答對). ()는 제왕의 명령.

宋孝宗; (1127-1194. 재위 1162-1189) 곧 조신(趙眘)이니 자는 원영이며 나이 36세에 내선(內禪)을 받아 제위(帝位)에 즉위했음. 1022일을 회경절(會慶節)로 삼았고 재위는 27. 내외의 학문에 통달했고 불법을 독신했음. 경산종고(徑山宗杲)를 존중했고 여러 차례 파견하여 법을 물었으며 즉위한 후에 대혜(大慧)의 호를 주었음. 건도 3(1167) 상천축에 거둥하여 주지 약눌(若訥)을 발탁해 우가승록(右街僧錄)으로 삼았음. 4년 선눌(宣訥)이 대내(大內)에 들어가 호국 금강명삼매를 행했고 설법하매 칭지(稱旨)하여 좌가승록(左街僧錄)을 추가하고 사호(賜號)하여 혜광이라 했음. 6년 조칙으로 숭광원 혜원(慧遠)을 영은(靈隱)에 거주하게 하고 사호(賜號)하여 불해(佛海)라 했음. 순희 3(1176) 태주(台州) 광효사 덕광(德光)을 불러 법을 묻고 칙명으로 영은(靈隱)에 거주하여 혜원의 법석을 잇게 하고 사호(賜號)하여 불조(佛照)라 했음. 7년 조칙으로 설두보인을 경산에 거주하게 했음. 10년 원각경을 주()했음. 16년 손위(遜位)하고 남화궁에 거처하면서 원도론(原道論)을 지었음 [석씨계고략4. 불법금탕편14].

大乘; 불교를 대승과 소승 양대종파(兩大宗派)로 나눔. 대승불교는 공원(公元. 서기) 1세기 좌우로 인도에서 형성했음. 대자비심을 내어 널리 중생을 제도하고 대중을 위해 복무하며 성불제세(成佛濟世)를 추구하고 불국정토를 건립하기를 제창했음. 그 주요경전에 반야경ㆍ유마경ㆍ법화경ㆍ화엄경 등이 있으며 북으로 향해 유전(流傳)하여 중국ㆍ조선ㆍ일본 등의 나라에 이른지라 고로 또 명칭이 북전불교(北傳佛敎).

 

大乘山普巖斷岸和尙示衆

萬法歸一 一歸何處 不得不看話頭 守空靜而坐 不得念話頭 無疑而坐 如有昏散 不用起念排遣 快便擧起話頭 抖擻身心 猛著精采 更不然下地經行 覺昏散去 再上蒲團 忽爾不擧自擧 不疑自疑 行不知行 坐不知坐 惟有參情 孤孤逈逈 歷歷明明 是名斷煩惱處 亦名我喪處 雖然如是 未爲究竟 再加鞭策 看箇一歸何處 到這裏提撕話頭 無節次了也 惟有疑情 忘卽擧之 直至返照心盡 是名法亡 始到無心處也 莫是究竟麽 古云 莫謂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忽地遇聲遇色 磕著撞著 大咲一聲 轉身過來 便好道 懷州牛吃禾 益州馬腹脹

經行; 在一定地點來回散步 目的在于參究道法 舒緩身心 稱爲經行 法華經五 常在於其中 經行及坐臥 四分律五十九 經行有五事好 堪遠行 能思惟 少病 消食飮 得定久住

孤孤逈逈; 寥遠 寂寥

歷歷明明; 臨濟語錄 是什麽解說法聽法 是爾目前歷歷底 勿一箇形段孤明 是這箇解說法聽法

懷州牛吃禾下; 宗門拈古彚集四 杜法順大師法身頌曰 懷州牛喫禾 益州馬腹脹 天下覓醫人 灸猪左膊上 懷州; 今河南省武陟縣西南 益州; 四川省首都 位於成都平野南東 有圜悟克勤道場昭覺寺 釋氏稽古略三云 益州 西川成都府也

 

대승산(大乘山) 보암(普巖) 단안화상(斷岸和尙; 未詳) 시중(示衆)

만법(萬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 화두(話頭)를 간()하며 공정(空靜)을 지키며 앉았지 않음을 얻지 못하지만 화두를 염()하며 의심없이 앉았음을 얻지 말아라. 혼산(昏散)이 있을 것 같으면 사념을 일으켜 배견(排遣)함을 쓰지 말고 쾌편(快便; 輕快)히 화두를 들어 일으켜 신심(身心)을 두수(抖擻)하고 정채(精采; 精彩와 같음)를 맹렬히 붙여라. 다시 그렇지 못하다면 하지(下地)하여 경행(經行)하다가 혼산(昏散)이 물러감()을 느끼면 다시 포단(蒲團)에 올라 홀이(忽爾; 忽然)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고 행()해도 행을 알지 못하고 좌()해도 좌를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는 정()만 있고 고고형형(孤孤逈逈)하고 역력명명(歷歷明明)하다면 이 이름이 번뇌를 끊은 곳이며(斷煩惱處) 또한 이름이 내가 상한 곳이다(我喪處).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아도 구경(究竟)이 되지 않나니 다시() 편책(鞭策)을 가()하여 저() 일귀하처(一歸何處)를 간()하라. 저리(這裏)에 이르러 화두를 제시(提撕)하되 절차(節次)가 없고 오직 의정(疑情)만 있다. 잊으면() 곧 들고(擧之) 바로() 반조(返照)하는 마음이 없어짐에 이르러야 이 이름이 법망(法亡)이며 비로소 무심처(無心處)에 이른다. 이 구경(究竟)이 아닐까. 고인(古人; ; 同安常察)이 이르되 무심(無心)을 이 도라고 이르지 말지니 무심도 오히려 일중관(一重關)이 막혔다. 홀지(忽地)에 우성우색(遇聲遇色)하고 개착당착(磕著撞著)하다가 대소일성(大咲一聲)하고 전신(轉身)하여 지나오며 바로(便) 좋게 말하리니 회주의 소가 벼를 먹었는데(懷州牛吃禾) 익주의 말이 배탈이 났다(益州馬腹脹).

經行; 일정한 지점에 있으면서 내회(來回; 자꾸 오감)하면서 산보함이니 목적은 도법을 참구하면서 몸과 마음을 서완(舒緩; 조용하고 느긋함)함에 있으니 일컬어 경행이라 함. 법화경5. 늘 그 가운데 있으면서 경행(經行)하고 및 좌와하다. 사분율59. 경행(經行)에 다섯의 좋음이 있다. 원행을 감내하고 능히 사유하고 병이 적고 식음(食飮; 음식)을 소화하고 정()을 얻어 오래 머문다.

孤孤逈逈; 요원(寥遠). 적료(寂寥).

歷歷明明; 임제어록 이 무엇이 설법청법(說法聽法)할 줄 아느냐. 이 너희 목전에 역력한 것(歷歷底), 일개(一箇)의 형단(形段)이 없는, 고명(孤明)한 이 저개(這箇)가 설법청법할 줄 안다.

懷州牛吃禾下; 종문염고휘집4. 두법순대사(杜法順大師)의 법신송에 가로되 회주(懷州)의 소가 벼를 먹었는데/ 익주(益州)의 말이 배탈이 났다/ 천하에 의인(醫人)을 찾았더니/ 돼지의 왼쪽 어깨 위에 뜸질하더라. 懷州; 지금의 하남성 무척현 서남. 益州; 사천성 수도. 성도평야 남동에 위치하며 원오극근의 도량 소각사가 있음. 석씨계고략3에 이르되 익주는 서천(西川) 성도부다.

 

古拙禪師示衆

大德何不起大精進 對三寶前深發重願 若生死不明 祖關不透 誓不下山 向長連床七尺單前 高掛鉢囊 壁立千仞 盡此一生 做敎徹去 若辦此心 決不相賺 如其發心不眞 志不猛勵 這邊經冬 那邊過夏 今日進前 明日退後 久久摸索不著 便道般若無靈驗 却向外邊 記一肚 抄一部 如臭糟瓶相似 聞者未免惡心嘔吐 直做到彌勒下生 有何干涉 苦哉

古拙; 昌俊 元末明初臨濟宗僧 亦作俊明 字古拙 號祖庭 姑蘇松陵(江蘇吳江)人 年十三 出家越州日鑄寺 十五祝髮受具 後首謁石屋淸珙 次見三衢嬾牧 後叩古梅 三見三被棒 歸里壁觀九年 一日有悟 後參白雲福林智度 而嗣其法 旋遁跡韜光巖壑三十餘年 出主昭明禪寺 明洪武(1368 -1398)年間 奉旨剃度千餘僧人 永樂五年(1407) 奉敕住金陵天界 終老於此 傳法普州東林無際明悟 [五燈全書五十八 續燈存稾九 東天目山昭明禪寺志]

大德; 有德高僧 又對一般僧人的尊稱 四分律名義標釋十三 梵云婆檀陀 此言大德 雜事云 年少苾芻 應喚老者爲大德 老喚少者爲具壽 若不爾者 得越法罪 母經云 佛告阿難 從今已去 下者應稱上座尊者 上座應稱下座慧命 (中略)僧祇律云 時六羣比丘 展轉作俗人相喚 阿公 阿母 阿兄 阿弟 佛言 從今已後 應如是共語問訊 共公語時 不得喚阿公阿郞

祖關; 領悟祖師禪機的關門 領悟禪法的關門 關 比喩禪機固密奥妙 不易悟入 無門關趙州狗子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長連床; 又作長連牀 禪林僧堂所置之大床也 長大而連坐多人者

七尺單前; 三條椽下七尺單前 僧堂之床 每人之座位橫占三尺許 其頭上之椽有三條 因指禪床曰三條椽下 於其下坐禪者 稱爲三條椽下客 又禪堂貼己名單之坐床 謂之單位 又其床前之板謂之單 闊八寸 據周尺故爲一尺 謂之單板一尺 而床闊六尺 加以單板一尺則爲七尺 謂之七尺單前 若除單板則爲六尺 謂之六尺單前

鉢囊; 又作鉢袋 鉢絡 絡囊 盛裝鉢盂(應量器) 以便於攜行之囊袋 四分律五十二 手捉鉢 難護持 佛言 聽作鉢囊盛 不繫囊口 鉢出 佛言 應繩繫 手捉鉢囊 難護持 佛言 應作帶絡肩

壁立千仞; 壁 陟峭的山崖 如懸崖峭壁 壁立千仞者 形容禪悟者明見自心 自我爲主 絶無依倚 超脫塵俗的氣槪與境界 與壁立萬仞同意

猛勵; 奮力 努力

 

고졸선사(古拙禪師) 시중(示衆)

여러 대덕(大德)이여 왜 대정진(大精進)을 일으켜() 삼보(三寶) 앞을 대하여 중원(重願)을 깊이 일으키지() 않느냐. 만약 생사를 밝히지 못하고 조관(祖關)을 투과(透過; )하지 못한다면 맹서코() 하산(下山)하지 않고 장련상상(長連床)의 칠척단전(七尺單前)을 향해 발낭(鉢囊)을 높이 걸고() 벽립천인(壁立千仞)하여 이 일생(一生)이 다하도록 지어() 투철(透徹; )하게 하여 가리라(敎徹去) 할지니 만약 차심(此心)을 판비(辦備; )했다면 결코 서로 속이지(相賺) 않으리라. 예컨대(; 例擧를 표시) 그 발심(發心)이 진실이 아니며 의지(意志; )가 맹려(猛勵)하지 못하면서 저변(這邊)에서 경동(經冬)하고 나변(那邊)에서 과하(過夏)하며 금일은 진전(進前)하고 명일은 퇴후(退後)하여 오래오래(久久) 모색하지 못하고는(摸索不著) 바로 말하되 반야(般若)가 영험(靈驗)이 없다. 도리어 외변(外邊)을 향해 일두(一肚)를 기록(記錄; )하고 일부(一部)를 초록(抄錄; )하거니와 마치 취조병(臭糟瓶; 냄새 나는 지게미 병)과 상사(相似)하여 냄새 맡는() 자가 오심(惡心; 혐오하는 마음)으로 구토(嘔吐)를 면하지 못하리니 바로() 지어() 미륵이 하생함에 이른들() 무슨 간섭(干涉)이 있겠는가. 고재(苦哉)로다.

古拙; 창준(昌俊)이니 원말명초 임제종승. 또한 준명(俊明)으로 지음. 자는 고졸(古拙)이며 호는 조정(祖庭)이며 고소 송릉(강소 오강) 사람. 나이 13에 월주 일주사에서 출가했고 15에 머리 깎고 수구(受具)했음. 후에 처음은 석옥청공을 알현했고 다음으로 삼구난목을 참견했고 후에 고매(古梅)를 고문(叩問)했는데 세 번 참견하여 세 번 방()을 받았음. 향리로 회귀하여 9년 동안 벽관(壁觀)하다가 어느 날 깨침이 있었음. 후에 백운 복림지도(福林智度)를 참해 그의 법을 이었음. 이윽고 암학(巖壑)에 둔적도광(遁跡韜光)한 지 30여 년 만에 출세해 명선사를 주지(主持)했음. 명 홍무(1368-1398)년 간 봉지(奉旨)하여 천여(千餘) 승인을 체도(剃度)했음. 영락 5(1407) 봉칙(奉敕)하여 금릉 천계(天界)에 주()했고 여기에서 종로(終老; 노년을 지내고 죽음)했음. 보주 동림 무제명오(無際明悟)에게 전법했음 [오등전서58. 속등존고9. 동천목산소명선사지].

大德; 덕이 있는 고승. 또 일반 승인에 대한 존칭. 사분율명의표석13. 범어로 이르되 바단타(婆檀陀; bhadanta)는 여기 말로는 대덕이다. 잡사에 이르되 연소한 필추는 응당 늙은 자를 부르면서 대덕이라 해야 하고 늙은 자가 연소한 자를 부르면서 구수(具壽)라고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하지 않는 자는 월법죄(越法罪)를 얻는다. 모경(母經)에 이르기를 불타가 아난에게 고했다. 금일로부터 이거(已去; 이후)엔 하자(下者)는 응당 상좌를 존자로 호칭하고 상좌는 응당 하좌를 혜명으로 호칭해야 한다 (중략) 승기율에 이르되 때에 6군비구가 전전히 속인의 상환(相喚)을 지어 아공(阿公)ㆍ아모ㆍ아형ㆍ아제라 했다. 불타가 말씀했다. 금일로부터 이후로는 응당 이와 같이 함께 말하며 문신해야 한다. 함께 공적(公的)으로 말할 때 아공ㆍ아랑(阿郞)으로 부름을 얻지 못한다.

祖關; 조사의 선기(禪機)를 영오(領悟)하는 관문. 선법을 영오하는 관문. ()은 선기가 고밀(固密)하고 오묘하여 쉽게 오입(悟入)하지 못함에 비유함. 무문관 조주구자.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컨대 궁구(窮究)해 심로(心路)가 끊겨야 하나니 조관(祖關)을 뚫지 못하고 심로가 끊기지 않으면 다 이 의초부목(依草附木)의 정령(精靈)이다.

長連床; 또 장련상(長連牀)으로 지음. 선림의 승당에 설치한 바의 대상(大床)이니 장대(長大)하고 많은 사람이 연좌(連坐)하는 것임.

七尺單前; 삼조연하칠척단전(三條椽下七尺單前). 승당의 상은 매 사람의 좌위(座位)가 가로로 3척 가량 점유하고 그 머리 위의 서까래가 3() 있는지라 인하여 선상을 가리켜 가로되 삼조연하라 하고 그 아래에서 좌선하는 자를 일컬어 삼조연하객이라 함. 또 선당(禪堂)에 자기의 명단을 붙이는 좌상을 일컬어 단위(單位)라 하고 또 그 상 앞의 판()을 일컬어 단()이라 하는데 너비가 8()이며 주척(周尺)에 의거하는 고로 1척이 되며 이를 일러 단판일척(單板一尺)이라 함. 상의 너비 6척에 단판 1척을 더하면 곧 7척이 되므로 이를 일러 칠척단전이라 함. 만약 단판을 제하면 곧 6척이 되며 이를 일러 육척단전이라 함.

鉢囊; 또 발대(鉢袋)ㆍ발락(鉢絡)ㆍ낙낭(絡囊)으로 지음. 발우(응량기)를 성장(盛裝; 담다)하여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한 낭대(囊袋; 주머니). 사분율52. 손으로 발우를 가지매 호지(護持)하기 어려웠다. 붙타가 말씀했다. 발낭(鉢囊)을 만들어 담는 것을 청허한다. 발낭의 입구를 묶지 않자 발우가 튀어나왔다. 불타가 말씀했다. 응당 끈으로 묶고 손으로 발낭을 잡아라. 호지하기 어려웠다. 불타가 말씀하셨다. 응당 대()를 만들어 어깨에 두르라.

壁立千仞; ()은 아주 높고 가파른 산애(山崖)니 현애초벽(懸崖峭壁. 아득한 낭떠러지와 가파른 벽)과 같음. 벽립천인(壁立千仞)이란 것은 선오자(禪悟者)가 자심(自心)을 환히 보아 자아(自我)를 위주(爲主)로 하여 절대(絶對)로 의의(依倚)함이 없이 진속(塵俗)을 초탈(超脫)한 기개(氣槪)와 경계(境界)를 형용(形容). 벽립만인(壁立萬仞)과 같은 뜻.

猛勵; 분력(奮力). 노력(努力).

 

太虛禪師示衆

如未了悟 須向蒲團上冷坐 十年二十年三十年 看箇父母未生前面目

太虛; 太虛圓禪師 古拙俊之嗣無際明悟 其嗣潔空通 其嗣默堂照 其嗣爲太虛圓 南嶽下二十八世也 [徑石滴乳集 禪關策進註]

 

태허선사(太虛禪師) 시중(示衆)

요오(了悟)하지 못했을 것 같으면 모름지기 포단상(蒲團上)을 향해 냉좌(冷坐)하여 10, 20, 30년 동안 저()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면목(面目)을 간()하라.

太虛; 태허원(太虛圓) 선사임. 고졸준(古拙俊)의 사()가 무제명오(無際明悟)며 그 사()가 결공통(潔空通)이며 그 사()가 묵당조(默堂照)며 그 사()가 태허원(太虛圓)이 되니 남악하 28세임 [경석적유집 선관책진주].

 

楚石琦禪師示衆

兄弟 開口便道 我是禪和 及問他如何是禪 便東覰西覰 口如扁擔相似 苦哉屈哉 喫著佛祖飯 不去理會本分事 爭持文言俗句 高聲大語 略無忌憚 全不識羞 有般底不去蒲團上 究明父母未生以前本來面目 冷地裏學客舂 指望求福 懺除業障 與道太遠在 凝心斂念 攝事歸空 念想纔生 卽便遏捺 如此見解 卽是落空亡的外道 魂不返的死人 又有妄認能嗔能喜能見能聞 認得明白了 便是一生參學事畢 我且問爾 無常到時 燒作一堆灰 這能嗔能喜能見能聞的 什麽處去也 恁麽參的是藥汞銀禪 此銀非眞 一煆便流 因問爾 尋常參箇什麽 答道 有敎參萬法歸一一歸何處 又敎我只如此會 今日方知不是 就和尙請箇話頭 我道古人公案 有什麽不是 汝眼本正 因師故邪 累請不已 向道 去參狗子無佛性話 忽然打破漆桶 却來山僧手裏 喫棒

楚石琦; 梵琦(1296-1370) 元代臨濟宗僧 明州(浙江)象山人 俗姓朱 字楚石 小字曇曜 九歲出家 十六歲受具足戒 後參究徑山之元叟行端 一日聞西城樓上鼓鳴 始徹悟 遂嗣元叟之法 時年二十九 其後歷住海鹽福臻寺 天寧永祚寺 杭州鳳山報閣寺 嘉興本覺寺 至正七年(1347) 帝賜號佛日普照慧辯禪師 十七年 住持報恩光孝寺 十九年 退隱永祚寺 於寺西側築居 自號西齋老人 二十三年再住永祚寺 未久再隱 專修淨業 洪武初年 受敕說法於蔣山(江蘇江寧縣東北 卽鍾山) 三年示寂 壽七十五 著有楚石梵琦語錄二十卷 西齋淨土詩三卷 上生偈 北游鳳山西齋三集 和天台三聖詩等 [楚石梵琦禪師語錄序 梵琦禪師語錄二十佛日普照慧辯禪師塔銘 釋氏稽古略續集二 南宋元明禪林僧寶傳十 續燈正統十五]

禪和; 禪和子禪和者之略稱 卽參禪者

口如扁擔; 形容杜口無言貌 匾 薄也 又不圓貌 擔 同檐

屈哉; 凡曲而不伸者皆曰屈 屈辱冤屈等

冷地裏學客舂; 冷地 卽寂靜寂寥之境 客舂 指六祖慧能初時於黃梅山五祖弘忍座下之碓房搗米八個月之故事 意謂禪者處於空寂之境中 猶如碓房搗米之心境 僅依義理而修行

凝心; 專心 一心一意

遏捺; 阻止 按捺 多指識情深重者企圖以識情制止識情

空亡; 意同空無

參學; ()參禪學道之略語 ()門徒 參禪學道者 此指一

無常; ()謂世間萬事萬物生滅遷流 不能永恒存在 也指人生短暫易逝 翻譯名義集六 薩迦耶薩 此云無常 荀卿曰 趨舍無定 謂之無常 唐因明正理論云 本無今有 暫有還無 故名無常 淨名經關中釋抄上 二種無常 一事無常 謂四時遷變顔貌衰老等 事物變移爲無常也 二理無常 謂體有爲之法 刹那刹那性自遷易 豈待葉落白首相異然後爲無常也 ()指死期 此指()

藥汞銀禪; 比喩相似禪非眞實禪 藥汞銀 指水銀 水銀非眞銀

 

초석기(楚石琦) 선사(禪師) 시중(示衆)

형제(兄弟)가 입을 열면 바로 말하되 나는 이 선화(禪和). 및 그에게 묻되 무엇이 이 선()인가. 바로 동쪽을 보고 서쪽을 보면서(東覰西覰) 입이 마치 편담(口如扁擔)과 상사(相似)하니 고재(苦哉)며 굴재(屈哉)로다. 불조(佛祖)의 밥을 끽착(喫著)하고, 가서 본분사를 이회(理會)하지 않고 문언(文言)과 속구(俗句)를 다투어 가져서 고성(高聲)으로 크게 말하면서 조금도() 기탄(忌憚)이 없으니 전혀 수치(羞恥; )를 알지 못한다. 어떤 일반(一般)의 것(有般底)포단상(蒲團上)으로 가서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의 본래면목을 구명(究明)하되 냉지리에 객용을 배우지(冷地裏學客舂) 않고 명망(名望; )을 가리키고 복을 구하면서 업장(業障)을 참제(懺除)하니 도와는 너무 멀다(太遠在; 는 조사). 응심(凝心)하여 상념(想念; )을 거두고() 사를 거두어(攝事) ()으로 돌아가고() 염상(念想)이 겨우 나면 곧바로(卽便) 알날(遏捺)하거니와 이와 같은 견해는 곧 이 공망(空亡)에 떨어진 외도(外道)며 혼()이 돌아가지() 못한 사인(死人)이다. 또 어떤 이()는 능진능희(能嗔能喜), 능견능문(能見能聞)을 망인(妄認)하고, 인득(認得)해 명백(明白)하고 나서 바로 이 일생의 참학사(參學)를 마쳤다() 하거니와 내가 다만() ()에게 묻나니 무상(無常)이 도래할 때 태워 한 무더기의 재가 되거늘 저() 능진능희(能嗔能喜), 능견능문(能見能聞)하는 것()이 어느 곳으로 가느냐. 이렇게(恁麽) 참하는 것(參的)은 이 약홍은선(藥汞銀禪)이니 이 은()은 진실이 아닌지라 한 번 단련(鍛鍊; ; 과 같음)하면 바로 흐른다(). 인하여 그()에게 묻되 심상(尋常)에 저() 무엇을 참()하느냐. 답해 말하되 어떤 이()가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를 참()하게 했고 또 나로 하여금 다만 이와 같이 이회(理會; )하게 했거니와 금일 바야흐로 옳지() 않은 줄 안지라 화상에게 나아가() () 화두를 청합니다. 내가 말하되 고인의 공안에 무슨 옳지 않음이 있으리오. 너의 눈은 본래 바르건만 스승(; 邪師)을 인한 고로 삿되어진다. 거듭() 청하여 말지 않는지라 향해 말하되 가서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참()하거라. 홀연히 칠통(漆桶)을 타파하거든 산승의 손안으로 돌아와서(却來) 끽방(喫棒)하거라.

楚石琦; 범기(梵琦; 1296-1370)니 원대(元代) 임제종승. 명주(절강) 상산(象山) 사람이며 속성은 주()며 자는 초석(楚石)이며 소자(小字)는 담요(曇曜). 9세에 출가하고 16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후에 경산(徑山)의 원수행단(元叟行端)을 참했는데 어느 날 서성(西城) 누상(樓上)의 북이 울림을 듣다가 비로소 철오(徹悟)했으며 드디어 원수(元叟)의 법을 이었으니 때의 나이는 29이었음. 그 후 해염 복진사ㆍ천녕 영조사ㆍ항주 봉산 보각사ㆍ가흥 본각사를 역주(歷住)했음. 지정 7(1347) ()가 불일보조혜변선사(佛日普照慧辯禪師)란 호를 주었음. 17년 보은광효사에 주지(住持)했고 19년 영조사(永祚寺)로 퇴은(退隱)해 절 서쪽에 축사(築舍)하여 거처하면서 스스로 호()하되 서재노인(西齋老人)이라 했음. 23년 다시 영조사에 주지했고 오래지 않아 다시 은거하면서 오로지 정업(淨業)을 닦았음. 홍무 초년(初年) 칙명을 받아 장산(蔣山. 강소 江寧縣의 동북이니 곧 鍾山)에서 설법했고 3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5. 저서에 초석범기어록 20권ㆍ서재정토시 3권ㆍ상생게ㆍ북유봉산서재 3() 그리고 천태삼성시 등이 있음 [초석범기선사어록서. 범기선사어록20불일보조혜변선사탑명. 석씨계고략속집2. 남송원명선림승보전10. 속등정통15].

禪和; 선화자(禪和子)ㆍ선화자(禪和者)의 약칭. 곧 참선자.

口如扁擔; 입을 닫고 말이 없는 모양을 형용. ()은 얇음임. 또 둥글지 않은 모양. ()은 담()과 같음.

屈哉; 무릇 굽혀서 펴지 못하는 것을 모두 가로되 굴()이니 굴욕(屈辱), 원굴(冤屈) .

冷地裏學客舂; 냉지(冷地)는 곧 적정하고 적료한 경지. 객용(客舂)6조 혜능이 초시(初時)에 황매산 5조 홍인의 좌하의 대방(碓房)에서 8개월 동안 쌀을 찧은 고사(故事)를 가리킴. 뜻으로 이르자면 선자(禪者)가 공적(空寂)한 경지 중에 처하면서 마치 대방에서 쌀을 찧는 심경과 같이하여 겨우 의리(義理)에 의해 수행함.

凝心; 전심(專心). 일심일의(一心一意).

遏捺; 조지(阻止; 막아서 저지함). 안날(按捺; 억제). 다분히 식정(識情)이 심중(深重)한 자가 식정으로 식정을 제지(制止)하려고 기도함을 가리킴.

空亡; 뜻이 공무(空無)와 같음.

參學; (1). 참선학도(參禪學道)의 약어(略語). (2). 문도(門徒). 참선학도하는 자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無常; (1). 이르자면 세간의 만사만물이 생멸하며 천류(遷流)하는지라 능히 영항(永恒; 영원. 恒久)토록 존재하지 못함. 또 인생이 단잠(短暫; 짧고 잠시)이면서 쉽게 감을 가리킴. 번역명의집6. 살가야살(薩迦耶薩) 여기에선 이르되 무상(無常)이다. 순경(荀卿)이 가로되 추사(趨舍; 趨捨取捨의 뜻)가 정함이 없음을 일컬어 무상(無常)이다. () 인명정리론에 이르되 본래 없다가 지금 있으며 잠시 있다가 도리어 없는지라 고로 이름이 무상(無常)이다. 정명경관중석초상. 2종 무상(無常) 1. 사무상(事無常) 이르자면 사시(四時)의 천변(遷變; 변천)과 안모(顔貌)의 쇠로(衰老) 등이니 사물이 변이(變移)함이 무상이 됨이다. 2. 이무상(理無常) 이르자면 유위의 법을 체득하매 찰나찰나 자성이 스스로 천역(遷易; 변천하여 바뀜)하거늘 어찌 잎 떨어지고 머리가 하얗게 되어 서로 달라짐을 기다린 연후에 무상(無常)이 되겠는가. (2). 사기(死期)를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藥汞銀禪; ()과 상사하나 진실한 선이 아님에 비유함. 약홍은은 수은을 가리키며 수은은 진은이 아님.

 

評曰 天如而下 皆元末及國初尊宿 若傑峯古拙楚石 則身經二代者也 楚石爲妙喜五世孫 而其見地如日光月明 機辨如雷烈風迅 直截根原 脫落枝葉 眞無愧妙喜老人矣 天如以至今日 無匹休者 獨其語皆提持向上極則事 敎初學人做工夫處絕少 僅得一二錄 如左

匹休; 媲美 比配

提持; 禪林中師家引導學人之方法 卽師家接化學人時 破除學人原有之見解 而示向上之契機 以把住之手法 否定學人之我見 爲平展之對稱

 

평왈(評曰) 천여(天如; 天如則) 이하(而下)는 모두 원말(元末) 및 국초(國初; 明初)의 존숙(尊宿)이다. 이에() 걸봉(傑峯; 傑峯愚)ㆍ고졸(古拙)ㆍ초석(楚石; 楚石)은 곧 몸이 이대(二代; 元明二代)를 겪은 자다. 초석(楚石)은 묘희(妙喜; 大慧宗杲)5세손(世孫)이 되며 그 견지(見地)가 일광월명(日光月明)과 같고 기변(機辨)이 뇌열풍신(雷烈風迅)과 같아서 근원(根原; 根源)을 직절(直截)하고 지엽(枝葉)이 탈락(脫落)하여 참으로 묘희노인(妙喜老人)에게 부끄럽지 않다 하리라. 천여(天如) 이지(以至; 乃至) 금일에 필휴(匹休; 저본에 四休로 지었음)할 자가 없지만 유독(惟獨; ) 기어(其語)는 모두 향상(向上)의 극칙사(極則事)를 제지(提持)했고 초학인(初學人)으로 하여금 공부를 짓게 한 곳이 절소(絕少; 極少)한지라 겨우() 일이록(一二錄)을 얻었으니 좌(; )와 같다.

匹休; 비미(媲美; 아름다움을 견주다). 비매(比配; 비교하여 짝하다).

提持; 선림 중에서 사가가 학인을 인도하는 방법임. 곧 사가가 학인을 접화(接化)할 때 학인의 원래 있는 견해를 깨뜨려 제거하고 향상의 계기(契機)를 보임이니 파주(把住)하는 수법으로 학인의 아견을 부정함임. 평전(平展)의 대칭이 됨.

 

高麗普濟禪師答李相國

旣曾於無字話提撕 不必改參也 況擧起別話頭時 曾參無字 必於無字 有小熟因地 切莫移動 切莫改參 但於二六時中四威儀內 擧起話頭 莫待幾時悟不悟 亦莫管有滋味無滋味 亦莫管得力不得力 拶到心思不及意慮不行 卽是諸佛諸祖放身命處

評曰 此語錄萬曆丁酉 福建許元眞東征 得之朝鮮者 中國未有也 因錄其要 而識之

普濟; 惠勤(1320-1376) 高麗國臨濟宗僧 嶺南寧海村人 俗姓牙 原名元慧 號懶翁 世稱懶翁惠勤 所居之室 稱爲江月軒 二十歲 從功德山妙寂庵之了然出家 後至揚州(京畿道)天寶山檜巖寺宴坐 精修四年而獲開悟 元至正八年(1348)往華 至燕京(河北)法源寺參訪西天僧指空 十年(或謂十一年)南遊 於杭州淨慈寺參平山處林(楊岐下十一世) 得其印可 後遊歷補陀洛山 育王山 明州 婺州伏龍山 松江等地 十五年 奉敕住大都廣濟禪寺 開堂說法 師於高麗恭愍王七年(卽元至正十八年)歸國 在遼陽 平壤 東海等地 隨機說法 翌年 奉王命於三殿普說敎法 敕住神光寺 後移住金剛山正陽庵 淸平寺 檜巖寺等處 恭愍王二十年 受封爲王師 竝敕住東方第一道場松廣寺 禑王二年示寂於驪興(驪州)神勒寺 世壽五十七 敕諡禪覺之號 法嗣有無學自超 國師智泉 高峰法藏等三十三人 竝有懶翁和尙語錄一卷傳世 [大興寺事蹟碑 三聖山三幕寺事蹟(以上朝鮮寺刹史料所收) 朝鮮金石總覽上 高麗史一三三 朝鮮佛敎通史中 朝鮮禪敎史] 懶翁集 封爲王師大曺溪宗師禪敎都摠攝勤脩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

相國; 高麗時代 從二品以上官員的稱號 宰相的別稱 百度百科 相國 戰國時代稱爲相邦 如秦國呂不韋 漢高祖劉邦卽位 爲避諱改爲相國 漢朝相國最初由蕭何擔任 後代對擔任宰相的官員 也敬稱相國

況擧起別話頭時; 皇明名僧輯略無此七字

四威儀; 謂行住坐臥四種威儀 出家人所必須遵守之儀則 敎中有三千威儀八萬細行等語

 

고려(高麗) 보제선사(普濟禪師)가 이상국(相國)에게 답()한 글()

이미 일찍이 무자화(無字話)에서 제시(提撕; 參究)했다면 개참(改參)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물며 다른 화두를 거기(擧起)할 때(況擧起別話頭時) 일찍이 무자(無字)를 참()했다면 반드시 무자(無字)에 조금 익은(小熟) 인지(因地)가 있으리니 간절히 이동(移動)을 말아야 하며 간절히 개참(改參)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지 이륙시중(二六時中)의 사위의내(四威儀)에 화두를 거기(擧起)하되 어느 때에 깨치는가 깨치지 않는가를 기다리지 말며 또한 자미(滋味)가 있거나 자미가 없거나에 상관(相管; ) 말며 또한 득력(得力)하느냐 득력하지 못하느냐에도 상관 마십시오. 심사(心思)가 미치지 못하고 의려(意慮)가 행하지 않음에 찰도(拶到; 은 마주칠 찰)하면 곧 이 제불제조(諸佛諸祖)가 신명(身命)을 방사(放捨; )하는 곳입니다.

평왈(評曰) 이 어록은 만력정유(萬曆丁酉; 1597)에 복건(福建)의 허원진(許元眞)이 동정(東征)하여 조선(朝鮮)에서 그것을 얻은 것인데 중국에는 있지 않다. 인하여 그 요(; 要點)를 기록하여 적는다(識之).

普濟; 혜근(惠勤; 1320-1376)이니 고려국 임제종승. 영남 영해촌(寧海村)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아()며 원명(原名)은 원혜(元慧)며 호()는 나옹(懶翁)이니 세칭(世稱) 나옹혜근(懶翁惠勤)이며 거처하는 바의 방은 강월헌(江月軒)이라고 일컬었음. 20세에 공덕산(功德山)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을 좇아 출가했음. 후에 양주(揚州; 경기도)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이르러 연좌(宴坐; 편안하게 좌선)하며 정수(精修)하기 4년 만에 개오(開悟)를 얻었음. () 지정(至正) 8(1348)에 중화(中華)로 가서 연경(燕京; 河北)의 법원사(法源寺)에 이르러 서천승(西天僧) 지공(指空)을 참방(參訪)했음. 10(혹은 이르기를 11)에 남쪽으로 유행(遊行)하다가 항주(杭州) 정자사(淨慈寺)에서 평산처림(平山處林; 양기하 11)을 참알(參謁)해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후에 보타락산(補陀洛山)ㆍ육왕산(育王山)ㆍ명주(明州)ㆍ무주(婺州) 복룡산(伏龍山)ㆍ송강(松江) 등지(等地)를 유력(遊歷)하였음. 15년 칙명을 받들어 대도(大都) 광제선사(廣濟禪寺)에 주()하며 개당설법(開堂說法)했음. 스님이 고려 공민왕(恭愍王) 7(즉 원 지정 18)에 귀국하여 요양(遼陽)ㆍ평양(平壤)ㆍ동해(東海) 등지(等地)에 있으면서 수기설법(隨機說法)했음. 다음해 왕명을 받들어 삼전(三殿)에서 교법(敎法)을 보설(普說)했으며 칙명으로 신광사(神光寺)에 주()했다가 후에 금강산 정양암(正陽庵)ㆍ청평사(淸平寺)ㆍ회암사(檜巖寺) 등의 곳에 이주(移住)했음. 공민왕 20년 책봉(冊封)을 받아 왕사(王師)가 되었으며 아울러 칙명으로 동방제일도량(東方第一道場) 송광사(松廣寺)에 주()했음. 우왕(禑王) 2년 여흥(驪興; 여주) 신륵사(神勒寺)에서 시적(示寂)했으니 세수(世壽)57. 선각(禪覺)이란 호를 칙시(敕諡)했음. 법사(法嗣)에 무학자초(無學自超)ㆍ국사지천(國師智泉)ㆍ고봉법장(高峰法藏) 23인이 있으며 아울러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 1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대흥사사적비, 삼성산삼막사사적(이상은 조선사찰사료에 수록되었음). 조선금석총람상. 고려사133. 조선불교통사중. 조선선교사]. 나옹집(懶翁集) ()하여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普濟尊者)라 했다.

相國; 고려시대 종2품 이상 관원의 칭호. 재상(宰相)의 별칭(別稱). 백도백과(百度百科) 상국(相國) 전국시대엔 일컬어 상방(相邦)이라 했음. 예컨대() 진나라 여불위를 한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자 휘()를 피해 고쳐 상국(相國)이라 했음. 한조의 상국은 최초에 소하가 담임함으로 말미암았음. 후대에 재상을 담임한 관원에 대해 또한 경칭하여 상국이라 했음.

況擧起別話頭時; 황명명승집략()엔 이 7()가 없음.

四威儀; 이르자면 행ㆍ주ㆍ좌ㆍ와의 4종 위의니 출가인이 필수로 준수해야 할 바의 의칙(儀則). 교중에 3천 위의 8만 세행(細行) 등의 말이 있음.

 

楚山琦禪師解制

諸大德九十日中 還曾證悟也無 如其未悟 則此一冬 又是虛喪了也 若是本色道流 以十方法界爲箇圓覺期 莫論長期短期 百日千日 結制解制 但以擧起話頭爲始 若一年不悟 參一年 十年不悟 參十年 二十年不悟 參二十年 盡平生不悟 決定不移此志 直須要見箇眞實究竟處 方是放參之日也 如未能言前契旨 但將一句阿彌陀佛 置之懷抱 默默體究 常時鞭起疑情 這念佛的是誰 念念相續 心心無間 如人行路到水窮山盡處 自然有箇轉身的道理 㘞地一聲 契入心體

評曰 擧起話頭爲進期 眞實究竟爲出期 當牢記取

楚山琦; 紹琦(1404-1473) 明代臨濟宗僧 字楚山 唐安(四川崇州東南)雷氏 九歲出家 初從玄極通 後謁東普無際明悟得法 出住成都東山 遷舒州投子 [續燈存稾九 五燈嚴統二十三 補續高僧傳十五]

解制; 解九旬安居之制限 首楞嚴經臆說 佛制比丘四月十五 爲禁足之晨 七月十五 名爲解制 此指冬安居之解制 冬安居 冬季結制之安居 僧侶於夏安居之外 每年自十月十五日至翌年正月十五日間 禁止外出而專事參禪講學修養 稱爲冬安居 印度原始佛敎以來 卽盛行雨季期間之夏安居 然於西北印度與中亞一帶 氣候較寒 冬季多雪 間有霖雨 外出困難 故仿夏安居之制而行冬安居 諸部派之小乘律對此竝無記載 而經典中 最早有冬安居之記載者爲大乘律梵網經下 中國禪林亦行冬安居 然多行於北方 南地則普遍行夏安居 韓國禪林行下安居與冬安居 日本本無冬安居之結制 自道元之後始引進冬安居之法 [西域記一 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上 象器箋四節時類]

結制; 結夏 夏安居也 夏安居始於四月十五日 稱爲結夏 終於七月十五日 稱爲解夏

放參; 朝參晩參等爲日常行事 若臨時休止 卽稱放參 後轉而特指休止晩參爲放參 又通知大衆放參所敲之鐘鼓 分別稱爲放參鐘放參鼓 所懸掛之揭示牌 稱爲放參牌 此外 進用晩餐(藥石)之時刻 恰與敲擊放參鐘之時刻相同 故亦稱晩餐爲放參飯 [禪苑淸規一赴粥飯 同二上堂 象器箋叢軌類]

 

초산기(楚山琦) 선사(禪師) 해제(解制)

여러 대덕(大德)이여 90일 중에 도리어 일찍이 증오(證悟)했느냐 또는 아니냐. 그 깨치지() 못했을 것 같으면 곧 이 일동(一冬)을 또 이 허상(虛喪; 헛되이 喪失)했다. 만약 이 본색(本色)의 도류(道流)일진대 시방법계(十方法界)로써 저() 원각기(圓覺期)로 삼아야 하나니 장기단기(長期短期)ㆍ백일천일(百日千日)ㆍ결제해제(結制解制)를 논하지 말고 단지 화두(話頭)를 거기(擧起)함으로써 시작(始作; )을 삼아야 한다. 만약 1년에 깨치지 못하면 1년을 참()하고 10년에 깨치지 못하면 10년을 참하고 20년에 깨치지 못하면 20년을 참하고 평생이 다하도록 깨치지 못하더라도 결정(決定)코 이 의지(意志)를 이동(移動; )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모름지기 저() 진실한 구경처(究竟處)를 봄을 요하나니 바야흐로 이 방참(放參)하는 날이다. 능히 언전(言前)에 계지(契旨)하지 못할 것 같으면 단지 1() 아미타불(阿彌陀佛)을 가져다 회포(懷抱)에 두고(置之) 묵묵히 체구(體究)하되 상시(常時)에 의정(疑情)을 채찍질해 일으켜(鞭起) (; ) 염불하는 것(念佛的)은 이 누구인가. 염념(念念)이 상속(相續)하고 심심(心心)이 무간(無間)해야 한다. 사람이 길을 가면서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한 곳(水窮山盡處)에 이르면 자연히 저() 전신(轉身)할 도리(道理)가 있음과 같나니 화지일성(㘞地一聲)에 심체(心體)에 계입(契入)한다.

평왈(評曰) 화두를 거기(擧起)함은 진기(進期)가 되고 진실한 구경(究竟)이 출기(出期)가 되나니 응당 단단히() 기취(記取)하라.

楚山琦; 소기(紹琦; 1404-1473)니 명대(明代) 임제종승. 자는 초산(楚山)이며 당안(사천 숭주 동남) 뇌씨(雷氏). 9세에 출가하여 처음엔 현극통을 좇았고 후에 동보 무제명오(無際明悟)를 참알해 득법했음. 출세해 성도 동산에 거주하다가 서주 투자로 옮겼음 [속등존고9. 오등엄통23. 보속고승전15].

解制; 구순안거(九旬安居; 90일 안거)의 제한을 푸는() 것임. 수릉엄경억설 불타가 비구에게 제율(制律)하되 415는 금족(禁足)의 아침이며 715는 이름하여 해제(解制). 여기에선 동안거(冬安居)의 해제(解制)를 가리키나니 동안거는 동계 결제의 안거임. 승려가 하안거 외에 매년 1015일부터 다음해 정월 15일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에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참선과 강학으로 수양에 종사함을 일컬어 동안거라 함. 인도는 원시불교 이래로 곧 우계 기간의 하안거가 성행했음. 그러나 서북 인도와 중아(中亞; 중부 아시아) 일대는 기후가 비교적으로 춥고 동계에 눈이 많고 가끔 비도 오는지라 외출이 곤란하므로 고로 하안거의 제도를 모방하여 동안거를 행했음. 모든 부파의 소승률에선 여기에 대한 기재가 모두 없으며 경전 중에 가장 일찍 동안거의 기재가 있는 것은 대승률인 범망경하(梵網經下)가 됨. 중국의 선림에서도 또한 동안거를 행하지만 그러나 북방에서 많이 행하고 남지(南地)는 곧 보편적으로 하안거를 행함. 한국의 선림에선 하안거와 동안거를 행하며 일본은 본래 동안거의 결제가 없었는데 도원(道元)의 후로부터 비로소 동안거의 법을 인진(引進; 인용)했음 [서역기1.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상. 상기전사절시류].

結制; 곧 결하(結夏)니 하안거임. 하안거는 415일에 시작하는데 일컬어 결하라 하고 715일에 마치는데 일컬어 해하(解夏)라 함.

放參; 조참(朝參)과 만참(晩參) 등은 일상의 행사가 되는데 만약 임시로 휴지(休止)하면 곧 명칭이 방참(放參). 후에 전()하여 특별히 만참(晩參)을 휴지함을 가리켜 방참으로 삼았음. 또 대중에게 방참을 통지하면서 치는 바의 종고(鐘鼓)를 방참종ㆍ방참고로 분별해 호칭하고 매달아 거는 바의 게시패(揭示牌)를 방참패로 호칭함. 이 밖에 만찬(晩餐; 藥石)을 쓰는 시각에 진입함이 마침 방참종을 고격(敲擊)하는 시각과 서로 같은지라 고로 또한 만찬을 방참반(放參飯)이라 함 [선원청규1부죽반, 2상당. 상기전총궤류].

 

天眞毒峯善禪師示衆

果欲了脫生死 先須發大信心 立弘誓願 若不打破所參公案 洞見父母未生前面目 坐斷微細現行生死 誓不放捨本參話頭 遠離眞善知識 貪逐名利 若故違此願 當墮惡道 發此大願 防護其心 方堪領受公案 或看無字 要緊在因甚狗子無佛性上著力 或看萬法歸一 要緊在一歸何處 或參究念佛 要緊在念佛的是誰 回光返照深入疑情 若話頭不得力 還提前文 以至末句 使首尾一貫方有頭緒 可致疑也 疑情不斷 切切用心 不覺擧步翻身 打箇懸空筋斗 却再來吃棒

毒峯善; 本善(?-1482) 明代臨濟宗僧 俗姓吳 號毒峰 鳳陽(今屬安徽)人 十七歲 依源明禪師出家 一日聞鐘聲有省 後參月溪澄禪師(楊岐下十五世)得法 居天目山萬峰庵 出主天眞寺 著有毒峰語錄 [五燈全書五九]

了脫生死; 意指超脫生死的輪回 達到涅槃的境界

懸空筋斗; 虛空裏翻筋斗 懸空; 不著地 懸在半空中 筋斗; 又作斤斗 巾斗 唐之俗語 爲倒翻身也 斤是其本字 餘皆爲假用 祖庭事苑七 斤斗 斤 斫木具也 頭重而柯輕 用之則斗轉 爲此技者似之

 

천진(天眞; 天眞寺) 독봉선(毒峯善) 선사(禪師) 시중(示衆)

과연 생사를 요탈하고(了脫生死) 싶다면 먼저 꼭 대신심(大信心)을 발()하고 홍서원(弘誓願;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만약 소참(所參)의 공안(公案)을 타파하여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을 통견(洞見; 환히 보다)하고 미세한 현행(現行)의 생사를 좌단(坐斷)하지 못한다면 맹서(盟誓; )코 본참(本參)의 화두(話頭)를 방사(放捨)하지 말아라. 진선지식(眞善知識)을 원리(遠離)하고 명리(名利)를 탐축(貪逐)하고 만약 고의(故意; )로 이 원()을 위배(違背; )한다면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라. 이 대원(大願)을 발()하여 그 마음을 방호(防護)해야 바야흐로 감(; )히 공안을 영수(領受)한다. 혹 무자(無字)를 간()한다면 요긴(要緊)이 무엇으로 인해 구자(狗子; )는 불성이 없느냐의 상()에 있으면서 착력(著力)해야 하고 혹 만법귀일(萬法歸一;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을 간()한다면 요긴(要緊)이 일귀하처(一歸何處;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에 있고 혹 염불(念佛)을 참구(參究)한다면 요긴(要緊)이 염불하는 것(念佛的)은 이 누구인가에 있나니 회광반조(回光返照)해야 의정(疑情)에 깊이 들어간다. 만약 화두에 득력(得力)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전문(前文; 無字 )을 들어() 말구(末句)에 이르기까지(以至) 수미(首尾)로 하여금 일관(一貫)되게 해야 바야흐로 두서(頭緒)가 있으며 가히 의심을 이룬다(致疑). 의정(疑情)이 끊어지지 않아 절절(切切)히 용심(用心)하다가 불각(不覺)에 발을 들어(擧步) 몸을 번드치고() () 현공근두(懸空筋斗)를 짓고는() 도리어 다시 와서 흘방(吃棒; 喫棒)하라.

毒峯善; 본선(本善; ?-1482)이니 명대 임제종승. 속성은 오며 호는 독봉(毒峰)이며 봉양(지금 안휘에 속함) 사람. 17세에 원명선사에게 의지해 출가했음. 어느 날 종소리를 듣다가 깨침이 있었고 후에 월계징선사(月溪澄禪師; 양기하 15)를 참해 득법했음. 천목산 만봉암에 거주하다가 출세해 천진사(天眞寺)룰 주지(主持)했음. 저서에 독봉어록이 있음 [오등전서59].

了脫生死; 뜻은 생사의 윤회를 초탈(超脫)해 열반의 경계에 달도(達到)함을 가리킴.

懸空筋斗; 허공 속에서 근두(筋斗)를 뒤집음. 懸空; 착지(著地)하지 않고 반공(半空) 중에 매달려() 있음. 筋斗; 또 근두(斤斗), 건두(巾斗)로 지음. 당의 속어니 몸을 거꾸로 뒤집음이 됨. ()이 이 그의 본래 글자며 나머지는 가차(假借)하여 씀이 됨. 조정사원7. 근두(斤斗) 도끼는 나무를 쪼개는 도구임. 머리가 무겁고 자루가 가벼워 이를 쓰면 곧 두(; . 자루가 있음)가 회전하므로 이 기예를 하는 자가 이와 흡사함.

 

空谷隆禪師示衆

不可呆蠢蠢地念箇話頭 亦不可推詳計較 但時中憤然要明此事 忽爾懸崖撒手 打箇翻身 方見孤明歷歷 到此不可耽著 還有腦後一槌 極是難透 爾且恁麽參去 不參自悟 上古或有之 自餘未有不從力參而得悟者 優曇和尙 令提念佛的是誰 汝今不必用此等法 只平常念去 但念不忘 忽然觸境遇緣 打著轉身一句 始知寂光淨土不離此處 阿彌陀佛不越自心

評曰 但時中憤然要明此事 此句甚妙 該攝看話頭之法曲盡

空谷隆; 景隆(1392-?) 明代臨濟宗僧 俗姓陳 字祖庭 號空谷 蘇州(今屬江蘇)人 永樂十八年(1420) 禮蘇州虎丘寺石庵削髮爲僧 宣德二年(1427) 至杭州昭慶律寺受具足戒 遂依智安住靈隱寺 隨充侍者 後往天目禮高峰祖塔 刻苦參究一年 忽有省 復謁智安(楊岐下十二世) 蒙其印可 出住湖州(今屬浙江)碧巖寺 晩年于西湖修吉山築正傳塔院 隱居其中 性洒脫 喜文墨 著有空谷集三十卷 [五燈全書五十八]

蠢蠢; 騷亂貌 形容愚笨的樣子

推詳; 仔细推究

懸崖撒手; 亦作撒手懸崖 形容參禪時 超越語言知見情識分別 毫無依倚 毫不猶豫

孤明; 孤寂明淨 指人人具有的自心佛性或眞我之實相

優曇和尙; 普度 號優曇 宋末元初丹陽(今屬江蘇)人 俗姓蔣 宋末出家 創庵修白蓮敎 後至廬山東林寺 主持白蓮宗善法堂 元大德九年(1305) 著成廬山蓮宗寶鑒十卷 [蓮宗寶鑑序]

打著; 通常用於表示進行某種動作的狀態 例如打著電話表示正在通話的狀態 打著球 表示正在進行球類運動的狀態等

 

공곡륭(空谷隆) 선사(禪師) 시중(示衆)

(; 어리석은)한 준준지(蠢蠢; 는 조사)에서 저() 화두(話頭)를 염(; 생각하다. 외우다)함은 옳지 못하고 또한 추상(推詳)하며 계교(計較)함도 옳지 못하다. 단지 시중(時中)에 분연(憤然)히 차사(此事)를 밝히려고 한다면 홀이(忽爾; 홀연) 현애살수(懸崖撒手;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다)하고 저() 번신(翻身)을 지어야() 바야흐로 고명(孤明)이 역력(歷歷)하다. 여기에 이르러 탐착(耽著)함을 옳지 않나니 도리어 뇌후(腦後)의 일추(一槌)가 있어 극히 이 투과(透過; )하기 어렵다. 너희()는 다만() 이렇게(恁麽) ()해 가거라. ()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침은 상고(上古)에 혹 있었지만 자여(自餘; 其餘)는 역참(力參)을 좇아서 득오(得悟)하지 않은 자가 있지 않다. 우담화상(優曇和尙)이 염불하는 것(念佛的)은 이 누구인가를 들게() 했거니와 너희는 이제 이런 등의 법을 씀이 필요치 않나니 다만 평상(平常)대로 염()해 가거라. 단지 염()하여 잊지 않다가 홀연히 촉경우연(觸境遇緣)하면서 전신(轉身)1(一句)를 타착(打著)한다면 적광(寂光)의 정토(淨土)가 차처(此處)를 여의지 않고 아미타불이 자심(自心)을 초월하지 않는 줄 비로소 알 것이다.

평왈(評曰) 단지 시중(時中)에 분연(憤然)히 차사(此事)를 밝히고자 한다는 이 구()기 심묘(甚妙)하나니 화두를 간()하는 법을 해섭(該攝)하여 곡진(曲盡; 委曲히 다하다)했다.

空谷隆; 경륭(景隆; 1392-?)이니 명대 임제종승. 속성은 진이며 자는 조정(祖庭)이며 호는 공곡(空谷)이니 소주(지금 강소에 속함) 사람. 영락 18(1420) 소주 호구사의 석암을 참례하여 삭발하고 승인이 되었음. 선덕 2(1427) 항수 소경율사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으며 드디어 지안(智安)에게 의지하여 영은사에 주()했고 따라서 시자에 충당되었음. 후에 천목에 가서 고봉조탑(高峰祖塔)을 참배하고 각고하며 참구하기 1년에 홀연히 깨침이 있었음. 다시 지안(智安; 양기하 12)을 알현하여 그의 인가를 입었음. 출세하여 호주(지금 절강에 속함) 벽암사에 주()했음. 만년에 서호 수길산에 정전탑원(正傳塔院)을 건축하고 그 중에 은거했음. 성격이 쇄탈(洒脫)하고 문묵(文墨)을 기뻐했으며 저서에 공곡집(空谷集) 30권이 있음 [오등전서58].

蠢蠢; 소란(騷亂)한 모양. 우분(愚笨; 우둔)한 양자(樣子)를 형용.

推詳; 자세히 추구(推究).

懸崖撒手; 또한 살수현애(撒手懸崖)로 지음. 참선할 때 어언ㆍ지견ㆍ정식(情識)ㆍ분별을 초월하여 터럭만큼도 의의(依倚)함이 없고 터럭만큼도 유예하지 않음을 형용.

孤明; 고적(孤寂)하고 명정(明淨)함이니 사람마다 갖추고 있는 자심의 불성 혹은 진아의 실상을 가리킴.

優曇和尙; 보도(普度)니 호가 우담(優曇). 송말원초 단양(丹陽; 지금 江蘇에 속함) 사람. 속성은 장()이며 송말(宋末)에 출가했고 창암(創庵)하여 백련교를 수행했음. 후에 여산 동림사(東林寺)에 이르러 백련종(白蓮宗) 선법당(善法堂)을 주지(主持)했고 원() 대덕(大德) 9(1305) 여산연종보감(廬山蓮宗寶鑒) 10권을 저성(著成)했음 [연종보감서].

打著; 통상(通常) 모종(動作)의 동작을 진행하는 상태를 표시함. 예여(例如) 타착전화(打著電話)는 바로() 통화(通話)의 상태에 있음을 표시하고 타착구(打著球)는 구류(球類)의 운동을 진행하는 상태를 표시하는 등임.

 

天奇和尙示衆

汝等從今發決定心 晝三夜三 擧定本參 看他是箇甚麽道理 務要討箇分曉 日久歲深 不煉昏沈 昏沈自退 不除散亂 散亂自絕 純一無雜 心念不生 忽然會得 如夢而醒 覆看從前 俱是虛幻當體本來現成 萬象森羅全機獨露 於這大明國裏 也不枉爲人 向此法門 也不枉爲僧 却來隨緣度日 豈不暢哉 豈不快哉 終日念佛 不知全是佛念 如不知 須看箇念佛的是誰 眼就看定 心就擧定 務要討箇下落

評曰 毒峯天奇 皆敎參究念佛 空谷何故謂 不必用此等法 蓋是隨機不同 任便無礙

天奇; 本瑞 明代臨濟宗僧 南昌府(江西)鍾陵人 俗姓江 字天奇() 世稱煢絶老人 二十歲 參荊門之無脫()能 得度出家 未久 遊蜀(四川)之楚山 遍參耆宿 後至高峰謁寶峰明瑄(又作智瑄 楊岐下十七世) 得其心印 後遷住竟陵(湖北)荊門 著有煢絶老人天奇直註雪竇顯和尙頌古 天童覺和尙頌古各二卷 [續釋氏稽古略三 五燈全書六十]

晝三夜三; 卽晝夜六時 天竺之法 乃將一晝夜分爲六時 卽晨朝 日中 日沒(以上爲晝三時) 初夜 中夜 後夜(以上爲夜三時) [智度論七 華嚴經隨疏演義鈔八十五 大唐西域記二]

日久歲深; 指時間長久

下落; 一下落處 落著處 二去處 此指一

 

천기화상(天奇和尙) 시중(示衆)

너희 등은 지금으로 좇아 결정심(決定心)을 발()하여 주삼야삼(晝三夜三)에 본참(本參; 본참의 화두)을 거정(擧定; 들어 정함)해 저() 시개(是箇; 이것)가 무슨 도리인지 간()할지니 무요(務要; 非常으로 重要)는 저() 분효(分曉; 分明)를 찾음이다(). 일구세심(日久歲深)하면 혼침(昏沈)을 단련(鍛煉; )하지 않아도 혼침이 자퇴(自退)하고 산란(散亂)을 제()하지 않아도 산란이 자절(自絕)하여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심념(心念)이 나지 않으며 홀연히 회득(會得)하면 꿈을 꾸다가 깨어남()과 같으리라. 종전(從前)을 되풀이하여 보매(覆看) 모두() 이 허환(虛幻)한 당체(當體)가 본래 현성(現成)했으며 만상삼라(萬象森羅)는 전기(全機)가 독로(獨露)했나니 저(; ) 대명국(大明國) 속에 또한 헛되이()이 사람을 위하지 않고 이 법문을 향해 또한 헛되이 승()이 되지 않았다. 각래(却來)하여 수연(隨緣)하여 날을 지내면 어찌 창재(暢哉)가 아니며 어찌 쾌재(快哉)가 아니겠는가. 종일 염불(念佛)하면서 전부 이 불념(佛念; 마음이 곧 불념)임을 알지 못하거니와 알지 못할 것 같으면 모름지기 저() 염불하는 것(念佛的)은 이 누구인가를 간()하라. 눈은 그대로() 간정(看定; 하여 정함)하고 마음은 그대로 거정(擧定)할지니 무요(務要)는 저() 하락(下落)을 찾는() 것이다.

평왈(評曰) 독봉(毒峯; 毒峯善)과 천기(天奇)는 모두 염불을 참구하게 했거늘 공곡(空谷; 空谷隆)은 무슨 연고로 이르되 이런 등의 법을 씀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는가. 대개(大蓋; ; 大槪) 이는 근기(根機; )를 따름이 부동(不同)함이니 편의에 맡겨(任便)도 무애(無礙)하다.

天奇; 본서(本瑞)명대 임제종승. 남창부(강서) 종릉 사람. 속성은 강이며 자는 천기(天奇; )니 세칭이 경절노인(煢絶老人). 20세에 형문의 무탈(無脫; )()을 참례하여 득도하고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촉(사천)의 초산에 노닐면서 두루 기숙(耆宿)을 참알했음. 후에 고봉에 이르러 보봉명선(寶峰明瑄; 智瑄으로 지음. 양기하 17)을 알현하고 그의 심인을 얻었음. 후에 경릉(호북) 형문으로 옮겨 거주했음. 저서에 경절노인천기직주설두현화상송고ㆍ천동각화상송고 각 2권이 있음 [속석씨계고략3. 오등전서60].

晝三夜三; 곧 주야육시(晝夜六時). 천축의 법은 곧 1주야(晝夜)를 가지고 나누어 6시로 삼음. 곧 신조(晨朝)ㆍ일중(日中)ㆍ일몰(日沒) (이상은 晝三時가 됨)과 초야ㆍ중야ㆍ후야 (이상은 夜三時가 됨) [지도론7. 화엄경수소연의초85. 대당서역기2].

日久歲深; 시간이 장구함을 가리킴.

下落; 1. 하락처(下落處). 낙착처(落著處). 2. 거처(去處).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古音琴禪師示衆

坐中所見善惡 皆由坐時 不起觀察 不正思惟 但只瞑目靜坐 心不精采 意順境流 半夢半醒 或貪著靜境爲樂 致見種種境界 夫正因做工夫者 當睡便睡 一覺一醒 便起 抖擻精神 挪挱眼目 咬住牙根 揑緊拳頭 直看話頭落在何處 切莫隨昏隨沈 絲毫外境不可采著 行住坐臥之中 一句彌陀莫斷 須信因深果深 直敎不念自念 若能念念不空 管取念成一片 當念認得念人 彌陀與我同現

古音琴; 淨琴 明代臨濟宗僧 俗姓蔡 字古音 建寧(今屬福建)人 二十五歲出家 初見大闡 無所啓發 次謁性空關主 得遇靜晃 見其古梅語錄有悟 復過滇南 參壽堂 抵鷄鳴灘 忽然大悟 洎見壽堂松(楊岐下十七世) 鍼芥相投 卽承記莂 歸隱斗峰 正德七年(1512) 出主瑞巖 後傳法天眞道覺而寂 [五燈全書六十]

精采; 指精神 神采 形容人精神煥發等

挪挱; 亦作挪挲 兩手搓摩

牙根; 牙的根部

揑緊; 緊抓著 牢牢地握著

 

고음금(古音琴) 선사(禪師) 시중(示衆)

좌중(坐中)에 보는 바의 선악(善惡)은 모두 좌시(坐時)에 관찰(觀察)을 일으키지 않고 바르게 사유(思惟)하지 않음을 말미암음이다. 단지(但只) 눈을 감고() 정좌(靜坐)하여 마음은 정채(精采)하지 않고 뜻은 경계 따라() 흘러 반몽반성(半夢半醒)하나니 혹 정경(靜境)을 탐착(貪著)하여 낙()으로 삼아 갖가지 경계를 봄에 이른다(). 무릇(; 발어사) 정인(正因)으로 공부를 짓는 자는 졸음에 당해 바로 졸고(當睡便睡) 한 번 깨면 한 번 깨어(一覺一醒) 바로 일어나 정신을 두수(抖擻)하고 안목(眼目)을 나사(挪挱)하고 아근(牙根)을 교주(咬住)하고 권두(拳頭)를 날긴(揑緊)하여 화두가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는지 직간(直看)한다. 간절히 수혼수침(隨昏隨沈)하지 말지니 사호(絲毫)라도 외경(外境)에 채착(采著; 캐다)함은 옳지 못하다. 행주좌와(行住坐臥)하는 중에 1() 미타(彌陀)를 끊지 말아야 하나니 모름지기 인심과심(因深果深)을 믿어야 바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하게 되고 만약 능히 염념(念念)이 공()하지 않으면 관취(管取; 管帶해 취함)해 일편(一片)을 염성(念成)하고 당념(當念)하여 염인(念人)을 인득(認得)하면 미타(彌陀)와 내가 함께() 나타나리라.

古音琴; 정금(淨琴)이니 명대 임제종승. 속성은 채며 자는 고음(古音)이니 건녕(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25세에 출가했고 처음은 대천(大闡)을 참견(參見)했으나 계발(啓發)하는 바가 없었음.다음에 성공관주(性空關主)를 참알하여 정황(靜晃)을 득우(得遇)했고 그의 고매어록(古梅語錄)을 보고서 깨달음이 있었음. 다시 전남(滇南)에 이르러 수당(壽堂)을 참했고 계명탄(鷄鳴灘)에 다다라 홀연히 대오했음. 수당송(壽堂松; 양기하 17)에게 이르러 침개(鍼芥)가 상투(相投)하여 곧 기별(記莂)을 받았음. 두봉에 귀은(歸隱)하다가 정덕 7(1512) 출세해 서암을 주지(主持)했고 후에 천진도각(天眞道覺)에게 전법하고 적()했음 [오등전서60].

精采; 정신(精神), 신채(神采)를 가리킴. 사람의 정신이 환발(煥發)하는 들을 형용.

挪挱; 또 나사(挪挲)로 지음. 두 손으로 비비고 문지름.

牙根; 이의 뿌리 부분.

揑緊; ()히 움켜쥠(抓著). 뇌뢰지(牢牢地)에 움켜쥠(握著).

 

異巖登禪師釋疑集

問 學人參求知識 或令提箇話頭 或令疑箇話頭 同耶別耶 答 纔擧話頭 當下便疑 豈有二理 一念提起 疑情卽現 覆去翻來精硏推究 功深力極 自得了悟

評曰 釋疑集中 此一段文 最爲精當 今人頗有滯此二端而不決者 蓋未曾實做工夫故也

異巖登; 元初臨濟宗僧 嗣寂菴潛 潛嗣和庵忠 忠嗣田素庵居士 [禪燈世譜六]

精當; 精確恰當

 

이암등(異巖登) 선사(禪師) 석의집(釋疑集)

() 학인이 지식(知識)에게 참구(參求)하매 혹 저() 화두(話頭)를 들게() 하고 혹 저() 화두를 의심하게() 하는데 같은가 다른가. () 겨우 화두를 들면 당하(當下; 즉시)에 바로 의심이거늘 어찌 두 이치가 있겠는가. 일념(一念)에 제기(提起)하매 의정(疑情)이 곧 나타나나니 복거번래(覆去翻來)하면서 정연(精硏)하여 추구(推究)하되 공()이 깊고 힘이 다하면() 저절로 요오(了悟)를 얻는다.

평왈(評曰) 석의집(釋疑集) 중에 이 일단(一段)의 글이 가장 정당(精當)하다. 금인(今人)이 자못 이 이단(二端)에 막혀() 결정(決定; )하지 못하는 자가 있는데 대개(大蓋; ; 大槪) 일찍이 주공부(做工夫)하지 못한 연고이다.

異巖登; 원초(元初) 임제종승. 적암잠을 이었고 잠은 화암충을 이었고 충은 전소암거사를 이었음 [선등세보6].

精當; 정확(精確)하고 흡당(恰當).

 

月心和尙示衆

憤起新鮮志氣 擧箇話頭 要於結末字上 疑情永長 沈沈痛切 或杜口默參 或出聲追審 如失重物 務要親逢親得 日用中一切時一切處 更無二念

月心; 德寶(1512-1581) 明代臨濟宗僧 金臺(北平)人 俗姓吳 字笑巖 號月心 幼年孤苦 年二十 聽講華嚴大疏 二十二歲 禮廣慧寺大寂爲師 剃髮受具足戒 歷參善知識三十餘人 復往參龍泉寺無聞明聰禪師(明聰 又作正聰 楊岐下二十世) 一日提籃於水邊洗菜 因菜莖墮於水中 逐水圜轉捉不著 忽有省悟 竝得明聰印可 後遊江漢而入終南山 歷住高座 牛首 圓通等諸刹 萬曆五年(1577) 結菴於燕京(北平)柳巷 九年示寂 世壽七十 [五燈會元續略八 南宋元明禪林僧寶傳十四 續燈存槀十]

沈沈; 深邃的樣子

 

월심화상(月心和尙) 시중(示衆)

신선(新鮮)한 지기(志氣)를 분기(憤起)하여 저()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나니 요컨대 결말(結末)의 자상(字上)에 의정(疑情)이 길이() 길어야 하고 침침(沈沈)히 통절(痛切)해야 한다. 혹 두구(杜口)하고 묵묵히 참하거나(默參) 혹 출성(出聲)하여 추심(追審)하되 중물(重物; 귀중한 물건)을 잃음과 같아야 한다. 무요(務要; 非常으로 重要)는 친봉친득(親逢親得)이며 일용중(日用中)의 일체시(一切時) 일체저(一切處)에 다시 이념(二念)이 없어야 한다.

月心; 덕보(德寶; 1512-1581) 명대 임제종승. 금대(북평) 사람. 속성은 오며 자는 소암(笑巖)이며 호는 월심(月心). 유년에 고고(孤苦)했고 나이 20에 화엄대소(華嚴大疏)를 청강했음. 22세에 광혜사 대적을 예알하고 스승으로 삼았으며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았음. 선지식 30여 인을 역참(歷參)했고 다시 용천사 무문명총선사(無聞明聰禪師; 명총은 또 正聰으로 지음. 양기하 20)를 왕참(往參)했음. 어느 날 광주리를 가지고 물가에서 채소를 씻는데 채소 줄기가 수중에 떨어짐으로 인해 물을 따라 빙 돌면서 잡으려고 해도 잡지 못함에서 홀연히 성오(省悟)가 있었음. 아울러 명총의 인가를 얻었음. 후에 강한을 유람하다가 종남산에 들어갔으며 고좌ㆍ우수ㆍ원통 등 여러 사찰에 역주(歷住)했음. 만력 5(1577) 연경(북평) 유항에 암자를 엮었고 9년에 시적했음. 세수 70 [오등회원속략8. 남송원명선림승보전14. 속등존고10].

沈沈; 심수(深邃)한 양자(樣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