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79쪽

태화당 2019. 11. 4. 13:28

師範(1178-1249) 宋代楊岐派僧 四川梓潼(今屬重慶)人 俗姓雍 名師範 號無準 年九歲就陰平道欽出家 於紹熙五年(1194) 受具足戒 慶元元年(1196) 於成都正法寺坐夏 年二十投育王山秀巖師瑞 時育王山有佛照德光居東庵 宗叟宗印任分座 法席人物之盛 爲東南第一 師貧無剃髮之資 時人常以烏頭子稱之 後至杭州靈隱寺 參松源崇嶽 往來南山 棲止六年 時聞破庵祖先住蘇州西華秀峰 往依之 未幾 又至常州華藏寺師事遯庵宗演 居三年 復還靈隱 侍郞張鎡新開創廣惠寺 請破庵住之 師亦往侍三年 又隨登徑山 破庵示寂之時 以其師咸傑之法衣頂相付之 紹定五年(1232) 奉敕住徑山 翌年四月堂舍罹大火 七月奉召入大內修成殿 陞慈明殿說法 帝深感之 賜佛鑑禪師之號 且賜銀絹 充徑山寺之營繕 淳祐九年三月十五日 集弟子囑後事 書遺表十數種 言笑諧謔如平時 十八日示寂 壽七十二 有無準師範禪師語錄五卷 無準和尙奏對語錄一卷行世 [釋氏稽古略四 大明高僧傳八 續傳燈錄三十五]

사범(師範) (1178-1249) 송대 양기파승. 사천 재동(지금 중경에 속함) 사람이니 속성은 옹이며 이름은 사범이며 호는 무준(無準). 나이 9세에 음평 도흠에게 나아가 출가했으며 소희 5(1194) 구족계를 받았음. 경원 원년(1196) 성도 정법사에서 좌하(坐夏)했고 나이 20에 육왕산 수암사서에게 투신했는데 때에 육왕산에 불조덕광(佛照德光)이 있어 동암에 거주했고 종수종인(宗叟宗印)이 분좌(分座)를 맡아 법석과 인물의 성함이 동남에서 첫째가 되었음. 스님은 가난해 머리를 깎을 자금이 없었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늘 오두자(烏頭子)로 그를 일컬었음. 후에 항주 영은사에 이르러 송원숭악(松源崇嶽)을 참했고 남산으로 왕래하며 서지(棲止)하기 6년이었음. 때에 파암조선(破庵祖先)이 소주 서화수봉(西華秀峰)에 거주한다 함을 듣고 가서 그에게 의지했음. 얼마 안되어 또 상주 화장사에 이르러 둔암종연(遯庵宗演)을 사사(師事)하며 3년 동안 거주했음. 다시 영은으로 돌아가자 시랑(侍郞) 장자(張鎡)가 광혜사를 새로 개창하고 파암(破庵)을 청해 거주하게 했으며 스님도 또한 가서 3년 동안 시봉했음. 또 따라가서 경산에 올랐음. 파암이 시적(示寂)할 때 그 스승인 함걸(咸傑)의 법의(法衣)와 정상(頂相)을 그에게 부촉했음. 소정 5(1232) 칙명을 받들어 경산에 거주했는데 다음해 4월 당사(堂舍)가 대화(大火)를 만났음. 7월에 부름을 받들어 대내(大內; 황궁) 수성전(修成殿)에 들어갔고 자명전(慈明殿)에 올라 설법했는데 제()가 깊이 이에 감동했고 불감선사(佛鑑禪師)란 호를 주었음. 또 은과 비단을 주어 경산사의 영선(營繕; 신축하고 수선함)에 충당하게 했음. 순우 9315일 제자들을 소집해 후사를 부촉하고 유표(遺表) 십 몇 종을 쓰고는 언소(言笑)하며 해학(諧謔; 익살)이 평시와 같았는데 18일 시적했음. 나이 72. 무준사범선사어록 5권과 무준화상주대어록 1권이 있어 세상에 유행함 [석씨계고략4. 대명고승전8. 속전등록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