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16쪽

태화당 2019. 11. 4. 09:53

死款意爲死罪的白狀 五家正宗贊一六祖大鑑 葉落歸根來時無口 死款難翻

사관(死款) 뜻이 죽을 죄의 백상(白狀; 자백 또는 자백서)이 됨. 오가정종찬1 6조 대감.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면 올 때 입이 없다 하니 사관(死款)은 번복하기 어렵다.

) --> 

事貫帶見浮山九帶 萬法歸心錄下 問 如何是事貫帶 答曰 隨流得妙 應物全眞

사관대(事貫帶) 부산구대를 보라. 만법귀심록하. 묻되 무엇이 이 사관대(事貫帶)인가. 답해 가로되 흐름을 따라 묘를 얻고 사람에 응해 전부 진()이다.


史館修撰唐代起的官職名 又稱國史館修撰 負責掌修國史 貞觀三年(6 29) 唐太宗下令將史館從祕書省分離出來 使其取代著作局的修史之職 置於禁中使之成爲獨立的修史機構 唐代著名文學家杜牧和宋代著名文學家歐陽修等 都曾經擔任過史館修撰一職 [百度百科] 祖庭事苑三 唐李翱 字習之 (中略)元和(806-820)初 轉國子博士 史館修撰 尋權知職方員外郞

사관수찬(史館修撰) 당대에 일어난 관직의 이름. 또 명칭이 국사관수찬(國史館修撰)이니 국사를 장수(掌修; 纂修를 관장하다)함을 부책(負責)했음. 정관 3(629) 당태종이 하령하여 사관(史館)을 취해 비서성으로부터 분리해 내었음. 그것으로 하여금 저작국의 수사(修史)의 직을 대체해 취하게 했음. 금중(禁中)에 설치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독립적인 수사기구(修史機構)가 되게 했음. 당대의 저명한 문학가 두목(杜牧)과 송대의 저명한 문학가 구양수 등이 모두 일찍이 사관수찬 1()을 담임함을 겪었음 [백도백과]. 조정사원3. 당 이고(李翱) 자가 습지다 (중략) 원화(806-820) 초 국자박사(國子博士), 사관수찬(史館修撰)으로 전근(轉勤)했고 잠시만에 직방원외랑을 권지(權知; 主宰, 主持의 뜻)했다.


事官千日失在一朝從事官府千日之久 過失僅在一朝之間 五燈會元八王延彬居士 公曰 旣是捧爐神 爲甚麽翻却茶 朗曰 事官千日 失在一朝 公拂袖便出

사관천일실재일조(事官千日失在一朝) 관부에 종사하기가 천 일의 장구함이며 과실은 겨우 1()의 사이에 있다. 오등회원8 왕연빈거사. ()이 가로되 이미 이 봉로신(捧爐神)이거늘 무엇 때문에 차()를 엎었습니까. ()이 가로되 사관하기 천 일에 과실이 하루아침에 있습니다(事官千日 失在一朝). 공이 소매를 떨치고 곧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