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27 보지선사(寶誌禪師)-제방잡거징념대별어(諸方雜擧徵拈代別語)

태화당 2025. 10. 5. 14:27

景德傳燈錄卷第二十七

 

禪門達者雖不出世有名於時者一十人見錄

金陵寶誌禪師 2473

婺州善慧大士 2477

南獄慧思禪師 2490

天台智顗禪師 2497

泗州僧伽和尙 2523

萬迴法雲公 2526

天台豐干禪師 2528

天台寒山子 2531

天台拾得 2533

明州布袋和尙 2535

諸方雜擧徵拈代別語 2539

 

寶誌禪師金城人也 姓朱氏 少出家止道林寺修習禪定 宋泰始初忽居止無定飮食無時 髮長數寸徒跣執錫杖 頭擐剪刀尺銅鑑 或掛一兩尺帛 數日不食無飢容 時或歌吟詞如讖記 士庶皆共事之 齊永明七年 武帝謂師惑衆 收付建康獄 旣旦人見其入市 及檢獄如故 建康令以事聞 帝延於宮中之後堂 師在華林園忽一日重著三布帽 亦不知於何所得之 俄豫章王文惠太子相繼薨 武帝尋厭世 齊亦以此季矣 由是禁師出入 梁高祖卽位下詔曰 誌公迹拘塵垢神遊冥寂 水火不能焦濡 蛇虎不能侵懼 語其佛理則聲聞以上 譚其隱淪遯仙高者 豈以俗士常情空相拘制 何其鄙陋一至於此 自今勿得復禁

冥寂; 不見一物謂冥 泯絶諸相謂寂 乃形容眞空之理

隱淪; 隱居 隱沒身體不使人見

遯仙; 對隱者或道士的敬稱

 

보지선사(寶誌禪師)는 금성(金城) 사람이며 성이 주씨(朱氏). 소년(少年)에 출가하여 도림사(道林寺)에 머물면서() 선정(禪定)을 수습(修習)했다. () 태시(泰始; 465-471) 초 홀연히 거지(居止)가 무정(無定)하고 음식(飮食)이 무시(無時; 定時가 없음)였다. 머리카락은 길이가 몇 촌(數寸)이었고 맨발(徒跣)에 석장(錫杖)을 잡았고 꼭대기(; 석장의 꼭대기)에 전도(剪刀)ㆍ척()ㆍ동감(銅鑑)을 꽃았고() 혹 한두 척의 비단을 걸었다. 며칠 먹지 않아도 주린 안용(顏容)이 없었고 때로 혹 가음(歌吟)했는데 말()이 참기(讖記; 讖書)와 같았다. 사서(士庶)가 모두 그를 한가지로 섬겼다(共事之). () 영명(永明) 7(489) 무제(武帝)가 이르되 스님이 혹중(惑衆)한다 하고는 거두어 건강(建康)의 뇌옥(牢獄)에 맡겼다(). 이윽고() 아침에 사람들이 그()의 입시(入市)를 보았고 및 검옥(檢獄)하자 예와 같았다(如故). 건강령(建康令)이 사실을 알리자() 무제가 궁중의 후당(後堂)에서 접대(接待; )했다. 스님이 화림원(華林園)에 있으면서 홀연히 어느 날 세 개의 포모(布帽)를 겹으로 착용(著用; )했는데 또한 어디에서 그것을 얻은 바인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예장왕(豫章王)과 문혜태자(文惠太子)가 상계(相繼)하여 훙()했고 무제도 이윽고 세상을 떠났으며(厭世) ()도 또한 이로써(以此; 저본에 於此로 지었음) 끝이었다(季矣). 이로 말미암아 스님의 출입을 금했다. () 고조(高祖)가 즉위하자 하조(下詔)해 가로되 지공(誌公)은 자취()가 진구(塵垢)에 구애(拘礙)되었으나 정신()은 명적(冥寂)에 노닌다. 수화(水火)가 능히 초유(焦濡; 태우고 적심)하지 못하고 사호(蛇虎)가 능히 침구(侵懼; 침범하고 두렵게 함)하지 못한다. 그 불리(佛理)를 말하자면() 곧 성문(聲聞) 이상(以上)이며 그 은륜(隱淪)을 말하자면() 곧 둔선(遯仙)의 높은 자다. 어찌 속사(俗士)의 상정(常情)으로써 공연히 서로 구제(拘制; 拘禁)하겠는가. 어찌 그 비루(鄙陋)함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는가. 금일로부터(自今) 다시 구금(拘禁; )함을 얻지 못한다.

冥寂; 한 물건도 보이지 않음을 일러 명()이라 하고 제상(諸相)을 민절(泯絶; 소멸)함을 일러 적()이라 함. 곧 진공의 이치를 형용함.

隱淪; 은거. 신체를 은몰(隱沒)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함.

遯仙; 은자(隱者) 혹 도사에 대한 경칭(敬稱).

 

帝一日問師曰 弟子煩惑何以治之 師曰 十二 識者以爲十二因緣治惑藥也 又問十二之旨 師曰 旨在書字時節刻漏中 識者以爲書之在十二時中 又問 弟子何時得靜心修習 師曰 安樂禁 識者以爲修習禁者止也 至安樂時乃止耳 又製大乘贊二十四首盛行於世餘諸辭句與夫禪宗旨趣冥會 略錄十首及師製十二時頌 編于別卷 天監十三年冬將卒 忽告衆僧令移寺金剛神像出置于外 乃密謂人曰 菩薩將去 未及旬日無疾而終 擧體香軟 臨亡然一燭以付後閤舍人吳慶 慶以事聞 帝歎曰 大師不復留矣 燭者將以後事囑我乎 因厚禮葬于鍾山獨龍阜 仍立開善精舍 勅陸倕製銘於冢內 王筠勒碑於寺門 處處傳其遺像焉 初師顯迹之始年可五六十許 及終亦不老 人莫測其年 有徐捷道者 年九十三 自言是誌外舅弟 小誌四年 計師亡時蓋年九十七矣 勅諡妙覺大師

煩惑; 煩悶惑亂

刻漏; 古計時器 以銅爲壺 底穿孔 壺中立一有刻度的箭形浮標 壺中水滴漏漸少 箭上度數卽漸次顯露 視之可知時刻 [漢語詞語]

陸倕; (470-526) 字佐公 吳郡吳縣(今江蘇蘇州)人 南朝大臣 著名文史學家 竟陵八友之一 官至中書侍郞 守太常卿 普通七年卒 年五十七 著有文集二十卷 行於世

王筠; (482-550) 南朝梁文學家 字元禮 一字德柔 琅琊臨沂(今山東臨沂市)人 南朝梁大臣 [百度百科]

勒碑; 指在碑石上刻字 勒 雕刻

 

(; 양무제)가 어느 날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제자가 번혹(煩惑)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다스려야 합니까. 사왈(師曰) 12입니다. 식자(識者)12인연으로 치혹(治惑)하는 약으로 삼습니다. 12의 의지(意旨)를 묻자 사왈 의지가 서자(書字)의 시절 각루(刻漏) 중에 있으며 식자(識者)는 서()12시 중에 있음으로 삼습니다. 우문(又問) 제자가 어느 때 정심(靜心)으로 수습(修習)함을 얻습니까. 사왈 안락금(安樂禁)입니다. 식자(識者)는 수습(修習)으로 삼나니 금()이란 것은 지(; 그치다)입니다. 안락 시에 이르면 이에 지()할 따름입니다. 또 대승찬(大乘贊) 24()를 지었는데() 세상에 성행한다나머지 諸辭句는 선종의 지취와 명회(冥會; 默契. 暗合)한다. 十首 및 스님이 지은 十二時頌略錄하여 別卷編輯했다. 천감(天監) 13(513) 겨울 장차 졸()하려 하자 홀연히 중승(衆僧)에게 고()해 사원의 금강신상(金剛神像)을 옮겨 밖으로 출치(出置)하게 했다. 이에 몰래() 사람에게 일러 가로되 보살이 장차 떠나려고 한다. 열흘(旬日)에도 미치지 아니한 전에 질병 없이 마쳤는데 온몸(擧體)이 향기롭고 부드러웠다(香軟). 임망(臨亡)하여 일촉(一燭)을 사루어 후합(後閤) 사인(舍人) 오경(吳慶)에게 분부했다. 오경이 사실을 알리자 무제가 탄왈(歎曰) 대사가 다시 머물지(復留) 않을 것이다. ()이란 것은 장차 후사(後事)를 나에게 촉()함인가 한다. 인하여 후례(厚禮)로 종산(鍾山)의 독룡부(獨龍阜)에 안장(安葬)했고 인하여() 개선정사(開善精舍)를 세웠다. 칙명으로 육수(陸倕)가 총내(冢內; 저본에 冡內로 지었음)에 제명(製銘)했고 왕균(王筠)이 사문(寺門)에 늑비(勒碑)했다. 곳곳에 그 유상(遺像)이 전한다. 처음 스님이 현적(顯迹)한 처음() 나이는 가히 5, 6십 가량()이었는데 마침에 이르러서도 또한 늙지 않은지라 사람들이 그 나이를 헤아리지 못했다. 서첩도(徐捷道)란 자가 있었으니 나이가 93이었는데 스스로 말하되 이 보지(寶誌)는 외구제(外舅弟; 岳父의 동생)이다. 보지 보다 4년 적다()했으니 스님의 망시(亡時)를 계산하자면 대개 나이가 97이다. 칙시가 묘각대사(妙覺大師).

煩惑; 번민(煩悶)하고 혹란(惑亂).

刻漏; 옛날의 계시기(計時器). 구리로써 호(; 단지)를 만들고 바닥에 구멍을 뚫음. 호중(壺中)에 하나의 각도(刻度)가 있는 전형(箭形)의 부표(浮標)를 세움. 호중의 물방울이 새서() 점차 적어지면 전상(箭上)의 도수(度數)가 곧 점차 현로(顯露). 이를 보면서 가히 시각을 앎 [한어사어].

陸倕; (470-526) 자는 좌공이며 오군 오현(지금의 강소 소주) 사람. 남조의 대신이며 저명한 문사학가(文史學家). 경릉팔우(竟陵八友)의 하나. 벼슬이 중서시랑ㆍ수태상경에 이르렀음. 보통 7년에 졸했고 나이는 57. 저서에 문집 20권이 있어 세상에 행함.

王筠; (482-550). 남조 양()의 문학가. 자는 원례(元禮)며 일자(一字)는 덕유(德柔)니 낭야 임기(臨沂; 지금의 산동 임기시) 사람. 남조 양의 대신 [백도백과]

勒碑; 비석상(碑石上)에 글자를 새김(刻字)을 가리킴. ()은 조각(雕刻).

 

善慧大士者 婺州義烏縣人也 齊建武四年丁丑五月八日 降于雙林鄕傅宣慈家本名翕 梁天監十一年 年十六納劉氏女名妙光 生普建普成二子 二十四與里人稽亭浦漉魚 獲已沈籠水中祝曰 去者適止者留 人或謂之愚 會有天竺僧達磨時謂嵩頭陀曰 我與汝毘婆尸佛所發誓 今兜率宮衣鉢見在 何日當還 因命臨水觀其影 見大士圓光寶蓋 大士笑謂之曰 鑪韛之所多鈍鐵 良醫之門足病人 度生爲急 何思彼樂乎 嵩指松山頂曰 此可棲矣 大士躬耕而居之 乃說一偈曰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寶蓋; 傘之美稱 卽指七寶嚴飾之天蓋 懸於佛菩薩或戒師等之高座上 作爲莊嚴具

 

선혜대사(善慧大士)란 자는 무주(婺州) 의오현(義烏縣) 사람이다. () 건무(建武) 4년 정축(丁丑; 497) 58일 쌍림향(雙林鄕) 부선자가(傅宣慈家)에 강생(降生)했으며 본명은 흡()이다. () 천감(天監) 11(512) 나이 16에 유씨(劉氏)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니(; 娶妻) 이름이 묘광(妙光)이었고 보건(普建)ㆍ보성(普成) 두 아들을 낳았다. 24에 마을 사람과 계정포(稽亭浦)에서 물고기를 걸렀는데(漉魚) 얻고 나서 수중에 침롱(沈籠)하고 축원해 가로되 갈 자는 가고(去者適) 머물 자는 머물러라(止者留). 사람이 혹 이를 일러 어리석다 하였다. 마침() 천축승(天竺僧) 달마(達磨)당시에 이르기를 嵩頭陀라 했다가 있어 가로되 나와 네가 비바시불(毘婆尸佛)의 처소에서 발서(發誓)했는데 지금 도솔궁에 의발(衣鉢)이 현재(見在)한다. 어느 날 마땅히 귀환하겠는가. 인하여 명()해 임수(臨水)하여 그 그림자를 보라 했다. 대사(大士)의 원광(圓光)의 보개(寶蓋)를 보았다. 대사가 웃으며 일러 가로되 노배지소(鑪韛之所)에 둔철(鈍鐵)이 많고 양의지문(良醫之門)에 병인(病人)이 많다(). 도생(度生; 중생을 제도함)이 급함이 되거늘 어찌 그곳()의 낙()을 생각하겠는가. ()이 송산(松山)의 꼭대기()를 가리키며 가로되 여기()가 가히 쉴() 만하다. 대사(大士)가 몸소 경작(耕作; )하며 거주했다. 이에 1게를 설해 가로되 공수(空手)인데 호미(鋤頭)를 잡았고/ 보행(步行)하는데 물소를 탔다/ 사람이 다리 위로 좇아 지나가는데/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더라.

寶蓋; ()의 미칭. 7보로 엄식(嚴飾)한 천개(天蓋)를 가리킴. 불보살 혹 계사(戒師) 등의 높은 법좌 위에 매달아 장엄구로 삼음.

 

有人盜菽麥瓜果 大士卽與籃籠盛去 日常傭作夜則行道 見釋迦金粟定光三如來放光襲其體 大士乃曰 我得首楞嚴定 當捨田宅設無遮大會 大通二年唱賣妻子 獲錢五萬以營法會 時有慧集法師聞法悟解 言我師彌勒應身耳 大士恐惑衆遂呵之 六年正月二十八日 遣弟子傅暀致書于梁高祖 書曰 雙林樹下當來解脫善慧大士 白國主救世菩薩 今欲條上中下善 希能受持 其上善略以虛懷爲本 不著爲宗 亡相爲因 涅槃爲果 其中善略以治身爲本 治國爲宗 天上人間果報安樂 其下善略以護養衆生勝殘去殺 普令百姓俱稟六齋 今聞皇帝崇法欲伸論義 未遂襟懷 故遣弟子傅暀告白 暀投太樂令何昌 昌曰 慧約國師猶復置啓 翕是國民又非長老 殊不謙卑豈敢呈達 暀燒手御路 昌乃馳往同泰寺詢皓法師 皓勸速呈 二月二十一日進書 帝覽之遽遣詔迎 旣至帝問 從來師事誰耶 曰從無所從 來無所來 師事亦爾 昭明問 大士何不論義 曰菩薩所說非長非短 非廣非狹 非有邊非無邊 如如正理 復有何言 帝又問 何爲眞諦 曰息而不滅 帝曰 若息而不滅此則有色 有色故鈍 若如是者居士不免流俗 曰臨財無苟得 臨難無苟免 帝曰 居士大識禮 曰一切諸法不有不無 帝曰 謹受居士來旨 曰大千世界所有色象莫不歸空 百川叢注不過於海 無量妙法不出眞如 如來何故於三界九十六道中獨超其最 視一切衆生有若赤子有若自身 天下非道不安非理不樂 帝默然 大士辭退

首楞嚴定; 首楞嚴三昧也 慧琳音義二十六 首楞嚴三昧 此云勇健定也 此經中自釋云 首楞嚴者 於一切事究竟堅固也 涅槃經二十五 首楞嚴三昧者 有五種名 一者首楞嚴三昧 二者般若波羅蜜 三者金剛三昧 四者師子吼三昧 五者佛性 隨其所作處處得名 …… 首楞者名一切畢竟 嚴者名堅 一切畢竟而得堅固 名首楞嚴 以是故言 首楞嚴定 名爲佛性

無遮大會; 不分賢聖道俗貴賤上下 平等行財施及法施之法會 稱爲無遮會

勝殘去殺; 感化殘暴的人使其不再作惡 便可廢除死刑 也指以德化民 太平至治 [百度百科]

六齋; 六齋日 謂每月淸淨持戒之六日 卽白月八日 十四日 十五日 黑月二十三日 二十九日 三十日 僧衆每月於此六日 須集會一處 布薩說戒 在家二衆於此六日 受持一日一夜八關齋戒 印度自古傳說鬼神每於此六日伺機害人 故至此等日中 遂盛行沐浴斷食之風 其後佛敎沿用此一行事 竝謂於此六日 四天王必下降世間 探査人間之善惡 [雜阿含經四十 四天王經 十誦律五十七]

太樂令; 官名 漢代太常所屬有太樂令及丞 東漢改太樂爲大予樂 置大予樂令及丞 仍屬太常 後漢書百官志說 大予樂令掌伎樂 掌國之祭祀大享用樂之事 [百度百科]

慧約; (452-535) 南朝梁代僧 東陽烏傷(四川)人 俗姓婁 字德素 劉宋泰始四年(468) 十七歲 於東山寺出家 後應齊中書郞周顒之請 住持鍾山草堂寺 時講淨名 勝鬘 法華 大品般若諸經 所居之處 靈異屢見 梁武帝曾從師受菩薩戒 大同元年八月 合掌入寂 世壽八十四 贈號智者 [續高僧傳六]

御路; 指京城中皇帝出行的道路 御 帝王所用或與之有關的事物

昭明; 昭明太子(499-529) 南朝梁武帝蕭衍之長子 名統 字德施 生而敏睿 三歲受孝經論語 五歲遍讀五經 天監元年(502)立爲皇太子 武帝大興佛敎 太子亦深信奉 受菩薩戒 奉持唯謹 遍覽衆經 深究敎旨 於宮內別立慧義殿 招高僧講論 普通元年(520)四月 慧義殿降甘露 嘗撰解二諦義 論眞俗迷悟之境 太子爲人孝敬篤實 平斷法獄 多所全宥 天下皆稱其仁 二十餘年不蓄聲伎 屢招文學之士討論典籍 於東宮藏書三萬卷 實晉宋以來之盛事 大通三年三月得疾 四月薨 享年三十一 朝野莫不惋惜 諡號昭明 著有文集二十卷 又編撰古今典誥文言正序十卷 英華集二十卷 文選三十卷等 [梁書八 居士傳九]

九十六道; 九十六種外道 九十六種 佛世前後出現於印度而異於佛敎之流派 又作九十六術 有關外道之數 雖有多種異說 然以九十六種 九十五種外道二說爲最多 九十六及九十五此二數之算定 依諸經論有數說 一六師外道 卽富蘭那迦葉 末伽梨拘賖梨子 刪闍夜毘羅胝子 阿耆多翅舍欽婆羅 迦羅鳩馱迦旃延 尼犍陀若提子 六師各有十五弟子 總計爲九十六人 亦卽外道之六師各有十六種之所學法 一法自學 餘之十五種各敎十五弟子 師徒合論爲九十六種 二五大外道 卽數論 勝論 離繫 獸出 遍出 各有十八部之末派 本末總計爲九十五種 [薩婆多論五 華嚴經疏二十八 義林章纂註 百論疏]

赤子; 首楞嚴經義疏釋要鈔六云 赤子者始生其體赤而未衣也

 

어떤 사람이 콩ㆍ보리ㆍ오이ㆍ과일을 훔치자 대사(大士)가 곧 광주리와 농()을 주며 담아 가게 했다. 낮에는 늘 용작(傭作; 품팔이 하다)하고 밤엔 곧 행도(行道)했다. 보매 석가ㆍ금속(金粟)ㆍ정광(定光) 3여래가 방광하여 그의 몸을 엄습(掩襲)했다. 대사가 이에 가로되 내가 수릉엄정(首楞嚴定)을 얻었다. 마땅히 전택(田宅)을 희사(喜捨)해 무차대회(無遮大會)를 베풀어야 한다. 대통(大通) 2(528) 처자(妻子)를 창매(唱賣)해 전() 5만을 획득하여 법회를 영위(營爲)했다. 당시에 혜집법사(慧集法師)가 있어 법을 듣고 오해(悟解)했다. 말하되 아사(我師)는 미륵의 응신(應身)이다. 대사가 혹중(惑衆)할까 염려해 드디어 꾸짖었다. 6(532) 정월 28일 제자 부왕(傅暀)을 보내어 양고조(梁高祖)에게 치서(致書; 寄信)했다. 서왈(書曰) 쌍림수하(雙林樹下) 당래해탈(當來解脫) 선혜대사(善慧大士)가 국주(國主) 구세보살(救世菩薩)에게 아룁니다(). 여금에 상중하선(上中下善)을 조(; 條奏逐條하여 上奏)하오니 바라건대() 능히 수지(受持)하십시오. 그 상선(上善)은 간략히 허회(虛懷)를 근본으로 삼고 불착(不著)을 종()으로 삼고 무상(亡相)을 인()으로 삼고 열반을 과()로 삼습니다. 그 중선(中善)은 간략히 치신(治身)을 근본으로 삼고 치국(治國)을 종()으로 삼으면 천상과 인간의 과보가 안락할 것입니다. 그 하선(下善)은 간략히 중생을 호양(護養)하고 승잔거살(勝殘去殺)하여 널리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6(六齋)를 받게() 함입니다. 이제 듣건대 황제께서 숭법(崇法)하여 논의(論義)를 펴고 싶으나(欲伸) 금회(襟懷; 胸懷. 懷抱)를 이루지() 못하신다 하는지라 고로 제자 부왕(傅暀)을 보내어 고백(告白; 저본에 告曰로 지었음)합니다. 부왕이 태악령(太樂令) 하창(何昌)에게 맡겼다(). 창왈(昌曰) 혜약국사(慧約國師)도 오히려 다시 치계(置啓; 알림을 그만 둠)하거늘 흡()은 이 국민(國民)이며 또 장로(長老)도 아니며 특수히 겸비(謙卑)하지도 않으면서 어찌 감히 정달(呈達; 바쳐서 도달함)하겠는가. 부왕이 어로(御路)에서 손을 태웠다(燒手). 허창이 이에 동태사(同泰寺)로 달려가서(馳往) 호법사(皓法師)에게 묻자() ()가 권하여 속정(速呈)했고 221일 진서(進書; 서신을 進上)했다. (; 武帝)가 이를 열람하고는 급히 보내어(遽遣) 조영(詔迎; 불러 맞이함)했다. 이미 이르자 제문(帝問) 종래(從來)로 누구를 사사(師事)했습니까. 가로되 좇아도 좇는 바가 없고 와도 오는 바가 없으며 사사(師事)도 또한 그러합니다. 소명(昭明)이 묻되 대사는 왜 논의(論義)하지 않습니까. 가로되 보살이 설하는 바는 비장비단(非長非短)이며 비광비협(非廣非狹)이며 유변(有邊)도 아니고 무변(無邊)도 아니며 여여(如如)한 정리(正理)거늘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가 우문(又問) 무엇이 진제(眞諦)가 됩니까. 가로되 쉬어도() 불멸(不滅)입니다. 제왈(帝曰) 만약 쉬어도 불멸일진대 이는 곧 유색(有色)이며 유색인 고로 둔()합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거사는 유속(流俗; 凡俗)을 면하지 못합니다. 가로되 임재(臨財)하여 구차(苟且; )하게 얻음이 없고 임난(臨難)하여 구차하게 면함이 없습니다. 제왈(帝曰) 거사는 매우 예의를 압니다(大識禮). 가로되 일체 제법(諸法)은 불유불무(不有不無)입니다. 제왈 거사의 내지(來旨)를 삼가 받겠습니다. 가로되 대천세계에 있는 바 색상(色象)은 공()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고 백천(百川)의 총주(叢注; 聚合하여 注入)가 바다를 초과하지 못하고 무량한 묘법(妙法)이 진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래가 무슨 연고로 3() 구십육도(九十六道) 중에 홀로 초월해 그 으뜸인가 하면 일체중생을 보되 적자(赤子)와 같음이 있으며 자신(自身)과 같음이 있습니다. 천하는 도가 아니면 불안하고 도리가 아니며 불락(不樂)합니다. ()가 묵연(默然)했다. 대사가 사퇴(辭退)했다.

首楞嚴定;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 śūraṃgamasamādhi). 혜림음의26.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 여기에선 이르되 용건정(勇健定)이다. 이 경 중에 스스로 해석해 이르되 수릉엄이란 것은 일체의 일에 구경견고(究竟堅固). 열반경25.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란 것은 5종의 이름이 있다. 1자는 수릉엄삼매며 2자는 반야바라밀이며 3자는 금강삼매며 4자는 사자후삼매며 5자는 불성이다. 그 소작(所作)을 따라 곳곳에서 이름을 얻는다 …… 수릉(首楞)이란 것은 일체필경(一切畢竟)이며 엄()이란 것은 이름이 견()이니 일체가 필경에 견고를 얻음을 이름해 수릉엄이다. 이런 고로 말하되 수릉엄정은 이름하여 불성이다.

無遮大會; 현성ㆍ도속ㆍ귀천ㆍ상하를 분별하지 않고 평등히 재시 및 법시를 행하는 법회를 일컬어 무차회라 함.

勝殘去殺; 잔폭(殘暴)한 사람을 감화(感化)하여 그로 하여금 다시 악을 짓지 않게 하고 바로 가히 사형을 폐제(廢除). 또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태평하여 지치(至治; 最好治理)임을 가리킴 [백도백과]

六齋; 6재일(齋日). 이르자면 매월 청정하게 지계하는 6일이니 곧 백월(白月)8일ㆍ14일ㆍ15일과 흑월의 23일ㆍ29일ㆍ30일임. 승중은 매월 이 6일에 꼭 한 곳에 집회하여 포살(布薩)하고 설계(說戒)하며 재가 2()은 이 6일에 11야 동안 팔관재계(八關齋戒)를 수지함. 인도에서 자고로 전설에 귀신이 매양 이 6일에 기()를 살펴 사람을 상해한다 함. 고로 이런 등의 날 가운데 이르면 드디어 목욕하고 단식하는 풍습이 성행했음. 그 후에 불교에서 이 한 행사를 따라 썼으며 아울러 이르기를 이 6일에 사천왕이 반드시 세간에 하강하여 인간의 선악을 탐사한다 함 [잡아함경40. 사천왕경. 십송률57].

太樂令; 벼슬 이름이니 한대(漢代) 태상(太常) 소속에 태악령 및 승()이 있었음. 동한(東漢)에서 태악(太樂)을 고쳐 대여악(大予樂)이라 했고 대여악령(大予樂令) 및 승()을 설치했으며 그대로 태상에 속했음. 후한서 백관지(百官志)에 설하기를 대여악령(大予樂令)은 기악(伎樂)을 관장했고 나라의 제사와 대향(大享)의 용악지사(用樂之事)를 관장했다 [백도백과].

慧約; (452-535) 남조 양대승(梁代僧). 동양 오상(사천) 사람. 속성은 누()며 자는 덕소. 유송(劉宋) 태시 4(468) 17세에 동산사에서 출가했고 후에 제() 중서랑 주옹의 청에 응해 종산 초당사에 주지했음. 때에 정명ㆍ승만ㆍ법화ㆍ대품반야 여러 경을 강설했으며 소거(所居)하던 처소에 영이(靈異)가 자주 보였음. 양무제가 일찍이 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았음. 대동 원년 8월 합장하고 입적했으며 세수(世壽)84. 증호(贈號)는 지자(智者) [속고승전6].

御路; 경성 가운데 황제가 출행하는 도로를 가리킴. ()는 제왕의 소용(所用)이나 혹 이와 유관한 사물.

昭明; 소명태자(昭明太子; 499-529)니 남조(南朝) 양무제 소연(蕭衍)의 장자니 이름은 통()이며 자는 덕시(德施). 출생하면서 민예(敏睿)하여 3세에 효경과 논어를 수학(受學)했고 5세에 두루 5경을 읽었음. 천감 원년(5 02) 세워 황태자로 삼았음. 무제가 불교를 대흥(大興)시켰고 태자도 또한 깊이 신봉했으며 보살계를 받아 봉지(奉持)하면서 오직 삼갔음. 뭇 경을 편람(遍覽)했고 교지(敎旨)를 깊이 연구했음. 궁내에 따로 혜의전(慧義殿)을 세워 고승을 초청해 강론했음. 보통 원년(520) 4월 혜의전에 감로가 내렸음. 일찍이 이제의(二諦義)를 찬해(撰解)하여 진속(眞俗)과 미오(迷悟)의 경계를 논했음. 태자는 사람됨이 효경(孝敬)하고 독실(篤實)했으며 법옥(法獄; 刑事案件)을 공평하게 판단하여 전유(全宥; 죄를 너그럽게 사면해 그 생명을 보전함)하는 바가 많았으며 천하가 모두 그의 인()을 칭송했음. 20여 년 동안 성기(聲伎; 歌舞 등의 기예)를 모으지 않았고 여러 차례 문학지사(文學之士)를 초청해 전적(典籍)을 토론했음. 동궁의 장서가 3만 권이었으니 실로 진송(晉宋) 이래의 성사(盛事)였음. 대통 33월에 질병을 얻어 4월에 훙()했으니 향년은 31이며 조야(朝野)가 완석(惋惜)하지 않음이 없었음. 시호는 소명(昭明). 저서에 문집 20권이 있으며 또 고금전고문언정서(古今典誥文言正序) 10권ㆍ영화집 20권ㆍ문선(文選) 30권 등을 편찬(編撰)했음 [양서8. 거사전9].

九十六道; 96종 외도니 96종은 불세(佛世; 부처 스스로가 교화하는 시대) 전후로 인도에 출현하였으며 불교와 다른 유파임. 96()로 지음. 외도와 유관한 수에 비록 여러 가지의 이설이 있지만 그러나 96종과 95종의 2설로써 가장 많음을 삼음. 96 95 2수의 산정은 여러 경론에 의거하자면 몇 가지 설이 있음. 1. 육사외도(六師外道) 즉 부란나가섭ㆍ말가리구사리자ㆍ산사야비라지자ㆍ아기다시사흠바라ㆍ가라구타가전연ㆍ니건타야제자의 6사에 각기 15제자가 있어 총계가 96인이 됨. 또한 곧 외도의 6사에 각기 16종의 배우는 바 법이 있으며 1법은 스스로 배우고 나머지 15종은 각기 15제자를 가르치므로 사도(師徒)의 합론이 96종이 됨. 2. 오대외교(五大外道) 즉 수론ㆍ승론ㆍ이계ㆍ수출ㆍ편출에 각기 18부의 말파가 있으며 본말의 총계가 95종이 됨 [살바다론5. 화엄경소28. 의림장찬주. 백론소].

赤子; 수릉엄경의소석요초6에 이르되 적자(赤子)란 것은 처음 출생하여 그 몸이 붉으면서 옷을 입지 않음이다.

 

異日帝於壽光殿請大士講金剛經 大士登座執拍板唱經成四十九頌 大同五年奏捨宅於松山下 因雙樹而創寺 名曰雙林 其樹連理祥煙周繞 有雙鶴棲止 太淸二年大士誓不食 取佛生日焚身供養 至日白黑六十餘人代不食燒身 三百人刺心瀝血和香 請大士住世 大士愍而從之 承聖三年復捨家資爲衆生供養三寶 而說偈曰 傾捨爲群品 奉供天中天 仰祈甘露雨 流澍普無邊

拍板; 一種樂器也 調節音律的薄版

; 說文 檮 斷木也 廣韻 檮 剛木也

連理; 兩樹枝條相連 比喩恩愛的夫婦 比喩關系親密的

天中天; 又稱天尊 指佛 釋門正統一 三歲 淨飯王携太子謁天神廟 神象致敬 王驚曰 我子於天神中更尊 因號之曰天中天

 

다른 날 제()가 수광전(壽光殿)에서 대사(大士)에게 금강경 강설을 청했다. 대사가 등좌(登座)하여 박판(拍板)을 잡고() 창경(唱經)하며 49송을 이루었다. 대동(大同) 5(539) 상주(上奏; )해 송산(松山) 아래 사택(捨宅; 집을 喜捨)했는데 쌍도수()로 인해 창사(創寺)하고 명왈(名曰) 쌍림(雙林)이라 했다. 그 나무는 연리(連理)했고 상연(祥煙)이 주요(周繞)했고 쌍학(雙鶴)이 있어 서지(棲止)했다. 태청(太淸) 2(548) 대사가 불식(不食)을 맹서하고 불생일(佛生日)을 취해 분신공양(焚身供養)하려고 했다. 날에 이르자 백흑(白黑; 속인과 승인) 60여 인이 불식(不食)과 소신(燒身)을 대행(代行)하고 3백 인이 심장을 찔러 피를 쏟아() 향에 섞고는(和香) 대사의 주세(住世)를 청했다. 대사가 불쌍히 여겨 이를 좇았다. 승성(承聖) 3(554) 다시 가자(家資)를 희사해 중생을 위해 3()에 공양했다. 게를 설해 가로되 경사(傾捨)하여 군품(群品; 群生)을 위하며/ 천중천(天中天)에게 봉공(奉供)한다/ 감로우(露雨)를 우러러 비나니(仰祈)/ 유주(流澍; 단비가 흐르다)가 넓고 무변하소서.

拍板; 일종의 악기니 음률을 조절하는 얇은 판임.

; 설문 도() 단목(斷木)이다. 광운 도() 강목(剛木)이다.

連理; 두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서로 연결됨이니 은애의 부부에 비유하며 관계가 친밀한 사람에 비유함.

天中天; 또 호칭이 천존(天尊)이니 불타를 가리킴. 석문정통1. 3세에 정반왕이 태자를 데리고 천신묘(天神廟)를 알현했는데 신상(神象)이 치경(致敬; 경례를 드림)했다. 왕이 놀라며 가로되 나의 아들은 천신 중에서 다시 존귀하다. 인하여 그를 호해 가로되 천중천(天中天)이라 했다.

 

陳天嘉二年大士於松山頂遶連理樹行道 感七佛相隨 釋迦引前維摩接後 唯釋尊數顧共語 爲我補處也 其山忽起黃雲盤旋若蓋 因號雲黃山 時有慧和法師不疾而終 嵩頭陀於柯山靈巖寺入滅 大士懸知曰 嵩公兜率待我 決不可久留也 時四側華木方當秀實欻然枯悴 太建元年己丑四月二十四日示衆曰 此身甚可厭惡衆苦所集 須愼三業精勤六度 若墜地獄卒難得脫 常須懺悔 又曰 吾去已不得移寢床 七日有法猛上人 持像及鍾來鎭于此 弟子問 滅後形體若爲 曰山頂焚之 又問 不遂何如 曰愼勿棺斂 但壘甓作壇移屍於上 屛風周繞絳紗覆之 上建浮圖以彌勒像處其下 又問 諸佛涅槃時皆說功德 師之發迹可得聞乎 曰我從第四天來爲度汝等 次補釋迦 及傅普敏文殊 慧集觀音 何昌阿難 同來贊助 故大品經云 有菩薩從兜率來 諸根猛利疾與般若相應 卽吾身是也 言訖趺坐而終 壽七十有三 尋猛師果將到織成彌勒像及九乳鐘留鎭之 須臾不見 大士道具十餘見在 晉天福九年甲辰六月十七日錢王遣使發塔 取靈骨一十六片紫金色及道具 乃府城南龍山建華寺寘之 仍以靈骨塑其像

六度; 六波羅蜜也 波羅蜜 舊譯爲度 三藏法數十九 六度[出六度集經] 一檀那 梵語檀那 華言布施 二尸羅 梵語尸羅 華言性善 謂好行善道 不自放逸 此據義而譯也 正翻止得 謂止惡得善也 又翻爲戒 謂戒能防止身口所作之惡也 三羼提 梵語羼提 華言忍辱 四毘梨耶 梵語毘梨耶 華言精進 五禪那 梵語禪那 華言靜慮 六般若 梵語般若 華言智慧

棺斂; 亦作棺殮 以棺木收殮死者

大品經; 大般若波羅蜜多經之略 又指大品般若經

九乳; 指鍾上九點凸出如乳頭形狀的裝飾

; 量詞 件 副

 

() 천가(天嘉) 2(561) 대사(大士)가 송산정(松山頂)에서 연리수(連理樹)를 돌며 행도(行道)했는데 7()이 상수(相隨)함을 감득(感得; )했다. 석가가 앞에서 인도(引導; )하고 유마(維摩)가 뒤에서 접인(接引; )했다. 오직 석존(釋尊)이 자주() 돌아보며 함께 얘기했는데 나의 보처(補處)가 된다 하였다. 그 산에 홀연히 황운(黃雲)이 일어나 반선(盤旋; 徘徊)함이 산개(傘蓋; )와 같았고 인하여 호가 운황산(雲黃山)이다. 때에 혜화법사(慧和法師)가 있어 질병 없이 마쳤고(不疾而終) 숭두타(嵩頭陀)는 가산(柯山) 영암사(靈巖寺)에서 입멸했다. 대사가 현지(懸知; 預知)하고 가로되 숭공(嵩公)이 도솔에서 나를 기다린다. 결정코 가히 오래 머물지 않으리라. 때에 사측(四側; 四邊)의 화목(華木)이 바야흐로 수실(秀實; 아름답게 結實)함에 당했는데 훌연(欻然; 갑자기)히 고췌(枯悴; 말라 시들다)했다. 태건(太建) 원년(元年) 기축(己丑; 569) 424일 시중해 가로되 이 몸은 심히 가히 염오(厭惡; 憎惡)스럽고 중고(衆苦)가 모인 것이다(所集). 모름지기 3()을 삼가고 6(六度)를 정근(精勤; 專心으로 勤勉)하라. 만약 지옥에 떨어지면 마침내() 득탈(得脫)하기 어렵나니 늘 꼭 참회(懺悔)하라. 우왈(又曰) 내가 가고 나서 침상(寢床)을 옮김을 얻지 말지니 7일 만에 법맹(法猛) 상인(上人)이 있어 상() 및 종()을 가지고 와서 여기를 진정(鎭靜; )할 것이다. 제자가 묻되 멸후(滅後)에 형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若爲). 가로되 산정(山頂)에서 불태워라(焚之). 우문(又問)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何如). 가로되 삼가 관렴(棺斂)하지 말고 단지 벽돌을 포개어(壘甓) ()을 만들고 위로 시신을 옮겨라. 병풍(屛風)을 두르고(周繞)고 붉은 비단(絳紗)으로 덮어라. 위에 부도(浮圖)를 건립하고 미륵상(彌勒像)을 그 아래 두어라(). 우문(又問) 제불이 열반할 때 모두 공덕을 설했는데 스님의 발적(發迹; 興起)을 가히 득문(得聞)하겠습니까. 가로되 나는 제4(第四天; 도솔천)으로 좇아와서 너희 등을 제도했고 석가의 다음 보처(次補). 및 부모민(傅普敏)은 문수며 혜집(慧集)은 관음이며 하창(何昌)은 아난이니 함께 와서 찬조(贊助)했다. 고로 대품경(大品經)에 이르되 보살이 있어 도솔로 좇아왔으며 제근(諸根)이 맹리(猛利)하여 빠르게() 반야와 상응한다. 곧 나의 몸이 이것이다. 말을 마치자 부좌(趺坐)하여 마쳤다. 나이는 73이다. 이윽고 맹사(猛師; 法猛師)가 과연 직성(織成)한 미륵상 및 구유종(九乳)을 가지고 이르렀으며 머물러 그것을 진정(鎭靜)하고는 수유(須臾)에 보이지 않았다. 대사의 도구(道具) 십여사(十餘)가 현재(見在)한다. () 천복(天福) 9년 갑진(甲辰; 944) 617일 전왕(錢王)이 견사(遣使)하여 발탑(發塔)해 자금색(紫金色) 영골(靈骨; 舍利) 16() 및 도구를 취해 곧 부성(府城) 남쪽 용산(龍山)에 용화사(龍華寺; 저본에 華寺로 지었음)를 건립하고 그것을 두었고() 인하여() 영골로써 그 상()을 빚었다().

六度; 육바라밀(六波羅蜜; śaḍ-pāramitā). 바라밀은 구역에 도()라 했음. 삼장법수19. 육도(六度) [출육도집경] 1. 단나(檀那; dāna) 범어 단나는 화언(華言)으론 보시임. 2. 시라(尸羅; śīla) 범어 시라는 화언으론 성선(性善)이니 이르자면 선도(善道)를 행하기를 좋아해 스스로 방일하지 않음임. 이것은 뜻에 의거해 번역했음이며 바로 번역하면 지득(止得)이니 이르자면 악을 그치고 선을 얻음임. 또 계()로 번역함. 이르자면 계는 능히 몸과 입으로 짓는 바의 악을 방지함. 3. 찬제(羼提; kṣānti) 범어 찬제는 화언으론 인욕임. 4. 비리야(毗梨耶; vīrya) 범어 비리야는 화언으론 정진임. 5. 선나(禪那; dhyāna) 범어 선나는 화언으론 정려(靜慮). 6. 반야(般若; prajñā) 범어 반야는 화언으론 지혜임.

棺斂; 또한 관렴(棺殮)으로 지음. 관목(棺木)으로써 사자(死者)를 수렴(收殮).

大品經; 대반야바라밀다경의 약칭. 또 대품반야경을 가리킴.

九乳; 종상(鍾上)9()이 볼록 튀어나와(凸出) 유두(乳頭) 형상(形狀)과 같은 장식(裝飾)을 가리킴.

; 양사(量詞)니 건(). ().

 

衡嶽慧思禪師 武津人也 姓李氏 頂有肉髻牛行象視 少以慈恕聞于閭里 嘗夢梵僧勸出俗 乃辭親入道 及稟具常習坐日唯一食 誦法華等經滿千遍 又閱妙勝定經歎禪那功德 遂發心尋友 時慧聞禪師有徒數百聞禪師始因背手探藏 得中觀論發明禪理 此論卽西天第十四祖龍樹大士所造 遂遙稟龍樹乃往受法晝夜攝心坐夏 經三七日獲宿智通 倍加勇猛 尋有障起 四支緩弱不能行步 自念曰 病從業生業由心起 心源無起外境何狀 病業與身都如雲影 如是觀已顚倒想滅輕安如故 夏滿猶無所得 深懷慚愧放身倚壁 背未至間豁爾開悟 法華三昧最上乘門 一念明達 硏練逾久 前觀轉增 名行遠聞學侶日至 激勵無倦機感寔繁 乃以大小乘定慧等法隨根引喻 俾習慈忍行 奉菩薩三聚戒 衣服率用布 寒則加之以艾

妙勝定經; 最妙勝定經 著譯者不詳 一卷 [衆經目錄四]

背手; 與覆手相對 又把雙臂放在背後 或捆在背後 喩世明言七 背手爲雲覆手雨 白兔記 背手抽金箭 番(用同翻)身挽角弓

坐夏; 亦稱安居 從四月十五日 至七月十五日 佛敎徒應在寺院中坐禪修習 不得外出 稱爲坐夏

法華三昧; 三諦圓融之妙理 分明現前 障中道之無明止息 謂之法華三昧 此法華三昧之名 爲法華經妙音菩薩品所說十六三昧之異名 法華三昧者 天台之意 三諦圓融爲一實 譬之權實不二之花(花實爲實 花瓣爲權法) 攝一切法使歸一實相也 [法華文句記十 法華義疏十二]

機感; 衆生有善根之機 而感佛也 又衆生有善根之機 故佛感應之也

 

형악(衡嶽) 혜사선사(慧思禪師). 무진(武津) 사람이며 성이 이씨(李氏).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있고 소의 걸음에 코끼리의 봄이었다(牛行象視). 소년(少年)에 자서(慈恕)로써 여리(閭里; 鄕里)에 알려졌다(). 일찍이 꿈에 범승(梵僧)이 출속(出俗)을 권했는데 이에 사친(辭親; 兩親에게 고별)하고 입도(入道)했다. 및 품구(稟具)하자 늘 습좌(習坐; 좌선을 익힘)했고 하루에 오직 한 번 먹었다. 법화 등 경을 만(滿) 천편(千遍; 千回) 외웠고 또 묘승정경(妙勝定經)을 열람하며 선나(禪那)의 공덕을 찬탄(讚歎)했다. 드디어 발심하여 벗을 찾았는데 당시에 혜문선사(慧聞禪師)가 문도(門徒; ) 수백(數百)이 있었다聞禪師는 처음 背手探藏함으로 인해 중관론(中觀論; 中論)을 얻어 禪理發明했다. 이 논은 곧 西天 第十四祖 龍樹大士가 지은 것이다. 드디어 멀리 용수를 稟承했다. 이에 가서 수법(受法)했고 주야로 섭심(攝心)하며 좌하(坐夏)했다. 삼칠일(三七日; 21)을 경과하자 숙지통(宿智通)을 획득했고 배()로 용맹(勇猛)을 더했다. 이윽고 장기(障起; 장애가 일어남)가 있어 사지(四支; 四肢와 같음)가 완약(緩弱)해 능히 행보(行步)하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 가로되 병은 업으로 좇아 나고 업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심원(心源)엔 일어남이 없거늘 외경(外境)이 어떤 형상(形狀; )이던가. 병ㆍ업과 몸이 모두() 구름의 그림자(雲影)와 같다. 이와 같이 관()하고 나서 전도상(顚倒想)이 없어지고 경안(輕安)하기가 예와 같았다(如故). 하만(夏滿)에도 오히려 소득이 없어 깊이 참괴(慚愧)를 품고 방신(放身)하여 벽에 기대었는데 등이 이르지 아니한 사이에 휑하게(豁爾) 개오(開悟)했다. 법화삼매(法華三昧)의 최상승문(最上乘門)을 일념에 명달(明達)했고 연련(硏練)함이 더욱 오래되자(逾久) 전관(前觀)이 더욱 증가했다. 명행(名行)이 멀리 알려졌고 학려(學侶)가 날로 이르렀다(日至). 격려(激勵)하면서 게으름이 없었고 기감(機感)이 참으로 번성했다(寔繁). 이에 대소승(大小乘)과 정혜(定慧) 등의 법으로써 근기 따라 인유(引喻)해 자인행(慈忍行)을 익히고 보살의 삼취계(三聚戒)를 받들게 했다. 의복은 대략() ()를 썼고 추우면 곧 쑥을 더했다.

妙勝定經; 최묘승정경이니 저역자(著譯者)는 불상(不詳)이며 1[중경목록4].

背手; 복수(覆手; 손을 뒤집다)와 상대됨. 또 두 팔을 잡아 등 뒤에 놓아 둠. 혹 묶어 등 뒤에 있게 함. 유세명언7. 배수(背手)에 구름이 되고 복수(覆手)에 비가 되다. 백토기. 배수(背手)하여 금전(金箭)을 뽑고 번(; 과 같음)()하여 각궁(角弓)을 당기다.

坐夏; 또한 명칭이 안거니 415일로부터 715일에 이르기까지 불교도는 응당 사원 안에서 좌선하고 수습하면서 외출함을 얻지 못함을 일컬어 좌하라 함.

法華三昧; 3() 원융의 묘리가 분명히 현전하여 중도(中道)를 장애하는 무명이 지식(止息)함을 일컬어 법화삼매라 함. 이 법화삼매의 명칭은 법화경 묘음보살품에서 설한 바 16삼매의 다른 이름이 됨. 법화삼매란 것은 천태의 뜻으론 3제가 원융함이 1()이 되며 권실불이지화(權實不二之花; 花實이 되고 花瓣權法이 됨)에 비유하나니 일체법을 거두어 1실상으로 돌아가게 함 [법화문구기10. 법화의소12].

機感; 중생이 선근의 기()가 있어 부처를 감(). 또 중생이 선근의 기()가 있는지라 고로 불타가 그에 감응함.

 

以北齊天保中領徒南邁 値梁孝元之亂 權止大蘇山 輕生重法者相與冒險而至塡聚山林 師示衆曰 道源不遠性海非遙 但向己求莫從他覓 覓卽不得得亦不眞 偈曰 頓悟心源開寶藏 隱顯靈通現眞相 獨行獨坐常巍巍 百億化身無數量 縱令偪塞滿虛空 看時不見微塵相 可笑物兮無比況 口吐明珠光晃晃 尋常見說不思議 一語標名言下當 又偈曰 天不能蓋地不載 無去無來無障礙 無長無短無靑黃 不在中間及內外 超群出衆太虛玄 指物傳心人不會 其他隨叩而應 以道俗所施造金字般若法華經 時衆請師講二經 隨文發解 復命門人智顗代講 至一心具萬行有疑請決 師曰 汝所疑乃大品次第意耳 未是法華圓頓旨也 吾昔於夏中一念頓發諸法見前 吾旣身證不勞致疑 顗卽諮受法華 行三七日得悟顗卽天台敎主智者大師 如下章出焉

梁孝元; 梁孝元帝蕭繹(508-555) 字世誠 小字七符 自號金樓子 南蘭陵(今江蘇武進)人 南北朝時期梁代皇帝(在位 552-554) 梁武帝蕭衍第七子

諮受; 請敎承受

 

북제(北齊) 천보(天保; 550-559) 중 문도를 거느리고 남방으로 갔다(南邁). 양효원(梁孝元)의 난()을 만나() 잠시() 대소산(大蘇山)에 머물렀는데() 삶을 가볍게 여기고 법을 무겁게 여기는(輕生重法) 자가 서로 더불어 모험(冒險)하면서 이르러 산림(山林)에 가득 모였다(塡聚). 스님이 시중(示衆)하여 가로되 도원(道源)이 멀지 않고(不遠) 성해(性海)가 멀지 않나니(非遙) 단지 자기를 향해 구하고 남을 좇아 찾지 말아라. 찾으면 곧 얻지 못하고 얻더라도 또한 진()이 아니다. 게왈(偈曰) 심원(心源)을 돈오(頓悟)하여 보장(寶藏)을 여니/ 은현(隱顯)하며 영통(靈通)하여 진상(眞相)을 나타낸다/ 독행(獨行)하고 독좌(獨坐)하며 늘 외외(巍巍)하나니/ 백억 화신(化身)이 무수한 양()이다/ 비록() 핍색(偪塞; 充塞)하여 허공에 가득하게(; 저본에 으로 지었음) 하더라도/ 볼 때 미진상(微塵相)도 보이지 않는다/ 가히 우습구나 물건을 비황(比況; 比喩)하지 못하나니()/ 입으로 명주(明珠)를 토하매 빛이 황황(晃晃; 매우 빛남)하구나/ 심상(尋常)에 설을 보임(見說)이 부사의하나니/ 일어(一語)로 이름을 표()하면 언하(言下)에 승당(承當; )하라. 또 게왈(偈曰)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싣지 못하나니/ 무거무래(無去無來)하고 장애가 없으며/ 무장무단(無長無短)하고 청황(靑黃)이 없으며/ 중간 및 내외에 있지 않다/ 초군출중(超群出衆)하여 매우 허현(虛玄)하나니/ 사물을 가리키며 전심(傳心)하나 사람이 알지 못하네. 기타(其他)는 두드림을 따라 응했다(隨叩而應). 도속(道俗)이 시여(施與)한 바로써 금자(金字)의 반야와 법화경을 조성했다. 때에 대중이 스님에게 청해 두 경을 강설했는데 문구 따라 해석을 내었다(隨文發解). 다시 문인(門人) 지의(智顗)에게 명해 대강(代講)하게 했다. 일심이 만행(萬行)을 갖춘다 함에 이르러 의심이 있어 해결을 청했다(請決). 사왈 네가 의심하는 바는 곧() 대품(大品)의 차제(次第)의 뜻일 뿐이며 이 법화의 원돈지(圓頓旨)가 아니다. 내가 지난날() 하중(夏中)에 일념에 돈발(頓發)했는데 제법이 현전(見前)했다. 내가 이미 몸으로 증명했으니 노고롭게 치의(致疑; 의심을 둠)하지 말아라. 지의가 곧 법화를 자수(諮受)했고 삼칠일(三七日) 만에 득오(得悟)했다는 곧 天台敎主 智者大師下章에 나옴과 같다.

梁孝元; 양효원제(梁孝元帝) 소역(蕭繹; 508-555)이니 자는 세성(世誠)이며 소자(小字)는 칠부(七符). 자호(自號)는 금루자(金樓子). 남난릉(南蘭陵; 지금의 江蘇 武進) 사람. 남북조 시기 양대(梁代) 황제(在位 552-554)니 양무제 소연(蕭衍)의 제7.

諮受; 청교(請敎)하고 승수(承受).

 

陳光大元年六月二十三日 自大蘇山將四十餘僧徑趣南嶽 乃曰 吾寄此山止期十載 已後必事遠遊 吾前身曾履此處 巡至衡陽値一處林泉勝異 師曰 此古寺也 吾昔曾居 俾掘之基址猶存 又指巖下曰 吾此坐禪賊斬吾首 尋得枯骸一聚 自此化道彌盛 陳主屢致慰勞供養目爲大禪師 將欲順世謂門人曰 若有十人不惜身命 常修法華般舟念佛三昧方等懺悔期于見證者 隨有所須吾自供給 如無此人吾卽遠去矣 時衆以苦行事難無有答者 師乃屛衆泯然而逝 小師雲辯號叫 師開目曰 汝是惡魔 吾將行矣 何驚動妨亂吾邪 癡人出去 言訖長往 時異香滿室 頂暖身軟顔色如常 卽太建九年六月二十二日也 壽六十有四 凡有著述皆口授無所刪改 撰四十二字門兩卷 無諍行門兩卷 釋論玄 隨自意 安樂行 次第禪要 三智觀門等五部各一卷 竝行於世

般舟; 般舟三昧 定行之一種 在一特定期間(七日至九十日)內 修行三昧 得見諸佛 [般舟三昧經上 大智度論三十三]

方等懺悔; 行方等三昧 而懺悔六根之罪障也 方等三昧 天台大師依大方等陀羅尼經 制立之一種三昧行 與法華三昧皆爲四種三昧中之半行半坐三昧 專行其法 而調直其心謂之三昧 止觀二及方等三昧行法詳記其儀軌作法

泯然; 泯滅 然 助詞

號叫; 大聲哭喊

 

() 광대(光大) 원년(元年; 567) 623일 대소산(大蘇山)으로부터 40여 승인을 데리고 지름길로 남악(南嶽)에 다다랐다(). 이에 가로되 내가 이 산에 기탁(寄託)하리니 지기(止期; 머물 기한)10(). 이후(已後)엔 반드시 원유(遠遊)에 종사(從事; )하리라. 나의 전신(前身)이 일찍이 이곳을 밟았다(). 순행(巡行; )하다가 형양(衡陽)에 이르러 한 곳을 만났는데() 임천(林泉)이 승이(勝異)했다. 사왈(師曰) 이것은 고사(古寺). 내가 옛적에 일찍이 거주했다. 그것을 파내게 했는데(俾掘之) 기지(基址)가 아직 존재했다. 또 바위 아래를 가리키며 가로되 내가 여기에서 좌선했는데 도적이 나의 머리를 베었다. 이윽고 고해(枯骸) 한 무더기를 얻었다. 이로부터 화도(化道; 교화의 도)가 더욱() 성했다. 진주(陳主)가 누차(屢次; ) 초치(招致; )하여 위로하고 공양했으며 명목해 대선사(大禪師)라 했다. 장차 순세(順世)하려 하면서 문인에게 일러 가로되 만약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는 10인이 있어 법화ㆍ반주(般舟)ㆍ염불 삼매와 방등참회(方等懺悔)를 늘 닦으면서 견증(見證)을 기약함이 있다면 수요(需要; )하는 바가 있음을 따라 내가 스스로 공급하리라. 이 사람이 없을 것 같으면 내가 곧 멀리 갈 것이다. 때에 대중이 고행사(苦行事)가 어렵기 때문에() 답하는 자가 있지 않았다. 스님이 이에 대중을 물리치고() 민연(泯然)히 서거했다. 소사(小師) 운변(雲辯)이 호규(號叫)했다. 스님이 눈을 뜨고 가로되 너는 이 악마(惡魔). 내가 장차 가려는데() 왜 경동(驚動)하며 나를 방란(妨亂; 妨礙하며 어지럽힘)하느냐. 치인(癡人)아 나가거라. 말을 마치자 장왕(長往)했다. 때에 이향(異香)이 만실(滿室)했고 이마가 따뜻했고 몸이 부드러웠고 안색이 평상(平常)과 같았다. 곧 태건(太建) 9(577) 622일이다. 나이는 64이다. 무릇 저술(著述)이 있음은 모두 구수(口授)했는데 산개(刪改)하는 바가 없었다. 사십이자문(四十二字門) 양권(兩卷), 무쟁행문(無諍行門) 양권, 석론현(釋論玄; 釋論玄門)ㆍ수자의(隨自意: 隨自意三昧)ㆍ안락행(安樂行; 安樂行法)ㆍ차제선요(次第禪要)ㆍ삼지관문(三智觀門) 5부 각 1권을 지었는데 세간에 병행(竝行)한다.

般舟; 반주삼매(般舟三昧)니 정행(定行)의 일종. 하나의 특정한 기간(7일에서 90일에 이르기까지) 안에 있으면서 삼매를 수행하여 제불을 득견함 [반주삼매경상. 대지도론33].

方等懺悔; 방등삼매를 행하여 6근의 죄장을 참회함임. 방등삼매는 천태대사가 대방등다라니경에 의해 제립(制立)한 일종의 삼매행이니 법화삼매와 더불어 모두 4종 삼매 중의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가 됨. 오로지 그 법을 행하면서 그 마음을 조직(調直)함을 일러 삼매라 함. 지관2에 방등삼매의 행법을 언급하면서 그 의궤와 작법을 상세히 기술했음.

泯然; 민멸(泯滅; 소멸)이니 연()은 조사.

號叫; 큰소리로 곡하며 소리침.

 

天台山修禪寺智者禪師智顗 荊州華容人 姓陳氏 母徐氏 始娠夢香煙五色縈繞于懷 誕生之夕祥光燭于隣里 幼有奇相膚不受垢 七歲入果願寺 聞僧誦法華經普門品卽隨念之 忽自憶記七卷之文宛如宿習 十五禮佛像誓志出家 怳焉如夢見大山臨海際峯頂有僧招手 復接入一伽藍云 汝當居此 汝當終此 十八喪二親 於果願寺依僧法緒出家 二十進具 陳天嘉元年謁光州大蘇山慧思禪師 思一見乃謂曰 昔靈鷲同聽法華經 今復來矣 卽示以普賢道場 說四安樂行 師入觀三七日 身心豁然定慧融會 宿通潛發唯自明了 以所悟白思 思曰 非汝弗證非吾莫識 此乃法華三昧前方便初旋陀羅尼也 縱令文字之師千萬 不能窮汝之辯 汝可傳燈 莫作最後斷佛種人 師旣承印可 太建元年禮辭住金陵闡化 凡說法不立文字 以辯才故晝夜無倦 七年乙未謝遣徒衆隱天台山佛隴峯 有定光禪師先居此峯 謂弟子曰 不久當有善知識領徒至此 俄爾師至 光曰 還憶疇昔擧手招引時否 師卽悟禮像之徵悲喜交懷 乃執手共至庵所 其夜聞空中鍾磬之聲 師曰 是何祥也 光曰 此是犍稚集僧得住之相 此處金地吾已居之 北峯銀地汝宜居焉 開山後宣帝建修禪寺 割始豐縣租以充衆費 及隋煬帝請師受菩薩戒 師爲帝立法名號總持 帝乃號師爲智者

誓志; 發誓立志

招手; 用手勢招呼人 或向遇見的人致意

豁然; 很快 突然間 一下子

四安樂行; 法華經安樂行品所說之四種安樂行 安行法華之法也 一身安樂行 二口安樂行 三意安樂行 四誓願安樂行

法華三昧; 三諦圓融之妙理 分明現前 障中道之無明止息 謂之法華三昧 此法華三昧之名 爲法華經妙音菩薩品所說十六三昧之異名 法華三昧者 天台之意 三諦圓融爲一實 譬之權實不二之花(花實爲實 花瓣爲權法) 攝一切法使歸一實相也 [法華文句記十 法華義疏十二]

旋陀羅尼; 天台宗據法華經普賢菩薩勸發品之說 立有旋陀羅尼 百千萬億旋陀羅尼 法音方便陀羅尼等三陀羅尼 而以之配於空假中三觀 蓮華經玄義五上 如經文云 得三陀羅尼 但名似道 未是眞道 旋陀羅尼 是旋假入眞 百千旋陀羅尼 是旋眞入俗 法音方便 正是伏道 未得入中(云云)

佛種; 生佛果之種子也 菩薩之所行名佛種 探玄記十一 菩薩所行名爲佛種 維摩經佛道品 以要言之 六十二見及一切煩惱皆是佛種 同註 肇曰 塵勞衆生卽成佛道 更無異人之成佛 故是佛種也

謝遣; 辭謝遣散

 

천태산(天台山) 수선사(修禪寺) 지자선사(智者禪師) 지의(智顗). 형주(荊州) 화용(華容) 사람이며 성이 진씨(陳氏). () 서씨(徐氏)가 처음 임신(妊娠)하자 꿈에 향연(香煙)이 오색(五色)인데 품에 영요(縈繞; 얽히며 돌다. 저본에 縈饒로 지었음)했다. 탄생지석(誕生之夕)에 상광(祥光)이 이웃 마을을 밝혔다(). 어릴 적에 기상(奇相)이 있었고 피부는 때()를 받지 않았다. 7세에 과원사(果願寺)에 들어갔다가 승인이 법화경 보문품을 외우는 것을 듣고 곧 따라 그것을 외웠는데(念之) 홀연히 7권의 글을 억기(憶記; 기억)하되 완연(宛然; )히 숙습(宿習)과 같았다. 15에 불상에 예배하며 출가를 서지(誓志)했다. 어렴풋이(怳焉) 꿈과 같은데 보매 큰산이 바닷가(海際)에 임했고 봉정(峯頂)에서 어떤 중이 초수(招手)했다. 다시 접인(接引; )하여 한 가람(伽藍)에 들어가 이르되 너는 마땅히 여기에 거주할 것이며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마치리라. 18에 이친(二親)을 상실(喪失)했고 과원사(果願寺)에서 승() 법서(法緒)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20에 진구(進具)했다. () 천가(天嘉) 원년(元年; 560) 광주(光州) 대소산(大蘇山) 혜사선사(慧思禪師)를 예알했다. 혜사가 한 번 보자 이에 일러 가로되 옛적에 영취(靈鷲)에서 법화경을 동청(同聽)했는데 이제 다시 왔구나. 곧 보현도량을 보이고 사안락행(四安樂行)을 설했다. 스님이 입관(入觀)한 지 삼칠일(三七日)에 신심(身心)이 활연(豁然)했고 정혜(定慧)가 융회(融會; 融合)했다. 숙통(宿通)이 잠발(潛發; 몰래 발생)했는데 오직 스스로 명료(明了)했다. 깨친 바를 혜사에게 알리자 사왈(思曰) 네가 아니면 증득하지 못하고 내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이것은 곧() 법화삼매(法華三昧) () 방편의 초() 선다라니(旋陀羅尼). 종령(縱令; 假令) 문자지사(文字之師) 천만(千萬)일지라도 능히 너의 변설(辯說; )을 궁진(窮盡; )하지 못하리라. 너는 가히 전등(傳燈)했으니 최후의 단불종인(佛種; 불종을 끊은 사람)을 짓지 말아라. 스님이 이미 인가(印可)를 승수(承受)하자 태건(太建) 원년(元年; 569) 예사(禮辭)하고 금릉(金陵)에 거주하며 천화(闡化)했다. 무릇 설법하면서 문자를 세우지 않았고 변재(辯才)를 쓰는() 연고로 주야로 게으르지 않았다. 7년 을미(乙未; 575) 도중(徒衆)을 사견(謝遣)하고 천태산 불롱봉(佛隴峯)에 은거했다. 정광선사(定光禪師)가 있어 이 봉우리에 먼저 거주했는데 제자에게 일러 가로되 오래지 않아 선지식이 있어 도중을 거느리고(領徒) 여기에 이를 것이다. 갑자기(俄爾) 스님이 이르자 광왈(光曰) 주석(疇昔; 옛적)에 거수(擧手)하며 초인(招引)한 때를 도리어 기억하는가. 스님이 곧 불상에 예배하던 징조(禮像之徵)를 깨닫고 비희(悲喜)가 가슴에 교차했다(交懷). 이에 손잡고 함께 암소(庵所)에 이르렀다. 그날 밤 공중의 종경(鍾磬)의 소리를 듣고 사왈(師曰) 이것이 무슨 상서(祥瑞; )입니까. 광왈(光曰) 이것은 이 건치(犍稚)로 집중(集僧)하여 득주(得住)하는 상()이다. 차처(此處)는 금지(金地)인데 내가 이미 거주했고 차봉(北峯)은 은지(銀地)인데 네가 의당(宜當) 거주하리라. 개산(開山)한 후에 선제(宣帝)가 수선사(修禪寺)를 건립했고 시풍현(始豐縣)의 조세(租稅; )를 분할(分割; )하여 중비(衆費)에 충당했다. 및 수양제(隋煬帝)가 스님에게 청해 보살계를 받았고 스님이 양제를 위해 법명(法名)을 세웠으니 호가 총지(總持)며 양제는 이에 스님을 호()하여 지자(智者)라 했다.

誓志; 서원을 발하며 입지(立志).

招手; 수세(手勢; 손짓)를 써서 사람을 부름. 혹 우견(遇見)한 사람을 향해 치의(致意; 내가 가진 뜻을 저 쪽에 알림).

豁然; 흔쾌(很快; 매우 시원함). 돌연간. 일하자(一下子; 갑자기).

四安樂行; 법화경 안락행품에서 설한 바의 4종 안락행이니 법화를 안행(安行; 안락하게 행함)하는 법임. 1. 신안락행. 2. 구안락행. 3. 의안락행. 4. 서원안락행.

法華三昧; 3() 원융의 묘리가 분명히 현전하여 중도(中道)를 장애하는 무명이 지식(止息)함을 일컬어 법화삼매라 함. 이 법화삼매의 명칭은 법화경 묘음보살품에서 설한 바 16삼매의 다른 이름이 됨. 법화삼매란 것은 천태의 뜻으론 3제가 원융함이 1()이 되며 권실불이지화(權實不二之花; 花實이 되고 花瓣權法이 됨)에 비유하나니 일체법을 거두어 1실상으로 돌아가게 함 [법화문구기10. 법화의소12].

旋陀羅尼; 천태종에서 법화경 보현보살권발품의 설에 의거하여 선다라니ㆍ백천만억선다라니ㆍ법음방편다라니 등 3다라니를 세워 있으며 이로써 공가중(空假中) 3()에 짝했음. 연화경현의5. 예컨대() 경문에 이르되 3다라니를 얻음은 단지 이름이 사도(似道)며 이 진도(眞道)가 아니다. 선다라니(旋陀羅尼)는 이는 선가(旋假)하여 입진(入眞)함이며 백천선다라니는 이는 선진(旋眞)하여 입속(入俗)함이며 법음방편(法音方便)은 바로 이 복도(伏道)며 입중(入中)을 얻지 못했음이다 (운운).

佛種; 불과를 발생하는 종자임. 보살의 소행을 이름해 불종임. 탐현기11. 보살의 소행을 이름해 불종(佛種)이다. 유마경 불도품. 중요한 것으로 이를 말할진대 62견 및 일체 번뇌가 모두 이 불종(佛種)이다. 동 주() 승조가 가로되 진로(塵勞; 번뇌)의 중생이 곧 성불하고 다시 이인(異人)의 성불이 없는지라 고로 이것이 불종이다.

謝遣; 사사(辭謝; 謝絶하여 물리침)하여 견산(遣散; 보내어 흩음).

 

師常謂 法華爲一乘妙典 蕩化城之執敎 釋草庵之滯情 開方便之權門 示眞實之妙理 會衆善之小行 歸廣大之一乘 遂出玄義 曰釋名辨體明宗論用判敎相之五重也 名則法喻齊擧 謂一乘妙法卽衆生本性 在無明煩惱不爲所染 如蓮華處于淤泥而體常淨 故以爲名 此經開權顯實廢權立實會權歸實 如蓮之華有含容開落之義 華之蓮有隱現成實之義 亦謂從本垂迹因迹顯本 夫經題不越法喻人 單複具足凡七種單三複三具足一攝一切名 妙法蓮華卽複之一也法譬爲複名以召體 體卽實相 謂一切相離實相無體故 宗則一乘因果 開示悟入佛之知見可尊尙故 用則力用 以開廢會之義有其力故

開權顯實; 開除權敎之執著 顯示眞實之義 開 含開除 開發 開拓等義 開除乃除卻權執 開發乃由內機緣純熟而脫權執 開拓乃權卽實而廣其體之義 卽開除三乘之權便 顯示一乘眞實之義 此是天台宗對於法華經所作判釋之語 謂法華經以前之諸經乃應未熟之機根而設 爲權便之法 實欲引衆生入眞實之敎 以權便之法顯眞實之義 故稱開權顯實 然權實本不異 若開除此執著 則權實不二 趣歸一佛乘之眞義 以上就法華經前半部迹門之化儀而說 而後半部本門化儀之開迹顯本 亦稱開權顯實 卽破除迹權之執著 顯示本門之實義 若就法華經全經而言 前十四品爲開三顯一 後十四品爲開近顯遠之說 卽前半部開除三乘敎之方便 顯示一乘敎之眞實 後半部開除垂迹之近佛 顯示本地之實佛 而此二十八品總歸於開權顯實 又開三顯一就人機而論 開權顯實對理敎加以闡釋[法華經玄義五上 法華文句記八之三 天台四敎儀集註上]

廢權立實; 台家之語 謂如花落蓮成 三乘之權敎廢已 獨一乘之實敎成立也 法華開顯之能事畢於玆矣 [四敎儀]

七種; 天台智顗依人法譬 組合一切經題 立七種立題 卽單人立題(例如阿彌陀經) 單法立題(例如大般涅槃經) 單譬立題(例如梵網經) 人法立題(例如文殊問般若經) 法譬立題(例如妙法蓮華經) 人譬立題(例如如來師子吼經) 具足立題(例如大方廣佛華嚴經) [觀無量壽佛經疏(智顗) 華嚴經隨疏演義鈔十六 天台四敎儀集註上 大明三藏法數二十八]

 

스님이 늘 이르되 법화(法華)는 일승(一乘)의 묘전(妙典)이 되나니 화성(化城)의 집교(執敎)를 소탕(掃蕩; )하고 초암(草庵)의 체정(滯情)을 소제(消除; )하고 방편의 권문(權門)을 열고() 진실의 묘리(妙理)를 보이고() 중선(衆善)의 소행(小行)을 모으고() 광대한 일승()으로 돌아간다(). 드디어 현의(玄義)를 내었으니 가로되 석명(釋名)ㆍ변체(辨體)ㆍ명종(明宗)ㆍ논용(論用)ㆍ판교상(判敎相)5()이다. ()은 곧 법()ㆍ유()를 제거(齊擧)했으니 이르자면 일승(一乘)의 묘법이 곧 중생의 본성이다. 무명의 번뇌에 있어도 물드는 바가 되지 않음이 연화가 어니(淤泥; 진흙)에 처해도 체()가 늘 청정함과 같은지라 고로 이름을 삼았다. 이 경은 개권현실(開權顯實)ㆍ폐권입실(廢權立實)ㆍ회권귀실(會權歸實; 권을 모아 실로 회귀)하나니 연()의 화()가 개락(開落)의 뜻을 함용(含容)함이 있고 화()의 연()이 은현(隱現)하며 열매를 이루는 뜻이 있음과 같다. 또한 이르되 종본수적(從本垂迹)하고 인적현본(因迹顯本)한다. 무릇 경제(經題)가 법ㆍ유()ㆍ인()을 초월하지 않나니 단()ㆍ복()ㆍ구족(具足) 무릇 7(七種)이며單三 複三 具足一일체명(一切名)을 거둔다. 묘법연화(妙法蓮華)는 곧 복()의 하나니이 된다이름으로 체를 부른다(召體). 체는 곧 실상이니 이르자면 일체상(一切相)이 실상을 여의면 체가 없는 연고이다. ()은 곧 일승(一乘)의 인과니 불지지견(佛之知見)을 개시오입(開示悟入)하여 가히 존상(尊尙)하는 연고며 용()은 곧 역용(力用)이니 개폐회(開廢會)의 뜻으로써 그 힘이 있는 연고이다.

開權顯實; 권교의 집착을 개제(開除)하고 진실을 현시(顯示)함의 뜻. ()는 개제(開除)ㆍ개발ㆍ개척 등의 뜻을 함유함. 개제는 곧 권집(權執)을 제각(除卻)함이며 개발은 곧 안의 기연의 순숙(純熟)을 말미암아 권집(權執)에서 벗어남이며 개척은 곧 권이 곧 실이라서 그 체를 넓힘의 뜻. 3승의 권편(權便)을 개제하고 1승의 진실한 뜻을 현시함임. 이것은 이 천태종에서 법화경에 대해 지은 바의 판석(判釋)의 말임. 이르자면 법화경 이전의 여러 경은 곧 미숙한 근기에 응해 시설한 권편(權便)의 법이 되므로 실로 중생을 인도하여 진실한 교에 들어가게 하고자 하여 권편의 법으로써 진실의 뜻을 나타내는지라 고로 호칭이 개권현실임. 그러나 권과 실이 본래 다르지 않으므로 만약 이 집착을 개제하면 곧 권과 실이 둘이 아니라서 1불승의 진의(眞義)에 취귀(趣歸). 이상은 법화경 전반부(前半部)의 적문(迹門)의 화의(化儀)로 나아가 설했으며 후반부 본문(本門)의 화의(化儀)의 개적현본(開迹顯本)은 또한 명칭이 개권현실(開權顯實)이니 곧 적권(迹權)의 집착을 파제하고 본문(本門)의 실의를 현시함. 만약 법화경 전경으로 나아가 말하자면 전 14품은 개삼현일(開三顯一)이 되며 후 14품은 개근현원(開近顯遠)의 설이 됨. 곧 전반부는 3승교의 방편을 개제하여 1승교의 진실을 현시함이며 후반부는 수적(垂迹)의 근불(近佛)을 개제하여 본지의 실불을 현시함임. 28품이 모두 개권현실로 돌아감. 또 개삼현일은 사람의 근기로 나아가 논함이며 개권현실은 이교(理敎)에 대하여 천석(闡釋)을 더함임 [법화경현의5. 법화문구기83. 천태사교의집주상].

廢權立實; 태가(台家)의 말이니 이르자면 연꽃이 떨어지고 연실(蓮實)이 이루어짐과 같이 3()의 권교(權敎)를 폐한 다음 오직 1승의 실교를 성립함임. 법화의 개현(開顯)의 능사가 여기에서 마침 [사교의].

七種; 천태지의가 인법비(人法譬)에 의해 일체의 경제(經題)를 조합(組合)7종 입제(立題)를 세웠음. 곧 단인입제(單人立題; 例如 아미타경)ㆍ단법입제(單法立題; 예여 대반열반경)ㆍ단비입제(單譬立題; 例如 범망경)ㆍ인법입제(人法立題; 例如 문수문반야경)ㆍ법비입제(法譬立題; 例如 묘법연화경)ㆍ인비입제(人譬立題; 例如 여래사자후경)ㆍ구족입제(具足立題; 例如 대방광불화엄경) [관무량수불경소(지의) 화엄경수소연의초16. 천태사교의집주상. 대명삼장법수28].

 

然後判敎相者 以如來一代之說 總判爲五時八敎 五時者 一佛初成道爲上根菩薩說華嚴時 二爲小機說阿含時 三彈偏折小歎大褒圓說方等時 四蕩相遣執說般若時 五會權歸實 授三乘人及一切衆生成佛記 說法華涅槃時 八敎者 謂化儀四敎卽頓漸祕密不定也 化法四敎卽藏生滅四諦無生無量圓也無作四諦 唯法華圓理 乃至治生産業一色一香無非實相該三世如來所演罄殫其致四正三接廣如本敎捨此皆魔說故 敎理旣明 非觀行無以復性 乃依一心三諦之理眞俗中三止三觀 一一觀心念念不可得 先空次假後中 離二邊而觀一心如雲外之月者 此乃別敎之行相也 嘗云 破一切惑莫盛乎空 建一切法莫盛乎假 究竟一切性莫大乎中 故一中一切中 無假無空而不中 空假亦爾 卽圓敎之行相 如摩醯首羅天之三目 非縱橫竝別故第十四祖龍樹菩薩偈云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名中道義 斯與楞嚴圓覺經說奢摩他三摩鉢底禪那三觀 名目雖殊其致一也 達磨大師以心傳心不滯名數 直爲上上根智俾忘筌忘意 故與此敎同而不同 智者禪師窮理盡性備足之門 故與禪宗異而非異也三觀圓成法身不素 卽免同貧子也

生滅四諦; 天台宗智顗所立四種四諦之一 苦集道之三諦 依因緣而有實之生滅 滅諦者可視爲實之滅法 如此立於實生實滅上之四諦 謂之生滅四諦 是小乘敎卽三藏敎所說也 宗鏡錄七十六 又四敎四種四諦 藏敎生滅四諦 通敎無生四諦 別敎無量四諦 圓敎無作四諦

無生; 無生四諦 涅槃經所說四種四諦之一 天台以配於通敎之法門 說迷悟之因果 悉爲幻化之法 而非實生實滅 生滅卽無生滅 故云無生四諦 以簡異於藏敎生滅之四諦

無量; 無量四諦 天台智顗所創之四種四諦之一 於苦諦涉於界之內外 而有無量之相 乃至就道諦而有無盡之差別 此是乃大菩薩之所修學 故謂之無量四諦 是別敎之四諦也

無作四諦; 天台智顗所創之四種四諦之一 煩惱卽菩提 故無斷集修道之造作 生死卽涅槃 故不須滅苦證滅之造作 如此離斷證造作之四諦 故謂之無作四諦 是圓敎之四諦也

治生産業; 法華經六法師功德品曰 乃至聞一偈一句 通達無量無邊之義 解是義已 能演說一句一偈至於一月四月乃至一歲 諸所說法 隨其義趣 皆與實相不相違背 若說俗間經書 治世語言 資生業等 皆順正法

四正; 詳見天台三大部補注一

三接; 台宗十類因革論三云 敎以被下爲言 接以承上爲義 通言莫非被接也 然今於四正之外 而有三接者 蓋其本出於含中 其機始於發習 其應因以點示 此被接所以成也 (云云)

一心三諦; 祖庭事苑七 空假中 天台智者 以龍樹偈云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名中道義 乃依一心三諦之理 示三止三觀 嘗云 破一切惑 莫盛乎空 建一切法 莫盛乎假 究竟一切性 莫大乎中 故一空一切空 無假無中無不空 一假一切假 無空無中無不假 一中一切中 無假無空無不中 如摩醯首羅天之三目 非縱橫竝別故也 大慧語錄二十三 天台智者大師 悟法華三昧 以空假中三觀 該攝一大藏敎 無少無剩 言空者 無假無中無不空 言假者 無空無中無不假 言中者 無空無假無不中 得斯旨者 獲旋陀羅尼 是知從上諸佛諸祖 莫不皆從此門證入 故大師證入時 因讀法華經 至是眞精進 是名眞法供養如來 乃見釋迦老子在靈山說此經儼然未散

三止三觀; 止 是止息妄念 觀 是反觀自性 祖庭事苑七云 天台智者以龍樹偈云 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亦名爲假名 亦名中道義 乃依一心三諦之理 示三止三觀 宗鏡錄八十二 若台敎總論二種止觀 一相待止觀 二絶待止觀 前是拙度 後是巧度 相待止觀者 有三止三觀 三止者 一止息義 二停止義 三不止止義 三觀者 一觀穿義 二觀達義 三不觀觀義 絶待止觀者 有三止三觀 三止者 一體眞止 二方便隨緣止 三息二邊分別止 三觀者 一從假入空 名二諦觀 二從空入假 名平等觀 三二觀爲方便道 得入中道 雙照二諦 心心寂滅 自然流入薩婆若海 名中道第一義諦觀 潙山警策句釋記下 三止者 一體眞止 謂體達無明妄想 卽實相之眞 二方便隨緣止 謂隨緣歷境 安心不動 三離二邊分別止 謂不分別生死涅盤有無之相

三摩鉢底; <> samāpatti 亦名三摩鉢提 此云等至 等持之中能至勝位故 又等謂齊等 離沈掉故 至謂至到 到勝定故 [圓覺經大疏下之一] 禪林寶訓音義 梵語三摩鉢提 此云觀 觀久曰慧

 

연후에 판교상(判敎相)이란 것은 여래의 일대(一代)의 설을 총판(總判)하여 58(五時八敎)로 삼았다. 5()란 것은 1. 불타가 처음 성도하여 상근보살을 위해 화엄(華嚴)을 설한 시(). 2. 소기(小機)를 위해 아함(阿含)을 설한 시다. 3. 탄편절소(彈偏折小; 편견을 규탄하고 소승을 꺾음)하고 탄대포원(歎大褒圓; 대승을 찬탄하고 원교를 褒奬)하여 방등(方等)을 설한 시다. 4. 탄상견집(蕩相遣執; 형상을 쓸어버리고 집착을 보냄)하여 반야(般若)를 설한 시다. 5. 회권귀실(五會權歸實; 권을 모아 실로 회귀)하여 3승의 사람 및 일체중생에게 성불기(成佛記)를 수여한 법화열반(法華涅槃)을 설한 시다. 8()란 것은 이르자면 화의사교(化儀四敎)는 곧 돈()ㆍ점()ㆍ비밀(祕密)ㆍ부정(不定)이며 화법사교(化法四敎)는 곧 장()生滅四諦ㆍ통()無生ㆍ별()無量ㆍ원()이다無作四諦니 오직 법화의 圓理와 내지 治生産業一色一香이 실상이 아님이 없다. 삼세여래(三世如來)가 연설한 바를 해라(該羅; )하여 그 이치를 경탄(罄殫; 전부 다해 나머지가 없음)했으니四正三接廣論本敎와 같다. 이를 버리면 모두 마설(魔說)인 연고다. 교리(敎理)를 이미 밝혔으나 관행(觀行)이 아니면 복성하지 못한다(無以復性). 이에 13(一心三諦)의 이치에 의해 33(三止三觀)을 보였으니 하나하나 관심(觀心)하매 염념(念念)이 불가득(不可得)이다. ()은 공()이며 차()는 가()며 후()는 중()이다. 이변(二邊)을 여의고 일심을 관함이 구름 밖의 달과 같은 것은 이는 곧() 별교(別敎)의 행상(行相)이다. 일찍이 이르되 일체혹(一切惑)을 깨뜨림엔 공() 보다 성한 게 없고 일체법을 건립함엔 가() 보다 성한 게 없고 일체성(一切性)을 구경(究竟; 事理를 끝까지 추구하는 일)함엔 ()보다 성한 게 없다. 고로 하나가 중()이면 일체가 중이니 가()도 없고 공()도 없고 중이 아님이 없다(無不中; 저본에 而不中으로 지었음). 공가(空假)도 또한 그러하나니 곧 원교(圓敎)의 행상(行相)이다.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3()과 같아서 ()ㆍ횡()ㆍ병()ㆍ별()이 아닌 연고이다14龍樹菩薩偈云 인연으로 난 바의 법은/ 내가 卽是 이라고 설하나니/ 또한 이름하여 假名이며/ 또한 이름이 中道의 뜻이다. 이는 릉엄ㆍ원각경에서 설한 奢摩他三摩鉢底禪那 三觀名目은 비록 다르나 그 이치는 하나다. 달마대사가 以心傳心하여 名數不滯함은 바로 上上根智을 위해 忘筌忘意하게 한지라 고로 此敎와 같으면서 같지 않다. 지자선사는 窮理盡性備足之門인지라 고로 선종과 다르면서 다르지 않다. 3()을 원성(圓成)하여 법신이 소(; 素朴)하지 않으니 곧 빈자(貧子)와 같음을 면했다.

生滅四諦; 천태종 지의(智顗)가 세운 바 44()의 하나. 고집도(苦集道)3제는 인연에 의해 실()의 생멸이 있음이며 멸제(滅諦)란 것은 가히 실()의 멸법(滅法)이 됨으로 봄. 이와 같이 실생실멸상(實生實滅上)4()를 세우나니 이를 일러 생멸사제(生滅四諦)라 함. 이는 소승교, 곧 삼장교(三藏敎)에서 설하는 바임. 종경록76. 4()44()는 장교(藏敎)는 생멸사제(生滅四諦)며 통교(通敎)는 무생사제며 별교(別敎)는 무량사제며 원교(圓敎)는 무작사제다.

無生; 무생사제(無生四諦)니 열반경에서 설한 바 44()의 하나. 천태는 통교(通敎)의 법문에 배합(配合)하면서 미오(迷悟)의 인과는 모두 환화(幻化)의 법인지라 실생실멸(實生實滅)이 아님이라 설했음. 생멸이 곧 무생멸인지라 고로 이르되 무생사제임. 장교(藏敎)의 생멸의 4제와 간이(簡異).

無量; 무량사제(無量四諦)니 천태지의가 창설한 바 44()의 하나. 고제(苦諦)가 계()의 내외에 섭입(涉入)하매 무량한 형상이 있으며 내지 도제(道諦)에 나아가 무진의 차별이 있음. 이것은 이 곧 대보살이 수학하는 것인지라 고로 이를 일러 무량사제라 하나니 이는 별교(別敎)4().

無作四諦; 천태지의가 창설한 바 44()의 하나. 번뇌가 곧 보리이므로 고로 단집수도(斷集修道; 집을 끊고 도를 닦다)의 조작이 없으며 생사가 곧 열반이므로 고로 멸고증멸(滅苦證滅; 고를 멸하고 멸을 증득하다)의 조작이 쓰이지 않음. 이와 같이 단증(斷證)의 조작을 여읜 4제인지라 고로 이를 일러 무작사제(無作四諦)라 함. 이것은 원교(圓敎)4제임.

治生産業; 법화경6 법사공덕품에 가로되 내지 1게나 1구를 듣고 무량무변의 뜻을 통달하며 이 뜻을 안 다음 능히 1구나 1일게를 연설하거나 내지 한 달 넉 달 내지 한 해에 모든 설한 바의 법이 그 의취(義趣)를 따라 다 실상과 서로 위배하지 않는다. 만약 세속 속의 경서나 치세(治世)의 어언이나 자생(資生)의 업(; 産業) 등을 설하여도 다 정법을 따른다.

四正; 상세한 것은 천태삼대보주1(天台三大部補注一)을 보라.

三接; 태종십류인혁론3에 이르되 교()는 피하(被下)로써 말하고 접()은 승상(承上)으로써 뜻한다. 통틀어 말하자면 피접(被接)이 아닌 게 없다. 그러하여 이제 사정(四正)의 밖에 삼접(三接)이 있다는 것은 대개 그 본()은 함중(含中)에서 나오고 그 기()는 발습(發習)에서 비롯하고 그 응()은 인하여 점시(點示)한다. 이것이 피접(被接)이 소이로 이루어짐이다 (운운).

一心三諦; 조정사원7. 공가중(空假中) 천태지자가 용수의 게에 이르되 인연으로 난 바의 법은/ 내가 즉시 공()이라고 설하나니/ 또한 이름하여 가명(假名)이며/ 또한 이름이 중도(中道)의 뜻이다 했으므로 이에 13(一心三諦; 1. 有諦. 2. 無諦. 3. 中道第一義諦)의 이치에 의해 3(三止; 1. 體眞止. 2. 方便隨緣止. 3. 離二邊分別止)3(三觀; 1. 空觀. 2. 假觀. 3. 中觀)을 개시(開示)했음. 일찍이 이르되 일체혹(一切惑)을 깨뜨림엔 공()보다 성한 게 없고 일체법을 세움엔 가()보다 성한 게 없고 일체법을 구경(究竟; 事理를 끝까지 추구하는 일)함엔 중()보다 성한 게 없다. 고로 하나가 공()하면 일체가 공이므로 가()도 없고 중()도 없고 공이 아님이 없다. 하나가 가()면 일체가 가이므로 공()도 없고 중()도 없고 가가 아님이 없다. 하나가 중()이면 일체가 중이므로 가()도 없고 공()도 없고 중이 아님이 없다. 마치 마혜수라천의 삼목(三目)과 같아서 종()ㆍ횡()ㆍ병()ㆍ별()이 아닌 연고이다. 대혜어록23. 천태지자대사가 법화삼매를 깨쳐 공가중(空假中) 3()으로써 일대장교를 모두 거두었으니 모자람도 없고 나머지도 없다. 말한 공()이란 것은 가()가 없고 중()이 없고 공()이 아님이 없다. 말한 가()란 것은 공()이 없고 중()이 없고 가()가 아님이 없다. 말한 중()이란 것은 공()이 없고 가()가 없고 중()이 아님이 없다. 이 지취를 얻은 자는 선다라니를 획득한다. 이로 알지니 종상의 제불제조가 다 이 문으로부터 증입(證入)하지 않음이 없었다. 고로 대사가 증입했을 때 법화경을 독송함으로 인해 이것이 참 정진이며 이 이름이 여래에게 참다운 법으로 공양함이다 함에 이르러 이에 보매 석가노자가 영산에 있으면서 이 경을 설하되 엄연하여 흩어지지 않았다.

三止三觀; ()는 이 망념을 지식(止息)함이며 관()은 이 자성을 반관(反觀)함임. 조정사원7에 이르되 천태지자가 용수의 게에 이르되 인연으로 난 바의 법은/ 내가 곧 이 공()이라고 설하나니/ 또한 이름하여 가명(假名)이며/ 또한 이름이 중도(中道)의 뜻이다 했으므로 이에 일심삼제(一心三諦)의 이치에 의해 3()와 삼관(三觀; 空觀假觀中觀)을 개시(開示)했다. 종경록82. 이에() 태교에서 2종 지관을 총론했다. 1은 상대지관(相待止觀)이며 2는 절대지관(絶待止觀)이니 앞은 이 졸도(拙度)며 후는 이 교도(巧度). 상대지관이란 것은 33(三止三觀)이 있다. 3()란 것은 1은 지식의(止息義)2는 정지의(停止義)3은 부지지의(不止止義). 3()이란 것은 1은 관천의(觀穿義)2는 관달의(觀達義)3은 불관관의(不觀觀義). 절대지관이란 것은 33(三止三觀)이 있다. 3지란 것은 1은 체진지(體眞止)2는 방편수연지(方便隨緣止)3은 식이변분별지(息二邊分別止). 3관이란 것은 1은 종가입공(從假入空)이니 이름이 이제관(二諦觀)이며 2는 종공입가(從空入假)니 이름이 평등관이며 3은 이관위방편도(二觀爲方便道)니 중도에 득입하여 2()를 쌍조(雙照)하고 심심(心心)이 적멸이라 자연히 살바야해(薩婆若海)로 유입하나니 이름이 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이다. 위산경책구석기하. 3()란 것은 1은 체진지(體眞止)니 이르자면 무명과 망상을 체달(體達)함이니 곧 실상의 진()이다. 2는 방편수연지(方便隨緣止)니 이르자면 인연 따라 경계를 겪으면서 안심하여 움직이지 않음이다. 3은 이이변분별지(離二邊分別止)니 이르자면 생사열반과 유무의 상()을 분별하지 않음이다.

三摩鉢底; <> samāpatti. 또한 이름이 삼마발제(三摩鉢提)니 여기에선 이르되 등지(等至). 등지(等持)의 가운데 능히 승위(勝位)에 이르는 연고임. 또 등()은 이르자면 제등(齊等)이니 침도(沈掉)를 여읜 연고며 지()는 이르자면 지도(至到)니 승정(勝定)에 이르는 연고임 [원각경대소하지1]. 선림보훈음의. 범어 삼마발제(三摩鉢提)는 여기에선 이르되 관()이니 관이 오램을 가로되 혜().

 

尙慮學者昧於修性或墮偏執 故復創六卽之義以絕斯患 一理卽佛者 十法界衆生下至蟭螟同稟妙性 從本以來常住淸淨覺體圓滿一理齊平故執名相者不信卽心卽佛 覩此而生信也二名字卽佛者 雖理性坦平 而隨流者日用不知 必假言敎外熏得聞名字 生信發解故起信論云 以有忘想心故 能知名義 自此已下簡暗證者三觀行卽佛者 旣聞名開解 要假前之三觀而返源故圓敎外凡也 圓觀五陰爲不思議境 卽五品位 大師示居此位 別敎十信及藏通敎 皆名資糧位四相似卽佛者 觀行功深發相似用故內凡圓伏無明入十信鐵輪位 不斷見思惑 至七信以去見思惑自隕得六根淸淨 如經云 父母所生眼悉見三千界云云 思大禪師示居此位 若別敎乃地前三十心也 藏通皆名加行位 楞嚴經唯識論三十心後 別立四加行 名位雖同詮旨逈異 惟通悟者善巧融會五分眞卽佛者 三心開發得眞如用 位位增勝故發圓初住卽銅輪位也 如龍女一念成佛現百界身 從此轉勝至等覺位 凡四十一心盡目眞因 分位雖殊圓理無別 若別敎卽名十地 藏通皆言見道位六究竟卽佛者 無明永盡覺心圓極證無所證故妙覺也 起信云 始本不二名究竟覺 仁王名寂滅上忍也 別敎權佛攝 對圓行第二位耳 藏通二敎佛可知如上六位旣皆卽佛不屈不濫 通具法報化三身爲正三寶三德屬對交絡 乃至十種三法含攝無遺 偈云 道識性般若 菩提大乘身 涅槃三寶德 一一皆三法

十法界; 顯敎依法華經 以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人 天之六凡 與聲聞 緣覺 菩薩 佛之四聖爲十法界 密敎依理趣釋經 以地 鬼 畜 人 天之五凡 與聲 緣 菩 權佛 實佛之五聖爲十法界

外凡; 二凡之一 聲聞乘以五停心 別相念處 總相念處之修行位爲外凡 四善根之位爲內凡 又菩薩乘以十信之位爲外凡 十住等三賢之位爲內凡 大乘義章十七末 言外凡者 善趣之人向外求理 未能息相內緣眞性 故名爲外 六道分段凡身未捨 故名爲凡 四敎儀集註中 相似見理名內 未得似解名外

五品位; 五品者法華分別功德品所說 一隨喜品 二讀誦品 三說法品 四兼行六度 五正行六度也 天台大師居於此位云 四敎儀曰 依敎修行 爲觀行卽(五品位) [百度百科] 隋天台智者大師別傳 吾不領衆必淨六根 爲他損己 只是五品位耳

內凡; 外凡之對稱 爲見道以前階位之一 修行佛道而未證見正理者 稱爲凡夫 其對正理發相似之智解者稱爲內凡 未發相似之智解者稱爲外凡 小乘以五停心 別相念處 總相念處等三賢位爲外凡 而以煖 頂 忍 世第一法等四善根位爲內凡 大乘以十信伏忍位爲外凡 而以十住十行十迴向等三賢位爲內凡 天台家於四敎所配之位次各異 藏敎配於煖等四善根位 通敎配於大品十地中之性地 別敎配於五十二位中之十住十行十迴向三十位 圓敎配於六卽中之相似卽 [成實論十五 四敎義二 四 五 止觀輔行傳弘決一之五 天台四敎儀集註上 下]

圓伏; 台宗圓敎之法 達惑體融通 亡見思塵沙無明三惑之差別 則於同時伏之也

見思惑; 台家所立三惑之一 指迷於三世之道理(見惑) 與迷於現在之事象(思惑) 兩者並稱見思惑 因能招感三界生死之果報 故屬界內惑 又以其通於聲聞緣覺菩薩三者所斷之惑 故又稱通惑 此惑可用空觀來加以斷除 [止觀輔行傳弘決六]

三心; 三藏法數三十四 當發三心 一者至誠心 二者深心 三者迴向發願心

龍女一念成佛; 法華經四提婆達多品 爾時龍女有一寶珠 價直三千大千世界 持以上佛 佛卽受之 龍女謂智積菩薩尊者舍利弗言 我獻寶珠 世尊納受 是事疾不 答言 甚疾 女言 以汝神力 觀我成佛 復速於此 當時衆會 皆見龍女忽然之間變成男子 具菩薩行 卽往南方無垢世界 坐寶蓮華 成等正覺 三十二相 八十種好 普爲十方一切衆生演說妙法

等覺; 華嚴經略策 言等覺者 已超十地 等於妙覺 約等妙覺 亦名如來 雖等而修 亦名菩薩 又云 朗然大悟 離覺所覺 故名妙覺 華嚴經七處九會頌釋章 言等覺位者 等者相似義 此位所作 皆似佛果 故名等覺 覺者佛果勝智也 言妙覺者 妙者最勝之義 二乘所得菩提涅槃 非最勝妙 唯佛獨能所作皆辦功德最勝 故名妙覺 天台四敎儀科解下 等覺位亦名無垢地 過十地解 入百千三昧 照一相無相 寂滅無爲 望于玅覺 猶有一等 比下名覺 故名等覺 更有一品無明塵垢 雖有如無 故名無垢 所修觀智 純一堅利 喩若金剛 名金剛心 有一生在 未全損之 名爲一生 過此之後 卽補果佛玅覺之處 名爲補處 更有玅覺上位可登 名有上士

妙覺; 見上妙覺

十種三法; 宗鏡錄九十 十種三法 一三道 二三識 三三佛性 四三般若 五三菩提 六三大乘 七三身 八三涅槃 九三寶 十三德

 

오히려 학자가 수성(修性)에 매()해 혹 편집(偏執)에 떨어짐을 염려(; 저본에 로 지었음)한지라 고로 다시 6()의 뜻을 창설(創設; )하여 이 우환(斯患)을 끊었다. 1. 이즉불(理卽佛)이란 것은 십법계(十法界) 중생이 아래로 초명(蟭螟)에 이르기까지 묘성(妙性)을 동품(同稟)했나니 종본이래(從本以來)로 청정에 상주(常住)하는 각체(覺體)가 원만하여 일리(一理)로 제평(齊平)한 연고이다名相에 집착하는 자는 卽心卽佛不信하다가 이를 보고 生信한다. 2. 명자즉불(名字卽佛)이란 것은 비록 이성(理性)이 탄평(坦平)하나 수류(隨流)하는 자는 일용(日用)하면서 알지 못하므로 반드시 언교(言敎)의 외훈(外熏)을 빌려 명자(名字)를 득문(得聞)하고 생신(生信)하고 발해(發解)하는 연고이다起信論에 이르되 忘想心이 있는 연고로써 名義를 능히 안다. 已下로부터는 暗證者簡別한다. 3. 관행즉불(觀行卽佛)이란 것은 이미 문명(聞名)하고 개해(開解)했다면 요컨대 앞의 3()을 빌려야 반원(返源)하는 연고이다圓敎外凡이다. 五陰不思議境이 됨을 圓觀함이니 곧 五品位 大師此位에 거처함을 보였다. 別敎十信 藏通敎는 모두 이름이 資糧位. 4. 상사즉불(相似卽佛)이란 것은 관행(觀行)의 공()이 깊어 상사용(相似用)을 발()하는 연고이다內凡이다. 무명을 圓伏하여 十信鐵輪位에 드나니 見思惑을 끊지 못하다가 七信 以去(以下)에 이르러 見思惑이 저절로 떨어지고() 六根淸淨을 얻는다. 예컨대() (법화경6)에 이르되 父母所生한 눈으로 三千界를 모두 본다 云云. 思大禪師此位에 거주함을 보였다. 만약 別敎일진대 곧 地前三十()이며 은 모두 이름이 加行位. 楞嚴經唯識論三十心 후에 四加行別立하나니 名位는 비록 같으나 詮旨逈異하다. 오직 通悟者라야 善巧하게 融會한다. 5. 분진즉불(分眞卽佛)이란 것은 3(三心)이 개발하여 진여용(眞如用)을 얻음이니 위위(位位)가 증승(增勝)한 연고이다發圓하여 初住함이 곧 銅輪位니 용녀가 일념에 성불하여(龍女一念成佛) 百界身을 나타냄과 같다. 이로 좇아 더욱 殊勝하여 等覺에 이른다. 무릇 四十一心이 다하면 名目眞因이다. 分位는 비록 다르나 圓理는 다름이 없다. 만약 別敎일진대 곧 이름이 十地은 모두 見道位라고 말한다. 6. 구경즉불(究竟卽佛)이란 것은 무명이 영원히 없어지고 각심(覺心)이 원극(圓極)하여 증()해도 소증(所證)이 없는 연고이다妙覺이다. 起信云 (; 始覺)ㆍ본(; 本覺)不二를 이름해 究竟覺이다. 仁王(인왕경)은 이름해 寂滅上忍이다. 別敎에선 權佛이 거두나니 圓行第二位했을 뿐이다. 通 二敎은 가히 알 것이다. 위와 같은 6()가 이미 모두 즉불(卽佛)이니不屈하고 不濫한다 법보화(法報化) 3신을 모두 갖추어 정()이 된다三寶三德이 촉대(屬對; 이어서 상대)하여 交絡하나니 내지 十種三法含攝하여 남김이 없다. 偈云 道般若/ 菩提大乘/ 涅槃三寶이니/ 一一이 모두 三法이다.

十法界; 현교(顯敎)는 법화경에 의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ㆍ천의 6()과 성문ㆍ연각ㆍ보살ㆍ불의 4()10법계로 삼음. 밀교(密敎)는 이취석경(理趣釋經)에 의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ㆍ천의 5()과 성문ㆍ연각ㆍ보살ㆍ권불(權佛)ㆍ실불(實佛)5()10법계로 삼음.

外凡; 2()의 하나. 성문승(聲聞乘)5정심(停心)ㆍ별상념처(別相念處)ㆍ총상념처(總相念處)의 수행위(修行位)를 외범(外凡)으로 삼고 4선근(善根)의 위()를 내범(內凡)으로 삼음. 또 보살승은 10()의 위를 외범으로 삼고 10() 3()의 위를 내범으로 삼음. 대승의장17. 말한 외범(外凡)이란 것은 선취(善趣)의 사람이 밖을 향해 이치를 구하면서 능히 쉬지 못하는 상()으로, 안으로 진성(眞性)을 반연(攀緣)하므로 고로 이름하여 외()6()의 분단(分段)의 범신(凡身)을 버리지 못하는지라 고로 이름하여 범()이다. 사교의집주중. 상사(相似)의 견리(見理)를 이름하여 내()며 미득(未得)의 사해(似解)를 이름하여 외().

五品位; 5품이란 것은 법화 분별공덕품에서 설한 바이다. 1. 수희품(隨喜品), 2. 독송품, 3. 설법품, 4. 겸행육도(兼行六度), 5. 정행육도(五正行六度). 천태대사가 차위(此位)에 거처한다 했음. 사교의에 가로되 교에 의해 수행함은 관행즉(觀行卽. 五品位)이 된다 [백도백과]. 수천태지자대사별전(隋天台智者大師別傳) 내가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다면 필히 6()을 청정히 했으리라. 타인을 위해 자기를 손상한지라 다만 이 5품위(五品位)일 따름이다.

內凡; 외범의 대칭. 견도 이전 계위(階位)의 하나가 됨. 불도를 수행하여 정리(正理)를 증득해 보지 못하는 자를 일컬어 범부라 함. 그가 정리에 대해 상사한 지해를 내는 자를 일컬어 내범이라 하고 상사한 지해를 내지 못하는 자를 일컬어 외범이라 함. 소승은 오정심ㆍ별상념처ㆍ총상념처 등 3현위(賢位)를 외범으로 삼고 난ㆍ정ㆍ인ㆍ세제일법 등 4선근위(善根位)를 내범으로 삼음. 대승은 십신과 복인위(伏忍位)를 외범으로 삼고 십주ㆍ십행ㆍ십회향 등 3현위를 내범으로 삼음. 천태가에선 4()로 짝하는 바의 위차가 각기 다름. 장교(藏敎)는 난() 등의 4선근위에 짝하고 통교(通敎)는 대품 십지 중의 성지(性地)에 짝하고 별교(別敎)52위 중의 십주ㆍ십행ㆍ십회향의 30위에 짝하고 원교(圓敎)6() 중의 상사즉에 짝함 [성실론15. 사교의2, 4, 5. 지관보행전홍결15. 천태사교의집주상, ].

圓伏; 천태종 원교(圓敎)의 법이니 혹체(惑體)를 달통하여 융통하고 견사(見思)ㆍ진사(塵沙)ㆍ무명의 3혹의 차별을 없애 곧 동시에 그것을 조복(調伏).

見思惑; 천태가에서 세운 바 3혹의 하나. 삼세의 도리를 미혹함과(見惑) 현재의 사상(事象)을 미혹함을(思惑) 가리킴. 양자를 병칭하여 견사혹이라 함. 능히 3계의 생사의 과보를 초감(招感)하므로 고로 계내혹(界內惑)에 속함. 또 그것이 성문ㆍ연각ㆍ보살 3자가 끊는 바의 혹에 통하므로 고로 또 일컬어 통혹(通惑)이라 함. 이 혹()은 가히 공관(空觀)을 쓰고 단제(斷除)를 더해야 함 [지관보행전홍결6].

三心; 삼장법수34. 마땅히 3(三心)을 발해야 한다. 1()는 지성심(至誠心)이며 2자는 심심(深心)이며 3자는 회향발원심(迴向發願心)이다.

龍女一念成佛; 법화경4 제바달다품. 이때 용녀에게 한 보주(寶珠)가 있었는데 가치가 삼천대천세계였다. 가지고서 불타에게 진상(進上)했다. 불타가 곧 그것을 접수하셨다. 용녀가 지적보살과 존자 사리불에게 일러 말하되 내가 보주를 바치매 세존이 납수(納受)하셨다. 이 일이 빠른가. 답해 말하되 매우 빠르다. 용녀가 말하되 너의 신력으로 나의 성불을 본다면 다시 이것보다 빠르리라. 당시에 중회(衆會)가 모두 보았는데 용녀가 홀연의 사이에 남자로 변성(變成)하여 보살행을 갖추고 바로 남방 무구세계(無垢世界)로 가서 보련화에 앉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다. 32상과 80종호로 널리 시방의 일체중생을 위해 묘법을 연설했다.

等覺; 화엄경약책(華嚴經略策) 말한 등각이란 것은 이미 십지(十地)를 초과하여 묘각과 제등함이니 등묘각(等妙覺)을 대약(大約)하면 또한 이름이 여래다. 비록 제등(齊等)히 닦지만 또한 이름이 보살이다. 또 이르되 낭연(朗然)히 대오하여 각()과 소각(所覺)을 여읜지라 고로 이름이 묘각이다. 화엄경칠처구회송석장(華嚴經七處九會頌釋章) 말한 등각위(等覺位)란 것은 등()이란 것은 상사(相似)의 뜻이다. 이 위()에서 짓는 바는 다 불과(佛果)와 상사하므로 고로 이름이 등각이다. 각이란 것은 불과의 승지(勝智). 말한 묘각이란 것은 묘()는 최승(最勝)의 뜻이다. 2()이 얻은 바 보리와 열반은 가장 수승(殊勝)한 묘()가 아니다. 오직 부처라야 홀로 능히 짓는 바며 다 공덕을 갖추어 가장 수승하므로 고로 이름이 묘각이다. 천태사교의과해하(天台四敎儀科解下) 등각위는 또한 이름이 무구지(無垢地). 십지의 지해(知解)를 초과하여 백천(百千) 삼매에 들어가 일상(一相)인 무상(無相)을 비춰 적멸하여 무위이다. 묘각을 바라보면 오히려 한 등급이 있지만 아래에 비하면 이름이 각인지라 고로 이름이 등각이다. 다시 1()의 무명의 진구(塵垢)가 있지만 비록 있어도 없음과 같은지라 고로 이름이 무구(無垢)이다. 닦는 바 관지(觀智)가 순일하고 견리(堅利)하여 비유컨대 금강과 같으므로 이름이 금강심이다. 1()이 있어서 그것을 전부 손감(損減)하지 못했으므로 이름하여 일생(一生)이다. 이를 지난 후에 곧 과불(果佛)인 묘각의 처소에 보()하므로 이름해 보처(補處). 다시 묘각의 상위가 있어 가히 오르므로 이름이 유상사(有上士).

妙覺; 위 묘각을 보라.

十種三法; 종경록90. 십종삼법(十種三法) 1. 3(), 2. 3(), 3. 3불성, 4. 3반야, 5. 3보리, 6. 3대승, 7. 3(), 8. 3열반, 9. 3(), 10. 3.

 

隨居四土爲依 四土者 一常寂光法性土也 法身居之身土相稱二實報無障礙攝二受用也 自受用土報佛自居 他受用土登地菩薩所居 三方便有餘 四淨穢同居竝爲應化土也 地前菩薩二乘凡夫所居其實則非身非土無優無劣 爲對機故假說身土而分優劣 師得身土互融權實無礙故 三十餘年晝夜宣演 生四種益四悉檀悉遍也 檀翻名施 禪師之法遍施有情 隨根得益如雲 世界悉檀生歡喜益云云

四種益; 妙法蓮華經授手八 梵語悉檀 此云徧布施 是如來垂化之門也 一世界悉檀 隨方異說 令生歡喜益也 二爲人悉檀 生善益也 三對治悉檀 破惡益也 四第一義悉檀 入理益也

四悉檀; 佛之說法不出四悉檀也 悉檀 古師一譯爲成 謂以此四法成就衆生之佛道 故名 南岳解悉爲漢語普徧之義 檀爲梵言檀那之略 是施之義 佛以此四法普施衆生 故云悉檀 一世界悉檀 二爲人悉檀 三對治悉檀 四第一義悉檀 [玄應音義二 智度論一 法華玄義一 大乘義章二]

 

4()에 거주함을 따라 의()로 삼았다. 4토란 것은 1. 상적광(常寂光)이며法性土. 法身이 이에 거주하며 相稱한다2. 실보무장애(實報無障礙)二受用을 거두나니 自受用土報佛自居하고 他受用土登地菩薩所居 3. 방편유여(方便有餘)4. 정예동거(淨穢同居)모두 應化土가 되나니 地前菩薩二乘ㆍ범부의 所居. 기실(其實)은 곧 비신비토(非身非土)며 무우무열(無優無劣)이다. 대기(對機)하는 연고로 신토(身土)를 가설(假說)하여 우열을 나누었다. 스님은 신토가 호융(互融)하고 권실(權實)이 무애함을 얻은 연고이다. 30여 년 동안 주야로 선연(宣演)하여 4종익(四種益)을 내고 4실단(四悉檀)을 갖췄다이며 은 번역한 이름이 禪師의 법이 유정에게 두루 베풀어 근기 따라 이익을 얻음이 구름 같았다. 世界悉檀歡喜益을 낸다 운운.

四種益; 묘법연화경수수8. 범어 실단(悉檀)은 여기에선 이르되 두루 보시함이다(徧布施). 이는 여래의 수화지문(垂化之門)이다. 1. 세계실단(世界悉檀) 방위 따라 이설(異說)하여 환희익(歡喜益)을 내게 한다. 2. 위인실단(爲人悉檀) 선익(善益)을 낸다. 3. 대치실단(對治悉檀) 파악익(破惡益)이다. 4.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 입리익(入理益)이다.

四悉檀; 불타의 설법은 4실단을 벗어나지 않음. 실단(悉檀; si ddhānta)은 옛 스님이 한편으론 성()으로 번역했으니 이르자면 이 4법으로 중생의 불도를 성취하는지라 고로 이름함. 남악은 해석하기를 실()은 한어의 보편의 뜻이 되고 단()은 범언(梵言)의 단나(檀那)의 약칭이 되니 이는 시()의 뜻이다. 불타가 이 4법으로 중생에게 보시(普施)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실단이다. 1은 세계실단(世界悉檀)이며 2는 위인실단(爲人悉檀)이며 3은 대치실단(對治悉檀)이며 4는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현응음의2. 지도론1. 법화현의1. 대승의장2].

 

門人灌頂日記萬言而編結之 總目爲天台敎 別卽分諸部類法華玄義 文句 大小止觀 金光明 仁王 淨名 涅槃 請觀音 十六觀經等 及四敎 禪門凡百餘軸歷代付授盛于江浙 隋開皇十七年十一月十七日 帝遣使詔師 將行乃告門人曰 吾今往而不返 汝等當成就佛隴南寺一依我圖 侍者曰 若非師力豈能成辦 師曰 乃是王家所辦 汝等見之吾不見也師初欲建寺於石橋 禪寂見三神人 皁幘絳衣從一老僧 謂師曰 若欲造寺今非其時 三國成一當有大力施主與師造寺 寺成國卽淸 宜號爲國淸 言訖不見 開皇十八年帝遣司馬王弘入山依圖造寺 方應前誌師二十一日到剡東石城寺百尺石像前不進 至二十四日顧侍者曰 觀音來迎不久應去 時門人智朗請曰 不審何位何生 師曰 吾不領衆必淨六根 捐己利他獲預五品耳五品弟子 卽法華三昧前方便之位 與思大禪師昔語冥符命筆作觀心偈 唱諸法門綱要訖 趺坐而逝 壽六十 臘四十 弟子等迎歸佛隴巖 大業元年九月煬帝巡幸淮海 遣使送弟子智璪及題寺額入山赴師忌齋 到日集僧開石室唯覩空榻 時會千僧至忽剩一人 咸謂師化身來受國供 師始受禪敎終乎滅度 常披一壞衲冬夏不釋 來往居天台山二十二年 建造大道場一十二所 國淸最居其後 及荊州玉泉寺等共三十六所 度僧一萬五千人 寫經一十五藏 造金銅塑畫像八十萬尊 事迹甚廣如本傳

灌頂; (561-632) 隋代天台宗僧 臨海章安(浙江臨海)人 俗姓吳 字法雲 世稱章安大師 章安尊者 七歲從攝靜寺慧拯出家 二十歲受具足戒 慧拯入滅後 於南朝陳後主至德元年(583) 至天台山修禪寺謁智顗 承習天台敎觀 此後隨侍智顗 開皇十七年(597) 智顗示寂 師奉遺物獻貢晉王廣 王遣官送返 並致唁辭 晚年住會稽稱心精舍 講說法華 貞觀六年示寂 世壽七十二 追諡總持尊者 師智解辯才絶倫 能領持智顗之遺敎 如法華玄義 法華文句 摩訶止觀等 集記大小部帙百餘卷 以傳後世 今日智者大師之敎文不墜 全仗師之力 後世尊爲東土天台宗第五祖 著有大般涅槃經玄義二卷及經疏三十三卷 觀心論疏五卷 天台八敎大意一卷 隋天台智者大師別傳一卷 國淸百錄四卷 以上現今尙存 此外 仁王經私記三卷 仁王疏四卷等已散佚 [續高僧傳十九 佛祖統紀七 淨土聖賢錄二]

法華玄義; 妙法蓮華經玄義之略名 十卷(二十卷) 天台大師智顗在隋開皇十三年(593) 於荊州玉泉寺講述 灌頂筆記 全稱妙法蓮華經玄義 略稱法華經玄義 玄義 爲法華三大部之一 收於大正藏第三十三冊 北宋天聖二年(1024) 遵式奏請入藏 本書詳釋妙法蓮華經之經題 竝說明法華經幽玄之義趣

文句; 法華文句 凡十卷(或二十卷) 天台大師智顗在南朝陳代禎明元年(587) 於金陵光宅寺講說 由灌頂筆記 全稱妙法蓮華經文句 略稱法華經文句 文句 妙句 爲法華三大部之一 收於大正藏第三十四冊 北宋天聖二年(1024) 遵式奏請入藏 [百度百科]

江浙; 江蘇與浙江

淮海; 淮海之名最早見於尙書禹貢 目前主要是蘇魯豫皖四省交界地區 它東瀕黃海 西連中原 南鄰江淮 北接齊魯 [百度百科]

문인 관정(灌頂)이 하루()에 만언(萬言)을 기록하여 그것을 편결(編結)했고 총목(總目)하여 천태교라 했다. 따로는 곧 여러 부류(部類)로 나누었다法華玄義 文句 大小止觀 金光明 仁王 淨名 涅槃 請觀音(저본에 諸觀章으로 지었음) 十六觀經 . 四敎 禪門 무릇 百餘軸이다. 역대(歷代)에 부수(付授)하여 강절(江浙; 저본에 으로 지었음)에 성행한다. () 개황(開皇) 17(597) 1117일 제(; 煬帝)가 사자를 보내어 스님을 불렀다(). 장차 가려고 하면서 이에 문인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이제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 너희 등은 마땅히 불롱(佛隴)의 남사(南寺)를 성취하되 나의 도면(圖面; )에 한결같이 의하라(一依). 시자가 가로되 만약 스님의 힘이 아니면 어찌 능히 성판(成辦; 成功. 完成)하겠습니까. 사왈(師曰) 곧 이는 왕가(王家)의 소판(所辦; 辦備할 바)이니 너희 등은 그것을 보겠지만 나는 보지 못한다스님이 처음에 石橋建寺하려고 했는데 禪寂三神人이 보였다. 조책(皁幘; 검은 網巾)에 강의(絳衣; 붉은 옷)였고 一老僧을 좇았다.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만약 造寺하고 싶다면 지금은 其時가 아닙니다. 三國이 하나로 이루어지면 마땅히 大力施主가 있어 스님을 위해 造寺할 것입니다. 하면 이 곧 하리니 의당 호를 國淸이라 하십시오.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開皇 十八年(598) 司馬 王弘을 보내어 入山하여 도면에 의해 造寺했으니 바야흐로 前誌에 응했다. 스님이 21일 섬동(剡東) 석성사(石城寺)에 이르렀는데백척(百尺) 석상(石像) 앞에서 전진하지 못했다. 24일에 이르러 시자를 돌아보며 가로되 관음(觀音)이 내영(來迎)하나니 오래지 않아 응당 갈 것이다. 때에 문인 지랑(智朗)이 청왈(請曰) 불심(不審)하오니 어떤 위며 어디에 탄생합니까(何位何生). 사왈 내가 도중(徒衆)을 거느리지 않았다면 반드시 6()이 청정했겠지만 자기를 덜어() 이타(利他)한지라 오품(五品)에 참예(參預)함을 얻었을 뿐이다五品弟子니 곧 法華三昧 前方便之位이다. 思大禪師昔語와 더불어 冥符한다. 필기(筆記; )를 명해 관심게(觀心偈)를 짓고 여러 법문의 강요(綱要)를 창()해 마치자() 부좌(趺坐)하여 서거했다. 나이는 60이며 납은 40이다. 제자 등이 맞이해 불롱암(佛隴巖)으로 귀환했다. 대업(大業) 원년(元年; 605) 9월 양제(煬帝)가 회해(淮海; 저본에 准海로 지었음)에 순행(巡幸)했다가 사자를 파견해 제자 지조(智璪) 및 제사액(題寺額; 한 사액)을 보내어 입산해 스님의 기재(忌齋)에 다다르게 했다. 도일(到日)에 승려를 모아 석실을 열었더니 오직 공탑(空榻)만 보였다(). 당시의 모임에 천승(千僧)이 이르렀는데 홀연히 1인이 남았다(). 모두 이르기를(咸謂) 스님의 화신(化身)이 와서 국공(國供)을 받았다. 스님이 처음() 선교(禪敎)를 받아 마침내 멸도(滅度)하면서 늘 하나의 괴납(壞衲)을 입었고 동하(冬夏)에 벗지() 않았다. 내왕하며 천태산에 거주한 지 22년이며 대도량 12()를 건조했는데 국청(國淸)이 가장 그 뒤에 거처하며 및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 등 공()36소다. 도승(度僧)15천 인이었고 사경(寫經)한 게 15()이며 금동으로 화상(畫像)을 빚은 게 80만 존(; 양사)이다. 사적(事迹)이 심광(甚廣)함은 본전(本傳)과 같다.

灌頂; (561-632) 수대 천태종승. 임해 장안(章安; 절강 임해) 사람. 속성은 오며 자는 법운이니 세칭이 장안대사(章安大師)ㆍ장안존자. 7세에 섭정사 혜증을 좇아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음. 혜증이 입멸한 후 남조 진() 후주(後主) 지덕 원년(583)에 천태산 수선사에 이르러 지의를 참알하고 천태교관을 받들어 익혔으며 차후에 지의를 수시했음. 개황 17(597) 지의가 시적하자 스님이 유물을 받들어 진왕(晉王) ()에게 헌공(獻貢)하자 왕이 관리를 보내어 송환해 돌려주고 아울러 위로의 말을 주었음. 만년에 회계 칭심정사에 주()하면서 법화를 강설했음. 정관 6년에 시적했음. 세수 72. 추시(追諡)가 총지존자(總持尊者). 스님은 지해와 변재가 절륜하여 능히 지의의 유교(遺敎)를 받아 가졌으니 법화현의ㆍ법화문구ㆍ마하지관 같은 것 등임. 대소의 부질(部帙) 백여 권을 집기(集記)하여 후세에 전했음. 금일 지자대사의 교문(敎文)이 추락하지 않음은 전부 스님의 힘에 의지하였음. 후세에 존중해 동토 천태종 제5조로 삼았음. 저서에 대반열반경현의 2권 및 경소 33권ㆍ관심론소 5권ㆍ천태팔교대의 1권ㆍ수천태지자대사별전 1권ㆍ국청백록 4권이 있으며 이상은 현금에도 오히려 존재함. 이 밖에 인왕경사기 3권과 인왕소 4권 등은 이미 산일(散佚)되었음 [속고승전19. 불조통기7. 정토성현록2].

法華玄義; 묘법연화경현의의 약명. 10(20). 천태대사 지의(智顗)가 수 개황 13(593)에 형주 옥천사에서 강술했고 관정이 필기했음. 전칭이 묘법연화경현의며 약칭이 법화경현의ㆍ현의임. 법화 3대부(大部)의 하나가 됨. 대정장 제33책에 수록되었음. 북송 천성 2(1024) 준식(遵式)이 주청하여 입장(入藏)했음. 본서는 묘법연화경의 경제(經題)를 상세히 해석하고 아울러 법화경의 유현(幽玄)한 의취(義趣)를 설명했음.

文句; 법화문구(法華文句)니 무릇 10(20). 천태대사 지의(智顗)가 남조 진대(陳代) 정명원년(禎明元年; 587)에 금릉 광택사(光宅寺)에서 강설했고 관정(灌頂)의 필기(筆記)로 말미암았음. 전칭이 묘법연화경문구며 약칭이 법화경문구ㆍ문구ㆍ묘구니 법화삼대부(法華三大部)의 하나가 되며 대정장 제34책에 수록되었음. 북송 천성(天聖) 2(1024) 준식(遵式)이 주청(奏請)하여 입장(入藏)했음 [백도백과].

江浙; 강소(江蘇)와 절강.

淮海; 회해(淮海)의 이름이 상서 우공(禹貢)에 최조(最早)로 보임. 목전에 주요(主要)는 이 소로예환(蘇魯豫皖) 4()의 교계지구(交界地區). 그것은 동으로는 황해(黃海)에 잇닿았고() 서로는 중원과 연접(連接)했고 남으로는 강회(江淮)와 이웃했고 북으로는 제로(齊魯)와 연접했음 [백도백과].

 

泗州僧伽大師者 世謂觀音大士應化也 推本則過去阿僧祇殑伽沙劫値觀世音如來 從三慧門而入道 以音聲爲佛事 但以此土有緣之衆乃謂大師自西國來 唐高宗時至長安洛陽 行化歷吳楚間 手執楊枝混于緇流 或問師何姓 卽答曰 我姓何 又問師是何國人 師曰 我何國人 尋於泗上欲構伽藍因宿 州民賀跋氏捨所居 師曰 此本爲佛宇 令掘地果得古碑 云香積寺 卽齊李龍建所創 又獲金像衆謂然燈如來 師曰 普光王佛也 因以爲寺額 景龍二年中宗遣使迎大師至輦轂深加禮異 命住大薦福寺 帝及百官咸稱弟子 與度慧儼慧岸木叉三人 御書寺額普光王寺三年三月三日大師示滅 勅令就薦福寺漆身起塔 忽臭氣滿城 帝祝送師歸臨淮 言訖異香騰馥 帝問萬迴曰 僧伽大師是何人耶 曰觀音化身耳 乾符中諡證聖大師 皇朝太平興國中 太宗皇帝重創浮圖壯麗超絕

泗州; 今江蘇盱眙東北

應化; 佛菩薩應衆生之利益 而變現與衆生同類之形像 稱爲應化

阿僧祇; <> asaṃkhya 爲印度數目之一 無量數或極大數之意 又作阿僧伽 阿僧企耶 阿僧 僧祗 華言不可算計 或無量數 無央數 於印度六十種數目單位中 阿僧祗爲第五十二數 [新華嚴經四十五阿僧祇品 俱舍論十二分別世間品 大智度論四] 智度論五十一 僧祇 秦言數 阿 秦言無

殑伽沙; 舊稱恒河沙 新稱殑伽沙

三慧; 一聞慧 依見聞經敎而生之智慧 二思慧 依思惟道理而生之智慧 三修慧 依修禪定而生之智慧 前之二慧爲散智 而爲但發修慧之緣 修慧爲定智而正有斷惑證理之用 [成實論二十]

楊枝: 一楊柳的枝條 舊俗於分別之際常折以送行 [百度百科] 二梵曰憚哆家瑟詑 譯曰齒木 嚙小枝之頭爲細條 用刷牙齒者 楊枝者義譯也 [寄歸傳一] 此指一

緇流; 以緇流緇門緇徒 作爲僧侶之代稱 僧呂多著緇衣 尤以法衣趨向華美之後 緇衣更爲隱遁僧所用

輦轂; 一天子的車駕 用以指天子 二京師

皇朝; 封建時代對本朝的稱呼

 

사주(泗州) 승가대사(僧伽大師)란 자는 세간에서 이르기를 관음대사의 응화(應化)이다. 근본을 추리(推理)하자면 곧 과거 아승기(阿僧祇) 긍가사겁(殑伽沙)에 관세음여래를 만나 삼혜문(三慧)으로 좇아 입도(入道)했고 음성으로써 불사로 삼았다. 단지 차토(此土)의 유연지중(有緣之衆) 때문에() 이에 이르기를 대사가 서국으로부터 왔다. 당고종 때 장안과 낙양(洛陽)에 이르렀고 행화(行化)하며 오초(吳楚) 사이를 지났다(). 손에 양지(楊枝)를 가지고 치류(緇流)에 섞였는데 혹문(或問)하되 스님은 무슨 성(何姓)입니까. 곧 답왈(答曰) 나는 성은 하(). 우문(又問) 스님은 어떤 나라(何國) 사람입니까. 사왈 나는 하국(何國) 사람이다. 이윽고 사상(泗上)에 가람(伽藍)을 엮고자 했고 인하여 숙박했는데 주민(州民) 하발씨(賀跋氏)가 소거(所居)를 희사(喜捨)했다. 사왈 이것은 본래 불우(佛宇; 佛寺)가 되었다. 땅을 파게 했더니 과연 고비(古碑)를 얻었고 이르되 향적사(香積寺)라 했다. 곧 제() 이용건(李龍建)이 창건한 것이었다. 또 금상(金像)을 획득했는데 중인(衆人)이 이르되 연등여래(然燈如來)라 하자 사왈 보광왕불(普光王佛)이다. 인하여 사액(寺額)으로 삼았다. 경룡(景龍) 2(708) 중종(中宗)이 사자를 보내어 대사를 영접해 연곡(輦轂)에 이르게 하고 깊이 예이(禮異; 敬禮의 특이함)를 가했다. 명하여 대천복사(大薦福寺)에 주()하게 하고 황제 및 백관(百官)이 모두() 일컫기를 제자라 했으며 혜엄(慧儼)ㆍ혜안(慧岸)ㆍ목차(木叉) 3인을 득도(得度)시켜 주었고 사액(寺額)普光王寺을 어서(御書)했다. 3(709) 33일 대사가 시멸(示滅)했다. 칙령(勅令)으로 천복사로 나아가 칠신(漆身; 몸에 옻칠함)하고 기탑(起塔)했는데 홀연히 취기(臭氣; 더러운 냄새)가 만성(滿城)했다. 황제가 축원(祝願; )하되 스님을 보내어 임회(臨淮)로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이향(異香)이 등복(騰馥; 솟으며 향기로움)했다. 황제가 만회(萬迴)에게 물어 가로되 승가대사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가로되 관음의 화신입니다. 건부(乾符; 874-879) 중 시()하여 증성대사(證聖大師)라 했고 황조(皇朝) 태평흥국(976-983) 중 태종황제가 부도(浮圖)를 중창(重創)했는데 장려(壯麗)함이 초절(超絕; 尋常의 것을 超出)했다.

泗州; 지금의 강소 우이(盱眙) 동북.

應化; 불보살이 중생의 이익에 응해 중생과 동류의 형상(形像)으로 변현(變現)함을 일컬어 응화라 함.

阿僧祇; <> asaṃkhya. 인도 수목(數目)의 하나. 무량수(無量數) 혹 극대수(極大數)의 뜻. 또 아승가(阿僧伽)ㆍ아승기야(阿僧企耶)ㆍ아승(阿僧)ㆍ승기(僧祗)로 지음. 화언(華言)으론 불가산계(不可算計) 혹 무량수(無量數)ㆍ무앙수(無央數). 인도 60종 수목단위(數目單位) 중 아승기는 제52수가 됨 [신화엄경45아승기품. 구사론12분별세간품. 대지도론4]. 지도론51. 승기(僧祇)는 진()나라 말로 수()며 아()는 진나라 말로 무().

殑伽沙; 구칭(舊稱)은 항하사(恒河沙)며 신칭은 긍가사(殑伽沙).

三慧; 1. 문혜(聞慧) 경교(經敎)를 견문함에 의해 생기는 지혜. 2. 사혜(思慧) 도리를 사유함에 의해 생기는 지혜. 3. 수혜(修慧) 선정을 닦음에 의해 생기는 지혜. 앞의 2혜는 산지(散智)가 되어 단지 수혜를 일으키는 연()이 되며 수혜는 정지(定智)가 되어 바로 단혹증리(斷惑證理)의 용()이 있음 [성실론20].

楊枝: 1. 양류(楊柳; 버드나무)의 지조(枝條; 가지). 구속(舊俗)에 분별(分別; 離別)하는 즈음에 늘 꺾어서 송행(送行)에 썼음 [百度百科]. 2. 범어로 가로되 탄타가슬타(憚哆家瑟詑; danta-kāṣṭha)를 번역해 가로되 치목(齒木)이니 소지(小枝)의 끝을 깨물어 세조(細條)로 만들어 아치(牙齒)를 긁는 데 쓰는 것이며 양지(楊枝)란 것은 의역임 [기귀전1].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緇流; 치류(緇流)ㆍ치문(緇門)ㆍ치도(緇徒)로써 승려의 대칭으로 지음. 승려는 다분히 치의(緇衣)를 입으며 더욱이 법의(法衣)는 화미(華美)의 뒤를 추향(趨向)하기 때문임. 치의는 다시 은둔승이 사용하는 바가 됨.

輦轂; 1. 천자의 거가(車駕). 써서 천자를 가리킴. 2. 경사(京師; 首都).

皇朝; 봉건시대(封建時代) 본조(本朝)에 대한 칭호.

 

萬迴法雲公者 虢州閿鄕人也 姓張氏 唐貞觀六年五月五日生 始在弱齡嘯傲如狂鄕黨莫測 一日令家人灑掃云 有勝客來 是日三藏玄奘自西國還訪之 公問印度風境 了如所見 奘作禮圍繞稱是菩薩 有兄萬年久征遼左 母程氏思其音信 公曰 此甚易爾 乃告母而往至暮而還 及持到書隣里驚異 有龍興寺沙門大明 少而相狎 公來往明師之室 屬有正諫大夫明崇儼夜過寺 見公左右神兵侍衛崇儼駭之 詰旦言與明師 復厚施金繒作禮而去 咸亨四年高宗召入內 時有扶風僧蒙澒者 甚多靈迹 先在內每曰 迴來迴來 及公至又曰 替到當去 迨旬日而澒卒 景雲二年辛亥十二月八日 公卒于長安醴泉里 壽八十 時異香氤氳擧體柔軟 贈司徒虢國公喪事官給 三年正月十五日窆于京西香積寺

虢州; 在今河南靈寶東 隋開皇三年(583) 廢弘農郡及閿鄕郡 置虢州

嘯傲; 逍遙自在 不受世俗禮法拘束

遼左; 遼東的別稱

正諫大夫; 官名 卽諫議大夫 唐高宗龍朔二年(662)改 中宗神龍元年(705) 復名諫議大夫 諫議 秦代置御之官 專掌議論 漢書王莽傳下 又置師友祭酒 及侍中 諫議 六經祭酒各一人 [百度百科]

氤氳; 煙氣煙雲彌漫的樣子

; 帝王的命令

 

만회(萬迴) 법운공(法雲公)이란 자는 괵주(虢州) 문향(閿鄕) 사람이며 성이 장씨(張氏)니 당 정관(貞觀) 6(632) 55일 생이다. 처음() 약령(弱齡)에 소오(嘯傲)함이 미친 것과 같았고 향당(鄕黨)에서 헤아리지 못했다. 어느 날 가인(家人)으로 하여금 쇄소(灑掃)하게 하고 이르되 승객(勝客)이 있어 오신다. 이날 삼장(三藏) 현장(玄奘)이 서국에서 귀환하여 방문했다. ()이 인도(印度)의 풍경(風境)을 물었는데 또렷하기가() 본 바와 같았다. 현장이 작례(作禮)하고 위요(圍繞)하며 일컫되 이는 보살이다. 형 만년(萬年)이 있어 오랫동안 요좌(遼左)에 징집(徵集; )되었다. () 정씨(程氏)가 그의 음신(音信; 消息)을 생각했는데 공왈(公曰) 이것은 심히 쉽습니다(易爾). 이에 고모(告母)하고 가더니 저녁에 이르러 귀환했고 및 서찰을 가지고 이르렀으니 인리(隣里; 이웃 동네)가 경이(驚異)했다. 용흥사(龍興寺) 사문 대명(大明)이 있었는데 소년(少年)에 서로 친압(親狎)했고 공()이 명사지실(明師之室)에 내왕했다. 정간대부(正諫大夫) 명숭엄(明崇儼)이 있어 밤에 사원에 이름()에 당했다(). 보매 공의 좌우에 신병(神兵)이 시위(侍衛)하므로 숭엄이 놀랐다(駭之). 힐단(詰旦; 淸晨)에 명사(明師)에게 말해 주고는 다시 금과 비단()을 후시(厚施)하고 작례하고 떠났다. 함형(咸亨) 4(673) 고종이 불러 입내(入內)했다. 때에 부풍승(扶風僧) 몽홍(蒙澒)이란 자가 있었는데 영적(靈迹)이 심다(甚多)했다. 먼저 재내(在內; 대궐 안에 있음)했는데 매번 가로되 회가 온다(迴來). 회가 온다. 및 공이 이르자 우왈(又曰) 대체(代替; )가 이르렀으니 마땅히 가리라. 열흘(旬日)에 이르자() 몽홍이 졸()했다. 경운(景雲) 2년 신해(辛亥; 711) 128일 공(; 저본에 로 지었음)이 장안 예천리(醴泉里)에서 졸했다. 나이는 80이다. 때에 이향(異香)이 인온(氤氳)했고 온몸(擧體)이 유연(柔軟)했다. ()로 사도괵국공(司徒虢國公)을 주고() 상사(喪事)는 관급(官給)했다. 3(712) 정월 15일 경서(京西) 향적사(香積寺)에 매장(埋葬; )했다.

虢州; 여금의 하남 영보(靈寶) 동쪽에 있었음. 수 개황 3(583) 홍농군 및 문향군을 폐지하고 괵주를 설치했음.

嘯傲; 소요자재(逍遙自在)하며 세속의 예법과 구속을 받지 않음.

遼左; 요동(遼東)의 별칭.

正諫大夫; 관명(官名)이니 곧 간의대부(諫議大夫). 당고종 용삭(龍朔) 2(662) 고쳤고 중종 신룡(神龍) 원년(705) 복명(復名)하여 간의대부(諫議大夫)라 했음. 간의(諫議)는 진대(秦代) ()의 관직을 두어 의논을 오로지 관장케 했음. 한서 왕망전하(王莽傳下) 또 사우제주(師友祭酒) 및 시중ㆍ간의(諫議)ㆍ육경제주(六經祭酒) 1인을 두었다 [백도백과].

氤氳; 연기나 연운(煙雲)이 미만(彌漫; 충만)한 양자.

; 제왕(帝王)의 명령.

 

天台豐干禪師者 不知何許人也 居天台山國淸寺 剪髮齊眉衣布裘 人或問佛理 止答隨時二字 嘗誦唱道歌 乘虎入松門 衆僧驚畏 本寺厨中有二苦行 曰寒山子拾得 二人執爨終日晤語 潛聽者都不體解 時謂風狂子 獨與師相親 一日寒山問 古鏡不磨如何照燭 師曰 氷壺無影像 猨猴探水月 曰此是不照燭也 更請師道 師曰 萬德不將來 敎我道什麽 寒拾俱禮拜 師尋獨入五臺山巡禮 逢一老翁師問 莫是文殊否 曰豈可有二文殊 師作禮未起忽然不見趙州沙彌擧似和尙 趙州代豊干云 文殊文殊後迴天台山示滅

苦行; 此指從事苦役之行者 又寺內之淨人 亦稱苦行

執爨; 禪林疏語考證二 詩楚茨曰 執爨踖踖 註 爨 竈也

 

천태 풍간선사(豐干禪師)란 자는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에 거주했는데 두발(頭髮)을 잘라 눈썹과 가지런했고 포구(布裘)를 입었다(). 사람이 혹 불리(佛理)를 물으면 다만() 수시(隨時) 2자로 답했다. 일찍이 창도가(唱道歌)를 외우며 범을 타고 송문(松門)에 들자 중승(衆僧)이 경외(驚畏)했다. 본사(本寺)의 주중(厨中)에 두 고행(苦行)이 있었으니 가로되 한산자(寒山子)와 습득(拾得)이다. 2인이 집찬(執爨)하며 종일 오어(晤語; 대면해 말함)하는데 몰래 듣는 자가 도무지 체해(體解; 체득해 이해)하지 못했고 때에 이르기를 풍광자(風狂子; 미친 자)라 했다. 오직() 스님과 상친(相親)했다. 어느 날 한산이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는데 어떻게 조촉(照燭; 비추다)합니까. 사왈(師曰) 빙호(氷壺; 얼음 항아리)에 영상(影像)이 없거늘 원후(猨猴; 원숭이)가 수월(水月)을 찾는구나(). 가로되 이것은 이 조촉(照燭)이 아니니 다시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만덕(萬德)을 가지고 오지 않았거늘 나로 하여금 무엇을 말하게 하느냐. 한습(寒拾; 한산과 습득)이 모두 예배했다. 스님이 이윽고 오대산에 홀로 들어가 순례하다가 한 노옹(老翁)을 만나자 스님이 묻되 이 문수(文殊)가 아닙니까. 가로되 어찌 가히 두 문수가 있으리오. 스님이 작례하고 일어나지 않았는데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趙州의 사미가 화상에게 擧似하자 조주가 豊干을 대체해 이르되 文殊, 文殊. 후에 천태산으로 회귀하여 시멸(示滅)했다.

苦行; 여기에선 고역에 종사하는 행자를 가리킴. 또 사내의 정인(淨人)을 또한 일컬어 고행이라 함.

執爨; 선림소어고증2. 시 초자(楚茨)에 가로되 집찬적적(執爨踖踖; 부엌일에 민첩한 모양). () () (; 부엌. 부뚜막).

 

初閭丘公胤出牧丹丘將議巾車 忽患頭疼醫莫能愈 師造之曰 貧道自天台來謁使君 閭丘且告之病 師乃索淨器 呪水噴之 斯須立瘥 閭丘異之 乞一言 示此去安危之兆 師曰 到任記謁文殊普賢 曰此二菩薩何在 師曰 國淸寺執爨洗器者寒山拾得是也 閭丘拜辭 方行尋至山寺 問此寺有豐干禪師否 寒山拾得復是何人 時有僧道翹對曰 豐干舊院在經藏後今𨵙無人矣 寒拾二人見在僧厨執役 閭丘入師房唯見虎迹 復問道翹 豐干在此作何行業 翹曰 唯事舂穀供僧閑則諷詠 乃入厨尋訪寒拾 如下章敍之

巾車; 一以帷幕裝飾車子 因指整車出行 指有帷幕的車子 二古代官名 [百度漢語] 此指一

呪水; 古代筮術之一 對水行咒作法 據說飲之能治病祛邪

 

처음 여구공(閭丘公) ()이 단구(丹丘)로 출목(出牧; 나가서 다스림)하면서 장차 건거(巾車)를 의논(議論)하려 하는데 홀연히 두동(頭疼; 두통)을 앓아() 의원(醫員)이 능히 고치지() 못했다. 스님이 나아가() 가로되 빈도(貧道)가 천태로부터 와서 사군(使君)을 예알합니다. 여구(閭丘)가 다만() 병을 고하자 스님이 이에 정기(淨器)를 찾더니 주수(呪水)하고 뿜었는데 사수(斯須; 暫時)에 즉각 병이 나았다(立瘥). 여구가 이를 괴이히 여겼고 일언(一言)을 구걸하며 이번에 가매 안위(安危)의 징조를 보이라 하자 사왈(師曰) 도임(到任)하거든 기억했다가 문수와 보현을 예알하십시오. 가로되 이 두 보살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왈 국청사에서 집찬세기(執爨洗器)하는 자인 한산과 습득이 이것입니다. 여구가 배사(拜辭)하고 바야흐로 가서 이윽고 산사(山寺)에 이르렀다. 묻되 차사(此寺)에 풍간선사가 있습니까. 한산과 습득은 다시 이 어떤 사람입니까. 때에 승() 도교(道翹)가 있어 대왈(對曰) 풍간의 구원(舊院)은 경장(經藏) 뒤에 있습니다만 지금은 고요해(𨵙) 사람이 없습니다. 한습(寒拾) 2인은 현재(見在) 승주(僧厨)에서 집역(執役)합니다. 여구가 스님의 방에 들어갔더니 오직 범의 자취만 보였다. 다시 도교에게 묻되 풍간은 여기에 있으면서 어떤 행업(行業)을 지었습니까. 교왈(翹曰) 오직 용곡(舂穀; 곡식을 빻다)에 종사(從事)하여 공승(供僧)했고 한가하면 곧 풍영(諷詠)했습니다. 이에 입주(入厨)하여 한습(寒拾)을 심방(尋訪)했다. 하장(下章)에서 서술함과 같다.

巾車; 1. 유막(帷幕)으로써 수레(車子)를 장식(裝飾). 인하여 수레를 정비(整備)해 출행(出行)함을 가리킴. 유막이 있는 수레를 가리킴. 2. 고대의 관명(官名) [백도한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呪水; 고대 서술(筮術)의 하나. 물에 대한 행주(行咒)의 작법이니 설에 의거하면 이를 마시면 능히 치병거사(治病祛邪)한다 함.

 

天台寒山子者本無氏族 始豐縣西七十里有寒明二巖 以其於寒巖中居止得名也 容貌枯悴布襦零落 以樺皮爲冠 曳大木履 時來國淸寺 就拾得取衆僧殘食菜滓食之 或廊下徐行 或時叫噪望空慢罵 寺僧以杖逼逐 翻身拊掌大笑而去 雖出言如狂而有意趣 一日豐干告之曰 汝與我遊五臺卽我同流 若不與我去非我同流 曰我不去 豐干曰 汝不是我同流 寒山却問 汝去五臺作什麽 豐干曰 我去禮文殊 曰汝不是我同流 暨豐干滅後 閭丘公入山訪之 見寒拾二人圍鑪語笑 閭丘不覺致拜 二人連聲咄叱 寺僧驚愕曰 大官何拜風狂漢耶 寒山復執閭丘手笑而言曰 豐干饒舌 久而放之 自此寒拾相携出松門 更不復入寺 閭丘又至寒巖禮謁 送衣服藥物 二士高聲喝之曰 賊賊 便縮身入巖石縫中 唯曰 報汝諸人各各努力 其石縫忽然而合 閭丘哀慕令僧道翹尋其遺物 於林間得葉上所書辭頌 及題村墅人家屋壁 共三百餘首傳布人間 曹山本寂禪師注釋謂之對寒山子詩

布襦; 布制的短衣

慢罵; 辱罵 謾罵

 

천태 한산자(寒山子)란 자는 본래 씨족(氏族)이 없다. 시풍현(始豐縣) 서쪽 70리에 한명(寒明) 2()이 있는데 그가 한암(寒巖) 중에 거지(居止)했기 때문에() 이름을 얻었다. 용모(容貌)가 고췌(枯悴)했고 포유(布襦)가 영락(零落; 떨어져 너덜거림)했다. 화피(樺皮; 자작나무 껍질)로 갓을 만들고 큰 나막신(大木履)을 끌었으며 때로 국청사(國淸寺)에 와서 습득(拾得)에게 나아가 중승(衆僧)의 잔식(殘食)이나 채재(菜滓; 는 찌꺼기)를 취해 그것을 먹었다. 혹은 낭하(廊下)에서 서행(徐行)하고 혹은 때로 규조(; 부르짖으며 떠듦)하며 허공을 바라보며 만매(; 함부로 꾸짖음)했다. 사승(寺僧)이 지팡이로써 핍축(逼逐)하면 몸을 뒤집으며(翻身) 손바닥을 치고(拊掌) 크게 웃으며 갔다. 비록 출언(出言)이 미친 것 같았지만 의취(意趣)가 있었다. 어느 날 풍간이 고해 가로되 네가 나와 더불어 오대(五臺)를 유람한다면 곧 나와 동류(同流)지만 만약 나와 더불어 가지 않는다면 나와 동류가 아니다. 가로되 나는 가지 않겠다. 풍간이 가로되 너는 이 나와 동류가 아니다. 한산이 도리어 묻되 너는 오대에 가서 무엇 하려느냐. 풍간이 가로되 나는 가서 문수(文殊)에게 예배하겠다. 가로되 너는 이 나와 동류가 아니다. 풍간이 멸후에 이르러() 여구공(閭丘公)이 입산하여 방문했다. 한습(寒拾) 2인을 보매 위로(圍鑪)하여 어소(語笑)했다. 여구가 불각에 치배(致拜; 예배하다)하자 2인이 연성(連聲)으로 졸질(咄叱; 꾸짖다)했다. 사승(寺僧)이 경악(驚愕)하며 가로되 대관(大官)이 왜 풍광한(風狂漢; 미치광이)에게 예배합니까. 한산이 다시 여구(閭丘)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해 가로되 풍간이 요설(饒舌; 말이 많은 모양)이다. 오래되자 그것을 놓았다. 이로부터 한습(寒拾)이 서로 잡고() 송문(松門)을 나가더니 다시는 다시 입사(入寺)하지 않았다. 여구가 또 한암(寒巖)에 이르러 예알(禮謁)하고 의복과 약물을 보내자 이사(二士)가 고성으로 꾸짖으며(喝之) 가로되 도적아(), 도적아. 바로 몸을 옴츠리더니(縮身) 암석(巖石)의 봉중(縫中; 꿰맨 틈 속)으로 들어갔다. 오직 가로되 너희 제인에게 알리노니() 각각 노력(努力)하라. 그 석봉(石縫)이 홀연히 합쳐졌다(). 여구가 애모(哀慕)하여 승 도교(道翹)로 하여금 그 유물(遺物)을 찾게 했다. 임간(林間)에서 엽상(葉上)에 쓴 바()의 사송(辭頌)을 얻었고 및 촌서(村墅; 촌의 농막)와 인가(人家)의 옥벽(屋壁)에 제()한 것, ()3백여 수()며 인간에 전포(傳布)되었다. 조산(曹山) 본적선사(本寂禪師)가 주석(注釋)했으니 이를 일러 대한산자시(對寒山子詩)라 한다.

布襦; 베로 만든 단의(短衣).

慢罵; 욕매(辱罵; 욕하고 꾸짖음). 만매(謾罵; 함부로 욕함).

 

天台拾得者不言名氏 因豐干禪師山中經行 至赤城道側聞兒啼聲 遂尋之見一子可數歲 初謂牧牛子 及問之云 孤棄于此 豐干乃名爲拾得 携至國淸寺 付典座僧曰 或人來認必可還之 後沙門靈熠攝受令知食堂香燈 忽一日輒爾登座與佛像對盤而餐 復於憍陳如上座塑形前呼曰 小果聲聞僧驅之 靈熠忿然告尊宿等 罷其所主 令厨內滌器 常日齋畢澄濾食滓以筒盛之 寒山來卽負之而去 一日掃地 寺主問 汝名拾得 豐干拾得汝歸 汝畢竟姓箇什麽在何處住 拾得放下掃箒叉手而立 寺主罔測 寒山搥胸云 蒼天蒼天 拾得却問 汝作什麽 曰豈不見道 東家人死西家助哀 二人作舞哭笑而出 有護伽藍神廟 每日僧厨下食爲烏所有 拾得以杖抶之曰 汝食不能護 安能護伽藍乎 此夕神附夢于合寺僧曰 拾得打我 詰旦諸僧說夢符同 一寺紛然牒申州縣 郡符至云 賢士隱遁菩薩應身宜用旌之 號拾得爲賢士隱石而逝 見寒山章時道翹纂錄寒山文句 以拾得偈附之 今略錄數篇 見別卷

 

천태 습득(拾得)이란 자는 명씨(名氏)를 말하지 않았다. 풍간선사(豐干禪師)가 산중을 경행(經行)함으로 인해 적성(赤城)의 길 옆에 이르자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드디어 그것을 찾았는데 가히 몇 살쯤 되는 한 아이()를 보았다. 처음엔 이르기를 소를 치는 아이(牧牛子)인가 했는데 및 물으니 이르기를 외롭게 여기에 버려졌다 했다. 풍간이 이에 습득이라고 이름했으며 데리고 국청사(國淸寺)에 이르렀다. 전좌승(典座僧)에게 맡기며() 가로되 혹 사람이 와서 인식(認識)하거든 반드시 가히 돌려주라. 후에 사문 영습(靈熠)이 섭수(攝受)하여 식당과 향등(香燈)을 주지(主持; )하게 했다. 홀연히 어느 날 갑자기(輒爾) 등좌(登座)하여 불상과 대반(對盤)하여 밥을 먹었고() 다시 교진여상좌(憍陳如上座)의 소형(塑形) 앞에서 불러 가로되 소과(小果) 성문승(聲聞僧)아 너를 쫓아내리라(驅之). 영습(靈熠)이 분연(忿然)하며 존숙 등에게 고해 그 소주(所主; 主持하던 것)를 파()하고 주내(厨內)에서 척기(滌器; 그릇을 씻다)하게 했다. 상일(常日; 평일)에 재()를 마치면 음식 찌꺼기를 맑게 걸러(澄濾) ()으로써 그것을 담았고 한산이 와서 곧 그것을 지고 떠났다. 어느 날 소지(掃地)하는데 사주(寺主)가 묻되 너의 이름은 습득이다. 풍간이 너를 습득하여 돌아왔다. 너는 필경 성()이 이() 무엇이며 어느 곳에 거주하느냐. 습득이 소추(掃箒)를 내려놓고(放下) 차수(叉手)하고 섰다. 사주가 망측(罔測)했다. 한산이 가슴을 치며(搥胸) 이르되 창천(蒼天), 창천. 습득이 도리어 묻되 네가 무엇하느냐. 가로되 어찌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동가(東家)의 사람이 죽으면 서가(西家)가 조애(助哀)한다. 두 사람이 춤추며(作舞) 곡소(哭笑)하고 나갔다. 호가람신묘(護伽藍神廟)가 있었는데 매일 승주(僧厨)에서 하식(下食; 밥을 내려줌)하면 까마귀의 소유가 되었다. 습득이 지팡이로써 그를 매질하며() 가로되 너의 밥도 능히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찌 능히 가람을 보호하겠는가. 이날 밤에 신이 합사(合寺; 全寺)의 승인(僧人; )에게 꿈을 부착하여 가로되 습득이 나를 때립니다. 힐단(詰旦; 이른 아침)에 모든 승인이 꿈을 설하매 부동(符同; 부합)한지라 1()가 분연(紛然)하면서 주현(州縣)에 문서(文書; )로 신고(申告)했다. 군부(郡符; 군의 공문)가 이르러 이르되 현사(賢士)의 은둔이며 보살의 응신이다. 마땅히 이를 나타냄()을 써야 한다. 습득을 호()하여 현사(賢士)라 한다隱石하여 서거한 것은 寒山章을 보라. 때에 도교(道翹)가 한산의 문구를 찬록(纂錄)하면서 습득의 게를 첨부(添附)했다. 여금에 몇 편()을 약록(略錄)했으니 별권(別卷)을 보라.

 

明州奉化縣布袋和尙者 未詳氏族 自稱名契此 形裁腲烏罪切奴罪切蹙額皤腹 出語無定寢臥隨處 常以杖荷一布囊 凡供身之具盡貯囊中 入𢌅肆聚落見物則乞 或醯醢魚𦵔才接入口 分少許投囊中 時號長汀子布袋師也 甞雪中臥雪不沾身 人以此奇之 或就人乞其貨則售 示人吉凶必應期無忒 天將雨卽著濕草屨途中驟行 遇亢陽卽曳高木履 市橋上竪膝而眠 居民以此驗知

亢陽; 亢 旱也 陽 旱也 亢陽卽乾旱

; 齒形物 刻爲齒形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포대화상(布袋和尙)이란 자는 씨족(氏族)이 미상이다. 자칭하는 이름이 계차(契此). 형재(形裁; )가 외(; 살찔 외)烏罪切; (; 살찔 퇴)奴罪切; 했으며 이마가 쭈그러졌고 배가 불룩했다(蹙額皤腹). 내뱉는 말이 정()함이 없고 자고() 눕는 것은 곳을 따랐다(隨處). 늘 주장자로써 하나의 포낭(布囊; 포대주머니)을 짊어졌으며() 무릇 몸을 공급(供給)하는 도구(道具)를 모두 주머니 속에 저장(貯藏)했다. 전사(𢌅肆; 가게)나 취락(聚落)에 들어가 물건을 보면 곧 구걸했으며 혹 식초(; )ㆍ젓갈(; )ㆍ물고기()ㆍ김치()를 겨우 접하면 입에 넣었으며 조금(少許) 나누어 주머니 속에 투입했다. 당시에 호하기를 장정자포대사(長汀子布袋師)라 했다. 일찍이 눈 속에 누웠는데 눈이 몸을 적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로써 기이하게 여겼다(奇之). 혹 사람에게 나아가 그 화물(貨物; )을 구걸하면 곧 팔았다(). 길흉을 사람에게 보이면 반드시 응기(應期; 기일에 응하다)하여 틀림()이 없었다. 하늘이 장자 비 내리려고(將雨) 하면 곧 젖은 짚신(濕草屨)을 신고() 도중(途中)에서 달려갔고(驟行) 항양(亢陽)을 만나면 곧 높은 굽()의 나막신(木履)을 끌고 시장의 교상(橋上)에서 무릎을 세우고 잤다. 거민(居民; 住民)이 이로써 험지(驗知)했다.

亢陽; ()은 한(; 가뭄)이며 양()도 한()이니 항양은 곧 건한(乾旱; 건조한 가뭄).

; 치형(齒形)의 물건. 치형()을 조각(彫刻; ).

 

有一僧在師前行 師乃拊僧背一下 僧迴頭 師曰 乞我一文錢 曰道得卽與汝一文 師放下布囊叉手而立 白鹿和尙問 如何是布袋 師便放下布袋 又問 如何是布袋下事 師負之而去 先保福和尙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放下布袋叉手 保福曰 爲只如此爲更有向上事 師負之而去 師在街衢立 有僧問 和尙在遮裏作什麽 師曰 等箇人 曰來也來也歸宗柔和尙別云 歸去來師曰 汝不是遮箇人 曰如何是遮箇人 師曰 乞我一文錢

 

어떤 한 중이 스님의 앞에서 가자 스님이 이에 중의 등을 한 번(一下) 두드렸다(). 중이 머리를 돌리자 사왈(師曰) 나에게 1문전(文錢)을 급여(給與; )하라. 가로되 도득(道得; 말함을 얻다)하면 곧 너에에 1()을 주겠다. 스님이 포낭(布囊)을 내려놓고 차수(叉手)하고 섰다. 백록화상(白鹿和尙)이 묻되 무엇이 이 포대(布袋)인가. 스님이 바로 포대를 내려놓았다(放下). 우문(又問) 무엇이 이 포대하사(布袋下事)인가. 스님이 그것을 지고() 갔다. 선보복(先保福) 화상이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인가. 스님이 포대를 내려놓고 차수(叉手)했다. 보복이 가로되 다만 이와 같음이 되는가, 다시 향상사(向上事)가 있음이 되는가. 스님이 그것을 지고 갔다. 스님이 가구(街衢; 街道)에 있으면서 섰는데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이 저리(遮裏; 이 속)에 있으면서 무엇 합니까. 사왈(師曰) 이 사람을 기다린다(等箇人). 가로되 왔습니다, 왔습니다歸宗柔和尙別云 돌아갔다(歸去來). 사왈 너는 이 저개(遮箇)의 사람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저개의 사람입니까. 사왈 나에게 1문전(文錢)을 급여(給與; )하라.

 

師有歌曰 只箇心心心是佛 十方世界最靈物 縱橫妙用可憐生 一切不如心眞實 騰騰自在無所爲 閑閑究竟出家兒 若覩目前眞大道 不見纖毫也大奇 萬法何殊心何異 何勞更用尋經義 心王本自絕多知 智者只明無學地 非聖非凡復若乎 不彊分別聖情孤 無價心珠本圓淨 凡是異相妄空呼 人能弘道道分明 無量淸高稱道情 携錦若登故國路 莫愁諸處不聞聲 又有偈曰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目覩人少 問路白雲頭

心王; 心之主作用 對於心所之伴作用 而謂爲心王 心王者 總了別所對之境 心所者 對之而起貪瞋等之情也 四念處一 心者心王 異乎木石

 

스님이 가()가 있어 가로되 다만 이() 심심(心心)이란 심()이 이 불()이니/ 시방세계에 가장 영물(靈物)이로다/ 종횡으로 묘용(妙用)함이 가련생(可憐生; 은 조사)이니/ 일체가 심()의 진실만 같지 못하다./ 등등(騰騰)하며 자재하되 하는 바가 없나니/ 한한(閑閑)하며 구경(究竟)에 출가아(出家兒)로다/ 만약 목전의 참 대도(大道)를 본다면()/ 섬호(纖毫)도 보이지 않으니 또한 크게 기이하도다./ 만법이 어찌 다르며() 심이 어찌 다르리오()/ 어찌 노고롭게 다시 경의(經義)를 찾음을 쓰리오/ 심왕(心王)은 본래 저절로 다지(多知)가 끊겼나니/ 지자(智者)는 다만 무학지(無學地)를 밝힌다./ 비성비범(非聖非凡)이거늘 다시 어찌하리오(若乎)/ 억지로() 분별하지 않으니 성정(聖情)이 외롭다()/ 무가(無價)의 심주(心珠)가 본래 원정(圓淨)하나니/ 무릇 이 이상(異相)은 망공(妄空)이라 부른다()./ 사람이 능히 홍도(弘道)하니 도가 분명하고/ 무량한 청정(淸淨; )이 높으니 도정(道情)이라 일컫는다/ 비단을 가지고 만약 고국(故國)의 길에 오르면/ 제처(諸處)에서 소리를 듣지 못함을 근심치 말아라. 또 게가 있어 가로되 일발(一鉢)에 천가(千家)의 밥이며/ 고신(孤身)이 만 리를 유행(遊行)한다/ 청목(靑目)으로 사람을 봄()이 적고/ 백운두(白雲頭; 는 조사)에게 길을 묻는다.

心王; 심의 주작용(主作用)이니 심소(心所)의 반작용(伴作用)에 대해 이르되 심왕이라 함. 심왕이란 것은 소대(所對)의 경계를 모두 요별(了別)하며 심소란 것은 이에 대해 탐진 등의 감정을 일으킴임. 사념처1. 심이란 것은 심왕이니 목석과 다르다.

 

梁貞明二年丙子三月 師將示滅 於嶽林寺東廊下 端坐磐石 而說偈曰 彌勒眞彌勒 分身千百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偈畢安然而化 其後他州有人見師亦負布袋而行 於是四衆競圖其像 今嶽林寺大殿東堂全身見存

 

() 정명(貞明) 2년 병자(丙子; 916) 3월 스님이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자 악림사(嶽林寺) 동랑(東廊) 아래에서 반석(磐石)에 단정히 앉아 게를 설해 가로되 미륵 진미륵(眞彌勒)이여/ 분신(分身)이 천백억(千百億)이로다/ 시시(時時)로 시인(時人)에게 보이건만/ 시인(時人)이 스스로 알지 못하네. 게를 마치자 안연(安然)히 화거(化去; )했다. 그 후 타주(他州)에서 어떤 사람이 스님을 보았는데 또한 포대를 지고 갔다. 이에 4()이 다투어 그 상()을 그렸다(). 지금 악림사 대전(大殿)의 동당(東堂)에 전신(全身)이 현존(見存)한다.

 

諸方雜擧徵拈代別語

障蔽魔王領諸眷屬 一千年隨金剛齊菩薩 覓起處不得 忽因一日得見 乃問云 汝當於何住 我一千年領諸眷屬 覓汝起處不得 金剛齊云 我不依有住而住 不依無住而住 如是而住法眼擧云 障蔽魔王不見金剛齊卽且從 只如金剛齊還見障蔽魔王麽

障蔽魔王; 自在王菩薩經上 時有魔子 名曰障礙 見金剛齊比丘 如是持戒 修習聖法 正念無倒 與八萬四千諸魔及其眷屬 貫鉀持兵 來到其所 自隱其身 觀是比丘心在何行 千歲隨逐 乃至不見一念心散可得惱壞 …… 魔言比丘 我於千歲 求汝心行 不能知處 比丘言 汝若以恒河沙劫求之 亦不能得 何以故 是心不在內不在外不在中 汝寧能得幻化人心所行處不 答言 幻化之人尙無有心 況心行處(云云)

 

장폐마왕(障蔽魔王)이 모든 권속(眷屬)을 거느리고 1천 년 동안 금강제보살(金剛齊菩薩)을 따르면서 일어나는 곳을 찾았지만 얻지 못했다. 홀연히 어느 날 봄을 얻음으로 인해 이에 물어 이르되 네가 마땅히 어디에 머물렀기에 내가 1천 년 동안 모든 권속을 거느리고 너의 일어나는 곳을 찾아도 얻지 못했는가. 금강제가 이르되 나는 유주(有住)에 의해 머물지 않고 무주(無住)에 의해 머물지 않았나니 이와 같이 머물렀다法眼擧云 장폐마왕이 금강제를 보지 못한 것은 곧 다만 좇겠지만 只如 금강제는 도리어 장폐마왕을 보았느냐.

障蔽魔王; 자재왕보살경상 때에 마자(魔子)가 있었으니 이름해 가로되 장애(障礙)였다. 금강제비구(金剛齊比丘)를 보매 이와 같이 지계하고 성법(聖法)을 닦으면서 정념이 거꾸러지지 않았다. 팔만사천의 모든 마와 및 그 권속과 갑옷을 꿰어 입고 병기를 가지고 와서 그 처소에 이르렀다. 스스로 그 몸을 숨기고 이 비구의 마음이 어디에 있으면서 행하는지를 살폈다. 천세(千歲)를 따르며 쫓았지만 내지 한 생각이라도 마음이 산란하여 가히 뇌괴(惱壞)함을 얻음을 보지 못했다 …… ()가 비구에게 말하되 내가 천세(千歲)에 너의 심행(心行)을 구했지만 능히 거처를 알지 못했다. 비구가 말하되 네가 만약 항하사겁을 구하더라도 또한 능히 얻지 못한다. 무슨 연고인가 하면 이 마음은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고 중간에 있지도 않다. 네가 어찌 능히 환화인(幻化人)의 마음의 행하는 바의 곳을 얻겠는가. 답해 말하되 환화의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있지 않거늘 하물며 심행의 처소리오 (운운).

 

外道問佛云 不問有言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禮拜云 善哉世尊 大慈大悲開我迷雲令我得入 外道去已阿難問佛云 外道以何所證而言得入 佛云 如世間良馬見鞭影而行玄覺徵云 什麽處是世尊擧鞭處 雲居錫云 要會麽 如今歸堂去復是阿誰 東禪齊拈云 什麽處是外道悟處 衆中道 世尊良久時 便是擧鞭處 恁麽會還得已否

 

외도가 불타에게 물어 이르되 유언(有言)을 묻지 않으며 무언(無言)을 묻지 않습니다. 세존이 양구(良久)했다. 외도가 예배하고 이르되 선재(善哉), 세존이 대자대비(大慈大悲)로 나의 미운(迷雲)을 열고 나로 하여금 득입(得入)케 하셨습니다. 외도가 가고 나서 아난이 불타에게 물어 이르되 외도가 무엇을 증득한 바이기에 득입했다고 말했습니까. 불운(佛云) 세간의 우량한 말이 채찍 그림자를 보고 달림과 같다玄覺徵云 어느 곳이 이 세존이 채찍을 든 곳인가. 雲居錫云 알고자 하느냐. 여금에 歸堂하여 가는 것은 다시 이 누구(阿誰)인가. 東禪齊拈云 어느 곳이 이 외도가 깨친 곳인가. 衆中에서 말하되 세존이 양구할 때가 바로 이 채찍을 든 곳이다. 이렇게 알면 도리어 얻어 마쳤는가(已否)

 

緊那羅王奏無生樂供養世尊 王勅有情無情俱隨王去 若有一物不隨王 卽去佛處不得 又無厭足王入大寂定 王勅有情無情皆順於王 如有一物不順王 卽入大寂定不得雲居錫云 有情去也且從 只如山河大地是無情之物 作麽生說亦隨王去底道理

緊那羅; <> kiṃnara 又作緊捺羅 緊陀羅 甄陀羅 緊捺洛 舊譯曰人非人 疑神 新譯曰歌神 卽樂神名 八部衆之一 [注維摩經一 法華文句二 法華玄贊二 玄應音義三 慧琳音義十一]

 

긴나라왕(緊那羅)이 무생악(無生樂)을 연주(演奏)해 세존에게 공양하려고 했다. 왕이 무정(有情)과 유정(無情)에게 칙령해 모두 왕을 따라 가게 했다. 만약 한 물건이라도 왕을 따르지 않음이 있다면 곧 불타의 처소(佛處)에 감을 얻지 못했다. 또 무염족왕(無厭足王)이 대적정(大寂定)에 들려고 했다. 왕이 유정과 무정에게 칙령해 모두 왕을 따르게() 했다. 한 물건이라도 왕을 따르지 않음이 있을 것 같으면 곧 대적정에 듦을 얻지 못했다雲居錫云 유정이 감은 또한 다만 좇겠지만 只如 산하대지는 이 無情之物이거늘 어떻게 설해야 또한 왕을 따르는 도리이겠는가.

緊那羅; <> kiṃnara. 또 긴날라ㆍ긴타라ㆍ견타라ㆍ긴날락으로 지음. 구역에 가로되 인비인(人非人)ㆍ의신(疑神)이며 신역에 가로되 가신(歌神)이니 곧 악신(樂神)의 이름임. 8부중의 하나 [주유마경1. 법화문구2. 법화현찬2. 현응음의3. 혜림음의11].

 

罽賓國王秉劍詣師子尊者前問曰 師得蘊空否 師曰 已得蘊空 曰旣得蘊空離生死否 師曰 已離生死 曰旣離生死 就師乞頭還得否 師曰 身非我有豈況於頭 王便斬之 出白乳 王臂自墮玄覺徵云 且道斬著斬不著 玄沙云 大小師子尊者不能與頭作主 玄覺又云 玄沙恁麽道 要人作主不要人作主 若也要人作主蘊卽不空 若不要人作主 玄沙恁麽道意在什麽處 試斷看

罽賓國; 爲漢朝時之西域國名 位於印度北部 卽今喀什米爾一帶之地 翻譯名義集三 罽賓 此云賤種 西域記云 迦濕彌羅 舊曰罽賓 訛也 北印度境 末田底迦 旣得其地 立五百伽藍 於諸異國買鬻賤人 以充役使 用供衆僧 末田底迦入寂滅後 彼諸賤人 自立君長 隣境諸國 鄙其賤種 莫與交親 謂之訖利多 唐言買得

 

계빈국왕(罽賓國)이 검을 잡고() 사자존자(師子尊者) 앞으로 나아가 문왈(問曰) 스님이 온(; 五蘊)이 공()함을 얻었습니까. 사왈(師曰) 이미 온이 공함을 얻었습니다. 가로되 이미 온()이 공함을 얻었다면 생사를 여의었습니까. 사왈 이미 생사를 여의었습니다. 가로되 이미 생사를 여의었다면 스님에게 나아가 머리를 구걸하리니 도리어 얻겠습니까. 사왈 몸도 나의 소유가 아니거늘 어찌 하물며 머리이겠습니까. 왕이 바로 그를 베었다(斬之). 흰 젖(白乳)이 나왔다. 왕의 팔이 스스로 떨어졌다玄覺徵云 그래 말하라, 베었는가(斬著) 베지 못했는가(斬不著). 玄沙云 大小 사자존자가 능히 머리에게 를 지어 주지 못했다. 玄覺又云 현사가 이렇게 말함은 사람에게 를 지음을 요함인가, 사람에게 주를 지음을 요하지 않음인가. 만약에 사람에게 주를 지음을 요한다면 이 곧 不空이며 만약 사람에게 주를 지음을 요하지 않는다면 현사가 이렇게 말한 뜻이 어느 곳에 있는가. 시험 삼아 판단해 보아라.

罽賓國; 한조(漢朝) 때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 됨. 인도 북부에 위치하며 즉금의 객십미이(喀什米爾; Kashmir) 일대의 땅. 번역명의집3. 계빈(罽賓) 여기에선 이르되 천종(賤種)이다. 서역기에 이르되 가습미라(迦濕彌羅) 구역에 가로되 계빈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북인도경이다. 말전지가(末田底迦)가 이미 그 땅을 얻고는 5백 가람을 세웠는데 여러 다른 나라에서 천인(賤人)을 매육(買鬻; 매매)하여 역사(役使; 일을 시킴. 일꾼)로 충원하고 중승(衆僧)에게 공양하는 데 썼다. 말전지가가 입적하여 멸도한 후 그 여러 천인이 스스로 군장을 세웠는데 이웃 지경의 여러 나라에서 그 천종(賤種)을 더럽게 여겨 교친(交親)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일컬어 흘리다(訖利多)라 했으니 당나라 말로는 매득(買得: 사서 얻었다)이다.

 

泗州塔頭侍者及時鎖門 有人問 旣是三界大師 爲什麽被弟子鎖 侍者無對法眼代云 弟子鎖大師鎖 法燈代云 還我鎖匙來 又老宿代云 吉州鎖䖍州鎖

 

사주(泗州) 탑두시자(塔頭侍者)가 시간(時間)에 이르러(及時) 문을 잠갔다(). 어떤 사람이 묻되 이미 이 3계의 대사(大師)시거늘 무엇 때문에 제자의 잠금을 입습니까.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제자가 잠갔는가, 대사가 잠갔는가. 法燈代云 나에게 열쇠(鎖匙)를 송환해 오너라. 老宿代云 吉州의 자물쇠인가, 䖍州의 자물쇠인가.

或問僧 承聞大德講得肇論是否 曰不敢 曰肇有物不遷義是否 曰是 或人遂以茶盞就地撲破曰 遮箇是遷不遷 無對法眼代拊掌三下

 

어떤 사람()이 승인(僧人; )에게 묻되 승문(承聞)컨대 대덕이 조론(肇論)을 강득(講得)한다 하니 그렇습니까. 가로되 불감(不敢)입니다. 가로되 조(; 조론)에 물불천(物不遷)의 뜻이 있다 하니 그렇습니까. 가로되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或人)이 드디어 찻잔(茶盞)을 땅으로 나아가 쳐서 깨뜨리고 가로되 저개(遮箇; 이것)는 천(; 變遷)입니까 불천(不遷)입니까. 대답이 없었다法眼하되 세 번(三下) 拊掌했다

 

樂普侍者謂和尙曰 肇法師制得四論甚奇怪 樂普曰 肇公甚奇怪要且不見祖師 侍者無對法燈代云 和尙什麽處見 雲居錫云 什麽處是肇公不見祖師處 莫是有許多言語麽 又云 肇公有多少言語

四論; 肇論全書分爲宗本義 物不遷論 不眞空論 般若無知論 涅槃無名論等五部分 末附劉遺民書問及答劉遺民書

 

낙보(樂普)의 시자가 화상에게 일러 가로되 조법사(肇法師)4(四論)을 제득(制得)했으니 심히 기괴합니다. 낙보가 가로되 조공(肇公)이 심히 기괴하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조사를 보지 못했다.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法燈代云 화상은 어느 곳에서 보았습니까. 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조공이 조사를 보지 못한 곳인가. 이는 허다한 언어가 있음이 아닐까. 又云 조공이 다소의 언어가 있는가.

四論; 조론은 전서(全書)를 종본의(宗本義)ㆍ물불천론(物不遷論)ㆍ불진공론(不眞空論)ㆍ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ㆍ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의 5부분으로 나누었으며 마지막에 유유민서문(劉遺民書問) 및 답유유민서(答劉遺民書)를 첨부했음.

 

有兩僧各住菴尋常來往 偶旬日不會 一日上山相見 上菴主問曰 多時不見在什麽處 下菴主曰 只在菴裏造箇無縫塔子 上菴主曰 某甲也欲造箇無縫塔 就菴主借取樣子 曰何不早道 恰被人借去也法眼擧云 且道借伊樣子不借伊樣子

 

두 중이 있어 각자 주암(住菴)하며 심상(尋常)에 내왕(來往)했는데 마침() 열흘(旬日) 동안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산에 올라 상견했다. 상암주(上菴主)가 문왈(問曰) 다시(多時)에 보지 못했는데 어느 곳에 있었는가. 하암주(下菴主)가 가로되 다만 암자 속에 있으면서 저() 무봉탑자(無縫塔子; 는 조사)를 조성했다. 상암주가 가로되 모갑도 저 무봉탑을 조성하고 싶으니 암주에게 나아가 양자(樣子)를 차취(借取; 빌리다)하겠다. 가로되 왜 일찍 말하지 않았나, 마침 타인이 빌려 감을 입었다네法眼擧云 且道하라, 그에게서 樣子를 빌렸는가, 그에게서 양자를 빌리지 못했는가.

 

有婆子令人送錢去 請老宿開藏經 老宿受施利 便下禪床轉一匝乃云 傳語婆子轉藏經了也 其人迴擧似婆子 婆云 比來請開全藏 爲甚開半藏玄覺徵云 什麽處是缺半藏處 且道那箇婆子具什麽眼便恁麽道

 

어떤 파자(婆子; 노파)가 사람을 시켜 돈을 보내어 가서 노숙에게 청해 장경(藏經)을 열게() 했다. 노숙이 시리(施利)를 접수하고 바로 승상(禪床)에서 내려와 한 바퀴 돌고(轉一匝) 이에 이르되 파자에게 말을 전해 장경을 전()해 마쳤다 하라. 그 사람이 회귀하여 파자에게 들어 보이자 파운(婆云) 비래(比來; 요사이) 전장(全藏)을 엶을 청했거늘 무엇 때문에(爲甚) 반장(半藏)을 여셨는가玄覺徵云 어느 곳이 이 半藏한 곳인가. 且道하라, 那箇의 파자가 무슨 눈을 갖추었기에 바로 이렇게 말하는가.

 

有老宿令人傳語思大禪師 何不下山敎化衆生 目視雲漢作麽 思大曰 三世諸佛被我一口吞盡 更有甚衆生可敎化玄覺徵云 且道是山頭語山下語

雲漢; 一銀河 天河 二高天 天

 

어떤 노숙이 사람을 시켜 사대선사(思大禪師)에게 전어(傳語)하되 왜 하산하여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눈으로 운한(雲漢)을 보아 무엇 하리오. 사대가 가로되 삼세제불이 내가 한입으로 삼켜 없앰을 입었거늘 다시 무슨 중생이 있어 가히 교화하리오玄覺徵云 且道하라 이는 산두(山頭; 山上)의 말인가 山下의 말인가.

雲漢; 1. 은하(銀河). 천하(天河). 2. 고천(高天). .

 

龍濟修山主問翠巖曰 四乾闥婆王奏樂供養世尊 直得須彌振動大海騰波 迦葉起舞 菩薩得忍不動 聲聞頗我 只如迦葉作舞意旨如何 對曰 迦葉過去生中曾作樂人來習氣未斷 山主曰 須彌大海莫是習氣未斷否 翠巖無對法眼代云 正是習氣

乾闥婆; <> gandharva 又作健達婆 犍達縛 健闥婆 乾沓和 乾沓婆 彦達縛 犍陀羅等 譯曰香神 嗅香 香陰 尋香行 樂人之稱 又八部衆之一 樂神名 不食酒肉 唯求香以資陰身 又自其陰身出香 故有香神乃至尋香行之稱 與緊那羅同 奉侍帝釋而司奏伎樂 緊那羅者法樂 乾闥婆者修樂 西域之俗 俳優謂之乾闥婆 彼等不事生業 只尋飮食之氣 作樂而乞求 故名 [注維摩經一 天台淨名疏二 法華文句二 法華義疏二 玄應音義三 祖庭事苑三] 法華經一 有四乾闥婆王 樂乾闥婆王 樂音乾闥婆王 美乾闥婆王 美音乾闥婆王 各與若干百千眷屬俱

頗我; 猶彼我 謂我是彼非 頗 通彼

 

용제(龍濟) 수산주(修山主)가 취암(翠巖)에게 물어 가로되 4건달바왕(乾闥婆)이 주악(奏樂)하여 세존에게 공양하자 바로 수미(須彌)가 진동(振動)하고 대해(大海)가 등파(騰波; 파도가 솟구치다)함을 얻었다. 가섭이 일어나 춤추고 보살은 득인(得忍)하여 부동(不動)하고 성문(聲聞)은 파아(頗我)했다. 지여(只如) 가섭이 춤춘(作舞) 의지(意旨)가 무엇인가. 대왈(對曰) 가섭은 과거생(過去生) 중에 일찍이 악인(樂人)이 되어 온지라 습기(習氣)가 끊어지지 않았다. 산주가 가로되 수미와 대해도 이 습기를 끊지 못한 게 아닐까. 취암이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바로 이 습기다.

乾闥婆; <> gandharva. 또 건달바(健達婆)ㆍ건달바(犍達縛)ㆍ건달바(健闥婆)ㆍ건답화ㆍ건답바ㆍ언달바ㆍ건다라 등으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향신(香神)ㆍ후향(嗅香)ㆍ향음(香陰)ㆍ심향행(尋香行)이라 함. 악인(樂人)의 명칭이며 또 8부중의 하나며 악신(樂神)의 이름임. 주육을 먹지 않고 오직 향을 구해 음신(陰身)을 도우며 또 스스로 그 음신에서 향을 내는지라 고로 향신 내지 심향행의 명칭이 있음. 긴나라(緊那羅)와 같음. 제석을 봉시(奉侍)하면서 기악(伎樂)을 연주함을 맡음. 긴나라란 것은 법악(法樂)이며 건달바란 것은 수악(修樂)이니 서역의 풍속에 배우를 일러 건달바라 함. 그들 등은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다만 음식의 향기를 찾아 음악을 하며 걸구하므로 고로 이름함 [주유마경1. 천태정명소2. 법화문구2. 법화의소2. 현응음의3. 조정사원3]. 법화경1. 4건달바왕(乾闥婆王)이 있다. 악건달바왕(樂乾闥婆王)ㆍ악음건달바왕ㆍ미건달바왕(美乾闥婆王)ㆍ미음건달바왕이니 각기 약간의 백천 권속과 함께한다.

頗我; 피아(彼我)와 같음. 이르자면 나는 옳고 그는 그르다. ()는 피()와 통함.

 

有僧親附老宿 一夏不蒙言誨 僧歎曰 只恁麽空過一夏不聞佛法 得聞正因兩字亦得也 老宿聞之乃曰 闍梨莫𧬊音西 若論正因一字也無 恁麽道了叩齒三下曰 適來無端恁麽道 隣房僧聞曰 好一鑊羹被兩顆鼠糞污却玄覺徵云 且道讚歎語不肯語 若是讚歎爲什麽道鼠糞污却 若不肯 他有什麽過 驗得麽

𧬊速; 𧬊 悲聲 速 戚

 

어떤 중이 노숙(老宿)에게 친부(親附; 親近)했다. 1() 동안 가르치는() 말을 입지() 못하자 중이 탄식하며 가로되 다만 이렇게(恁麽) 1하를 헛되이 지내며(空過) 불법을 듣지 못하는가. 정인(正因)이란 두 글자만 득문(得聞)하더라도 또한 옳으리라.(). 노숙이 이를 듣고 이에 가로되 사리(闍梨)야 서(𧬊)音西()하지 말아라. 만약 정인을 논하자면 한 글자도 또한 없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이빨을 세 번(三下) 두드리고 가로되 적래(適來) 무단(無端)히 이렇게 말했다. 인방(隣房)의 중이 듣고 가로되 좋은 한 가마솥의 국이 두 알의 쥐똥에 더럽혀져버림(污却)을 입었다玄覺徵云 且道하라, 찬탄하는 말인가 不肯하는 말인가. 만약 이 찬탄이라면 무엇 때문에 말하되 쥐똥에 더럽혀져버렸다 했으며 만약 불긍(不肯)이라면 그가 무슨 허물이 있는가. 시험함을 얻겠는가.

𧬊速; (𧬊)는 비성(悲聲; 슬픈 소리)이며 속()은 척(; 근심. 슬픔).

 

僧肇法師遭秦主難 臨就刑說偈曰 四大元無主 五陰本來空 將頭臨白刃 猶似斬春風玄沙云 大小肇法師臨死猶寱語

 

승조법사(僧肇法師)가 진왕(秦王)의 난을 만나 형장(刑場)에 나아감에 임해 게를 설해 가로되 4()는 원래 주인이 없고/ 5()도 본래 공했다/ 머리를 가져다 흰 칼날에 임하니/ 마치 춘풍을 벰과 같다玄沙云 大小 조법사가 臨死하여서도 오히려 잠꼬대(寱語)한다.

 

僧問老宿云 師子捉兔亦全其力 捉象亦全其力 未審全箇什麽力 老宿云 不欺之力法眼別云 不會古人語

 

중이 노숙에게 물어 이르되 사자가 토끼를 잡으면서도 또한 그 힘을 다하고() 코끼리를 잡으면서도 또한 그 힘을 다합니다. 미심하오니 저() 무슨 힘을 다합니까. 노숙이 이르되 속이지 않는 힘이다法眼別云 고인의 말을 알지 못했다.

 

李翱尙書見老宿獨坐問曰 端居丈室當何所務 老宿曰 法身凝寂無去無來法眼別云 汝作什麽來 法燈別云 非公境界

 

이고(李翱) 상서(尙書)가 노숙이 독좌(獨坐)한 것을 보고 문왈(問曰) 장실(丈室)에 단거(端居)하여 마땅히 힘쓰는() 바가 무엇입니까. 노숙이 가로되 법신이 응적(凝寂; 寂靜)하여 무거무래(無去無來)입니다法眼別云 그대는 무엇을 하고 왔습니가. 法燈別云 公의 경계가 아닙니다

 

有道流在佛殿前背坐 僧曰 道士莫背佛 道流曰 大德本敎中道 佛身充滿於法界 向什麽處坐得 僧無對法眼代云 識得汝

 

어떤 도류(道流; 道家)가 불전 앞에 있으면서 등지고 앉았다. 승왈(僧曰) 도사(道士)는 불상을 등지지 마시오. 도류가 가로되 대덕이여, 본교(本敎; 화엄경6) 중에 말하기를 불신은 법계에 충만하다 했는데 어느 곳을 향해 앉아야 옳겠습니까. 중이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너를 알겠다(識得汝).

 

禪月詩云 禪客相逢只彈指 此心能有幾人知 大隨和尙擧問禪月 如何是此心 無對歸宗柔代云 能有幾人知

禪月; 貫休(832-912) 唐末五代僧 以詩畫著稱於世 婺州蘭谿(浙江金華)人 俗姓姜 字德隱 一字德遠 七歲出家於金華縣和安寺圓貞座下 受具足戒後 卽入浙東五洩山 修禪十年 曾參無相禪師 後往洪州開元寺聽講法華經及大乘起信論 皆能通達奧義 師善繪佛像 尤工水墨羅漢 又擅篆隸草書 其詩亦頗爲士林所稱譽 唐乾寧初 嘗謁吳越王錢鏐 竝獻詩章 頗見禮重 昭宗天復(901-904)年間入蜀 前蜀蜀主王建 其子王衍 同優遇之 因賜紫衣 署號禪月大師 乾化二年示寂 壽八十一 著有西嶽集 弟子曇域更其名爲禪月集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五燈會元六]

 

선월(禪月)의 시에 이르되 선객이 상봉하면 다만 손가락 퉁기나니 차심(此心)을 능히 몇 사람이나 아는 이 있는가. 대수화상(大隨和尙)이 들어() 선월에게 묻되 무엇이 이 차심(此心)인가. 대답이 없었다歸宗柔代云 능히 몇 사람이나 아는 이 있는가.

禪月; 관휴(貫休; 832-912)니 당말 오대승. 시와 그림으로 세상에 명칭이 드러났음. 무주 난계(절강 금화) 사람이며 속성은 강, 자는 덕은이며 다른 자는 덕원임. 7세에 금화현 화안사 원정의 좌하(座下)에서 출가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절동 오설산으로 들어가 수선(修禪)하기 10년이었음. 일찍이 무상선사를 참했으며 후에 홍주 개원사로 가서 법화경 및 대승기신론을 청강했으며 다 능히 오묘한 뜻을 통달했음. 스님은 불상을 잘 그렸고 특히 수묵라한(水墨羅漢)에 공교(工巧)했음. 또 전ㆍ예ㆍ초서를 독천(獨擅)했으며 그의 시도 또한 자못 사림(士林)에서 칭예(稱譽)하는 바가 됨. 당 건녕 초에 일찍이 오월왕 전류를 알현하고 아울러 시장(詩章)을 바치자 자못 예의로 존중함을 보였음. 소종 천복(901-904)년 사이에 촉에 들어갔는데 전촉(前蜀)의 촉주 왕건과 그 아들 왕연이 한가지로 넉넉히 그를 대우했으며 인하여 자의(紫衣)를 주고 서호(署號)하여 선월대사(禪月大師)라 했음. 건화 2년 시적했음. 나이 81. 저서에 서악집이 있는데 제자 담역이 그 이름을 고쳐 선월집(禪月集)이라 했음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오등회원6].

 

台州六通院僧欲渡船 有人問 旣是六通爲什麽假船 無對天台韶國師代云 不欲驚衆

 

태주 육통원(六通院) ()이 배로 도하(渡河)하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묻되 이미 이 육통(六通)이거늘 무엇 때문에 배를 빌립니까. 대답이 없었다天台韶 국사가 代云 驚衆하고 싶지 않다.

 

聖僧像被屋漏滴 有人問 旣是聖僧爲什麽有漏天台國師代云 無漏不是聖僧

 

성승상(聖僧像)이 집이 새서() 물방울이 떨어짐()을 입었다. 어떤 사람이 묻되 이미 이 성승이거늘 무엇 때문에 유루(有漏)인가天台國師代云 無漏는 이 聖僧이 아니다.

 

死魚浮於水上 有人問僧 魚豈不是以水爲命 僧曰是 曰爲什麽却向水中死 無對杭州天龍機和尙代云 是伊爲什麽不去岸上死

 

사어(死魚)가 물 위에 떴다(). 어떤 사람이 승인에게 묻되 물고기는 어찌 이 물을 목숨으로 삼지 않겠습니까. 승왈 그렇습니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수중을 향해 죽었습니까. 대답이 없었다杭州 天龍機 화상이 代云 그가 무엇 때문에 岸上으로 가서 죽지 않았는가.

 

僧問雲臺欽和尙 如何是眞言 欽曰 南無佛陀耶大章如菴主別云 作麽作麽

 

중이 운대흠(雲臺欽) 화상에게 묻되 무엇이 이 진언(眞言)입니까. 흠왈(欽曰) 나무불타야大章如(契如) 암주가 別云 뭐라고, 뭐라고.

 

江南國主問老宿 予有一頭水牯牛 萬里無寸草 未審向什麽處放歸宗柔代云 好放處

 

강남국주가 노숙에게 묻되 나에게 1(; 마리)의 수고우(水牯牛; 물소)가 있는데 만 리에 촌초(寸草)도 없습니다. 미심하오니 어느 곳을 향해 놓아야() 합니까歸宗柔代云 좋은 放處입니다.

 

南泉和尙遷化 陸亘大夫來慰 院主問 大夫何不哭先師 大夫曰 院主道得亘卽哭 無對歸宗柔代云 哭哭

 

남천화상이 천화(遷化)하자 육긍대부(陸亘大夫)가 와서 조위(弔慰)했다. 원주(院主)가 묻되 대부는 왜 선사(先師)를 곡()하지 않습니까. 대부가 가로되 원주가 말함을 얻으면 긍()이 곧 곡하겠습니다. 대답이 없었다歸宗柔代云 哭, .

 

江南相馮延巳 與數僧遊鍾山 至一人泉 問一人泉許多人爭得足 一僧對曰 不敎欠少 延巳不肯 乃別云 誰人欠少法眼別云 誰是不足者

馮延巳; (903-960) 又名延嗣 字正中 廣陵(今江蘇省揚州市)人 五代十國時南唐著名詞人 仕於南唐烈祖中主二朝 三度入相 官終太子太傅 工詩 詞及樂府 樂禪 嘗與數僧遊種山 卒諡忠肅 [五燈會元六 百度百科]

 

강남상(江南相) 풍연사(馮延巳)몇 승인과 더불어 종산(種山)을 유람했는데 일인천(一人泉)에 이르렀다. 묻되 1인천이거늘 허다한 사람이 어찌해야 족함을 얻겠습니까. 1승이 대답해 가로되 흠소(欠少; 모자라고 적음)하게 하지 마십시오. 연사가 긍정하지 않고 이에 별운(; 다르게 말함)하되 어떤 사람(誰人)이 흠소(欠少)합니까法眼別云 누가 이 부족한 자입니까.

馮延巳; (903-960) 또 이름이 연사(延嗣)니 자는 정중이며 광릉(지금의 강소성 양주시) 사람. 오대십국 시 남당의 저명한 사인(詞人). 남당 열조(烈祖)ㆍ중주(中主) 2()에 벼슬했고 세 차례 입상(入相)했으며 벼슬이 태자태부로 마쳤음. 시ㆍ사() 및 악부(樂府)에 공교(工巧)했고 선()을 좋아했으며 일찍이 몇 승인과 종산(種山)을 유람했음. 졸시(卒諡)는 충숙 [오등회원6. 백도백과].

 

有施主婦人入院行衆僧隨年錢 僧曰 聖僧前著一分 婦人曰 聖僧年多少 僧無對法眼代云 心期滿處卽知

隨年錢; 依僧人之年數而施與錢財

 

어떤 시주 부인이 사원에 들어와 중승에게 수년전(隨年錢)을 행했다. 승왈(僧曰) 성승(聖僧)의 앞에도 한 푼(一分)을 놓으십시오(). 부인이 가로되 성승의 나이가 얼마입니까. 승인이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마음의 기한이 차는 곳에 곧 아실 것입니다.

隨年錢; 승인의 나이 수에 의해 전재(錢財)를 시여함임.

 

法燈問新到僧 近離什麽處 曰廬山 師拈起香合曰 廬山還有遮箇也無 僧無對師自代云 尋香來禮拜和尙

 

법등(法燈)이 신도승(新到僧)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가로되 여산(廬山)입니다. 스님이 향합(香合)을 염기(拈起)하고 가로되 여산에 도리어 저개(遮箇)가 있는가 또는 없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自代云 향을 찾아(尋香) 와서 화상에게 예배합니다.

 

僧問仰山 彎弓滿月齧鏃意如何 仰山曰 齧鏃 僧擬開口 仰山曰 開口驢年也不會 僧無對南泉代側身而立

 

중이 앙산에게 묻되 만궁(彎弓; 당긴 활)이 만월(滿月)인데 설족(齧鏃; 화살촉을 물다)하는 뜻이 무엇입니까. 앙산이 가로되 설족(齧鏃)하라. 중이 개구(開口)하려고 하자 앙산이 가로되 개구하면 여년(驢年)에라도 알지 못한다. 중이 대답이 없었다南泉하되 몸을 기울이며 섰다.

 

有一行者隨法師入佛殿 行者向佛而唾 法師曰 行者少去就 何以唾佛 行者曰 將無佛處來與某甲唾 無對潙山云 仁者却不仁者 不仁者却仁者 仰山代法師云 但唾行者 又云 行者若有語卽向伊道 還我無行者處來

去就; 一行爲擧動 情念意想 多含貶義 二規矩 禮節 此指二

 

어떤 한 행자가 법사를 따라 불전에 들어갔다. 행자가 부처를 향해 침을 뱉았다. 법사가 가로되 행자가 거취(去就)가 적구나, 무엇 때문에 부처에게 침을 뱉느냐. 행자가 가로되 부처가 없는 곳을 가져와서 모갑이 침 뱉게 하여 주십시오. 대답이 없었다潙山云 仁者가 도리어 不仁者며 불인자가 도리어 인자다. 仰山이 법사를 하여 이르되 단지 행자에게 침 뱉겠다. 또 이르되 행자가 만약 말이 있으면 곧 그를 향해 말하되 나에게 행자가 없는 곳을 송환해 오너라.

去就; 1. 행위의 거동이며 정념(情念)의 의상(意想)이니 다분히 폄의를 함유함. 2. 규구(規矩). 예절.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偃臺感山主到圓通院相看 第一座問曰 圓通無路 山主爭得到來歸宗柔代云 不期又得相見

 

언대(偃臺) 감산주(感山主)가 원통원(圓通院)에 이르러 상간(相看)했다. 1좌가 문왈(問曰) 원통엔 길이 없는데 산주가 어떻게 도래함을 얻었습니까歸宗柔代云 기약하지 않아도 또 상견함을 얻습니다.

 

有僧入冥地藏菩薩 地藏問 是爾平生修何業 僧曰 念法華經 曰止止不須說 我法妙難思 爲是說是不說 無對歸宗柔代云 此迴歸去 敢請流通

入冥; 冥 冥府 同冥土 死後世界

地藏菩薩; 在忉利天 受釋迦如來付屬 每日晨朝入恒沙禪定觀察衆機 於釋尊圓寂後至彌勒菩薩成道間之無佛時代 敎化六道衆生之大悲菩薩也 安忍不動猶如大地 靜慮深密猶如祕藏 故名地藏 [地藏十輪經一 大方廣十輪經一序品 占察善惡業報經上]

 

어떤 중이 입명(入冥)하여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보았다. 지장이 묻되 이 너는 평생에 무슨 업을 닦았는가. 승왈(僧曰) 법화경을 외웠습니다(). 가로되 그쳐라, 그쳐라(止止) 설함을 쓰지 않으리니 나의 법은 미묘하여 사의하기 어렵다 했거니와 이는 설()이 되는가, 이 설이 아닌가. 대답이 없었다歸宗柔代云 여기에서 迴歸하면 감히 流通을 청합니다.

入冥; ()은 명부(冥府)니 명토(冥土)와 같음. 사후세계(死後世界).

地藏菩薩; 도리천에 있으면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아 매일 이른 아침 항사(恒沙)의 선정에 들어 중기(衆機)를 관찰했음. 석존이 원적한 후 미륵보살이 성도함에 이르는 사이의 무불시대(無佛時代)6()의 중생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임. 안인(安忍)하며 부동(不動)함이 마치 대지와 같고 정려(靜慮)가 심밀(深密)함이 마치 비장(祕藏)과 같은지라 고로 이름이 지장(地藏)[지장십륜경1. 대방광십륜경1서품. 점찰선악업보경상].

 

歸宗柔和尙問僧 看什麽經 曰寶積經 柔曰 旣是沙門爲什麽看寶積 無對柔自代云 古今用無極

寶積經; 大寶積經 一二卷 又作寶積經 收於大正藏第十一冊 前後諸師譯一會或譯數會而別行之 唐菩提流志新譯三十六會三十九卷 取舊來諸師所譯二十三會八十一卷合之 以四十九會一百二十卷爲全本 寶積者法寶之集積也 爲大乘深妙之法 故目之爲寶 無量法門攝在此中故謂之積

 

귀종유(歸宗柔) 화상이 중에게 묻되 무슨 경을 보는가. 가로되 보적경(寶積經)입니다. 유왈(柔曰) 이미 이 사문이거늘 무엇 때문에 보적(寶積)을 보는가. 대답이 없었다가 스스로 代云 고금에 씀이 다함 없습니다.

寶積經; 대보적경(大寶積經)이니 120. 또 보적경으로 지음. 대정장 제11책에 수록되었음. 전후로 여러 스님이 1()를 번역하기도 하고 혹 몇 회를 번역하기도 하여 따로 이것을 행했음. 당 보리류지가 3639권을 신역하면서 구래(舊來)의 여러 스님이 번역한 바 2381권을 취해 그것과 합하여 49120권으로 전본(全本)을 만들었음. 보적이란 것은 법보의 집적(集積)이니 대승의 심묘한 법이 되므로 고로 이를 제목해 보()라 하고 무량한 법문이 여기에 거두어져 있으므로 고로 이를 일러 적().

 

劉禹端公因雨 問先雲居和尙 雨從何來 曰從端公問處來 端公歡喜讚歎 雲居却問端公 問從何來 無語 有老宿代云 適來道什麽歸宗柔別云 謝和尙再三

 

유우단공(劉禹端公)이 비로 인해 선운거(先雲居) 화상에게 묻되 비가 어디로 좇아옵니까. 가로되 단공(端公)의 문처(問處)로 좇아옵니다. 단공이 환희하며 찬탄했다. 운거가 도리어 단공에게 묻되 물음(; 問字 補入)은 어디로 좇아옵니까. 말이 없었다. 어떤 노숙이 대운(代云) 적래(適來)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歸宗柔別云 화상의 再三에 감사합니다.

 

昔有三僧雲遊 擬謁徑山和尙 遇一婆子 時方收稻次 一僧問曰 徑山路何處去 婆曰 驀直去 僧曰 前頭水深過得否 曰不濕脚 僧又問 上岸稻得恁麽好 下岸稻得恁麽怯 曰下岸稻總被螃蟹喫却也 僧曰 太香生 曰勿氣息 僧又問婆 住在什麽處 曰只在遮裏 三僧乃入店內 婆煎茶一甁 將盞子三箇安盤上謂曰 和尙有神通者卽喫茶 三人無對 又不敢傾茶 婆曰 看老朽自逞神通也 於是便拈盞子傾茶行

氣息; 原意爲出息入息之氣 卽呼吸之氣 轉義爲某種氣質給人的感覺

 

옛적에 3()이 있어 운유(雲遊)했는데 경산화상(徑山和尙)을 예알하려고 했다. 한 파자(婆子; 노파)를 만났는데 당시에 바야흐로 벼를 거두는 차였다. 1승이 문왈(問曰) 경산로(徑山路)는 어느 곳으로 가야 합니까. 파왈(婆曰) 바로 곧장 가십시오(驀直去). 승왈(僧曰) 전두(前頭; 전면)에 물이 깊은데 지나감을 얻겠습니까. 가로되 다리를 젖지 않습니다(不濕脚). 중이 우문(又問) 상안(上岸)의 벼는 이렇게 좋음을 얻었지만 하안(下岸)의 벼는 이렇게 약함()을 얻었습니다. 가로되 하안의 벼는 모두() 방해(螃蟹; )가 먹어버림을 입었습니다. 승왈 매우 향기롭습니다(太香生). 가로되 기식이 없습니다(氣息). 승인이 또 노파에게 묻되 어느 곳에 주재(住在)합니까. 가로되 다만 저리(遮裏)에 있습니다. 3승이 이에 점내(店內)로 들어갔다. 노파가 차 한 병()을 끓이더니 잔자(盞子; 는 조사) 세 개를 가져다 쟁반(錚盤) 위에 안치하고 일러 가로되 화상이 신통이 있는 자는 곧 끽다(喫茶)하시오. 3인이 대답이 없었다. 또 감히 차를 기울이지 못했다. 파왈(婆曰) 노후(老朽)가 스스로 신통을 자랑함()을 보시오. 이에 바로 잔자(盞子)를 집어 차를 기울이고 떠났다().

氣息; 원래의 뜻은 날숨과 들숨의 기()가 됨. 곧 호흡의 기. 전의(轉義)하여 모종의 기질을 사람에게 준 감각이 됨.

 

法眼和尙謂小兒日 因子識得爾爺 爾爺名什麽 無對法燈代云 但將衣袖掩面

 

법안화상이 소아(小兒)에게 일러 가로되 너()로 인해 너()의 아버지를 식득(識得)한다. 너의 아버지 이름이 무엇이냐. 대답이 없었다法燈代云 단지 옷소매를 가지고 얼굴을 가렸겠다.

 

法眼却問一僧 若是孝順之子 合下得一轉語 且道合下得什麽語 無對法眼自代云 他是孝順之子

 

법안이 도리어 1승에게 묻되 만약 이 효순(孝順)한 아들일진대 합당히 1전어(轉語)를 내려야(下得) 한다. 그래 말하라, 합당히 무슨 말을 내려야 하느냐. 대답이 없었다法眼이 스스로 代云 그는 이 孝順한 아들입니다.

 

僧問講彌陀經座主 水鳥樹林皆悉念佛念法念僧 作麽生講 坐主曰 基法師道 眞友不待請 如母赴嬰兒 僧曰 如何是眞友不待請法眼代云 此是基法師語

彌陀經; 具云佛說阿彌陀經 一卷 姚秦龜茲三藏鳩摩羅什譯 與無量壽經觀無量壽經 爲淨土三部經 收於大正藏第十二冊

水鳥樹林皆悉念佛念法念僧; 佛說觀無量壽佛經 水鳥樹林及與諸佛 所出音聲皆演妙法 與十二部經合 阿彌陀經 復次舍利弗 彼國常有種種奇妙雜色之鳥 白鵠 孔雀 鸚鵡 舍利 迦陵頻伽 共命之鳥 是諸衆鳥 晝夜六時出和雅音 其音演暢 五根五力 七菩提分八聖道分 如是等法 其土衆生 聞是音已 皆悉念佛念法念僧

眞友不待請; 注維摩詰經一 肇曰 眞友不待請 譬慈母之赴嬰兒也

 

중이 미타경(彌陀經)을 강()하는 좌주에게 묻되 수조수림이 모두 다 염불ㆍ염법ㆍ염승한다(水鳥樹林皆悉念佛念法念僧) 했는데 어떻게 강()하는가. 좌주가 가로되 기(; 窺基) 법사가 말하되 진우는 초청을 기다리지 않음이(眞友不待請) 어머니가 영아에게 다다름과 같다(如母赴嬰兒). 승왈(僧曰) 무엇이 이 진우는 초청을 기다리지 않음인가法眼代云 이것은 이 基法師의 말이다.

彌陀經; 갖추어 이르면 불설아미타경임. 1. 요진 구자국 삼장 구마라집이 번역했음. 무량수경ㆍ관무량수경과 더불어 정토삼부경이 됨. 대정장 제12책에 수록되었음.

水鳥樹林皆悉念佛念法念僧; 불설관무량수불경. 수조수림(水鳥樹林)이 및 제불과 더불어 내는 바의 음성이 모두 묘법을 연설하나니 12부경과 합치(合致)한다. 아미타경. 다시 다음에 사리불이여, 그 국토엔 늘 갖가지 기묘한 잡색의 새가 있나니 백곡(白鵠; 고니)ㆍ공작ㆍ앵무ㆍ사리(舍利)ㆍ가릉빈가ㆍ공명(共命)의 새다. 이 모든 뭇 새가 주야 육시(六時)로 화아한 음을 낸다. 그 음은 5근ㆍ5력ㆍ7보리분ㆍ8성도분 이와 같은 등의 법을 연창(演暢; 설명하여 밝힘)한다. 그 국토의 중생이 이 음을 듣고 나서 모두 다 염불ㆍ염법ㆍ염승한다.

眞友不待請; 주유마힐경1. (; 僧肇)가 가로되 진우(眞友)는 초청을 기다리지 않음이 비유컨대 자모(慈母)가 영아에게 다다름이다.

 

泉州王延彬入招慶院 見方丈門閉 問演侍者 有人敢道大師在否 演曰 有人敢道大師不在否法眼別云 太傅識大師

 

천주(泉州) 왕연빈(王延彬)이 초경원(招慶院)에 들어가 방장문(方丈門)이 닫힌 것을 보고 연시자(演侍者)에게 묻되 어떤 사람이 감히 말하노니 대사가 있으십니까. 연왈(演曰) 어떤 사람이 감히 말하노니 대사가 있지 않으십니까法眼別云 太傅大師를 아셨습니다.

 

僧擧 佛說法有一女人忽來問訊 便於佛前入定 時文殊近前彈指 出此女人定不得 又托昇梵天亦出不得 佛曰 假使百千文殊 亦出此女人定不得 下方有網明菩薩能出此定 須臾網明便至問訊佛了 去女人前彈指一聲 女人便從定而起五雲和尙云 不唯文殊不能出此定 但恐如來也出此定不得 只如敎意怎生體解

網明菩薩; 祖庭事苑五女人定 頌家謂 網明菩薩乃傳燈錄所載 未詳桉何經論 撿藏乘不見所出

 

중이 거()했다. 불타가 설법하는데 어떤 한 여인이 홀연히 와서 문신(問訊)하고는 바로 불전(佛前)에 입정(入定)했다. 때에 문수(文殊)가 근전(近前)하여 탄지(彈指)했으나 이 여인이 정()에서 나오게 함을 얻지 못했다. 또 밀어 범천(梵天)에 올랐으나 또한 나옴게 함을 얻지 못했다. 불왈(佛曰) 가사 백천 문수일지라도 또한 이 여인이 정에서 나오게 함을 얻지 못한다. 하방(下方)에 망명보살(網明菩薩)이 있어 능히 이 정에서 나오게 한다. 수유(須臾)에 망명이 바로 이르러 불타에게 문신하고 나서 여인의 앞으로 가 일성(一聲) 탄지(彈指)하자 여인이 바로 정으로 좇아 일어났다五雲和尙云 오직 문수 만 능히 이 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지 여래라도 이 정에서 나오게 함을 얻지 못할까 염려한다. 只如 敎意를 어떻게 體解해야 하는가.

網明菩薩; 조정사원5 여인정(女人定). 송가(頌家)가 이른 망명보살(網明菩薩)은 이에 전등록(27)에 실린 바이지만 어떤 경론을 안험했는지는 미상이며 장승(藏乘)을 검교(撿校)했지만 나온 곳을 보지 못했음.

 

誌公云 每日拈香擇火 不知身是道場 玄沙云 每日拈香擇火 不知眞箇道場玄覺徵云 只如此二尊宿語 還有親疎也無

 

지공(誌公)이 이르되 매일 염향(拈香)하고 택화(擇火)하면서 몸이 이 도량인 줄 알지 못한다. 현사가 이르되 매일 염향하고 택화하면서 진개(眞箇; 는 조사)의 도량을 알지 못한다玄覺徵云 只如 이 두 尊宿(저본에 尊者로 지었음)의 말에 도리어 親疎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雲巖院主遊石室迴 雲巖問 汝去入到石室裏許看 爲只恁麽便迴來院主無對 洞山代云 彼中已有人占了也 雲巖曰 汝更去作什麽 洞山曰 不可人情斷絕去也

 

운암(雲巖; 曇晟)의 원주(院主)가 석실을 유람하고 돌아오자 운암이 묻되 네가 가서 석실 속에 입도(入到)하여 보는 것을 허락했거늘 다만 이렇게 바로 회래(迴來)하게 되었는가院主가 대답이 없었다. 동산(洞山)이 대운(代云) 그 가운데 이미 어떤 사람이 점거했더랬습니다(占了也). 운암이 가로되 네가 다시 가서 무엇 하리오. 동산이 가로되 인정(人情)을 단절하여 감은 옳지 못합니다.

 

鹽官會下有一主事僧 將死鬼使來取 僧告曰 某甲身爲主事未暇修行 乞容七日得否 使曰 待爲白王 若許卽七日後來 不然須臾便至 言訖去 至七日後方來 覓其僧不見 後有人擧問一僧 若來時如何抵擬洞山代云 被他覓得也

鬼使; 佛敎神話影響下的民間傳說 謂人將死時 地獄閻王卽派遣使者來勾取性命 此使者稱爲鬼使

抵擬; 應對 對處

 

염관회하(鹽官會下)에 어떤 한 주사승(主事僧)이 장차 죽으려고 하자 귀사(鬼使)가 와서 취했다. 중이 고해 가로되 모갑의 몸이 주사(主事)가 되어 수행할 여가가 없었다(). 7일의 용납을 구걸하는데 얻겠는가. 귀사가 가로되 왕에게 아룀을 기다려라. 만약 허가한다면 곧 7일 후에 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유(須臾)에 곧 이르겠다. 말을 마치자 떠났다. 7일 후에 이르러 비로소 와서 그 승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후에 어떤 사람이 들어 한 승인에게 물었다. 만약 올 때 어떻게 그에 저의(抵擬)하겠는가洞山代云 (鬼使)의 찾아 얻음(覔得)을 입었다.

鬼使; 불교 신화 영향 아래의 민간 전설에 이르기를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 지옥의 염왕(閻王)이 곧 사자를 파견하여 성명(性命)을 잡아당기는데 이 사자를 일컬어 귀사라 함.

抵擬; 응대. 대처(對處).

 

洞山會下有老宿去雲巖迴 洞山問 汝去雲巖作什麽 答云 不會洞山自代云 堆堆地

堆堆地; 堆積在一面的樣子 語尾助詞

 

동산회하(洞山會下)의 어떤 노숙이 운암에 갔다가 돌아오자 동산이 묻되 네가 운암에 가서 무엇 했느냐. 답운(答云) 알지 못합니다洞山이 스스로 代云 퇴퇴지(堆堆地)입디다.

堆堆地; 퇴적하여 한 면에 있는 양자. ()는 어미조사.

 

臨濟見僧來擧起拂子 僧禮拜 師便打 別僧來 師擧拂子 僧竝不顧 師亦打 又一僧來參 師擧拂子 僧曰 謝和尙見示 師亦打雲門代云 只疑老漢 大覺云 得卽得 猶未見臨濟機在

 

임제가 중이 옴을 보자 불자를 들어 일으켰다. 중이 예배하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다른 중이 오자 스님이 불자를 들었다. 중이 모두() 돌아보지 않았다. 스님이 또한 때렸다. 1승이 내참(來參)하자 스님이 불자를 들었다. 승왈(僧曰) 화상의 현시(見示; 보이다)에 감사합니다. 스님이 또한 때렸다雲門代云 다만 老漢을 의심한다. 大覺云 옳기야 곧 옳지만 오히려 임제의 를 보지 못했다.

 

閩王送玄沙和尙上船 玄沙扣船召曰 大王 爭能出得遮裏去 王曰 在裏許得多少時也歸宗柔別云 不因和尙 不得到遮裏

 

민왕(閩王)이 현사화상을 송별(送別)하며 배에 올랐다. 현사가 배를 두드리고는() 불러 가로되 대왕(大王), 어찌해야 능히 저리(遮裏)를 출득(出得)하여 가겠습니까. 왕왈(王曰) 이허(裏許; 裏邊)에 있은 지 다소의 시일을 얻었습니까歸宗柔別云 화상을 인하지 않았다면 遮裏에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僧問老宿 如何是密室中人 老宿曰 有客不答話玄沙云 何曾密 歸宗柔別老宿云 爾因什麽得見

 

중이 노숙에게 묻되 무엇이 이 밀실 중의 사람입니까. 노숙이 가로되 객이 있어 답화(答話)하지 못한다玄沙云 어찌 일찍이 이리오. 歸宗柔가 노숙과 달리 이르되 네가 무엇으로 인해 得見했는가.

 

法眼和尙問講百法論僧 百法是體用雙陳 明門是能所兼擧 座主是能法座是所 作麽生說兼擧有老宿代云 某甲喚作箇法座 歸宗柔別云 不勞和尙如此

 

법안화상이 백법론(百法論; 大乘百法明門論)을 강하는 중에게 묻되 백법(百法)은 이 체용(體用)을 쌍진(雙陳; 쌍으로 진술)했고 명문(明門)은 이 능소(能所)를 겸거(兼擧)했다. 좌주는 이 능()이며 법좌는 이 소(). 어떻게 겸거(兼擧)를 설하겠는가어떤 老宿代云 모갑은 이 법좌라고 불러 짓습니다. 歸宗柔別云 화상을 이와 같이 노고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僧擧敎云 文殊忽起佛見法見 被佛威神攝向二鐵圍山五雲曰 什麽處是二鐵圍山 還會麽 如今若有人起佛法之見 吾與烹茶兩甌 且道賞伊罰伊 同敎意不同敎意

法見; 執著一法而是一非他 名曰法見

敎云; 禪門拈頌集 第六則 諸佛要集經云 天王如來 因文殊師利 忽起佛見法見 貶向二鐵圍山 諸佛要集經下 天王如來 卽如其像三昧正受 而現神足 移文殊師利 自然立於鐵圍山頂 …… 又文殊師利 向者從忍世界 發起來時 心自念言 今普光界 講佛要集經典之義 我當往至 稽首諸佛 聽所演法 當爾之時 墮大艱難 在無極倒 不順思想 從彼刹來 欲得見佛 聽所說法 則以三事 自著罣碍 懷抱此意 至斯佛土 何謂爲三 一得其身 二得諸佛 三逮諸法 …… 爾時世尊 告文殊師利 仁以三事 著於罣碍 以故相遣 住鐵圍山頂 黃檗斷際禪師宛陵錄 內見外見俱錯 佛道魔道俱惡 所以文殊暫起二見 貶向二鐵圍山 文殊卽實智 普賢卽權智 權實相對治 究竟亦無權實 唯是一心 心且不佛不衆生 無有異見 纔有佛見 便作衆生見 有見無見常見斷見 便成二鐵圍山 被見障故

二鐵圍山; 楞嚴經集註八曰 七熱地獄謂八大獄中第七也 長阿含云 此四天下 有八千天下圍繞其外 復有大海周匝圍繞八千天下 復有大金剛山繞大海水 金剛山外復有第二大金剛山 樓炭經云 二金剛山亦名二鐵圍山 二山中間窈窈冥冥 日月天神所不能照 彼有八大地獄

 

중이 거()했다. 교운(敎云) 문수(文殊)가 홀연히 불견(佛見)ㆍ법견(法見)을 일으키자 불타의 위신(佛威)으로 거두어 이철위산(二鐵圍山)을 향하게 함을 입었다五雲이 가로되 어느 곳이 이 二鐵圍山인가. 도리어 아느냐, 여금에 만약 어떤 사람이 佛法之見을 일으킨다면 내가 烹茶하여 두 사발을 주겠다. 且道하라, 그에게 상 줌인가 그에게 벌줌인가. 敎意와 같은가 교의와 같지 않은가.

法見; 1법에 집착하여 1법이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 함을 이름해 가로되 법견임.

敎云; 선문염송집 제60칙 제불요집경(諸佛要集經)에 이르되 천왕여래가, 문수사리가 홀연히 불견법견(佛見法見)을 일으킴으로 인해 2철위산(鐵圍山)을 향해 떨어뜨렸다(). 제불요집경하. 천왕여래(天王如來)가 곧 그의 형상(形像)과 같은 삼매정수(三昧正受)로 신족(神足)을 나타내어 문수사리를 옮겨 자연히 철위산정(鐵圍山頂)에 세웠다 …… 또 문수사리가 향자(向者; 접때)에 인세계(忍世界)로 좇아 발기(發起)하여 올 때 마음에 스스로 생각해 말하되 지금 보세계(普光界)에서 불요집경전(佛要集經典)의 뜻을 강설하니 내가 마땅히 가서 이르러 제불에게 계수(稽首)하고 연설하는 바의 법을 들으리라 했는데 이런 때를 당하여 큰 간난(艱難)에 떨어져 무극(無極)의 전도(顚倒)에 있었으며 사유에 순()하지 못했다. 피찰(彼刹)로 좇아와서 견불(見佛)함을 얻어 설하는 바 법을 들으려 했는데 곧 3()로써 스스로 괘애(罣碍)에 집착했다. 이 뜻을 회포(懷抱)하고 이 불토에 이르렀으니 무엇을 일러 3이라 하는가. 1은 그의 몸을 얻음이며 2는 제불을 얻음이며 3은 제법을 쫓음()이다 …… 이때 세존이 문수사리에게 고하시되 인(; 상대방에 대한 존칭)3()로써 괴애(罣碍)에 집착하나니 연고로써 상견(相遣)하여 철위산정(鐵圍山頂)에 머물렀다.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내견(內見)과 외견(外見)이 모두 어긋나고 불도(佛道)와 마도(魔道)가 모두 악한지라 소이로 문수가 잠시 2()을 일으켜 2철위산을 향해 떨어졌다(). 문수는 곧 실지(實智)며 보현은 곧 권지(權智). 권실(權實)이 서로 대치(對治)하여 구경(究竟)엔 또한 권실도 없고 오직 이 일심(一心)이며 심()은 또 불()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라서 이견(異見)이 있지 않나니 겨우 불견(佛見)이 있으면 곧 중생견(衆生見)이 된다. 유견무견(有見無見)과 상견단견(常見斷見)이 곧 2철위산을 이루나니 견장(見障)을 입는 연고다.

二鐵圍山; 릉엄경집주8에 가로되 7열지옥(七熱地獄)은 이르자면 8대옥(大獄) 중 제7이다. 장아함에 이르되 이 4천하(天下)8천 천하가 있어 그 바깥을 위요(圍繞)한다. 다시 대해가 있어 8천 천하를 주잡위요(周匝圍繞)한다. 다시 대금강산이 있어 대해수를 위요하고 금강산 밖에 다시 제2 대금강산이 있다. 루탄경에 이르되 2금강산은 또한 이름이 2철위산(鐵圍山)이다. 2산 중간은 요요명명(窈窈冥冥)하며 일월과 천신이 능히 비추지 못하는 곳인데 거기에 8대지옥이 있다.

 

洪州大寧院上狀請第二座開堂 人問 何不請第一座法眼代云 不勞如此

 

홍주 대녕원(大寧院)에서 상장(上狀; 書狀을 올리다)하여 제2좌를 청해 개당했다. 사람이 묻되 왜 제1좌를 청하지 않았는가法眼代云 노고롭게 이와 같지 말아라.

 

洞山行脚時會一官人曰 三祖信心銘弟子擬注 洞山曰 才有是非紛然失心 作麽生注法眼代云 恁麽卽弟子不注也

 

동산이 행각 시 한 관인을 만났는데 가로되 3조의 신심명을 제자가 주()하려고 합니다. 동산이 가로되 겨우 시비가 있으면 분연(紛然)하여 실심(失心)한다 했거늘 어떻게 주()하려느냐法眼代云 이러하다면 곧 제자가 하지 않겠습니다.

 

法眼和尙因患脚 僧問訊次 師曰 非人來時不能動 及至人來動不得 且道佛法中下得什麽語 僧曰 和尙且喜得 師不肯自別云 和尙今日似減

; 病情差減 猶瘥也

 

법안화상이 다리의 질환으로 중이 문신(問訊)하던 차에 사왈(師曰) 비인(非人)이 올 때 능히 동()하지 못하다가 인()이 옴에 이르러선 동함을 얻지 못한다. 그래 말하라, 불법 중에 무슨 말을 내려야(下得) 하겠는가. 승왈(僧曰) 화상이 다만 득교(得較; 병이 나음을 얻다)했음을 기뻐합니다. 스님이 불긍(不肯)했다스스로 別云 화상이 금일 한 것 같습니다.

; 병정(病情)이 차감(差減). ()와 같음.

 

九峯和尙入江西城 人問入𢌅敎化以何爲眼 九峯曰 日月不曾亂法眼別云 待有眼

 

구봉화상이 강서성에 들어가자 사람이 묻되 입전(入𢌅)하여 교화하면 무엇으로써 눈을 삼습니까. 구봉이 가로되 일월(日月)이 일찍이 어지럽지() 않다法眼別云 눈이 있음을 기다린다.

 

僧問龍牙 終日區區如何頓息 龍牙曰 如孝子喪却父母始得東禪齊云 衆中道 如喪父母何有閑暇 恁麽會還息得人疑情麽 除此外且作麽生會龍牙意

 

중이 용아에게 묻되 종일 구구(區區)하니 어찌해야 돈식(頓息)합니까. 용아가 가로되 예컨대() 효자가 부모를 상실(喪失)해버려야 비로소 옳다東禪齊云 衆中에서 말하되 부모를 상실할 것 같으면 어찌 閑暇함이 있겠는가. 이렇게 알면 도리어 사람의 疑情息得하느냐. 이를 제한 밖에 또 어떻게 용아의 뜻을 理會하느냐.

 

僧問龍牙 十二時中如何著力 龍牙曰 如無手人欲行拳始得東禪齊云 好言語且作麽生會 嘗問一僧 他道無手底人何更行得拳也 及問伊佛法 伊便休去 將知路布說 得無用處不如子細體取古人意好

路布; 卽露布 本指公文 漢魏後多指捷報 檄文 唐代禪宗語錄中也用來指布告 言句 機語等 祖庭事苑六 路布 當作露布 不封詔表曰露布

 

중이 용아(龍牙)에게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착력(著力)해야 합니까. 용아가 가로되 손이 없는 사람이 행권(行拳)하려고 함과 같아야 비로소 옳다東禪齊云 좋은 언어이지만 그래 어떻게 이회하느냐. 일찍이 一僧에게 묻자 그가 말하되 손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주먹을 행함을 얻는가. 및 그에게 불법을 묻자 그가 바로 休去했다. 다만 路布인 줄 알았다. 無用處를 얻음이 자세히 고인의 뜻을 體取함의 좋음만 같지 못하다.

路布; 곧 노포(露布)니 본래 공문을 가리킴. 한위(漢魏) 후에 다분히 첩보(捷報)ㆍ격문(檄文)을 가리켰음. 당대 선종 어록 중에선 또한 사용하여 포고(布告)ㆍ언구(言句)ㆍ기어(機語) 등을 가리켰음. 조정사원6. 노포(路布) 마땅히 노포(露布)로 지어야 함. 봉하지 않은 조표(詔表)를 가로되 노포(露布).

 

鼓山曰 欲知此事如一口劍 僧問 學人是死屍 如何是劍 鼓山曰 拽出遮死屍著 僧應諾便歸僧堂結束而去 鼓山晩間聞去乃曰 好與拄杖東禪齊云 遮僧若不肯 鼓山有什麽過 若肯何得便發去 又鼓山拄杖賞伊罰伊 具眼底上座試商量看

 

고산(鼓山)이 가로되 차사(此事)를 알고자 한다면 1(; 量詞)의 검과 같다. 승문(僧問) 학인은 이 사시(死屍)입니다. 무엇이 이 검입니까. 고산이 가로되 이() 사시(死屍)를 끌어내어라. 증이 응낙하더니 바로 승당으로 돌아가 결속(結束)하고 떠났다. 고산이 만간(晩間; 저녁 무렵)에 떠났다 함을 듣고 이에 가로되 좋이 주장자를 주어야 한다(주장자로 때려 주어야 한다)東禪齊云 遮僧이 만약 不肯했다면 고산이 무슨 허물이 있으며 만약 긍정했다면 왜 바로 發去함을 얻었는가. 또 고산의 주장자는 그에게 상 줌인가 그에게 벌줌인가. 具眼上座는 시험 삼아 商量해 보아라.

 

有菴主見僧來竪火筒曰 會麽 曰不會 菴主曰 三十年用不盡底 僧却問 三十年前用箇什麽歸宗柔代云 也要知

 

어떤 암주가 중이 옴을 보자 화통(火筒)을 세우고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암주가 가로되 30년 동안 써서 다하지 않은 것()이다. 중이 도리어 묻되 30년 전엔 저() 무엇을 썼습니까歸宗柔代云 또한 알고자 한다.

 

招慶和尙拈鉢囊問僧 爾道直幾錢歸宗柔代云 留與人增價

 

초경화상이 발낭(鉢囊)을 집어 중에게 묻되 네가 말하라, 가치()가 몇 전()이냐歸宗柔代云 사람에게 머물러 주어 값을 더하게 해야 합니다.

 

雲門和尙以手入木師子口曰 咬殺我也相救歸宗柔代云 和尙出手太殺

太殺; 副詞 表示程度過分 亦作太煞 忒殺 太 表示程度過分 相當于甚 殺 所八切 所拜切 表示程度深

 

운문화상이 손을 목사자(木師子)의 입에 넣고 가로되 나를 물어 죽인다, 상구(相救)하라歸宗柔代云 화상의 出手가 너무 심합니다(太殺).

太殺; 부사니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함. 또 태쇄(太煞)ㆍ특쇄(忒殺)로 지음. ()는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하며 심()에 상당함. (; )은 소팔절(所八切; )ㆍ소배절(所拜切; )이니 정도의 깊이를 표시함.

 

有座主念彌陀名號次 小師喚和尙 及迴顧小師不對 如是數四 和尙叱曰 三度四度喚有什麽事 小師曰 和尙幾年喚他卽得 某甲才喚便發業法燈代云 咄叱

 

어떤 좌주가 미타명호(彌陀名號)를 외우던 차에 소사(小師)가 화상을 불렀다. 및 돌아보자 소사가 대응하지 않았다. 이와 같음의 횟수가 넷이었다. 화상이 꾸짖으며 가로되 3(; . ), 4도 부르니 무슨 일이 있는가. 소사가 가로되 화상은 몇 년 동안 그를 불러야 곧 얻습니까. 모갑은 겨우 부르자 바로 발업(發業)합니다法燈代云 咄叱.

 

鷂子趁鴿子 飛向佛殿欄干上顫 有人問僧 一切衆生在佛影中常安常樂 鴿子見佛爲什麽顫法燈代云 怕佛

 

요자(鷂子; 새매)가 합자(鴿子; 비둘기)를 쫓자 불전의 난간 위를 향해 날아가 떨었다(). 어떤 사람이 중에게 묻되 일체중생이 불영(佛影) 가운데 있으면 상안상락(常安常樂)하거늘 합자(鴿子)가 부처를 보고 무엇 때문에 떱니까法燈代云 부처를 두려워 한다.

 

悟空禪師問忠座主 講什麽經 曰法華經 悟空曰 若有說法華經處 我現寶塔當爲證明 大德講什麽人證明法燈代云 謝和尙證明

 

오공선사가 충좌주에게 묻되 무슨 경을 강하는가. 가로되 법화경이다. 오공이 가로되 만약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내가 보탑을 나타내어 마땅히 증명하리라. 대덕의 강()엔 어떤 사람이 증명하는가法燈代云 화상의 증명에 감사한다.

 

僧問老宿 魂兮歸去來 食我家園葚 如何是家園葚玄覺代云 是亦食不得 法燈別云 污却爾口

 

중이 노숙에게 묻되 혼()이 돌아가서(歸去來) 내 가원(家園)의 오디()를 먹는다. 무엇이 이 가원의 오디입니까玄覺代云 이 또한 먹음을 얻지 못한다. 法燈別云 너의 입을 污却했다.

 

官人問僧 名什麽 曰無揀 官人曰 忽然將一椀沙與上座又作麽生 曰謝官人供養法眼別云 此猶是揀底

 

관인이 중에게 묻되 이름이 무엇입니까. 가로되 무간(無揀)입니다. 관인이 가로되 홀연히 한 사발의 모래를 가져다 상좌에게 준다면 또 어떻습니까. 가로되 관인의 공양에 감사합니다法眼別云 이것도 오히려 이 하는 것입니다.

 

廣南有僧住菴 國主出獵 人報菴主大王來請起 曰非但大王來 佛來亦不起 王問 佛豈不是汝師 曰是 王曰 見師爲什麽不起法眼代云 未足酬恩

 

광남(廣南)에 어떤 중이 주암(住菴)했다. 국주(國主)가 사냥 나갔다. 사람이 암주에게 알리되 대왕이 오셨으니 일어나기를 청합니다. 가로되 단지 대왕 만이 아니라 부처가 온다고 해도 또한 일어나지 않습니다. 왕문(王問) 부처가 어찌 이 그대의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가로되 그렇습니다. 왕왈(王曰) 스승을 보고도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 않습니까法眼代云 족히 은혜를 갚지 못하겠습니다.

 

僧辭趙州和尙 趙州謂曰 有佛處不得住 無佛處急走過 三千里外逢人莫擧法眼代云 恁麽卽不去也

 

중이 조주화상에게 고별하자 조주가 일러 가로되 유불처(有佛處)엔 머묾을 얻지 말고 무불처(無佛處)엔 급히 달려 지나가거라. 삼천 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든 들지() 말아라法眼代云 이러하다면 곧 가지 않겠습니다.

 

泗州塔前一僧禮拜 有人問 上座日日禮拜 還見大聖麽法眼代云 汝道禮拜是什麽義

 

사주(泗州)의 탑 앞에서 1승이 예배했다. 어떤 사람이 묻되 상좌가 날마다 예배하니 도리어 대성(大聖)을 봅니까法眼代云 네가 말하라, 예배는 이 무슨 뜻인가.

 

僧問圓通和尙 一塵才起大地全收 還見禪床麽 圓通曰 喚什麽作塵 又問法燈 曰喚什麽作禪床東禪齊云 此二尊宿語 明伊問處 不明伊問處 若明伊問處 還得盡善也未 試斷看 忽然向伊道 爾指示我更要答話 又作麽生會 莫道又答一轉子

 

중이 원통화상에게 묻되 일진(一塵)이 겨우 일어나면 대지를 전부 거둔다. 도리어 선상을 봅니까. 원통이 가로되 무엇을 일러 진()이라 하느냐. 또 법등(法燈)에게 묻자 가로되 무엇을 일러 선상이라 하느냐東禪齊云 이 두 존숙의 말이 그의 問處를 밝혔는가, 그의 問處를 밝히지 못했는가. 만약 그의 문처를 밝혔다면 도리어 盡善을 얻었느냐 또는 아니냐. 시험 삼아 판단해 보아라. 홀연히 그를 향해 말하되 네가 나에게 指示한다면 다시 答話(저본에 答語로 지었음)를 요하나니 또 어떻게 理會하느냐. 一轉子를 답했다고 말하지 말아라.

 

玄覺和尙聞鳩子叫問增 什麽聲 僧曰 鳩子 師曰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東禪齊云 上座道是鳩子聲 便成謗法 什麽處是謗處 若道不是還得麽 上座且道 玄覺意作麽生

 

현각화상이 구자(鳩子; 비둘기)의 부르짖음을 듣자 중에게 묻되 무슨 소리인가. 승왈(僧曰) 구자입니다. 사왈(師曰)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 싶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東禪齊云 상좌가 이 鳩子聲이라고 말함은 바로 謗法을 이룬다. 어느 곳이 이 謗處인가. 만약 이것(; 鳩子聲)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도리어 옳으냐. 상좌가 그래 말하라, 현각의 뜻이 무엇인가.

 

保福僧到地藏 地藏和尙問 彼中佛法如何 曰保福有時示衆道 塞却爾眼敎爾覷不見 塞却爾耳敎爾聽不聞 坐却爾意敎爾分別不得 地藏曰 吾問爾 不塞爾眼見箇什麽 不塞爾耳聞箇什麽 不坐爾意作麽生分別東禪齊云 那僧聞了忽然惺去 更不他遊 上座如今還得麽 若不會每日見箇什麽

 

보복(保福)의 중이 지장(地藏)에 이르자 지장화상이 묻되 그 가운데의 불법은 어떠한가. 가로되 보복이 어떤 때 시중(示衆)하여 말하되 너희()의 눈을 색각(塞却; 막아버리다)하여 너희로 하여금 보아도() 보지() 못하게 하고 너희의 귀를 색각하여 너희로 하여금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고 너희의 뜻을 좌각(坐却; 坐斷해버리다)하여 너희로 하여금 분별을 얻지 못하게 한다. 지장이 가로되 내가 너()에게 묻는다. 너의 눈을 막지() 않나니 저() 무엇을 보며 너의 귀를 막지 않나니 저 무엇을 들으며 너의 뜻을 좌각(坐却; )하지 않나니 어떻게 분별하는가東禪齊云 그 중(那僧)이 듣고 나서 홀연히 깨달았고(惺去) 다시는 딴 데로 遊行하지 않았다. 상좌는 여금에 도리어 얻었느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매일 저 무엇을 보느냐.

 

福州洪塘橋上有僧列坐 官人問 此中還有佛麽法眼代云 汝是什麽人

 

복주 홍당교(洪塘橋) 위에 어떤 중들이 열좌(列坐)했다. 관인이 묻되 이 가운데 도리어 부처가 있습니까法眼代云 너는 이 어떤 사람이냐.

 

人問僧 無爲無事人 爲什麽却有金鎖難五雲代云 只爲無爲無事

 

사람이 중에게 묻되 무위무사인(無爲無事人)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금쇄난(金鎖難)이 있습니까五雲代云 다만 無爲無事이기 때문이다.

 

老宿問僧 什麽處來 曰牛頭山禮拜祖師來 老宿曰 還見祖師麽歸宗柔代云 大似不相信

 

노숙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우두산에 조사에게 예배하고 옵니다. 노숙이 가로되 도리어 조사를 보았느냐歸宗柔代云 相信하지 않음과 매우 흡사합니다

有僧與童子上經了 令持經著函內 童子曰 某甲念底著向那裏法燈代云 汝念什麽經

 

어떤 중이 동자(童子)에게 경을 올리게 하고 나서 경을 가져다 함내(函內)에 두게() 하였다. 동자가 가로되 모갑이 외운 것(念底)은 나리(那裏)를 향해 두어야 합니까法燈代云 네가 어떤 경을 외웠느냐.

 

一僧注道德經 人問曰 久嚮大德注道德經 僧曰 不敢 曰何如明皇法燈代云 是弟子

道德經; 分上下篇八十一章 乃道敎主要經典 相傳爲春秋時代楚國人老聃所撰 又稱老子 書名道德二字 是取上篇首句道可道及下篇首句上德不德而來 本書行文簡潔 僅五千餘言 本書歷來爲道敎所重視 道敎自稱源出於老聃 尊其爲老君 以之爲敎主 道藏中收有道德經之注釋書五十餘

何如; 如何 怎麼樣

明皇; 唐玄宗(685-762 在位712-756) 諡號至道大聖大明孝皇帝 後世詩文多稱爲明皇 諱隆基 睿宗第三子 初封楚王 改封臨淄王 景雲初立爲皇太子 先天元年(712)八月卽位 在位四十三年 壽七十八 尊睿宗爲太上皇 [釋氏稽古略三 百度百科]

 

1승이 도덕경(道德經)을 주()했다. 사람이 문왈(問曰) 대덕이 도덕경을 주한 것을 구향(久嚮)했습니다. 승왈(僧曰) 불감(不敢)입니다. 가로되 명황(明皇)과 어떻습니까(何如)法燈代云 이 제자입니다.

道德經; 상ㆍ하편 81()으로 나뉘었음. 곧 도교의 주요 경전. 서로 전하기를 춘추시대 초국 사람 노담(老聃)이 지었다 함. 또 명칭이 노자임. 서명 도덕 2자는 이는 상편의 수구(首句) 도가도(道可道) 및 하편의 수구 상덕부덕(上德不德)을 취해 왔음. 본서의 행문(行文)이 간결하며 겨우 5천여 언임. 본서는 역래(歷來)로 도교에서 중시하는 바가 되며 도교에서 자칭하기를 근원이 노담에서 나왔다 하며 그를 존칭하여 노군(老君)이라 하고 이로써 교주를 삼음. 도장(道藏) 중에 도덕경의 주석서가 50여 수록되어 있음.

何如; 여하(如何). 어떤 모양()이냐.

明皇; 당현종(685-762. 재위 712-756)의 시호가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니 후세에 시문에서 다분히 호칭하기를 명황(明皇)이라 했음. 휘는 융기며 예종의 제3. 처음은 초왕에 봉해졌고 임치왕으로 개봉(改封)했음. 경운 초 책립(冊立)하여 황태자가 되었고 선천 원년(712) 8월에 즉위했음. 재위 43, 나이 78. 예종을 높여 태상황이라 했음 [석씨계고략3. 백도백과].

 

雲門和尙問僧 什麽處來 曰江西來 雲門曰 江西一隊老宿寱語住也未 僧無對五雲代云 興猶未已後有僧問法眼和尙 不知雲門意作麽生 法眼曰 大小雲門被遮僧勘破五雲曰 什麽處是勘破雲門處 要會麽 法眼亦被後僧勘破也

 

운문화상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강서에서 옵니다. 운문이 가로되 강서의 일대(一隊; 저본에 一遂로 지었음) 노숙(老宿)이 예어(寱語; 잠꼬대)하며 머무느냐 또는 아니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五雲代云 興을 아직 마치지 않았습니다. 후에 어떤 중이 법안화상에게 묻되 알지 못하나니 운문의 뜻이 무엇입니까(作麽生). 법안이 가로되 대소(大小) 운문이 이 중의 감파(勘破)를 입었다五雲曰 어느 곳이 이 운문을 감파한 곳인가. 알고자 하느냐, 법안도 또한 後僧의 감파을 입었다.

 

因開井被沙塞却泉眼 法眼問僧 泉眼不通被沙塞 道眼不通被什麽物礙 僧無對師自代云 被眼礙

 

개정(開井)으로 인해 모래가 천안(泉眼)을 색각(塞却)함을 입자 법안이 중에게 묻되 천안(泉眼)이 불통(不通)함은 모래에 막힘을 입었거니와 도안(道眼)이 불통함은 무슨 물건에 막힘()을 입었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스님이 스스로 代云 눈에 막힘을 입었다.

 

景德傳燈錄卷第二十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