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八
靑原下七世
瑞巖彦禪師法嗣
南嶽橫龍和尙
初住金輪 僧問 如何是金輪第一句 師曰 鈍漢 問 如何是金輪一隻箭 師曰 過也 問 如何是祖師燈 師曰 八風吹不滅 曰 恁麽則暗冥不生也 師曰 白日沒閑人
남악(南嶽) 횡룡화상(橫龍和尙)
금륜(金輪)에 초주(初住)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금륜(金輪)의 제1구입니까. 사왈(師曰) 둔한(鈍漢)아. 묻되 무엇이 이 금륜의 1척(隻)의 화살입니까. 사왈 지나갔다(過也). 묻되 무엇이 이 조사등(祖師燈)입니까. 사왈 팔풍(八風)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암명(暗冥)이 생겨나지 않겠습니다. 사왈 백일(白日; 대낮)에 한인이 없다(沒閑人).
溫州瑞峰院神祿禪師
福州人也 久爲瑞巖侍者 後開山創院 學侶依附 師有偈曰 蕭然獨處意沉吟 誰信無絃發妙音 終日法堂唯靜坐 更無人問本來心 時有朋彦上座問曰 如何是本來心 師召朋彦 彦應諾 師曰 與老僧點茶來 彦於是信入
온주(溫州) 서봉원(瑞峰院) 신록선사(神祿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오래 서암(瑞巖)의 시자가 되었고 후에 개산하고 창원(創院)하자 학려(學侶)가 의부(依附)했다.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소연(蕭然; 호젓하고 쓸쓸함)히 홀로 거처하매 뜻이 침음(沉吟)한데/ 누가 무현(無絃; 無絃琴)이 묘음(妙音)을 냄을 믿겠는가/ 종일 법당에서 오직 고요히 앉았는데/ 다시 본래심(本來心)을 묻는 사람이 없구나. 때에 붕언(朋彦) 상좌가 있어 문왈(問曰) 무엇이 이 본래심입니까. 스님이 붕언을 불렀다. 붕언이 응낙(應諾)했다. 사왈(師曰) 노승을 위해(與) 점다(點茶)하여 오너라. 붕언이 이에 신입(信入)했다.
玄泉彦禪師法嗣
鄂州黃龍山誨機超慧禪師
淸河張氏子 初參巖頭問 如何是祖師西來意 頭曰 你還解救糍麽 師曰 解 頭曰 且救糍去 後到玄泉問 如何是祖師西來意 泉拈起一莖皂角曰 會麽 師曰 不會 泉放下皂角 作洗衣勢 師便禮拜曰 信知佛法無別 泉曰 你見甚麽道理 師曰 某甲曾問巖頭 頭曰 你還解救糍麽 救糍也祇是解粘 和尙提起皂角 亦是解粘 所以道無別 泉呵呵大笑 師遂有省
악주(鄂州) 황룡산(黃龍山) 회기(誨機) 초혜선사(超慧禪師)
청하(淸河) 장씨(張氏)의 아들이다. 암두(巖頭)를 초참(初參)하여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두왈(頭曰) 네가 도리어 구자(救糍; 糍는 인절미)할 줄 아느냐. 사왈 압니다. 두왈(頭曰) 다만(且) 구자(救糍)하러 가거라. 후에 현천(玄泉)에 이르러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현천이 한 줄기(莖)의 조각(皂角)을 집어 일으키며 가로되 아느냐. 사왈 알지 못합니다. 현천이 조각(皂角)을 방하(放下)하고 세의(洗衣)하는 자세를 지었다. 스님이 바로 예배하고 가로되 불법이 무별(無別)함을 신지(信知)하겠습니다. 천왈(泉曰) 네가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사왈 모갑이 일찍이 암두에게 묻자 암두가 가로되 네가 도리어 구자(救糍)할 줄 아느냐 하셨습니다. 구자(救糍)가 또한 다만 이 해점(解粘; 붙은 것을 떼다)입니다. 화상이 조각(皂角)을 들어 일으킴도 역시(亦是) 해점(解粘)이니 소이로 무별(無別)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천(玄泉)이 하하대소(呵呵大笑)했다. 스님이 드디어 성찰이 있었다.
住後 僧問 不問祖佛邊事 如何是平常之事 師曰 我住山得十五年也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琉璃鉢盂無底 問 如何是君王劒 師曰 不傷萬類 曰 佩者如何 師曰 血濺梵天 曰 大好不傷萬類 師便打 問 佛在日爲衆生說法 佛滅後有人說法否 師曰 慚愧佛 問 毛呑巨海 芥納須彌 不是學人本分事 如何是學人本分事 師曰 封了合盤市裏揭 問 急切相投 請師通信 師曰 火燒裙帶香 問 如何是大疑底人 師曰 對坐盤中弓落盞 曰 如何是不疑底人 師曰 再坐盤中弓落盞 問 風恬浪靜時如何 師曰 百尺竿頭五兩垂 師將順世 僧問 百年後 鉢囊子甚麽人將去 師曰 一任將去 曰 裏面事如何 師曰 線綻方知 曰 甚麽人得 師曰 待海鷰雷聲 卽向汝道 言訖而寂
●弓落盞; 法華經三大部補注十四 壁畫蛇影入酒杯中 晉書 樂廣 字彦輔 有賓親 久闊不復來 廣詣問其故 客曰 前在座蒙賜酒 見杯中有蛇 甚惡之 旣飮之而疾 廣曰 于時河南廳壁上有角弓 角弓邊漆畫作蛇 杯中卽蛇影也 廣重置酒於故 客乃解患卽除
주후(住後) 승문(僧問) 조불변사(祖佛邊事)는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평상지사(平常之事)입니까. 사왈(師曰) 내가 주산(住山)한 지 15년이 지났다(得).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유리(瑠璃) 발우가 밑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군왕검(君王劒)입니까. 사왈 만류(萬類)를 상해(傷害; 傷)하지 않는다. 가로되 찬(佩)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피를 범천(梵天)에 흩뿌린다(濺). 가로되 대호(大好) 만류를 상해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부처가 계시던 날에 중생을 위해 설법하셨거니와 부처가 멸후(滅後) 설법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왈 부처에게 참괴(慚愧)스럽다. 묻되 터럭이 거해(巨海)를 삼키고 개자(芥子)가 수미(須彌)를 납수(納受)함은 이 학인의 본분사(本分事)가 아닙니다. 무엇이 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사왈 합반(合盤; 盒盤)을 봉하고 나서(封了) 시가(市街) 속에서 높이 들어라(揭). 묻되 급절(急切)하여 상투(相投)하니 스님의 통신(通信)을 청합니다. 사왈 불로 군(裙; 치마. 下裳)을 태우니 향을 띠었다(帶). 묻되 무엇이 이 크게 의심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대좌(對坐)한 소반(小盤; 盤) 가운데 활이 잔에 떨어졌다(弓落盞). 가로되 무엇이 이 의심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사왈 재좌(再坐)한 소반 가운데 활이 잔에 떨어졌다. 묻되 바람이 고요하고 파랑이 고요할(風恬浪靜)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백척(百尺)의 간두(竿頭)에 5량(兩)을 드리웠다(垂). 스님이 장차 순세(順世)하려 하자 중이 묻되 백년후(百年後) 발낭자(鉢囊子; 子는 조사)를 어떤 사람이 가지고 갑니까. 사왈 가져가는 대로 일임한다. 가로되 이면(裏面)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선(線; 실)이 터져야(綻) 바야흐로 안다. 가로되 어떤 사람이 얻습니까. 사왈 해연(海鷰; 갈매기)이 뇌성(雷聲)함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말을 마치자 적(寂; 입적)했다.
●弓落盞; 법화경삼대부보주14. 벽화사영입주배중(壁畫蛇影入酒杯中) 진서(晉書) 낙광(樂廣)은 자가 언보다. 손이 있어 친했는데 구활(久闊; 오랫동안 소식이 없거나 만나지 못함)하였고 다시 오지 않았다. 낙광이 나아가 그 연고를 물었다. 객이 가로되 전에 좌석에 있으면서 사주(賜酒)를 받았는데 술잔 가운데를 보매 뱀이 있었다. 매우 그것을 더럽게 여겼는데 이미 그것을 마시고선 질병이 되었다. 낙광이 가로되 당시에 하남청(河南廳) 벽상에 각궁(角弓)이 있었고 각궁 가의 칠화(漆畫)가 뱀을 지었다. 술잔 가운데는 곧 뱀의 그림자다. 낙광이 다시 벗에게 주석을 설치했다. 객이 이에 우환이 풀려 곧 제거되었다.
洛京栢谷和尙
僧問 普滋法雨時如何 師曰 有道傳天位 不汲鳳凰池 問 九旬禁足三月事如何 師曰 不墜蠟人機
●九旬禁足; 謂九十日安居期間中 不出山門 專力坐禪
●蠟人; 祖庭事苑六 蠟人冰 蠟當作臘 謂年臘也 桉增輝記 臘 接也 謂新故之交接 俗謂臘之明日爲初歲也 蓋臘盡而歲來 故釋氏以解制受臘之日 謂之法歲是矣 天竺以臘人爲驗者 且其人臘有長幼 又驗其行有染淨 言臘人冰者 是言其行之冰潔也 今衆中妄謂西天立制 唯觀蠟人之冰融 然後知其行之染淨 佛經無文 律範無制 未詳得是說於何邪 今此集以臘爲蠟 深誤後人 良可歎也
낙경(洛京) 백곡화상(柏谷和尙)
승문(僧問) 법우(法雨)를 널리 뿌릴(滋)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도가 있으면 천위(天位; 天子의 지위)를 전하고 봉황지(鳳凰池)에서 물 긷지 않는다. 묻되 9순 동안 금족(九旬禁足)하는 석 달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납인(蠟人)의 기(機)에 떨어지지(墜) 않는다.
●九旬禁足; 이르자면 90일 안거 기간 중에 산문을 나서지 않고 전력(專力)으로 좌선함.
●蠟人; 조정사원6. 납인빙(蠟人冰) 랍(蠟)은 마땅히 랍(臘)으로 지어야 하나니 이르자면 년랍(年臘)임. 증휘기(增輝記)를 안험컨대 랍(臘)은 접(接)이니 이르자면 신고(新故)가 교접함이다. 세속에서 이르되 랍(臘)의 다음날이 초세(初歲)가 된다. 대개 랍이 다하면 세(歲)가 오므로 고로 석씨가 해제하는 수랍(受臘)의 날을 일컬어 법세(法歲)라 함이 이것이다. 천축에서 납인(臘人)으로 증험을 삼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랍(臘)에 장유(長幼)가 있음임. 또 그 행위에 염정(染淨)이 있는가 시험함임. 말한 납인빙(臘人冰)이란 것은 이는 그 행위의 빙결(冰潔)을 말함임. 여금에 중중(衆中)에서 망령되이 이르기를 서천(西天)의 입제(立制)가 오직 납인(蠟人)의 빙융(冰融; 얾과 녹음)을 보아서 그런 후에 그 행위의 염정(染淨)을 안다 하거니와 불경에 글이 없으며 율범(律範)에도 제정한 게 없으니 이 설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미상임. 지금 이 집(集; 風穴衆吼集)에서 랍(臘)을 랍(蠟)으로 삼았음은 깊이 후인(後人)을 그릇되게 하리니 진실로 가히 개탄한다.
懷州玄泉二世和尙
僧問 辭窮理盡時如何 師曰 不入理豈同盡 問 妙有玄珠 如何取得 師曰 不似摩尼絕影豔 碧眼胡人豈能見 曰 有口道不得時如何 師曰 三寸不能齊皷韻 瘂人解唱木人歌
●碧眼胡人; 原指西域印度等地來的人 禪錄中多指達磨大師
회주(懷州) 현천이세화상(玄泉二世和尙)
승문(僧問) 언사가 다하고 이치가 다했을(辭窮理盡)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입리(入理)하지 못했다면 어찌 다함(盡)과 같겠는가. 묻되 묘하게 현주(玄珠)가 있거니와 어떻게 취득(取得)합니까. 사왈 마니(摩尼)에 그림자가 끊긴 아름다움(豔)과 같지 못하거늘 벽안호인(碧眼胡人)이 어찌 능히 보겠는가. 가로되 입이 있으나 말함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삼촌(三寸; 혀)이 능히 고운(鼓韻)과 제등(齊等)하지 못하지만 아인(啞人; 벙어리)이 목인(木人)의 노래를 창(唱)할 줄 안다.
●碧眼胡人; 원래 서역이나 인도 등의 지역에서 온 사람을 가리키지만 선록 중에선 다분히 달마대사를 가리킴.
潞府妙勝玄密禪師
僧問 四山相逼時如何 師曰 紅日不垂影 暗地莫知音 曰 學人不會 師曰 鶴透羣峰 何伸向背 問 雪峰一曲千人唱 月裏挑燈誰最明 師曰 無音和不齊 明暗豈能收
노부(潞府) 묘승(妙勝) 현밀선사(玄密禪師)
승문(僧問) 사산(四山)이 상핍(相逼)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홍일(紅日)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니 암지(暗地)에서 지음하지 못한다(莫知音).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학이 군봉(羣峯)을 투출(透出)하면서 어찌 향배(向背)를 펴겠는가(伸). 묻되 설봉의 일곡(一曲)을 천인이 창(唱)하거니와 달 속에서 등을 돋우면(挑燈) 누가 가장 밝습니까. 사왈 무음(無音)이라서 화(和)가 가지런하지 못하거늘 명암으로 어찌 능히 거두겠는가.
羅山閑禪師法嗣
婺州明招德謙禪師
受羅山印記 靡滯於一隅 激揚玄旨 諸老宿皆畏其敏揵 後學鮮敢當其鋒者 嘗到招慶 指壁畵問僧 那箇是甚麽神 曰 護法善神 師曰 會昌沙汰時 向甚麽處去來 僧無對 師令僧問演侍者 演曰 汝甚麽劫中遭此難來 僧回擧似師 師曰 直饒演上座 他後聚一千衆 有甚麽用處 僧禮拜請別語 師曰 甚麽處去也 次到坦長老處 坦曰 夫參學一人所在亦須到 半人所在亦須到 師便問 一人所在卽不問 作麽生是半人所在 坦無對 後令小師問師 師曰 汝欲識半人所在麽 也祇是弄泥團漢 淸上座擧仰山插鍬話問師 古人意在叉手處 插鍬處 師召淸 淸應諾 師曰 還夢見仰山麽 淸曰 不要上座下語 祇要商量 師曰 若要商量 堂頭自有一千五百人老師在
●耆宿; 又作耆舊 長老 老宿 卽年老德高道行深湛之老者
무주(婺州) 명초덕겸(明招德謙) 선사
나산(羅山)의 인기(印記)를 받고는 한 모퉁이에 체류하지 않고(靡) 현지(玄旨)를 격양(激揚)했는데 여러 기숙(耆宿)이 모두 그 민첩함을 두려워 했고 후학은 감히 그 봉(鋒; 機鋒)에 당할 자가 드물었다(鮮). 일찍이 초경(招慶)에 이르러 벽화(壁畵)를 가리키며 중에게 묻되 나개(那箇; 저것)는 이 무슨 신(甚麽神)이냐. 가로되 호법선신(護法善神)입니다. 사왈(師曰) 회창사태(會昌沙汰) 때 어느 곳을 향해 갔다 왔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중으로 하여금 연시자(演侍者)에게 묻게 했다. 연왈(演曰) 네가 어느 겁 중에 이 난(難)을 만나 왔느냐. 중이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사왈 직요(直饒; 가령) 연상좌가 타후에 일천중(一千衆)을 모으더라도 무슨 쓸 곳이 있으리오. 중이 예배하고 별어(別語)를 청했다. 사왈 어느 곳으로 갔느냐. 다음으로 탄장로(坦長老)의 처소에 이르자 탄왈(坦曰) 무릇(夫; 發語詞) 참학(參學; 參禪學道)이란 1인의 소재(所在)에도 또한 꼭 이르러야 하고 반인(半人)의 소재에도 또한 꼭 이르러야 한다. 스님이 바로 묻되 1인의 소재는 곧 묻지 않나니 무엇이(作麽生) 이 반인(半人)의 소재인가. 탄(坦)이 대답이 없었다. 후에 소사(小師)로 하여금 스님에게 묻게 하자 사왈 네가 반인의 소재를 알려고 하느냐, 또한 다만 이 진흙덩이 희롱하는 자(弄泥團漢)다. 청상좌(淸上座)가 앙산의 삽초화(插鍬話)를 들어 스님에게 묻되 고인의 뜻이 차수처(叉手處)에 있습니까, 삽초처(插鍬處)에 있습니까. 스님이 청(淸)을 불렀다. 청이 응낙했다. 사왈 도리어 꿈에라도 앙산을 보았느냐. 청왈(淸曰) 상좌의 하어(下語)를 요하지 않고 다만 상량(商量)을 요합니다. 사왈 만약 상량을 요한다면 당두(堂頭; 住持. 주지의 거실)에 저절로 1천5백 인의 노사(老師)가 있다.
●耆宿; 또 기구(耆舊)ㆍ장로ㆍ노숙으로 지음. 즉 연로하고 덕이 높고 도행이 깊고 맑은 노자(老者; 노인).
又到雙巖 巖請喫茶次 曰 某甲致一問 若道得 便捨院與闍黎住 若道不得 卽不捨院 遂擧金剛經云 一切諸佛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皆從此經出 且道此經是何人說 師曰 說與不說 拈向這邊著 祇如和尙決定喚甚麽作此經 巖無對 師又曰 一切賢聖 皆以無爲法而有差別 則以無爲法爲極則 憑何而有差別 祇如差別是過不是過 若是過 一切賢聖悉皆是過 若不是過 決定喚甚麽作差別 巖亦無語 師曰 噫 雪峰道底 師訪保寧 於中路相遇 便問 兄是道伴中人 乃點鼻頭曰 這箇礙塞我不徹 與我拈却少時得麽 寧曰 和尙有來多少時 師曰 噫 洎賺我踏破一緉草鞋 便回 國泰代曰 非但某甲 諸佛亦不奈何 師曰 因甚麽以己方人 師在婺州智者寺 居第一座 尋常不受淨水 主事嗔曰 上座不識觸淨 爲甚麽不受淨水 師跳下牀 提起淨甁曰 這箇是觸是淨 事無語 師乃撲破 自爾道聲遐播 衆請居明招山開法 四來禪者盈於堂室
●以己方人; 以自己方比他人 廣韻 方 比也
●觸淨; 觸 汚 不淨
또 쌍암(雙巖)에 이르자 쌍암이 청해 끽다(喫茶)하던 차에 가로되 모갑이 일문(一問)을 이루겠다(致).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바로 사원(捨院)하여 사리(闍黎)에게 주어 거주하게 하겠지만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곧 사원(捨院)하지 않겠다. 드디어 들되 금강경에 이르되 일체제불(一切諸佛) 및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으로 좇아나온다. 그래 말하라, 이 경은 이 어떤 사람이 설했는가. 사왈(師曰) 설(說)과 불설(不說)은 집어다가 저변(這邊)을 향하라. 지여(祇如) 화상은 결정코 무엇을 일러 이 경이라 하는가. 쌍암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또 가로되 일체 현성이 모두 무위법(無爲法)을 써서 차별이 있다. 곧 무위법을 극칙(極則)으로 삼음이거니와 무엇에 의빙(依憑)해 차별이 있는가. 지여(祇如) 차별은 이 허물(過)인가 이 허물이 아닌가. 만약 이 허물이라면 일체의 현성이 모두 다 이 허물일 것이며 만약 이 허물이 아니라면 결정코 무엇을 일러 차별이라 하는가. 쌍암이 또한 말이 없었다. 사왈 희(噫; 한숨 쉬다)라, 설봉이 말한 것이다(雪峰道底). 스님이 보녕(保寧)을 방문하는데 중로(中路)에서 서로 만났다. 바로 묻되 형(兄)은 이 도반(道伴) 가운데의 사람이다. 이에 비두(鼻頭; 頭는 조사)에 점 찍고 가로되 이것(這箇)이 나를 애색(礙塞)해 그치지 않는다(不徹). 나를 위해 소시(少時)라도 염각(拈却; 집어 물리침)함을 얻겠는가. 보녕이 가로되 화상이 있은 지(有來) 다소의 시간인가(多少時). 사왈 희(噫)라, 나를 속여(賺) 한 켤레(緉)의 짚신을 답파(踏破)함에 이르렀다. 바로 돌아갔다. 국태(國泰)가 대왈(代曰) 단지 모갑 만이 아니라 제불일지라도 또한 어찌하지 못한다. 사왈 무엇 때문에 자기를 타인과 비교하는가(以己方人). 스님이 무주(婺州) 지자사(智者寺)에 있으면서 제1좌에 거처했는데 심상(尋常)에 정수(淨水)를 받지 않았다. 주사(主事)가 성내어 가로되 상좌는 촉정(觸淨)을 알지 못하나니 무엇 때문에 정수(淨水)를 받지 않는가. 스님이 뛰어(跳) 하상(下牀)하여 정병(淨甁)을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이것(這箇)은 이 촉(觸)인가, 이 정(淨)인가. 주사(主事)가 말이 없자 스님이 이에 쳐서 깨뜨렸다. 스님이 이로부터 도성(道聲)이 멀리 전파(傳播)되었고 대중의 청으로 명초산(明招山)에 거주하며 개법(開法)했고 사방에서 온(四來) 선자(禪者)가 당실(堂室)에 가득했다(盈).
●以己方人; 자기로써 타인에 방비(方比; 비교)함. 광운 방(方) 비(比)다.
●觸淨; 촉(觸)은 오(汚). 부정(不淨).
上堂 全鋒敵勝 罕遇知音 同死同生 萬中無一 尋言逐句 其數河沙 擧古擧今 滅胡種族 向上一路 啐啄猶乖 儒士相逢 握鞭回首 沙門所見 誠實苦哉 拋却眞金 隨隊撮土 報諸稚子 莫謾波波 解得他玄 猶兼瓦礫 不如一擲 騰過太虛 祇者靈鋒 阿誰敢近 任君來箭 方稱丈夫 擬欲呑聲 不消一攫 僧問 師子未出窟時如何 師曰 俊鷂趂不及 曰 出窟後如何 師曰 萬里正紛紛 曰 欲出不出時如何 師曰 嶮 曰 向去事如何 師曰 劄 問 如何是透法身外一句子 師曰 北斗後翻身 問 十二時中如何趣向 師曰 拋向金剛地上著 問 文殊與維摩對談何事 師曰 葛巾紗帽 已拈向這邊著也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齩得著是好手 問 放鶴出籠和煙去時如何 師曰 爭奈頭上一點何 問 無煙之火 是甚麽人向得 師曰 不惜眉毛底 曰 和尙還向得麽 師曰 汝道我有多少莖眉毛在 新到參 纔上法堂 師擧拂子却擲下 其僧珍重 便下去 師曰 作家 作家 問 全身佩劒時如何 師曰 忽遇正恁麽時又作麽生 僧無對
●胡種族; 卽胡人之種族 禪錄則指達磨門下之法孫 胡 本爲秦漢以前所用以稱匈奴者 其後又用以泛指一般塞外之民族 此外 亦以西天(印度)爲胡 而將達磨稱爲老胡 此卽後世稱佛種族爲胡種族之因 [祖庭事苑一]
상당(上堂) 전봉(全鋒)이 적승(敵勝; 對敵해 勝利)하나 지음(知音)을 만남이 드물다(罕). 동사동생(同死同生)함은 만중(萬中)에 하나도 없고 심언축구(尋言逐句)함은 그 수가 하사(河沙)다. 거고거금(擧古擧今)하면 호종족을 멸하고(滅胡種族). 향상일로(向上一路)는 줄탁(啐啄)하면 오히려 어긋난다. 유사(儒士)가 상봉하면 채찍을 움켜쥐고 머리를 돌리거니와 사문(沙門)의 소견(所見)은 성실(誠實)로 고재(苦哉)니 진금(眞金)을 던져버리고 수대(隨隊)하여 촬토(撮土)한다. 여러 치자(稚子)에게 알리나니 헛되이(謾) 파파(波波; 奔波)하지 말아라. 타현(他玄)을 해득(解得)하더라도 오히려 와력(瓦礫)을 겸(兼)하나니 한 번 던져버리고 태허(太虛)에 뛰어오름만(騰過; 過는 조사) 같지 못하다. 다만(祇) 이(者) 영봉(靈鋒)을 누가(阿誰) 감히 가까이 하겠는가. 그대의 내전(來箭)에 일임해야 바야흐로 장부(丈夫)라고 일컫나니 탄성(呑聲)하려고 한다면 한 번 움킴(攫; 움킬 확)도 쓰이지(消) 않는다. 승문(僧問) 사자가 출굴(出窟)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준요(俊鷂)가 쫓아가도(趂) 미치지 못한다. 가로되 출굴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만 리에 바로 분분(紛紛)하다. 가로되 나오려고(欲出) 하나 나오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위험하다(嶮). 가로되 향거사(向去事)는 어떻습니까. 사왈 찌르는구나(劄). 묻되 무엇이 이 법신 밖을 투과하는 일구자(一句子; 子는 조사)입니까. 사왈 북두(北斗) 뒤에서 몸을 뒤집는다(翻身).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취향(趣向)해야 합니까. 사왈 금강지상(金剛地上)을 향해 던져라. 묻되 문수와 유마가 무슨 일을 대담(對談)했습니까. 사왈 갈건(葛巾)과 사모(紗帽)는 이미 집어 저변(這邊)을 향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깨물어야(齩得著) 이 호수(好手)다. 묻되 학(鶴)을 놓아 출롱(出籠)하매 안개와 함께(和煙) 떠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두상(頭上)의 일점(一點)은 어찌하겠는가. 묻되 연기가 없는 불(無煙之火)은 이 어떤 사람이 향함을 얻습니까. 사왈 눈썹을 아끼지 않는 이(不惜眉毛底)다. 가로되 화상은 도리어 향함을 얻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내가 몇(多少) 줄기(莖)의 눈썹이 있느냐. 신도(新到; 新到僧)가 참(參)하여 겨우 법당에 오르자 스님이 불자를 들어 도리어 던져 떨어뜨렸다. 그 중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바로 내려갔다. 사왈 작가(作家)로다, 작가로다. 묻되 전신이 검을 찼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홀연히 바로 이러함을 만났을 때 또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胡種族; 곧 호인의 종족이니 선록에선 곧 달마문하의 법손을 가리킴. 호(胡)는 본래 진한(秦漢) 이전에 흉노의 호칭으로 쓰던 바가 되었는데 그 후 또 일반 새외(塞外)의 민족을 널리 가리킴으로 쓰였음. 이 밖에 또한 서천(西天; 印度)을 호(胡)라 했고 달마를 가지고 노호(老胡)라 했음. 이것이 곧 후세에 불종족(佛種族)을 일컬어 호종족이라 한 원인임 [조정사원1].
一日天寒 上堂 衆纔集 師曰 風頭稍硬 不是汝安身立命處 且歸暖室商量 便歸方丈 大衆隨至立定 師又曰 纔到暖室 便見瞌睡 以拄杖一時趂下 師問國泰 古人道俱胝祇念三行呪 便得名超一切人 作麽生與他拈却三行呪 便得名超一切人 泰竪起一指 師曰 不因今日 爭識得瓜洲客 師有師叔在廨院不安 附書來問曰 某甲有此大病 如今正受疼痛 一切處安置伊不得 還有人救得麽 師回信曰 頂門上中此金剛箭 透過那邊去也 會下有僧去 住庵一年後却來 禮拜曰 古人道三日不相見 莫作舊時看 師撥開胸曰 汝道我有幾莖葢膽毛 僧無對 師却問 汝甚麽時離庵 曰 今朝 師曰 來時折脚鐺子 分付與阿誰 僧又無語 師乃喝出
●俱胝; 俱胝和尙 唐代僧 名元修 福淸(今屬福建)人 武宗時 結庵於靈石山 嘗誦七俱胝咒 故名 宣宗四年(849) 創翠石院 曾參杭州天龍 龍竪一指 遂得悟 自是凡有學者參問 唯竪一指曰 吾得天龍一指禪 一生用不盡 後住婺州金華山 [五燈會元四 傳燈錄十一 祖堂集十九]
●瓜洲客; 同瓜州客 字彙 洲 本作州 後人加水以別州縣之字也 碧巖錄第十九則種電鈔云 杜詩 何人爲覓鄭瓜州 注曰 瓜州鎭對江地名 因瓜憶鄭審 爲金陵有瓜州號鄭瓜州 皆詞人風流趹蕩之態也
어느 날 날씨가 추웠다(天寒). 상당(上堂)하여 대중이 겨우 집합하자 사왈 풍두(風頭; 頭는 조사)가 조금(稍) 강경(强硬; 硬)하니 이 너희가 안신입명(安身立命)할 곳이 아니다. 다만(且) 난실(暖室)로 돌아가 상량(商量)하자.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대중이 따라 이르러 입정(立定)하자 스님이 또 가로되 겨우 난실(暖室)에 이르니 바로 갑수(瞌睡; 졸음)를 보인다. 주장자로써 일시에 쫓아버렸다(趂下). 스님이 국태(國泰)에게 묻되 고인이 말하되 구지(俱胝)는 다만 3행(行)의 주(呪)를 외워(念) 바로 이름이 일체인을 초월함을 얻었다. 어떻게 해야(作麽生) 그에게 3행의 주를 집어 물리치게(拈却) 해 주어 바로 이름이 일체인을 초월함을 얻겠는가. 국태가 한 손가락을 세워 일으켰다. 사왈(師曰) 금일을 인하지 않았다면 어찌 과주객(瓜洲客)을 식득(識得)하겠는가. 스님에게 사숙(師叔)이 있어 해원(廨院)에 있으면서 불안(不安; 得病)했다. 글을 부쳐 와서 문왈(問曰) 모갑이 이 대병(大病)이 있어 여금에 바로 동통(疼痛)을 받으며 일체처에 그(伊)를 안치함을 얻지 못한다. 도리어 구득(救得)할 사람이 있느냐. 스님이 회신(回信)하여 가로되 정문상(頂門上)에 이 금강전(金剛箭)이 적중(的中; 中)해 나변(那邊)을 투과(透過)해 갑니다. 회하(會下)에 어떤 중이 떠나더니 주암(住庵)한 지 1년 후에 돌아와서(却來) 예배하고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3일 동안 상견하지 않았다면 구시(舊時)의 봄을 짓지 말아라 했습니다. 스님이 가슴을 헤쳐 열고 가로되 네가 말하라, 나에게 몇 줄기(莖)의 개담모(葢膽毛; 胸毛)가 있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네가 어느 때 암자를 떠났느냐. 가로되 금조(今朝)입니다. 사왈 올 때 다리 부러진 쟁자(鐺子; 솥. 子는 조사)를 누구(阿誰)에게 분부해 주었느냐. 중이 또 말이 없었다. 스님이 이에 할(喝)하고 쫓아내었다.
●俱胝; 구지화상(俱胝和尙)이니 당대승. 이름은 원수(元修)며 복청(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무종 때 영석산에 암자를 엮어 늘 칠구지주(七俱胝咒)를 외운지라 고로 이름함. 선종 4년(849) 취석원을 창건했음. 일찍이 항주의 천룡(天龍)을 참알했는데 천룡이 한 손가락을 세우자 드디어 깨침을 얻었음. 이로부터 무릇 학자의 참문(參問)이 있으면 오직 한 손가락을 세우고 가로되 내가 천룡의 일지선(一指禪)을 얻어 일생에 써도 다하지 않는다. 후에 무주의 금화산에 거주했음 [오등회원4. 전등록11. 조당집19].
●瓜洲客; 과주객(瓜州客)과 같음. 자휘(字彙) 주(洲) 본래 주(州)로 지었다. 후인이 수(水)를 더해 주현(州縣)의 글자와 구별하였다. 벽암록 제19칙 종전초에 이르되 두시(杜詩) 어떤 사람이 정과주(鄭瓜州)를 심멱(尋覓)하는가. 주(注)에 가로되 과주진(瓜州鎭)은 대강(對江)의 땅 이름이다. 과(瓜)로 인해 정심(鄭審)을 추억한다 함이다. 금릉에 과주(瓜州)가 있으므로 호가 정과주가 되나니 다 사인(詞人)이 풍류로 결탕(趹蕩)하는 모습이다.
問 承師有言 我住明招頂 興傳古佛心 如何是明招頂 師曰 換却眼 曰 如何是古佛心 師曰 汝還氣急麽 問 學人拏雲㸕浪 上來請師展鉢 師曰 拶破汝頂 曰 也須仙陀去 師便打趂出 師有頌示衆曰 明招一拍和人稀 此是眞宗上妙機 石火瞥然何處去 朝生之子合應知 臨遷化 上堂告衆囑付訖 僧問 和尙百年後向甚麽處去 師擡起一足曰 足下看取 中夜問侍者 昔日靈山會上 釋迦如來展開雙足 放百寶光 遂展足曰 吾今放多少 者曰 昔日世尊 今宵和尙 師以手撥眉曰 莫孤負麽 乃說偈曰 驀刀叢裏逞全威 汝等諸人善護持 火裏鐵牛生犢子 臨岐誰解湊吾機 偈畢 端坐而逝 塔院存焉
●驀刀; 唐宋時代步兵所持的一種長刀
묻되 듣건대(承) 스님이 말씀이 있어 내가 명초정(明招頂)에 거주하면서 고불심(古佛心)을 흥전(興傳)한다. 무엇이 이 명초정입니까. 사왈(師曰) 눈을 바꾸어버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고불심입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기급(氣急)한가. 묻되 학인이 나운확랑(拏雲㸕浪; 구름을 붙잡고 파랑을 움켜쥐다)하며 올라왔으니 스님의 전발(展鉢)을 청합니다. 사왈 너의 정수리를 찰파(拶破; 짓눌러 깨뜨리다)한다. 가로되 또한 선타(仙陀)를 써야(須) 하겠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스님이 송이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명초(明招)의 일박(一拍)에 화(和)하는 사람이 드무나니(稀)/ 이것은 이 진종상(眞宗上)의 묘기(妙機)다/ 석화(石火)가 별연(瞥然)히 어느 곳으로 가느냐/ 조생(朝生)의 봉자(鳳子)가 합당히 응당 안다. 천화(遷化)에 임해 상당하여 고중(告衆)하여 촉부(囑付)해 마치자 승문(僧問) 화상이 백년후(百年後)에 어느 곳을 향해 갑니까. 스님이 한 발을 들어(擡) 일으키고 가로되 발 아래를 간취(看取)하라. 중야(中夜)에 시자에게 묻되 지난날 영산회상에서 석가여래가 쌍족(雙足)을 전개(展開)하고 백보광(百寶光)을 방출했다. 드디어 발을 펴고 가로되 내가 지금 얼마(多少)를 방출하느냐. 시자가 가로되 석일(昔日)의 세존이 금소(今宵)의 화상입니다. 스님이 손으로써 눈썹을 헤치고(撥) 가로되 고부(孤負; 저버리다)함이 아니냐. 이에 게를 설해 가로되 맥도(驀刀)의 숲 속(叢裏)에 전위(全威)를 자부(自負; 逞)하나니/ 너희 등 제인은 잘 호지(護持)하라/ 불 속의 철우(鐵牛)가 송아지(犢子)를 낳았나니/ 기로(岐路)에 임해 누가 나의 기(機)에 모일(湊) 줄 아는가(解). 게를 마치자 단좌(端坐)하여 떠났다. 탑원(塔院)이 존재한다.
●驀刀; 당송시대 보병이 소지했던 일종의 긴 칼.
洪州大寧院隱微覺寂禪師
豫章新淦楊氏子 誕夕有光明貫室 年七歲 依本邑石頭院道堅禪師出家受具 歷參宗匠 至羅山 山導以師子在窟出窟之要 因而省悟 後回江表 會龍泉宰李孟俊請居十善道場 闡揚宗旨 上堂 還有騰空底麽 出來 衆無出者 師說偈曰 騰空正是時 應須眨上眉 從茲出倫去 莫待白頭兒 僧問 如何是十善橋 師曰 險 曰 過者如何 師曰 喪 問 資福和尙遷化向甚麽處去 師曰 草鞋破 問 如何是黃梅一句 師曰 卽今作麽生 曰 如何通信 師曰 九江路絕 問 初心後學 如何是學 師曰 頭戴天 曰 畢竟如何 師曰 脚踏地 問 如何是法王劒 師曰 露 曰 還殺人也無 師曰 作麽 問 如何是龍泉劒 師曰 不出匣 曰 便請出匣 師曰 星辰失位 問 國界安寧 爲甚麽珠不現 師曰 落在甚麽處
홍주(洪州) 대녕원(大寧院) 은미(隱微) 각적선사(覺寂禪師)
예장(豫章) 신감(新淦) 양씨(楊氏)의 아들이니 탄석(誕夕)에 광명이 있어 실내를 관통했다. 나이 7세에 본읍(本邑) 석두원(石頭院) 도견선사(道堅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하고 수구(受具)했다. 종장(宗匠)을 역참(歷參)하다가 나산(羅山)에 이르자 나산이 사자의 재굴출굴(在窟出窟)의 종요(宗要; 要)로써 인도(引導)했고 인하여 성오(惺悟)했다. 후에 강표(江表; 江南)로 돌아갔는데 마침(會) 용천(龍泉)의 재(宰) 이맹준(李孟俊)의 청으로 십선도량(十善道場)에 거주하면서 종지(宗旨)를 천양(闡揚)했다. 상당(上堂) 도리어 등공(騰空; 허공에 오르다)할 이가 있느냐, 나오너라. 대중에서 나오는 자가 없자 스님이 게를 설해 가로되 등공(騰空)이 바로 이때(是時)니/ 응당 꼭 눈썹을 깜작여라(眨上; 上은 조사)/ 이로 좇아 무리(倫)에서 초출하여 가고/ 백두아(白頭兒)를 기다리지 말아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십선교(十善橋)입니까. 사왈(師曰) 위험하다. 가로되 지나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상(喪; 죽다. 잃다)한다. 묻되 자복화상(資福和尙)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짚신이 해어졌다(破). 묻되 무엇이 이 황매(黃梅)의 1구입니까. 사왈 즉금은 무엇인가(恁麽生). 가로되 어떻게 통신(通信)해야 합니까. 사왈 구강(九江)의 길이 끊어졌다. 묻되 초심(初心)의 후학(後學)이 어떻게 이 배웁니까(學). 사왈 머리로 하늘을 이었다(戴).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如何). 사왈 발로 땅을 밟았다. 묻되 무엇이 이 법왕검(法王劒)입니까. 사왈 드러났다(露). 가로되 도리어 살인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무어라고(作麽). 묻되 무엇이 이 용천검(龍泉劒)입니까. 사왈 갑(匣)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로되 출갑(出匣)을 청합니다. 사왈 성신(星辰)이 실위(失位)했다. 묻되 국계(國界)가 안녕하거늘 무엇 때문에 구슬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衡州華光範禪師
僧問 靈臺不立 還有出身處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出身處 師曰 出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道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驗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自由自在 曰 見後如何 師曰 自由自在 問 如何是佛法中事 師曰 了
형주(衡州) 화광범(華光範) 선사
승문(僧問) 영대(靈臺; 일심. 진여)도 세우지 않는데 도리어 출신(出身; 省悟)할 곳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師曰)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출신할 곳입니까. 사왈 출(出).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도(道).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험(驗).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자유자재하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 중의 일입니까. 사왈 요(了).
福州羅山紹孜禪師
上堂 有數僧爭出問話 師曰 但一齊出來問 待老僧一齊與汝答 僧便問 學人一齊問 請師一齊答 師曰 得 問 學人乍入叢林 祖師的的意 請師直指 師曰 好
복주(福州) 나산(羅山) 소자선사(紹孜禪師)
상당하자 몇 중이 있어 다투어 나와 문화(問話)했다. 사왈(師曰) 단지 일제(一齊)히 나와 묻고 노승이 일제히 너희에게 답해 줌을 기다려라. 중이 바로 묻되 학인이 일제히 물었으니 스님이 일제히 답하기를 청합니다. 사왈 득(得). 묻되 학인은 총림에 처음(乍) 들어왔습니다. 조사의 적적(的的; 확실. 진실)한 뜻을 청컨대 스님이 직지(直指)하십시오. 사왈 호(好).
西川定慧禪師
初參羅山 山問 甚麽處來 師曰 遠離西蜀 近發開元 却近前問 卽今事作麽生 山揖曰 喫茶去 師擬議 山曰 秋氣稍熱去 師出至法堂 歎曰 我在西蜀峨嵋山 脚下拾得一隻蓬蒿箭 擬撥亂天下 今日打羅山寨 弓折箭盡也 休休 乃下參衆 山來日上堂 師出問 豁開戶牗 當軒者誰 山便喝 師無語 山曰 毛羽未備 且去 師因而摳衣 久承印記 後謁台州勝光 光坐次 師直入身邊叉手而立 光問 甚處來 師曰 猶待答話在 便出 光拈得拂子 趂至僧堂前 見師乃提起拂子曰 闍黎喚這箇作甚麽 師曰 敢死喘氣 光低頭歸方丈
●撥亂; 治亂 說文 撥 治也 廣韻 撥 理也
●敢死; 指勇敢不怕死 通常指勇敢的人
서천(西川) 정혜선사(定慧禪師)
나산(羅山)을 초참(初參)하자 나산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師曰) 멀기로는 서촉(西蜀)을 떠났고 요즘 개원(開元)에서 출발했습니다. 도리어 근전(近前)해 묻되 즉금의 일이 무엇입니까(作麽生). 나산이 읍(揖)하며 가로되 차 먹고 가게. 스님이 의의(擬議)하자 나산이 가로되 추기(秋氣)가 조금(稍) 따뜻해 간다. 스님이 나가서 법당에 이르러 탄식해 가로되 내가 서촉(西蜀) 아미산(峨嵋山)에 있으면서 각하(脚下)에서 1척(隻)의 봉호전(蓬蒿箭)을 습득해 천하를 발란(撥亂)하려고 했는데 금일 나산의 채(寨; 城砦)를 치면서(打) 활이 부러지고 화살이 다했다. 쉬어라(休) 쉬어라. 이에 내려가 참중(參衆)했다. 나산이 내일 상당하자 스님이 나가서 묻되 호유(戶牖)를 활짝(豁) 열었으니 당헌(當軒)한 자가 누구입니까. 나산이 바로 할(喝)했다. 스님이 말이 없었다. 나산이 가로되 모우(毛羽)를 갖추지 못했으니 다만 가거라(且去). 스님이 인하여 구의(摳衣)했고 오래되자 인기(印記)를 승수(承受)했다. 후에 태주(台州) 승광(勝光)을 예알했는데 승광이 좌차(坐次)였다. 스님이 직입(直入)하여 신변(身邊)에서 차수(叉手)하고 서자 승광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오히려 답화(答話)를 기다립니다 하고는 바로 나갔다. 승광이 불자를 염득(拈得)하여 쫓아서(趂) 승당 앞에 이르러 스님을 보고 이에 불자를 제기(提起)하며 가로되 사리(闍黎)는 이것(這箇)을 일러 무엇이라 하느냐. 사왈 감사(敢死)의 천기(喘氣)입니다. 승광이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撥亂; 난을 다스림. 설문 발(撥) 치(治)다. 광운 발(撥) 리(理; 다스리다)다.
●敢死; 용감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가리킴. 통상(通常) 용감한 사람을 가리킴.
建州白雲令弇禪師
上堂 遣往先生門 誰云對喪主 珍重 僧問 己事未明 以何爲驗 師曰 木鏡照素容 曰 驗後如何 師曰 不爭多 問 三台有請 四衆臨筵 旣處當仁 請師一唱 師曰 要唱也不難 曰 便請 師曰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先生; 一一般在一個男子姓氏後所用的一個習慣性的表示禮貌的稱呼 二舊時稱以說書 相面 算卦 看風水等爲職業的人 三對長者的尊稱 [百度漢語]
●三台; 喻三公 祖庭事苑三 台輔 春秋曰 三公上應三台星 故曰台輔
●當仁; 猶言當之無愧 謂勇爲不辭 指勇爲不辭的人
건주(建州) 백운(白雲) 영엄선사(令弇禪師)
상당(上堂) 견왕(遣往)하는 선생(先生)의 문에서 상주(喪主)를 대한다고 누가 이르는가.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무엇으로써 증험(證驗; 驗)합니까. 사왈(師曰) 목경(木鏡)으로 소용(素容; 化粧하지 아니한 얼굴)을 비춘다. 가로되 증험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많음을 다투지 않는다. 묻되 삼태(三台)가 청함이 있고 사중(四衆)이 임연(臨筵)했습니다. 이미 당인(當仁)에 처했으니 스님의 일창(一唱)을 청합니다. 사왈 창(唱)을 요한다면 또한 어렵지 않다. 가로되 바로 청합니다. 사왈 밤은 고요하고 물은 맑고 물고기는 먹지 않으니 배 가득 공연히 달 밝음을 싣고 돌아온다.
●先生; 1. 일반으로 일개 남자 성씨 뒤에 두고 쓰는 바의 일개의 습관성의 예모(禮貌)를 표시하는 칭호. 2. 구시에 설서(說書; 일종의 說唱形式의 곡예)ㆍ상면(相面; 관상을 보다)ㆍ산괘(算卦; 卦象으로 점을 치다)ㆍ간풍수(看風水) 등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호칭. 3. 장자(長者)에 대한 존칭 [백도한어].
●三台; 삼공(三公)에 비유함. 조정사원3 태보(台輔) 춘추에 가로되 삼공(三公)은 위로 삼태성(三台星)에 응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태보(台輔)다.
●當仁; 이를 당해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함과 같음. 이르자면 용감하여 사양하지 않음. 용감하여 사양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킴.
虔州天竺義澄常眞禪師
在羅山數載 後因山示疾 師問 百年後忽有人問 和尙以何指示 山乃放身便倒 師從此契悟 卽禮謝 住後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寒暑相催
건주(虔州) 천축(天竺) 의징(義澄) 상진선사(常眞禪師)
나산(羅山)에 있은 지 몇 해였다. 후에 나산이 시질(示疾)함으로 인해 사문(師問) 백년후(百年後) 홀연히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화상이 무엇으로써 지시하겠습니까. 나산이 이에 방신(放身)하여 바로 넘어졌다. 스님이 이로 좇아 계오(契悟)하고 곧 예사(禮謝)했다.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師曰) 한서(寒暑)가 상최(相催)한다.
吉州淸平惟曠眞寂禪師
上堂 不動神情 便有輸贏之意 還有麽 出來 時有僧出禮拜 師曰 不是作家 便歸方丈 問 如何是第一句 師曰 要頭將取去 問 如何是活人劒 師曰 會麽 曰 如何是殺人刀 師叱之 問 如何是師子兒 師曰 毛頭排宇宙
●神情; 人面部的表情或神態
●輸贏; 同輸嬴 負勝也 輸 負 在較量中失敗
길주(吉州) 청평(淸平) 유광(惟曠) 진적선사(眞寂禪師)
상당(上堂) 신정(神情)을 동(動)하지 않아도 바로 수영(輸贏)의 뜻이 있다. 도리어 있느냐, 나오너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했다. 사왈(師曰) 이 작가가 아니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제1구입니까. 사왈 머리를 요하거든 가져 취해 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활인검입니까. 사왈 아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살인도입니까. 스님이 꾸짖었다. 묻되 무엇이 이 사자아(師子兒)입니까. 사왈 모두(毛頭; 頭는 後綴)에 우주를 배치(排置)했다.
●神情; 인면부(人面部)의 표정 혹 신태(神態).
●輸贏; 수영(輸嬴)과 같음. 부승(負勝)임. 수(輸)는 짐(負)이니 교량(較量) 중에서 실패함.
婺州金柱山義昭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開門作活計 曰 忽遇賊來 又作麽生 師曰 然 新到參 師揭簾以手作除帽勢 僧擬欲近前 師曰 賺殺人 因事有偈曰 虎頭生角人難措 石火電光須密布 假饒烈士也應難 懵底那能解回互
무주(婺州) 금주산(金柱山) 의소선사(義昭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문 열고 활계(活計)를 짓는다. 가로되 홀연히 도적이 옴을 만나면 또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그렇다(然). 신도(新到)가 참(參)했다. 스님이 발을 걷어올리고(揭簾) 손으로써 모자를 제거하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근전(近前)하려고 하자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스님이 인사(因事)하여 송이 있어 가로되 호두(虎頭)에 뿔이 나면 사람이 조치(措置)하기 어렵나니/ 석화전광(石火電光)을 밀포(密布)함을 써라(須)/ 가요(假饒; 가령) 열사(烈士)라도 또한 응당 어렵거늘/ 어리석은 이(懵底)가 어찌 능히 회호(回互)를 알겠는가.
潭州谷山和尙
僧問 省要處乞師一言 師便起去 問 𦏪羊挂角時如何 師曰 你向甚麽處覓 曰 挂角後如何 師曰 走
담주(潭州) 곡산화상(谷山和尙)
승문(僧問) 성요처(省要處)를, 스님의 일언(一言)을 구걸합니다. 스님이 바로 일어나 떠났다. 묻되 영양(𦏪羊)이 뿔을 걸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네(爾)가 어느 곳을 향해 찾겠는가. 가로되 뿔을 건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달린다(走).
湘南道吾從盛禪師
初住龍回 僧問 如何是覿面事 師曰 新羅國去也 問 如何是龍回家風 師曰 縱橫射直 問 窮子投師 乞師拯濟 師曰 莫是屈著汝麽 曰 爭奈窮何 師曰 大有人見
호남(湘南) 도오(道吾) 종성선사(從盛禪師)
용회(龍回)에 초주(初住)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적면(覿面)의 일입니까. 사왈(師曰) 신라국(新羅國)에 간다. 묻되 무엇이 이 용회(龍回)의 가풍입니까. 사왈 종횡으로 사직(射直; 一直으로 쏘다)한다. 묻되 궁자(窮子)가 스님에게 투신하니 스님의 증제(拯濟)를 구걸합니다. 사왈 이는 너를 굴착(屈著)함이 아니냐. 가로되 궁(窮)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대유인(大有人)이 본다.
福州羅山義因禪師
上堂良久曰 若是宗師門下客 必不怪於羅山 珍重 僧問 承古有言 自從認得曹谿路 了知生死不相關 曹谿路卽不問 如何是羅山路 師展兩手 僧曰 恁麽則一路得通 諸路亦然 師曰 甚麽諸路 僧近前叉手 師曰 靈鶴煙霄外 鈍鳥不離窠 問 敎中道 順法身萬象俱寂 隨智用萬象齊生 如何是萬象俱寂 師曰 有甚麽 曰 如何是萬象齊生 師曰 繩牀倚子
복주(福州) 나산(羅山) 의인선사(義因禪師)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만약 이 종사의 문하객(門下客)일진대 반드시 나산(羅山)을 괴이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듣건대(承) 고인(古人; 永嘉玄覺)이 말씀이 있어 조계로(曹谿路)를 인득(認得)함으로부터 생사에 상관되지 않음을 요지(了知)했다. 조계로는 곧 묻지 않거니와 무엇이 이 나산로(羅山路)입니까. 스님이 두 손을 폈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일로(一路)를 통함을 얻으매 제로(諸路)도 또한 그러합니다. 사왈 무엇이 제로인가(什麽諸路). 중이 근전(近前)하여 차수(叉手)했다. 사왈(師曰) 영학(靈鶴)은 연소(煙霄; 雲霄) 밖이거늘 둔조(鈍鳥)는 둥지를 여의지 못하는구나. 묻되 교중(敎中)에 말하되 법신(法身)에 순(順)하면 만상(萬象)이 구적(俱寂)하고 지용(智用)을 따르면 만상이 제생(齊生)한다. 무엇이 이 만상이 구적(俱寂)함입니까. 사왈 무엇이 있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만상이 제생(齊生)함입니까. 사왈 승상(繩牀)과 의자(倚子)다.
灌州靈巖和尙
僧問 如何是道中寶 師曰 地傾東南 天高西北 曰 學人不會 師曰 落照機前異 師頌石鞏接三平曰 解擘當胸箭 因何祇半人 爲從途路曉 所以不全身
●灌州; 今四川省都江堰市一帶
관주(灌州) 영암화상(靈巖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중보(道中寶)입니까. 사왈(師曰) 땅은 동남으로 기울었고 하늘은 서북이 높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낙조(落照; 落日)는 기전(機前)에 다르다. 스님이, 석공(石鞏)이 삼평(三平)을 접인(接引)한 것을 송해 가로되 당흉(當胸)한 화살을 쪼갤 줄 알았거늘/ 무엇으로 인해 다만 반인(半人)인가/ 도로(途路)의 밝음(曉)을 좇았기 때문에/ 소이로 전신(全身)이 아니었다.
●灌州; 지금의 사천성 도강언시(都江堰市) 일대(一帶).
吉州匡山和尙
示徒頌曰 匡山路匡山路 巖崖嶮峻人難措 遊人擬議隔千山 一句分明超佛祖 白牛頌曰 我有古壇眞白牛 父子藏來經幾秋 出門直往孤峰頂 回來暫跨虎溪頭
길주(吉州) 광산화상(匡山和尙)
시도송(示徒頌)에 가로되 광산로(匡山路)는 광산로는/ 암애(巖崖)가 험준하여 사람이 조처(措處)하기 어렵다/ 유인(遊人)이 의의(擬議)하면 천산(千山)에 막히지만/ 1구가 분명하여 불조를 초월한다. 백우송(白牛頌)에 가로되 나에게 고단(古壇)의 진백우(眞白牛)가 있나니/ 부자(父子)가 숨겨온 지 몇 가을을 지냈던가/ 출문(出門)하매 고봉정(孤峰頂)으로 직왕(直往)하고/ 회래(回來)하매 호계두(虎溪頭; 虎溪邊)를 잠시 넘는다(跨).
福州興聖重滿禪師
上堂 覿面分付 不待文宣 對眼投機 喚作參玄上士 若能如此 所以宗風不墜 僧問 如何是宗風不墜底句 師曰 老僧不忍 問 昔日靈山會裏 今朝興聖筵中 和尙親傳 如何擧唱 師曰 欠汝一問
복주(福州) 흥성(興聖) 중만선사(重滿禪師)
상당(上堂) 적면(覿面)하여 분부하고 문선(文宣; 文句로 宣揚함)을 기다리지 않나니 대안(對眼)하여 투기(投機)해야 참현(參玄)하는 상사(上士)라고 불러 짓는다.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소이로 종풍이 추락하지 않는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종풍이 추락하지 않는 구(句)입니까. 사왈(師曰) 노승이 참지 못한다. 묻되 석일(昔日)은 영산(靈山)의 회리(會裏)며 금조(今朝)는 흥성(興聖)의 연중(筵中)입니다. 화상이 친전(親傳)한 것을 어떻게 거창(擧唱)하시겠습니까. 사왈 너의 일문(一問)이 모자란다(欠).
潭州寶應淸進禪師
僧問 如何是實相 師曰 沒却汝 問 至理無言 如何通信 師曰 千差萬別 曰 得力處乞師指示 師曰 瞌睡漢
담주(潭州) 보응(寶應) 청진선사(淸進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실상(實相)입니까. 사왈(師曰) 너를 가라앉혀버린다(沒却). 묻되 지리(至理)는 무언(無言)이거늘 어떻게 통신(通信)하겠습니까. 사왈 천차만별이다. 가로되 득력처(得力處)를,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갑수한(瞌睡漢; 조는 자)아.
玄沙備禪師法嗣
漳州羅漢院桂琛禪師
常山李氏子 爲童兒時 日一素食 出言有異 旣冠 親事本府萬歲寺無相大師 披削登戒 學毗尼 一日 爲衆陞臺 宣戒本布薩已 乃曰 持戒但律身而已 非眞解脫也 依文作解 豈發聖智乎 於是訪南宗 初謁雲居雪峰 參訊勤恪 然猶未有所見 後造玄沙 一言啓發 廓爾無惑 沙問 三界唯心 汝作麽生會 師指倚子曰 和尙喚這箇作甚麽 曰 倚子 師曰 和尙不會三界唯心 曰 我喚這箇作竹木 汝喚作甚麽 師曰 桂琛亦喚作竹木 曰 盡大地覓一箇會佛法底人不可得 師自爾愈加激勵 沙每因誘迪學者 流出諸三昧 皆命師 爲助發 師雖處衆韜晦 然聲譽甚遠 時漳牧王公建精舍曰地藏 請師開法 因插田次 見僧乃問 從甚處來 曰 南州 師曰 彼中佛法如何 曰 商量浩浩地 師曰 爭如我這裏栽田博飯喫 曰 爭奈三界何 師曰 喚甚麽作三界 問僧甚處來 曰 南方來 師曰 南方知識 有何言句示徒 曰 彼中道 金屑雖貴 眼裏著不得 師曰 我道須彌在師眼裏 一日同中塔侍玄沙 沙打中塔一棒曰 就名就體 中塔不對 沙乃問師 作麽生會 師曰 這僧著一棒不知來處 僧報曰 保福已遷化也 師曰 保福遷化 地藏入塔〈僧問法眼 古人意旨如何 眼云 蒼天蒼天〉
●素食; 素食乃以植物爲主要之食物 卽相對於以動物爲食物之肉食而言
●戒本; 從佛敎戒律典籍中選出的作爲說戒傳戒依據的戒律敎本
●勤恪; 勤勉恭謹
●助發; 扶助啓發
●商量浩浩地; 問答討論盛大之貌
장주(漳州) 라한원(羅漢院) 계침선사(桂琛禪師)
상산(常山) 이씨(李氏)의 아들이다. 동아(童兒)가 되었을 때 하루에 한 번 소식(素食)했고 출언(出言)하면 이상(異常)함이 있었다. 이미 관세(冠歲)가 되자 본부(本府) 만세사(萬歲寺) 무상대사(無相大師)를 친사(親事; 친히 모시다)하여 피삭(披削)하고 등계(登戒)하고 비니(毘尼)를 배웠다. 어느 날 대중을 위해 승대(陞臺)하여 계본(戒本)을 선양(宣揚)하고 포살(布薩)하고 나서 이에 가로되 지계(持戒)는 단지 율신(律身; 律己)할 따름이니 참다운 해탈이 아니다. 의문(依文)하여 작해(作解)하면 어찌 성지(聖智)를 발생하겠는가. 이에 남종(南宗)을 참방했다. 처음은 운거(雲居)와 설봉을 참알해 참신(參訊; 參問)하며 근각(勤恪)했으나 그러나 오히려 보는 바가 있지 않았다. 후에 현사(玄沙)에게 나아가 일언(一言)에 계발(啓發)하여 휑하게(廓爾) 의혹이 없었다. 현사가 묻되 삼계유심(三界唯心)을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스님이 의자(倚子)를 가리키며 가로되 화상은 이것(這箇)을 일러 무엇이라고 합니까. 가로되 의자다. 사왈 화상은 삼계유심을 알지 못하십니다. 가로되 나는 이것을 일러 죽목(竹木)이라 한다. 너는 무엇이라고 불러 짓느냐. 사왈 계침(桂琛)도 또한 죽목이라고 불러 짓습니다. 가로되 온 대지에 한 개의 불법을 아는 사람을 찾아도 불가득이다. 스님이 이로부터(自爾) 더욱(愈) 격려(激勵)를 더했다. 현사가 매번 학자를 유적(誘迪; 달래며 이끌다)함으로 인해 여러 삼매를 유출(流出)하면서 모두 스님에게 명해 조발(助發)하게 했다. 스님이 비록 대중에 처해 도회(韜晦)했지만 그러나 성예(聲譽)가 심원(甚遠)했다. 때에 장목(漳牧) 왕공(王公)이 정사(精舍)를 건립하고 가로되 지장(地藏)이라 했고 스님의 개법(開法)을 청했다. 삽전(插田; 插秧이니 논에 볏모를 심음)하던 차로 인해 중을 보고 이에 묻되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가로되 남주(南州)입니다. 사왈 거기 중의 불법은 어떠한가. 가로되 상량호호지(商量浩浩地)입니다. 사왈 내가 이 속에서 밭에 심어 밥과 바꿔(博) 먹음만 어찌 같겠는가. 가로되 3계(界)는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무엇을 일러 3계라 하느냐.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남방에서 옵니다. 사왈 남방의 지식(知識)은 어떤 언구가 있어 시도(示徒)하는가. 가로되 그 중에선 말하되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 속에 놓음(著)을 얻지 못한다. 사왈 나는 말하나니 수미(須彌)가 스님의 눈 속에 있다. 어느 날 중탑(中塔)과 함께 현사를 시립(侍立)했는데 현사가 중탑을 한 방(棒) 때리고 가로되. 이름으로 나아감인가, 체(體)로 나아감인가. 중탑이 대답하지 않았다. 현사가 이에 스님에게 묻되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사왈 이 중이 한 방을 만났으나(著) 내처(來處)를 알지 못합니다. 중이 알려(報) 가로되 보복(保福)이 이미 천화(遷化)했습니다. 사왈 보복은 천화하고 지장(地藏)은 입탑(入塔)한다〈중이 法眼에게 묻되 古人의 意旨가 무엇입니까. 眼云 蒼天, 蒼天〉.
●素食; 소식은 곧 식물(植物)을 주요(主要)로 삼는 식물(食物)이니 곧 동물을 식물(食物)로 삼는 육식에 상대하여 말함임.
●戒本; 불교 계율 전적(典籍) 가운데로 좇아 선출(選出)한, 설계(說戒)전계(傳戒)를 작위(作爲)하면서 의거하는 계율교본(戒律敎本).
●勤恪; 근면(勤勉)하며 공근(恭謹)함.
●助發; 계발(啓發)을 부조(扶助)함.
●商量浩浩地; 문답하며 토론함이 성대한 모양.
後遷羅漢 大闡玄要 上堂 宗門玄妙 爲當祇恁麽也 更別有奇特 若別有奇特 汝且擧將來看 若無去 不可將兩箇字便當却宗乘也 何者兩箇字 謂宗乘敎乘也 汝纔道著宗乘 便是宗乘 道著敎乘 便是敎乘 禪德 佛法宗乘 元來由汝口裏安立名字 作取說取便是也 斯須向這裏說平說實 說圓說常 禪德 汝喚甚麽作平實 把甚麽作圓常 傍家行脚 理須甄別 莫相埋沒 得些子聲色名字 貯在心頭 道我會解 善能揀辨 汝且會箇甚麽 揀箇甚麽 記持得底是名字 揀辨得底是聲色 若不是聲色名字 汝又作麽生記持揀辨 風吹松樹也是聲 蝦蟇老鵶呌也是聲 何不那裏聽取揀擇去 若那裏有箇意度模樣 祇如老師口裏 又有多少意度與上座 莫錯 卽今聲色摐摐地 爲當相及不相及 若相及 卽汝靈性金剛祕密 應有壞滅去也 何以如此 爲聲貫破汝耳 色穿破汝眼 因緣卽塞却汝 幻妄走殺汝 聲色體爾不可容也 若不相及 又甚麽處得聲色來 會麽 相及不相及 試裁辨看 少間又道 是圓常平實 甚麽人恁麽道 未是黃夷村裏漢解恁麽說 是他古聖 垂些子相助顯發 今時不識好惡 便安圓實 道我別有宗風玄妙 釋迦佛無舌頭 不如汝些子 便恁麽點胸 若論殺盜婬罪 雖重猶輕 尙有歇時 此箇謗般若 瞎却衆生眼 入阿鼻地獄呑鐵丸 莫將爲等閑 所以古人道 過在化主 不干汝事 珍重
●甄別; 鑒別之意 甄 鑒別 審查
●揀; 辨別 選擇 指對機語作判別評議
●摐摐; (衆多事物)紛然存在的樣子 摐 紛錯 高聳
●裁辨; 鑑别 辨别
●黃夷; 古代東夷之一種 後漢書東夷傳 夷有九種 曰畎夷 於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百度百科]
●阿鼻; <梵> avīci 又作阿鼻旨 譯曰無間 無間地獄是也 ▲飜譯明義集二 阿鼻 此云無間 觀佛三昧經云 阿言無 鼻言救 成論明五無間 一趣果無間 捨身生報故 二受苦無間 中無樂故 三時無間 定一劫故 四命無間 中不絶故 五形無間 如阿鼻相 縱廣八萬由旬 一人多人 皆遍滿故
후에 라한(羅漢)으로 옮겼고 현요(玄要)를 대천(大闡)했다. 상당(上堂) 종문(宗門)의 현묘(玄妙)가 마땅히 다만 이러함이 되는가, 다시 달리 기특(奇特)함이 있는가. 만약 달리 기특함이 있다면 너희가 다만(且) 들어(擧) 가지고 와 보아라. 만약 없다면(無去) 가히 두 개 글자를 가지고 바로 종승(宗乘)에 당각(當却; 當敵하다)하지 말아라. 무엇이(何者) 두 개의 글자인가, 이르자면 종승(宗乘)과 교승(敎乘)이다. 너희가 겨우 종승(宗乘)을 말하면(道著) 바로 이 종승이며 교승(敎乘)을 말하면 바로 이 교승이니 선덕(禪德)이여, 불법의 종승이 원래 너희의 입속으로 말미암아 명자(名字)를 안립(安立)하여 작취(作取)하고 설취(說取)함이 바로 이것이다. 사수(斯須; 잠시. 須臾)에 이 속을 향해 설평설실(說平說實)하고 설원설상(說圓說常)하거니와 선덕(禪德)이여, 너희는 무엇을 일러 평실(平實)이라 하느냐. 무엇을 잡아 원상(圓常)이라 하느냐. 옆집으로 행각하면서 이치를 꼭 견별(甄別)하고 서로 매몰하지 말아야 한다. 사자(些子; 些少)의 성색과 명자를 얻어 심두(心頭)에 쌓아 두고는 말하기를 나는 회해(會解; 이해)하여 잘 능히 간변(揀辨)한다 하거니와 너희는 그래 아는 것이 무엇이며 간(揀)하는 게 무엇이냐. 기지(記持)하여 얻은 것은 이 명자(名字)며 간변(揀辨)하여 얻은 것은 이 성색(聲色)이니 만약 이 성색과 명자가 아니라면 너희가 또 어떻게 기지하고 간변하겠는가. 바람이 소나무에 붊도 또한 이 소리(聲)며 두꺼비(蝦蟇)와 늙은 갈까마귀의 부르짖음도 또한 이 소리거늘 왜 저 속(那裏)에서 청취(聽取)하고 간택(揀擇)하여 가지 않느냐. 만약 저 속에 저(箇) 의도(意度; 識見과 風度)와 모양(模樣)이 있다면 지여(祇如) 노사(老師)의 입속에 또 다소의 의도(意度)가 있어 상좌에게 주느냐. 착오하지 말아라. 즉금 성색이 창창지(摐摐地; 地는 조사)니 마땅히 상급(相及)하는가 상급하지 않는가. 만약 상급한다면 곧 너희의 영성(靈性)인 금강의 비밀이 응당 괴멸(壞滅)하여 감이 있으리라.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소리가 너희의 귀를 관파(貫破)하고 색이 너희의 눈을 천파(穿破)하고 인연이 곧 너희를 색각(塞却)하고 환망(幻妄)이 너희를 너무 달리게(走殺) 하기 때문이니(爲) 성색(聲色)의 체가 그러하여(體爾) 가히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상급(相及)하지 않는다면 또 어느 곳에서 성색을 얻어 오겠는가. 아느냐, 상급과 상급하지 않음을 시험 삼아 재변(裁辨)해 보아라. 소간(少間; 잠시 후)에 또 말하되 이 원상(圓常)과 평실(平實)을 어떤 사람이 이렇게(恁) 말하느냐. 이 황이촌(黃夷村) 속의 사내(漢)가 이렇게 설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이는 저(他) 고성(古聖)이 사자(些子)의 상조(相助)를 드리워 현발(顯發; 환히 밝히다)했음이다. 금시에 호오(好惡)를 알지 못해 바로 원실(圓實; 圓常과 平實)을 안치하고는 말하되 나에게 달리 종풍의 현묘(玄妙)가 있다 하거니와 석가불(釋迦佛)이 설두(舌頭; 혀)가 없어서 너희의 사자(些子)와 같지 못해 바로 이렇게 점흉(點胸; 自負)했겠는가. 만약 살도음죄(殺盜婬罪)를 논할진대 비록 무겁지만 오히려(猶) 가벼워서 오히려(尙) 쉴 때가 있겠지만 이것은 반야를 비방함이며 중생의 눈을 멀어버리게 함인지라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가 철환(鐵丸)을 삼키리니 장차 등한(等閑)하지 말아라. 소이로 고인이 말하되 허물이 화주(化主; 敎化의 主人)에게 있고 너희의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하였다. 진중(珍重)하라.
●甄別; 감별(鑒別)의 뜻. 견(甄)은 감별ㆍ심사(審查).
●揀; 변별. 선택. 기어(機語)에 대해 판별하고 평의(評議)함을 가리킴.
●摐摐; (衆多한 사물)이 분연(紛然)히 존재하는 양자. 창(摐)은 어지럽게 섞임. 높이 솟음.
●裁辨; 감별(鑑别). 변별(辨别).
●黃夷; 고대 동이(東夷)의 일종. 후한서 동이전(東夷傳). 이(夷)에 9종이 있다. 가로되 견이(畎夷), 어이(於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 [백도백과].
●阿鼻; <범> avīci. 또 아비지(阿鼻旨)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무간(無間)이니 무간지옥이 이것임. ▲번역명의집2. 아비(阿鼻) 여기에선 이르되 무간(無間)이다. 관불삼매경에 이르되 아(阿)는 말하자면 무(無)며 비(鼻)는 말하자면 구(救)다. 성론(成論)에 5무간을 밝혔음. 1은 취과무간(趣果無間)이니 몸을 버리면 과보가 생기는 연고다. 2는 수고무간이니 중간에 낙이 없는 연고다. 3은 시무간(時無間)이니 1겁을 확정한 연고다. 4는 명무간(命無間)이니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연고다. 5는 형무간(形無間)이니 아비(阿鼻)의 모양과 같다. 가로 세로가 8만 유순(由旬)이며 1인과 다인(多人)이 다 두루 가득한 연고다.
僧問 如何是羅漢一句 師曰 我若向汝道 便成兩句也 問 不會底人來 師還接否 師曰 誰是不會者 曰 適來道了也 師曰 莫自屈麽 保福僧到 師問 彼中佛法如何 曰 有時示衆道 塞却你眼 敎你覷不見 塞却你耳 敎你聽不聞 坐却你意 敎你分別不得 師曰 吾問你 不塞你眼 見箇甚麽 不塞你耳 聞箇甚麽 不坐你意 作麽生分別〈東禪齊云 那僧聞了忽然省去 更不他遊 上座如今還會麽 若不會 每日見箇甚麽〉 問 以字不成 八字不是 未審是甚麽字 師曰 汝實不會那 曰 學人實不會 師曰 看取下頭註脚 問 如何是沙門正命食 師曰 喫得麽 曰 欲喫此食 作何方便 師曰 塞却你口 問 如何是羅漢家風 師曰 不向你道 曰 爲甚麽不道 師曰 是我家風 問 如何是法王身 師曰 汝今是甚麽身 曰 恁麽卽無身也 師曰 苦痛深
●下頭; 下面 下邊
●注脚; 同註脚 註釋(注釋) 註解(注解) ▲禪門拈頌集第一四一八則 拈頌說話曰 凡書註云 皆歧分而作脚書之 故云注脚 或云脚注 又云測注
●正命食; 比丘以乞食資養色身 淸淨延命 稱爲正命食 不以乞食如法自活 依四邪五邪之法而活命 稱爲邪命食 ▲三藏法數四 二食[出天台四敎儀集註] 一正命食 謂出家之人 常乞食自資色身 淸淨活命 是名正命食 二邪命食 謂出家之人 不依正命而食 則有五種 一爲利養故現奇特相 二爲利養故自說功德 三卜相吉凶爲人說法 四高聲現威令人畏敬 五所得供養以動人心 是名邪命食
승문(僧問) 무엇이 이 라한(羅漢)의 1구입니까. 사왈(師曰) 내가 만약 너를 향해 말하면 바로 양구(兩句)를 이룬다. 묻되 알지 못하는 사람(不會底人)이 오면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합니까. 사왈 누가 이 알지 못하는 자인가. 가로되 아까 말했습니다. 사왈 자굴(自屈)함이 아니냐. 보복(保福)의 중이 이르렀다. 스님이 묻되 그 가운데의 불법은 어떠한가. 가로되 어떤 때 시중(示衆)해 말하되 너희의 눈을 막아버려서(塞却) 너희로 하여금 엿보려 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너희의 귀를 막아버려서 너희로 하여금 들어려고 해도 듣지 못하게 하고 너희의 뜻을 앉혀버려서(坐却) 너희로 하여금 분별을 얻지 못하게 한다. 사왈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의 문을 막지 않나니 보는 것이 무엇이며 너의 귀를 막지 않나니 듣는 것이 무엇이며 너의 뜻을 앉히지 않나니 어떻게 분별하느냐〈東禪齊云 那僧이 듣고 나서 홀연히 省去했고 다시 다른 데로 遊方하지 않았다. 上座가 여금에 도리어 아느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매일 보는 것이 무엇이냐〉. 묻되 이자(以字)도 이루지 못하고 팔자(八字)도 이것이 아니라 하니 미심합니다, 이 무슨 글자입니까. 사왈 네가 실로 알지 못하느냐. 가로되 학인이 실로 알지 못합니다. 사왈 하두(下頭; 下面)의 주각(注脚)을 간취(看取)하라. 묻되 무엇이 이 사문의 정명식(正命食)입니까. 사왈 먹었느냐(喫得麽). 가로되 이 식(食)을 먹으려고 한다면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합니까. 사왈 너의 입을 막아버려라(塞却). 묻되 무엇이 이 라한의 가풍입니까. 사왈 너를 향해 말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왈 이것이 나의 가풍이다. 묻되 무엇이 이 법왕의 몸입니까. 사왈 너는 지금 이 무슨 몸이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몸이 없습니다. 사왈 고통이 깊겠구나.
●下頭; 하면(下面). 하변(下邊).
●注脚; 주각(註脚)과 같음. 주석(註釋; 注釋), 주해(註解; 注解)임. ▲선문염송집 제1418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무릇 서책(書冊)의 주(註)를 말함이다. 다 갈래로 나누어 다리(脚)를 지어 그것을 쓰는지라 고로 이르되 주각(注脚)이며 혹은 이르되 각주(脚注)며 또 이르되 측주(測注)다.
●正命食; 비구가 걸식으로써 색신을 자양(資養)하여 청정히 연명함을 일컬어 정명식이라 하고 걸식으로써 여법하게 자활하지 않고 4사5사(四邪五邪)의 법에 의해서 활명함을 일컬어 사명식(邪命食)이라 함. ▲삼장법수4. 2식(食) [출천태사교의집주] 1. 정명식(正命食) 이르자면 출가한 사람이 늘 걸식으로 색신을 스스로 도와 청정히 활명함이니 이 이름이 정명식임. 2. 사명식(邪命食) 이르자면 출가한 사람이 정명(正命)에 의해 먹지 않음이니 곧 5종이 있음. 1은 이양(利養)을 위한 고로 기특한 모양을 나타냄임. 2는 이양을 위한 고로 스스로 공덕을 설함임. 3은 길흉을 복상(卜相; 占卜으로 相을 봄)하고 사람을 위해 설법함임. 4는 고성으로 위엄을 나타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외경(畏敬)케 함임. 5는 얻은 바 공양으로 인심을 움직이게 함임. 이 이름이 사명식임.
上堂纔坐 有二僧一時禮拜 師曰 俱錯 問 如何是撲不破底句 師曰 撲 問 一佛出世普爲羣生 和尙今日爲箇甚麽 師曰 甚麽處遇一佛 曰 恁麽卽學人罪過 師曰 謹退 問 如何是諸聖玄旨 師曰 四楞塌地 問 大事未肯時如何 師曰 由汝 問 如何是十方眼 師曰 眨上眉毛著 請保福齋 令人傳語曰 請和尙慈悲降重 福曰 慈悲爲阿誰 師曰 和尙恁麽道 渾是不慈悲 翫月次 乃曰 雲動有 雨去有 僧曰 不是雲動是風動 師曰 我道雲亦不動 風亦不動 曰 和尙適來又道雲動 師曰 阿誰罪過
●四楞塌地; 又稱四稜著地 楞 同稜 塌 貼也 又作四稜榻地 四隅之脚著地也 喩安心處
●降重; 請尊宿降臨時的用語
상당하여 겨우 앉자 2승(僧)이 있어 일시에 예배했다. 사왈(師曰) 모두 틀렸다(俱錯). 묻되 무엇이 이 쳐서(撲) 깨뜨리지 못할 구(句)입니까. 사왈 쳐라(撲). 묻되 1불(佛)이 출세하면 널리 군생(羣生)을 위합니다. 화상은 금일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왈 어느 곳에서 1불을 만났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의 죄과(罪過)입니다. 사왈 삼가 물러가라(謹退). 묻되 무엇이 이 제성(諸聖)의 현지(玄旨)입니까. 사왈 사릉탑지(四楞塌地)다. 묻되 대사(大事)를 수긍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너를 말미암는다. 묻되 무엇이 시방안(十方眼)입니까. 사왈 눈썹을 깜작거려라(眨上; 上은 조사). 보복(保福)을 재(齋)에 청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전어(傳語)하게 해 가로되 청컨대 화상은 자비로 강중(降重)하십시오. 보복이 가로되 자비는 누구(阿誰)를 위함이냐. 사왈 화상의 이러한 말은 온통(渾) 이 자비가 아닙니다. 완월(翫月; 달구경)하던 차에 이에 가로되 구름이 움직이니 비가 있으리라. 승왈(僧曰) 이 구름이 움직임이 아니라 이 바람이 움직임입니다. 사왈 내가 말하나니 구름도 또한 움직이지 않고 바람도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가로되 화상이 아까 또 말하되 구름이 움직인다 했습니다. 사왈 누구(阿誰)의 죄과(罪過)냐.
●四楞塌地; 또 사릉착지(四稜著地)로 일컬음. 릉(楞)은 릉(稜)과 같음. 탑(塌)은 첩(貼; 붙다)임. 또 사릉탑지(四稜榻地)로 지음. 네 모퉁이의 발이 착지함이니 안심처에 비유함.
●降重; 존숙의 강림을 청할 때의 용어.
師見僧 擧拂子曰 還會麽 曰 謝和尙慈悲示學人 師曰 見我竪拂子 便道示學人 汝每日見山見水 可不示汝 又見僧來 擧拂子 其僧讚歎禮拜 師曰 見我竪拂子 便禮拜讚歎 那裏掃地竪起掃帚 爲甚麽不讚歎 問 承敎有言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如何是非相 師曰 燈籠子 問 如何是出家 師曰 喚甚麽作家 問僧 甚處來 曰 秦州 師曰 將得甚麽物來 曰 不將得物來 師曰 汝爲甚麽對衆謾語 其僧無對 師却問 秦州豈不是出鸎鵡 曰 鸎鵡出在隴西 師曰 也不較多 問僧 甚處來 曰 報恩 師曰 何不且在彼中 曰 僧家不定 師曰 旣是僧家 爲甚麽不定 僧無對〈玄覺代云 謝和尙顧問〉
●顧問; 詢問對方之意見
스님이 중이 옴을 보자 불자를 들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화상이 자비로 학인에게 보이심에 감사합니다. 사왈 내가 불자를 세움을 보고 바로 말하되 학인에게 보인다 했는데 네가 매일 산을 보고 물을 봄이 가히 너에게 보임이 아니겠는가. 또 중이 옴을 보자 불자를 들었다. 그 중이 찬탄하며 예배했다. 사왈 내가 불자를 세움을 보고 바로 예배하고 찬탄했거니와 저 속(那裏)에서 땅을 쓸거나 소추(掃帚; 쓰는 비)를 세워 일으키매 무엇 때문에 찬탄하지 않느냐. 묻되 듣건대(承) 교(敎)에 말씀이 있어 만약 제상(諸相)이 비상(非相; 상이 아님)임을 보면 곧 여래를 본 것이라 하니 무엇이 이 비상(非相)입니까. 사왈 등롱자(燈籠子; 子는 조사)다. 묻되 무엇이 이 출가입니까. 사왈 무엇을 일러 작가(作家)라 하느냐.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진주(秦州)입니다. 사왈 무슨 물건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가로되 물건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사왈 너는 무엇 때문에 대중(對衆)하여 거짓말(謾語)하느냐. 그 중이 대답이 없없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진주(秦州)에 어찌 이, 앵무(鸚鵡)가 나지(出) 않겠는가. 승왈 앵무는 농서(隴西)에서 납니다(出在). 사왈 또한 많이 어긋나지(較) 않는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보은(報恩)입니다. 사왈 왜 다만(且) 그 가운데 있지 않았느냐. 가로되 승가(僧家)는 부정(不定; 정함이 없음)입니다. 사왈 이미 이 승가이거늘 무엇 때문에 부정(不定)이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玄覺이 代云 화상의 顧問에 감사합니다〉.
●顧問; 상대방의 의견을 물음.
王太傅上雪峰施衆僧衣時 從弇上座不在 師弟代上名受衣 弇歸 弟曰 某甲爲師兄上名了 弇曰 汝道我名甚麽 弟無對 師代云 師兄得恁麽貪 又曰 甚麽處是貪處 又代云 兩度上名〈雲居錫云 甚麽處是弇上座兩度上名處〉 師與長慶保福入州 見牡丹障子 保福曰 好一朵牡丹花 長慶曰 莫眼花 師曰 可惜許一朵花〈玄覺云 三尊宿語還有親疎也無 祇如羅漢恁麽道 落在甚麽處〉 問僧 汝在招慶有甚麽異聞底事 試擧看 曰 不敢錯擧 師曰 眞實底事作麽生擧 曰 和尙因甚麽如此 師曰 汝話墮也 衆僧晩參聞角聲 師曰 羅漢三日一度上堂 王太傅二時相助
●障子; 屛障
●角聲; 畫角之聲 古代軍中吹角以爲昏明之節
왕태부(王太傅)가 설봉에 올라 중승(衆僧)의 옷을 보시할 때 종엄(從弇) 상좌가 부재(不在)했고 사제(師弟)가 대신(代身) 이름을 올리고(上名) 옷을 받았다. 종엄이 돌아오자 사제가 가로되 모갑이 사형을 위해 이름을 올렸습니다. 엄왈(弇曰) 네가 말하라, 나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제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운(代云) 사형은 이렇게 탐(貪)함을 얻었습니까. 우왈(又曰) 어느 곳이 이 탐한 곳인가. 또 대운(代云) 두 차례(兩度) 이름을 올렸다〈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弇上坐가 두 차례 이름을 올린 곳인가〉. 스님이 장경(長慶), 보복(保福)과 더불어 입주(入州)했다가 모란장자(牡丹障子)를 보았다. 보복이 가로되 아름다운 한 떨기의 모란화(牡丹花)다. 장경이 가로되 안화(眼花)하지 말아라. 사왈 가석하다(可惜許), 한 떨기의 꽃이여〈玄覺이 이르되 三尊宿의 말에 도리어 親疎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祇如 羅漢의 이러한 말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중에게 묻되 네가 초경(招慶)에 있으면서 무슨 이문(異聞)의 일이 있었는지 시험 삼아 들어보아라(擧看). 가로되 감히 착거(錯擧)하지 못합니다. 사왈 진실한 일을 어떻게 들겠는가. 가로되 화상이 무엇 때문에(因甚麽) 이와 같습니까. 사왈 너는 화타(話墮)했다. 중승(衆僧)이 만참(晩參)에 각성(角聲)을 들었다. 사왈 라한(羅漢)은 3일에 한 차례 상당하고 왕태부(王太傅)는 이시(二時)에 상조(相助)한다.
●障子; 병장(屛障; 안팎을 가려 막는 물건. 담이나 障지, 병풍 따위).
●角聲; 화각(畫角)의 소리니 고대 군중(軍中)에서 취각(吹角)하여 혼명(昏明)의 시절로 삼았음.
問 如何是學人本來心 師曰 是你本來心 問 師居寶座 說法度人 未審度甚麽人 師曰 汝也居寶座 度甚麽人 問 鏡裏看形見不難 如何是鏡 師曰 還見形麽 問 但得本莫愁末 如何是末 師曰 總有也 師因疾 僧問 和尙尊候較否 師以杖拄地曰 汝道這箇還痛否 曰 和尙問阿誰 師曰 問汝 曰 還痛否 師曰 元來共我作道理 天成三年秋 復屆閩城舊址 遍遊近城梵宇已 乃示寂 茶毗收舍利 建塔於院之西隅 諡眞應禪師
●舊止; 舊時居止處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본래심(本來心)입니까. 사왈 이것이 너의 본래심이다. 묻되 스님이 보좌(寶座)에 거처하며 설법해 사람을 제도하거니와 미심하오니 어떤 사람을 제도합니까. 사왈(師曰) 너도 또한 보좌에 거처하며 어떤 사람을 제도하느냐. 묻되 거울 속에서 형상(形相)을 보면 보기가 어렵지 않다(증도가의 1구) 하니 무엇이 이 거울입니까. 사왈 도리어 형상을 보느냐. 묻되 단지 본(本)을 얻고 말(末)을 수심하지 말라(증도가의 1구) 하니 무엇이 이 말(末)입니까. 사왈 모두 있다(總有也). 스님이 질병으로 인해 승문(僧問) 화상의 존후(尊候)가 어긋났습니까(較否). 스님이 주장자로써 땅을 버티며 가로되 네가 말하라 이것은 도리어 아픈가. 가로되 화상은 누구에게 묻습니까. 사왈 너에게 묻는다. 가로되 도리어 아픕니까. 사왈 원래 나와 함께 도리를 지었구나. 스님이 후당 천성(天成) 3년(928) 가을 다시 민성(閩城)의 구지(舊止)에 이르렀고(屆) 근성(近城)의 범우(梵宇; 佛寺)를 편유(遍遊)했다. 이에 시적(示寂)했다. 다비(茶毗)하여 사리를 거두어 사원의 서쪽 모퉁이에 건탑(建塔)했다. 시호가 진응선사(眞應禪師)다.
●舊止; 구시의 거지처(居止處).
杭州天龍寺重機明眞禪師
台州人也 得法玄沙 復回浙中 錢武肅王請出世開法 上堂 若直擧宗風 獨唱本分事 便同於頑石 若言絕凡聖消息 無大地山河 盡十方世界 都是一隻眼 此乃事不獲已 恁麽道還會麽 若更不會 聽取一頌 盲聾瘖瘂是仙陀 滿眼時人不奈何 祇向目前須體妙 身心萬象與森羅 僧問 如何是璇璣不動 師曰 靑山數重 曰 如何是寂爾無垠 師曰 白雲一帶 問 如何是歸根得旨 師曰 兔角生也 曰 如何是隨照失宗 師曰 龜毛落也 問 蓮花未出水時如何 師曰 誰人不知 曰 出水後如何 師曰 馨香目擊 問 朗月輝空時如何 師曰 正是分光景 何消指玉樓
●錢武肅王; 錢鏐(852-932) 五代吳越王公 字具美 錢塘(浙江杭州)人 梁太祖封吳越王 在位二十四年 少時無賴 每乞於僧 僧輒予之 僧勸學 乃立志 後爲王 禮敬三寶 衛護法門 子孫繼之 五代間 浙地佛法因而獨盛 [佛祖統紀十 佛法金湯編十 宋史四八〇]
●頑石; 堅硬之石 頑 堅强 堅硬
●仙陀; 仙陀婆之略 機靈 機靈者 亦作先陀
●璇璣; 一指玉質天文儀器 二指北斗前四星 [百度百科] 此指一
항주(杭州) 천룡사(天龍寺) 중기(重機) 명진대사(明眞大師)
태주(台州) 사람이다. 현사에게서 득법하고 다시 절중(浙中)으로 돌아가자 전무숙왕(錢武肅王)의 청으로 출세하고 개법했다. 상당(上堂) 만약 종풍을 직거(直擧)하고 본분사를 독창(獨唱)한다면 바로 완석(頑石)과 같을 것이며 만약 범성(凡聖)이 끊어진 소식을 말한다면 대지산하가 없어져 온 시방세계가 모두(都) 이 일척안(一隻眼)이리라. 이것은 이에 사불획이(事不獲已)하여 이렇게 말함이니 도리어 아느냐. 만약 다시 알지 못한다면 1송을 청취(聽取)하라. 맹롱음아(盲聾瘖瘂;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가 이 선타(仙陀)니/ 눈에 가득하지만 시인(時人)이 어찌하지 못한다/ 다만 목전을 향해 꼭 체묘(體妙; 묘함을 체득)할지니/ 신심(身心)이 만상(萬象)과 삼라(森羅)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선기(璇璣)가 동(動)하지 않음입니까. 사왈(師曰) 청산이 몇 겹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적이(寂爾; 寂然)하여 무근(無垠; 경계가 없음)입니까. 사왈 백운이 일대(一帶)다. 묻되 무엇이 이 귀근(歸根)하여 득지(得旨)함입니까. 사왈 토각(兔角)이 생겨났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비춤을 따라 종(宗)을 잃음입니까. 사왈 귀모(龜毛)가 떨어졌다. 묻되 연화(蓮華)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떤 사람(誰人)이 알지 못하느냐.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형향(馨香)을 목격(目擊)한다. 묻되 낭월(朗月)이 허공에 빛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바로 이 광경(光景)을 나누거늘 어찌 옥루(玉樓)를 가리킴을 소비하겠는가.
●錢武肅王; 전류(錢鏐; 852-932)니 오대 오월(吳越)의 왕공(王公). 자는 구미며 전당(절강 항주) 사람. 양태조(梁太祖)가 오월왕(吳越王)으로 봉했고 재위는 24년. 소시(少時)에 무뢰(無賴)였고 매번 승인에게 구걸했는데 승인이 번번이 그에게 주었고 승인이 권학(勸學)하자 이에 입지(立志)하여 후에 왕이 되었음. 3보(寶)를 예경했고 법문을 위호(衛護)했으며 자손도 이를 승계했음. 오대 간 절지(浙地)의 불법이 이로 인해 유독 성했음 [불조통기10. 불법금탕편10. 송사480].
●頑石; 견경(堅硬)한 돌. 완(頑)은 견강(堅强), 견경(堅硬).
●仙陀; 선타바(仙陀婆)의 약칭이니 기령(機靈)ㆍ기령자. 또한 선타(先陀)로 지음.
●璇璣; 1. 옥질(玉質)의 천문의기(天文儀器)를 가리킴. 2. 북두 앞의 4성(星)을 가리킴 [백도백과].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福州僊宗院契符淸法禪師
開堂日 僧問 師登寶座 合談何事 師曰 剔開耳孔著 曰 古人爲甚麽却道非耳目之所到 師曰 金櫻樹上不生梨 曰 古今不到處 請師道 師曰 汝作麽生問 問 衆手淘金 誰是得者 師曰 擧手隔千里 休功任意看 問 飛岫巖邊華子秀 仙境臺前事若何 師曰 無價大寶光中現 暗客惛惛爭奈何 曰 優曇華拆人皆覩 向上宗乘意若何 師曰 闍黎若問宗乘意 不如靜處薩婆訶 問 如何是閩中諸佛境界 師曰 造化終難測 春風徒自輕 問 如何是道中寶 師曰 雲孫淚亦垂 問 諸聖收光歸源後如何 師曰 三聲猿屢斷 萬里客愁聽 曰 未審今時人 如何湊得古人機 師曰 好心向子道 切忌未生時
●華子; 同花子 卽花 子 後綴
●靜處薩婆訶; 謂淸靜參究可獲悟道之效果 薩婆訶 梵語音譯 譯爲吉祥 成就 ◆薩婆訶; <梵> svāhā 或云僧莎訶 娑婆訶 蘇婆訶 娑縛賀 僧婆訶 此翻云究竟 圓滿 成就 吉祥 息災 憶念 爲眞言密咒中最後所附之語句 亦是古來印度在供神時 祈求幸福吉祥所唱念之讚歎語 ▲心經略疏 薩婆訶者 此云速疾 令前所作速疾成就故也
●雲孫; 世代很遠的子孫 言去已遠如浮雲也
복주(福州) 선종원(僊宗院) 계부(契符) 청법선사(淸法禪師)
개당일에 승문(僧問) 스님이 보좌(寶座)에 올라 합당히 무슨 일을 얘기합니까. 사왈(師曰) 귓구멍을 후벼 열어라(剔開). 가로되 고인(古人; 夾山善會)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되 이목(耳目)의 이를(到) 바가 아니라 했습니까. 사왈 금 앵두 나무 위에 배(梨)가 나지 않는다. 가로되 고금(古今)이 이르지 않는 곳을,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 물었는가. 묻되 뭇 손이 금을 일면(淘)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거수(擧手)하면 천 리(里)에 막히나니 공(功)을 쉬고 뜻에 맡겨 보아라. 묻되 비수암(飛岫巖) 가에 화자(華子)가 빼어나거니와 선경대(仙境臺) 앞의 일이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무가대보(無價大寶)가 광중(光中)에 나타났거늘 암객(暗客)이 혼혼(惛惛; 매우 흐릿함)하니 어찌하겠는가. 가로되 우담화(優曇華)가 터져 사람이 모두 보거니와 향상종승(向上宗乘)의 뜻이 어떠합니까(若何). 사왈 사리(闍黎)가 만약 종승의 뜻을 묻는다면 정처의 살바하(靜處薩婆訶)만 같지 못하다. 묻되 무엇이 이 민중(閩中)의 제불경계입니까. 사왈 조화(造化)는 마침내 헤아리기 어렵거늘 춘풍이 도연히 스스로 가볍다. 묻되 무엇이 이 도중보(道中寶)입니까. 사왈 운손(雲孫)이 눈물을 또한 쏟는다(垂). 묻되 제성(諸聖)이 수광(收光)하여 귀원(歸源)한 후에 어떻습니까. 사왈 삼성(三聲)의 원숭이는 자주 끊어지는데 만 리에 객이 수심하며 듣는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금시의 사람이 어찌해야 고인의 기(機)에 다가섬(湊)을 얻습니까. 사왈 호심(好心)으로 자네를 향해 말하나니 나지 않은 때를 절기(切忌)하라.
●華子; 화자(花子)와 같음. 곧 화(花)니 자(子)는 후철(後綴).
●靜處薩婆訶; 이르자면 청정(淸靜)하게 참구해야 가히 오도의 효과를 획득함. 살바하(薩婆訶; 梵 svāhā)는 범어의 음역이니 번역하면 길상ㆍ성취. ◆薩婆訶; <범> svāhā. 혹 이르되 승사하(僧莎訶)ㆍ사바하(娑婆訶)ㆍ소바하(蘇婆訶)ㆍ사바하(娑縛賀)ㆍ승바하(僧婆訶)며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구경ㆍ원만ㆍ성취ㆍ길상ㆍ식재(息災)ㆍ억념이니 진언의 밀주(密咒) 중 최후에 붙이는 어구가 됨. 또한 이는 고래로 인도에서 신에게 공양할 때 행복과 길상을 기구(祈求)하면서 부르고 외우는(念) 바의 찬탄어임. ▲심경약소. 살바하(薩婆訶)란 것은 여기에선 이르되 속질(速疾)이다. 앞의 소작(所作; 지은 것)으로 하여금 속질로 성취하게 함인 연고다.
●雲孫; 세대가 매우 먼 자손. 말하자면 떨어짐이 이미 멀어 부운과 같음임.
婺州國泰院瑫禪師
上堂 不離當處 咸是妙明眞心 所以玄沙和尙道 會我最後句 出世少人知 爭似國泰有末頭一句 僧問 如何是國泰末頭一句 師曰 闍黎問太遲生 便歸方丈 問 如何是毗盧 師曰 某甲與老兄是弟子 問 達磨來時卽不問 如何是未來時事 師曰 親遇梁王 問 古鏡未磨時如何 師曰 古鏡 曰 磨後如何 師曰 古鏡
●末頭; 同末上 最初
무주(婺州) 국태원(國泰院) 도선사(瑫禪師; 저본에 瑫를 𤦆로 지었음)
상당(上堂) 당처(當處)를 여의지 않고 모두(咸) 이 묘명진심(妙明眞心)이다. 소이로 현사화상이 말하되 나의 최후구(最後句)를 알아야 출세(出世; 출세간)라 아는 사람이 적다 했거니와 국태(國泰)에게 말두(末頭)의 1구가 있음과 어찌 같겠는가. 승문(僧問) 무엇이 이 국태의 말두의 1구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黎)의 물음(問)이 너무 더디다(太遲生).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묻되 무엇이 이 비로(毗盧)입니까. 사왈 모갑과 노형(老兄)은 이 제자다. 묻되 달마가 온 때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오지 않은 때의 일입니까. 사왈 친히 양왕(梁王)을 만났다.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경이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고경이다.
●末頭; 말상(末上)과 같음. 최초임.
福州升山白龍院道希禪師
本郡人也 上堂 不要擧足 是誰威光 還會麽 若道自家去處 本自如是 且喜沒交涉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汝從甚處來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汝早禮三拜 問 不責上來 請師直道 師曰 得 問 如何是正眞道 師曰 騎驢覓驢 問 請師答無賓主話 師曰 昔年曾記得 曰 卽今如何 師曰 非但耳聾 亦兼眼暗 問 情忘體合時如何 師曰 別更夢見箇甚麽 問 學人擬伸一問 請師裁 師曰 不裁 曰 爲甚麽不裁 師曰 須知好手 問 大衆雲集 請師擧揚宗敎 師曰 少遇聽者 問 不涉唇鋒 乞師指示 師曰 不涉唇鋒問將來 曰 恁麽卽羣生有賴 師曰 莫閑言語 問 請和尙生機答話 師曰 把紙筆來錄將去 問 如何是思大口 師曰 出來向你道 曰 學人卽今見出 師曰 曾賺幾人來
●生機; 生存的契機 生存的希望 指有生命力
●思大口; 南岳尊者慧思 從陳帝受大禪師之號 因云思大 更尊而云思大禪師 或云思大和尙 [佛祖統紀六]. 聯燈會要二十九南岳慧思 因誌公令人傳語云 何不下山敎化衆生 目視雲漢 作甚麽 師云 三世諸佛被我一口呑盡 何處更有衆生可化
복주(福州) 승산(升山) 백룡원(白龍院) 도희선사(道希禪師)
본군(本郡) 사람이다. 상당(上堂) 거족(擧足)을 요하지 않나니 이 누구의 위광(威光)인가, 도리어 아느냐. 만약 말하되 자가(自家)의 거처(去處)가 본디 스스로 이와 같다 하면 다만(且)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너는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네가 일찍(早) 3배(拜) 예배하라. 묻되 올라옴(上來)을 책망하지 말고 스님의 곧장(直) 말씀하심을 청합니다. 사왈 얻었다. 묻되 무엇이 이 정진도(正眞道)입니까. 사왈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구나. 묻되 스님에게 청하오니 무빈주화(無賓主話)에 답하십시오. 사왈 석년(昔年)에 일찍이 기득(記得)했다. 가로되 즉금은 어떻습니까. 사왈 단지 귀만 먹은 게 아니라 또한 겸해 눈도 어둡다. 묻되 정(情)을 잊고 체(體)에 합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달리 다시 꿈에 저(箇) 무엇을 보느냐. 묻되 학인이 일문(一問)을 펴려고 하니 스님의 재단(裁斷; 裁)을 청합니다. 사왈 재단하지 않겠다. 승왈 무엇 때문에 재단하지 않습니까. 사왈 호수(好手)임을 수지(須知)하라. 묻되 대중이 운집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종교(宗敎; 宗門의 敎意)를 거양(擧揚)하십시오. 사왈 청자(聽者)를 만남이 적다(少). 묻되 순봉(唇鋒; 입술을 칼날에 비유했음)에 건너지 않고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순봉에 건너지 않고 물어 가져오너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군생(羣生)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쓸데없는 언어를 하지 말아라. 묻되 화상에게 청하오니 생기(生機)로 답화(答話)하십시오. 사왈 지필(紙筆)을 가지고(把) 와서 기록해 가져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사대의 입(思大口)입니까. 사왈 나와서 너를 향해 말한다. 가로되 학인이 즉금 나옴을 봅니다. 사왈 일찍이 몇 사람이나 속여(賺) 왔느냐.
●生機; 생존의 계기(契機). 생존의 희망. 생명력이 있음을 가리킴.
●思大口; 남악존자 혜사(慧思)가 진제(陳帝)로부터 대선사의 호를 받았으며 인하여 이르되 사대(思大)며 다시 존칭하여 이르되 사대선사 혹은 이르되 사대화상임 [불조통기6]. 연등회요29 남악혜사. 지공(誌公)이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해 이르되 왜 하산하여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눈으로 운한(雲漢)을 보아서 무엇하리오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삼세제불도 내가 한입에 삼켜 없앰을 입었거늘(被我一口呑盡) 어느 곳에 다시 중생이 있어 가히 교화하겠는가.
福州安國院慧球寂照禪師〈亦曰中塔〉
泉州莆田人也 玄沙室中 參訊居首 因問 如何是第一月 沙曰 用汝箇月作麽 師從此悟入 梁開平二年 玄沙將示滅 閩帥王氏遣子至問疾 仍請密示繼踵說法者誰 沙曰 球子得 王默記遺旨 乃問皷山 臥龍法席 孰當其任 皷山擧城下宿德具道眼者十有二人 皆堪出世 王亦默之 至開堂日 官僚與僧侶俱會法筵 王忽問衆曰 誰是球上座 於是衆人指出師 王氏便請陞座 師良久曰 莫嫌寂寞 莫道不堪 未詳涯際 作麽生論量 所以尋常用其音響 聊撥一兩下 助他發機 若論來十方世界 覓一人爲伴侶不可得 僧問 佛法大意 從何方便頓入 師曰 入是方便 問 雲自何山起 風從何㵎生 師曰 盡力施爲 不離中塔
●宿德; 老宿之有道德者
복주(福州) 안국원(安國院) 혜구(慧球) 적조선사(寂照禪師)〈亦曰中塔〉
천주(泉州) 보전(莆田) 사람이다. 현사의 실중(室中)에서 참신(參訊; 參問)하며 수위(首位)에 거처했다. 인하여 묻되 무엇이 이 제1월(第一月)입니까. 현사가 가로되 너의 저(箇) 달을 써서 무엇하겠느냐. 스님이 이로 좇아 오입(悟入)했다. 양(梁) 개평(開平) 2년(908) 현사가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자 민수(閩帥) 왕씨(王氏)가 아들을 보내 이르러 문질(問疾)하게 했는데 인하여(仍) 계종(繼踵)하여 설법할 자가 누구인지 밀시(密示)하기를 청했다. 현사가 가로되 구자(球子; 子는 남자의 通稱)가 얻습니다. 왕(王)이 유지(遺旨)를 묵기(默記)했다. 이에 고산(皷山)에게 묻되 와룡(臥龍)의 법석은 누가(孰) 그 직임(職任)에 적당합니까. 고산이 성하(城下)의 숙덕(宿德)을 열거(列擧)하며 도안(道眼)을 갖춘 자가 12인이며 모두 출세를 감당(堪當)한다 하였다. 왕이 또한 묵연했다. 개당일(開堂日)에 이르러 관료(官僚)와 승려가 모두 법연(法筵; 법회)에 모였다. 왕이 홀연히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이 구상좌(球上座)입니까. 이에 중인(衆人)이 스님을 가리켜 내었다. 왕씨가 승좌를 바로 청했다.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적막(寂寞)을 싫어하지(嫌) 말며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말라. 애제(涯際; 邊際)가 상세(詳細)하지 못하면 어떻게 논량(論量)하겠는가. 소이로 심상(尋常)에 그 음향을 써서 애오라지 한 두 번(一兩下) 다스리매(撥) 그의 발기(發機)를 도우거니와 만약 논하자면(論來) 시방세계에 1인을 찾아 반려(伴侶)로 삼으려고 해도 불가득이다. 승문(僧問) 불법의 대의(大意)는 어떤 방편을 좇아야 돈입(頓入)합니까. 사왈(師曰) 입(入)이 이 방편이다. 묻되 구름은 어떤 산으로부터 일어나며 바람은 어떤 개울(㵎)로 좇아 생겨납니까. 사왈 힘을 다해 시위(施爲)해도 중탑(中塔)을 여의지 못한다.
●宿德; 노숙(老宿)하면서 도덕이 있는 자.
上堂 我此間粥飯因緣 爲兄弟擧唱 終是不常 欲得省要 却是山河大地與汝發明 其道旣常 亦能究竟 若從文殊門入者 一切無 爲 土木瓦礫 助汝發機 若從觀音門入者 一切音響 蝦蟇蚯蚓 助汝發機 若從普賢門入者 不動步而到 以此三門方便示汝 如將一隻折箸攪大海水 令彼魚龍知水爲命 會麽 若無智眼而審諦之 任汝百般巧妙 不爲究竟 問 學人近入叢林 不明己事 乞師指示 師以杖指之曰 會麽 曰 不會 師曰 我恁麽爲汝 却成抑屈人 還知麽 若約當人分上 從來底事 不論初入叢林 及過去諸佛 不曾乏少 如大海水一切魚龍 初生及至老死 所受用水 悉皆平等 問 不謬正宗 請師眞實 師曰 汝替我道 曰 或有不辨者作麽生 師曰 待不辨者來 問 諸佛還有師否 師曰 有 曰 如何是諸佛師 師曰 一切人識不得
●省要; 省察要領
●審諦; 仔細考察或觀察
상당(上堂) 나의 차간(此間)의 죽반인연(粥飯因緣)은 형제를 위해 거창(擧唱)함이니 마침내 이 불상(不常; 尋常이 아님)이다. 성요(省要)를 얻고자 한다면 도리어 이 산하대지가 너희에게 발명(發明)하여 주나니 그 도가 이미 상(常; 恒常)인지라 또한 능히 구경(究竟)이다. 만약 문수문(文殊門)으로 좇아 드는 자면 일체가 무위(無爲)니 토목(土木)과 와력(瓦礫)이 너의 발기(發機)를 도우고 만약 관음문(觀音門)으로 좇아 드는 자면 일체의 음향이니 두꺼비(蝦蟇)와 지렁이(蚯蚓)가 너의 발기를 도우고 만약 보현문(普賢門)으로 좇아 드는 자면 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이른다(到). 이 3문(門)의 방편으로써 너희에게 보이나니 마치 1척(隻)의 부러진 젓가락을 가지고 대해수(大海水)를 휘저어(攪) 그 어룡(魚龍)으로 하여금 물이 목숨이 되는 줄 알게 함과 같다. 아느냐. 만약 지안(智眼)이 없거든 그것을 심체(審諦)할지니 너희의 백반(百般)의 교묘(巧妙)에 맡기더라도 구경(究竟)이 되지 않는다. 묻되 학인이 최근에 총림에 든지라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스님이 주장자로써 가리키며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함이 도리어 사람을 억굴(抑屈; 억압하여 屈從시킴)함을 이루나니 도리어 아느냐. 만약 당인(當人)의 분상(分上)을 대약(大約)하자면 종래(從來)의 일은 총림에 초입(初入)함을 논하지 않으며 및 과거 제불도 일찍이 핍소(乏少)하지 않았다. 마치 대해수의 일체 어룡(魚龍)이 초생(初生)했거나 및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수용(受用)하는 바의 물이 모두 다 평등함과 같다. 묻되 정종(正宗)을 그르치지(謬) 않고 스님의 진실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나를 대체(代替)하여 말하라. 가로되 혹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사왈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옴을 기다린다. 묻되 제불이 도리어 스승이 있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제불의 스승입니까. 사왈 일체인이 앎을 얻지 못한다.
●省要; 성찰하는 요령(要領).
●審諦; 자세히 고찰(考察)하거나 혹 관찰함.
上堂良久 有僧出禮拜 師曰 莫敎髑髏拶損 僧參問曰 去却僕從 便請相見 師曰 眨上眉毛看 曰 不與麽時如何 師曰 山北去也 問 從上宗乘事如何 師良久 僧再問 師便喝出 問 如何是大庾嶺頭事 師曰 料汝承當不得 曰 重多少 師曰 這般底論劫不奈何 師問了院主 祇如先師道 盡十方世界是眞實人體 你還見僧堂麽 了曰 和尙莫眼花 師曰 先師遷化 肉猶煖在
●大庾嶺頭事; 指參禪悟法之事
상당하여 양구(良久)했다.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했다. 사왈(師曰) 촉루(髑髏)로 하여금 찰손(拶損; 逼迫하여 損傷)하게 하지 말아라. 중이 참(參)하여 문왈(參問) 복종(僕從)을 제거해버리고 바로 상견을 청합니다. 사왈 눈썹을 깜작거려(眨上) 보아라. 가로되 이러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산북(山北)으로 간다.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사(宗乘事)가 어떻습니까. 스님이 양구했다. 중이 재문(再問)하자 스님이 바로 할(喝)하고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대유령두사(大庾嶺頭事)입니까. 사왈 사료(思料)컨대 너는 승당(承當)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게가 얼마입니까. 사왈 이러한 것들(這般底)은 논겁(論劫)에도 어찌하지 못한다. 스님이 요원주(了院主)에게 묻되 지여(祇如) 선사(先師)가 말씀하되 온 시방세계가 이 진실한 사람의 체(體)다. 네가 도리어 승당(僧堂)을 보느냐. 요왈(了曰) 화상은 안화(眼花)하지 마십시오. 사왈 선사가 천화(遷化)했지만 육신(肉身)은 오히려 따뜻하다.
●大庾嶺頭事; 참선하여 오법(悟法)하는 일을 가리킴.
衡嶽南臺誠禪師
僧問 玄沙宗旨 請師擧揚 師曰 甚麽處得此消息 曰 垂接者何 師曰 得人不迷己 問 潭淸月現 是何境界 師曰 不干你事 曰 借問又何妨 師曰 覓潭月不可得 問 離地四指 爲甚麽却有魚紋 師曰 有聖量在 曰 此量爲甚麽人施 師曰 不爲聖人
●垂接; 謂地位高的人接待地位低的人
●聖量; 聖賢的商量或度量
형악(衡嶽) 남대성(南臺誠) 선사
승문(僧問) 현사의 종지를, 스님의 거양(擧揚; 擧說. 闡揚)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었느냐. 가로되 수접(垂接)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을 얻으면 자기를 미(迷)하지 않는다. 묻되 청담(潭淸)에 달이 나타나면 이 어떤 경계입니까. 사왈 너(爾)의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가로되 차문(借問)한들 또 어찌 방애(妨礙)되겠습니까. 사왈 담월(潭月)을 찾으면 불가득이다. 묻되 땅을 4지(指) 여의고 무엇 때문에 도리어 어문(魚紋)이 있습니까. 사왈 성량(聖量)이 있어서이다. 가로되 차량(此量)은 어떤 사람을 위해 베풉니까. 사왈 성인(聖人)을 위함이 아니다.
●垂接; 이르자면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위가 낮은 사람을 접대(接待)함.
●聖量; 성현의 상량(商量) 혹 탁량(度量).
福州螺峰冲奧明法禪師
上堂 人人具足 人人成現 爭怪得山僧 珍重 僧問 諸法寂滅相 不可以言宣 如何是寂滅相 師曰 問答俱備 曰 恁麽則眞如法界 無自無他 師曰 特地令人愁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德重鬼神欽 曰 見後如何 師曰 通身聖莫測 問 如何是螺峰一句 師曰 苦 問 如何是本來人 師曰 惆悵松蘿境界危
●成現; 現成具備 含有本來存在 多指佛性 禪法
복주(福州) 나봉(螺峰) 충오(冲奧) 명법선사(明法禪師)
상당(上堂) 사람마다 구족했고 사람마다 성현(成現)했거늘 어찌 산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겠는가.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제법의 적멸상(寂滅相)은 가히 언어로써 선양(宣揚)하지 못한다(이상 2구는 법화경1에 나옴). 무엇이 이 적멸상입니까. 사왈(師曰) 문답에 구비(俱備)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진여의 법계에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습니다(無自無他). 사왈 특지(特地) 사람으로 하여금 수심케 하네.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덕이 중후(重厚; 重)하면 귀신도 흠복(欽服; 欽)한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온몸(通身)을 성인(聖人; 聖)도 헤아리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나봉(螺峰)의 1구입니까. 사왈 괴롭다(苦). 묻되 무엇이 이 본래인(本來人)입니까. 사왈 송라(松蘿)의 경계가 위태함을 추창(惆悵)한다
●成現; 현성(現成; 현재 이루어짐)하여 구비했음이니 본래 존재함을 함유함. 다분히 불성ㆍ선법을 가리킴.
泉州睡龍山和尙
僧問 如何是觸目菩提 師以杖趂之 僧乃走 師曰 住住 向後遇作家擧看 上堂 擧拄杖曰 三十年住山 得他氣力 時有僧問 和尙得他甚麽氣力 師曰 過谿過嶺 東拄西拄〈招慶云 我不恁麽道 僧問 和尙作麽生道 慶以杖下地拄行〉
천주(泉州) 수룡산(睡龍山)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촉목보리(觸目菩提)입니까. 스님이 주장자로써 쫓아내었다(趂之). 중이 이에 달아나자 사왈(師曰) 멈추어라(住), 멈추어라. 향후에 작가를 만나면 들어보아라(擧看). 상당(上堂)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30년 주산(住山)하면서 그(他; 주장자)의 기력(氣力)을 얻었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은 그의 어떤 기력을 얻었습니까. 사왈 시내를 지나고 고개를 지나면서(過谿過嶺) 동쪽으로 짚고(拄) 서쪽으로 짚었다〈招慶이 이르되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다. 僧問 화상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초경이 주장자를 써서 땅에 내려가 짚고 갔다〉.
天台山雲峰光緒至德禪師
上堂 但以衆生日用而不知 譬如三千大千世界 日月星辰 江河淮濟 一切含靈 從一毛孔入一毛孔 毛孔不小 世界不大 其中衆生 不覺不知 若要易會 上座日用亦復不知 時有僧問 日裏僧䭾像 夜裏像䭾僧 未審此意如何 師曰 闍黎豈不是從茶堂裏來
●淮濟; 淮河濟水的合稱 ▲爾雅釋水第十二 江 河 淮 濟爲四瀆 四瀆者 發源注海者也
천태산(天台山) 운봉(雲峰) 광서(光緒) 지덕선사(至德禪師)
상당(上堂) 단지 중생이 일용(日用)하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여(譬如) 삼천대천세계의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강하회제(江河淮濟)와 일체의 함령(含靈)이 1모공(毛孔)으로 좇아 1모공으로 들어가나니 모공이 작지 않고 세계가 크지 않으며 그 가운데의 중생이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만약 쉽게 알고자 한다면 상좌가 일용하면서 또한 다시 알지 못함이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일리(日裏)에 승(僧)이 상(像)을 타고(䭾) 야리(夜裏)에 상(像)이 승(僧)을 탄다. 미심하오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黎)는 어찌 이, 다당(茶堂) 속으로 좇아오지 않았겠느냐.
●淮濟; 회하(淮河)와 제수(濟水)의 합칭. ▲이아 석수(釋水) 제12. 강(江)ㆍ하(河)ㆍ회(淮)ㆍ제(濟)가 4독(瀆)이 된다. 4독이란 것은 발원하여 바다에 주입하는 것이다.
福州大章山契如庵主
本郡人也 素蘊孤操 志探祖道 預玄沙之室 頴悟幽旨 玄沙記曰 子禪已逸格 則他後要一人侍立也無 師自此不務聚徒 不畜童侍 隱於小界山 刳大朽杉若小庵 但容身而已 凡經游僧至 隨叩而應 無定開示 僧問 生死到來 如何回避 師曰 符到奉行 曰 恁麽則被生死拘將去也 師曰 阿㖿㖿 問 西天持錫意作麽生 師拈錫杖 卓地振之 僧曰 未審此是甚麽義 師曰 這箇是張家打 僧擬進語 師以錫攛之
●逸格; 超逸的格調
●阿㖿㖿; 嘆詞 表感嘆 疼痛等 祖庭事苑一 嗄 所嫁切 聲變也 今借爲夏音 詐疑之意 如㖿本音斜聲也 今借爲耶音
●錫杖; 略稱錫或杖 梵語隙棄羅 喫棄羅 又作聲杖 有聲杖 智杖 德杖 鳴杖 金錫 比丘十八物之一 ▲翻譯名義集七 隙棄羅 此云錫杖 由振時作錫錫聲故 十誦名聲杖 錫杖經又名智杖 亦名德杖 彰智行功德故 聖人之幖幟 賢士之明記道法之幢 根本雜事云 比丘乞食 深入長者之家 遂招譏謗 比丘白佛 佛云 可作聲警覺 彼卽呵呵作聲喧鬧 復招譏毁 佛制不聽 遂拳打門 家人怪問 何故打破我門 默爾無對 佛言 應作錫杖 苾芻不解 佛言 杖頭安鐶圓如醆口 安小鐶子 搖動作聲而爲警覺 動可一二 無人聞時 卽須行去 五百問論 持錫有多事 能警惡蟲毒獸等 義淨云 錫杖都有三分 上分是錫 中木 下或牙角也 若二股六鐶是迦葉佛製 若四股十二鐶是釋迦佛製
복주(福州) 대장산(大章山) 계여암주(契如庵主)
본군(本郡) 사람이다. 본디(素) 고조(孤操)를 간직했고(蘊) 의지(意志)가 조도(祖道)를 탐구(探究)했다. 현사의 실(室)에 참예(參預)하여 유지(幽旨)를 영오(穎悟)했다. 현사가 기(記; 예언)하여 가로되 자네는 선(禪)이 이미 일격(逸格)이나 곧 타후(他後)에 시립(侍立)할 한 사람을 요하더라도 또한 없으리라. 스님이 이로부터 취도(聚徒)에 힘쓰지 않고 동시(童侍)를 기르지(畜) 않았다. 소계산(小界山)에 은거하며 거대한 후삼(朽杉; 늙은 杉나무)을 파서(刳) 소암(小庵)과 같았고 단지 용신(容身)할 따름이었다. 무릇 경유(經游)하는 중이 이르면 물음 따라(隨叩) 응했고 일정(一定)한 개시(開示)가 없었다. 승문(僧問) 생사가 도래하면 어떻게 회피(回避)합니까. 사왈(師曰) 조짐(兆朕; 符)이 이르면 봉행하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생사가 구속해 가져감을 입을 것입니다. 사왈 아야야(阿㖿㖿). 묻되 서천(西天)에서 지석(持錫)한 뜻이 어떻습니까. 스님이 석장(錫杖)을 집어 땅에 세우고(卓) 떨쳤다. 승왈(僧曰) 미심하오니 이것은 이 무슨 뜻입니까. 사왈 이것(這箇)은 이 장가가 때림이다(張家打). 중이 말을 진행(進語)하려고 하자 스님이 석장을 던졌다(攛).
●逸格; 초일(超逸; 초월)의 격조(格調).
●阿㖿㖿; 탄사(嘆詞)니 감탄ㆍ동통(疼痛) 등을 표시함. 조정사원1 사(嗄) 소가절(所嫁切; 사)이니 성변(聲變)임. 지금 가차하여 하음(夏音)으로 삼음은 사의(詐疑)의 뜻이다. 마치 야(㖿)의 본음(本音)은 사성(斜聲)이나 요즈음 가차하여 야음(耶音)으로 지음과 같다.
●錫杖; 약칭이 석(錫) 혹은 장(杖)이니 범어로는 극기라(隙棄羅)ㆍ끽기라(喫棄羅)임. 또 성장(聲杖)ㆍ유성장(有聲杖)ㆍ지장(智杖)ㆍ덕장(德杖)ㆍ명장(鳴杖)ㆍ금석(金錫)으로 지으며 비구 18물(物)의 하나임. ▲번역명의집7. 극기라(隙棄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석장이다. 떨칠 때 석석성(錫錫聲)을 짓기 때문의 연고이다. 십송(十誦)엔 성장(聲杖)으로 이름했고 석장경(錫杖經)엔 또 지장(智杖)으로 이름했고 또 이름이 덕장(德杖)이니 지행(智行)의 공덕을 나타내는 연고이다. 성인의 표치(幖幟)며 현사(賢士)의, 도법을 명기(明記)하는 깃발이다. 근본잡사(根本雜事)에 이르되 비구(比丘)가 걸식(乞食)하면서 장자(長者)의 집에 깊이 들어가자 드디어 기방(譏謗; 譏는 나무랄 기)을 초래했다. 비구가 불타에게 사뢰자 불타가 이르시되 가히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하라. 그가 곧 하하(呵呵; 呵는 웃을 가. 원음이 하)하며 소리를 지어 훤뇨(喧鬧. 喧은 시끄러울 훤. 鬧는 시끄러울 뇨)해서 다시 기훼(譏毀)를 초래했다. 불타가 억제하여 청허(聽許; 聽은 허락할 청)하지 않자 드디어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가인(家人)이 괴이히 여겨 묻되 무엇 때문에 나의 문을 타파하느냐. 침묵하며 대답이 없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응당 석장(錫杖)을 만들어라. 필추(苾蒭)가 알지 못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장두(杖頭)에 고리(鐶)를 안치하되 둥글기는 잔구(醆口; 醆은 술잔 잔)와 같이 하고 작은 고리를 안치해 요동(搖動)하여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을 하라. 요동은 한 두 번이 옳나니 듣는 사람이 없을 때는 곧 떠나감을 써라. 오백문론(五百問論) 지석(持錫)함엔 여러 일이 있다. 능히 악충(惡蟲)과 독수(毒獸) 등을 경각한다. 의정(義淨)이 이르되 석장은 모두 3분(分)이 있다. 상분(上分)은 이 석(錫; 주석)이며 중(中)은 나무며 하(下)는 혹 아각(牙角)이다. 만약 2고6환(二股六鐶)이면 이는 가섭불의 법제(法製)며 만약 4고12환(四股十二鐶)이면 이 석가불의 법제다.
僧問雲臺欽和尙 如何是眞言 欽曰 南無佛陀耶 師別云 作麽作麽 淸豁冲煦二長老嚮師名 未甞會遇 一旦同訪之 値師採粟 豁問 道者 如庵主在何所 師曰 從甚麽處來 曰 山下來 師曰 因甚麽得到這裏 曰 這裏是甚麽處所 師揖曰 那下喫茶去 二公方省是師 遂詣庵所 頗味高論 晤坐於左右 不覺及夜 覩豺虎奔至庵前 自然馴遶 豁因有詩曰 行不等閑行 誰知去住情 一餐猶未飽 萬戶勿聊生 非道應難伏 空拳莫與爭 龍吟雲起處 閑嘯兩三聲 二公尋於大章山創庵 請師居之 兩處孤坐 垂五十二載而卒
●南無; <梵> namas <巴> namo 又作南牟 那謨 南謨 那摩 曩莫 納莫等 此云敬禮 歸敬 歸依 歸命 歸趣 信從 ▲玄應音義六 南無 或作南謨 或言那莫 皆以歸禮譯之 言和南者訛也 正言煩淡或言槃淡 此云禮也 或言歸命 譯人義安命字也
●佛陀耶; <梵> buddha 此云覺者
●馴擾; 順服 馴伏
●聊生; 指賴以維持生活
중이 운대흠(雲臺欽) 화상에게 묻되 무엇이 이 진언(眞言)입니까. 흠왈(欽曰) 나무불타야(南無佛陀耶). 스님이 별운(別云) 뭐라고(作麽), 뭐라고. 청활(淸豁)과 충후(冲煦) 두 장로가 스님의 명성을 향(嚮)했으나 일찍이 회우(會遇)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一旦) 함께 방문했는데 스님이 속(粟; 조)을 캠(採)을 만났다(値). 청활이 묻되 도자(道者)여, 여암주(如庵主)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어느 곳으로 좇아왔습니까. 가로되 산 아래에서 왔습니다. 사왈 무엇으로 인해 이 속에 이름을 얻었습니까. 가로되 이 속은 이 어떤 처소입니까. 스님이 읍(揖)하고 가로되 저 아래(那下)로 끽다(喫茶)하러 가십시오. 2공(公)이 비로소 이 스님임을 성찰했다. 드디어 암소(庵所)로 나아가 자못(頗) 고론(高論)을 음미(吟味)했고 좌우에서 마주앉아(晤坐) 불각에 밤에 이르렀다(及). 시호(豺虎; 승냥이와 범)가 암전(庵前)에 분지(奔至)함을 보았는데 자연히 순요(馴擾)했다. 청활이 인하여 시가 있어 가로되 행(行)은 등한(等閑)한 행이 아니니/ 거주(去住)하는 정(情)을 누가 아느냐/ 일찬(一餐; 한 번 먹다)에 오히려 배부르지 않나니/ 만호(萬戶)가 요생(聊生)이 아니다/ 도가 아니면 응당 굴복(屈伏)하기 어렵나니/ 공권(空拳)으로 더불어 다투지 못한다/ 용이 읊고 구름이 일어나는 곳에/ 한가한 휘파람(嘯)이 두세 소리다. 2공(公)이 이윽고 대장산(大章山)에 창암(創庵)하고 스님을 청해 거주하게 했다. 두 곳에서 고좌(孤坐)하며 거의(垂) 52재(載) 만에 졸(卒)했다.
●南無; <범> namas. <파> namo. 또 나모(南牟)ㆍ나모(那謨)ㆍ나모(南謨)ㆍ나마(那摩)ㆍ낭모(曩莫)ㆍ납모(納莫) 등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경례ㆍ귀경ㆍ귀의ㆍ귀명(歸命)ㆍ귀취(歸趣)ㆍ신종(信從)임. ▲현응음의6. 나무(南無) 혹은 나모(南謨)로 지으며 혹은 말하되 나모(那莫)니 모두 귀례(歸禮)로 이를 번역한다. 화남(和南)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르다. 바른 말로는 번담(煩淡) 혹은 말하되 반담(槃淡)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례(禮)다. 혹은 말하되 귀명(歸命)은 번역하는 사람이 뜻대로 명(命)자를 두었음이다.
●佛陀耶; <범> buddha. 여기에선 이르되 각자(覺者).
●馴擾; 순복(順服). 순복(馴伏).
●聊生; 의뢰하여 생활을 유지維持()함을 가리킴.
福州蓮華山永興神祿禪師
閩王請開堂日 未陞座 先於座前立曰 大王大衆聽 已有眞正擧揚也 此一會總是得聞 豈有不聞者 若有不聞 彼此相謾去也 方乃登座 僧問 大王請師出世 未委今日一會何似靈山 師曰 徹古傳今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毛頭顯沙界 日月現其中
복주(福州) 연화산(蓮華山) 영흥(永興) 신록선사(神祿禪師)
민왕(閩王)의 청으로 개당(開堂)하던 날 승좌(陞座)하지 않고 먼저 좌전(座前)에 서서 가로되 대왕과 대중은 들으십시오. 이미 진정(眞正)한 거양(擧揚)이 있었습니다. 이 일회(一會)가 모두(總) 이 득문(得聞)했거늘 어찌 듣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만약 듣지 않은 이가 있다면 피차(彼此) 상만(相謾)하여 갈 것입니다. 비로소 이에 등좌(登座)했다. 승문(僧問) 대왕이 스님의 출세를 청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나니(未委) 금일의 일회(一會)가 영산(靈山)과 어찌 같습니까(何似). 사왈(師曰) 옛에 통하고 지금에 전한다(徹古傳今).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모두(毛頭; 頭는 後綴)에 사계(沙界)가 나타나고(顯) 일월이 그 가운데 나타난다(現).
天台國淸寺師靜上座
始遇玄沙示衆曰 汝諸人但能一生如喪考妣 吾保汝究得徹去 師躡前語 問曰 祇如敎中道 不得以所知心測度如來無上知見 又作麽生 沙曰 汝道究得徹底所知心 還測度得及否 師從此信入 後居天台三十餘載不下山 博綜三學 操行孤立 禪寂之餘 常閱龍藏 遐邇欽重 時謂大靜上座 嘗有人問 弟子每當夜坐 心念紛飛 未明攝伏之方 願垂示誨 師曰 如或夜閑安坐 心念紛飛 却將紛飛之心 以究紛飛之處 究之無處 則紛飛之念何存 反究究心 則能究之心安在 又能照之智本空 所緣之境亦寂 寂而非寂者 葢無能寂之人也 照而非照者 葢無所照之境也 境智俱寂 心慮安然 外不尋枝 內不住定 二途俱泯 一性怡然 此乃還源之要道也 師因覩敎中幻義 乃述一偈 問諸學流曰 若道法皆如幻有 造諸過惡應無咎 云何所作業不忘 而藉佛慈興接誘 時有小靜上座答曰 幻人興幻幻輪圍 幻業能招幻所治 不了幻生諸幻苦 覺知如幻幻無爲 二靜上座竝終於本山
●龍藏; 龍宮之藏經 又指華嚴經 又指大乘經典
천태(天台) 국청사(國淸寺) 사정상좌(師靜上座)
처음(始) 현사의 시중(示衆)을 만났는데 가로되 너희 제인이 단지 능히 일생(一生)에 마치 고비(考妣; 부모)를 잃음과 같다면(如喪考妣) 내가 보증하건대 너희가 궁구하여 사무침을 얻을 것이다(究得徹去). 스님이 전어(前語)를 밟아 문왈(問曰) 지여(祇如) 교중(敎中)에 말하되 소지(所知)의 마음으로써 여래의 무상지견(無上知見)을 측탁(測度)함을 얻지 못한다 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현사가 가로되 네가 말하라, 궁구해 철저(徹底)를 얻은 소지(所知)의 마음으로 도리어 측탁(測度)해 미침을 얻겠는가. 스님이 이로 좇아 신입(信入)했다. 후에 천태에 거주하기 30여 재(載)에 하산하지 않았다. 삼학(三學)을 박종(博綜; 博通)하고 조행(操行)이 고립(孤立)했다. 선적(禪寂)의 여가(餘暇)에 늘 용장(龍藏)을 열람했고 하이(遐邇; 원근)가 흠중(欽重; 흠모하고 존중)했으며 당시에 이르기를 대정상좌(大靜上座)라 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문왈(問曰) 제자가 매번 야좌(夜坐)에 당하여 심념(心念)이 분비(紛飛)하지만 섭복(攝伏)할 방법을 밝히지 못했으니 시회(示誨)를 내리시길 원합니다. 사왈 혹 밤에 한가히 안좌(安坐)하여 심념이 분비(紛飛)할 것 같으면 도리어 분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분비하는 곳을 궁구하라. 그것을 궁구하매 처소가 없으리니 곧 분비하는 생각이 어찌 존재하겠는가. 궁구하는 마음을 도리어 궁구하매 곧 능구(能究)하는 마음이 어찌 있겠는가(安在). 또 능조지지(能照之智)가 본공(本空)이며 소연지경(所緣之境)도 또한 적(寂)이니 적(寂)이면서 적이 아닌 것은 대개 능적지인(能寂之人)이 없음이며 조(照)하면서 조가 아닌 것은 대개 소조지경(所照之境)이 없음이다. 경지(境智)가 모두 적(寂)하고 심려(心慮)가 안연(安然)하여 밖으론 가지(枝)를 찾지 않고 안으론 정(定)에 주(住)하지 않으면 이도(二途)가 모두 망해(俱泯) 일성(一性)만 이연(怡然)하리니 이것이 곧(乃) 환원(還源)의 요도(要道)이다. 스님이 교중(敎中)의 환의(幻義)를 봄으로 인해 이에 1게를 서술해 여러 학류(學流)에게 물었으니 가로되 만약 도법(道法)이 모두 환유(幻有)와 같다면/ 모든 과악(過惡)을 짓더라도 응당 허물(咎)이 없으리라/ 어찌하여(云何) 짓는 바 업을 잊지 않거늘/ 불자(佛慈)를 빌려(藉) 접유(接誘; 接引하여 誘導함)를 일으키는가(興). 때에 소정상좌(小靜上座)가 있어 답왈(答曰) 환인(幻人)이 환(幻)을 일으키매 환이 윤위(輪圍)하고/ 환업이 능히 환의 다스린 바를 초치(招致)한다/ 환생(幻生)을 요득(了得)치 못해 모든 환고(幻苦)며/ 여환(如幻)을 각지(覺知)하매 환이 무위(無爲)로다. 두 정상좌(靜上座)가 모두(竝) 본산에서 마쳤다.
●龍藏; 용궁의 장경. 또 화엄경을 가리킴. 또 대승경전을 가리킴.
長慶稜禪師法嗣
泉州招慶院道匡禪師
潮州人也 稜和尙始居招慶 師乃入室參侍 遂作桶頭 常與衆僧語話 一日慶見 乃曰 爾每日口嘮嘮底作麽 師曰 一日不作 一日不食 慶曰 與麽則磨弓錯箭去也 師曰 專待尉遲來 慶曰 尉遲來後如何 師曰 敎伊筋骨遍地 眼睛突出 慶便出去 洎慶被召 師繼踵住持 上堂 聲前薦得 孤負平生 句後投機 殊乖道體 爲甚麽如此 大衆且道從來合作麽生 又曰 招慶與諸人一時道却 還委落處麽 時有僧出曰 大衆一時散去 還稱師意也無 師曰 好與二十拄杖 僧禮拜 師曰 雖有盲龜之意 且無曉月之程 曰 如何是曉月之程 師曰 此是盲龜之意 問 如何是沙門行 師曰 非行不行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蚊子上鐵牛 問 如何是在匣劒 師良久 僧罔措 師曰 也須感荷招慶始得 問 如何是提宗一句 師曰 不得昧著招慶 其僧禮拜起 師又曰 不得昧著招慶 囑汝作麽生是提宗一句 僧無對 問 文殊劒下不承當時如何 師曰 未是好手人 曰 如何是好手人 師曰 是汝話墮也 問 如何是招慶家風 師曰 寧可淸貧自樂 不作濁富多憂 問 如何是南泉一線道 師曰 不辭向汝道 恐較中更較去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七顚八倒
●錯箭; 磨利箭頭
●感荷; 感激地承受 感謝
●七顚八倒; 逆順縱橫自由自在 通達無障礙之意 七或八表示多數 類似用語尙有七縱八橫 七通八達 七凹八凸等
천주(泉州) 초경원(招慶院) 도광선사(道匡禪師)
조주(潮州) 사람이다. 릉화상(稜和尙; 慧稜)이 처음 초경(招慶)에 거주하자 스님이 이에 입실하여 참시(參侍)했고 드디어 통두(桶頭)가 되었다. 늘 중승(衆僧)과 어화(語話)했는데 어느 날 초경(招慶; 慧稜)이 보고 이에 가로되 네가 매일 입으로 노로하는 것(嘮嘮底; 떠들썩한 것)이 무엇인가. 사왈 하루 짓지 않으면(一日不作) 하루 먹지 않습니다. 초경이 가로되 그러하다면(與麽) 곧 활을 갈고 화살을 갈아(磨弓錯箭) 감이다. 사왈 오로지(專) 울지(尉遲; 尉遲敬德)가 옴을 기다립니다. 초경이 가로되 울지가 온 후 어떠한가. 사왈 그로 하여금 근골(筋骨)이 땅에 두루하고 안정(眼睛)이 돌출(突出)하게 하겠습니다. 초경이 바로 나갔다. 초경이 피소(被召)함에 이르러 스님이 계종(繼踵)하여 주지(住持)했다. 상당(上堂) 성전(聲前)에 천득(薦得)하면 평생을 저버리고(孤負) 구후(句後)에 투기(投機)하면 도체(道體)에 특수히 어긋난다(殊乖).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대중이여 그래 말하라, 종래(從來)로 합당함이 어떠한가. 또 가로되 초경(招慶)이 제인에게 일시에 말해버려 주었다. 도리어 낙처(落處)를 아느냐(委).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대중이 일시에 흩어져 가면 도리어 스님의 뜻에 맞습니까(稱) 또는 아닙니까. 사왈(師曰) 좋이 20주장(拄杖)을 주어야 한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비록 맹귀(盲龜)의 뜻이 있지만 다만(且) 효월(曉月)의 길(程)이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효월의 길입니까. 사왈 이것은 이 맹귀의 뜻이다. 묻되 무엇이 이 사문행(沙門行)입니까. 사왈 비행(非行)을 행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모기가 철우에 올랐다(蚊子上鐵牛). 묻되 무엇이 이 갑(匣)에 있는 검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중이 망조(罔措)했다. 사왈 또한 모름지기 초경(招慶)을 감하(感荷)해야 비로소 옳다. 묻되 무엇이 이 제종(提宗; 宗旨를 提起함)의 1구입니까. 사왈 초경을 매착(昧著; 昧하다)함을 얻지 말아라. 그 중이 예배하고 일어나자 스님이 우왈(又曰) 초경을 매착함을 얻지 말아라. 너에게 부촉(付囑)하노니 무엇이 이 제종(提宗)의 1구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문수(文殊)의 검 아래 승당(承當)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호수(好手)의 사람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호수의 사람입니까. 사왈 이 네가 화타(話墮)했다. 묻되 무엇이 이 초경의 가풍입니까. 사왈 차라리(寧) 가히 청빈(淸貧)하며 자락(自樂)할지언정 탁부(濁富)의 다우(多憂)함을 짓지 않겠다. 묻되 무엇이 이 남천(南泉)의 일선도(一線道)입니까. 사왈 너를 향해 말함은 사양(辭讓)하지 않겠으나 교량(較量; 較)하는 중에 다시 교량하여 갈까 염려스럽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칠전팔도(七顚八倒)다.
●錯箭; 화살 끝을 갈아 날카롭게 함.
●感荷; 감격하면서 승수(承受)함. 감사(感謝)함.
●七顚八倒;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7 혹 8은 다수를 표시함. 유사용어에 오히려 칠종팔횡ㆍ칠통팔달ㆍ칠요팔철(七凹八凸) 등이 있음.
問 學人根思遲回 乞師曲運慈悲 開一線道 師曰 這箇是老婆心 曰 悲華剖坼以領尊慈 從上宗乘事如何 師曰 恁麽須得汝親問始得 問僧 甚處去來 曰 劈柴來 師曰 還有劈不破底也無 曰 有 師曰 作麽生是劈不破底 僧無語 師曰 汝若道不得 問我 我與汝道 曰 作麽生是劈不破底 師曰 賺殺人 師拈鉢囊問僧 你道直幾錢 僧無對〈歸宗柔代云 留與人增價〉 因地動 僧問 還有不動者也無 師曰 有 曰 如何是不動者 師曰 動從東來 却歸西去 問 法雨普霑 還有不潤處否 師曰 有 曰 如何是不潤處 師曰 水灑不著 問 如何是招慶深深處 師曰 和汝沒却 問 如何是九重城裏人 師曰 還共汝知聞麽
●根思; 根器 悟性
●遲會; 遲鈍 迂緩
●尊慈; 一對方的敬稱 二慈愛的父母
●鉢囊; 又作鉢袋 鉢絡 絡囊 盛裝鉢盂(應量器) 以便於攜行之囊袋 ▲四分律五十二 手捉鉢 難護持 佛言 聽作鉢囊盛 不繫囊口 鉢出 佛言 應繩繫 手捉鉢囊 難護持 佛言 應作帶絡肩
묻되 학인의 근사(根思)가 지회(遲回)하여 스님에게 구걸하오니 자비를 곡운(曲運)하여 일선도(一線道)를 여십시오. 사왈(師曰) 이것(這箇)이 이 노파심이다. 가로되 비화(悲華)가 부탁(剖坼; 갈라져 터짐)하여 존자(尊慈)를 영회(領會)합니다만 종상(從上)의 종승사(宗乘事)가 어떠합니까. 사왈 이러하다면 모름지기 네가 친문(親問)함을 얻어야 비로소 옳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가로되 섶을 쪼개고(劈) 왔습니다. 사왈 도리어 쪼개어도 갈라지지(破) 않는 것이 있더냐 또는 없더냐. 가로되 있었습니다. 사왈 무엇이 이 쪼개어도 갈라지지 않던 것이더냐. 중이 말이 없자 사왈 네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하거든 나에게 물어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가로되 무엇이 이 쪼개어도 갈라지지 않는 것입니까.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스님이 발낭(鉢囊)을 집어 중에게 묻되 네가 말하라 값(直)이 몇 전(錢)이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歸宗柔가 代云 사람에게 머물러 주어 값을 더하게 하십시오〉. 땅이 움직임으로 인해 승문(僧問) 도리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까. 사왈 움직임이 동(東)으로 좇아왔다가 도리어 서(西)로 돌아간다. 묻되 법우(法雨)가 널리 적시매 도리어 윤택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윤택하지 않는 곳입니까. 사왈 물을 뿌려도 붙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초경(招慶)의 심심처(深深處)입니까. 사왈 너까지 잠기게 해버린다. 묻되 무엇이 이 구중성(九重城) 속의 사람입니까. 사왈 도리어 너와 함께 지문(知聞)하겠는가.
●根思; 근기(根器). 오성(悟性).
●遲回; 느리고 둔함. 우완(迂緩; 느리고 더딤).
●尊慈; 1. 상대방에 대한 경칭. 2. 자애로운 부모.
●鉢囊; 또 발대(鉢袋)ㆍ발락(鉢絡)ㆍ낙낭(絡囊)으로 지음. 발우(응량기)를 성장(盛裝; 담다)하여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한 낭대(囊袋; 주머니). ▲사분율52. 손으로 발우를 가지매 호지(護持)하기 어려웠다. 붙타가 말씀했다. 발낭(鉢囊)을 만들어 담는 것을 청허한다. 발낭의 입구를 묶지 않자 발우가 튀어나왔다. 불타가 말씀했다. 응당 끈으로 묶고 손으로 발낭을 잡아라. 호지하기 어려웠다. 불타가 말씀하셨다. 응당 대(帶)를 만들어 어깨에 두르라.
上堂次 大衆擁法座而立 師曰 這裏無物 諸人苦恁麽相促相拶作麽 擬心早沒交涉 更上門上戶 千里萬里 今旣上來 各著精彩 招慶一時拋與諸人 好麽 乃曰 還接得也無 衆無對 師曰 勞而無功 便陞座 復曰 汝諸人得恁麽鈍 看他古人一兩箇得恁麽快 纔見便負將去 也較些子 若有此箇人 非但四事供養 便以琉璃爲地 白銀爲壁 亦未爲貴 帝釋引前 梵王隨後 攪長河爲酥酪 變大地作黃金 亦未爲足 直得如是 猶更有一級在 還委得麽 珍重
●四事供養; 謂施主爲佛僧提供多方面的物質生活傍助 四事 衣服 飮食 臥具 湯藥也 或房舍 衣服 飮食 湯藥也
상당(上堂) 차에 대중이 법좌를 옹위(擁衛)하고 섰다. 사왈(師曰) 이 속엔 일물(一物; 物)도 없거늘 제인이 괴롭게 이러히 상촉(相促)하고 상찰(相拶)하여 무엇하겠는가. 의심(擬心)하면 벌써 교섭이 없거늘 다시 상문상호(上門上戶; 門戶에 오르다)하니 천리만리(千里萬里)다. 이제 이미 올라왔으니 각자 정채(精彩)를 붙여라. 초경(招慶)이 일시에 제인에게 던져 주었으니 훌륭한가(好麽). 이에 가로되 도리어 접득(接得)했는가 또는 아닌가.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노력만 하고 공이 없구나(勞而無功). 바로 승좌(陞座)했다. 다시 가로되 너희 제인이 이렇게 둔(鈍)함을 얻는가. 저 고인을 한두 개 보건대 이렇게 쾌(快)함을 얻어 겨우 보면 바로 지고서(負) 가져갔으니 또한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만약 차개(此箇)의 사람이 있다면 단지 사사공양(四事供養)만이 아니라 바로 유리(琉璃)로써 땅을 삼고 백은(白銀)으로 벽(壁)을 삼더라도 또한 귀(貴)하지 않으며 제석(帝釋)이 앞을 인도(引導)하고 범왕(梵王)이 뒤를 좇고 장하(長河)를 저어(攬) 소락(酥酪)으로 삼고 대지를 변화시켜 황금으로 삼더라도 또한 족(足)함이 되지 않는다. 바로(直) 이와 같음을 얻더라도 오히려 다시 일급(一級)이 있나니 도리어 위득(委得; 알다)하느냐. 진중(珍重)하라.
●四事供養; 이르자면 시주가 불승(佛僧)을 위해 제공하는 다방면의 물질생활의 방조(傍助; 곁에서 도와 줌). 4사는 의복ㆍ음식ㆍ와구ㆍ탕약. 혹은 방사(房舍)ㆍ의복ㆍ음식ㆍ탕약.
婺州報恩院寶資曉悟禪師
僧問 學人初心 請師示箇入路 師遂側掌示之曰 還會麽 曰 不會 師曰 獨掌不浪鳴 問 如何是報恩家風 師曰 也知闍黎入衆日淺 問 古人拈槌竪拂 意旨如何 師曰 報恩截舌有分 僧曰 爲甚麽如此 師曰 屈著作麽 問 如何是文殊劒 師曰 不知 曰 秖如一劒下活得底人作麽生 師曰 山僧祇管二時齋粥 問 如何是觸目菩提 師曰 背後是甚麽立地 曰 學人不會 乞師再示 師提拄杖曰 汝不會 合喫多少拄杖 問 如何是具大慙愧底人 師曰 開口取 合不得 曰 此人行履如何 師曰 逢茶卽茶 逢飯卽飯 問 如何是金剛一隻箭 師曰 道甚麽 僧再問 師曰 過新羅國去也 問 波騰鼎沸 起必全眞 未審古人意如何 師乃叱之 曰 恁麽則非次也 師曰 你話墮也 又曰 我話亦墮 汝作麽生 僧無對 問 去却賞罰 如何是吹毛劒 師曰 延平屬劒州 曰 恁麽則喪身失命去也 師曰 錢塘江裏潮
●獨掌不浪鳴; 一隻手掌不成拍響 浪 鼓動
●入衆; 一僧人出衆發言之後 退入僧衆之列 二進入叢林 與僧衆共同參禪學道 此指二
●立地; 一卽刻 卽時 立 卽刻 地 助詞 二站著 又存立之地 建立之地 此指二
●波騰鼎沸; 像波浪涌起 像鼎水沸騰 比喩衆人議論激烈 意見紛紛 爭論不休的樣子
●錢塘江; 浙江省最大河流 ▲祖庭事苑五 錢塘 昔郡議曹華倍 義立此塘 以防海水 遂開募有能致土石一斛 與錢一千 旬日之間 來者雲集 塘未成而譎不復取 遂弃土石而去 塘以之成也 見東漢書(漢書無此話
무주(婺州) 보은원(報恩院) 보자(寶資) 효오선사(曉悟禪師)
승문(僧問) 학인은 초심(初心)이니 청컨대 스님이 저(箇) 입로(入路)를 보이십시오. 스님이 드디어 손바닥을 기울여 보이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외 손바닥으론 두드려도 울리지 않는다(獨掌不浪鳴). 묻되 무엇이 이 보은(報恩)의 가풍입니까. 사왈 또한 아나니 사리(闍黎)가 입중(入衆)한 날이 얕다(淺). 묻되 고인이 염추수불(拈槌竪拂)한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보은(報恩)이 혀를 자를 분한이 있다. 승왈(僧曰)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굴복해서(屈著) 무엇 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문수검(文殊劒)입니까. 사왈 알지 못한다. 가로되 지여(秖如) 일검(一劒) 아래 삶을 얻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왈 산승은 다만 이시(二時)의 재죽(齋粥)을 관대(管帶)한다. 묻되 무엇이 이 촉목보리(觸目菩提)입니까. 사왈(師曰) 등 뒤에 이 무슨 입지(立地)인가.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시(再示)를 구걸합니다. 스님이 주장자를 들고(提) 가로되 네가 알지 못한다면 합당히 다소(多少)의 주장자를 먹어야(喫; 承受) 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대참괴(大慙愧)를 갖춘 사람입니까. 사왈 입 열면 취하지만(開口取) 닫으면 얻지 못한다(合不得). 가로되 이 사람의 행리(行履)가 어떻습니까. 사왈 차를 만나면 곧 차며 밥을 만나면 곧 밥이다. 묻되 무엇이 이 금강의 1척(隻) 화살입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중이 다시 묻자 사왈 신라국을 지나갔다. 묻되 파도가 오르고 솥이 끓듯이(波騰鼎沸) 일어나면 반드시 전진(全眞)이다. 미심하오니 고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에 꾸짖었다(叱之)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버금(次)이 아닙니다. 사왈 너는 화타(話墮)했다. 우왈(又曰) 나의 화(話)도 또한 떨어졌으니(墮) 너는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상벌(賞罰)을 제거해버리고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劒)입니까. 사왈 연평(延平)은 검주(劒州)에 속(屬)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상신실명(喪身失命)하여 갈 것입니다. 사왈 전당강(錢塘江) 속의 밀물(潮)이다.
●獨掌不浪鳴; 한 짝의 손바닥으로는 두드림의 음향을 이루지 못함. 랑(浪)은 고동(鼓動).
●入衆; 1. 승인이 대중에서 나와 발언한 후 승중의 대열로 퇴입(退入)함. 2. 총림에 진입하여 승중과 공동으로 참선학도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立地; 1. 즉각. 즉시. 립(立)은 즉각이며 지는 조사. 2. 참착(站著; 서다). 또 존립의 땅. 건립의 땅.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波騰鼎沸; 파랑이 용기(涌起)함을 형상(形像)하고 정수(鼎水)가 비등함을 형상함이니 중인의 의논이 격렬하고 의견이 분분하면서 쟁론이 그치지 않는 양자에 비유함.
●錢塘江; 절강성의 최대 하류(河流)임. ▲조정사원5. 전당(錢塘) 옛적에 군의(郡議)인 조화배(曹華倍)가 의거(義擧)로 이 둑을 세워 해수(海水)에 방비하려 했다. 드디어 개모(開募; 公開하여 모집함)하기를 능히 토석(土石) 1곡(斛; 斛은 열말들이 곡. 휘 곡)을 이르게 하면 전(錢) 1천을 준다. 열흘 사이에 내자(來者)가 운집했다. 둑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속이어 다시 취하지 않는다 하자 드디어 토석을 버리고 떠났다. 둑이 이로써 이루어졌다. 동한서(東漢書; 후한서)를 보라(한서에 이 얘기가 없음).
處州翠峰從欣禪師
上堂曰 更不展席也 珍重 便歸方丈 却問侍者 還會麽 曰 不會 師曰 將謂汝到百丈來
처주(處州) 취봉(翠峰) 종흔선사(從欣禪師)
상당하여 가로되 다시 자리를 펴지 말아라. 진중(珍重). 바로 방장으로 돌아가서 도리어 시자에게 묻되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師曰) 다만(將) 이르나니 네가 백장(百丈)에 이르렀다가 왔다.
襄州鷲嶺明遠禪師
初參長慶 慶問 汝名甚麽 師曰 明遠 慶曰 那邊事作麽生 師曰 明遠退兩步 慶曰 汝無端退兩步作麽 師無語 慶曰 若不退步 爭知明遠 師乃諭旨 住後 向火次 僧問 無一法當前 應用無虧時如何 師以手卓火 其僧於此有省
양주(襄州) 취령(鷲嶺) 명원선사(明遠禪師)
장경(長慶)을 초참(初參)하자 장경이 묻되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왈(師曰) 명원(明遠)입니다. 경왈(慶曰) 나변사(那邊事)가 어떠한가. 사왈 명원이 두 걸음 물러나겠습니다. 경왈 네가 무단(無端)히 두 걸음 물러나서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말이 없자 경왈(慶曰) 만약 퇴보(退步)하지 않으면 어찌 명원을 알겠는가. 스님이 이에 지취(旨趣)를 깨달았다(諭). 주후(住後) 향화(向火)하던 차에 승문(僧問) 앞에 당할 일법(一法)도 없지만 응용하매 모자라지(虧) 않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불을 세웠다(卓火). 그 중이 이에서 살핌이 있었다.
杭州龍華寺彦球實相得一禪師
開堂日 謂衆曰 今日旣陞法座 又爭解諱得 祇如不諱底事 此衆還有人與作證明麽 若有卽出來 相共作箇牓樣 僧問 此座爲從天降下 爲從地涌出 師曰 是甚麽 曰 此座高廣 如何陞得 師曰 今日幾被汝安頓著 問 靈山一會 迦葉親聞 今日一會 何人得聞 師曰 同我者擊其大節 曰 灼然俊哉 師曰 去搬水漿茶堂裏用去 師復曰 從前佛法付囑國王大臣及有力檀越 今日郡尊及諸官僚特垂相請 不勝荷愧 山僧更有末後一句子 賤賣與諸人 師乃起身立 曰 還有人買麽 若有人買 卽出來 若無人買 卽賤貨自收去也 久立 珍重 僧問 如何是學人自已 師曰 雪上更加霜
●安頓; 安排使有著落
●水漿 飲料或流質食物 泛指液體汁液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 언구(彦球) 실상(實相) 득일선사(得一禪師)
개당일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금일 이미 법좌에 올랐거늘 또 어찌 휘득(諱得; 꺼리다. 숨기다)할 줄 알겠는가. 지여(祇如) 꺼리지(諱) 않는 일을 이 대중에서 도리어 증명을 지어 줄 사람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곧 나와서 서로 함께 저(箇) 방양(牓樣)을 지어라. 승문(僧問) 차좌(此座)는 하늘로 좇아 강하(降下)했습니까, 땅으로 좇아 용출(涌出)했습니까. 사왈 이 뭣고. 가로되 차좌(此座)는 고광(高廣)하니 어떻게 오름을 얻습니까. 사왈 금일 거의(幾) 너의 안돈(安頓)함을 입을 뻔했다. 묻되 영산(靈山)의 일회(一會)는 가섭이 친문(親聞)했거니와 금일의 일회는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 나와 같은 자라야 그 대절(大節; 大關節)을 친다(擊). 승왈 작연(灼然; 明白)히 준재(俊哉)입니다. 사왈 가서 수장(水漿)을 운반(運搬)하여 다당(茶堂) 속에서 쓰거라. 스님이 다시 가로되 종전(從前)엔 불법을 국왕과 대신 및 유력(有力)한 단월(檀越)에게 부촉(付囑)했거니와 금일은 군존(郡尊) 및 여러 관료(官寮)가 특별히 상청(相請)함을 드리워 하괴(荷愧; 부끄러움을 지다)를 이기지 못합니다. 산승이 다시 말후의 일구자(一句子)가 있어 싸게(賤) 팔아 제인에게 주겠습니다. 스님이 이에 몸을 일으켜 서서 가로되 도리어 살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살 사람이 있다면 곧 나오시오. 만약 살 사람이 없다면 곧 싼 화물(貨物)을 스스로 거두겠습니다. 구립(久立)했습니다. 진중(珍重). 승문(僧問)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하는구나.
●安頓; 안배(安排)하여 착락(著落)이 있게 함.
●水漿 음료 혹 유질(流質)의 식물(食物). 널리 액체나 즙액(汁液)을 가리킴.
杭州保安連禪師
僧問 如何是保安家風 師曰 問有甚麽難 問 如何是吹毛劒 師曰 豫章鐵柱堅 曰 學人不會 師曰 漳江親到來 問 如何是沙門行 師曰 師僧頭上戴冠子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死虎足人看 問 一問一答 彼此興來 如何是保安不驚人之句 師曰 汝到別處作麽生擧
항주(杭州) 보안련(保安連)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보안(保安)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물음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劒)입니까. 사왈 예장(豫章)의 철주(鐵柱)가 견고하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장강(漳江)이 친히 도래했다. 묻되 무엇이 이 사문행(沙門行)입니까. 사왈 사승(師僧)의 두상에 관자(冠子; 子는 조사)를 이었다(戴).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죽은 범은 사람이 봄을 더한다(足; 다헐 주). 묻되 일문일답은 피차 일으켜(興) 옵니다. 무엇이 이 보안(保安)의,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는 구(句)입니까. 사왈 네가 별처(別處)에 이르면 어떻게 들겠는가(擧).
福州報慈院光雲慧覺禪師
上堂 瘥病之藥不假驢駝 若據如今 各自歸堂去 珍重 問僧 近離甚處 曰 臥龍 師曰 在彼多少時 曰 經冬過夏 師曰 龍門無宿客 爲甚在彼許多時 曰 師子窟中無異獸 師曰 汝試作師子吼看 曰 若作師子吼 卽無和尙 師曰 念汝新到 放汝三十棒 問 承聞超覺有鎻口訣 如何示人 師曰 賴我拄杖不在手 曰 恁麽則深領尊慈也 師曰 待我肯汝卽得 閩王問 報慈與神泉相去近遠 師曰 若說近遠 不如親到 師却問 大王日應千差 是甚麽心 王曰 甚麽處得心來 師曰 豈有無心者 王曰 那邊事作麽生 師曰 請向那邊問 王曰 大師謾別人卽得 問 大衆臻湊 請師擧揚 師曰 更有幾人未聞 曰 恁麽則不假上來也 師曰 不上來且從 汝向甚麽處會 曰 若有處所 卽孤負和尙去也 師曰 祇恐不辨精麤 問 夫說法者當如法說 此意如何 師曰 有甚麽疑訛 問 古人面壁意旨如何 師便打 問 不假言詮 請師徑直 師曰 何必更待商量
●瘥病之藥不假驢駝; 治療疾病無須用驢子來馱藥 意謂對于參學之病 只要對症下藥 少量卽可奏效 瘥 治療 治愈 駝 馱也
●鎻口訣; 言語所不及 稱爲鎖口 又佛法甚深之妙理 非言語所能說明 稱爲鎖口訣
●徑直; 一直接向某處前進 二直接進行某事
복주(福州) 보자원(報慈院) 광운(光雲) 혜각선사(慧覺禪師)
상당(上堂) 병을 낫게 하는 약은 나귀에 실음을 빌리지 않나니(瘥病之藥不假驢駝) 만약 여금에 의거하자면 각자 당(堂)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진중(珍重).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와룡(臥龍)입니다. 사왈 거기에 있은 지 얼마의 시일이냐. 가로되 경동과하(經冬過夏)했습니다. 사왈 용문(龍門)에 숙객(宿客)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허다한 시일을 거기에 있었는가. 가로되 사자굴 속엔 다른 짐승이 없습니다. 사왈 네가 시험 삼아 사자후를 지어 보아라. 가로되 만약 사자후를 지으면 곧 화상이 없습니다. 사왈 네가 신도(新到)임을 생각하여(念) 너에게 30방(棒) 놓는다. 묻되 받들어 듣건대 혜각(慧覺)이 쇄구결(鎻口訣)이 있다는데 어떻게 사람에게 보입니까. 사왈(師曰) 다행히(賴) 내가 주장자가 손에 있지 않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존자(尊慈)를 깊이 영회(領會)합니다. 사왈 내가 너를 수긍함을 기다려야 곧 옳다. 민왕(閩王)이 묻되 보자(報慈)와 신천(神泉)이 서로의 거리(距離; 去)가 가깝습니까 멉니까(近遠). 사왈 만약 근원(近遠)을 설한다면 친히 이름만 같지 못합니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대왕은 날마다 천차(千差)에 응하시니 이 무슨 마음입니까. 왕왈(王曰) 어느 곳에서 마음을 얻어 옵니까. 사왈 어찌 마음이 없는 자가 있겠습니까. 왕왈 나변사(那邊事)가 어떻습니까. 사왈 청컨대 나변(那邊)을 향해 물으십시오. 왕왈 대사(大師)가 다른 사람을 속임은 곧 얻습니다. 묻되 대중이 진주(臻湊; 모이다)했으니 스님의 거양(擧揚)을 청합니다. 사왈 다시 몇 사람이 듣지 못함이 있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올라옴을 빌리지 않겠습니다. 사왈 올라오지 않음은 다만(且) 좇거니와 네가 어느 곳을 향해 이회(理會)하느냐. 가로되 만약 처소가 있다면 곧 화상을 저버릴 것입니다. 사왈 다만 정추(精麤)를 분변하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묻되 무릇 설법이란 것은 마땅히 여법하게 설해야 한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무슨 의와(疑訛; 疑惑과 訛謬)가 있겠는가. 묻되 고인(故人)이 면벽한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언전(言詮; 언어로 說明함)을 빌리지 않고 스님의 경직(徑直)을 청합니다. 사왈 하필이면 다시 상량(商量)을 기다리겠는가.
●瘥病之藥不假驢駝; 질병을 치료함에는 나귀를 사용해 실어 온 약이 쓰이지 않음. 뜻으로 이르자면 참학의 병에 대치(對治)함은 다만 대증(對症)하여 하약(下藥)함을 요하나니 소량이라도 곧 가히 주효함. 채(瘥)는 치료ㆍ치유며 타(駝)는 타(馱; 싣다)임.
●鎻口; 언어가 미치지 않는 바를 일컬어 쇄구라 함. 또 불법의 심심(甚深)한 묘리는 언어로 능히 설명할 바가 아님을 일컬어 쇄구결(鎖口訣)이라 함.
●徑直; 1. 직접(直接) 모처(某處)를 향해 전진함. 2. 직접 모사(某事)를 진행함.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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