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교충광(敎忠光; 彌光)

태화당 2025. 12. 7. 09:35

泉州敎忠光禪師 與李參政漢老 在小谿雲門菴妙喜會中 有同參契分 李因致光住敎忠功德院 其疏有三拜頓忘師弟子 一口吞盡佛衆生之句 爲叢林傳誦 旣而李病將革 以偈寄光 曩歲曾經度厄津 深將法力荷雲門 如今稍覺神明復 擬欲醻師不報恩 光卽和之 胡牀穩坐已通津 何處更尋不二門 八苦起時全體現 不知誰解報深恩 李得其報 閱罷而逝 其處生死之大變 泊然不亂 而言神明還復 可見平日所養矣 東坡謂生死之際不容其僞 李殆庶幾

漢老; 李邴(1085-1146) 宋代楊岐派居士 字漢老 號雲龕 任城(山東濟寧)人 崇寧(1102-1106)間登第 紹興(1131 -1162)初 官資政殿學士 歸老泉州時 大慧住泉南長樂庵 邴數往叩擊 一日 大慧擧頌趙州庭前柏樹子話 有省 別後報之以書 命畫工圖大慧像 奉之終身 卒謚文敏 [宋史三七五 續指月錄一 居士傳三十一 續傳燈錄三十二]

三拜; 示三業之敬意而爲三拜也 西天無此法 釋氏要覽中 俗中兩拜者 蓋法陰陽也 今釋氏以三拜者 蓋表三業歸敬也 四分律名義標釋一 原其西國 無三拜禮 但以十爪布地 叩頭三禮 中間更無起義 南海寄歸內法傳三 凡禮拜者 意在敬上自卑之儀也 欲致敬時及有請白 先整法衣搭左肩上 (中略)足跟雙豎 脊頂平直 十指布地 方始叩頭 然其膝下迥無衣物 復還合掌復還叩地 慇懃致敬 如是至三 必也尋常一禮便罷 中間更無起義 西國見爲三拜 人皆怪之

神明; 天地之神靈 不測曰神 靈明如鏡曰明

胡牀; 胡床 從西域傳來的一種坐椅 禪師常坐用之

八苦; 衆生輪迴六道所受之八種苦果 一生苦 二老苦 三病苦 四死苦 五愛別離苦 六怨憎會苦 七求不得苦 八五陰盛苦 [法苑珠林六十六]

泊然; 恬淡無欲貌

庶幾; 一方可也 [禪林寶訓音義] 二從容審察也 [禪林寶訓音義] 此指一

 

천주(泉州) 교충광(敎忠光; 彌光) 선사가 이참정(李參政) 한로(漢老)와 더불어 소계(小谿) 운문암(雲門菴) 묘희회중(妙喜會中)에 있으면서 동참(同參)의 계분(契分; 交誼. 情分)이 있었다. ()가 인하여 광()이 교충(敎忠) 공덕원(功德院)에 주()하게 함에 이르렀다(). 그 소()에 삼배(三拜)에 사제자(師弟子)를 돈망(頓忘)했고 일구(一口)로 불중생(佛衆生)을 탄진(吞盡)했다라는 구()가 있으며 총림의 전송(傳誦; 전하며 외움)이 되었다. 기이(旣而; 不久) ()가 병()이 장차 위독(; 중해질 극)하자 게를 광에게 기탁했다. 낭세(曩歲; 往年)에 일찍이 액진(厄津)을 건넘()을 겪었고/ 법력(法力)을 깊이 가져 운문(雲門)을 짊어졌다()/ 여금에 조금() 신명(神明)의 환복(還復; )을 느끼나니/ 스님에게 보은하지 못한 것을 갚으려고(; 와 같음) 합니다. ()이 곧 그에 화했다(和之). 호상(胡牀)에 온좌(穩坐)하여 이미 나루를 통과했거늘(通津)/ 어느 곳에서 다시 불이문(不二門)을 찾겠는가()/ 팔고(八苦)가 일어날 때 전체가 나타나나니/ 누가 심은(深恩)에 보답할 줄 아는지() 알지 못하겠네. ()가 그 통보(通報; )를 얻자 읽어 마치고(閱罷) 서거(逝去)했다. ()가 생사의 대변(大變)에 처해서도 박연(泊然)히 불란(不亂)했으며 신명(神明)의 환복(還復)을 말했으니 평일의 소양(所養)을 가히 보겠다. 동파(東坡; 蘇軾)가 이르되 생사지제(生死之際)엔 그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했으니 이()가 거의() 서기(庶幾; 비로소 가히).

漢老; 이병(李邴; 1085-1146)이니 송대 양기파거사. 자는 한로(漢老)며 호는 운감이니 임성(산동 제녕) 사람. 숭녕(11 02-1106) 간 등제(登第; 과거에 급제)했고 소흥(1131-1162) 초 벼슬이 자정전학사(資政殿學士)였음. 천주(泉州)에서 귀로(歸老;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냄)할 때 대혜가 천남 장락암에 거주했으며 이병이 자주 가서 고격(叩擊)했음. 어느 날 조주의 정정백수자화의 송을 들자 깨침이 있었는데 헤어진 후에 서신으로 보고하였음. 화공에게 명하여 대혜상(大慧像)을 그리게 하고 종신토록 그것을 받들었음. 졸한 후의 시호는 문민 [송사375. 속지월록1. 거사전31. 속전등록32].

三拜; 3업의 경의(敬意)를 보이는지라 3배함. 서천엔 이 법이 없음. 석씨요람중. 세속 중에 양배(兩拜)란 것은 대개 음양을 본받음이다. 여금에 석씨가 3배하는 것은 대개 3업으로 귀경(歸敬)함을 표함이다. 사분율명의표석1. 그 서국(西國)에 의거()하자면 3배의 예절이 없다. 다만 10(; 손톱)를 땅에 펴고 고두(叩頭; 머리를 조아림)하며 3()하는데 중간에 다시 일어나는 뜻이 없다. 남해기귀내법전3. 무릇 예배란 것은 뜻이 위를 공경하고 스스로 낮춤의 의식(儀式)에 있다. 치경(致敬; 경의를 표함)하려고 할 때 및 청백(請白; 청하면서 고함)이 있으면 먼저 법의를 정리하여 어깨 위에 싣는다 (중략) 발뒤꿈치를 쌍으로 세우고 등과 머리를 고르고 곧게(平直) 한다. 열 손가락을 땅에 펴고 비로소 고두(叩頭; 머리를 조아림)한다. 그러나 무릎 아래 판이하게() 의물(衣物)이 없다. 다시 도리어 합장하고 다시 도리어 고지(叩地; 바닥에 조아림)하면서 은근히 치경(致敬)하는데 이와 같이 세 번에 이른다. 반드시 또 심상(尋常)1()하고 곧 마치며 중간에 다시 일어나는 뜻이 없다. 서국(西國)에서 3배함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괴이하게 여긴다.

神明; 천지의 신령(神靈)이니 측량하지 못함을 가로되 신()이며 영명(靈明)하기가 거울 같음을 가로되 명().

胡牀; 호상(胡床)과 같음. 서역으로부터 전래한 일종의 좌의(坐椅)니 선사가 늘 앉아서 사용함.

八苦; 중생이 6()에 윤회하면서 받는 바의 8종 고과(苦果)1은 생고며 2는 노고며 3은 병고며 4는 사고며 5는 애별리고(愛別離苦)6은 원증회고(怨憎會苦)7은 구부득고(求不得苦)8은 오음성고(五陰盛苦)[법원주림66].

泊然; 염담(恬淡; 고요하고 담박함)하며 욕심이 없는 모양.

庶幾; 1. 방가(方可; 비로소 가히)[선림보훈음의]. 2. 종용(從容)히 심찰(審察; 살핌)[선림보훈음의]. 여기에선 1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