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나호야록하

나호야록하(羅湖野錄下) 사심선사(死心禪師; 悟新)

태화당 2025. 11. 30. 09:42

死心禪師 紹聖間 住江西翠巖 法堂後有齊安王祠 威靈甚著 死心徙祠於院西偏 卽址以建丈室 設榻燕寢 蟒蟠身側 叱去復來 夜以爲常 一夜將三鼓 夢冠裳者涌謁 極陳遷居非所樂 欲假莊丁六十輩南遊二廣 死心在夢諾之 居無何 莊丁家疫癘大作 物故如數而後已 遂設問於學徒曰 且道果有鬼神乎 若道有 又不打殺死心 若道無 莊丁爲甚麽死 時下語鮮有契者 適楚源首座自寶峰眞淨會中來 死心如前問之 源曰 甜瓜徹蔕甜 苦瓠連根苦 死心笑而已 源應機鈍甚 寂音目爲源五斗 蓋開口取氣炊熟五斗粟 方能醻一轉語 妙喜老師𤼭甞爲源見知 因謁李商老 逾年而歸 源讓之曰 啞荒了也 豈不念無常迅速乎 老師晩年常以此語學徒 且謂當時不覺汗下 嗚呼 寶峰號江西法窟 源於其間持維挈綱 激勵英俊 亦不失陳蒲鞵之爲人也

法堂; 乃七堂伽藍之一 卽禪林演布大法之堂 位於佛殿之後方 方丈之前方 相當於講堂 而講通於講敎 爲別於他宗 且示其敎外別傳之宗旨 故於禪宗特稱爲法堂 按歷代三寶紀十二 傳燈錄四等 支那自古除佛殿外 亦建有法堂 及至百丈懷海禪師定禪苑之規制 遂模倣朝制之太極殿 建立法堂 堂內中央設一高臺 四方均得仰望 然後世則於座後設大板屛 已失古意 禪苑淸規十云 不立佛殿唯搆法堂 可知禪苑古來不存佛殿 只建法堂 後始於佛殿之後方建法堂 或於小寺院中 衍爲佛殿法堂兩者兼用 [百丈淸規上尊祖章 禪苑淸規五 同七 同九 象器箋殿堂類]

冠裳; 指穿著官服

物故; 與作故 死去同義

一轉語; 一句或一則機語 多指應對語 轉 量詞 相當于回 次

英俊; 智過千人曰俊 [禪林寶訓音義]

陳蒲鞵; 陳蒲鞋 指唐代黃檗希運法嗣陳尊宿道明 傳燈錄十二曰 陳尊宿初居睦州龍興寺 晦迹藏用 常製草屨密置於道上 歲久人知 乃有陳蒲鞋之號焉

 

사심선사(死心禪師; 悟新)가 소성(紹聖; 1094-1098) 간 강서 취암(翠巖)에 주()했다. 법당(法堂) 뒤에 제안왕사(齊安王祠)가 있었는데 위령(威靈)이 심히 현저(顯著)했다. 사심이 사당(祠堂; )을 원()의 서편(西偏; 서쪽 가)으로 옮기고() 곧 터()에 장실(丈室; 方丈室)을 건립하고 설탑(設榻)하고 연침(燕寢; 편안히 자다)했다. 이무기()가 몸 곁(身側)에 서렸고() 꾸짖어 보내어도(叱去) 다시 왔다. 밤에 상식(常式; )이 되었다. 어느 날 밤(一夜) 거의() 삼고(三鼓; 三更)에 관상자(冠裳)가 솟아나() 알현함을 꿈꾸었는데 천거(遷居; 옮겨 거주)함이 즐거운 바가 아님을 극진(極陳; 극히 진술)했다. 장정(莊丁; 莊田壯丁) 60()를 빌려() 이광(二廣)으로 남유(南遊)하고 싶다 했다. 사심이 꿈에(在夢) 그것()을 허락(許諾; )했다. 거무하(居無何; 지난 지 오래지 않음)에 장정가(莊丁家)에 역려(疫癘; 전염성의 熱病)가 대작(大作; 크게 일어남)하더니 물고(物故; 死去)가 수와 같은(如數; 60) 이후(而後)에 그쳤다(). 드디어 학도(學徒)에게 설문(設問)해 가로되 그래 말하라(且道), 과연 귀신이 있는가. 만약 있다고 말한다면 또 사심(死心)을 타살(打殺)하지 않았고 만약 없다고 말한다면 장정(莊丁)이 무엇 때문에(爲甚麽) 죽었는가. 때에 하어(下語)했지만 계합하는 자가 드물게() 있었다. 마침() 초원(楚源) 수좌가 보봉(寶峰) 진정(眞淨)의 회중(會中)으로부터 왔다. 사심이 전과 같이 그()에게 묻자 원왈(源曰) 단 오이는 꼭지까지(徹蔕) 달고 쓴 박(苦瓠)은 뿌리까지(連根) 씁니다. 사심이 웃을 따름이었다. ()은 응기(應機)의 둔()함이 심했는데 적음(寂音; 적음존자 德洪)이 명목해 원오두(源五斗)라 했다. 대개 입 열어 취기(取氣)하여 5()의 속(; . 곡식)을 취숙(炊熟; 불을 지펴 익힘)해야 바야흐로 능히 일전어(一轉語)를 답했다(; ). 묘희(妙喜) 노사(老師)가 벌써(𤼭; 와 같음) 일찍이 원()의 견지(見知; 知識. 見地)를 위해 인하여 이상로(李商老)를 예알하여 해를 넘겨(逾年) 돌아오게 하자 원이 그것()을 사양(辭讓; )하며 가로되 액(; 歎辭. 驚疑를 표시) 황료야(荒了也; 荒廢해 버렸다)니 어찌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함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노사(老師)가 만년에 늘 이것을 학도(學徒)에게 말하고 또() 이르되 당시 불각(不覺)에 땀을 흘렸다(汗下). 오호(嗚呼), 보봉(寶峰)을 호()하되 강서의 법굴(法窟)이라 했는데 원()이 그 사이에서 지유설강(持維挈綱; 綱維를 가짐)하여 영준(英俊)을 격려(激勵)했으니 또한 진포혜(陳蒲鞵)의 위인(爲人)을 잃지 않았음이다.

法堂; 곧 칠당가람(七堂伽藍)의 하나. 곧 선림에서 대법을 연포(演布)하는 당(). 불전(佛殿)의 후방과 방장의 전방에 위치함. 강당에 상당하며 강()은 강교(講敎)와 통함. 타종(他宗)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또 그 교외별전의 종지를 보이는지라 고로 선종에서 특별히 법당으로 호칭함. 역대삼보기12ㆍ전등록4 등을 안험컨대 지나(支那)에선 자고로 불전을 제한 밖에 또한 법당을 건립해 있었으며 및 백장회해선사가 선원의 규칙을 제정함에 이르러 드디어 조제(朝制)의 태극전(太極殿)을 모방해 법당을 건립했음. 당내 중앙에 하나의 고대(高臺)를 설치하여 사방에서 균일하게 앙망함을 얻었음. 그러나 후세에 곧 좌후(座後)에 대판병(大板屛)을 설치했는데 이미 고의(古意)를 잃었음. 선원청규10에 이르되 불전을 세우지 않고 오직 법당만 지었다 했으니 가히 선원은 고래로 불전을 두지 않고 다만 법당만 건립한 줄을 알 것임. 후에 비로소 불전의 후방에 법당을 건립했음. 혹 작은 사원 중엔 널리 불전과 법당 양자를 겸용했음 [백장청규상존조장. 선원청규5, 7, 9. 상기전전당류].

冠裳; 관복(官服)을 천착(穿著; 입다)함을 가리킴.

物故; 작고(作故)ㆍ사거(死去)와 같은 뜻.

一轉語; 1구 혹은 1칙의 기어(機語). 다분히 응대어를 가리킴. ()은 양사니 회()ㆍ차()에 상당함.

英俊; 지혜가 천 사람을 초과함을 가로되 준()이다 [선림보훈음의].

陳蒲鞵; 진포혜(陳蒲鞋)와 같음. 당대 황벽희운의 법사 진존숙 도명을 가리킴. 전등록12에 가로되 진존숙이 처음에 목주 용흥사에 거주하며 회적장용(晦迹藏用)했다. 늘 짚신을 만들어 몰래 길 위에 놓았다. 세월이 오래되자 사람들이 알았고 이에 진포혜(陳蒲鞋)의 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