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541쪽

태화당 2019. 11. 9. 10:18

徐六擔片板徐六擔板各見一邊的略語 密菴語錄 入方丈據座云 獅子敎兒迷子訣 擬前跳擲早翻身 羅紋結角交鋒處 鶻眼臨時失却蹤 古人與麽道 也是徐六擔片板

서륙담편판(徐六擔片板) 서륙담판각견일변의 약어. 밀암어록. 방장에 들어가 거좌(據座)하고 이르되 사자가 새끼를 가르치면서 새끼를 혼미(昏迷)하게 하는 비결은 앞으로 뛰는 척하다가 벌써 몸을 뒤집는다. 나문결각(羅紋結角)의 교봉하는 곳은 매의 눈으로 임시(臨時)해도 종적을 잃어버린다. 고인이 이렇게 말함은 또한 이 서륙담편판(徐六擔片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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棲倫宋代僧 居洛京興善 淸凉文益法嗣 [傳燈錄二十五]

서륜(棲倫) 송대승. 낙경 흥선에 거주했고 청량문익의 법사임 [전등록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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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陵(507-583) 字孝穆 東海郯(今山東省郯城縣)人 徐摛之子 南朝梁陳間的詩人 文學家 梁武帝蕭衍時期 任東宮學士 常出入禁闥 爲當時宮體詩人 與庾信齊名 並稱徐庾 入陳後歷任尙書左僕射 中書監等職 至德元年去世 諡曰章 祖庭事苑二 天石麟 徐陵 字孝穆 母臧氏 甞夢五色雲化爲鳳 集左肩上 已而誕 陵年數歲 家人携以候沙門寶誌 誌摩其頂曰 天上石麒麟也 光宅寺慧雲法師每嗟其早就 爲之顔回 陵官至光祿大夫 太子少傅 年七十七卒

서릉(徐陵) (507-583) 자는 효목이며 동해 담(지금의 산동성 담성현) 사람이니 서리의 아들. 남조(南朝) 양진(梁陳) 사이의 시인이며 문학가. 양무제 소연(蕭衍)의 시기에 동궁학사에 임명되었음. 늘 금달(禁闥; 궁전의 앞문)을 출입했고 당시의 궁체시인(宮體詩人)이 되었음. 유신(庾信)과 이름이 가지런했고 병칭이 서유(徐庾). 입진(入陳)한 후에 상서좌복야ㆍ중서감 등의 관직을 역임했음. 지덕 원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가로되 장(). 조정사원2. 천석린(天石麟) 서릉(徐陵)자가 효목이며 모친은 장씨다. 일찍이 꿈에 오색 구름이 변화해 봉이 되어 왼쪽 어깨 위에 모였으며 이미 그러고선 탄생했다. 서릉의 나이 몇 살에 가인(家人)이 데리고 사문 보지(寶誌)에게 문후(問候)하자 보지가 그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가로되 천상의 석기린(石麒麟)이로다. 광택사의 혜운법사가 매양 그 조취(早就)를 차탄(嗟歎)해 안회(顔回)로 삼았다. 서릉은 벼슬이 광록대부와 태자소부에 이르렀으며 나이 77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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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履祖淸代臨濟宗僧 出州韓氏 依本源液受法 住果州報恩寺 [五燈全書八十九]

서리조(西履祖) 청대 임제종승. 출주 한씨며 본원액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과주 보은사에 주()했음 [오등전서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