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寧璣道者 元祐間 住洪州翠巖 時無盡居士張公漕江西 絶江訪之 璣逆於途 公遽問曰 如何是翠巖境 對曰 門近洪崖千尺井 石橋分水繞松杉 公曰 尋常只聞師道者之名 何能如是祇對乎 璣曰 適然耳 公笑而長哦曰 野僧迎客下煙嵐 試問如何是翠巖 門近洪崖千尺井 石橋分水繞松杉 遂題于妙高臺 今有石刻存焉
●保寧璣; 圓璣(1036-1118) 宋代黃龍派僧 福州(今屬福建)林氏 出家福淸應天寺 後依慧南於黃檗 及遷黃龍 携以俱往 南歿 首衆於東林 後出世翠巖 又十年 移住圓通 崇寧二年(1103)住保寧 [續燈錄十二 聯燈會要十五 佛祖綱目三十七]
●洪州; 江西南昌縣之通稱 隋初稱洪州 煬帝改豫章郡 唐代復名洪州 五代稱南昌縣 宋代名新建縣
●絶江; 直渡也 [禪林寶訓音義]
보녕기(保寧璣; 圓璣) 도자(道者)가 원우(元祐; 1027- 1092) 간 홍주(洪州) 취암(翠巖)에 주(住)했다. 때에 무진거사 장공(張公)이 강서(江西)에서 조운(漕運; 漕)했는데 절강(絶江; 바로 건넘)하여 그(之)를 방문했다. 기(璣)가 도로에서 맞이했다(逆). 공(公)이 급히(遽) 문왈(問曰) 무엇이 이 취암경(翠巖境)입니까. 대왈(對曰) 문이 홍애(洪崖)의 천 척 우물에 가까이 했고 석교(石橋)가 분수(分水)하여 송삼(松杉)을 돕니다(繞). 공왈(公曰) 심상(尋常)에 다만 스님을 도자(道者)라고 이름함을 들었습니다만 어찌 능히 이와 같이 지대(祇對; 응대)합니까. 기왈(璣曰) 적연(適然; 偶然. 自然)일 뿐입니다. 공이 웃으면서 길게 읊조려(哦) 가로되 야승(野僧)이 연람(煙嵐; 이내. 嵐氣) 아래에서 영객(迎客)하는데/ 시문(試問)하되 무엇이 이 취암(翠巖)인가 하니/ 문이 홍애(洪崖)의 천 척 우물에 가까이 했고/ 석교(石橋)가 분수(分水)하여 송삼(松杉)을 돈다 하더라. 드디어 묘고대(妙高臺)에 제(遂)했는데 지금(至今; 今) 석각(石刻)이 있어 존재한다.
●保寧璣; 원기(圓璣; 1036-1118)니 송대 황룡파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임씨(林氏). 복청 응천사에서 출가했고 후에 혜남을 황벽에서 의지했는데 황룡으로 천거(遷居)함에 이르러 데리고 함께 갔음. 혜남이 죽자 동림에서 수중(首衆)했고 후에 취암에서 출세했음. 또 10년 만에 원통으로 이주했다가 숭녕 2년(1103) 보녕에 주지했음 [속등록12. 연등회요15. 불조강목37].
●洪州; 강서 남창현의 통칭. 수초(隋初)에 홍주로 일컬었고 양제가 예장군으로 고쳤음. 당대(唐代) 다시 홍주로 이름했고 오대(五代) 남창현이라 호칭했고 송대(宋代) 이름하여 신건현이라 했음.
●絶江; 바로 건넘임 [선림보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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