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是普眼菩薩 在大衆中 卽從座起 頂禮佛足 右繞三匝 長跪叉手 而白佛言 大悲世尊 願爲此會諸菩薩衆 及爲末世一切衆生 演說菩薩修行漸次 云何思惟
如何思惟 方爲正念
이에 보안보살(普眼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 불족(佛足)에 정례(頂禮)하고 세 바퀴 우요(右繞)하고 장궤(長跪)하여 차수(叉手)하고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차회(此會)의 제보살중(諸菩薩衆)을 위하시고 및 말세의 일체 중생을 위해 보살의 수행의 점차(漸次)를 연설(演說)하십시오. 어떻게(云何) 사유(思惟)하며
어떻게 사유(思惟)해야 비로소 정념(正念)이 되는가.
云何住持
如何住持 方得無失
어떻게 주지(住持)하며
어떻게 주지(住持)해야 비로소 무실(無失)을 얻는가.
衆生未悟 作何方便 普令開悟
亦同法華 欲令衆生開示悟入 修何方便
●開示悟入; 開佛知見 示佛知見 使悟佛知見 入佛知見也 是顯佛出世本懷之語 法華經方便品 舍利弗 云何名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諸佛世尊欲令衆生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欲示衆生佛之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悟佛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舍利弗 是爲諸佛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중생이 깨치지 못하면 어떤 방편을 지어야 널리 개오(開悟)하게 합니까.
또한 법화(法華; 법화경)와 같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개시오입(開示悟入)하게 하려면 어떤 방편을 닦아야 합니까.
●開示悟入; 부처의 지견을 열고(開)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示)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 부처의 지견에 들게(入) 함임. 이것은 부처가 출세한 본회를 나타내는 말임. 법화경방편품 사리불이여, 무엇을 이름해 제불세존이라 하는가,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한다. 제불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열어서(開) 청정을 얻게 하고자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자(示)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자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의 도에 들게(入) 하고자 하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이 제불이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함이 되느니라.
世尊 若彼衆生 無正方便及正思惟
般若經 以不墮無爲 爲正方便 以斷妄想爲正思惟 今曰無正方便者 是墮於無爲也 無正思惟者 是不斷妄想也
세존이시여 만약 저 중생이 정방편(正方便) 및 정사유(正思惟)가 없다면
반야경 무위(無爲)에 떨어지지 않음으로써 정반편으로 삼고 망상(妄想)을 끊음으로써 정사유(正思惟)로 삼는다. 금일 정방편이 없다는 것은 이는 무위(無爲)에 떨어짐이며 정사유가 없다는 것은 이는 망상을 끊지 못함이다.
聞佛如來說此三昧 心生迷悶 卽於圓覺不能悟入 願興慈悲 爲我等輩及末世衆生 假說方便
前章說知幻卽離不作方便 衆生未悟 故普眼請佛假說方便
불여래(佛如來)의 이 삼매를 설함을 듣고 마음에 미민(迷悶; 昏迷)을 내고 곧 원각(圓覺)에 능히 오입(悟入)하지 못하리니 원컨대 자비를 일으키시어(興) 아등(我等)의 무리(輩) 및 말세 중생을 위해 방편을 가설(假說)하십시오.
전장(前章; 普賢章)에 설하되 환(幻)임을 알면 곧 리(離)라서 방편을 짓지 않는다 했거니와 중생이 깨치지 못하는지라 고로 보안(普眼)이 불타에게 방편을 가설(假說)하기를 청했다.
作是語已 五體投地 如是三請 終而復始
이 말을 지어 마치자 오체(五體)를 투지(投地)했다. 이와 같이 삼청(三請)하고는 마치자 다시 시작했다.
爾時世尊告普眼菩薩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等乃能爲諸菩薩及末世衆生 問於如來修行漸次 思惟住持 乃至假說種種方便 汝今諦聽 當爲汝說 時普眼菩薩奉敎歡喜 及諸大衆默然而聽
이때 세존이 보안보살(普眼菩薩)에게 고(告)해 말씀하시되 선재선재(善哉善哉)로다 선남자여, 여등(汝等)이 이에 능히 제보살 및 말세 중생을 위해 여래에게 수행의 점차, 사유(思惟), 주지(住持) 내지 가설(假說)의 갖가지 방편을 물으니 너는 이제 체청(諦聽)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때에 보안보살이 봉교(奉敎)하여 환희했고 및 모든 대중이 묵연히 들었다.
善男子 彼新學菩薩及末世衆生 欲求如來淨圓覺心 應當正念遠離諸幻
正念者 無念也 無一切念 諸幻自遠 修圓覺者 應當如是
선남자여 저 신학보살(新學菩薩) 및 말세 중생이 여래의 정원각심(淨圓覺心)을 구하고자 한다면 응당 정념(正念)으로 제환(諸幻)을 원리(遠離)하라.
정념(正念)이란 것은 무념(無念)이니 일체념(一切念)이 없어야 제환(諸幻)을 스스로 멀리한다. 원각을 닦는 자는 응당 이와 같아야 한다.
先依如來奢摩他行
此翻爲止 卽定也 圓覺疏曰 奢摩他行者 至靜爲行
먼저 여래의 사마타(奢摩他; 梵 śamatha) 행(行)에 의해
여기에선 지(止)로 번역하나니 곧 정(定)이다. 원각소(圓覺疏)에 가로되 사마타행(奢摩他行)이란 것은 지정(至靜; 지극한 정)으로 행(行)을 삼음이다.
堅持禁戒
一切禁戒 皆當堅持 因戒入定故也
금계(禁戒)를 견지(堅持)하고
일체 금계(禁戒)를 모두 마땅히 견지(堅持)해야 하나니 계(戒)로 인해 입정(入定)하는 연고이다.
安處徒衆
我之徒衆 皆令安處 我心無惱 可以辦道
도중(徒衆)을 편안히 거처케 하고
나의 도중(徒衆)을 모두 편안히 거처케 해야 나의 마음이 번뇌가 없어 가이(可以; 以는 조사) 판도(辦道; 修行)한다.
宴坐靜室 恒作是念 我今此身四大和合
安坐靜室 於一切時中常自念云 我今幻身 乃地水火風和合而有爾
정실(靜室)에 연좌(宴坐; 安坐)하여 늘(恒) 이 사념(思念; 念)을 짓되 나의 지금 이 몸은 4대(大)로 화합(和合)했다.
정실(靜室)에 안좌(安坐)하여 일체 시중(時中)에 늘(常) 스스로 사념해 이르되 나의 지금의 환신(幻身)은 곧(乃)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화합하여 있을 따름이다.
所謂髮毛爪齒皮肉筋骨髓腦垢色 皆歸於地 唾涕膿血津液涎沫痰淚精氣大小便利 皆歸於水 煖氣歸火 動轉歸風 四大各離 今者妄身當在何處
自念四大 各歸其源 今之幻身 當在何處
●便利; 佛經中多用以指屎尿
●四大; 智度論五十二 四大無處不有 故名爲大
이른 바 발모조치(髮毛爪齒)와 피육근골(皮肉筋骨)과 수뇌구색(髓腦垢色)은 다 지(地)로 돌아가고 타체농혈(唾涕膿血)과 진액연말(津液涎沫; 涎은 침 연. 점액 연. 沫은 침 말. 물방울 말)과 담루정기(痰淚精氣; 痰은 가래 담)와 대소변리(大小便利; 곧 대소변)는 다 수(水)로 돌아가고 난기(煖氣)는 화(火)로 돌아가고 동전(動轉)은 풍(風)으로 돌아간다. 4대(四大)가 각기 떠나면 금자(今者지금. 今時)의 망신(妄身)이 마땅히 어느 곳에 있으리오.
자념(自念)하되 4대(大)가 각기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환신(幻身)이 마땅히 어느 곳에 있으리오.
●便利; 불경 중 시뇨(屎尿)를 가리킴으로 다용(多用)함.
●四大; 지도론52. 4대는 있지 않는 곳이 없나니 고로 대(大)라고 이름한다.
卽知此身畢竟無體 和合爲相 實同幻化
四大散滅之後 方知幻體本空 假合成形 實同幻化 列子言 堰師所造之倡 善於歌舞 及其剖之 則革木所爲爾 正此謂也
곧 알지니 이 몸은 필경 체(體)가 없고 화합하여 상(相)이 되었으니 실로 환화(幻化)와 같느니라.
4대가 산멸(散滅)한 후에 환체(幻體)가 본공(本空)임을 비로소 아나니 가합(假合)하여 형체를 이룬지라 실로 환화(幻化)와 같다. 열자(列子)에 말하되 언사(堰師)가 만든 바의 창기(倡妓; 倡)가 가무(歌舞)를 잘했지만 및 그것(其)을 쪼개니(剖之) 곧 혁목(革木)으로 만든 바이었을 따름이다. 바로 이것을 말함이다(謂).
四緣假合 妄有六根
四緣者 四大也 四大假合之後 遂有眼耳鼻舌身意六根也
사연(四緣)이 가합(假合)하여 허망하게 6근(根)이 있고
사연(四緣)이란 것은 4대(大)다. 4대가 가합(假合)한 후에 드디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근(根)이 있다.
六根四大 中外合成
中有四大 外有六根 中外假合 成此幻身
6근(根)과 4대(大)의 중외(中外)가 합성(合成)하여
중(中)에 4대가 있고 외(外)에 6근이 있어 중외(中外)가 가합(假合)하여 이 환신(幻身)을 이룬다.
妄有緣氣 於中積聚
緣氣者 虛妄色心從緣而現者也 於中積聚者 於幻身之中 聚而不散也
허망하게 연기(緣氣)가 있고 가운데에 적취(積聚)했나니
연기(緣氣)란 것은 허망한 색심(色心)이 연(緣)을 좇아 나타난 것이다. 가운데에 적취(積聚)했다는 것은 환신(幻身)의 가운데 모이어(聚) 흩어지지 않음이다.
似有緣相假名爲心
緣氣積於中 緣相形於外 似有者 非實有此相 假名者 非眞有此心
있음과 흡사(似有)한 연상(緣相)을 가명(假名)하여 심(心)이라 하느니라.
연기(緣氣)가 가운데에 쌓이고(積) 연상(緣相)이 밖으로 형상(形象)했다. 사유(似有)란 것은 차상(此相)이 실유(實有)가 아님이며 가명(假名)이란 것은 차심(此心)이 진유(眞有)가 아님이다.
善男子 此虛妄心 若無六塵 則不能有
一切妄心 若無色聲香昧觸法六種幻塵誘之於外 則此心從何而起
선남자여 이 허망한 심(心)이 만약 6진(塵)이 없다면 곧 능히 있지 못하나니
일체 망심(妄心)이 만약 색성향미촉법(色聲香昧觸法) 6종(種)의 환진(幻塵)이 밖에서 그것(之)을 유인(誘引; 誘)함이 없다면 곧 차심(此心)이 어디로 좇아 일어나겠는가.
四大分解 無塵可得
四大壞時 所染諸塵 並無一塵可得而有
4대(大)가 분해(分解)되면 가히 얻을 진(塵)이 없으며
4대(四)가 무너질 때 소염(所染)의 제진(諸塵)에 모두(並) 일진(一塵)도 가히 얻어서 소유(所有; 有)함이 없다.
於中緣塵各歸散滅 畢竟無有緣心可見
四緣六塵散滅之後 所謂緣心了不可見
가운데에 연진(緣塵)이 각기 산멸(散滅)로 돌아가면 필경 가히 볼 연심(緣心)이 있지 않느니라.
4연(緣)과 6진(塵)이 산멸(散滅)한 후엔 이른 바 연심(緣心)을 마침내 가히 보지 못한다.
善男子 彼之衆生 幻身滅故幻心亦滅 幻心滅故幻塵亦滅
幻身旣滅則幻心無所依止 故散滅也 幻心旣滅則幻塵無染著者 故亦散滅也
선남자여 저 중생이 환신(幻身)이 멸(滅; 없어지다)한 연고로 환심(幻心)도 또한 멸(滅)하고 환심이 멸한 연고로 환진(幻塵)도 또한 멸하고
환신(幻身)이 이미 멸(滅)했으니 곧 환심(幻心)이 의지(依止)할 바가 없는지라 고로 산멸(散滅)이다. 환심이 이미 멸했으니 곧 환진(幻塵)이 염착(染著)함이 없는지라 고로 또한 산멸(散滅)이다.
幻塵滅故 幻滅亦滅
幻塵旣滅 諸幻悉空 幻滅之迹 亦復無有
환진(幻塵)이 멸(滅)한 연고로 환멸(幻滅)도 또한 멸하고
환진(幻塵)이 이미 멸했으니 제환(諸幻)이 모두(悉) 공(空)이므로 환멸(幻滅)의 자취(迹)도 또한 다시 있음이 아니다.
幻滅滅故 非幻不滅
諸幻盡滅 幻滅亦滅 覺性非幻 終不斷滅
환멸(幻滅)이 멸(滅)한 연고로 비환(非幻)은 불멸(不滅)이니
제환(諸幻)이 모두(盡) 멸했고 환멸(幻滅)도 또한 멸했으나 각성(覺性)은 환(幻)이 아닌지라 마침내 단멸(斷滅)이 아니다.
譬如磨鏡垢盡明現
鏡喻本性 垢喻諸幻 垢盡明現幻盡性明
비유컨대 거울을 갈아 때(垢)가 다하면 밝음이 나타남과 같느니라.
거울은 본성(本性)에 비유하고 때(垢)는 제환(諸幻)에 비유하나니 때가 다하면 밝음이 나타나고 환(幻)이 다하면 성(性; 본성)이 밝다.
善男子 當知身心皆爲幻垢
幻身幻心 障我覺性 譬如垢穢染污淨物
선남자여 당지(當知)하라, 신심(身心)은 모두 환구(幻垢)가 되나니
환신(幻身)과 환심(幻心)이 나의 각성(覺性)을 장애함이 비유컨대 구예(垢穢)가 정물(淨物)을 염오(染污; 오염)함과 같다.
垢相永滅 十方淸淨
身心垢相 旣已永滅 於十方界 淸淨無染
구상(垢相)이 영멸(永滅)하면 시방이 청정하니라.
신심(身心)이 구상(垢相)이며 기이(旣已; 이미) 영멸(永滅)했으니 시방계(十方界)에 청정하여 무염(無染)이다.
善男子 譬如淸淨摩尼寶珠 映於五色 隨方各現
圓覺鈔曰 梵語摩尼珠者 如意珠也 珠體明淨 映彼五方之色 如圓覺心湛然淸淨 應現十方也
선남자여, 비여(譬如; 例를 듦) 청정한 마니보주(摩尼寶珠)를 오색(五色)에 비추면(映) 방위 따라(隨方) 각기 나타나거니와
원각초(圓覺鈔)에 가로되 범어(梵語) 마니주(摩尼珠)란 것은 여의주(如意珠)다. 주체(珠體)가 명정(明淨)하여 저 오방지색(五方之色)에 비춤이 원각심(圓覺心)이 담연(湛然)하고 청정하여 시방(十方)에 응현(應現)함과 같다.
諸愚癡者 見彼摩尼實有五色
愚人不知珠體明淨映現五色 乃謂珠中實有五色 正如衆生謂佛實有色相也
모든 우치자(愚癡者)가 저 마니(摩尼)에 실로 오색이 있다고 보느니라.
우인(愚人)이 주체(珠體)가 명정(明淨)하여 오색(五色)을 비추어 나타냄인 줄 알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주중(珠中)에 실로 오색이 있다 하나니 바로(正) 중생이 이르되 불타가 실로 색상(色相)이 있다고 함과 같다.
善男子 圓覺淨性現於身心 隨類各應
圓覺淨性 化現身心 隨衆生類 各各應現 如觀音之三十二應是也
선남자여 원각의 정성(淨性)이 신심(身心)에 나타나서 무리(類) 따라 각기 응하거니와
원각의 정성(淨性)이 신심(身心)을 화현(化現; 변화해 나타내다)해 중생류(衆生類)를 따라 각각 응현(應現)함은 관음(觀音)의 삼십이응(三十二應)과 같은 게 이것이다.
彼愚癡者 說淨圓覺實有如是身心自相 亦復如是
愚人見佛現諸身心 乃謂淨圓覺中實有如是色相而自己色相 亦復如是 可謂眞愚癡也
저 우치자(愚癡者)가 설하되 정원각(淨圓覺)에 실로 이와 같은 신심(身心)의 자상(自相)이 있다고 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우인(愚人)이 불타가 여러 신심(身心)을 나타냄을 보고 이에 이르되 정원각(淨圓覺) 가운데 실로 이와 같은 색상(色相)이 있으며 자기의 색상이라 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가위(可謂) 진우치(眞愚癡)라 할 만하다.
由此不能遠於幻化
衆生由此迷執之故 不能遠離諸幻
이로 말미암아 능히 환화(幻化)를 멀리 하지 못하나니
중생이 이 미집(迷執)을 말미암는 연고로 능히 제환(諸幻)을 원리(遠離)하지 못한다.
是故我說身心幻垢
因彼迷執身心故 佛說云幻垢
이런 고로 내가 설하되 신심(身心)이 환구(幻垢)니라.
저, 신심(身心)을 미집(迷執)함을 인한 연고로 불타가 설해 이르되 환구(幻垢)다.
對離幻垢 說名菩薩
對離幻垢者以覺除幻 如對病與藥之謂也 今對幻之覺能離幻垢 佛說是人 名爲菩薩
환구(幻垢)를 대해 여임(對離)을 설명(說名)해 보살(菩薩)이니
환구(幻垢)를 대리(對離)한다는 것은 각(覺)으로써 제환(除幻)함이니 대병(對病)하여 약을 줌과 같음을 말함이다(謂也). 지금 대환(對幻)의 각(覺)이 환구(幻垢)를 능히 여의나니 불설(佛說)하되 이 사람은 이름하여 보살이다.
垢盡
身心幻垢 悉皆永滅
구(垢)가 다하고(盡)
신심(身心) 한구(幻垢)를 모두 다 영멸(永滅)했다.
對除
對幻之覺亦復無有
대(對)를 제(除)하니
대한(對幻)의 각(覺)도 또한 다시 있지 않다.
卽無對垢
無對幻者 亦無幻垢
곧 대(對)ㆍ구(垢)
대환자(對幻者)도 없고 또한 환구(幻垢)도 없다.
及說名者
說名菩薩亦是幻名 今對垢兩空 豈有此菩薩相也
및 설명자(說名者)도 없느니라.
설명(說名)해 보살이라 함도 역시 환명(幻名)이다. 지금 대(對)ㆍ구(垢)가 양공(兩空)했거늘 어찌 이 보살상(菩薩相)이 있겠는가.
善男子 此菩薩及末世衆生 證得諸幻 滅影像故 爾時便得無方淸淨
諸幻影像皆滅 卽得無方淸淨 無方者 不拘方所也
선남자여 이 보살 및 말세 중생이 제환(諸幻)을 증득(證得)해 영상(影像)을 멸(滅)한 연고로 이때 바로(便) 무방청정(無方淸淨)을 얻나니
제환(諸幻)과 영상(影像)이 다 멸(滅; 없어지다)하여 곧 무방청정(無方淸淨)을 얻는다. 무방(無方)이란 것은 방소(方所)에 구애되지 않음이다.
無邊虛空覺所顯發
旣得無方淸淨 則無邊際之虛空 因覺而顯矣
●無邊虛空覺所顯發; 首楞嚴經六 迷妄有虛空 依空立世界 想澄成國土 知覺乃衆生 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
무변허공이 각(覺)이 현발(顯發; 환히 나타남)한 바이니라(無邊虛空覺所顯發).
이미 무방청정(無方淸淨)을 얻었으니 곧 변제(邊際)가 없는 허공이 각(覺)으로 인해 환한 것이다(顯矣).
●無邊虛空覺所顯發; 수릉엄경6. 미망(迷妄)으로 허공이 있고/ 허공에 의해 세계가 건립된다/ 상징(想澄)은 국토(國土)를 이루고/ 지각(知覺)은 곧 중생이다/ 허공이 대각 가운데서 남이/ 바다에서 한 거품이 일어남과 같다.
覺圓明故顯心淸淨
所證之覺 旣已圓明 方顯自心本來淸淨
각(覺)이 원명(圓明)한 연고로 현심(顯心)이 청정하고
소증(所證)의 각이 기이(旣已) 원명(圓明)하니 바야흐로 자심(自心)의 본래 청정을 나타낸다(顯).
心淸淨故見塵淸淨 見淸淨故眼根淸淨 根淸淨故眼識淸淨
欲有所見 皆是塵念 故曰見塵 眼爲見之本源 故曰眼根 眼能分別諸色 故曰眼識
심(心)이 청정한 연고로 견진(見塵)이 청정하고 견(見; 見塵)이 청정한 연고로 안근(眼根)이 청정하고 근(根; 眼根)이 청정한 연고로 안식(眼識)이 청정하고
소견(所見)이 있고자 하면 모두 이 진념(塵念)인지라 고왈(故曰) 견진(見塵)이며 안(眼)이 견(見)의 본원(本源)이 되는지라 고왈 안근(眼根)이며 안(眼)이 능히 제색(諸色)을 분별하는지라 고왈 안식(眼識)이다.
識淸淨故聞塵淸淨 聞淸淨故耳根淸淨 根淸淨故耳識淸淨
欲有所聞 皆是塵念 故曰聞塵 耳爲聞之本源 故曰耳根 耳能分別諸聲 故曰耳識
식(識; 眼識)이 청정한 연고로 문진(聞塵)이 청정하고 문(聞; 聞塵)이 청정한 연고로 이근(耳根)이 청정하고 근(根; 耳根)이 청정한 연고로 이식(耳識)이 청정하고
소문(所聞)이 있고자 하면 모두 이 진념(塵念)인지라 고왈(故曰) 문진(聞塵)이며 이(耳)가 문(聞)의 본원이 되는지라 고왈 이근(耳根)이며 이(耳)가 능히 제성(諸聲)을 분별하는지라 고왈 이식(耳識)이다.
識淸淨故覺塵淸淨 如是乃至鼻舌身意亦復如是
心有所覺 亦是塵念 故曰覺塵 鼻舌身意各有塵根識 皆因自心淸淨之故 悉得淸淨
식(識; 耳識)이 청정한 연고로 각진(覺塵)이 청정하나니 이와 같이 내지 비설신의(鼻舌身意)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심(心)에 소각(所覺)이 있으면 역시 진념(塵念)인지라 고왈(故曰) 각진(覺塵)이다. 비설신의(鼻舌身意)도 각기 진(塵)ㆍ근(根)ㆍ식(識)이 있거니와 모두 자심(自心)의 청정을 인하는 연고로 모두(悉) 청정을 얻는다.
善男子 根淸淨故色塵淸淨 色淸淨故聲塵淸淨 香味觸法亦復如是
六根旣已淸淨 則色聲香味觸法六種幻塵 亦皆淸淨
선남자여 근(根; 六根)이 청정한 연고로 색진(色塵)이 청정하고 색(色; 色塵)이 청정한 연고로 성진(聲塵)이 청정하고 향미촉법(香味觸法)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6근(根)이 기이(旣已) 청정한지라 곧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6종(種) 환진(幻塵)도 또한 모두 청정하다.
善男子 六塵淸淨故地大淸淨 地淸淨故水大淸淨 火大風大亦復如是
六塵旣已淸淨 則地水火風四大妄緣 亦皆淸淨
선남자여 6진(塵)이 청정한 연고로 지대(地大)가 청정하고 지(地; 地大)가 청정한 연고로 수대(水大)가 청정하고 화대풍대(火大風大)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6진(塵)이 기이(旣已) 청정하니 곧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大)의 망연(妄緣)도 또한 모두 청정하다.
善男子 四大淸淨故 十二處
六根六塵 合爲十二處 六根者 眼耳鼻舌身意 六塵者 色聲香味觸法
선남자여 4대(大)가 청정한 연고로 12처(處)와
6근(根)과 6진(塵)을 합하여 12처(處)다. 6근(根)이란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며 6진(塵)이란 것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다.
十八界
般若經云 六根六塵幷六種分別之識是也
18계(界)와
반야경에 이르되 6근(根), 6진(塵)과 아울러 6종(種)의 분별하는 식(識)이 이것이다.
二十五有淸淨
莊椿錄曰 欲界色界無色界中 有二十五種之有 其名爲四洲者 東勝身洲 西牛貨洲 南瞻部洲 北俱盧洲也 六欲天者 四王天 忉利天 夜摩天 兜率天 化樂天 他化自在天也 四惡趣者 地獄 餓鬼 畜生 阿修羅也 四禪天者 初禪天 二禪天 三禪天 四禪天也 四空天者 空無邊處天 識無邊處天 無所有處天 非想非非想處天也 又有一梵王天一無想天一淨居天總爲二十五種之有 總名爲有者 皆屬有漏故也 今因自心淸淨之故 悉得淸淨
●有漏; 無漏之對稱 漏者煩惱之異名 含有煩惱之事物 謂之有漏 ▲大乘義章五 一切煩惱流注不絶 其猶瘡漏 故名爲漏
25유(有)가 청정하고
장춘록(莊椿錄)에 가로되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중에 25종(種)의 유(有)가 있다. 그것(其)을 이름하여 4주(洲)란 것은 동승신주(東勝身洲)ㆍ서우화주(西牛貨洲)ㆍ남섬부주(南瞻部洲)ㆍ북구로주(北俱盧洲)다. 6욕천(欲天)이란 것은 사왕천(四王天)ㆍ도리천(忉利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천(兜率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4악취(惡趣)란 것은 지옥(地獄)ㆍ아귀(餓鬼)ㆍ축생(畜生)ㆍ아수라(阿修羅)다. 4선천(禪天)이란 것은 초선천(初禪天)ㆍ이선천(二禪天)ㆍ삼선천(三禪天)ㆍ사선천(四禪天)이다. 4공천(空天)이란 것은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ㆍ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ㆍ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ㆍ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다. 또 1범왕천(梵王天)ㆍ1무상천(無想天)ㆍ1정거천(淨居天)이 있으니 총(總) 25종(種)의 유(有)가 된다. 총명(總名)하여 유(有)라고 하는 것은 모두 유루(有漏)에 속하는 연고이다. 지금 자심(自心)이 청정함을 인한 연고로 모두(悉) 청정함을 얻는다.
●有漏; 무루(無漏)의 대칭(對稱)임. 루(漏)란 것은 번뇌의 다른 이름이니 번뇌의 사물을 함유하였으며 이를 일러 유루라 함. ▲대승의장5. 일체 번뇌가 유주(流注)하여 단절하지 않나니 그것이 마치 종기가 새는 것 같으므로 고로 이름하여 루(漏)다.
彼淸淨故 十力
般若經曰 一是處非處如實力 二知三世報業力 三知諸禪解脫三昧力 四知諸根上下力 五知衆生種種欲力 六知世間種種性力 七知一切道至力 八得宿命智力 九得天眼能觀一切力 十得漏盡智力
그(彼)가 청정한 연고로 10력(力)과
반야경에 가로되 1. 시처비처여실력(是處非處如實力). 2. 지삼세업보력(知三世報業力). 3. 지제선해탈삼매력(知諸禪解脫三昧力). 4. 지제근상하력(知諸根上下力). 5. 지중생종종욕력(知衆生種種欲力). 6. 지세간종종성력(知世間種種性力). 7. 지일체도지력(知一切道至力). 8. 득숙명지력(得宿命智力). 9. 득천안능관일체력(得天眼能觀一切力). 10. 득누진지력(得漏盡智力).
四無所畏
般若經曰 一一切智無畏 二漏盡無畏 三說障道無畏 四說苦盡道無畏
4무소외(無所畏)와
반야경에 가로되 1. 일체지무외(一切智無畏). 2. 누진무외(漏盡無畏). 3. 설장도무외(說障道無畏). 4. 설고진도무외(說苦盡道無畏).
四無礙智
一義無礙智 二法無礙智 三詞無礙智 四樂說無礙智 寶積經說 義無礙者 謂成就第一義智 法無礙者 謂於諸法如實了知 詞無礙者 謂以善言種種分別 樂說無礙者 謂隨機演說 不作二相
4무애지(無礙智)와
1. 의무애지(義無礙智). 2. 법무애지(法無礙智). 3. 사무애지(詞無礙智). 4. 요설무애지(樂說無礙智)다. 보적경(寶積經)에 설하되 의무애(義無礙)란 것은 이르자면 제일의지(第一義智)를 성취함이며 법무애(法無礙)란 것은 이르자면 제법(諸法)에 여실(如實)히 요지(了知)함이며 사무애(詞無礙)란 것은 이르자면 선언(善言)으로써 갖가지로 분별함이며 요설무애(樂說無礙)란 것은 이르자면 수기(隨機)하여 연설(演說)하되 이상(二相)을 짓지 않음이다.
佛十八不共法
般若經曰 一無有誤失 二無卒暴音 三無忘失念 四無不定心 五無種種想 六無不擇捨 七志欲無退 八精進無退 九憶念無退 十般若無退 十一解脫無退 十二智見無退 十三若智若見於過去世無著無礙 十四若智若見於現在世無著無礙 十五若智若見於未來世無著無礙 十六一切身業智爲前導隨智而轉 十七一切語業智爲前導隨智而轉 十八一切意業智爲前導隨智而轉 此卽佛十八不共法也 不共者唯佛獨得 不與二乘共也
불십팔불공법(佛十八不共法)과
반야경에 가로되 1. 오실(誤失)이 있지 않음. 2. 졸폭음(卒暴音; 갑자기 暴音함)이 없음. 3. 망실념(忘失念)이 없음. 4. 부정심(不定心)이 없음. 5. 종종상(種種想)이 없음. 6. 불택사(不擇捨; 不擇하고 버림)가 없음. 7. 지욕무퇴(志欲無退). 8. 정진무퇴(精進無退). 9. 억념무퇴(憶念無退). 10. 반야무퇴(般若無退). 11. 해탈무퇴(解脫無退). 12. 지견무퇴(智見無退). 13. 지나 견(若智若見; 若은 조사)이 과거세에 무착무애함. 14. 지나 견이 현재세에 무착무애함. 15. 지나 견이 미래세에 무착무애함). 16. 일체 신업(身業)이 지(智)가 전도(前導)가 되어 지(智)를 따라 돎(一切身業智爲前導隨智而轉). 17. 일체 어업(語業)이 지(智)가 전도(前導)가 되어 지(智)를 따라 돎. 18. 일체 의업(意業)이 지(智)가 전도(前導)가 되어 지(智)를 따라 돎. 이것이 곧 불십팔불공법(佛十八不共法)이다. 불공(不共)이란 것은 오직 불타만 독득(獨得)하고 이승(二乘)과 함께(共) 하지 않음이다.
三十七助道品淸淨
般若經曰 四念處 四正勤 四神足 五根 五力 七覺支 八聖道支 總爲三十七品也 四念處者 觀身不淨 觀受是苦 觀心無常 觀法無我 四正勤者 精進根 精進覺 精進力 正精進 四神足者 定根 定覺 定力 正定 五根者 信根 念根 精進根 定根 慧根 五力者 信力 念力 精進力 慧力 定力 七覺支者 念覺 擇法覺 精進覺 喜覺 除覺 定覺 捨覺 八聖道支者 正語 正業 正命 正思惟 正方便 正念 正定 正見
37조도품(助道品)이 청정하고
반야경에 가로되 4념처(念處), 4정근(正勤), 4신족(神足), 5근(根), 5력(力), 7각지(覺支), 8성도지(聖道支)니 총 37품(品)이 된다. 4념처(念處)란 것은 몸의 부정을 관함(觀身不淨), 수가 이 고임을 관함(觀受是苦), 심이 무상함을 관함(觀心無常), 법이 무아임을 관함(觀法無我)이다. 4정근(正勤)이란 것은 정진근(精進根), 정진각(精進覺), 정진력(精進力), 정정진(正精進)이다. 4신족(神足)이란 것은 정근(定根), 정각(定覺), 정력(定力), 정정(正定)이다. 5근(根)이란 것은 신근(信根), 염근(念根), 정진근(精進根), 정근(定根), 혜근(慧根)이다. 5력(力)이란 것은 신력(信力), 염력(念力), 정진력(精進力), 혜력(慧力), 정력(定力)이다. 7각지(覺支)란 것은 염각(念覺), 택법각(擇法覺), 정진각(精進覺), 희각(喜覺), 제각(除覺), 정각(定覺), 사각(捨覺)이다. 8성도지(聖道支)란 것은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사유(正思惟), 정방편(正方便),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견(正見)이다.
如是乃至八萬四千陀羅尼門一切淸淨
藏經曰 陀羅尼門者 總持門也 蓋衆生有八萬四千塵勞 故有八萬四千法門 今自心淸淨 逈脫塵勞 故此法門悉皆淸淨
이와 같이 내지 팔만사천 다라니문(陀羅尼門), 일체가 청정하니라.
장경(藏經)에 가로되 다라니문(陀羅尼門)이란 것은 총지문(總持門)이다. 대개 중생이 팔만사천 진로(塵勞; 번뇌)가 있는지라 고로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 지금 자심(自心)이 청정하여 진로(塵勞)를 형탈(逈脫; 멀리 벗어남)한지라 고로 이 법문이 모두 다 청정하다.
善男子 一切實相性淸淨故一身淸淨
前所說根塵四大及三十七品等性如實有相 故曰實相性 金剛經曰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如來說名實相者 是也 此等之性 淸淨無染 故一眞法身 全體淸淨也
선남자여 일체 실상성(實相性)이 청정한 연고로 일신(一身)이 청정하고
앞에서 설한 바 근(根)ㆍ진(塵)ㆍ4대(大) 및 37품 등의 성(性)이 여실(如實)히 상(相)이 있는지라 고왈(故曰) 실상성(實相性)이다. 금강경에 가로되 이 실상(實相)이란 것은 곧 이 상(相)이 아니니 이런 연고로 여래가 설명(說名)하여 실상이라고 한다 한 것이 이것이다. 차등(此等)의 성(性)이 청정하여 무염(無染)인지라 고로 하나의 진법신(眞法身)이며 전체가 청정하다.
一身淸淨故多身淸淨
一眞法身 旣已淸淨 一切化身亦皆淸淨 如法華經說 佛化身徧往河沙佛土 皆是佛身者 豈非一身淸淨則多身淸淨也
일신(一身)이 청정한 연고로 다신(多身)이 청정하고
하나의 진법신(眞法身)이 기이(旣已) 청정하니 일체 화신(化身)도 또한 모두 청정하다. 예컨대(如) 법화경에 설하되 불화신(佛化身)이 하사(河沙) 불토(佛土)로 편왕(徧往)하며 모두 이 불신(佛身)이라 한 게 어찌 일신(一身)이 청정하매 곧 다신(多身)이 청정함이 아니겠는가.
多身淸淨故如是乃至十方衆生圓覺淸淨
多身淸淨之故 遍觀十方衆生之性 悉皆如此圓覺淸淨 圓覺疏亦曰 此乃一人悟性 知一切衆生本性淸淨 非謂一人修道多人成佛
다신(多身)이 청정한 연고로 이와 같이 내지 시방 중생의 원각이 청정하니라.
다신(多身)이 청정한 연고로 시방 중생의 성(性)을 편관(遍觀)하매 모두 다 이와 같은 원각의 청정이다. 원각소(圓覺疏)에 또한 가로되 이것은 곧 한 사람이 오성(悟性)하매 일체중생의 본성이 청정함을 아는 것이며 한 사람이 수도하매 많은 사람이 성불함을 말함이 아니다.
善男子 一世界淸淨故多世界淸淨
一世界中旣已淸淨 衆多世界無不淸淨 如維摩詰經說 佛土淸淨 如自在天宮 及佛以足指按地 則三千大千世界 悉皆嚴淨者 豈非一世界淸淨則多世界淸淨也
선남자여 일세계(一世界)가 청정한 연고로 다세계(多世界)가 청정하고
일세계(一世界) 가운데가 기이(旣已) 청정(淸淨)하니 중다(衆多)한 세계도 청정하지 않음이 없다. 예컨대(如) 유마힐경(維摩詰經)에 설하되 불토(佛土)가 청정함이 자재천궁(自在天宮)과 같고 및 불타가 발가락으로써 땅을 누르매(按) 곧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다 엄정(嚴淨)하다고 한 것이 어찌 일세계가 청정하니 곧 다세계가 청정함이 아니겠는가.
多世界淸淨故 如是乃至盡於虛空 圓裹三世 一切平等淸淨不動
多世界淸淨之故 盡無量無邊世界 悉皆一等淸淨不動也 圓裹三世者 謂上下橫周 虛空世界 盡在其中 非謂過見未來之三世也
●一等; 乃一樣平等之意
다세계(多世界)가 청정한 연고로 이와 같이 내지 허공을 다하고(盡) 삼세를 원과하여(圓裹三世) 일체가 평등히 청정하여 부동(不動)하느니라.
다세계가 청정한 연고로 온(盡) 무량무변한 세계가 모두 다 일등(一等) 청정하여 부동(不動)함이다. 삼세를 원과한다(圓裹三世)는 것은 이르자면 상하(上下)로 횡주(橫周)함이니 허공세계가 모두 그 가운데 있음이며 과(過)ㆍ현(見)ㆍ미래의 삼세(三世)를 말함이 아니다.
●一等; 곧 한 모양으로 평등함의 뜻.
善男子虛空如是平等不動 當知覺性平等不動 四大不動故當知覺性平等不動 如是乃至八萬四千陀羅尼門平等不動 當知覺性平等不動
虛空四大 及諸法門 泯然一等 了無動相 當知覺性亦復如是
●泯然; 泯滅 然 助詞
선남자여 허공이 이와 같이 평등히 부동(不動)하므로 당지(當知)할지니 각성(覺性)도 평등히 부동하며 4대(大)가 부동(不動)한 연고로 당지(當知)할지니 각성도 평등히 부동하며 이와 같이 내지 팔만사천 다라니문(陀羅尼門)도 평등히 부동하므로 당지(當知)할지니 각성도 평등히 부동하느니라.
허공과 4대(大) 및 모든 법문이 민연(泯然; 泯滅)히 일등(一等; 一樣으로 평등) 마침내(了) 동상(動相)이 없으므로 당지(當知)할지니 각성(覺性)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泯然; 민멸(泯滅; 消滅)이니 연(然)은 조사.
善男子 覺性徧滿淸淨不動圓無際故 當知六根徧滿法界 根徧滿故當知六塵徧滿法界 塵徧滿故當知四大徧滿法界 如是乃至陀羅尼門徧滿法界
圓無際者 覺性圓滿 浩無邊際也 此性徧滿法界 則根塵四大等 亦莫不然
선남자여 각성(覺性)이 편만(徧滿)하며 청정(淸淨)히 부동(不動)하고 원만(圓滿; 圓)히 무제(無際)인 연고로 당지(當知)할지니 6근(根)이 법계(法界)에 편만(徧滿)하고 근(根; 六根)이 편만(徧滿)한 연고로 당지(當知)할지니 6진(塵)이 법계에 편만하고 진(塵; 六塵)이 편만(徧滿)한 연고로 당지(當知)할지니 4대(大)가 법계에 편만하고, 이와 같이 내지 다라니문(陀羅尼門)도 법계에 편만하느니라.
원무제(圓無際)란 것은 각성(覺性)이 원만하여 넓고(浩) 변제(邊際)가 없음이다. 차성(此性)이 법계에 편만(徧滿)하니 곧 근(根)ㆍ진(塵)ㆍ4대(大) 등도 또한 그렇지 않음이 없다(莫).
善男子 由彼妙覺性徧滿故 根性塵性無壞無雜 根塵無壞故 如是乃至陀羅尼門無壞無雜
圓覺妙性 徧滿法界 則根塵諸法之性 皆如虛空 不相染著 故無所變壞 亦無所混雜
선남자여 저(彼) 묘각성(妙覺性)이 편만(徧滿)함을 말미암는 연고로 근성(根性)과 진성(塵性)이 무괴무잡(無壞無雜)하고 근진(根塵; 根性과 塵性)이 무너짐이 없는(無壞) 연고로 이와 같이 내지 다라니문(陀羅尼門)도 무괴무잡(無壞無雜)하나니
원각의 묘성(妙性)이 법계에 편만(徧滿)하므로 곧 근진(根塵)의 제법지성(諸法之性)도 모두 허공과 같아서 서로 염착(染著)하지 않는지라 고로 변괴(變壞)하는 바가 없고 또한 혼잡(混雜)한 바가 없다.
如百千燈光照一室 其光徧滿無壞無雜
燈光論根塵等性 一室論無邊法界
백천(百千)의 등광(燈光)이 일실(一室)을 비추매 그 빛이 편만(徧滿)하여 무괴무잡(無壞無雜)함과 같느니라.
등광(燈光)은 근진(根塵) 등의 성(性)을 논(論)했고 일실(一室)은 무변법계(無邊法界)를 논했다.
善男子 覺成就故 當知菩薩不與法縛 不求法脫
覺性圓明 名爲成就 於一切法 非縛非脫
선남자여 각(覺)을 성취한 연고로 당지(當知)할지니 보살이 법에 묶임(縛)이 되지 않고 법에서 벗어남을 구하지 않고
각성(覺性)이 원명(圓明)함을 이름하여 성취다. 일체법에 묶임도 아니고 벗어남도 아니다(非縛非脫).
不厭生死 不愛涅槃
覺旣成就 則知生死涅槃皆如空華 故無所厭 亦無所愛
생사를 싫어하지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 않고
각(覺)을 이미 성취했으니 곧 생사와 열반이 모두 공화(空華)와 같은 줄 아는지라 고로 싫어하는 바도 없고 좋아하는 바도 없다.
不敬持戒 不憎毀禁
覺性圓明 照了諸境 正如眼光曉了面前之境無所憎
지계(持戒)를 공경(恭敬; 敬)하지 않고 훼금(毀禁; 禁戒를 헐다)을 증오(憎惡; 憎)하지 않고
각성(覺性)이 원명(圓明)하여 제경(諸境)을 비춤(照了)이, 바로(正) 안광(眼光)이 면전의 경계를 밝히매(曉了) 증오하는 바가 없음과 같다.
不重久習 不輕初學
覺旣成就 則視諸學者 平等無二 故不以宿習而加重 不以新學而加忽 如孔子於升堂之子路則抑而敎之 潔己之童子則與而進之也
구습(久習; 宿習)을 중시(重視; 重)하지 않고 초학(初學)을 경시(輕視; 輕)하지 않나니
각(覺)을 이미 성취했으니 곧 모든 학자를 보면서 평등하여 둘이 없는지라 고로 숙습(宿習)에게 가중(加重; 존중을 더함)함을 쓰지(以) 않고 신학(新學)에게 가홀(加忽; 疏忽을 더함)함을 쓰지 않는다. 예컨대(如) 공자(孔子)가 승당(升堂)의 자로(子路)에겐 곧 억제하며 그를 가르쳤고 결기(潔己)의 동자(童子)에겐 곧 더불어 그를 진수(進修; 進)케 했다.
何以故一切覺故
八者皆無憎愛 蓋由一切是覺
무슨 연고냐, 일체가 각(覺)인 연고이다.
팔자(八者; 위의 여덟)는 모두 증애(憎愛)가 없음이니 대개 일체가 이 각(覺)이기 때문이다(由).
譬如眼光曉了前境 其光圓滿得無憎愛
覺性圓明 照了諸境 正如眼光曉了面前之境 蓋其光明圓滿具足故 得豁然盡見無所憎愛
비유컨대 안광(眼光)이 전경(前境)을 밝히매(曉了) 그 광(光)이 원만하여 증애(憎愛)가 없음을 얻음과 같나니
각성(覺性)이 원명(圓明)하여 제경(諸境)을 비춤이(照了) 바로(正) 안광(眼光)이 면전의 경계를 비춤(曉了)과 같다. 대개 그 광명이 원만히 구족(具足)한 연고로 활연(豁然; 很快)히 모두 보되(盡見) 증애(憎愛)하는 바가 없음을 얻는다.
何以故 光體無二無憎愛故
眼光覺光 同一空體 兼無憎愛 故可比喻
무슨 연고냐, 광체(光體)가 무이(無二)라서 증애(憎愛)가 없는 연고니라.
안광(眼光)과 각광(覺光)이 동일한 공체(空體)며 겸해 증애가 없는지라 고로 가히 비유(比喻)했다.
善男子 此菩薩及末世衆生 修習此心得成就者 於此無修 亦無成就
修習圓覺旣已成就 方知本無所修 亦無所得也
선남자여 이 보살 및 말세 중생이 차심(此心)을 수습(修習)하여 성취를 얻은 자는 이에서 닦음(修)이 없고 또한 성취도 없느니라.
원각을 수습(修習)하여 이미 성취했으니 비로소 본래 닦을 바도 없고 또한 소득도 없음을 안다.
圓覺普照
圓覺光明 徧照法界
원각이 보조(普照)하여
원각의 광명이 법계를 편조(徧照)한다.
寂滅無二
寂則無念 滅則無相 清淨本源 湛然常一
적멸(寂滅)이 무이(無二)니
적(寂)은 곧 무념(無念)이며 멸(滅)은 곧 무상(無相)이다. 청정한 본원(本源)이 담연(湛然)히 상일(常一)이다.
於中百千萬億阿僧祇
藏經曰 阿者無也 僧祇者數也 合而言之 乃無數也
가운데에 백천만억 아승기(阿僧祇; 梵 asaṃkhya)
장경(藏經)에 가로되 아(阿)란 것은 무(無)며 승기(僧祇)란 것은 수(數)니 합해 이를 말하면 곧 무수(無數)다.
不可說恒河沙諸佛世界
恒河沙者 恒河中所有沙也 金剛經曰 恒河尙多無數 何況其沙 蓋喻圓覺性中有如此無數佛土
불가설(不可說) 항하사(恒河沙) 제불세계(諸佛世界)가
항하사(恒河沙; 梵 gaṅgā-nadā-vāluka)란 것은 항하(恒河) 중에 있는 바 사(沙)다. 금강경에 가로되 항하도 오히려 많아서 무수(無數)하거늘 어찌 하물며 그 모래(沙)이겠는가. 대개 원각성(圓覺性) 가운데 이와 같은 무수한 불토(佛土)가 있음에 비유했다.
猶如空華亂起亂滅
諸佛世界本無住相 如空中華隨起隨滅
마치 공화(空華)가 난기난멸(亂起亂滅)함과 같아서
제불세계는 본래 주상(住相)이 없음이 공중의 꽃이 수기수멸(隨起隨滅; 그대로 일어났다가 그대로 없어짐)함과 같다.
不卽不離
所現世界起滅無常者 初不卽近圓覺 亦不遠離圓覺 皆在大圓覺中 不可以離卽論也
부즉불리(不卽不離;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음)하고
나타난 바 세계가 기멸(起滅)이 무상(無常)한 것은 애초(初)에 원각에 즉근(卽近; 가까이 붙음)하지 않고 또한 원각을 원리(遠離)하지도 않나니 모두 대원각 가운데 있는지라 가히 이즉(離卽)으로써 논하지 못한다.
無縛無脫
本無所縛 於解何有
무박무탈(無縛無脫)하느니라.
본래 묶인 바가 없거늘 풀려남(解)이 어찌 있겠는가.
始知衆生本來成佛
修證至此已成佛果 方知衆生本來之性 見成是佛
비로소 알지니 중생이 본래 성불했고
수증(修證)이 여기에 이르면 이미 불과(佛果)를 이루었다. 비로소 알지니 중생의 본래지성(本來之性)이 현성(見成)하여 이 부처이다.
生死涅槃 猶如昨夢
旣知本性見成是佛 方知迷時之生死 悟後之涅槃 皆如夢中事爾
생사와 열반이 마치 작몽(昨夢; 어제의 꿈)과 같느니라.
본성(本性)이 현성(見成)하여 이 부처임을 이미 알았으니 비로소 미시(迷時)의 생사와 오후(悟後)의 열반이 모두 몽중사(夢中事)와 같은 줄 안다.
善男子 如昨夢故 當知生死及與涅槃 無起無滅 無來無去
生死涅槃 旣如昨夢 則起滅來去之相 亦何有哉
선남자여 작몽(昨夢)과 같은 연고로 당지(當知)할지니 생사가 및 열반과 더불어 무기무멸(無起無滅)하고 무래무거(無來無去)하고
생사와 열반이 이미 작몽(昨夢)과 같거늘 곧 기멸(起滅)과 내거(來去)의 상(相)이 또한 어찌 있음이겠는가.
其所證者 無得無失 無取無捨
所證圓覺 本是自性 旣不可得而得 亦不可得而失 旣不可得而取 亦不可得而捨
그 소증자(所證者)도 무득무실(無得無失)하고 무취무사(無取無捨)하고
소증(所證)의 원각이 본시(本是) 자성(自性)인지라 이미 득(得)을 불가득(不可得)이며 또한 실(失)을 불가득이며 이미 취(取)를 불가득이며 또한 사(捨)를 불가득이다.
其能證者 無作無止 無任無滅
能證圓覺者 無作用心 無止息心 無任彼自然心 無畢竟寂滅心 有此四心 卽爲四病
그 능증자(能證者)도 무작무지(無作無止)하고 무임무멸(無任無滅)이니라.
원각을 능증(能證)한 자는 작용심(作用心)이 없고 지식심(止息心)이 없고 저 자연에 맡기는(任) 마음이 없고 필경 적멸한 마음도 없다. 이 사심(四心)이 있으면 즉 사병(四病)이 된다.
於此證中 無能無所
無能證之智 無所證之相
이 증중(證中)엔 무능무소(無能無所)하고
능증(能證)의 지(智)도 없고 소증(所證)의 상(相)도 없다.
畢竟無證 亦無證者
本無可證之法 亦無證之之人
필경 무증(無證)이며 또한 증자(證者)도 없나니
본래 가증(可證)의 법이 없고 또한 이(之)를 증(證)하는 사람도 없다.
一切法性平等不壞
修證圓覺 至於人法兩忘 則一切根塵諸法之性 亦皆平等無二 永不變壞矣
일체의 법성(法性)이 평등하여 불괴(不壞)하느니라.
원각을 수증(修證)하여 인법(人法)이 양망(兩忘)함에 이르면 곧 일체의 근진(根塵) 제법지성(諸法之性)도 또한 모두 평등하여 무이(無二)며 영원히 변괴(變壞)하지 않는다.
善男子 彼諸菩薩 如是修行 如是漸次 如是思惟 如是住持 如是方便 如是開悟 求如是法 亦不迷悶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이 수행하고 이와 같은 점차(漸次)며 이와 같이 사유(思惟)하고 이와 같이 주지(住持)하고 이와 같은 방편이며 이와 같이 개오(開悟)하여 이와 같은 법을 구한다면 또한 미민(迷悶; 昏迷)하지 않으리라.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이때 세존이 이 뜻을 중선(重宣)하고자 하여 게를 설해 말씀하시되
普眼汝當知 一切諸衆生
身心皆如幻 身相屬四大
心性歸六塵 四大體各離
誰爲和合者
보안(普眼)이여 너는 당지(當知)하라/ 일체 모든 중생의/ 신심(身心)이 모두 환(幻)과 같아서/ 신상(身相)은 4대(大)에 속하고/ 심성(心性)은 6진(塵)으로 돌아가나니/ 4대(大)의 체(體)가 각기 떠나면(離)/ 누가 화합(和合)하는 자인가.
如是漸修行 一切悉淸淨
不動徧法界 無作止任滅
亦無能證者 一切佛世界
猶如虛空華 三世悉平等
畢竟無來去
●作止任滅; 禪林寶訓音義 作止任滅 作者 卽心造心作之謂也 若有人言 我於本心作種種行 欲求眞理 卽名爲病 止者 止妄卽眞之謂也 若有人言 我今永息諸念 寂然平等 欲求眞理 卽名爲病 任者 隨緣任情之謂也 若有人言 我等今者 不斷生死 不求涅槃 任彼一切 欲求眞理 是名爲病 滅者 寂滅之謂也 若有人言 我今求永滅一切煩惱身心 根塵虗妄境界 欲求眞理 是名爲病 止觀定慧爲本 作止任滅爲末
●三世; 又云三際 過去現在未來 又前世現世來世
이와 같이 점차 수행하면/ 일체가 모두(悉) 청정하고/ 동(動)하지 않고도 법계에 두루하나니/ 작지임멸(作止任滅)이 없고/ 또한 능증자(能證者)도 없느니라/ 일체의 불세계(佛世界)가/ 마치 허공화(虛空華)와 같으며/ 삼세(三世)가 모두(悉) 평등하고/ 필경 내거(來去)가 없느니라.
●作止任滅; 선림보훈음의. 작지임멸(作止任滅) 작(作)이란 것은 곧 심조심작(心造心作)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본심에서 갖가지 행을 지어(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곧 이름하여 병(病)이다. 지(止)란 것은 망(妄)을 그쳐(止) 진(眞)에 붙음(卽)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여금에 영원히 제념(諸念)을 쉬어(息) 적연(寂然)하고 평등하게 하여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곧 이름하여 병이다. 임(任)이란 것은 수연임정(隨緣任情)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 등은 금자(今者)에 생사를 끊지 않고 열반도 구하지 않으면서 저 일체에 맡겨(任)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이를 이름하여 병이다. 멸(滅)이란 것은 적멸을 이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여금에 일체의 번뇌의 신심(身心)과 근진(根塵)의 허망한 경계를 영멸(永滅)함을 구해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하면 이를 이름하여 병이다. 지관정혜(止觀定慧)는 본(本)이 되고 작지임멸(作止任滅)은 말(末)이 된다.
●三世; 또 이르되 3제(際)니 과거ㆍ현재ㆍ미래임. 또 전세ㆍ현세ㆍ내세임.
初發心菩薩 及末世衆生
欲求入佛道 應如是修習
초발심보살/ 및 말세 중생이/ 불도(佛道)에 듦을 구하려고 한다면/ 응당 이와 같이 수습(修習)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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