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是金剛藏菩薩 在大衆中 卽從座起 頂禮佛足 右繞三匝 長跪叉手 而白佛言 大悲世尊 善爲一切諸菩薩衆 宣揚如來圓覺淸淨大陀羅尼因地法行漸次方便 與諸衆生 開發蒙昧 在會法衆承佛慈誨 幻翳朗然 慧目淸淨
此菩薩讚佛於前三章 善說因地法行漸次方便
이에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이 대중 중에 있다가 자리로 좇아 일어나 불족(佛足)에 정례(頂禮)하고 세 바퀴(三匝) 우요(右繞)하고 장궤(長跪)하여 차수(叉手)하고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대비하신 세존이 잘(善) 일체의 모든 보살중(菩薩衆)을 위해 여래의 원각(圓覺)의 청정한 대다라니(大陀羅尼)와 인지(因地)의 법행(法行)과 점차(漸次)의 방편(方便)을 선양(宣揚)하시어 모든 중생을 위해(與) 몽매(蒙昧)를 개발(開發)하시니 재회(在會)의 법중(法衆)이 불타의 자회(慈誨)를 승수(承受; 承)하여 환예(幻翳)가 낭연(朗然)하고 혜목(慧目)이 청정합니다.
이 보살은 불타가 앞의 삼장(三章)에서 인지(因地)의 법행(法行)과 점차의 방편을 선설(善說)했음을 찬탄(讚歎; 讚)했다.
世尊 若諸衆生本來成佛 何故復有一切無明
此設第一問也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중생이 본래 성불했다면 무슨 연고로 다시 일체의 무명(無明)이 있으며
이것은 제일문(第一問)을 시설(施設; 設)함이다.
若諸無明衆生本有 何因緣故如來復說本來成佛
此設第二問也
만약 모든 무명을 중생이 본래 소유(所有; 有)했다면 무슨 인연인 연고로 여래가 다시 본래 성불을 설하십니까.
이것은 제이문(第二問)을 시설함이다.
十方異生 本成佛道後起無明 一切如來 何時復生一切煩惱
此設第三問也 十方異生者 十方世界異類衆生也
시방(十方)의 이생(異生)이 본래 불도를 이룬 후에 무명을 일으킨다면 일체 여래는 어느 때 다시 일체의 번뇌를 생기(生起; 生)합니까.
이것은 제삼문(第三問)을 시설함이다. 시방의 이생(異生)이란 것은 시방세계의 이류중생(異類衆生)이다.
惟願不捨無遮大慈 爲諸菩薩開祕密藏
開祕密藏者 開說祕密佛語也 其妙義廣大無盡 故名曰藏
오직 원하오니 무차대비(無遮大慈)를 버리지 마시고 모든 보살을 위해 비밀장(祕密藏)을 여시고
비밀장을 연다는 것은 비밀의 불어(佛語)를 개설(開說)함이니 그 묘의(妙義)가 광대하고 무진(無盡)한지라 고로 이름해 가로되 장(藏)이다.
及爲末世一切衆生 得聞如是修多羅敎了義法門
正謂圓覺了義一經
및 말세의 일체중생이 이와 같은 수다라교(修多羅敎)의 요의법문(了義法門)을 득문(得聞)하여
바로 이르자면 원각(圓覺) 요의(了義)의 일경(一經)이다.
永斷疑悔
永無疑惑退悔之心
의회(疑悔; 疑念과 後悔)를 영단(永斷)케 하십시오.
영원히 의혹퇴회(疑惑退悔)의 마음이 없게 함이다.
作是語已 五體投地 如是三請 終而復始
이 말을 지어 마치자 오체를 투지했다. 이와 같이 삼청(三請)하고는 마치자 다시 시작했다.
爾時世尊告金剛藏菩薩言 善哉善哉 善男子 汝等乃能爲諸菩薩及末世衆生 問於如來甚深祕密究竟方便 是諸菩薩最上敎誨了義大乘 能使十方修學菩薩及諸末世一切衆生 得決定信永斷疑悔 汝今諦聽 當爲汝說 時金剛藏菩薩奉敎歡喜 及諸大衆默然而聽
이때 세존이 금강장보살에게 고(告)해 말씀하시되 선재선재(善哉善哉)로다 선남자여, 여등(汝等)이 이에 능히 모든 보살 및 말세 중생을 위해 여래에게 심심(甚深)한 비밀(祕密)과 구경(究竟)의 방편을 물으니 이는 모든 보살의 최상의 교회(敎誨)며 요의(了義)의 대승(大乘)인지라 능히 시방의 수학(修學)하는 보살 및 모든 말세의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결정신(決定信)을 얻어 의회(疑悔)를 영단(永斷)케 하나니 너는 이제 체청(諦聽)하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때에 금강장보살이 봉교(奉敎)하여 환희했고 및 모든 대중이 묵연히 들었다.
善男子 一切世界 始終生滅 前後有無 聚散起止
圓覺大疏曰 創變爲始 極證爲終 新新而起曰生 念念落謝曰滅 過去名前 未來名後 現在住劫名有 空劫名無 成劫名聚 壞劫名散 現行爲起 調伏爲止
선남자여 일체 세계의 시종생멸(始終生滅)과 전후유무(前後有無)와 취산기지(聚散起止)가
원각대소(圓覺大疏)에 가로되 창변(創變; 처음으로 변함)이 시(始)가 되고 극증(極證)이 종(終)이 되고 신신(新新)이 일어남을 가로되 생(生)이며 염념(念念)에 낙사(落謝; 떨어지고 시듦)함을 가로되 멸(滅)이며 과거를 이름해 전(前)이며 미래를 이름해 후(後)며 현재의 주겁(住劫)을 이름해 유(有)며 공겁(空劫)을 이름해 무(無)며 성겁(成劫)을 이름해 취(聚)며 괴겁(壞劫)을 이름해 산(散)이며 현행(現行)이 기(起)가 되고 조복(調伏)이 지(止)가 된다.
念念相續 循環往復 種種取捨皆是輪迴
不斷始終生滅等念 雖能取眞捨妄取淨捨塵 亦皆是輪迴之見
염념(念念)에 상속(相續)하여 순환(循環)하고 왕복(往復)하는 갖가지 취사(取捨)가 모두 이 윤회(輪迴)며
시종(始終)ㆍ생멸 등의 사념(思念; 念)을 끊지 못하면 비록 능히 취진사망(取眞捨妄)하고 취정사진(取淨捨塵)하더라도 또한 모두 이 윤회지견(輪迴之見)이다.
未出輪迴 而辨圓覺 彼圓覺性卽同流轉 若免輪迴 無有是處
在輪迴中 辨別圓覺 其圓覺性亦屬輪迴 若更起念欲免輪迴 則妄上增妄 了無是處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각을 분변(分辨; 辨)하면 저(彼) 원각성(圓覺性)이 곧 유전(流轉)과 같거늘 만약 윤회를 면하려고 하면 옳은 곳이 있지 않느니라.
윤회 중에 있으면서 원각을 변별(辨別)하면 그 원각성(圓覺性)도 또한 윤회에 속하거늘 만약 다시 기념(起念)하여 윤회를 면하려고 한다면 곧 망상(妄上)에 증만(增妄)함인지라 마침내 옳은 곳이 없다.
譬如動目能搖湛水
妄念不停 迷惑本性 如動目之能搖湛水也
비여(譬如) 동목(動目)은 능히 담수(湛水)를 흔들고(搖)
망념(妄念)이 부정(不停)하여 본성(本性)을 미혹하면 동목(動目)이 능히 담수(湛水)를 흔듦과 같다.
又如定眼猶迴轉火
性爲妄念所惑 如定目之見火輪 安得不隨而轉也
우여(又如) 정안(定眼)이 회전(迴轉)하는 화(火)와 같나니(猶; 一作由).
성(性)이 망념(妄念)에 혹(惑)한 바가 됨이 정목(定目)이 화륜(火輪)을 봄과 같거늘 어찌 따라서 돌지 않음을 얻겠는가.
雲駛月運 舟行岸移 亦復如是
雲舟論妄念 月岸論本性 妄念未息 本性似乎不定
구름이 달리면 달이 운행(運行; 運)하고 배가 가면 언덕이 이동(移動; 移)함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구름과 배는 망념을 논했고 달과 언덕은 본성을 논했다. 망념이 쉬지 못하면 본성이 부정(不定)함과 흡사하다.
善男子 諸旋未息 彼物先住 尙不可得
諸旋者 眼目雲舟也 彼物者 水火月岸也 謂眼目雲舟其動未息 則水火月岸 安能先住
선남자여 제선(諸旋; 여러 旋回)이 쉬지 못하면서 피물(彼物)을 먼저 머물게 함을 오히려 불가득이거늘
제선(諸旋)이란 것은 안(眼)ㆍ목(目)ㆍ운(雲)ㆍ주(舟)며 피물(彼物)이란 것은 수(水)ㆍ화(火)ㆍ월(月)ㆍ안(岸)이다. 이르자면 안목운주(眼目雲舟)가 그 동(動)을 쉬지 못하면 곧 수화월안(水火月岸)이 어찌(安) 능이 먼저 머물겠는가.
何況輪轉生死垢心曾未淸淨 觀佛圓覺而不旋復 是故汝等便生三惑
未能淨染污之心 復圓覺之性 前之三惑 安得不生 三惑者 金剛藏之三問 是也
어찌 하물며 생사에 윤전(輪轉)하는 구심(垢心)이 일찍이 청정하지 못하면서 불타의 원각(圓覺)이 선복(旋復; 回轉)하지 않음을 보려고(觀) 하니 이런 고로 여등(汝等)이 바로 삼혹(三惑)을 내었느니라.
능히 염오지심(染污之心)을 청정히 하지 못하면서 원각지성(圓覺之性)을 회복(回復; 復)하려 아니 앞의 삼혹(三惑)이 어찌 불생(不生)함을 얻겠는가. 삼혹이란 것은 금강장의 삼문(三問)이 이것이다.
善男子 譬如幻翳妄見空華 幻翳若除 不可說言此翳已滅何時更起一切諸翳
幻翳旣滅 不可說言何時更起者 正答金剛藏所問如來何時復生煩惱之說
선남자여 비여(譬如) 환예(幻翳)로 공화(空華)를 망견(妄見)하다가 환예를 만약 제(除)하면 가히 설언(說言)하되 이 예(翳)가 이미 멸(滅; 없어지다)했거니와 어느 때 다시 일체의 제예(諸翳)를 일으키는가 하지 못하느니라.
환예(幻翳)가 이미 멸했거늘 가히 설언(說言)하되 어느 때 다시 일으키는가 하지 못한다는 것은 금강장이 물은 바 여래가 어느 때 다시 번뇌를 생기합니까라고 한 설(說)에 정당(正答)하였음이다.
何以故 翳華二法非相待故
翳非待華而有 華非待翳而生
무슨 연고인가, 예(翳)ㆍ화(華) 이법(二法)이 상대(相待)하지 않는 연고며
예(翳)는 화(華)를 기다려(待) 있음이 아니며 화(華)는 예(翳)를 기다려 생겨나지 않음이다.
亦如空華滅於空時 不可說言虛空何時更起空華
空華旣滅 不可謂何時更起者 正如妄念旣空 不可謂何時更有也
또한 공화(空華)가 허공에 멸할 때 가히 설언(說言)하되 허공이 어느 때 다시 공화를 일으키는가 하지 못함과 같나니
공화(空華)가 이미 멸했거늘 가히 이르되 어느 때 다시 일으키는 가라고 하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正) 망념이 이미 공()했거늘 가히 이르되 어느 때 다시 있어지는가라고 하지 못함과 같다.
何以故 空本無華 非起滅故
空華本無 安有起滅
무슨 연고냐, 허공엔 본래 화(華)가 없고 기멸(起滅)이 아닌 연고니라.
공화가 본래 없거늘 어찌 기멸(起滅)이 있겠는가.
生死涅槃 同於起滅
彼空中華 實無起滅 生死涅槃亦復如是
생사와 열반은 기멸(起滅)과 같고
그(彼) 공중화(空中華)는 실로 기멸(起滅)이 없고 생사와 열반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妙覺圓照 離於華翳
證圓覺者 心境兩空 如彼淨目了無華翳
묘각(妙覺)은 원명(圓照)하여 화(華)ㆍ예(翳)를 여의었느니라.
원각을 증(證)한 자는 심경(心境)이 양공(兩空)했음이 저 정목(淨目)엔 마침내 화예(華翳)가 없음과 같다.
善男子 當知虛空非是暫有 亦非暫無 況復如來圓覺隨順 而爲虛空平等本性
虛空歷劫不變 非乍有乍無也 況圓覺本性 與虛空一等 湛然眞常 豈有變易
선남자여 당지(當知)할지니 허공은 이 잠유(暫有)가 아니며 또한 잠무(暫無)도 아니다. 하물며 다시 여래의 원각의 수순(隨順)이 허공의 평등한 본성(本性)이 됨이겠는가.
허공은 역겁(歷劫)에 불변(不變)인지라 잠깐(乍) 있거나 잠깐 없음이 아니다. 하물며 원각의 본성은 허공과 더불어 일등(一等; 一樣 平等함) 담연(湛然)한 진상(眞常)이거늘 어찌 변역(變易)이 있겠는가.
善男子 如銷金鑛 金非銷有
鑛本是金 因銷而現 非因銷而有 性本是佛因修而悟 非因修而得
선남자여 금광(金鑛)을 녹이매(銷) 금은 녹여서 있음이 아님과 같나니
광(鑛; 鑛石)이 본래 이 금인지라 녹임으로 인해 나타나며 녹임으로 인해 있음이 아니다. 성(性)이 본래 이 불(佛)인지라 닦음으로 인해 깨침이며 닦음으로 인해 얻음이 아니다.
旣已成金 不重爲鑛 經無窮時 金性不壞 不應說言本非成就 如來圓覺亦復如是
鑛已成金 永不變壞 不可謂鑛本非眞金也 性已覺悟 永無迷惑 不可謂性本非圓覺也
기이(旣已) 금을 이루면 거듭 광(鑛)이 되지 않으며 무궁한 시절(時節; 時)을 경과하더라도 금성(金性)은 무너지지 않으며 본래 성취하지 않았다고 응당(應當; 應) 설언(說言)하지 못하나니 여래의 원각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광(鑛)이 이미 금을 이루면 영원히 변괴(變壞)하지 않나니 광(鑛)은 본래 진금이 아니라고 말함은 옳지 못하다. 성(性)이 이미 각오(覺悟)하면 영원히 미혹(迷惑)하지 않나니 성(性)은 본래 원각이 아니라고 말함은 옳지 못하다.
善男子 一切如來妙圓覺心 本無菩提及與涅槃 亦無成佛及不成佛
圓覺性中 萬法空寂 菩提涅槃等皆是假名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묘원각심(妙圓覺心)은 본래 보리(菩提) 및 더불어 열반이 없으며 또한 성불 및 불성불(不成佛)이 없으며
원각성(圓覺性) 가운데엔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한지라 보리와 열반 등은 모두 이 가명(假名)이다.
無妄輪迴及非輪迴
妄入輪迴及出輪迴 圓覺性中 都無此事
허망한 윤회 및 비윤회(非輪迴)가 없느니라.
허망하게 윤회에 들고 윤회에서 나오거니와 원각성 가운데엔 도무지 이런 일이 없다.
善男子 但諸聲聞所圓境界 身心語言皆悉斷滅 終不能至彼之親證所現涅槃
聲聞者 聞聲敎而悟者也 所圓境界者 所悟境界也 以彼所悟境界 雖灰身滅智 亦不能造佛寂滅之妙
●灰身滅智; 又作無餘灰斷 焚身灰智 略稱灰滅 灰斷 卽將肉身焚燒成灰 將心智滅除之意 亦卽將身心悉歸於空寂無爲之涅槃界 此乃小乘佛敎最終目的之無餘涅槃 [金光明經玄義上 維摩經玄疏五 天台四敎儀]
선남자여 단지 모든 성문(聲聞)의 소원경계(所圓境界)는 신심(身心)과 어언(語言)이 모두 다 단멸(斷滅)인지라 마침내 능히 그(彼)의 친증(親證)하여 나타낸 바 열반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성문(聲聞)이란 것은 성교(聲敎)를 듣고 깨친 자다. 소원경계(所圓境界)란 것은 소오(所悟)의 경계다. 그(彼)가 깨치는 바(所悟) 경계는 비록 회신멸지(灰身滅智)하더라도 또한 능히 불타의 적멸(寂滅)의 묘(妙)에 나아가지(造) 못한다.
●灰身滅智; 또 무여회단(無餘灰斷)ㆍ분신회지(焚身灰智)로 지으며 약칭이 회멸(灰滅)ㆍ회단(灰斷)이니 곧 육신을 가지고 분소(焚燒)하여 재로 만들고 심지(心智)를 가지고 멸제(滅除)함의 뜻. 또한 곧 신심(身心)을 가지고 공적무위(空寂無爲)의 열반계로 모두 회귀함이니 이것은 곧 소승불교의 최종 목적의 무여열반(無餘涅槃)임 [금광명경현의상. 유마경현소5. 천태사교의].
何況能以有思惟心 測度如來圓覺境界 如取螢火燒須彌山終不能著
灰身滅智 莫造佛地 況以妄心 測度佛境 譬如須彌至高至大 豈可以螢火燒之乎
어찌 하물며 능히 유사유심(有思惟心; 思惟心이 있음)으로써 여래의 원각경계를 측탁(測度)하겠는가. 형화(螢火;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를 취해 수미산(須彌山)을 태움과 같아서 마침내 능하지 못하느니라.
회신멸치(灰身滅智)는 불지(佛地)로 나아가지(造) 못하거늘 하물며 망심(妄心)으로써 불경(佛境)을 측탁(測度)함은 비여(譬如) 수미(須彌; 수미산)가 지고지대(至高至大)하거늘 어찌 가히 형화(螢火)로써 그것(之)을 태우겠는가.
以輪迴心生輪迴見 入於如來大寂滅海 終不能至
以此妄心 生此妄見 入佛寂滅 終不能到 寂滅之義 廣大深妙 故以海論
윤회심(輪迴心)으로써 윤회견(輪迴見)을 내어 여래의 대적멸해(大寂滅海)에 들어가려고 하면 마침내 능히 이르지 못하나니
이 망심(妄心)으로써 이 망견(妄見)을 내어 불적멸(佛寂滅)에 들어가려고 하면 마침내 능히 이르지 못한다. 적멸의 뜻은 광대하고 심묘(深妙)한지라 고로 해(海)로써 논했다.
是故我說一切菩薩及末世衆生 先斷無始輪迴根本
佛謂妄念爲輪迴本 一切衆生 當先斷念
이런 고로 내가 설하되 일체 보살 및 말세 중생이 먼저 무시(無始)의 윤회의 근본을 끊어야 하느니라.
불타가 이르되 망념(妄念)이 윤회의 근본이 되므로 일체중생이 마땅히 먼저 단념(斷念; 妄念을 끊다)해야 한다.
善男子 有作思惟 從有心起 皆是六塵妄想緣氣 非實心體 已如空華 用此思惟辨於佛境 猶如空華復結空果 展轉妄想 無有是處
六塵者 色聲香味觸法也 緣氣者 虛妄色心從緣而現者也 此心已如空華 本不曾有 況以此心 辨別圓覺 何異望空華之結實也
선남자여 사유(思惟)를 지음이 있음은 유심(有心)으로 좇아 일어나나니 모두 이 6진(塵)의 망상(妄想)의 연기(緣氣)며 진실한(實) 심체(心體)가 아니며 이미 공화(空華)와 같거늘 이 사유(思惟)를 써서 불경(佛境)을 변별(辨別; 辨)함은 마치 공화(空華)가 다시 공과(空果)를 맺음과 같아서 전전(展轉)히 망상(妄想)이며 옳은 곳이 있지 않느니라.
6진(六塵)이란 것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다. 연기(緣氣)란 것은 허망한 색심(色心)이 인연을 좇아 나타난 것이다. 차심(此心)은 이미 공화(空華)와 같아서 본래 일찍이 있음이 아니거늘 하물며 차심(此心)으로써 원각을 변별(辨別)함이 어찌 공화(空華)의 결실(結實)을 바람(望)과 다르겠는가.
善男子 虛妄浮心 多諸巧見 不能成就圓覺方便
妄心巧見 障圓覺故
●浮心; 浮動不安的情緒
선남자여 허망한 부심(浮心)은 여러 교견(巧見)이 많아서 능히 원각의 방편을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망심(妄心)과 교견(巧見)은 원각을 장애하는 연고이다.
●浮心; 부동(浮動)하여 불안한 정서(情緒).
如是分別 非爲正問
前之三問 佛始曰善哉者 美其起敎 終曰非正者 顯其實理
이와 같이 분별하나니 정문(正問)이 되지 못하느니라.
앞의 삼문(三問)이니 불타가 처음에 가로되 선재(善哉)라고 한 것은 그 기교(起敎)를 찬미(讚美; 美)함이며 마치면서 가로되 정이 아니라고(非正) 한 것은 그 실리(實理)을 나타냄(顯)이다.
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偈言
이때 세존이 이 뜻을 중선(重宣)하려고 하여 게(偈)를 설해 말씀하시되
金剛藏當知 如來寂滅性
未曾有終始 若以輪迴心
思惟卽旋復 但至輪迴際
不能入佛海
금강장이여 당지(當知)하라/ 여래의 적멸성(寂滅性)은/ 일찍이 종시(終始)가 있지 않나니/ 만약 윤회심(輪迴心)으로써/ 사유(思惟)하면 곧 선복(旋復; 回轉)하는지라/ 단지 윤회의 변제(邊際; 際)에 이르고/ 능히 불해(佛海)에 들지 못하느니라.
譬如銷金鑛 金非銷故有
雖復本來金 終以鎖成就
一成眞金體 不復重爲鑛
비여(譬如) 금광(金鑛)을 녹이면/ 금은 녹이는 연고로 있음이 아니며/ 비록 본래 금을 회복(回復; 復)하더라도/ 마침내 녹임으로써 성취하나니/ 한 번 진금의 체(體)를 이루면/ 다시 거듭 광(鑛)이 되지 않느니라.
生死與涅槃 凡夫及諸佛
同爲空華相
생사와 열반/ 범부 및 제불이/ 한가지로 공화상(空華相)이 되느니라.
思惟猶幻化 何況詰虛妄
若能了此心 然後求圓覺
사유(思惟)가 환화(幻化)와 같거늘(猶)/ 어찌 하물며 허망을 힐문(詰問; 詰)하느냐/ 만약 능히 차심(此心)을 깨친다면(了)/ 연후에 원각을 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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