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일적 1000

태화일적(泰華一滴) 355

【355】 師臨歸寂*小參示衆 說時七顚八倒 默時落二落三 爲報五湖高士 *心王自在休參 〖死心悟新語錄〗 스님이 귀적에 임해 소참(*小參)에 시중하다. 설할 때 칠전팔도며/ 묵묵할 때 낙이낙삼이다/ 5호(湖)의 고사(高士; 高尙한 사내. 또 보살의 舊譯임)에게 알리노니/ 심왕(*心王)이 자재하므로 참구를 그쳐라. *小參; 이르자면 비시(非時)의 설법임. 상당을 일컬어 대참(大參)이라 하고 그 규칙이 곧 대참에 비교하면 작음이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소참임. *心王; 심의 주작용(主作用)이니 심소(心所)의 반작용(伴作用)에 대해 이르되 심왕이라 함. 심왕이란 것은 소대(所對)의 경계를 모두 요별(了別)하며 심소란 것은 이에 대해 탐진 등의 감정을 일으킴임.

태화일적 2020.11.11

태화일적(泰華一滴) 354

【354】 師久不陞堂 院主白曰 大衆久思和尙示誨 師曰 打鐘著 衆纔集 師便下座 歸*方丈 院主隨後問曰 和尙旣許爲大衆說話 爲甚麽一言不措 師曰 經有經師 論有論師 爭怪得老僧 〖五燈會元五 藥山惟儼〗 스님(惟儼이니 당대승. 石頭希遷을 이었음)이 오래도록 상당하지 않았다. 원주가 사뢰어 가로되 대중이 화상의 시회(示誨. 誨는 가르칠 회)를 구사(久思; 思는 願의 뜻)하였습니다. 스님이 가로되 종을 치거라. 대중이 겨우 모이자 스님이 문득 하좌(下座)하여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원주가 뒤따라가 물어 가로되 화상께서는 이미 대중을 위해 설화(說話)하겠다고 허락하시고선 무엇 때문에 한마디도 조치(措置)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경에는 경사(經師)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거늘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겠는가. *方丈..

태화일적 2020.11.11

태화일적(泰華一滴) 352

【352】 師住鄂州巖頭 値沙汰 於湖邊作渡子 兩岸各挂一板 有人過渡 打板一下 師曰 阿誰 或曰 要過那邊去 師乃舞棹迎之 一日 因一婆抱一孩兒來 乃曰 呈橈舞棹卽不問 且道婆手中兒甚處得來 師便打 婆曰 婆生七子 六箇不遇知音 秖這一箇 也不消得 便拋向水中 〖五燈會元七 巖頭全奯〗 스님(全奯이니 또 全豁로 지음. 德山宣鑑의 法嗣)이 악주(鄂州) 암두(巖頭)에 거주했는데 사태(沙汰)를 만나 호변에서 도자(渡子; 뱃사공)가 되었다. 양안(兩岸)에 각기 1판(板)을 걸고 과도(過渡; 건너가다)할 사람이 있으면 한 번 판을 때렸다. 스님이 가로되 누구인가. 혹 가로되 나변(那邊; 저쪽 가)에 이르려고(過) 합니다. 스님이 이에 노를 춤추며 그를 맞이했다. 어느 날 한 노파가 한 해아(孩兒)를 안고 와서 이에 가로되 정뇨무도(呈橈舞棹;..

태화일적 2020.11.11

태화일적(泰華一滴) 351

【351】 華嚴經偈云 心如工畫師 造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宗鏡錄三十七〗 화엄경 게에 이르되 마음은 공교(工巧)한 화사(畫師)와 같이/ 갖가지 5음(陰)을 조작하나니/ 일체 세계 중에/ 조작하지 못하는 법이 없다/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나니/ 심ㆍ불 및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다.

태화일적 2020.11.11

태화일적(泰華一滴) 348

【348】 如是九會之經共成八十卷也 然此八十卷經分作四分 謂之信解行證也 㝡初有十一卷爲衆生開發信門 其次有四十一卷爲衆生開發解門 又其次有七卷爲衆生開發行門 又其次有二十一卷爲衆生開發證門 一部大經不出信解行證之四分 四分所詮之義不出五周 六相 十玄門 四法界也 由信而解 由解而行 由行而證 斯一經本末之大旨也 〖天如惟則語錄二〗 이와 같이 9회(會)의 경이 공히 80권을 이룬다. 그러하여 이 80권 경(화엄경)을 분류하여 4분(分)으로 짓는다. 그것을 이르자면 신해행증(信解行證)이다. 최초에 11권이 있으니 중생개발신문(衆生開發信門)이 된다. 그 다음에 41권이 있으니 중생개발해문(衆生開發解門)이 된다. 또 그 다음에 7권이 있으니 중생개발행문(衆生開發行門)이 된다. 또 그 다음에 21권이 있으니 중생개발증문(衆生開發證門)이 된다...

태화일적 2020.11.10

태화일적(泰華一滴) 347

【347】 若似新婦子禪師 便卽怕趁出院 不與飯喫 不安不樂 自古先輩 到處人不信 被遞出 始知是貴 若到處人盡肯 堪作什麽 〖五宗錄一 臨濟〗 만약 신부자(新婦子; 子는 後綴) 같은 선사(禪師)라면 곧 사원에서 쫓겨날까, 함께 밥을 먹지 못할까 두려워 안심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거니와 자고로 선배들이 도처에서 사람들이 불신하여 번갈아 쫓겨남을 입었으니 비로소 이 존귀한 줄 안다. 만약 도처에서 사람들이 다 긍정한다면 차마 무엇하리오.

태화일적 2020.11.10

태화일적(泰華一滴) 345

【345】 海印信和尙嗣瑯瑘 桂府人也 住蘇州定慧寺 年八十餘 平日受朱防禦家供養 屢到其宅 一日朱問曰 和尙後世能來弟子家中託生否 師微笑諾之 及歸寺得疾 數日而化 其遷化日 朱家生一女子 圓照本禪師時住瑞光 聞其事往訪之 方出月抱出 一見便笑 圓照喚云 海印爾錯了也 女子哭數聲化去 〖宗門武庫〗 해인신화상(海印信和尙; 超信이니 송대 임제종승)은 낭야(琅邪; 慧覺)를 이었으며 계부 사람이다. 소주 정혜사에 주지했으며 나이가 80여였다. 평일에 주방어가(朱防禦家)의 공양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그 집에 이르렀는데 어느 날 주(朱)가 물어 가로되 화상이 후세(後世)에 능히 제자(弟子)의 집 가운데 와서 탁생(託生)하시겠습니까. 스님이 미소하며 그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절에 돌아와서 질병을 얻어 수일 만에 화거(化去)했으며 그 천화(遷化)..

태화일적 2020.11.10

태화일적(泰華一滴) 344

【344】 佛祖言敎雖不謾人 只爲學此道者錯認方便 於一言一句中 求玄求妙求得求失 因而透不得 不得道佛祖不謾人 如患盲之人 不見日月光 是盲者過 非日月咎 〖大慧語錄二十三〗 불조의 언교(言敎)는 비록 사람을 속이지 않지만 다만 이 도를 배우는 자가 방편을 착인(錯認)하기 때문에 1언1구 중에서 구현구묘(求玄求妙)하고 구득구실(求得求失)하는지라 이로 인해 투과함을 얻지 못하나니 불조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 말함을 얻지 못한다. 환맹(患盲)의 사람이 일월의 빛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맹자의 허물(是盲者過)이며 일월의 허물이 아니다.

태화일적 2020.11.10

태화일적(泰華一滴) 342

【342】 志閑頌云 僧家無事最幽閑 近對靑松遠對山 詩句不曾題落葉 恐隨流水到人間 〖祖庭事苑三〗 지한(志閑; 香嚴志閑이니 潙山靈祐의 法嗣)의 송에 이르되 승가(僧家)의 일 없음이 가장 유한(幽閑)하나니/ 가까이 청송을 대했고 멀리 산을 대했다/ 시구를 일찍이 낙엽에 제(題)하지 않음은/ 유수 따라 인간에 이를까 염려함이다. 오등회원9(五燈會元九) 향엄지한(香嚴智閑). 스님이 무릇 학도에게 보이면서 말씀이 다분히 간직(簡直)했다. 게송 2백여 편(篇)이 있는데 수연(隨緣)하여 대기(對機)했고 성률(聲律)에 구애되지 않았다. 제방에 성행한다(師凡示學徒 語多簡直 有偈頌二百餘篇 隨緣對機 不拘聲律 諸方盛行).

태화일적 2020.11.10