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회원

오등회원7 자국선사(資國禪師)-장경혜릉(長慶慧稜)

태화당 2025. 10. 7. 09:00

洪州感潭資國禪師

白兆問 家內停喪 請師慰問 師曰 苦痛蒼天 曰 死却爺 死却孃 師打了趂出 師凡接機皆如此

停喪; 人死後殯而不葬

 

홍주(洪州) 감담(感潭) 자국선사(資國禪師)

백조(白兆)가 묻되 가내(家內)에 정상(停喪)했으니 스님의 위문(慰問)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고통이 창천(蒼天)이구나. 조왈(兆曰) 아비()를 죽여버렸습니까, 어미()를 죽여버렸습니까. 스님이 때리고 쫓아내었다. 스님은 무릇 접기(接機)가 모두 이와 같았다.

停喪; 사람이 사후에 빈(; 草殯이니 시체를 입관한 후 장사 지낼 때까지 안치함)하고 장사 지내지 아니함.

 

天台瑞龍慧恭禪師

福州羅氏子 謁德山 山問 會麽 曰 作麽 山曰 請相見 曰 識麽 山大笑 遂許入室 洎山順世 乃開法焉

 

천태(天台) 서룡(瑞龍) 혜공선사(慧恭禪師)

복주(福州) 나씨(羅氏)의 아들이다. 덕산(德山)을 참알(參謁)하자 덕산이 묻되 아느냐. 가로되 무엇을(作麽), 덕산이 가로되 상견(相見)을 청한다. 가로되 아십니까. 덕산이 대소(大笑)했고 드디어 입실(入室)을 허락했다. 덕산이 순세(順世)함에 이르러() 이에 개법(開法)했다.

 

泉州瓦棺和尙

在德山爲侍者 一日 同入山斫木 山將一椀水與師 師接得便喫却 山曰 會麽 師曰 不會 山又將一椀水與師 師又接喫却 山曰 會麽 師曰 不會 山曰 何不成褫取不會底 師曰 不會又成褫箇甚麽 山曰 子大似箇鐵橛 住後 雪峰訪師 茶話次 峰問 當時在德山 斫木因緣作麽生 師曰 先師當時肯我 峰曰 和尙離師太早 時面前偶有一椀水 峰曰 將水來 師便度與 峰接得便潑却雲門云 莫壓良爲賤

成褫; 禪林寶訓順硃一 褫 音池 成就之也 從容錄五第八十則 成褫猶成就 結裹也

壓良爲賤; 又作厭良爲賤 謂將良民强迫降格爲賤民 或掠買平民子女爲奴婢 於禪林 轉謂强將人當作賤惡之人 亦卽比喩不令人本具之眞性生起作用 而令其行凡夫之雜蕪修行

 

천주(泉州) 와관화상(瓦棺和尙)

덕산(德山)에 있으면서 시자(侍者)가 되었다. 어느 날 함께 입산하여 나무를 베었다(斫木). 덕산이 한 사발의 물을 가져다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이 접득(接得)하자 바로 먹어버렸다. 산왈(山曰) 아느냐. 사왈(師曰) 알지 못합니다. 덕산이 또 한 사발의 물을 가져다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이 또 접수하여 먹어버렸다. 산왈(山曰) 아느냐. 사왈 알지 못합니다. 산왈(山曰) 왜 알지 못하는 것(不會底)을 성치(成褫)하여 취하지 않느냐. 사왈 알지 못하거늘(不會) 또 저() 무엇을 성치(成褫)합니까. 산왈(山曰) 자네는 저() 철궐(鐵橛)과 매우 흡사하다(大似). 주후(住後) 설봉(雪峰)이 스님을 방문했다. 다화(茶話)하던 차에 설봉이 묻되 당시 덕산에 있으면서 작목(斫木)한 인연이 어떠한가. 사왈 선사(先師)가 당시에 나를 긍낙(肯諾)하셨다. 봉왈(峰曰) 화상은 스승을 떠남이 너무 빨랐다(太早). 때에 면전에 우연히 한 사발의 물이 있었다. 봉왈(峰曰) 물을 가져 오너라. 스님이 바로 건네 주었다(度與). 설봉이 접득(接得)하자 바로 뿌려버렸다(潑却)雲門云 壓良爲賤하지 말아라.

壓良爲賤; 또 엽량위천(厭良爲賤; 은 누를 엽)으로 지음. 이르자면 양민(良民)을 가지고 강박(强迫)하여 격을 낮추어 천민(賤民)으로 삼음임. 혹은 평민의 자녀를 노략질하거나 사서 노비(奴婢)로 만드는 것임. 선림에선 전()하여 강제로 사람을 가지고 마땅히 천악(賤惡)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을 말함이며 또한 곧 사람으로 하여금 본구(本具)의 진성(眞性)을 일으키는 작용을 못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범부의 잡무(雜蕪)의 수행을 행하게 함에 비유(比喩).

成褫; 선림보훈순주1. () 음이 지()니 이것을 성취함이다. 종용록5 80. 성치(成褫)는 성취(成就)와 같으며 결과(結裹; 싸서 동여맴).

 

襄州高亭簡禪師

參德山 隔江纔見 便云 不審 山乃搖扇招之 師忽開悟 乃橫趨而去 更不回顧

 

양주(襄州) 고정간(高亭簡) 선사

덕산을 참하는데 강 너머(隔江)에서 겨우 보고는 바로 이르되 불심(不審). 덕산이 이에 부채(扇子)를 흔들며 불렀다(招之). 스님이 홀연히 개오(開悟)했다. 이에 가로 달려(橫趨) 떠나면서 다시 돌아보지(回顧) 않았다.

 

靑原下六世

巖頭奯禪師法嗣

台州瑞巖師彦禪師

閩之許氏子 自幼披緇 秉戒無缺 初禮巖頭 問曰 如何是本常理 頭曰 動也 曰 動時如何 頭曰 不是本常理 師良久 頭曰 肯卽未脫根塵 不肯卽永沈生死 師遂領悟 便禮拜 頭每與語 徵醻無忒 後謁夾山 山問 甚處來 曰 臥龍來 山曰 來時龍還起也未 師乃顧視之 山曰 炙瘡瘢上更著艾燋 曰 和尙又苦如此作甚麽 山休去 師乃問山 與麽卽易 不與麽卽難 與麽與麽卽惺惺 不與麽不與麽卽居空界 與麽不與麽 請師速道 山曰 老僧謾闍黎去也 師喝曰 這老和尙 而今是甚時節 便出去後有僧擧似巖頭 頭云 苦哉 將我一枝佛法 與麽流將去 師尋居丹丘瑞巖 坐磐石 終日如愚 每自喚主人公 復應諾 乃曰 惺惺著 他後莫受人謾後有僧參玄沙 沙問 近離甚處 云 瑞巖 沙云 有何言句示徒 僧擧前話 沙云 一等是弄精魂 也甚奇怪 乃云 何不且在彼住 云 已遷化也 沙云 而今還喚得應麽 僧無對 師統衆嚴整 江表稱之

徵醻; 徵問應酬 徵 追求 征詢

炙瘡瘢上更著艾燋; 亦作灸瘡瘢上更著艾焦 在烤傷的瘡瘢上 再用艾絨燒烤 比喩本已不契禪機 再加上虛妄的言句作略 則錯上加錯 艾 中醫灸法中 燒烤穴位的艾絨

 

태주(台州) 서암(瑞巖) 사언선사(師彦禪師)

()의 허씨(許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피치(披緇)했고 병계(秉戒; 受戒)하여 무결(無缺)했다. 처음 암두(巖頭)를 참례(參禮)해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본상리(本常理)입니까. 두왈(頭曰) ()했다. 가로되 동할 때 어떻습니까. 두왈(頭曰) 이 본상리(本常理)가 아니다.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두왈(頭曰) ()하면 곧 근진(根塵)을 벗지 못하고 불긍(不肯)하면 곧 생사에 영침(永沈)한다. 스님이 드디어 영오(領悟)했고 바로 예배했다. 암두가 매번 더불어 말하면서 징수(徵醻)하매 어긋남이 없었다(無忒). 후에 협산(夾山; 善會)을 예알하자 협산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와룡(臥龍)에서 옵니다. 산왈(山曰) 올 때 용이 도리어 일어났느냐 아니냐. 스님이 이에 돌아보았다. 산왈(山曰) 자창반상에 다시 애초를 붙이는구나(炙瘡瘢上更著艾燋). 가로되 화상은 또 고통이 이와 같아 무엇 합니까. 협산이 쉬었다. 스님이 이에 협산에게 묻되 이러함은 곧 쉽지만 이러하지 않음은 곧 어렵고 이러하고 이러함은 곧 성성(惺惺)하고 이러하지 않고 이러하지 않음은 곧 공계(空界)에 거주합니다. 이러함과 이러하지 않음을 청컨대 스님이 속히 말하시오. 산왈(山曰) 노승이 사리(闍黎)를 속이겠다. 스님이 할()하고 가로되 이 노화상이 이금(而今)이 이 무슨 시절인가. 바로 나갔다후에 어떤 중이 巖頭에게 들어 보이자 頭云 苦哉로다. 나의 一枝 佛法을 가져다 이렇게 흘려 가지고 가는구나. 스님이 이윽고 단구(丹丘) 서암(瑞巖)에 거주했는데 반석(磐石)에 앉아 종일 어리석은 듯했다. 매양 스스로 주인공(主人公)을 부르고 다시 응낙했다. 이에 가로되 성성착(惺惺著)하라, 타후(他後)에 타인의 속임을 받지 말아라후에 어떤 중이 玄沙를 참하자 현사가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이르되 瑞巖입니다. 沙云 무슨 언구가 있어 示徒하던가. 중이 前話를 들었다. 沙云 一等 精魂을 희롱함이지만 또한 매우 奇怪하다. 이에 이르되 왜 다만 거기에 머물지 않았는가. 이르되 이미 遷化했습니다. 沙云 而今에도 도리어 부르매 응함을 얻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대중을 통솔(統率)함이 엄정(嚴整)했고 강표(江表; 江南)에서 칭찬했다.

徵醻; 징문(徵問)하고 응수(應酬). ()은 추구(追求). 정순(征詢).

炙瘡瘢上更著艾燋; 또한 구창반상갱착애초(灸瘡瘢上更著艾焦)로 지음. 고상(烤傷; 화상)의 헌데 자리 위에 다시 애융(艾絨; 뜸을 뜨기 위하여 쑥잎을 가공한 것)을 사용하여 태움이니 본래 이미 선기에 계합하지 못했거늘 다시 위에 허망한 언구의 작략을 더함에 비유함. 곧 착오 위에 착오를 더함임. (; )는 중의(中醫) 구법(灸法) 중 혈위(穴位)를 태우는 애융(艾絨).

 

僧問 頭上寶蓋現 足下雲生時如何 師曰 披枷帶鎻漢 曰 頭上無寶葢 足下無雲生時如何 師曰 猶有杻在 曰 畢竟如何 師曰 齋後困 鏡淸問 天不能覆 地不能載 豈不是 師曰 若是卽被覆載 淸曰 若不是瑞巖幾遭也 師自稱曰 師彦 僧問 如何是佛 師曰 石牛 曰 如何是法 師曰 石牛兒 曰 恁麽卽不同也 師曰 合不得 曰 爲甚麽合不得 師曰 無同可同 合甚麽 問 作麽生商量 卽得不落階級 師曰 排不出 曰 爲甚麽排不出 師曰 他從前無階級 曰 未審居何位次 師曰 不坐普光殿 曰 還理化也無 師曰 名聞三界重 何處不歸朝 一日有村媼作禮 師曰 汝速歸 救取數千物命 媼回舍 見兒婦拾田螺歸 媼遂放之水濵 師之異迹頗多 茲不繁錄 逝後塔于本山 諡空照禪師

歸朝; 歸附朝廷 返回朝廷

 

승문(僧問) 두상(頭上)에 보개(寶蓋)가 나타나고 족하(足下)에 구름이 생기(生起)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피가대쇄한(披枷帶鎻漢)이다. 가로되 두상에 보개가 없고 족하에 구름이 생기함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아직() 수갑(; 手匣 )이 있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재후(齋後)에 곤()하다. 경청(鏡淸)이 묻되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함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사왈 만약 그렇다면 곧 부재(覆載)를 입는다. 청왈(淸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서암(瑞巖)이 거의 만날 뻔했다. 스님이 자칭해 가로되 사언(師彦)이라 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석우(石牛).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석우아(石牛兒; 석우의 새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같지 못합니다(不同). 사왈 합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합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동()과 가동(可同)이 없거늘 무엇을 합하느냐. 묻되 어떻게 상량(商量)해야 곧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밀어내어도() 나가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밀어내어도 나가지 않습니까. 사왈 그()는 종전(從前)에 계급이 없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떤 위차(位次)에 거주합니까. 사왈 보광전(普光殿)에 앉지 않는다. 가로되 도리어 이화(理化; 다스려 교화)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명성(名聲)3()에 알려져() 존중하거늘 어느 곳이 귀조(歸朝)하지 않겠는가. 어느 날 어떤 촌온(村媼; 촌 할머니)이 와서 작례(作禮)했다. 사왈 너는 빨리 돌아가서 수천(數千)의 물명(物命)을 구취(救取)하라.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와서 아부(兒婦; 子婦)를 보니 전라(田螺; 우렁이)를 거두어 돌아왔다. 할머니가 드디어 수빈(水濱; 물가)에 방생(放生)했다. 스님의 이적(異迹)이 파다(頗多)했는데 여기에선 번거롭게 기록하지 않는다. 서거한 후에 본산에 탑을 세웠고 시호는 공조선사(空照禪師).

歸朝; 조정(朝廷)에 귀부(歸附). 조정에 반회(返回).

 

懷州玄泉彦禪師

僧問 如何是道中人 師曰 日落投孤店 問 如何是佛 師曰 張家三箇兒 曰 學人不會 師曰 孟仲季也不會 問 如何是聲前一句 師曰 吽 曰 轉後如何 師曰 是甚麽

懷州; 今河南省武陟縣西南

 

회주(懷州) 현천언(玄泉彦)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師曰) 해 떨어지자 고점(孤店)에 투입한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장가(張家)의 세 개 아이다(三箇兒).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맏이()ㆍ둘째()ㆍ막내()도 알지 못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성전(聲前)1()입니까. 사왈 후(). 가로되 구른 후(轉後)에 어떻습니까. 사왈 이 뭣고.

懷州; 지금의 하남성 무척현(武陟縣) 서남.

 

福州羅山道閑禪師

長溪陳氏子 出家於龜山 年滿受具 徧歷諸方 甞謁石霜問 去住不寧時如何 霜曰 直須盡却 師不契 乃參巖頭 亦如前問 頭曰 從他去住 管他作麽 師於是服膺 閩帥飮其法味 請居羅山 號法寶禪師 開堂陞座 方斂衣便曰 珍重 時衆不散 良久師又曰 未識底近前來 僧出禮拜 師抗聲曰 也大苦哉 僧擬伸問 師乃喝出 問 如何是奇特一句 師曰 道甚麽 問 當鋒事如何辨明 師擧如意 僧曰 乞和尙垂慈 師曰 大遠也 問 急急相投 請師一接 師曰 會麽 曰 不會 師曰 箭過也 問 九女不携 誰是哀提者 師曰 高聲問 僧擬再問 師曰 甚麽處去也

 

복주(福州) 나산(羅山) 도한선사(道閑禪師)

장계(長谿) 진씨(陳氏)의 아들이다. 귀산(龜山)에서 출가했고 나이가 차자 수구(受具)했고 제방을 편력(徧歷)했다. 일찍이 석상(石霜)을 참알해 묻되 거주(去住)에 안녕하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상왈(霜曰) 바로() 없애버림(盡却)을 써라(). 스님이 계합하지 못했다. 이에 암두(巖頭)를 참()했는데 또한 전문(前問)와 같았다. 암두가 가로되 그를 좇아 거주(去住)할 것이지 그에 상관(相管)하여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이에 복응(服膺)했다. 민수(閩帥)가 그의 법미(法味)를 마셨고 청해 나산(羅山)에 거주했으며 호가 법보선사(法寶禪師). 개당(開堂)하여 승좌(陞座)해 바야흐로 염의(斂衣)하고 바로 가로되 진중(珍重). 때에 대중이 흩어지지 않자 양구(良久)에 스님이 또 가로되 알지 못하는 자는 앞으로 다가오너라. 중이 나와 예배하자 스님이 항성(抗聲)으로 가로되 또한 너무 괴롭다(大苦). 중이 물음을 펴려고 하는데 스님이 이에 할()하고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기특한 1구입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하느냐. 묻되 당봉사(當鋒事)를 어떻게 변명(辨明)합니까. 스님이 여의(如意; 爪杖)를 들었다. 승왈(僧曰) 화상의 수자(垂慈)를 구걸합니다. 사왈 너무 멀다(大遠也). 묻되 급급(急急)히 상투(相投)하오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화살이 지나갔다(箭過也). 묻되 구녀(九女)를 가지지() 않으면 누가 이 슬픔()을 가지는() 자입니까. 사왈 고성으로 물어라. 중이 재문(再問)하려고 하자 사왈 어느 곳에 갔느냐.

 

僧來參 師問 名甚麽 曰 明敎 師曰 還會敎也未 曰 隨分 師竪起拳曰 靈山會上喚這箇作甚麽 曰 拳敎 師笑曰 若恁麽喚作拳敎 復展兩足曰 這箇是甚麽敎 僧無語 師曰 莫喚作脚敎麽 師在禾山 送同行矩長老出門次 把拄杖向面前一攛 矩無對 師曰 石牛攔古路 一馬生雙駒後僧擧似疎山 山云 石牛攔古路 一馬生三寅 僧辭保福 福問 甚處去 曰 禮拜羅山 福曰 汝向羅山道 保福秋間上府朝覲大王 置四十箇問頭問和尙 忽若一句不相當 莫言不道 僧擧似師 師呵呵大笑曰 陳老師自入福建道洪塘橋下一寨 未曾見有箇毛頭星現 汝與我向從展道 陳老師無許多問頭 秖有一口劒 一劒下須有分身之意 亦有出身之路 若不明便須成末 僧回擧似福 福曰 我當時也秖是謔伊 至秋朝覲 師特爲辦茶筵請福 福不赴 却向僧曰 我中間曾有謔語 恐和尙問著 僧歸擧似 師曰 汝向他道 猛虎終不食伏肉 僧又去 福遂來

毛頭星; 彗星的俗稱 舊時認爲是災禍的象徵

 

중이 내참(來參)하자 스님이 묻되 이름이 무엇인가. 가로되 명교(明敎)입니다. 사왈 도리어 교()를 아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분한을 따릅니다(隨分). 스님이 주먹()을 세워 일으키고 가로되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이것(這箇)을 일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권교(拳敎)입니다. 스님이 웃으며 가로되 만약 이러함을 권교라고 불러 짓는다면, 다시 두 발을 펴고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무슨 교()인가.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각교(脚敎)라고 불러 짓지 않겠는가. 스님이 화산(禾山)에 있으면서 동행(同行)인 구장로(矩長老)를 송별(送別; )하며 출문(出門)하던 차에 주장자를 가지고 면전을 향해 한 번 던졌다. ()가 대답이 없자 사왈(師曰) 석우(石牛)가 고로(古路)를 막으니() 일마(一馬)가 쌍구(雙駒; 두 망아지)를 낳았다후에 중이 疎山에게 들어 보이자 山云 石牛古路를 막으니 一馬三寅(은 범)을 낳았다. 중이 보복(保福; 從展)에게 고별하자 보복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나산(禮拜)에게 예배하겠습니다. 복왈(福曰) 네가 나산을 향해 말하되 보복이 추간(秋間)에 상부(上府; 上級官署)에서 대왕(大王)을 조근(朝覲; 朝見)합니다. 40개 문두(問頭; 는 조사)를 설치(設置; )해 화상에게 묻노니 홀연히 만약 1()라도 상당(相當)하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시오. 중이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스님이 하하(呵呵)하며 대소(大笑)하고 가로되 진노사(陳老師; 羅山)가 스스로 복건도(福建道) 홍당교(洪塘橋) 아래 일채(一寨)에 들어와 일찍이 저() 모두성(毛頭星)이 나타남이 있음을 보지 못했다. 네가 나를 위해() 종전(從展; 보복)을 향해 말하라. 진노사(陳老師)는 허다한 문두(問頭)가 없고 다만 1(; 量詞)의 검()이 있나니 일검하(一劒下)에 모름지기 분신지의(分身之意)가 있고 또한 출신지로(出身之路)가 있다.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바로 꼭 말(; 末端)을 이룰 것이다. 중이 돌아가 보복에게 들어 보이자 복왈(福曰) 내가 당시에 다만 이, ()를 희롱하느라() 가을에 이르러 조근(朝覲)한다고 했다. 스님이 특별히 다연(茶筵)을 판비(辦備; )해 보복을 청했으나 보복이 다다르지 않고 도리어 중을 향해 가로되 내가 중간에 일찍이 하어(謔語; 희롱하는 말)가 있었는데 화상이 물을까(問著) 염려했다. 중이 돌아와 들어 보이자 사왈 네가 그를 향해 말하되 맹호(猛虎)라도 마침내 복육(伏肉)은 먹지 않는다 하라. 중이 또 갔는데 보복이 드디어 왔다.

毛頭星; 혜성(彗星)의 속칭. 구시에 인식하기를 이것은 재화(災禍)의 상징임.

 

無軫上座問 祇如巖頭道 洞山好佛 祇是無光 未審洞山有何虧闕 便道無光 師召軫 軫應諾 師曰 灼然好箇佛 祇是無光 曰 大師爲甚麽撥無軫話 師曰 甚麽處是陳老師撥你話處 快道快道 軫無語 師打三十棒趂出 軫擧似招慶 慶一夏罵詈 至夏末自來問 師乃分明擧似 慶便作禮懺悔曰 洎錯怪大師 僧擧寒山詩白鶴銜苦桃時如何 師曰 貞女室中吟 曰 千里作一息時如何 師曰 送客郵亭外 曰 欲往蓬萊山時如何 師曰 欹枕覰獼猴 曰 將此充糧食時如何 師曰 古劒髑髏前 問 如何是百草頭上盡是祖師意 師曰 刺破汝眼 問 如何是道 師曰 倚著壁 問 前是萬丈洪崖 後是虎狼師子 正當恁麽時如何 師曰 自在 問 三界誰爲主 師曰 還解喫飯麽 臨遷化 上堂集衆 良久展左手 主事罔測 乃令東邊師僧退後 又展右手 又令西邊師僧退後 廼曰 欲報佛恩 無過流通大敎 歸去也 歸去也 珍重 言訖 莞爾而寂

寒山詩; 三卷 唐代國淸寺道翹編 集錄寒山之詩頌三百餘首 附錄豐干詩 拾得詩 三詩合稱三隱集 卷首有臺州刺史閭丘胤序 本書之異本有宋淳熙十六年(1189) 禹穴沙門志南輯本 及明代計益軒刻本

白鶴銜苦桃; 寒山詩云 白鶴銜苦桃 千里作一息 欲往蓬萊山 將此充糧食

蓬萊; 漢書二十五 蓬萊 方丈 瀛州 此三神山者 其傳在勃海中 佛祖統紀三十五 秦始皇三十一年(210) 望祀蓬萊 使徐福將童男童女入海求仙藥

莞爾; 微笑的樣子 莞 形容微笑

 

무진(無軫) 상좌가 묻되 지여(祇如) 암두(巖頭)가 말하되 동산(洞山)은 호불(好佛)이지만 다만 이 무광(無光)이다. 미심하오니 동산이 무슨 휴궐(虧闕)이 있어 바로 무광이라고 말했습니까. 스님이 무진(無軫; )을 불렀다. 무진이 응낙했다. 사왈 작연(灼然)히 호개불(好箇佛)이지만 다만 이 무광이다. 가로되 대사(大師)는 무엇 때문에 무진의 말을 제거합니까(). 사왈 어느 곳이 이 진노사(陳老師; 나산)가 너의 말을 제거한 곳인가.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무진이 말이 없자 스님이 30방 때리고 쫓아내었다. 무진이 초경(招慶)에게 들어 보이자 초경이 1() 동안 매리(罵詈; 욕하다)했다. 하말(夏末)에 이르자 스스로 와서 물었다. 스님이 이에 분명히 거사(擧似)했다. 초경이 바로 작례(作禮)하고 참회(懺悔)하며 가로되 대사(大師)를 착괴(錯怪)함에 이를 뻔했습니다. 중이 한산시(寒山詩)를 들어 물었다. 백학이 고도를 물었을(白鶴銜苦桃)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정녀(貞女)가 실중(室中)에서 읊는다. 가로되 천 리에 일식(千里作一息)을 지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우정(郵亭; 驛館) 밖에서 송객(送客)한다. 가로되 봉래산으로 가려고(欲往蓬萊)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베개를 기울여() 미후(獼猴)를 엿본다. 가로되 이것을 가지고 양식에 충당(將此充糧食)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검(古劍)이 촉루(髑髏) 앞이다. 묻되 무엇이 이 백초두상(百草頭上)이 모두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사왈 너의 눈을 찔러 깨뜨린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벽에 기대어라(倚著壁). 묻되 앞은 이 만 장()의 홍애(洪崖)며 뒤는 이 호랑(虎狼)과 사자입니다. 바로 이러함을 당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자재(自在)하다. 묻되 3()에 누가 주인이 됩니까. 사왈 도리어 끽반(喫飯)할 줄 아느냐. 천화(遷化)에 임해 상당하여 집중(集衆)하고 양구(良久)했다가 왼손을 폈다. 주사(主事)가 헤아리지 못했다(罔測). 이에 동변(東邊)의 사승(師僧)을 뒤로 물러가게 했다. 또 오른손을 펴고는 또 서변의 사승을 뒤로 물러가게 했다. 이에() 가로되 불은(佛恩)에 보답하려고 한다면 대교(大敎)를 유통(流通)시킴을 지날 게 없다. 돌아가리라(歸去也), 돌아가리라. 진중(珍重). 말을 마치자 완이(莞爾)하며 적(; 입적)했다.

寒山詩; 3. 당대 국청사 도교(道翹)가 편()했고 한산의 시송(詩頌) 300여 수를 집록했으며 풍간시ㆍ습득시를 부록해 3시를 합칭하여 삼은집(三隱集)이라 함. 권수에 대주자사 여구윤(閭丘胤)의 서가 있음. 본서의 이본(異本)으론 송 순희 16(1189) 우혈사문(禹穴沙門) 지남(志南)의 집본(輯本) 및 명대 계익헌(計益軒)의 각본(刻本)이 있음.

白鶴銜苦桃; 한산시에 이르되 백학(白鶴)이 고도(苦桃)를 물고/ 천 리에 일식(一息)을 짓는다/ 봉래산으로 가려고 하나니/ 이것을 가지고 양식(糧食)에 충당한다.

蓬萊; 한서25. 봉래ㆍ방장ㆍ영주(瀛州) 3신산(神山)이란 것은 그것이 발해(勃海) 중에 있다고 전한다. 불조통기35. 진시황 31(210) 봉래(蓬萊)를 바라보며 제사 지내고 서복(徐福)을 시켜 동남동녀를 데리고 바다에 들어가 선약(仙藥)을 구하게 했다.

莞爾; 미소하는 양자(樣子). ()은 미소를 형용.

 

福州香谿從範禪師

新到參 師曰 汝豈不是鼓山僧 僧曰 是 師曰 額上珠爲何不見 僧無對 僧辭 師門送 復召 上座 僧回首 師曰 滿肚是禪 曰 和尙是甚麽心行 師大笑而已 師披衲衣次 說偈曰 迦葉上行衣 披來須捷機 纔分招的箭 密露不藏龜

額上珠; 各人固有之佛性 譬之額上之金剛珠 祖庭事苑五 額上珠 涅槃經(7)云 譬如王家有大力士 其人眉間有金剛珠 與餘力士角力相撲 而彼力士以頭觝觸 其額上珠尋沒膚中 都不自知是珠所在 其處有瘡 卽命良毉欲自療治 時有明毉 善知方藥 卽知是瘡因珠入體 是珠入皮卽便停住 是時良毉尋問力士 卿額上珠爲何所在 力士驚答 大師毉王 我額上珠乃無去耶 憂然啼哭 是時良醫慰喩力士 汝今不應生大愁苦 汝因鬪時 寶珠入體 今在皮裏 影現於外 汝曹鬬時 嗔恚毒盛 珠陷入體 故不自知 時力士不信醫言 汝今云何欺誑於我 時醫執鏡以照其面 珠在鏡中明了顯現 力士見已 心懷驚怪 生奇特想 善男子 一切衆生亦復如是 不能親近善知識故 雖有佛性 皆不能見 而爲貪婬嗔恚愚癡之所覆蔽 故墮地獄畜生餓鬼

 

복주(福州) 향계(香谿) 종범선사(從範禪師)

신도(新到)가 참()했다. 사왈(師曰) 너는 어찌 이 고산(鼓山)의 중이 아니겠는가. 승왈(僧曰) 그렇습니다. 사왈 액상주(額上珠)가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중이 고별하자 스님이 문송(門送)하다가 다시 부르되 상좌. 중이 머리를 돌리자 사왈 배 가득히(滿肚) 이 선()이구나. 가로되 화상은 이 무슨 심행(心行)입니까. 스님이 크게 웃을 따름이었다. 스님이 납의(衲衣)를 입던 차에 게를 설해 가로되 가섭의 상행의(迦葉上行衣)/ 입었음은 모름지기 첩기(捷機)라야 한다/ 겨우 나누면 적전(的箭; 표적과 화살)을 부르나니/ 몰래 드러내고 감추지 않은 거북이다.

額上珠; 각인 고유(固有)의 불성을 이마 위의 금강주에 비유함. 조정사원5. 액상주(額上珠) 열반경(7)에 이르되 비여(譬如) 왕가(王家)에 대역사(大力士)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미간에 금강주(金剛珠)가 있었다. 여타의 역사와 각력(角力; 은 다툴 각)하여 상박(相撲)하다가 저 역사가 머리로 저촉(觝觸; 는 닥뜨릴 저)하자 그 이마 위의 구슬이 이윽고 피부 가운데 함몰했다. 도무지 이 구슬의 소재를 스스로 알지 못했는데 그곳에 부스럼이 있었다. 곧 양의(良毉)에게 명해 스스로 요치(療治)하려고 했다. 때에 현명한 의사가 있어 처방의 약을 잘 알았다. 곧 이 부스럼이 구슬이 신체에 들어갔기 때문이며 이 구슬이 피부에 들어가 곧 바로 정주(停住)한 줄 알았다. 이때 양의가 이윽고 역사에게 묻되 경()의 이마 위의 구슬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역사가 놀라며 답하되 대사의왕(大師毉王)이여 나의 이마 위 구슬은 이에 없는 것인가. 근심하며 제곡(啼哭)했다. 이때 양의가 역사를 위유(慰喩; 달래다)하되 너는 지금 응당 큰 수고(愁苦)를 내지 말아라. 네가 투쟁할 때를 인하여 보주(寶珠)가 신체에 들어가 지금 피부 속에 있으며 그림자가 밖으로 나타난다. 너희들이 투쟁할 때 진에(嗔恚)의 독이 왕성해 구슬이 함몰해 신체에 들어갔으므로 고로 스스로 알지 못한다. 때에 역사가 의사를 믿지 못해 말하되 너는 지금 어찌하여 나를 기광(欺誑; 속임)하느냐. 때에 의사가 거울을 가지고 그의 얼굴을 비추자 구슬이 거울 속에 있으면서 명료하게 환희 나타났다. 역사가 보고선 마음에 경괴(驚怪)를 품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내었다. 선남자야 일체중생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능히 선지식을 친근하지 않는 고로 비록 불성이 있더라도 다 능히 보지 못하여 탐욕ㆍ진에(嗔恚)ㆍ우치에 부장(覆蔽)되는 바가 되는지라 고로 지옥ㆍ축생ㆍ아귀에 떨어진다.

 

福州聖壽嚴禪師

補衲次 僧參 師提起示之曰 山僧一衲衣 展似衆人見 雲水兩條分 莫敎露鍼線 速道速道 僧無對 師曰 如許多時作甚麽來

 

복주(福州) 성수엄(聖壽嚴) 선사

납의(衲衣)를 보수(補修)하던 차에 중이 참()했다. 스님이 제기(提起)하여 보이며 가로되 산승의 일납의(一衲衣)/ 중인(衆人)에게 펴 보여(展似) 보게 한다/ 운수(雲水; 운수승)는 양조(兩條)로 나누고/ 침선(鍼線; 바늘과 실)을 드러나게 하지 말아라.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師曰) 허다한 것 같은 시일에 무엇을 하고 왔느냐.

 

吉州靈巖慧宗禪師

福州陳氏子 受業於龜山 僧問 如何是靈巖境 師曰 松檜森森密密遮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夜夜有猿啼 問 如何是學人自己本分事 師曰 拋却眞金 拾瓦礫作麽

 

길주(吉州) 영암(靈巖) 혜종선사(慧宗禪師)

복주(福州) 진씨(陳氏)의 아들이며 귀산(龜山)에서 수업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영암경(靈巖境)입니까. 사왈 송회(松檜)가 삼삼밀밀(森森密密; 우거지고 빽빽함) 가렸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밤마다 원숭이의 울음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의 본분사입니까. 사왈 진금(眞金)을 던져버리고 와력(瓦礫)을 주워 무엇하겠는가.

 

雪峰存禪師法嗣

福州玄沙師備宗一禪師

閩之謝氏子 幼好垂釣 汎小艇於南臺江 狎諸漁者 唐咸通初 年 甫三十 忽慕出塵 乃棄舟投芙蓉訓禪師落髮 往豫章開元寺受具 布衲芒屨 食纔接氣 常終日宴坐 衆皆異之 與雪峯本法門昆仲 而親近若師資 峯以其苦行 呼爲頭陀 一日峰問 阿那箇是備頭陀 師曰 終不敢誑於人 異日峰召曰 備頭陀何不徧參去 師曰 達磨不來東土 二祖不往西天 峰然之 暨登象骨山 乃與師同力締搆 玄徒臻萃 師入室咨決 罔替晨昏 又閱楞嚴 發明心地 由是應機敏捷 與修多羅冥契 諸方玄學有所未決 必從之請益 至與雪峰徵詰 亦當仁不讓 峰曰 備頭陀再來人也 雪峰上堂 要會此事 猶如古鏡當臺 胡來胡現 漢來漢現 師出衆曰 忽遇明鏡來時如何 峰曰 胡漢俱隱 師曰 老和尙脚跟猶未點地

罔替; 不更替 不廢除

當仁; 指爲衆說法 啓悟學人 亦指僧衆導師之位 又作當人

脚跟猶未點地; 是對修行未純熟之用語 脚跟 於禪林常轉指本來自我

 

복주(福州) 현사사비(玄沙師備) 종일선사(宗一禪師)

()의 사씨(謝氏)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 수조(垂釣)를 좋아해 작은 배(小艇)를 남대강(南臺江)에 띄우고 여러 어자(漁者; 어부)를 친압(親狎)하던 자였다. 당 함통(咸通; 860-873) 초 나이가 비로소() 삼십에 홀연히 출진(出塵)을 흠모하여 이에 배를 버리고 부용훈(芙蓉訓; 靈訓) 선사(禪師)에게 투신하여 낙발(落髮)했고 예장(豫章) 개원사(開元寺)에 가서 수구(受具)했다. 포납(布衲)과 망구(芒屨; 널리 草鞋를 가리킴)로 음식은 겨우 접기(接氣)했고 늘 종일 연좌(宴坐)했고 대중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설봉(雪峯)과는 본디 법문(法門)의 곤중(昆仲; 형제)이었으나 친근(親近)하기가 사자(師資)와 같았다. 설봉이 그의 고행(苦行)으로써 두타(頭陀)라고 호칭(呼稱)했다. 어느 날 설봉이 묻되 어느 것(阿那箇)이 이 비두타(備頭陀). 사왈(師曰) 마침내 감히 사람을 속이지 못합니다. 다른 날(異日) 설봉이 불러 가로되 비두타(備頭陀)는 왜 편참(徧參)하러 가지 않느냐. 사왈 달마가 동토(東土)에 오지 않았고 2조가 서천(西天)에 가지 않았습니다. 설봉이 그렇다 하였다(然之). 상골산(象骨山)에 오름에 이르러() 이에 스님과 더불어 동력(同力)으로 체구(締搆; 建造)하였고 현도(玄徒)가 진췌(臻萃; 모이다)했다. 스님이 입실(入室)하여 자결(咨決; 斷決)하면서 신혼(晨昏)을 망체(罔替)했다. 또 릉엄경을 열독(閱讀)하다가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다. 이로 말미암아 응기(應機)가 민첩(敏捷)했고 수다라(修多羅)와 명계(冥契; 몰래 계합하다)했다. 제방의 현학(玄學)이 미결(未決)하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그를 좇아 청익했다. 설봉과 징힐(徵詰)함에 이르러서도 또한 당인(當仁)하여 사양(辭讓)하지 않았다. 설봉이 가로되 비두타(備頭陀)는 재래인(再來人)이다. 설봉이 상당(上堂)했다. 차사(此事)를 알고자 한다면 마치 고경(古鏡)이 당대(當臺)하여 호래호현(胡來胡現)하고 한래한현(漢來漢現)함과 같다. 스님이 대중에서 나와 가로되 홀연히 명경(明鏡)이 옴을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설봉이 가로되 호한(胡漢)이 모두 숨는다(俱隱). 사왈 노화상이 발꿈치가 아직 땅에 닿지 않았습니다(脚跟猶未點地).

罔替; 경체(更替)하지 않음. 폐제(廢除)하지 않음.

當仁; 대중을 위해 설법하여 학인을 계오(啓悟; 계발하여 깨치게 함)함을 가리킴. 또 승중의 도사(導師)의 지위를 가리킴. 또 당인(當人)으로 지음.

脚跟猶未點地; 이는 수행이 순숙하지 못함에 대한 용어임. 각근(脚跟)은 선림에서 늘 전()하여 본래의 자아를 가리킴.

 

住後 上堂 佛道閑曠 無有程途 無門解脫之門 無意道人之意 不在三際 故不可昇沈 建立乖眞 非屬造化 動則起生死之本 靜則醉昏沉之鄕 動靜雙泯 卽落空亡 動靜雙收 瞞頇佛性 必須對塵對境 如枯木寒灰 臨時應用 不失其宜 鏡照諸像 不亂光輝 鳥飛空中 不雜空色 所以十方無影像 三界絕行蹤 不墮往來機 不住中間意 鐘中無鼓響 鼓中無鐘聲 鐘鼓不相交 句句無前後 如壯士展臂 不藉他力 師子遊行 豈求伴侶 九霄絕翳 何在穿通 一段光明 未曾昏昧 若到這裏 體寂寂 常的的 日赫燄 無邊表 圓覺空中不動搖 呑爍乾坤迥然照 夫佛出世者 元無出入 名相無體 道本如如 法爾天眞 不同修證 祇要虛閑不昧作用 不涉塵泥 箇中纖毫道不盡 卽爲魔王眷屬 句前句後 是學人難處 所以一句當天 八萬門永絕生死 直饒得似秋潭月影 靜夜鐘聲 隨扣擊以無虧 觸波瀾而不散 猶是生死岸頭事 道人行處 如火銷冰 終不却成冰 箭旣離弦 無返回勢 所以牢籠不肯住 呼喚不回頭 古聖不安排 至今無處所 若到這裏 步步登玄 不屬邪正 識不能識 智不能知 動便失宗 覺卽迷旨 二乘膽顫 十地魂驚 語路處絕 心行處滅 直得釋迦掩室於摩竭 淨名杜口於毗耶 須菩提唱無說而顯道 釋梵絕聽而雨花 若與麽見前 更疑何事 沒棲泊處 離去來今 限約不得 心思路絕 不因莊嚴 本來眞淨 動用語笑 隨處明了 更無欠少 今時人不悟箇中道理 妄自涉事涉塵 處處染著 頭頭繫絆 縱悟則塵境紛紜 名相不實 便擬凝心斂念 攝事歸空 閉目藏睛 終有念起 旋旋破除 細想纔生 卽便遏捺 如此見解 卽是落空亡底外道 魂不散底死人 冥冥漠漠 無覺無知 塞耳偸鈴 徒自欺誑 這裏分別則不然也 不是門傍戶 句句現前 不得商量 不涉文墨 本絕塵境 本無位次 權名箇出家兒 畢竟無踪迹 眞如凡聖 地獄人天 祇是療狂子之方 虛空尙無改變 大道豈有昇沉 悟則縱橫不離本際 若到這裏 凡聖也無立處 若向句中作意 則沒溺殺人 若向外馳求 又落魔界 如如向上 沒可安排 恰似焰爐不藏蚊蚋 此理本來平坦 何用剗除 動靜揚眉 是眞解脫道 不彊爲意度 建立乖眞 若到這裏 纖毫不受 指意則差 便是千聖出頭來 也安一字不得 久立 珍重

瞞頇; 瞞頇顢頇瞞盰 諸禪錄混用 瞞 慙貌 又暗也 頇 顢頇 大面貌也 糊塗也 卽瞞頇與顢頇瞞盰同義 糊塗之義

九霄; 九天 重霄 祖庭事苑五 九天者 中央鈞天 東方蒼天 東北方玄天 西北幽天 西方浩天 西南朱天 南方炎天 東南陽天 其說見淮南子(天文訓)

岸頭; 卽岸 岸邊 頭 後綴 用于名詞或謂詞之後 又表示方位

釋迦掩室; 謂如來成道後 三七日間 坐思而不說法也 肇論云 釋迦掩室於摩竭 淨名杜口於毘那 肇論新疏下云 法華說 如來成佛 三七日中 而不說法 智度論七云 佛得道五十七日 不語等 義言掩室也

淨名杜口; 祖庭事苑一 毘耶杜口 梵云毘耶離 此言廣嚴 維摩所居之城 杜 閉也 維摩入不二法門品曰 文殊問維摩詰 我等各自說已 仁者當說 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時維摩詰默然無言 文殊歎曰 善哉善哉 乃至無有文字語言 是眞入不二法門

須菩提唱無說而顯道下; 大般若經八十四 具壽善現 覩斯事已 作是念言 今所散花 於諸天處 未曾見有是花殊妙 定非草木水陸所生 應是諸天爲供養故 從心化出 時天帝釋 旣知善現心之所念 謂善現言 此所散華 實非草木水陸所生 亦不從心 實能化生 但變現耳 大般若經五百三十九 具壽善現 復告彼言 我曾於此甚深般若波羅蜜多相應義中 無說無示 汝亦無聞 當何所解 …… 善現答言 設更有法勝涅槃者 我亦說爲如幻如化如夢所見 所以者何 幻化夢境與一切法乃至涅槃 無二無別 皆不可得不可說故 …… 時天帝釋 作是念言 大德善現 雨大法雨 我應化作微妙諸華 奉散供養 作是念已 卽便化作微妙諸華 散善現上

釋梵; 又作梵釋 指帝釋與梵王 此二天王歸依釋迦牟尼佛 爲經論中常見之守護神 觀無量壽經 目連侍左 阿難在右 釋梵護世諸天在虛空中 普雨天華 持用供養

遏捺; 阻止 按捺 多指識情深重者企圖以識情制止識情

冥冥漠漠; 同冥冥朦朦 蒙昧無知貌

塞耳偸鈴; 同掩耳偸鈴 淮南子十六說山訓 范氏之敗 有竊其鐘 負而走者 鎗然有聲 懼人聞之遽掩其耳 憎人聞之 可也 自掩其耳 悖矣

; 角落

狂子; 狂妄無禮的人

本際; 指根本究竟之邊際 眞理之根源 萬物之根本 又作眞際 實際

 

주후(住後) 상당(上堂) 불도(佛道)가 한광(閑曠)하여 정도(程途)가 있지 않다. 무문(無門)이 해탈의 문이며 무의(無意)가 도인(道人)의 뜻이다. 삼제(三際)에 있지 않는지라 고로 가히 승침(昇沈)하지 않고 건립하면 진리에 어긋나는지라() 조화(造化)에 속하지 않는다. ()하면 곧 생사를 일으키는 근본이며 정()하면 곧 혼침(昏沉)에 취()하는 고향(故鄕; )이다. 동정(動靜)을 쌍민(雙泯)하면 곧 공망(空亡; 空無)에 떨어지고 동정을 쌍수(雙收)하면 불성(佛性)을 만한(瞞頇)한다. 반드시 꼭 대진대경(對塵對境)하여 고목한회(枯木寒灰)와 같아야 임시(臨時)하여 응용하매 그 마땅함()을 잃지 않는다. 거울이 제상(諸像)을 비추면서 광휘(光輝)가 어지럽지 않고 새가 공중에 날면서 공색(空色)과 섞이지() 않는다. 소이로 십방(十方)에 영상(影像)이 없고 삼계(三界)에 행종(行蹤)이 끊겼나니 왕래의 기()에 떨어지지 않고 중간의 뜻에 머물지 않는다. () 속에 고향(鼓響)이 없고 북 속에 종성(鐘聲)이 없나니 종고(鐘鼓)가 상교(相交)하지 않고 구구(句句)에 전후(前後)가 없다. 장사(壯士)가 팔을 펴면서 남의 힘을 빌리지() 않음과 같거늘 사자(師子)가 유행(遊行)하면서 어찌 반려(伴侶)를 구하겠는가. 구소(九霄)에 가림()이 끊겼거늘 어찌 뚫어 통함에 있겠는가, 일단(一段)의 광명은 일찍이 혼매(昏昧)하지 않다. 만약 이 속에 이른다면 체()가 적적(寂寂)하되 늘 적적(的的)하고 해의 혁염(赫燄; 환한 빛)이라 변표(邊表)가 없다. 원각(圓覺)의 공중(空中)엔 동요(動搖)하지 않고 건곤을 탄삭(呑爍; 삼키고 녹임)하여 형연(迥然)히 비춘다. 무릇 부처의 출세란 것은 원래 출입이 없고 명상(名相; 이름과 형상)은 체()가 없고 도는 본래 여여하나니 법이(法爾) 천진(天眞)이라 수증(修證)과 같지 않다. 다만 허한(虛閑)하여 작용(作用)에 어둡지() 않고 진니(塵泥)에 건너지 않음을 요한다. 개중(箇中; 此中)에 섬호(纖毫)의 도()가 다하지 않으면 곧 마왕(魔王)의 권속(眷屬)이 된다. 구전구후(句前句後)는 이 학인의 난처(難處)니 소이로 1()가 당천(當天)하면 팔만문(八萬門)에 생사가 영원히 끊어진다. 직요(直饒; 가령) 추담(秋潭)의 달그림자와 정야(靜夜)의 종소리가 구격(扣擊)을 따라 이지러지지 않고 파란(波瀾)에 부딪혀도 흩어지지 않음과 같음을 얻더라도 오히려 이는 생사안두(生死岸頭)의 일이다. 도인(道人)의 행처(行處)는 불이 얼음을 녹임과 같아서 마침내 도리어 얼음을 이루지 않는다. 화살이 활줄을 이미 떠난지라 반회(返回)할 형세(形勢)가 없나니 소이로 뇌롱(牢籠)하여도 머묾을 수긍하지 않고 호환(呼喚)해도 머리를 돌리지 않으며 고성(古聖)이 안배(安排)하지 못하고 지금(至今)토록 처소가 없다. 만약 이 속에 이른다면 걸음걸음 등현(登玄)하고 사정(邪正)에 속하지 않는다. ()으로 능히 식()하지 못하고 지()로 능히 지()하지 못하나니 동()하면 바로 실종(失宗; 宗旨를 잃음)하고 각()하면 곧 미지(迷旨; 宗旨)한다. 2()이 쓸개가 떨리고(膽顫) 10()가 혼이 놀라나니(魂驚) 어로처(語路處)가 끊기고 심행처(心行處)가 없어진다. 바로 석가가 마갈에서 엄실하고(釋迦掩室於摩竭) 정명이 비야(毗耶)에서 두구함을(淨名杜口於毗耶) 얻나니 수보리는 무설(無說)을 노래해 현도(須菩提唱無說而顯道)했고 석범(釋梵)은 절청(絶聽)하면서 우화(雨華; 꽃을 비 내림)했다. 이에() 이렇게 현전(見前)했거늘 다시 무슨 일을 의심하겠는가. 서박(棲泊)할 곳이 없고() 거래금(去來今)을 여의었고 한약(限約; 制限約束)을 얻지 못하고 심사로(心思路)가 끊겼다. 장엄(莊嚴)을 인하지 않고 본래 진정(眞淨)이며 동용(動用)과 어소(語笑)에 곳을 따라 명료(明了)하며 다시 흠소(欠少)가 없다. 금시인(今時人)이 개중(箇中)의 도리를 깨치지 못하고 허망하게 스스로 섭사섭진(涉事涉塵)하면서 처처(處處)에 염착(染著)하고 두두(頭頭)에 계반(繫絆; 묶임)한다. 설령 깨친다 하더라도 곧 진경(塵境)이 분운(紛紜)하고 명상(名相)이 불실(不實; 실답지 못함)하나니 바로 응심염념(凝心斂念; 專心으로 생각을 거둠)하고 섭사귀공(攝事歸空)하려 하면서 눈 감아 눈동자를 감추지만 마침내 염기(念起)가 있는지라 선선(旋旋; 迅速)히 파제(破除)하고 세상(細想)이 겨우 생기면 곧바로(卽便) 알날(遏捺)하거니와 이와 같은 견해는 즉시(卽是) 공망(空亡)에 떨어진 외도(外道)며 혼이 흩어지지 아니한 사인(死人)이다. 명명막막(冥冥漠漠)하여 깨달음도 없고 앎도 없나니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면(塞耳偸鈴) 도연히 스스로 속음이다(欺誑). 이 속에서 분별함은 곧 그렇지 않나니 이 외문()과 방호(傍戶)가 아니며 구구(句句)가 현전(現前)하되 상량(商量)을 얻지 못하며 문묵(文墨; 文章)에 건너지 않으며 본래 진경(塵境)이 끊겼으며 본래 위차(位次)가 없다. 권명(權名; 잠시의 이름)이 이() 출가아(出家兒)니 필경 종적(踪迹)이 없다. 진여(眞如)와 범성(凡聖)ㆍ지옥과 인천(人天)은 다만 이 광자(狂子)를 치료하는 약방(藥方)이다. 허공도 오히려 개변(改變)이 없거늘 대도가 어찌 승침(昇沉)이 있겠는가. 깨치면 곧 종횡으로 본제(本際)를 여의지 않나니 만약 이 속에 이른다면 범성(凡聖)도 세울 곳이 없거니와 만약 구중(句中)을 향해 작의(作意)한다면 곧 몰닉(沒溺)하여 살인(殺人)하리라. 만약 밖을 향해 치구(馳求)한다면 또 마계(魔界)에 떨어지나니 여여(如如)한 향상(向上)은 가히 안배(安排)함이 없다. 염로(焰爐)가 문예(蚊蚋; 모기)를 감추지 못함과 흡사하나니 이 이치는 본래 평탄하거늘 어찌 잔제(剗除)를 쓰겠는가. 동정(動靜)과 양미(揚眉; 눈썹을 치켜 세움)가 이 참 해탈도(解脫道). 억지로() 의탁(意度)하지 말지니 건립하면 진리에 어긋난다. 만약 이 속에 이른다면 섬호(纖毫)도 받지 않나니 지의(指意)하면 곧 어긋난다. 바로 이 천성(千聖)이 출두하여 온다 해도 또한 1()도 안치함을 얻지 못한다.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

瞞頇; 만한(瞞頇)ㆍ만한(顢頇)ㆍ만간(瞞盰)은 여러 선록에서 혼용함. ()은 부끄러워하는 모양이며 또 어둠임. ()은 만한(顢頇)이니 큰 얼굴의 모양이며 호도(糊塗). 곧 만한(瞞頇)ㆍ만한(顢頇)ㆍ만간(瞞盰)은 같은 뜻이니 호도(糊塗)의 뜻.

九霄; 구천(九天; 1. 중앙 및 사방, 四隅의 하늘. 2. 하늘의 가장 높은 곳). 중소(重霄; 높고 높은 하늘). 조정사원5. 구천(九天)이란 것은 중앙은 균천이며 동방은 창천이며 동북방은 현천이며 서북은 유천이며 서방은 호천이며 서남은 주천이며 남방은 염천이며 동남은 양천이다. 그 설은 회남자(천문훈)를 보라.

岸頭; 곧 언덕, 언덕 가. ()는 후철이니 명사 혹 위사(謂詞)의 뒤에 쓰며 또 방위를 표시함.

釋迦掩室; 이르자면 여래가 성도한 후 삼칠일(三七日; 21) 간 좌사(坐思)하며 설법하지 않았음임. 조론에 이르되 석가가 마갈에서 엄실하고(釋迦掩室於摩竭) 정명이 비야에서 두구했다(淨名杜口於毘那). 조론신소하에 이르되 법화경에서 설하기를 여래가 성불한 지 삼칠일 중에 설법하지 않았다. 지도론7에 이르되 불타가 득도한 지 57일 동안 말하지 않았다는 등이 뜻으로 말하자면 엄실(掩室)이다.

淨名杜口; 조정사원1. 비야두구(毘耶杜口) 범어로 이르되 비야리(毗耶離; vaiśālī)는 여기에선 말하되 광엄(廣嚴)이니 유마가 거처하는 바의 성(). ()는 닫음(). 유마경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 가로되 문수가 유마힐에게 묻되 아등(我等)은 각자 설해 마쳤으니 인자(仁者; 상대의 경칭)가 마땅히 설하십시오. 무엇 등이 이 보살의 입불이법문입니까. 때에 유마힐이 묵연하며 말이 없었다. 문수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 선재로다 내지 문자와 어언이 있지 않음이 이 참다운 입불이법문이다.

須菩提唱無說而顯道下; 대반야경84 구수(具壽) 선현(善現)이 이 일을 보고 난 다음 이 생각을 지어 말하되 지금 흩은 바의 꽃은 제천(諸天)의 처소에서 일찍이 이 꽃의 수묘(殊妙)함이 있음을 보지 못했다. 꼭 초목과 수륙에서 난 바가 아니라 응당 이는 제천이 공양하기 위한 고로 마음으로부터 변화해 낸 것이다. 때에 천제석이 이미 선현의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알고 선현에게 일러 이르되 이 흩은 바의 꽃은 실로 초목과 수륙에서 난 바가 아니며 또한 마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실로 능히 변화해 낸 것이니 다만 변화하여 나타났을 뿐입니다. 대반야경539. 구수(具壽) 선현(善現)이 다시 그에게 고해 말하되 내가 일찍이 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 상응의(相應義) 중에 무설무시(無說無示)하고 너 또한 무문(無聞)하니 마땅히 무엇을 알 바이랴. …… 선현이 답해 말하되 설사 다시 열반보다 수승한 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또한 설하기를 환과 같고 변화와 같고 꿈에서 본 바와 같음이 된다 하나니 소이란 게 무엇인가, 환화와 꿈의 경계가 일체법 내지 열반과 더불어 둘이 없고 다름도 없어 다 불가득이며 불가설인 연고이다 …… 때에 천제석이 이 생각을 지어 말하되 대덕 선현이 큰 법우(法雨)를 내리시니 내가 응당 미묘한 여러 꽃을 화작하여 받들어 흩어서 공양해야 겠다. 이 생각을 지은 다음 곧 미묘한 여러 꽃을 화작하여 선현의 위에 흩었다..

釋梵; 또 범석(梵釋)으로 지음. 제석과 범왕을 가리킴. 이 두 천왕은 석가모니불에게 귀의했으며 경론 중에 늘 보이는 수호신이 됨. 관무량수경. 목련이 왼쪽에 시립(侍立)했고 아난은 오른쪽에 있었다. 석범(釋梵)과 호세제천(護世諸天)이 허공 중에 있으면서 천화를 널리 비 내리며 가지고 공양에 썼다.

遏捺; 조지(阻止; 막아서 저지함). 안날(按捺; 억제). 다분히 식정(識情)이 심중(深重)한 자가 식정으로 식정을 제지(制止)하려고 기도(企圖)함을 가리킴.

冥冥漠漠; 명명몽몽(冥冥朦朦)과 같음. 몽매(蒙昧)하여 무지한 모양.

塞耳偸鈴; 엄이투령과 같음. 회남자16 설산훈. 범씨(范氏)의 패배에 그 종을 훔쳐 지고서 도주하는 자가 있었다. 쟁연(鎗然; 종소리)하며 소리가 있었다. 사람이 그것을 들을까 두려워하며 급히 그 귀를 막았다. 사람이 그것을 들음을 미워함은 가하지만 스스로 그 귀를 막음은 어긋난다().

; 각락(角落; 구석. 모퉁이).

狂子; 광망(狂妄; 미친 사람처럼 아주 망령되다)하고 무례한 사람.

本際; 근본구경(根本究竟)의 변제(邊際)ㆍ진리의 근원ㆍ만물의 근본을 가리킴. 또 진제(眞際)ㆍ실제로 지음.

 

上堂 我今問汝諸人 且承當得箇甚麽事 在何世界安身立命 還辨得麽 若辨不得 恰似揑目生花 見事便差 知麽 如今目前 見有山河大地色空明暗種種諸物 皆是狂勞花相 喚作顚倒知見 夫出家人 識心達本源 故號爲沙門 汝今旣已剃髮披衣 爲沙門相 卽便有自利利他分 如今看著 盡黑漫漫地墨汁相似 自救尙不得 爭解 爲得人 仁者 佛法因緣事大 莫作等閑相似 聚頭亂說雜話 趂謴 過時 光陰難得 可惜許大丈夫兒 何不自省察看是甚麽事 祇如從上宗乘 是諸佛頂族 汝旣承當不得 所以我方便勸汝 但從迦葉門接續頓超去 此一門超凡聖因果 超毗盧妙莊嚴世界海 超他釋迦方便門 直下永劫 不敎有一物與汝作眼見 何不自急急究取 未必道 我且待三生兩生 久積淨業 仁者 宗乘是甚麽事 不可由汝用工莊嚴便得去 不可他心宿命便得去 會麽 祇如釋迦出頭來作許多變弄 說十二分敎 如甁灌水 大作一場佛事 向此門中用一點不得 用一毛頭伎倆不得 知麽 如同夢事 亦如寐語 沙門不應出頭來 不同夢事 葢爲識得 知麽 識得卽是大出脫大徹頭人 所以超凡越聖 出生離死 離因離果 超毗盧 越釋迦 不被凡聖因果所謾 一切處無人識得 汝知麽 莫祇長戀生死愛網 被善惡業拘將去 無自由分 饒汝鍊得身心同虛空去 饒汝到精明湛不搖處 不出識陰 古人喚作如急流水 流急不覺妄爲恬靜 恁麽修行 盡出他輪回際不得 依前被輪回去 所以道 諸行無常 直是三乘功果 如是可畏 若無道眼 亦不究竟 何似如今博地凡夫 不用一毫工夫 便頓超去解省心力麽 還願樂麽 勸汝 我如今立地待汝搆去 更不敎汝加功煉行 如今不恁麽 更待何時 還肯麽 便下座

揑目生; 按捏眼睛而産生幻視 似乎有花出現 比喩制造幻象 自欺欺人

自利利他; 又作自益益他 自利利人 自行化他 自利他利 自他二利 自利 乃利己之意 卽爲自身之功德而努力修行 以此所産生之善果而自得其利 利他 乃利益他人之意 卽非爲己利 而爲救濟諸有情而致力行善

黑漫漫地; 如黑暗漫漫 不知不辨禪法之樣子 地 助詞

趂謴; 跟隨衆人喧哄

識陰; 五陰之一 又作識蘊 卽眼識等諸識之各類聚

博地凡夫; 普通的人 一般的人 博地 廣闊的土地大地 天台三大部補注十一 博地 博 廣多也 下凡之地廣多故耳

 

상당(上堂) 내가 이제 너희 제인(諸人)에게 묻노니 다만() () 무슨 일을 승당(承當)해 얻었으며 어떤 세계에 있으면서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가. 도리어 변득(辨得)하느냐. 만약 분변(分辨; )함을 얻지 못한다면 날목생화(揑目生花)와 흡사하여 견사(見事)가 바로 어긋난다. 아느냐(知麽). 여금의 목전에 산하대지(山河大地)ㆍ색공명암(色空明暗)의 갖가지 제물(諸物)이 있음을 보거니와 모두 이 광로(狂勞)의 화상(花相)이니 전도(顚倒)된 지견(知見)이라고 불러 짓는다. 무릇 출가인(出家人)은 마음을 알아 본원(本源)을 통달하는지라 고로 호()하여 사문(沙門)이다. 너희가 이제 기이(旣已; 已經. 이미) 체발(剃髮)하고 피의(披衣)하여 사문상(沙門相)이 되었으니 곧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할 분(; 분한)이 있다. 여금에 보건대(看著) 모두 흑만만지(黑漫漫地)라 마치 묵즙(墨汁)과 상사하나니 스스로를 구함도 오히려 얻지 못하거늘 어찌 타인을 위함을 얻을 줄 알겠는가. 인자(仁者), 불법 인연사(因緣事)가 크나니 등한(等閑)과 상사(相似)하여 취두(聚頭)하여 잡화(雜話)를 난설(亂說)하며 진곤(趂謴)하여 시일을 지냄을 짓지 말아라(莫作). 광음(光陰)은 얻기 어렵다. 가석하나니(可惜許; 는 조사) 대장부아(大丈夫兒; 는 조사)가 왜 스스로 성찰(省察)하여 이 무슨 일인가(什麽事) 하고 보지 않느냐. 지여(祇如)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은 이 제불의 정족(頂族)인데 너희가 이미 승당(承當)함을 얻지 못하는지라 소이로 내가 방편으로 너희에게 권한다. 단지 가섭문(迦葉門)으로 좇아 접속(接續)하여 돈초(頓超)하여 가라. 1()은 범성(凡聖)의 인과를 초월(超越; )하며 비로(毗盧)의 묘장엄세계해(妙莊嚴世界海)를 초월하며 저 석가의 방편문(方便門)을 초월하나니 직하(直下; 즉시)나 영겁(永劫)에 일물(一物)이 있어 너희에게 안견(眼見)을 지어 주게 하지 않거늘 왜 스스로 급급(急急)히 구취(究取)하지 않느냐. 내가 다만() 삼생(三生)이나 양생(兩生)에 정업(淨業)을 구적(久積)함을 기다리겠다고 말함이 필요하지 않다. 인자(仁者), 종승(宗乘)이 이 무슨 일인가. 너희가 용공(用工)하여 장엄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얻어 간다 함은 옳지 못하며(不可). 타심(他心; 他心通)과 숙명(宿命; 宿命通)으로 바로 얻어 간다 함은 옳지 못하다. 아느냐, 지여(祇如) 석가가 출두하여 와서 허다한 변롱(變弄; 변화와 희롱)을 지어 12분교를 설하되 병으로 물을 대는 것과 같이(如甁灌水) 한바탕의 불사를 크게 지었지만 이 문중(門中)을 향해 일점도 씀을 얻지 못하고 일모두(一毛頭; 後綴)의 기량(伎倆)을 씀도 얻지 못한다. 아느냐(知麽), 마치 몽사(夢事)와 같고 또한 매어(寐語; 잠꼬대)와 같다. 사문(沙門)은 응당 출두하여 오지 말아야 함은 몽사(夢事)와 같지 않음이니 대개(大葢) 식득(識得)해야 한다. 아느냐(知麽), 식득(識得)이 즉시(卽是) 대출탈(大出脫)이며 대철두인(大徹頭人)이니 소이로 초범월성(超凡越聖; 凡聖을 초월)하고 출생이사(出生離死; 生死出離)하고 이인이과(離因離果)하고 비로(毗盧)를 초월(超越; )하고 석가를 초월(超越; )하여 범성(凡聖)의 인과(因果)에 속는 바를 입지 않고 일체처에 식득(識得)할 사람이 없다. 너희가 아느냐, 다만 생사의 애망(愛網)을 장련(長戀; 길이 연모)하지 말지니 선악업(善惡業)이 구속하여 가져 감을 입어 자유의 분한이 없다. 가령() 너희가 신심(身心)을 연득(鍊得)하여 허공과 같거나 가령 너희가 정명(精明)이 맑아() 흔들리지 않는 곳에 이르더라도 저 식음(識陰)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인이 급류수(急流水)와 같다고 불러 지었나니 흐름이 급해(流急) 불각(不覺)에 허망하게 염정(恬淨)으로 삼는다. 이렇게(恁麽) 수행하면 모두 저 윤회제(輪迴際)를 벗어남을 얻지 못하고 의전(依前; 依舊)히 윤회를 입어 간다. 소이로 말하되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며 바로 이 3()의 공과(功果)라 했나니 이외 같이 가히 두렵다(). 만약 도안(道眼)이 없다면 또한 구경(究竟)이 아니니 여금의 박지범부(博地凡夫)가 일호(一毫)의 공부(工夫)를 쓰지 않고 바로 문득 초월하여 감과 어찌 같겠는가. 심력(心力)을 줄일() 줄 아느냐. 도리어 원요(願樂; 원하고 좋아하다)하느냐. 너희에게 권한다. 내가 여금에 입지(立地; 즉시)에 너희가 구(; 領悟)하여 감을 기다리나니 다시 너희로 하여금 가공(加功)하고 연행(煉行)하게 하지 않는다. 여금에 이러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시절을 기다리겠는가. 도리어 수긍하느냐, 바로 하좌했다.

揑目生; 눈동자를 누르고 비비어 환시(幻視)를 산생(産生)하면 흡사 꽃이 출현함이 있는 듯함. 환상(幻象)을 제조하여 스스로 속고 남을 속임에 비유.

自利利他; 또 자익익타(自益益他)ㆍ자리이인(自利利人)ㆍ자행화타(自行化他)ㆍ자리타리ㆍ자타이리(自他二利)로 지음. 자리(自利)는 곧 이기(利己)의 뜻이니 곧 자신의 공덕을 위해 노력하고 수행함이며 이로써 산생(産生)한 바의 선과(善果)로 스스로 그 이익을 얻음. 이타(利他)는 곧 타인을 이익되게 함의 뜻이니 곧 자기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모든 유정을 구제하기 위해 힘을 모아 행선(行善).

黑漫漫地; 흑암이 만만(漫漫)함과 같아서 선법을 부지불변(不知不辨)하는 양자(樣子). ()는 조사.

趂謴; 중인(衆人)을 근수(跟隨; 뒤를 따라감)하며 훤홍(喧哄; 떠듦).

識陰; 5음의 하나. 또 식온(識蘊)으로 지음. 곧 안식 등 제식(諸識)의 각류의 무더기.

博地凡夫; 보통의 사람. 일반적 사람. 박지(博地)는 광활한 토지와 대지. 천태삼대부보주11. 박지(博地) ()은 넓고 많음이다. 하범지지(下凡之地)가 넓고 많은 연고일 뿐이다.

 

上堂 汝諸人如在大海裏坐 沒頭浸却了 更展手問人乞水喫 夫學般若菩薩 須具大根器 有大智慧始得 若有智慧 卽今便出脫得去 若是根機遲鈍 直須勤苦耐志 日夜忘疲 無眠失食 如喪考妣相似 恁麽急切 盡一生去 更得人荷挾 尅骨究實 不妨易得搆去 且況如今 誰是堪任受學底人 仁者 莫祇是記言記語 恰似念陀羅尼相似 蹋步向前來 口裏哆哆和和地 被人把住詰問著 沒去處便嗔道和尙不爲我答話 恁麽學事大苦 知麽 有一般坐繩牀和尙 稱善知識 問著便搖身動手 點眼吐舌瞪視 更有一般說 昭昭靈靈 靈臺智性 能見能聞 向五蘊身田裏作主宰 恁麽爲善知識大賺人 知麽 我今問汝 汝若認昭昭靈靈是汝眞實 爲甚麽瞌睡時又不成昭昭靈靈 若瞌睡時不是 爲甚麽有昭昭時 汝還會麽 這箇喚作認賊爲子 是生死根本妄想緣氣 汝欲識根由麽 我向汝道 昭昭靈靈 祇因前塵色聲香等法而有分別 便道此是昭昭靈靈 若無前塵 汝此昭昭靈靈同於龜毛兔角 仁者眞實在甚麽處 汝今欲得出他五蘊身田主宰 但識取汝祕密金剛體 古人向汝道 圓成正遍 遍周沙界 我今少分爲汝智者 可以譬喻得解 汝還見南閻浮提日麽 世間人所作興營養身活命種種心行作業 莫非皆承日光成立 祇如日體 還有許多般心行麽 還有不周遍處麽 欲識金剛體 亦須如是看 祇如今山河大地十方國土色空明暗 及汝身心 莫非盡承汝圓成威光所現 直是天人羣生類所作業次 受生果報 有情無情 莫非承汝威光 乃至諸佛成道成果 接物利生 莫非盡承汝威光 祇如金剛體 還有凡夫諸佛麽 有汝心行麽 不可道無便得當去也 知麽 汝旣有如是奇特當陽出身處 何不發明取 因何却隨他向五蘊身田中鬼趣裏作活計 直下自謾去 忽然無常殺鬼到來 眼目譸張 身見命見 恁麽時大難支荷 如生脫龜殻相似大苦 仁者 莫把瞌睡見解便當却去 未解葢覆得毛頭許 汝還知麽 三界無安 猶如火宅 且汝未是得安樂底人 祇大作羣隊干他人世 這邊那邊飛走野鹿相似 但求衣食 若恁麽爭行他王道 知麽 國王大臣不拘執汝 父母放汝出家 十方施主供汝衣食 土地龍神呵護汝 也須具慚愧知恩始得 莫孤負人好 長連牀上排行著地銷將去 道是安樂 未在 皆是粥飯將養得汝 爛冬瓜相似變將去 土裏埋將去 業識茫茫 無本可據 沙門因甚麽到恁麽地 祇如大地上蠢蠢者 我喚作地獄劫住 如今若不了 明朝後日入驢胎馬肚裏 牽犂拽耙 銜鐵負鞍 碓搗磨磨 水火裏燒煑去 大不容易受 大須恐懼好 是汝自累 知麽 若是了去 直下永劫 不曾敎汝有這箇消息 若不了 此煩惱惡業因緣 不是一劫兩劫得休 直與汝金剛齊壽 知麽

荷挾; 傍助 扶持

剋骨; 刻骨 剋 通刻

昭昭靈靈; 明白淸醒貌

靈臺; 指一心 眞如 佛性 緇門警訓註上 靈臺 心也 莊周(莊子庚桑楚)曰 萬惡不可內於靈臺 司馬彪曰 心爲神靈之臺 選註云 寄神通於心府之下 註心賦一 此一心法 是神解之性 能通靈通聖 故曰靈臺

身田; 身能生善惡之業 故云身田

龜毛兔角; 龜本無毛 兔本無角 龜毛兔角 指虛有名稱而幷無實物 常用來說明萬事萬物虛幻不實

南閻浮提; 卽南贍部洲 四大洲之一 舊云南閻浮提 新云南贍部洲 閻浮者 卽贍部之樹名 提者 洲之義 此洲中地有贍部樹 故以爲洲名 在須彌山南方之鹹海中 故云南 慧琳音義一 立世阿毘曇論云 有贍部樹生此洲北邊泥民陀羅河 南岸正當洲之中心 北臨水上 於樹下水底南岸下有贍部黃金 古名閻浮檀金 樹因金而得名 洲因樹而立號 故名贍部

接物利生; 卽接引化導世間衆生 相應其種種機根 而給與利益

鬼趣; 又曰鬼道 鬼神所趣之境土也 五趣之一 俱舍論八曰 趣謂所往

無常殺鬼; 無常猶如殺人之幽鬼 由於無常之理 令生者 不分貴賤 不擇豪賢 必有一死 故以殺鬼比喩之

; 誑也 謂相欺惑者也 [慧琳音義十九]

支荷; 領受(機緣) 承受

三界無安; 法華經二譬喩品 三界無安 猶如火宅 衆苦充滿 甚可怖畏 常有生老 病死憂患 如是等火 熾然不息

將養; 休息和調養

牽犁拽杷; 牽犂拽耙 又作牽犁拽把 一代指做畜生 二比喩修道求法 應像牛馬耕田 一心勤苦耕作 此指一

自累; 自己束縛自己 牽累自己

 

상당(上堂) 너희 제인은 마치 대해 속에 앉아 머리가 잠기도록 물에 침몰(浸沒)해버리고는 다시 손을 펴 사람에게 물어 물을 구걸해 먹음과 흡사하다. 무릇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모름지기 대근기(大根器)를 갖추고 대지혜가 있어야 비로소 옳다. 만약 지혜가 있다면 즉금 바로 출탈(出脫)함을 얻으려니와 만약 이 근기(根機)가 지둔(遲鈍)하다면 바로 모름지기 근고(勤苦)하는 내지(耐志; 인내하는 意志)일야(日夜)로 망피(忘疲)하고 무면(無眠)하고 실식(失食; 끼니를 잃음)하되 마치 고비(考妣; 부모)를 잃음((如喪考妣))과 상사해야 한다. 이렇게 급절(急切)하며 일생을 다하고 다시 타인의 하협(荷挾)을 얻고 극골(剋骨)하며 구실(究實)한다면 쉽게 구거(搆去; 領悟. 계합)를 얻음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또 견주건대(且況) 여금에 누가 이 수학(受學)을 감임(堪任)할 사람인가. 인자(仁者), 다만 이 기언기어(記言記語)하되 흡사 다라니(陀羅尼)를 외움()과 상사하지 말아라. 답보(蹋步)하여 앞을 향해 오면서 입속이 치치화화지(哆哆啝啝; 는 조사)에 타인이 파주(把住)하고 힐문함을(詰問著) 입으면 거처(去處)가 없으면서 바로 성내어 말하되 화상이 나를 위해 답화(答話)하지 않는다 하거니와 이러한(恁麽) 학사(學事)는 대고(大苦)니 아느냐. 일반(一般)의 승상(繩牀)에 앉은 화상이 있으며 일컬어 선지식이라 하는데 물으면(問著) 바로 요신(搖身)ㆍ동수(動手)ㆍ점안(點眼; 눈을 깜작이다)ㆍ토설(吐舌)ㆍ징시(瞪視; 노려보다)한다. 다시 일반(一般)이 있어 설하되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영대(靈臺)의 지성(智性)이 능견능문(能見能聞)하나니 5()의 신전(身田) 속을 향해 주재(主宰)를 짓는다 하거니와 이렇게 선지식이 된다면 매우 사람을 속임이다(大賺人). 아느냐. 내가 이제 너희에게 묻노니 너희가 만약 소소영령(昭昭靈靈)이 이 너희의 진실이라고 인정한다면 무엇 때문에 잠들었을(瞌睡) 때는 또 소소영령을 이루지 못하는가. 만약 잠들었을 때 이러하지 못한다면(잠들었을 때 소소영령을 이루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소소(昭昭)한 때가 있느냐. 너희가 도리어 아느냐. 이것(這箇)을 도적을 인정해 아들로 삼음이라고 불러 짓는다. 이는 생사의 근본이며 망상(妄想)의 연기(緣氣). 너희가 근유(根由)를 알고자 하느냐. 내가 너희를 향해 말한다. 소소영령은 다만 전진(前塵)인 색성향(色聲香) 등의 법으로 인해 분별이 있음이거늘 바로 말하되 이것이 이 소소영령이라 하거니와 만약 전진(前塵)이 없다면 너희의 이 소소영령이 귀모토각(龜毛兔角)과 같다. 인자(仁者; 상대방의 존칭)의 진실이 어느 곳에 있느냐. 너희가 이제 저 5온 신전(身田)의 주재(主宰)를 벗어남을 얻고자 한다면 단지 너희의 비밀(祕密)의 금강체(金剛體)를 식취(識取)하라. 고인이 너희를 향해 말하되 원성(圓成; 원만성취)하고 정편(正遍; 바로 두루하다)하여 사계(沙界)에 편주(遍周)한다. 내가 이제 소분(少分) 너희 지자(智者)를 위하리니 가히 비유로써 득해(得解)하라. 너희가 도리어 남염부제(南閻浮提)의 해()를 보느냐. 세간인(世間人)이 짓는 바 흥영(興營)ㆍ양신(養身)ㆍ활명(活命)과 갖가지 심행(心行)의 작업이 모두 일광(日光)을 승수(承受)하여 성립하지 않음이 없거니와 지여(祇如) 일체(日體)가 도리어 허다반(許多般; 허다한 종류)의 심행(心行)이 있느냐. 도리어 주편(周遍)하지 못하는 곳이 있느냐. 금강체(金剛體)를 알고자 한다면 또한 꼭 이와 같이 보아라. 다만 여금의 산하대지(山河大地)ㆍ시방국토(十方國土)ㆍ색공명암(色空明暗) 및 너의 신심(身心)이 모두() 너의 원성(圓成)의 위광(威光)을 승수(承受)하여 나타나는 바가 아님이 없다. 바로 이 천인(天人) 군생류(盡生類)가 짓는 바 업차(業次)와 수생(受生)하는 과보ㆍ유성(有性)ㆍ무정(無情)이 너희위광(威光)을 승수(承受)하지 않음이 없다. 내지 제불의 성도(成道)ㆍ성과(成果)와 접물이생(接物利生)이 모두 너희의 위광(威光)을 승수(承受)하지 않음이 없다. 지여(祇如) 금강체(金剛體)에 도리어 범부와 제불이 있느냐, 너희의 심행(心行)이 있느냐. 없다고 말함이 바로 득당(得當)하여 간다 함은 옳지 못하다. 아느냐, 너희가 이미 이와 같은 기특하고 당양(當陽)하여 출신(出身)할 곳이 있거늘 왜 발명(發明; 明悟)해 취하지 않고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그를 따라 5() 신전(身田) 가운데의 귀취(鬼趣) 속을 향해 활계(活計)를 짓고 직하(直下; 즉시) 스스로 속느냐. 홀연히 무상살귀(無常殺鬼)가 도래(到來)하면 안목이 주장(譸張)하고 신견(身見)과 명견(命見)이 이러한 때 매우 지하(支荷)하기 어렵나니 마치 산 채로 거북의 껍질을 벗김과 상사(相似)하여 매우 고통스럽다(大苦). 인자(仁者), 갑수(瞌睡)의 견해를 가지고 바로 당각(當却)하지 말지니 개부(蓋覆)하여 모두(毛頭; 는 조사) 만큼()도 얻을 줄 알지 못한다. 너희가 도리어 아느냐, 3계가 안녕이 없음(三界無安)이 마치 화택과 같다. () 너희는 이 안락을 얻은 사람이 아니며 다만 군대(羣隊)를 크게 지어 저 인세(人世)에 상간(相干)하나니 저변(這邊)과 나변(那邊)에 비주(飛走)하는 야록(野鹿)과 상사하다. 단지 의식(衣食)을 구하나니 만약 이러하다면 어찌 저 왕도(王道)를 행하겠는가. 아느냐. 국왕과 대신이 너희를 구집(拘執)하지 않고 부모가 너희를 방출해 출가케 했고 시방의 시주가 너희에게 의식(衣食)을 공급하고 토지(土地; 토지신)와 용신(龍神)이 너희를 가호(呵護)하니 또한 모름지기 참괴(慚愧)를 갖추어 지은(知恩)해야 비로소 옳고 사람을 저버리지(孤負) 말아야 좋으니라(). 장련상상(長連牀上)에서 배행(排行)하고 착지(著地)하여 소비(消費; )해 나아가면서(將去) 말하되 이는 안락(安樂)이다 하면 미재(未在; 不然)니 모두 이 죽반(粥飯)으로 장양(將養)해 너희를 얻었으며 문드러진 동과(冬瓜)와 상사(相似)하여 변해 나아갈 것이며 흙 속에 매장(埋葬)되어 나아갈 것이다. 업식이 망망(茫茫)하여 가히 의거할 근본이 없나니 사문(沙門)이 무엇으로 인해 이러한 경지(境地)에 이르는가. 지여(祇如) 대지(大地) 위에 준준(蠢蠢; 꿈틀거리다)하는 것을 내가 지옥에 영겁(永劫)토록 머문다고 불러 짓는다. 여금에 만약 깨닫지 못하면(不了) 명조(明朝; 내일 아침. 내일)나 후일에 여태마두(驢胎馬肚; 나귀 태와 말의 배) 속에 들어가 쟁기를 당기고 써래를 끌며(牽犁拽杷) 쇠를 물고 안장을 지며(銜鐵負鞍) 방아로 찧고 맷돌로 갈며(碓擣磨磨) 물과 불 속에 불탈(燒煮) 것이다. 매우 용이하게 받지 못할 것이며 매우 두려움(恐懼)을 써야 좋으리니 이는 너희의 자루(自累). 아느냐. 만약 이 깨친다면(了去) 직하(直下; 즉시)에 영겁(永劫)토록 일찍이 너희에게 저개(這箇) 소식이 있게 하지 않겠지만 만약 깨치지 못한다면 이 번뇌와 악업의 인연은 이 일겁(一劫)이나 양겁(兩劫)에 쉼을 얻지 못하고 바로 너희의 금강(金剛)과 제수(齊壽)하리니 아느냐.

荷挾; 방조(傍助). 부지(扶持).

剋骨; 각골(刻骨; 뼈에 새김). ()은 각()과 통함.

昭昭靈靈; 명백하고 청성(淸醒)한 모양.

靈臺; 일심ㆍ진여ㆍ불성을 가리킴. 치문경훈주상. 영대(靈臺) ()이다. 장주(莊周; 莊子 庚桑楚)가 가로되 만악(萬惡)이 가히 영대(靈臺)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마표가 가로되 심()은 신령의 대()가 된다. 선주(選註)에 이르되 신통을 심부(心府)의 아래 기탁한다. 주심부1. 이 일심법은 이 신해(神解)하는 자성이며 능히 통령통성(通靈通聖; 영에 통하고 성에 통하다)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영대(靈臺).

身田; 몸은 능히 선악의 업을 내는지라 고로 이르되 신전(身田).

龜毛兔角; 거북은 본래 털이 없으며 토끼는 본래 뿔이 없음. 귀모토각은 헛되이 명칭만 있고 모두 실물이 없음을 가리킴. 상용하여 오면서 만사만물의 허환되고 실답지 못함을 설명함.

南閻浮提; 곧 남섬부주(南贍部洲)4대주(大洲)의 하나. 구역에 이르기를 남염부제(南閻浮提)며 신역에 이르기를 남섬부주(南贍部洲). 염부(閻浮; jambu)란 것은 섬부(贍部)의 수(; 나무) 이름이며 제()란 것은 주()의 뜻임. 이 주 가운데 땅에 섬부수가 있으며 고로 주명(洲名)으로 삼았음. 수미산 남방의 함해(鹹海) 중에 있는지라 고로 이르되 남(). 혜림음의1. 입세아비담론에 이르되 섬부수(贍部樹)가 있어 이 주() 북변의 니민다라하(泥民陀羅河)에서 난다. 남안은 바로 주의 중심에 해당하며 북쪽으로 수상(水上)에 임했다. 수하(樹下)의 수저(水底) 남안 아래 섬부황금(贍部黃金)이 있다. 옛이름은 염부단금(閻浮檀金)이며 수()는 금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고 주()는 수()로 인해 호를 세웠으므로 고로 이름이 섬부(贍部).

接物利生; 곧 세간의 중생을 접인(接引)하여 화도(化導)함이니 그 갖가지의 기근(機根)에 상응해 이익을 급여함임.

鬼趣; 또 가로되 귀도(鬼道)니 귀신이 취향하는 바의 경토(境土). 5()의 하나. 구사론8에 가로되 취()는 이르자면 가는 곳이다.

無常殺鬼; 무상은 마치 살인하는 유귀(幽鬼; 유령)와 같음. 무상의 이치로 말미암아 살게 된 자는 귀천을 분별하지 않고 호현(豪賢)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한 번 죽음이 있으므로 고로 살귀로 이에 비유함.

; (; 속임). 이르자면 서로 기혹(欺惑)하는 것임 [혜림음의19].

支荷; (機緣)을 영수함, 승수(承受).

三界無安; 법화경2 비유품. 삼계가 안녕이 없음(三界無安)/ 마치 화택과 같나니(猶如火宅)/ 뭇 괴로움이 충만하여/ 매우 가히 두렵다(怖畏)/ 늘 생로와/ 병사의 우환이 있어/ 이와 같은 등의 화가/ 활활 타서(熾然) 쉬지 않는다.

將養; 휴식과 조양(調養).

牽犁拽杷; 견리예파(牽犂拽耙)와 같음. 또 견리예파(牽犁拽把; 와 같음. 는 자루 파)로 지음. 1. 축생을 지음을 대지(代指; 대체해 가리킴). 2. 수도하여 구법함에 비유. 소나 말의 형상에 응해 경전(耕田)하고 일심으로 근고하며 경작함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自累; 자기가 자기를 속박함. 자기에게 견루(牽累).

 

師因參次 聞燕子聲 乃曰 深談實相 善說法要 便下座 時有僧請益曰 某甲不會 師曰 去 誰信汝 鼓山來 師作一圓相示之 山曰 人人出這箇不得 師曰 情知汝向驢胎馬腹裏作活計 山曰 和尙又作麽生 師曰 人人出這箇不得 山曰 和尙與麽道却得 某甲爲甚麽道不得 師曰 我得汝不得 上堂 衆集 遂將拄杖一時趂下 却回向侍者道 我今日作得一解 險入地獄如箭射 者曰 喜得和尙再復人身 僧侍立次 師以杖指面前地上白點曰 還見麽 曰 見 如是三問 僧亦如是答 師曰 你也見 我也見 爲甚麽道不會 師甞訪三斗庵主 纔相見 主曰 莫怪住山年深無坐具 師曰 人人盡有 庵主爲甚麽無 主曰 且坐喫茶 師曰 庵主元來有在

燕子; 玄鳥 燕 玄鳥 子 後綴

 

스님이, 참차(參次)에 연자(燕子) 소리를 들음으로 인해 이에 가로되 실상(實相)을 깊이 얘기하고 법요(法要)를 잘 설하는구나. 바로 하좌했다. 때에 어떤 중이 청익하여 가로되 모갑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가거라, 누가 너를 믿겠는가. 고산(鼓山)이 오자 스님이 1원상(圓相)을 지어 보였다(示之). 산왈(山曰) 사람마다 이것을 벗어남을 얻지 못합니다. 사왈 진실로() 네가 여태마복(驢胎馬腹) 속을 향해 활계를 짓는 줄 알겠다. 산왈(山曰) 화상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마다 이것을 벗어남을 얻지 못한다. 산왈(山曰) 화상은 이렇게 말함을 도리어 얻고 모갑은 무엇 때문에 말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나는 얻지만 너는 얻지 못한다. 상당(上堂) 대중이 모이자 스님이 주장자를 가지고 일시에 쫓았다(趂下). 도리어 돌아와 시자(侍者)를 향해 말하되 내가 금일 일해(一解)를 지었으니(作得) 위험하여 지옥에 들어가기가 화살을 쏨과 같다. 시자가 가로되 화상이 인신(人身)을 다시 회복하셨음을 기뻐합니다(喜得). 중이 시립(侍立)하던 차에 스님이 주장자로써 면전의 지상(地上)의 백점(白點)을 가리키며 가로되 도리어 보느냐. 가로되 봅니다. 이와 같이 세 번 묻자 중도 또한 이와 같이 답했다. 사왈 너도 보고 나도 보거늘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말하느냐. 스님이 일찍이 삼두암주(三斗庵主)를 방문했다. 겨우 상견하자 암주가 가로되 주산(住山)한 해가 깊어 좌구(坐具)가 없음을 괴이히 여기지 마십시오. 사왈 사람마다 다 있거늘 암주는 무엇 때문에 없습니까. 암주가 가로되 다만 앉아 끽다(喫茶)하시오. 사왈 암주가 원래 있었습니다.

燕子; 현조(玄鳥; 제비)니 연()은 현조며 자는 후철.

 

侍雪峰次 有二僧從階下過 峰曰 此二人堪爲種草 師曰 某甲不與麽 峰曰 汝作麽生 師曰 便好與三十棒 因雪峰指火曰 三世諸佛在火焰裏轉大法輪 師曰 近日王令稍嚴 峰曰 作麽生 師曰 不許攙奪行市 雲門曰 火焰爲三世諸佛說法 三世諸佛立地聽 南際到雪峰 峰令訪師 師問 古人道此事唯我能知 長老作麽生 際曰 須知有不求知者歸宗柔別 拊掌三下 師曰 山頭和尙喫許多辛苦作麽 雪峰普請畬田次 見一蛇 以杖挑起 召衆曰 看看 以刀芟 爲兩段 師以杖拋於背後 更不顧視 衆愕然 峰曰 俊哉 侍雪峰遊山次 峰指面前地曰 這一片地好造箇無縫塔 師曰 高多少 峯乃顧視上下 師曰 人天福報卽不無和尙 若是靈山授記 未夢見在 峯曰 你又作麽生 師曰 七尺八尺 雪峰曰 世界闊一尺 古鏡闊一尺 世界闊一丈 古鏡闊一丈 師指火爐曰 火爐闊多少 峯曰 如古鏡闊 師曰 老和尙脚跟未點地在

種草; 比喩佛性 謂佛性之於人 猶如草木之含藏種芽 是人人必具者 故稱爲種草 於禪林則以能繼承佛祖之法者 比喩爲植物之苗芽

攙奪行市; 又作攙行奪市 搶奪市場也 喩指禪林造作多事 濫用言說作略 行 胡郞切 買賣交易的營業處 卽市場也

 

설봉(雪峰)을 시립(侍立; )하던 차에 2()이 있어 섬돌 아래로 좇아 지나갔다. 봉왈(峰曰) 2인은 가히() 종초(種草)가 될 만하다. 사왈 모갑은 이러하지 않습니다. 봉왈(峰曰) 너는 어떠한가. 사왈 바로 좋이 30방 주겠습니다. 설봉이 불을 가리키며 가로되 삼세제불이 화염 속에 있으면서 대법륜을 굴린다 함으로 인해 사왈 근일 왕령(王令)이 조금 엄합니다. 봉왈(峰曰) 어째서(作麽生). 사왈 항시(行市)를 참탈(攙奪行市)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운문이 가로되 화염이 삼세제불을 위해 설법하매 삼세제불이 입지(立地; 땅에 서다)하여 듣습니다. 남제(南際)가 설봉에 이르자 설봉이 스님을 방문하게 했다. 스님이 묻되 고인이 말하되 차사(此事)는 오직 나만이 능히 안다(唯我能知), 장로는 어떠한가. 남제가 가로되 앎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는 줄 꼭 알아야 합니다歸宗柔하되 세 번 拊掌했다. 사왈 산두화상(山頭和尙)이 허다한 신고(辛苦)를 먹어(; 承受) 무엇하랴. 설봉이 여전(畬田; 火田)을 보청(普請)하던 차에 1()를 보자 지팡이로써 돋우어 일으키고는 대중을 부르고 가로되 보아라, 보아라. 칼로써 베어(; 벨 삼) 두 조각을 만들었다. 스님이 지팡이로써 등 뒤로 던지고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대중이 놀랐다(愕然). 봉왈(峰曰) 준재(俊哉)로다. 설봉을 모시고 유산(遊山)하던 차에 설봉이 면전의 땅을 가리키며 가로되 이() 일편지(一片地)에 좋이 저() 무봉탑(無縫塔)을 지을 만하다. 사왈 높이가 얼마입니까. 설봉이 이에 상하(上下)를 돌아보았다. 사왈 인천(人天)의 복보(福報)는 곧 화상이 없지 않으나 만약 이 영산(靈山)의 수기(授記)일진대 꿈에도 보지 못하여 있습니다. 봉왈(峯曰) 너는 또 어떠한가. 사왈 7(), 8()입니다. 설봉이 가로되 세계의 넒이가 1()이면 고경(古鏡)의 넓이도 1척이며 세계의 넓이가 1()이면 고경의 넓이도 1장이다. 스님이 화로(火爐)를 가리키며 가로되 화로는 넓이가 얼마입니까. 봉왈(峯曰) 고경의 넓이와 같다. 사왈 노화상이 발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구나(脚跟未點地在; 는 조사).

種草; 불성에 비유함. 이르자면 불성은 사람에게, 마치 초목이 종아(種芽)를 함장(含藏)함과 같으며 이는 사람마다 반드시 갖춘 것이므로 고로 일컬어 종초라 함. 선림에선 곧 능히 불조의 법을 계승할 자를 식물의 묘아(苗芽)에 비유함.

攙奪行市; 또 참항탈시(攙行奪市)로 지음. 시장을 창탈(搶奪; 강제로 빼앗음). 선림에서 많은 일을 조작하고 언설의 작략을 남용함을 비유로 가리킴. ()은 호랑절(胡郞切; )이니 매매하고 교역하는 영업처, 곧 시장임.

 

師初住普應院 遷止玄沙 天下叢林 皆望風而賓之 閩帥王公待以師禮 學徒餘八百 室戶不閉 上堂 良久曰 我爲汝得徹困也 還會麽 僧問 寂寂無言時如何 師曰 寐語作麽 曰 本分事請師道 師曰 瞌睡作麽 曰 學人卽瞌睡 和尙如何 師曰 爭得恁麽不識痛癢 又曰 可惜如許大師僧 千道萬里行脚到這裏 不消箇瞌睡寐語 便屈却去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用自己作麽 問 從上宗乘 如何理論 師曰 少人聽 曰 請和尙直道 師曰 患聾作麽 又曰 仁者 如今事不獲已 敎我抑下如是威光 苦口相勸 百千方便 如此如彼 共汝相知聞 盡成顚倒知見 將此咽喉唇吻 祇成得箇野狐精業謾汝我 還肯麽 祇如有過無過 唯我自知 汝爭得會 若是恁麽人出頭來 甘伏呵責 夫爲人師匠大不易 須是善知識始得知 我如今恁麽方便助汝 猶尙不能搆得 可中純擧宗乘 是汝向甚麽處安措 還會麽 四十九年是方便 祇如靈山會上有百萬衆 唯有迦葉一人親聞 餘盡不聞 汝道迦葉親聞底事作麽生 不可道如來無說說 迦葉不聞聞 便得當去 不可是汝修因成果福智莊嚴底事 知麽 且如道 吾有正法眼藏 付囑大迦葉 我道猶如話月 曹溪竪拂子還如指月 所以道 大唐國內宗乘中事 未曾見有一人擧唱 設有人擧唱 盡大地人失却性命 如無孔鐵鎚相似 一時亡鋒結舌去 汝諸人賴遇我不惜身命 共汝顚倒知見 隨汝狂意 方有伸問處 我若不共汝恁麽知聞去 汝向甚麽處得見我 會麽 大難 努力 珍重 師有偈曰 萬里神光頂後相 沒頂之時何處望 事已成意亦休 此箇來蹤觸處周 智者著便提取 莫待須臾失却頭 又曰 玄沙遊逕別 時人切須知 三冬陽氣盛 六月降霜時 有語非關舌 無言切要詞 會我最後句 出世少人知

望風; 瞻望並想見其風采

無孔鐵鎚; 無孔鐵槌 原指無柄之鐵槌 禪林中用以比喩欲引導衆生 卻缺乏引導之方法 猶如無孔不得加柄之鐵槌 全無著手處 或比喩拘泥於言敎而失去開悟之機緣

亡鋒結舌; 謂啞口無言 無有領會禪機

; 一挑 二挑弄 挑發 三指禪師對學人的啓發 此指三

切要; 一要領 綱要 二緊要

 

스님이 처음엔 보응원(普應院)에 거주했고 옮겨 현사(玄沙)에 머물렀다(). 천하총림(天下叢林)이 모두 망풍(望風)하며 그를 접대(接待; )했고 민수(閩帥)와 왕공(王公)이 스승의 예절로 대접(待接; )했다. 학도(學徒)8백 남짓이었으며(餘八百) 실호(室戶)를 닫지 않았다.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내가 너희를 위하느라 철저히 피곤함을 얻었다. 도리어 아느냐. 승문(僧問) 적적(寂寂)히 말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매어(寐語; 잠꼬대)하여 무엇하랴. 가로되 본분사(本分事)를 스님에게 청하오니 말씀하십시오. 사왈 갑수()하여 무엇하랴. 가로되 학인은 곧 갑수합니다만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어찌하여 이렇게 통양(痛癢)을 알지 못함을 얻느냐. 또 가로되 가석하게도 여허(如許; 許多. 如此)한 대사승(大師僧)이 천도만리(千道萬里)를 행각하다가 이 속(遮裏)에 이르러 저() 갑수()하면서의 매어(寐語)를 삭이지() 못하고 바로 굴복해버리는구나(屈却去).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자기를 써서 무엇하랴.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이론(理論)합니까. 사왈 듣는 사람이 적다(少人聽). 가로되 화상의 직도(直道; 바로 말하다)를 청합니다. 사왈 환롱(患聾; 귀머거리의 질환)하여 무엇하리오. 또 가로되 인자(仁者), 여금에 일이 불획이(不獲已; 不得已)하여 나로 하여금 이와 같은 위광(威光)을 억하(抑下; 억눌러 내리다)하게 하여 고구(苦口)로 상권(相勸)하여 백천(百千) 방편으로 이와 같고 그와 같다고 하면서 너희와 함께 서로 지문(知聞)하지만 모두 전도(顚倒)된 지견을 이룬다. 이 목구멍(咽喉)과 입술(脣吻)을 가지고 다만 저() 야호정(野狐精)의 업을 이루어(成得) 너희와 나를 속인다 하노니 도리어 수긍하느냐. 지여(祇如) 유과무과(有過無過)를 오직 나만이 스스로 알거늘 너희가 어찌 이회(理會)함을 얻겠는가. 만약 이 이러한 사람이 출두해 온다면 가책(呵責)에 달게 굴복(屈伏)하리라. 무릇 사람의 사장(師匠)이 됨은 매우 쉽지 않나니 모름지기 이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득지(得知)한다. 내가 여금에 이러한(恁麽) 방편으로 너희를 돕지만 오히려(猶尙; 仍然) 능히 구득(搆得; 領會)하지 못한다. 가중(可中; 假若. 假如) 순전히 종승(宗乘)을 든다면 이 너희가 어느 곳을 향해 안조(安措; 安置)하겠는가. 도리어 아느냐. 사십구년(四十九年)이 이 방편이니 지여(祇如) 영산회상(靈山會上)에 백만중(百萬衆)이 있었지만 오직 가섭 1인이 있어 친문(親聞)하고 나머지는 모두 듣지 못했다. 너희가 말하라, 가섭이 친문(親聞)한 일이 무엇인가(作麽生). 여래가 설함 없이 설하고 가섭이 듣지 않으면서 들었음이 바로 득당(得當)하다고 말함은 옳지 못하다. 이 너희가 수인성과(修因成果)하여 복지(福智)로 장엄(莊嚴)하는 일이라 함은 옳지 못하다. 아느냐. 또 말함과 같이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어 마하 대가섭에게 부촉(付囑)한다 한 것은 나는 말하노니 오히려 달을 말함(話月)과 같고 조계(曹谿; 6)가 불자를 세운 것은 도리어 달을 가리킨 것과 같다(還如指月). 소이로 말하되 대당국(大唐國) 안에서 종승(宗乘) 중의 일을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거창(擧唱)함이 있음을 보지 못했다. 설사 거창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온 대지 사람이 성명(性命)을 잃어버리나니 마치 무공철추(無孔鐵鎚)와 상사(相似)하여 일시에 망봉결설(亡鋒結舌)한다. 너희 제인(諸人)이 다행히() 나의,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음을 만나 너희의 전도(顚倒)된 지견과 함께 하고 너희의 광의(狂意)를 따르는지라 바야흐로 물음을 펼 곳(申問處)이 있다. 내가 만약 너희와 함께 이렇게 지문(知聞)하여 가지 않는다면 너희가 어느 곳을 향해 나를 득견(得見)하겠는가. 아느냐, 매우 어렵나니 노력(努力)하라. 진중(珍重).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만리(萬里) 신광(神光)의 정후상(頂後相)/ 정수리()가 잠길 때 어느 곳에서 바라보겠는가/ ()를 이미 이루면 뜻도 또한 쉬나니/ 이것(此箇)의 내종(來蹤)이 접촉하는 곳에 두루하다/ 지자(智者)는 요착()하면 바로 제취(提取)하나니/ 수유(須臾)에 머리를 실각(失却)함을 기다리지 말아라. 또 가로되 현사(玄沙)의 유경(遊逕)은 다르나니/ 시인(時人)이 절실(切實)하게 수지(須知)하라/ 삼동(三冬)에 양기(陽氣)가 성()하고/ 6월에 서리가 내릴 때다/ 말이 있으나 혀와 상관되지 않고/ 말이 없으나 절요(切要)의 사()/ 나의 최후구(最後句)를 이회(理會)하려면/ 출세(出世; 출세간)라 아는 사람이 적다.

望風; 우러러 바라보고 아울러 그 풍채(風采)를 보기를 생각함.

無孔鐵鎚; 무공철추(無孔鐵槌)와 같음. 원래는 자루 없는 철추(鐵槌)를 가리키나 선림 중에선 중생을 인도(引導)하려고 하나 도리어 인도하는 방법이 결핍(缺乏)함에 비유로 씀. 마치 구멍이 없어 자루를 더함을 얻지 못하는 철추(鐵槌)와 같아서 온전히 착수(著手)할 곳이 없음임. 혹은 언교(言敎)에 구니(拘泥. 拘束)되어 개오(開悟)의 기연(機緣)을 놓침에 비유함.

亡鋒結舌; 이르자면 입이 벙어리가 되어 말이 없음이니 선기(禪機)를 영회(領會; 깨달아 앎)함이 있지 않음.

; 1. (; 돋우다). 2. 도롱(挑弄; 돋우어 희롱함). 도발(挑發;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 3. 선사가 학인을 상대해 계발함을 가리킴. 여기에선 3을 가리킴.

切要; 1. 요령(要領). 강요(綱要). 2. 긴요(緊要).

 

問 四威儀外如何奉王 師曰 汝是王法罪人 爭會問事 問 古人拈槌竪拂 還當宗乘也無 師曰 不當 曰 古人意作麽生 師擧拂子 僧曰 宗乘中事如何 師曰 待汝悟始得 問 如何是金剛力士 師吹一吹 閩王送師上船 師扣船召曰 大王爭能出得這裏去 王曰 在裏許得多少時也歸宗柔別云 不因和尙 不得到這裏 師問文桶頭 下山幾時歸 曰 三五日 師曰 歸時 有無底桶子將一擔歸 文無對歸宗柔代云 和尙用作甚麽 師垂語曰 諸方老宿盡道接物利生 祇如三種病人 汝作麽生接 患盲者 拈槌竪拂他又不見 患聾者 語言三昧他又不聞 患瘂者 敎伊說又說不得 若接不得 佛法無靈驗 時有僧出曰 三種病人還許學人商量否 師曰 許 汝作麽生商量 其僧珍重出 師曰 不是不是 羅漢曰 桂琛現有眼耳口 和尙作麽生接 師曰 慚愧 便歸方丈 中塔曰 三種病人 卽今在甚麽處 又一僧曰 非唯謾他 兼亦自謾法眼云 我當時見羅漢擧此僧語 我便會三種病人 雲居錫云 祇如此僧會不會 若道會 玄沙又道不是 若道不會 法眼爲甚麽道 我因此僧語 便會三種病人 上座 無事上來商量 大家要知 有僧請益雲門 門曰 汝禮拜著 僧禮拜起 門以拄杖挃之 僧退後 門曰 汝不是患盲麽 復喚近前來 僧近前 門曰 汝不是患聾麽 門曰 會麽 曰 不會 門曰 汝不是患瘂麽 僧於是有省

金剛力士; 與金剛神 執金剛 金剛夜叉 密跡金剛等皆同 執金剛杵護持佛法之天神 立於寺門兩脅之二王是也 大寶積經密跡金剛力士品記其宿世之事歷發願

桶頭; 禪林掌管桶類之寺僧

 

묻되 사위의(四威儀) 밖에서 어떻게 봉왕(奉王)합니까. 사왈(師曰) 너는 이 왕법(王法)의 죄인이거늘 어떻게 문사(問事)할 줄 알겠는가(). 묻되 고인이 염추수불(拈槌竪拂)함은 도리어 종승(宗乘)에 당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당하지 않는다. 가로되 고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들었다. 승왈(僧曰) 종승 중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너의 깨달음을 기다려야 비로소 옳다. 묻되 무엇이 이 금강역사(金剛力士)입니까. 스님이 불어 한 번 불었다(吹一吹). 민왕(閩王)이 스님을 보내어() 상선(上船)하자 스님이 배를 두드리고() 불러 가로되 대왕이 어떻게 능히 이 속을 벗어남을 얻겠습니까. 왕왈(王曰) 이허(裏許; 裏邊)에 있은 지 다소(多少)의 시일을 지냈습니다()歸宗柔別云 화상을 인하지 않았다면 이 속에 이름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님이 문통두(桶頭)에게 묻되 하산하면 어느 때 돌아오는가. 가로되 3, 5일입니다. 사왈 돌아올 때 바닥이 없는 통자(桶子; 는 조사)가 있거든 한 짐() 가지고 돌아오너라. ()이 대답이 없었다歸宗柔代云 화상이 써서 무엇하시려고요. 스님이 수어(垂語)하여 가로되 제방의 노숙(老宿)이 모두 접물이생(接物利生)을 말하거니와 지여(祇如) 삼종병인(三種病人)을 너희가 어떻게 접인(接引)하겠는가. 환맹자(患盲者; 눈이 먼 질환인 자)는 염추수불(拈槌竪拂)을 또 보지 못하고 환롱자(患聾者; 귀머거리의 질환인 자)는 어언삼매(語言三昧)를 그가 또 듣지 못하고 환아자(患瘂者; 벙어리의 질환인 자)는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하매 또 말함을 얻지 못한다. 만약 접인함을 얻지 못한다면 불법이 영험(靈驗)이 없다.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3종 병인()을 도리어 학인이 상량(商量)함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사왈 허락한다, 네가 어떻게 상량하겠는가. 그 중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나갔다. 사왈 옳지 않다(不是), 옳지 않다. 라한(羅漢; 桂琛)이 가로되 계침(桂琛)은 현재 안이구(眼耳口)가 있습니다, 화상이 어떻게 접인하겠습니까. 사왈 부끄럽다(慚愧).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중탑(中塔)이 가로되 3종 병인이 즉금 어느 곳에 있느냐. 1()이 가로되 오직 타인만 속임이 아니라 겸하여 또한 스스로 속음이다法眼이 이르되 내가 당시에 羅漢此僧의 말을 드는 것을 보고 내가 바로 3종 병인을 알았다. 雲居錫이 이르되 祇如 此僧은 알았는가, 알지 못했는가. 만약 알았다고 말한다면 현사가 또 말하되 옳지 않다 했고 만약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法眼이 무엇 때문에 말하되 내가 此僧의 말로 인해 바로 3종 병인을 알았다 했는가. 上座, 無事하거든 올라와서 商量하라, 大家(대중)가 알고자 한다. 어떤 중이 운문(雲門)에게 청익하자 문왈(門曰) 네가 예배하거라. 중이 예배하고 일어났다. 운문이 주장자로써 그를 찔렀다(). 중이 뒤로 물러났다. 문왈(門曰) 너는 이 환맹(患盲)이 아니구나. 다시 불러 앞으로 다가오라 하였다. 중이 앞으로 다가가자 문왈(門曰) 너는 이 환롱(患聾)이 아니구나. 문왈(門曰)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문왈(門曰) 너는 이 환아(患瘂)가 아니구나. 중이 이에서 성찰이 있었다.

金剛力士; 금강신ㆍ집금강(執金剛)ㆍ금강야차(金剛夜叉)ㆍ밀적금강(密跡金剛) 등과 모두 같음. 금강저(金剛杵)를 가지고 불법을 호지하는 천신임. 절 문에 세워진 양협(兩脅)2왕이 이것임. 대보적경 밀적금강역사품에 그 숙세의 사력(事歷)과 발원이 기재되었음.

桶頭; 선림에서 통류(桶類)를 장관(掌管)하는 사승(寺僧).

 

長慶來 師問 除却藥忌 作麽生道 慶曰 放憨作麽 師曰 雪峰山橡子拾食 來這裏雀兒放糞 師因僧禮拜 師曰 因我得禮汝 普請斫柴次 見一虎 天龍曰 和尙 虎 師曰 是汝虎 歸院後天龍問 適來見虎 云是汝 未審尊意如何 師曰 娑婆世界有四種極重事 若人透得 不妨出得陰界東禪齊云 上座 古人見了道 我身心如大地虛空 如今人還透得麽 師問長生 維摩觀佛 前際不來 後際不去 今則無住 汝作麽生觀 生曰 放皎然過 有箇道處 師曰 放汝過 作麽生道 生良久 師曰 敎阿誰委悉 生曰 徒勞側耳 師曰 情知汝向鬼窟裏作活計崇壽稠別長生云 喚甚麽作如來問 古人皆以瞬視接人 未審和尙以何接人 師曰 我不以瞬視接人 曰 學人爲甚道不得 師曰 畐塞汝口 爭解道得法眼云 古人恁麽道甚奇特 且問上座口是甚麽 問 凡有言句 盡落裷䙡 不落裷䙡 請和尙商量 師曰 拗折秤衡來 與汝商量 問 承古有言 擧足下足 無非道場 如何是道場 師曰 沒却你 曰 爲甚麽得恁麽難見 師曰 祇爲太近法眼曰 也無可得近 直下是上座

藥忌; 祖庭事苑二 藥忌 猶語言也

前際; 過去 前生 佛敎所稱三際之一

後際; 後世 未來 三際之一

鬼窟裏作活計; 比喩陷於情識俗情妄念等 又作鬼趣裏作活計 鬼家活計等

裷䙡; 套索也 又作圈䙡 圈圚 圈定的範圍 圈套 多指禪家接引施設 或機語作略

 

장경(長慶; 慧稜)이 오자 사문(師問) 약기(藥忌; 약을 쓸 때의 禁忌)를 제각(除却)하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경왈(慶曰) 어리석을() 놓아 무엇하겠는가. 사왈 설봉산의 상자(橡子; 도토리)를 흡족히 먹고 이 속에 온 참새(雀兒)가 방분(放糞)하는구나. 스님이 중이 예배함으로 인해 사왈 나로 인해 너에게 예배함을 얻는다. 보청(普請)하여 섶을 쪼개던(斫柴) 차에 일호(一虎)를 보았다. 천룡(天龍)이 가로되 화상, 범입니다. 사왈 이 네가 범이다(是汝虎). 귀원(歸院)한 후 천룡이 묻되 아까 범을 보고 이르되 이 너라 하셨는데 미심하오니 존의(尊意)가 무엇입니까. 사왈 사바세계(娑婆世界)4()의 극중사(極重事)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투득(透得)한다면 음계(陰界)를 출득(出得)함에 방애되지 않는다東禪齊가 이르되 上座, 古人見了하고 말하되 나의 身心大地虛空과 같다. 如今의 사람이 도리어 透得하느냐. 스님이 장생(長生; 皎然)에게 묻되 유마(維摩)가 관불(觀佛)하되 전제(前際)가 오지 않고 후제(後際)가 가지 않고 지금도 곧 무주(無住). 너는 어떻게 관()하느냐. 생왈(生曰) 교연(皎然)의 허물을 방면(放免)한다면 저() 말할 곳이 있습니다. 사왈 너의 허물을 방면한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장생이 양구(良久)했다. 사왈 누구(阿誰)로 하여금 알게(委悉) 하겠는가. 생왈(生曰) 도로(徒勞) 귀를 기울입니다. 사왈 네가 귀굴 속을 향해 활계를 짓는(鬼窟裏作活計) 줄 정지(情知; 豫想. 思料)하겠다崇壽稠長生과 다르게 이르되 무엇을 일러 여래라 합니까묻되 고인이 모두 순시(瞬視)로써 접인(接人)했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은 무엇으로써 접인합니까. 사왈 나는 순시(瞬視)로써 접인(接人)하지 않는다. 가로되 학인이 무엇 때문에 말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너의 입에 복색(畐塞; 가득하다)하거늘 어찌 말함을 얻을 줄 알겠는가法眼이 이르되 古人의 이러한 말은 奇特하다. 且問하나니 上座의 입은 이 무엇인가. 묻되 무릇 언구(言句)가 있으면 모두 권괴(裷䙡)에 떨어집니다. 권괴에 떨어지지 않고 화상의 상량(商量)을 청합니다. 사왈 칭형(秤衡; 秤竿)을 요절(抝折; 부러뜨리다)하고 온다면 너와 더불어 상량하겠다. 묻되 듣건대() 고인이 말씀이 있어 거족하족(擧足下足)이 도량(道場)이 아님이 없다 했습니다. 무엇이 이 도량입니까. 사왈 너를 가라앉혀버린다(沒却).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보기 어려움을 얻습니까. 사왈 다만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法眼이 가로되 또한 가히 得近함이 없나니 直下가 이 上座.

藥忌; 조정사원2. 약기(藥忌) 어언과 같다.

前際; 과거. 전생. 불교에서 일컫는 바 3()의 하나.

後際; 후세. 미래. 3제의 하나.

鬼窟裏作活計; 정식ㆍ속정ㆍ망념 등에 빠짐에 비유. 또 귀취리작활계(鬼趣裏作活計)ㆍ귀가활계(鬼家活計) 등으로 지음.

裷䙡; 투삭(套索; 올가미). 또 권괴(圈䙡)ㆍ권궤(圈圚)로 지음. 권정(圈定; 동그라미를 쳐서 확정하다)의 범위. 권투(圈套; 올가미). 다분히 선가에서 접인하는 시설이나 혹 기어의 작략을 가리킴.

 

師在雪峰時 光侍者謂師曰 師叔若學得禪 某甲打鐵船下海去 師住後問光曰 打得鐵船也未 光無對法眼代云 和尙終不恁麽 法燈代云 請和尙下船 玄覺代云 貧兒思舊債 師一日遣僧送書上雪峰 峰開緘 見白紙三幅 問僧 會麽 曰 不會 峰曰 不見道君子千里同風 僧回擧似 師曰 山頭老漢蹉過也不知 曰 和尙如何 師曰 孟春猶寒也不解道 師問鏡淸 敎中道 不見一法 爲大過患 且道不見甚麽法 淸指露柱曰 莫是不見這箇法麽同安顯別云 也知和尙不造次 師曰 浙中淸水白米從汝喫 佛法未會在 問 承和尙有言 盡十方世界是一顆明珠 學人如何得會 師曰 盡十方世界是一顆明珠 用會作麽 僧便休 師來日却問其僧 盡十方世界是一顆明珠 汝作麽生會 曰 盡十方世界是一顆明珠 用會作麽 師曰 知汝向鬼窟裏作活計玄覺云 一般恁麽道 爲甚麽却成鬼窟去

下船; 一從船上到岸上 上岸 二從岸上到船上 登船 此指二

千里同風; 意謂雖隔千里 然禪人之悟心及機鋒運用 仍然一致

 

스님이 설봉(雪峰)에 있을 때 광시자(光侍者)가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사숙(師叔)이 만약 선()을 배워 얻는다면 모갑이 철선을 만들어(打鐵船; 制造) 바다로 내려가겠습니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광()에게 물어 가로되 철선을 만들었는가(打得) 또는 아닌가. 광이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화상은 마침내 이러하지 않습니다. 法燈代云 화상의 下船을 청합니다. 玄覺代云 貧兒(貧者)가 묵은 빛을 생각한다. 스님이 어느 날 중을 보내 송서(送書)하여 설봉에게 올렸다. 설봉이 개함(開緘)하매 백지(白紙) 3()만 보였다. 중에게 묻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설봉이 가로되 말함을 보지 못했는가, 군자는 천리동풍(千里同風)이다. 중이 돌아가 들어 보이자 사왈 산두(山頭; 山上) 노한(老漢)이 차과(蹉過; 錯過니 놓침)한 줄도 알지 못하시는구나.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맹춘(孟春)에 아직 추워 또한 말할 줄 알지 못한다. 스님이 경청(鏡淸)에게 묻되 교중(敎中)에 말하되 일법(一法)을 보지 못함이 큰 과환(過患)이 된다. 그래 말하라, 무슨 법을 보지 못하느냐. 경청이 노주(露柱)를 가리키며 가로되 이는 저개(這箇) 법을 보지 못함이 아닐까同安顯別云 또한 화상이 造次(輕率)하지 않는 줄 안다. 사왈 절중(浙中; 浙江)의 청수(淸水)와 백미(白米)는 너의 먹는 대로 좇겠지만 불법은 알지 못하여 있다. 묻되 듣건대() 화상이 말씀이 있기를 온 시방세계가 이 한 알()의 명주(明珠)라 하셨습니다. 학인이 어떻게 득회(得會; 理會를 얻다)해야 합니까. 사왈(師曰) 온 시방세계가 이 한 알의 명주거늘 이회(理會)를 써서 무엇하리오. 중이 바로 쉬었다. 스님이 내일 도리어 그 중에게 묻되 온 시방세계가 이 한 알의 명주를, 네가 어떻게 이회하느냐. 가로되 온 시방세계가 이 한 알의 명주이거늘 이회를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사왈 네가 귀굴(鬼窟) 속을 향해 활계(活計)를 짓는 줄 알겠다玄覺云 一般으로 이렇게 말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鬼窟을 이루는가.

下船; 1. 선상(船上)으로 좇아 안상(岸上)에 이름. 상안(上岸). 2. 안상(岸上)으로 좇아 선상에 이름. 등선(登船).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千里同風; 뜻으로 이르면 비록 천 리에 격했더라도 그러나 선인(禪人)의 오심(悟心) 및 기봉의 운용은 잉연(仍然; 여전)히 일치(一致).

 

問 如何是無縫塔 師曰 這一縫大小 韋監軍來謁 乃曰 曹山和尙甚奇怪 師曰 撫州曹山幾里 韋指傍僧曰 上座曾到曹山否 曰 曾到 韋曰 撫州取曹山幾里 曰 百二十里 韋曰 恁麽則上座不到曹山 韋却起禮拜 師曰 監軍却須禮此僧 此僧却具慚愧雲居錫云 甚麽處是此僧具慙愧 若檢得出 許上座有行脚眼 問 如何是淸淨法身 師曰 膿滴滴地 問 如何是親切底事 師曰 我是謝三郞 西天有聲明三藏至 閩帥請師辨驗 師以鐵火筯敲銅爐問 是甚麽聲 藏曰 銅鐵聲法眼別云 請大師爲大王 法燈別云 聽和尙問師曰 大王莫受外國人謾 藏無對法眼代云 大師久受大王供養 法燈代云 却是和尙謾大王

; 此指距 離

謝三郞; 一唐代玄沙師備之稱號 師俗姓謝 謝家三男之意而稱謝三郞 二泛指某漁夫 亦作謝郞 此指一

聲明; 梵語攝拖苾馱 印度五明之一 謂文字音韻及語法之學 [翻譯名義集五]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이 일봉(一縫)은 대소(大小; ). 위감군(韋監軍)이 내알(來謁)하여 이에 가로되 조산화상(曹山和尙)이 심히 기괴(奇怪)합니다. 사왈 무주(撫州)에서 조산((曹山)까지의 거리(距離; )가 몇 리인가. ()가 곁의 중을 가리키며 가로되 상좌는 일찍이 조산에 이르렀습니까. 가로되 일찍이 이르렀습니다. 위왈(韋曰) 무주에서 조산까지의 거리(距離; )가 몇 리입니까. 가로되 120리입니다. 위왈(韋曰) 이러하다면 곧 상좌는 조산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가 도리어 일어나 예배했다. 사왈 감군(監軍)은 도리어 차승(此僧)에게 예배함을 써야() 하나니 차승이 도리어 참괴(慚愧)를 갖추었다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에서 이 此僧慚愧를 갖췄는가. 만약 點檢하여 냄을 얻는다면 상좌가 行脚眼이 있음을 허락하겠다. 묻되 무엇이 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사왈 농적적지(膿滴滴地; 고름이 방울져 떨어지다). 묻되 무엇이 이 친절한 일입니까. 사왈 나는 이 사삼랑(謝三郞)이다. 서천(西天)에 성명삼장(聲明三藏)이 있어 이르자 민수(閩帥)가 스님을 청해 변험(辨驗; 辨明하고 시험)하게 했다. 스님이 철화저(鐵火筯)로써 동로(銅爐)를 두드리고 묻되 이 무슨 소리인가. 삼장이 가로되 동철성(銅鐵聲)입니다法眼別云 청컨대 大師大王을 위하십시오. 法燈別云 화상의 물음을 듣겠습니다. 사왈(師曰) 대왕은 외국인의 속임을 받지 마십시오. 삼장이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大師는 대왕의 공양을 오래 받으셨습니다. 法燈代云 도리어 이 화상이 대왕을 속입니다.

; 여기에선 거(), ()를 가리킴.

謝三郞; 1. 당대 현사사비의 칭호니 스님의 속성이 사()며 사가(謝家)3남의 뜻으로 사삼랑이라고 일컬음. 2. 널리 어떤 어부(漁夫)를 가리킴. 또 사랑(謝郞)으로 지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聲明; 범어로 섭타필타(攝拖苾馱; śabda-vidyā)니 인도 5()의 하나. 이르자면 문자 음운 및 어법의 학() [번역명의집5].

 

師南遊莆田縣 排百戲迎接 來日師問小塘長老 昨日許多喧閙 向甚麽處去也 塘提起衲衣角 師曰 料掉沒交涉法眼別云 昨日有多少喧閙 法燈別云 今日更好笑 問僧 乾闥婆城汝作麽生會 曰 如夢如幻法眼別敲物示之 師與地藏在方丈說話夜深 侍者閉却門 師曰 門總閉了 汝作麽生得出去 藏曰 喚甚麽作門法燈別云 和尙莫欲歇去 師以杖拄地 問長生曰 僧見俗見 男見女見 汝作麽生見 曰 和尙還見皎然見處麽 師曰 相識滿天下 問 承和尙有言 聞性遍周沙界 雪峯打皷 這裏爲甚麽不聞 師曰 誰知不聞 問 險惡道中 以何爲津梁 師曰 以眼爲津梁 曰 未得者如何 師曰 快救取好 師擧誌公云 每日拈香擇火 不知身是道場 乃曰 每日拈香擇火 不知眞箇道場玄覺云 祇如此二尊宿語 還有親疎也無

莆田縣; 又作蒲田縣 現爲莆田市荔城區 秀嶼區 城廂區和涵江區 原莆田縣位於福建省東部沿海 [百度百科]

料掉; 又作料調 料度計校之義 或遼迢的轉訛 疏遠之義

津梁; 津卽渡口 梁卽橋梁 皆爲渡河所不可缺者

 

스님이 보전현(莆田縣)으로 남유(南遊)했는데 백희(百戲)를 배열(排列)하여 영접했다. 다음날(來日) 스님이 소당장로(小塘長老)에게 묻되 어제의 허다한 훤뇨()가 어느 곳으로 향해 갔습니까. 소당이 납의의 모서리를 제기했다. 사왈 요도(料掉)라 교섭이 없습니다法眼別云 어제 多少喧閙가 있었습니다. 法燈別云 금일 다시 좋은 웃음거리입니다(好笑). 중에게 묻되 건달바성(乾闥婆城)을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가로되 꿈과 같고 환()과 같습니다法眼이 달리() 敲物하여 보였다. 스님이 지장(地藏; 桂琛)과 방장에 있으면서 설화(說話)하다 밤이 깊었다. 시자가 문을 닫아버렸다. 사왈 문이 모두() 닫혀버렸다. 네가 어떻게 나감을 얻겠는가. 장왈(藏曰) 무엇을 일러 문이라 합니까法燈別云 화상은 쉬러 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지팡이로써 땅에 버티면서 장생(長生; 皎然)에게 물어 가로되 승견(僧見; 으로 보다)ㆍ속견(俗見)ㆍ남견(男見)ㆍ여견(女見)이다, 너는 어떻게 견()하는가. 가로되 화상은 도리어 교연(皎然)의 견처(見處)를 봅니까. 사왈 서로 아는 이는 천하에 가득하다(相識滿天下). 묻되 듣건대() 화상이 말씀이 있어 문성(聞性)이 법계(法界)에 편주(遍周)한다 하셨습니다. 설봉(雪峯)에서 타고(打皷)하매 이 속에서 무엇 때문에 듣지 못합니까. 사왈(師曰) 누가 듣지 못하는 줄 아느냐. 묻되 험악도(險惡道) 가운데에서 무엇으로써 진량(津梁)을 삼습니까. 사왈 눈으로써 진량을 삼는다. 가로되 얻지 못한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쾌()히 구취(救取; 는 조사)해야 좋다. 스님이 거()했다. 지공(誌公)이 이르되 매일 염향택화(拈香擇火)하면서 몸이 이 도량(道場)인 줄 알지 못한다. 이에 가로되 매일 염향택화하면서 진개(眞箇; 는 조사)의 도량을 알지 못한다玄覺云 祇如 二尊宿의 말에 도리어 親疎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莆田縣; 또 포전현(蒲田縣)으로 지음. 현재 포전시 여성구ㆍ수서구ㆍ성상구와 함강구가 됨. 원래의 포전현은 복건성 동부 연해(沿海)에 위치했음 [백도백과].

料掉; 또 요조(料調)로 지음. 요탁계교(料度計校; 헤아림)의 뜻. 혹 요초(遼迢)의 전와(轉訛)니 소원(疏遠)의 뜻.

津梁; ()은 곧 도구(渡口; 나루)며 량()은 곧 교량이니 모두 도하(渡河)에 불가결(不可缺)한 바의 것이 됨.

 

師與韋監軍喫果子 韋問 如何是日用而不知 師拈起果子曰 喫 韋喫果子了再問 師曰 祇這是日用而不知 普請搬柴 師曰 汝諸人盡承吾力 一僧曰 旣承師力 何用普請 師叱之曰 不普請爭得柴歸 師問明眞大師 善財參彌勒 彌勒指歸文殊 文殊指歸佛處 汝道佛指歸甚麽處 曰 不知 師曰 情知汝不知法眼別云 喚甚麽作佛 大普玄通到禮覲 師曰 你在彼住 莫誑惑人家男女 曰 玄通祇是開箇供養門 晩來朝去 爭敢作恁麽事 師曰 事難 曰 眞情是難 師曰 甚麽處是難處 曰 爲伊不肯承當 師便入方丈 拄却門 僧問 學人乍入叢林 乞師指箇入路 師曰 還聞偃溪水聲麽 曰 聞 師曰 從這裏入 泉守王公請師登樓 先語客司曰 待我引大師到樓前 便舁却梯 客司稟旨 公曰 請大師登樓 師視樓復視其人 乃曰 佛法不是此道理法眼云 未舁梯時 日幾度登樓 師與泉守在室中說話 有一沙彌揭簾入見 却退步而出 師曰 那沙彌好與二十拄杖 守曰 恁麽卽某甲罪過同安顯別云 祖師來也 師曰 佛法不是恁麽鏡淸云 不爲打水 有僧問 不爲打水意作麽生 淸云 靑山碾爲塵 敢保沒閑人 梁開平戊辰示寂 閩帥爲之樹塔

晩來朝去; 形容時光流逝

客司; 禪林中司掌迎送與應接賓客之職稱 又作典客 典賓 知客

 

스님이 위감군(韋監軍)과 더불어 과자(果子)를 먹었다. 위문(韋問) 무엇이 이 일용하면서 알지 못함입니까(日用而不知). 스님이 과자를 집어 일으키며 가로되 먹게나(). ()가 과자를 먹고 나서 다시 묻자 사왈 다만 이것()이 이 일용하면서 알지 못함이다. 보청(普請)하여 섶을 운반했다(般柴). 사왈 너희 제인(諸人)이 모두 나의 힘을 승수(承受)했다. 1()이 가로되 이미 스님의 힘을 승수했다면 왜 보청을 씁니까. 스님이 꾸짖으며 가로되 보청하지 않으면 어찌 섶을 얻어 돌아가겠는가. 스님이 명진대사(明眞大師)에게 묻되 선재(善財)가 미륵을 참()하자 미륵이 문수(文殊)에게 돌아가라고 지시했고 문수는 부처의 처소(佛處)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네가 말하라, 부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는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알지 못하는 줄 정지(情知; 深知. 明知)하겠다法眼別云 무엇을 일러 이라 하는가. 대보현통(大普玄通)이 이르러 예근(禮覲; 예배하며 뵙다)하자 사왈 네가 거기에 주()하며 인가(人家)의 남녀를 광혹(誑惑)하지 말아라. 가로되 현통(玄通)은 다만 이, () 공양문(供養門)을 열고서 저녁이 오고 아침이 가거늘(晩來朝去) 어찌 감히 이러한 일을 짓겠습니까. 사왈 사()가 어렵다. 가로되 참으로 정()이 이 어렵습니다. 사왈 어느 곳이 이 어려운 곳인가. 가로되 그들()이 승당(承當)을 수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바로 방장에 들어가 문을 떠받쳤다(拄却). 승문(僧問) 학인이 처음()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이 저() 입로(入路)를 지시하시기를 구걸합니다. 사왈(師曰) 도리어 언계(偃溪)의 물소리를 듣느냐. 가로되 듣습니다. 사왈 이 속으로 좇아 들어가거라. 천수(泉守) 왕공(王公)이 스님의 등루(登樓)를 청했다. 먼저 객사(客司)에게 말해 가로되 내가 대사(大師)를 인도(引導)하여 누전(樓前)에 이름을 기다렸다가 바로 사다리를 메어버리시오(舁却). 객사(客司)가 의지(意旨; )를 받았다(). 공왈(公曰) 대사의 등루(登樓)를 청합니다. 스님이 누각을 보라보고 다시 그 사람을 보고는 이에 가로되 불법이 이는 이런 도리가 아닙니다法眼이 이르되 사다리를 메지 않았을 때 하루에 몇 차례 登樓하는가. 스님이 천수(泉守)와 더불어 실중(室中)에 있으면서 설화(說話)하는데 한 사미가 있어 발을 걷고(揭簾) 들어와 보고는 도리어 퇴보(退步; 뒤로 물러남)하여 나갔다. 사왈 저() 사미는 좋이 20주장(拄杖) 주어야 한다. 수왈(守曰) 이러하시다면 곧 모갑의 죄과(罪過)입니다同安顯別云하되 祖師가 오셨습니다. 사왈 불법이 이러하지 않습니다鏡淸이 이르되 打水(取水)하지 않는다. 어떤 중이 묻되 打水하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鏡淸이 이르되 청산을 갈아() 티끌이 되더라도 감히 보증하노니 閑人이 아니다. () 개평(開平) 2년 무진(戊辰; 908) 시적(示寂)했다. 민수(閩帥)가 그를 위해 탑을 세웠다(樹塔).

晩來朝去; 시광(時光)이 흘러감을 형용.

客司; 선림 중에서 빈객을 영송함과 더불어 응접함을 사장(司掌; 맡아 관장)하는 직칭임. 또 전객(典客)ㆍ전빈ㆍ지객(知客)으로 지음.

 

福州長慶慧稜禪師

杭州鹽官人也 姓孫氏 稟性淳澹 年十三於蘇州通玄寺出家登戒 歷參禪苑 後參靈雲問 如何是佛法大意 雲曰 驢事未去馬事到來 師如是往來雪峰玄沙二十年間 坐破七箇蒲團 不明此事 一日捲簾 忽然大悟 乃有頌曰 也大差也大差 捲起簾來見天下 有人問我解何宗 拈起拂子劈口打 峯擧謂玄沙曰 此子徹去也 沙曰 未可 此是意識著述 更須勘過始得 至晩衆僧上來問訊 峰謂師曰 備頭陀未肯汝在 汝實有正悟 對衆擧來 師又有頌曰 萬象之中獨露身 唯人自肯乃方親 昔時謬向途中覓 今日看來火裏冰 峯乃顧沙曰 不可更是意識著述

淳澹; 亦作淳淡 質朴而淡泊

也大差; 差 奇怪 奇異

劈口; 對著口 劈 正對著

 

복주(福州) 장경혜릉(長慶慧稜) 선사

항주(杭州) 염관(鹽官) 사람이며 성이 손씨(孫氏)니 품성(稟性)이 순담(淳澹)했다. 나이 13에 소주(蘇州) 통현사(通玄寺)에서 출가하여 등계(登戒)했고 선원(禪苑; 禪院)을 역참(歷參)했다. 후에 영운(靈雲)을 참()해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운왈(雲曰) 나귀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 일이 도래한다(驢事未去馬事到來). 스님이 이와 같이 설봉과 현사를 왕래하기 320년 사이에 7()의 포단(蒲團)을 좌파(坐破)했으나 차사(此事; 宗門의 일대사)를 밝히지 못했다. 어느 날 발을 걷다가 홀연히 대오하고 이에 송()이 있었으니 가로되 또한 기이하고(也大差) 또한 기이하다/ 발을 걷어올리다가 천하를 보았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종()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불자(拂子)를 잡아 일으켜 입에다가(劈口) 때리리라. 설봉이 들어 현사에게 일러 가로되 차자(此子)가 사무쳐 갔다(徹去也). 현사가 가로되 옳지 못합니다(未可). 이것은 이 의식(意識)으로 저술(著述)하였으니 다시 감과(勘過; 勘驗하여 봄. 는 조사)를 써야 비로소 옳을 것입니다. 저녁에 이르러 중승(衆僧)이 올라와 문신(問訊)하자 설봉이 스님에게 일러 이르되 비두타(備頭陀. 玄沙師備)가 너를 긍정하지 않고 있으니 네가 실로 정오(正悟)가 있다면 대중을 상대해 거사(擧似; )하라. 스님이 또 송이 있어 가로되 만상(萬象) 가운데 독로(獨露)하는 몸이여/ 오직 사람이 스스로 긍낙(肯諾; )해야 이에 또한() 친하리라/ 지난 시절에 잘못 도중(途中)을 향해 찾다가/ 금일(今日)에 보니 불 속의 얼음이다. 설봉이 이에 현사를 돌아보며 가로되 다시 이 의식(意識)으로 저술했다 함은 옳지 못하리라.

淳澹; 또한 순담(淳淡)으로 지음. 질박(質朴)하면서 담박(淡泊).

也大差; ()는 기괴. 기이.

劈口; 입에 대착(對著)하여. ()은 정대착(正對著).

 

師問峯曰 從上諸聖傳受一路 請師垂示 峯良久 師設禮而退 峯乃微笑 師入方丈參 峯曰 是甚麽 師曰 今日天晴好普請 自此酧問 未嘗爽於玄旨 師在西院 問詵上座曰 這裏有象骨山 汝曾到麽 曰 不曾到 師曰 爲甚麽不到 曰 自有本分事在 師曰 作麽生是上座本分事 詵乃提起衲衣角 師曰 爲當祇這箇 別更有 曰 上座見箇甚麽 師曰 何得龍頭蛇尾 保福辭歸雪峰 謂師曰 山頭和尙或問上座信 作麽生祇對 師曰 不避腥羶 亦有少許 曰 信道甚麽 師曰 敎我分付阿誰 曰 從展雖有此語 未必有恁麽事 師曰 若然者 前程全自闍黎 師與保福遊山 福問 古人道妙峯山頂 莫祇這箇便是也無 師曰 是卽是 可惜許僧問皷山 祇如長慶恁麽道 意作麽生 山云 孫公若無此語 可謂髑髏徧野

酧問; 諮詢討論

妙峰山頂; 卽須彌山 按華嚴經入法界品 善財童子於妙峰山頂上 向德雲比丘 請示菩薩行 在禪林中 用妙峰一詞 形容超絶一切言語思惟 情識分別之絶對境界 卽指本分安住之處 稱爲妙峰孤頂 妙峰頂 孤峰頂上

 

스님이 설봉에게 물어 가로되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일로(一路)를 전수(傳受)했으니 스님의 수시(垂示)를 청합니다. 설봉이 양구(良久)했다. 스님이 예배를 베풀고 물러났다. 설봉이 이에 미소했다. 스님이 방장에 들어가 참()했다. 설봉이 가로되 이 뭣고. 사왈 오늘 하늘이 맑으니(天晴) 보청(普請)하기에 좋습니다. 이로부터 수문(酧問)하면서 일찍이 현지(玄旨)에 어긋나지() 않았다. 스님이 서원(西院)에 있으면서 선상좌(詵上座)에게 물어 가로되 이 속에 상골산(象骨山)이 있으니 네가 일찍이 이르렀는가. 가로되 일찍이 이르지 않았다. 사왈(師曰) 무엇 때문에 이르지 않았는가. 가로되 스스로 본분사(本分事)가 있다. 사왈 무엇이 이 상좌의 본분사인가. ()이 이에 납의(衲衣)의 모서리를 제기(提起; 들어 일으키다)했다. 사왈 마땅히 다만 이것(這箇)이 되는가, 달리 다시 있는가. 가로되 상좌는 저() 무엇을 보는가. 사왈 왜 용두사미(龍頭蛇尾)를 얻는가. 보복(保福; 從展)이 고별하고 설봉으로 돌아가면서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산두화상(山頭和尙)이 혹 상좌의 신(; 信驗. 證據)을 묻는다면 어떻게 지대(祇對)해야 하는가. 사왈 성전(腥羶; 비린내와 노린내)을 피하지 않는다면 또한 조금(少許) 있다. 가로되 신()을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사왈 나로 하여금 누구(阿誰)에게 분부하게 하겠는가. 가로되 종전(從展)이 비록 이 말이 있지만 반드시 이러한 일(恁麽事)이 있음은 아니다. 사왈 만약 그렇다면 전정(前程)이 전부 사리(闍黎)로 말미암았다(). 스님이 보복(保福)과 더불어 유산(遊山)했다. 보복이 묻되 고인이 묘봉산정(妙峯山頂)을 말했는데 다만 저개(這箇)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또는 아닌가. 사왈 옳기는 곧 옳지만 가석하다(可惜許)중이 皷山에게 묻되 祇如 長慶의 이러한 말은 뜻이 무엇입니까. 고산이 이르되 孫公(長慶)이 만약 此語가 없었다면 可謂 髑髏가 들에 두루하리라.

酧問; 자순(諮詢; 묻다)하며 토론(討論).

妙峰山頂; 즉 수미산. 화엄경 입법계품을 안험컨대 선재동자가 묘봉산 정상에서 덕운비구를 향해 보살행을 교시(敎示)함을 청했음. 선림 중에 있어서 묘봉 1()를 사용함은 일체의 언어와 사유, 정식(情識)과 분별을 초절(超絶)한 절대(絶對)의 경계를 형용함. 곧 본분으로 안주할 곳을 가리킴이니 묘봉고정(妙峰孤頂)ㆍ묘봉정ㆍ묘봉정상으로 호칭함.

 

師來往雪峰二十九載 天祐三年泉州刺史王延彬請住招慶 開堂日 公朝服趨隅曰 請師說法 師曰 還聞麽 公設拜 師曰 雖然如此 恐有人不肯 僧問 如何是正法眼 師曰 有願不撒沙 一日 王太傅入院 見方丈門閉 問演侍者曰 有人敢道太師在否 演曰 有人敢道太師不在否法眼別云 大傅識太師 閩帥請居長慶 號超覺大師 上堂 良久曰 還有人相悉麽 若不相悉 欺謾兄弟去也 祇今有甚麽事 莫有窒塞也無 復是誰家屋裏事 不肯擔荷 更待何時 若是利根參學不到這裏 還會麽 如今有一般行脚人 耳裏總滿也 假饒收拾得底 還當得行脚事麽 僧問 行脚事如何學 師曰 但知就人索取 曰 如何是獨脫一路 師曰 何煩更問 問 名言妙義 敎有所詮 不涉三科 請師直道 師曰 珍重 師乃曰 明明歌詠汝尙不會 忽被暗裡來底事 汝作麽生 僧問 如何是暗來底事 師曰 喫茶去中塔代云 便請和尙相伴 問 如何是不隔毫端底事 師曰 當不當 問 如何得不疑不惑去 師乃展兩手 僧不進語 師曰 汝更問 我與汝道 僧再問 師露膊而坐 僧禮拜 師曰 汝作麽生會 曰 今日風起 師曰 恁麽道未定人見解 汝於古今中有甚麽節要齊得長慶 若擧得 許汝作話主 其僧但立而已 師却問 汝是甚處人 曰 向北人 師曰 南北三千里外 學妄語作麽 僧無對

三科; 一切諸法分爲五蘊十二處(十二入)十八界三類 稱爲三科

節要; 摘錄的要點

 

스님이 설봉으로 내왕한 지 29()였다. 천우(天祐) 3(906) 천주자사(泉州刺史) 왕연빈(王延彬)이 청해 초경(招慶)에 거주했다. 개당일(開堂日) ()이 조복(朝服)으로 모퉁이()로 가서(; 行也) 가로되 스님의 설법을 청합니다. 사왈 도리어 듣습니까. ()이 설배(設拜)했다. 사왈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어떤 사람은 수긍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소원(所願; )이 있으니 모래를 뿌리지 말아라. 어느 날 왕태부(王太傅)가 입원(入院)하여 방장문(方丈門)이 닫힌 것을 보고 연시자(演侍者)에게 물어 가로되 어떤 사람이 감히 말하나니 태사(太師)가 계십니까. 연왈(演曰) 어떤 사람이 감히 말하나니 태사(太師)가 계시지 않습니까法眼別云 大傅太師를 알았습니다. 민수(閩帥)가 청하여 장경(長慶)에 거주했고 호()를 초각대사(超覺大師)라 했다. 상당(上堂)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도리어 상실(相悉; 알다)할 사람이 있느냐. 만약 상실(相悉)하지 못한다면 형제를 기만(欺謾)하여 가겠다. 지금(祇今) 무슨 일이 있느냐, 질색(窒塞; 閉塞)이 있지 않느냐 또는 아니냐. 다시 이 뉘집의 옥리사(屋裏事). 담하(擔荷)를 불긍(不肯)한다면 다시 어떤 때를 기다리겠는가. 만약 이 이근(利根)의 참학(參學)이라면 이 속(這裏)에 이르지 않으리라, 도리어 아느냐. 여금에 일반(一般)의 행각인(行脚人)이 있어 귓속에 모두() 가득하거니와 가요(假饒; 가령) 수습(收拾)하여 얻은 이는 도리어 행각사(行脚事)에 당득(當得)하느냐. 중이 묻되 행각사를 어떻게 배웁니까. 사왈(師曰) 단지 타인에게 나아가 색취(索取)할 줄 알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독탈(獨脫)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왜 번거롭게() 다시 묻느냐. 묻되 명언(名言; 名字와 언구)의 묘의(妙義)는 교()에 설명(說明; )한 바가 있습니다. 삼과(三科)에 건너지 않고 스님의 직도(直道; 바로 말하다)를 청합니다. 사왈 진중(珍重)하라. 스님이 이에 가로되 명명(明明)한 가영(歌詠)도 너희가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홀연히 암리(暗裡)에 오는 일(暗裡來底事)을 입으면 너희가 어떠한가. 승문(僧問) 무엇이 이 암래지사(暗來底事; 몰래 오는 일)입니까. 사왈 차 먹고 가게(喫茶去)中塔代云 바로 화상의 相伴을 청합니다. 묻되 무엇이 이 호단(毫端)도 막히지() 않은 일입니까. 사왈 당했지만 당하지 않았다(當不當). 묻되 어찌해야 불의불혹(不疑不惑)함을 얻습니까. 스님이 이에 두 손을 폈다. 중이 진어(進語)하지 못하자 사왈 네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면 너에게 말해 주겠다. 중이 다시 묻자 스님이 팔뚝()을 드러내고 앉았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가로되 금일 바람이 일어납니다. 사왈 이러한 말은 사람의 견해를 정()하지 못한다. 네가 고금(古今) 중에 무슨 절요(節要)가 있어 장경(長慶)과 가지런함을 얻겠는가. 만약 거득(擧得)한다면 너에게 화주(話主)가 됨을 허락하겠다. 그 중이 단지 섰을 따름이었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너는 이 어느 곳 사람이냐. 가로되 향북(向北; 북방) 사람입니다. 사왈 남북 3천 리 밖에서 망어(妄語)를 배워 무엇하겠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三科; 일체제법을 분류하면 5온ㆍ12(12)183()며 일컬어 3과라 함.

節要; 적록(摘錄)한 요점(要點).

 

上堂 良久曰 莫道今夜較些子 便下座 僧問 衆手淘金 誰是得者 師曰 有伎倆者得 曰 學人還得也無 師曰 大遠在 上堂 撞著道伴交肩過 一生參學事畢 上堂 淨潔打疊了也 却近前問我覓 我劈脊與你一棒 有一棒到你 你須生慚愧 無一棒到你 你又向甚麽處會 問 羚羊挂角時如何 師曰 草裏漢 曰 挂角後如何 師曰 亂呌喚 曰 畢竟如何 師曰 驢事未去 馬事到來 問 如何是合聖之言 師曰 大小長慶被汝一問 口似匾擔 曰 何故如此 師曰 適來問甚麽 上堂 我若純擧唱宗乘 須閉却法堂門 所以道 盡法無民 僧問 不怕無民 請師盡法 師曰 還委落處麽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香嚴道底 一時坐却 上堂 總似今日 老胡有望 保福曰 總似今日 老胡絕望玄覺云 恁麽道是相見語 不是相見語 安國瑫和尙得師號 師去作賀 國出接 師曰 師號來邪 曰 來也 師曰 是甚麽號 曰 明眞 師乃展手 國曰 甚麽處去來 師曰 幾不問過 問僧 甚處來 曰 鼓山來 師曰 鼓山有不跨石門底句 有人借問 汝作麽生道 曰 昨夜報慈宿 師曰 劈脊棒汝 又作麽生 曰 和尙若行此棒 不虛受人天供養 師曰 幾合放過

打疊; 掃除 收拾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금야(今夜)는 조금 상당하다(較些子) 라고 말하지 말아라, 바로 하좌(下坐)했다. 승문(僧問) 뭇 손(衆手)이 금을 일면(淘金)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기량(伎倆)이 있는 자가 얻는다. 가로되 학인은 도리어 얻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너무 멀다(大遠在). 상당(上堂) 도반을 당착(撞著; 부딪히다)하며 어깨를 교차해 지나면서 일생의 참학사(參學事)를 마친다. 상당(上堂) 정결(淨潔)하게 타첩(打疊)해 마쳤다. 도리어 근전(近前)하여 나에게 물으면서 찾는다면 내가 등에다가(劈脊) 너에게 1() 주겠다. 1방이 너에게 이름이 있으면 네가 꼭 참괴(慚愧)를 내어야 하고 1방이 너에게 이름이 없으면 네가 또 어느 곳을 향해 알겠는가. 묻되 영양이 뿔을 걸(羚羊挂角) 때 어떻습니까. 사왈 초리한(草裏漢)이다. 가로되 뿔을 건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어지럽게 부르짖으며 부른다(亂呌喚).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나귀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 일이 도래한다. 묻되 무엇이 성인에 합하는 말입니까(合聖之言). 사왈(師曰) 대소(大小) 장경(長慶)이 너의 일문(一問)을 입자 입이 편담과 같다(口似匾擔). 가로되 무슨 연고로 이와 같습니까. 사왈 아까 무엇을 물었느냐. 상당(上堂) 내가 만약 순전히 종승(宗乘)을 거창(擧唱)한다면 모름지기 법당문(法堂門)을 폐각(閉却)해야 하나니 소이로 말하되 진법무민(盡法無民)이라 했다. 승문(僧問) 무민(無民)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스님의 진법(盡法)를 청합니다. 사왈 도리어 낙처(落處)를 아느냐().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향엄이 말한 것이니(香嚴道底) 일시에 앉혀버려라(坐却). 상당(上堂) 모두() 금일과 같다면 노호(老胡)가 유망(有望)하다. 보복(保福)이 가로되 모두 금일과 같다면 노호가 절망(絕望)이다玄覺이 이르되 이러한 말은 이 相見하는 말인가, 이 상견하지 않는 말인가. 안국도(安國瑫; 弘瑫. 저본에 安國𤦆로 지었음) 화상이 사호(師號)를 얻었다. 스님이 가서 경하(慶賀)하는데 안국이 나가서 접대(接對)했다. 사왈 사호(師號)가 왔는가. 가로되 왔다. 사왈 이 무슨 호인가. 가로되 명진(明眞)이다. 스님이 이에 손을 폈다. 안국이 가로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甚麽處去來). 사왈 거의 문과(問過; 는 조사)하지 않을 뻔했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고산(鼓山)에서 옵니다. 사왈 고산이, 석문(石門)을 타고 넘지 않는다는 문구가 있다.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借問) 네가 어떻게 말하겠는가. 가로되 어젯밤에 보자(報慈)에서 잤습니다. 사왈 등에다가(劈脊) 너에게 방(; 몽둥이. 주장자)으로 친다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가로되 화상이 만약 이 방()을 행한다면 인천의 공양을 헛되이 받지 않을 것입니다. 사왈 거의 합당히 방과(放過)할 뻔했다.

打疊; 소제(掃除). 수습(收拾).

 

問 古人有言 相逢不拈出 擧意便知有時如何 師曰 知有也未僧又問保福 福云 此是誰語 云 丹霞語 福云 去 莫妨我打睡 師入僧堂 擧起疏頭曰 見卽不見 還見麽 衆無對法眼代云 縱受得 至別處 亦不敢呈人 師到羅山 見製龕子 以杖敲龕曰 太煞預備 山曰 拙布置 師曰 還肯入也無 山乃吽吽 上堂 大衆集定 師乃拽出一僧曰 大衆禮拜此僧 又曰 此僧有甚麽長處 便敎大衆禮拜 衆無對 僧問 如何是文彩未生時事 師曰 汝先擧 我後擧 其僧但立而已法眼別云 請和尙擧 師曰 汝作麽生擧 曰 某甲截舌有分 保福遷化 僧問 保福拋却殻漏子 向甚麽處去也 師曰 且道保福在那箇殻漏子裏法眼別云 那箇是保福殼漏子 閩帥夫人崔氏奉道自稱練師 遣使送衣物至 曰 練師令就大師請回信 師曰 傳語練師領取回信 須臾使却來師前唱喏便回 師明日入府 練師曰 昨日謝大師回信 師曰 却請昨日回信看 練師展兩手 帥問師曰 練師適來呈信 還愜大師意否 師曰 猶較些子法眼別云 這一轉語大王自道取 曰 未審大師意旨如何 師良久 帥曰 不可思議 大師佛法深遠 後唐長興三年歸寂 王氏建塔

打睡; 卽睡 打 表示人體發出某種動作

疏頭; 指募化之疏文

 

묻되 고인이 말씀이 있었으니 상봉하여 염출(拈出)하지 않아도 거의(擧意)하면 바로 지유(知有)한다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지유(知有)했느냐 또는 아니냐이 또 保福에게 묻자 福云 이것은 이 누구의 말이냐. 이르되 丹霞의 말씀입니다. 福云 가거라, 나의 타수(打睡)妨礙하지 말아라. 스님이 승당에 들어가 소두(疏頭)를 거기(擧起)하고 가로되 견()이 곧 불견(不見)이니 도리어 보느냐.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法眼代云 비록() 받아서 다른 곳에 得到하더라도 또한 감히 사람에게 보이지() 못합니다. 스님이 나산(羅山)에 이르러 감자(龕子; 는 조사)를 제작(製作)함을 보자 스님이 주장자로써 감()을 두드리고 가로되 예비(預備)가 너무 심하다(大煞). 나산이 가로되 졸렬(拙劣)하게 포치(布置)했다. 사왈 도리어 들어감을 수긍하는가 또는 아닌가. 나산이 이에 후(), ()했다. 상당하자 대중이 모여 입정(入定)했다. 스님이 이에 1()을 끌어내고 가로되 대중은 이 중에게 예배하라. 우왈(又曰) 이 중이 무슨 장처(長處; 나은 곳)가 있어 바로 대중으로 하여금 예배하게 하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문채(文彩)가 생하지 아니한 때의 일입니까. 사왈 네가 먼저 들어라(), 나는 뒤에 들겠다. 그 중이 단지 섰을 따름이었다法眼別云 화상의 듦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 들겠는가. 승왈(僧曰) 모갑이 혀를 자를 분한이 있습니다. 보복(保福)이 천화(遷化)하자 승문(僧問) 보복이 각루자(殼漏子; 肉體)를 던져버리고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그래 말하라, 보복이 어느(那箇) 각루자 속에 있느냐法眼別云 那箇가 이 보복의 각루자인가. 민수(閩帥) 부인(夫人) 최씨(崔氏)奉道하며 自稱 練師라 했다가 사자(使者)를 파견(派遣)해 의물(衣物)을 보내어 이르렀다. 가로되 연사(練師)가 대사에게 나아가 회신(回信)을 청()하게 했습니다. 사왈 연사(練師)에게 말을 전하여 회신을 영취(領取)하시라 하라. 수유(須臾)에 사자가 스님 앞에 돌아와(却來) (; )을 창()하고 바로 돌아갔다. 스님이 명일(明日) 입부(入府)하자 연사(練師)가 가로되 어제 대사의 회신에 감사(感謝)합니다. 사왈 도리어 어제의 회신을 보기를 청합니다. 연사가 두 손을 폈다. 민수(閩帥; )가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연사(練師)가 아까 서신(書信)을 보였는데 도리어 대사의 뜻에 맞습니까(). 사왈 오히려 조금은 상당합니다(較些子)法眼別云 一轉語大王이 스스로 말씀해 취하십시오. 가로되 미심하오니 대사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수왈(帥曰) 불가사의한 대사의 불법이 심원(深遠)합니다. 후당(後唐) 장흥(長興) 3(932) 귀적(歸寂)했고 왕씨(王氏)가 건탑(建塔)했다.

打睡; 곧 수()니 타()는 인체가 발출(發出)하는 모종(某種)의 동작을 표시함.

疏頭; 모화(募化)의 소문(疏文)을 가리킴.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pyungsims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