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주원각경

어주원각경(御註圓覺經) 미륵보살(彌勒菩薩)

태화당 2025. 10. 23. 08:44

於是彌勒菩薩 在大衆中 卽從座起 頂禮佛足 右繞三匝 長跪叉手 而白佛言 大悲世尊 廣爲菩薩開祕密藏 令諸大衆深悟輪迴

菩薩讚佛於前章開說祕密深妙之義 如定目湛水等論 及說種種取捨皆是輪迴也

 

이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 불족(佛足)에 정례(頂禮)하고 세 바퀴 우요(右繞)하고 장궤(長跪)하여 차수(叉手)하고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대비하신 세존이 널리() 보살을 위해 비밀장(祕密藏)을 여시어 모든 대중으로 하여금 윤회를 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보살이 불타가 전장(前章)에서 비밀의 심묘(深妙)한 뜻을 개설(開說)했음을 찬탄했으니 예컨대(如) 정목(定目)ㆍ담수(湛水) 등의 논(論) 및 갖가지 취사(取捨)가 모두 이 윤회라고 설한 것이다.

 

分別邪正 能施末世一切衆生無畏道眼

此讚佛於前章辯說種種邪正 令諸衆生道眼淸淨不畏魔惱也

 

사정(邪正)을 분별하여 능히 말세의 일체중생에게 무외(無畏)의 도안(道眼)을 베푸셨으니()

이것은 불타가 전장(前章)에서 갖가지 사정(邪正)을 변설(辯說)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도안(道眼)이 청정하여 마뇌(魔惱)를 두려워(畏) 하지 않게 했음을 찬탄함이다.

 

於大涅槃生決定信 無復重隨輪轉境界起循環見

大涅槃者 不生不滅廣大法門也 決定信者 信受此法 絕無疑悔也 其信心如是堅固 又豈復入妄境起諸妄見 循環見者 卽前章所謂念念相續循環往復者 是也

 

대열반(大涅槃)에 결정신(決定信)을 내어 다시 거듭 윤전(輪轉)하는 경계를 따라 순환견(循環見)을 일으킴이 없습니다.

대열반이란 것은 불생불멸의 광대한 법문이다. 결정신(決定信)이란 것은 차법(此法)을 신수(信受)하여 의회(疑悔)가 끊어져 없음이다. 그 신심(信心)이 이와 같이 견고하거늘 또 어찌 다시 망경(妄境)에 들어가 여러 망견(妄見)을 일으키겠는가. 순환견(循環見)이란 것은 곧 전장(前章)에서 이른 바 염념(念念)이 상속(相續)하여 순환(循環)하고 왕복(往復)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世尊 若諸菩薩及末世衆生 欲遊如來大寂滅海

涅槃之道 廣大深妙 故以海喻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 및 말세 중생이 여래의 대적멸해(大寂滅海)에 노닐려고 한다면

열반의 도가 광대하고 심묘한지라 고로 해(海)로써 비유했다.

 

云何當斷輪迴根本

前章佛說先斷無始輪迴根本 故菩薩於此問修斷之因

 

어떻게 마땅히 윤회의 근본을 끊어야 합니까.

전장(前章)에서 불설(佛說)하되 먼저 무시(無始)의 윤회의 근본을 끊어야 한다 했으므로 고로 보살이 여기에서 수단(修斷)의 인(因)을 물었다.

 

於諸輪迴有幾種性

諸輪迴者 四生六道諸輪迴也 輪迴之相甚多 未審有幾種性

種性; 種爲種子 有發生之義 性爲性分 有不改之義

四生六道; 又作六道四生 六道 指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 人間 天上等六種世界 又依六道衆生出生之形態 可分胎生 卵生 濕生 化生等四類 竝稱六道四生 其中 人趣與畜生趣各具四生 鬼趣通胎化二生 一切地獄諸天及中有 唯爲化生 [俱舍論八]

 

모든 윤회에 몇 종성(種性)이 있으며

모든 윤회란 것은 사생육도(四生六道)의 모든 윤회다. 윤회의 상(相)이 심히 많거니와 미심하나니 몇 종성(種性)이 있습니까.

種性; ()은 종자가 되니 발생의 뜻이 있고 성()은 성분이 되니 불개(不改)의 뜻이 있음.

四生六道; 또 육도사생(六道四生)으로 지음. 6도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 등 6종 세계를 가리키며 또 육도중생이 출생하는 형태에 의해 가히 태생ㆍ난생ㆍ습생ㆍ화생 등의 4()로 분류하며 병칭하여 64(六道四生)이라 함. 그 중에 인취(人趣)와 축생취는 각기 4생을 갖추고 귀취(鬼趣)는 태화(胎化) 2생에 통하며 일체의 지옥과 제천(諸天) 및 중유(中有)는 오직 화생함 [구사론8].

 

修佛菩提幾等差別

修證圓覺之法 共有幾等差別

 

불보리(佛菩提)를 수습(修習; )하매 기등(幾等; 몇 가지 등)의 차별(差別)이며

원각을 수증(修證)하는 법은 공히(共) 기등(幾等)의 차별이 있습니까.

 

迴入塵勞 當設幾種敎化方便 度諸衆生

佛化身復入塵勞中 當設幾種敎法 普度衆生

 

진로(塵勞)에 회입(迴入)하여 마땅히 몇 종의 교화의 방편을 시설해 모든 중생을 제도(濟度; )합니까.

불타의 화신(化身)이 다시 진로(塵勞) 가운데로 들어가 마땅히 몇 종의 교법(敎法)을 시설해 널리 중생을 제도합니까.

 

惟願不捨救世大悲 令諸修行一切菩薩及末世衆生 慧目肅淸 照耀心鏡

淸淨之智照了諸相 故曰慧目 心如鏡明 廓然瑩徹 故曰心鏡

 

오직 원하오니 구세(救世)의 대비를 버리지 마시고 모든 수행하는 일체 보살 및 말세 중생으로 하여금 혜목(慧目)이 숙청(肅淸; 潔淸)하고 심경(心鏡)을 조요(照耀)하고

청정한 지혜로 제상(諸相)을 비추는지라(照了) 고왈(故曰) 혜목(慧目)이며 심(心)이 거울의 밝음과 같아서 확연(廓然)하고 형철(瑩徹)한지라 고왈 심경(心鏡)이다.

 

圓悟如來無上知見

圓悟者 圓滿具足 無所不悟也 無上者 佛之知見 最尊最勝也

 

여래의 무상(無上)의 지견(知見)을 원오(圓悟)케 하십시오.

원오(圓悟)란 것은 원만히 구족함이니 깨치지 못하는 바가 없음이며 무상(無上)이란 것은 불타의 지견이 최존최승(最尊最勝)이다.

 

作是語已 五體投地 如是三請 終而復始

 

이 말을 지어 마치자 오체를 투지했다. 이와 같이 삼청(三請)하고는 마치자 다시 시작했다.

 

爾時世尊告彌勒菩薩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等乃能爲諸菩薩及末世衆生 請問如來深奧祕密微妙之義 令諸菩薩潔淸慧目 及令一切末世衆生永斷輪迴心 悟實相具無生忍

實相者 無相之相也 金剛經曰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如來說名實相者 是也 無生忍者 於無生中 堅忍不動也 般若經曰 無生法忍 能令煩惱不生諸法不起者 是也

 

이때 세존이 미륵보살에게 고()해 말씀하시되 선재선재(善哉善哉)로다 선남자여, 여등(汝等)이 이에 능히 모든 보살 및 말세 중생을 위해 여래의 심오(深奧)하고 비밀(祕密)스러운 미묘(微妙)한 뜻을 청문(請問)해 모든 보살로 하여금 혜목(慧目)을 결청(潔淸)하게 하고 및 일체 말세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심(輪迴心)을 영단(永斷)하고 실상(實相)을 깨달아 무생인(無生忍)을 갖추게 하니

실상(實相)이란 것은 무상(無相)의 상(相)이다. 금강경에 가로되 이 실상이란 것은 곧 이 비상(非相)이니 이런 고로 여래가 설명(說名)하여 실상(實相)이라고 한다 한 게 이것이다. 무생인(無生忍)이란 것은 무생 가운데에서 견인(堅忍)하여 부동(不動)함이다. 반야경에 가로되 무생법인(無生法忍)이 능히 번뇌를 나지 않게 하고 제법을 일으키지 않게 한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汝今諦聽 當爲汝說 時彌勒菩薩奉敎歡喜 及諸大衆默然而聽

 

너는 이제 체청(諦聽)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때에 미륵보살이 봉교(奉敎)하여 환희했고 및 모든 대중이 묵연히 들었다.

 

善男子 一切衆生從無始際 由有種種恩愛貪欲 故有輪迴

佛名經云 有愛則生 愛盡則滅 故知生死貪愛爲本 又法華云 諸苦所因貪欲爲本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무시제(無始際)로 좇아 갖가지 은애(恩愛)와 탐욕(貪欲)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로 윤회가 있나니

불명경(佛名經)에 이르되 애(愛)가 있으면 곧 생(生)하고 애가 다하면 곧 멸(滅)한다. 고로 알지니 생사는 탐애(貪愛)가 근본이 된다. 또 법화(法華)에 이르되 제고(諸苦)의 소인(所因)은 탐욕이 근본이 된다.

 

若諸世界一切種性 卵生胎生濕生化生 皆因婬欲而正性命

一切種性者諸種類性也 卵生則從卵殼中生 胎生則從胞胎中生 濕生則由濕氣而生 化生則因變化而生 如此種類之性 皆由染著婬欲 有此性命也 圓覺疏曰 但是情染總得名婬 縱使化生 亦因業染故 總曰皆因婬欲也

 

이에() 모든 세계의 일체 종성(種性)인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 모두 음욕(婬欲)으로 인해 성명(性命)을 정(; 決定)하느니라.

일체 종성(種性)이란 것은 모든 종류의 성(性)이다. 난생(卵生)은 난각(卵殼) 속으로 좇아 생(生)함이며 태생(胎生)은 곧 포태(胞胎) 속으로 좇아 생함이며 습생(濕生)은 곧 습기(濕氣)로 말미암아 생함이며 화생(化生)은 곧 변화로 인해 생함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성(性)이 모두 음욕(婬欲)에 염착(染著)함으로 말미암아 이 성명(性命)이 있다. 원각소(圓覺疏)에 가로되 단지 이 정염(情染)은 모두(總) 음(婬)이란 이름을 얻는다. 종사(縱使; 設使) 화생(化生)일지라도 또한 업염(業染)을 인한 연고니 총왈(總曰) 모두 음욕(婬欲)을 인한다.

 

當知輪迴愛爲根本

一切輪迴皆從愛起

 

당지(當知)하라, 윤회는 애()가 근본이 되고

일체의 윤회는 모두 애(愛)로 좇아 일어난다.

 

由有諸欲助發愛性 是故能令生死相續

因有一切可欲之境 助發一切貪愛之心 彼此染著 隨業受報 所以生死不息

可欲; 指足以引起欲念的事物

 

제욕(諸欲)이 애성(愛性)을 조발(助發; 補助하여 發揮)함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고로 능히 생사로 하여금 상속(相續)하게 하느니라.

일체의 가욕(可欲)의 경계가 일체의 탐애지심(貪愛之心)을 조발(助發)함이 있음으로 인해 피차(彼此)가 염착(染著)하여 업 따라 수보(受報)하는지라 소이로 생사가 그치지(息) 않는다.

可欲; 족히 욕념(欲念)을 인기(引起)할 만한 사물을 가리킴.

 

欲因愛生

一切欲心 皆從愛起

()은 애()로 인해 생겨나고

일체의 욕심은 모두 애(愛)로 좇아 일어난다.

 

命因欲有

衆生身命 因欲而有

 

()은 욕()으로 인해 있고

중생의 신명(身命)은 욕(欲)으로 인해 있다.

 

衆生愛命 還依欲本

衆生愛命 念念不捨 是謂復依婬欲之本

 

중생이 애명(愛命)하여 욕본(欲本)으로 환의(還依)하나니

중생이 애명(愛命)하여 염념(念念)에 버리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음욕지본(婬欲之本)으로 복의(復依)한다.

 

愛欲爲因 愛命爲果

始愛欲而受生 故爲因也 終愛命而受報 故爲果也

 

애욕(愛欲)은 인()이 되고 애명(愛命)은 과()가 되느니라.

시작은 애욕(愛欲)으로 수생(受生)하는지라 고로 인(因)이 되고 마침은 애명(愛命)으로 수보(受報)하는지라 고로 과(果)가 된다.

 

由於欲境起諸違順

因彼可欲之境 有違我者 有順我者 故違順之境 雜然而起也

 

욕경(欲境)으로 말미암아 여러 위순(違順)을 일으키고

저(彼) 가욕지경(可欲之境)으로 인해 위아(違我)하는 것이 있고 순아(順我)하는 것이 있는지라 고로 위순지경(違順之境)이 잡연(雜然)히 일어난다.

 

境背愛心 而生憎嫉 造種種業

所見之境 或違我之愛心 則心生憎嫉 小則罵辱 大則殺害 種種惡業 從此而有

 

경계가 애심(愛心)을 등지면() 증질(憎嫉)을 내어 갖가지 업을 짓는지라

보이는 바의 경계가 혹 나의 애심(愛心)을 거스르면 곧 마음에 증질(憎嫉)을 내나니 작으면 곧 매욕(罵辱)하고 크면 곧 살해(殺害)하여 갖가지 악업이 이로 좇아 있다.

 

是故復生地獄餓鬼

旣有惡業卽受惡報 隨業受生 墮於惡道

 

이런 고로 다시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에 출생하느니라.

이미 악업이 있으니 곧 악보(惡報)를 받아 업 따라 수생(受生)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진다.

 

知欲可厭

知欲是惡因 深可厭離也

 

()은 가히 싫어할() 줄 알아야 하거늘

욕(欲)은 이 악인(惡因)인 줄 알아서 깊이 가히 염리(厭離)해야 한다.

 

愛厭業道

愛彼厭離惡業之道也 圓覺疏亦曰 於離惡法門 深生愛樂

 

싫어해야 할 업도(業道)를 사랑하나니()

저 염리(厭離)해야 할 악업의 도(道)를 사랑함이다. 원각소(圓覺疏)에 역왈(亦曰) 여의어야 할 악한 법문에 깊이 애요(愛樂)를 낸다.

 

捨惡樂善 復現天人

捨諸惡業 樂修善業 善業旣熟 卽現天人之果 天人者天道人道也

 

()을 버리고 선()을 좋아해야 천인(天人)을 복현(復現)하느니라.

여러 악업을 버리고 선업(善業) 닦음을 좋아함이니 선업이 이미 익으면 곧 천인(天人)의 과(果)를 나타낸다. 천인이란 것은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다.

 

又知諸愛可厭惡故 棄愛樂捨還滋愛本

旣知種種愛心可厭可惡乃棄諸愛 專樂捨法 不知此心亦生於愛 故曰還滋愛本

 

또 제애(諸愛)를 가히 염오(厭惡)할 줄 아는 연고로 기애(棄愛)하고 요사(樂捨)하지만 도리어 애본(愛本)이 증가하여(; 붇다)

이미 갖가지 애심(愛心)을 가염가오(可厭可惡)하여 이에 제애(諸愛)를 버릴 줄 알아 오로지 사법(捨法)을 좋아하지만 차심(此心)이 또한 애(愛)를 내는 줄 알지 못하는지라 고왈(故曰) 도리어 애본(愛本)이 증가한다(滋).

 

便現有爲增上善果

旣有棄愛樂捨之因 卽現聲聞緣覺之果 因修而得在諸善果之上 故曰有爲增上

增上; 增進向上

 

바로 유위(有爲)의 증상선과(增上善果)를 나타내며

이미 기애요사(棄愛樂捨)의 인(因)이 있어 곧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과(果)를 나타낸다. 수(修)로 인해 모든 선과지상(善果之上)에 있음을 얻는지라 고왈(故曰) 유위증상(有爲增上)이다.

增上; 증진(增進)하여 향상(向上).

 

皆輪迴故 不成聖道

謂惡果善果 及有爲增上善果 皆屬輪迴 不成佛道

 

모두 윤회하는 연고로 성도(聖道)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이르자면 악과(惡果)와 선과(善果) 및 유위(有爲)의 증상선과(增上善果)가 모두 윤회에 속하는지라 불도를 이루지 못한다.

 

是故衆生欲脫生死免諸輪迴 先斷貪欲 及除愛渴

生死輪迴 貪愛爲本 欲免此苦 先斷貪愛 愛渴者 謂衆生愛心如渴故也

 

이런 고로 중생이 생사를 벗고 모든 윤회를 면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욕(貪欲)을 끊고 및 애갈(愛渴)을 제()해야 하느니라.

생사와 윤회는 탐애(貪愛)가 근본이 되나니 차고(此苦)를 면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애(貪愛)를 끊어야 한다. 애갈(愛渴)이란 것은 이르자면 중생의 애심(愛心)이 갈(渴; 渴症)과 같은 연고이다.

 

善男子 菩薩變化示現世間 非愛爲本 但以慈悲 令彼捨愛 假諸貪欲 而入生死

菩薩示現受生 非本於愛也 蓋起慈悲心 攝化衆生 令捨諸愛 故假借婬欲之事 入於生死海中 與之同事 而化之爾 非實有貪欲心也

선남자여 보살이 변화하여 세간에 시현(示現)함은 애()가 근본이 됨이 아니라 단지 자비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애(捨愛)하게 하고자 여러 탐욕(貪欲)을 빌려() 생사에 드느니라.

보살이 시현(示現)하여 수생(受生)함은 애(愛)에 근본함이 아니라 대개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섭화(攝化)하고 제애(諸愛)를 버리게 하는지라 고로 음욕지사(婬欲之事)를 가차(假借)하여 생사해(生死海) 가운데 들어가 그(之)와 더불어 동사(同事)하면서 그(之)를 교화할 따름이니 탐욕심이 실유(實有)함이 아니다.

 

若諸末世一切衆生 能捨諸欲 及除憎愛 永斷輪迴 勤求如來圓覺境界 於淸淨心便得開悟

無一切念 卽免輪迴 淨圓覺心 豁然開悟

 

만약 모든 말세의 일체중생이 능히 제욕(諸欲)을 버리고 및 증애(憎愛)를 제()하고 영원히 윤회를 끊고 여래의 원각경계(圓覺境界)를 부지런히 구한다면 청정심(淸淨心)에서 바로 개오(開悟)를 얻느니라.

일체념(一切念)이 없어야 곧 윤회를 면하고 정원각심(淨圓覺心)에서 활연(豁然)히 개오(開悟)한다.

 

善男子 一切衆生由本貪欲 發揮無明 顯出五性差別不等

因本來貪欲之心 發揚一切妄幻 遂顯出五種差別不同之性 圓覺䟽之論五性 一曰二乘性 二曰菩薩性 三曰不定性 四曰外道性 五曰無性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본래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무명을 발휘(發揮)하고 5()의 차별이 부등(不等; 不同)함을 현출(顯出)하느니라.

본래의 탐욕지심(貪欲之心)으로 인해 일체의 망환(妄幻)을 발양(發揚)하여 드디어 5종의 차별이 부동(不同)한 성(性)을 현출(顯出)한다. 원각소(圓覺䟽)의 오성(五性)을 논함은 일왈(一曰) 이승성(二乘性), 이왈(二曰) 보살성(菩薩性), 삼왈(三曰) 부정성(不定性), 사왈(四曰) 외도성(外道性), 오왈(五曰) 무성(無性)이다.

 

依二種障 而現深淺

理障在心故曰深 事障在境故曰淺

 

2종의 장()에 의해 심천(深淺)을 나타내나니

이장(理障)은 심(心)에 있는지라 고왈(故曰) 심(深)이며 사장(事障)은 경(境)에 있는지라 고왈 천(淺)이다.

 

云何二障 一者理障 礙正知見

修證之理 一有所執 正知正見 曷能明了

 

무엇을 2()이라 하는가, 일자(一者)는 이장(理障)이니 정지견(正知見)을 장애(障礙; )하고

수증지리(修證之理)는 첫째(一) 소집(所執)이 있나니 정지정견(正知正見)을 어찌(曷) 능히 밝히겠는가(明了).

 

二者事障 續諸生死

一切有爲 皆名事障 隨業受報生死相續

 

이자(二者)는 사장(事障)이니 모든 생사를 잇느니라.

일체 유위(有爲)는 모두 이름이 사장(事障)이니 업 따라 수보(受報)하여 생사가 상속한다.

 

云何五性

已解在前

 

무엇을 5()이라 하는가.

이미 해석이 앞에 있다.

 

善男子 若此二障未得斷滅 名未成佛

旣爲事理所障 安得成就佛果

 

선남자여 만약 이 2()을 단멸(斷滅)함을 얻지 못하면 이름해 미성불(未成佛; 성불하지 못함)이니라.

이미 사리(事理)에 장애되는 바가 되거늘 어찌(安) 불과(佛果)를 성취함을 얻겠는가.

 

若諸衆生永捨貪欲 先除事障 未斷理障 但能悟入聲聞緣覺 未能顯住菩薩境界

於事雖不攀緣 於理尙有所執 但能悟入聲聞緣覺之道 未能顯然安住菩薩境界也 傳心法要曰 因聲敎而悟者名聲聞 觀因緣而悟者名緣覺

 

만약 모든 중생이 탐욕을 영사(永捨)하여 먼저 사장(事障)을 제()했으나 이장(理障)을 끊지 못했다면 단지 능히 성문과 연각에 오입(悟入)하지만 능히 보살경계에 현주(顯住)하지 못하느니라.

사(事)엔 비록 반연(攀緣)하지 않지만 리(理)엔 오히려 소집(所執)이 있어 단지 능히 성문과 연각의 도엔 오입(悟入)하지만 능히 현연(顯然)히 보살경계에 안주(安住)하지 못한다. 전심법요(傳心法要)에 가로되 성교(聲敎)로 인해 깨닫는 자는 이름이 성문(聲聞)이며 인연을 관하여 깨닫는 자는 이름이 연각(緣覺)이다.

 

善男子 若諸末世一切衆生欲汎如來大圓覺海 先當發願勤斷二障 二障已伏 卽能悟入菩薩境界

二障已伏者 謂理事已平不作障礙也 止能悟入菩薩境界者 二障雖平 尙未盡滅故也

 

선남자여 만약 모든 말세의 일체중생이 여래의 대원각해(大圓覺海)에 뜨고자(; 一作泛) 한다면 먼저 마땅히 발원하여 2()을 부지런히 끊어야 하고 2장이 이미 굴복(屈伏; )했다면 곧 능히 보살경계에 오입(悟入)하느니라.

2장(障)이 이미 굴복했다는 것은 이르자면 이사(理事)가 이미 평(平; 平定)하여 장애를 짓지 못함이다. 다만(止) 능히 보살경계에 오입했다는 것은 2장을 비록 평(平)했으나 오히려 진멸(盡滅)하지 못한 연고이다.

 

若事理障已永斷滅 卽入如來微妙圓覺 滿足菩提及大涅槃

二障俱空 卽成正覺

 

만약 사리장(事理障)이 이미 영원히 단멸되었다면 곧 여래의 미묘한 원각에 들어가 보리(菩提) 및 대열반을 만족(滿足)하느니라.

2장(障)이 구공(俱空)하여 곧 정각을 이룬다.

 

善男子 一切衆生皆證圓覺

圓覺妙性 衆生本有

一切衆生皆證圓覺; 大慧普覺禪師書三十 圭峯密禪師 造圓覺疏鈔 密於圓覺有證悟處 方敢下筆 以圓覺經中一切衆生皆證圓覺 圭峯改證爲具 謂譯者之訛 而不見梵本 亦只如此論在疏中 不敢便改正經也 後來泐潭眞淨和尙 撰皆證論 論內痛罵圭峯 謂之破凡夫臊臭漢 若一切衆生皆具圓覺 而不證者 畜生永作畜生 餓鬼永作餓鬼 盡十方世界 都盧是箇無孔鐵鎚 更無一人發眞歸元 凡夫亦不須求解脫 何以故 一切衆生皆已具圓覺 亦不須求證故 大慧普覺禪師語錄上 王荊公問眞淨和尙曰 諸經皆首標時處 圓覺經獨不然何也 眞淨曰 頓乘所演 直示衆生日用 日用現前 不屬古今 今山僧與相公 同入大光明藏 游戲三昧 互爲賓主 非關時處 又問 一切衆生 皆證圓覺 而圭峯易證爲具 謂之譯者之訛 其義是否 眞淨曰 圓覺經若可易 維摩經亦可易 維摩豈不曰 亦不滅受而取證 不滅受蘊而取證 與皆證之義 亦何異哉 蓋衆生現行無明 卽是如來根本大智 圭峯之說非是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모두 원각을 증한지라(一切衆生皆證圓覺)

원각의 묘성(妙性)이 중생에게 본래 있다(本有).

一切衆生皆證圓覺; 대혜보각선사서30 규봉밀(圭峯密; 宗密) 선사가 원각소초(圓覺疏鈔)를 지었는데 밀()은 원각에서 증오(證悟)한 곳이 있는지라 바야흐로 감히 하필(下筆)했습니다. 원각경 중에 일체중생이 모두 원각을 증했다(皆證圓覺)를 규봉이 증()을 고쳐 구()로 만들면서 이르기를 역자(譯者)의 와류(訛謬; ). 범본(梵本)을 보지 못한지라 또한 다만 이와 같은 논을 소중(疏中)에 두었고() 감히 바로 정경(正經)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후래(後來)에 늑담(泐潭) 진정화상(眞淨和尙; 克文)이 개증론(皆證論)을 찬()하면서 논내(論內)에 규봉을 통매(痛罵)하되 이를 일러 파범부(破凡夫)며 조취한(臊臭漢)이다. 만약 일체중생이 모두 원각을 갖추었고(皆具圓覺) ()하지 못한 자라고 한다면 축생(畜生)은 영원히 축생을 지어야 하고 아귀(餓鬼)는 영원히 아귀를 지어야 하나니 온 시방세계가 도로(都盧; 전부) 시개(是箇) 무공철추(無孔鐵鎚)인지라 다시 한 사람도 발진귀원(發眞歸元; 진을 발해 근원으로 돌아감)함이 없으며 범부도 또한 해탈을 구함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무슨 연고냐, 일체중생이 모두 이미 원각을 갖춘지라 또한 구증(求證)을 쓰지 않는 연고이다. 대혜보각선사어록상 왕형공(王荊公)이 진정화상(眞淨和尙; 克文이니 黃龍慧南法嗣. 臨濟下八世)에게 물어 가로되 모든 경전은 다 첫머리에 시처(時處)를 표()했거늘 원각경만 유독 그렇지 않음은 어찌해서입니까. 진정이 가로되 돈승(頓乘)의 연설하는 바는 바로 중생의 일용(日用)을 보임이니 일용이 현전(現前)하나 고금(古今)에 속하지 않습니다. 지금 산승이 상공(相公)과 더불어 한가지로 대광명장(大光明藏)의 유희삼매(游戲三昧)에 들어가서 서로 빈주(賓主)가 되니 시처(時處)에 상관 않습니다. 또 묻되 일체중생이 다 원각을 증했다(一切衆生 皆證圓覺)를 규봉(圭峯; 宗密)이 증()을 바꾸어 구()로 하면서 이를 일러 역자(譯者)의 그릇됨이라 했거니와 그 뜻이 옳습니까. 진정이 가로되 원각경을 만약 바꿈이 옳다면 유마경도 또한 바꿈이 옳으리니 유마경에 어찌 말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수()를 멸하지 않고 취증(取證)하며 수온(受蘊)을 멸하지 않고 취증한다 하니 더불어 모두 증()의 뜻이거늘 또한 어찌 다르다 하리오. 대개 중생의 현행무명(現行無明)이 곧 이 여래의 근본대지(根本大智)인지라 규봉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善知識 依彼所作因地法行 爾時修習便有頓漸

利根之人 便能頓悟 鈍根之士 須假漸修

善知識; 又單云知識 知識者 知其心識其形之義 知人乃朋友之義 非博知博識之謂 善者於我爲益 導我於善道者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그()가 짓는 바 인지(因地)의 법행(法行)에 의한다면 이때 수습(修習)하면서 바로 돈점(頓漸)이 있거니와

이근지인(利根之人)은 바로 능히 돈오(頓悟)하겠지만 둔근지사(鈍根之士)는 모름지기 점수(漸修)를 빌려야 한다.

善知識; 또 간단히 이르되 지식(知識)이니 지식이란 것은 그의 마음을 알고() 그의 형상을 안다는() 뜻이니 지인(知人)이며 곧 붕우의 뜻임. 박지박식(博知博識)을 이름이 아님. ()이란 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며 나를 선도(善道)로 인도하는 자임.

 

若遇如來無上菩提正修行路 根無大小 皆成佛果

大根者頓悟 小根者漸悟 若遇圓覺法門 不拘根器大小 皆得成佛

 

만약 여래의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정수행로(正修行路)를 만난다면 근()에 대소(大小)가 없이 모두 불과(佛果)를 이루느니라.

대근자(大根者)는 돈오(頓悟)하고 소근자(小根者)는 점오(漸悟)하거니와 만약 원각법문(圓覺法門)을 만난다면 근기(根器)의 대소에 구애되지 않고 모두 성불(成佛)을 얻는다.

 

若諸衆生 雖求善友 遇邪見者 未得正悟 是則名爲外道種性 邪師過謬 非衆生咎

唯信邪師 不明自性 是名外道種性 外道種性者 非佛性也 此乃邪師熏習之過 非衆生之過也

 

만약 모든 중생이 비록 선우(善友)를 구하지만 사견자(邪見者)를 만나면 정오(正悟)를 얻지 못하나니 이는 곧 이름하여 외도종성(外道種性)이거니와 사사(邪師)의 과류(過謬)며 중생의 허물()이 아니니라.

오직 사사(邪師)만 믿고 자성을 밝히지 못한다면 이 이름이 외도종성(外道種性)이니 외도종성이란 것은 불성이 아니다. 이것은 곧 사사(邪師)가 훈습(熏習)한 허물이며 중생의 허물이 아니다.

 

是名衆生五性差別

圓覺鈔曰 習近聲聞 則成聲聞性 習近緣覺則成緣覺性 習近菩薩 則成菩薩性 習近三乘 則成不定性 都不習近 則成無性 此卽衆生五性差別也

 

이 이름이 중생의 오성차별(五性差別)이니라.

원각초(圓覺鈔)에 가로되 성문을 습근(習近)하면 곧 성문성(聲聞性)을 이루고 연각을 습근하면 곧 연각성을 이루고 보살을 습근하면 곧 보살성을 이루고 삼승(三乘)을 습근하면 곧 부정성(不定性)을 이루고 도무지 습근하지 않으면 곧 무성(無性)을 이루나니 이것이 곧 중생의 오성차별(五性差別)이다.

 

善男子 菩薩唯以大悲方便 入諸世間 開發未悟

菩薩以大慈悲心 方便化身 入諸塵勞 開發一切未悟衆生也

 

선남자여 보살은 오직 대비방편(大悲方便)으로써 모든 세간에 들어가 미오(未悟; 깨치지 못한 자)를 개발(開發)하고

보살은 대자비심(大慈悲心)과 방편의 화신(化身)을 써(以) 모든 진로(塵勞)에 들어가 일체의 미오(未悟)한 중생을 개발한다.

 

乃至示現種種形相

菩薩變化示現種種形相 隨機接化 如觀音之示現三十二身 是也

 

내지 갖가지 형상(形相)을 시현(示現)하고

보살이 갖가지 형상을 변화해 시현하여 수기(隨機)하여 접화(接化)하나니 예컨대(如) 관음(觀音)이 32신(身)을 시현함이 이것이다.

 

逆順境界 與其同事 化令成佛

所惡之境曰逆 所愛之境曰順 佛化身於此二境中 與衆生同在塵勞 而攝化之 令證佛果

 

역순경계(逆順境界)에 그()와 더불어 동사(同事)하면서 교화해 성불케 하거니와

미워하는 바의 경계를 가로되 역(逆)이며 사랑하는 바의 경계를 가로되 순(順)이다. 불화신(佛化身)이 이 2경(境) 중에서 중생과 더불어 함께(同) 진로(塵勞)에 있으면서 그(之)를 섭화(攝化)해 불과(佛果)를 증(證)하게 한다.

 

皆依無始淸淨願力

菩薩接化衆生 皆乘無始劫來淸淨願力 淸淨者 於一切法 無所染著也 願力者 誓願深固 魔不能壞也

 

모두 무시(無始)의 청정한 원력에 의함이니라.

보살이 중생을 접화(接化)함은 모두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청정한 원력을 탔음이다(乘). 청정이란 것은 일체법에 염착(染著)하는 바가 없음이며 원력이란 것은 서원(誓願)이 심고(深固)하여 마(魔)가 능히 무너뜨리지 못함이다.

 

若諸末世一切衆生 於大圓覺起增上心 當發菩薩淸淨大願

修證圓覺 起增進向上之心 當發淸淨廣大誓願

 

만약 모든 말세 일체중생이 대원각(大圓覺)에 증상심(增上心)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보살의 청정한 대원(大願)을 발()해야 하나니

원각을 수증(修證)하여 증진(增進)의 향상지심(向上之心)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청정하고 광대한 서원(誓願)을 발(發)해야 한다.

 

應作是言 願我今者住佛圓覺 求善知識 莫値外道及與二乘

菩薩發願時 當曰 願我今者安住圓覺最上乘法 親近大善知識 以爲師友 永不遭値一切外道邪師 及聲聞緣覺二乘也

 

응당 이 말을 짓되 원컨대 내가 금자(今者; 지금. 今時)에 불원각(佛圓覺)에 주()하여 선지식을 구하고 외도(外道) 및 더불어 이승(二乘)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보살이 발원할 때 마땅히 가로되 원컨대 내가 금자(今者)에 원각 최상승법에 안주(安住)하여 대선지식을 친근하여 사우(師友)로 삼고 영원히 일체 외도(外道)ㆍ사사(邪師) 및 성문ㆍ연각인 이승(二乘)을 조치(遭値; 만나다)하지 않겠습니다.

 

依願修行 漸斷諸障

依淸淨願 修行圓覺 漸次斷除一切障礙

 

()에 의해 수행하면 점차 제장(諸障)을 끊고

청정원(淸淨願)에 의해 원각을 수행하면 점차 일체 장애를 단제(斷除)한다.

 

障盡願滿 便登解脫淸淨法殿 證大圓覺妙莊嚴域

諸障旣除 本願圓滿 一切處解脫淸淨 故曰法殿 一切處圓覺光明 故曰妙莊嚴域

 

장애가 다하고 원()이 차면(滿) 바로 해탈의 청정한 법전(法殿)에 올라 대원각의 묘장엄역(妙莊嚴域)을 증()하리라.

제장(諸障)을 이미 제(除)하고 본원(本願)이 원만하면 일체처에서 해탈하여 청정하리니 고왈(故曰) 법전(法殿)이며 일체처가 원각의 광명이리니 고왈 묘장엄역(妙莊嚴域)이다.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이때 세존이 이 뜻을 중선(重宣)하고자 하여 게를 설해 말씀하시되

 

彌勒汝當知 一切諸衆生

不得大解脫 皆由貪欲故

墮落於生死

 

미륵 너는 당지(當知)할지니/ 일체 모든 중생이/ 대해탈을 얻지 못함은/ 모두 탐욕을 말미암는 연고니/ 생사에 타락(墮落)하느니라.

 

若能斷憎愛 及與貪瞋癡

不因差別性 皆得成佛道

二障永消滅 求師得正悟

隨順菩薩願 依止大涅槃

 

만약 능히 증애(憎愛)/ 및 더불어 탐진치(貪瞋癡)를 끊으면/ 차별성(差別性)을 인하지 않고/ 모두 불도 이룸을 얻느니라/ 2()이 영원히 소멸하고/ 스승을 구해 정오(正悟)를 얻고/ 보살원(菩薩願)에 수순(隨順)하고/ 대열반에 의지(依止)하리라.

 

十方諸菩薩 皆以大悲願

示現入生死

 

시방의 제보살이/ 모두 대비원(大悲願)을 써()/ 생사에 듦을 시현(示現)하느니라.

 

現在修行者 及末世衆生

勤斷諸愛見 便歸大圓覺

 

현재 수행자와/ 및 말세 중생이/ 모든 애견(愛見)을 근단(勤斷)하면/ 바로 대원각에 돌아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