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60쪽

태화당 2019. 11. 4. 10:40

司馬遷(145-90) 字子長 夏陽(今陝西韓城南)人 一說龍門(今山西河津)人 西漢偉大的史學家 文學家 思想家 因替李陵敗降之事辯解而受宮刑 後任中書令 發奮繼續完成所著史籍 被後世尊稱爲史遷 太史公 歷史之父 司馬遷早年受學於孔安國 董仲舒 漫遊各地 了解風俗 采集傳聞 元封三年(108) 任太史令 繼承父業 著述歷史 創作了中國第一部紀傳體通史史記 原名太史公書 被公認爲是中國史書的典範 是二十五史之首 [百度百科] 禪林疏語考證二 司馬遷傳曰 人固有一死 死有重于泰山 或有輕于鴻毛

사마천(司馬遷) (145-90) 자는 자장(子長)이며 하양(지금의 섬서 한성 남쪽) 사람이며 일설엔 용문(지금의 산서 하진) 사람이라 함. 서한의 위대한 사학가ㆍ문학가ㆍ사상가임. 이릉(李陵)의 패항(敗降)의 사건을 대체하여 변해(辯解)함으로 인해 궁형(宮刑)을 받았음. 후에 중서령(中書令)에 임명되었고 발분하여 저작하던 바의 사적(史籍)을 계속해 완성했음. 후세에 사천(史遷)ㆍ태사공(太史公)ㆍ역사지부(歷史之父)로 존칭됨을 입었음. 사마천은 젊은 나이에 공안국(孔安國)과 동중서(董仲舒)에게서 수학(受學)했고 각지를 만유(漫遊; 이곳저곳으로 두루 돌아다니며 놂)하면서 풍속을 요해(了解)했고 전문(傳聞)을 채집했음. 원봉 3(108) 태사령(太史令)에 임명되었고 부업(父業)을 계승해 역사를 저술했음. 중국 제1() 기전체(紀傳體) 통사(通史) 사기(史記)를 창작했으니 원명은 태사공서(太史公書)였으며 중국사서의 전범(典範)으로 공인됨을 입었음. 이것은 25()의 첫째임 [백도백과]. 선림소어고증2. 사마천전(司馬遷傳)에 가로되 사람은 진실로 한 번 죽음이 있다. 죽음이란 태산보다 무거움이 있고 혹 홍모(鴻毛)보다 가벼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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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摩他猶奢摩他 錦江禪燈十九開元寺張三丰 深入浮屠斷世情 舍摩他行恰相應

사마타(舍摩他) 사마타(奢摩他)와 같음. 금강선등19. 개원사 장삼봉은 부도(浮屠)에 깊이 들어 세정(世情)을 끊고 사마타행(舍摩他行)과 흡족하게 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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奢摩他<> śamatha 又作舍摩他 此云止息 亦曰寂靜 謂正定離沈掉也 [慧琳音義二十一 翻梵語三] 禪林寶訓音義 梵語奢摩他 此云止 止久曰定 從容錄第四十八則 永嘉集奢摩他頌 第四云 今言知者 不須知知 但知而已

사마타(奢摩他) <> śamatha. 또 사마타(舍摩他)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지식(止息)이며 또 가로되 적정(寂靜)이니 이르자면 정정(正定)으로 침도(沈掉)를 여읨임 [혜림음의21. 번범어3]. 선림보훈음의. 범어 사마타(奢摩他)는 여기에선 이르되 지()며 지()가 오램을 가로되 정()이다. 종용록 제48. 영가집 사마타송(奢摩他頌) 4에 이르되 지금 말한 지()란 것은 지()를 지()함을 씀이 아니라 다만 지()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