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분등록

거사분등록권하(居士分燈錄卷下) 육구연(陸九淵)

태화당 2026. 7. 14. 07:44

陸九淵

字子靜 金谿人 生三四歲 問其父曰 天地何所窮際 父笑而不答 遂深思至忘寢食 乾道中進士 官至知荊門軍 居象山敎授 生徒數十百人 學者稱爲象山先生 嘗謂 孔子攻乎異端 斯害也 已今世類 指佛老爲異端 不知當孔子時 佛敎未入中國 雖有老子 其說未著 苟術與吾儒不類 卽是異端 非指佛老也 一日門人朱季繹云 近日異端邪說害道 使人不知本淵 曰 如何 繹曰 如禪家之學人 皆以爲不可無者 又以謂形而上者 所以害道 使人不知本淵 曰 吾友且道 甚底是本 又害了吾友甚底來 自不知己之害 又烏知人之害 包顯道嘗云 人皆謂禪是人不可無者 今吾友又云害道 兩箇却好縛作一束 今之所以害道者 却是這閑言語 又劉淳叟參禪 其友周姓者問之曰 何故捨吾儒之道而參禪 淳叟曰 譬之於手 釋氏是把鋤頭 儒者是把斧頭 所把雖不同 然却皆是這手 我今只要就他明此手 周答曰 若如淳叟所言 我只就把斧頭處明此手 不願就把鋤頭處明此手 淵曰 淳叟亦善喻 周友亦可謂善對 (心空曰 人有兩手 屈伸在我 要把鋤頭 便把鋤頭 要把斧頭 便把斧頭 何用明他 明他何用 今有病夫 兩手俱廢 蓋世明醫咸不能治 忽遇仙人來遊人間 授以靈丹 還復如故 就此就彼 自然明白 淳叟亦不善喻 周亦可謂不善對) 淵嘗終日默坐 阜民一見謂曰 子以何束縛如此 淵因自吟曰 翼乎 如鴻毛遇順風 沛乎 若巨魚縱大壑 趙東山贊淵曰 儒者曰汝學似禪 佛者曰我法無是 超然獨契本心 以俟聖人 百世卒 諡文安 有詩文語錄傳世

荊門軍; 五代 後晉天福元年(936) 在今湖北當陽設荊門軍 領長林 屬江陵府 北宋開寶五年(972) 荊門軍治移長林 領當陽縣 屬荊湖北路 熙寧六年(1073) 廢軍入江陵府 元祐三年(10 88) 復立荊門軍 端平三年(1236) 荊門軍遷回當陽 以長林爲屬縣 屬江陵府 元至元十四年(1277) 升荊門軍爲荊門府 仍治當陽 屬河南行省 [百度百科]

佛老; 佛家和道家的並稱 佛家以佛陀爲祖 道家以老子爲祖 故稱

靈丹; 古代道士煉的一種丹藥 據說能使人消除百病 長生不老

 

육구연(陸九淵; 1139-1193)

()가 자정(子靜)이며 금계(金谿) 사람이다. 출생하여 3, 4세에 그의 아버지에게 물어 가로되 천지는 어느 곳(何所)이 궁제(窮際; 邊際)입니까. 아버지가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 드디어 심사(深思)했고 침식(寢食)을 잊음에 이르렀다. 건도(乾道; 1165-1173) 중 진사(進士)였고 벼슬이 지형문군(荊門軍)에 이르렀다. 상산(象山)에 거주하면서 교수(敎授)했는데 생도(生徒)가 수십백인(數十百人)이었고 학자들이 상산선생(象山先生)으로 호칭했다. 일찍이 이르되 공자(孔子)가 이단(異端)을 공격(攻擊; )함은 이는 해다(斯害也). 이금세(已今世; 過去現在世)의 무리()가 불로(佛老)를 가리켜 이단(異端)이라 하거니와 공자의 시기(時期; )에 당해서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알지 못했음이다. 비록 노자(老子)가 있었으나 기설(其說)이 현저(顯著; )하지 못했다. 참으로 술()이 오유(吾儒)와 유사(類似; )하지 않으면 즉시(卽是) 이단이라 하거니와 불로(佛老)를 가리킴이 아니다. 어느 날 문인(門人) 주계역(朱季繹)이 이르되 근일(近日) 이단(異端)의 사설(邪說)이 해도(害道)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본연(本淵; 本源)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가로되 어떻게(如何), 역왈(繹曰) 예컨대() 선가(禪家)의 학인(學人)이 모두 가히 없지 아니한 것이라 하며 또 형() 이상(而上)의 것이라 이르니 소이로 해도(害道)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본연(本淵)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가로되 오우(吾友)여 차도(且道)하라, 어떤 것(甚底)이 이 본()이며 또 오우(吾友)의 어떤 것(甚底)을 해()하여 왔는가. 스스로 자기(自己; )의 해()를 알지 못한다면 또 어찌() 타인(他人; )의 해를 알겠는가. 포현도(包顯道)가 일찍이 이르되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선()은 이, 사람이 가히 없지 아니한 것이라 했고 지금 오우(吾友)는 또 이르되 해도(害道)라 하니 두 개를 도리어 좋게 묶어서 일속(一束; 한 묶음)으로 지을 만하다. 지금의 해도(害道)라고 하는 소이(所以)란 것은 도리어 이는 저() 한언어(閑言語; 쓸데없는 언어). 또 유순수(劉淳叟)가 참선하자 그의 벗인 주성(周姓)이란 자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무슨 연고로 오유(吾儒)의 도를 버리고 참선하는가. 순수(淳叟)가 가로되 손에 비유하자면 석씨(釋氏)는 이, 서두(鋤頭; 호미)를 잡았고() 유자(儒者)는 이, 부두(斧頭; 도끼)를 잡았다. 소파(所把)가 비록 부동(不同)하지만 그러나 도리어 모두 이는 저수(這手). 나는 지금 다만 그()에 나아가 차수(此手)를 밝히고자 한다. ()가 답왈 만약 순수(淳叟)가 말한 바와 같다면 나는 다만 부두(斧頭)를 잡은 곳으로 나아가 차수(此手)를 밝히겠나니 서두(鋤頭)를 잡은 곳으로 나아가 차수(此手)를 밝힘을 원하지 않는다. 구연(九淵; )이 가로되 순수(淳叟)도 또한 선유(善喻; 좋은 비유)며 주우(周友)도 또한 가히 선대(善對)라고 이를 만하다. (心空이 가로되 사람이 兩手가 있어 屈伸함이 나에게 있다. 鋤頭를 잡고자 하면 바로 鋤頭를 잡고 斧頭를 잡고자 하면 바로 斧頭를 잡거늘 어찌 를 밝힘을 쓰겠는가, 를 밝혀 어디에 쓰겠는가. 지금 病夫가 있어 兩手를 모두 했나니 대개 세상의 明醫도 모두 능히 치료하지 못하는데 홀연히, 仙人人間來遊하여 靈丹을 줌을 만나 옛과 같이 還復했다. 로 나아가고 로 나아감이 자연히 명백하나니 淳叟도 또한 善喻가 아니며 도 또한 가히 善對가 아니라고 이를 만하다). 구연(九淵)은 늘() 종일 묵좌(默坐)했다. 부민(阜民)이 일견(一見)하고 일러 가로되 너()는 무슨 까닭으로 속박(束縛)함이 이와 같은가. 구연이 인하여 스스로 읊어 가로되 날개니(翼乎) 홍모(鴻毛)가 순풍(順風)을 만남과 같다. 늪이니(沛乎) 거어(巨魚)가 대학(大壑)에 종횡(縱橫; )함과 같다(). 조동산(趙東山)이 찬연(贊淵; 九淵)해 가로되 유자(儒者)가 가로되 여학(汝學)은 선()과 흡사하다. 불자(佛者)가 가로되 아법(我法)엔 이것이 없다. 초연(超然)히 본심에 독계(獨契; 홀로 계합)하여 성인(聖人)을 기다린다(). 백 세에 졸()했고 시()가 문안(文安)이다. 시문(詩文)과 어록이 있어 전세(傳世)한다.

荊門軍; 오대 후진 천복 원년(936) 지금의 호북 당양에 형문군을 설치했고 장림을 거느렸고 강릉부에 속했음. 북송 개보 5(972) 형문군의 치소를 장림으로 옮겼고 당양현을 거느렸고 형호북로에 속했음. 희녕 6(1073) 폐군(廢軍)하고 강릉부로 편입했음. 원우 3(1088) 다시 형문군을 설립했고 단평 3(1 236) 형문군을 당양으로 천회(遷回)했고 장림을 속현(屬縣)으로 삼았으며 강릉부에 속했음. 원 지원 14(1277) 형문군을 승격하여 형문부라 했으며 그대로 당양을 다스렸고 하남행성에 속했음 [백도백과].

佛老; 불가와 도가의 병칭. 불가는 불타를 시조로 삼고 도가는 노자를 시조로 삼는지라 고로 일컬음.

靈丹; 고대 도사가 단련하는 일종의 단약(丹藥). 설에 의거하자면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백병(百病)을 소제(消除)하고 장생불로(長生不老)하게 한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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