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州上方岳禪師 少與雪竇顯公結伴遊淮山 聞五祖戒公喜勘驗 顯未欲前 岳乃先往 徑造丈室 戒曰 上人名甚麽 對曰 齊岳 戒曰 何似泰山 岳無語 戒卽打趂 岳不甘 翌日復謁 戒曰 汝作甚麽 岳回首 以手畫圓相呈之 戒曰 是甚麽 岳曰 老老大大 胡餠也不識 戒曰 趂爐竈熟 更搭一箇 岳擬議 戒拽拄杖趂出門 及數日後 岳再詣 乃提起坐具曰 展則大千沙界 不展則毫髮不存 爲復展卽是 不展卽是 戒遽下繩牀 把住云 旣是熟人 何須如此 岳又無語 戒又打出 以是觀五祖眞一代龍門矣 岳三進而三遭點額 張無盡謂雪竇雖機鋒頴脫 亦望崖而退 得非自全也耶
●上方岳; 齊嶽 宋代雲門宗僧 福昌重善法嗣 住安吉州上方 [續傳燈錄二 五燈會元十五]
●雪竇顯; 重顯(980-1052) 宋代雲門宗僧 遂寧(四川蓬溪縣之西)人 俗姓李 字隱之 以妙齡離俗入道 投益州普安院仁詵出家 得法於復州北塔智門光祚 依止五年 盡得其道 後隱於錢塘靈隱寺三年 乃出住蘇州翠峰寺 次年轉徙明州雪竇山資聖寺 海衆雲集 大揚宗風 乃中興雲門宗 又以師久住雪竇山 後世多以雪竇禪師稱之 於皇祐四年入寂 壽七十三 諡號明覺大師 遺有明覺禪師語錄六卷 碧巖集百則頌 及詩集瀑泉集行世 [淨慈寺志 五燈會元十五 續傳燈錄二]
●五祖戒; 師戒 宋代雲門宗僧 蜀(四川)人 嗣雙泉師寬(嗣雲門) 住蘄州(湖北)五祖山 故稱五祖師戒 暮年住高安(江西)大愚山 倚杖談笑而化 年壽不詳 [廣燈錄二十一 聯燈會要二十七]
●上人; 對智德兼備而可爲衆僧及衆人師者之高僧的尊稱
●何似; 卽如何之意 又卽似何物之意
●老老大大; 對年老者的譏刺語 隱含恁麽年老 猶不明悟之義
●胡餠; 又稱胡麻餠 祖庭事苑一 用胡麻作餠 故曰胡餠 故釋名曰 胡餠 言以胡麻著之也 前趙錄云 石季龍諱胡 改爲麻餠 胡麻 卽油麻也
●沙界; 恆河沙之世界 恒河沙者多數之喩
●繩牀; 同繩床 又作坐床 坐禪床 爲繩製之座具 比丘坐臥用之
●龍門; 位於山西平陽河津 與陝西西安韓城縣境之黃河中流 其處山嶽對峙 形成門闕之狀 爲一天然險要之所 ▲後漢書六十七 李膺 字元禮 潁川襄城人也 膺性簡亢 無所交接 唯以同郡荀淑陳寔爲師友 是時朝庭日亂 綱紀穨阤 膺獨持風裁 以聲名自高 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 ▲祖庭事苑二 龍門 以魚爲喩也 龍門 河水所下之口 在今絳州龍門縣 龍門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集龍門下者 數千不得上 上卽爲龍 今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 事見東漢李膺傳
●點額; 傳說每年三月間 黃河龍門有成群鯉魚跳渡 跳過者成爲龍 未跳過者 額頭被點上記號而退回 一般詩文中 常以點額 喩指科場考試落第 禪錄中則以點額 喩指未能契悟禪機 ▲祖庭事苑三 點額 水經云 鱣鮪出鞏穴 三月則上度龍門 得度爲龍矣 否則點額而還 鱣 張連切 鮪 羽軌切 二魚名
●頴脫; 同穎脫 指如錐在囊中而脫出 才能出衆者
호주(湖州) 상방악(上方岳; 齊嶽) 선사가 소년(少年; 少)에 설두현공(雪竇顯公; 重顯)과 더불어 결반(結伴)하여 회산(淮山)을 유람했다. 오조계공(五祖戒公; 師戒)이 감험(勘驗; 勘이니 詰問함)을 좋아한다(喜) 함을 들었는데 현(顯)이 나아가려고(欲前) 하지 않았다. 악(岳)이 이에 먼저 갔다. 질러(徑) 장실(丈室)로 나아가자(造) 계왈(戒曰) 상인(上人)은 이름이 무엇인가(甚麽). 대왈(對曰) 제악(齊岳)입니다. 계왈 태산(泰山)과 어떠한가(何似). 악이 말이 없자 계가 곧 때리고 쫓아내었다(趂). 악이 달게 여기지 않았다. 익일(翌日) 다시 참알하자 계왈 네가 무엇하려느냐(作甚麽). 악이 회수(回首)하여 손으로써 원상(圓相)을 그려 보였다(呈之). 계왈 이 뭣고(是甚麽). 악왈 노로대대(老老大大)가 호병(胡餠)도 또한 알지 못합니까. 계왈 노조(爐竈; 화로의 부뚜막)로 달려가 익혀서 다시 한 개를 실어라(搭). 악이 의의(擬議)하자 계가 주장자를 끌어다(拽) 문으로 쫓아내었다(趂出門). 며칠 후에 이르러(及) 악이 다시 나아갔다(詣). 이에 좌구(坐具)를 제기(提起; 들어 일으킴)하고 가로되 펴면(展) 곧 대천사계(大千沙界)며 펴지 않으면 곧 호발(毫髮)도 남지(存) 않습니다. 다시(復) 폄이 곧 옳음(是)이 됩니까, 펴지 않음이 곧 옳습니까. 계가 급히(遽) 승상(繩牀)에서 내려와 파주(把住; 움켜쥐어 머물게 함)하고 이르되 이미(旣) 이 숙인(熟人)이거늘 왜 이와 같음을 쓰는가(須). 악이 또 말이 없었다. 계가 또 때리고 쫓아내었다(打出). 이로써 오조(五祖; 師戒)를 보건대 참으로(眞) 일대(一代)의 용문(龍門)이다. 악이 세 번 나아갔다가 세 번 점액(點額)을 만났다(遭). 장무진(張無盡)이 이르되 설두(雪竇)가 비록 기봉(機鋒)이 영탈(頴脫)했지만 또한 망애(望崖)하고 물러났다 하니 자전(自全; 스스로 완전함)이 아님을 얻겠는가.
●上方岳; 송대 운문종승. 복창중선(福昌重善)의 법사며 안길주 상방(上方)에 거주했음 [속전등록2. 오등회원15].
●雪竇顯; 중현(重顯; 980-1052)이니 송대 운문종승. 수녕(遂寧; 사천 봉계현의 서)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이(李)며 자(字)는 은지(隱之). 묘령(妙齡; 20 안팎의 젊은 나이)에 세속을 떠나 입도(入道)하여 익주(益州) 보안원(普安院)의 인선(仁詵)에게 투신하여 출가했음. 복주(復州) 북탑(北塔)의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서 법을 얻었으니 5년 동안 의지(依止)하며 그 도를 다 얻었음. 후에 전당(錢塘) 영은사(靈隱寺)에 은거하기 3년 만에 곧 출세해 소주(蘇州) 취봉사(翠峰寺)에 주(住)했음. 다음해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로 옮겼으며 해중(海衆)이 운집하여 종풍을 크게 날렸으니 곧 운문종을 중흥했음. 또 스님이 설두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후세에 많이 설두선사(雪竇禪師)로 그를 일컬음. 황우(皇祐) 4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73. 시호가 명각대사(明覺大師)며 유작(遺作)에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6권과 벽암집백칙송(碧巖集百則頌) 및 시집인 폭천집(瀑泉集)이 있어 세상에 행함 [정자사지. 오등회원15. 속전등록2].
●五祖戒; 사계(師戒)니 송대 운문종승. 촉(사천) 사람. 쌍천사관(雙泉師寬; 운문을 이었음)을 이었고 기주(호북) 오조산에 거주했으므로 고로 호칭이 오조사계임. 모년(暮年)에 고안(강서) 대우산에 거주했으며 주장자에 기대어 담소하다가 화(化)했음. 나이는 불상 [광등록21. 연등회요27].
●上人; 지덕을 겸비하여 가히 중승 및 중인의 스승이 되는 고승에 대한 존칭.
●何似; 곧 여하(如何)의 뜻. 또 곧 어떤 물건과 같은가의 뜻.
●老老大大; 연로한 자에 대한 기자어(譏刺語: 헐뜯고 비꼬아서 하는 말). 이렇게 연로하면서 오히려 밝게 깨치지 못했는가 하는 뜻을 은함(隱含)하였음.
●胡餠; 또 명칭이 호마병(胡麻餠)임. 조정사원1. 호마(胡麻; 麻는 깨)를 써서 병(餅)을 만들므로 고로 가로되 호병(胡餅)임. 고로 석명(釋名; 釋飮食)에 가로되 호병(胡餅)은 말하자면 호마(胡麻)를 그것에 붙인 것이다. 전조록(前趙錄)에 이르되 석계룡(石季龍)의 휘(諱)가 호(胡)이므로 고쳐 마병(麻餅)이라 했다(前趙는 石氏인 後趙에게 亡했음. 後趙로 의심됨). 호마(胡麻)는 곧 유마(油麻)임.
●沙界; 항하사의 세계. 항하사란 것은 다수의 비유.
●繩牀; 승상(繩床)과 같음. 또 좌상(坐床)ㆍ좌선상(坐禪床)으로 지으며 노끈으로 제작한 좌구임. 비구가 좌와(坐臥)에 이를 사용함.
●龍門; 산서 평양 하진(河津)에 위치함. 섬서 서안 한성현경(韓城縣境)의 황하 중류와 더불어 그곳 산악이 대치(對峙)하여 문궐(門闕)의 형상을 형성했으며 하나의 천연적인 험요(險要)의 처소가 됨. ▲후한서67. 이응(李膺)은 자가 원례며 영천 양성 사람이다. 이응은 성품이 간항(簡亢; 뜻이 크고 오만)하여 교접하는 바가 없었다. 오직 동군(同郡)의 순숙과 진식을 사우(師友)로 삼았다. 이때의 조정은 날마다 혼란했으며 강기(綱紀)가 퇴타(穨阤; 쇠퇴. 붕괴)했다. 이응만이 오직 풍재(風裁; 풍모. 풍치)를 유지했으며 성명(聲名)이 저절로 높아졌으므로 사(士)가 그의 용접(容接)을 받음이 있는 자는 이름하여 등용문(登龍門)이라 했다. ▲조정사원2. 용문(龍門)은 물고기로써 비유를 삼음. 용문은 하수(河水)가 내려가는 바의 입구니 지금 강주(絳州)의 용문현에 있음. 용문의 물이 험해 통하지 않는지라 어별(魚鼈)의 족속(族屬)이 능히 오르지 못함. 강해(江海)의 대어가 용문 아래에 모인 자 수천(數千)이 오름을 얻지 못하나니 오른 즉 용이 됨. 지금의 사(士; 사내)가 그 용접(容接)함을 얻은 자는 등용문이라 이름함. 사(事)는 동한의 이응전(李膺傳)을 보라.
●點額; 전설에 매년 3월 사이 황하의 용문에 무리를 이룬 이어(鯉魚; 잉어)가 있어 도약해 건너는데 도약해 지난 자는 용이 되고 도약해 건너지 못한 자는 액두(額頭; 이마)에 기호가 점 찍힘을 입고 퇴회(退回)함. 일반의 시문 중 늘 점액으로써 과장고시(科場考試)에 낙제함을 비유로 가리키며 선록 중에는 곧 점액으로써 능히 선기(禪機)에 계오(契悟)하지 못함을 비유로 가리킴. ▲조정사원3. 점액(點額) 수경(水經)에 이르되 전유(鱣鮪; 鱣은 드렁허리. 鮪는 다랑어)가 공혈(鞏穴; 鞏은 굳을 공)에서 나와 3월이면 곧 올라 용문을 건너는데 건넘을 얻으면 용이 되지만 아니면 곧 이마에 점찍혀(點額) 돌아온다. 전(鱣)은 장련절(張連切; 젼)이며 유(鮪)는 우궤절(羽軌切)이니 두 물고기의 이름임.
●頴脫; 영탈(穎脫)과 같음.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다가 탈출함과 같이 재능이 출중한 자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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