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六擔片板】 徐六擔板各見一邊的略語 ▲密菴語錄 入方丈據座云 獅子敎兒迷子訣 擬前跳擲早翻身 羅紋結角交鋒處 鶻眼臨時失却蹤 古人與麽道 也是徐六擔片板
서륙담편판(徐六擔片板) 서륙담판각견일변의 약어. ▲밀암어록. 방장에 들어가 거좌(據座)하고 이르되 사자가 새끼를 가르치면서 새끼를 혼미(昏迷)하게 하는 비결은 앞으로 뛰는 척하다가 벌써 몸을 뒤집는다. 나문결각(羅紋結角)의 교봉하는 곳은 매의 눈으로 임시(臨時)해도 종적을 잃어버린다. 고인이 이렇게 말함은 또한 이 서륙담편판(徐六擔片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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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棲倫】 宋代僧 居洛京興善 淸凉文益法嗣 [傳燈錄二十五]
서륜(棲倫) 송대승. 낙경 흥선에 거주했고 청량문익의 법사임 [전등록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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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陵】 (507-583) 字孝穆 東海郯(今山東省郯城縣)人 徐摛之子 南朝梁陳間的詩人 文學家 梁武帝蕭衍時期 任東宮學士 常出入禁闥 爲當時宮體詩人 與庾信齊名 並稱徐庾 入陳後歷任尙書左僕射 中書監等職 至德元年去世 諡曰章 ▲祖庭事苑二 天石麟 徐陵 字孝穆 母臧氏 甞夢五色雲化爲鳳 集左肩上 已而誕 陵年數歲 家人携以候沙門寶誌 誌摩其頂曰 天上石麒麟也 光宅寺慧雲法師每嗟其早就 爲之顔回 陵官至光祿大夫 太子少傅 年七十七卒
서릉(徐陵) (507-583) 자는 효목이며 동해 담(지금의 산동성 담성현) 사람이니 서리의 아들. 남조(南朝) 양진(梁陳) 사이의 시인이며 문학가. 양무제 소연(蕭衍)의 시기에 동궁학사에 임명되었음. 늘 금달(禁闥; 궁전의 앞문)을 출입했고 당시의 궁체시인(宮體詩人)이 되었음. 유신(庾信)과 이름이 가지런했고 병칭이 서유(徐庾)임. 입진(入陳)한 후에 상서좌복야ㆍ중서감 등의 관직을 역임했음. 지덕 원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를 가로되 장(章). ▲조정사원2. 천석린(天石麟) 서릉(徐陵)은 자가 효목이며 모친은 장씨다. 일찍이 꿈에 오색 구름이 변화해 봉이 되어 왼쪽 어깨 위에 모였으며 이미 그러고선 탄생했다. 서릉의 나이 몇 살에 가인(家人)이 데리고 사문 보지(寶誌)에게 문후(問候)하자 보지가 그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가로되 천상의 석기린(石麒麟)이로다. 광택사의 혜운법사가 매양 그 조취(早就)를 차탄(嗟歎)해 안회(顔回)로 삼았다. 서릉은 벼슬이 광록대부와 태자소부에 이르렀으며 나이 77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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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履祖】 淸代臨濟宗僧 出州韓氏 依本源液受法 住果州報恩寺 [五燈全書八十九]
서리조(西履祖) 청대 임제종승. 출주 한씨며 본원액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과주 보은사에 주(住)했음 [오등전서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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