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龍圖禧 元豐五年 自右正言出知渭州 旣歸分寧 請黃龍晦堂和尙就雲巖爲衆說法 有疏曰 三十年前說法 不消一箇莫字 如今荊棘塞路 皆據見向開門 只道平地上休起骨堆 不知那箇是佗平地 只道喫粥了洗鉢盂去 不知鉢盂落在那邊 不學溷絶學語言 在根作歸根證據 木刻鷂子 豈解從禽 羊蒙虎皮 其奈喫草 故識病之宗匠 務隨時而叮嚀 須令向千歲松下討茯苓 逼將上百尺竿頭試脚步 直待骸骨迴迴 方與眼上安眉 圖佗放匙把筯自由 識箇啜羹喫飯底滋味 不是鏤明脊骨 骨勝末後拳椎 法門中如此差殊 正見師豈易遭遇 昔人所以涉川遊海 今者乃在我里吾鄕 得非千載一時事 當爲衆竭力 袒肩屈膝 願唱誠於此會人天 挑屑拔釘 咸歸命於晦堂和尙 獅子廣座 無畏吼聲 時至義同 大衆虔仰 噫 今之疏帶俳優而爲得體 以字相比麗而爲見工 豈有胷襟流出直截根源若此 黃太史爲擘窠大書 䥴於翠琰 高照千古 爲叢林盛事之傳云
●徐龍圖禧; 徐禧(1035-1082) 宋代黃龍派居士 嗣法於晦堂祖心 字德占 洪州分寧(今江西修水縣)人 少年而有大志 氣度不凡 力學而不事科擧 以學識超卓破格任用 [羅湖野錄上 禪燈世譜四 百度百科] 龍圖 宋代龍圖閣學士的省稱 [百度百科]
●正言; 官名 唐有左右拾遺 宋初改爲左右正言 掌規諫 分隸門下中書二省 [百度百科]
●渭州; 北魏永安三年(530)置 因渭水得名 治所在襄武(今甘肅隴西東南)
●見向; 轉過頭來看 回顧
●宗匠; 禪宗大師
●叮嚀; 同丁寧 一叮囑 申申當付 二仔細 分明 三對人之態度言辭親切慇懃 此指三
●茯苓; 慧琳音義二十七曰 愽物志 松脂入地千年化爲茯苓 茯苓千年化爲虎魄 一名紅珠
●脚步; 指行走時腳的動作
●歸命; 梵語曰南無 譯曰歸命 有三義 一身命歸趣於佛之義 二歸順佛之敎命之義 三命根還歸於一心本元之義 爲表信心至極之詞
●獅子廣座; 獅子座 又作師子座 智度論七謂 佛爲人中獅子 凡所坐若床若地 皆名獅子座
●擘窠; 擘 分也 窠 字眼之方楷也 [禪林寶訓音義]
서용도희(徐龍圖禧)가 원풍(元豐) 5년(1082) 우정언(右正言)으로부터 나가서 위주(渭州)를 지(知; 다스리다)했다. 이미 분녕(分寧)으로 돌아오자 황룡 회당화상(晦堂和尙; 祖心)을 청해 운암(雲巖)으로 나아가(就) 대중을 위해 설법하게 했다. 소(疏)가 있어 가로되 30년 전 설법은 일개(一箇)의 막자(莫字)도 소비하지(消) 않았지만 여금엔 형극(荊棘)이 색로(塞路; 길을 메우다)하여 모두(皆) 견향(見向; 回顧)에 의거하여 개문(開門)합니다. 다만 말하되 평지 위에 골퇴(骨堆)를 일으키지 말라(休) 하거니와 나개(那箇; 어느 것)가 이 저(佗) 평지인지 알지 못하며 다만 말하되 끽죽(喫粥)하여 마쳤거든 발우를 씻으러 가라 하거니와 발우가 나변(那邊; 어느 변)에 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지러운(溷) 절학(絶學)의 어언(語言)을 배우지 않아야 하리니 근(根)에 있으면 귀근(歸根)하여 증거를 지어야 할 것입니다. 목각(木刻)의 요자(鷂子; 새매. 子는 조사)가 어찌 새(禽)를 좇을 줄 알 것이며 양(羊)이 호피(虎皮)를 입었더라도(蒙) 그 끽초함을 어찌하겠습니까(其奈喫草). 고로 병(病)을 아는 종장(宗匠)은 수시(隨時)하여 정녕(叮嚀)함에 힘 쓸 것이니(務) 모름지기 천세송(千歲松) 아래를 향해 복령(茯苓)을 찾고(討) 핍박(逼迫; 逼)하여 나아가(將)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올라 시험 삼아 각보(脚步)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直) 해골이 돌고 돎(迴迴)을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눈 위에 눈썹을 안치해 주거나 그(佗)가 방시파저(放匙把筯)에 자유롭기를 도모하거나 저(箇) 철갱끽반(啜羹喫飯)의 자미(滋味)를 앎은 이 척골(脊骨)에 새겨 밝힘(鏤明)이 아니니 골(骨)이 말후의 권추(拳椎) 보다 수승합니다. 법문(法門) 중에 이와 같이 차수(差殊; 差錯이니 錯誤)니 정견사(正見師)를 어찌 쉽게 조우(遭遇)하겠습니까. 석인(昔人)은 소이로 섭천유해(涉川遊海)했거니와 금자(今者)는 곧(乃) 아리아향(我里吾鄕)에 있으니 천재(千載)에 일시사(一時事)가 아님을 얻겠습니까. 마땅히 위중갈력(爲衆竭力; 대중을 위해 힘을 다함)하고 단견굴슬(袒肩屈膝; 어깨를 드러내고 무릎을 굽힘)해야 할 것입니다. 원컨대 창(唱)하되 차회(此會)의 인천(人天)에게 정성(精誠; 誠)스럽다면 도설발정(挑屑拔釘; 가루를 들어내고 못을 뽑음)하고 모두(咸) 회당화상(晦堂和尙)에게 귀명(歸命)할 것입니다. 사자광좌(獅子廣座)의 무외후성(無畏吼聲)은 때가 이르고 뜻이 같아야(時至義同) 대중이 건앙(虔仰)할 것입니다. 희(噫)라, 여금의 소(疏)는 배우(俳優)를 가지고(帶) 득체(得體)로 삼으며 글자로써 상비(相比)하여 화려(華麗; 麗)함으로 현공(見工; 工巧를 보임)으로 삼나니 어찌 흉금에서 유출(流出)하여 근원을 직절(直截)함이 있음이 이와 같겠는가(若此). 황태사(黃太史)가 벽과(擘窠)하여 대서(大書)했고 취염(翠琰; 푸른 옥)에 새겨(䥴) 천고(千古)를 고조(高照)했으니 총림성사(叢林盛事)의 전(傳)이 되었다.
●徐龍圖禧; 서희(徐禧; (1035-1082)는 송대 황룡파거사. 회당조심(晦堂祖心)에게서 법을 이었음. 자는 덕점이며 홍주 분녕(지금의 강서 수수현) 사람. 소년에 대지(大志)가 있었으며 기도(氣度)가 범상하지 않았음. 힘껏 배우되 과거(科擧)를 일삼지 않았음. 학식이 초탁(超卓)하여 파격으로 임용되었음 [나호야록상. 선등세보4. 백도백과]. 용도(龍圖)는 송대 용도각학사(龍圖閣學士)의 생칭(省稱).
●正言; 벼슬 이름. 당(唐)에 좌우습유가 있었고 송초에 고쳐 좌우정언(左右正言)으로 삼았으니 규간(規諫)을 관장했음. 문하ㆍ중서 2성(省)에 나뉘어 속했음 [백도백과].
●渭州; 북위 영안 3년(530)에 설치했고 위수(渭水)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치소는 양무(지금의 감숙 농서 동남)에 있었음.
●見向; 머리를 돌려 와서 봄. 회고(回顧).
●宗匠; 선종(禪宗)의 대사(大師).
●叮嚀; 정녕(丁寧)과 같음. 1. 정촉(叮囑). 신신당부(申申當付). 2. 자세함. 분명함. 3.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언사가 친절하고 은근함. 여기에선 3을 가리킴.
●茯苓; 혜림음의27에 가로되 박물지 송지(松脂)가 땅에 들어가 천 년이면 복령(茯苓)으로 변화하고 복령이 천 년이면 호백(虎魄)으로 변화하는데 일명이 홍주다.
●脚步; 행주(行走)할 때 발의 동작을 가리킴.
●歸命; 범어로는 가로되 나무(南無; 梵 namas. 巴 namo)니 번역해 가로되 귀명임. 세 뜻이 있음. 1은 신명(身命)을 불타에게 귀취(歸趣)함의 뜻이며 2는 부처의 교명(敎命)에 귀순함의 뜻이며 3은 목숨을 일심의 본원(本元)에 환귀함의 뜻임. 신심의 지극함을 표하는 말이 됨.
●獅子廣座; 사자좌(獅子座)는 또 사자좌(師子座)로 지음. 지도론7에 이르되 불타는 사람 중의 사자가 되는지라 무릇 앉는 바는 상(床)이거나 땅이거나 다 이름이 사자좌다.
●擘窠; 벽(擘)은 분(分)이며 과(窠)는 자안(字眼; 한문으로 된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의 글자)의 방해(方楷; 본보기)임 [선림보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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