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七
靑原下二世
石頭遷禪師法嗣
荊州天皇道悟禪師
婺州東陽張氏子 神儀挺異 幼而生知 年十四懇求出家 父母不聽 遂損減飮膳 日纔一食 形體羸悴 父母不得已而許之 依明州大德披削 二十五詣杭州竹林寺具戒 精修梵行 推爲勇猛 或風雨昏夜 宴坐丘塚 身心安靜 離諸怖畏 一日遊餘杭 首謁徑山國一受心法 服勤五載 後參馬祖 重印前解 法無異說 依止二夏 乃謁石頭而致問曰 離却定慧 以何法示人 頭曰 我這裏無奴婢 離箇甚麽 曰 如何明得 頭曰 汝還撮得虛空麽 曰 恁麽則不從今日去也 頭曰 未審汝早晩從那邊來 曰 道悟不是那邊人 頭曰 我早知汝來處也 曰 師何以贓誣於人 頭曰 汝身見在 曰 雖然如是 畢竟如何示於後人 頭曰 汝道誰是後人 師從此頓悟 罄殫前二哲匠言下有所得心 後卜荊州當陽紫陵山 學徒駕肩接迹 都人士女 嚮風而至 時崇業寺上首以狀聞於連師 迎入城 郡之左有天皇寺 乃名藍也 因火而廢 主僧靈鑒將謀修復 乃曰 苟得悟禪師爲化主 必能福我 乃中宵潛往哀請 肩舁而至 時江陵尹右僕射裴公稽首問法 致禮勤至 師素不迎送 客無貴賤 皆坐而揖之 裴公愈加歸向 由是石頭法道盛矣
●神儀; 神情儀表 泛指狀貌
●羸悴; 疲困憔悴
●贓誣; 栽贓誣陷
●罄殫; 全盡無餘
●駕肩接迹; 形容來人很多 絡繹不絶 駕肩 肩疊肩
●嚮風; 謂仰慕其人之品德或學問
●右僕射; 官名 秦始置 漢以後因之 漢成帝建始四年 初置尙書五人 一人爲僕射 位僅次尙書令 職權漸重 漢獻帝建安四年 置左右僕射 唐宋左右僕射爲宰相之職 宋以後廢 太平天國曾設僕射一職 [百度百科]
형주(荊州) 천황도오(天皇道悟) 선사
무주(婺州) 동양(東陽) 장씨(張氏)의 아들이다. 신의(神儀)가 정이(挺異)했고 어릴 적엔 생지(生知)였으며 나이 14에 출가를 간구(懇求)했으나 부모가 청허(聽許; 聽)하지 않았다. 드디어 음선(飮膳; 飮食)을 손감(損減)하여 하루에 겨우 일식(一食)하니 형체가 이췌(羸悴)한지라 부모가 부득이하여 허락했다. 명주(明州)의 대덕(大德)에게 의지해 피삭(披削)했고 25에 항주(杭州) 죽림사에서 구계(具戒)했다. 범행(梵行)을 정수(精修)했고 추진(推進)하며 용맹했다. 혹 풍우(風雨)의 혼야(昏夜)에도 구총(丘塚)에 연좌(宴坐)하며 신심(身心)이 안정(安靜)되고 모든 포외(怖畏)를 여의었다. 어느 날 여항(餘杭)에 노닐다 처음으로(首) 경산국일(徑山國一)을 참알해 심법(心法)을 받고 5재(載) 동안 복근(服勤)했다. 후에 마조(馬祖)를 참알해 앞의 견해(前解)를 거듭 인가(印可; 印) 받았으니 법에 이설(異說)이 없었다. 2하(夏) 동안 의지(依止)하다가 이에 석두(石頭; 希遷)를 예알하여 치문(致問)해 가로되 정혜(定慧)를 여의어버리고 무슨 법으로써 시인(示人)하겠습니까. 두왈(頭曰) 나의 이 속엔 노비(奴婢)가 없거늘 저(箇) 무엇을 여의느냐. 가로되 어떻게 명득(明得)합니까. 두왈(頭曰) 네가 도리어 허공을 촬득(撮得; 거머쥐다)하겠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금일로 좇아가지 않겠습니다. 두왈(頭曰) 미심하나니 네가 조만(早晩; 어느 때)에 나변(那邊)으로 좇아왔느냐. 가로되 도오(道悟)는 이 나변(那邊) 사람이 아닙니다. 두왈(頭曰) 내가 일찍 너의 내처(來處)를 알았다. 가로되 스님은 무슨 까닭으로(何以) 사람을 장무(贓誣)합니까. 두왈(頭曰) 너의 몸이 현재(見在)한다. 가로되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필경 어떻게 후인(後人)에게 보입니까. 두왈(頭曰) 네가 말하라, 누가 이 후인인가. 스님이 이로 좇아 돈오(頓悟)했고 앞 2철장(哲匠)의 언하에 소득이 있은 마음을 경탄(罄殫)했다. 후에 형주(荊州) 당양(當陽) 자릉산(紫陵山)에 복거(卜居)했는데 학두(學徒)가 가견접적(駕肩接迹)했고 도인(都人; 京都의 사람)과 사녀(士女)가 향풍(嚮風)하여 이르렀다. 당시에 숭업사(崇業寺) 상수(上首)가 연수(連帥)에게 서장(書狀)으로 알렸고(狀聞) 성(城)으로 영입했다. 군(郡)의 좌(左)에 천황사(天皇寺)가 있었는데 이에 명람(名藍; 유명한 伽藍)이었으나 화재로 인해 황폐(荒廢; 廢)했다. 주승(主僧) 영감(靈鑒)이 이에(將) 수복(修復)을 계모(計謀)하고서 이에 가로되 참으로(苟) 오선사(悟禪師)를 얻어 화주(化主)로 삼는다면 반드시 능히 나에게 복될 것이다. 이에 중소(中宵)에 몰래 가서 애청(哀請)하고는 견여(肩舁; 肩輿)로 이르렀다. 때에 강릉윤(江陵尹; 尹은 官名) 우복야(右僕射) 배공(裴公)이 계수(稽首)하며 문법(問法)했고 예를 드리며(致禮) 부지런히 이르렀다. 스님은 본디(素) 영송(迎送)하지 않았고 객(客)은 귀천(貴賤)이 없이 모두 앉아서 읍(揖)했다. 배공(裴公)이 더욱(愈) 귀향(歸向)을 더했고(加) 이로 말미암아 석두의 법도(法道)가 성(盛)했다.
●神儀; 신정(神情)과 의표(儀表). 널리 상모(狀貌)를 가리킴.
●羸悴; 피곤하고 초췌(憔悴)함.
●贓誣; 재장(栽贓; 贓物을 몰래 다른 사람의 처소에 심어 둠)하여 무함(誣陷; 誣告로 陷害)함.
●罄殫; 전부 없애 나머지가 없음.
●駕肩接迹; 왕래인이 매우 많아 이어져 끊기지 않음을 형용. 가견(駕肩)은 어깨와 어깨가 겹침.
●嚮風; 이르자면 그 사람의 품덕(品德)이나 혹 학문을 앙모함.
●右僕射; 벼슬 이름. 진(秦)에서 처음 설치했고 한(漢) 이후 이를 따랐음. 한 성제 건시 4년 처음으로 상서(尙書) 5인을 설치했는데 1인이 복야(僕射)가 되며 지위는 겨우 상서령의 다음이었음. 직권이 점차 가중되었음. 한 헌제 건안 4년 좌우복야(左右僕射)를 설치했음. 당ㆍ송의 좌우복야는 재상의 관직이 되었음. 송 이후에 폐했고 태평천국이 일찍이 복야 1직(職)을 설치했음 [백도백과].
師因龍潭問 從上相承底事如何 師曰 不是明汝來處不得 潭曰 這箇眼目 幾人具得 師曰 淺草易爲長蘆 僧問 如何是玄妙之說 師曰 莫道我解佛法好 曰 爭奈學人疑滯何 師曰 何不問老僧 曰 卽今問了也 師曰 去 不是汝存泊處 元和丁亥四月示疾 命弟子先期告終 至晦日大衆問疾 師驀召典座 座近前 師曰 會麽 曰 不會 師拈枕子拋於地上 卽便告寂 壽六十 臘三十五 以其年八月五日 塔于郡東〈按景德傳燈錄稱 靑原下出石頭遷 遷下出天皇悟 悟下出龍潭信 信下出德山鑒 鑒下出雪峰存 存下出雲門偃玄沙備 備再傳 爲法眼益 皆謂雲門法眼二宗來自靑原石頭 雖二家兒孫 亦自謂靑原石頭所自出 不知其差悞所從來久矣 道悟同時有二人 一住荊南城西天王寺 嗣馬祖 一住荊南城東天皇寺 嗣石頭 其下出龍潭信者 乃馬祖下天王道悟 非石頭下天皇道悟也 何以明之 按唐正議大夫戶部侍郞平章事荊南節度使丘玄素所撰天王道悟禪師碑云 道悟 渚宮人 姓崔氏 子玉之後胤也 年十五依長沙寺曇翥律師出家 二十三詣嵩山受戒 三十參石頭頻沐指示 曾未投機 次謁忠國師 三十四與國師侍者應眞南還謁馬祖 祖曰 識取自心本來是佛 不屬漸次 不假修持 體自如如 萬德圓滿 師於言下大悟 祖囑曰 汝若住持 莫離舊處 師蒙旨已 便返荊門 去郭不遠 結草爲廬 後因節使顧問左右 申其端緒 節使親臨訪道 見其路隘 車馬難通 極目荒榛 曾未修削 覩茲發怒 令人擒師 拋於水中 旌斾纔歸 乃見徧衙火發 內外烘燄 莫可近之 唯聞空中聲曰 我是天王神 我是天王神 節使回心設拜 煙燄都息 宛然如初 遂往江邊 見師在水 都不濕衣 節使重伸懺悔迎請 在衙供養 於府西造寺 額號天王 師常云 快活快活 及臨終時呌 苦苦 又云 閻羅王來取我也 院主問曰 和尙當時被節度使拋向水中 神色不動 如今何得恁麽地 師擧枕子云 汝道當時是 如今是 院主無對 便入滅 當元和三年戊子十月十三日也 年八十二 坐六十三夏 嗣法一人 曰崇信 卽龍潭也 城東天皇道悟禪師者 協律郞符載撰碑 乃與景德傳燈合 其碑云 道悟 姓張氏 婺州東陽人 十四出家 依明州大德祝髮 二十五受戒於杭州竹林寺 初參國一 留五年 大曆十一年 隱於大梅山 建中初 謁江西馬祖 二年參石頭 乃大悟 遂隱當陽紫陵山 後於荊南城東有天皇廢寺 靈鑒請居之 元和二年丁亥四月十三日 以背痛入滅 年六十 坐三十五夏 法嗣三人 曰慧眞 曰文賁 曰幽閑 今荊南城東有天皇巷存焉 唐聞人歸登 撰南嶽讓禪師碑 列法孫數人於後 有天王道悟名 圭峯答裴相國宗趣狀 列馬祖法嗣六人 首曰江陵道悟 權德輿撰馬祖塔銘 載弟子慧海智藏等十一人 道悟其一也 又呂夏卿張無盡著書皆稱道悟嗣馬祖 宗門反以爲悞 然佛國白續燈錄 敘雪竇顯爲大寂九世孫 祖源通要錄中收爲馬祖之嗣 達觀頴以丘玄素碑證之 疑信相半 葢獨見丘玄素碑 而未見符載碑耳 今以二碑參合 則應以天皇道悟嗣石頭 以慧眞文賁幽閑嗣之 而於馬祖法嗣下增入天王道悟 以龍潭崇信嗣之 始爲不差悞矣〉
●平章事; 貞觀八年(634) 僕射李靖以疾辭位 詔疾小瘳 三兩日一至中書門下平章事 而平章事之名蓋起於此 其後 李績以太子詹事同中書門下三品 謂同侍中 中書令也 而同三品之名蓋起於此 然二名不專用 而佗官居職者猶假佗名如故 自高宗已後 爲宰相者必加同中書門下三品 雖品高者亦然 惟三公 三師 中書令則否 其後改易官名 而張文瓘以東臺侍郞同東西臺三品 同三品入銜 自文瓘始 永淳元年 以黃門侍郞郭待擧 兵部侍郞岑長倩等同中書門下平章事 平章事入銜 自待擧等始 自是以後 終唐之世不能改 [百度百科]
●極目; 遠望 盡目力所及
●荒榛; 雜亂叢生的草木 引申爲荒蕪
●協律郞; 官名 漢代稱協律都尉 武帝以李延年善新聲 爲之置此官 晉改稱協律校尉 北魏以後各朝設有協律郞 掌管音律 屬太常寺 唐爲正八品上 明爲正八品 淸在樂部設協律郞 後廢 [百度百科]
●祝髮; 祝 切斷之意 故祝髮與剃髮薙髮同 卽出家落髮之謂
●聞人; 一社會上很有名望的人 二姓氏(復姓) 此指一
●權德輿; (759-818) 唐代王公 字載之 秦州(甘肅天水)人 由文章進身 纍官吏部尙書 同平章事 與人無忤 心躭禪悅 有權文公集五十卷 [新唐書本傳 名公法喜志二]
●呂夏卿; (1015-1068) 字縉叔 泉州人 宋朝著名政治家史學家 [百度百科]
스님이, 용담(龍潭; 崇信)이 묻되 종상(從上)에 상승(相承)한 일이 어떻습니까 함으로 인해 사왈 이, 너의 내처(來處)를 밝히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용담이 가로되 저개(這箇) 안목을 몇 사람이나 갖춤을 얻습니까. 사왈 천초(淺草)가 쉽게 장로(長蘆; 긴 갈대)가 된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현묘(玄妙)한 말씀(說)입니까. 사왈 내가 불법을 안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다. 가로되 학인이 의체(疑滯)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왜 노승에게 묻지 않느냐. 가로되 즉금 물었습니다. 사왈 가거라, 이 네가 존박(存泊; 停歇. 休息)할 곳이 아니다. 원화(元和) 정해(丁亥; 807) 4월 시질(示疾)했다. 제자에게 선기(先期; 예정된 期日 以前)에 고종(告終)을 알렸다(命). 그믐날(晦日)에 이르러 대중이 문질(問疾)하자 스님이 갑자기(驀) 전좌(典座)를 불렀다. 전좌가 앞으로 다가가자(近前)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스님이 베개(枕子)를 집어 땅 위에 던지고 곧 바로 고적(告寂)했다. 나이는 60이며 납(臘; 저본에 臘月로 지었음)은 35다. 그 해 8월 5일 군(郡)의 동쪽에 건탑(建塔; 塔)했다〈경등전등록을 按驗컨대 일컫되 靑原下에 石頭遷이 나왔고 遷下에 天皇悟가 나왔고 悟下에 龍潭信이 나왔고 信下에 德山鑒이 나왔고 鑒下에 雪峰存이 나왔고 存下에 雲門偃ㆍ玄沙備가 나왔고 備의 再傳이 法眼益이 된다. 모두 이르기를 雲門ㆍ法眼 二宗이 靑原石頭로부터 왔다. 비록 二家의 兒孫이 또한 스스로 이르되 靑原石頭에서 비롯한 바라 하지만 그 좇아온 바의 差悞를 알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道悟는 동시에 2인이 있었다. 하나는 荊南城西 天王寺에 住했고 馬祖를 이었으며 하나는 荊南城東 天皇寺에 住했고 石頭를 이었다. 그 아래 龍潭信을 내었다는 것은 곧 馬祖下의 天王道悟며 石頭下의 天皇道悟가 아니다. 무엇으로써 그것을 밝히는가. 唐 正議大夫 戶部侍郞 平章事荊南節度使 丘玄素가 지은 바 天王道悟禪師碑를 안험컨대 이르되 道悟는 渚宮人이며 姓이 崔氏니 子玉의 後胤이다. 나이 15에 長沙寺 曇翥律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23에 嵩山으로 나아가 受戒했다. 30에 石頭를 參해 指示를 頻沐했으나 일찍이 投機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忠國師를 참알했고 34에 국사의 시자인 應眞과 더불어 남쪽으로 귀환해 馬祖를 참알했다. 마조가 가로되 自心이 본래 이 부처임을 識取할지니 漸次에 속하지 않고 修持를 빌리지 않는다. 體가 스스로 如如하며 萬德이 원만하다. 스님이 言下에 大悟했다. 마조가 부촉에 가로되 네가 만약 住持하거든 舊處를 떠나지 말아라. 스님이 意旨를 받고(蒙) 나서 바로 荊門으로 돌아가 城郭과의 거리가 멀지 않은 데에 結草하여 오두막을 만들었다. 후에 節使가 좌우에게 顧問함으로 인해 그 端緒를 알렸고(申) 節使가 親臨하여 訪道했다. 그 길이 좁음을 보았고 車馬가 통과하기 어려웠고 極目이 荒榛했으니 일찍이 修削(손질하여 깎다)하지 않았다. 이를 보자 發怒하여 사람을 시켜 스님을 사로잡아 水中에 던지게 했다. 정패(旌斾; 깃발)가 겨우 돌아가서 곧 보니 온(徧) 官衙에 화재가 발생했다. 안팎이 불길(烘燄)이라 가히 근접하지 못했다. 오직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가로되 나는 이 天王神이다. 나는 이 천왕신이다. 節使가 마음을 돌려 예배를 베풀자 연기와 화염이 모두 꺼져 완연히 처음과 같았다. 드디어 강변으로 가서 스님을 보매 물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옷을 젖지 않았다. 節使가 거듭 참회를 펴고 영접하고 초청해 관아에서 공양했다. 府의 서쪽에 절을 지어 편액의 호를 天王이라 했다. 스님이 늘 이르되 쾌활, 쾌활. 및 임종 시에 부르짖되 괴롭다, 괴롭다. 또 이르되 閻羅王이 와서 나를 취한다. 원주가 물어 가로되 화상은 당시에 절도사가 수중을 향해 던짐을 입고도 神色이 움직이지 않으셨는데 여금엔 왜 이러함을 얻습니까. 스님이 베개(枕子)를 들고 가로되 네가 말하라. 당시가 옳으냐, 여금이 옳으냐. 원주가 대답이 없었다. 바로 입멸했다. 元和 3년 戊子(808) 10월 13일에 해당한다. 나이는 82며 坐는 63하(夏)이다. 嗣法이 한 사람이며 가로되 崇信이니 곧 龍潭이다. 城東 天皇 道悟禪師란 자는 協律郞 符載가 碑를 지었는데 곧 景德傳燈과 合致한다. 그 碑에 이르되 道悟는 성이 張氏며 婺州 東陽人이다. 14에 출가했고 明州 大德에게 의지해 祝髮했고 25에 杭州 竹林寺에서 수계했다. 國一을 初參하여 5년 동안 머물렀고 大曆 11년(776) 大梅山에 은거했고 建中(780-783) 初 江西 馬祖를 참알했고 2년(781) 石頭를 參해 이에 대오했고 드디어 當陽 紫陵山에 은거했다. 후에 荊南城東에 天皇廢寺가 있었는데 靈鑒이 청하여 이에 거주했다. 元和 2년 丁亥(807) 4월 13일 背痛으로써 入滅했으니 나이는 60이며 坐는 35하(夏)다. 法嗣가 3인이니 曰 慧眞이며 曰 문분(文賁; 저본에 文賷로 지었음)며 曰 幽閑이다. 지금 荊南城東에 天皇巷이 있어 현존한다. 唐 聞人 歸登이 지은 南嶽讓禪師碑에 法孫 數人을 뒤에 나열했는데 天王道悟의 이름이 있다. 圭峯이 裴相國에게 답한 宗趣狀에 馬祖法嗣 6인을 列擧했는데 首曰 江陵道悟다. 權德輿가 撰한 馬祖塔銘에 제자 慧海ㆍ智藏 등 11인을 기재했는데 道悟도 그 하나다. 또 呂夏卿과 張無盡(張商英)의 저서에 모두 일컫기를 道悟가 馬祖를 이었다. 宗門에선 도리어 그름(悞)으로 삼는다. 그러나 佛國白(惟白)의 續燈錄엔 雪竇顯을 大寂의 九世孫이 된다고 서술했고 祖源通要錄 중엔 거두어 馬祖之嗣로 삼았다. 達觀頴(曇穎)은 丘玄素碑로써 증명하면서도 疑信이 相半이었음은 大葢 오직(獨) 丘玄素碑만 보고 符載碑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二碑를 參合(綜合하여 參考)하자면 곧 응당 天皇道悟는 石頭를 이었고 慧眞ㆍ文賁(저본에 文責으로 지었음)ㆍ幽閑이 그를 이었다. 馬祖法嗣下에 天王道悟를 增入하고 龍潭崇信이 이를 이어야 비로소 差悞가 되지 않는다〉.
●平章事; 정관 8년(634) 복야(僕射) 이정(李靖)이 질환으로 사위(辭位)했다. 불러 질환이 조금 나아지자 삼양일(三兩日)의 하루에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으니 평장사의 명칭은 대개 여기에서 일어났음. 그 후 이적(李績)이 태자첨사(太子詹事)로서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이었으니 이르자면 동시중(同侍中)이며 중서령(中書令)이었음. 동삼품(同三品)의 명칭이 대개 여기에서 일어났음. 그러나 두 명칭은 전용(專用)함이 아니었고 타관(佗官)에 거직(居職)하는 자는 오히려 타명(佗名)을 빌림이 예전과 같았음. 고종 이후로부터 재상이 된 자는 반드시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을 더했음. 비록 품고자(品高者)라도 또한 그러했음. 오직 삼공(三公)ㆍ삼사(三師)ㆍ중서령(中書令)은 곧 아니었음. 그 후 관명(官名)을 개역(改易)했는데 장문관(張文瓘)이 동대시랑(東臺侍郞)으로서 동동서대삼품(同東西臺三品)이었으니 동삼품(同三品)이 입함(入銜)함은 문관으로부터 비롯했음. 영순 원년 황문시랑 곽대거와 병부시랑 잠장천 등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였으니 평장사(平章事)가 입함(入銜)함은 대거 등으로부터 비롯했음. 이 이후로부터 종당(終唐)의 시대에도 능히 고치지 못했음 [백도백과].
●極目; 멀리 바라봄. 목력(目力; 안력)을 다해 미치는 곳.
●荒榛; 잡란하게 총생(叢生; 빽백히 남)한 초목. 인신(引申; 轉義)하여 황무(荒蕪)가 됨.
●協律郞; 벼슬 이름. 한대(漢代)의 명칭은 협률도위(協律都尉)였고 무제(武帝)가 이연년(李延年)이 신성(新聲)을 잘 알았으므로 그를 위해 이 관직을 설치했음. 진(晉)은 개칭하여 협률교위라 했고 북위(北魏) 이후 각조(各朝)에서 협률랑을 설치해 있었으며 음률을 장관했고 태상시(太常寺)에 속했음. 당(唐)에선 정8품상이 되었고 명(明)에선 정8품이 되었고 청(淸)은 악부(樂部)에 협률랑을 설치했다가 후에 폐했음 [백도백과].
●祝髮; 축(祝)은 절단의 뜻. 고로 축발은 체발(剃髮)ㆍ치발(薙髮)과 같음. 곧 출가하여 낙발(落髮)함을 말함.
●聞人; 1. 사회상(社會上) 매우 명망이 있는 사람. 2. 성씨(姓氏; 復姓).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權德輿; (759-818) 당대의 왕공. 자는 재지며 진주(감숙 천수) 사람. 문장으로 말미암아 진신(進身; 신분이 상승함)했음. 유관(纍官; 공을 쌓아 昇官)하여 이부상서ㆍ동평장사가 되었음. 사람들과 거스름이 없었으며 마음에 선열(禪悅)을 즐겼음. 권문공집 50권이 있음 [신당서본전. 명공법희지2].
●呂夏卿; (1015-1068) 자는 진숙(縉叔)이며 천주 사람. 송조의 저명한 정치가며 사학가 [백도백과].
靑原下三世
天皇悟禪師法嗣
澧州龍潭崇信禪師
渚宮人也 其家賣餠 師少而英異 初悟和尙 爲靈鑒潛請居天皇寺 人莫之測 師家於寺巷 常日以十餠饋之 天皇受之 每食畢 常留一餠曰 吾惠汝以蔭子孫 師一日自念曰 餠是我持去 何以返遺我邪 其別有旨乎 遂造而問焉 皇曰 是汝持來 復汝何咎 師聞之 頗曉玄旨 因投出家 皇曰 汝昔崇福善 今信吾言 可名崇信 由是服勤左右 一日問曰 某自到來 不蒙指示心要 皇曰 自汝到來 吾未甞不指汝心要 師曰 何處指示 皇曰 汝擎茶來 吾爲汝接 汝行食來 吾爲汝受 汝和南時 吾便低首 何處不指示心要 師低頭良久 皇曰 見則直下便見 擬思卽差 師當下開解 復問 如何保任 皇曰 任性逍遙 隨緣放曠 但盡凡心 別無聖解 師後詣澧陽龍潭棲止 僧問 髻中珠誰人得 師曰 不賞玩者得 曰 安著何處 師曰 有處卽道來 有尼問 如何得爲僧去 師曰 作尼來多少時也 曰 還有爲僧時也無 師曰 汝卽今是甚麽 曰 現是尼身 何得不識 師曰 誰識汝 李翱刺史問 如何是眞如般若 師曰 我無眞如般若 李曰 幸遇和尙 師曰 此猶是分外之言
●英異; 德才非凡的人
●分外; 過分 特別
예주(澧州) 용담(龍潭; 龍潭禪院) 숭신선사(崇信禪師)
저궁(渚宮; 湖北 江陵) 사람이며 그의 집은 떡을 팔았는데(賣餠) 스님은 어릴 적에 영이(英異)했다. 처음에 도오(道悟) 화상이, 영감(靈鑒)이 몰래(潛) 청하여 천황사(天皇寺)에 거주했는데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했다. 스님의 집은 사항(寺巷)에서 늘(常) 하루(日)에 10병(餠)을 바쳤다(饋). 도오가 이를 받아 매양 먹어 마치면 늘 1병(餠)을 유류(遺留; 留)하고는 가로되 네가 너에게 혜시(惠施)하여 자손(子孫)을 비호(庇護; 蔭)하노라. 스님이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해 가로되 떡(餠)은 이 내가 가져 갔거늘 무엇 때문에(何以) 도리어 나에게 남기시는가(遺), 그 다른 의지(意旨)가 있으신가. 드디어 나아가(造) 물었다. 황왈(皇曰) 이는 네가 가져 온지라 너에게 돌려 보내거늘(復) 무슨 허물이겠는가. 스님이 이를 듣자 자못 현지(玄旨)를 깨달았고(曉) 인하여 투신해 출가했다. 황왈(皇曰) 네가 지난 날(昔) 복선(福善)을 숭상(崇尙; 崇)하다가 이제 나의 말을 믿으니(信) 가히 숭신(崇信)으로 이름하거라. 이로 말미암아 좌우에서 복근(服勤)했다. 어느 날 물어 가로되 모(某)가 도래(到來)함으로부터 심요(心要)를 지시하심을 입지(蒙) 못했습니다. 황왈(皇曰) 네가 도래함으로부터 내가 일찍이 너에게 심요를 지시(指示)하지 않음이 없었다. 사왈(師曰) 어느 곳에서 지시하셨습니까. 황왈(皇曰) 네가 경다(擎茶)하여 오면 내가 너를 위해 접수(接受)했고 네가 행식(行食)하여 오면 내가 너를 위해 받았고 네가 화남(和南)할 때 내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低首). 어느 곳에서 심요를 지시하지 않았는가. 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양구(良久)했다. 황왈(皇曰) 보려거든(見) 직하(直下; 즉시)에 바로 볼지니 사유(思惟)하려고 하면(擬思) 곧 어긋난다. 스님이 당하(當下)에 개해(開解)했다. 다시 묻되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황왈(皇曰) 성품에 맡겨 소요(逍遙)하고 인연 따라 방광(放曠)하라. 단지 범심(凡心)을 없애면 별다른 성해(聖解)가 없다. 스님이 후에 예양(澧陽) 용담(龍潭)으로 나아가 서지(棲止)했다. 승문(僧問) 계중주(髻中珠)를 어떤 사람(誰人)이 얻습니까. 사왈 상완(賞玩; 觀賞)하지 않는 자가 얻는다. 가로되 어느 곳에 안착(安著)합니까. 사왈 처소가 있으면 곧 말해 오너라. 어떤 니(尼)가 묻되 어찌해야 승(僧)이 됨을 얻습니까. 사왈 니(尼)가 되어 온 지 다소(多少)의 시절인가. 가로되 도리어 승(僧)이 된 때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네가 즉금(卽今) 이 무엇인가(是什麽). 가로되 현재 이 니신(尼身)임을 어찌 알지 못함을 얻겠습니까. 사왈 누가 너를 아느냐. 이고(李翱) 자사(刺史)가 묻되 무엇이 이 진여(眞如)며 반야(般若)입니까. 사왈 나는 진여와 반야가 없다. 이고가 가로되 다행히(幸) 화상을 만났습니다. 사왈 이것은 오히려 이 분외(分外)의 말이다.
●英異; 덕재(德才)가 비범(非凡)한 사람.
●分外; 과분(過分). 특별.
靑原下四世
龍潭信禪師法嗣
鼎州德山宣鑒禪師
簡州周氏子 丱歲出家 依年受具 精究律藏 於性相諸經 貫通旨趣 常講金剛般若 時謂之周金剛 甞謂同學曰 一毛呑海 海性無虧 纖芥投鋒 鋒利不動 學與無學 唯我知焉 後聞南方禪席頗盛 師氣不平 乃曰 出家兒千劫學佛威儀 萬劫學佛細行 不得成佛 南方魔子敢言直指人心 見性成佛 我當摟其窟穴 滅其種類 以報佛恩 遂擔靑龍疏鈔出蜀 至澧陽路上 見一婆子賣餠 因息肩買餠點心 婆指擔曰 這箇是甚麽文字 師曰 靑龍䟽鈔 婆曰 講何經 師曰 金剛經 婆曰 我有一問 你若答得 施與點心 若答不得 且別處去 金剛經道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未審上座點那箇心 師無語 遂往龍潭 至法堂曰 久嚮龍潭 及乎到來 潭又不見 龍又不現 潭引身曰 子親到龍潭 師無語 遂棲止焉 一夕侍立次 潭曰 更深何不下去 師珍重便出 却回曰 外面黑 潭點紙燭度與師 師擬接 潭復吹滅 師於此大悟 便禮拜 潭曰 子見箇甚麽 師曰 從今向去 更不疑天下老和尙舌頭也 至來日 龍潭陞座 謂衆曰 可中有箇漢 牙如劒樹口似血盆 一棒打不回頭 他時向孤峰頂上 立吾道去在 師將疏鈔堆法堂前 擧火炬曰 窮諸玄辯 若一毫置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遂焚之
●簡州; 今四川簡陽 隋開皇三年(583)置 [百度百科]
●性相; 漢語大字典 性 佛敎名詞 與相相對 指事物的本質 相 佛敎名詞 對性而言 佛敎把一切事物外現的形象狀態 稱之爲相
●靑龍疏鈔; 唐靑龍寺沙門道氤 奉玄宗詔 造金剛經疏 亦稱靑龍疏 彌陀經疏鈔演義定本四曰 德山號周金剛 不信南宗單傳直指之說 作靑龍鈔 疏 經論注釋書之通稱 蓋佛經義理幽深 若不疏決開通 則不易啓悟 故須依文解義而疏通文義 稱曰疏 又注解疏文者 稱爲鈔 鈔 抄略之義 隨順本疏略加解釋 使經疏妙義了然易解
●點心; 正食前後之小食也 小食點空心之義 ▲畷耕錄 今以早飯前及飯後 午前午後晡時食爲點心
●紙燭; 蘸油的紙撚 點燃起來可以照明 故稱
●牙如劒樹口似血盆; 形容如羅刹夜叉等凶惡可怕之相
●樞機; 中樞的機關 事物的樞要 說文 樞 戶樞也 廣雅 樞 本也
정주(鼎州) 덕산선감(德山宣鑒) 선사
간주(簡州) 주씨(周氏)의 아들이다. 관세(丱歲; 童年)에 출가했고 나이에 의해 수구(受具)했다. 율장(律藏)을 정밀히 연구했고(精究). 성상(性相)의 제경(諸經)에 지취(旨趣)를 관통(貫通)했다. 늘 금강반야를 강설했고 당시에 주금강(周金剛)이라 일컬었다. 일찍이 동학(同學)에게 일러 가로되 일모(一毛)가 바다를 삼켜도 바다의 자성은 이지러짐(虧)이 없고 섬개(纖芥)를 칼날(鋒)에 던져도 칼날의 예리함은 움직이지 않는다. 학(學)과 무학(無學)을 오직 내가 안다. 후에 남방(南方)의 선석(禪席)이 자못 성(盛)하다 함을 듣고 스님의 기분(氣分)이 평안하지 않았다. 이에 가로되 출가아(出家兒)가 천 겁에 부처의 위의를 배우고 만 겁에 부처의 세행(細行)을 배우더라도 성불함을 얻지 못하거늘 남방의 마자(魔子)는 감히 말하기를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하고 성불한다 하니 내가 마땅히 그 굴혈(窟穴)을 잡아당겨(摟) 그 종류를 없애어 불은에 보답하리라. 드디어 청룡소초(靑龍疏鈔)를 지고 출촉(出蜀)했는데 예양(澧陽) 노상(路上)에 이르러 떡을 파는 한 노파를 보았다. 인하여 어깨를 쉬고 떡을 사서 점심(點心)하려고 하자 노파가 짐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것은 이 무슨 문자입니까. 사왈(師曰) 청룡소초입니다. 파왈(婆曰) 무슨 경을 강설합니까. 사왈 금강경입니다. 파왈(婆曰) 나에게 한 질문이 있으니 그대가 만약 답함을 얻는다면 점심(點心)으로 시여(施與)하겠지만 만약 답함을 얻지 못한다면 다만 다른 곳으로 가시오. 금강경에 말하되 과거심도 불가득이며 현재심도 불가득이며 미래심도 불가득이라 했습니다. 미심하오니 상좌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點那箇心). 스님이 말이 없었고 드디어 용담(龍潭)으로 갔다. 법당에 이르러 가로되 용담(龍潭)을 구향(久嚮)했더니 도래하매 이르러선(及乎到來) 담(潭)도 또 보이지 않고 용(龍)도 또 나타나지 않는구나. 용담이 몸을 늘어뜨리며(引身) 가로되 자네가 친히 용담에 이르렀다. 스님이 말이 없었다. 드디어 서지(棲止)했다. 어느 날 저녁(一夕) 시립(侍立)하던 차에 담왈(潭曰) 경(更; 밤 時刻)이 깊은데 왜 내려가지 않느냐. 스님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바로 나갔다가 도리어 돌아와서 가로되 외면(外面)이 칠흑(漆黑; 黑)입니다. 용담이 지촉(紙燭)에 점화(點火)하여 스님에게 건네어 주었다. 스님이 접수하려고 하자 용담이 다시 불어 껐다(滅). 스님이 이에 대오하고 바로 예배했다. 담왈(潭曰) 자네가 저(箇) 무엇을 보았느냐. 사왈 지금으로 좇아 향거(向去)하면서 천하 노화상의 설두(舌頭)를 다시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내일에 이르자 용담이 승좌(陞座)하여 도중(徒衆)에게 일러 가로되 가중(可中; 當中)에 1개의 사내(漢)가 있어 이빨은 검수와 같고 입은 혈분과 같아서(牙如劒樹口似血盆) 한 방(棒) 때려도 머리를 돌리지 않으리니 다른 때 고봉정상(孤峰頂上)으로 향해 가서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 스님이 소초(疏鈔)를 가져다 법당 앞에 쌓고는(堆) 횃불(火炬)을 들고 가로되 모든 현변(玄辯)을 궁진(窮盡)하더라도 마치 한 터럭을 태허(太虛)에 놓음과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하더라도 마치 한 물방울을 큰 골에 던짐과 같다. 드디어 불태웠다.
●簡州; 지금의 사천 간양. 수 개황 3년(583)에 설치했음 [백도백과].
●性相; 한어대자전 성(性) 불교의 명사다. 상(相)과 상대되며 사물의 본질을 가리킨다. 상(相) 불교의 명사다. 성(性)을 상대해 말함이니 불교는 일체 사물의 밖으로 나타난 형상과 상태를 잡아 상(相)이라고 일컫는다.
●靑龍疏鈔; 당(唐) 청룡사(靑龍寺) 사문(沙門) 도인(道氤)이 현종(玄宗)의 조칙(詔勅)을 받들어 금강경소(金剛經疏)를 지었으니 또 명칭이 청룡소(靑龍疏)임. 미타경소초연의정본4(彌陀經疏鈔演義定本四)에 가로되 덕산(德山)은 호가 주금강(周金剛)이며 남종(南宗)의 단전직지(單傳直指)의 설을 믿지 않아 청룡초(靑龍鈔)를 지었다. 소(疏)는 경론(經論)의 주석서(注釋書)의 통칭(通稱)임. 대개(大蓋) 불경(佛經)의 의리(義理)가 유심(幽深)하여 만약 소결(疏決)하여 개통(開通)하지 않으면 곧 쉽게 계오(啓悟)하지 못하는지라 고로 반드시 문(文)에 의해 뜻을 해석하여 글의 뜻을 소통(疏通)함을 일컬어 가로되 소(疏)라 함. 또 소문(疏文)을 주해(注解)한 것을 일컬어 초(鈔)라 함. 초(鈔)란 초략(抄略)의 뜻이니 본소(本疏)를 수순(隨順)하여 간략히 해석(解釋)을 더하여 경소(經疏)의 묘의(妙義)를 요연(了然)히 이해(易解)케 함임.
●點心; 정식(正食) 전후의 소식(小食)이니 소식으로 공심(空心)에 점 찍음의 뜻. ▲철경록. 여금에 조반 전 및 조반 후, 오전과 오후 포시(晡時)의 식사를 점심이라 한다.
●紙燭; 기름에 담근 지연(紙撚; 종이를 꼬아 끈 모양으로 만든 것)이니 점연(點燃; 점화)하여 일으키면 가히 조명(照明)으로 쓰는지라 고로 일컬음.
●牙如劒樹口似血盆; 라찰(羅刹)과 야차(夜叉) 등과 같이 흉악하고 가히 두려운 형상을 형용함.
●樞機; 중추적 기관. 사물의 추요(樞要), 설문 추(樞) 호추(戶樞; 문의 지도리)다. 광아 추(樞) 본(本)이다.
於是禮辭 直抵潙山 挾複子上法堂 從西過東 從東過西 顧視方丈曰 有麽有麽 山坐次 殊不顧眄 師曰 無無 便出至門首 乃曰 雖然如此 也不得草草 遂具威儀 再入相見 纔跨門 提起坐具曰 和尙 山擬取拂子 師便喝 拂袖而出 潙山至晩問首座 今日新到在否 座曰 當時背却法堂 著草鞋出去也 山曰 此子已後向孤峰頂上盤結草庵 呵佛罵祖去在 師住澧陽三十年 屬唐武宗廢敎 避難於獨浮山之石室 大中初 武陵太守薛廷望再崇德山精舍 號古德禪院 將訪求哲匠住持 聆師道行 屢請不下山 廷望乃設詭計 遣吏以茶鹽誣之 言犯禁法 取師入州 瞻禮 堅請居之 大闡宗風
●複子; 又作複包 複帕 爲包物所用之巾或卽指包袱 ▲象器箋器物類 複 應作袱 二字音同 故複乃袱之訛誤
●草草; 草 草率 簡略 不精也
●呵佛罵祖; 禪家認爲所謂佛聖祖師 一旦說出口 或存念于心 便是言句知解 區別妄念 便是對淸淨佛性的汚染 因而呵佛罵祖 遂成爲禪僧常用之作略 亦作呵佛叱祖 喝佛罵祖等
●哲匠; 宗匠 禪匠
●詭計; 欺詐的計謀
이에 예사(禮辭)하고 바로 위산(潙山)에 다다랐다. 보따리(複子)를 끼고서 법당에 올라가 서쪽으로부터 동쪽에 이르고(過) 동쪽으로부터 서쪽에 이르더니 방장을 돌아보고 가로되 있는가, 있는가. 위산이 앉은 차에 달리 돌아보지(顧眄) 않았다. 사왈 없다, 없다(無無) 하고는 바로 나가 문수(門首)에 이르러 이에 가로되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또한 초초(草草)함을 얻지 말아야 한다. 드디어 위의(威儀)를 갖추어 다시 들어가 상견했다. 겨우 문을 넘자(跨) 좌구(坐具)를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화상, 위산이 불자를 취하려고 하자 스님이 곧 할(喝)하고 소매를 떨치고 나갔다. 위산이 저녁에 이르자 수좌에게 묻되 금일의 신도(新到)가 있느냐. 수좌가 가로되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는 짚신을 신고(著) 나갔습니다. 위산이 가로되 이 자(子; 남자의 통칭)가 이후(已後)로 고봉정상(孤峰頂上)을 향해 가서 초암(草庵)을 얼기설기 엮고는(盤結) 가불매조(呵佛罵祖하여 가리라. 스님이 예양(澧陽)에 거주한 지 30년이었는데 당 무종(武宗)의 폐교(廢敎)에 당해(屬) 독부산(獨浮山) 석실에서 피난(避難)했다. 대중(大中; 847-860) 초 무릉태수(武陵太守) 설정망(薛廷望)이 덕산정사(德山精舍)를 다시 세우고(崇; 立. 建立) 호를 고덕선원(古德禪院)이라 했다. 이에(將) 철장(哲匠)의 주지(住持)를 방구(訪求)하다가 스님의 도행(道行)을 듣고(聆) 누청(屢請)했으나 하산(下山)하지 않았다. 정망(廷望)이 이에 궤계(詭計)를 시설했으니 관리를 보내어 다염(茶鹽)으로써 속이고(誣) 금법(禁法)을 범했다고 말하면서 스님을 취해 입주(入州)케 하여 첨례(瞻禮)했다. 견고히 청해 거주했고 종풍을 크게 열었다(闡)
●複子; 또 복포(複包)ㆍ복파(複帕)로 지음. 물건을 싸는데 소용되는 피륙임. 혹은 곧 포복(包袱; 보자기. 보따리)을 가리킴. ▲상기전기물류. 복(複)은 응당 복(袱)으로 지어야 한다. 두 글자의 음이 같다. 고로 복(複)은 곧 복(袱)의 그릇된 오류이다.
●草草; 초(草)는 초솔(草率; 거칠고 엉성함)ㆍ간략ㆍ부정(不精)임.
●呵佛罵祖; 선가에서 인식하기를 이른 바 불성(佛聖)과 조사가 하루아침에 설해 입에서 나오매 혹 마음에 생각을 둔다면 바로 이는 언구의 지해며 구별하는 망념임. 곧 이것은 청정한 불성에 대한 오염이므로 인하여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나니 드디어 선승이 상용하는 작략(作略)이 됨. 또 가불질조(呵佛叱祖)ㆍ할불매조(喝佛罵祖) 등으로 지음.
●哲匠; 종장(宗匠). 선장(禪匠).
●詭計; 기사(欺詐)의 계모(計謀).
上堂 若也於己無事 則勿妄求 妄求而得 亦非得也 汝但無事於心 無心於事 則虛而靈 空而妙 若毛端許 言之本末者 皆爲自欺 何故 毫氂繫念 三塗業因 瞥爾情生 萬劫羈鎻 聖名凡號 盡是虛聲 殊相劣形 皆爲幻色 汝欲求之得無累乎 及其厭之 又成大患 終而無益 小參示衆曰 今夜不答話 問話者三十棒 時有僧出禮拜 師便打 僧曰 某甲話也未問 和尙因甚麽打某甲 師曰 汝是甚麽處人 曰 新羅人 師曰 未跨船舷 好與三十棒〈法眼云 大小德山話作兩橛 玄覺云 叢林中喚作隔下語且從 祇如德山道 問話者三十棒 意作麽生〉
●毫氂; 同毫釐 氂 量詞 後作釐 玄應音義三 十毫曰氂 今皆作釐
●三塗; 同三途 慧琳音義三十四 三塗 又作途𨑒二形 同達胡反 言三塗者 俗書春秋有三塗危險之處 借此爲名 塗猶道也 非謂塗炭之義 若依梵本 則云何波那伽低 此云惡趣 不名惡道 道是因義 由履而行 趣是果名 已到之處 故不名惡道也
●小參; 謂非時之說法也 上堂稱爲大參 其規則校大參爲小 故曰小參
●話作兩橛; 謂前後話語自相矛盾
상당(上堂) 자기에 무사(無事)하면 곧 망구(妄求; 허망하게 구하다)하지 말아라. 망구(妄求)하여 얻으면 또한 얻음이 아니다. 너희가 단지 마음에 무사(無事)하고 일에 무심(無心)하면 허(虛)하면서 영(靈)하고 공(空)하면서 묘(妙)하려니와 만약 털끝(毛端) 만큼이라도(許) 본말(本末)을 말하는 자는 모두 스스로 속임(欺)이 된다. 무슨 연고냐. 호리(毫氂)라도 생각에 묶이면 3도(三塗)의 업인(業因)이며 별안간(瞥眼間; 瞥爾) 뜻을 내면 만겁(萬劫)의 기쇄(覊鎻; 굴레와 쇠사슬)니라. 성명(聖名)과 범호(凡號)가 다 이 헛소리며 수상(殊相)과 열형(劣形)이 모두 환색(幻色)이 된다. 너희가 구하여 무루(無累)를 얻고자 하느냐. 그 싫어함에 이르면(及) 또 대환(大患)을 이루어 마침내 무익(無益)하다. 소참(小參)에 시중(示衆)해 가로되 오늘 밤은 답화(答話)하지 않겠다. 문화(問話)하는 자는 30방(棒; 拄杖)이다.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하는데 스님이 곧 때렸다. 승왈(僧曰) 모갑은 화(話)도 또한 묻지 않았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모갑을 때립니까. 사왈(師曰) 너는 이 어느 곳의 사람이냐. 가로되 신라 사람입니다. 사왈 뱃전(船舷)에 걸터앉지 않은 때 좋이 30방((棒)이다〈法眼이 이르되 大小 德山이 화를 두 말뚝으로 지었다(話作兩橛). 玄覺이 이르되 叢林 중에서 隔下語로 불러 지음은 다만 좇거니와 지여(祇如) 덕산이 말한 問話하는 者는 三十棒이라 한 뜻이 무엇인가(作麽生)〉.
●毫氂; 호리(毫釐)와 같음. 리(氂)는 양사니 후에 리(釐)로 지었음. 현응음의3. 10호(毫)를 가로되 리(氂)다. 지금은 모두 리(釐)로 짓는다.
●三塗; 삼도(三途)와 같음. 혜림음의34. 3도(塗) 또 도도(途𨑒) 2형(形)으로 짓는다. 한가지로 달호반(達胡反; 도)이다. 말한 3도(塗)란 것은 속서(俗書) 춘추에 3도(塗)의 위험한 곳이 있다 했는데 이것을 빌려 이름했다. 도(塗)는 도(道)와 같다. 도탄(塗炭)의 뜻을 이름이 아니다. 만약 범본(梵本)에 의하자면 곧 어찌하여 파나가저(波那伽低)인가 하면 여기에선 이르되 악취(惡趣)다 했으니 이름이 악도(惡道)가 아니다. 도(道)는 이 인(因)의 뜻이니 밟음으로 말미암아 행함이다. 취(趣)는 이 과(果)의 이름이니 이미 도달한 곳이다. 고로 악도라고 이름하지 않았다.
●小參; 이르자면 비시(非時)의 설법임. 상당을 일컬어 대참(大參)이라 하고 그 규칙이 곧 대참에 비교하면 작음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소참임.
●話作兩橛; 이르자면 전후의 화어(話語)가 스스로 서로 모순됨.
僧參 師問維那 今日幾人新到 曰 八人 師曰 喚來一時生按著 龍牙問 學人仗鏌鎁劒擬取師頭時如何 師引頸近前曰 㘞〈法眼別云 汝向甚麽處下手〉 牙曰 頭落也 師呵呵大笑 牙後到洞山 擧前話 山曰 德山道甚麽 牙曰 德山無語 洞曰 莫道無語 且將德山落底頭呈似老僧看 牙方省 便懺謝 有僧擧似師 師曰 洞山老人不識好惡 這漢死來多少時 救得有甚麽用處 僧問 如何是菩提 師打曰 出去 莫向這裏屙 問 如何是佛 師曰 佛是西天老比丘 雪峯問 從上宗乘 學人還有分也無 師打一棒曰 道甚麽 曰 不會 至明日請益 師曰 我宗無語句 實無一法與人 峯因此有省 巖頭聞之曰 德山老人一條脊梁骨硬似鐵 抝不折 然雖如此 於唱敎門中 猶較些子〈保福問招慶 祇如巖頭出世 有何言敎過於德山 便恁麽道 慶云 汝不見巖頭道 如人學射 久久方中 福云 中後如何 慶云 展闍黎 莫不識痛痒 福云 和尙今日非唯擧話 慶云 展闍黎是甚麽心行 明招云 大小招慶 錯下名言〉
●生按著; 同生案著 又作生按過 謂試驗對方(多爲學人)悟道之深淺
●鏌鎁; 又作鏌邪 莫邪 古代之名劍名 莫邪乃吳(一說楚 或謂韓)之著名鑄劍匠干將之妻 夫妻二人爲協助吳王闔閭 遂鑄陰陽二劍 陽劍稱干將 陰劍稱莫邪 於禪林中 鏌鎁劍轉指自身本來具有之智慧 或師家自由自在接化學人之般若智見
●脊梁骨; 脊柱 用以比喩人的志氣和精神力量 亦比喩人的節操
●招慶; 當作慧稜 與保福從展同嗣雪峰義存 宗門拈古彚集二十三作長慶稜
중이 참(參)했다. 스님이 유나(維那)에게 묻되 금일 몇 사람이 신도(新到)했는가. 가로되 8인입니다. 사왈(師曰) 불러 와서 일시(一時)에 생안착(生按著)하라. 용아(龍牙; 居遁)가 묻되 학인이 막야검(鏌鎁劒)을 가지고(仗) 스님의 머리를 취하려고 할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목을 늘어뜨리고(引) 앞으로 다가가서 가로되 화(㘞)〈法眼이 別云 네가 어느 곳을 향해 下手하겠는가〉. 아왈(牙曰)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스님이 하하(呵呵)하며 대소(大笑)했다. 용아가 후에 동산(洞山)에 이르러 전화(前話)를 들자 동산이 가로되 덕산이 무어라고 말하더냐. 아왈(牙曰) 덕산은 말이 없었습니다. 동산이 가로되 말이 없었다고 말하지 말고 다만(且)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가져다 노승에게 정사(呈似; 보여주다)해 보아라. 용아가 비로소 성찰하고 바로 참사(懺謝; 참회하며 사과)했다. 어떤 중이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동산 노인이 호오(好惡)를 알지 못한다. 저한(這漢; 이 자)은 죽은 지 다소의 시일이다(死來多少時). 구득(救得)한들 무슨 용처(用處)가 있으랴. 승문(僧問) 무엇이 이 보리(菩提)입니까. 스님이 때리고 가로되 나가거라. 이 속을 향해 똥누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부처는 이 서천(西天)의 늙은 비구다. 설봉이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에 학인도 도리어 분한(分限; 分)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스님이 1방(棒) 때리고 가로되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겠습니다. 명일(明日)에 이르러 청익하자 사왈 나의 종(宗)은 어구(語句)가 없나니 실로 일법(一法)도 사람에게 줌이 없다. 설봉이 이로 인해 살핌이 있었다. 암두(巖頭)가 이를 듣고 가로되 덕산 노인은 일조(一條)의 척량골(脊梁骨)이 쇠와 같이 강경(强硬)하여 꺾어도(抝) 부러지지(折) 않았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창교문(唱敎門) 중에서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保福이 招慶에게 묻되 祇如 암두가 출세하여 어떤 言敎가 덕산을 초과함이 있어 바로 이렇게 말했는가. 초경이 이르되 네가 보지 못했는가, 암두가 말하되 사람이 學射함과 같나니 久久해야 비로소 的中한다. 보복이 이르되 적중한 후 어떠한가. 초경이 이르되 展闍黎가 痛痒을 알지 못하지 않는가. 보복이 이르되 화상이 금일 오직 擧話함 만이 아니었다. 초경이 이르되 展闍黎야, 이 무슨 心行인가. 명초(明招)가 이르되 大小 招慶이 名言을 錯下했다〉.
●生按著; 생안착(生案著)과 같음. 또 생안과(生按過)로 지음. 이르자면 상대방(다분히 학인이 됨)의 오도의 심천을 시험함임.
●鏌鎁; 또 막야(鏌邪)ㆍ막야(莫邪)로 지음. 고대의 명검의 이름. 막야(莫邪)는 곧 오(吳; 일설엔 楚, 혹은 이르기를 韓)의 저명한 주검장(鑄劍匠)인 간장(干將)의 처임. 부처(夫妻) 2인이 오왕 합려(闔閭)에게 협조하여 드디어 음양 2검을 주조했는데 양검(陽劍)은 명칭이 간장(干將)이었고 음검은 명칭이 막야였음. 선림 중에서 막야검은 전(轉)하여 자신이 본래 갖추어 있는 지혜, 혹은 사가가 자유자재하게 학인을 접화(接化)하는 반야의 지견을 가리킴.
●脊梁骨; 척주(脊柱; 등골뼈)니 사람의 지기(志氣)와 정신의 역량의 비유로 사용함. 또한 사람의 절조(節操)에 비유함.
●招慶; 마땅히 혜릉(慧稜)으로 지어야 함. 보복종전(保福從展)과 더불어 설봉의존(雪峰義存)을 동사(同嗣)했음. 종문염고휘집23에 장경릉(長慶稜; 慧稜)으로 지었음.
示衆曰 道得也三十棒 道不得也三十棒 臨濟聞得 謂洛浦曰 汝去問他 道得爲甚麽也三十棒 待伊打汝 接住棒送一送 看伊作麽生 浦如敎而問 師便打 浦接住送一送 師便歸方丈 浦回擧似臨濟 濟曰 我從來疑著這漢 雖然如是 你還識德山麽 浦擬議 濟便打〈巖頭云 德山老人尋常秖據一條白棒 佛來亦打 祖來亦打 爭奈較些子 東禪齊云 祇如臨濟道 我從前疑著這漢 是肯底語 不肯底語 爲當別有道理 試斷看〉 上堂 問卽有過 不問猶乖 有僧出禮拜 師便打 僧曰 某甲始禮拜 爲甚麽便打 師曰 待汝開口 堪作甚麽 師令侍者喚義存〈卽雪峯也〉 存上來 師曰 我自喚義存 汝又來作甚麽 存無對
시중(示衆)해 가로되 말함을 얻어도 30방(棒)이며 말함을 얻지 못해도 30방이다. 임제(臨濟)가 듣고서(聞得) 낙포(洛浦)에게 일러 가로되 네가 가서 그에게 묻되 말함을 얻었는데 무엇 때문에 30방입니까. 그(伊)가 너를 때림을 기다렸다가 방(棒)을 접주(接住)하고 보내어 한 번 보내어라(送一送). 그가 어떻게 하는지(作麽生) 보아라. 낙포가 가르침과 같이 묻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낙포가 접주(接住)하고 보내어 한 번 보내었다.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낙포가 돌아와 임제에게 들어 보이자 임제가 가로되 내가 종래(從來)로 이 자(這漢)를 의심했었다(疑著).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네가 도리어 덕산을 아느냐. 낙포가 의의(擬議)하자 임제가 바로 때렸다〈巖頭가 이르되 덕산 노인이 尋常에 다만 목전의 1條 주장자에 기대어(據) 佛이 와도 또한 때리고 祖가 와도 또한 때리더니 些子 어긋났음을 어찌하겠는가. 東禪齊(道齊)가 이르되 祇如 臨濟가 말한 내가 從前에 這漢을 의심했다 함은 이 수긍하는 말인가, 수긍하지 않는 말인가. 마땅히 별다른 도리가 있음이 되는가. 시험 삼아 판단해 보아라〉. 상당(上堂) 물으면 곧 허물이 있고 묻지 않으면 오히려 어긋난다(乖). 어떤 중이 나와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승왈(僧曰) 모갑은 비로소 예배하거늘 무엇 때문에 바로 때립니까. 사왈 너의 입 엶을 기다려 차마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시자를 시켜 의존(義存)〈곧 雪峯이다〉을 불렀다. 의존이 올라오자 사왈 내가 스스로 의존을 불렀거늘 네가 또 와서 무엇하려느냐. 의존이 대답이 없었다.
上堂 我先祖見處卽不然 這裏無祖無佛 達磨是老臊胡 釋迦老子是乾屎橛 文殊普賢是擔屎漢 等覺妙覺是破執凡夫 菩提涅槃是繫驢橛 十二分敎是鬼神簿拭瘡疣紙 四果三賢初心十地是守古塚鬼 自救不了 有僧相看 乃近前作相撲勢 師曰 與麽無禮 合喫山僧手裏棒 僧拂袖便行 師曰 饒汝如是 也祇得一半 僧轉身便喝 師打曰 須是我打你始得 曰 諸方有明眼人在 師曰 天然有眼 僧擘開眼曰 猫 便出 師曰 黃河三千年一度淸 師見僧來 乃閉門 其僧敲門 師曰 阿誰 曰 師子兒 師乃開門 僧禮拜 師騎僧項曰 這畜生甚處去來 雪峰問 南泉斬猫兒 意旨如何 師乃打趂 却喚曰 會麽 峯曰 不會 師曰 我恁麽老婆心 也不會 僧問 凡聖相去多少 師便喝 師因疾 僧問 還有不病者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不病者 師曰 阿㖿阿㖿 師復告衆曰 捫空追響 勞汝心神 夢覺覺非 竟有何事 言訖 安坐而化 卽唐咸通六年十二月三日也 諡見性禪師
●乾屎橛; 拭人糞之橛之乾者 取至穢之意 屎橛又作廁籌 淨籌 淨木 廁簡子等
●繫驢橛; 路傍繫驢馬之木橛 喩束縛眞性 障礙悟道的情識知解 區別妄心等
●等覺妙覺; 華嚴經略策 言等覺者 已超十地 等於妙覺 約等妙覺 亦名如來 雖等而修 亦名菩薩 又云 朗然大悟 離覺所覺 故名妙覺 ▲華嚴經七處九會頌釋章 言等覺位者 等者相似義 此位所作 皆似佛果 故名等覺 覺者佛果勝智也 言妙覺者 妙者最勝之義 二乘所得菩提涅槃 非最勝妙 唯佛獨能所作皆辦功德最勝 故名妙覺 ▲天台四敎儀科解下 等覺位亦名無垢地 過十地解 入百千三昧 照一相無相 寂滅無爲 望于玅覺 猶有一等 比下名覺 故名等覺 更有一品無明塵垢 雖有如無 故名無垢 所修觀智 純一堅利 喩若金剛 名金剛心 有一生在 未全損之 名爲一生 過此之後 卽補果佛玅覺之處 名爲補處 更有玅覺上位可登 名有上士
●鬼神簿; 記死去人名死月日等之簿
●四果; 聲聞乘聖果之差別也 其階段依次爲預流果(須陀洹果) 一來果(斯陀含果) 不還果(阿那含果) 阿羅漢果
●三賢; 指修善根以制伏煩惱 使心調和之三種修行階位 可分小乘之五停心 別相念住 總相念住 與大乘之十住 十行 十回向三位 [四敎義五 菩薩瓔珞本業經疏下 華嚴經探玄記五 華嚴五敎章三]
●初心; 初發心而未經深行者
●阿㖿; 病患者的呻吟聲 呼痛聲 祖庭事苑一 嗄 所嫁切 聲變也 今借爲夏音 詐疑之意 如㖿本音斜聲也 今借爲耶音
●心神; 衆生之心性靈妙 故曰心神
상당(上堂) 나의 선조(先祖)의 견처(見處)는 곧 그렇지 않았다. 이 속엔 조사도 없고 부처도 없다. 달마는 이 노조호(老臊胡; 늙어 누린내 나는 오랑캐)며 석가노자(釋迦老子)는 이 건시궐(乾屎橛; 마른 똥막대)이며 문수와 보현은 이 담시한(擔屎漢; 똥을 지는 자)이며 등각묘각(等覺妙覺)은 이 파집(破執) 범부(凡夫)며 보리(菩提)와 열반은 이 계려궐(繫驢橛; 나귀 매는 말뚝)이며 십이분교(十二分敎)는 이 귀신부(鬼神簿)며 종기와 혹을 닦는 종이이며 4과(四果)와 3현(三賢), 초심(初心)과 십지(十地)는 곧 옛 무덤을 지키는 귀신이니 스스로를 구제함도 마치지 못한다. 어떤 중이 상간(相看)하는데 이에 앞으로 다가가 상박(相撲; 씨름)하는 자세를 지었다. 사왈 이렇게 무례(無禮)하니 합당히 산승의 손안의 방(棒)을 먹을 것이다. 중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갔다. 사왈 가령(假令; 饒) 네가 이와 같더라도 또한 다만 일반(一半; 折半)을 얻었다. 중이 몸을 돌리며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때리고 가로되 모름지기 이는 내가 너를 때려야 비로소 옳다. 가로되 제방에 명안인(明眼人)이 있습니다. 사왈 천연(天然)으로 눈이 있구나. 중이 눈을 벽개(擘開; 나누어 열다)하고 가로되 묘(猫), 바로 나갔다. 사왈 황하가 3천 년에 한 차례 맑다(黃河三千年一度淸). 스님이 중이 옴을 보자 이에 문을 닫았다. 그 중이 문을 두드리자 사왈 누구인가(阿誰). 가로되 사자아(師子兒)입니다. 스님이 이에 문을 열었다. 중이 예배하자 스님이 중의 목을 타고(騎) 가로되 이(這) 축생(畜生)아,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설봉이 묻되 남천(南泉)이 고양이(猫兒)를 벤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에 때려 쫓았다가 도리어 부르며 가로되 아느냐. 설봉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내가 이렇게(恁麽) 노파심이거늘 또한 알지 못하느냐. 승문(僧問) 범성(凡聖)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질병으로 인해 중이 묻되 도리어 병들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병들지 않는 자입니까. 사왈 아야(阿㖿), 아야. 스님이 다시 도중(徒衆)에게 고(告)해 가로되 허공을 더듬고 곡향(谷響)을 쫓아감(捫空追響)은 너희의 심신(心神)을 노고롭게 하나니 꿈과 깸이 그른 줄 깨달으면(夢覺覺非) 필경에 무슨 일이 있으랴. 말을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화(化; 죽음)했다. 곧 당 함통(咸通) 6년(865) 12월 3일이다. 시호는 견성선사(見性禪師)다.
●乾屎橛; 인분을 닦는 막대의 마른 것. 지극히 더러움의 뜻을 취함. 시궐은 또 측주(廁籌)ㆍ정주(淨籌)ㆍ정목(淨木)ㆍ측간자(廁簡子) 등으로 지음.
●繫驢橛; 길 옆에 나귀나 말을 묶는 나무 말뚝이니 진성을 속박하고 오도를 장애하는 정식(情識)의 지해와 구별의 망심 등에 비유함.
●等覺妙覺; 화엄경약책(華嚴經略策) 말한 등각이란 것은 이미 십지(十地)를 초과하여 묘각과 제등함이니 등묘각(等妙覺)을 대약하면 또한 이름이 여래다. 비록 제등히 닦지만 또한 이름이 보살이다. 또 이르되 낭연(朗然)히 대오하여 각(覺)과 소각(所覺)을 여읜지라 고로 이름이 묘각이다. ▲화엄경칠처구회송석장(華嚴經七處九會頌釋章) 말한 등각위(等覺位)란 것은 등(等)이란 것은 상사(相似)의 뜻이다. 이 위(位)에서 짓는 바는 다 불과(佛果)와 상사하므로 고로 이름이 등각이다. 각이란 것은 불과의 승지(勝智)다. 말한 묘각이란 것은 묘(妙)는 최승(最勝)의 뜻이다. 2승(乘)이 얻은 바 보리와 열반은 가장 수승(殊勝)한 묘(妙)가 아니다. 오직 부처라야 홀로 능히 짓는 바며 다 공덕을 갖추어 가장 수승하므로 고로 이름이 묘각이다. ▲천태사교의과해하(天台四敎儀科解下) 등각위는 또한 이름이 무구지(無垢地)다. 십지의 지해(知解)를 초과하여 백천(百千) 삼매에 들어가 일상(一相)인 무상(無相)을 비춰 적멸하여 무위이다. 묘각을 바라보면 오히려 한 등급이 있지만 아래에 비하면 이름이 각인지라 고로 이름이 등각이다. 다시 1품(品)의 무명의 진구(塵垢)가 있지만 비록 있어도 없음과 같은지라 고로 이름이 무구(無垢)이다. 닦는 바 관지(觀智)가 순일하고 견리(堅利)하여 비유컨대 금강과 같으므로 이름이 금강심이다. 1생(生)이 있어서 그것을 전부 손감(損減)하지 못했으므로 이름하여 일생(一生)이다. 이를 지난 후에 곧 과불(果佛)인 묘각의 처소에 보(補)하므로 이름해 보처(補處)다. 다시 묘각의 상위가 있어 가히 오르므로 이름이 유상사(有上士)다.
●鬼神簿; 죽은 사람의 이름과 사망한 월일 등을 기록한 장부.
●四果; 성문승 성과(聖果)의 차별임. 그 계단은 차제헤 의해 예류과(수다원과)ㆍ일래과(사다함과)ㆍ불환과(아나함과)ㆍ아라한과가 됨.
●三賢; 선근을 닦아 번뇌를 제복(制伏)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조화롭게 하는 3종의 수행계위(修行階位)를 가리킴. 가히 소승의 오정심(五停心)ㆍ별상념주(別相念住)ㆍ총상념주(總相念住)와 대승의 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回向) 3위로 분류함 [사교의5. 보살영락본업경소하. 화엄경탐현기5. 화엄오교장3].
●初心; 처음 발심하여 깊은 행을 경험치 못한 자.
●阿㖿; 병환자의 신음 소리며 통증을 호소하는 소리임. 조정사원1 사(嗄) 소가절(所嫁切; 사)이니 성변(聲變)임. 지금 가차하여 하음(夏音)으로 삼음은 사의(詐疑)의 뜻이다. 마치 야(㖿)의 본음(本音)은 사성(斜聲)이나 요즈음 가차하여 야음(耶音)으로 지음과 같다.
●心神; 중생의 심성이 영묘(靈妙)하므로 고로 가로되 심신(心神)임.
洪州泐潭寶峯和尙
新到參 師問 其中事卽易道 不落其中事始終難道 曰 某甲在途中時 便知有此一問 師曰 更與二十年行脚 也不較多 曰 莫不契和尙意麽 師曰 苦瓜那堪待客 問僧 古人有一路接後進初心 汝還知否 曰 請師指出古人一路 師曰 恁麽則闍黎知了也 曰 頭上更安頭 師曰 寶峯不合問仁者 曰 問又何妨 師曰 這裏不曾有人亂說道理 出去 巖頭僧來參 師竪起拂子曰 落在此機底人 未具眼在 僧擬近前 師曰 恰落在此機 僧回擧似巖頭 頭曰 我當時若見 奪却拂子 看他作麽生 師聞乃曰 我竪起拂子從伊奪 總不將物時又作麽生 巖頭聞得 又曰 無星秤子 有甚辨處
홍주(洪州) 늑담(泐潭) 보봉화상(寶峯和尙)
신도(新到)가 참(參)하자 스님이 묻되 그 중의 일(其中事)은 곧 말하기 쉽지만 그 중의 일에 떨어지지 않음은 시종(始終) 말하기 어렵다. 가로되 모갑이 도중(途中)에 있을 때 바로 이 일문(一問)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사왈(師曰) 다시 20년을 행각하더라도 또한 많이 어긋나지(較) 않는다. 가로되 화상의 뜻에 계합하지 못한 게 아닙니까. 사왈 쓴 오이(苦瓜)가 어찌 가히(堪) 객(客)을 기다리겠는가. 중에게 묻되 고인이 일로(一路)가 있어 후진(後進)과 초심(初心)을 접인(接引)했나니 네가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청컨대 스님이 고인의 일로(一路)를 가리켜 내십시오. 사왈 이러하다면 곧 사리(闍黎)가 알아 마쳤다. 가로되 두상(頭上)에 다시 안두(安頭; 머리를 안치)하셨습니다. 사왈 보봉(寶峯)이 인자(仁者)에게 물음이 합당하지 않았다. 가로되 물은들 또 무엇 방애(妨礙)되겠습니까. 사왈 이 속에선 일찍이 도리를 난설(亂說)하는 사람이 있지 않았다. 나가거라. 암두(巖頭)의 중이 내참(來參)하자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이 기(機)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눈을 갖추지 못했다. 중이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사왈 마침(恰) 이 기(機)에 떨어져 있다. 중이 돌아가 암두에게 들어 보이자 암두가 가로되 내가 당시에 만약 보았더라면 불자를 뺏아버리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았겠다. 스님이 듣고 이에 가로되 내가 불자를 세워 일으키면 그의 뺏음을 좋겠지만 모두(總) 물건을 가지지 않았을 때 또 어찌하겠는가. 암두가 듣고서(聞得) 또 가로되 눈금 없는 저울(無星秤子)이거늘 무슨 분변할 곳이 있겠는가.
靑原下五世
德山鑒禪師法嗣
鄂州巖頭全奯禪師
泉州柯氏子 少禮靑原誼公落髮 往長安寶壽寺稟戒 習經律諸部 優游禪苑 與雪峰欽山爲友 自杭州大慈山邐迤造于臨濟 屬濟歸寂 乃謁仰山 纔入門 提起坐具曰 和尙 仰山取拂子擬擧 師曰 不妨好手 後參德山 執坐具上法堂瞻視 山曰 作麽 師便喝 山曰 老僧過在甚麽處 師曰 兩重公案 乃下參堂 山曰 這箇阿師稍似箇行脚人 至來日上問訊 山曰 闍黎是昨日新到否 曰 是 山曰 甚麽處學得這虛頭來 師曰 全奯終不自謾 山曰 他後不得孤負老僧 一日參德山 方跨門便問 是凡是聖 山便喝 師禮拜 有人擧似洞山 山曰 若不是奯公 大難承當 師曰 洞山老人不識好惡 錯下名言 我當時一手擡一手搦
●禪苑; 專修禪觀之寺院 又稱禪寺 禪院 禪刹 爲敎院律院之對稱
●邐迤; 同迤邐 緩行貌
●虛頭; 虛假 虛幻 頭 後綴
●一手擡一手搦; 又作一手擡一手捺 謂一方面扶持之 一方面又壓抑之 乃形容禪師指導修行僧時 自由無礙之機法
악주(鄂州) 암두(巖頭) 전활선사(全奯禪師)
천주(泉州) 가씨(柯氏)의 아들이다. 소년(少年)에 청원(靑原) 의공(誼公)을 예알(禮謁)하여 낙발(落髮)했고 장안 보수사(寶壽寺)에 가서 계를 받았고(稟戒) 경률(經律)의 제부(諸部)를 학습했다. 선원(禪苑)을 우유(優游; 優遊와 같음)하다가 설봉(雪峰; 義存)ㆍ흠산(欽山; 文邃)과 벗이 되었다.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으로부터 리이(邐迤)하며 임제(臨濟)에 나아갔으나 임제의 귀적(歸寂)을 당했고(屬) 이에 앙산(仰山)을 예알했다. 겨우 입문(入門)하자 좌구(坐具)를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화상. 앙산이 불자(拂子)를 취해 들려고 하자 사왈(師曰) 호수(好手)임에 방애(妨礙)되지 않습니다. 후에 덕산(德山)을 참(參)했다. 좌구를 가지고 법당에 올라가 바라보았다(瞻視). 산왈(山曰) 무엇하느냐(作麽).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산왈(山曰) 노승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사왈 양중공안(兩重公案)입니다. 이에 내려가 참당(參堂)했다. 산왈(山曰) 저개(這箇; 이) 아사(阿師)는 조금(稍) 행각인(行脚人)과 흡사하다(似箇). 내일에 이르러 올라가 문신(問訊)하자 산왈(山曰) 사리(闍黎)는 이 작일(昨日)의 신도(新到)인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산왈(山曰) 어느 곳에서 이런(這箇) 허두(虛頭)를 배워 얻었는가. 사왈 전활(全奯)은 마침내 스스로를 속이지 못합니다. 산왈(山曰) 타후(他後; 今後)에 노승을 저버림(孤負)을 얻지 말아라. 어느 날 덕산을 참(參)하면서 바야흐로 문을 넘자(跨) 바로 묻되 이 범부입니까. 이 성인입니까. 덕산이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예배했다. 어떤 사람이 동산(洞山)에게 들어 보이자 동산이 가로되 만약 이 활공(奯公)이 아니었다면 승당(承當)하기 매우 어려웠으리라. 사왈 동산 노인이 호오(好惡)를 알지 못해 명언(名言; 名字와 言句)을 착하(錯下; 잘못 내리다)했다. 내가 당시에 한 손으론 들어 올리고 한 손으론 눌렀다(一手擡一手搦).
●禪苑; 선관(禪觀)을 오로지 닦는 사원. 또 명칭이 선사(禪寺)ㆍ선원(禪院)ㆍ선찰(禪刹)이니 교원ㆍ율원의 대칭이 됨.
●邐迤; 이리(迤邐)와 같음. 완행(緩行)하는 모양.
●虛頭; 허가(虛假). 허환(虛幻). 두(頭)는 후철(後綴).
●一手擡一手搦; 또 일수대일수날(一手擡一手捺)로 지음. 이르자면 1방면으론 그것을 부지(扶持)하고 1방면으론 또 그것을 압억(壓抑)함이니 곧 선사가 수행승을 지도할 때 자유무애한 기법(機法)을 형용함.
雪峰在德山作飯頭 一日飯遲 德山擎鉢下法堂 峰曬飯巾次 見德山乃曰 鐘未鳴 鼓未響 拓鉢向甚麽處去 德山便歸方丈 峰擧似師 師曰 大小德山未會末後句在 山聞 令侍者喚師去 問 汝不肯老僧那 師密啓其意 山乃休 明日陞堂 果與尋常不同 師至僧堂前 拊掌大笑曰 且喜堂頭老漢會末後句 他後天下人不奈伊何 雖然 也秖得三年活〈山果三年後示滅〉
●飯巾; 蓋掩飯桶上布巾 [象器箋二十]
●拓鉢; 又作托鉢 拓 他各切 托起 廣韻 拓 手承物也
●末後句; 末後一句 謂到達徹底大悟之極處所言之至極語 更無其他語句能超越者
설봉(雪峰)이 덕산에 있으면서 반두(飯頭)가 되었다. 어느 날 밥이 늦자(飯遲) 덕산이 발우를 받들고(擎) 법당(法堂)에 내려왔다. 설봉이 반건(飯巾)을 말리던(曬) 차에 덕산을 보고 이에 가로되 종도 울리지(鳴) 않았고 북도 울리지(響) 않았는데 탁발(拓鉢)하고 어느 곳을 향해 가시는가. 덕산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설봉이 스님에게 들어 보이자 사왈 대소(大小)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를 알지 못하셨다. 덕산이 듣고서 시자를 시켜 스님을 부르게 하고 묻되 네가 노승을 수긍하지 않느냐. 스님이 몰래(密) 그 뜻을 사뢰었다(啓). 덕산이 이에 쉬었다. 명일에 승당(陞堂)했는데 과연 심상(尋常)과 같지 않았다. 스님이 승당 앞에 이르러 부장(拊掌; 拍掌)하며 크게 웃고 가로되 다만 기뻐하노니 당두(堂頭) 노한이 말후구를 아셨다. 타후(他後; 今後)론 천하인이 그(伊)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비록 그러하지만 또한 다만 3년 동안 삶을 얻을 것이다〈德山이 과연 3년 후 示滅했다〉.
●飯巾; 반통(飯桶) 위를 덮어 가리는 포건(布巾) [상기전20].
●拓鉢; 또 탁발(托鉢)로 지음. 탁(拓)은 타각절(他各切; 탁)이니 탁기(托起; 받쳐 일으킴)임. 광운 탁(拓) 손으로 물건을 받듦이다.
●末後句; 말후일구(末後一句)니 이르자면 철저히 대오한 극처(極處)에 이르러 말하는 바의 지극한 말이니 다시 기타의 어구가 능히 초월함이 없는 것.
一日與雪峰欽山聚話 峰驀指一椀水 欽曰 水淸月現 峰曰 水淸月不現 師踢却水碗而去 師與雪峰同辭德山 山問 甚麽處去 師曰 暫辭和尙下山去 曰 子他後作麽生 師曰 不忘 曰 子憑何有此說 師曰 豈不聞 智過於師 方堪傳受 智與師齊 減師半德 曰 如是如是 當善護持 二士禮拜而退 師住鄂州巖頭 値沙汰 於湖邊作渡子 兩岸各挂一板 有人過渡 打板一下 師曰 阿誰 或曰 要過那邊去 師乃舞棹迎之 一日因一婆抱一孩兒來乃曰 呈橈舞棹卽不問 且道婆手中兒甚處得來 師便打 婆曰 婆生七子 六箇不遇知音 秖這一箇 也不消得 便拋向水中
●渡子; 擺渡的船夫 子 泛指人
어느 날 설봉ㆍ흠산과 모여 얘기했다. 설봉이 갑자기(驀) 한 사발의 물을 가리켰다. 흠산이 가로되 물이 맑아(淸) 달이 나타난다. 설봉이 가로되 물이 맑아도 달이 나타나지 않는다. 스님이 물 사발을 차버리고 갔다. 스님과 설봉이 함께(同) 덕산에게 고별하자 덕산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사왈 잠시 화상에게 고별하고 하산(下山)하겠습니다. 가로되 자네가 타후(他後)에 어찌하겠는가(作麽生). 사왈 잊지 않겠습니다. 가로되 자네가 무엇에 의빙하여 이 말이 있는가. 사왈 어찌 듣지 못하셨습니까, 지혜가 스승을 초과해야 바야흐로 전수(傳授)를 감당하고 지혜가 스승과 더불어 가지런하면 스승의 반덕(半德)을 감(減)합니다.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마땅히 잘 호지(護持)하라. 2사(士)가 예배하고 물러났다. 스님이 악주(鄂州) 암두(巖頭)에 거주했는데 사태(沙汰)를 만나 호변에서 도자(渡子; 뱃사공)가 되었다. 양안(兩岸)에 각기 1판(板)을 걸고 과도(過渡; 건너가다)할 사람이 있으면 한 번 판을 때렸다. 스님이 가로되 누구인가. 혹 가로되 나변(那邊; 저쪽 가)에 이르려고(過) 합니다. 스님이 이에 노를 춤추며 그를 맞이했다. 어느 날 한 노파가 한 해아(孩兒)를 안고 와서 이에 가로되 정뇨무도(呈橈舞棹; 노를 보이며 춤을 추다)는 곧 묻지 않습니다, 그래 말하시오 할미의 수중(手中)의 아이는 어느 곳에서 얻어 왔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바로 때렸다. 노파가 가로되 할미가 7자(子)를 낳았는데 6개는 지음(知音)을 만나지 못했고 다만 이 1개도 또한 소득(消得; 需要)하지 못했다. 바로 물 속을 향해 던졌다.
●渡子; 파도(擺渡; 물을 헤쳐 건네줌)하는 선부(船夫; 뱃사공). 자(子)는 널리 사람을 가리킴.
師後庵于洞庭臥龍山 徒侶臻萃 僧問 無師還有出身處也無 師曰 聲前古毳爛 問 堂堂來時如何 師曰 刺破眼 上堂 吾甞究涅槃經七八年 覩三兩段義似衲僧說話 又曰 休休 時有一僧出禮拜 請師擧 師曰 吾敎意如∴字三點 第一向東方下一點 點開諸菩薩眼 第二向西方下一點 點諸菩薩命根 第三向上方下一點 點諸菩薩頂 此是第一段義 又曰 吾敎意如摩醯首羅 擘開面門 竪亞一隻眼 此是第二段義 又曰 吾敎意猶如塗毒鼓 擊一聲遠近聞者皆喪 此是第三段義 時小嚴上座問 如何是塗毒皷 師以兩手按膝 亞身曰 韓信臨朝底 嚴無語
●出身; 省悟 徹悟
●古毳; 毳 毳衣 僧人衣服 毳 鳥獸的細毛
●∴字三點; 涅槃經二曰 猶如伊字三點 若並則不成伊 縱亦不成 如摩醯首羅面上三目 乃得成伊 三點若別亦不得成 我亦如是 解脫之法亦非涅槃 如來之身亦非涅槃 摩訶般若亦非涅槃 三法各異亦非涅槃 我今安住如是三法 爲衆生故名入涅槃 如世伊字 ▲新集藏經音義隨函錄四 伊字 上於耆反 正作∴也 竝者橫行作… 縱則竪行作⋮ 皆不成∴字也 ∴字三點者 喩解脫涅盤般若也 涅盤者卽法身也 義云人法各異故名三點也 解脫者妄心不生也 心若不生卽無所屬 心本寂滅名爲涅盤 心量廣大名摩訶般若 三事闕一則性不圓也
●摩醯首羅; <梵> Maheśvara 此云大自在 摩醯首羅天(大自在天)也 具有三眼 其中頂門豎立一眼 超於常人兩眼 具有以智慧徹照一切事理之特殊眼力 故稱頂門眼 後用來比喩卓越之見解 ▲華嚴經探玄記二 摩醯首羅者 依智論 此云大自在天 有八臂三眼 騎大白牛 知大千界雨渧數 以於大千界中 最極自在 更無過故立名也
●塗毒鼓; 謂塗有毒料 使人聞其聲卽死之鼓 禪宗以此比喩師家令學人喪心 或滅盡貪瞋癡之一言一句之機言 ▲大般泥洹經六 譬如良醫 合和諸藥 以塗其鼓 若有衆生鬪戰被瘡 聞彼鼓聲 一切悉愈 唯除命盡必應死者 此摩訶衍般泥洹經 法鼓音聲亦復如是 一切衆生聞其音聲 婬怒癡箭不樂菩提未發意者 犯四墮法及無間罪 一切除愈 唯除一闡提輩
●亞身; 亞 俯也 也作壓
●韓信臨朝底; 祖庭事苑四 韓信臨朝底 漢呂后因人告韓信欲反 后與蕭相國詐謀 謂信曰 雖病 可强入賀 信臨朝 呂后使武士縛信 斬之長樂鍾室 信方斬 曰 吾不用噲通(漢書作蒯通) 反爲女子所詐
스님이 후에 동정(洞庭) 와룡산(臥龍山)에 암자를 세웠는데 도려(徒侶)가 진췌(臻萃; 모이다)했다. 승문(僧問) 스승이 없어도 도리어 출신(出身)할 곳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師曰) 소리 앞에 고취(古毳)가 문드러진다. 묻되 당당(堂堂)히 올 때 어떻습니까. 사왈 눈을 찔리 깨뜨린다(刺破). 상당(上堂) 내가 일찍이 열반경을 칠팔 년 동안 연구했는데 삼량단(三兩段)을 보매 뜻이 납승의 설화와 흡사했다. 또 가로되 그만두리라(休), 그만두리라(休). 때에 어떤 한 중이 나와서 예배하고 스님의 거(擧)를 청했다. 사왈 나의 교의(敎意)는 이자삼점(∴字三點; ∴ 補入)과 같나니 제1은 동방을 향해 1점(點)을 떨어뜨려 제보살의 눈을 점개(點開)하고 제2는 서방을 향해 1점(點)을 떨어뜨려 제보살의 명근(命根)에 점을 찍고 제3은 상방을 향해 1점(點)을 떨어뜨려 제보살의 정수리에 점을 찍는다. 이것이 이 제1단(段)의 뜻이다. 또 가로되 나의 교의(敎意)는 마혜수라(摩醯首羅)가 면문(面門)을 벽개(劈開)하여 1척(隻)의 눈을 수압(竪亞; 세로로 누르다)함과 같나니 이것이 이 제2단(段)의 뜻이다. 또 가로되 나의 교의(敎意)는 마치 도독고(塗毒鼓)와 같아서 1성(聲)을 치면 원근의 듣는 자가 모두 상(喪)하나니 이것이 이 제3단(段)의 뜻이다. 때에 소엄(小嚴) 상좌가 묻되 무엇이 이 도독고(塗毒鼓)입니까. 스님이 두 손으로써 무릎을 어루만지며 몸을 숙이고(亞身) 가로되 한신(韓信)이 임조(臨朝)한 것이다(韓信臨朝底). 소엄이 말이 없었다.
●出身; 성오(省悟). 철오(徹悟).
●古毳; 취(毳)는 취의(毳衣)니 승인의 의복. 취(毳)는 조수(鳥獸)의 세모(細毛).
●∴字三點; 열반경2에 가로되 마치 이자삼점(伊字三點)과 같나니 만약 나란히 하면 곧 이(伊)를 이루지 못하고 세로로 해도 또한 이루지 못함과 같다. 마치 마혜수라(摩醯首羅) 면상(面上)의 3목(目)과 같아야 이에 이(伊)를 이룬다. 3점이 만약 따로면 또한 이룸을 얻지 못한다. 나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해탈의 법도 또한 열반이 아니며 여래의 몸도 또한 열반이 아니며 마하반야도 또한 열반이 아니니 3법이 각이(各異)하면 또한 열반이 아니다. 내가 여금에 이와 같은 3법에 안주하여 중생을 위하는 고로 이름이 입열반(入涅槃)이니 세상의 이자(伊字)와 같다. ▲신집장경음의수함록4. 이자(伊字) 상(上)은 어기반(於耆反; 이)이다. 바로 지으면 ∴다. 나란히 함이란 것은 가로 행하여 …로 지음이며 세로로 함이란 곧 세워 행해 ⋮로 짓거니와 다 ∴字를 이루지 못한다. 이자삼점(∴字三點)이란 것은 해탈ㆍ열반ㆍ반야에 비유한다. 열반이란 것은 곧 법신(法身)이니 뜻에 이르기를 인(人)과 법(法)이 각기 다른 고로 이름이 3점(點)이다. 해탈이란 것은 망심(妄心)이 생기하지 않음이다. 마음이 만약 생기하지 않으면 곧 소속이 없어 마음이 본래 적멸함을 이름하여 열반이다. 심량(心量)이 광대함을 마하반야(摩訶般若)라고 이름한다. 3사(事)에 하나라도 빠지면 곧 성품이 원만하지 못하다.
●摩醯首羅; <범> Maheśvara. 여기에선 이르되 대자재(大自在)니 마혜수라천(대자재천)임. 세 눈을 갖추어 있는데 그 중 정문(頂門; 정수리)에 한 눈이 수립(豎立; 똑바로 서다)했는데 보통 사람의 두 눈을 초월함. 지혜로 일체의 사리를 철조(徹照)하는 특수한 안력을 갖추고 있는지라 고로 호칭이 정문안(頂門眼)임. 후에 써서 탁월한 견해에 비유했음. ▲화엄경탐현기2. 마혜수라란 것은 지론에 의거하자면 여기에선 이르되 대자재천이다. 여덟 개의 팔과 세 개의 눈을 가졌으며 대백우(大白牛)를 탄다. 대천계의 빗방울 수를 안다. 대천계 중에 가장 극히 자재하여 다시 초과하는 게 없는 고로 이름을 세웠다.
●塗毒鼓; 이르자면 도(塗; 칠하다)에 독료(毒料)가 있어 그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곧 죽게 하는 북임. 선종에선 이것으로써 사가가 학인으로 하여금 마음을 죽이게 하거나 혹은 탐진치를 멸해 없애는 1언1구의 기언(機言)에 비유함. ▲대반니원경6. 비여 양의(良醫)가 여러 약을 합화(合和; 화합)하여 써 그 북에 바르면 만약 투전(鬪戰)하다가 다침을 입은 중생이 있더라도 그 북소리를 들으면 일체가 다 낫거니와 오직 명이 다했거나 반드시 응당 죽을 자는 제한다. 이 마하연(摩訶衍) 반니원경(般泥洹經)의 법고의 음성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일체중생이 그 음성을 들으면 음노치(婬怒癡)의 화살로 보리를 좋아하지 않거나 뜻을 발하지 않는 자와 4타법(墮法) 및 무간죄가 일체 제거되어 낫거니와 오직 일천제배(一闡提輩)만 제한다.
●亞身; 아(亞)는 구부림(俯)이니 또 엽(壓; 숙일 엽)으로 지음.
●韓信臨朝底; 조정사원4. 한신임조지(韓信臨朝底) 한(漢)의 여후(呂后; 呂太后니 한고조의 황후)가, 사람이 한신(韓信)이 반역하려 한다고 밀고함으로 인하여 여후가 소상국(蕭相國; 蕭何)과 사모(詐謀; 詐欺로 모의함)하여 한신에게 일러 가로되 비록 병들었더라도 가히 억지로라도 들어와 하례(賀禮)하라. 한신이 임조(臨朝; 朝見에 臨함)하자 여후가 무사를 시켜 한신을 포박하여 장락궁(長樂宮)의 종실(鍾室; 鐘室과 같음)에서 그를 베었다. 한신이 바야흐로 베려하자 가로되 내가 쾌통(噲通; 漢書에 蒯通으로 지어졌음. 한신의 참모인 괴통이 한신에게 자립하여 왕이 될 것을 권했음)을 쓰지 않아 도리어 여자에게 속는 바가 되었다(한서34에 나옴).
夾山下一僧到石霜 纔跨門便道 不審 霜曰 不必闍黎 僧曰 恁麽則珍重 又到師處 如前道不審 師噓一噓 僧曰 恁麽則珍重 方回步 師曰 雖是後生 亦能管帶 其僧歸 擧似夾山 山上堂曰 前日到巖頭石霜底阿師出來 如法擧似前話 其僧擧了 山曰 大衆還會麽 衆無對 山曰 若無人道得 山僧不惜兩莖眉毛道去也 乃曰 石霜雖有殺人刀 且無活人劒 巖頭亦有殺人刀 亦有活人劍 師與羅山卜塔基 羅山中路忽曰 和尙 師回顧曰 作麽 山擧手指曰 這裏好片地 師咄曰 瓜州賣瓜漢 又行數里歇次 山禮拜問曰 和尙豈不是三十年前在洞山而不肯洞山 師曰 是 又曰 和尙豈不是嗣德山又不肯德山 師曰 是 山曰 不肯德山卽不問 祇如洞山有何虧闕 師良久曰 洞山好佛 祇是無光 山禮拜
●管帶; 管理携帶
●不惜兩莖眉毛; 有以向人妄說之因 受眉鬚墮落之果之語
●瓜州賣瓜; 瓜州 今甘肅省敦煌縣之舊名 雖然非指瓜州之地 裏面含有如林中賣薪湖上鬻魚等之義
협산하(夾山下)의 1승이 석상(石霜)에 이르렀다. 겨우 문을 넘자 바로 말하되 불심(不審). 석상이 가로되 필요 없다(不必) 사리(闍黎)야.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진중(珍重). 또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앞과 같이 말하되 불심(不審). 스님이 허(噓)하며 한 번 허(噓)했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진중(珍重). 바야흐로 걸음을 돌리는데 사왈 비록 이 후생(後生)이지만 또한 능히 관대(管帶)하는구나. 그 중이 돌아가 협산에게 들어 보였다. 협산이 상당해 가로되 전일(前日) 암두와 석상에 이른(到) 아사(阿師)는 나와서 여법(如法)하게 전화(前話)를 들어 보여라. 그 중이 들어 마치자 협산이 가로되 대중은 도리어 아느냐.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협산이 가로되 만약 말하는(道得) 사람이 없다면 산승이 두 줄기의 눈썹을 아끼지 않고(不惜兩莖眉毛) 말하겠다. 이에 가로되 석상은 비록 살인도(殺人刀)가 있지만 다만(且) 활인검(活人劒)이 없다. 암두는 또한 살인도도 있고 또한 활인검도 있다. 스님이 나산(羅山; 道閑)과 함께 탑기(塔基)를 점쳤다(卜). 나산이 중로(中路)에 홀연히 가로되 화상. 스님이 돌아보고 가로되 무엇인가. 나산이 손을 들고 가로되 이 속이 좋은 편지(片地)입니다. 스님이 꾸짖고 가로되 과주에서 오이를 파는 자로구나(瓜州賣瓜漢). 또 몇 리를 가서 쉬던 차에 나산이 예배하고 문왈(問曰) 화상은 어찌 이, 30년 전 동산(洞山)에 있었지만 동산을 불긍(不肯)함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그렇다. 또 가로되 화상은 어찌 이, 덕산을 이었지만 또 덕산을 불긍함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그렇다. 나산이 가로되 덕산을 불긍함은 곧 묻지 않습니다만 지여(祇如) 동산이 무슨 휴궐(虧闕)이 있습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동산은 호불(好佛; 좋은 부처)이지만 다만 이 무광(無光)이다. 나산이 예배했다.
●管帶; 관리(管理)하고 휴대함.
●不惜兩莖眉毛; 타인을 향해 망설(妄說)한 인유로 눈썹이 떨어지는 과보를 받는다는 말이 있음.
●瓜州賣瓜; 과주(瓜州)는 지금의 감숙성 돈황현의 옛 이름. 비록 그러하나 과주의 땅을 가리킴이 아니니 이면에 예컨대(如) 숲 속에서 땔나무를 팔고 호수 위에서 물고기를 판다는 뜻을 함유했음.
僧問 利劍斬天下 誰是當頭者 師曰 暗 僧擬再問 師咄曰 這鈍漢出去 問 不歷古今時如何 師曰 卓朔地 曰 古今事如何 師曰 任爛 問僧 甚處來 曰 西京來 師曰 黃巢過後 還收得劒麽 曰 收得 師引頸近前曰 㘞 曰 師頭落也 師呵呵大笑 僧後到雪峰 峰問 甚處來 曰 巖頭來 峰曰 巖頭有何言句 僧擧前話 峰便打三十棒 趂出 問 二龍爭珠 誰是得者 師曰 俱錯 僧問雪峰 聲聞人見性 如夜見月 菩薩人見性 如晝見日 未審和尙見性如何 峰打拄杖三下 僧後擧前語問師 師與三摑 問 如何是三界主 師曰 汝還解喫鐵棒麽
●當頭; 正對著頭
●卓朔地; 卓朔 翹起 竪起 朔 蘇也 地 語尾助詞
●聲聞人見性; 涅槃經三十云 十住菩薩智慧力多三昧力少 是故不得明見佛性 聲聞緣覺三昧力多智慧力少 以是因緣不見佛性 諸佛世尊定慧等故 明見佛性了了無礙 如觀掌中菴摩勒果 見佛性者名爲捨相
승문(僧問) 이검(利劍)으로 천하를 베거늘(斬) 누가 이 당두(當頭)하는 자입니까. 사왈(師曰) 암(暗). 중이 재문(再問)하려 하자 스님이 꾸짖고(咄) 가로되 이(這) 둔한(鈍漢)아, 나가거라. 묻되 고금(古今)을 거치지(歷)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탁삭지(卓朔地)다. 가로되 고금사(古今事)가 어떠합니까. 사왈 문드러지는 대로 일임한다(任爛).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서경(西京)에서 옵니다. 사왈 황소(黃巢)가 지나간 후에 도리어 검(劒)을 수득(收得)했느냐. 가로되 수득했습니다. 스님이 목을 늘어뜨리며(引頸) 앞으로 다가가 가로되 화(㘞). 가로되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스님이 하하(呵呵)하며 크게 웃었다. 중이 후에 설봉(雪峰)에 이르자 설봉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암두에서 옵니다. 설봉이 가로되 암두가 어떤 언구가 있었느냐. 중이 전화(前話)를 들었다. 설봉이 바로 30방(棒) 때리고 쫓아내었다. 묻되 2룡(龍)이 쟁주(爭珠)하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모두 틀렸다(俱錯). 중이 설봉에게 묻되 성문인의 견성(聲聞人見性)은 밤에 달을 봄과 같고 보살인(菩薩人)의 견성은 낮에 해를 봄과 같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의 견성은 어떻습니까. 설봉이 주장자로 세 번(三下) 때렸다. 중이 후에 전어(前語)를 들어 스님에게 묻자 스님이 세 번 후려갈겨(摑) 주었다. 묻되 무엇이 이 3계의 주인(三界主)입니까. 사왈 너는 철방(鐵棒)을 먹을(喫; 承受) 줄 아느냐(解).
●當頭; 바로 머리를 대착(對著)함.
●卓朔地; 탁삭(卓朔)은 교기(翹起; 들어 일으킴). 수기(竪起; 세워 일으킴). 삭(朔)은 소(蘇; 깨어나다)임. 지(地) 어미조사(語尾助詞).
●聲聞人見性; 열반경30에 이르되 10주(住) 보살은 지혜의 힘은 많고 삼매의 힘은 적은지라 이런 고로 불성을 환히 봄을 얻지 못한다. 성문과 연각은 삼매의 힘은 많고 지혜의 힘은 적은지라 이 인연 때문에 불성을 보지 못한다. 제불세존은 정혜가 균등한 고로 불성을 환희 보아 요료(了了)히 걸림이 없나니 손바닥 속의 암마륵과(菴摩勒果)를 봄과 같다. 불성을 본다는 것은 이름하여 사상(捨相)이다.
德山一日謂師曰 我這裏有兩僧入山 住庵多時 汝去看他怎生 師遂將一斧去 見兩人在庵內坐 師乃拈起斧曰 道得也一下斧 道不得也一下斧 二人殊不顧 師擲下斧曰 作家作家 歸擧似德山 山曰 汝道他如何 師曰 洞山門下不道全無 若是德山門下 未夢見在 僧參 於左邊作一圓相 又於右邊作一圓相 又於中心作一圓相 欲成未成 被師以手一撥 僧無語 師便喝出 僧欲跨門 師却喚回問 汝是洪州觀音來否 曰 是 師曰 祇如適來左邊一圓相作麽生 曰 是有句 師曰 右邊圓相聻 曰 是無句 師曰 中心圓相作麽生 曰 是不有不無句 師曰 祇如吾與麽又作麽生 曰 如刀畫水 師便打 瑞巖問 如何是毗盧師 師曰 道甚麽 巖再問 師曰 汝年十七八未
덕산(德山)이 어느 날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나의 이 속(這裏)에 두 중이 있어 입산하여 주암(住庵)한 지 많은 시일이다. 네가 가서 그들이 어떠한지(怎生) 보아라(看). 스님이 드디어 한 도끼를 가지고 갔다. 두 사람이 암내(庵內)에 있으면서 앉은 것을 보고 스님이 이에 도끼를 집어 일으키며 가로되 말함을 얻어도 한 번 도끼를 내릴 것이며 말함을 얻지 못해도 한 번 도끼를 내리겠다. 두 사람이 달리 돌아보지 않았다. 스님이 도끼를 던져 떨어뜨리고 가로되 작가(作家)로다, 작가로다. 돌아와 덕산에게 들어 보였다. 덕산이 가로되 네가 말하라, 그들이 어떠한가. 사왈 동산문하(洞山門下)에선 전무(全無)하다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만약 이 덕산문하(德山門下)일진댄 꿈에도 보지 못하여 있습니다. 중이 참(參)해 좌변(左邊)에 1원상(圓相)을 짓고 또 우변(右邊)에 1원상을 짓고 또 중심(中心)에 1원상을 짓는데 이루려다가 이루지 못한 전에 스님이 손으로써 한 번 제거함(撥)을 입었다.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바로 할하고 쫗아내었다(喝出). 중이 문을 넘으려고 하는데 스님이 도리어 불러 돌아오게 하고 묻되 너는 이 홍주(洪州) 관음(觀音)에서 왔는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사왈 지여(祇如) 아까 좌변의 1원상은 무엇인가. 가로되 이 유구(有句)입니다. 사왈 우변의 원상은(圓相聻). 가로되 이 무구(無句)입니다. 사왈 중심의 원상은 무엇인가. 가로되 이 불유불무구(不有不無句)입니다. 사왈 지여(祇如) 나의 이러함(與麽)은 또 무엇인가. 가로되 칼로 물을 그음과 같습니다(如刀畫水). 스님이 바로 때렸다. 서암(瑞巖; 師彦)이 묻되 무엇이 이 비로사(毗盧師)입니까. 사왈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서암이 재문(再問)하자 사왈 너의 나이가 십칠팔(十七八)인가 아닌가.
問弓折箭盡時如何 師曰 去 問 如何是巖中的的意 師曰 謝指示 曰 請和尙答話 師曰 珍重 問 三界競起時如何 師曰 坐却著 曰 未審師意如何 師曰 移取廬山來 卽向汝道 問 起滅不停時如何 師喝曰 是誰起滅 問 輪中不得轉時如何 師曰 澁 問 路逢猛虎時如何 師曰 拶 問 如何是道 師曰 破草鞋與拋向湖裏著 問 萬丈井中如何得到底 師曰 吽 僧再問 師曰 脚下過也 問 古帆未挂時如何 師曰 小魚呑大魚 又僧如前問 師曰 後園驢喫草 邇後人或問佛問法問道問禪者 師皆作噓聲 師甞謂衆曰 老漢去時 大吼一聲了去 唐光啓之後 中原盜起 衆皆避地 師端居晏如也 一日賊大至 責以無供饋 遂倳刃焉 師神色自若 大呌一聲而終 聲聞數十里 卽光啓三年丁未四月八日也 門人後焚之 獲舍利四十九粒 衆爲起塔 諡淸嚴禪師
●邇後; 謂從此以後
묻되 활도 부러지고 화살도 다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암중(巖中)의 적적(的的; 진실)한 뜻입니까. 사왈 지시에 감사한다. 가로되 화상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사왈 진중(珍重). 묻되 3계(界)가 다투어 일어날 때 어떻습니가. 사왈 앉혀버려라(坐却著). 가로되 미심하오니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사왈 여산(廬山)을 취해 옮겨 온다면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묻되 기멸(起滅)하며 멈추지(停) 않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할(喝)하고 가로되 이 누구의 기멸(起滅)인가. 묻되 바퀴 속에서 회전(回轉; 轉)함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껄끄럽다(澁). 묻되 길에서 맹호를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짓눌러라(拶).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해진 짚신(破草鞋)을 호수(湖水) 속을 향해 던져 주어라. 묻되 만장(萬丈)의 우물 속에 어찌해야 바닥에 이름(到)을 얻습니까. 사왈 후(吽). 중이 다시 묻자 사왈 발 아래 지나간다(脚下過). 묻되 고범(古帆; 옛 돛)을 걸지(掛)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소어(小魚)가 대어(大魚)를 삼킨다. 또 중이 앞과 같이 묻자 사왈 후원(後園)에 나귀가 풀을 먹는다. 이후(邇後; 此後)에 사람이 혹 문불문법(問佛問法)하고 문도문선(問道問禪)하는 자에게 스님이 모두 허성(噓聲)을 지었다. 스님이 일찍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노한이 갈 때 일성(一聲)을 크게 부르짖으리라(大吼). 당 광계(光啓; 885-888) 후에 중원(中原)에 도적이 일어났고 대중이 모두 피지((避地)했는데 스님은 단거(端居)하며 안여(晏如; 安定. 安寧)했다. 어느 날 도적이 크게 이르러 공궤(供饋; 供給)가 없음을 책망하더니 드디어 칼을 꽂았다(倳刃). 스님이 신색(神色; 態度)이 자약(自若; 泰然)했고 일성(一聲)을 크게 부르짖으며 마쳤는데 소리가 수십 리에 들렸다. 곧 광계(光啓) 3년 정미(丁未; 887) 4월 8일이다. 문인(門人)이 후에 태워서 사리 49립(粒)을 획득했고 대중이 기탑(起塔)했다. 시호가 청엄대사(淸嚴大師)다.
●邇後; 이르자면 이로 좇아 이후(以後)에.
福州雪峰義存禪師
泉州南安曾氏子 家世奉佛 師生惡葷茹 於襁褓中聞鐘梵之聲 或見幡花像設 必爲之動容 年十二 從其父遊莆田玉㵎寺 見慶玄律師 遽拜曰 我師也 遂留侍焉 十七落髮 謁芙蓉常照大師 照撫而器之 後往幽州寶刹寺受戒 久歷禪會 緣契德山 唐咸通中回閩中雪峰創院 徒侶翕然 懿宗錫號眞覺禪師 仍賜紫袈裟
●家世; 家庭世系
●鍾梵; 寺院的鍾聲和誦經聲
●幡華; 同幡花 供佛的幢幡彩花
●像設; 祠祀的人像或神佛供像
●動容; 內心有所感動而表現於面容
복주(福州) 설봉(雪峰) 의존선사(義存禪師)
천주(泉州) 남안(南安) 증씨(曾氏)의 아들다. 가세(家世)가 봉불(奉佛)했고 스님은 출생하자 훈여(葷茹; 냄새 나는 모든 채소)를 싫어했고 강보(襁褓; 포대기) 속에서 종범(鍾梵)의 소리를 듣거나 혹 번화(幡華)나 상설(像設)을 보면 반드시 동용(動容)했다. 나이 12에 그의 부(父)를 따라 보전(莆田) 옥간사(玉㵎寺)를 유람했는데 경현율사(慶玄律師)를 보자 급히(遽) 절하며 가로되 나의 스승이다, 드디어 머물며 시봉했다, 17에 낙발(落髮)했고 부용(芙蓉; 부용산) 상조대사(常照大師)를 참알(參謁)하자 상조가 어루만지면 법기(法器)로 여겼다. 후에 유주(幽州) 보찰사(寶刹寺)로 가서 수계(受戒)했다. 오래 선회(禪會)를 경력(經歷‘ 經過)하다가 인연이 덕산(德山)에 계합했다. 당 함통(咸通; 860-873) 중 민중(閩中) 설봉(雪峰)으로 돌아와 창원(創院)했는데 도려(徒侶)가 흡연(翕然)했다. 의종(懿宗)이 호를 주어(錫號) 진각대사(眞覺大師)라 하고 인하여(仍) 자가사(紫袈裟)를 주었다(賜).
●家世; 가정(家庭)의 세계(世系).
●鍾梵; 사원의 종소리와 송경성(誦經聲).
●幡華; 번화(幡花)와 같음. 공불(供佛)의 당번(幢幡)의 채화(彩花).
●像設; 사사(祠祀; 祠堂에서 제사 지내다)의 인상(人像) 혹은 신불(神佛)에게 공양하는 상(供像)
●動容; 내심(內心)에 감동하는 바가 있어 면용(面容)에 표현(表現)함.
初與巖頭至澧州鼇山鎭阻雪 頭每日祇是打睡 師一向坐禪 一日喚曰 師兄師兄 且起來 頭曰 作甚麽 師曰 今生不著便 共文邃箇漢行脚 到處被他帶累 今日到此 又祇管打睡 頭喝曰 噇眠去 每日牀上坐 恰似七村裏土地 他時後日魔魅人家男女去在 師自點胸曰 我這裏未穩在 不敢自謾 頭曰 我將謂你他日向孤峰頂上盤結草庵 播揚大敎 猶作這箇語話 師曰 我實未穩在 頭曰 你若實如此 據你見處一一通來 是處與你證明 不是處與你剗却 師曰 我初到鹽官 見上堂擧色空義 得箇入處 頭曰 此去三十年 切忌擧著 又見洞山過水偈曰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頭曰 若與麽 自救也未徹在 師又曰 後問德山 從上宗乘中事 學人還有分也無 德山打一棒曰 道甚麽 我當時如桶底脫相似 頭喝曰 你不聞道 從門入者不是家珍 師曰 他後如何卽是 頭曰 他後若欲播揚大敎 一一從自己胸襟流出將來 與我蓋天蓋地去 師於言下大悟 便作禮起 連聲呌曰 師兄 今日始是鼇山成道
●七村裏土地; 七家村裏土地神 卽偏僻小村裏的土地神
●不著便; 不遇便宜 著 遇也 又附也 便 便宜
처음에 암두(巖頭)와 예주(澧州) 오산진(鰲山鎭)에 이르렀다가 눈에 막혔다(阻雪). 암두는 매일 다만 이 타수(打睡; 잠을 자다)했고 스님은 한결같이 좌선했다. 어느 날 불러 가로되 사형 사형, 다만 일어나시오. 두왈(頭曰) 무엇이라 하느냐. 사왈 금생에 편의를 만나지 못해(不著便) 문수(文邃) 그 자(箇漢)와 함께 행각하면서 도처에서 그의 대루(帶累)를 입었는데 금일 여기에 이르러 또 다만(祇) 타수(打睡)만 관대(管帶; 管)합니까. 암두가 꾸짖으며(喝) 가로되 당면(噇眠; 噇은 食貌니 취침의 뜻)하거라. 매일 상상(牀上)에 않은 게 칠촌 안의 토지(七村裏土地)와 흡사하니 다른 때 뒷날에 인가(人家)의 남녀를 마매(魔魅; 魔는 정신을 착란케 하는 것. 魅는 홀리는 것)하여 가 있으리라. 스님이 스스로 가슴을 가리키며(點胸) 가로되 나는 이 속이 안온(安穩; 穩)하지 못하여 있으니 감히 스스로 속이지 못합니다. 두왈(頭曰) 나는 장차 이르기를 네가 다른 날에 고봉정상(孤峰頂上)을 향해 초암(草庵)을 얼기설기 엮고 대교(大敎; 佛敎. 禪敎)를 파양(播揚)하리라 했더니 오히려 저개(這箇) 어화(語話)를 짓는가. 사왈 모갑이 실로 안온하지 못해 있습니다. 두왈(頭曰) 네가 만약 실로 이와 같다면 너의 견처에 의거해 하나하나 통고해 오너라. 옳은 곳은 너에게 증명해 주고 옳지 않은 곳은 너에게 잔각(剗却)해 주리라. 사왈 내가 처음 염관(鹽官; 齊安이니 馬祖의 法嗣)에 이르렀는데 상당(上堂)하여 색(色)이 공(空)한 뜻을 드는 것을 보고 이(箇) 입처(入處)를 얻었습니다. 두왈(頭曰) 이것은 30년이나 떨어졌으니 거착(擧著)함을 간절히 꺼린다. 또 동산(洞山)의 과수게(過水偈)를 보았는데 가로되 남으로부터 찾음을 간절히 꺼리노니/ 자꾸 멀어져 나와 소원(疏遠; 疎)하다/ 거(渠)는 이제 바로 이 나지만/ 나는 이제 이 거(渠)가 아니다 했습니다. 두왈(頭曰) 만약 그러하다면 자기를 구제함도 철저하지 못하리라. 스님이 또 가로되 후에 덕산에게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宗乘) 중의 일에 학인(學人; 설봉 자신)도 도리어 분한(分限)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하매 덕산이 1방 때리고 가로되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내가 당시에 마치 통 밑바닥이 빠짐과 상사(相似)했습니다. 암두가 할(喝)하고 가로되 네가 말함을 듣지 못했느냐, 문으로부터 들어온 것은 이 가진(家珍)이 아니다. 사왈 타후(他後)에 어찌해야 곧 옳겠습니까. 두왈(頭曰) 타후에 만약 대교(大敎)를 파양(播揚)코자 할진댄 낱낱이 자기의 흉금으로부터 유출(流出)하여 가지고 와야 나(自己)와 더불어 개천개지(蓋天蓋地)해 가리라. 스님이 언하(言下)에 대오했다. 바로 예배하고 일어나 연성(連聲)으로 부르짖으며 가로되 사형, 금일에야 비로소 이 오산(鼇山)에서 성도(成道)했다.
●七村裏土地; 7가촌(七家村) 손의 토지신이니 곧 편벽(偏僻; 외지다)한 작은 촌 속의 토지신.
●不著便; 편의를 만나지 못함. 착(著)은 우(遇)임. 또 부(附)임. 편(便)은 편의.
師在洞山作飯頭 淘米次 山問 淘沙去米 淘米去沙 師曰 沙米一時去 山曰 大衆喫箇甚麽 師遂覆却米盆 山曰 據子因緣 合在德山 洞山一日問師 作甚麽來 師曰 斫槽來 山曰 幾斧斫成 師曰 一斧斫成 山曰 猶是這邊事 那邊事作麽生 師曰 直得無下手處 山曰 猶是這邊事 那邊事作麽生 師休去〈汾陽代云 某甲早困也〉 師辭洞山 山曰 子甚處去 師曰 歸嶺中去 山曰 當時從甚麽路出 師曰 從飛猿嶺出 山曰 今回向甚麽路去 師曰 從飛猿嶺去 山曰 有一人不從飛猿嶺去 子還識麽 師曰 不識 山曰 爲甚麽不識 師曰 他無面目 山曰 子旣不識 爭知無面目 師無對
●飛猿嶺; 有二 一在福建邵武府 一在江西建昌府 [大慧書栲栳珠]
스님이 동산(洞山)에 있으면서 반두(飯頭)가 되었다. 쌀을 일던(淘) 차에 동산이 묻되 모래를 일어 쌀을 제거하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제거하느냐. 사왈 모래와 쌀을 일시에 제거합니다. 산왈(山曰) 대중은 저(箇) 무엇을 먹느냐. 스님이 드디어 쌀동이(米盆)를 엎어버렸다. 산왈(山曰) 자네의 인연에 의거하건대 합당히 덕산(德山)에 있어야 한다. 동산이 어느 날 스님에게 묻되 무엇을 하고 왔느냐. 사왈 조(槽; 구유. 절구)를 쪼개고 옵니다. 산왈(山曰) 몇 도끼질로 쪼개어 조성했는가. 사왈 한 도끼질로 쪼개어 조성했습니다. 산왈(山曰) 오히려 이는 저변(這邊; 이쪽)의 일이다. 나변(那邊; 저쪽)의 일은 어떠한가. 사왈 바로 하수(下手; 著手)할 곳이 없음을 얻습니다. 산왈(山曰) 오히려 이는 저변(這邊)의 일이다. 나변(那邊)의 일은 어떠한가. 스님이 쉬러 갔다〈汾陽이 代云 某甲은 일찍 피곤합니다〉. 스님이 동산(洞山)에게 고별했다. 산왈(山曰) 자네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사왈 영중(嶺中)으로 돌아갑니다. 산왈 당시에 어느 길로 좇아 나왔느냐. 사왈 비원령(飛猿嶺)으로 좇아 나왔습니다. 산왈 지금은 어느 길로 회향(回向)해 가느냐. 사왈 비원령으로 좇아갑니다. 산왈 어떤 한 사람은 비원령으로 좇아가지 않나니 자네가 도리어 아느냐. 사왈 알지 못합니다. 산왈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하느냐. 사왈 그는 면목(面目)이 없습니다. 산왈 자네가 이미 알지 못한다 했거늘 어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飛猿嶺; 둘이 있음. 하나는 복건 소무부에 있고 하나는 강서 건창부에 있음 [대혜서고로주].
住後 僧問 和尙見德山 得箇甚麽 便休去 師曰 我空手去 空手歸 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雷聲震地 室內不聞 又曰 闍黎行脚 爲甚麽事 問 我眼本正 因師故邪時如何 師曰 迷逢達磨 曰 我眼何在 師曰 得不從師 問 剃髮染衣 受佛依蔭 爲甚麽不許認佛 師曰 好事不如無 師問座主 如是兩字盡是科文 作麽生是本文 主無對〈五雲代云 更分三段著〉 問 如何是佛 師曰 寐語作甚麽 問 如何是覿面事 師曰 千里未是遠 問 如何是大人相 師曰 瞻仰卽有分 問 文殊與維摩對談何事 師曰 義墮也
●迷逢達磨; 迷妄者相逢初祖菩提達磨 多指領悟禪旨
●剃髮染衣; 剃去頭髮 換著黑色僧衣 指出家爲僧
●依蔭; 依隨庇蔭
●寐語; 說夢話 亂說
주후(住後) 승문(僧問) 화상이 덕산을 뵙고 저(箇) 무엇을 얻어 바로 쉬었습니까. 사왈 나는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師曰) 뇌성(雷聲)이 땅을 진동(震動)해도 실내에선 듣지 못한다. 또 가로되 사리(闍黎)가 행각함은 무슨 일을 위함이냐. 묻되 나의 눈은 본래 바른데 스승을 인한 고로 삿될 때는 어떻습니까. 사왈 미봉달마(迷逢達磨)했다. 가로되 나의 눈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왈 얻음은 스승을 좇음이 아니다. 묻되 체발염의(剃髮染衣)하고 부처의 의음(依蔭)을 받는데 무엇 때문에 부처를 인정(認定)함을 허락하지 않습니까. 사왈 좋은 일도 없음만 같지 못하다. 스님이 좌주(坐主)에게 묻되 여시(如是) 양자(兩字)는 모두 이 과문(科文; 條文)이다. 무엇이(作麽生) 이 본문(本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었다〈五雲이 代云 다시 三段으로 나누십시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매어(寐語)하여 무엇하랴. 묻되 무엇이 이 적면(覿面; 當面)의 일입니까. 사왈 천 리가 이 먼 것이 아니다. 묻되 무엇이 이 대인상(大人相)입니까. 사왈 첨앙(瞻仰)하기에 곧 분한이 있다. 묻되 문수(文殊)와 유마(維摩)가 무슨 일을 대담(對譚)했습니까. 사왈 의타(義墮; 話墮)했다.
●迷逢達磨; 미망자(迷妄者)가 초조 보리달마를 상봉함이니 다분히 선지(禪旨)를 영오(領悟)함을 가리킴.
●剃髮染衣; 두발을 깎아 제거하고 흑색 승의로 환착(換著)함이니 출가하여 승인이 됨을 가리킴.
●依蔭; 의수(依隨)하고 비음(庇蔭; 庇護)함.
●寐語; 꿈 이야기를 설함. 혼란한 말.
問 寂然無依時如何 師曰 猶是病 曰 轉後如何 師曰 船子下揚州 問 承古有言 師便作臥勢 良久起曰 問甚麽 僧再擧 師曰 虛生浪死漢 問 箭頭露鋒時如何 師曰 好手不中的 曰 盡眼沒標的時如何 師曰 不妨隨分好手 問 古人道 路逢達道人 不將語默對 未審將甚麽對 師曰 喫茶去 問僧 甚處來 曰 神光來 師曰 晝喚作日光 夜喚作火光 作麽生是神光 僧無對 師自代曰 日光火光 栖典座問 古人有言 知有佛向上事 方有語話分 如何是語話 師把住曰 道道 棲無對 師遂蹋倒 栖當下汗流
●虛生浪死; 虛度人生 糊塗而死 浪 空的 無用的
●中的; 箭射中靶心
●當下; 指卽時卽刻之意 與合下直下同義
묻되 적연(寂然)하여 의지함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오히려 이 병(病)이다. 가로되 전후(轉後)에 어떻습니까. 사왈 선자(船子; 子는 後綴)가 양주(揚州)에 내려간다. 묻되 듣건대(承) 고인이 말씀이 있었으니, 스님이 바로 드러눕는 형세를 지었다. 양구(良久)하고 일어나 가로되 무엇을 물었느냐. 중이 다시 들었다(擧). 스님이 가로되 허생낭사한(虛生浪死漢)아. 묻되 화살이 봉망(鋒鋩)을 드러내었을(箭頭露鋒) 때 어떻습니까. 사왈 호수(好手)는 중적(中的)하지 않는다. 가로되 눈을 다해도(盡眼) 표적(標的)이 없을(沒) 때 어떻습니까. 사왈 수분(隨分; 본분을 따르다)하는 호수(好手)에 방애되지 않는다. 묻되 고인이 말하되 길에서 달도(達道)한 사람을 만나면 어묵(語默)을 가지고 상대하지 말아라. 미심하오니 무엇을 가지고 상대합니까. 사왈 차 먹고 가거라(喫茶去).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신광(神光)에서 옵니다. 사왈 낮에는 일광(日光)이라 불러 짓고 밤에는 화광(火光)이라 불러 짓나니 무엇이(作麽生) 이 신광(神光)이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스스로 대왈(代曰) 일광화광(日光火光)이다. 서전좌(栖典座)가 묻되 고인이 말씀이 있었으니 불향상사(佛向上事)가 있음을 알아야(知有) 비로소 어화(語話)할 분한이 있다. 무엇이 이 어화입니까. 스님이 파주(把住)하고 가로되 말하라, 말하라. 서(栖)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드디어 밟아 넘어뜨렸다. 서(栖)가 당하(當下)에 땀을 흘렸다(汗流).
●虛生浪死; 인생을 헛되이 보내다가 호도(糊塗; 흐리터분함)하며 죽음. 랑(浪)은 공(空)한 것, 무용(無用)한 것.
●中的; 화살을 쏘아 과녁의 중심을 맞힘.
●當下; 즉시, 즉각의 뜻을 가리킴. 합하(合下), 직하와 같은 뜻.
問僧 甚處來 曰 近離浙中 師曰 船來陸來 曰 二途俱不涉 師曰 爭得到這裏 曰 有甚麽隔礙 師便打 問 古人道 覿面相呈時如何 師曰 是 曰 如何是覿面相呈 師曰 蒼天蒼天 師謂衆曰 此箇水牯牛年多少 衆皆無對 師自代曰 七十九也 僧曰 和尙爲甚麽作水牯牛去 師曰 有甚麽罪過 問僧 甚處去 曰 禮拜徑山和尙去 師曰 徑山若問汝 此間佛法如何 汝作麽生祇對 曰 待問卽道 師便打 後擧問鏡淸 這僧過在甚麽處 淸曰 問得徑山徹困 師曰 徑山在浙中 因甚麽問得徹困 淸曰 不見道遠問近對 師曰 如是如是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최근에 절중(浙中; 浙江)을 떠났습니다. 사왈(師曰) 배로 왔느냐, 뭍으로 왔느냐. 가로되 이도(二途)에 모두 건너지 않습니다. 사왈 어찌 이 속에 이름을 얻었는가. 가로되 무슨 격애(隔礙)가 있겠습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고인이 말하되 적면(覿面)하여 상정(相呈; 서로 보이다)할 때 어떠한가. 사왈 그렇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적면하여 상정함입니까. 사왈 창천(蒼天), 창천.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차개(此箇; 箇는 조사) 수고우(水牯牛)는 나이가 얼마인가(多少). 대중이 모두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스스로 대왈(代曰) 79다. 승왈 화상은 무엇 때문에 수고우가 되었습니까. 사왈 무슨 죄과(罪過)가 있으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경산화상(徑山和尙)에게 예배하러 갑니다. 사왈 경산이 만약 너에게 묻되 차간(此間)의 불법이 어떠한가 한다면 네가 어떻게 지대(祇對; 응대)하겠는가. 가로되 물음을 기다렸다가 곧 말하겠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후에 들어 경청(鏡淸; 道怤)에게 묻되 이 중의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가. 청왈(淸曰) 경산(徑山)에게 문득(問得; 得은 조사)하느라 철저히 피곤했습니다(徹困). 사왈 경산은 절중(浙中)에 있거늘 무엇으로 인해 문득(問得)하느라 철저히 피곤했는가. 청왈(淸曰) 말함을 보지 못했습니까. 멀리서 묻고 가까이에서 대답한다(遠問近對). 사왈 이와 같고 이와 같다.
一日謂長慶曰 吾見潙山問仰山 從上諸聖向甚麽處去 他道或在天上 或在人間 汝道仰山意作麽生 慶曰 若問諸聖出沒處 恁麽道卽不可 師曰 汝渾不肯 忽有人問 汝作麽生道 慶曰 但道錯 師曰 是汝不錯 慶曰 何異於錯 問僧 甚處來 曰 江西 師曰 與此間相去多少 曰 不遙 師竪起拂子曰 還隔這箇麽 曰 若隔這箇 卽遙去也 師便打出 問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箇入路 師曰 寧自碎身如微塵 終不敢瞎却一僧眼 問 四十九年後事卽不問 四十九年前事如何 師以拂子驀口打 僧辭去參靈雲問 佛未出世時如何 雲擧拂子 曰 出世後如何 雲亦擧拂子 其僧却回 師曰 返太速乎 曰 某甲到彼 問佛法不契乃回 師曰 汝問甚麽事 僧擧前話 師曰 汝問我 爲汝道 僧便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擧起拂子 曰 出世後如何 師放下拂子 僧禮拜 師便打〈後僧擧問玄沙 沙云 汝欲會麽 我與汝說箇喻 如人賣一片園 東西南北一時結契了也 中心樹子猶屬我在 崇壽稠云 爲當打伊解處 別有道理〉
어느 날 장경(長慶; 慧稜)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보매 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묻되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어느 곳으로 향해 갔는가. 그가 말하되 혹은 천상에 있고 혹은 인간에 있습니다. 네가 말하라, 앙산의 뜻이 무엇인가. 경왈(慶曰) 만약 제성의 출몰처(出沒處)를 묻는다면 이렇게 말함은 곧 옳지 않습니다. 사왈(師曰) 네가 온통(渾) 불긍(不肯)하는구나. 홀연히 어떤 사람이 물으면 네가 어떻게 말하겠는가. 경왈(慶曰) 단지 착(錯; 틀리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사왈 이 너는 불착(不錯)인가. 경왈(慶曰) 어찌 착(錯)과 다르겠습니까.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강서(江西)입니다. 사왈 차간(此間)과 서로의 거리(距離; 相去)가 얼마인가. 가로되 멀지 않습니다(不遙).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도리어 이것(這箇)에 막히지 않았는가. 가로되 만약 이것에 막혔다면 곧 멉니다(遙去也; 去는 조사). 스님이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묻되 학인이 총림에 처음으로(乍) 들어왔으니 스님이 저(箇) 입로(入路)를 지시하시기를 구걸합니다. 사왈 차라리(寧) 스스로 미진(微塵)과 같이 쇄신(碎身)할지언정 마침내 감히 1승(僧)의 눈을 멀어버리게 하지 않겠다. 묻되 사십구 년 후의 일은 곧 묻지 않습니다. 사십구 년 전의 일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불자로써 입에다가(驀口) 때렸다. 중이 고별하고 가서 영운(靈雲)을 참(參)해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영운이 불자를 들었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영운이 또한 불자를 들었다. 그 중이 돌아오자(却迴) 사왈 도리어 너무 빠르구나(返太速乎). 가로되 모갑이 거기에 이르러 불법을 물었으나 계합하지 않아 이에 돌아왔습니다(回). 사왈(師曰) 네가 무슨 일을 물었느냐. 중이 전화(前話)를 들었다. 사왈 네가 나에게 물어라, 너를 위해 말하겠다. 중이 바로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불자를 들어 일으켰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스님이 불자를 내려놓았다(放下).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후에 중이 들어 玄沙에게 묻자 현사가 이르되 네가 理會하려고 하느냐. 내가 너에게 저 비유를 설해 주겠다. 예컨대(如) 사람이 一片의 園을 팔았는데 동서남북을 일시에 결계(結契; 契約)하여 마쳤지만 中心의 樹子(子는 조사)는 오히려 나에게 속한다. 숭수조(崇壽稠; 契稠)가 이르되 마땅히 그의 解處를 때림이 되는가, 달리 도리가 있는가〉.
師擧 六祖道 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心動 乃曰 大小祖師 龍頭蛇尾 好與二十拄杖 時太原孚上座侍立 不覺齩齒 師曰 我適來恁麽道 也好喫二十拄杖 師行脚時參烏石觀和尙 纔敲門 石問 誰 師曰 鳳凰兒 石曰 來作麽 師曰 來啗老觀 石便開門搊住曰 道道 師擬議 石拓開 閉却門 師住後示衆曰 我當時若入得老觀門 你這一隊噇酒糟漢向甚麽處摸索 師問慧全 汝得入處作麽生 全曰 共和尙商量了 師曰 甚麽處商量 曰 甚麽處去來 師曰 汝得入處又作麽生 全無對 師便打 全坥問 平田淺草 麈鹿成羣 如何射得麈中主 師喚全坥 坥應諾 師曰 喫茶去 問僧 甚處來 曰 潙山來 師曰 潙山有何言句 曰 某甲曾問如何是祖師西來意 潙山據坐 師曰 汝肯他否 曰 某甲不肯他 師曰 潙山古佛 汝速去懺悔〈玄沙云 山頭老漢蹉過潙山也〉
●烏石觀; 福州烏石靈觀禪師 嗣黃檗希運 南嶽下四世 [聯燈會要八]
●老觀; 唐代僧靈觀 世稱老觀和尙
●搊住; 搊 拘也 持也
●噇酒糟漢; 醉漢 對癡迷不悟者的斥罵語
●古佛; 對先佛或古德之尊稱 卽指古時之佛 過去七佛 或指辟支佛 釋迦 盧舍那佛等 或對有德高僧之尊稱 大宋僧史略上 漢末魏初 傳譯漸盛 或翻佛爲衆祐 或翻辟支爲古佛 又按六祖壇經 古佛應世 數量不可計 今以七佛始 故知古佛亦指過去七佛 禪林中 用以尊稱有德高僧者 趙州古佛 曹谿眞古佛 宏智古佛 羅山古佛等 屢見於禪錄 [傳燈錄二十八 碧巖錄第十六則 從容錄第四十二則 大慧語錄十]
스님이 거(擧)했다. 6조가 말하되 이 바람 움직임이 아니며 이 깃발 움직임이 아니라 인자(仁者)의 마음이 움직임이다. 이에 가로되 대소(大小) 조사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다, 좋이 20주장(拄杖) 주어야 한다. 때에 태원부(太原孚) 상좌가 시립(侍立)했다가 불각(不覺)에 이를 깨물었다(齩齒). 사왈 내가 아까 이렇게 말한 것도 또한 좋이 20주장(拄杖) 먹어야 한다. 스님이 행각할 때 오석관(烏石觀; 靈觀) 화상을 참(參)했다. 겨우 문을 두드리자 오석(烏石)이 묻되 누구인가. 사왈 봉황아(鳳凰兒)입니다. 오석이 가로되 와서 무엇하려느냐. 사왈 와서 노관(老觀)을 먹습니다(啗). 오석이 바로 문을 열고 추주(搊住; 잡아 머물게 함)하고 가로되 말하라, 말하라.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오석이 밀어 젖히고(拓開) 문을 닫아버렸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시중(示衆)해 가로되 내가 당시에 만약 노관(老觀)의 문에 입득(入得)했다면 너희 이 일대(一隊)의 당주조한(噇酒糟漢; 술 지게미 먹은 자)이 어느 곳을 향해 모색(摸索)하겠는가. 스님이 혜전(慧全)에게 묻되 네가 득입(得入)한 곳이 어떠한가. 전왈(全曰) 화상과 함께 상량(商量)했습니다. 사왈 어느 곳에서 상량했는가. 가로되 어느 곳에 갔다 오셨습니까(甚麽處去來). 사왈 너의 득입한 곳은 또 어떠한가. 혜전이 대답이 없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 전탄(全坦)이 묻되 평전(平田)의 얕은 풀(淺草)에 주록(麈鹿; 큰 사슴과 사슴)이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어찌해야 주(麈) 중의 주(主)를 사득(射得)하겠습니까. 스님이 전탄을 불렀다. 전탄이 응낙하자 사왈 차 먹고 가게나(喫茶去).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위산(潙山)에서 왔습니다. 사왈 위산이 어떤 언구가 있었느냐. 가로되 모갑이 일찍이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위산이 거좌(據坐)했습니다. 사왈 네가 그를 수긍하느냐. 승왈 모갑은 그를 수긍하지 않습니다. 사왈 위산은 고불(古佛)이다. 너는 속히 가서 참회하라〈玄沙가 이르되 山頭老漢이 위산을 蹉過했다〉.
●烏石觀; 복주 오석 영관선사(靈觀禪師)니 황벽희운을 이었고 남악하 4세 [연등회요8].
●老觀; 당대승 영관(靈觀)은 세칭이 노관화상(老觀和尙).
●搊住; 추(搊)는 구(拘)임. 지(持)임.
●噇酒糟漢; 취한 자. 어리석고 혼미하여 깨치지 못한 자에 대한 척매어(斥罵語; 가리키며 욕하는 말).
●古佛; 선불(先佛)이나 혹 고덕에 대한 존칭. 곧 옛날의 부처나 과거 7불을 가리키거나 혹은 벽지불ㆍ석가ㆍ로사나불 등을 가리키거나 혹은 덕이 있는 고승에 대한 존칭임. 대송승사략상 한말위초(漢末魏初)에 전역(傳譯)이 점차 왕성해지면서 혹 부처를 번역해 중우(衆祐)라 하고 혹은 벽지(辟支)를 번역해 고불이라 했다. 또 육조단경을 안험컨대 고불의 응세(應世)는 수량을 가히 계산치 못하나니 여금에 7불로써 비롯한다. 고로 알지니 고불은 또한 과거 7불을 가리킴. 선림 중에선 덕이 있는 고승의 존칭으로 사용했으니 조주고불ㆍ조계진고불ㆍ굉지고불ㆍ나산고불 등이며 자주 선록에 보임 [전등록28. 벽암록 제16칙. 종용록 제42칙. 대혜어록10].
閩王問曰 擬欲葢一所佛殿去時如何 師曰 大王何不葢取一所空王殿 曰 請師樣子 師展兩手〈雲門云 一擧四十九〉 僧問 學人道不得處 請師道 師曰 我爲法惜人 師擧拂子示一僧 其僧便出去〈長慶擧似王延彬大傅了 乃曰 此僧合喚轉與一頓棒 王曰 和尙是甚麽心行 曰 幾放過〉 師問長慶 古人道前三三後三三 意作麽生 慶便出去〈鵞湖別云 喏〉 問僧 甚處來 曰 藍田來 師曰 何不入草〈長慶云 險〉
●樣子; 模樣 模仿的樣式
●王延彬; (886-930) 字表文 武肅王王審邽長子 祖籍河南光州固始 生於泉州 唐末五代任泉州刺史 累封至檢校太傅開國候 通禪理 嗣法於長慶慧稜 卒贈侍中 長興元年逝世 [百度百科 五燈會元八]
●大傅; 同太傅 天子或太子之師 助導天子而參與國政官職名也 宋史志百十四曰 宋承唐制 以大師大傅大保爲三師 大尉司徒司空爲三公
●一頓; 頓 量詞 名量用于飯的餐數 動量用于喫飯 斥責 勸說 打罵等行爲的次數 或說 唐土之刑 打罪人二十棒爲一頓
민왕(閩王)이 문왈(問曰) 한 곳(一所)의 불전(佛殿)을 덮으려고(葢)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대왕은 왜 한 곳의 공왕전(空王殿)을 덮지(葢取) 않습니까. 가로되 스님에게 양자(樣子)를 청합니다. 스님이 두 손을 폈다〈雲門云 一擧에 四十九다〉. 승문(僧問) 학인이 말함을 얻지 못하는 곳을,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나는 법을 위하고 사람을 아낀다(惜). 스님이 불자를 들어 1승(僧)에게 보이자 그 중이 바로 나갔다〈長慶(慧稜)이 王延彬 大傅에게 들어 보이고는 이에 가로되 이 중은 합당히 환전(喚轉; 불러 돌이키다)하여 一頓棒을 주었어야 한다. 王曰 화상은 이 무슨 心行입니까. 가로되 거의 放過할 뻔했다〉. 스님이 장경(長慶)에게 묻되 고인이 말한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은 뜻이 무엇인가. 장경이 바로 나갔다〈鵝湖가 別云 낙(喏)〉.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남전(藍田)에서 옵니다. 사왈 왜 입초(入草)하지 않았느냐〈長慶云 위험하다(險)〉
●樣子; 모양(模樣). 모방(模仿)의 양식(樣式).
●王延彬; (886-930) 자는 표문(表文)이며 무숙왕(武肅王) 왕심규(王審邽)의 장자며 조적(祖籍)은 하남 광주 고시며 천주에서 출생했음. 당말 오대에 천주자사(泉州刺史)에 임명되었고 누봉(累封; 최종의 최고의 封贈)이 검교태부(檢校太傅) 개국후(開國候)였음. 선리(禪理)에 통달했고 장경혜릉(長慶慧稜)의 법을 이었음. 졸하자 시중(侍中)을 추증했으며 장흥(長興) 원년에 세상을 떠났음 [백도백과. 오등회원8].
●大傅; 태부(太傅)와 같음. 천자 혹 태자의 스승이니 천자를 조도(助導)하면서 국정에 참여하는 관직의 이름임. 송사지114(宋史志百十四)에 가로되 송은 당제(唐制)를 계승해 태사(大師)ㆍ태부(大傅)ㆍ태보(大保)를 3사(師)로 삼았고 태위(大尉)ㆍ사도(司徒)ㆍ사공(司空)을 3공(公)으로 삼았다.
●一頓; 돈(頓) 양사니 명량(名量)으론 밥의 먹는 수(數)에 쓰이고 동량(動量)으론 끽반(喫飯)ㆍ척책(斥責)ㆍ권설(勸說)ㆍ타매(打罵) 등의 행위의 차수(次數; 次例의 수)에 쓰임. 혹은 설하기를 당토(唐土)의 형벌은 죄인을 때리면서 20방(棒)을 1돈(頓)으로 삼는다 함.
上堂 南山有一條鼈鼻蛇 汝等諸人切須好看 長慶出曰 今日堂中大有人喪身失命 雲門以拄杖攛向師前 作怕勢 有僧擧似玄沙 沙曰 須是稜兄始得 然雖如是 我卽不然 曰 和尙作麽生 沙曰 用南山作麽 一日 有兩僧來 師以手拓庵門 放身出曰 是甚麽 僧亦曰 是甚麽 師低頭歸庵 僧辭去 師問 甚麽處去 曰 湖南 師曰 我有箇同行住巖頭 附汝一書去 書曰 某書上師兄 某一自鼇山成道後 迄至于今 飽不飢 同參某書上 僧到巖頭 問 甚麽處來 曰 雪峰來 有書達和尙 頭接了 乃問僧 別有何言句 僧遂擧前話 頭曰 他道甚麽 曰 他無語低頭歸庵 頭曰 噫 我當初悔不向伊道末後句 若向伊道 天下人不奈雪老何 僧至夏末 請益前話 頭曰 何不早問 曰 未敢容易 頭曰 雪峰雖與我同條生 不與我同條死 要識末後句 祇這是
●鼈鼻蛇; 蛇名 其鼻如鼈 此蛇最毒 傷人無藥可醫矣 比喩爲本來眞面目 或指雪峰自身 又喩指險惡疾速之機鋒
상당(上堂). 남산에 한 줄기의 별비사(鼈鼻蛇)가 있나니 너희 등 제인은 간절히 잘 봄을 써라(切須好看). 장경(長慶; 慧稜)이 나와 가로되 금일 승당 중에 대유인(大有人)이 상신실명(喪身失命)하리라. 운문이 주장자를 스님의 앞을 향해 던지고(攛) 두려워하는 형세를 지었다. 어떤 중이 현사에게 들어 보이자 현사가 가로되 모름지기 이는 능형(稜兄; 長慶慧稜)이라야 비로소 옳다.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으나 나는 곧 그렇지 않다.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현사가 가로되 남산을 써서 무엇하리오. 어느 날 어떤 두 중이 왔다. 스님이 손으로써 암자의 문을 밀치고(拓) 몸을 놓아 내면서(放身出) 가로되 이 뭣고(是甚麽). 중도 또한 가로되 이 뭣고. 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다. 중이 고별하고 떠나자 스님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호남(湖南)입니다. 사왈 나에게 저(箇) 동행(同行)이 있어 암두(巖頭)에 거주한다. 너에게 일서(一書)를 부치겠다(附). 서(書)에 가로되 모(某)가 사형에게 써서 올립니다(書上). 모(某)가 한 번 오산(鼇山)으로부터 성도(成道)한 후에 지우금(至于今)에 이르도록(迄) 배불러 주리지 않습니다. 동참(同參) 모(某)가 써서 올립니다(書上). 중이 암두에 이르자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설봉에서 옵니다. 서신(書信)이 있어 화상에게 전달(傳達; 達)합니다. 암두가 접수하고 나서 이에 중에게 묻되 달리 어떤 언구가 있었는가. 중이 드디어 앞의 화(話)를 들었다. 두왈(頭曰) 그는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가로되 그는 말이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갔습니다. 두왈(頭曰) 희(噫; 한숨 쉴 희. 슬플 희)라, 내가 당초에 그를 향해 말후구(末後句)를 말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구나. 만약 그를 향해 말했더라면 천하인이 설로(雪老; 雪峯老人)를 어찌하지 못했으리라. 중이 하말(夏末)에 이르러 다시 앞의 화(話)를 청익(請益)했다. 두왈(頭曰) 왜 일찍 묻지 않았는가. 가로되 감히 용이(容易)치 않았습니다. 두왈(頭曰) 설봉이 비록 나와 동조생(同條生)이지만 나와 동조사(同條死)가 아니다. 말후구를 알고자 한다면 단지 이것이 이것이다.
●鼈鼻蛇; 뱀 이름. 그 코가 자라와 같으며 이 뱀은 가장 독하므로 사람을 상해하면 가히 치료할 약이 없음. 비유로 본래의 진면목으로 삼음. 혹은 설봉 자신을 가리킴. 또 비유로 험악하고 질속(疾速)한 기봉을 가리킴.
上堂 盡大地撮來如粟米粒大 拋向面前 漆桶不會 打鼓普請看〈長慶問雲門曰 雪峰與麽道 還有出頭不得處麽 門曰 有 曰 作麽生 門曰 不可總作野狐精見解 又曰 狼籍不少〉 問僧 甚麽處去 曰 識得卽知去處 師曰 你是了事人 亂走作麽 曰 和尙莫塗汙人好 師曰 我卽不塗汙你 古人吹布毛作麽生 與我說來看 曰 殘羹餿飯已有人喫了 師休去 有一僧在山下卓庵多年 不剃頭 畜一長柄杓 溪邊舀水 時有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主曰 溪深杓柄長 師聞得 乃曰 也甚奇怪 一日將剃刀同侍者去訪 纔相見便擧前話問 是庵主語否 主曰 是 師曰 若道得 卽不剃你頭 主便洗頭 胡跪師前 師卽與剃却
●狼籍; 同狼藉 狼臥之藉也 散亂之貌 籍 通藉
●了事; 一明事理 會辦事 二禪家謂了悟眞如本性 了結生死大事爲了事 三禪家又將善於通過語言來表說 或獲取知識見解稱作了事 幷非眞正了却參禪大事 此指三
●塗汙; 同塗汚 猶言染汚 侮辱
●殘羹餿飯; 比喩陳腐的話語思想等
●剃刀; 剃除毛髮者
상당(上堂) 온 대지를 움켜(撮) 오니 좁쌀알(粟米粒)의 크기와 같다. 면전을 향해 던져도 칠통(漆桶)은 알지 못하니 북을 쳐 보청(普請)해서 보아라〈長慶이 雲門에게 물어 가로되 설봉의 이러한 말씀이 도리어 出頭함을 얻지 못할 곳이 있는가. 門曰 있다. 가로되 무엇인가. 門曰 모두 야호정(野狐精)의 견해를 지음은 옳지 못하다. 又曰(저본에 文曰로 지었음) 낭자(狼籍)함이 적지 않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식득(識得)하면 곧 거처(去處)를 알 것입니다. 사왈 너는 이 요사인(了事人)이거늘 어지럽게 달려 무엇하려느냐. 가로되 화상은 사람을 도오(塗汙)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사왈 나는 곧 너를 도오하지 않는다. 고인(古人; 鳥窠)이 포모(布毛)를 붊이 어떠한가, 나를 위해 설해 보아라. 가로되 남은 국과 쉰 밥(殘羹餿飯)은 이미 어떤 사람이 먹었습니다. 스님이 쉬러 갔다. 어떤 1승(僧)이 산 아래에 있으면서 암자를 세운 지 여러 해였다. 머리를 깎지 않고 하나의 긴 자루 구기(杓)를 수용(受用; 畜)해 개울 가에서 물을 펐다(舀).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인가. 암주(庵主; 主)가 가로되 개울이 깊어 구기 자루가 길다. 스님이 듣고서(聞得) 이에 가로되 또한 매우 기괴(奇怪)하다. 어느 날 체도(剃刀)를 가지고 시자와 함께 가서 방문했다. 겨우 상견하자 바로 전화(前話)를 들고 묻되 이는 암주의 말인가. 암주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사왈 만약 말함을 얻으면 곧 너의 머리를 깎지 않겠다. 암주가 바로 세두(洗頭)하고 스님 앞에 호궤(胡跪)했다. 스님이 곧 깎아(剃却) 주었다.
●狼籍; 낭자(狼藉)와 같음. 이리가 눕는 깔개니 산란한 모양임. 자(籍)는 자(藉)와 통함.
●了事; 1. 사리를 밝힘. 판사(辦事; 공무를 처리함)를 앎. 2. 선가에서 이르기를 진여의 본성을 요오(了悟)하여 생사대사를 요결(了結)함을 요사(了事)라 함. 3. 선가가 또 어언을 통과하여 표설(表說)함을 잘하거나 혹 지식의 견해를 획취(獲取)함을 가지고 요사(了事)라고 호칭함. 모두 진정으로 참선의 대사를 요각(了却; 끝을 맺다)함이 아님. 여기에선 3을 가리킴.
●塗汙; 도오(塗汚)와 같음. 오염ㆍ모욕(侮辱)이라고 말함과 같음.
●殘羹餿飯; 진부(陳腐)한 화어(話語)와 사상 등에 비유함.
●剃刀; 모발(毛髮)을 깎아 제거하는 것.
師領徒南遊 時黃涅槃預知師至 搘䇿前迎 抵蘇溪邂逅 師問 近離何處 槃曰 辟支巖 師曰 巖中還有主麽 槃以竹䇿敲師轎 師乃出轎相見 槃曰 曾郞萬福 師遽展丈夫拜 槃作女人拜 師曰 莫是女人麽 槃又設兩拜 遂以竹䇿畫地 右繞師轎三匝 師曰 某甲三界內人 你三界外人 你前去 某甲後來 槃回 師隨至止囊山憩數日 槃供事隨行徒衆 一無所缺 上堂 此事如一片田地相似 一任諸人耕種 無有不承此恩力者 玄沙曰 且作麽生是這田地 師曰 看 沙曰 是卽是 某甲不與麽 師曰 你作麽生 沙曰 祇是人人底 三聖問 透網金鱗 以何爲食 師曰 待汝出網來向汝道 聖曰 一千五百人善知識 話頭也不識 師曰 老僧住持事繁
●搘䇿; 搘 同支 支撑 䇿 策的異體字 策 拐杖
●丈夫拜; 謂女人拜也 異說頗多 但普通爲座拜
스님이 도중(徒衆; 徒)을 거느리고 남유(南遊)했다. 때에 황열반(黃涅槃)이 스님의 이름을 미리 알고 지책(搘䇿; 지팡에 기댐)하여 앞으로 나아가 맞이했는데(前迎) 소계(蘇溪)에 다다라 해후(邂逅)했다. 스님이 묻되 죄근에 어느 곳을 떠났습니까. 반왈(槃曰) 벽지암(辟支巖)입니다. 사왈 암중(巖中)에 도리어 주(主)가 있습니까. 열반이 죽책(竹䇿; 대지팡이)으로써 스님의 가마(轎)를 두드렸다. 스님이 이에 가마에서 나와 상견했다. 반왈(槃曰) 증랑(曾郞; 설봉의 姓이 曾)은 만복(萬福)하십시오. 스님이 급히 장부배(丈夫拜)를 전개하자 열반이 여인배(女人拜)를 지었다. 사왈 이 여인이 아닙니까. 열반이 또 양배(兩拜)를 베풀었다. 드디어 대지팡이(竹䇿)로써 땅에 긋고(畫) 스님의 가마를 세 바뀌 우요(右繞)했다. 사왈 모갑은 3계(界) 안의 사람이고 그대(你)는 3계 밖의 사람입니다. 그대는 앞으로 가십시오. 모갑은 뒤에 오겠습니다. 열반이 돌아가자(回) 스님이 따라 지낭산(止囊山)에 이르러 며칠 쉬었는데(憩) 열반이 수행(隨行)하는 도중(徒衆)을 공사(供事; 공급하며 모심)하면서 하나도 결(缺)한 바가 없었다. 상당(上堂) 차사(此事)는 마치 일편전지(一片田地)와 상사(相似)하여 제인(諸人)의 경종(耕種)에 일임하나니 이 은력(恩力)을 승수(承受; 承)하지 않는 자가 있지 않다. 현사(玄沙)가 가로되 다만(且) 무엇이 이, 이(這) 전지(田地)입니까. 사왈 보아라(看). 사왈(沙曰) 옳기는 곧 옳지만 모갑은 이러하지 않습니다. 사왈 너는 어떠한가. 사왈(沙曰) 다만(祇) 이, 인인의 것입니다(人人底). 삼성(三聖)이 묻되 그물을 뚫은 금린(透網金鱗)은 무엇으로써 먹이를 삼는가. 사왈 네가 출망(出網)하여 옴을 기다렸다가 너를 향해 말하겠다. 삼성이 가로되 1천5백 인의 선지식이 화두(話頭)도 또한 알지 못하는가. 사왈 노승은 주지의 일이 번다(繁多; 繁)하다.
●搘䇿; 지(搘) 지(支)와 같음. 지탱(支撑). 책(䇿) 책(策)의 이체자. 책(策) 괴장(拐杖; 지팡이).
●丈夫拜; 여인배(女人拜)를 말함이나 이설이 파다함. 다만 보통은 좌배(座拜)가 됨.
上堂 盡大地是箇解脫門 把手拽伊不肯入 時一僧出曰 和尙怪某甲不得 又一僧曰 用入作甚麽 師便打 玄沙謂師曰 某甲如今大用去 和尙作麽生 師將三箇木毬一時拋出 沙作斫牌勢 師曰 你親在靈山方得如此 沙曰 也是自家事 一日陞座 衆集定 師輥出木毬 玄沙遂捉來安舊處 師一日在僧堂內燒火 閉却前後門 乃呌曰 救火救火 玄沙將一片柴從牕櫺中拋入 師便開門 問 古㵎寒泉時如何 師曰 瞪目不見底 曰 飮者如何 師曰 不從口入 僧擧似趙州 州曰 不從口入 不可從鼻孔裏入 僧却問 古㵎寒泉時如何 州曰 苦 曰 飮者如何 州曰 死 師聞得 乃曰 趙州古佛 遙望作禮 自此不答話
상당(上堂) 온 대지가 시개(是箇; 箇는 조사) 해탈문(解脫門)이거늘 손잡고 그(伊)를 끌어도(拽) 들어감을 긍정하지 않는다. 때에 1승(僧)이 나와 가로되 화상은 모갑을 괴이히 여김을 얻지 못합니다. 또 1승이 가로되 들어감을 써서 무엇합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현사(玄沙)가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모갑이 여금에 대용(大用)하여 가리니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세 개의 목구(木毬)를 가져다 일시에 던져 내었다. 현사가 작패(斫牌)하는 자세를 지었다. 사왈 네가 친히 영산(靈山)에 있은지라 바야흐로 이와 같음을 얻었다. 현사가 가로되 또한 이는 자가(自家)의 일입니다. 어느 날 승좌(陞座)하자 대중이 집정(集定)했다. 스님이 목구(木毬)를 굴려(輥) 내었다. 현사가 드디어 잡아서(捉來) 구처(舊處)에 안치했다(安). 스님이 어느 날 승당(僧堂) 안에 있으면서 불지르고(燒火) 앞뒤의 문을 닫아버리고 이에 부르짖어 가로되 구화(救火; 화재를 撲滅)하라, 구화(救火)하라. 현사가 한 조각 섶을 가져다 창령(牕櫺; 창살) 가운데로 좇아 던져 넣었다(入). 묻되 고간(古㵎)이 한천(寒泉)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징목(瞪目; 눈을 크게 부릅뜨다)하여도 밑을 보지 못한다. 가로되 마시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입으로 좇아 들어가지 않는다. 중이 조주(趙州)에게 들어 보이자 주왈(州曰) 입으로 좇아 들어가지 않는다 하여 콧구멍 속으로 좇아 들어간다 함은 옳지 못하다. 중이 도리어 묻되 고간(古㵎)이 한천(寒泉)일 때 어떻습니까. 주왈(州曰) 괴롭다(苦). 가로되 마시는 자는 어떻습니까. 주왈 죽는다(死). 스님이 듣고서(聞得) 이에 가로되 조주는 고불(古佛)이로다. 멀리서 바라보며 작례(作禮)했다. 이로부터 답화(答話)하지 않았다.
師因閩王封柑橘各一顆 遣使送至 柬問 旣是一般顔色 爲甚名字不同 師遂依舊封回 王復馳問玄沙 沙將一張紙葢却 問僧 近離甚處 曰 覆船 師曰 生死海未渡 爲甚麽覆却船 僧無語 乃回擧似覆船 船曰 何不道渠無生死 僧再至 進此語 師曰 此不是汝語 曰 是覆船恁麽道 師曰 我有二十棒寄與覆船 二十棒老僧自喫 不干闍黎事 問 大事作麽生 師執僧手曰 上座將此問誰 有僧禮拜 師打五棒 僧曰 過在甚麽處 師又打五棒 喝出 問僧 甚處來 曰 嶺外來 師曰 還逢達磨也無 曰 靑天白日 師曰 自己作麽生 曰 更作麽生 師便打 師送僧出 行三五步 召曰 上座 僧回首 師曰 途中善爲 問 拈槌竪拂 不當宗乘 未審和尙如何 師竪起拂子 僧乃抱頭出去 師不顧〈法眼代云 大衆看此一員戰將〉 問 三乘十二分敎 爲凡夫開演 不爲凡夫開演 師曰 不消一曲楊柳枝 師謂鏡淸曰 古來有老宿 引官人巡堂曰 此一衆盡是學佛法僧 官人曰 金屑雖貴 又作麽生 老宿無對 淸代曰 比來拋甎引玉〈法眼別云 官人何得貴耳賤目〉
●柑橘; 柑 柑屬植物的泛稱 芸香科 種類較多 常綠灌木 或小喬木 葉長卵形 開白色小花 果實比橘大 球形稍扁 橙黃色 味酸甛不一 橘 果木名 果實爲橘子 芸香科 常綠灌木和小喬木 初夏開花 白色 果扁圓形 紅或橙黃色 味酸甛不一
●嶺外; 五嶺以南地區
●靑天白日; 喩禪法淸楚分明 一切現成
●楊柳枝; 樂府近代曲名 本爲漢樂府橫吹曲辭折楊柳 至唐易名楊柳枝 開元時已入敎坊曲 [百度]
●巡堂; 住持首座等 爲點檢而巡視僧堂
●金屑雖貴; 金屑雖貴落眼成翳之略語 ▲臨濟語錄 王常侍一日訪師 同師於僧堂前看 乃問 這一堂僧還看經麽 師云 不看經 侍云 還學禪麽 師云 不學禪 侍云 經又不看禪又不學 畢竟作箇什麽 師云 總敎伊成佛作祖去 侍云 金屑雖貴 落眼成翳 又作麽生 師云 將爲爾是箇俗漢
스님이, 민왕(閩王)이 감귤(柑橘) 각 한 알을 봉(封)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송부(送付)하여 이르렀는데 서간(書柬)으로 묻되 이미 이 일반(一般)의 안색(顔色)이거늘 무엇 때문에 명자(名字)가 같지 못합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드디어 의구(依舊)히 봉하여 돌려보냈다(封回). 왕이 다시 급히(馳) 현사에게 묻자 현사가 1장(張; 量詞)의 종이를 가져다 덮었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복선(覆船; 文益의 法嗣. 撫州 覆船山에 거주했음)입니다. 사왈 생사해를 건너지 않았거늘 무엇 때문에 배를 엎어버렸는가(覆却). 중이 말이 없었다. 이에 돌아가 복선에게 들어 보이자 복선이 가로되 왜 거(渠)는 생사가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중이 다시 이르러 이 말을 진행했다. 사왈 이것은 이 너의 말이 아니다. 가로되 그렇습니다, 복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왈 나에게 20방(棒)이 있어 복선에게 기탁(寄託)해 준다. 20방은 노승이 스스로 먹으리라. 사리(闍黎)의 일과는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묻되 대사(大事)가 어떻습니까(作麽生). 스님이 중의 손을 잡고 가로되 상좌가 이것을 가지고 누구에게 묻느냐. 어떤 중이 예배하자 스님이 5방(棒) 때렸다. 승왈(僧曰)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스님이 또 5방(棒) 때리고 꾸짖으며 쫓아내었다(喝出).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영외(嶺外)에서 옵니다. 사왈 도리어 달마를 만났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청천백일(靑天白日)입니다. 사왈 자기는 어떠한가. 승왈 다시 어떠합니까(更作麽生).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송승(送僧)하며 나가서 3, 5보(步)를 가다가(行) 불러 가로되 상좌(上坐). 중이 머리를 돌리자 사왈 도중에 잘 하거라(善爲). 묻되 염추수불(拈槌竪拂)은 종승(宗乘)에 합당(合當)하지 않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습니까. 스님이 불자를 세워 일으켰다(竪起). 중이 이에 머리를 안고 나갔다. 스님이 돌아보지 않았다〈法眼이 代云 大衆이여, 이 一員의 戰將을 보아라〉. 묻되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는 범부를 위해 개연(開演)했습니까. 범부를 위해 개연하지 않았습니까. 사왈 일곡(一曲)의 양류지(楊柳枝)도 소비하지 않는다. 스님이 경청(鏡淸)에게 일러 가로되 고래(古來; 自古以來)로 어떤 노숙(老宿)이 관인(官人)을 인도(引導)하여 순당(巡堂)하다가 가로되 이 일중(一衆)은 모두 이 불법을 배우는 승인(僧人)입니다. 관인이 가로되 금가루(金屑)가 비록 귀중하지만(金屑雖貴) 또 어떻습니까. 노숙이 대답이 없었다. 경청(鏡淸)이 가로되 비래(比來; 요사이) 벽돌을 던져 옥을 당겼다(拋甎引玉)〈法眼이 別云 官人은 왜 귀를 귀히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김을 얻습니까〉.
●柑橘; 감(柑)은 감속식물(柑屬植物)의 범칭. 운향과(芸香科). 종류가 조금 많음. 상록관목이며 혹 작은 교목. 잎은 길고 난형(卵形). 흰 색의 작은 꽃이 피고 과실은 귤에 비해 큼. 구형(球形)이며 조금 작고 등황색(橙黃色)이며 맛은 시거나 단 게 한결같지 않음. 귤(橘)은 과일 나무 이름이니 과실은 귤자가 됨. 운향과며 상록관목이면서 또 작은 교목임. 초여름에 개화하고 흰 색이며 과실은 작고 원형이며 붉거나 혹은 등황색임. 맛은 시거나 단 게 한결같지 않음.
●嶺外; 오령(五嶺) 이남지구(以南地區).
●靑天白日; 선법이 청초(淸楚)하고 분명하며 일체에 현성(現成)했음에 비유함.
●楊柳枝; 악부(樂府)의 근대곡명(近代曲名). 본래 한악부(漢樂府) 횡취곡사(橫吹曲辭) 절양류(折楊柳)가 되었는데 당(唐)에 이르러 이름을 고쳐 양류지(楊柳枝)라 했고 개원(開元; 713-741) 때 이미 교방곡(敎坊曲)에 들었음 [백도].
●巡堂; 주지나 수좌 등이 점검하기 위해 승당을 순시(巡視)함임.
●金屑雖貴; 금가루가 비록 귀중하나 눈에 떨어지면 예병(翳病)을 이룬다(金屑雖貴落眼成翳)의 약어(略語). ▲임제어록. 왕상시(王常侍)가 어느 날 스님을 방문해 스님과 함께 승당 앞에서 보다가 이에 묻되 이 1당(堂)의 승려는 도리어 간경합니까. 사운(師云) 간경하지 않습니다. 상시가 이르되 도리어 학선(學禪)합니까. 사운 학선하지 않습니다. 상시가 이르되 경도 또 보지 않고 선도 또 배우지 않는다면 필경 이 무엇을 짓습니까. 사운 모두 그들로 하여금 부처를 짓고 조사를 짓게 합니다. 상시가 이르되 금가루가 비록 귀하나 눈에 떨어지면 예병(翳病)을 이룸(金屑雖貴 落眼成翳)은 또 어떻습니까. 사운 어찌(將은 豈) 그대를 이(是箇) 속한(俗漢)이라 이르겠는가.
上堂 擧拂子曰 這箇爲中下 僧問 上上人來時如何 師擧拂子 僧曰 這箇爲中下 師便打 問 國師三喚侍者意如何 師乃起入方丈 問僧 今夏在甚麽處 曰 涌泉 師曰 長時涌 暫時涌 曰 和尙問不著 師曰 我問不著 僧曰 是 師乃打 普請次 路逢一獼猴 師曰 人人有一面古鏡 這箇獼猴亦有一面古鏡 三聖曰 曠劫無名 何以彰爲古鏡 師曰 瑕生也 聖曰 這老漢著甚麽死急 話頭也不識 師曰 老僧住持事繁 閩帥施銀交牀 僧問 和尙受大王如此供養 將何報答 師以手拓地曰 輕打我 輕打我〈僧問踈山云 雪峰道輕打我 意作麽生 山云 頭上插瓜虀 埀尾脚跟齊〉 問 呑盡毗盧時如何 師曰 福唐歸來還平善否 上堂 我若東道西道 汝則尋言逐句 我若羚羊挂角 汝向甚麽處捫摸〈僧問保福 祇如雪峰有甚麽言敎 便似羚羊挂角時 福云 我不可作雪峯弟子不得〉 師之法席 常不減千五百衆 梁開平戊辰三月示疾 閩帥命醫 師曰 吾非疾也 竟不服藥 遺偈付法 五月二日朝遊藍田 暮歸澡身 中夜入滅
●古鏡; 鏡之功能 能映現一切萬物無有差別 故禪宗以之比喩佛性
●交床; 同交牀 椅子 交 脚脛相交
●福唐; 今福建福淸
●平善; 平安 安康 平和善良
●東道西道; 形容漫無目的地隨意講說 亦指言辭多
●尋言逐句; 尋求拘泥言語文句的意義
●羚羊卦角; 比喩大悟之人泯絶迷執之蹤跡 猶如羚羊眠時 角掛樹枝 脚不觸地 完全不留痕跡 比喩沒蹤跡 無罣礙之情形
상당(上堂) 불자를 들고 가로되 이것(這箇)은 중하(中下)를 위한다. 승문(僧問) 상상인(上上人)이 올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불자를 들었다. 승왈(僧曰) 이것(這箇)은 중하(中下)를 위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如何). 스님이 이에 일어나 방장으로 들어갔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금년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가로되 용천(涌泉)입니다. 사왈(師曰) 장시(長時) 솟던가(涌) 잠시(暫時) 솟던가(涌). 가로되 화상은 물음을 붙이지 못했습니다(問不著). 사왈 내가 물음을 붙이지 못했는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스님이 이에 때렸다. 보청(普請) 차(次)에 길에서 한 미후(獼猴; 원숭이)를 만났다. 사왈 사람마다 1면(面; 量詞)의 고경(古鏡)이 있고 이(這箇) 미후도 또한 1면의 고경이 있다. 삼성(三聖)이 가로되 광겁(曠劫)에 이름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나타내어(彰) 고경(古鏡)이라 합니까. 사왈 티가 생겨났다(瑕生也). 성왈(聖曰) 이 노한(老漢)이 무슨 사급(死急)함에 붙어(著) 화두(話頭)도 알지 못하는가. 사왈 노승은 주지(住持)의 일이 번다(繁多)하다. 민수(閩帥)가 은교상(銀交床)을 보시했다. 승문 화상이 대왕의 이와 같은 공양을 받으셨으니 무엇을 가지고 보답하겠습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땅을 밀며(拓地) 가로되 가볍게 나를 때려라(輕打我), 가볍게 나를 때려라〈僧이 疎山에게 물어 이르되 설봉이 말한 가볍게 나를 때려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소산이 이르되 頭上에 오이 무침(瓜虀)을 꽂고 꼬리를 내리매 발꿈치와 가지런하다〉. 묻되 비로(毘盧)를 삼켜 없앴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복당(福唐)으로 돌아가서 도리어 평선(平善)한가. 상당(上堂) 내가 만약 동도서도(東道西道)하면 너희가 곧 심언축구(尋言逐句)하려니와 내가 만약 영양이 괘각하면(羚羊挂角) 너희가 어느 곳을 향해 문모(捫摸; 더듬다)하겠는가〈僧이 保福에게 묻되 祇如 설봉이 무슨 言敎가 있어 바로 영양이 괘각할 때와 같다 했습니까. 보복이 이르되 내가 설봉의 제자가 됨을 얻지 못한다 함은 不可하다〉. 스님의 법석(法席)은 늘 천오백중(千五百衆)을 감(減)하지 않았다. 양(梁) 개평(開平) 무진(戊辰; 908) 3월에 시질(示疾)했다. 민수(閩帥)가 의료(醫療; 醫)를 명(命)하자 사왈 나는 질병이 아닙니다. 마침내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유게(遺偈)하고 부법(付法)하고는 5월 2일 아침에 남전(藍田)을 유람하고 저녁에 돌아와 몸을 씻고(澡) 중야(中夜)에 입멸(入滅)했다.
●古鏡; 거울의 공능(功能)은 능히 일체의 만물을 비추어 나타내면서 차별이 있지 않는지라 고로 선종에서 이것으로써 불성에 비유함.
●交床; 교상(交牀)과 같음. 의자(椅子)니 교(交)는 각경(脚脛; 다리의 종아리)이 서로 교차함임.
●福唐; 지금의 복건 복청(福淸).
●平善; 평안(平安). 안강(安康). 평화롭고 선량(善良)함.
●東道西道; 부질없이 목적이 없는 경지에서 뜻대로 강설함을 형용. 또 언사가 많음을 가리킴.
●尋言逐句; 언어 문자를 심구(尋求)하며 구니(拘泥; 구애)됨의 의의(意義).
●羚羊卦角; 대오한 사람은 미집(迷執)의 종적이 민절(泯絶; 아주 없어짐)함에 비유함. 마치 영양이 잠들 때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발을 땅에 접촉하지 않아서 완전히 흔적을 남기지 않음과 같음. 종적이 없으며 괘애(罣礙)가 없음의 정형(情形)에 비유함.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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