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조주록(趙州錄) 19

태화당 2026. 7. 23. 07:31

兄弟 正人說邪法 邪法亦隨正 邪人說正法 正法亦隨邪 諸方難見易識 我者裏易見難識

 

형제여, 정인(正人)이 사법(邪法)을 설하면 사법도 또한 정()을 따르고 사인(邪人)이 정법(正法)을 설하면 정법도 또한 사()를 따른다. 제방(諸方)은 보기는 어려우나 알기가 쉽고 나의 자리(者裏; 이 속)는 보기는 쉬우나 알기는 어렵다.

 

問 善惡惑不得底人還獨脫也無 師云 不獨脫 學云 爲什麽不獨脫 師云 正在善惡裏

 

묻되 선악혹(善惡惑)을 얻지 않는 사람은 도리어 독탈(獨脫)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독탈하지 못한다. 학운(學云) 무엇 때문에 독탈하지 못합니까. 사운 바로() 선악 속에 있어서이다.

 

尼問 離却上來說處 請和尙指示 師咄云 煨破鐵甁 尼將鐵甁添水來 請和尙答話 師笑之

 

()가 묻되 상래(上來; 方今. 以上)에 설한 곳을 여의어버리고 화상의 지시(指示)를 청합니다. 스님이 돌(; 꾸짖다)하고 이르되 철병(鐵甁)을 구워() 깨뜨렸다. ()가 철병(鐵甁)을 가져다 첨수(添水)하여 왔다. 화상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스님이 그것()을 웃었다.

 

世界變爲黑穴 未審此箇落在何路 師云 不占 學云 不占是什麽人 師云 田厙奴

世界; 梵語曰路迦 世爲遷流之義 謂過現未時之遷行也 界謂具東西南北之界畔 卽有情依止之國土也 又曰世間 間爲間隔之義 故與界之義同 此二者雖通用於有情與國土 而常言者爲國土也 [楞嚴經四 名義集三] 禪門拈頌集第七八六則 拈頌說話曰 世者 時分 界者 區分 一塵一法 皆有世界也

 

묻되 세계(世界)가 변화하여 흑혈(黑穴)이 되면 미심(未審)하나니 차개(此箇; 본심. 本性)는 어느 길에 떨어져 있습니까. 사운 점치지() 못한다. 학운(學云) 점치지 못함은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운 전사노(田厙奴).

世界; 범어(梵語)로 가로되 로가(路迦; loka). ()는 천류(遷流)의 뜻이니 이르자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시간이 천행(遷行)함이며 계()는 이르자면 동서남북의 계반(界畔)을 갖췄으니 곧 유정(有情)이 의지하는 국토임. 또 가로되 세간(世間)이니 간()은 간격의 뜻이 되므로 고로 계()의 뜻과 한가지임. 2자가 비록 유정과 국토에 통용되지만 늘 말하는 것은 국토가 됨 [릉엄경4. 명의집3]. 선문염송집 제786. 염송설화에 가로되 세()란 것은 시분(時分)이며 계()란 것은 구분(區分)이다. 11(一塵一法)에 모두 세계가 있다.

 

問 無言無意 始稱得句 旣是無言 喚什麽作句 師云 高而不危 滿而不溢 學云 卽今和尙是滿是溢 師云 爭柰你問我

 

묻되 무언무의(無言無意)라야 비로소 득구(得句)라고 일컫는다 하거니와 이미 이 무언(無言)이거늘 무엇을 일러 구()라 합니까. 사운 높으면서 위태(危殆; )하지 않고 가득하면서(滿) 넘치지() 않는다. 학운(學云) 즉금(卽今) 화상은 이 만(滿)입니까, 이 일()입니까. 사운 네가 나에게 물음을 어찌하리오(爭柰).

 

問 如何是靈者 師云 淨地上屙一堆屎 學云 請和尙的旨 師云 莫惱亂老僧

靈者; 指靈明皎潔的本心本性 [趙州錄校註集評]

 

묻되 무엇이 이 영자(靈者 ; 한 것)입니까. 사운 정지(淨地) 위에 한 무더기의 똥을 누었구나. 학운(學云) 화상의 적지(的旨; 確實한 지취)를 청합니다. 사운 노승을 뇌란(惱亂)하지 말아라.

靈者; 영명(靈明)하고 교결(皎潔)한 본심과 본성을 가리킴 [조주록교주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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