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3년 벽암록(碧巖錄)

태화당 2019. 8. 4. 10:55

벽암록(碧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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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여년전초학시(卅餘年前初學時)

흑지자혜백지지(黑底字兮白底紙)

역해서간장십재(譯解書刊將十載)

유구색인부의미(有求索人付意味)

고사소각계학어(杲師燒却戒學語)

지금유통일장수(至今流通一場愁)

말지하시한벽암(抹底何啻限碧巖)

간타본사열반시(看他本師涅槃時)

무소설이다어(無所說已多語)

의천태아불용의(倚天太阿不容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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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 년 전 처음 배울 때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더니

역해(譯解)해 써서 간행한 지 거의 십 년에

구색(求索)하는 사람이 있음에 의미를 부여할까나.

고사(杲師)가 소각함은 말을 배움을 경계했음이니

지금토록 유통(流通)하니 한바탕 근심일런가

지울 것이 어찌 벽암록에 한할 뿐이랴

저 본사(本師)의 열반하실 때를 보아라.

설한 바가 없음이라 함도 이미 말이 많음이니

하늘에 기댄 태아검(太阿劒)이 헤아림을 용납하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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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벽암록(碧巖錄)은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하는데 10권임. 설두중현(雪竇重顯. 智門光祚法嗣. 雲門下三世)의 송고(頌古) 백칙(百則)에 송휘종정화년간(宋徽宗政和年間. 1111~1117)에 원오극근(圓悟克勤. 五祖法演法嗣. 臨濟下十世)이 예주 협산 영천원 벽암방장(禮州 夾山 靈泉院 碧巖方丈)에서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을 덧붙여 간행한 책. 뒤에 대혜종고(大慧宗杲. 圓悟克勤法嗣)가 학인(學人)들이 이 책을 외우고 익혀 구두(口頭)의 쾌편(快便)으로 삼는 폐단이 심해 각판(刻版)을 소각했는데 그 200년 뒤 원대덕년간(元大德年間. 1297~1307)에 장명원거사(張明遠居士)가 여러 절에 비장(秘藏)된 것을 모아 다시 간행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 종문(宗門)의 보고(寶庫)로 일컬어지는 책.

   2행은 벽암록의 난해(難解)함을 표현한 구절. 단기 4329(1996)년에 산승(山僧. 중이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 역해(譯解)하고 수서(手書)하고 간행해 제방(諸方)에 법보시(法布施)했음. 7년 전의 일이나 대수(大數)를 들어 10년이라고 말한 것. 요즈음도 산승이 쓴 벽암록을 찾는 사람이 더러 있으나 여분(餘分)이 한 질도 없던 차에 수미산출판사에서 다시 출간하기로 결정해 보관 중이던 원본을 얼마 전에 가져 갔는데 한두 달 안으로 시중에서 유통될 것임. 또 증보현구집(增補玄句集)도 조만간에 다시 출간하기로 했음을 덧붙여 밝혀 둠. ()은 삼십 삽. ()는 조사(助詞)니 적()의 뜻.

   5~10행 고사(杲師)는 대혜종고(大慧宗杲). 지금(至今)은 지우금(至于今)의 약칭이니 곧 지금에 이르도록. ()은 지울 말. ()는 뿐 시. 세존께서 입열반(入涅槃. 열반에 드는 것)에 임해 대중에게 고해 이르시되 처음 녹야원(鹿野苑. 波羅奈國에 있음)으로부터 마침인 발제하(跋提河. 拈頌說話에 이르되 跋提拘尸羅, 泥蓮)에 이르기까지 이 두 중간에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노라 (始從鹿野苑 終至跋提河 於是二中間 未曾說一字) [禪門拈頌卷一 三十五則]. 태아(太阿)는 옛날 보검(寶劍)의 이름. ()는 추측할 의. 헤아릴 의. 의논할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