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578-579쪽

태화당 2019. 11. 9. 10:56

釋迦牟尼<> śākya-muni 印度迦毘羅城主淨飯王之子 母曰摩耶 名呼悉多太子 誕生於城東嵐毘尼園 生後七日 母歿 姨母波闍波提養育之 跋陀羅尼敎養之 幼對於人生諸現象 旣有思惟之處 或於閻浮樹下思耕農之苦 或見諸獸相食而厭人生之鬥爭 又於四門出遊之途上 觀生老病死之相 有遁世之志 遂乘月夜令侍者車匿爲伴 跨白馬犍陟出家 尋跋伽婆而聞苦行出離之道 更訪阿藍迦藍於摩揭陀國王舍城北彌樓山 聞僧佉派之法 轉而歷問鬱陀羅仙 皆不得所求之大法 去而入優婁頻羅村苦行林 嚴苦六年 形容削瘦 極酷烈之苦 繼以爲苦行非解脫涅槃之道 斷然改前日之行 浴於尼連禪河 以去身垢 受村女所捧之乳糜 坐正覺山菩提樹下思惟曰 不得等正覺 不起此坐 思惟七七日 觀四諦十二因緣之法 於是成覺者世尊 爲人天之師 時年三十五 自是以後四十餘年遊歷四方 化導群類 西歷紀元前四百八十七年 於拘尸城外娑羅雙樹 包於白花之香 而遂大般涅槃 禪燈世譜一 始祖釋迦牟尼佛 卽賢劫第四尊 示生中天竺國 刹利種 釋迦其姓也 父淨飯聖王 母摩耶聖后 周昭王二十六年甲寅(1027) 四月八日降誕 捨轉輪聖王位 出家成無上道 轉大法輪 其後七十九歲 垂般涅槃 乃以大法印 付囑摩訶迦葉 周穆王五十三年壬申(949) 二月十五日 中夜入滅 後一千一十七年 敎被華夏 卽漢明帝永平十年丁卯歲(67)宗統編年一 先賢紀佛生年 互有不同 依法顯傳 推佛生時 則當殷世武乙二十六年甲午 依沙門法上答問 則當周昭王二十四年甲寅(1027) 依像正紀 當周平王四十八年戊午(723) 依後周沙門釋道安 用羅什年紀 及石柱銘 則當周桓王五年乙丑(716) 依梁趙伯休 於廬山遇弘度律師 得佛滅後衆聖點記推 則當周貞定王二年甲戌(467) 依隋翻經學士費長房歷代三寶記 准敎律及經史推 則當周莊王九年癸巳(688) 景德傳燈錄 佛祖通載 佛祖綱目 俱作二十六年甲寅(1027) 傳法正宗記 作周昭王九年甲寅 傳法正宗記三 評曰 寶林傳燈二書 皆書天竺諸祖入滅之時 以合華夏周秦之歲甲 然周自宣王(在位前827-782)已前 未始有年 又支竺相遠數萬餘里 其人化滅或有更千餘歲者 其事渺茫隔越 吾恐以重譯比校 未易得其實 輒略其年數甲子 且從而存其帝代耳 唯釋迦文佛菩提達磨 至乎中國六世之祖 其入滅年甲 稍可以推校 乃備書也

석가모니(釋迦牟尼) <> śākya-muni. 인도 가비라성주(迦毘羅城主)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이며 모친을 가로되 마야(摩耶). 명호(名呼)는 실다태자(悉多太子)며 성동(城東) 람비니원(嵐毘尼園)에서 탄생했고 생후 7일 만에 모친이 죽었음. 이모 파사파제(波闍波提)가 그를 양육했고 발타라니(跋陀羅尼)가 그를 교양(敎養)했음. 어릴 적에 인생의 여러 현상에 대해 이미 사유하는 곳이 있었음. 혹은 염부수(閻浮樹) 아래서 경농(耕農)의 괴로움을 사유하고 혹은 여러 짐승이 상식(相食)함을 보고 인생의 투쟁을 싫어했음. 4()의 출유(出遊)하는 길 위에서 생로병사의 형상(形相)을 보고 둔세(遁世)의 뜻이 있었음. 드디어 달밤을 타고 시자 차닉(車匿)을 시켜 반려가 되게 하여 백마 건척(犍陟)을 타고 출가했음. 발가바(跋伽婆)를 찾아 고행하며 출리(出離)하는 도를 들었고 다시 아람가람(阿藍迦藍)을 마갈타국 왕사성 북쪽 미루산(彌樓山)에서 참방해 승가파(僧佉派)의 법을 들었고 전()하여 울타라선(鬱陀羅仙)을 역문(歷問)했으나 모두 구하는 바의 대법을 얻지 못했음. 떠나서 우루빈라촌(優婁頻羅村) 고행림(苦行林)에 들어가 6년 동안 엄고(嚴苦)했으니 형용(形容)이 삭수(削瘦; 비쩍 마르다)하는 극히 혹렬한 고행이었음. 이어서 고행은 해탈열반의 도가 아니라 하고는 단연(斷然)히 전일의 행위를 고쳐 니련선하(尼連禪河)에서 목욕하며 몸을 때를 제거하고 촌녀(村女)가 바친 바의 유미(乳糜)를 받고 정각산 보리수 아래에 앉아 사유해 가로되 등정각(等正覺)을 얻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했음. 칠칠일(七七日) 동안 사유하며 4() 12인연의 법을 관했으며 이에 각자(覺者)인 세존을 성취했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었으니 때의 나이는 35이었음. 이로부터 이후에 40여 년 동안 사방을 유력(遊歷)하며 군류(群類)를 화도(化導)했으며 서력(西歷) 기원전(紀元前) 487년에 구시성(拘尸城) 밖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백화(白花)의 향을 안고 드디어 대반열반(大般涅槃)했음. 선등세보1. 시조(始祖)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곧 현겁(賢劫)의 제4()이다. 중천축국(中天竺國)에서 탄생을 보였으며 찰리종(刹利種)이다. 석가는 그 성()이다. 아버지는 정반성왕(淨飯聖王)이며 어머니는 마야성후(摩耶聖后). 주소왕(周昭王) 26년 갑인(1027) 48일에 강탄(降誕)했다. 전륜성왕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무상도(無上道)를 이뤘으며 대법륜을 굴렸다. 그 후 79세에 반열반(般涅槃)을 드리우며 이에 대법인(大法印)을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부촉(付屬)했다. () 목왕(穆王) 53년 임신(949) 215일 중야(中夜)에 입멸(入滅)했으며 1017년 후에 불교(佛敎)가 화하(華夏)에 미쳤으니 곧 한명제(漢明帝) 영평 10년 정묘세(67)이다. 종통편년1. 선현(先賢)들이 불타의 출생한 해를 기록함이 호상 같지 않음이 있다. 법현전(法顯傳)에 의거하여 부처의 생시(生時)를 추리하자면 곧 은세(殷世) 무을(武乙) 26년 갑오에 해당하며 사문 법상(法上)의 답문(答問)에 의거하면 곧 주소왕(周昭王) 24년 갑인(1027)에 해당하며 상정기(像正紀)에 의거하면 주평왕(周平王) 48년 무오(723)에 해당하며 후주(後周) 사문 석도안(釋道安)이 라집(羅什)의 연기(年紀)와 및 석주명(石柱銘)을 인용함에 의거하면 곧 주환왕(周桓王) 5년 을축(716)에 해당하며 양() 조백휴(趙伯休)가 여산(廬山)에서 홍도율사(弘度律師)를 만나 부처가 멸도한 후의 중성(衆聖)의 점기(點記)를 얻었음에 의거하여 추리하자면 곧 주정정왕(周貞定王) 2년 갑술(467)에 해당하며 수() 번경학사(翻經學士) 비장방(費長房)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記)에 의해 교율(敎律) 및 경사(經史)에 준거(準據)하여 추리하자면 곧 주장왕(周莊王) 9년 계사(688)에 해당하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ㆍ불조통재(佛祖通載)ㆍ불조강목(佛祖綱目)에 의거하면 모두 26년 갑인(1027)으로 지어졌으며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엔 주소왕(周昭王) 9년 갑인으로 지어졌다. 전법정종기3. ()해 가로되 보림전(寶林傳)ㆍ전등록 2()에 다 천축의 모든 조사의 입멸한 시기를 썼는데 화하(華夏)의 주()ㆍ진()의 세갑(歲甲)과 합치한다. 그러나 주나라의 선왕(宣王; 재위 827-782) 이전엔 연() 있음을 시작하지 않았다. 또 지나와 천축은 서로의 멀기가 수만여 리이며 그 사람의 화멸(化滅)이 혹은 천여 세를 고치는 자도 있다(千歲寶掌和尙을 가리킴이니 禪苑蒙求卷中을 보라). 그 일이 묘망(渺茫; 아득 망망)하여 격월(隔越)했다. 내가(契嵩) 염려하며 중역(重譯)하면서 비교했는데 그 진실을 쉽게 얻지 못해 번번이 그 연수(年數)의 갑자를 생략하고 다만 좇아서 그 제대(帝代)만 존치하였을 뿐이다. 오직 석가문불ㆍ보리달마 내지 중국의 6()의 조사만 그 입멸한 해의 갑자가 조금 가이(可以) 추정해 비교할 만했으므로 이에 책에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