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示衆云 老僧此間卽以本分事接人 若敎老僧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接他了也 若是不會 是誰過歟 已後遇著作家漢 也道老僧不辜他 但有人問 以本分事接人
●示衆; 於禪林中 禪師爲門弟大衆等開示宗要 稱爲示衆 又作垂語 垂示 六祖壇經定慧品 師示衆云 善知識 我此法門以定慧爲本 諸經錄中有關示衆一詞 以本經所載爲最早
●三乘; 三藏法數七 三乘[出法華經] 一聲聞乘 聞佛聲敎而得悟道 故曰聲聞 謂其知苦斷集 慕滅修道 故以此四諦爲乘也 二緣覺乘 因觀十二因緣 覺眞諦理 故名緣覺 謂始觀無明緣乃至老死 此是觀十二因緣生 次觀無明滅乃至老死滅 此是觀十二因緣滅 觀此因緣生滅 卽悟非生非滅 故以此十二因緣爲乘也 三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覺悟一切有情衆生也 菩薩行六度行 廣化衆生 出離生死 故以此六度爲乘也 ▲大乘起信論疏略上 乘者運載之義 謂諸佛乘此而證菩提般涅槃 菩薩乘此而趣果海 衆生乘之而輪轉生死
●十二分敎; 又稱十二分聖敎、十二部經 是釋迦牟尼佛所說的一切言敎 依其內容和形式可分爲十二類 契經 祇夜 記別 諷頌 自說 因緣 譬喻 本事 本生 方廣 未曾有法 論議
스님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노승의 차간(此間)에선 곧 본분사(本分事)로써 접인(接人)한다. 만약 노승으로 하여금 그들(伊)의 근기(根機) 따라 접인(接人)하게 한다면 스스로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가 있어 그들(他)을 접인(接引; 接)해 마쳤다. 만약 이 알지(會) 못한다면 이 누구의 허물이겠느냐. 이후(已後)에 작가한(作家漢)을 만나면(遇著) 또한 노승이 그들(他)을 저버리지(辜)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단지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본분사로써 접인(接人)한다.
●示衆; 선림 중에서 선사가 문제(門弟)나 대중 등을 위해 종요를 개시함을 일컬어 시중이라 함. 또 수어(垂語)ㆍ수시(垂示)로 지음. 육조단경 정혜품. 스님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선지식이여 나의 이 법문은 정혜를 근본으로 삼는다. 모든 경록(經錄) 중 시중 1사(詞)에 유관한 것은 본경에 실린 것으로써 최조(最早)로 삼음.
●三乘; 1. 성문승(聲聞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悟道)를 얻나니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이르자면 그가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고 멸(滅)을 흠모해 도를 닦나니 고로 이 4제(諦)로써 승(乘)을 삼는다. 2 연각승(緣覺乘) 12인연(因緣)을 관(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치므로 고로 이름이 연각이다. 이르자면 처음에 무명(無明)의 인연 내지 노사(老死)를 관하나니 이는 곧 12인연의 생(生)을 관함이며 다음에 무명의 멸(滅) 내지 노사(老死)의 멸을 관하나니 이는 곧 십이인연의 멸을 관함이다. 이 인연의 생멸을 관하여 곧 비생비멸(非生非滅)을 깨치나니 고로 이 12인연으로써 승(乘)을 삼는다. 3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菩提薩埵)며 중화(中華; 중국)의 말로는 각유정(覺有情)이니 이르자면 일체의 유정중생(有情衆生)을 각오(覺悟)케 함이다. 보살은 육도(六度; 六波羅蜜)의 행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생사를 출리(出離)케 하나니 고로 이 6도(度)로써 승(乘)을 삼는다. ▲대승기신론소략상. 승(乘)이란 것은 운재(運載)의 뜻이다. 이르자면 제불이 이것을 타고 보리와 반열반(般涅槃; 약칭이 열반)을 증득하고 보살이 이것을 타고 과해(果海)로 나아가며 중생이 이것을 타고 생사에 윤전(輪轉)한다.
●十二分敎; 또 명칭이 십이분성교(十二分聖敎), 십이부경(十二部經)이니 이는 석가모니불이 설한 바의 일체 언교(言敎)를 그 내용과 형식에 의해 가히 12류(類)로 분류한 것. 계경(契經), 기야(祇夜), 기별(記別), 풍송(諷頌), 자설(自說), 인연, 비유, 본사(本事), 본생, 방광(方廣), 미증유법, 논의(論議)임.
問 從上至今卽心是佛 不卽心還許學人商量也無 師云 卽心且置 商量箇什麽
●且置; 放在前分句末尾 表示排除前分句內容 引出的後分句是主題句
묻되 종상(從上; 從前)에서 지금(至今)토록 즉심(卽心)이 이 부처입니다. 즉심이 아닌 것을 도리어 학인(學人)이 상량(商量)함을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師云) 즉심은 차치(且置)하고 저(箇) 무엇을 상량하느냐.
●且置; 전분구(前分句) 말미에 놓아두어 전분구의 내용을 배제하고 인출하는 후분구가 이 주제구(主題句)임을 표시함.
問 古鏡不磨 還照也無 師云 前生是因 今生是果
●古鏡; 鏡之功能 能映現一切萬物無有差別 故禪宗以之比喩佛性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磨) 않으면 도리어 비춥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師云) 전생(前生)은 이 인(因)이며 금생(今生)은 이 과(果)다.
●古鏡; 거울의 공능(功能)은 능히 일체의 만물을 비추어 나타내면서 차별이 있지 않는지라 고로 선종에서 이것으로써 불성에 비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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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심사주(平心寺主) 태화당( 泰華堂) 정원(淨圓)스님의 저서 공개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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