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37쪽

태화당 2019. 11. 4. 10:24

司徒官名 相傳 少昊始置 唐虞因之 周時爲六卿之一 曰地官大司徒 掌管國家的土地和人民的敎化 漢哀帝元壽二年 改丞相爲大司徒 與大司馬 大司空並列三公 東漢時改稱司徒 歷代因之 明廢 後別稱戶部尙書爲大司徒 [百度漢語] 五燈會元十一穎橋安 與鍾司徒向火次 鍾忽問 三界焚燒時如何出得 師以香匙撥開火 鍾擬議 師曰 司徒 司徒 鍾忽有省 祖庭事苑六 漢有複姓五氏 司馬 司功 司徒 司宼 司空 並以官爲氏

사도(司徒) 벼슬 이름. 서로 전하기를 소호(少昊)가 처음 설치했고 당우(唐虞)가 이를 따랐음. () 6()의 하나가 되었으니 가로되 지관대사도(地官大司徒). 국가의 토지와 인민의 교화를 장관했음. 한 애제 원수 2년 승상을 고쳐 대사도라 했는데 대사마ㆍ대사공과 더불어 3()에 병렬(並列)했음. 동한 때 사도(司徒)로 개칭했고 역대에 이를 따랐음. ()에서 폐했고 후에 호부상서를 별칭하여 대사도라 했음 [백도한어]. 오등회원11 영교안. 종사도(鍾司徒)와 불을 향하던 차에 종이 홀연히 묻되 3계가 분소(焚燒)할 때 어떻게 탈출합니까. 스님이 향 숟가락으로 불을 헤쳐 열었다. 종이 의의(擬議)하자 스님이 가로되 사도(司徒) 사도. 종이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조정사원6. ()에 복성 5씨가 있었다. 사마ㆍ사공ㆍ사도(司徒)ㆍ사구ㆍ사공이니 모두 관직으로 씨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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賜到到 指到來某處 大慧語錄三十 如徑山兩藏經 皆是朝廷全盛時賜到

사도(賜到) ()는 모처에 도래함을 가리킴. 대혜어록30. 예컨대() 경산의 두 장경은 모두 이 조정이 전성할 때 사도(賜到; 하사해 이르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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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度未經官許 私自剃髮爲僧者 緇門崇行錄冐死納僧 唐法冲 隴西成紀人 貞觀(627-649)初 勑私度者處以極刑 時嶧陽山多逃僧避難 資給告匱 冲詣州宰告曰 如有死事 冲身當之 但施道糧 終獲福祐 宰嘉其志 冐網周濟焉 五燈會元二嵩嶽慧安 隋開皇十七年(597) 括天下私度僧尼 勘師 師曰 本無名 遂遁于山谷

사도(私度) 관허를 거치지 않고 사사로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것. 치문숭행록 모사납승(冐死納僧; 죽음을 무릅쓰고 승려를 용납하다). 당 법충은 농서 성기 사람이다. 정관(627-649) 초 칙명으로 사도자(私度者)를 극형으로 처벌했다. 때에 역양산에 많은 도승(逃僧)이 피난했는데 자급(資給)이 다함()을 고했다. 법충이 주재(州宰)에게 나아가 고해 가로되 죽을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법충이 이를 감당하겠으니 다만 도량(道糧)을 베푸십시오. 마침내 복우(福祐; )를 얻을 것입니다. 주재가 그 의지를 가상히 여겨 법망(法網)을 무릅쓰고 구제했다. 오등회원2 숭악혜안. 수 개황 17(597) 천하의 사도승니(私度僧尼)를 총괄하면서 스님을 감험(勘驗)하자 스님이 가로되 본래 이름이 없었다. 드디어 산곡으로 은둔(隱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