杭州永明寺道潛禪師
河中府武氏子 初謁法眼 眼問曰 子於參請外 看甚麽經 師曰 華嚴經 眼曰 總別同異成壞六相 是何門攝屬 師曰 文在十地品中 據理則世出世間一切法 皆具六相也 眼曰 空還具六相也無 師懵然無對 眼曰 汝問我 我向汝道 師乃問 空還具六相也無 眼曰 空 師於是開悟 踊躍禮謝 眼曰 子作麽生會 師曰 空 眼然之 異日 因四衆士女入院 眼問師曰 律中道 隔壁聞釵釧聲 卽名破戒 見覩金銀合雜 朱紫騈闐 是破戒不是破戒 師曰 好箇入路 眼曰 子向後有五百毳徒 爲王侯所重在 師尋禮辭 駐錫於衢州古寺 閱大藏經 忠懿王命入府受菩薩戒 署慈化定慧禪師 建大伽藍 號慧日永明 請居之 師欲請塔下羅漢銅像 過新寺供養 王曰 善矣 予昨夜夢十六尊者 乞隨禪師入寺 何昭應之若是 仍於師號加應眞二字 師坐永明 常五百衆
●隔壁聞釵釧聲; 祖庭事苑五 聞釵釧 若有菩薩自言戒淨 雖不與彼女人身合嘲調戲笑 於壁障外 遙聞女人瓔珞環釧種種諸聲 心生愛著 如是菩薩成就欲法 毁破淨戒 汙辱梵行 不得名爲淨戒具足 見涅槃(31)
항주(杭州) 영명사(永明寺) 도잠선사(道潛禪師)
하중부(河中府) 무씨(武氏)의 아들이다. 법안(法眼)을 초알(初謁)하자 법안이 문왈(問曰) 자네가 참청(參請)하는 외에 무슨 경을 보는가. 사왈(師曰) 화엄경입니다. 안왈(眼曰) 총별동이성괴(總別同異成壞)의 6상(相)은 이 어떤 문에 섭속(攝屬)되었는가. 사왈 글이 십지품(十地品) 중에 있습니다. 이치에 의거하자면 곧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법이 다 6상을 갖췄습니다. 안왈(眼曰) 공(空)은 도리어 6상을 갖췄는가 또는 아닌가. 스님이 몽연(懵然)하여 대답이 없었다. 안왈(眼曰) 네가 나에게 묻는다면 네가 너를 향해 말하겠다. 스님이 이에 묻되 공(空)은 도리어 6상을 갖추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안왈(眼曰) 공(空). 스님이 이에 개오(開悟)했고 용약(踊躍)하고 예사(禮謝)했다. 안왈(眼曰) 자네는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사왈 공(空). 법안이 그렇다 하였다. 다른 날에 4중(衆)의 사내와 여자들이 사원에 들어옴으로 인해 법안이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율(律) 가운데 말하기를 벽 너머에서 비녀와 팔찌 소리만 들어도(聞釵釧聲) 곧 이름이 파계라 했다. 현재(見) 금은이 합잡(合雜)하고 주자(朱紫)가 변전(騈闐; 한 곳에 모임)함을 보는데 이 파계인가, 이 파계가 아닌가. 사왈 좋은 입로입니다(好箇入路). 안왈(眼曰) 자네는 향후에 5백 취도(毳徒; 僧徒)가 있을 것이며 왕후(王侯)가 존중하는 바가 될 것이다. 스님이 이윽고 예사(禮辭)하고 구주(衢州) 고사(古寺)에 주석(駐錫)하며 대장경을 열람했다. 충의왕(忠懿王)이 입부(入府)를 명(命)하고 보살계를 받고 서(署)하여 자화정혜선사(慈化定慧禪師)라 했다. 대가람(大伽藍)을 건립하여 호를 혜일영명(慧日永明)이라 하고 거주를 청했다. 스님이 탑하(塔下)의 라한(羅漢) 동상(銅像)을 신사(新寺)에 이르게 하여(過) 공양함을 청(請)하려 했다. 왕왈(王曰) 좋습니다(善矣). 내가 어젯밤 꿈에 16존자가 선사(禪師)를 따라 입사(入寺)하기를 구걸했습니다. 어찌하여 소응(昭應; 應驗)이 이와 같을까요(若是). 인하여(仍) 사호(師號)에 응진(應眞) 2자를 더했다. 스님이 영명(永明)에 앉으매 늘 오백중(五百衆)이었다.
●隔壁聞釵釧聲; 조정사원5. 문차천(聞釵釧) 만약 어떤 보살이 스스로 계(戒)가 청정하다고 말하며 비록 저 여인과 몸을 합치거나 조조(嘲調; 嘲는 희롱할 조. 調는 어울릴 조. 곧 어울려 희롱함)하고 희소(戲笑)하지 않더라도 벽장(壁障; 벽의 障碍) 밖에서 멀리 여인의 영락(瓔珞)과 환천(環釧; 環은 고리 환. 釧은 팔찌 천)의 갖가지 여러 소리를 듣고서 마음에 애착을 내면 이와 같은 보살은 욕법(欲法)을 성취하고 정계(淨戒)를 훼파(毀破)하며 범행(梵行)을 오욕(汙辱)했으므로 정계를 구족했다고 이름함을 얻지 못한다. 열반경(31)을 보라.
上堂 佛法顯然 因甚麽却不會 諸上座欲會佛法 但問取張三李四 欲會世法 則參取古佛叢林 無事久立 僧問 如何是永明的的意 師曰 今日十五 明朝十六 曰 覧師的的意 師曰 何處覧 問 如何是永明家風 師曰 早被上座答了也 問 三種病人如何接 師曰 汝是聾人 曰 請師方便 師曰 是方便 問 牛頭未見四祖時 爲甚麽百鳥銜華 師曰 見東見西 曰 見後爲甚麽不銜華 師曰 見南見北 曰 昔日作麽生 師曰 且會今日 問 達磨西來傳箇甚麽 師曰 傳箇𠕋子 曰 恁麽則心外有法去也 師曰 心內無法 問 如何是第二月 師曰 月 問 如何是覿面事 師曰 背後是甚麽 問 文殊仗劒 擬殺何人 師曰 止止 曰 如何是劒 師曰 眼是 問 諸餘卽不問 向上宗乘亦且置 請師不答 師曰 好箇師僧子 曰 恁麽則禮拜去也 師曰 不要三拜 盡汝一生去 衆參次 師指香爐曰 汝諸人還見麽 若見 一時禮拜 各自歸堂 僧問 至道無言 借言顯道 如何是顯道之言 師曰 切忌揀擇 曰 如何是不揀擇 師曰 元帥大王 太保令公問 如何是慧日祥光 師曰 此去報慈不遠 曰 恁麽則親蒙照燭 師曰 且喜沒交涉
●冊子; 冊 書簡 古代文書用竹簡 編簡名爲冊 後凡簿籍均可稱冊 集韻 冊 通作策
●文殊仗劒; 仗 持也 握也 祖庭事苑六 文殊仗劍 五百菩薩得宿命智 知億多劫所作重罪 以憂悔故 不證無生 時文殊師利 知其念已 於大衆中 把刀害佛 佛言 若欲害我 爲善害我 文殊白佛 云何名爲若欲害我 爲善害我 佛因廣說一切諸法皆如幻化 若能如是 是善害我 菩薩由是照知宿罪皆如幻化 得無生忍 五百菩薩 異口同音而說偈言 文殊大智士 深達法源底 自手握利劍 持逼如來身 如劍佛亦爾 一相無有二 無相無所生 是中云何殺 見寶積百五
●太保; 官職名 西周始置 監護與輔弼國君之官 位次太傅 歷代沿置 史載商王太甲以伊尹爲太保 周成王以召公爲太保 明史載 太師太傅太保爲三公 正一品 淸代爲正一品 [百度百科]
상당(上堂) 불법이 현연(顯然)하거늘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알지 못하느냐(不會). 제상좌(諸上座)가 불법을 알려고 하거든 단지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문취(問取)하고 세법(世法)을 알려고 하거든 곧 고불총림(古佛叢林)을 참취하라. 무사(無事)하거늘 구립(久立)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영명(永明)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사왈(師曰) 금일은 15며 명조(明朝)는 16이다. 가로되 스님의 적적한 뜻을 보았습니다(覽). 사왈 어느 곳에서 보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영명(永明)의 가풍입니까. 사왈 벌써 상좌가 답료(答了)함을 입었다. 묻되 삼종병인(三種病人; 盲聾瘂)을 어떻게 접인(接引)합니까. 사왈 너는 이 농인(聾人)이다. 가로되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이것이 방편이다.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무엇 때문에 백조(百鳥)가 함화(銜華)했습니까. 사왈 동을 보고 서를 보았다. 가로되 뵌 후엔 무엇 때문에 함화하지 않았습니까. 사왈 남을 보고 북을 보았다. 가로되 석일(昔日)은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且) 금일을 알아라. 묻되 달마가 서래(西來)하여 저(箇) 무엇을 전했습니까. 사왈 저 책자(𠕋子)를 전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마음 밖에 법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마음 안에 법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제2월(第二月)입니까. 사왈 월(月)이다. 묻되 무엇이 이 적면사(覿面事)입니까. 사왈 배후(背後)는 이 무엇인가. 묻되 문수가 장검하여(文殊仗劒)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사왈 그쳐라(止), 그쳐라. 가로되 무엇이 이 검입니까. 사왈 눈이 이것이다(眼是). 묻되 제여(諸餘)는 곧 묻지 않고 향상종승(向上宗乘)도 또한 차치(且置)하고 스님의 부답(不答)을 청합니다. 호개(好箇)의 사승자(師僧子; 子는 조사)로구나.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예배하겠습니다. 사왈 삼배(三拜)를 요하지 않나니 너의 일생(一生)을 없애거라. 대중이 참차(參次)에 스님이 향로(香爐)를 가리키며 가로되 너희 제인(諸人)이 도리어 보느냐. 만약 보았거든 일시에 예배하고 각자 귀당(歸堂)하라. 승문(僧問) 지도(至道)는 무난(無言)하나니 말을 빌려 도를 나타낸다(借言顯道). 무엇이 이 도를 나타내는 말입니까. 사왈 간택(揀擇)을 간절히 꺼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불간택(不揀擇)입니까. 사왈 원수(元帥)인 대왕(大王)이다. 태보(太保) 영공(令公)이 묻되 무엇이 이 혜일(慧日)의 상광(祥光)입니까. 사왈 여기에서 보자(報慈)와의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친히 조촉(照燭)을 입었습니다(蒙). 사왈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합니다(且喜沒交涉).
●冊子; 책(冊)은 서간(書簡)임. 고대의 문서는 죽간(竹簡)을 썼으며 죽간을 엮어 책(冊)이라고 이름했음. 후에 무릇 부적(簿籍)을 균등히 가히 책이라고 일컬었음. 집운 책(冊) 책(策)으로 지음과 통한다.
●文殊仗劒; 장(仗)은 지(持)임. 악(握; 쥐다)임. 조정사원6 문수장검(文殊仗劍) 5백 보살이 숙명지(宿命智)를 얻어서 억다겁(億多劫)에 지은 바 중죄를 알아 우회(憂悔; 근심하고 후회함)를 쓰는 연고로 무생(無生)을 증득하지 못했다. 때에 문수사리가 그들의 생각을 안 다음 대중 중에서 칼을 잡고 부처를 해치려 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만약 나를 해치려거든 선(善)하게 나를 해쳐라. 문수가 불타에게 사뢰되 무엇을 이름하여 만약 나를 해치려거든 선하게 나를 해침입니까. 불타가 인하여 일체제법이 다 환화(幻化)와 같음을 광설하셨다.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이것이 선(善)하게 나를 해침이다. 보살이 이로 말미암아 숙죄(宿罪; 宿世에 지은 죄)가 다 환화와 같은 줄을 조지(照知)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었다. 5백 보살이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게를 설해 말하되 문수대지사(文殊大智士)가/ 법원(法源)의 바닥을 깊이 통달하여/ 스스로 손수 이검(利劍)을 쥐고서/ 가지고 여래의 몸을 핍박했다/ 검과 같이 불타도 또한 그러하여/ 1상(相)이라서 둘이 있지 않나니/ 형상도 없고 소생(所生)도 없거늘/ 이 중에 어떻게 죽이리오. 보적경105를 보라.
●太保; 관직의 이름이니 서주(西周)에서 처음 설치했고 국군(國君)을 감호(監護)하고 아울러 보필하는 관직이니 지위가 태부(太傅)의 다음이었음. 역대에 따라서 설치했음. 사기의 기재에 상왕(商王) 태갑은 이윤(伊尹)을 태보로 삼았고 주성왕(周成王)은 소공(召公)을 태보로 삼았음. 명사(明史)의 기재엔 태사(太師)ㆍ태부(太傅)ㆍ태보(太保)를 3공(公)으로 삼았고 정1품이며 청대에도 정1품이 되었음 [백도백과].
杭州報恩慧明禪師
姓蔣氏 幼歲出家 三學精練 志探玄旨 乃南遊於閩越間 歷諸禪會 莫契本心 後至臨川謁法眼 師資道合 尋回鄞水大梅山庵居 吳越部內 禪學者雖盛 而以玄沙正宗置之閫外 師欲整而導之 一日有新到參 師問 近離甚處 曰 都城 師曰 上座離都城到此山 則都城少上座 此間剩上座 剩則心外有法 少則心法不周 說得道理卽住 不會卽去 僧無對 僧問 如何是大梅主 師曰 闍黎今日離甚麽處 僧無對 師尋遷天台山白沙卓庵 有朋彦上座博學强記 來訪師敵論宗乘 師曰 言多去道轉遠 今有事借問 祇如從上諸聖及諸先德 還有不悟者也無 彦曰 若是諸聖先德 豈有不悟者哉 師曰 一人發眞歸源 十方虛空悉皆消殞 今天台山嶷然 如何得消殞去 彦不知所措 自是他宗泛學來者皆服膺矣
항주(杭州) 보은사(報恩寺) 혜명선사(慧明禪師)
성이 장씨(蔣氏)며 유세(幼歲)에 출가하여 삼학(三學)을 정련(精練)했고 의지(意志)가 현지(玄旨)를 탐구(探究)했다. 이에 민월(閩越) 사이를 남유(南遊)하며 여러 선회(禪會)를 경력(經歷)했으나 본심에 계합하지 못했다. 후에 임천(臨川)에 이르러 법안(法眼; 文益)을 참알해 사자(師資)의 도가 합했다. 이윽고 은수(鄞水) 대매산(大梅山)으로 회귀하여 암거(庵居)했다. 오월(吳越)의 부내(部內)에서 선학자(禪學者)가 비록 성(盛)했지만 현사(玄沙)의 정종(正宗)을 곤외(閫外)로 안치한지라 스님이 정제(整齊)하고 인도(引導)하려고 했다. 어느 날 어떤 신도(新到)가 참(參)했다. 스님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도성(都城)입니다. 사왈(師曰) 상좌가 도성을 떠나 차산(此山)에 이르렀으니 곧 도성엔 상좌가 적어졌고(少) 차간(此間)엔 상좌가 남는다(剩). 남으면 곧 마음 밖에 법이 있음이며 적으면 곧 심법(心法)이 두루하지 못하다. 도리를 설득(說得)하면 곧 머물고 알지 못하면 곧 가거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대매주(大梅主)입니까. 사왈 사리(闍黎)는 금일 어느 곳을 떠났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이윽고 천태산 백사(白沙)로 옮겨 탁암(卓庵)했다. 붕언(朋彦) 상좌가 있어 박학강기(博學强記)했고 스님을 내방하여 종승(宗乘)을 대적(對敵)해 논했다. 사왈 말이 많으면 도와의 거리가 더욱 멀다. 이제 유사(有事)하여 차문(借問)하나니 지여(祇如) 종상(從上)의 제성(諸聖) 및 제선덕(諸先德)에 도리어 깨치지 못한 자가 있는가 또는 없는가. 붕언이 가로되 만약 이 제성과 선덕일진대 어찌 깨치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사왈 한 사람이 발진(發眞)하여 귀원(歸源)하면 시방 허공이 모두 다 소운(消殞)한다(릉엄경9에 나옴) 했는데 지금 천태산이 억연(嶷然; 높은 모양)하거늘 어째해야 소운(消殞)함을 얻어 가겠는가. 붕언이 조처(措處)할 바를 알지 못했다. 이로부터 타종(他宗)에서 널리(泛) 배우러 오는 자가 모두 복응(服膺)했다.
漢乾祐中 忠懿王延入府中問法 命住資崇院 師盛談玄沙及地藏法眼宗旨臻極 王因命翠巖令參等諸禪匠及城下名公定其勝負 天龍禪師問曰 一切諸佛及諸佛法 皆從此經出 未審此經從何而出 師曰 道甚麽 天龍擬進語 師曰 過也 資嚴長老問 如何是現前三昧 師曰 還聞麽 嚴曰 某甲不患聾 師曰 果然患聾 師復擧雪峰塔銘問諸老宿 夫從緣有者 始終而成壞 非從緣有者 歷劫而長堅 堅之與壞卽且置 雪峰卽今在甚麽處〈法眼別云 祇今是成是壞〉 宿無對 設有對者 亦不能當其徵詰 時羣彦弭伏 王大喜悅 署圓通普照禪師
한(漢) 건우(乾祐; 948-950) 중 충의왕(忠懿王)이 부중(府中)으로 맞아들여 문법(問法)했고 명(命)하여 자숭원(資崇院)에 주(住)하게 했다. 스님이 현사(玄沙) 및 지장(地藏)ㆍ법안의 종지(宗旨)를 성담(盛談)해 극에 이르렀다(臻極). 왕이 인하여 취암영참(翠巖令參) 등 여러 선장(禪匠) 및 성하(城下)의 명공(名公)에게 명하여 그 승부(勝負)를 정하게 했다. 천룡선사(天龍禪師)가 문왈 일체제불 및 모든 불법이 모두 이 경을 좇아나온다. 미심하오니 이 경은 어디로 좇아나옵니까. 사왈(師曰)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천룡이 진어(進語; 말을 진행)하려고 하자 사왈 지나갔습니다(過也). 자엄장로(資嚴長老)가 묻되 무엇이 이 현전삼매(現前三昧)입니까. 사왈 도리어 듣습니까. 자엄이 가로되 모갑은 환롱(患聾; 귀먹은 질환)이 아닙니다. 사왈 과연 환롱(患聾)이로구나. 스님이 다시 설봉(雪峰)의 탑명(塔銘)을 들어 여러 노숙(老宿)에게 묻되 무릇 인연으로 좇아 있는 것은 시종 무너짐(壞)을 이루고 인연으로 좇아 있지 않는 것은 역겁(歷劫)에 길이(長) 견고하다(堅). 견(堅)과 괴(壞)는 곧 차치(且置)하고 설봉이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法眼이 別云 지금은 이 成입니까, 이 壞입니까〉. 노숙이 대답이 없었다. 설사 대답하는 자가 있더라도 또한 능히 그 징힐(徵詰; 責問하며 詰難함)을 당하지 못했다. 때에 군언(羣彦; 뭇 賢士)이 미복(弭伏; 馴伏. 順服)했다. 왕이 크게 희열(喜悅)하며 서(署)하여 원통보조선사(圓通普照禪師)라 했다.
上堂 諸人還委悉麽 莫道語默動靜無非佛事好 且莫錯會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汝還見香臺麽 曰 某甲未會 乞師指示 師曰 香臺也不識 問 離却目前機 如何是西來意 師曰 汝何不問 曰 恁麽則委是去也 師曰 也是虛施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我見燈明佛 本光瑞如此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特地伸問是甚麽意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十萬八千眞䟦涉 直下西來不到東 問 如何是第二月 師曰 揑目看花花數朵 見精明樹幾枝枝
●燈明佛; 日月燈明佛 乃於過去世中出現 宣說法華經之佛 其光明在天如日月 在地如燈 故得此名 按法華經序品 過去世有二萬日月燈明佛 同名相繼出世 而說法華經 又佛本行集經一云 六萬諸佛皆同號燈明如來 楞嚴經五云 彌勒往昔曾從日月燈明佛出家 [佛名經一 法華經玄義一上 四明尊者敎行錄四]
상당(上堂) 제인(諸人)은 도리어 위실(委悉)하느냐. 어묵동정(語默動靜)이 불사(佛事)가 아님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나니 다만(且) 착회(錯會)하지 말아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너는 도리어 향대(香臺)를 보느냐. 가로되 모갑이 알지 못하오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향대도 알지 못하느냐. 묻되 목전기(目前機)를 여의어버리고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너는 왜 묻지 않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이것을 알겠습니다(委是去也). 사왈 또한 이 헛된 시설(施設)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내가 등명불(燈明佛)을 보매 본래의 광서(光瑞)가 이와 같다(이상 2구는 법화경1에 나옴).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특지(特地) 신문(伸問; 물음을 펴다)함은 이 무슨 뜻인가.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십만팔천(十萬八千; 10만8천 리)을 참으로 발섭(眞跋)하면서 직하(直下)에 서래(西來)했으나 동(東)에 이르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제2월입니까. 사왈 날목(揑目; 눈을 비비다)하여 꽃을 보매 꽃이 몇 떨기며 정명수(精明樹)를 보매 몇 지지(枝枝)던가.
●燈明佛; 일월등명불이니 곧 과거세에 출현하여 법화경을 선설(宣說)한 부처. 그 광명이 하늘에 있으면 일월과 같고 땅에 있으면 등과 같은지라 고로 이 명칭을 얻었음. 법화경 서품을 안험컨대 과거세에 2만 일월등명불이 있어 동명(同名)으로 상계(相繼)하여 출세해 법화경을 설했음. 또 불본행집경1에 이르되 6만의 제불이 모두 동호(同號)의 등명여래다. 릉엄경5에 이르되 미륵이 지난 옛적에 일찍이 일월등명불을 좇아 출가했다 [불명경1. 법화경현의1상. 사명존자교행록4].
金陵報慈行言玄覺導師
泉州人也 上堂 凡行脚人參善知識 到一叢林 放下甁鉢 可謂行菩薩道能事畢矣 何用更來這裏擧論眞如涅槃 此是非時之說 然古人有言 譬如披沙識寶 沙礫若除 眞金自現 便喚作常住世間 具足僧寶 亦如一味之雨 一般之地 生長萬物 大小不同 甘辛有異 不可道地與雨有大小之名也 所以道 方卽現方 圓卽現圓 何以故爾 法無偏正 隨相應現 喚作對現色身 還見麽 若不見也莫閑坐地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此問不當 問 坐却是非 如何合得本來人 師曰 汝作麽生坐 師聞鳩子呌 問僧 甚麽聲 曰 鳩子聲 師曰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能事; 祖庭事苑二 能事 能 獸也 有筋力 善緣木 故今善其事曰能
금릉(金陵) 보자(報慈) 행언(行言) 현각도사(玄覺導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무릇 행각인(行脚人)이 선지식을 참(參)하면서 1총림에 이르면 병발(甁鉢)을 내려놓나니(放下) 가위(可謂)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며 능사(能事)를 마쳤다 하리라. 이 속에 다시 와서 진여열반을 거론(擧論)함을 어찌 쓰겠는가(用). 이것은 이 비시(非時)의 설(說)이다. 그러하여 고인이 말씀이 있었으니 비유컨대 모래를 헤쳐 보배를 앎과 같나니 사력(沙礫)을 만약 제거하면 진금이 저절로 나타난다. 바로 상주(常住)하는 세간이며 승보(僧寶)를 구족했다고 불러 짓는다. 또한 일미지우(一味之雨)와 일반지지(一般之地)가 만물을 생장함과 같나니 대소(大小)가 같지 못하고 감신(甘辛)이 다름이 있지만 가히 지(地)와 우(雨)에 대소(大小)의 이름이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소이로 말하되 모남은 곧 모남을 나타내고 둥긂은 곧 둥긂을 나타낸다. 무슨 연고로 그러한가(何以故爾), 법엔 편정(偏正)이 없지만 상(相) 따라 응현(應現)하나니 상대하여 색신을 나타냄(對現色身)이라고 불러 짓는다. 도리어 보느냐, 만약 보지 못하더라도 한가히 앉지 말아라(莫閑坐地).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이 물음은 부당(不當)하다. 묻되 시비를 앉혀버리고(坐却) 어떻게 본래인(本來人)을 합당히 얻습니까. 사왈 네가 어떻게 앉히느냐(坐). 스님이 비둘기(鳩子)의 부르짖음을 듣고 중에게 묻되 무슨 소리냐. 가로되 비둘기 소리입니다. 사왈 무간업(無間業)을 초래하지 않음을 얻고자 한다면 여래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能事; 조정사원2. 능사(能事) 능(能; 곰 능. 熊屬)은 짐승이니 근력이 있고 나무에 잘 오르며 고로 이제 그 일을 잘함을 가로되 능이라 함.
江南國主建報慈院 命師大闡宗猷 海會二千餘衆 別署導師之號 上堂 此日英賢共會 海衆同臻 諒惟佛法之趣 無不備矣 若是英鑒之者 不須待言也 然言之本無 何以默矣 是以森羅萬象 諸佛洪源 顯明則海印光澄 冥昧則情迷自惑 苟非通心上士逸格高人 則何以於諸塵中發揚妙極 卷舒物象 縱奪森羅 示生非生 應滅非滅 生滅洞已 乃曰眞常 言假則影散千途 論眞則一空絕跡 豈可以有無生滅而計之者哉 僧問 國王再請 特薦先朝 和尙今日如何擧唱 師曰 汝不是問再唱人 曰 恁麽則天上人間 無過此也 師曰 沒交涉 問 遠遠投師 請垂一接 師曰 却依舊處去
●宗猷; 禪法 猷 道也
●海會; 大衆聚集 海 人或事物積聚衆而且廣
●英賢; 德才傑出的人
●英鑒; 猶明鑒 明察 亦指明察的人
●海印; 佛所得之三昧名 如於大海中印象一切之事物 湛然於佛之智海印現一切之法也 ▲大集經十五 譬如閻浮提一切衆生身及餘外色 如是等色 海中皆有印像 以是故爲大海印 ▲寶積經二十五 如大海一切衆流悉入其中 一切諸法入法印中 亦復如是 故名海印 ▲修華嚴奧旨妄盡還源觀 言海印者 眞如本覺也 妄盡心澄 萬像齊現 猶如大海由風起浪 若風止息 海水澄淸 無像不現 ▲楞嚴經四 如我按指 海印發光 汝暫擧心 塵勞先起
●先朝; 前朝 多指上一個朝代 又指先帝
강남국주(江南國主)가 보자원(報慈院)을 건립하고 스님에게 명(命)해 종유(宗猷)를 크게 밝히게(大闡) 했는데 해회(海會)가 2천여 대중이었고 도사(導師)의 호(號)를 별서(別署)했다. 상당(上堂) 차일(此日)은 영현(英賢)이 함께 모였고(共會) 해중(海衆)이 함께 이르렀으니(同臻) 참으로(諒惟) 불법의 지취(旨趣)를 갖추지 않음이 없다. 만약 이 영감지자(英鑒之者)라면 언설(言說; 言)을 기다림을 쓰지 않으리라. 그러나 언어(言語; 言)가 본래 없거늘 무엇 때문에(何以) 침묵하겠는가. 이런 까닭으로(是以) 삼라만상이 제불의 홍원(洪源)이니 현명(顯明; 환희 밝음)하면 곧 해인(海印)의 빛이 맑고(澄) 명매(冥昧; 幽暗)하면 곧 정(情)이 미(迷)해 자혹(自惑)한다. 만약(苟) 통심(通心)의 상사(上士)나 일격(逸格)의 고인(高人)이 아니라면 곧 무엇으로써(何以) 제진(諸塵) 가운데에 묘극(妙極)을 발양(發揚)하고 물상(物象)을 권서(卷舒)하겠는가. 삼라(森羅)를 종탈(縱奪)하고 생(生)을 보이되 비생(非生)이며 멸(滅)에 응하되 비멸(非滅)이니 생멸을 꿰뚫고 나면(洞已) 이에 가로되 진상(眞常)이다. 가(假)를 말하자면 곧 그림자가 천도(千途)에 흩어지고 진(眞)을 논하자면 곧 일공(一空)인지라 자취가 끊어지거늘 어찌 가히 유무와 생멸로써 계교(計較; 計)하겠는가. 승문(僧問) 국왕이 재청(再請)함은 대개(大蓋) 선조(先朝)를 특별히 천도(薦度; 薦)하심이니 화상이 금일 어떻게 거창(擧唱)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너는 이 재창(再唱)을 묻는 사람이 아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천상과 인간에 이것을 초과할 게 없습니다. 사왈 교섭이 없다. 묻되 멀고도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했으니 청컨대 일접(一接)을 내리십시오. 사왈 도리어 구처(舊處)에 의지하러 가거라.
●宗猷; 선법(禪法). 유(猷)는 도(道)임.
●海會; 대중이 취집(聚集)함. 해(海)는 사람 혹 사물이 적취(積聚)하여 많고도 또 넓음임.
●英賢; 덕재(德才) 걸출한 사람.
●英鑒; 명감(明鑒)과 같음. 명찰(明察)임. 또한 명찰하는 사람을 가리킴.
●海印; 불타가 얻은 바의 삼매 이름임. 마치 대해 중에 일체의 사물을 인상(印象; 형상을 印을 침)함과 같이 담연(湛然)히 불타의 지해(智海)에 일체의 법을 인(印)을 쳐서 나타냄임. ▲대집경15. 비유컨대 염부제의 일체중생의 몸과 및 여외(餘外)의 색, 이와 같은 등의 색이 바다 중에 다 인상(印像)이 있음과 같나니 이런 연고로 대해인(大海印)이 된다. ▲보적경25. 마치 대해에 일체의 중류(衆流)가 모두 그 가운데 유입함과 같이 일체 제법이 법인(法印) 가운데 들어감도 또한 다시 이와 같나니 고로 이름이 해인이다. ▲수화엄오지망진환원관(1권. 唐 法藏 述). 말한 해인이란 것은 진여의 본각이다.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이 맑으면 만상이 제등히 나타남이 마치 대해가 바람으로 말미암아 파랑을 일으키다가 만약 바람이 지식(止息)하면 해수가 맑아져서 나타나지 않는 형상이 없음과 같다. ▲릉엄경4. 내가 손가락을 누를 것 같으면 해인(海印)이 빛을 내지만 너희는 잠시 마음을 들매 진로(塵勞; 번뇌)가 먼저 일어난다.
●先朝; 전조(前朝)니 다분히 위 1개 조대(朝代)를 가리킴. 또 선제(先帝)를 가리킴.
撫州崇壽院契稠禪師
泉州人也 上堂 僧問 四衆諦觀第一義 如何是第一義 師曰 何勞更問 乃曰 大衆欲知佛性義 當觀時節因緣 作麽生是時節因緣 上座如今便散去 且道有也未 若無 因甚麽便散去 若有 作麽生是第一義 上座第一義現成 何勞更觀 恁麽顯明得佛性常照 一切法常住 若見有法常住 猶未是法之眞源 作麽生是法之眞源 上座不見古人道 一人發眞歸源 十方虛空悉皆消殞 還有一法爲意解麽 古人有如是大事因緣 依而行之卽是 何勞長老多說 衆中有未知者 便請相示 僧問 法眼之燈 親然汝水 今日王侯請命 如何是法眼之燈 師曰 更請一問 問 古人見不齊處 請師方便 師曰 古人見甚麽處不齊 問 如何是佛 師曰 如何是佛 曰 如何領解 師曰 領解卽不是 問 的的西來意 師當第幾人 師曰 年年八月半中秋 問 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觀音擧上藍擧
●古人道; 首楞嚴經九云 汝等一人發眞歸元 此十方空皆悉銷殞
●汝水; 水經注 汝水出河南汝州梁縣勉鄕西天息山 上游卽今河南北汝河 [百度百科]
무주(撫州) 숭수원(崇壽院) 계조선사(契稠禪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승문(僧問) 4중(衆)이 제1의(第一義)를 체관(諦觀)합니다. 무엇이 이 제1의입니까. 사왈(師曰) 어찌 노고롭게 다시 묻느냐. 이에 가로되 대중이 불성의 뜻을 알고 싶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관찰하라. 무엇이 이 시절인연인가. 상좌가 여금에 바로 산거(散去)하면 그래 말하라 있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없다면 무엇으로 인해 바로 산거(散去)하며 만약 있다면 무엇이(作麽生) 이 제1의인가. 상좌여 제1의가 현성(現成)했거늘 어찌 노고롭게 다시 관찰하랴. 이렇게 환히 밝음(顯明)이 불성이 상조(常照)함을 얻음이며 일체법으로 상주(常住)함이다. 만약 법이 상주함이 있음을 본다면 오히려 이 법의 진원(眞源)이 아니다. 무엇이 이 법의 진원인가. 상좌가 보지 못하느냐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한 사람이 발진(發眞)하여 근원(根源)으로 돌아가면 시방 허공이 모두 다 소운(消殞; 사라져 없어짐)한다. 도리어 의해(意解)할 1법이 있느냐. 고인이 이와 같은 대사인연(大事因緣)이 있나니 의(依)하여 행해야 곧 옳거늘(是) 어찌 노고롭게 장로가 다설(多說)하리오. 중중(衆中)에 일지 못하는 자가 있거든 바로 청하노니 상시(相示)하라. 승문(僧問) 법안지등(法眼之燈)은 여수(汝水)와 친연(親然; 親密)합니다. 오늘 왕후(王侯)가 청명(請命)하시니 무엇이 법안지등입니까. 사왈 다시 일문(一問)을 청한다. 묻되 고인의 견해가 부제(不齊)한 곳을,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고인의 견해가 어느 곳이 부제(不齊)한가.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무엇이 이 부처인가. 가로되 어떻게 영해(領解)해야 합니까. 사왈 영해하면 곧 옳지(是) 못하다. 묻되 적적(的的)한 서래의에 스님은 몇 번째 사람(第幾人)에 해당(該當; 當)합니까. 사왈 해마다 8월의 반이 중추(中秋)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관음(觀音)에서 들었고(擧) 상람(上藍)에서 들었다.
●古人道; 수릉엄경9에 이르되 너희 등 한 사람이 발진귀원(發眞歸元)하면 이 시방의 허공이 모두 다 소운(銷殞; 사라져 없어지다)한다.
●汝水; 수경주(水經注) 여수(汝水)는 하남 여주 양현 면향 서쪽 천식산에서 나온다. 상유(上游; 上流)는 즉금의 하남 북쪽 여하(汝河)다 [백도백과].
金陵報恩院法安慧濟禪師
太和人也 初住曹山 上堂 知幻卽離 不作方便 離幻卽覺 亦無漸次 諸上座且作麽生會 不作方便 又無漸次 古人意在甚麽處 若會得 諸佛常現前 若未會 莫向圓覺經裏討 夫佛法亘古亘今 未甞不現前 諸上座 一切時中 咸承此威光 須具大信根 荷擔得起始得 不見佛讚猛利底人 堪爲器用 亦不賞他向善久修淨業者 要似他廣額兇屠 拋下操刀 便證阿羅漢果 直須恁麽始得 所以長者道 如將梵位直授凡庸 僧問 大衆旣臨於法會 請師不吝句中玄 師曰 謾得大衆麽 曰 恁麽則全因此問也 師曰 不用得 問 古人有言 一切法以不生爲宗 如何是不生宗 師曰 好箇問處 問 佛法中請師方便 師曰 方便了也 問 如何是古佛心 師曰 何待問
●猛利; 謂意志猛烈 根機銳利
●器用; 器皿用具 比喻人才
●廣額兇屠; 祖庭事苑五 廣額 涅槃經(19)云 波羅奈國有屠兒 名曰廣額 於日日中 殺無量羊 見舍利弗卽受八戒 經一日夜 以是因緣 命終得北方天王毘沙門子 又迦葉言 拘尸那城有旃陀羅 名曰歡喜 佛記此人 由一發心 當於此界千佛數中 速成無上正眞之道 以何等故 如來不記舍利弗目犍連等速成佛道 佛言 善男子 或有聲聞緣覺菩薩 作誓願言 我當久久護持正法 然後乃成無上佛道 以發願速故 與速記 詳觀此經 卽無我是千佛之語 恐傳言誤耳
●長者道; 新華嚴經合論二云 如將寶位直授凡庸
●凡庸; 謂凡常無奇異也 與平凡凡俗等辭同義
금릉(金陵) 보은원(報恩院) 법안(法安) 혜제선사(慧濟禪師)
태화(太和) 사람이다. 조산(曹山)에 초주(初住)했다. 상당(上堂) 환(幻)임을 알면 곧 이(離; 幻을 여읨)라서 방편을 짓지 않으며 환을 여의면 곧 각(覺)이라서 또한 점차(漸次)가 없다(원각경의 글). 제상좌여 그래 어떻게 회(會; 理會. 저본에 問으로 지었음)하느냐. 방편을 짓지 않고 또 점차도 없다 하니 고인의 뜻(意; 저본에 道로 지었음)이 어느 곳에 있느냐. 만약 회득(會得)한다면 제불이 늘 현전(見前)하려니와 만약 이회하지 못한다면 원각경 속을 향해 찾지 말아라. 무릇 불법이 긍고긍금(亘古亘今)하여 일찍이 현전(見前)하지 않음이 없으며(未) 제상좌(諸上座)가 일체의 시중(時中)에 모두(咸) 이 위광(威光)을 승수(承受)하거니와 모름지기 대신근(大信根)을 갖추어 하담(荷擔)하여 일으킴을 얻어야 비로소 옳다. 보지 못하느냐, 불타가 찬탄하되 맹리(猛利)한 사람이라야 가히(堪) 기용(器用)이 된다 했으며 또한 그가 향선(向善)하며 정업(淨業)을 구수(久修)하는 자를 칭찬하지(賞) 않았다. 요컨대 저(他) 광액흉도(廣額兇屠)가 조도(操刀; 잡은 칼)를 던져 떨어뜨리고 바로 아라한과를 증득함과 같아야(似) 하리니 바로 꼭 이러해야 비로소 옳다. 소이로 장자가 말하되(長者道) 마치 범위(梵位)를 가지고 바로 범용(凡庸)에게 줌과 같다. 승문(僧問) 대중이 이미 법회에 임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구중현(句中玄)을 아끼지(吝) 마십시오. 사왈(師曰) 대중을 속임을 얻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전부 차문(此問)을 인(因)함입니다. 사왈 얻음을 쓰지 말아라(不用得). 묻되 고인이 말씀이 있어 일체법은 불생(不生)으로써 종(宗)을 삼는다. 무엇이 이 불생의 종입니까. 사왈 호개(好箇)의 문처(問處)다. 묻되 불법 중에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방편을 마쳤다(方便了也). 묻되 무엇이 이 고불심(古佛心)입니까. 사왈 어찌 물음을 기다리겠는가.
●猛利; 이르자면 의지(意志)가 맹렬하고 근기가 예리함.
●器用; 기명(器皿; 그릇)의 용구(用具). 인재(人才)에 비유.
●廣額兇屠; 조정사원5. 광액(廣額) 열반경(19)에 이르되 바라나국에 도아(屠兒; 屠는 죽일 도. 兒는 조사. 곧 白丁)가 있었으니 이름해 가로되 광액이다. 날마다의 가운데에 무량한 양을 도살했다. 사리불을 뵙고 곧 8계(戒)를 받아 한 낮과 밤을 경과했다. 이 인연으로써 목숨을 마쳐 북방의 천왕인 비사문(毘沙門; 4천왕 중의 하나)의 아들이 되었다. 또 가섭이 말하되 구시나성에 전다라(旃陀羅)가 있었으니 이름해 가로되 환희입니다. 불타가 이 사람에게 수기(授記)하시되 한 번 발심함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이 세계의 천불의 수 가운데라 속히 위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얻는다 하시고 무엇 등의 연고로써 여래가 사리불과 목건련 등에게는 속히 불도를 이룬다고 수기하지 않으십니까. 불타가 말씀하시되 선남자여, 혹은 성문ㆍ연각ㆍ보살이 있어 서원을 지어 말하되 나는 마땅히 오래오래 정법을 호지한 연후에 이에 위없는 불도를 이루리라 하나니 발원이 신속함을 쓰는 연고로 속기(速記)를 주느니라(또 가섭이 말하되 이하는 열반경10에 나오는 말). 상세히 이 경을 보건대 곧 나도 이 천불이란 말이 없나니 전언(傳言)의 오류인가 염려됨.
●長者道; 신화엄경합론2에 이르되 마치 보위(寶位)를 가지고 바로 범용(凡庸)에게 줌과 같다.
●凡庸; 이르자면 범상(凡常)하여 기이함이 없음. 평범, 범속(凡俗) 등의 말과 같은 뜻.
江南國主請居報恩 署號攝衆 上堂 謂衆曰 此日奉命令住持當院 爲衆演法 適來見維那白槌了 多少好 令敎當觀第一義 且作麽生是第一義 若這裏參得多少省要 如今別更說箇甚麽卽得 然承恩旨 不可杜默去也 夫禪宗示要 法爾常規 圓明顯露 亘古亘今 至于達磨西來 也祇與諸人證明 亦無法可得與人 祇道直下是 便敎立地搆取 古人雖則道立地搆取 如今坐地還搆得也無 有疑請問 僧問 三德奧樞從佛演 一音玄路請師明 師曰 汝道有也未 問 如何是報恩境 師曰 大家見汝問 開寶中 示滅於本院
●坐地; 坐 坐著 地後綴
●奧樞; 猶樞機 關鍵
강남국주(江南國主)의 청으로 보은(報恩)에 거주했고 서호(署號)하여 섭중(攝衆)이라 했다. 상당(上堂)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날 봉명(奉命)했으니 당원(當院)에 주지하며 대중을 위해 연법(演法)하게 하셨다. 아까 유나가 백추(白槌)한 것을 보매 다소 좋나니 마땅히 제1의(第一義)를 관(觀)하게 했는데 그래 무엇이 이 제1의인가. 만약 이 속에서 참득(參得)한다면 다소 성요(省要)이거늘 여금에 따로 저(箇) 무엇을 갱설(更說)해야 곧 옳겠는가. 그러나 은지(恩旨; 恩典)를 승수(承受)했으니 두묵(杜默; 침묵)함은 옳지 못하다. 무릇 선종의 시요(示要)는 법이 그러하여(法爾) 상규(常規)니 원명(圓明)히 현로(顯露)하여 긍고긍금(亘古亘今)한다. 달마가 서래함에 이르러 또한 다만 제인에게 증명해 주었으되 또한 법을 가히 얻어 사람에게 줌이 없었다. 다만 말하되 직하(直下)가 이것이라 하여 바로(便) 입지(立地)에 구취(搆取; 領會)하게 하였다. 고인이 비록 곧 말하되 입지에 구취하라 했으나 여금에 좌지(坐地)에 도리어 구득(搆得; 領會)하느냐 또는 아니냐. 의심이 있거든 청문(請問)하라. 승문(僧問) 3덕(德)의 오추(奧樞)는 불타의 연설을 좇거니와 1음(音)의 현로(玄路)는 스님의 설명(說明; 明)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네가 말하라 있느냐 또는 아니냐. 묻되 무엇이 이 보은경(報恩境)입니까. 사왈 대가(大家; 대중)가 너의 질문을 본다. 개보(開寶; 968-976) 중 본원(本院)에서 시멸(示滅)했다.
●坐地; 좌(坐)는 좌착(坐著)이며 지(地)는 후철.
●奧樞; 추기(樞機)와 같음. 관건(關鍵)임.
廬州長安院延規禪師
僧問 如何是庵中主 師曰 汝到諸方 但道從長安來
여주(廬州) 장안원(長安院) 연규선사(延規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암중주(庵中主)입니까. 사왈(師曰) 네가 제방에 이르거든 단지 말하되 장안으로 좇아왔다 하라.
南康軍雲居山淸錫禪師
泉州人也 僧問 如何是雲居境 師曰 汝喚甚麽作境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適來向汝道甚麽 後住泉州西明院 有廖天使入院 見供養法眼和尙眞 乃問曰 眞前是甚麽果子 師曰 假果子 天使曰 旣是假果子 爲甚麽將供養眞 師曰 也祇要天使識假 僧問 如何是佛 師曰 容顔甚奇妙
남강군(南康軍) 운거산(雲居山) 청석선사(淸錫禪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운거경(雲居境)입니까. 사왈 네가 무엇을 일러 경(境)이라 하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아까 너를 향해 무어라고 말했느냐. 후에 천주(泉州) 서명원(西明院)에 주(住)했다. 유천사(廖天使)가 있어 입원(入院)하여 법안화상(法眼和尙)의 진(眞; 肖像)에 공양함을 보고 이에 문왈(問曰) 진전(眞前)에 이 무슨 과자(果子)입니까. 사왈 가과자(假果子)입니다. 천사가 가로되 이미 이 가과자이거늘 무엇 때문에 가져다(將) 진(眞)에 공양합니까. 사왈 또한 다만 천사가 가(假)를 알기를 요합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용안(容顔)이 심히 기묘(奇妙)하다.
常州正勤院希奉禪師
蘇州謝氏子 上堂 古聖道 圓同太虛 無欠無餘 又道 一一法一一宗 衆多法一法宗 又道 起唯法起 滅唯法滅 又道 起時不言我起 滅時不言我滅 據此說話 屈滯久在叢林上座 若是初心兄弟 且須體道 人身難得 正法難聞 莫同等閑 施主衣食 不易消遣 若不明道 箇箇盡須還他 上座要會道麽 珍重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甚麽處得這箇消息 問 如何是諸法空相 師曰 山河大地 問 僧衆雲集 請師擧唱宗乘 師曰 擧來久矣 問 佛法付囑國王大臣 今日正勤將何付囑 師曰 萬歲萬歲 問 古人有言 山河大地是汝眞善知識 如何得山河大地爲善知識去 師曰 汝喚甚麽作山河大地 問 如何是合道之言 師曰 汝問我答 問 靈山會上 迦葉親聞 未審今日誰人得聞 師曰 迦葉親聞箇甚麽 問 古佛道場 學人如何得到 師曰 汝今在甚麽處 問 如何是和尙圓通 師敲禪牀三下 問 如何是脫却根塵 師曰 莫妄想 問 人王法王 是一是二 師曰 人王法王 問 如何是諸法寂滅相 師曰 起唯法起 滅唯法滅 問 如何是未曾生底法 師曰 汝爭得知 問 無著見文殊 爲甚麽不識 師曰 汝道文殊還識無著麽 問 得意誰家新曲妙 正勤一句請師宣 師曰 道甚麽 曰 豈無方便也 師曰 汝不會我語
●屈滯; 一久居下位 二形容語言艱澀
상주(常州) 정근원(正勤院) 희봉선사(希奉禪師).
소주(蘇州) 사씨(謝氏)의 아들이다. 상당(上堂) 고성(古聖; 3조)이 말하되 원만하기가 태허(太虛)와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또 말하되 하나하나의 법이 하나하나의 종(宗)이며 중다(衆多)한 법이 일법(一法)의 종(宗)이다. 또 말하되 일어남은 오직 법이 일어남이며 멸함은 오직 법이 멸함이다. 또 말하되 일어날 때 내가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고 멸할 때 내가 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설화(說話)에 의거하자면 총림에 오래 있은 상좌를 굴체(屈滯)케 한다. 만약 이 초심의 형제일진대 다만 꼭 도를 체달(體達)해야 하나니 인신(人身)은 얻기 어렵고 정법은 듣기 어렵다. 등한(等閑)함과 같지 말아야 하나니 시주(施主; 저본에 施王으로 지었음)의 의식(衣食)은 소견(消遣; 消除)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도를 밝히지 못한다면 개개(箇箇)가 모두 그에게 상환(償還)함을 써야(須) 한다. 상좌가 도를 알고자 하느냐, 진중(珍重).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어느 곳에서 저개(這箇) 소식을 얻었느냐. 묻되 무엇이 이 제법의 공상(空相)입니까. 사왈 산하대지다. 묻되 승중(僧衆)이 운집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종승(宗乘)을 거창(擧唱)하십시오. 사왈 들어 온(擧來) 지 오래되었다. 묻되 불법을 국왕과 대신에게 부촉한다 하니 금일 정근(正勤; 正勤院)은 무엇을 가져 부촉합니까. 사왈 만세, 만세. 묻되 고인이 말씀이 있어 산하대지가 이 너의 참다운 선지식이다 했거니와 어찌해야 산하대지가 선지식이 됨을 얻습니까. 사왈 네가 무엇을 일러 산하대지라 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도에 합하는 말입니까. 사왈 네가 묻고 내가 답한다. 묻되 영산회상에선 가섭이 친문(親聞)했습니다만 미심하오니 금일은 어떤 사람(誰人)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 가섭이 저(箇) 무엇을 친문했는가. 묻되 고불의 도량에 학인이 어떻게 득도(得到)합니까. 사왈 네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원통(圓通)입니까. 스님이 선상을 세 번(三下) 두드렸다. 묻되 무엇이 이 근진(根塵)을 탈각(脫却)함입니까. 사왈 망상하지 말아라. 묻되 인왕(人王)과 법왕이 이 하나입니까 이 둘입니까. 사왈 인왕이며 법왕이다. 묻되 무엇이 이 제법의 적멸상(寂滅相)입니까. 사왈 일어남은 오직 법이 일어남이며 멸함은 오직 법이 멸함이다. 묻되 무엇이 이 일찍이 생하지 않은 법입니까. 사왈 네가 어찌 득지(得知)하겠는가. 묻되 무착이 문수를 보고 무엇 때문에 알지 못했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문수는 도리어 무착을 알았느냐. 묻되 득의(得意)한 뉘집의 신곡(新曲)이 묘하거니와 정근(正勤)의 1구를 청컨대 스님이 선설(宣說)하십시오.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가로되 어찌 방편이 없겠습니까. 사왈 너는 나의 말을 알지 못한다.
●屈滯; 1. 하위(下位)에 구거(久居)함. 2. 어언이 간삽(艱澀; 流暢하지 못함)함을 형용.
漳州羅漢智依宣法禪師
上堂 盡十方世界 無一微塵許法 與汝作見聞覺知 還信麽 然雖如此 也須悟始得 莫將爲等閑 不見道 單明自己 不悟目前 此人祇具一隻眼 還會麽 僧問 纖塵不立 爲甚麽好醜現前 師曰 分明記取 別處問人 問 大衆雲集 誰是得者 師曰 還曾失麽 問 如何是佛 師曰 汝是行脚僧 問 如何是寶壽家風 師曰 一任觀看 曰 恁麽則大衆有賴 師曰 汝作麽生 曰 終不敢謾大衆 師曰 嫌少作麽 問僧 受業在甚麽處 曰 在佛跡 師曰 佛在甚麽處 曰 甚麽處不是 師擧起拳曰 作麽生 曰 和尙收取 師曰 放闍黎七棒 問僧 今夏在甚麽處 僧曰 在無言上座處 師曰 還曾問訊他否 僧曰 也曾問訊 師曰 無言作麽生問得 僧曰 若得無言 甚麽處不問得 師喝曰 恰似問老兄 師與彦端長老喫餠餤 端曰 百種千般 其體不二 師曰 作麽生是不二體 端拈起餠餤 師曰 祇守百種千般 端曰 也是和尙見處 師曰 汝也是羅公詠梳頭樣 師將示滅 乃謂衆曰 今晩四大不和暢 雲騰鳥飛 風動塵起浩浩地 還有人治得麽 若治得 永劫不相識 若治不得 時時常見我 言訖告寂
●餠餤; 餠類食品
장주(漳州) 라한(羅漢) 지의(智依) 선법선사(宣法禪師)
상당(上堂) 온 시방세계에 1미진만큼(微塵許)의 법이라도 너희에게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지어 줌이 없나니 도리어 믿느냐.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또한 모름지기 깨달아야 비로소 옳나니 장차 등한(等閑)으로 삼지 말아라. 말함을 보지 못했는가, 자기를 홑으로 밝히고 목전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다만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 도리어 아느냐. 승문(僧問) 섬진(纖塵)도 세우지 않거늘 무엇 때문에 호추(好醜)가 현전합니까. 사왈 분명히 기취(記取)했다가 다른 곳에서 사람에게 물어라. 묻되 대중이 운집했는데 누가 이 득자(得者)입니까. 사왈 도리어 일찍이 잃었느냐.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너는 이 행각승이다. 묻되 무엇이 이 보수(寶壽)의 가풍입니까. 사왈 관간(觀看)하는 대로 일임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신뢰함이 있습니다. 사왈 너는 어떠한가. 가로되 마침내 감히 대중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사왈 적음을 싫어해(嫌少) 무엇하랴. 중에게 묻되 수업(受業; 受業師)은 어느 곳에 있는가. 가로되 불적(佛迹)에 있습니다. 사왈 불(佛)은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어느 곳인들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스님이 주먹을 들어 일으키며 가로되 무엇인가(作麽生). 가로되 화상이 수취(收取)하십시오. 가로되 사리(闍闍)에게 7방(棒) 놓는다. 중에게 묻되 금년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승왈(僧曰) 무언(無言) 상좌의 처소에 있었습니다. 사왈 도리어 일찍이 그에게 문신(問訊)했느냐. 가로되 또한 일찍이 문신했습니다. 사왈 무언이거늘 어떻게 물음을 얻느냐. 가로되 만약 무언을 얻었다면 어느 곳엔들 물음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스님이 할(喝)하고 가로되 노형(老兄)에게 물음과 흡사하다. 스님이 언단(彦端) 장로와 더불어 병담(餠餤)을 먹는데 언단이 가로되 백종천반(百種千般)이 그 체(體)가 둘이 아니다. 사왈 무엇이(作麽生) 이 둘이 아닌 체인가. 언단이 병담을 집어 일으켰다. 사왈 다만 백종천반을 지키는구나. 언단이 가로되 또한 이는 화상의 견처다. 사왈 너는 또한 이 나공이 빗을 읊는(羅公詠梳頭) 양상(樣相; 樣)이다. 스님이 장차 시멸하려 하자 이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오늘 저녁 4대(大)가 화창(和暢)하지 못하니 운등조비(雲騰鳥飛)하고 풍동진기(風動塵起)함이 호호지(浩浩地)다. 도리어 어떤 사람이 치료함을 얻겠는가. 만약 치료함을 얻으면 영겁토록 서로 알지 못할 것이며 만약 치료함을 얻지 못한다면 시시(時時)로 늘 나를 보리라. 말을 마치자 고적(告寂)했다.
●餠餤; 병류(餠類)의 식품.
金陵鍾山章義院道欽禪師
太原人也 初住盧山棲賢 上堂 道遠乎哉 觸事而眞 聖遠乎哉 體之則神 我尋常示汝 何不向衣鉢下坐地 直下參取 須要上來 討箇甚麽 旣上來 我卽事不獲已 便擧古德少許方便 抖擻些子龜毛兔角 解落向汝 諸上座欲得省要 僧堂裏三門下寮舍裏參取好 還有會處也未 若有會處 試說看 與上座證明 僧問 如何是棲賢境 師曰 棲賢有甚麽境 問 古人拈椎竪拂 還當宗乘中事也無 師曰 古人道了也 問 學人乍入叢林 乞和尙指示 師曰 一手指天 一手指地
금릉(金陵) 종산(鍾山) 장의원(章義院) 도흠선사(道欽禪師)
태원(太原) 사람이며 여산(廬山) 서형(棲賢)에 초주(初住)했다. 상당(上堂) 도가 멀다 하겠는가, 사물에 부딪히면(觸事) 진(眞)이며 성(聖)을 멀다 하겠는가, 이를 체득하면(體之) 곧 신(神)이다. 내가 심상(尋常)에 너희에게 보이되 왜 의발하(衣鉢下)의 좌지(坐地)를 향해 직하(直下)에 참취(參取)하지 않느냐. 요컨대 올라옴을 써서 저(箇) 무엇을 찾느냐(討). 이미 올라왔으니 내가 즉사(卽事)하여 불획이(不獲已)해 바로 고덕의 소허(少許)의 방편을 들겠다. 사자(些子)의 귀모토각(龜毛兔角)을 두수(抖擻; 떨치다)하니 너희를 향해 떨어질 줄 안다. 제상좌여 성요(省要)를 얻고자 하느냐, 승당 속ㆍ삼문(三門) 아래ㆍ요사(寮舍) 속에서 참취(參取)해야 좋으니라. 도리어 아는 곳(會處)이 있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아는 곳이 있다면 시험 삼아 설해 보아라. 상좌에게 증명해 주겠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현경(棲賢境)입니까. 사왈(師曰) 서현에 무슨 경(境)이 있겠는가. 묻되 고인이 염추수불(拈椎竪拂)함은 도리어 종승(宗乘) 중의 일에 당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고인이 말해 마쳤다. 묻되 학인이 처음(創) 총림에 들었으니 화상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킨다.
後江南國主請居章義道場 上堂 總來這裏立作甚麽 善知識如河沙數 常與汝爲伴 行住坐臥 不相捨離 但長連牀上穩坐地 十方善知識自來參 上座何不信取 作得如許多難易 他古聖嗟見今時人不奈何 乃曰 傷夫人情之惑久矣 目對眞而不覺 此乃嗟汝諸人看却不知 且道看却甚麽不知 何不體察古人方便 祇爲信之不及 致得如此 諸上座但於佛法中留心 無不得者 無事體道去 便下座 僧問 百年暗室 一燈能破時如何 師曰 莫謾語 問 佛法還受變異也無 師曰 上座是 僧問 大衆雲集 請師擧揚宗旨 師曰 久矣 問 如何是玄旨 師曰 玄有甚麽旨
후에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청하여 스님이 장의도량(章義道場)에 거주했다. 상당(上堂) 모두(總) 이 속으로 와, 서서 무엇하려느냐. 선지식이 하사수(河沙數)와 같으며 늘 너희에게 반려가 되어 주면서 행주좌와에 서로 사리(捨離)하지 않는다. 단지 장련상상(長連牀上)의 온좌지(穩坐地)에 시방의 선지식이 스스로 내참(來參)하거늘 상좌가 왜 신취(信取)하지 않고 허다한 것 같은 난이(難易)를 작득(作得)하느냐. 그(他) 고성(古聖)이, 금시의 사람이 어찌하지 못함(不奈何)을 탄식(歎息; 嗟)하며 보고 이에 가로되 인정지감(人情之感)이 상한 지(傷夫) 오래되었다. 눈이 대진(對眞)하고도 깨닫지 못하니 이것이 곧(乃) 너희 제인이 간각(看却)하고도 알지 못함을 탄식함이다. 그래 말하라, 무엇을 간각하고도 알지 못하느냐. 왜 고인의 방편을 체찰(體察; 體會하고 觀察함)하지 않느냐. 다만 믿음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와 같음을 치득(致得; 이르게 하다)한다. 제상좌(諸上座)가 단지 불법 중에 유심(留心)하면 얻지 못할 자가 없다. 무사하니 체도(體道; 도를 體會)하라. 바로 하좌했다. 묻되 백 년 암실을 1등(燈)으로 능히 깨뜨릴 때 어떻습니까. 사왈 속이는 말(謾語)을 하지 말아라. 묻되 불법이 도리어 변이(變異)를 받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상좌가 이것이다. 승문 대중이 운집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종지(宗旨)를 거양(擧揚)하십시오. 사왈 오래되었다. 묻되 무엇이 이 현지(玄旨)입니까. 사왈 현(玄)에 무슨 지(旨)가 있겠는가.
金陵報恩匡逸禪師
明州人也 江南國主請居上院 署凝密禪師 上堂 顧視大衆曰 依而行之 卽無累矣 還信麽 如太陽赫弈皎然地 更莫思量 思量不及 設爾思量得及 喚作分限智慧 不見先德云 人無心合道 道無心合人 人道旣合 是名無事人 且自何而凡 自何而聖 於此若未會 可謂爲迷情所覆 便去離不得 迷時卽有窒礙 爲對爲待 種種不同 忽然惺去 亦無所得 譬如演若達多認影迷頭 豈不擔頭覓頭 然正迷之時 頭且不失 及乎悟去 亦不爲得 何以故 人迷謂之失 人悟謂之得 得失在於人 何關於動靜 僧問 諸佛說法 普潤群機 和尙說法 甚麽人得聞 師曰 祇有汝不聞 問 如何是報恩一句 師曰 道不是得麽 問 十二時中思量不到處 如何行履 師曰 汝如今在甚麽處 問 祖師西來 如何擧唱 師曰 不違所請 問 如何是一句 師曰 我答爭似汝擧 問 佛爲一大事因緣出世 未審和尙出世如何 師曰 恰好 曰 恁麽則大衆有賴 師曰 莫錯會
●赫奕; 一光輝炫耀貌 二顯赫貌 美盛貌
금릉(金陵) 보은(報恩) 광일선사(匡逸禪師)
명주(明州) 사람이다.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청하여 상원(上院)에 거주했고 서(署)하여 응밀선사(凝密禪師)라 했다. 상당(上堂) 대중을 돌아보고 가로되 의(依)하여 행하면 곧 누(累)가 없나니 도리어 믿느냐. 태양이 혁혁(赫奕)하여 교연지(皎然地)와 같나니 다시 사량(思量)하지 말아라, 사량이 미치지 못한다. 설사 너희가 사량하여 미침을 얻더라도 분한(分限)의 지혜라고 불러 짓는다. 보지 못하느냐, 선덕(先德)이 이르되 사람이 무심해야 도와 합하고 도가 무심해야 사람과 합한다. 사람과 도가 이미 합했으니 이 이름이 무사인(無事人)이다. 또(且) 어디로부터(自何) 범(凡)이며 어디로부터 성(聖)인가. 이것을 만약 알지 못한다면(未會) 가히 이르나니 미정(迷情)에 덮인 바가 되어 바로 거리(去離; 떨어져 떠남)함을 얻지 못한다. 미시(迷時)에 곧 질애(窒礙)가 있어 대(對)가 되고 대(待)가 되어 갖가지로 부동(不同)하거니와 홀연히 깨닫더라도(惺去) 또한 소득이 없다. 비유컨대 연야달다(演若達多)가 그림자를 인정하여 머리로 삼음과 같나니 어찌 머리를 지고 머리를 찿음(擔頭覓頭)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바로 미(迷)했을 때 머리는 또(且) 잃지 않았고 오거(悟去)함에 이르러서도 또한 얻음이 되지 않는다. 무슨 연고냐, 사람이 미(迷)함을 일컬어 실(失)이라 하고 사람이 오(悟)함을 일컬어 득(得)이라 하거니와 득실은 사람에게 있거늘 어찌 동정(動靜)에 상관되겠는가. 승문(僧問) 제불이 설법(設法)하여 군기(群機)를 널리 윤택케 하거니와 화상이 설법(設法)하매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師曰) 다만 네가 듣지 못함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보은(報恩)의 1구입니까. 사왈 이것이 아니라고 말함을(道不是) 얻겠느냐. 묻되 12시 중에 사량(思量)이 이르지 않는 곳을 어떻게 행리(行履)합니까. 사왈 네가 여금에 어느 곳에 있느냐. 묻되 조사(祖師; 저본에 祖嗣로 지었음)가 서래하여 어떻게 거창(擧唱)했습니까. 사왈 소청(所請)에 거스르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1구입니까. 사왈 나의 답이 너의 거(擧)와 어찌 같겠는가. 묻되 부처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 출세하셨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의 출세는 어떻습니까. 사왈 흡호(恰好)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착회(錯會)하지 말아라.
●赫奕; 1. 광휘(光輝)가 현요(炫耀)한 모양. 2. 현혁(顯赫)한 모양. 미성(美盛)한 모양.
金陵報慈文遂導師
杭州陸氏子 甞究首楞嚴 甄會眞妄緣起本末精博 於是節科注釋 文句交絡 厥功旣就 謁於法眼 述己所業 深符經旨 眼曰 楞嚴豈不是有八還義 師曰 是 曰 明還甚麽 師曰 明還日輪 曰 日還甚麽 師懵然無對 眼誡令焚其所注之文 師自此服膺請益 始忘知解 金陵國主署雷音覺海大導師
●精博; 精深博大
●八還; 八還辨見 諸變化相 各還本所因處 有八種也 楞嚴經二曰 阿難汝咸看此諸變化相 吾今各還本所因處 云何本因 阿難此諸變化 明還日輪 何以故 無日不明 明因屬日 是故還日 暗還黑月 通還戶牖 擁還牆宇 緣還分別 頑虛還空 欝𡋯還塵 淸明還霽 則諸世間一切所有 不出斯類 汝見八種見精明性 當欲誰還 何以故 若還於明 則不明時無復見暗 雖明暗等種種差別 見無差別 諸可還者自然非汝 不汝還者非汝而誰 則知汝心本妙明淨 汝自迷悶喪本受輪 於生死中常被漂溺 是故如來名可憐愍
금릉(金陵) 보자(報慈) 문수도사(文遂導師)
항주(杭州) 육씨(陸氏)의 아들이다. 일찍이 수릉엄(首楞嚴)을 탐구(探究)했고 진망(眞妄) 연기(緣起)의 본말을 견회(甄會; 밝게 理會)하고 정박(精博)했다. 이에 절과(節科)를 주석(注釋)하여 문구(文句)가 교락(交絡)했다. 그 공(厥功)을 이미 이루자 법안(法眼)을 참알하여 자기의 소업(所業; 작업한 바)을 진술했는데 깊이 경지(經旨)에 부합(符合)했다. 법안이 가로되 릉엄에 어찌 이 팔환(八還)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사왈(師曰) 그렇습니다. 가로되 명(明)은 어디로(甚麽) 돌아가는가. 사왈 명은 일륜(日輪)으로 돌아갑니다. 가로되 일(日)은 어디로 돌아가는가. 스님이 몽연(懵然)하여 대답이 없었다. 법안이 훈계(訓誡)하면서 그 소주지문(所注之文)을 분(焚; 불사르다. 저본에 禁으로 지었음)하게 했다. 스님이 이로부터(自此; 저본에 自有로 지었음) 복응(服膺)하며 청익했고 비로소 지해(知解)를 잊었다. 금릉국주(金陵國主)가 서(署)하여 뇌음각해대도사(雷音覺海大導師)라 했다.
●精博; 정심(精深)하고 박대(博大)함.
●八還; 팔환변견(八還辨見)이니 모든 변화의 모양은 각각 본래 인했던 바의 곳으로 돌아가나니 8종이 있음. 릉엄경2에 가로되 아난아, 네가 이 모든 변화의 모양을 다 보거니와 내가 이제 본래 인했던 바의 곳으로 돌리겠다. 무엇이 본인(本因)인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는 밝음은 일륜으로 돌아간다. 무슨연고인가.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나니 밝음의 인(因)은 해에 속한다. 이런 고로 해로 돌아간다. 어둠은 흑월(黑月)로 돌아가고 통(通)은 호유(戶牖; 문)로 돌아가고 옹색(壅塞; 擁)은 장우(牆宇; 宇는 屋邊)로 돌아가고 연(緣)은 분별로 돌아가고 완허(頑虛)는 허공으로 돌아가고 울발(欝𡋯; 𡋯은 티끌)은 티끌로 돌아가고 청명(淸明)은 갬(霽)으로 돌아간다. 곧 모든 세간의 일체 소유가 이 종류를 벗어나지 않는다. 네가 보는 8종의 견정명성(見精明性)은 마땅히 누구에게 돌리려 하느냐. 무슨 연고인가 하면 만약 밝음으로 돌린다면 곧 밝지 않을 때엔 다시 어둠을 보지 못한다. 비록 명암 등이 갖가지로 차별이지만 견(見)은 차별이 없다. 모든 가히 돌려주는 것은 자연히 네가 아니지만 네가 돌려주지 못하는 것은 네가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곧 알지니 너의 마음은 본래 묘하고 명정(明淨)하지만 네가 스스로 미민(迷悶)하여 근본을 상실하고 윤회를 받아 생사 중에 늘 표닉(漂溺)함을 입는다. 이런 고로 여래가 이름해 가히 연민(憐愍)이라 한다.
上堂 天人群生類 皆承此恩力 威權三界 德被四方 共稟靈光 咸稱妙義 十方諸佛常頂戴 汝誰敢是非及乎 向這裏 喚作開方便門 對根設敎 便有如此 如彼流出無窮 若能依而奉行 有何不可 所以淸涼先師道 佛是無事人 且如今覓箇無事人也不可得 僧問 巔山巖崖 還有佛法也無 師曰 汝喚甚麽作巔山巖崖 問 如何是道 師曰 妄想顚倒 乃曰 老僧平生 百無所解 日日一般 雖住此間 隨緣任運 今日諸上座與本無異 珍重
상당(上堂) 천(天)ㆍ인(人) 군생류(群生類)가 모두 이 은력(恩力)을 승수(承受)하나니 위(威)는 3계(界)를 장악(掌握; 權)하고 덕(德)은 사방(四方)에 미치며(被) 함께(共) 영광(靈光)을 받아(稟) 모두(咸) 묘의(妙義)라고 일컫는다(稱). 시방제불이 늘 정대(頂戴)하거늘 너희의 누가 감히 시비를 언급(言及; 及)하겠는가. 이 속을 향해 방편문을 열었다고 불러 짓나니 대근(對根)하여 설교(設敎)하는지라 바로 이와 같음이 있으며 그 유출(流出)이 무궁함과 같다. 만약 능히 의(依)하여 봉행한다면 어떤 불가(不可)함이 있으리오. 소이로 청량선사(淸涼先師; 文益)가 말하되 부처는 이 무사인(無事人)이거늘 다만(且) 여금에 저(箇) 무사인을 찾으면 또한 불가득이다. 승문(僧問) 전산암애(巔山巖崖)에 도리어 불법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네가 무엇을 일러 전산암애라 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망상으로 전도(顚倒)됨이다. 이에 가로되 노승은 평생 온갖 아는 바가 없나니(百無所解) 날마다 일반(一般)으로 비록 차간(此間)에 거주하지만 수연(隨緣)하여 임운(任運)한다. 금일 제상좌(諸上座)는 본래와 다름이 없다. 진중(珍重)하라.
僧問 如何是無異底事 師曰 千差萬別 僧再問 師曰 止止不須說 且會取千差萬別 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方丈板門扇 問 如何是無相道場 師曰 四郞五郞廟 問 如何是吹毛劒 師曰 簳麵杖 問 如何是正直一路 師曰 遠遠近近 曰 便恁麽去時如何 師曰 咄哉 癡人 此是險路 問僧 從甚麽處來 曰 曹山來 師曰 幾程到此 曰 七程 師曰 行却許多山林谿㵎 何者是汝自己 曰 總是 師曰 衆生顚倒 認物爲己 曰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總是 乃曰 諸上座 各在此經冬過夏 還有人悟自己也無 山僧與汝證明 令汝眞見不被邪魔所惑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好箇師僧 眼目甚分明
●方丈板; 懸於方丈室前之板
●程; 里程 距離 字彙 程 驛程道里也 淸代顧炎武日知錄十 凡陸行之程 馬日七十里 步及驢五十里 車三十里
승문 무엇이 이 다름이 없는 일(無異底事)입니까. 사왈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중이 재문(再問)하자 사왈 그쳐라, 그쳐라, 설함을 쓰지 않으리니 다만(且) 천차만별을 회취(會取)하라.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방장판(方丈板)과 문선(門扇; 문짝)이다. 묻되 무엇이 이 무상도량(無相道場)입니까. 사왈 사랑오랑(四郞五郞)의 묘(廟)다.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劒)입니까. 사왈 간면장(簳麫杖; 簳은 볏줄기)이다. 묻되 무엇이 이 정직(正直)한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먼 데는 멀고 가까운 데는 가깝다(遠遠近近).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돌재(咄哉) 치인(癡人)아, 이것이 이 험로(險路)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가로되 조산(曹山)에서 왔습니다. 사왈 몇 정(程) 만에 여기에 이르렀는가. 가로되 7정(程)입니다. 사왈 허다한 산림과 계간(谿㵎)을 행각(行却)했거니와 무엇이(何者) 이 너의 자기인가. 가로되 모두 이것입니다(總是). 사왈 중생이 전도(顚倒)하여 사물을 인정해 자기로 삼는구나(認物爲己). 가로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모두 이것이다. 이에 가로되 제상좌(諸上座)가 각자 여기에 있으면서 경동과하(經冬過夏)하거니와 도리어 어떤 사람이 자기를 깨쳤느냐 또는 아니냐. 산승이 너에게 증명해 주어 너로 하여금 참으로 보아서 사마(邪魔)의 혹란(惑亂)하는 바를 입지 않게 하겠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호개(好箇)의 사승(師僧)이 안목이 심히 분명하구나.
●方丈板; 방장실 앞에 매단 판.
●程; 이정(里程). 거리. 자휘 정(程) 역정(驛程)의 도리(道里)다. 청대 고염무의 일지록10 무릇 육행(陸行)의 정(程)은 말은 하루에 70리며 도보 및 나귀는 50리며 수레는 30리다.
漳州羅漢院守仁禪師
泉州人也 上堂 祇據如今 誰欠誰剩 然雖如此 猶是第二義門 上座若明達得去 也且是一是二 更須子細看 僧問 如何是祖師西來的的意 師曰 卽今是甚麽意 問 如何是涅槃 師曰 生死 曰 如何是生死 師曰 適來道甚麽 僧衆晩參 師曰 物物本來無處所 一輪明月印心池 便歸方丈
장주(漳州) 라한원(羅漢院) 수인선사(守仁禪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상당(上堂) 다만 여금에 의거하거늘 누가 모자라며 누가 남는가.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오히려 이는 제2의문(第二義門)이다. 상좌가 만약 명달(明達)하여 얻어 간다면 또한 다만(也且) 이 하나인가 이 둘인가. 다시 자세히 봄을 써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祖師西來)의 적적(的的; 확실)한 뜻입니까. 사왈(師曰) 즉금은 이 무슨 뜻인가. 묻되 무엇이 이 열반입니까. 사왈 생사(生死)다. 가로되 무엇이 이 생사입니까. 사왈 아까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승중(僧衆)이 만참(晩參)하자 사왈 물건마다 본래 처소가 없나니 일륜(一輪) 명월이 심지(心池)에 인(印)을 친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次住報恩 上堂 報恩這裏不曾與人揀話 今日與諸上座揀一兩則話 還願樂麽 諸上座 鶴脛長 鳬脛短 甘草甜 黃蘗苦 恁麽揀辨 還愜雅意麽 諸上座 莫是血脉不通 泥水有隔麽 且莫錯會 珍重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喚甚麽作西來意 曰 恁麽則無西來也 師曰 由汝口頭道 問 如何是報恩家風 師曰 無汝著眼處 問 學人未委稟承 請師方便 師曰 莫相孤負麽 曰 恁麽則有師資之分也 師曰 叢林見多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向汝道甚麽 問 如何是無生之相 師曰 捨身受身 曰 恁麽則生死無過也 師曰 料汝恁麽會 又曰 人人皆備理 一一盡圓常 僧便問 如何是圓常之理 師曰 無事不參差 曰 恁麽則縱橫法界也 師曰 巧道有何難 問 如何是不到三寸 師曰 你問我答 問僧 甚麽處來 曰 福州來 師曰 跋涉如許多山嶺 阿那箇是上座自己 曰 某甲親離福州 師曰 祇恁麽 別更有商量 曰 更作甚麽商量 師曰 汝話墮也 問 不昧緣塵 請師一接 師曰 喚甚麽作緣塵 曰 若不伸問 焉息疑情 師曰 若不是今日 便作官方
●雅意; 一素來的意願 本意 二風雅的情趣 三美意 好意
●官方; 政府方面
다음은 보은(報恩)에 주(住)했다. 상당(上堂) 보은(報恩)의 이 속에선 일찍이 화(話)를 간(揀)하여 사람에게 주지 않았지만 금일 제상좌에게 일양칙화(一兩則話)를 가려(揀) 주겠나니 도리어 원요(願樂)하느냐. 제상좌여, 학의 정강이(脛)는 길고 오리의 정강이는 짧고 감초(甘草)는 달고 황벽(黃蘗)은 쓰다. 이러한 간변(揀辨)은 도리어 아의(雅意)에 알맞은가(愜). 제상좌여 이는 혈맥이 불통하고 이수(泥水)가 유격(有隔)함이 아닐까. 다만 착회(錯會)하지 말아라, 진중(珍重).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무엇을 일러 서래의라 하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서래(西來)가 없습니다. 사왈 너의 구두(口頭)로 말미암아 말한다. 묻되 무엇이 이 보은(報恩)의 가풍입니까. 사왈 네가 착안(著眼)할 곳이 없다. 묻되 학인이 품승(稟承)을 알지(委) 못하니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서로 고부(孤負)함이 아니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자(師資)의 나눔이 있습니다. 사왈 총림에서 봄이 많다(見多).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너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묻되 무엇이 이 무생지상(無生之相)입니까. 사왈 사신(捨身)하고 수신(受身)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생사에 허물이 없습니까. 사왈 사료(思料; 料)컨대 네가 이렇게 아는구나. 우왈(又曰) 사람마다 모두 비리(備理)하여 하나하나 모두 원상(圓常)이다. 중이 바로 묻되 무엇이 이 원상지리(圓常之理)입니까. 사왈 무사(無事)하고 참치(參差)가 아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종횡으로 법계입니다. 사왈 교묘한 말은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삼촌(三寸; 혀)에 이르지 않음입니까. 사왈 네가 묻고 내가 답한다.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복주(福州)에서 옵니다. 사왈 허다한 것 같은 산령(山嶺)을 발섭(跋涉)했거니와 어느 것(阿那箇)이 이 상좌의 자기인가. 가로되 모갑은 친히 복주를 떠났습니다. 사왈 다만 이러한가 달리 다시 상량(商量)함이 있는가. 가로되 다시 어떻게(作甚麽) 상량해야 합니까. 사왈 너는 화타(話墮)했다. 묻되 연진(緣塵)을 불매(不昧)하고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사왈 무엇을 일러 연진이라 하느냐. 가로되 만약 신문(伸問)하지 않았다면 어찌(焉) 의정(疑情)을 쉬겠습니까(息). 사왈 만약 이 금일이 아니었다면 바로 관방(官方)을 지었으리라.
●雅意; 1. 소래(素來)의 의원(意願). 본의. 2. 풍아(風雅)한 정취(情趣). 3. 미의(美意). 호의(好意).
●官方; 정부(政府) 방면.
撫州黃山良匡禪師
吉州人也 僧問 如何是黃山家風 師曰 築著汝鼻孔 問 如何是不遷義 師曰 春夏秋冬 問 如何是一路涅槃門 師曰 汝問宗乘中一句 豈不是 曰 恁麽則不哆哆 師曰 莫哆哆好 問 衆星攢月時如何 師曰 喚甚麽作月 曰 莫祇這箇便是也無 師曰 這箇是甚麽 問 明鏡當臺 森羅爲甚麽不現 師曰 那裏當臺 曰 爭奈卽今何 師曰 又道不現
●哆哆; 口張大貌
무주(撫州) 황산(黃山) 양광선사(良匡禪師)
길주(吉州) 사람이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황산(黃山)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너의 콧구멍을 찌른다(築著). 묻되 무엇이 이 변천하지 않는 뜻(不遷義)입니까. 사왈 춘하추동이다. 묻되 무엇이 이 일로(一路)의 열반문(涅槃門)입니까. 사왈 네가 종승(宗乘) 중의 1구를 물음이 어찌 이것이 아니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치치(哆哆)하지 않겠습니다. 사왈 치치하지 말아야 좋다. 묻되 뭇 별이 달에 모일(攢) 때 어떻습니까. 사왈 무엇을 일러 달이라 하느냐. 가로되 다만 저개(這箇)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저개는 이 무엇인가. 묻되 명경(明鏡)이 당대(當臺)했거늘 삼라(森羅)가 무엇 때문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사왈 어느 속(那裏)이 당대(當臺)인가. 가로되 즉금은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또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해라.
●哆哆; 입을 크게 벌린 모양.
金陵報恩院玄則禪師
滑州衛南人也 初問靑峰 如何是學人自己 峰曰 丙丁童子來求火 後謁法眼 眼問 甚處來 師曰 靑峰 眼曰 靑峰有何言句 師擧前話 眼曰 上座作麽生會 師曰 丙丁屬火而更求火 如將自己求自己 眼曰 與麽會又爭得 師曰 某甲祇與麽 未審和尙如何 眼曰 你問我 我與你道 師問 如何是學人自己 眼曰 丙丁童子來求火 師於言下頓悟
금릉(金陵) 보은원(報恩院) 현칙선사(玄則禪師)
활주(滑州) 위남(衛南) 사람이다. 처음 청봉(靑峰)에게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自己)입니까. 청봉이 가로되 병정동자가 와서 화(火)를 구한다(丙丁童子來求火). 후에 법안(法眼)을 참알하자 법인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청봉입니다. 안왈(眼曰) 청봉이 무슨 언구(言句)가 있었느냐. 스님이 전화(前話)를 들었다(擧). 안왈(眼曰) 상좌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사왈 병정(丙丁)은 화(火)에 속하거늘 다시 화(火)를 구하니 자기를 가지고 자기를 구함과 같습니다. 안왈(眼曰) 이렇게(與麽) 이회한다면 또 어찌 얻겠는가. 사왈 모갑은 다만 이러하거니와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습니까. 안왈(眼曰) 네가 나에게 묻는다면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스님이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안왈(眼曰) 병정동자가 와서 화(火)를 구한다. 스님이 언하에 돈오(頓悟)했다.
開堂日 李王與法眼俱在會 僧問 龍吟霧起 虎嘯風生 學人知是出世邊事 到此爲甚麽不會 師曰 會取好 僧擧頭看師 又看法眼 乃抽身入衆 法眼與李王當時失色 眼歸方丈 令侍者喚問話僧至 眼曰 上座適來問底話 許你具眼 人天衆前 何不禮拜葢覆却 眼摵一坐具 其僧三日後吐光而終
개당일(開堂日)에 이왕(李王)과 법안(法眼; 文益)이 다 회(會)에 있었다. 중이 묻되 용이 읊조리면 안개가 일어나고 범이 읊으면 바람이 생김(龍吟霧起 虎嘯風生)은 학인(學人)이 이 출세변사(出世邊事)인 줄 알거니와 여기(용이 읊조리면 운운한 구)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이회(理會; 理解)치 못합니까. 사왈 회취(會取)해야 좋으니라. 중이 머리를 들어 스님을 보더니 또 법안을 보고는 곧 추신(抽身; 몸을 뒤로 물림)해 대중에 들어갔다. 법안과 이왕(李王)이 당시에 실색(失色)했다. 법안이 방장으로 돌아와 시자를 시켜 문화(問話)한 중을 불러 이르게 하고는 법안이 가로되 상좌(上座)가 아까 물은 화(話; 화두)는 너에게 눈을 갖췄다고 허락하겠지만 인천중(人天衆) 앞에서 왜 예배하지 않고 개부(葢覆)해 버렸는가 하고는 법안이 한 번 좌구(坐具)로 쳤는데(摵) 그 중이 3일 후에 빛을 토하고 죽었다(終).
僧問 了了見佛性 如何是佛性 師曰 不欲便道 問 如何是金剛大士 師曰 見也未 問 如何是諸聖密密處 師曰 却須會取自己 曰 如何是和尙密密處 師曰 待汝會始得 上堂 諸上座 盡有常圓之月 各懷無價之珍 所以月在雲中 雖明而不照 智隱惑內 雖眞而不通 無事久立 問 如何是不動尊 師曰 飛飛颺颺 問 如何是了然一句 師曰 對汝又何難 曰 恁麽道莫便是也無 師曰 不對又何難 曰 深領和尙恁麽道 師曰 汝道我道甚麽 問 亡僧遷化向甚麽處去也 師曰 待汝生卽道 曰 賓主歷然 師曰 汝立地見亡僧 問 如何是學人本來心 師曰 汝還曾道著也未 曰 祇如道著 如何體會 師曰 待汝問始得 問 敎中道 樹能生果 作玻瓈色 未審此果何人得喫 師曰 樹從何來 曰 學人有分 師曰 去果八萬四千 問 如何是不遷義 師曰 江河競注 日月旋流 問 宗乘中玄要處 請師一言 師曰 汝行脚來多少時也 曰 不曾逢伴侶 師曰 少瞌睡
●玻瓈; <梵> sphaṭika 同玻璃 又作頗梨 七寶之一 翻譯名義集三 頗梨 或云塞頗胝迦 此云水玉 卽蒼也 或云水精 又云白珠 刊正記云 正名窣坡致迦 其狀似此方水精 然有赤有白
승문(僧問) 요료(了了)히 불성을 본다 하니 무엇이 이 불성입니까. 사왈(師曰) 바로 말하고 싶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금강대사(金剛大士)입니까. 사왈 보느냐 또는 아니냐. 묻되 무엇이 이 제성(諸聖)의 밀밀처(密密處)입니까. 사왈 도리어 자기를 회취(會取)함을 써라. 가로되 무엇이 이 화상의 밀밀처입니까. 사왈 너의 이회(理會)함을 기다려야 비로소 옳다. 상당(上堂) 제상좌(諸上座)가 모두 상원(常圓)의 달이 있고 각기 무가(無價)의 보배를 품었다. 소이로 달이 운중(雲中)에 있으면 비록 밝더라도 비추지 못하고 지혜가 혹내(惑內)에 숨으면 비록 진정(眞正; 眞)하더라도 통하지 못한다. 무사(無事)하거늘 구립(久立)했다. 묻되 무엇이 이 부동존(不動尊)입니까. 사왈 비비양양(飛飛颺颺; 자꾸 비행해 날다)한다. 묻되 무엇이 이 요연(了然)의 1구입니까. 사왈 너를 대(對)함이 또 무엇 어렵겠는가. 가로되 이러한 말씀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부대(不對)함이 또 무엇 어렵겠는가. 가로되 화상의 이러한 말씀을 깊이 영회(領會)했습니다. 사왈 네가 말하라,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묻되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너의 생(生; 살다)함을 기다렸다가 곧 말하겠다. 가로되 빈주(賓主)가 역연(歷然)합니다. 사왈 네가 입지(立地; 즉시. 바로) 망승을 보았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본래심(本來心)입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일찍이 말했는가(道著) 또는 아닌가. 가로되 지여(祇如) 말했다면 어떻게 체회(體會)해야 합니까. 사왈 너의 물음을 기다려야 비로소 옳다. 묻되 교중(敎中)에 말씀이 있어 나무가 능히 과실(果實)을 내는데(生) 파리색(玻瓈色)이다. 미심하오니 이 과실은 어떤 사람이 먹음을 얻습니까. 사왈 나무는 어디로 좇아왔느냐. 가로되 학인이 분한이 있습니까. 사왈 과실과 떨어짐이 팔만사천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불천(不遷)의 뜻입니까. 사왈 강하가 경주(競注)하고 일월이 선류(旋流)한다. 묻되 종승(宗乘) 중의 현요처(玄要處)를, 스님의 일언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행각하여 온 지 다소의 시일이냐. 가로되 일찍이 반려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왈 조금 갑수(瞌睡; 졸음)하라.
●玻瓈; <범> sphaṭika 파리(玻璃)와 같음. 또 파리(頗梨)로 지음. 칠보의 하나. 번역명의집3. 파리(頗梨; 梵 sphaṭika) 혹은 이르되 새파지가(塞頗胝迦)며 여기에선 이르되 수옥(水玉)이니 곧 푸른빛(蒼)이다. 혹은 이르되 수정(水精)이며 또 이르되 백주(白珠)다. 간정기에 이르되 바른 명칭은 솔파치가(窣坡致迦)니 그 형상은 이 지방의 수정과 흡사하다. 그러나 붉은 게 있고 흰 게 있다.
金陵淨德院智筠達觀禪師
河中府王氏子 初住棲賢 上堂 從上諸聖方便門不少 大抵祇要諸仁者有箇見處 然雖未見 且不參差一絲髮許 諸仁者亦未甞違背一絲髮許 何以故 炟赫地顯露 如今便會取 更不費一毫氣力 還省要麽 設道毗盧有師 法身有主 斯乃抑揚 對機施說 諸仁者作麽生會對底道理 若也會 且莫嫌他佛語 莫重祖師 直下是自己眼明始得 僧問 如何是的的之言 師曰 道甚麽 問 紛然覓不得時如何 師曰 覓箇甚麽不得 問 如何是祖師意 師曰 用祖師意作甚麽 問 今朝呈遠瑞正意爲誰來 師曰 大衆盡見汝恁麽問
금릉(金陵) 정덕원(淨德院) 지균(智筠) 달관선사(達觀禪師)
하중부(河中府) 왕씨의 아들이다. 서현(棲賢; 棲賢寺)에 초주(初住)했다. 상당(上堂)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의 방편문이 적지 않지만 대저(大抵) 다만 제인자(諸仁者)에게 저(箇) 견처(見處)가 있음을 요한다. 그러하여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또(且) 1사발만큼(絲髮許)도 참치(參差)하지 않으며 제인자(諸仁者)도 또한 일찍이 1사발만큼도 위배되지 않는다. 무슨 연고냐, 달혁지(炟赫地; 불 붙어 밝게 빛남) 현로(顯露; 환희 드러남)했으니 여금에 바로 회취(會取)하라, 다시 일호(一毫)의 기력도 허비하지 않는다. 도리어 성요(省要)하느냐. 설사 비로(毗盧)에게 스승이 있고 법신에 주(主)가 있다고 말하더라도 이것은 이에(斯乃) 억양(抑揚)하며 대기(對機)한 시설(施設)이다. 제인자(諸仁者)가 어떻게 대(對; 對機)한 도리를 이회(理會)하느냐. 만약에 이회한다면 또(且) 저(他) 불어(佛語)를 혐의하지 않으며 조사를 존중하지 않으리니 직하(直下)에 이는 자기의 눈이 밝아야 비로소 옳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적적(的的)한 말입니까. 사왈(師曰) 무어라고 말했느냐. 묻되 분연(紛然)하여 찾아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저(箇) 무엇을 찾기에 얻지 못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사왈 조사의를 써서 무엇하려느냐. 묻되 금조(今朝)에 원서(遠瑞)와 정의(正意)를 보임(呈)은 누구를 위해 옴입니까. 사왈 대중이 너의 이러한 물음을 모두 본다.
江南國主創淨德院 延請居之 署達觀禪師 上堂 夫欲慕道 也須上上根器始得 造次中下 不易承當 何以故 佛法非心意識境界 上座莫恁麽懱猰地 他古人道 沙門眼把定世界 函蓋乾坤 綿綿不漏絲髮 所以諸佛讚歎 讚歎不及 比喻比喻不及 道上座威光赫奕 亘古亘今 幸有如是家風 何不紹續取 爲甚麽自生卑劣 枉受辛勤 不能曉悟 祇爲如此 所以諸佛出興於世 祇爲如此 所以諸佛唱入涅槃 祇爲如此 所以祖師特地西來 僧問 諸聖皆入不二法門 如何是不二法門 師曰 但恁麽入 曰 恁麽則今古同然去也 師曰 汝道甚麽處是同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恰問著 曰 恁麽則學人禮拜也 師曰 汝作麽生會 問 如何是佛 師曰 如何不是 乃曰 吾不能投身巖谷 滅迹市鄽 而出入禁庭 以重煩世主 吾之過也 遂屢辭歸故山 國主錫以五峰棲玄蘭若
●懱猰; 形容猥瑣自卑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정덕원(淨德院)을 창건하고 연청(延請)하여 거주케 하고 서(署; 署號)해 달관선사(達觀禪師)라 했다. 상당(上堂) 무릇 도를 흠모하려고 한다면 또한 모름지기 상상근기(上上根器)라야 비로소 옳나니 조차(造次; 輕率)의 중하(中下)는 쉽게 승당(承當)하지 못한다. 무슨 연고냐, 불법은 심의식(心意識)의 경계가 아니니 상좌가 이러한 멸알지(懱猰地)를 하지 말아라. 저(他) 고인이 말하되 사문안(沙門眼)이 세계를 파정(把定)하고 건곤을 함개(函蓋)하여 면면(綿綿)히 사발(絲髮)도 새지 않는다. 소이로 제불이 찬탄하려고 해도 찬탄이 미치지 못하고 비유하려고 해도 비유가 미치지 못한다. 말하노니 상좌의 위광(威光)이 혁혁(赫奕)하여 긍고긍금(亘古亘今)하나니 다행히 이와 같은 가풍이 있거늘 왜 소속(紹續)해 취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스스로 비열(卑劣)을 내면서 헛되이(枉) 신근(辛勤)을 받으며 능히 효오(曉悟)하지 못하느냐. 다만 이와 같기 때문에 소이로 제불이 세상에 출흥(出興)하며 다만 이와 같기 때문에 소이로 제불이 입열반(入涅槃)을 창(唱)하며 다만 이와 같기 때문에 소이로 조사가 특지(特地) 서래(西來)하였다. 승문(僧問) 제성(諸聖)이 모두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갑니다. 무엇이 이 불이법문입니까. 사왈(師曰) 단지 이렇게 들어가거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금고(今古)가 한가지로 그러할 것입니다(同然去也). 사왈 네가 말하라, 어느 곳이 이 한가지(同)인가.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마침 물었다(恰問著).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예배하겠습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무엇이 이것이 아니냐. 이에 가로되 내가 능히 암곡(巖谷)에 투신(投身)하거나 시전(市𢌅)에 멸적(滅迹)하지 못하고 금정(禁庭; 宮廷)에 출입하며 세주(世主)를 거듭 번거롭게 함은 나의 허물이다. 드디어 누차(屢次) 고별하며 고산(故山)으로 돌아가겠다 하자 국주(國主)가 오봉(五峰) 서현란야(棲玄蘭若)를 주었다(錫).
●懱猰; 외쇄(猥瑣: 더럽고 자질구레함)하며 스스로 비하함을 형용.
高麗國道峰山慧炬國師
始發機於法眼之室 本國主思慕 遣使來請 遂回故地 國主受心訣 禮待彌厚 一日請入王府 上堂 師指威鳳樓示衆曰 威鳳樓爲諸上座擧揚了也 還會麽 儻若會 且作麽生會 若道不會 威鳳樓作麽生不會 珍重
●儻若; 假如 假使
고려국(高麗國) 도봉산(道峰山) 혜거국사(慧炬國師)
법안지실(法眼之室)에서 처음 발기(發機)했다. 본국주(本國主)가 사모하여 사자(使者)를 보내어 와서 청했고 드디어 고지(故地)로 회귀했다. 국주(國主)가 심결(心訣)을 받았고 예대(禮待)가 더욱(彌) 두터웠다. 어느 날 청하여 왕부(王府)에 들어가 상당했다. 스님이 위봉루(威鳳樓)를 가리키며 시중(示衆)해 가로되 위봉루가 제상좌를 위해 거양(擧揚)해 마쳤나니 도리어 아느냐. 당약(儻若) 안다면 또 어떻게 알며 만약 말하되 알지 못한다 하면 위봉루를 어떻게 알지 못하느냐. 진중(珍重).
●儻若; 가여(假如). 가사(假使).
杭州眞身寶塔寺紹巖禪師
雍州劉氏子 吳越王命師開法 署了空大智常照禪師 上堂 山僧素寡知見 本期閑放 念經待死 豈謂今日大王勤重 苦勉山僧 効諸方宿德 施張法筵 然大王致請 也祇圖諸仁者明心 此外別無道理 諸仁者還明心也未 莫不是語言譚笑時 凝然杜默時 參尋知識時 道伴商略時 觀山翫水時 耳目絕對時 是汝心否 如上所解 盡爲魔魅所攝 豈曰明心 更有一類人 離身中妄想外 別認徧十方世界 含日月 包太虛 謂是本來眞心 斯亦外道所計 非明心也 諸仁者要會麽 心無是者 亦無不是者 汝擬執認 其可得乎 僧問 六合澄淸時如何 師曰 大衆誰信汝 師開寶四年七月示疾 謂門弟子曰 諸行無常 卽常住相 言訖 跏趺而逝
●商略; 討議 商議 商討
항주(杭州) 진신보탑사(眞身寶塔寺) 소암선사(紹巖禪師)
옹주(雍州) 유씨(劉氏)의 아들이다. 오월왕(吳越王)이 스님에게 개법을 명(命)하고 서(署)하여 요공대지상조선사(了空大智常照禪師)라 했다. 상당(上堂) 산승은 본디(素) 지견(知見)이 적어서(寡) 본래 한방(閑放)하며 염경(念經)하면서 대사(待死)를 기대(期待)했는데 어찌 금일 대왕이 근중(勤重; 惜重. 愛重)하여 산승에게 고면(苦勉)하시매 제방의 존숙이 법연(法筵)을 시장(施張; 베풀어 벌이다)함을 본받으리라 일렀겠는가. 그러나 대왕이 치청(致請; 요청하다)함은 또한 다만 제인자(諸仁者)의 명심(明心; 마음을 밝힘)을 기도(企圖)함이며 이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제인자가 도리어 명심했는가 또는 아닌가. 이 어언(語言)하며 담소(譚笑)할 때, 응연(凝然)하며 두묵(杜默; 침묵)할 때, 지식을 참심(參尋)할 때, 도반과 상략(商略)할 때, 관산(觀山)하고 완수(翫水)할 때, 이목(耳目)에 절대(絕對)할 때 이 너희의 마음이 아님이 없다(莫不) 하겠는가. 위와 같은 소해(所解)는 모두 마매(魔魅; 魔鬼)에 거두어지는 바가 되거늘 어찌 가로되 명심(明心)이라 하겠는가. 다시 일류(一類)의 사람이 있어 신중(身中)의 망상을 여읜 밖에 달리 인정하되 온 시방세계와 일월을 포함하고 태허를 포함해(含日月包太虛) 이 본래의 진심이라고 이르나니 이것(斯) 또한 외도의 소계(所計; 計度하는 바)며 명심이 아니다. 제인자(諸仁者)가 알기를 요하느냐. 마음은 이것도 없고 또한 이것이 아님도 없나니 너희가 집인(執認)하려 한다면 그 가히 얻겠는가. 승문(僧問) 육합(六合)이 징청(澄淸)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대중에 누가 너를 믿겠는가. 스님이 개보(開寶) 4년(971) 7월 시질(示疾)하더니 문제자(門弟子)에게 일러 가로되 제행무상(諸行無常)이 곧 상주상(常住相)이다. 말을 마치자 가부(跏趺)하고 서거했다.
●商略; 토의(討議). 상의(商議). 상토(商討).
台州般若寺敬遵通慧禪師
上堂 皎皎炟赫地 亘古亘今 也未曾有纖毫間斷相 無時無節 長時拶定上座無通氣處 所以道 山河大地是上座善知識 放光動地 觸處露現 實無絲頭許法可作隔礙 如今因甚麽却不會 特地生疑去 無事 不用久立 僧問 優曇花拆人皆覩 般若家風賜一言 師曰 不因上座問 不曾擧似人 曰 恁麽則般若雄峯 詎齊今古 師曰 也莫錯會 問 牛頭未見四祖時 爲甚麽百鳥銜華 師曰 汝甚麽處見 曰 見後爲甚麽不銜華 師曰 且領話好 問 靈山一會 迦葉親聞 未審今日一會 何人得聞 師曰 試擧迦葉聞底看 曰 恁麽則迦葉親聞去也 師曰 亂道作麽 師自述眞讚曰 眞兮寥廓 郢人圖雘 嶽聳雲空 澄潭月躍
●寥廓; 空曠深遠
●雘; 紅色或靑色的可作顏料的礦物 泛指好的彩色
태주(台州) 반야사(般若寺) 경준(敬遵) 통혜선사(通慧禪師)
상당(上堂) 교교(皎皎)히 훤혁지(炟赫地; 불 붙어 밝게 빛남. 地는 조사) 긍고긍금(亘古亘今; 저본에 亘古互今으로 지었음)하나니 일찍이 섬호(纖毫)도 간단(間斷)의 상(相)이 없고 시도 없고 절도 없이(無時無節) 장시(長時)에 상좌를 찰정(拶定; 핍박하여 固定시킴)하여 통기(通氣)할 곳이 없다. 소이로 말하되 산하대지가 이 상좌의 선지식이니 방광동지(放光動地)하며 촉처에 노현(露現)하여 실로 실낱만큼(絲頭許)의 법이라도 가히 격애(隔礙)를 지음이 없거늘 여금에 무엇으로 인해 도리어 알지 못하고서 특지(特地) 의심을 내느냐. 무사(無事)하니 구립(久立)함을 쓰지 말아라. 승문(僧問) 우담화(優曇花)가 터져 사람이 모두 보나니(覩) 반야의 가풍을, 일언(一言) 하사하십시오(賜). 사왈(師曰) 상좌의 물음을 인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사람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이다)하지 못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반야의 웅봉(雄峯)이 어찌(詎) 금고(今古)와 가지런하겠습니까. 사왈 또한 착회(錯會)하지 말아라.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무엇 때문에 백조(百鳥)가 함화(銜華)했습니까. 사왈 네가 어느 곳에서 보느냐. 가로되 뵌 후엔 무엇 때문에 함화(銜華)하지 않았습니까. 가로되 다만(且) 화(話)를 영회(領會)해야 좋다. 묻되 영산(靈山)의 일회(一會)에선 가섭이 친문(親聞)했거니와 미심하오니 금일의 일회(一會)는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 시험 삼아 가섭이 들은 것(聞底)을 들어 보아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가섭이 친문(親聞)했습니다. 사왈 어지럽게 말해 무엇하려느냐. 스님이 진찬(眞讚)을 자술(自述)해 가로되 진(眞; 肖像)이 요확(廖廓)하니/ 영인(郢人)이 확(雘)을 그렸다(圖)/ 산악이 운공(雲空)에 솟았고/ 징담(澄潭)에 달이 도약(跳躍; 躍)한다.
●寥廓; 공광(空曠; 비어서 넓음)하고 심원(深遠)함.
●雘; 홍색 혹 청색의, 가히 안료(顏料)를 만드는 광물(礦物). 널리 아름다운 채색(彩色)을 가리킴.
廬山歸宗䇿眞法施禪師
曹州魏氏子也 初名慧超 謁法眼問曰 慧超咨和尙 如何是佛 眼曰 汝是慧超 師從此悟入 住後 上堂 諸上座 見聞覺知 祇可一度 祇如會了 是見聞覺知不是見聞覺知 要會麽 與諸上座說破了也 待汝悟始得 久立 珍重 僧問 如何是佛 師曰 我向汝道卽別有也 問 如何是歸宗境 師曰 是汝見甚麽 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出去 問 國王請命 大啓法筵 不落見聞 請師速道 師曰 閑言語 曰 師意如何 師曰 又亂說 問 承敎有言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 塵刹卽不問 如何是報佛恩 師曰 汝若是 則報佛恩 問 無情說法 大地得聞 師子吼時如何 師曰 汝還聞麽 曰 恁麽則同無情也 師曰 汝不妨會得好 問 古人以不離見聞爲宗 未審和尙以何爲宗 師曰 此問甚好 曰 猶是三緣四緣 師曰 莫亂道
여산(廬山) 귀종(歸宗) 책진(䇿眞) 법시선사(法施禪師)
조주(曹州) 위씨(魏氏)의 아들이며 초명(初名)이 혜초(慧超)다. 법안(法眼)을 참알해 물어 가로되 혜초(慧超)가 화상에게 묻습니다(咨).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안왈(眼曰) 너는 이 혜초(慧超)다. 스님이 이로 좇아 오입(悟入)했다. 주후(住後) 상당(上堂) 제상좌(諸上座)여 견문각지(見聞覺知)는 다만 가히 일도(一度; 一回)니 지여(祇如) 영회(領會; 會)해 마치면 이 견문각지가 이 견문각지가 아니다. 알고자 하느냐, 제상좌를 위해(與) 설파(說破)해 마쳤으니 너희의 깨침을 기다려야 비로소 옳다.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내가 너를 향해 말하면 곧 달리 있음이다(別有也). 묻되 무엇이 이 귀종경(歸宗境)입니까. 사왈 이 네가 무엇을 보느냐(見).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나가거라(出去). 묻되 국왕이 청명(請命)하여 법연(法筵)을 크게 열었으니(啓). 견문에 떨어지지 말고 청컨대 스님이 속히 말하십시오. 사왈 쓸데없는 언어(閑言語)다. 가로되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사왈 또 어지럽게 설하는구나. 묻되 듣건대(承) 교(敎; 楞嚴經三)에 말씀이 있어 이 심심(深心)을 가지고 진찰(塵刹)을 받들어야 이를 곧 이름하여 불은을 갚음이라 한다. 진찰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불음을 갚음입니까. 사왈 네가 만약 옳다면(是) 곧 불은을 갚음이다. 묻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대지(大地)가 득문(得聞)합니다만 사자후(獅子吼)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너는 도리어 듣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무정과 같습니다. 사왈 너는 회득(會得)함의 훌륭함(好)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묻되 고인이 견문을 여의지 않음으로써 종(宗)을 삼았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무엇으로써 종을 삼습니까. 사왈 이 질문이 심히 좋다. 가로되 오히려 이는 삼연사연(三緣四緣)입니다. 사왈 어지럽게 말하지 말아라.
洪州同安院紹顯禪師
僧問 王恩降旨師親受 熊耳家風乞一言 師曰 已道了也 問 千里投師 請師一接 師曰 好入處 雲蓋山乞瓦造殿 有宮人問 旣是雲蓋 何用乞瓦 僧無對 師代曰 罕遇其人
홍주(洪州) 동안원(同安院) 소현선사(紹顯禪師)
승문(僧問) 왕은(王恩)의 강지(降旨; 諭旨를 내리다)를 스님이 친수(親受)하셨으니 웅이(熊耳)의 가풍을, 일언(一言)을 구걸합니다. 사왈(師曰) 이미 말해 마쳤다. 묻되 천 리에서 스님에게 투신했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사왈 좋은 입처다(好入處). 운개산(雲蓋山)의 중이 와조전(瓦造殿)을 구걸하자 어떤 관인(官人)이 묻되 이미 이 운개(雲蓋)거늘 왜 걸와(乞瓦)를 씁니까.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왈(代曰) 드물게 기인(奇人)을 만났습니다.
廬山棲賢慧圓禪師
上堂 出得僧堂門 見五老峯 一生參學事畢 何用更到這裏來 雖然如此 也勞上座一轉了也 珍重 僧問 不是風動 不是幡動 未審古人意旨如何 師曰 大衆一時會取 上堂 有僧擬問 師乃指其僧曰 住住 其僧進步問 從上宗乘 請師擧唱 師曰 前言不搆 後語難追 曰 未審今日事如何 師曰 不會人言語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好 問 如何是棲賢境 師曰 入得三門便合知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此土不欠少
여산(廬山) 서현(棲賢) 혜원선사(慧圓禪師)
상당(上堂) 승당문(僧堂門)을 나감을 얻어(出得) 오로봉(五老峯)을 보면 일생의 참학사(參學事)를 마치거늘 어찌 다시 이 속에 이르러 옴을 쓰리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또한 상좌를 1전(轉; 回. 次) 노고롭게 한다.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이 풍동(風動)이 아니며 이 번동(幡動)이 아니라 하니 미심합니다, 고인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대중은 일시에 회취(會取; 領會하다)하라. 상당(上堂) 어떤 중이 물으려 하자 스님이 이에 그 중을 가리키며 가로되 멈추어라(住), 멈추어라. 그 중이 걸음을 전진하고(進步)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청컨대 스님이 거창(擧唱)하십시오. 사왈 전언(前言)이 구(搆; 明了. 領悟)하지 못하면 후어(後語)가 쫓기 어렵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금일사(今日事)가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의 언어를 알지(會) 못하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좋구나(好). 묻되 무엇이 이 서현경(棲賢境)입니까. 사왈 삼문(三門)에 듦을 얻으면 바로 합당히 알아라.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차토(此土)에도 흠소(欠少)하지 않다.
洪州觀音院從顯禪師
泉州人也 上堂 衆集 良久曰 文殊深讚居士 未審居士受讚也無 若受讚 何處有居士邪 若不受讚 文殊不可虛發言也 大衆作麽生會 若會 眞箇衲僧 僧問 居士默然 文殊深讚 此意如何 師曰 汝問我答 曰 忽遇恁麽人出頭來 又作麽生 師曰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問 如何是觀音家風 師曰 眼前看取 曰 忽遇作者來 作麽生見待 師曰 貧家祇如此 未必便言歸 問 久負沒絃琴 請師彈一曲 師曰 作麽生聽 其僧側耳 師曰 賺殺人 乃曰 盧行者當時大庾嶺頭謂明上座言 莫思善 莫思惡 還我明上座本來面目來 觀音今日不恁麽道 還我明上座來 恁麽道 是曹溪子孫也無 若是曹溪子孫 又爭除却四字 若不是 又過在甚麽處 試出來商量看 良久曰 此一衆眞行脚人也 便下座 太平興國八年九月中 師謂檀那袁長史曰 老僧三兩日間歸鄕去 袁曰 和尙年尊 何更思鄕 師曰 歸鄕圖得好鹽喫 袁不測其言 翌日 師不疾坐亡 袁建塔于西山
●見待; 接待 招待
홍주(洪州) 관음원(觀音院) 종현선사(從顯禪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문수(文殊)가 거사(유마거사)를 심찬(深讚; 깊이 칭찬)했거니와 미심하나니 거사가 칭찬을 수용(受容; 受)했는가 또는 아닌가. 만약 칭찬을 수용했다면 어느 곳에 거사가 있겠는가. 만약 칭찬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문수가 헛되이 발언함이 옳지 못하다. 대중은 어떻게 이회(理會)하는가. 만약 이회한다면 진개(眞箇)의 납승이다. 승문(僧問) 거사가 묵연하고 문수가 심찬(深讚)한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네가 묻고 내가 답한다. 가로되 이러한 사람(恁麽人)이 출두해 옴을 만나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가서 물이 다한 곳에 이르러, 앉아 구름이 일어남을 볼 때다. 묻되 무엇이 이 관음(觀音)의 가풍입니까. 사왈 눈 앞을 간취(看取)하라. 가로되 홀연히, 작자가 옴을 만나면 어떻게 견대(見待)하겠습니까. 사왈 빈가(貧家)가 다만 이와 같으니 돌아간다고 바로 말함이 필요치 않다. 묻되 오래 몰현금(沒絃琴)을 짊어졌으니 청컨대 스님이 일곡(一曲) 탄주(彈奏; 彈)하십시오. 사왈 어떻게 들을건가(聽). 그 중이 귀를 기울였다.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이에 가로되 노행자(盧行者)가 당시에 대유령두(大庾嶺頭)에서 명상좌(明上座)에게 일러 말하되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명상좌의 본래면목을 송환해 오너라. 관음은 금일 이렇게 말하지 않겠다. 나에게 명상좌를 송환해 오너라 하리니 이렇게 말함이 이 조계(曹溪; 慧能)의 자손이냐 또는 아니냐. 만약 이 조계의 자손이라면 또 어찌해야(爭) 4자(四字; 曹溪子孫)를 제각(除却)하겠는가. 만약 옳지(是) 않다면 또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시험 삼아 나와서 상량(商量)해 보아라.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이 일중(一衆; 一群)은 참다운 행각인이다. 바로 하좌했다. 태평흥국(太平興國) 8년(983) 9월 중 스님이 단나(檀那; 시주) 원장사(袁長史)에게 일러 가로되 노승이 삼양일(三兩日) 사이에 귀향(歸鄕)하겠다. 원왈(袁曰) 화상은 존년(尊年; 高齡)인데 어찌 다시 사향(思鄕)합니까. 사왈 귀향(歸鄕)하여 호염(好鹽)을 먹음을 기도(企圖)하겠다(圖得). 원(袁)이 그 말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다음날(翌日) 스님이 질병 없이 좌망(坐亡)했다. 원(袁)이 서산에 건탑(建塔)했다.
●見待; 접대(接待). 초대(招待).
洛京興善棲倫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向汝道甚麽卽得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適來猶記得
낙경(洛京) 흥선(興善) 서륜선사(棲倫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너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해야 곧 옳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아까 오히려 기득(記得)했다.
洪州嚴陽新興院齊禪師
僧問 如何得出三界去 師曰 汝還信麽 曰 信則深信 乞和尙慈悲 師曰 祇此信心 亘古亘今 快須究取 何必沉吟 要出三界 三界唯心 師因雪謂衆曰 諸上座還見雪麽 見卽有眼 不見無眼 有眼卽常 無眼卽斷 恁麽會得 佛身充滿 問 學人辭去泐潭 乞和尙示箇入路 師曰 好箇入路 道心堅固 隨衆參請 隨衆作務 要去便去 要住便住 去之與住 更無他故 若到泐潭 不審馬祖
홍주(洪州) 엄양(嚴陽) 신흥원(新興院) 제선사(新興齊)
승문(僧問) 어찌해야 3계(界)를 벗어남을 얻겠습니까. 사왈(師曰) 네가 도리어 믿느냐. 가로되 믿기는 곧 깊이 믿지만 화상의 자비를 구걸합니다. 사왈 다만 이 신심(信心)이 긍고긍금(亘古亘今)하나니 쾌히 구취(究取)함을 쓸 것이지 하필 침음(沉吟)하느냐. 3계를 벗어나길 요한다면 3계가 오직 마음이다. 스님이 설(雪)로 인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제상좌여 도리어 설(雪)을 보느냐. 보면 곧 안(眼)이 있음이며 보지 못하면 안이 없다. 안이 있으면 곧 상(常)이며 안이 없으면 곧 단(斷)이다. 이렇게 회득(會得)해야 불신(佛身)이 충만하다. 묻되 학인이 고별하고 늑담(泐潭)으로 가겠습니다. 화상에게 구걸하오니 저(箇) 입로(入路)를 보이십시오. 사왈 호개(好箇)의 입로니 도심(道心)이 견고해야 한다. 대중 따라 참청(參請)하고 대중 따라 작무(作務)하라. 가려고 하면 곧 가고 머물려고 하면 곧 머물지니 감과 머묾이 다시 딴 게 없는 연고이다. 만약 늑담에 이른다면 마조(馬祖)에게 불심(不審)이라 하라.
潤州慈雲匡達禪師
僧問 佛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 未審和尙出世如何 師曰 恰好 曰 作麽生 師曰 不好
윤주(潤州) 자운(慈雲) 광달선사(匡達禪師)
승문(僧問) 부처가 일대사인연을 쓰는 연고로 세상에 출현하셨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의 출세는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흡호(恰好)다. 가로되 어째서입니까(作麽生). 사왈 불호(不好)다.
蘇州薦福院紹明禪師
州將錢仁奉請住持 乃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一切處看取
소주(蘇州) 천복원(薦福院) 소명선사(紹明禪師)
주장(州將) 전인봉(錢仁奉)이 주지를 청하면서 이에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일체처(一切處)에서 간취(看取)하라.
澤州古賢院謹禪師
侍立法眼次 眼問一僧曰 自離此間 甚麽處去來 曰 入嶺來 眼曰 不易 曰 虛涉他如許多山水 眼曰 如許多山水也不惡 其僧無語 師於此有省 住後 僧問 如何是佛 師曰 築著你鼻孔 問僧曰 唯一堅密身 一切塵中現 如何是堅密身 僧竪指 師曰 現則現 你作麽生會 僧無語
●澤州; 今山西晉城
택주(澤州) 고현원(古賢院) 근선사(謹禪師)
법안(法眼)을 시립(侍立)하던 차에 법안이 1승에게 물어 가로되 차간(此間)을 떠남으로부터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가로되 입령(入嶺)하고 왔습니다. 안왈(眼曰) 쉽지 않았겠구나. 가로되 저(他) 허다한 것 같은 산천을 헛되이 건넜습니다(涉). 안왈(眼曰) 허다한 것 같은 산천은 또한 싫어하지(惡) 않는다. 그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여기에서 살핌이 있었다.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너의 콧구멍을 찌른다(築著). 중에게 물어 가로되 유일(唯一)의 견밀신(堅密身)이 일체의 진중(塵中)에 나타난다. 무엇이 이 견밀신인가. 중이 손가락을 세웠다. 사왈 나타나긴 곧 나타났지만 네가 어떻게(怎生) 이회(理會)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澤州; 지금의 산서 진성(晉城).
宣州興福院可勳禪師
建州朱氏子 僧問 如何是興福正主 師曰 闍黎不識 曰 莫祇這便是麽 師曰 縱未歇狂 頭亦何失 問 如何是道 師曰 勤而行之 問 何云法空 師曰 不空 有偈示衆曰 秋江煙島晴 鷗鷺行行立 不念觀世音 爭知普門入
선주(宣州) 흥복원(興福院) 가훈선사(可勳禪師)
건주(建州) 주씨(朱氏)의 아들이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흥복(興福)의 정주(正主)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黎)는 알지 못한다. 가로되 다만 이것이(這) 바로 이것(是)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비록(縱) 미침(狂)을 쉬지 못했더라도 머리를 또한 어찌 잃었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부지런히 이(之)를 행하라. 묻되 무엇을 법공이라 이릅니까(何云法空). 사왈 불공(不空)이다. 게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추강(秋江)의 연도(煙島)가 맑으니(晴)/ 구로(鷗鷺; 갈매기와 해오라기)가 줄줄이(行行) 섰다/ 관세음을 외우지(念) 않으면/ 어찌 보문(普門)에 들어갈 줄 알리오.
洪州上藍院守訥禪師
上堂 盡令提綱 無人掃地 叢林兄弟 相共證明 晩進之流 有疑請問 僧問 願開甘露門 當觀第一義 不落有無中 請師垂指示 師曰 大衆證明 曰 恁麽則莫相屈去也 師曰 閑言語 問 如何是佛 師曰 更問阿誰
홍주(洪州) 상람원(上藍院) 수눌선사(守訥禪師)
상당(上堂) 영(令)을 다해 제강(提綱)하지만 소지(掃地)하는 사람이 없나니 총림의 형제는 서로 함께 증명하고 만진(晩進; 後進. 後輩)의 무리(流)가 의심이 있으면 청문(請問)하라. 승문(僧問) 원컨대 감로문(甘露門)을 열어 마땅히 제1의를 관(觀)하게 하십시오. 유무 가운데 떨어지지 않고 청컨대 스님이 지시를 내리십시오. 사왈(師曰) 대중이 증명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서로 굽히지 않음입니다. 사왈 쓸데없는 말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다시 누구(阿誰)에게 묻느냐.
撫州覆船和尙
僧問 如何是佛 師曰 不識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莫謗祖師好
무주(撫州) 복선화상(覆船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알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조사를 비방하지 말아야 좋으니라.
杭州奉先寺法瓌法明普照禪師
僧問 釋迦出世 天雨四華 地搖六動 未審今日有何祥瑞 師曰 大衆盡見 曰 法王法如是 師曰 人王見在 問 法眼寶印 和尙親傳 今日一會 當付何人 師曰 誰人無分 曰 恁麽則雷音普震無邊刹去也 師曰 也須善聽
항주(杭州) 봉선사(奉先寺) 법괴(法瓌) 법명(法明) 보조선사(普照禪師)
승문(僧問) 석가가 출세하자 하늘에서 4화(華)를 비 내리고 땅이 6동(動)으로 흔들렸습니다. 미심하오니 금일 어떤 상서(祥瑞)가 있습니까. 사왈(師曰) 대중이 모두 본다. 가로되 법왕의 법이 이와 같습니다. 사왈 인왕(人王)도 현재(見在)한다. 묻되 법안(法眼)의 보인(寶印)을 화상이 친히 전수(傳受)했습니다만 금일의 일회(一會)에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부촉하시렵니까. 사왈 어떤 사람(誰人)인들 분한이 없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뇌음(雷音)이 무변찰(無邊刹)에 널리 진동(震動)할 것입니다. 사왈 또한 꼭 선청(善聽)하라.
廬山化城寺慧朗禪師
江南相國宋齊丘請開堂 師陞座曰 今日令公請 山僧爲衆 莫非承佛付囑 不忘佛恩 衆中有問話者出來 爲令公結緣 僧問 令公親降 大衆雲臻 從上宗乘 請師擧唱 師曰 莫是孤負令公麽 問 師常苦口 爲甚麽學人己事不明 師曰 闍黎甚麽處不明 曰 不明處 請師決斷 師曰 適來向汝道甚麽 曰 恁麽則全因今日去也 師曰 退後 禮三拜
●令公; 古代對中書令的尊稱 唐末 武將多加中書令銜 故令公之稱極濫 [百度百科]
여산(廬山) 화성사(化城寺) 혜랑선사(慧朗禪師)
강남(江南) 상국(相國) 송제구(宋齊丘)의 청으로 개당했다. 스님이 승좌(陞座)해 가로되 금일 영공(令公)의 청으로 산승이 위중(爲衆)함은 불타의 부촉을 승수(承受)하지 않음이 없으며 불은(佛恩)을 잊지 않겠다. 중중(衆中)에 문화자(問話者)가 있거든 나와서 영공을 위해 결연(結緣)하라. 승문(僧問) 영공이 친강(親降)하셨고 대중이 운진(雲臻)했으니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청컨대 스님이 거창(擧唱)하십시오. 사왈 이는 영공을 저버림(孤負)이 아니냐. 묻되 스님은 늘 고구(苦口)하는데 무엇 때문에 학인은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합니까. 사왈 사리(闍黎)가 어느 곳(甚麽處)을 밝히지 못하느냐. 가로되 밝히지 못하는 곳을 청컨대 스님이 결단(決斷)하십시오. 사왈 아까 너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전부 금일을 인(因)하여 갑니다. 사왈 뒤로 물러나 3배(拜) 예배하라.
●令公; 고대 중서령(中書令)에 대한 존칭. 당송(唐末)에서 무장(武將)에게 중서령의 함(銜; 官銜)을 많이 가했음. 고로 영공(令公)의 명칭히 극히 범람(氾濫)했음 [백도백과].
杭州慧日永明寺道鴻通辯禪師
僧問 遠離天台境 來登慧日峰 久聞師子吼 今日請師通 師曰 聞麽 曰 恁麽則昔日崇壽 今日永明也 師曰 幸自靈利 何須亂道 乃曰 大道廓然 古今常爾 眞心周徧 如量之智皎然 萬象森羅 咸眞實相 該天括地 亘古亘今 大衆還會麽 還辯白得麽 僧問 國王嘉命 公貴臨筵 未審今日當爲何事 師曰 驗取 曰 此意如何 師曰 甚麽處去來 曰 恁麽則成造次也 師曰 休亂道
●如量之智; 通於諸法事相之俗智也
●公貴; 一王公貴人 二.對居上公貴位者的尊稱
항주(杭州) 혜일(慧日) 영명사(永明寺) 도홍(道鴻) 통변선사(通辯禪師)
승문(僧問) 멀리 천태경(天台境)을 떠나/ 와서 혜일봉(慧日峰)에 올랐습니다/ 오래 사자후를 들었는데/ 금일 스님이 통하기를 청합니다. 사왈(師曰) 듣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석일(昔日)은 숭수(崇壽; 文益)며 금일은 영명(永明)입니다. 사왈 행자(幸自; 本來. 本自) 영리(靈利)하거늘 어찌 어지럽게 말함을 쓰느냐(須). 이에 가로되 대도(大道)가 확연(廓然; 空寂한 모양)하여 고금에 늘 그러하고(常爾) 진심(眞心)이 주편(周徧)하여 여량지지(如量之智)가 교연(皎然)하다. 만상삼라가 모두(咸) 진실상(眞實相)이며 해천괄지(該天括地)하고 긍고긍금(亘古亘今)하다. 대중이여 도리어 아느냐. 도리어 변백(辯白; 辨明)함을 얻느냐. 승문(僧問) 국왕의 가명(嘉命)으로 공귀(公貴)가 임연(臨筵; 法席에 임함)했습니다. 미심하오니 금일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합니까. 사왈 험취(驗取)하라. 가로되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조차(造次; 輕率)를 이룹니다. 사왈 어지럽게 말하지 말아라(休亂道).
●如量之智; 제법의 사상(事相)에 통하는 속지(俗智)임.
●公貴; 1. 왕공(王公)과 귀인. 2. 상공귀위(上公貴位)에 거처하는 자에 대한 존칭.
高麗國靈鑒禪師
僧問 如何是淸淨伽藍 師曰 牛欄是 問 如何是佛 師曰 拽出癲漢著
고려국(高麗國) 영감선사(靈鑒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청정한 가람입니까. 사왈(師曰) 우란(牛欄; 소를 기르는 외양간)이 이것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미친 놈(癲漢)을 끌어내어라.
荊門上泉和尙
僧問 二龍爭珠 誰是得者 師曰 我得 問 遠遠投師 如何一接 師按杖視之 其僧禮拜 師便喝 問 尺璧無瑕時如何 師曰 我不重 曰 不重後如何 師曰 火裏蝍蟟飛上天
●尺璧; 直徑一尺的大璧
●蝍蟟; 蝍 蜈蚣 一說蟋蟀 蟟 蟬名 蟪蛄
형문(荊門) 상천화상(上泉和尙)
승문(僧問) 2룡(龍)이 쟁주(爭珠)하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師曰) 내가 얻는다. 묻되 멀고도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하오니 어떻게 일접(一接)하겠습니까. 스님이 주장자를 접하여(接杖) 그를 보았다(視之). 그 중이 예배하자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묻되 척벽(尺璧)이 티가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나는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不重). 가로되 귀중히 여기지 아니한 후 어떻습니까. 사왈 불 속의 즉료(蝍蟟)가 하늘로 비상(飛上)한다.
●尺璧; 직경이 1척의 대벽(大璧).
●蝍蟟; 즉(蝍)은 오공(蜈蚣; 지네). 일설에 실솔(蟋蟀; 귀뚜라미)이라 함. 료(蟟)는 매미의 이름이니 혜고(蟪蛄; 털매미. 씽씽매미).
廬山大林寺僧遁禪師
初住圓通 有僧擧 僧問玄沙 向上宗乘 此間如何言論 沙曰 少人聽 未審玄沙意旨如何 師曰 待汝移却石耳峰 我卽向汝道〈歸宗柔別云 且低聲〉
여산(廬山) 대림사(大林寺) 승둔선사(僧遁禪師)
원통(圓通)에 초주(初住)했다. 어떤 중이 거(擧)했다. 중이 현사에게 묻되 향상의 종승을 차간(此間)에선 어떻게 언론(言論)합니까. 현사가 가로되 듣는 사람이 적다(少人聽). 미심하오니 현사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네가 석이봉(石耳峰)을 옮겨버림을 기다렸다가 내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歸宗柔가 別云 다만 소리를 낮추어라〉.
池州仁王院緣勝禪師
僧問 農家擊壤時如何 師曰 僧家自有本分事 曰 不問僧家本分事 農家擊壤時如何 師曰 話頭何在
●擊壤; 據帝王世紀記載 帝堯之世 天下大和 百姓無事 有八九十老人 擊壤而歌 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 [百度百科]
지주(池州) 인왕원(仁王院) 연승선사(緣勝禪師)
승문(僧問) 농가(農家)가 격양(擊壤)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승가(僧家)는 저절로 본분사가 있다. 가로되 승가의 본분사를 물음이 아닙니다. 농가가 격양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화두(話頭)가 어디에 있느냐.
●擊壤; 제왕세기(帝王世紀)의 기재에 의거하자면 제요(帝堯)의 시기에 천하가 크게 화평하여 백성이 무사했다. 8, 9십 노인이 있어 땅을 치며(擊壤) 노래하되 해가 나오면 일하고 해가 들어가면 쉬나니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거늘 제왕의 힘이 나에게 어찌 있겠는가 [백도백과].
靑原下十世
天台韶國師法嗣
杭州慧日永明延壽智覺禪師
餘杭王氏子 總角之歲 歸心佛乘 旣冠不茹葷 日唯一食 持法華經 七行俱下 纔六旬 悉能誦之 感群羊跪聽 年二十八 爲華亭鎭將 屬翠巖參禪師遷止龍冊寺 大闡玄化 時吳越文穆王知師慕道 乃從其志 遂禮翠巖爲師 執勞供衆 都忘身宰 衣不繒纊 食無重味 野蔬布襦 以遣朝夕 尋往天台山天柱峰 九旬習定 有烏類斥鷃 巢於衣襵中 暨謁韶國師 一見而深器之 密授玄旨 仍謂師曰 汝與元帥有緣 他日大興佛事
●茹葷; 本指吃蔥韭等辛辣的蔬菜 後指吃魚肉等
●身宰; 指身心 宰 主宰者
●重味; 兩種以上菜肴
●野蔬布襦; 野蔬 野菜 布襦 布制的短衣
●斥鷃; 亦作斥鴳 卽鷃雀
항주(杭州) 혜일(慧日) 영명(永明; 永明寺) 연수(延壽) 지각선사(智覺禪師)
여항(餘杭) 왕씨(王氏)의 아들이다. 총각(總角)의 나이에 불승(佛乘)에 귀심(歸心)했고 이미 관(冠; 갓)을 쓰자 여훈(茹葷)하지 않았고 하루에 오직 일식(一食)했다. 법화경을 수지(受持)하되 7행(行)을 구하(俱下)했고 겨우 6순(旬)에 모두(悉) 능히 외웠는데(誦之) 군양(群羊)이 궤청(跪聽)함을 감득(感得; 感)했다. 나이 28에 화정진장(華亭鎭將)이 되었는데 취암참(翠巖參) 선사가 용책사(龍冊寺)로 옮겨 머물며 현화(玄化)를 대천(大闡)함에 속했다. 때에 오월(吳越) 문목왕(文穆王)이 스님이 모도(慕道)함을 알고 이에 그의 의지(意志)를 좇았다. 드디어 취암을 참례하여 스승으로 삼았고 집로(執勞)하고 공중(供衆)하면서 신재(身宰)를 모두 잊었다(都忘). 옷은 증광(繒纊; 비단과 솜옷)이 아니었고 음식은 중미(重味)가 없었고 야소와 포유(野蔬布襦)로 조석(朝夕)을 보내었다. 이윽고 천태산 천주봉(天柱峰)으로 가서 9순(旬) 동안 습정(習定)했는데 오류(烏類)와 척안(斥鷃)이 옷 주름(衣襵) 속에 둥지를 틂이 있었다. 소국사(韶國師)를 예알함에 이르러(暨) 일견(一見)하자 깊이 법기(法器)로 여겼고 몰래 현지(玄旨)를 주었다. 인하여(仍)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원수(元帥)와 인연이 있나니 다른 날 불사를 대흥(大興)하리라.
●茹葷; 본래 파와 부추 등 신랄한 소채(채소)를 먹음을 가리키나 후에 어육(魚肉) 등을 먹음을 가리켰음.
●身宰; 신심(身心)을 가리킴. 재(宰)는 주재자(主宰者).
●重味; 두 종류 이상의 채효(菜肴).
●野蔬布襦; 야소(野蔬)는 야채며 포유(布襦)는 베로 만든 짧은 옷.
●斥鷃; 또 척안(斥鴳; 메추라기)으로 지음. 곧 안작(鷃雀).
初住雪竇 上堂 雪竇這裏 迅瀑千尋 不停纖粟 奇巖萬仞 無立足處 汝等諸人 向甚麽處進步 僧問 雪竇一徑 如何履踐 師曰 步步寒華結 言言徹底冰 師有偈曰 孤猿呌落中巖月 野客吟殘半夜燈 此境此時誰得意 白雲深處坐禪僧 忠懿王請開山靈隱新寺 明年遷永明大道場 衆盈二千 僧問 如何是永明妙旨 師曰 更添香著 曰 謝師指示 師曰 且喜沒交涉 僧禮拜 師曰 聽取一偈 欲識永明旨 門前一湖水 日照光明生 風來波浪起
설두(雪竇)에 초주(初住)했다. 상당(上堂) 설두의 이 속은 신폭(迅瀑)이 천심(千尋)이라 섬속(纖粟)도 머물지(停) 못하고 기암(奇巖)이 만인(萬仞)이라 발을 세울 곳이 없거늘 너희 등 제인(諸人)이 어느 곳을 향해 진보(進步)하겠는가. 승문(僧問) 설두의 일경(一徑)을 어떻게 이천(履踐)합니까. 사왈 보보(步步)마다 한화(寒華)가 맺히고 언언(言言)마다 철저히 얼어붙었다(氷).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고원(孤猿)은 중암(中巖)에 떨어진 달을 부르짖고/ 야객(野客)은 쇠잔(衰殘)한 반야(半夜)의 등(燈)을 읊는구나/ 차경(此境)과 차시(此時)에 누가 득의(得意)하는가/ 백운 깊은 곳의 좌선승(坐禪僧)이다. 충의왕(忠懿王)의 청으로 영은(靈隱) 신사(新寺)를 개산(開山)했고 명년에 영명대도량(永明大道場)으로 옮겼는데 대중이 2천을 채웠다(盈). 승문(僧問) 무엇이 이 영명(永明)의 묘지(妙旨)입니까. 사왈(師曰) 다시 향을 더하라(更添香著). 가로되 스님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사왈 교섭이 없음에 다만 감사한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1게를 청취(聽取)하라. 영명의 의지(意旨)를 알고 싶다면/ 문 앞에 하나의 호수(湖水)다/ 해가 비추면 광명이 생기고/ 바람이 오면 파랑이 일어난다.
問 學人久在永明 爲甚麽不會永明家風 師曰 不會處會取 曰 不會處如何會 師曰 牛胎生象子 碧海起紅塵 問 成佛成祖 亦出不得 六道輪回 亦出不得 未審出甚麽處不得 師曰 出汝問處不得 問 敎中道 一切諸佛及諸佛法 皆從此經出 如何是此經 師曰 長時轉不停 非義亦非聲 曰 如何受持 師曰 若欲受持者 應須著眼聽 問 如何是大圓鏡 師曰 破砂盆
●砂盆; 用黏土爲原料燒製成的陶質盆類之一
묻되 학인이 영명(永明)에 오래 있었거늘 무엇 때문에 영명의 가풍을 알지(會) 못합니까. 사왈(師曰) 알지 못하는 곳을 회취(會取)하라. 가로되 알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압니까. 사왈 우태(牛胎)가 상자(象子)를 낳고 벽해(碧海)에 홍진(紅塵)이 일어난다. 묻되 성불성조(成佛成祖)도 또한 벗어남을 얻지 못하고 육도윤회(六道輪回)도 또한 벗어남을 얻지 못한다 했거니와 미심하오니 어떤 곳(甚麽處)을 벗어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너의 문처(問處)를 벗어남을 얻지 못한다. 묻되 교중(敎中)에 말하되 일체제불 및 모든 불법이 모두 차경(此經)으로 좇아나온다. 무엇이 이 차경입니까. 사왈 장시(長時)에 돌며(轉) 멈추지 않나니(不停) 뜻도 아니고 또한 소리도 아니다. 가로되 어떻게 수지(受持)합니까. 사왈 만약 수지하려고 하는 자는 응당 꼭 착안(著眼)하여 들어라(聽). 묻되 무엇이 이 대원경(大圓鏡)입니까. 사왈 파사분(破砂盆)이다.
●砂盆; 점토를 사용해 원료로 삼아 구워서 제작해 이룬 도질(陶質)의 분류(盆類)의 하나.
師居永明十五載 度弟子一千七百人 開寶七年入天台山 度戒約萬餘人 常與七衆授菩薩戒 夜施鬼神食 朝放諸生類 不可稱算 六時散華行道 餘力念法華經計萬三千部 著宗鏡錄一百卷 詩偈賦詠凡千萬言 播於海外 高麗國王覧師言敎 遣使齎書 敘弟子之禮 奉金線織成袈裟紫水精珠金藻罐等 彼國僧三十六人 皆承印記 前後歸本國 各化一方 開寶八年十二月示疾 越二日焚香告衆 跏趺而寂 塔于大慈山
●七衆; 一比丘 二比丘尼 是男女之受具足戒者 三式叉摩那 沙彌尼之學六法者 四沙彌 五沙彌尼 男女之受小戒者 六優婆塞 七優婆夷 男女之受五戒者 此中上五衆出家 下二衆在家 是諸經論通說之七衆也
스님이 영명(永明)에 거주한 지 15재(載)에 제자 1천7백 인을 제도(濟度)했고 개보(開寶) 7년(974) 천태산에 들어가 약(約) 만여 인에게 도계(度戒; 계를 交付)했다. 늘 7중(七衆)을 위해(與) 보살계를 주었고(受) 밤에는 귀신식(鬼神食)을 베풀었고 아침엔 여러 생류(生類)를 방생한 것을 가히 칭산(稱算; 計算)하지 못한다. 6시(時)에 산화(散華)하며 행도(行道)했고 여력(餘力)으로 법화경을 총계 만3천 부를 외웠다(念). 종경록(宗鏡錄) 1백 권을 지었고 시게부영(詩偈賦詠)은 무릇 천만언(千萬言)이었으니 해외에 천파되었다. 고려국왕이 스님의 언교(言敎)를 열람하고 사자(使者)를 파견하여 서신을 가지고 제자지례(弟子之禮)를 서술했고 금실로 직성(織成)한 가사ㆍ자수정주(紫水精珠)ㆍ금조관(金澡罐) 등을 봉헌(奉獻; 奉)했다. 그 나라의 승(僧) 36인이 모두 인기(印記)를 승수(承受)했고 전후로 본국으로 돌아가 각기 일방(一方)을 교화했다. 개보(開寶) 8년(975) 12월 시질(示疾)했고 이틀을 넘겨(越二日) 분향하고 고중(告衆)하고 가부(跏趺)하고 적(寂)했다. 대자산(大慈山)에 탑을 세웠다.
●七衆; 1은 비구며 2는 비구니니 이는 남녀의, 구족계를 받은 자임. 3은 식차마나(式叉摩那)니 사미니의, 6법을 학습하는 자임. 4는 사미며 5는 사미니니 남녀의, 소계(小戒)를 받은 자임. 6은 우바새며 7은 우바이니 남녀의, 5계를 받은 자임. 이 가운데 상(上)의 5중(衆)은 출가며 하의 2중은 재가(在家)임. 이는 여러 경론에서 통설(通說)하는 7중임.
蘇州長壽院朋彦廣法禪師
永嘉秦氏子 僧問 如何是玄旨 師曰 四稜塌地 問 如何是絕絲毫底法 師曰 山河大地 曰 恁麽則卽相而無相也 師曰 也是狂言 問 如何是徑直之言 師曰 千迃萬曲 曰 恁麽則無不總是也 師曰 是何言歟 問 如何是道 師曰 跋涉不易
●四稜塌地; 同四楞塌地 稜 同楞 塌 貼也 又作四稜榻地 四隅之脚著地也 喩安心處
소주(蘇州) 장수원(長壽院) 붕언(朋彦) 광법선사(廣法禪師)
영가(永嘉) 진씨(秦氏)의 아들이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현지(玄旨)입니까. 사왈(師曰) 사릉탑지(四稜塌地)다. 묻되 무엇이 이 사호(絲毫)도 끊긴 법입니까. 사왈 산하대지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즉상(卽相)하여 무상(無相)입니다. 사왈 또한 이 광언(狂言)이다. 묻되 무엇이 이 경직지언(徑直之言)입니까. 사왈 천우만곡(千迃萬曲)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모두(總) 이것(是)이 아님이 없습니다. 사왈 이 무슨 말인가(是何言歟).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발섭(跋涉)이 쉽지 않다.
●四稜塌地; 사릉탑지(四楞塌地)와 같음. 릉(稜)은 릉(楞)과 같고 탑(塌)은 첩(貼; 붙다)임. 또 사릉탑지(四稜榻地)로 지음. 네 모퉁이의 발이 착지함이니 안심처에 비유함.
溫州大寧院可弘禪師
僧問 如何是正眞一路 師曰 七顚八倒 曰 恁麽則法門無別去也 師曰 我知汝錯會去 問 皎皎地無一絲頭時如何 師曰 話頭已墮 曰 乞師指示 師曰 適來亦不虛設 問 向上宗乘 請師擧揚 師曰 汝問太遲生 曰 恁麽則不仙陀去也 師曰 深知汝恁麽去
온주(溫州) 대녕원(大寧院) 가홍선사(可弘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정진(正眞)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師曰) 칠전팔도(七顚八倒)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법문이 다르지 않겠습니다. 사왈 내가 아나니 너는 착회(錯會)했다. 묻되 교교지(皎皎地)에 1사두(絲頭)도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화두(話頭)가 이미 떨어졌다(墮). 가로되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적래(適來; 조금 전)에도 또한 헛되이 베풀지(設) 않았다. 묻되 향상의 종승(宗乘)을 청컨대 스님이 거양(擧揚)하십시오. 사왈 너의 물음이 너무 더디다(太遲生).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선타(仙陀)가 아니겠습니다. 사왈 네가 이렇게 가는 줄 깊이 안다.
杭州五雲山華嚴院志逢禪師
餘杭人也 生惡葷血 膚體香潔 幼歲出家於臨安東山朗瞻院 依年受具 通貫三學 了達性相 甞夢陞須彌山 覩三佛列坐 初釋迦 次彌勒 皆禮其足 唯不識第三尊 但仰視而已 釋尊謂之曰 此是補彌勒處師子月佛 師方作禮 覺後因閱大藏經 乃符所夢 天福中 遊方抵天台雲居 參國師 賓主緣契 頓發玄祕
항주(杭州) 오운산(五雲山) 화엄원(華嚴院) 지봉선사(志逢禪師)
여항(餘杭) 사람이니 태어나자 훈혈(葷血)을 싫어했고 부체(膚體)가 향결(香潔)했다. 유세(幼歲)에 임안(臨安) 동산(東山) 낭첨원(朗瞻院)에서 출가했고 나이에 의해 수구(受具)했고 삼학(三學)을 통관(通貫)했고 성상(性相)을 요달(了達)했다. 일찍이 꿈에 수미산에 올라 3불(佛)이 열좌(列坐)한 것을 보았는데 초(初)는 석가였고 차(次)는 미륵이라 그 발에 모두 예배했다. 오직 제3존(第三尊)을 알지 못했고 단지 앙시(仰視)할 따름이었다. 석존(釋尊)이 일러 가로되 이것은 이 보미륵처(補彌勒處) 사자월불(師子月佛)이다. 스님이 비로소 작례(作禮)했다. 깬 후에 대장경을 열람함으로 인해 이에 꿈꾼 바와 부합(符合)했다. 천복(天福) 중 유방(遊方)하다가 천태 운거(雲居)에 다다라(抵) 국사(國師; 德韶國師)를 참(參)했고 빈주(賓主)의 인연이 계합해 현비(玄祕; 玄妙한 祕藏)를 돈발(頓發; 문득 發明)했다.
一日入普賢殿中宴坐 倐有一神人跪膝於前 師問 汝其誰乎 曰 護戒神也 師曰 吾患有宿愆未殄 汝知之乎 曰 師有何罪 唯一小過耳 師曰 何也 曰 凡折鉢水 亦施主物 師每傾棄 非所宜也 言訖而隱 師自此洗鉢水盡飮之 積久因致脾疾 十載方愈〈凡折退飮食及涕唾便利等 竝宜鳴指 默念呪 發施心而傾棄之〉
●宿愆; 舊時的過
●折鉢水; 卽折水 其義有二 一指叢林齋粥之後 將洗滌鉢盂匙箸等器之水棄之 二指洗滌鉢盂等之水 又稱棄鉢水 折 卽毁棄捨棄之意 ▲入衆須知 未折水 不可收蓋膝巾 折水偈云 我此折鉢水 如天甘露味 普施諸鬼神 咸令得飽滿 唵摩休羅細娑訶
●積久; 長時間的累積
●便利; 佛經中多用以指屎尿
어느 날 보현전(普賢殿) 가운데로 들어가 연좌(宴坐)했는데 갑자기(倏) 1신인(神人)이 있어 앞에 궤슬(跪膝)했다. 스님이 문왈(問曰) 너는 그 누구인가. 가로되 호계신(護戒神)입니다. 사왈(師曰) 나의 근심(患)에 숙건(宿愆)이 다하지 않음(未殄)이 있나니 네가 이를 아느냐. 가로되 스님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오직 일소과(一小過)일 뿐입니다. 사왈 왜냐. 가로되 무릇 절발수(折鉢水)도 또한 시주물(施主物)인데 스님이 매번 경기(傾棄)하니 마땅한 바(所宜)가 아닙니다. 말을 마치자 은몰(隱沒; 隱)했다. 스님이 이로부터 세발수를 모두 마셨다. 적구(積久)로 인해 비질(脾疾)에 이르렀으나 10재(載) 만에 바야흐로 나았다(愈)〈무릇 음식 및 涕唾와 便利 등을 折退하면 모두 의당 鳴指하고 呪를 묵념하면서 施心을 發하고서 그것을 傾棄해야 한다〉.
●宿愆; 구시(舊時)의 허물.
●折鉢水; 곧 절수(折水)니 그 뜻에 둘이 있음. 1. 총림에서 재죽(齋粥)의 뒤에 발우와 시저(匙箸; 수저) 등 도구를 세척한 물을 가져다 버림을 가리킴. 2. 발우 등을 세척한 물을 가리킴. 또 호칭이 기발수(棄鉢水)임. 절(折)은 곧 훼기사기(毁棄捨棄)의 뜻. ▲입중수지. 절수(折水)하지 아니한 전엔 가히 개슬건(蓋膝巾)을 거두지 못한다. 절수게(折水偈)에 이르되 나의 이 절발수(折鉢水)는/ 천상의 감로미와 같다/ 모든 귀신에게 널리 베푸나니/ 모두 포만을 얻게 하리라. 옴 마휴라세 사하(唵摩休羅細娑訶).
●積久; 장시간(長時間)의 누적(累積).
●便利; 불경 중 시뇨(屎尿)를 가리킴으로 다용(多用)함.
吳越國王嚮師道風 召賜紫衣 署普覺禪師 命住臨安功臣院 上堂 諸上座捨一知識 參一知識 盡學善財南遊之式樣 且問上座 祇如善財禮辭文殊 擬登妙峰謁德雲比丘 及到彼所 何以德雲却於別峰相見 夫敎意祖意 同一方便 終無別理 彼若明得 此亦昭然 諸上座卽今簇著老僧 是相見是不相見 此處是妙峰 是別峰 脫或從此省去 可謂不孤負老僧 亦常見德雲比丘 未甞刹那相捨離 還信得及麽 僧問 叢林擧唱曲爲今時 如何是功臣的的意 師曰 見麽 曰 恁麽則大衆咸欣也 師曰 將謂師子兒 問 佛佛授手 祖祖傳心 未審和尙傳箇甚麽 師曰 汝承當得麽 曰 學人承當不得 還別有人承當得否 師曰 大衆笑汝 問 如何是如來藏 師曰 恰問著 問 如何是諸佛機 師曰 道是得麽 上堂 良久曰 大衆看看 便下座
●別峯相見; 碧巖錄第二十三則 敎中說妙峰孤頂 德雲比丘 從來不下山 善財去參 七日不逢 一日却在別峰相見 及乎見了 却與他說一念三世 一切諸佛智慧光明普見法門 德雲旣不下山 因什麽却在別峰相見 若道他下山 敎中道德雲比丘從來不曾下山 常在妙峰孤頂 到這裏 德雲與善財 的的在那裏 自後李長者打葛藤 打得好 道 妙峰孤頂 是一味平等法門 一一皆眞 一一皆全 向無得無失 無是無非處獨露 所以善財不見 到稱性處 如眼不自見 耳不自聞 指不自觸 如刀不自割 火不自燒 水不自洗 到這裏 敎中大有老婆相爲處 所以放一線道 於第二義門 立賓立主 立機境立問答 所以道 諸佛不出世 亦無有涅槃 方便度衆生 故現如斯事
●佛佛授手; 自一佛至一佛 自一佛至多方之佛 授手 囑累法也 祖庭事苑七曰 泥洹經云 佛將入滅 命羅漢十萬比丘授手 又將左手伸向阿難羅云 又將阿難羅云手 授與它方化佛 表囑累故
오월국왕(吳越國王)이 스님의 도풍을 향(嚮; 向)했고 불러 자의(紫衣)를 주고 서(署)하여 보각선사(普覺禪師)라 했고 명(命)하여 임안(臨安) 공신원(功臣院)에 주(住)했다. 상당(上堂) 제상좌여 1지식을 버리고 1지식을 참함은 모두 선재(善財)가 남유(南游)하는 식양(式樣)을 배움이다. 다만 상좌에게 묻는다. 지여(祇如) 선재가 문수(文殊)에게 예사(禮辭)하고 묘봉산(妙峰山; 수미산)에 올라 덕운비구(德雲比丘)를 참알하려 했는데 그곳(彼所)에 이르자(及到) 무엇 때문에(何以) 덕운이 도리어 별봉에서 상견했는가(於別峰相見). 무릇 교의(敎意)와 조의(祖意)가 동일한 방편이라 마침내 별리(別理)가 없나니 그에서(彼) 만약 명득(明得)하면 여기에서(此) 또한 소연(昭然)하다. 제상좌가 즉금 노승에게 주착(簇著; 모이다)함은 이 상견인가 이 불상견(不相見)인가. 이곳이 이 묘봉(妙峰)인가 이 별봉(別峰)인가. 탈혹(脫或; 或是) 이로좇아 성찰(省察)하여 간다면 가위(可謂) 노승을 저버리지(孤負) 않음이며 또한 덕운비구를 상견(常見)하되 일찍이 찰나라도 서로 사리(捨離)하지 않는다 하리니 도리어 믿어 미침을 얻느냐. 승문(僧問) 총림의 거창(擧唱)은 위곡(委曲)히 금시(今時)를 위함입니다. 무엇이 이 공신(功臣)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사왈(師曰) 보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咸欣也). 사왈 장차 사자아(師子兒)라고 이르려 했더니. 묻되 불불이 수수하고(佛佛授手) 조조(祖祖)가 전심(傳心)합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저(箇) 무엇을 전합니까. 사왈 네가 승당(承當)함을 얻겠느냐. 가로되 학인은 승당함을 얻지 못하나니 도리어 따로 어떤 사람이 승당함을 얻습니까. 사왈 대중이 너를 웃는다. 묻되 무엇이 이 여래장입니까. 사왈 마침 물었다(恰問著). 묻되 무엇이 이 제불기(諸佛機)입니까. 사왈 이것이라고 말함을 얻겠느냐(道是得麽). 상당하여 양구하고 가로되 대중이여 보아라, 보아라. 바로 하좌했다.
●別峯相見; 벽암록 제23칙. 교중에 묘봉고정(妙峰孤頂)을 설했다. 덕운비구(德雲比丘)가 종래로 하산하지 않았다. 선재(善財)가 가서 참견하려 했으나 7일 동안 만나지 못했다. 어느 날 도리어 별봉에 있으면서 상견(在別峰相見)했다. 그리고 보고 나자 도리어 그에게 일념이 삼세며 일체제불의 지혜광명보견법문(智慧光明普見法門)을 설해 주었다. 덕운은 이미 하산하지 않았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별봉에 있으면서 상견했는가. 만약 말하기를 그가 하산했다 한다면 교중에서 말하기를 덕운비구는 종래로 일찍이 하산하지 않고 늘 묘봉고정에 있다 했다. 이 속에 이르러 덕운과 선재가 적적(的的)히 어느 속에 있느냐. 자후(自後; 이로부터 후)로 이장자(李長者)가 갈등을 지었으니 지어 얻음이 훌륭하다. 말하기를 묘봉고정은 이 일미의 평등법문이다. 하나하나가 다 진(眞)이며 하나하나가 다 전(全)이다.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고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는 곳을 향해 독로했나니 소이로 선재가 보지 못했다 했다. 칭성(稱性; 자성에 稱合)의 곳에 이르러선 눈이 스스로를 보지 못하고 귀가 스스로를 듣지 못하고 손가락이 스스로를 접촉하지 못함과 같다. 칼이 스스로를 베지 못하고 불이 스스로를 태우지 못하고 물이 스스로를 씻지 못함과 같다. 이 속에 이르러 교중에서 다시 노파심으로 상위(相爲)하는 곳이 있다. 소이로 일선도(一線道)를 방출하여 제2의문(義門)에서 빈(賓)을 세우고 주(主)를 세우고 기경(機境)을 세우고 문답을 세웠다. 소이로 말하되 제불은 출세하지 않고 또한 열반도 있지 않지만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하려고 고로 이와 같은 일을 나타냈다.
●佛佛授手; 1불로부터 1불에 이르고 1불로부터 여러 지방의 불에게 이름. 수수(授手)는 법을 촉루(囑累)함임. 조정사원7에 가로되 니원경에 이르기를 불타가 장차 입멸하려 하면서 라한 10만 비구에게 명령해 손을 주고 또 좌수(左手)를 가지고 뻗어(伸) 아난과 라운(羅云; 羅睺羅)을 향하고 또 아난과 라운의 손을 가지고 타방(它方)의 화불(化佛)에게 수여하셨다. 촉루(囑累)를 표한 연고임.
上堂 古德爲法行脚 不憚勤勞 如雪峰三到投子 九上洞山 盤桓往返 尙求箇入路不得 看汝近世參學人 纔跨門來 便要老僧接引 指示說禪 且汝欲造玄極之道 豈同等閑 而況此事亦有時節 躁求焉得 汝等要知悟時麽 如今各且下去 堂中靜坐 直待仰家峰點頭 老僧卽爲汝說 時有僧出曰 仰家峯點頭也 請師說 師曰 大衆且道 此僧會老僧語 不會老僧語 僧禮拜 師曰 今日偶然失鑒 有人問僧 無爲無事人 爲甚麽却有金鎻難 僧無對 師代云 祇爲無爲無事 僧問 敎中道 文殊忽起佛見法見 被佛威神攝向二鐵圍山 意旨如何 師曰 甚麽處是二鐵圍山 僧無語 師曰 還會麽 如今若有人起佛法之見 吾與烹茶兩甌 且道賞伊罰伊 同敎意不同敎意 開寶四年 大將凌超於五雲山創院 奉師爲終老之所 師每𢹂大扇乞錢買肉飼虎 虎每迎之 載以還山 雍熈二年示寂 塔於本院
상당(上堂) 고덕(古德)이 법을 위해 행각하면서 근로(勤勞)를 꺼리지(憚) 않았다. 예컨대(如) 설봉(雪峰)은 세 번 투자(投子)에 이르렀고 아홉 번 동산(洞山)에 올랐다. 반환(盤桓; 徘徊)하고 왕반(往返)하며 오히려 저(箇) 입로(入路)를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너희를 보건대 근세(近世)의 참학인은 겨우 문을 넘어(跨) 오면 바로 노승이 접인(接引)하고 지시(指示)하며 설선(說禪)함을 요구(要求; 要)한다. 다만(且) 너희가 현극(玄極; 현묘하고 지극함)의 도에 나아가고(造) 싶다면 어찌 등한(等閑)함과 같겠는가. 하물며 차사(此事)는 또한 시절이 있거늘 조급(躁急; 躁)히 구한다면 어찌(焉) 얻겠는가. 너희 등이 오시(悟時)를 알고자 하느냐. 여금에 각자 다만(且) 내려가 당중(堂中)에서 정좌(靜坐)하며 바로 앙가봉(仰家峰)이 점두(點頭)함을 기다린다면 노승이 곧 너희를 위해 설(說)하리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앙가봉이 점두했으니 스님의 설(說)을 청합니다. 사왈 대중은 그래 말하라, 이 중이 노승의 말을 알았느냐 노승의 말을 알지 못했느냐. 중이 예배했다. 사왈 금일 우연히 감별(鑒別; 鑒)을 잃었다(失). 어떤 사람이 중에게 묻되 무위무사인(無爲無事人)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금쇄난(金鎻難)이 있습니까.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운(代云) 다만 무위무사(無爲無事)하기 때문이다. 승문(僧問) 교중(敎中)에 말하되 문수(文殊)가 홀연히 불견(佛見)과 법견(法見)을 일으켜 불타가 위신(威神)으로 거두어 2철위산(鐵圍山)을 향하게 함을 입었다 한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어느 곳이 이 2철위산인가. 중이 말이 없었다. 사왈 도리어 아느냐. 여금에 만약 어떤 사람이 불법지견(佛法之見)을 일으킨다면 내가 팽다(烹茶)하여 두 사발(兩甌) 주겠다. 그래 말하라, 그에게 상을 줌인가 그에게 벌을 줌인가. 교의(敎意)와 같은가 교의와 같지 않은가. 개보(開寶) 4년(971) 대장(大將) 능초(凌超)가 오운산(五雲山)에 창원(創院)하고 스님에게 봉헌(奉獻; 奉)하여 종로지소(終老之所)로 삼게 했다. 스님은 매양 큰 부채를 지녔고(𢹂) 돈을 구걸해 고기를 사서 범에게 먹였는데 범이 매양 영접해 싣고서 환산(還山)했다. 옹희(雍熙) 2년(985) 시적(示寂)했고 본원(本院)에 탑을 세웠다.
杭州報恩法端慧月禪師
上堂 數夜與諸上座東語西話 猶未盡其源 今日與諸上座大開方便 一時說却 還願樂也無 久立 珍重 僧問 學人恁麽上來 請師接 師曰 不接 曰 爲甚麽不接 師曰 爲汝太靈利
항주(杭州) 보은(報恩) 법단(法端) 혜월선사(慧月禪師)
상당(上堂) 수야(數夜)에 제상좌에게 동어서화(東語西話)해 주었지만 오히려 그 근원을 다하지 못했다. 금일 제상좌를 위해(與) 방편을 크게 열어 일시에 설해버리겠나니 도리어 원요(願樂)하느냐 또는 아니냐.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학인이 이렇게 올라왔으니 스님의 접인(接引; 接)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접인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접인하지 않습니까. 사왈 네가 너무(太) 영리(靈利)하기 때문이다.
杭州報恩紹安通辯明達禪師
上堂 僧問 大衆側聆 請師不吝 師曰 奇怪 曰 恁麽則今日得遇於師也 師曰 是何言歟 乃曰 一句染神 萬劫不朽 今日爲諸人擧一句子 良久曰 分明記取 便下座 上堂 幸有樓臺匝地 常提祖印 不妨諸上座參取 久立 珍重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一切處見成 曰 恁麽則亘古亘今也 師曰 莫閑言語
항주(杭州) 보은(報恩) 소안(紹安) 통변(通辯) 명달선사(明達禪師)
상당(上堂) 승문(僧問) 대중이 측령(側聆)하니 청컨대 스님이 아끼지 마십시오(不吝). 사왈(師曰) 기괴(奇怪)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금일 스님을 득우(得遇)했습니다. 사왈 이 무슨 말인가. 이에 가로되 1구가 염신(染神; 精神에 물들다)하면 만겁(萬劫)에 불후(不朽)하나니 금일 제인(諸人)을 위해 1구자(句子; 子는 조사)를 들겠다(擧).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분명히 기취(記取)하라. 바로 하좌했다. 상당(上堂) 다행히 누대(樓臺)가 있어 땅을 돌며(匝地) 늘 조인(祖印)을 제기(提起; 提)하나니 제상좌가 참취(參取)함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구립(久立)했다. 진중(珍重). 승문(僧問) 무엇이 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일체처에 현성(見成)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긍고긍금(亘古亘今)합니다. 사왈 한언어(閑言語; 쓸데없는 언어)를 하지 말아라.
福州廣平院守威宗一禪師
本州人也 參天台國師得旨 乃付衣法 時有僧問 大庾嶺頭提不起 如何今日付於師 師提起曰 有人敢道天台得麽 上堂 達磨大師云 吾法三千年後 不移絲髮 山僧今日不移達磨絲髮 先達之者 共相證明 若未達者 不移絲髮 僧問 洪鐘韻絕 大衆臨筵 祖意西來 請師提唱 師曰 洪鐘韻絕 大衆臨筵 問 古人云 任汝千聖見 我有天眞佛 如何是天眞佛 師曰 千聖是弟 問 如何是廣平家風 師曰 誰不受用 上堂 不用開經作梵 不用展鈔牒科 還有理論處也無 設有理論處 亦是方便之談 宗乘事合作麽生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未曾有人答得 曰 請師方便 師曰 何不更問
●開經; 翻開經文 稱爲開經 又稱開題開軸 讀誦經文之前 一般先唱念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見聞得受持 願解如來眞實義 此偈卽稱開經偈
●作梵; 唱頌梵唄也 法事之初 作梵唄止息場內之喧亂也 又唱頌梵唄之僧人 亦稱爲作梵闍梨 乃沙彌得度儀式中三師之一 其他二師爲戒師 引請闍梨 [禪苑淸規九沙彌受戒文]
●牒科; 牒爲札 凡於註疏中斷割所釋之廣文而擧之 恰如簡札 謂之牒 科 經論等之科目章節
복주(福州) 광평원(廣平院) 수위(守威) 종일선사(宗一禪師)
본주(本州) 사람이다. 천태국사(天台國師; 德韶)를 참해 득지(得旨)했다. 이에 의법(衣法)을 주었는데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대유령두(太庾嶺頭)에서 들어(提) 일으키지 못했거늘 어떻게 금일 스님에게 부촉(付囑; 付)했습니까. 스님이 들어 일으키고 가로되 어떤 사람이 감히 말하되 천태에서 얻었다고 하겠는가. 상당(上堂) 달마대사가 이르되 오법(吾法)은 3천 년 후에 사발(絲髮) 만큼도 이동(移動)하지 않으리라. 산승이 금일 달마를 사발 만큼도 이동하지 않으리니 선달지자(先達之者)는 함께 서로(共相) 증명하고 만약 도달하지 못한 자면 사발 만큼도 이동하지 말아라. 승문(僧問) 홍종(洪鐘)의 운(韻)이 끊기고 대중이 임연(臨筵)했습니다. 조의서래(祖意西來; 祖意가 西來함)를 청컨대 스님이 제창(提唱)하십시오. 사왈 홍종(洪鐘)의 운(韻)이 끊기고 대중이 임연(臨筵)했다. 묻되 고인이 이르되 네가 천성(千聖)을 보는 대로 일임하나니 나에게 천진불(天眞佛)이 있다. 무엇이 이 천진불입니까. 사왈 천성(千聖)은 이 제(弟)다. 묻되 무엇이 이 광평(廣平)의 가풍입니까. 사왈 누군들 수용(受用)하지 않겠는가. 상당(上堂) 개경(開經)과 작범(作梵)을 쓰지 않고 전초(展鈔)와 첩과(牒科)를 쓰지 않고 도리어 이론(理論)할 곳이 있느냐 또는 아니냐. 설사 이론할 곳이 있더라도 역시(亦是) 방편지담(方便之談)이니 종승사(宗乘事)는 합당히 어떠한가.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일찍이 답득(答得)할 사람이 있지 않았다. 가로되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왜 다시 묻지 않느냐.
●開經; 경문을 번개(翻開; 펼쳐 엶)함을 칭호하여 개경임. 또 호칭이 개제(開題)ㆍ개축(開軸). 경문을 독송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먼저 창해 외우기를 위없는 매우 깊은 미묘한 법을/ 백천만 겁에 조우하기 어렵다/ 내가 이제 견문하고 수지함을 얻었으니/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길 원합니다. 이 게를 곧 일컬어 개경게라 함.
●作梵; 범패를 창송(唱頌)함. 법사(法事)의 처음에 범패를 지어 장내의 훤란(喧亂)을 지식(止息)함임. 또 범패를 창송하는 승인을 또한 일컬어 작범사리라 하는데 곧 사미 득도의식 중 3사(師)의 하나임. 기타 2사는 계사와 인청사리(引請闍梨)가 됨 [선원청규9 사미수계문].
●牒科; 첩(牒)은 찰(札)이니 무릇 주소(註疏) 중에서 소석(所釋)의 광문(廣文)을 단할(斷割)하여 이를 듦(擧)이 간찰(簡札)과 흡여(恰如; 흡사)한지라 이를 일러 첩(牒)이라 함. 과(科)는 경론 등의 과목의 장절(章節).
杭州報恩永安禪師
溫州翁氏子 幼依本郡彚征大師出家 後唐天成中隨本師入國 忠懿王命征爲僧正 師尤不喜俗務 擬潛往閩川投訪禪會 屬路岐艱阻 遂回天台山結茅 尋遇韶國師開示 頓悟本心 乃辭出山 征聞於王 王命住越州淸泰 次召居上寺 署正覺空慧禪師
●艱阻; 艱難險阻
항주(杭州) 보은(報恩) 영안선사(永安禪師)
온주(溫州) 옹씨(翁氏)의 아들이다. 유세(幼歲; 幼)에 본군(本郡) 휘정대사(彙征大師)에게 의지해 출가했다. 후당(後唐) 천성(天成; 926-929) 중 본사(本師)를 따라 입국하자 충의왕(忠懿王)이 휘정(彙征; 征)을 임명(任命; 命)해 승정(僧正)으로 삼았다. 스님이 더욱(尤) 속무(俗務)를 기뻐하지 않아 민천(閩川)으로 몰래 가서(潛往) 선회(禪會)에 투방(投訪; 투입하여 參訪)하려고 했는데 길이 기구(崎嶇; 岐)하고 간조(艱阻)함에 속한지라 드디어 천태산으로 돌아가 결모(結茅)했다. 이윽고 소국사(韶國師)의 개시(開示)를 만나 본심을 돈오(頓悟)했다. 이에 고별하고 출산(出山)하자 휘정(彙征; 征))이 왕에게 알렸고(聞) 왕이 명(命)하여 월주(越州) 청태(淸泰)에 주(住)했고 다음은 불러 상사(上寺)에 거주케 했고 서(署)하여 정각공혜선사(正覺空慧禪師)라 했다.
●艱阻; 간난(艱難)하고 험조(險阻)함.
上堂 十方諸佛 一時雲集 與諸上座證明 諸上座與佛一時證明 還信麽 切忌卜度 僧問 四衆雲臻 如何擧唱 師曰 若到諸方 切莫錯擧 曰 非但學人 大衆有賴 師曰 禮拜著 問 五乘三藏 委者頗多 祖意西來 乞師指示 師曰 五乘三藏 曰 向上還有事也無 師曰 汝却靈利 問 如何大作佛事 師曰 嫌甚麽 曰 恁麽則親承摩頂去也 師曰 何處見世尊 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過這邊立 僧纔移步 師召曰 會麽 曰 不會 師曰 聽取一偈 汝問西來意 且過這邊立 昨夜三更時 雨打虛空濕 電影忽然明 不似蚰蜒急 開寶七年示疾 告衆言別 時有僧問 昔日如來正法眼 迦葉親傳 未審和尙玄風 百年後如何體會 師曰 汝甚麽處見迦葉來 曰 恁麽則信受奉行 不忘斯旨去向 師曰 佛法不是這箇道理 言訖跏趺而寂 闍維舌根不壞 柔輭如紅蓮華 藏於普賢道場
●五乘; (一)爲敎化衆生而將之運載至理想世界之五種法門 稱爲五乘 一人乘 人以三歸五戒爲乘 運出三塗四趣而生於人道 二天乘 以上品十善及四禪八定爲乘 運載衆生越於四洲而達天界 三聲聞乘 卽以四諦法門爲乘 運載衆生越於三界 至有餘涅槃而成阿羅漢 四緣覺乘 卽以十二因緣法門爲乘 運載衆生越於三界 至無餘涅槃而成辟支佛 五菩薩乘 總超三界三乘之境 至無上菩提大般涅槃之彼岸 [盂蘭盆經疏上 法華玄論七] (二)三藏法數十六 五乘[出華嚴一乘敎義分齊章] 一佛乘 佛 梵語具云佛陀 華言覺 乘卽運載之義 謂如來以一乘實相之法 運諸衆生同到涅槃彼岸 故名佛乘 二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菩薩之人 以六度萬行爲乘 運諸衆生 同出三界 故名菩薩乘 三緣覺乘 謂緣覺之人 因觀十二因緣 除於我執 而悟眞空涅槃之理 以此之法 運出三界 故名緣覺乘 四聲聞乘 謂聲聞之人 聞佛聲敎 修苦集滅道四諦之法 而悟眞空涅槃之理 以此之法 運出三界 故名聲聞乘 五小乘 小乘者 卽人天乘也 謂人天以五戒十善爲乘 運出四趣 故名小乘
●摩頂; 謂釋迦牟尼佛 以大法付囑大菩薩時 用右手摩其頂 [法華經]
상당(上堂) 시방제불이 일시에 운집하여 제상좌(諸上座)를 위해(與) 증명하고 제상좌와 제불이 일시에 증명했나니 도리어 믿느냐. 복탁(卜度)함을 절기(切忌)한다. 승문(僧問) 4중(衆)이 운진(雲臻; 雲集)하였으니 어떻게 거창(擧唱)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만약 제방에 이르거든 간절히 착거(錯擧)하지 말아라. 가로되 단지 학인 만이 아니라 대중이 신뢰(信賴)함이 있습니다. 사왈 예배하거라(禮拜著). 승문 오승삼장(五乘三藏)은 아는 자(委者)가 파다(頗多)합니다. 조의서래(祖意西來)를,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오승삼장(五乘三藏)이다. 가로되 향상(向上)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영리(靈利)하다. 묻되 무엇이 대작불사(大作佛事)입니까. 사왈 무엇을 혐의(嫌疑)하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마정(摩頂)을 친승(親承)해 갑니다. 사왈 어느 곳에서 세존을 보느냐.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저변(這邊; 이쪽)에 이르러(過) 서거라. 중이 겨우 걸음을 옮기자 스님이 불러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1게를 청취(聽取)하라. 네가 서래의를 물으니/ 다만(且) 저변(這邊)에 이르러 서거라/ 어젯밤 3경(更) 때에/ 비가 허공을 때려 적셨다(濕)/ 전영(電影)이 홀연히 밝아/ 유정(蚰蜓; 그리마)과 같지 않고 급하다. 개보(開寶) 7년(974) 시질(示疾)했고 고중(告衆)하여 이별(離別)했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석일(昔日) 여래의 정법안(正法眼)을 가섭이 친전(親傳)했습니다만 미심하오니 화상의 현풍(玄風)은 백년후(百年後)에 어떻게 체회(體會)해야 합니까. 사왈(師曰) 너는 어느 곳에서 가섭을 보고 왔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신수봉행(信受奉行)하며 이(斯) 의지(意旨; 旨)를 잊지 않겠습니다. 사왈 불법이 이, 저개(這箇) 도리가 아니다. 말을 마치자 가부(跏趺)하고 적(寂)했다. 사유(闍維)하매 설근(舌根; 혀)이 파괴되지 않았고 유연( 柔軟)하기가 홍련화(紅蓮華) 같았다. 보현도량에 안장(安藏)했다.
●五乘; (1).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그를 데리고 운재(運載)하여 이상세계(理想世界)에 이르는 5종의 법문을 일컬어 5승(乘)이라 함. 1. 인승(人乘) 인(人)은 3귀5계(三歸五戒)를 승(乘)으로 삼아 3도4취(三塗四趣)를 운출(運出)하여 인도(人道)에 출생함. 2. 천승(天乘) 상품(上品) 10선(善) 및 4선8정(四禪八定)을 승(乘)으로 삼아 중생을 운재(運載)하여 4주(洲)를 초월하여 천계(天界)에 도달함. 3. 성문승(聲聞乘) 곧 4제(諦)의 법문을 승(乘)으로 삼아 중생을 운재(運載)하여 3계(界)를 초월하여 유여열반(有餘涅槃)에 이르러 아라한을 이룸. 4. 연각승(緣覺乘) 곧 12인연의 법문을 승(乘)으로 삼아 중생을 운재(運載)하여 3계(界)를 초월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러 벽지불을 이룸. 5. 보살승(菩薩乘) 3계(界)와 3승(乘)의 경계를 모두 초월해 위없는 보리의 대반열반의 피안에 이름 [우란분경소상. 법화현론7]. (2). 삼장법수16. 5승(乘) [출화엄일승교의분제장] 1. 불승(佛乘) 불(佛)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불타(佛陀)며 화언(華言)으론 각(覺)임. 승(乘)은 곧 운재(運載)의 뜻이니 이르자면 여래가 1승(乘)의 실상의 법으로써 모든 중생을 운전해 함께 열반의 피안에 이름이니 고로 이름이 불승임. 2.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며 화언으론 각유정(覺有情)임. 이르자면 보살의 사람이 육도만행(六度萬行)을 수레로 삼아 모든 중생을 운전해 3계를 함께 벗어남이니 고로 이름이 보살승임. 3. 연각승(緣覺乘) 이르자면 연각의 사람이 12인연을 관찰함으로 인해 아집을 제거하고 진공의 열반의 도리를 깨쳐 이 법으로써 운전해 3계를 벗어나나니 고로 이름이 연각승임. 4. 성문승(聲聞乘) 이르자면 성문의 사람이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제(諦)의 법을 닦아 진공의 열반의 도리를 깨쳐 이 법으로써 운전해 삼계를 벗어나나니 고로 이름이 성문승임. 5. 소승(小乘) 소승이란 것은 곧 인천승(人天乘)임. 이르자면 인과 천이 5계(戒)와 10선(善)을 수레로 삼아 운전해 4취(四趣;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취)를 벗어나나니 고로 이름이 소승임.
●摩頂; 이르자면 석가모니불이 대법을 대보살에게 부촉할 때 오른손을 써서 그 이마를 어루만짐 [법화경].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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