放牛居士(無門開禪師法嗣)
放牛余居士 古杭人 宋淳祐間 參無門開道者 豁然大悟 嘗曰 佛法如海 皆從細流而入 如人破竹 纔透一節 其餘皆迎刃而解 不勞餘力 予自小便有此志 參訪名人與諸方禪者 打一世口鼓 自謂佛法止如此 便都放倒了 後參無門開公佛眼禪師 凡開口 便被他劈面門截住 連道不是不是 退而思之 許多年下工夫 豈無歡喜處也 曾零零碎碎悟來 終不服無門 道不是不是 及見臭菴 遂叩之 吾師得無門甚麽見解 敢對人天顚倒是非 臭菴曰 我在無門座下 無法可得 無道可傳 只得兩箇字 予問 兩字如何說 曰 不是 不是 予因此而知 無門老人爲人處 一點惡水不曾輕灑著人 予雖不敏 被臭菴連狀領過 抱屈不少 因述是非關曰 直指人心 見性成佛 回光返照 逈絕遮攔 纔擬思量 白雲萬里 逢人品藻 遇物雌黃 重古輕今 貴耳賤目 任伊卜度 沈吟未夢見是非關在 作麽生透 且看安吉州沈道婆問 有因果否 曰 有 曰 參學人實無悟處 師家故言不是 有因果否 曰 佛法不順人情 豈無因果 百丈錯答一轉語 五百生墮野狐 佛說一切法 爲度一切心 我無一切心 何用一切法 曰 是非關有幾句 曰 有四句 曰 四句作麽生擧 曰 第一句有是有非則不可 第二句無是無非又不可 第三句是是非非也不可 第四句非是是非亦不可 若得離此四句 始見本地風光 曰 我離得否 曰 你離不得 曰 人人有分 我何離不得 曰 嫁鷄逐鷄飛 嫁狗隨狗走 曰 如何是本地風光 曰 月子灣灣照幾州 幾人歡樂幾人愁 曰 不問這箇風光 曰 問那箇本地風光 曰 無男女相底 曰 旣無男女相底 問甚是非關 曰 別有向上事也無 曰 有 曰 如何是向上事 曰 馬蝗丁住鷺鶿脚 你上天時我上天
●無門開; 慧開(1183-1260) 宋代楊岐派僧 杭州(浙江)錢塘人 俗姓梁 字無門 世稱無門慧開 幼年入道 廣習經論 年長 於南峰石室獨居禪思 積年六載 忽有省悟 乃出禮謁諸山尊宿 得嗣於江蘇萬壽寺月林師觀(楊岐下六世)之法 嘉定十一年(1218) 開法於安吉報國寺 次遷隆興天寧寺 黃龍翠巖寺 蘇州開元寺 靈巖寺 鎭江焦山寺 金陵保寧寺等 紹定二年(1229) 爲皇帝祝壽而編撰無門關一卷 斯書精選諸禪錄之著名公案四十八則 另加評唱與頌而成 理宗淳祐六年(1246) 奉旨入杭州護國仁王寺 晩年居於西湖邊 理宗曾詔至選德殿說法 敕賜佛眼禪師之號 景定元年入寂 世壽七十八 [續傳燈錄三十五 增集續傳燈錄二 五燈嚴統二十二]
●口鼓; 以脣吻喩爲鼓
●截住; 使停止或阻止移動
●零零碎碎; 陸陸續續 零敲碎打
●人天; 一人趣與天趣 此是六道十界中之二界 皆爲迷妄之界 又指人與天神 二禪家常將法堂上聽法大衆稱作人天 此指二
●連狀領過; 狀 令狀 領 受也 接受 過 助詞
●抱屈; 心裏懷有委屈 不舒暢
●回光返照; 謂回收向外尋求的眼光 觀照自身自心
●白雲萬里; 意謂與禪法相隔極遠 此爲禪家習用批評語
●品藻; 評論高下優劣 ▲祖庭事苑二 品藻 西漢 注 品其差次 以藻飾(藻亦飾)文質
●雌黃; 礦物名 橙黃色 半透明 可用來制顔料 古人用雌黃來塗改文字 因此稱亂改文字 亂發議論爲妄下雌黃 稱不顧事實 隨口亂說爲信口雌黃 [百度漢語]
●卜度; 以俗情世念去猜度 議論或解釋
●本地風光; 喩指人的本心本性 亦卽衆生本自具備的佛性
●馬蝗; 水蛭 俗名螞蟥
방우거사(放牛居士)(無門開禪師의 法嗣)
방우여(放牛余) 거사는 고항(古杭) 사람이다. 송(宋) 순우(淳祐; 1241-1252) 간 무문개(無門開; 慧開) 도자(道者; 禪人의 稱呼)를 참(參)해 활연(豁然)히 대오(大悟)했다. 일찍이 가로되 불법은 바다와 같아서 모두 세류(從細)로 좇아 들어간다. 예컨대(如) 사람이 대를 깨뜨리매 겨우 한 마디(節)를 투과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칼날을 맞이해 분해되어 여력(餘力)를 노고롭게 하지 않는다. 내(予)가 젊었을(小) 적부터 바로 이 의지(意志; 志)가 있었고 명인(名人)과 제방의 선자(禪者)를 참방(參訪)하면서 일세(一世)의 구고(口鼓)를 두드리며(打) 스스로 이르되 불법이 다만(止) 이와 같나니 바로(便) 모두(都) 방도(放倒; 臥倒)해 마쳤다(了). 후에 무문개공(無門開公) 불안선사(佛眼禪師; 慧開의 賜號)를 참(參)했는데 무릇(凡) 개구(開口)하면 바로 그가 면문에다(劈面門) 절주(截住)됨을 입었으니 연거푸 말하되(連道) 옳지 않다(不是), 옳지 않다. 물러나서 이(之)를 사유(思惟; 思)하매 허다한 해에 공부를 썼는데(下工夫; 下는 用) 어찌 환희처(歡喜處)가 없겠는가. 일찍이 영령쇄쇄(零零碎碎)하며 깨쳐 온지라 마침내 무문(無門)이 말한 옳지 않다, 옳지 않다에 승복(承服; 服)하지 않았다. 및 취암(臭菴)을 참견(參見; 見)했고 드디어 고문(叩問; 叩之)하되 오사(吾師; 臭菴)는 무문의 무슨(甚麽) 견해를 얻었기에 감히 인천(人天)을 상대로 시비(是非)를 전도(顚倒)합니까. 취암이 가로되 내가 무문의 좌하(座下)에 있으면서 법을 가히 얻음이 없었고 도(道)를 가히 전함이 없었고 다만 양개자(兩箇字)를 얻었습니다. 내(予)가 묻되 양자(兩字)를 어떻게 설하시겠습니까. 가로되 불시(不是), 불시(不是)입니다. 내가 이로 인해 알았나니 무문노인(無門老人)의 위인처(爲人處)는 일점(一點)의 악수(惡水; 더러운 물)를 일찍이 사람에게 가볍게 뿌리지 않았다(輕灑著人). 내가 비록 불민(不敏)하지만 취암의 연장영과(連狀領過)를 입고 포굴(抱屈)이 적지 않았다. 인하여 시비관(是非關)을 서술(敍述; 述)해 가로되 인심(人心)을 직지(直指)하여 견성하고 성불하나니 회광반조(回光返照)하매 차란(遮攔)이 형절(逈絕)했고 겨우 사량(思量)하려고 하면 백운만리(白雲萬里)다. 사람을 만나면 품조(品藻)하고 사물을 만나면 자황(雌黃)하나니 옛을 중히 여기고 지금을 가볍게 여기고(重古輕今)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김은(貴耳賤目) 그(伊)가 복탁(卜度)하는 대로 일임하거니와 침음(沈吟)하면서 꿈에라도 시비관(是非關)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어떻게 투과하느냐, 차간(且看)하라, 안길주(安吉州) 심도파(沈道婆; 道婆는 도가 있는 婦女)가 묻되 인과(因果)가 있는가. 가로되 있다. 가로되 참학인(參學人)이 실로 오처(悟處)가 없는지라 사가(師家)가 고로 말하되 불시(不是)라 한다. 인과가 있는가, 가로되 불법은 인정(人情)에 순(順)하지 않거늘 어찌 인과가 없겠는가. 백장(百丈; 懷海)이 일전어(一轉語)를 착답(錯答)하여 오백생(五百生)에 야호(野狐)에 떨어졌다. 불타가 일체법(一切法)을 설함은 일체심(一切心)을 제도(濟度)하기 위함이거니와 나는 일체심이 없거늘 어찌 일체법을 쓰리오. 가로되 시비관(是非關)은 몇 구(句)가 있는가 가로되 4구가 있다. 가로되 4구를 어떻게(作麽生; 저본에 作樣生으로 지었음) 거(擧)하겠는가. 가로되 제일구(第一句)는 유시유비(有是有非)니 곧 불가(不可)하다. 제이구(第二句)는 무시무비(無是無非)니 또 불가하다. 제삼구(第三句)는 시시비비(是是非非; 是는 是, 非는 非)니 또한 불가하다. 제사구(第四句)는 비시시비(非是是非; 非가 是, 是가 非)니 또한 불가하다. 만약 이 4구를 여읨을 얻는다면 비로소(始)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본다. 가로되 나도 여읨을 얻는가. 가로되 너(你)는 여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사람마다 분한이 있거늘 나는 왜 여읨을 얻지 못하는가. 가로되 닭을 시집보내니(嫁) 닭을 쫓아(逐) 날고(飛) 개를 시집보내니 개 따라 달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본지풍광인가. 가로되 월자(月子; 子는 조사)가 만만(灣灣; 구부러진 모양)하여 몇 주(州)를 비추매 몇 사람이 환락(歡樂)하고 몇 사람이 근심하는가. 가로되 저개(這箇)의 풍광(風光)을 물은 게 아니다. 가로되 나개(那箇)의 본지풍광을 물었는가. 가로되 남녀상(男女相)이 없는 것(底)이다. 가로되 이미 남녀상이 없는 것이라면 무슨(甚) 시비관(是非關)을 묻느냐. 가로되 달리 향상사(向上事)가 있는가 또는 없는가. 가로되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향상사인가. 가로되 마황(馬蝗; 거머리)이 해오라기(鷺鶿)의 다리에 단단히 달라붙어(丁住) 네가 하늘에 오를 때 나도 하늘에 오른다.
●無門開; 혜개(慧開; 1183-1260)니 송대(宋代) 양기파승. 항주(杭州; 절강) 전당(錢塘)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양(梁)이며 자(字)는 무문(無門)이니 세칭(世稱)이 무문혜개(無門慧開). 어린 나이에 입도(入道)해 경론을 널리 익혔으며 나이가 장성(長成)하자 남봉(南峰)의 석실에서 독거(獨居)하며 선사(禪思)했는데 적년(積年)이 여섯 해에 홀연히 성오(省悟)함이 있었음. 이에 나와서 제산(諸山)의 존숙(尊宿)을 예알(禮謁)하고 강소(江蘇) 만수사(萬壽寺)의 월림사관(月林師觀; 양기하 6세)의 법을 득사(得嗣; 이음을 얻음)했음. 가정(嘉定) 11년(1 218) 안길(安吉) 보국사(報國寺)에서 개법(開法)하고 다음에 융흥(隆興) 천녕사(天寧寺)ㆍ황룡(黃龍) 취암사(翠巖寺)ㆍ소주(蘇州) 개원사(開元寺)ㆍ영암사(靈巖寺)ㆍ진강(鎭江) 초산사(焦山寺)ㆍ금릉(金陵) 보녕사(保寧寺) 등으로 옮겼음. 소정(紹定) 2년(1229) 황제를 축수(祝壽)하기 위해 무문관(無門關) 1권을 편찬(編撰)했음. 이 책은 여러 선록(禪錄)의 저명한 공안(公案) 48칙을 정선(精選)해 따로 평창(評唱)과 송(頌)을 더하여 이루었으며 이종(理宗) 순우(淳祐) 6년(1246) 성지(聖旨)를 받들어 항주(杭州) 호국인왕사(護國仁王寺)에 들여놓았음. 만년(晩年)에 서호변(西湖邊)에 거주했으며 이종(理宗)이 일찍이 불러 선덕전(選德殿)에 이르러 설법하게 했으며 불안선사(佛眼禪師)란 호를 칙사(敕賜)했음. 경정(景定) 원년에 입적(入寂)했으니 세수(世壽)는 78 [속전등록35. 증집속전등록2. 오등엄통22].
●口鼓; 입술을 북에 비유.
●截住; 이동을 정지하게 하거나 혹 저지(阻止)함.
●零零碎碎; 육륙속속(陸陸續續; 계속하여 끊이지 않음)하며 영고쇄타(零敲碎打; 찔끔찔끔 조금씩 일을 진행하다)함.
●人天; 1. 인취(人趣)와 천취(天趣)니 이것은 이 6도(道)와 10계(界) 중의 2계며 다 미망(迷妄)의 경계가 됨. 또 사람과 천신(天神)을 가리킴. 2. 선가에서 늘 법당상(法堂上)의 청법대중(聽法大衆)을 가지고 인천(人天)이라 호칭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連狀領過; 장(狀)은 영장(令狀). 령(領)은 수(受)임. 접수임. 과(過)는 조사.
●抱屈; 마음 속에 위굴(委屈; 억울함)을 품고 있으나 서창(舒暢; 후련하게 펼침)하지 못함.
●回光返照; 이르자면 밖을 향해 심구(尋求)하는 안광을 회수하여 자신과 자심을 관조함.
●白雲萬里;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과 상격(相隔)하기가 극히 멂이니 이것은 선가에서 습용(習用)하는 비평어가 됨.
●品藻; 고하와 우열을 평론함. ▲조정사원2. 품조(品藻) 서한 주(注) 그 차차(差次)를 품별(品別)해 문질(文質)을 조식(藻飾; 藻도 또한 飾)함이다.
●雌黃; 광물의 이름. 등황색이며 반투명이니 가히 사용하여 안료를 만듦. 고인이 자황을 사용하여 문자를 도개(塗改)했으니 이로 인해 문자를 난개(亂改)하거나 의논을 난발(亂發)함을 일컬어 망하자황(妄下雌黃)이라 하고 사실을 돌아보지 않고 말이 나오는 대로 난설(亂說)함을 일컬어 신구자황(信口雌黃)이라 함 [백도한어].
●卜度; 속정(俗情)의 세념(世念)으로 의심하고 헤아리며 의논하거나 혹 해석함.
●本地風光; 사람의 본심ㆍ본성 또 곧 중생이 스스로 구비한 불성을 비유로 가리킴.
●馬蝗; 수질(水蛭; 거머리)이니 세속에서 이름해 마황(螞蟥)이라 함.
평심사 : 네이버 블로그
평심사주(平心寺主) 태화당( 泰華堂) 정원(淨圓)스님의 저서 공개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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