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주희(朱熹)

태화당 2026. 7. 14. 07:41

朱熹(道謙禪師法嗣)

朱熹 字元晦 號晦菴 婺源人 少年不樂讀詩文 因聽一尊宿談禪 直指本心 遂悟照照靈靈一著 年十八 從劉屛山游 山意其留心擧業 搜之篋中 惟大慧語錄一帙而已 熹嘗致書道謙曰 向蒙妙喜開示 從前記持文字 心識計較不得置絲毫許在胸中 但以狗子話時時提撕 願投一語 警所不逮 謙答曰 某二十年不能到無疑之地 後忽知非勇猛直前 便是一刀兩段 把這一念 提撕狗子話頭 不要商量 不要穿鑿 不要去知見 不要强承當 熹於言下有省 有齋居誦經詩曰 端居獨無事 聊披釋氏書 暫息塵累牽 超然與道居 門掩竹林幽 禽鳴山雨餘 了此無爲法 身心同晏如 又曰 佛氏之學與吾儒甚相似 如云 有物先天地 無形本寂寥 能爲萬象主 不逐四時凋 落非他物 縱橫不是塵 山河及大地 全露法王身 看他是甚麽見識 又曰 佛家有三門 曰敎曰律曰禪 禪家不立文字 直下識心見性 律法甚嚴 毫髮不容罪過 敎有三項 曰天台敎 曰慈恩敎 曰延壽敎 延壽敎南方無傳 其學近禪 天台敎專理會講解 慈恩敎亦只是講解 吾儒若見得道理 透就自己心上理會得 本領便是 兼得禪的講說 辨訂便是 兼得敎的動繇 規矩便是 兼得律的看來 今人多言爲事所奪 有妨講學 此皆是不能使船 嫌溪曲耳 遇富貴就富貴上做工夫 遇貧賤就貧賤上做工夫 語有之 假使鐵輪頂上旋 定慧圓明終不失 世間萬事顚倒迷妄 躭嗜戀著 無一不是戲劇 眞不堪著眼也 瑞巖和尙每日間 常自問主人公惺惺否 又自答曰惺惺 今時學者却不如此

昭昭靈靈; 明白淸醒貌 五燈會元七玄沙師備 師云 我今問汝 汝若認昭昭靈靈 是汝眞實 爲甚麽瞌睡時又不成昭昭靈靈 若瞌睡時不是 爲甚麽有昭昭時 汝還會麽 這箇喚作認賊爲子 是生死根本妄想緣氣 汝欲識根由麽 我向汝道 昭昭靈靈 祇因前塵色聲香等法而有分別 便道此是昭昭靈靈 若無前塵 汝此昭昭靈靈 同於龜毛兔角 仁者眞實在甚麽處

塵累; 指煩惱惡業 因煩惱惡業能染汚 繫縛心 故稱塵累

瑞巖; 師彦 五代後梁僧 俗姓許 閩中人 幼年出家 巖頭全豁法嗣 出居台州(今浙江臨海)丹丘瑞巖院 坐磐石 終日如愚 每自喚主人公 復應諾 乃曰 惺惺著 他後莫受人謾 師統衆嚴整 江表稱之 卒諡空照禪師 [宋高僧傳十三 五燈全書十三]

 

주희(朱熹)(道謙禪師法嗣)

주희(朱熹; 1130-1200)는 자가 원회(元晦)며 호가 회암(晦菴)이며 무원(婺源) 사람이다. 소년(少年. 젊은 시절)에 시문(詩文; 저본에 時文으로 지었음)을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 존숙(尊宿)이 담선(談禪)하면서 본심(本心)을 직지(直指)함을 들음으로 인()해 드디어 소소영령(昭昭靈靈)의 일착(一著)을 깨쳤다. 유병산(劉屛山)을 좇아 노닐었는데 병산의 뜻으로는 그가 거업(擧業; 科擧의 일)에 유심(留心)하리라 여기고 협중(篋中; 은 대상자)을 수색(搜索)하니 오직 대혜어록(大慧語錄) 1()일 따름이었다. 주희가 일찍이 도겸(道謙; 大慧宗杲法嗣)에게 글을 보내(致書) 가로되 접때 묘희(妙喜; 大慧)의 개시(開示)를 입어 종전(從前)의 기지(記持)한 문자와 심식(心識)의 계교(計較), 실터럭만큼도 흉중(胸中)에 둠을 얻지 못하고 단지 구자화(狗子話)로써 때때로 제시(提撕; 참구. 할 서나 慣音이 시)합니다. 원컨대 한마디(一語)를 던져 미치지() 못한 바를 경책(警責)하십시오. 도겸이 답해 가로되 모()20년 동안 능히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가 후에 홀연히 그름을 알아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바로 이 일도(一刀)로 양단(兩斷)하여 이 일념을 잡아() 구자화두(狗子話頭)를 제시(提撕)하였습니다. 상량(商量)을 요()하지 않으며 천착(穿鑿)을 요하지 않으며 지견(知見)을 제거함을 요하지도 않으며 애써() 승당(承當)함을 요하지도 않습니다. 주희가 언하(言下)에 살핌이 있었다. 재거(齋居)하며 송경(誦經)하다라는 시(齋居誦經詩)가 있으니 가로되 단거(端居)하며 홀로 일이 없나니/ 애오라지 석씨의 글을 피열(披閱)한다/ 잠시 진루(塵累)의 견인(牽引)을 쉬고/ 초연히 도와 더불어 거처한다./ 죽림의 그윽함에 문을 닫으니()/ 산우(山雨)의 나머지에 새()가 우는구나/ 이 무위법을 깨치니()/ 몸과 마음이 한가지로 안여(晏如)하다. 우왈(又曰) 불씨지학(佛氏之學)은 오유(吾儒)와 더불어 매우() 상사(相似)하다. 여운(如云) 물건이 있어 천지보다 앞이지만/ 형상이 없어 본래 적료(寂寥)하다/ 능히 만상의 주인이면서/ 사시(四時)를 따라 시들지 않는다(大士偈). 박락(撲落; 거꾸로 떨어짐. 저본에 樸落으로 지었음)하는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닌지라/ 종횡에 이 티끌이 아니다/ 산하 및 대지가/ 온전히 법왕의 몸을 드러내었다(興敎洪壽愒). 그것()을 보매 이 무슨 견식(見識)인가. 우왈 불가(佛家)3()이 있다. 왈교(曰敎), 왈률(曰律), 왈선(曰禪)이다. 선가(禪家)에선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직하(直下; 즉시)에 마음을 알아() 견성한다. 율법은 심히 엄해 호발(毫髮)만큼도 죄과(罪過)를 용납하지 않는다. ()엔 삼항(三項)이 있으니 가로되 천태교(天台敎)며 가로되 자은교(慈恩敎; 法相宗)며 가로되 연수교(延壽敎). 연수교는 남방엔 전함이 없고 그 학()은 선()과 가깝다. 천태교는 오로지() 이회(理會)하고 강해(講解)함이다. 자은교도 또한 다만 이 강해(講解). 오유(吾儒)가 만약 도리를 견득(見得)한다면 자기의 심상(心上)으로 나아가 투과해 이회(理會)함을 얻어야 한다. 본령(本領)이 바로 이것이니 겸해 선()의 강설을 얻으며 변정(辨訂)이 바로 이것이니 겸해 교()의 동유(動繇; 動由)를 얻으며 규구(規矩)가 바로 이것이니 겸해 율()의 간래(看來)를 얻는다. 금인(今人)의 다언(多言)은 사()에 뺏기는 바가 되나니 강학(講學)을 방애(妨碍; )함이 있다. 이것은 모두 이, 능히 사선(使船)하지 못하여 개울의 굽음(溪曲)을 싫어함일 뿐이다. 부귀(富貴)를 만나면 부귀상(富貴上)으로 나아가 공부(工夫)를 짓고() 빈천(貧賤)을 만나면 빈천상(貧賤上)으로 나아가 공부를 지어야 한다. 말씀이 있으니 가사(假使) 철륜(鐵輪)이 정상(頂上)에서 돌더라도() 정혜(定慧)가 원명(圓明)하여 마침내 잃지 않는다(證道歌). 세간 만사의 전도(顚倒)와 미망(迷妄)으로 탐기(躭嗜)하고 연착(戀著)함이 이 희극(戲劇)이 아님이 하나도 없나니 참으로 감()히 착안(著眼)하지 못한다. 서암화상(瑞巖和尙)이 매양 일간(日間)에 늘 스스로 주인공(主人公)에게 묻되 성성(惺惺)하느냐. 또 스스로 답왈 성성(惺惺)하다. 금시의 학자는 도리어 이와 같지 못하다.

昭昭靈靈; 명백하고 청성(淸醒)한 모양. 오등회원7 현사사비. 스님이 이르되 내가 이제 너희에게 묻노니 너희가 만약 소소영령(昭昭靈靈)이 이 너희의 진실이라고 인정한다면 무엇 때문에 잠들었을 때는 또 소소영령을 이루지 못하는가. 만약 잠들었을 때 이러하지 못한다면(잠들었을 때 소소영령을 이루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소소(昭昭)한 때가 있느냐. 너희가 도리어 아느냐. 이것을 도적을 인정해 아들로 삼음이라고 불러 짓는다. 이는 생사의 근본이며 망상(妄想)의 연기(緣氣). 너희가 근유(根由)를 알고자 하느냐. 내가 너희를 향해 말한다. 소소영령은 단지 전진(前塵)인 색성향(色聲香) 등의 법을 인해 분별이 있음이거늘 곧 말하되 이것이 이 소소영령이라 하거니와 만약 전진(前塵)이 없다면 너희의 이 소소영령이 귀모토각(龜毛兎角)과 같다. 인자(仁者; 상대방의 존칭)의 진실이 어느 곳에 있느냐.

塵累; 번뇌와 악업을 가리킴. 번뇌와 악업으로 인해 능히 염오(染汚)하고 마음을 계박(繫縛)하는지라 고로 일컬어 진루임.

瑞巖; 사언(師彦)이니 오대 후량승. 속성은 허며 민중(閩中) 사람.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암두전활(巖頭全豁)의 법사임. 출세해 대주(지금의 절강 임해) 단구(丹丘) 서암원(瑞巖院)에 거주하면서 반석에 앉아 종일 우둔한 것 같았고 매번 스스로 주인공을 부르고 다시 응낙하고는 곧 가로되 성성착(惺惺著)하라, 타후에 남의 속임을 받지 말아라 했음. 스님은 통중(統衆)하면서 엄정(嚴整)했고 강표(江表)에서 칭찬했음. 졸시(卒諡)는 공조선사 [송고승전13. 오등전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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