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보녕기(保寧璣; 圓璣)

태화당 2025. 11. 26. 07:27

保寧璣道者 元祐間 住洪州翠巖 時無盡居士張公漕江西 絶江訪之 璣逆於途 公遽問曰 如何是翠巖境 對曰 門近洪崖千尺井 石橋分水繞松杉 公曰 尋常只聞師道者之名 何能如是祇對乎 璣曰 適然耳 公笑而長哦曰 野僧迎客下煙嵐 試問如何是翠巖 門近洪崖千尺井 石橋分水繞松杉 遂題于妙高臺 今有石刻存焉

保寧璣; 圓璣(1036-1118) 宋代黃龍派僧 福州(今屬福建)林氏 出家福淸應天寺 後依慧南於黃檗 及遷黃龍 携以俱往 南歿 首衆於東林 後出世翠巖 又十年 移住圓通 崇寧二年(1103)住保寧 [續燈錄十二 聯燈會要十五 佛祖綱目三十七]

洪州; 江西南昌縣之通稱 隋初稱洪州 煬帝改豫章郡 唐代復名洪州 五代稱南昌縣 宋代名新建縣

絶江; 直渡也 [禪林寶訓音義]

 

보녕기(保寧璣; 圓璣) 도자(道者)가 원우(元祐; 1027- 1092) 간 홍주(洪州) 취암(翠巖)에 주()했다. 때에 무진거사 장공(張公)이 강서(江西)에서 조운(漕運; )했는데 절강(絶江; 바로 건넘)하여 그()를 방문했다. ()가 도로에서 맞이했다(). ()이 급히() 문왈(問曰) 무엇이 이 취암경(翠巖境)입니까. 대왈(對曰) 문이 홍애(洪崖)의 천 척 우물에 가까이 했고 석교(石橋)가 분수(分水)하여 송삼(松杉)을 돕니다(). 공왈(公曰) 심상(尋常)에 다만 스님을 도자(道者)라고 이름함을 들었습니다만 어찌 능히 이와 같이 지대(祇對; 응대)합니까. 기왈(璣曰) 적연(適然; 偶然. 自然)일 뿐입니다. 공이 웃으면서 길게 읊조려() 가로되 야승(野僧)이 연람(煙嵐; 이내. 嵐氣) 아래에서 영객(迎客)하는데/ 시문(試問)하되 무엇이 이 취암(翠巖)인가 하니/ 문이 홍애(洪崖)의 천 척 우물에 가까이 했고/ 석교(石橋)가 분수(分水)하여 송삼(松杉)을 돈다 하더라. 드디어 묘고대(妙高臺)에 제()했는데 지금(至今; ) 석각(石刻)이 있어 존재한다.

保寧璣; 원기(圓璣; 1036-1118)니 송대 황룡파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임씨(林氏). 복청 응천사에서 출가했고 후에 혜남을 황벽에서 의지했는데 황룡으로 천거(遷居)함에 이르러 데리고 함께 갔음. 혜남이 죽자 동림에서 수중(首衆)했고 후에 취암에서 출세했음. 10년 만에 원통으로 이주했다가 숭녕 2(1103) 보녕에 주지했음 [속등록12. 연등회요15. 불조강목37].

洪州; 강서 남창현의 통칭. 수초(隋初)에 홍주로 일컬었고 양제가 예장군으로 고쳤음. 당대(唐代) 다시 홍주로 이름했고 오대(五代) 남창현이라 호칭했고 송대(宋代) 이름하여 신건현이라 했음.

絶江; 바로 건넘임 [선림보훈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