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法身無爲 不墮諸數 還許道也無 師云 作麽生道 學云 與麽卽不道也 師笑之
●無爲; 無造作之意 有爲之對稱 卽非由因緣所造作 離生滅變化而絶對常住之法 又作無爲法 原是涅槃之異名 後世更於涅槃以外 立種種無爲 於是産生三無爲六無爲九無爲等諸說 ▲道德經觀妙章第一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道德經無爲章第三十七 道常無爲而無不爲 ▲道德經第四十八日損章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矣 ▲易繫辭上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묻되 법신은 무위(無爲)인지라 제수(諸數)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니 도리어 말함(道)을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어떻게(作麽生) 말하겠느냐. 학운(學云) 그렇다면(與麽) 곧 말하지 않겠습니다. 스님이 웃었다.
●無爲; 조작이 없음의 뜻이니 유위의 대칭임.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된 바가 아닌,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여읜 절대상주(絶對常住)의 법임. 또 무위법으로 지으며 원래 이것은 열반의 다른 이름임. 후세에 다시 열반의 밖에 갖가지 무위를 세워 이에 3무위ㆍ6무위ㆍ9무위 등의 여러 설을 산생(産生)했음. ▲도덕경 관묘장 제1. 이런 가닭으로 성인은 무위지사(無爲之事)에 처하면서 불언(不言)의 교를 행한다. ▲도덕경 무위장 제37. 도는 늘 무위이면서 하지 않음이 없다. ▲도덕경 제48 일손장. 학(學)을 하면 날로 더하고(益) 도(道)를 하면 날로 더나니(損)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면 무위이면서 하지 못함이 없다. ▲역(易) 계사상(繫辭上). 역(易)은 무사(無思)며 무위(無爲)니 적연(寂然)하여 부동(不動)하면서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의 고(故. 事. 萬事)에 통한다.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하겠는가.
問 如何是佛 如何是衆生 師云 衆生卽是佛 佛卽是衆生 學云 未審兩箇那箇是衆生 師云 問 問
묻되 무엇이 이 부처며 무엇이 이 중생입니까. 사운 중생이 곧 이 부처며 부처가 곧 이 중생이다. 학운(學云) 미심하오니 양개(兩箇)에 어느 것(那箇)이 이 중생입니까. 사운 문(問)이다, 문(問)이다.
問 大道無根 如何接唱 師云 你便接唱 云 無根又作麽生 師云 旣是無根 什麽處繫縳你
묻되 대도(大道)는 무근(無根)이거늘 어떻게 접창(接唱; 이어서 唱함)합니까. 사운 네가 바로 접창한다. 이르되(云; 補入) 무근(無根)은 또 어떻습니까. 사운 이미 이 무근이거늘 어느 곳(什麽處)이 너를 계박(繫縳)하느냐.
問 正修行底人 莫被鬼神測得也無 師云 測得 云 過在什麽處 師云 過在覓處 云 與麽卽不修行也 師云 修行
묻되 바르게 수행하는 사람은 귀신(鬼神)이 측득(測得; 헤아림을 얻다)함을 입지 않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측득(測得)한다. 이르되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운 허물이 찾는 곳(覓處)에 있다. 이르되 그렇다면 곧 수행(修行)이 아니겠습니다. 사운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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