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潼關】 縣名 又關所名 位於陝西省渭南市潼關縣北 北臨黃河 南踞山腰 始建於東漢建安元年(196) 潼關是關中的東大門 自洛陽通長安之要地 歷來爲兵家必爭之地 [百度百科] ▲洞山良价語錄 嗟見今時學道流 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 祇到潼關卽便休
동관(潼關) 현의 이름. 또 관소(關所)의 이름. 섬서성 위남시 동관현 북쪽에 위치함. 북쪽으론 황하에 임했고 남쪽으론 산 허리에 의거했음. 동한 건안 원년(196)에 처음 건립했음. 동관은 이 관중의 동대문이니 낙양으로부터 장안으로 통하는 요지임. 역사 이래로 병가가 반드시 다투는 땅이 됨 [백도백과]. ▲동산양개어록. 슬프다, 금시의 학도하는 무리를 보니/ 천천만만(千千萬萬)이 문두(門頭)를 인정한다/ 흡사 입경하여 성주를 뵈려 하면서/ 단지 동관(潼關)에 이르러 곧 바로 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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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廣】 宋代臨濟宗僧 汾州太子院道一法嗣 繼太子院丈席 後傳法與龍門靑照而寂 [續燈錄一目錄]
동광(同廣) 송대 임제종승. 분주 태자원 도일의 법사. 태자원의 장석(丈席)을 계승했고 후에 용문청조에게 법을 전해 주고 입적했음 [속등록1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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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光帝】 (在位923-926) 拈頌說話云 同光帝者 後唐莊宗皇帝 如唐宣宗號大中天子 收中原獲一寶云云者 當時收復中原後問也 △按佛祖歷代通載十七 後唐 姓李氏 王土德 都汴洛 起太原 雷氏曰 唐武克用 莊 明 閔 末四主十五 莊宗存勗 太祖嫡子 母曹后 帝英武善戰 滅梁代之 自梁祖二年立 至同光三年 四十三歲崩 葬河南雍陵 ▲禪門拈頌集第七五六則 魏府興化存獎禪師 因同光帝問 朕收中原 獲一寶而未有人酬價 師云 略借陛下寶看 帝以兩手 引幞頭脚示之 師云 君王之寶 誰敢酬價 帝大悅
동광제(同光帝) (재위 923-926) 염송설화에 이르되 동광제란 것은 후당 장종황제니 당선종의 호가 대중천자임과 같다. 중원을 수복하다가 한 보배를 얻었다 운운 한 것은 당시에 중원을 수복한 후에 물었음이다. △불조역대통재17을 안험컨대 후당은 성이 이씨며 토덕(土德)으로 왕 노릇했음. 변락에 도읍했고 태원에서 일어났음. 뇌씨가 가로되 당무(唐武; 당의 무장) 극용(克用) 장ㆍ명ㆍ민ㆍ말 4주(主) 15년이다. 장종(莊宗) 존욱(存勗)은 태조의 적자(嫡子)며 모친은 조후(曹后)다. 제(帝)는 영무(英武)하고 잘 전투했으며 양(梁)을 멸하고 그에 대체했다. 양조(梁祖) 2년으로부터 일어나 동광 3년에 이르기까지며 43세에 붕어했고 하남 옹릉에 장사 지냈다. ▲선문염송집 제756칙. 위부 흥화존장선사가, 동광제(同光帝)가 묻되 짐이 중원을 수복하다가 한 보배를 얻었지만 값을 매기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다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조금 폐하의 보배를 빌려 볼까 합니다. 제(帝)가 두 손으로 복두각(幞頭脚)을 당겨 보였다. 스님이 이르되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값을 매기겠습니까. 제가 크게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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